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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 001화 재상아들 나신헌(1)

2021.04.06 조회 1,719 추천 11


 #서장
 
 
 
 
 
 “주군! 피하셔야 합니다!!”
 무극림(無極林)은 적습으로 궤멸 직전이었다.
 “···으음!”
 무극림의 장로와 문도들은 문주 무극천마(無極天魔)를 호위하며 최후의 동귀어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협곡 아래 무극림의 본당은 불타고 있었고, 유일한 출구인 정면에는 무극림을 토벌하기 위한 십만의 관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군! 이곳은 저희가 막겠습니다! 부디 피하십시오!”
 “···피해? 본좌가 너희를 놔두고 홀로 피하란 말인가?”
 관부와 무림이 손잡아 무극림과 문도들을 협공했다.
 그로 인해 무극림의 모든 거점이 파괴되고, 마지막 남은 본당마저 관군에 포위된 것이 지금의 상황이었다.
 “무극림은 들어라! 지금이라도 모두 투항한다면 목숨은 살려줄 것이다!”
 관군을 이끄는 왕찬 장군의 외침에 임 장로가 이를 갈았다.
 “주군, 저놈들이 우릴 보고 관군의 개가 되라고 합니다.”
 “···후후후, 그래?”
 무극천마는 이 상황에서 웃음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군!”
 “군부의 개가 될 수야 없지, 모두 본좌를 따르라!”
 “존명!”
 무극천마가 본당을 나서자, 남은 문도들 역시 본당에서 나왔다.
 “정면돌파로 이곳을 탈출한다! 모두들 살아남아야 한다!”
 무극림은 모든 것을 쏟아부어 관군을 항해 돌진했다.
 무극천마를 선두로, 장로들과 남은 문도들은 필사적으로 적을 베며 퇴로를 뚫었다.
 수십 명 남짓한 무극림이 십만이 넘는 관군과 싸워 가며 길을 만들 때, 무극천마가 기공을 끌어모았다.
 “무극천마신장(無極天魔神掌)!”
 콰콰콰콰쾅!
 무극천마의 두 손에서 뿜어진 기공은 철갑과 방패로 막아선 중보병대를 격파했다.
 수많은 관군을 뚫으며 나아가는 무극림의 앞을 장군기가 막았다.
 “왕찬!”
 길을 막아선 장군 왕찬을 보며 무극천마가 외쳤다.
 짝짝짝-
 “으하하하하! 대단하군, 정말 대단해!”
 왕찬은 손뼉을 치며 말에서 뛰어내려, 무극천마와 무극림 문도들 앞에 착지했다.
 왕찬의 뒤로 수많은 철기병단과 화살을 겨누는 노병대가 있었다.
 무극천마를 포함해 이제 남은 무극림의 생존자는 십여 명 정도였다.
 “내 다시 한번 기회를 주지, 지금이라도 투항할 생각이 있다면 내 아량을 베풀겠네.”
 다시 한번 자신의 밑으로 들어올 것을 제안하는 왕찬 앞에서 무극천마는 고개를 저었다.
 “그 제안은 다시 한번 거절하마!”
 “어리석은 놈들이구나, 기어이 저승 구경이 하고 싶은 게냐?”
 언월도를 든 왕찬이 어마어마한 투기를 방출했다.
 피부가 얼어붙을 것 같은 무시무시한 기운이 주변에 퍼졌다.
 무극천마는 왕찬을 향해 외쳤다.
 “왕찬! 네 놈에게 일대일 승부를 요청한다!”
 “뭐라?”
 언월도를 든 왕찬에게 무극천마는 당당하게 걸어갔다.
 “어차피 네 녀석은 나 하나의 목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이곳까지 도달하기 위해 상당한 내공을 소진하였으나, 무극천마는 마지막까지 남은 문도들을 위해 싸우기로 했다.
 “주군! 안 됩니다!”
 “저희가 길을 뚫겠습니다! 주군께서 피하셔야 합니다!”
 남은 문도들이 외쳤지만, 이미 무극천마는 결심했다.
 “본좌가 왕찬과 일대일 승부로 길을 열 것이니, 다들 각자의 삶을 찾아 살아남거라.”
 “주군!”
 “이것은 명령이다!”
 문도들의 외침 속에서 무극천마는 미소를 띤 채, 왕찬에게 다시 외쳤다.
 “어떤가? 본좌와 일대일 승부가!”
 “훗- 좋아! 수비군은 잠시 물러나 있거라! 내가 직접 상대할 것이다!”
 왕찬은 주변을 물리며 무극천마의 대결에 응했고, 두 무인이 부딪친 순간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이름 없는 고아로 무극림이 거두어 자라났다.
 44년 평생 강함만을 추구하며 십대고수도, 무림세가도, 천하오절도, 마교의 교주까지 모두 무릎 꿇였다.
 그 초월적인 강함으로 무극천마라는 칭호를 얻은 그였다.
 그리고 지금, 제국 최강의 무장이라 불리는 왕찬과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승부를 벌였다.
 
