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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내가 누구? "29세 편의점 오너"

2021.05.12 조회 75,009 추천 1,786


 서울 한복판에 있는 별 특색 없는 편의점. 25평의 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냥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영진아."
 “예. 사장님.”
 “사장님은 무슨, 형이라고 부르랬지.”
 “···하하. 네. 형. 무슨 일이세요.”
 
 그 곳에서 3년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나. 피끓는 청춘 이영진은 사장님의 부름에 쪼르르 달려갔다.
 
 “교대 시간도 아닌데, 무슨 일이세요?”
 “그 잠깐 문 좀 걸어 잠그고, 안 쪽 사무실로 좀 와봐.”
 
 명령을 충실히 이행해 사무로 찾아가자, 형은 의자에 앉아 나를 올려봤다.
 
 “문 잠그고 왔어요. 형.”
 “그래. 손님들 오면 이야기하기 까다로우니까···. 아무튼 영진이 너 올해 몇 살이지?”
 “······만으로 스물 아홉입니다.”
 “새끼. 이 악물고 서른 아니라고 하는 거 봐.”
 “아 왜요. 스물 아홉이에요. 아홉수라 심란한데 속 긁으면 좋습니까?”
 “그래. 알았다. 아무튼, 영진이 너 다음달 이면 3년 채우나?”
 “네.”
 “오래도 했다. 야.”
 “형 덕분이죠. 뭐.”
 
 나는 흔히 말하는 고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오백 만원을 들고 서울로 나왔고, 보증 이백에 월세 삼십의 원룸을 잡은 뒤 닥치는 대로 일했다.
 
 안 해본 일이 없다고 자신한다.
 그리고 스물 여섯의 나이에 디스크가 터져서 겨우겨우 돌고 돌아 정착한 곳이 편의점이다.
 
 편의점은 내 마음의 고향이요. 오아시스다.
 일 나오라고 갈구는 조장도 없고, 상하차 하면서 허리 안 빠개져도 되고, 술 먹자고 눈치 주는 기공도 없다.
 그냥 아침에 나와서 청소하고 진열하고 접객하고 일하다가 교대시간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
 
 이것이야 말로 안빈낙도, 유유자적 아니겠는가.
 열심히 일했고, 사장님도 나보다 몇 살 위의 동네 형 느낌이라 진짜 편했다.
 
 “···흠.”
 “왜 그래요?”
 “아니.”
 
 사장 형은 나를 빤히 보다가 짐짓 어려운 결정을 했다는 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영진이 너는 꿈 없냐?”
 “꿈이요? 오늘 폐기로 명란마요삼각 나오는 거요.”
 “······아니 그런 거 말고. 하.”
 
 사장 형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 형 왜이래? 머리 안 감았나?
 
 “3년간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고, 접객 잘 하고, 진상 대처 잘 하고, 포스기 실수 낸 적 없고, 청소 잘 하고. 진열 깔끔하게 하고, 배달앱 주문 오면 즉시즉시 준비하고···.”
 “하, 우리 동네 편돌이 에이스죠. 저 같은 인재 어디 없습니다.”
 “술 먹고 알바 늦은 적도 없고 ···아직도 그 게임 하고 있냐?”
 “D/Z SAGA요? 네. 아직도 죽을 만큼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운 루트 하나 찾아보려고요.”
 “···그래. 취미도 좆망겜 하나 잡고 평생 파고 드는 거고.”
 “어허. 나쁜 말 안 돼, 안 돼.”
 “······.”
 
 뭘 그렇게 보십니까.
 그렇게 개쓰레기 게임은 아닙니다.
 쓰레기 게임이긴 한데. 아무튼. 사람이 만 시간쯤 한 게임이면 그 인정해 줄 수도 있지 않나?
 
 “아무튼 그래서 형이 좀 고민이다.”
 “뭐가요?”
 “형 이번에 호주 간다.”
 “············? 자주 가잖아요.”
 “아니 그게 아니라.”
 
 고개를 갸웃했다. 호주? 왜? 또 멜버른에 스키 타러?
 놀러 가는 거면야 내가 두 타임 뛰고 말지.
 ···아니.
 분위기가 이상하다.
 생각해보면 갑자기 불러서 이런 말도 안 했겠지.
 
 “어, 간다는 게···.”
 “이민. 완전히 간다.”
 “아.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렸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알바 인생은, 사장의 사정에 의해 바뀌는 거니까 ···3년이나 했으면 오래 한 거지.
 
 “형이 웬만하면 다 정리하고 가려고 하는데 ···네가 좀 걸리더라.”
 “왜요. 저 알아서 잘 살 자신 있습니다. 한두 달 정도 형이 말한 그 좆망겜 계속 하다가 다른 알바 구하면 되죠 뭐.”
 “······아니 그게 아니라 영진아.”
 “예. 형.”
 “너, 이 편의점 인수 할 생각 있냐?”
 “······예?”
 
