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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무사 1-1

2014.09.24 조회 3,363 추천 20


 작은 무사 1권
 
 목차
 서(序)
 一章 인연
 二章 제자를 삼다
 三章 교주회
 四章 수련
 五章 구영문
 六章 수라혈공
 七章 과거
 八章 천하지존 장생
 九章 장생, 그 위대한 이름
 十章 작은 무사
 [부록1] 대형객잔에서의 전투
 [부록2] 주교들의 음모
 
 
 
 서(序)
 
 
 
 비가 매섭게 몰아치던 날이었다.
 이미 거리의 상인들은 모두 돌아간 뒤요, 저잣거리의 광대들도 짐을 챙기고 떠나자, 남아 있던 행인들마저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대부분 집들은 문을 굳게 걸어 잠갔고 그나마 어렴풋이 비추던 거리의 등불마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둘씩 꺼져갔다.
 
 숭촌(崇村)은 사천성의 서북쪽에 위치한 미산시(眉山市)에서도 백 리는 넘게 올라가야 하는 고지대다.
 뚜렷한 목적 없이 오르는 사람도 드물뿐더러 가옥들도 눈에 띄게 적어 고을보다는 촌락이라 부르는 게 알맞았다.
 그런데 그와는 다르게 이 지역의 남쪽 끝 명소로 알려진 대형객점은 오늘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일찍이 이곳은 성도와 미산시(眉山市)를 잇는 거리 중 유일한 객점으로 성도에서 출발하여 숭촌을 거쳐 미산시로 내려오는 일종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형님! 이번 비단길은 어떻게 성사시켰습니까?”
 대형객점 삼 층은 길이가 무려 열 자가 넘는 비범한 원판 하나로 채워져 있었다.
 기관식(機關式)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 손을 좀 봤는지 두 자 크기의 원반이 일 촌 높이로 뜬 채 돌아가고 있는, 그야말로 중원에서도 보기 힘든 회전원탁이었다.
 “유 대감(柔 大監)댁 말인가?”
 원탁의 가장자리에서 기름진 얼굴의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산해진미가 가득한 음식을 바라보는 눈빛이 마치 여인을 바라보듯 그윽했다.
 “예! 이번 비단길을 내는데 이쪽 사람들의 반대가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더구나 이쪽 숭촌 지역에서 민가의 백성이 유 대감과 합세해 더욱 상황이 어렵다고들······.”
 “쯧쯧. 못난 놈. 꼴에 백 년이 넘었다고 떠들어대는 세가라고는 하나 백 명도 채 안 되는 하류문파에다, 문인들만 득실거리는 그곳이 내 상대가 되겠는가?”
 “과연!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한데 그들을 어떻게 설득하셨습니까?”
 호양이라 불리는 이자는 숭촌 촌락의 백성은 아니었고 성곽 관도에 있는 사람이었다.
 천부(川府)라는 고을의 벼슬아치였는데 현재 그는 숭촌을 포함한 여러 작은 촌락을 거느리고 있었다.
 관직은 판관(判官), 엄연히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으로 지방관직에서는 현령이라 불리는 벼슬아치였다.
 호양은 자신의 심복인 감언(甘言)을 모자라다는 듯 한참을 쳐다봤다.
 “이런 멍청한 녀석! 이 천부 땅에 손꼽히는 구룡맹(九龍盟)이 있지 않느냐! 그분들이 누구냐. 천하의 오대세가 중 하나라는 사천당문과 인연이 있는 분들 아니냐. 그런 분들이 나섰으니 이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지!”
 숭촌을 거쳐 미산시로 내려오는 이 비단길을 건설하면 저잣거리 또한 커지게 되고 촌락도 자연스레 발전하기 마련이었다.
 그렇다면 왜 반대를 하는 것인가?
 관도에서 주도적으로 비단길을 만든다고 하면 자연스레 그 지방의 세(稅)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럼 그 세는 자신의 가옥조차도 고칠 돈이 없는 민초들이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는 데에 이유가 있었다.
 이들이 말하는 백보가, 그곳은 숭촌 사람들이 만든 작은 문파로 성도(城都) 관직에 진출한 자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 자들이 뒤에서 힘이 되어주고 있었기에 관도에서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형국이었다.
 “대··· 대단하십니다.”
 감언은 구룡맹의 위명을 익히 아는 터라 자신의 상관을 다시금 우러러보았다.
 물론 감탄 섞인 말과 함께 술을 따르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그나저나 형님, 일전에 말씀하시던 미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미녀라니······?”
 “참! 형님도··· 한 달 전 숭촌 내천(來川)을 내려오시다가 민가에서 보았다던 그 여아 말입니다.”
 “아··· 아하!! 킥킥킥!!”
 금칠을 한 호양의 얼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감언은 문득 이목구비를 무시한 상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볼때기를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얼굴 골격과 그 주위로 붙은 기름진 살들이 심하게 번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 감언아··· 기다려 봐라··· 어이!”
 대형객점 삼 층에는 총 일곱 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호양의 하급자인 진중(進仲)은 오른 창가에 앉아 호위무사 두 명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고 옆쪽은 감언, 그리고 두 명의 호위무사가 호양 주위로 좌측에 넓게 서 있었다.
 그가 오른팔을 살며시 들었다.
 “예··· 예! 나으리!”
 실성한 사람처럼 달려오는 그는 이 객점의 상급 점소이었다. 가랑이 사이로 상체가 자연스레 들어가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유난(柔暖)이를 데려와라.”
 “옙!”
 말은 짧고 점소이의 행동은 빨랐다. 그가 황급히 내려가자 그 모습을 보던 감언이 말을 하였다.
 “호양 님, 혹시 여기에 있는 겁니까?”
 “흐흐··· 처음엔 창기로 쓸 생각이었으나 첩으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잠시 여기에 맡겨 두었지.”
 관직에 있는 자가 첩을 둔다.
 그것도 이렇게 돈 지랄을 해대는 자가. 그렇다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감언은 짐짓 모르는 척하며 속내를 거두었다. 자신도 출세하고 싶은 자였다.
 “역··· 역시! 이 지역에서는 호양 님을 따를 자가 없는 것 같습니다.”
 호양과 감언의 대화 도중 아래층에서 소란이 일었다. 이곳 삼 층으로 올라오는 층계에는 일급 호위무사들이 있다. 지금껏 단 한 번의 빈틈도 허용한 적이 없는, 이른바 ‘고수’들이었기에 호양과 감언은 그리 개의치 않았다.
 예상대로 조금 시간이 지나자 아래가 잠잠해졌다. 그리고 곧이어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뭔가?”
 호양 앞에 다가선 자신의 일급무사 도하(到廈)의 손에는 약관의 나이를 막 넘긴 사내의 목덜미가 쥐어져 있었다.
 그는 호양의 물음에 잡고 있던 목덜미를 놓았다.
 “크헉······!”
 고통을 호소하며 사내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순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변한 호양이 자신의 호위무사를 불만스럽게 쳐다보았다.
 사실 범인을 잡아 호양에게 바로 데려오는 일은 없다. 대면조차도 자신의 허락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호양은 채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자를 심사숙고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력이 발군인데 반해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너무 몰랐다.
 “이자가 호양 님께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몇 대 패주고 돌려보내려 하였는데 중요한 것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으면 화를 입을 것이라고 해서······.”
 호양은 미간에 내 천(川) 자를 그렸다. 자신을 만나 보고 싶다는 녀석은 많이 봤지만, 잔머리를 굴려 여기까지 오다니 평범한 녀석은 아닌 듯 했다.
 식사 중 불쑥 나타난 사내에게 짜증이 치밀었지만, 호기심에 한번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넌 누군데 화를 입는다는 망언을 입에 담느냐!”
 그 사내는 백정들이 흔히 입는 무명천을 걸치고 있었다. 옷 색감이 그런 것이지, 아니면 애초부터 씻지를 않았는지 샛노란 것이 불쾌했다.
 대답이 없자 도하가 사내의 허리를 발로 내찼다
 “으억!!”
 사내의 입 주위로 침이 흘러내렸다. 오기 전 화를 당했는지 몸 군데군데 상흔이 보였다.
 그는 겨우 닫혔던 말문을 열었다.
 “판관 나리··· 허어··· 판관 나리. 어찌 감히 이 천한 놈이 주제넘게 화를 입는다 하겠습니까. 다름이 아니오라 제 동생이 두 명이 있사온데 한 명은 작년 대보름날 제대로 먹지··· 크읍··· 제대로 먹지 못하여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큰동생도 열흘 전부터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수소문 끝에 나리의 은혜를 입어 여기 기거한다는 소문을 듣고 온 것입니다. 혹시 나리께서는 제 동생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
 “뭐라?!”
 평온했던 호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여기까지 찾아와 한다는 소리가 고작 이거란 말인가. 이따위 말로 자신의 즐거운 식사를 방해하다니, 이 녀석이 여기가 어디라고······.
 “한낱 백정 따위가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막말하느냐! 이런 건방진 놈!”
 “커억! 으헉!”
 갈피를 못 잡고 두 손을 올려 방어하던 사내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고꾸라졌다.
 제법 충격이 있어 보였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사내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사내의 눈빛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 호양은 그 눈빛에서 살기를 느꼈다.
 “이놈 눈 봐라?”
 호양은 백정의 증오가 담긴 눈빛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살면서 천한 계급의 증오가 담긴 눈빛은 처음이었다.
 “네 이놈! 네놈이 가져간 것이 아니더냐! 그 더러운 손으로 내 동생 유난이를 데려가지 않았느냐 말이다! 이 개자식아!”
 그의 이름은 장생(長生)이었다.
 이십여 년 전 부모에게 버림받아 백정이 되었고, 이 근방 가옥 주인이 데려가 노예로 삼았던 사내였다.
 분노 섞인 소리가 높아지자 도하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칼자루를 쥐며 다가왔다.
 그러나 호양은 팔을 들어 제지했다. 절규하는 장생에 반해 그는 흥미로운 듯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네놈이 어찌하겠다는 것이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백정 녀석이 말이다.”
 장생의 눈은 호양뿐만이 아닌 주위 호위무사들을 차례로 훑고 있었다. 큰 키와 건장한 체격이 눈에 들어왔다.
 “이··· 이······.”
 옅은 신음을 흘리던 그는 어금니를 강하게 깨물었다. 그러자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
 장생은 알고 있었다. 좀 전 호위무사와의 싸움으로 느낀 무력 차이를 말이다. 혼자선··· 절대로 이들을 이길 수 없었다.
 
 “자네 살수를 말하는 건가?”
 “예? 살수라뇨?”
 “돈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 말일세. 흔히 그자들을 보고 살수라 부른다네.”
 “아! 그렇습니까. 어르신? 음··· 예! 그럼 살수입니다. 어··· 그러니깐······.”
 “음··· 그러니 이름 난 살수가 어디 사는지 가르쳐 달라 이거 아닌가?”
 “예··· 예······.”
 -쿠에에에엑.
 사방에서 돼지, 소의 비명이 들리며 귀를 어지럽히던 도살장.
 굵은 목대 사이로 어슬렁 걸어 나온 노인은 장생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뱃고동이 울려 퍼지는 바다를 쳐다보았다.
 “보자··· 살수라··· 보자··· 음··· 사천 성도성 대해(大懈)였던가. 그곳 간음(竿陰) 지방에는 호창(浩昌)이라는 이름 난 살수가 있다고 들었네. 의뢰하는 곳은 잘 모르겠지만 살수라면 아마도 산을 끼고 활동하지 않을까?”
 
 장생은 여기 오기 전 도축장 관리인에게 들었던 말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그래, 돈이라도 받자. 돈이라도 받아서 이들을 죽이자. 그래서 유난이를 데려오자.’
 “그럼 은화 다섯 냥만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은화 다섯 냥이면 보통의 한 식구가 한 달 이상을 놀고먹어도 되는 돈이었다. 그 정도 돈이라면 의뢰금으로 충분할 것이라 장생은 생각했다.
 그때였다. 복도 쪽으로 누군가가 다급하게 올라왔다.
 장생이 고개를 돌렸다.
 “······!”
 유난이었다. 누구도 아닌 동생의 얼굴을 그는 절대 잊을 리 없었다.
 “뭐라고 했느냐?”
 호양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재차 물었다. 그는 갑자기 사내의 태도가 돌변하자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확인했던 것이다.
 “은화······.”
 말을 흐리던 장생은 유난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동생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장생은 유난이를 보며 깨달았다. 지금도 그렇고, 방금 올라왔을 때도 분명 자신의 얘기를 들었다는 것을······.
 “은화··· 은화 다섯 냥만 주십시오.”
 유난이를 무시하며 장생은 결국 비수를 꺼내 들었다. 마음의 비수를.
 “오··· 오라버니!”
 유난이가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장생은 내색하지 않았다.
 “크크큭! 결국 돈이었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호양은 장생에게서 탐욕스러운 돈 냄새를 맡았다.
 역시 이 녀석도 저 녀석도 돈인 것이다. 돈, 돈을 얻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다.
 “하긴 그래. 일단은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하지. 먹고사는 게 풀리고 나야 다른 생각을 하지. 풉··· 크크큭!”
 “감사합··· 니다, 어르신.”
 호양은 소매에 손을 넣어 은화 다섯 냥을 던졌다. 그 돈을 받은 장생은 본능적으로 유난이를 쳐다보았다.
 “오라버니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그깟 돈 몇 푼으로 나를 팔······.”
 “하하! 이제 알았느냐. 어차피 나 같은 놈과 있어 봤자 혜숙(惠肅)이처럼 굶어 죽을 게 뻔하다. 하하하!! 차라리 잘된 일 아니냐? 너는 좋은 분께 시집을 가고 나는 돈을 받아······.”
 “거짓말······! 거짓말이죠? 다른 사람도 아닌 오··· 오라버니가··· 그럴 리가 없어요. 오라버니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항상······.”
 애절한 유난이의 목소리에 장생은 실성한 사람처럼 호양과 유난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의구심 섞인 호양의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장생은 생각했다. 이대로 눈앞에서 의심을 사면 돈마저도 받지 못하게 된다.
 “이년! 오라버니라고도 하지 마라! 너의 주인은 이분이시다!”
 장생의 호통에 유난이는 아연실색했다. 충격이 심했던지 그녀의 손은 힘없이 난간을 잡았다.
 “그래요. 고마워요, 오라버니. 날 팔아줘서······.”
 “뭐?”
 “···결국, 결국 그렇군요. 오라버니도 사람이니 제가 뭐라고 그러면 안 되는 거죠. 휴··· 잘됐네요. 이제라도 제 맘을 잡을 수 있게 돼서, 그동안 맘이 너무 아팠는데 다행이에요. 저도 좋은 사람 생긴 거니 고마워요. 이렇게 날 팔아줘서······.”
 
