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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021.05.13 조회 405 추천 5


 프롤로그
 
 
 
 프리실라 대륙의 어느 곳.
 신비로운 빛을 뿜어내는 원탁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다.
 평소라면 결코 한자리에 모일 수 없는 이들.
 말 한마디로 프리실라 대륙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절대자들이었다.
 대륙의 패권을 장악한 아스트란 제국의 황제와 그에게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쿠스코 제국의 황제가 마주 보고 있다.
 역사상 최강의 백마법사라는 룬데스와 최악의 흑마법사 칼리.
 사령술사 아르셀로와 대정령사 코모스.
 용병왕 마센과 기사왕이라는 칭호를 받은 아이반이 서로를 살폈다.
 여기에 더해 성황 구르프가 조용히 눈을 감고 성언을 읊조리고 있다.
 한자리에 모였다는 자체로 놀라울 만한 사람들이 한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
 프리실라 대륙에 단 하나뿐인 성녀 아스카였다.
 아스카가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아직 결정하지 못했나요?”
 “성녀는 그 방법뿐이라 생각하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구원자가 필요하니까요.”
 “파괴자가 될 수도 있소.”
 “어쩔 수 없잖아요. 우리에게는 남은 방법이 없어요.”
 그녀의 대답에 쿠스코 제국의 황제가 다른 의견을 냈다.
 “우리가 다른 구원자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 여기 모인 우리라면 대륙 전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우리가 힘을 모은다면 역사상 최초로 대륙 전체의 힘이 모이는 셈이야.”
 “당연히 힘을 모아 대비하는 일도 병행해야죠. 여러분이 힘을 모은다면 분명 대단한 위업을 달성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상대는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잠시 시간을 끄는 정도에 불과하죠.”
 “그렇다고 성녀의 방법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 것 아닌가?”
 “저 역시 그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건 알고 있어요. 어쩌면 헛되고 쓸모없는 소망일 수 있겠죠. 그렇더라도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해요.”
 성녀의 말에 흑마법사 칼리가 히죽거리며 찬성했다.
 “좋아, 좋아. 나는 무조건 찬성이야. 지금 같은 때가 아니면 언제 인류를 구원하는 일에 동참해 보겠어?”
 칼리의 말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사악한 흑마법사 따위도 하겠다는데 내가 빠질 수 없지.”
 “나 역시 성녀의 말대로 하겠소.”
 “질 것 뻔한 도박이 유일한 희망이라······. 기분 더럽지만 어쩔 수 없군.”
 내키지 않는 만장일치에 성녀가 선언하듯 말했다.
 “지금부터 의식을 시작합니다.”
 그녀의 말과 함께 원탁에서 폭발하듯 빛이 뿜어졌다.
 
 
 
 
 
 제1화 이계와의 조우 (1)
 
 
 
