선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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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2014.09.01 조회 1,923 추천 17


 프롤로그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삐익! 삐익!
 상황실의 모든 기계가 요란한 기계음을 터트렸다. 코드 레드! 코드 레드! 하는 굵직한 목소리도 마찬가지로 현재 비상이 터졌다는 걸 알리고 있었다.
 “코드 레드! 코드 레드 떴습니다!”
 요원 하나가 헤드폰을 벗으면서 소리쳤다. 그러나 그가 소리칠 필요는 없었다. 이미 모든 상황실 요원들은 제자리에 착석하고 모니터를 노려보며 거침없이 키보드를 내려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곧바로 비장함이 서렸다.
 그걸 가장 상석에서 지켜보고 있던, 상황실장으로 보이는 오십 대 남자가 전방을 노려보다 소리쳤다.
 “등장까지 남은 시간은?”
 “현재 빛무리의 색으로 보아… 삼 분! 삼 분입니다!”
 “삼 분…….”
 누군가가 허탈한 신음처럼 삼 분을 중얼거렸다.
 상황실장의 마음이 딱 그와 같았다.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저 빛무리가 가장 밝은 빛을 뿌리기 시작하고, 그 저주받은 군대의 출현에 대비할 시간으로는.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었다. 저 빛무리가 끝나고, 등장할 이계의 침략 부대가 이곳 한국이 아닌, 다른 국가 쪽으로 움직여 주는 것. 그것 하나밖에 없었다.
 그때, 상황실의 문이 열리고 이십 대 후반이나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들어오며 소리쳤다. 정복 어깨에 부착된 계급으로 보아 상황실장보다 낮은 직급이었지만 인사고 뭐고 모조리 생략하고 본론을 바로 던졌다.
 “협회에서의 전문입니다!”
 “내용은?”
 상황실장이 묻자 여성은 곧바로 서신을 펼쳤다. 그리고 또렷한 목소리로 지체 없이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서신의 마지막을 확인했을 때 여성의 얼굴은 급속도로 창백해졌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전언을 읊었다.
 “프랑스 협회로부터의 전언!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의 예언으로… 목적지는 울산! 울산입니다!”
 울산, 울산하고 외치는 여성의 목소리는 경악이 차 있었다. 그리고 그 경악에 걸맞게, 상황실의 공기는 싸늘히 얼어붙었다.
 울산, 울산이라고……?
 프랑스에서 각성한 영웅 노스트라다무스. 그가 한 예언이라면 결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빛나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맞을 것이다. 이계의 침략군이 이번에 목표로 하는 곳은 울산이다.
 “…….”
 “…….”
 모두가 입만 뻐끔거렸지, 그 어떤 말도 내뱉지 못했다.
 불길함이 가득한 정적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역시 상황실장.
 “여해 함대에 전문 때려!”
 “예!”
 “청와대와 군부한테도 전문 보내고!”
 “네!”
 비명에 가까운 외침에 예! 하고 대답한 젊은 여성 오퍼레이터가 급히 전문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째서… 아직 반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신음에 가까운 상황실장의 말에 모두가 이를 악물었다. 저번 침공으로부터 반년. 근 십 년간 일 년에 한 번 꼴로 침공을 받은 대한민국이었다. 반년만의 침공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모두의 정신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예외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인간은 공황상태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이들은 에이스. 상황실장의 말에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전문 보냈습니다!”
 “…….”
 상황실장.
 지용국 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다 조용히 중얼거렸다.
 “부탁드립니다… 충무공 제독.”
 이제 그의 손에 달렸다.
 이 나라의 명운은.
 
