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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한의사는 연금술을 씁니다

제 1화 공보한의사 박희재

2021.04.15 조회 115,884 추천 1,804


 강원도의 한 깊은 산골.
 
 “한의사 양반, 이거는 석이고, 이거는 단삼. 줄기랑 꽃까지 보는 건 처음이지?”
 “그건 그렇죠. 단삼은 말린 뿌리만 약재로 쓰니까요. 사장님, 이건 뭐예요?”
 “그거는 속수자.”
 “씨만 써서 이렇게 보니까 전혀 모르겠네요.”
 “그렇지. 모르는 사람은 산에서 보고도 그냥 지나가. 하긴 그게 좋지. 속수자는 독성이 있으니까.”
 
 심마니들이 산에서 채집해 가져온 약초들을 넋 놓고 보고 있는 이 젊은 남자의 이름은 박희재.
 한의대를 졸업하고 공보한의사로 이 지방에서 벌써 반년을 보내고 있었다.
 평일에는 보건소를 찾아온 환자들을 진료하고, 쉬는 날만 되면 이렇게 약초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법제된 약재로만 접하는 것과 산에서 막 채집해 온 생물을 보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어떤 것은 열매만, 또 어떤 것은 뿌리만 약재로 쓰고, 독성을 제거하는 법제라는 과정을 거치니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희재에게 그것들은 젊은 남자라면 관심이 많을 자동차나 여자에 관한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것이었다.
 
 “한의사 선생, 우리야 팔면 좋은데 이렇게 자주 와서 사면 돈도 돈이고······. 왜? 나라에서 약재를 안 주나?”
 “여까지 와서 약초를 사는 거 보면 모르나? 젊은 선생이 오죽 답답했으면 자기 돈으로 사러 왔겠어?”
 
 심마니들은 희재가 약초를 사러 온 까닭에 대한 자신만의 추측들을 내놓았다.
 
 “그런 거 아니고요. 개인적으로 연구하는 게 있어서요. 나라에서 주는 걸 개인적으로 쓰면 안 되잖아요.”
 “그거야 그렇지.”
 
 이유야 어쨌든 간에 약초를 팔 수 있으면 심마니들로선 좋은 거다.
 희재가 이것저것 약초들을 사는 중에 몇 가구 안 사는 이 산골 마을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어린 소녀 하나가 땀범벅이 되어서는 울면서 마당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저씨! 우리 할머니 좀 살려주세요!”
 
 쌕쌕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소녀의 곁으로 심마니들과 희재가 다가갔다.
 
 “안골 할매 손녀, 소율이 아니가? 무슨 일이 있나? 팔십 넘은 할매한테 무슨 일 있으면 안 되는데······.”
 “할머니가······ 할머니가 쓰러지셨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심마니들의 시선이 희재에게로 향했다.
 
 * * *
 
 희재는 소녀의 집으로 달려가며 119에 전화부터 걸었다.
 
 “사장님, 그 집 주소가 어떻게 돼요?”
 
 희재는 약초꾼에게 물어서 119 상황실에 주소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환자에 관한 정보를 전했다.
 
 “80대 초반 여자. 쓰러졌다고 합니다. 지금 그 집으로 가는 중인데 환자 보고 상세한 상태를 알려드릴게요. 끊지 마세요.”
 
 희재는 다른 심마니들을 쫓아 소녀의 집으로 향했다.
 몇 백 미터를 쉼 없이 달린 덕분에 희재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소녀의 집 마당으로 들어가자마자 마루에 쓰러져 있는 할머니 한 분이 희재의 시선 안으로 들어왔다.
 
 ‘중풍이다.’
 
 한번 본 것만으로 희재는 환자의 병증을 알아보았다.
 3대째 한의사인 집안이다.
 아버지의 한의원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항상 장래 희망은 한의사 하나뿐이었다.
 아버지의 한의원을 찾는 수많은 중풍 환자들을 봐 왔었고, 눈앞에서 쓰러진 사람을 본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러니 개원한 적은 없어도 희재에게 이 정도를 알아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병증을 알아보는 것과 치료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증상을 알아볼 능력은 있어도 중풍을 치료해 본 경험은 없기 때문이다.
 기댈 것이라곤 어릴 적부터 보아온 아버지의 진료와 대학에서 배운 이론뿐이었다.
 
 희재는 서둘러 환자를 살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호흡을 확보하는 것. 식사 중에 쓰러진 모양인지 외상은 없었으나 입안에 음식물이 남아있었다.
 희재는 손으로 할머니의 입안에 있는 씹다 만 음식물을 긁어내고, 바로 눕혀 호흡에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했다.
 자가 호흡이 되는 상황이지만 상태가 어떻게 변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희재는 맥을 짚었다.
 그의 지식이 판단할 수 있는 한 이건 중풍이 확실했다.
 
 “여보세요? 환자는 뇌졸중으로 판단되고, 왼쪽 팔다리가 마비되었습니다. 아직 의식이 없습니다. 발견 당시에 자가 호흡을 하고 있었고, 지금은 기도를 확보해서 호흡을 유지하고는 있습니다.”
 [의사십니까?]
 