 정신 병동의 로비에서 지오가 귀를 틀어막으며 고함을 질렀다.
 “제······발, 나 좀 내버려 둬! 제발 다른 곳으로 가 버려!”
 그의 고함에 다른 환자들이 힐끔거리며 거리를 벌렸다. 시끄럽다며 인상을 쓰는 이도 있었다.
 간호사와 보호사 2명이 달려왔다.
 “한지오 님, 또 소리가 들려요?”
 “제발······ 좀 멈춰 줘요! 저 소리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지오는 여전히 진정하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 광경에 간호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뒤에 서 있는 보호사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보호사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양쪽에서 지오의 팔을 붙잡았다.
 두 보호사가 발버둥 치는 지오를 끌고 안정실로 향했다.
 안정실은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격리 조치할 때 사용하는 독방이다.
 안정실로 끌려 들어간 지오는 팔과 다리가 결박되었다.
 보호사들이 팔과 다리를 결박하는 동안에도 지오는 쉴 새 없이 고함을 질렀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보호사들이 해 줄 일은 없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진정하기를 바랄 뿐이다.
 지오의 결박이 끝나자 주사를 준비한 간호사가 들어왔다.
 “한지오 님, 환청 때문에 너무 흥분하신 것 같아요. 지금도 계속 들리세요?”
 “예, 들려요! 전에는 소리만 들렸는데, 이제 모습까지 보여요!”
 “뭐라고 하는데요?”
 “자기들을 구해 달래요. 저에게 귀신이 붙었나 봐요. 제발! 살려 주세요! 이렇게는 도무지 살 수 없어요.”
 지오가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나 간호사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해 줄 수 있는 건 의사의 처방대로 진정제를 놔 주는 것뿐이다.
 “한지오 님도 환청이 사실이 아니라는 거 알잖아요. 그러니까 절대 환청에 지면 안 돼요. 우선 주사 하나 놔 드릴게요. 주사 맞고 나면 조금 진정이 될 거예요.”
 간호사가 말을 하며 보호사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두 보호사는 지오가 몸부림을 치지 못하도록 몸을 붙잡았다.
 한 명은 주사를 맞을 수 있도록 바지를 조금 끌어내렸다.
 “조금 아플 거예요.”
 간호사가 지오에게 경고를 했다.
 하지만 지오는 귓가를 울리는 소리 때문에 주사를 놓든 말든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지금 너무 흥분한 데다 자해 위험이 있어서 일단 안정실로 모셔서 묶었어요. 있다가 흥분 가라앉고 진정되면 풀어 드릴게요.”
 그 말을 남기고 간호사는 보호사들과 함께 안정실에서 나갔다.
 그러나 정작 안정실에 남아 있는 지오는 전혀 안정을 찾지 못했다. 귀에 들리는 소리는 여전했고, 눈앞에 희미하게 사람의 모습까지 보였다.
 게다가 그 소리와 환상을 꼼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보고 듣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큰 공포를 안겨 주었다.
 지오가 처음부터 정신병원 환자였던 건 아니다.
 남들과 다를 것 없이 평범한 일반인.
 아버지는 대기업의 중견 간부고, 어머니는 가정주부다. 저 잘난 줄 아는 남동생이 하나가 있고, 시집간 누나도 있다.
 지오의 인생도 그리 특별한 이야깃거리 없이 평범했다.
 남중, 남고 출신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인생에 대한 불만도 없었다. 성적도 나쁜 편은 아니라서 대학도 소위 In서울을 다니고 있다.
 대학 다니다 영장을 받고 입대해 무탈하게 군 생활 하다가 병장으로 만기 전역.
 그 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복학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남들에게 내보일 건 없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울 것도 없는 평범하고 무난한 삶이었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도 평범하고 무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복학하고 학점 신경 쓰다가 졸업.
 대학 졸업 이후에는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큰 욕심 없이 적당히 무난한 직장에 들어가고.
 절세의 미녀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그저 적당히 못나지 않은 여자와 연애도 하고.
 그러다가 결혼해서 자녀도 낳아 키우고.
 크고 거창한 꿈을 가진 것도 아니고, 엄청난 인생 설계를 하지도 않았다.
 특별한 재능이나 재주도 없다.
 무협, 판타지 소설을 좋아해서 판타지 작가가 되겠노라 소설을 연재했던 적이 있기는 하다.
 문제는 재능이 의욕에 비례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거다.
 의욕은 우수한 필력을 드러내며 화려하게 주목받고 싶었지만, 지오의 필력은 우스웠다. 그래도 일찌감치 주제 파악을 하고 독자로 만족했다.
 이때가 지오의 일생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범상치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 외에는 그냥저냥 평범하게 지냈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준비하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부모님이 학비를 대 주더라도 용돈은 스스로 벌어 쓰자는 나름 기특한 생각을 한 거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잡는 건 쉽지 않았지만, 크게 조건을 따지지 않았던 덕분에 카페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때만 해도 지오에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줄 알았다.
 낯선 소리가 지오를 괴롭히기 전까지는······.
 처음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아무도 없는 골목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고, 자기만 집에 있는데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지오도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경험하는 일이고, 그걸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대부분 ‘그냥 기분 탓이겠지.’로 넘기는 그 상황, 지오도 그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심각해졌다. 기분 탓으로 넘기기에는 지나치게 잦았다.
 뭔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던 것도 점점 또렷해졌다.
 
 -······를 ······세요.
 
 처음에는 카페 손님이 부르는 소리를 제대로 못 들었나 생각했다. 하지만 카페 손님들은 대부분 부른 적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오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 걸로 착각한 여자 손님이 ‘관심이 있다면 어설프게 말고 제대로 대시하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한두 번이면 해프닝 정도로 웃고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들리는 소리는 일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
 더구나 들리는 소리는 점점 더 뚜렷해지기까지 했다.
 하는 말도 똑같다.
 