 이건 진짜 예상 못 했다.
 뭐지 개꿀잼 몰카인가.
 
 “이 동네에 네 얼굴 보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고, 편의점 매출 대충 때리면 너 혼자 먹고 살 정도는 충분히 나오는 거 알잖아?”
 “···알죠. 알짜는 아니더라도 알바 둘 써도 이윤 남잖아요.”
 “그래. 그래서 인수하라는 거야. 형이 최대한 싸게 넘겨줄게.”
 “···갑자기 왜요? 혹시 이민이 아니라 도주에요?”
 “팍 씨. 나가 새끼야.”
 “죄송합니다. 사장님.”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고 슬쩍 웃었다.
 
 “···마. 형 돈 그렇게 없는 사람 아니다. 이번에 호주 가면 진짜 한 이십 년은 못 돌아와. 그래서 이것저것 정리하는데, 여기 정리하려니까 유독 네가 눈에 밟히더라.”
 “왜 밟고 그러세요.”
 “그래서 안 받게?”
 “즈려 밟고 가셔야지.”
 “새끼. 끝까지 말본새하고는, 아무튼. 형이 최대한 권리금 맞춰줄테니까, 네가 한 번 해봐라.”
 “···제가, 사장을요?”
 “왜 못 하겠냐? 쫄려? 천하의 성북동 편돌마스터 이영진 후달리는 사나이였냐?”
 “···하, 뭘로 보시고. 알겠습니다. 사장 하죠. 뭐. 형도 멜버른에서 스키 타다가 심심하면 배민시키세요. 바로 쏩니다.”
 “···하 새끼.”
 
 형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얼굴을 가리고 킥킥 웃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
 
 처음에는 빚덩이겠지만, 형이 말한 양도금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지금까지 모은 돈과 거의 일치했다.
 압도적으로 싼 가격이었고 아마도 내 배려를 해준 거다.
 
 “···하. 이영진이가 편돌이에서 매니저도 아니고 사장님이네.”
 “요새 편의점에 매니저가 어딨냐.”
 “하, 아무튼요. ···하하.”
 “우냐?”
 “아닙니다. 사나이 이영진 불타는 가슴 흘릴 눈물도 증발시킬 열기···.”
 “······.”
 “잠깐 나갔다 올게요.”
 “그래라.”
 
 가계약서를 쓰고 부푼 마음에 밖으로 나왔다. 진통제가 없으면 버틸 수 없는 허리를 가볍게 펴고, 하늘을 바라봤다.
 
 내 흐르는 눈물을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힙합을 추며. 그렇게 길거리를 걸었다.
 
 그리고
 
 끼이이이익!
 
 쾅!
 
 “꺽!?”
 
 눈 앞이 흐릿해진다. 몸이 붕 날고, 형언할 수 없는 통증과 부유감이 나를 지배한다.
 
 퉁!
 
 머리부터 떨어진 몸이, 그대로 한 번 더 튕겼고, 철푸덕. 바닥에 처박았다.
 
 흐릿해지는 시야는, 나를 치고 간 게 뭔지 필사적으로 잡았다.
 
 그리고.
 
 “씨···발.”
 
 불타는 청춘 만 29세 이영진
 아홉수를 맞이하여 우리 편의점 납품 트럭에 치여 죽었다.

댓글(184)

코드명000    
신작 연재 반갑습니다 전 연재분이 더 쌓이면 그때 힘내시고 건필하세요
2021.05.12 10:34
로제단장    
어제 쪽지 받고 왔습니다 전 편의점 소시지 좋아합니다.
2021.05.12 12:16
sp*********    
납품차량이 편의점앞에서 과속에 급정거를 해??
2021.05.12 12:37
Bilene    
납품차량이라니 너무 잔인한데;;
2021.05.12 16:49
한바라    
막줄 ㅋㅋㅋㅋㅋㅋㅋ
2021.05.12 22:32
ZAXA    
감동적인 전개여서 인수하고 편의점채로 이세계가는 훈훈한 전개인줄 알았더니 그냥 트럭으로 보내버리네
2021.05.13 00:41
관요    
하필 자기네 납품트럭
2021.05.13 08:01
리그베다    
납품트럭 운전사가 혹시 졸음 운전한건가요? 아님 주인공이 사각에 있었나?너무 잔인한거 아니예요. 이 좋은 날에 하필 다른차도 아니고 납품 차량으로..진짜 자고 일어났더니 편의점채로 주인공과 넘어가는 얘기인줄 알았는데..
2021.05.13 12:36
규뀨꺄갸    
아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1.05.13 21:35
나도밤나무    
아니 이럴수가 .... 주고 뺏다니 연락받고 왔습니다.
2021.05.14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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