 한 마디뿐이지만 상황실 근무자의 목소리에는 어떤 기대감 같은 것이 깃들어 있었다.
 거리도 거리고, 첩첩산중의 오지마을인지라 차로 가는 것도 멀고, 헬기 이송은 환자의 3대가 덕을 쌓아도 될까 말까 한 일이다.
 구급차 타고 가다가 노상에서 돌아가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데 만약 의사가 환자 곁에 있다면 환자가 병원으로 살아서 올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희재는 상대방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가 없었다.
 
 “한의사입니다. 이 지역 보건소 공중보건한의사로 근무 중입니다.”
 
 한의사라는 대답에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아마도 실망했을 것이다. 희재도 안다. 이런 응급 상황에서 한의사는 의사에 비하면 대접받지 못한다.
 솔직히 의사라고 해도 자기 분야가 아니면 이런 응급환자를 어떻게 할 것이며, 면허에 잉크도 안 마른 인턴이라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희재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눈앞의 환자를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호흡은 어떻게든 유지시켜 보겠습니다. 언제 오실 수 있습니까? 환자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이번엔 상대방이 희재의 기대를 져 버렸다.
 
 [선생님, 40분 정도 예상됩니다.]
 “너무 늦습니다. 빨리 이송해서 치료해야 후유증이······. 상태가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속도로 터널 안에서 6중 추돌에 화재까지 발생해서 모든 구급 차량이 출동했습니다. 헬기도 이미 TO가 안 납니다. 구급차도 아마 다른 권역에서 출동해야 하는데 아무리 빨라도 40분은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러면 호흡만 유지해서 대기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와주십시오. 이 번호로 다시 연락 주십시오.”
 
 빨리 119에 연락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출동이 늦어진다는 말이 희재를 맥 빠지게 했다.
 자가용으로 옮길 수도 있겠지만 구급 장비 없이는 위급 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
 
 * * *
 
 ‘지금 환자의 상태만 유지할 수 있어도 돼. 3시간 안에만 병원에 갈 수 있으면 병원에서 혈전용해제를 쓰든 수술이든 할 수 있을 거야.’
 
 희재는 한의사지만 한의사라고 해서 서양의학에 대해 모르는 건 아니다. 예과에서 기초의학을 배우기도 하고, 응급처치 같은 교육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으로 이송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의식이 없다는 문제가 있지만 스스로 호흡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상태가 더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뇌졸중의 골든타임이라는 3시간을 넘기지 않고 병원에 갈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에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해 왔다.
 전화를 끊자마자 환자의 입이 돌아가고, 동공의 반응은 없는데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환자의 상태가 나빠진 건 다른 사람들도 바로 알아보았다.
 
 “이대로 놔두면 안골 할매 세상 베리겠네. 선생님, 좀 어떻게 해주면 안 되나?”
 “의사 선생님, 우리 할머니 좀 살려주세요.”
 
 어린 소율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희재에게 울며불며 매달리는 것뿐이었다.
 결과가 좋다는 보장은 없다. 환자를 진료하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 원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지만 희재는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며 의술을 펼칠 각오가 서 있었다.
 자신만 보고 있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스스로에게 물러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희재는 울며 매달리는 소율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이름이 소율이랬지?”
 
 소녀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이 아저씨가 하는 말, 잘 들어. 묻는 말에 잘 대답해줘야 해. 아저씨는 한의산데 아저씨를 잘 도와주면 할머니를 살릴 수 있어. 알았지?”
 
 다시 소율이 고개를 끄덕이자 희재가 물었다.
 
 “할머니가 어떻게 쓰러지셨어?”
 “밥 먹다가 갑자기 숟가락을 떨어뜨리면서 옆으로 쓰러지셨어요.”
 “원래 잘 걸어 다니셨지?”
 “네.”
 “할머니가 쓰러지시기 전에 이상한 일 없었어?”
 “아침부터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고 하셨어요. 고혈압 때문에 자주 그러셨어요.
 
 소율은 할머니가 복용하는 약들을 가지고 왔다.
 
 “한 달에 한 번씩 보건소 가셔서 타오는 약이에요. 혈압약이랬어요.”
 
 이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건 알았다.
 
 * * *
 
 ‘살려야 한다. 어떻게든 살려낼 거다.’
 