 -우리를 구해 주세요.
 
 자신이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디서도 듣지 못한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목소리라는 것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래서는 일상생활에 방해가 될 지경이었다.
 결국 지오는 부모님께 사실을 말하고 정신병원에 찾아가 상담을 하고 처방을 받았다.
 그러나 병원의 처방을 따라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소리는 점점 더 자주 뚜렷하게 들려왔다.
 어느새 지오가 일하는 카페에도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지오가 먹는 약 봉투에 적힌 병원 이름을 봤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도 자주 뒤를 돌아보거나 허공을 응시하며 노려보는 모습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자주 들려오는 환청은 일상을 무너뜨렸다.
 카페에서 일을 할 때도 자꾸 들려오는 환청이 심각한 방해가 되었다. 그로 인해 실수가 잦아지며 구멍이 생기고, 그것을 다른 사람이 메워야 했다.
 본의 아니게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존재가 된 거다.
 결국 지오는 입원을 결심했다.
 걱정이 없지는 않았다.
 지오가 가진 정신병원의 이미지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각종 영화나 드라마 혹은 뉴스에 나오는 정신병원의 모습은 긍정적이 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지오의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극렬하게 반대했었다.
 아들이 미쳤다는 것을 인정할 부모가 얼마나 될까?
 온갖 인권유린이 당연하게 일어난다는 괴담 같은 이야기를 쏟아 내며 말렸다.
 그러나 지오와 아버지의 설득에 마지못해 보내 주고 말았다.
 다행히 정신병원은 지오의 예상과 달랐다. 정신병동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상식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정말 문제는 병원이 아니라 지오 자신이었다.
 시키는 대로 약을 먹고 요법에 참석하고 의료진에 협조해도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환청은 점점 더 자주 또렷하게 들렸다. 나중에는 희미한 형체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안정실에서 손과 발을 묶고 안정제를 맞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안정제는 소리를 막아 주지 않았다.
 희미한 형체도 지워 주지 않았다.
 손과 발을 묶인 상태로 두려움에 맞서야 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스스로의 무기력함을 확인하는 것뿐이다.
 할 수 없다. 할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오의 얼굴이 공포에 질렀다.
 환청처럼 환시도 점점 또렷해졌다.
 처음에는 사람이라는 정도밖에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희미하게나마 얼굴의 윤곽이 보였다. 심지어 지금은 눈부신 금발과 눈처럼 하얀 피부도 알아볼 수 있었다.
 어렴풋하게 보이는 여인이 아름답고 매혹적인 음성으로 말했다.
 -제발 우리를 구해 주세요.
 지오는 대체 자신이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공포 영화처럼 자신도 모르게 저주받은 물건을 만지거나 훼손한 것일까?
 -우리를 구해 주세요.
 끊임없이 들리는 소리는 공포와 함께 의문을 심어 주었다.
 한편 이대로 피하기만 해서는 영원히 답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병원에서 제공하는 각종 약물과 치료 행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말 도움이 되었다면 이렇게 상태가 악화될 리 없었다.
 ‘피할 수 없다면 부딪친다.’
 왜 하필 이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안정제의 영향으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정신병원에서 수시로 손발이 묶이며 살 수는 없다는 절실함이었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지오의 결심은 변화의 시작이었다.
 “대체 나에게 뭘 원하는 거지?”
 -우리를 구해 주세요.
 지오의 질문에 늘 듣던 그대로의 말이 들렸다. 지오가 다시 물었다.
 “너는 귀신이잖아. 죽은 사람을 무슨 수로 구하라는 거지?”
 -우리는 귀신이 아닙니다. 이미 죽은 뒤라면 구원을 바라지 않았을 거예요.
 처음으로 늘 듣는 것과 다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지오는 어쩌면 대화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신이 아닌데 내 앞에 나타난다? 그 말이 사실이더라도 내가 무슨 능력으로 남을 구한다는 거지? 나는 내 앞가림도 못 하는 중인데.”
 -우리에게 남은 희망은 당신뿐입니다. 당신이 할 수 없다면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대체 뭘 바라는 거야?”
 -허락해 주시면 됩니다.
 “허락?”
 -예, 지금 ‘허락한다.’고 말해 주세요. 그러면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귀를 울리는 목소리에 지오는 잠시 망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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