 “크으윽···.”
 관군의 포위를 정면으로 뚫고, 왕찬을 상대하기까지 수많은 전투를 겪은 무극천마는 그 힘이 다해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후우, 제법 강했다. 무극천마!”
 왕찬은 마무리를 위해 주저앉은 무극천마 앞으로 다가왔다.
 “무극림의 의지는··· 사라지지 않으리!”
 무극천마가 마지막 유언을 남겼을 때, 왕찬이 언월도를 크게 휘둘렀다.
 “주군!!”
 무극림의 문도들이 오열하고 있을 때, 왕찬은 피에 젖은 언월도를 들어 올렸다.
 “이로써 무극림의 토벌은 끝이 났다! 이 전투는 우리의 승리이다!”
 왕찬의 외침에 관군들의 환호성이 협곡을 울렸다.
 그렇게 무림 최대의 세력 무극림은 종말을 맞이했다.
 
 
 
 
 
 #001화 재상아들 나신헌(1)
 
 
 
 
 
 제국의 재상 나진은 퇴궐 이후 다급히 자택으로 달려왔다.
 “나리! 오셨습니까요?”
 “어, 어찌 됐는가?!”
 정무로 인해 부인의 출산에도 같이 있지 못했던 나진이었다.
 다급히 부인과 아이에 관해 묻는 나진에게 유 집사와 하인들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마님께서 아주 건강한 도련님을 출산하셨습니다요.”
 “뭐라? 허허··· 드디어 아들이 태어났단 말인가, 드디어!”
 “감축드립니다, 나리!”
 나진이 조정에 몸을 담은 지 어느덧 스물다섯 해였다.
 유서 깊은 가문에서 태어나 아흔아홉 칸의 저택을 두고, 조정의 요직을 차지한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누렸었다.
 하지만 나진에게는 딸만 셋,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첩을 두라는 주변의 만류도 무시한 채, 일편단심 본처만을 사랑했던 그에게 늘그막에 찾아온 경사였다.
 부인이 기적적으로 회임을 하여, 나진은 마흔여덟에 늦둥이 아들을 보게 된 것이다.
 나진은 아이와 부인을 보기 위해 곧바로 안채로 들었다.
 “부인, 정말 고생했소! 그리고 이 아이가 바로 우리 가문을 이어갈···?”
 기쁨이 넘쳐 부인과 아들을 보려는 순간, 나진이 마주한 것은 당당하게 두 발로 일어난 갓난아기였다.
 “아, 아니?”
 “나리!”
 갓 해산한 양 부인도, 급히 들어온 나진도 놀랄 일이었다.
 “이게··· 뭐야?”
 “흐읍?!”
 양수에 젖은 갓 태어난 아이가 나진을 향해 또박또박 말을 하고 있었다.
 “본좌가 왜 이런 젖먹이의 몸을 하고 있지?”
 “세, 세상에···.”
 두 눈을 부릅뜬 아이의 말에 나진은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아이는 별안간 눈이 돌아가며 풀썩 쓰러졌다.
 “아, 아가! 아가!”
 나진과 양 부인이 황급히 해산한 아기에게 달려갔고, 밖에 있던 하인들이 달려왔다.
 그것이 나진의 아들 나신헌의 탄생이었다.
 