 ‘팔아? 내가?’
 장생은 천천히 일어섰다.
 나가고 싶었다. 이 자리를 벗어나기만 한다면 은화 다섯 냥은 내 돈이 된다.
 어차피 나는 이들을 이길 수 없다. 이보다 좋은 방법 또한 없다.
 그런데······.
 장생은 문득 불규칙적으로 뛰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생각했다.
 가슴이 아프다. 가장 좋은 방법을 택했던 것인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 것일까.
 장생은 느린 걸음으로 호양 앞에 섰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
 “좋은 시간··· 유난이와 좋은 시간··· 크흣!!”
 목에 사레가 걸렸는지 장생은 말을 다 끝맺지 못하고 내려갔다. 스쳐 가는 장생을 보던 유난이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감언이 무언가 생각났는지 호양을 향해 물었다.
 “괜히 부스럼 만들 필요야 있겠습니까?”
 호양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복잡한 관계를 단순하게 만들려면 ‘그 방법’이 확실했다.
 그는 자신 앞의 호위무사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여.”
 
 
 
 一章 인연
 
 
 
 흑풍의를 둘러쓴 여섯 그림자가 희미한 안개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비가 오는 날씨에 우의를 쓰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젖은 모습이 아니었다. 대형은 三의 형태로 一에 두 명씩 세 줄로 짝을 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짓궂은 흐린 날씨를 반영하듯 그들의 표정도 담담하게 굳어 있었다.
 “향주님······.”
 대열 앞쪽에 걷던 한 흑의인이 자신의 우측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자욱하게 퍼져 나가는 습한 기운이 거친 목소리와 함께 실려 살갑게 느껴졌다. 장시간 동안 말없이 거닐었던 탓인지 그자의 음성은 낮고도 작았다.
 곧 한 노인이 묵묵히 말을 받았다.
 “왜 그러느냐?”
 그는 두의를 가볍게 내리며 흑의인의 물음에 답했다. 자연스레 보폭도 줄어들었다.
 순간 그의 백색 수염이 비치며 신비한 느낌을 자아냈다.
 “저는 이번 임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먼저 말을 건넨 흑의인이 속내를 털어놓았다.
 순간 의외라는 듯 향주의 고개가 사내에게 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자는 임무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말없이 잘 따르는 자였기 때문이다.
 “설아야, 갑자기 왜 그러느냐? 이번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너도 잘 알지 않느냐?”
 “정말 이것은··· 아··· 아무리 교주회에서 결정한 일이라 해도 정도가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돌아가 탄원서라도 내어 일을 바로잡지 않으면······.”
 노인이 걸음을 멈췄다. 순간 맞추기라도 한 듯 모두 동시에 멈춰 섰다. 그 모습이 마치 묶인 쇠사슬을 연상케 했다.
 “어리석구나. 돌아가면? 돌아가면 그곳은 안전할 줄 아느냐? 이번 임무가 아니더라도 다른 임무, 또 다른 임무를 줄 텐데 말이다.”
 “그래도 이번 임무의 상대가 너무하다는 것은 향주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태천신군(太天神君) 광안도사와 정공으로 맞선다는 것이······.”
 “······.”
 그들이 말하는 태천신군 광안도사는 이미 무당파의 삼대 장문인으로 좁게 본다면 호북일대 삼대고수이며, 넓게 본다면 천하십대고수로 거론되고 있는 초극고수다.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자는 무림에서도 열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풍문이었다.
 추무설(推務設)은 중요한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향주라 불리는 이 묵일검이란 노인은 뒤를 노리지 않는 자였다.
 정식으로 겨루는 것을 무학의 뜻이라 여기며 마음만 맞는다면 정사를 가리지 않고 놓아주기 일쑤였다. 그것이 윗분들의 노여움을 샀을 거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소문이었다.
 “너는 팔대주교(八代主敎)라 불리는 암흑마공(暗黑魔功) 철무제(鐵武制)나, 극상마검(極上魔劍) 무혼(無昏) 중 한 명이라도 이길 자신이 있느냐?”
 추무설이 눈을 부릅떴다.
 철무제와 무혼이라면 중원에서는 몰라도 본 교에서는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마교에는 현재 팔대성산이 있고 각 성산마다 주교가 다스리는 체제로 되어 있었다.
 현재 암흑마공 철무제는 현 교단의 팔대주교 중 사대성산을 담당하는 자로 소수마공(素手魔功), 혈수마공(血手魔功)을 익힌 기인이었다.
 그 무학으로 극성을 익힌 탓에 단숨에 서족(西族)을 관장하는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다.
 또한 거론된 무혼.
 현 팔대주교 중 일대성산을 담당하는 무혼은 차기 부교주로 가장 유력시되는 인물이었다.
 이미 화경(化境)의 경지를 넘어섰다고 할 정도로 고강하고 팔대주교의 무력 중 삼 할 이상을 장악할 정도의 수준이니 더는 왈가불가할 사안이 아니었다. 그런 자들을 향주가 거론하고 있었다.
 “소인은······.”
 “허허··· 검으로는 이룰 경지가 없어 검신무극이라고까지 칭해지던 네가 자신이 없다니.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로구나! 허허허.”
 “······.”
 추무설은 부끄러웠다. 향주는 생각이 얕은 분이 아니다. 지금은 비록 향주라는 직위에 머물러 있지만, 그의 무공과 명성은 현 육대성산 잔 주교에게 절대 뒤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를 능가했다.
 그런 그가 팔대주교 중 두 명의 주교를 거론한 것은 분명 이번 부당한 임무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저울질을 해본 것일 터였다.
 그중 한 명을 상대할 수 있느냐는 물음은 네가 상대할 수 있다면 분란이라도 각오하겠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고, 또 억누르고 있던 향주의 말 못할 울분도 함께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그는 말을 흘렸다.
 “미천한 제가······.”
 “설아야, 너무 괴로워하지 말거라. 다 내가 못난 것일 뿐이니.”
 그의 웃음에는 인자함이 묻어 나왔다. 백의를 입었으면 능히 신선으로 비칠 그런 미소였다.
 비에 젖은 가죽신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짓누르는 엄숙한 분위기가 한층 더 고조되어 그들을 덮쳐 왔다. 추무설은 답답한 가슴을 한숨으로 대신하였다.
 ‘성품만 아니었으면 벌써 교주가 되셨을 분······.’
 
 ***
 
 여섯의 인영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추무설은 더 이상 임무에 대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는 처음 흑사자(黑死者)가 내민 밀지를 서서히 상기하였다.
 
 소속: 무당파(武當派) 삼대(三代) 장문인
 칭호: 태천신군 광안도사
 시일: 내달 초하루
 거주: 숭촌(崇村) 대형객점
 무위: 신중을 요함, 절대고수
 임무: 향주(鄕主) 묵일검을 따라 처단할 것.
 
 -육대성산 잔마도
 
 빗물이 점점 약해져 가고 있었다. 걸음을 옮기던 추무설의 표정에는 비장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제껏 검을 겨룬 상대 중 절정고수들도 더러 있었지만 이렇게 상식을 벗어난 고수는 처음이었다.
 무학의 끝에 있는 절대고수, 어떤 공수자세를 취하며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베고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그의 머릿속은 이미 격전으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잠깐······.”
 향주의 음성이 들리며 그들이 멈춰 섰다.
 자욱한 안개가 삼 장 이상 식별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뿌연 연기 속에는 민가의 집채들과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
 빗소리와 풀잎 스치는 소리만이 전부일 뿐 멈출 이유는 없는 듯했다.
 그러나 추무설은 먼 곳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급히 검을 잡았다. 이미 육안으로 상대를 찾는 수준은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아니다.”
 향주가 조용히 고개를 흔들자 추무설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시야를 앗아간 안개 속에서 미약하게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무림인은 아닌 듯했다.
 일정치 않은 걸음 또한 그것을 증명해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살기가 짙구나.”
 뿌연 안개 사이로 조금씩 한 사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걸음걸이는 느렸지만, 사내에게서 느껴지는 눈빛은 매서웠다.
 그는 귀밑머리 부근에 피를 흘리며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장생은 대형객점을 나와 불편한 다리를 이끌며 걷고 있었다.
 그는 백정 일로 받은 품삯으로 하루 먹기도 빠듯해지자 인근의 모든 객잔, 객점들을 돌며 거지처럼 구걸했다. 그러다 최근 도축장에 나가 일을 하였는데 며칠 전 유난이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미색이 뛰어나고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이는 것이 화근이었다.
 주인장에 의해 강제로 팔렸을 것이다.
 사실 혜숙이와 유난이는 그의 피붙이 동생이 아니었다. 자신처럼 거리에 버려진 아이 중 하나였다. 심성이 착했던 장생이 주인 몰래 자신이 기거하던 방에 데려와 같이 살았던 것이다.
 ‘개자식··· 이 개자식······.’
 혜숙이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졸지에 있던 동생마저도 빼앗긴 장생은 주인장과 유난이를 산 관인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 더러운 은화 다섯 냥도 독하게 받아낸 것이다.
 흐릿한 풍경이 장생의 눈앞에 가득 펼쳐졌다. 마치 누가 있는 것처럼 짙은 어둠이 눈앞에 아른거렸는데 어지러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 더 걸었다. 점점 선명해지는 검은 옷을 보며 장생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저 피해야 한다고 여겼다.
 ‘설마······.’
 스쳐 가던 장생은 머리가 일순간 번뜩였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그들이 검집을 차고 있단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혹시······.”
 지나치던 여섯 흑의인이 장생의 말에 재빨리 멈춰 섰다. 동시에 맨 뒤 짝을 이루던 흑의인 둘은 허리춤에 손을 가져가기도 했다.
 “무언가?”
 향주가 대답을 하였다.
 “혹시··· 무림인이십니까?”
 그 말에 향주가 ‘뜻밖이다’라는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이내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허허허, 글쎄··· 원래는 이곳 사람이 아니다만 넓게 보면 무림인이란 말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구나. 그런데 왜 그러느냐?”
 온화한 향주의 태도에 추무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사실 임무 중 이런 잔챙이들은 부지기수라, 무시하거나 베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당연히 상대할 필요도, 말을 받아줄 필요도 없었다. 더구나 이런 미개한 녀석이라면 말을 주고받을 필요조차 없었다.
 극마(極魔)를 뛰어넘은 고수들 중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듣기로 성도성 대해지역에 수묵도(水墨刀) 호창(浩昌)이라는 이름 난 살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해지역에 수묵도 호창?”
 장생은 도살장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살수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 많은 돈을 주면 그만큼 확실하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는 얘기를 말이다.
 “혹시··· 모르··· 윽!”
 장생은 말을 다 끝맺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피를 많이 흘린 상태에서 움직여 상처가 심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향주가 그에게 다가갔다.
 “겁먹지 말거라······.”
 그는 장생의 상처를 살펴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심하게 찍혔는지 이마 쪽이 상당히 부어 있었고 온몸 가릴 것 없이 붉은 선혈과 상처로 벌집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인 것은 왼쪽 가슴이었다. 깊이 파이지는 않았으나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또한, 사내의 푸른 입술이 지금 이 상황의 심각성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고위 관인의 호위무사를 상대로 일개 백정이 칼을 가지고 덤벼들었으니 장생에겐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어찌 보면 행운이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처참하게 당했구나, 쯧쯧······!”
 향주는 혈도를 짚어 신속하게 지혈을 하던 중 추무설을 바라보았다.
 은거생활을 한 자신과는 달리 이미 여러 번 강호의 출타 경험이 있는 추무설이라면 방금 사내가 한 말에 대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향주의 의도를 읽은 추무설은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중원에서 공식적인 살수 집단은 살주문(殺主門)을 제외하곤 없습니다. 그러나 구대문파가 중원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그들도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하는 실정입니다. 대신 비공식적으로 활동하는 문파들은 꽤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나마 좀 알려진 살수집단은 구창문(拘昌門)과 수혈문(修血門), 그리고 아혈문(阿血門)이 있으나 이곳 사천지역에는 아직 알려진 바 없습니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그런 녀석들은 워낙 형편이 없고 수준이 낮아 살수라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향주는 무언중에 고개를 끄덕이며 장생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지혈부터 맥을 이용한 경혈치료까지 지금 이 사내는 자신이 천하에 몇 없는 응급시술을 받는 줄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향주는 자신이 들고 있던 약재를 조금 뿌리고 다시 치료에 몰두했다.
 그러자 조금 기운이 생긴 장생이 입을 열었다.
 “돈이라면··· 여기에 있습니다. 제겐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제발··· 제발 도와주십시오!”
 장생은 치료하던 향주의 손을 재빨리 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이 사는 자의 간절함이 섞인 눈물이었다. 하루하루를 이용당하며 겨우 연명해야 했던 백정의 서글픈 눈물이었다.
 추무설은 순간 입꼬리를 올렸다.
 어이가 없었다. 토끼를 사냥하는 데 호랑이도 아닌 용에게 움직여 달라는 소리와 진배없었다.
 ‘쯧쯧쯧.’
 향주는 구슬프게 울고 있던 장생의 손을 보았다. 은화가 손바닥 살집에 파묻힌 채 박힌 모습이 보였다.
 저것은 그저 돈을 꽉 쥔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강하게 곧추세워 잡아야 했다.
 그리고 피가 굳기까지 일각 이상을 그 상태로 쥐고 있어야 한다. 살갗이 짓눌리는 시린 아픔을 겪으면서 말이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몰라도 놓지 않기 위해 매우 집착하는 모습이었다.
 향주는 입을 열었다.
 “미안하네. 자네의 사정은 안타깝지만, 우리에게도 할 일이 있네. 시간이 많지 않아 유감이구만. 하나 자네는 이제 걸을 수 있을 걸세. 심하게 다쳤다고는 하나 맥은 다친 곳이 없어서 말이야. 그래도 별도로 치료를 받게. 자넨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장생은 몸을 힘들게 일으켜 세우고는 머리가 꼬꾸라지게 감사를 표했다.
 “이럴 수가··· 갑자기 몸이 이렇게··· 감사합니다. 존함이라도.”
 “이런 미안하군. 나는 누군가에게 내 이름을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네.”
 