 희재는 결심이 서자마자 옆으로 매는 작은 가방 안에서 침구를 꺼냈다.
 희재는 아버지가 위독한 중풍 환자를 어떻게 치료했는지 기억해내고, 대학에서 배운 것들을 떠올렸다. 거짓말처럼 장면 장면들이 머릿속에 파박! 하고 떠오른 것이다.
 그의 손놀림은 빠르고 정교했다.
 알코올 솜으로 소독을 하고 몇 곳의 혈자리에 자침하더니 인중에 자침하자 기적이 일어났다.
 줄곧 감겨 있던 눈이 스르르 뜨인 것이다.
 하지만 의식을 회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긴급한 상황이 종료된 건 아니라는 얘기다.
 멀미약을 붙이던 귀밑에 그 자리. 바로 예풍혈이다.
 그는 환자의 예풍혈을 사혈 했다. 좀 더 시커멓고, 점도가 높은 피가 흘러나왔다.
 눈빛이 맑아졌으나 희재의 손은 쉼 없이 움직였다.
 가끔 사람들은 다급한 순간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곤 한다. 지금의 희재도 그런 경우라고 할 것이다.
 이랬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게 자침을 했다.
 백회, 곡빈, 견우, 곡지, 풍시, 현종, 족삼리.
 한방에서 말하는 중풍칠처혈(中風七處穴)이 바로 이 일곱 자리의 혈자리다.
 그가 침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러자 돌아간 입이 제자리를 찾아오고, 의식도 돌아왔다.
 
 “팔에 쥐가 난다.”
 
 깨어나자마자 어렵게 말문이 열렸는데 할머니가 처음 한 말이었다.
 팔에 쥐가 난다고 느끼는 건 마비가 풀리고 있다는 의미였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이 상황에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아~! 명의네, 명의! 어떻게 젊은 양반이 이렇게 고명한 의술을 가지고 있었어?”
 “그 뭐, 어디 보건소라고?”
 
 일반인들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 병원 문턱에도 못 가고 죽거나 병원에 가도 반신불수에 누워만 있다가 죽는 줄 아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도 골든타임을 넘기면 살아도 후유증이 남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병원에 도착해도 깨어나지도 못하고 테이블 데스로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고, 살아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시는 분들······ 주위에 간혹 있다. 가슴 아프게······.
 그런데 이 할머니를 침 몇 방으로 의식까지 되돌려 놓았으니 감탄할 수밖에······.
 
 “할머니, 정신이 좀 드십니까?”
 “여가 어딘고?”
 
 심마니 한 사람이 안타까운 듯 말했다.
 
 “할매 집이지 어딥니까? 아직 할매 제정신이 아니네. 할매 손녀는 알아보겠습니까?”
 “우리 소율이······.”
 
 소율이는 할머니를 안고 펑펑 울어댔다.
 
 * * *
 
 구급차가 도착했다.
 
 “환자는 어디 있습니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구급대원이 물었다. 그의 눈에는 환자라고 할 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가 신고자입니다.”
 
 희재가 나서자 구급대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환자 어디 있습니까?”
 “여기 이분입니다. 소율아, 할머니 연세랑 성함 알려드려.”
 “김점이, 83세.”
 
 뭔가 더 말을 하려는데 할머니가 소율의 말을 끊었다.
 할머니는 구급대원을 보며 연신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며 말했다.
 
 “나 때문에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러자 구급대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옷에 피가 많이 묻었는데······ 상처 좀 볼 게요.”
 
 뇌졸중은 쓰러지며 외상을 입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구급대원은 출혈이 시작된 부위를 찾았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대원이 스트레쳐카를 꺼내 이송 준비를 했다.
 
 “여기 이 한의사 선생이 이 할매를 살렸어요.”
 “침 몇 방 놓자마자 돌아간 입이 제 자리를 찾아오고 눈을 번쩍 뜨는데······. 이야~! 명의도 이런 명의가 대한민국에 또 어디 있겠어요?”
 
 할머니의 외상을 살피던 구급대원은 심마니 아저씨들의 말을 듣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칭찬 세례를 받고 있는데도 희재는 침착한 얼굴로 구급대원에게 말했다.
 
 “응급처치를 했을 뿐이고, 다시 증상이 발현될 수 있습니다. 어서 이송해 주세요.”
 “예, 동승하시겠습니까?”
 
 구급대원의 말에 희재는 소율을 보며 대답했다.
 
 “동승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소율은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 지금 당장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희재뿐이었다.
 소율에게 희재야말로 할머니를 지켜줄 영웅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댓글(65)

g2**************    
잘보고갑니다
2021.04.16 12:30
bluepe    
정보:현대 기술로 금을 인위적으로 만드는게 가능하다 다만 수지탄산이 안 맞을뿐
2021.04.19 00:16
착한참견    
한의치약수지 ㄹㅇㅋㅋ
2021.04.19 12:36
모카우유    
느낌이 좋은 작품이네요
2021.04.22 17:40
난의향기    
감상 잘하고 감니다.
2021.04.24 13:25
수박맛    
시작이 좋네요. 건필하세요
2021.04.24 17:03
일월화수목    
아 이거 재미있을거 같은데....
2021.04.25 05:54
풍뢰전사    
건투를
2021.04.26 14:37
wonsa    
시작이 진짜 좋은데요 좋아요 일단 몇편 없지만 읽어보자구요 레츠 기릿~
2021.04.28 10:12
musado0105    
잘 보고 갑니다. 건 필하세요^^*
2021.04.29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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