 ***
 
 “나리! 퇴청하셨습니까요?”
 퇴궐한 나진은 마중을 나오지 않은 아들 신헌을 찾으며 물었다.
 “흐음, 헌아는 어디 있는고?”
 “나리, 저, 그것이···.”
 “왜 말이 없는가, 그 아이가 또 바깥으로 나간 게야?”
 나진의 물음에 유 집사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허허- 어디로 갔길래 그러는가? 혹 기방에 빠져 있는 건 아니겠지?”
 여전히 우물쭈물하며 대답하지 못하는 유 집사를 보고, 나진은 한숨을 쉬며 아들을 찾아 나갈 준비를 했다.
 태어나자마자 두 다리로 일어서 말을 했던 아이 나신헌, 그 아이를 위해 나진이 움직였다.
 
 저잣거리는 뜻밖의 난동으로 쑥대밭이 되어있었다.
 “꺄아악! 사람 살려!”
 “우악! 피해! 미친 소가 더 날뛴다!”
 [우우우우우-!]
 거대한 뿔을 가진 검은 황소가 입에 거품을 문 채, 여기저기를 들쑤셔댔다.
 와장창!
 “끄아아악!”
 미친 황소가 포목점으로 달려들어 물건을 때려 부수고, 안에 있던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황소는 점점 더 미쳐 날뛰었다.
 이대로 놔뒀다간 저잣거리에 사람이고 기물이고, 성한 것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 도망치는 사람들 속에서 유유히 미친 황소를 향해 걸어가는 신헌이 있었다.
 칠 척 오 촌의 장신에 고급스러운 옷차림, 떡 벌어진 어깨하며 다부진 체격이 지나가는 사람 누가 봐도 장군감이라고 할 만한 인상이었다.
 신헌은 점점 더 황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거품을 문 채 날뛰던 미친 황소와 신헌의 눈이 마주쳤다.
 [푸우우- 푸!]
 황소는 콧김을 뿜어대며 맹렬한 속도로 신헌에게 달려들었다.
 거대한 뿔은 날카로운 창과 같았고 몸뚱이는 거대한 충차 같아서, 스치기만 해도 뼈 몇 개는 박살이 날 것 같았다.
 “이봐, 위험해!”
 “아이고, 피하게 이 사람아!”
 황소의 난동에 도망친 상인들이 외쳐댔지만, 신헌은 웃으며 정면으로 달려오는 황소를 상대할 준비를 했다.
 그때 인파를 헤치고 유 집사와 나진이 도착했다.
 “시, 신헌 도련님!”
 “헌아!”
 쿠쿠쿵-!
 황소와 공자 신헌이 정면으로 부딪친 순간, 사람들은 눈을 의심했다.
 “웃차!”
 신헌이 그 거대한 소의 목을 왼팔로 감싸 올려 붙잡고 있었다.
 [우우우우- 푸르륵!]
 신헌은 주변을 둘러보다 익살스럽게 웃어 보였다.
 머리가 붙잡혀 분노한 황소가 더욱더 날뛰어댔지만, 신헌은 오른손으로 황소의 뱃가죽을 부여잡고는 그대로 들어 올렸다.
 “흐읍!”
 “!!!!!!!”
 그 순간 모두가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이 벌어졌다.
 삼백 관은 넘어 보이는 거대한 황소가 번쩍 들려 수직으로 뜬 것이었다.
 그 황소를 어깨와 두 팔만으로 떠받든 신헌은 빙글빙글 돌다가 이내 힘껏 뒤로 넘겼다.
 콰아아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황소는 돌바닥에 처박혀 부들거리다가 그대로 죽어 버렸고, 신헌이 먼지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저잣거리의 모든 상인이 자신을 보고 환호하라는 듯 손을 크게 들어 올렸다.
 “우와아아아아!”
 “세상에! 정말 대단한 장사구먼!”
 “저 협객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 사람아! 저분이 상서 대인 자제분이라네!”
 상인들이 신헌에 대해 이야기하며 환호했고, 그 인기를 만끽하며 유유히 걸어가는 신헌이었다.
 그는 뒤늦게 아버지와 유 집사를 발견했다.
 “아, 아버님! 퇴궐하셨습니까?”
 “퇴궐? 지금 퇴궐이라 했느냐!”
 방금 목격한 광경을 보고 기가 찬 듯 아들을 바라보던 나진은 미간을 부여잡으며 아들을 데리고 갔다.
 