 비가 서서히 그쳤다.
 길목이라 하기엔 협소한 곳에 한 사내와 여섯의 흑의인이 서 있었다.
 장생은 향주에게 몇 번이고 감사의 표시를 했다.
 향주는 그저 웃음으로 묵묵히 사내를 쳐다보며 대답을 대신했다. 큰절을 하고 사내가 뒤돌아섰다. 향주는 안타까운 인연이었지만 어쩔 수 없음을 아쉬워했다.
 그는 퍼져 나가는 짙은 구름을 보며 시간이 많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던 수하들을 한번 돌아보았다.
 장진(匠進), 설반(說拌)의 표정은 어느덧 비장하게 변해 있었다.
 그나마 그들보다 무공 수위가 높은 운룡(雲龍), 마반(魔伴)만이 추무설과 같이 긴장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향주 일행은 발걸음을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선을 걷는 길은 언제나 그러듯 유쾌함을 불러오지 않는다.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스산했던 바람을 느끼며 한참을 걸었을까······.
 앞쪽에서 한 사람이 고개를 숙인 채 걸어오고 있었다.
 그 사내는 다리까지 내려오는 회색 겉옷에 두 손을 소매 속에 숨긴 채로 걷고 있었다. 삿갓으로 시선을 가린 그는 빠른 보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발소리만 들리던 한 소로에서 그들과 사내가 서로 지나쳐 갔다.
 반대 방향으로 걷던 사내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무렵이었다. 몇 걸음 걷지 않던 향주의 입에서 뜻밖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아이에게 꼬리가 달렸구나.”
 
 
 
 二章 제자를 삼다
 
 
 
 또다시 걸음을 멈추며 향주는 두 눈을 감았다.
 추무설은 향주님이 걸음을 옮기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순간 대열 중간에 있던 운룡과 마반이 의식적으로 추무설을 쳐다보았다. 추무설은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설아야······.”
 침묵이 끝나고 나지막이 새어 나온 그의 이름에 추무설은 예의를 표했다.
 “예, 향주님.”
 “제자를 키워보지 않겠느냐?”
 “······!”
 “내가 보기엔 그의 눈빛이 맑다.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한 무골이야. 저런 녀석은 언젠가 크게 될 것이다.”
 추무설은 갑작스러운 향주의 말에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갑자기 제자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이렇게 중요한 거사(巨事)를 앞두고 말이다.
 이것은 분명 이번 임무에서 자신을 빼려는 계획임이 확실했다. 당혹스럽고 황당한 얘기를 뒤로하고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렵습니다. 제가 이제껏 제자를 키워본 적이 없고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 전에 무공 수련이란 것은 어릴 때부터 깊고 심도 있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 사내는 척 보기에도 약관을 넘긴 나이지 않습니까? 재능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영약으로도 이미 무공을 익히기에는 턱없이 늦은 나이입니다.”
 “그렇지 않다. 다들 잘못 알고 있어. 무공은 나이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재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야. 하고자 하는 의지고, 하겠다는 끈기다. 그것들이 모여 재능을 만들어 내고 그 힘이 나이를 뛰어넘는 것이다.”
 “향주님!”
 대화가 길어지자 뒤쪽에 서 있던 운룡의 의문 섞인 시선이 둘에게로 향했다.
 몇 해 전이었을까.
 원로원 아들 연운(演雲)을 제자로 키워보지 않겠느냐는 삼장로의 부탁에도 단호하게 거절하던 형님이 아니던가. 어디 그뿐인가.
 교주의 셋째 아들 무정(無正)의 무학을 높여 달라는 원로원 태상로(太常老)의 부탁은 어디 전례를 찾아볼 수 있는 경우인가?
 당시 일개 수장치고 관대한 대우를 받은 이유는 아무래도 화산우사(華山羽士) 독월강(獨月剛)을 일 검에 주살한 사건이 컸기 때문이리라.
 화산우사 독월강은 이미 중원에 명성이 자자한 오황육용(五皇六龍) 중 오황에 속하는 자로, 검법에 관해선 단연 으뜸이라고 칭송되던 무인이었다.
 흔히 분류하기를 좋아하는 중원사람들이 천하십대고수를 만들고, 다음을 일컫는 고수들을 가리켜 오황육용이라 하였는데 그중 오황은 육용보다 더욱 고강하였다.
 그만큼 독월강의 명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 그가 몇 해 전 어느 객잔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자를 주살한 고수. 그가 바로 이곳에 있는 추무설이었다. 그는 이런 중요한 임무 중에 향주가 한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검집을 잡은 손에 괜스레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향주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담담했다.
 “순향(純香) 내촌(內村)이라면 그를 키우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니다. 혹여, 도움이 필요하면 노 장로(怒 長老)에게 자문하면 될 일. 어려운 일은 아니잖느냐.”
 “소인은······.”
 “설아야, 어찌 내 맘을 모르느냐! 적어도··· 적어도 멸문(滅門)은 피해야 하지 않겠느냐?”
 향주의 진정한 의도는 이것이었다.
 향주가 거느리는 식솔은 고작해야 스물을 넘지 못했다.
 한때는 교주 휘하의 흑마대(黑魔隊)까지 올라선 인물이었지만 강한 신념 때문에 팔대주교들의 미움을 사, 지금은 그저 향주라는 촌락의 수장 정도로 지내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향주를 싫어하던 철무제와 무혼은 예전 정파 장문인을 놓아준 죄를 물어 결국 여기까지 오게 한 장본인들이었다.
 이번 임무를 피할 구실을 찾지 못하던 향주는 결국 죽음을 각오했지만, 저 사내를 보고 추무설만은 살릴 수 있는 임시변통을 생각해 낸 것이었다.
 제자를 위해 빠져나왔다 하면 되는 것이었다.
 향주의 의중이 가슴 깊은 곳까지 느껴지자 그는 수십 년 동안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다. 그 모습을 보던 운룡이 향주의 의중을 눈치채며 거들었다.
 “그렇게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형님이라도 있어야 뒤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디 향주님의 부탁을 내치지 마소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운룡이 거들자 옆에 있던 마반과 뒤에 있는 장진, 설반도 함께 말했다.
 계속되는 권유와 향주의 초연한 눈빛에 추무설은 서 있던 두 다리가 조금은 버겁게 느껴졌다.
 “어서 뒤돌아서거라. 나도 그리고 너도,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수하들을 거느린 채 앞으로 가는 향주는 마지막이 될 추무설의 모습을 보지 않기로 했다. 이럴 땐 감정이 약해져선 안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가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노마(老魔)들이 있는 이상.’
 추무설은 자리에서 차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서서히 멀어지는 일행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입술만 달싹거릴 뿐 좀처럼 할 말을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일행이 시야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멍하니 서 있다 오체투지를 하는 것으로 마지막을 대신했다.
 
 ***
 
 장생은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다쳤는지 절고 있었다.
 기인을 만나 치료를 받긴 했지만, 아직도 머리가 어지럽고 걷는 데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약관을 넘긴 나이치곤 믿기지 않는 노쇠한 얼굴이었다. 그것은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고생을 하며 살아왔는지, 그리고 지금 고통이 얼마나 큰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고마워요. 날 팔아줘서.’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환청이 울렸다.
 그렇게 슬픈 눈을 보았는가. 원망보다는 체념의 눈빛이 그의 마음을 후볐다.
 “내가 유난이를 팔다니··· 내가. 크흑··· 겨우 은화 다섯 냥에, 크흐흑! 겨우··· 은화.”
 장생의 눈엔 눈물이 고였다.
 죽이러 갔었다. 정말이지 처음엔 그 관인이란 자를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그도 만나기 전에 호위무사란 녀석에게 두들겨 맞았다.
 준비해 온 식도(食刀)를 소매에서 꺼내 보았지만, 그마저도 쉽게 빼앗겼다. 나아가 자신의 칼에 가슴도 찔렸다.
 그때 장생은 자신 같은 백정이 그와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달리 머리를 썼던 것이다.
 하지만 어린 동생을 굶겨 죽이고 그나마 있던 유난이까지 판 지금,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맞고 찔려 부어오른 상처들과 찢어진 자존심. 거기에 동생에게 남긴 상처밖에 남지 않았다.
 혜숙이가 죽을 때 그렇게 다짐했는데. 너만은 지키겠다고.
 그런데 이게 뭔가.
 정말 이게 다 뭔가.
 울분이 담긴 눈물이 미친 듯이 볼 위로 흘러내렸다. 복수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의 무능함. 그저 살아가면서 구걸이나 하는 자신이 더 원망스러웠다.
 순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동생을 눈앞에서 팔았으니 천하의 후레자식으로 살 터.
 그렇게 살 바에는 죽는 것이 나았다.
 장생은 고개를 내려 가슴 아래쪽을 쳐다보았다.
 흉골 부근이 상당한 양의 피로 물들어 있었고 주위에는 피가 굳어 찢어진 천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이곳을 찌르면 상처가 다시 터져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방금 만난 기인에게는 죄송했지만 장생은 이 순간을 견뎌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장생아, 안 돼! 안 된다. 유난이에게 내 마음을 전해주기 전까지는 안 된다. 그때까지는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 그리고 저놈들을 이길 수 있을 만큼 강해져야 한다.’
 손가락을 세우던 장생이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아직은 자신에게 목표가 있었다.
 “하아······.”
 흥분을 가라앉히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피를 심하게 흘린 데다 성한 곳이 없는 몸을 이끌고 그렇게 걸었으니 당연했다.
 순간 냇가에 있는 돌담이 보이자 장생은 그곳으로 걸어가 몸을 기대었다.
 그때였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장생은 무심결에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그곳엔 누군가 있었다.
 그를 보자 문득 두려움이 일었다.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사내인데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누··· 누구십니까?”
 회색 외투를 입은 한 사내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해 있다는 것을 느끼자 장생은 몸을 떨었다.
 “너··· 너는!!”
 좀 전의 일이 이제야 생각이 났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입가의 비릿한 웃음을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거지 주제에 철없이 너무 설쳐 댔구나.”
 “이··· 이익!! 저리 가!! 저리, 이힉!!”
 회색 외투 사이로 감춰진 검자루가 나타나자 장생은 두려움에 뒷걸음치다 넘어졌다.
 돈의 액수도 그렇고 쉽게 놓아줄 녀석들이 아니었다. 특히 이자는 아까 자신을 내동댕이친 호위무사란 자. 힘이 너무 강해 자신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는 자였다.
 검신을 치켜세우는 사내의 모습이 장생의 눈에 투영되었다.
 이대로 죽을 수 없었다. 유난이를 팔고는 억울해서라도 이대로 죽을 수 없었다.
 이제는 살고 싶었다.
 “살려주십쇼! 정말 살고 싶습니다. 제발··· 제발.”
 두 손을 모으고 장생은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무서웠다. 인근 장한들에게 몰매를 맞을 때보다도 더 무서웠다.
 “너 같은 녀석은 살 가치도 없다. 죽어라!”
 그의 손에 쥐어진 사늘한 칼날이 치솟자 도망칠 힘이 없던 장생은 순간 멍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동안 살아오며 겪었던 많은 아픔과 슬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 일생에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던가.
 없었다.
 맘껏 웃어본 적이, 기쁘게 놀아본 적이 있었던가. 그저 태어날 때부터 거지였고 노예였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이렇게 살 바에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것도 지킬 수 없는 백정으로, 구걸하는 거지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칼날이 서서히 떨어지려 하자 장생은 눈을 감으며 다음 생엔 이렇게 태어나지 말자고 다짐했다.
 가슴속에서 외쳤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태어나길 빌었다.
 쉬이익······.
 맑은 청풍의 바람이 장생의 얼굴을 타고 지나갔다.
 곧 몸이 잘려 나가리란 생각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지만 느낌이 없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장생은 크게 눈을 떴다. 그곳에는 칼을 든 호위무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
 무사는 결국 말을 다 맺지 못한 채 엎어졌다.
 엎어진 그의 뒤에는 조금 전 만난 일행 중 한 사내가 묵묵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미친놈! 네놈 따위가 인기척을 느끼려 했다니······.”
 죽음과 현실을 경험한 장생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이 괴한은 관심이 없다는 듯 장생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강해지고 싶으냐?”
 강함.
 그토록 바라왔던 고강함.
 누군가 자신에게 가르쳐 준 적도 없고, 싸우는 것도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생각만 했던 희미한 실체를 그 사내는 얘기하고 있었다.
 “네. 강··· 강해지고 싶습니다. 정말 강해지고 싶습니다.”
 울먹이며 말하는 장생을 보자 추무설은 걱정이 앞섰다. 나이도 몸도 재능도 이미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때였기 때문이었다.
 “검을 만져 본 적은 있느냐?”
 도축장에서 큰 칼을 이용해 돼지나 말을 잡는다. 그것은 하나의 칼이었고 무인들이 사용하는 검과는 달랐다. 장생은 무인의 검을 만져 본 적이 없었다.
 “한 번도?”
 추무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널 고수로 만들 자신은 없다. 그러나 네 한 몸 지킬 힘은 주겠다. 따라와라.”
 추무설이 앞서고 장생은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걸으며 따라갔다.
 그의 나이는 스물여섯. 무공에 입문하기엔 턱없이 늦은 나이지만 장생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기쁨이 넘쳐났다.
 앞으로 어떤 고된 행로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몰랐다.
 
