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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석유재벌이 된 귀환자는 클리셰가 너무 좋아

1. 귀향

2021.05.15 조회 64,392 추천 1,122


 1. 귀향
 
 휴전선 인근 야산.
 
 사람의 발길이 철저하게 통제된 그곳에는 짙은 녹음만이 자리하고 있다.
 계곡물 소리가 청량하게 울리는 산기슭. 양 옆으로 가파른 언덕이 있고, 그 가운데 움푹 파인 듯 위치한 조그만 분지에는 동굴 하나가 은밀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동굴 입구는 위에서 흘러내린 덤불이 덮고 있어, 외지인이 그 동굴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오랫동안 찾아오는 사람 없이 홀로 남겨져 있던 동굴.
 햇볕이 화창한 어느 날, 빨려 들어갈 듯 깊은 어둠을 품은 그 곳에서 생소한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누군가가 바닥을 내딛는 소리였다.
 
 탁. 탁. 탁. 탁.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에 따라 흐릿하게 비추던 실루엣이 형태를 갖춰갔다.
 그것은 어두운 회색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이었다. 회색 로브를 입은 사람이 어느 새 동굴을 빠져 나왔다. 그는 자신이 걸어 나온 동굴 주변을 살펴보다가 어지러운 듯 한손으로 동굴 벽을 짚으며 기댔다.
 
 “쓰읍. 하. 쓰읍. 하. 이거 무슨 마나수치가 이 따위야. 아우 어지러워.”
 
 회색 로브는 심호흡을 몇 차례 더 반복했다.
 
 “후. 이 정도면 제대로 찾아 온 것 같긴 한데. 예상은 했는데 진짜 로한대륙의 10분의 1정도밖에 안되겠는 걸.”
 
 어느 정도 안정이 됐는지 자세를 고쳐 일어선 회색 로브가 재차 주변을 둘러봤다. 그의 눈에 익숙한 부분들이 들어왔다. 근 100년이나 지났지만 수십, 수백번 돌려가며 떠올렸던 모습들, 마지막 기억 속 동굴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병장 말년에 끌려나온 야전훈련에서 땡땡이나 치려고 숨어들었던 동굴과 비슷한 부분들이 많았다.
 
 드디어 제대로 찾아왔다.
 벅차오르는 기쁨과 함께 그의 눈앞에 그간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씨팔. 그 미친 중대장새끼만 아니었으면 그 고생안하는 건데. 하. 뭐 덕분에 마법사가 되긴 했으니 이런 게 새옹지마구나.”
 
 회색 로브의 남자.
 이름은 구창식.
 21살의 말년병장으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 전역을 2주일 남겨놓고 혹한기훈련에 끌려 나오게 된다. 훈련 도중 그는 숲속에 숨겨진 동굴을 하나를 발견했다. 짜증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던 창식은 숨어서 땡땡이도 칠 겸, 자신을 끌고 나온 신임 중대장의 속도 태울 겸 하여 동굴 안으로 숨어 들게 되고 그곳에 열린 차원게이트에 빠져 이계로 넘어가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장장 100여 년에 걸친 판타지 스토리.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는지 중간중간 위험한 일에 엮인 적도 많았지만 결국 그런 위기들를 이겨내고 7서클의 마법능력을 손에 넣었다. 물론 주변에는 9서클까지 오른 괴물 같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건 그 놈들이 괴물인거고, 7서클 역시 인간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경지였다.
 
 하지만 현대인의 이점을 살려 마도공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창식은 훗날 로한대륙을 쳐들어온 마왕군을 무찌르는데 있어 큰 역할을 하게 되고 그런 공을 인정받아 마왕을 무찌른 7영웅 중 한 명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그 포상으로 여신에게서 얻은 소원권을 이용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로한과 지구의 시간차를 계산 해보면 10년이 좀 덜 됐을 텐데. 군대 간 아들이 10년 동안이나 집에 안 들어왔으니 걱정이 많으셨겠지. 그나저나 나 탈영으로 처리됐으면 어떡하냐. 젠장. 돌아오자마자 영창 끌려가는 건 싫은데. 그렇다고 숨어살 수도 없고. 새로 신분증 하나 만들어야 하나? 아 모르겠다. 우선 집에 가고 생각하자.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창식이 왼손을 들자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잠깐 반짝였던 빛이 사라지고 발 앞에 오래된 국방색 군복이 나타났다. 마왕을 무찌르고 얻은 전리품 중 하나인 아공간 팔찌였다. 팔찌는 도시 하나가 통째로 들어갈 만한 크기의 아공간과 연결되어 있었다.
 