 “헌아야! 네가 오늘 무슨 짓을 한지 아는 게냐? 하마터면 크게 다쳤을 일이 아니냐!”
 아들을 나무라는 나진의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하지만 신헌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위험에 처한 이들을 구했을 뿐입니다, 그게 군자의 소명 아닙니까?”
 “어허, 분명 내가 얌전히 집에 있으라 했거늘! 네가 무슨 무관이라도 되려느···.”
 나진은 그렇게 말하려다가 자신의 세 배는 넘어 보이는 기골의 신헌을 보고는 손사래를 쳤다.
 “···알겠다, 그만 나가 보거라.”
 “네, 소자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아버님에게 한 소리 들은 뒤로도 신헌은 다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유 집사, 잠시 마실 좀 다녀오겠소.”
 “아이고 도련님! 아까 저잣거리에서 그런 일을 겪으시고 또 나가신 다니요? 아니 될 말씀입니다요!”
 “좀이 쑤셔서 집에 있기 힘들어서 말이오.”
 느긋한 얼굴로 밖에 나가는 신헌을 유 집사는 차마 말릴 수가 없었다.
 
 “올해로 이십 년이 지났나?”
 도성을 나와 자신의 놀이터였던 야산에 도착한 신헌이었다.
 눈앞의 아름드리 나무를 어루만지던 신헌은 곧바로 주먹을 뻗었다.
 쿠우우웅!
 거대한 나무에 신헌의 주먹이 찍히며 나무가 뒤흔들렸다.
 신헌은 연달아 발차기를 날려, 눈앞의 나무를 쪼개 버렸다.
 쩌적-!
 맨주먹과 발차기만으로 거대한 나무를 쓰러트렸지만, 신헌의 몸은 조금의 상처도 없었다.
 “후우!”
 나신헌, 전생에 무극천마였던 그였다.
 무극림은 이십 년 전 무림맹과 관군의 연합에 해체됐다.
 무극림의 마지막 순간, 남은 문도들을 구하기 위해 한 몸을 희생했던 그때의 기억은 신헌의 머릿속에 똑똑히 남아 있었다.
 그 날 결투 끝에 죽었다고 생각한 자신은 웬 문관의 집에서 갓난아기로 환생했다.
 “본좌의 두 번째 삶이 이렇게 다시 시작할 줄은 몰랐지.”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새로 시작한 삶에 적응을 못 했었다.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아이의 몸으로 내공을 운용해 보려고 내공심법도 써 봤다.
 하지만 신헌의 새로운 몸은 이상한 점이 많았다.
 심법을 통해 내공을 모았지만 진기는 쌓이지 않았고, 육체를 단련하지 않았지만 외공은 엄청나게 성장했다.
 그 뒤로 점점 몸이 자라면서 신헌의 신체는 점점 더 강골이 되었다.
 나무에서 떨어지고, 사냥에서 멧돼지한테 들이받히고, 호랑이한테 물려도 상처 하나 안 생기는 무쇠 같은 몸을 두고 신헌은 확신했다.
 “금화지체(金花之體)! 새로운 몸은 정말 재밌구나!”
 나신헌의 새 몸은 전설로만 내려져 오던 금화지체였다.
 선천적으로 내공이 쌓이지 않지만, 신체가 성장할수록 외공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이형의 신체였다.
 도검불침(刀劍不侵)의 신체는 동네 건달들의 날붙이 정도는 가볍게 튕겨낼 수 있었다.
 거기에 성장하면서 절정 이상의 경지까지 오르면 강기마저 받아낼 수 있는, 축복받은 몸이었다.
 물론 선천적인 단전의 기형으로 무지막지한 외공과 달리 내공이 쌓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과거 천하오절 중 셋과 마교 교주까지 물리치고 무극천마라는 칭호를 받은 몸이, 그 흔한 장풍이나 검기 하나 쏘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언제나 이렇게 육체를 단련하지 않으면 고열에 시달려 강제로 땀을 빼내야 했다.
 하지만 이 반쪽짜리 강골에 대해서 신헌은 개의치 않았다
 “이 몸으로도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지, 그리고···.”
 신헌은 이십 년 전의 악연이었던 ‘그자’를 떠올리며, 근처의 거대한 바위를 향해 발을 날렸다.
 콰아아앙!
 “새 삶을 얻었으니 한 번 더 승부를 봐야 하지 않겠어?”
 다시 올 그때를 생각하며, 신헌의 가슴은 뜨겁게 타올랐다.
 