 ***
 
 무수히 펼쳐져 있는 밤하늘 별빛이 어느 때보다 구슬프게 반짝였다.
 냇가를 흐르는 물소리도 풀잎을 흔드는 실바람 소리도 한 사람의 가슴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추무설은 작은 돌담에 앉아 냇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생이라는 자는 이 마을의 가까운 의원을 통해 치료를 받게 했다.
 적어도 한 달은 쉬어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는 허 의원(噓 醫員)에게 말없이 검을 꺼내어 벽지에 그었더니 삼 일이면 거동이 가능하다며 다급했던 그의 표정이 생각났다.
 그 후로 이틀이 지났다. 심란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 골목을 걷다 나온 곳이 이 냇가였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 평온한 산새들과 돌담에 흐르는 냇물은 그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걱정이 되는구나. 향주님이 그리 쉽게 당하실 분은 아니지만.’
 벌써 어떤 식으로 결과가 났을 것이다.
 허 의원에 의하면 지금 모든 무림인이 간음 쪽으로 삼삼오오 모이고 있다고 했다. 민촌의 일개 의원이 알 정도라면 얼마나 많은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곳엔 정말 광안도사 혼자 있는 것인가?
 시간이 많지 않다던 향주님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초연했던 그분의 뒷모습이 문득 그리워졌다.
 그는 무릎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보았다. 투명하게 끝없이 펼쳐진 하늘의 모습이 마치 인생의 허망함을 말해주는 듯했다.
 ‘휴··· 도저히······.’
 몇 번을 거듭한 생각이 확연해지자 행동은 빨랐다.
 이름 모를 냇가 돌담에 있던 자가 보통의 무림인들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이형환위(移形換位)를 펼치며 연기 속으로 사라져 갔다.
 
 ***
 
 어느덧 당도한 저잣거리에서 대형객점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가 본 대형객점은 찢긴 종잇조각처럼 난자하게 부서져 있는 모습이었다.
 단단해 보이는 벽돌로 올린 외벽이 토사가 무너지듯 군데군데 무너져 있었으며 눈에 보이는 것은 난간이든 지붕이든 성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용마루를 받치는 굵은 기둥이 무너지지 않아 붕괴의 위험이 없어 보이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시간은 막 들어선 이경(二更, 오후 9시-오후 11시 사이)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형객점으로 다가가던 추무설은 한 행인의 말에 걸음을 멈췄다.
 “여보게, 자네!”
 그를 부른 곳에는 검은 조복(朝服)을 입은 중년인이 있었다. 조복 겉에 다시 흰 겉옷을 걸쳐 입었는데 제법 돈 냄새가 나는 옷차림이었다.
 의수도(宜秀刀) 관명(冠名)이라고 불리는 이 사내는 강호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찾아온 자였다. 본래는 사천 북서쪽 양음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자는 사괘(死掛)에 관련된 무리 중 하나였다.
 사괘란 현상금이 걸린 자를 관도에 전문적으로 넘기는 직업으로, 이 근방에서 주로 활동을 하였는데 관명이라는 이자는 사천에서도 그럭저럭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그는 목소리에 힘주어 말했다.
 “척 보기에 강호 초출인 것 같네만 더는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듯싶네. 저기 앞에 무당파 제자들이 보이지 않는가? 아무 생각 없이 다가갔다간 뼈도 못 추릴 걸세.”
 추무설은 다시금 대형객점을 바라보았다. 부서진 건물 근처에는 수십 명이나 되어 보이는 많은 무림인이 북적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고요해지며 중년인에게로 향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주겠나?”
 “허··· 고놈 참.”
 알려 달라는 사내의 눈빛은 관명이 보기엔 죽일 기세였다. 분노를 억누른 채 말을 하는 듯 보이는데 그 모습을 보던 관명은 식은땀이 흘렸다. 그리고 떨떠름하게 말을 이었다.
 “나도 온 지 얼마 안 돼서 자세히는 모르네. 그저 마교로 추정되는 무리와 광안도사가 죽었다는 정도··· 아 참, 그렇지! 저기 보이는 저 녀석이 며칠 전 그 현장에 있었다는구먼.”
 가리키는 그곳엔 알 수 없는 사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한 행상이 있었다.
 그는 큰 탁자에다 둥근 원형의 질그릇을 올려놓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엮어내는 중이었다.
 저잣거리엔 이렇게 탁자를 펴 놓고 이야기를 하는 이른바 강담사(講談士)들이 있었는데 이자도 그런 사람들에 가까웠다. 이들은 중요한 대목에서 이야기를 멈추곤 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질그릇을 채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아··· 그래서 무당의 장문인과 화산파 장문인이 누군가! 수천 명이 넘는 문하생을 거느리는 당대 최고의 구대문파 중 하나 아닌가! 또 개방 방주는 어떤가! 이미 모래알같이 많은 거지가 즐비한 곳 아닌가! 그 최고 중의 최고라는 우두머리 세 명이서 그 노인 한 명을 당해내지 못했다는 거네.”
 “와!!”
 사람들이 더 모여들기 시작하고 그는 자신만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잘 생각해 보게. 하늘과 땅을 가른다는 그분들이 노인 한 명에게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네. 더구나 그 흑의를 입는 노인의 몸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고 온몸에서 연기를 뱉어내는 것이 사람 같지가 않았다네······.”
 추무설이 불현듯 다가와 자리를 잡자 덩치 큰 거한이 그를 내려다보고 말을 걸었다.
 “어이, 형씨! 얘기가 들리는 곳은 돈을 내야 하오. 우리 탄강사(歎講士) 님께서 어디서 듣지 못할 심오한 얘기를 하시잖소.”
 목청을 높인 거한의 오른손엔 자그마한 질그릇이 들려져 있었다. 큰 덩치에 작은 질그릇을 쥔 모습을 보며 추무설은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가벼이 무시한 다음 행상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하지만 그 노인도 사람이라서 그런지 신선 같은 세 분께는 상대가 되지 않았네. 검강이라고 자네들 아나? 검에서 엄청난 내력이 발산하는 것인데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도 드물뿐더러 스쳐도 사망이야! 한데 그 무시무시한 검강을 수십 번 쏘아 댔으니······!”
 쾅!
 “이봐, 형씨!”
 얼굴이 빨개진 거한은 잡고 있던 질그릇을 탁자 앞에 대고 거침없이 내리찍었다. 갑자기 나타난 사내가 값비싼 이야기를 마구 듣는 것이 화가 났기 때문이다. 한 번 더 독촉한 그는 아무 행동이 없자 불끈 주먹을 쥐었다.
 톡.
 ‘뜨아! 금덩이!’
 황금빛을 내며 자신의 그릇에 들어간 것은 주먹만 한 금덩이었다. 이런 금덩이는 난생 처음 봤고 앞으로도 못 볼 것임이 틀림없었다. 추무설은 놀란 표정의 그를 보며 말했다.
 “저기 보이는 저자하고 대화하고 싶네. 단둘이 말일세. 조용한 곳을 마련해 주게.”
 무섭게 부릅뜬 그의 눈은 탄강사에게 다가갔을 때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야기하다 문득 거한의 얼굴을 본 담향(談香)은 짜증이 치밀었다. 한참 돈독이 올라 있는데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저놈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날 만도 하였다.
 “지금 얼마나 중요한 땐데 나를!!”
 노발대발하는 그의 눈에 질그릇에 언뜻 보이는 주먹만 한 금덩이가 보였다. 그것을 보자 이후 남은 얘기와 사소했던 약속은 기쁘게 지워 버렸고, 앞으로의 남은 거취에 대해 재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험험··· 오늘은 몸이 좋지 않군. 다음에 오시오, 또 들려줄 테니.”
 탄강사가 투덜대며 자연스레 탁자 위에 놓인 질그릇을 뒤집었다.
 도중에 얘기가 끊어지면 자연스레 받았던 돈은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껏 흥취에 올라 있는 그들에게서 엄청난 화가 미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귀인(貴人)은 어디 계신고?”
 거한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그곳엔 흑풍의를 둘러쓴,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내가 눈에 띄었다. 담향은 인근의 자신의 처소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자, 사내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으레 강담사는 허황된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나에게는 있는 사실대로만 이야기해라. 말이 마치 지어낸 얘기일 것 같거나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생각될 시, 너의 목을 가차 없이 베겠다.”
 담향이 그 말을 듣자 그제야 그의 검신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외투로 가렸음에도 바로 앞에 있다 보니 보인 것이다.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금덩이를 받았는데 목숨이 하나라도 아까우랴! 그는 처음부터 일어났던 일을 소상히 이실직고하였다.
 “처음 제가 본 것은 다섯의 흑의인들이 내지른 엄청난 기류가 대형객점을 덮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모두가 두려움에 떨며 밖으로 나갈 때 주인장을 통해 주방으로 들어가 그 광경을 목격한 산증인이었다.
 담향은 말을 계속 이었다.
 
 ***
 
 네모난 탁자 위에서 열변을 토하는 담향은 그야말로 술술이었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자신의 생각이 아닌 눈으로 본 그대로 말하고 있었다. 사실 향주가 사혈을 짚고 검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그가 설명할 리 없었다. 하지만 정확한 ‘보이지 않았다’라는 표현과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라는 몸짓으로 피해 갈 구멍도 확실히 만들어가며 말하고 있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아, 그래서 그 노인이 말했습니다. 유심(有心)은 무심(無心)만은 못하며 무심(無心)은 무심(无心)만은 못하다. 양의 기운은 능히 신선으로 만들고, 음의 기운은 생명을 부르니 이것을 넘어서야 비로소 무극(無極)이라.”
 그의 말이 듣고 추무설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향주님께서 드디어 무극의 경지를 경험하셨구나!’
 추무설은 무극의 경지에 올라선 향주를 상상했다. 절대고수들을 무릎 꿇린 무학은, 그가 창시한 구음진경이 어떤 절세무공에도 밀리지 않은 최고의 무학이라 웅변하는 것 같았다.
 본연의 표정으로 돌아온 추무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노인의 몸이 점점 암정색으로 변하고 살점이······.”
 “됐다.”
 더는 듣지 않기로 했다. 이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사혈을 짚은 자의 부작용을 말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추무설은 어두워진 저잣거리로 나왔다. 그는 향주님의 신물인 음령검을 회수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 곧 지워 버렸다. 임무가 끝나면 빨리 복귀해야 하는 본 교의 불문율을 어겨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는 훗날을 기약하고 장생이 기거하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날이 밝았다.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고 빛이 투영된 냇물은 어느 때보다 밝게 반짝였다. 시원한 댓잎 바람이 스쳐 가는 숭촌 아랫마을 교각(橋脚)에는 두 명의 사내가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허 의원은 며칠 전 다짜고짜 찾아와 환자를 맡긴 것도 모자라 삼 일 안에 거동하게 하라는 흑의인의 말에 울화가 치밀었다.
 더군다나 이틀 동안 갖은 약재를 부었는데도 약값은커녕 검집에서 칼을 넣었다 빼었다 하며 똥줄을 타게 하고, 눈 좀 붙이려고 하면 이유 없이 벽지에 검을 그어 환자를 다시 검진하게 만드는 등 추무설에 대한 울분이 하늘까지 닿아 있었다.
 그는 두고 보자는 심정으로 자신이 알고 지내던 누아지명(淚兒止名) 수국명(秀麴茗)을 불렀다.
 “아, 그러니까 형님! 그 호랑말코 같은 놈이 깐죽깐죽 그렇게 시비를 건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니깐! 이 녀석아! 이틀 동안 쏟아 부은 약재만 해도 족히 은화 세 냥은 될 것이야! 이대로 더 지낸다면 집채를 몽땅 넘길 판국이다. 그러니 내 너를 부르지 않았느냐!”
 “형님! 안심하십시오! 마! 제가 있잖습니까!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고 해서 얻은 별호 누아지명(淚兒止名) 아닙니까?”
 수국명은 허 의원과 오래전부터 호형호제하던 사이로 작은 지방의 숭촌보다 큰 미산시에서 제법 알려진 무림인이었다. 원래는 관의 병사였는데 전쟁 중에 무의 경지를 깨닫고 무림인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관인 출신답게 기문병기 일종으로 유엽도(柳葉刀)를 쓰는 자였다. 유엽도는 도(刀)치고는 상당히 가늘다고 하여 그 쓰임이 어려운 도라 알려져 있었다.
 허 의원은 수국명을 이끌고 돌담 아래서 말없이 냇가를 보고 있는 한 사내에게로 향했다.
 더운 날씨에도 흑풍의를 걸치고 두건을 쓴 그의 모습에는 어딘가 위엄이 서려 있었다.
 추무설은 아침이 밝자마자 다시 냇가로 나왔다. 어딘가 모르게 숭촌의 이 냇가는 자신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도 그렇고 자신의 고향인 내촌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저 평온한 느낌이 추무설을 이끌었다.
 “어이, 형씨!”
 추무설은 자신을 불렀다고 예상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며칠 전 함께 기거했던 허 의원과 정체 모를 괴한이 떡하니 서 있었다.
 “하하하! 당신도 이제 끝났어! 빨리 돈이나 내놓으시지. 내가 이 근방에서 유명한 아우를 한 명 초청했거든. 후후. 이제 살려 달라고 해도 소용없어!”
 “···아이 썅!”
 핏발을 세우며 열변을 토하는 허 의원을 보며 추무설은 선뜻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곧이어 들려오는 사내의 험악한 표정과 위협 섞인 고함이 부족했던 이해력에 도움을 주었다.
 