 *
 
 사락사락.
 책 넘어가는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방 안. 사십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중년인이 허리를 꼿꼿이 편 상태로 정좌하고 책을 읽고 있었다.
 두 눈에는 정광이 가득 차 흐르고 있었고, 고요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와 강직한 분위기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반된 분위기는 누가 봐도 이 중년인을 범상치 않은 사내로 느끼게 했다.
 사락. 사르륵.
 한문으로 된 서적을 읽는 중년인의 독서가 끝난 건, 문이 열리고 대위 견장을 찬 젊은 사내가 들어오고 나서였다.
 “제독. 전문이 왔습니다!”
 “보고하게.”
 “대협곡에서 침략군 출현! 목적지는 울산입니다!”
 “으음…….”
 짧게 눈살을 찌푸린 사내가 책을 탁 소리가 나게 덮었다. 그 후, 천천히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벽에 걸린 제복 상의를 몸에 걸치고 뒤돌아서는 사내에게는 어느새 위엄과 만인을 압도하는 기백이 가득 서려 있었다.
 “가세.”
 “예!”
 사내가 문을 나서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도착한 곳은 현재 사내가 기거하는 함선이다. 기함旗艦이자 전함戰艦. 그리고 거함巨艦.
 거북선이다.
 하지만 나무로 만들어진 옛 시대의 거북선은 아니다. 온갖 첨단기기가 가득 들어차 있었고, 대협곡에서 기어 나오는 침략군을 물리칠 무기를 가득 탑재한, 최첨단을 넘은 오버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최신 전함이다.
 충무공 제독이 지휘석의 오른쪽 패드에 손바닥을 올렸다. 촤르륵. 그 즉시 뻗어 나온 레이저가 제독의 신체를 스캔하고, 지문을 체크했다. 오직 그만이 이 전함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클리어. 클리어. 클리어.
 잠에서 깬 사자 같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였다.
 [제독, 충무공. 인식했습니다. 기함 ‘여해’ 기동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충무공 제독은 전방을 노려보다 이내 조용히 명령을 내렸다.
 “출항하라.”
 “예, 출항! 출항이다!”
 부함장의 명령 전달에 기함 여해에 타고 있는 승무원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닥. 버튼을 누르고, 레버를 당겼다. 승무원들은 이미 얼굴 가득 비장미를 보이고 있었다. 이제 시작된다.
 또다시 우웅! 하는 진동음이 사방을 흔들고, 모든 계기판에 전원이 들어갔다.
 기함 여해는 잠시 출렁이더니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가속도가 붙더니 무시무시한 속도로 눈보라 치는 바다로 나아갔다. 크기에 맞지 않은 움직임과 군형이었다. 넘실거리는 파도를 그냥 무시하고 있었다.
 오버테크놀로지.
 그 정수가 가득 몰려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낱 미물(微物)들이 이 땅을 유린하게…….”
 이 배의 함장이자 함대의 제독인 충무공이 말한다.
 무시무시한 기백이 서린 눈으로 눈보라 치는 바다를 쏘아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내버려 둘 성싶으냐.”
 전폭 100M.
 전장 220M.
 강화 합금을 전신에 두른 거북선의 모습의 위용은 어마어마했다. 거북선은 과거 이 땅을 지켰다고 세계 역사에 기록된 전함이다.
 그러나 거북선이 이 땅을 지킨 게 아니다.
 이 땅의 영웅인 성웅이 있었기에 거북선이 탄생했고, 성웅이 그 거북선을 타고 나라를 지켜낸 것이다.
 충무공(忠武公).
 이 나라의 영원한 영웅이 지금 다시 한 번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전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
 
 눈보라 치는 바다.
 그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일단의 선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칠흑의 미스트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빛을 뿌리고 있어 기괴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21세기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대협곡의 등장과 인류의 멸망을 요구하는 이세계의 갤리온 함대의 등장이었다.
 전폭 70m.
 전장 160m.
 대형 갤리온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범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보라와 그에 따라 출렁이는 파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협곡을 기준으로 서남진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충무공의 함대와 마주쳤다.
 스아아아.
 거친 파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갤리온 함대의 함포가 열렸다.
 쾅! 콰광!
 그 후 눈보라를 뚫고 포탄들이 하늘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에 따라 마주 오는 선단에서도 포가 발사됐다.
 눈보라 치는 바다의 밤이 환하게 밝았다.
 과학의 정수가 가득 담긴 함대는 일체의 빗나감 없이 갤리온 함대가 쏘아낸 포격을 모조리 막아냈다.
 현대 과학의 정수가 이 바다에 모조리 집중되어 있었다.
 잠시 후. 기함인 거북선의 아가리가 열렸다. 가가각. 쇠의 마찰 소리와 함께 열린 아가리 안에서 포문이 슬그머니 튀나왔다.
 그리고 갤리온 선단을 찢어발기는 레일건이 투사됐다.
 초강대국 미국조차 실전 배치하지 못한 이 레일건은 이 땅을 지키는 최고, 최강의 무기다.
 
 21세기에 들어선 인류는 멸망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대한 해협, 과거 동해와 일본해의 경계선에 생긴 대협곡에 의하여. 그리고 그 협곡에서 올라오는 정체불명의 침략군에 의해.
 이미 일본은 대협곡이 등장한 십 년 전에 식민지가 됐고, 대만은 오 년 전에 정복당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아직도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영웅(英雄)이자 성웅(聖雄).
 현세에 재림한 충무공(忠武公) 덕분이었다.
 허나, 그를 뛰어넘을 인류의 구원자가 이제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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