 오늘치 수련을 끝낸 신헌이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안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더는 대장군의 만행을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대장군부의 세력을 좌시하고 있다간 큰일이 벌어질 겁니다!]
 탁자에 그릇이 부딪치는 고성과 함께 노인들의 목소리가 안채에서 울리고 있었다.
 “도, 도련님 오셨습니까요?”
 유 집사가 황급히 다가왔지만, 신헌은 안채에 집중했다.
 “또 아버님의 당여들이 온 것이오?”
 “일단 별채로 드시지요.”
 유 집사가 황급히 신헌의 방으로 안내할 때, 신헌의 귀에 밖에서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장군 왕찬이 도성 상단을 이용해 비리를 저지른다는 사실은 저잣거리 아이들도 아오!]
 [쉿! 이 사람 말조심하게, 확실치도 않은 소문으로···.]
 방으로 들어가려던 신헌은 왕찬의 이야기에 다시 귀가 열렸다.
 잊을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무림맹과 손을 잡고 관무불침을 어기며 무극림을 멸문시킨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왕찬···.”
 일대일의 승부에서 유일하게 무극천마를 이긴 자이기도 했다.
 신헌은 건넛방에 들어가서도 나진과 그 당여들이 하는 이야기에 유심히 귀를 기울였다.
 몇몇은 취기에 큰 목소리를 내고, 그런 걸 다른 이들이 만류하는 것이 반복되는 술자리였다.
 밤이 늦어지고 손님들이 하나둘씩 갔을 때, 신헌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왕찬! 그놈의 이름은 잊을 수 없지.”
 
 며칠 뒤 신헌이 아침 일찍 입궐을 준비하는 나진을 배웅 나갈 때였다.
 “헌아는 오늘도 밖에 나갈 것이냐?”
 “네? 낮에 좀 외출할 일이 있습니다만···.”
 “허허- 그러면 저잣거리에 포목점에 가 보거라.”
 “포목점이요?”
 “음, 지난번 희아가 보내준 사천 비단을 맡겨 놓았다. 네 옷 한 벌 주문해 놨으니 찾아가거라.”
 “아, 누이가 말입니까?”
 신헌이 태어나기 전 신헌의 위로 누이 셋이 있었는데, 사천이라면 둘째 누이 나신희였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허허- 그래 잘 어울렸으면 좋겠구나.”
 입궐하는 나진을 배웅하며, 신헌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 좋은 분이란 말이야.’
 무극천마로서는 네 살 터울의 형님뻘이지만, 나진은 신헌을 양 부인과 같이 극진히 길러줬다.
 신헌에게 화 한 번 내지 않고, 신헌의 성장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신헌은 전생에 겪지 못한 가족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자- 그럼 볼일 한 번 보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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