 수국명은 추무설이 앉은 돌담에 다리를 올리고 거만하게 도를 뽑아 그에게 겨누었다.
 “이봐! 썅! 선량하게 사는 분을 가지고 그렇게 이용하면 안 되지. 빨리 그동안 밀린 약값을 내놔라. 목숨만은 살려주마!”
 버드나무처럼 유연한 도가 위아래로 흔들리며 흑의인의 턱을 겨누자 허 의원은 덩달아 신이 났다. 숙련된 움직임이 돈을 낼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능히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후··· 돈이라면.”
 추무설은 순순히 자신의 소매에 있던 금화 한 냥을 던졌다. 그 귀하다는 금화! 그것을 본 허 의원과 수국명의 눈은 솥뚜껑처럼 커졌다. 이런 귀한 금화 한 냥을 아무렇지 않게 주다니. 순간 약속이나 한 듯이 허의원과 수국명의 눈이 마주쳤다. 그렇다. 그들은 ‘받아냈다’의 눈빛보다 ‘더 혼을 내주자’의 그것이었다. 수국명은 한 번 더 자신의 절정 연기력을 믿기로 했다.
 “이봐! 우리를 지금 너무 가볍게 보나 본데 금화 한 냥은 지금 들어간 약재 값밖에 되지 않지. 자고로 큰일을 하면 생명수당이 붙는단 말이다. 환자를 죽음 직전에서 고쳐 낸 허 의원 형님의 천하의술이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된단 말이냐! 일을 크게 만들고 싶어, 엉?! 이런 썅!”
 위압적인 목소리가 새어 나오며 그는 다시 흑인인의 목덜미를 위협했다. 허 의원은 곧 흑의인의 소매에서 엄청난 돈이 쏟아져 나오길 기대했다. 월척이 잡히면 계속해서 그 장소에 떡밥을 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 또다시 월척을 건지길 누구보다 고대하고 있었다. 그 흑의인은 한동안 조용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괜히 일을 크게 만들 필요는 없지.”
 쿵!
 우웩~!
 즉사(卽死).
 누군가 이 소리를 들었다면 단연코 확신했을 것이다. 뼛조각이 부서지는 소리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으레 맞고 날아간 사람은 나선을 그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자는 달랐다. 곧은 일직선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허 의원은 경악했다. 그가 본 것은 단 세 편의 그림이었다.
 사내가 일어서려는 모습, 다시 앉아 있는 모습, 그리고 어느 샌가 시야에 보이지 않는 사라진 수국명의 모습.
 “귀찮군. 그냥 죽여 버릴까.”
 자신을 하등동물로 바라보는 사내의 무심한 눈이 허 의원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었다. 마지막 살기 위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살려주십시오! 나리! 고인을 몰라 뵙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쇼.”
 눈물, 콧물, 침 등 물이란 물은 다 나온 상태에서 그는 사내에게 애원하기보다는 부르짖고 있었다.
 그의 손발은 이미 싹싹 비는 모습을 그렸고 표정은 정말 안타까울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살고자 하는 의욕만큼은 일류고수였다.
 그렇게 허 의원은 흑의인이 사라지고도 날이 저물 때까지 혼자서 한참을 빌어야 했다.
 장생은 눈을 떴다. 누런 토사로 만든 외벽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처마 밑의 서까래와 목조 구조가 차례로 들어왔다.
 시력이 돌아옴을 느끼자 시선을 돌려 오른쪽, 개방된 문짝을 쳐다보았다. 그곳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문의 판벽으로 반사된 빛이 밖 날씨를 가늠케 했다.
 곧 누군가가 문지방에 걸터앉았다.
 “괜찮으냐?”
 “예.”
 “움직일 수 있겠느냐.”
 “예.”
 “나와라.”
 몸을 일으킨 장생은 새처럼 가벼움을 느꼈다. 군데군데 아직은 상흔의 흔적이 존재했지만 고통을 주지는 않았다. 추무설이 밖으로 나가자 그는 급히 일어서서 따라나섰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적한 가을의 날씨,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풀잎들이 조금씩 흔들거리는 오후. 그들은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했다.
 “가자. 본 교로······.”
 
 
 
 三章 교주회
 
 
 
 흔히 중원인들이 말하길 사도(死道) 최고의 우두머리는 서장 대설산(大雪山)을 끼고 남면으로 굽어 운집해 있다고 한다.
 또한, 중원인들은 서장 서북쪽 음산산맥(陰山山脈) 구만봉(九萬峰)에 자리를 잡지 않겠느냐고들 묻는다.
 하지만 중원 최고의 문파 중 하나인 개방 운영문의 신문고 일급지실에는 마교의 위치에 대한 어떠한 기록도 나와 있지 않다.
 수만 장이 넘어가는 기고 장, 비급문서, 무공서, 특성 등 모든 것이 빼곡히 채워져 있음에도 서고 장, 어디에도 마교의 위치에 관한 내용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것은 대마교가 천 년의 역사를 가지게 했던 원동력이며 그 누구도 마교의 위명을 대신하지 못하는 이유다.
 개방의 신문고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당주급(오결제자 이상) 정도 배분을 지닌 이들의 공통된 생각은 아마 서장의 합라화림(哈刺和林) 산맥을 끼고 당랍산(唐拉山)을 기점으로 활동하고 있지 않겠는가 하고 짐작했다.
 서장의 합라화림이라면 서강지역의 성도(省都)로써 당랍산(拉山)의 서북쪽이다.
 지금으로부터 이백 년 전 마공을 쓰는 소뢰음사가 출몰했던 지역이기도 하고 일부 사람들에게는 파달랍궁(巴達拉宮)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방대하고 넓은 개방의 정보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교의 위치는 그보다 한참 위인 신강 천봉대산을 기점으로 구만대산과 천만대산에 굳건히 그 터를 잡고 있다.
 해발은 보통의 산지보다 높고, 다른 곳과는 다르게 지대 위에는 넓은 평원이 자리 잡고 있어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요새 중의 요새였다.
 
 마교 총산.
 총산은 교주가 주로 활동하는 곳으로 본시 지나다니는 사람도 몇 없을뿐더러 업무와 관련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대주급 이상만이 얼굴을 내밀 뿐, 사람들이 좀체 지나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명령이나 임무 이외엔 일절 들어오지 말라는 마교주 천마귀의 일언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구천대산 중 가장 높고 가장 먼 곳을 굽어본다는 총본교 회실 정문에는 수십 명의 마교인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철무제 님. 모두 기다리고 계십니다.”
 두터운 흑의를 입고 적색 두건을 쓴 자가 총산 정문 부근에 서 있다 철무제라는 자에게 말을 건넸다.
 “다들 오셨는가?”
 남색에 하의만 흑의로 가린 철무제는 소수마공과 혈수마공을 사용하는 기인답게 좌수는 혈수로 우수는 소수로 물들어 있었다.
 얼굴 형태가 뚜렷하고 눈매가 꼿꼿이 올라가 있는 모습이 마치 무신을 연상케 할 정도로 두려웠다.
 “세외파견을 나가신 분들을 제외하곤 거의 다 오셨습니다. 삼장로 중 한 분이신 노구(老軀)가 몸 상태가 많이 불편하여 불참하셨고, 원로원 중 한 명인 구휘(懼揮) 님만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다는 전언을 통보해 오셨을 뿐, 성산의 주교들과 부교주님, 수장대(首長隊) 대주, 교주님의 흑마대장 등 총 스물다섯 분이 참석하셨습니다.”
 “설마 그렇게나 많이? 무슨 전쟁이라도 난 것인가, 본 교의 고수들을 이토록 대거 모으시다니······.”
 “소인도 갑자기 전언을 접하는 바람에 어찌 된 영문인지 잘 모릅니다. 약 한 시진 전에 교주님을 문 앞에서 잠깐 뵈었는데 표정을 봐서는 그리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휴··· 그렇겠지. 하긴, 마교의 지옥혈문을 담당한다던 너를 고작 교주회의 문지기로 세울 정도이니··· 대체 무엇 때문에 교주님이 화가 나셨는지 궁금하군.”
 흑의을 입은 자가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더니 빠르게 말을 건넸다.
 “속히 올라가셔야겠습니다. 곧 의회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그러지.”
 
 회실.
 “이제 왔는가?”
 부교주가 일어나서 즐겁게 맞이했다. 평소 부교주와 친분이 두터운 철무제는 화답하고 배치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일각(一刻)이 흘렀다.
 스르륵.
 두꺼운 철문이 열리며 대마교 교주 천마귀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모두가 일어서서 포권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백삼을 걸친 그는 얼굴도 눈매도 선량한 선비를 연상케 했다. 키가 칠 척에 육박하는 거인이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자리에 앉지도 않고는 말없이 등을 돌렸다.
 “음······!”
 일각이 흘렀음에도 아무 말이 없자 답답했는지 무혼이 은연중에 신음을 흘렸다.
 그의 기분과는 다르게 교주는 뒤쪽의 벽만 말없이 쳐다볼 뿐이었다. 이윽고 모두의 눈빛이 부교주에게 향했다. 부교주는 검대를 메는 기분으로 교주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교주님······.”
 역시 대답이 없었다. 교주는 생각을 정리하는 듯 한참을 등을 보인 자세로 서 있었다.
 그때였다.
 콰콰쾅!!
 엄청난 진기가 석상 위로 솟아나오며 팔대주교에게로 쏘아졌다.
 가공할 만한 강기였다.
 장로들과 원로원 할 것 없이 일대에 있는 모두가 경악에 가까운 표정으로 피해 낸 뒤 교주를 바라보았다. 부교주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느 놈 짓이냐?”
 교주가 꺼낸 첫마디였다.
 콰콰쾅!!
 이번엔 벽면이었다. 이번에도 직접적으로 겨냥하지 않았지만, 팔대주교 뒤의 벽면에 그대로 폭사되면서 모래알처럼 으스러졌다.
 “교, 교주님, 진정을!”
 “진정하십시오, 교주님!!”
 “교주님······!”
 부교주가 말문을 열고 이어 원로원 태상로가 말을 이었다.
 태상로는 교주가 이처럼 광분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초연한 저 모습에서 마기를 저토록 끌어 올리다니!
 무공이 이미 하늘에 다다랐다는 소문은 헛된 소문이 아니었다.
 “누구냐! 향주에게 나의 직인을 찍어 보낸 녀석이!”
 향주라면 육대성산 향주 묵일검을 말하는 것이었다. 교주의 명을 들어 광안도사를 처단하는 임무를 받은 그자를 말하는 것이다.
 “말해라. 향주에게 나의 직인을 찍어 광안도사를 죽이라는 명을 준 자가 누구냐! 그자는 한때 나와 생사를 같이한 흑마대(黑魔隊)의 조장(組長), 그런 그가 내가 내린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죽었다니, 이 소식을 나보고 믿으란 말인가!”
 
 대리석이 부서지며 흘러나온 파편들이 회실 주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단단한 옥석 벽면이 권기(拳氣)에 휘말려 손톱 모양처럼 날카롭게 그어져 있었다.
 이것은 교주가 자랑하는 수혈마공(手血魔功)으로써 모든 범위와 방향을 무시한 채, 일순간에 날아가는 장권(掌拳) 중의 장권이었다.
 하지만 지금 교주의 무위는 강권을 내지르지 않는 상태에서 쏘아졌다. 그것은 이미 검(劍), 권(拳)에 얽매이는 경지를 넘어섰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했다.
 철무제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그는 교주의 내력이 담긴 장권이 처음 발휘될 때만 해도 덤덤했다.
 하지만 두 번째 장권이 다시 쏘아지고 향주라는 자가 교주 입에서 거론되자 그의 목덜미에서도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는 사태가 이리 심각하게 돌아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황하는 표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그는 마교의 독문심법인 극음지청술을 시전하여 패도살검 무혼에게 원인을 물었다.
 간단한 전음을 사용하지 않고 이토록 고도의 전음입밀을 사용하는 이유는 본 교의 절대고수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 위함이었다.
 혹여 전음을 하는 모습을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주교직을 내놔야 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었다.
 무혼은 철무제를 보지 않고 전음을 받았다.
 [나도 모르겠네. 이 일을 교주님이 어떻게 아셨는지··· 교주님이 폐관수련 기간을 십 년이나 잡은 것을 자네도 알지 않나. 그런데 사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지금 이렇게 모습을 내비칠 줄은 나 또한 상상도 못했네.]
 [교주가 알았다면 혹여 저희의 계획이 틀어진 것은 아닐지.]
 [흠···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네. 지금 알았다면 이미 늦었다는 거네. 또한 향주가 예전 구천마까지 비유될 정도로 고강하다고 해도 상대는 자그마치 구대문파 장문인 세 명이네. 본 교의 수라적참대(修羅赤慘隊)를 이끌고 내가 간다고 해도 삼 각 이상 버틸지 의문인 수준이야. 살아서 돌아온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지.]
 [하지만 만에 하나 이탈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그것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일세. 그는 흑마대의 조장까지 맡은 적이 있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그자가 배반했을 가능성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야. 더구나 교주님께서 죽었다고 하지 않는가.]
 향주가 죽었다면 조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본 교의 이목을 속이고 그를 죽이는 것이 계획이었기 때문에 교주가 알았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치명타로 작용했다.
 더구나 본 교에서도 향주가 누군가의 모의로 죽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일은 더욱더 복잡해져서 그들로서는 잡아떼는 것이 중요했다.
 철무제의 눈동자가 석상 쪽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와 관련된 식솔 중 고수들은 모두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혹여 그들 중 한 사람이라도 임무수행 중 이탈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들 역시 임무에 관한 수행능력은 본 교에서도 유명한 아이들이라, 이거 원··· 아직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 또한 아는 바가 없네. 우리 쪽 아이들은 정보수집에 능통하지 못해서 더욱 답답한 지경이네. 옆에 있는 적살인(赤殺人)의 아이들이 정보수집에는 으뜸인데, 워낙 그자와는 안면도 없고 패적이라 불릴 만큼 소문이 안 좋으니 부탁하기 꺼려지는 자라······!]
 패적살왕(敗赤殺王) 적살인.
 팔대주교 중 이대성산을 담당하는 자로 다른 것은 몰라도 이자의 혈왕만참인수권(血王卍斬印手拳)은 세상에 맞수가 없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중에서 극수초풍권(極手超風拳)과 흡혈권(吸血拳), 그리고 참마귀락권(斬魔鬼落拳)으로 이어지는 삼 초식 권법은 소림의 나한십팔수, 무당의 태극권을 능가한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였다.
 백팔십 살이 넘은 나이임에도 미공자를 연상케 하는 수려한 얼굴은 분명 반로환동 경지를 넘어선 극마고수임에 틀림없었다.
 또한 교주의 내지르는 장권의 강기 앞에서도 아무런 미동과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저 눈가와 귓불에서 섬뜩하고 괴기스러운 짙은 마기가 새어 나왔을 뿐이다. 무혼은 애써 그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우리 쪽 애들보다··· 참, 그렇지! 너희 쪽 아이들 중 은신술과 정보수집에 능통한 자가 있지 않나?]
 [아명(娥明)이라고 불리는 아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 아이 말이다. 음지각(陰地覺)이라고 불리는 훈련장에서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경공술과 은신술이 뛰어났다고 들었다. 자네의 명산(名山) 지역에서 나왔다고 그랬다지. 그곳에서 배출한 아이들을 모아 아명단(娥明丹)이라고 지었다는 것도.]
 음지각은 총산에서 설립한 훈련장으로 각 성산의 뛰어난 아이들을 중원에 급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재단 중 하나였다.
 재능 있는 아이들을 더욱 뛰어나게 성장시켜 빠르게 고수로 양성하고 즉시 전력으로 투입하기 위해 만든 곳이기도 하였다.
 [알고 계셨습니까? 물론 아명단 아이들은 이번 임무를 줌과 동시에 중원으로 급파했습니다. 거기에 제가 키우고 있던 열 명의 수무도(需武途) 아이들 중 다섯 명과 함께 말입니다. 아직 별다른 소식이 없습니다만······.]
 [그런가? 내 잠시 정황이 없었지만 부교주님하고도 얘기를 해봐야겠네. 부교주님이라면 교주님이 어떻게 이 사실을 안 것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네. 답답하군. 본 교 비영각(飛影閣)의 힘만 빌릴 수 있다면 이런 걱정은 하지 않을 텐데 말일세. 음······! 그러고 보니 비영각의 주인이신 원로원 구휘(懼揮) 님께서 보이지 않는군?]
 “······!”
 중원에 개방이 있다면 마교엔 비영각이 있다.
 개방의 헤아릴 수 없는 거지들과는 다르게 마교의 비영각은 일원 모두가 일류고수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정보수집능력은 물론이고 은신술, 경공술, 암기술, 비도술 할 것 없이 이미 모든 분야에 능통하고 특출해야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중원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 그것은 그저 단순한 고수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전 비영각은 팔대주교 중 한 명이 담당하였지만 지금은 원로원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정보수집능력과 흔적을 남기지 않고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 아는 만큼 비영각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었다.
 현재 그들은 원로원 중 한 명인 구휘라는 자가 맡고 있었다. 한데 자리에 없었다. 철무제와 무혼의 끝맺음이 그러했듯 그냥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었다.
 혹시 비영각에서 조사를 했다면······!
 철무제와 무혼이 무언가 놀란 듯 눈빛이 교차하는 사이 교주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후후후후. 그래? 안 나온단 말이지. 쥐새끼처럼 숨는단 말이지.”
 그때 앞쪽의 정문에서 좌중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구휘가 당도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회실 안의 모든 눈이 왼쪽 정문으로 향하고 교주는 소리쳐 말했다.
 “들라 하라!”
 현철로 된 석문이 서서히 열리고 구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팔대주교 영향 외에 본 교의 모든 일보대(日報隊)를 관리하는 사람으로, 구환수라장(九環修羅長) 직책을 맡고 있는 자였다.
 육 척의 키에 달하는 그가 들어서자 몇몇 주교들과 장로들은 간단한 예의를 표했다.
 그는 중원을 조사하는 대주답게 선명한 눈동자와 매서운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의 얼굴은 다소 깡마르고 각진 모습이었다.
 “어떻게 되었느냐!”
 교주의 말에 원로원 삼장로, 팔대주교, 호법, 수장대 대주 등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구휘에게 시선을 모았다.
 “비영각 혈영(血影)의 조사로는 석 달 전 교정(校庭)의 우화루(遇花樓)에서 미상의 고수들 간에 밀담이 오간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전후 십 장 좌우로 사십 장의 침입을 불허할 정도의 극마고수들이라 더 들어가는 것은 무모하다고 판단되어 비영각 천음연마혼술(天音連魔混術)을 시전했다고 합니다.”
 혼술(混術) 중 하나인 천음연마혼술은 비영각의 독문마공 중 하나로 백 리를 넘지 않는 모든 대상의 기운을 몸속으로 받아들여 마혼술의 구절을 통해 소리로 변화시키는 대법 중 하나였다.
 이 술법은 익히는 자가 거의 전무할 정도로 난해해 천 명이 넘어서는 비영각 고수들 사이에서도 시전한다고 알려진 자가 없다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이 갑자(二甲子)를 육박하는 내력에 신령과 교감이 있어야 시전할 수 있는 혼술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구휘의 입에서 시전을 했다는 말이 나온 것은 분명 그 혼술을 익힌 특급고수들이 존재함을 의미했다.
 “대화 내용으로 봐서 세 명으로, 무당파 장문인을 처단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시일은 석 달 전을 기점으로 다음 달 초하루, 거주지는 사천 성도성 아래에 있는 숭촌 대형객점으로 방향을 잡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밀서 내용과는 다르게 무속마신(舞速魔神) 혈영은 그들의 대화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고 보고해 왔습니다. 숭촌을 기점으로 화산파와 개방, 사천당문의 장문인들이 거론되면서 만나는 기일을 조율해 보자는 말을 누군가가 꺼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망할!’
 부교주인 사천휘마 갈염수는 놀란 눈동자를 감추지 못하고 석상에 앉아 있는 무혼과 철무제를 쏘아보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보다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하였는지에 대한 분노였다.
 무혼은 불같이 타오르는 부교주의 눈동자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임무를 띠고 지금의 사천 성도지역 숭촌이라는 대형객점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구휘는 조사해 온 내용을 모두 읽었지만 지목할 만한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단편적인 사실만이 흘러나왔을 뿐 내용 또한 불충분했다. 그저 구휘가 읽을 때 팔대주교의 감정 변화를 살피기 위한 교주의 매서운 눈빛만이 있었을 뿐이다.
 ‘다행히 아직은 잡히지 않았군.’
 갈염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교주를 쳐다보았다. 그는 회실 안 모든 사람을 번뜩이는 눈으로 쳐다보는 중이었다.
 극마 경지를 넘어 탈마의 경지에 올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의 초극고수. 하지만 교주 앞에 있는 자들도 이미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고수들이라 그런지, 감정을 읽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조금은 누그러진 듯 교주의 표정은 처음보다 많이 나아져 있었다.
 “부교주!”
 “예, 교주님!”
 “내가 없는 총본산의 업무는 자네가 담당하고 있지 않나!”
 “예. 교주님이 폐관수련에 드신 직후 사 년째 위임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예. 모두들 아시다시피 향주는 예전 광안도사를 놓아주는 불충한 짓을 저지른 적이 있습니다. 그밖에 정파 인물들과의 접전 후 이유 없이 놓아 주었다는 여러 소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소문으로 최근 팔대주교들 사이에서 여러 말이 오고 갔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번에 광안도사가 숭촌지역으로 움직인다는 첩보를 접한 주교들 중 누군가가 낸 탄원을 보았습니다. 전 그저 향주에게 이번 임무를 통해 직책도 높이고 근거 없는 소문을 만회할 기회라는 생각에 심도 있게 읽어보지 못하고 교주님의 직인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불충을 용서하옵소서.”
 “그렇다고 해도 그만한 고수를 죽이는 임무에 향주 혼자 보내다니 생각이 있는 짓인가!”
 “비록 극마고수는 향주뿐이었지만 사실 향주는 일전에 광안도사와의 비무에서 이긴 적이 있습니다. 또한, 그의 수하 추무설이란 자는 일전 화산 독월강을 일 검에 죽일 정도로 강합니다. 그를 위시하는 제자들도 뛰어나 그들만으로 충분히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용서를······.”
 “망할! 누굴 의심해야 하는가!”
 그날의 안건은 교주의 탄식 속에 막을 내리고 있었다.
 
 ***
 
 교주회가 열릴 무렵, 추무설과 장생은 사천을 지나 감숙성(甘肅省) 대설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인적이 드물고 마교의 천봉대산이라 불리는 그곳을 가기위한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이동로였기 때문에 일행은 바로 산을 오르고 있었다.
 또한, 여기에는 옥문관(玉門關)이라는 이름 있는 문파가 서북쪽에 자리 잡고 있어 그들과 만나서 좋을 게 없다는 추무설의 계산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설산의 최고봉에는 이름답게 눈으로 덮인 봉우리들이 운집해 있다. 산새도 험하고 사람들도 높이 오르지 않기 때문에 야생동물들이 많이 출몰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무공을 익히려면 심법이나 내법으로 몸의 기초를 다지고 그 위에 신공, 기공, 마공 같은 무공의 행공을 통해 내공을 쌓는 것이다. 아까 내가 말한 인체에는 몇 개의 혈(穴)이 있다고 하였나?”
 “열 개의 경락(經絡) 속에 육백오십칠 개의 경혈(經穴)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 물로 비유하자면 골짜기부터 바다로 흐르는 모든 물줄기를 말하는 것이 경락이다. 그리고 경혈은 여러 방향에서 나온 물줄기의 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무언가 우리 몸에 타격을 받거나 이상이 생기게 되면 경혈을 통해 진맥이 가능하고, 그것을 치료하면 경락이 치유된다. 마치 더러운 물로 하류가 오염되더라도 상류에서 깨끗한 물을 다시 흘려보내면 정화가 되듯이 말이다.”
 “예.”
 “이러한 경락들의 기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기경팔맥(寄經八脈)으로 허(虛)를 메운다. 맥(脈)은 이름 그대로 줄기란 뜻이다. 즉, 경락을 조절하는 줄기로 모든 경락과 경혈을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향주님이 창시한 구음진경(九陰眞經)의 심법에 대한 묘리가 여기에 기초를 두고 있다.”
 “예. 사부님.”
 “인간의 음양오행(陰陽五行)을 바탕으로 한 구음진경의 실체는 세 가지가 있다. 자신의 기를 순환시켜 단전에 축적하고 그것을 지배하는 것이 첫 번째요, 운공을 통해 자연의 기와 교류하고 그것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 두 번째, 쇠붙이로 만든 검과 나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 세 번째라 할 수 있다. 구음진경의 내공심법 중에는 흡성법(吸盛法), 무형채기법(無形採氣法), 보원공법(保原功法), 대천심법(大天心法)이 있다. 그것의 내용은 어제 몇 번이나 교육을 한 부분이다. 이 심법들이 가장 빛을 발할 때가 언제라고 하였느냐?”
 “그것이······.”
 “이런! 하루가 시작하는 인시(寅時)라고 하지 않았느냐! 너는 내 뜻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구음진경 내공심법 종류는 뭐가 있었는지 말해 보아라!”
 “흡성법··· 채기법······.”
 “내공심법의 각 특성과 연성방법은?”
 “흡성법은 타인을 통하여······.”
 “이놈! 내 말을 집중하여 듣는 것이냐!”
 험준한 산세가 조금은 드러눕고 순탄한 평지가 나오자 추무설의 꾸중은 더욱 커졌다.
 벌써 몇 번째인가··· 했던 말을 또 하고 되묻는 것이.
 추무설의 호통에 장생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소인은 아무리 잘 들었다 싶어도 막상 말을 할 때면 들은 내용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사실 제가 기억력이 빼어난 것도 아니고 이해도 느린 편이라 몇 번을 들어야 이해하곤 합니다.”
 ‘허허. 이를 어쩐다.’
 평범한 자가 무공을 익히면 하수를 넘어서지 못하고, 오성(五性)이 밝아야 이류라고 했다. 지극히 평범하면 오히려 둔재요, 그런 자가 기인을 만나야 비로소 삼류라고 할 수 있었다.
 추무설이 본 장생은 지극히 평범한 자였다. 지극히 평범하기 때문에 오히려 둔재에 가까운 그런 경우였다.
 더구나 약관의 나이를 이미 넘어선 지 오래, 벽곡이나 오곡(五穀)을 대기에는 몸의 탁기(濁氣)가 너무 높았고 영약을 쓰기에는 그의 몸 상태를 고려할 때, 시기를 놓쳤다 할 수 있었다.
 또한, 근골이 굳고 통뼈가 아닌 무른 뼈라 무공을 익히는 기초적인 수준 또한 떨어졌다.
 이런 자가 주위에서 무공을 익힌다고 한다면 쌍수를 들고 반대했을 것이다. 고생길이 험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보이지가 않고 넘어야 할 산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추무설은 침을 삼키며 운을 뗐다.
 “장생아······.”
 “예. 사부님.”
 “너는 이 길과 인연이 없는 듯싶구나.”
 장생의 눈은 부릅떠졌다. 추무설의 한마디 말뿐이었는데 그는 심하게 떨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질 말에 대한 두려움을 내비치며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사람에게는 저마다 재능과 그에 맞는 역량이 있다. 너에게는 무공이, 재능이나 체질 쪽으로 맞지 않는 것 같구나. 옛말에 이르길, 평범한 것은 오히려 모자람에 가깝다고 하였다. 미래가 없는 길보다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 아니겠느냐?”
 “사부님!!”
 옥죄어 왔던 지난 과거와 추무설의 비수 같은 말이 가슴에 박히자 장생은 참고 있던 눈물을 결국 터뜨렸다.
 “흑흑··· 사부님. 저를 내치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어려서부터 누구에게 제대로 가르침 받은 적 없이 사생아라 놀림을 받았습니다. 비록 제가 부모에게 버림을 받고 동생 두 명을 키우다 모두 잃고 말았지만, 저에게도 항상 꿈이 있었습니다. 구걸하다 마을 저잣거리에서 장한들에게 둘러싸여 몰매를 맞을 때도 객점과 객잔을 돌아다니며 구걸을 할 때에도 동생들만을 위해 견디고 또 견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동생을 은화 다섯 냥에 판 놈입니다. 아주 몹쓸 놈이고, 세상에서 가장 나쁜 불한당 중 한 명이지요. 이런 제가 어디를 가겠습니까? 평생 동냥이나 한 놈이 가봤자 어디를 갈 수 있겠습니까?”
 목이 메어가던 장생의 눈물이 어느덧 홍수처럼 변하고 있었다.
 “무림고수를 만들어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중수나 하수라는 칭호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놈들을 다시 만난다면 동생을 지키고 도망갈 수 있는 힘이라도 얻고 싶습니다. 아무도 저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구라도 제게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흐흐흑··· 흐흐흑··· 저는 동생을 판 놈입니다. 가슴이 찢어질 듯 분합니다. 무슨 일이라도 하겠습니다. 제발 내치지 말아주십시오.”
 죽은 혜숙이의 모습이 그려지고, 초점을 잃은 채 자신을 보고 있던 유난이의 얼굴이 겹쳐지자 비수가 꽂힌 가슴속이 다시 한번 도려내지는 기분을 느꼈다.
 추무설은 극에 달한 분노로 온몸을 떠는 장생을 보며 쉽게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노는 그저 분노일 뿐, 무(武)의 길은 그것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운 여정이다.
 더구나 무공으로 서열이 가려지는 본 교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던 그였기 때문에 장생의 서글픈 눈물에도 전혀 반응할 수 없었다.
 그는 대설산을 지나기 전 주천(酒泉) 시전에 들려 사온 사 척 오 촌 길이의 장검을 꺼내 들었다.
 “잡아봐라.”
 제법 긴 장검이 장생의 손에 쥐어졌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백견이 불여일식이라 하였다. 백 번 듣는 것은 한 번 보는 것만 못하고, 백 번 보는 것은 한 번 행하는 것보다 못하다고 했다. 이 근방 북쪽 일 리를 넘지 않는 곳에 야생의 기운이 감지되는구나. 아마 이런 험한 산세에 살기를 내뿜는 것을 보니 야생멧돼지나 범이 아니겠느냐. 따라와라.”
 추무설은 야생동물을 상대하는 장생을 본 후에 다시 판단하기로 마음먹었다.
 흔히 보통 사람은 야생동물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들의 야생성은 상당히 무서운 것이었다.
 더구나 장생은 이제 무공을 익히려는 단계. 가장 기초적인 심법 중 하나인 하단전을 이용한 보원공법을 익히고 있지만, 기한이 한 달도 되지 않아서 그 수준은 미미하였다.
 원래는 구음진경의 내공심법인 대천심법을 운공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장생처럼 약관이 넘도록 무공과는 담을 쌓은 인생은 분명, 몸 안의 탁기가 가득한 상태일 터.
 이럴 때는 보공을 이용해 탁기를 제거하고 새로운 기를 축적하는 방법이 가장 바람직했다.
 물론 흡성법, 무형채기법이 있긴 하지만 이것은 좀 특수한 경우에 해당된다.
 보공의 종류에도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좌우비공법(左右卑空法)과, 마원보납법(魔原報納法)이다.
 좌우비공법과 마원보납법의 차이는 코로 숨 쉬는 방법과 코와 입으로 숨 쉬는 호흡법에서 차이가 났다.
 코의 양쪽을 이용한 강한 호흡법으로 몸 안 기의 질서를 흩트려 놓으며 새로운 길을 여는 방법이 좌우비공법인데 반해 입으로 강하게 들이마시고 코로 내쉬는 방법이 마원보납법이었다.
 추무설은 마원보납법보다 좌우비공법을 장생에게 가르쳐 주었다.
 마원보납법이 훨씬 자극적이고 성취가 빠르지만, 좌우비공법을 가르쳐 준 이유는 마기보다는 정기가 더 적합하지 않겠냐는 추무설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기는 약관이 넘어 탁기가 쌓인 사람에게는 성취가 전무할 정도로 효과가 없었다.
 본래 마기를 이용한 심법들은 어릴 때부터 습득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성취가 더디긴 하겠지만, 그의 온순한 성격으로 보아 정기를 수련하는 것이 훗날 장생에게도 더 도움이 될 것이었다.
 북쪽으로 걸음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야생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추무설의 매서운 눈빛을 따라 오른쪽으로 향하자 거목 가장자리에 제법 큰 멧돼지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부님······!”
 “내가 일러준 호흡법을 상기시켜라. 그 호흡법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넌 절대 저 야생멧돼지를 죽일 수 없다.”
 장생은 두려운 듯 뒷걸음질을 쳤고 자신이 든 장검은 이미 기운을 잃고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었다.
 사천 지역에서 출발할 당시 배웠던 좌우비공법을 생각했다.
 ‘오른쪽 콧구멍을 막고 숨을 길게 들이쉰 다음 왼쪽 구멍을 막고 내쉰다.’
 몇 번의 호흡법으로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짐을 느꼈다. 그렇게 손에 든 장검에 힘이 실리자, 장생은 멧돼지를 쳐다보았다.
 흑갈색의 피부에 주둥이가 배처럼 휘어지며 길었다.
 작은 눈이었지만 입가에 송곳니가 치솟아 있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살기가 느껴졌다. 체모가 등 언저리에 진하고 높게 솟아 있었다.
 장생은 한 걸음 다가갔다.
 아무리 좌우비공법을 행하고 장검을 들어도 이런 짙은 야생동물의 살기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터라 매우 떨고 있었다.
 추무설이 보고 있다는 사실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가슴이 진탕되었다.
 ‘내가 과연 죽일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사이 멧돼지는 자신을 쳐다보는 대상을 발견하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다.
 장생은 이미 지척까지 다다른 멧돼지를 보고 경악했다. 이처럼 빨리, 이토록 신속하게 다가올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으악!”
 장생은 반사적으로 검을 놓고 우측 언덕으로 몸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갔다. 하지만 장생을 겨냥한 멧돼지의 송곳니가 갑자기 틀어지며 꽤 높은 언덕을 일순간 뛰어올라 짓쳐들어왔다.
 “사람 살려······!”
 산속 비탈길 바닥에는 긴 넝쿨이 휘감겨 있었는데 거기에 장생의 다리가 걸렸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 엄청난 살기를 띤 멧돼지가 모습을 드러내자 장생은 파르르 떨었다.
 “으악!”
 얼굴 앞에까지 다가선 멧돼지를 보고 장생은 그만 혼절해 버렸다.
 그사이 다가오던 멧돼지의 굵은 목은 순간 양단되었다.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추무설이 자신의 검으로 멧돼지의 목을 갈랐던 것이다.
 결국, 멧돼지 사냥은 실패로 돌아가고 한동안 장생은 깨어나지 않았다.
 
 
 
 四章 수련
 
 
 
 하늘은 청명했고 산세는 푸르렀다.
 대설산 최고봉에는 하얀 눈이 덮였고 곳곳에는 산새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언덕 중턱, 돌담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가 있었다.
 짙은 어둠이 내리깔린 그곳에서 몇 번의 탁한 소리가 다시 들렸고, 쾌쾌한 연기가 서서히 피어오르더니 하늘을 따라 그림처럼 올라갔다.
 누군가가 싸리를 엮어 만든 지푸라기들을 한데 모아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숙련된 움직임으로 어둠을 걷어 냈다. 모닥불에 비친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눈동자가 크고 이목구비가 수려한 사람이었다.
 전신을 흑의로 덮고 있어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진한 눈썹과 오뚝한 코, 다부진 입술이 그 사내의 진중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듯했다.
 “일어났느냐?”
 또 다른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에서 누군가 일어섰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장생은 일어나 모닥불을 피우고 말없이 다른 곳을 응시하는 추무설을 쳐다보았다.
 그는 곧 조금 굵은 나무들을 매만지더니 화톳불 사이로 집어던졌다.
 “사냥 중에 정신을 잃으면 어떡하느냐. 고작 미물이라도 먹이사슬 위에서 군림하는 야생멧돼지이거늘······.”
 불에 나무가 오그라드는 소리와 함께 사부의 꾸중이 이어졌다. 장생은 순간 좀 전의 상황이 생각나 침울해졌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였다.
 장생은 혹여 자신을 내친다고 말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었다.
 추무설은 모닥불에 장작을 하나 더 집어넣었다. 불이 조금씩 커지고 선명해졌다.
 주변 돌담에서 흐르는 물과 산새 소리가 장작 타는 소리와 어울려 아름답게 들렸다.
 “날이 밝으면 이곳 갈대숲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라. 좀 전에 확인해 보니 여기 가까운 마을이 보이더군. 몇 리만 내려가면 될 것이야. 그곳에서 다른 삶을 살도록 해라.”
 장생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필시 조금 전 야생멧돼지를 상대하는 것이 사부의 마음에 들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에게 준 장검을 도중에 놓고 도망가는 것도 웃음거리였는데 정신을 잃은 모습을 보고 그나마 있던 정마저 떨어졌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들자 또다시 감성에 사로잡힌 장생의 입에서 한마디가 새어 나왔다.
 “다시 한번······.”
 이번에는 추무설이 큰 소리로 장생의 말을 가로막았다.
 “장횡(長橫)이라는 고수가 있다. 총본산 공식서열 이십사 위, 이대성산 적 주교의 공격대인 극암마살대(極暗魔殺隊)의 수장으로 첩보 임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자다. 무공 실력은 본 교에서도 적수가 없을 만큼 고강하며 나조차 상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추무설은 말을 이었다.
 “내가 이런 얘기를 왜 하는가 하면, 그자도 너와 같이 약관을 넘긴 나이에 무공을 시작했다. 다만 만 명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천하의 기골을 타고났지. 거기다 오성도 특출하여 무엇을 가르치든 잘 이해했다. 또한, 그의 사부는 무성(無性). 총본산 공식서열 십 위의 극마고수였다.”
 “······.”
 “그런 그가 불혹의 나이까지 이룬 성취라곤 고작 양광이현(陽光二現)의 경지, 즉 하단전만 개방하고 기의 흐름에 따라 운기하는 정도였다. 왜 그런 줄 아느냐? 그것은 너처럼 어릴 때부터 제대로 수련을 하지 못해 탁기가 몸 안에 가득 퍼졌고 무공을 늦게 배워 근골이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천하의 기재라고 칭송받던 자가 그 정도였다. 천재라 불리는 그가 그런 사부 밑에서 그 정도였단 말이다. 내 기억으론 그 외에는 없다. 천하를 통틀어도 너와 같은 조건으로 시작한 고수들은 없다는 소리다. 그만한 악조건에서 강해지는 방법이 전무하다는 뜻이다.”
 “아······.”
 “본 교는 무공 실력에 따라 배분을 나누는 곳. 그런 곳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 줄 아느냐? 그리고 구영문(究影門)은 절대 하수를 받지 않는다. 본문에서는 이제껏 단 한 명의 하수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런 내게 너를 받아달라고 하는 것은 네가 고수가 되겠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널 고수로 만들 자신은 없다. 애초에 난 너의 스승이 되겠다고 말한 적도 없다.”
 냉정한 말이 추무설의 입을 통해 빠르게 빠져 나왔고 장생의 표정은 끝없는 바닥으로 떨어진 듯 했다.
 추무설의 마음이 확고한 이유 때문이기도 했지만 거론된 인물이 가상의 인물이 아님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장생은 몇 번을 생각 끝에 입을 열었다.
 “아까 주셨던 검을 볼 수 있겠습니까?”
 추무설의 이마에 내 천(川) 자가 드리워졌다. 몇 번을 해도 죽일 수 없다. 야생멧돼지는 평범한 자가 잡을 수 있는 육식동물이 아니다.
 더구나 아까 본 멧돼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멧돼지는 그 포악성이 상당했다. 삼류무사도 방심하면 당하기에 십상인 그런 야생멧돼지를 죽이겠다는 장생의 말이 곱게 들리지 않았다.
 툭.
 그의 어깨 쪽에서 나온 검이 장생의 눈앞에서 떨어지는 순간 추무설의 경고가 흘러나왔다.
 “혹여, 야생멧돼지를 죽일 생각이거든 포기해라. 고작 보공의 좌우비공법 초입단계에 들어선 네가 죽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너 같은 놈이 열 명이 넘게 덤벼든다 해도 어림없다.”
 장생은 아무런 말없이 검을 집어 들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럼 사부님은 내일 아침에 출발하실 겁니까?”
 “···그렇다.”
 예상외의 반응에 추무설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장생은 침울한 표정을 애써 지우고 바닥에 누웠다. 추무설이 보기엔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모습인 것 같았지만, 굳이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저 짐이 하나 없어졌다고 생각하자 마음의 부담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무설은 돌담에 몸을 기대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본 교로 보낸 전서가 잘 도착했을지······.’
 장생이 깨어나기 전에 적은 자신의 전서는 향주와 자신의 소식을 넣어 마교로 보낸 것이었다. 사실 본 교로 바로 가는 전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교는 의심이 될 만한 부분들을 일찌감치 싹을 뽑아 놓았다.
 하여 여러 군데 특수하게 세워둔 분타를 거쳐 마교로 소식을 보낸다. 이 분타를 최종적으로 관리하는 곳이 총본산의 비영각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두운 돌담 사이로 고양이의 조심스러운 움직임처럼 장생이 조심스럽게 일어나는 것을 추무설은 느꼈다.
 그는 추무설이 깨기라도 할까 봐 몸을 최대한 낮추고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험준한 산세 쪽으로 재빠르게 걸어갔다.
 장생이 떠난 뒤 추무설의 입에선 측은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저놈이 대체 어쩌려고······.”
 
 ***
 
 우거진 산속에서 한 인영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입동의 추위가 찾아온 가을이었지만 청명한 보름달이 어느 때보다 밝게 비춰 장생의 시야를 한결 풀어주었다.
 제법 깊은 산속이며 새벽이라 그런지 장생의 입가에서 한기가 새어 나왔다. 그럴수록 장생은 마음을 다잡고 북쪽으로 향했다.
 ‘분명히 이 근처에 있을 것이다.’
 장생은 자신이 걸어온 방향의 가지를 부러뜨리며 걷고 있었다.멧돼지를 잡아 추무설이 있는 곳까지 다시 걸어가려면 길을 표시해 두어야 했다.
 걸음걸이를 조금씩 빠르게 하고 좌우비공법을 운기하여 몸을 가볍게 하였다.
 ‘멧돼지 발자국을 봐야 한다. 다른 발자국은 몰라도 멧돼지 발자국은 선명하니, 주먹이 들어갈 만한 깊이 있는 발자국. 그것을 찾아야 한다.’
 장생은 예전에 먹을 것이 부족해 산행한 경험을 되살렸다. 멧돼지 서식지를 찾는 것은 어렵다. 그곳의 단서가 될 만한 것은 멧돼지의 발자국뿐이다. 특출 나게 큰 발자국이 멧돼지임을 알리는 유일한 역할을 했다.
 장생은 몸을 낮추고 습기가 찬 낙엽 주위를 주의 깊게 살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숙였다.
 ‘이것은······!’
 드디어 낙엽 주위로 주먹만 한 크기의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위 끝이 뭉툭한 발자국, 발톱이 갈라진 표시가 야생멧돼지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지금 이 발자국으로 보아 족히 사백 근은 나가는 엄청난 녀석일 것이다. 장생은 손을 살며시 대보았다.
 ‘주먹보다 더 크다. 또한, 습기가 촉촉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근처다.’
 멧돼지는 주로 저녁에 사냥한다. 그리고 아침에 휴식을 취한다. 지금은 휴식을 취할 시각. 장생은 검을 힘껏 쥐고 천천히 주위를 배회했다.
 ‘찾아야 한다. 찾아서 죽여야 한다.’
 나무들이 드높게 펼쳐져 있는 깊은 산속으로 무언가에 이끌리듯 장생은 점점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우거진 산세, 장생은 그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츄룩··· 츄룩······.
 소리가 먼저 울렸다. 대상을 찾은 장생은 긴장이 되는 마음에 본능적으로 뒷걸음쳤다. 어떻게든 움직여야 했다. 이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야생 멧돼지를 절대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커헉!’
 그때 본능적으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야생멧돼지가 장생 쪽을 쳐다보았다. 원래 멧돼지는 시각보다는 청각과 후각이 발달한 동물이다.
 그렇기에 살기를 감지하는 감각이 여느 야생동물보다 잘 발달하여 있었다. 보름달이 비친 그 야생멧돼지는 머리 꼭대기부터 몸통 중앙까지 갈색털이 줄기차게 나 있는 모습이었다.
 ‘운기해야 한다. 호흡법으로 몸을 가볍게.’
 멧돼지는 장생을 매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왔다. 야생멧돼지의 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츄류륙··· 츄츄츄츄······.
 ‘다가오고 있다.’
 거북하고 칙칙한 소리가 들리자 검을 쥐고 있던 장생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침과는 비교가 안 되는 큰 덩치에 날카로운 송곳니의 멧돼지가 그늘이 진 시야에서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엄청난 공포감과 두려움이 엄습하고, 장생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씩 뒷걸음치고 있었다.
 파파박!!
 움직였다. 아니, 뛰기 시작했다.
 그 멧돼지는 맹렬한 기세로 자신 앞에 위협을 주는 사람을 감지했다. 그리고 그 폭발적인 기세가 장생에게로 쏘아졌다. 장생은 눈을 부릅떴다.
 “햐야얍······! 악!”
 츄웩. 츄웩.
 “으악······!”
 장생은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결국 달려오는 멧돼지와 충돌하였다.
 “억!”
 무의식적으로 내지른 검은 하늘로 치솟았고 장생의 몸뚱이는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순간 왼쪽 어깻죽지에서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다.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던 멧돼지와 부딪쳐 어깨가 부러졌던 것이다.
 하지만 야생멧돼지는 그 정도에서 멈출 기세가 없는 듯했다.
 “으악······!”
 자신이 상대할 수 없음을 느낀 장생은 있는 힘을 쥐어짜 내달리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었다.
 아무리 애를 쓰고 죽이려 해도 야생멧돼지는 보통 사람이 죽일 수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거기에 이번 야생멧돼지는 덩치가 매우 큰 놈이었다.
 몸짓만 거대할 뿐 아니라 속도도 매우 빨랐다.
 “하악! 하아!”
 달렸다.
 살고 싶어서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장생은 달렸다.
 호흡이 끊어질 듯 가슴을 때렸지만, 야생멧돼지를 뿌리치고자 이를 악물고 도망쳤다.
 장생이 한참을 달려 사람 키만한 큰 바위 위로 올라섰을 때 비로소 야생멧돼지의 움직임이 멈췄다.
 장생은 동작을 멈추고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쳐다보았다.
 산행에서 늘 그랬듯 야생멧돼지는 소리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제격이었다.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면 멧돼지는 송곳니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것을 장생은 알고 있었다.
 ‘살았구나. 살았어.’
 야생멧돼지가 서서히 장생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났다.
 기쁨의 미소와 살았다는 미소가 얼굴에 함께 그려졌다. 왼쪽 어깨를 다치긴 했지만 보란 듯이 저런 사나운 멧돼지에게서 살아난 것이다.
 그러던 그의 기쁜 얼굴에서 누군가의 환청이 크게 들렸다.
 
 “고마워요. 날 팔아줘서······.”
 ‘······?’
 “···결국, 결국 그렇군요. 오라버니도 사람이니 제가 뭐라고 그러면 안 되는 거죠. 휴··· 잘됐네요. 이제라도 제 맘을 잡을 수 있게 돼서, 그동안 맘이 너무 아팠는데 다행이에요. 저도 좋은 사람 생긴 거니 고마워요. 이렇게 날 팔아줘서······.”
 
 ‘팔아?’
 웃고 있던 장생의 얼굴에 서서히 핏줄이 그어지며 이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무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객점에서 자신을 팔려고 온 장생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쳐다보던 유난이의 초점 없는 얼굴이었다.
 그런 장생에게 또다시 추무설의 질책 섞인 호통이 이어졌다.
 
 “천하의 기재라고 칭송받던 자가 그 정도였다. 천재라 불리는 그가 그런 사부 밑에서 그 정도였단 말이다. 내 기억으론 그 외에는 없다. 천하를 통틀어도 너와 같은 조건으로 시작한 고수들은 없다. 그만한 악조건으로 강해지는 것은 전무하다는 뜻이다.”
 “······.”
 “날이 밝으면 이곳 갈대숲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라. 좀 전에 확인해 보니 여기 가까운 마을이 보이더군. 몇 리만 내려가면 될 것이야. 그곳에서 다른 삶을 살도록 해라.”
 
 장생은 멍한 눈으로 자신이 다친 왼쪽 손을 쳐다보고 읊조렸다.
 나보고 가라고?
 어디로······.
 눈앞에서 동생을 판 자가··· 평생을 구걸로 살아간 자가 어디로······?
 “이봐······.”
 잔잔한 음성이 장생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멧돼지를 부르고 있었다.
 “이봐··· 어디 가는 거야······?”
 가슴속의 울분이 한꺼번에 벅차올라 자신의 목구멍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분노의 일갈을 다시 한번 내질렀다.
 “가지 마아아아아!”
 산이 꺼질 정도의 굉음······.
 새벽이라 그런지 그 소리가 지축을 흔들고 산을 무너트릴 정도로 컸다.
 과연 사람의 목에서 나온 것이 맞나 싶을 정도의 엄청난 사자후!
 그의 눈은 이미 도망치던 그 눈빛이 아니었다.
 “하하··· 어디 가려고 그래······? 하하하··· 네가, 네가 가면··· 내가 갈 곳이··· 갈 곳이 없잖아!”
 장생은 자꾸 영문 모를 말들을 내뱉었다.
 목표물을 잃어버려 성이 잔뜩 나 있는 야생멧돼지는 매서운 눈빛과 함께 송곳니를 다시 돌렸다.
 츄루루룩 츄루루룩······.
 바바바박!
 화를 이길 수 없었던지 야생멧돼지는 맹렬한 속도로 장생을 향해 짓쳐들어왔다. 이전과 달리 장생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고개가 반쯤 꺾인 채 달려드는 야생멧돼지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머릿속으로 또다시 추무설의 환청이 들려왔다.
 
 “혹여 기습을 당할 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흔히 보법이라고 부르는 초식의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이다. 이것 또한 심법의 영향을 받지.”
 “혹시 아까 말씀하신 하단전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우리 구음진경의 보법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반영미보(般影迷步), 신영마보(神影魔步), 극음회보(劇陰回步), 유운보(流雲步)까지. 기본은 반영미보이되 극성은 유운보이다.”
 “그럼 하단전은 어떤 곳입니까?”
 “혈로 표현하자면 임맥에 있는 기해혈(氣海穴), 관원혈(關元穴)의 중간에서 임맥의 반대에 있는 명문혈(命門穴)을 잇고, 좌우에 있는 충맥(衝脈)과 대맥(帶脈)을 곡선으로 이어 앞의 혈과 마주치는 중심을 전(田)자로 표현해 단전이라고 한다. 이해가 어렵겠구나. 간단히 말하면 배꼽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대면 세 번째 마디 끝 부분에 위치한다.”
 “시전 방법은 어떻게 됩니까?”
 “밑도 끝도 없이 물어보는구나. 지금은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알아두기만 하여라. 이 무공은 호흡할 때의 원기(原氣)와 자신이 축적한 내공을 통해 기를 단전에 강하게 가두어 둔 후 행공시켜 발현하는 것이다.”
 
 평소에 물어봤을 때 몇 번을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던 말들이 그동안의 한을 풀 듯 미친 듯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또한 죽은 동생의 목소리까지 겹쳐 떠오르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느리잖아?’
 멧돼지가 눈앞에 선명히 들어왔을 때 장생은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빈 공터에 그어지고 장생은 우측으로 몸을 이동한 채 멧돼지를 주시했다.
 ‘하단전··· 하단전.’
 영문 모를 외침······.
 순간 방향을 제대로 잡은 멧돼지가 장생에게 다시 덤벼들었다.
 츄루룩 츄루루루······.
 장생이 피한 자리에는 큰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멧돼지는 그 나무를 들이받고 어지러운지 잠시 방향을 잡지 못하였다.
 장생은 오른손에 걸린 나뭇가지를 낚아챘다. 끝이 날카롭고 튼튼한 것이 무기로 쓸 만했다. 장생의 눈은 살기로 번뜩였다.
 ‘첫발을 내딛고 둘째 발을 살며시 뺀다. 공격이 들어오는 방향이 앞이라면 옆을 친다. 공격이 옆이라면 뒤로 피한다. 검은 긋는다. 아니, 찌른다. 그리고 담근다.’
 어디서 들어보지 못한 말.
 그것은 옛날 저잣거리의 장한들에게 재수 없게 생겼다며 맞을 때 듣던 말들이었다.
 지독히 터지고 맞으면서 장생은 몇 번이고 생각했다.
 만약 내게 힘이 있다면 당하지 않을 것이다.
 바보같이 이렇게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게 힘이 있다면, 내게 작은 힘이라도 생긴다면, 만약 내가 고수라면······.
 꿈꿨던 염원을 되뇌듯이 실전에서 이렇게 혼자서 읊조릴지는 자신 또한 모르고 있었다.
 또다시 멧돼지가 자신에게로 쏘아졌다.
 보법을 이용한 좌우비공법은 어느새 체내 속의 호흡법에 녹아들어 있는 상태. 장생은 그것을 넘어 지금 하단전을 이용한 축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탁한 축기라 피하는 것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어느 기운보다 강했다.
 스스스스슥······!
 츄웩······! 췌웩······!
 울부짖던 멧돼지의 송곳니가 간발의 차로 허공을 갈랐다. 좀 전처럼 그냥 가른 것이 아닌, 닿았다고 여겨질 때 살짝 스쳐 땅으로 내동댕이쳐졌다고 여길 정도로 멧돼지가 고꾸라졌다.
 화를 주체하지 못한 듯 강한 콧김을 내뿜으며 이내 다시 방향을 틀어 장생에게 향했다.
 ‘그래. 나는 할 수 있다.’

댓글(1)

물러    
동생을 팔아서 받는돈으로 동생을 산놈을 죽이는 청부를 하겠다는건 무슨 빙신같은 생각인지 어이 없네
2022.03.17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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