 마왕을 무찌르고 전리품을 나누는 자리에서 주로 인챈트 된 마도장비를 사용하는 창식이 고른 것이 바로 이 아공간 팔찌였다.
 
 지구로의 귀환을 결정했던 창식은 혹시라도 조난당할 때를 대비해 생필품과 마정석은 물론이고 금과 은을 비롯한 귀금속들, 7영웅들에게서 이별선물로 받은 마법도구들까지 싹싹 긁어 아공간에 담아서 넘어온 상태였다.
 
 옷을 꺼내 입은 창식은 전신거울도 꺼내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군화에 국방색 군복, 외모까지 이계로 떨어지기 전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본래는 100살이 넘은 창식이지만 여신이 귀환 선물로 그의 신체와 외모를 떠날 때와 같은 20대 초반으로 바꿔 준 덕분이었다.
 
 “마나밀도가 거의 10분의 1이니 마법 한번 쓰고 다시 재충전하려면 시간이 장난 아니게 걸리겠는데. 방법을 찾을 때까지 당분간은 아껴 쓰는 수밖에 없겠어. 우선은 10년 동안 변한 게 없다면 이 근처가 다 비무장지대일 테니까 빨리 빠져 나가야겠지. 괜히 돌아다니다가 걸리면 총 맞기 딱 좋지. 먼저 침투모드로.”
 
 침투모드는 군복에 인챈트되어 있는 투명화, 음소거, 스트랭스와 헤이스트 마법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시동어였다. 창식은 투명해진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아. 로한이었으면 플라잉 마법이라도 써서 날아가겠는데, 일단 무슨 일이 있을 지도 모르고, 마력은 아껴두자. 가볍게 오랜 만에 몸 좀 쓰지 뭐.”
 
 창식은 마법지식을 활용해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개선할 지 이런저런 방법들을 떠올리며 천천히 산길을 내려갔다. 하지만 그런 고민들은 산을 내려오고 도시로 들어서며 어느새 지워져 버렸다. 10년의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정말로 산과 산 사이로 길이 뚫렸고, 멀쩡한 산을 깎아 고층 빌딩과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저마다 납작하게 생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10년 전 폴더폰을 쓰던 것이 마지막이었던 창식의 눈에는 마치 마법을 처음 봤을 때만큼이나 신기한 광경이었다. 자신의 기억과 너무도 다르게 변해버린 세상의 모습에 창식은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신기한 감정들은 곧이어 마주한 냉혹한 현실 앞에 모래알처럼 흩어버렸다. 그것은 바로 가족들에 관한 것이었다. 기억 되살려 찾아간 집에는 더 이상 창식의 가족들이 살고 있지 않았다.
 
 '뭐 흔한 이야기잖아. 제대하고 가니 이사갔다는.'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주변 부동산을 수소문한 창식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들었다.
 가족들이 빚에 쫓겨 도망가듯 이사를 떠났다는 것이다.
 
 10년 전 창식이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중대장은 며칠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자 창식이 사고가 난 것으로 생각했다. 말년병장이 제대를 앞두고 탈영을 할리도 없고, 그 순간 중대장의 머릿 속에 떠오른 것은 훈련 중 사고. 진급이 코 앞인데 무리한 훈련을 강행해서 병사가 사고로 실종됐다는, 혹여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큰일이었다.
 
 결국 중대장은 창식을 훈련 중간에 복귀시켰고, 곧바로 제대한 것으로 처리해버렸다. 사고를 그냥 덮어버리기로 한 것이었다. 제대할 날을 기다리던 아들이 집에 오지도 않고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되자 집안은 난리가 났다.
 
 군대에서는 서류상 이미 제대를 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관할이 아니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결국 부모님은 창식을 찾기 위해 열일을 제쳐두고 뛰어다녔고, 그 무렵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융위기를 맞았다.
 
 창식의 일로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나머지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를 맞았다. 그로 인해 빚을 지게 됐고, 이자에 또 이자가 쌓이고, 결국 집마저 잃고 도망치듯이 이사를 가게 됐다는 사연이었다.
 
 늦은 저녁 서울 북부에 위치한 한 고층빌딩 옥상.
 
 창식의 눈앞에는 별빛 대신 문명의 빛들이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헬리포트의 평평한 바닥 위에 선 창식이 그 인공의 불빛으로 반짝이는 도심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족의 소식을 접한 창식은 저녁이 되기를 기다려 주변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찾아 올라왔다.
 
 다시 아공간을 연 창식은 그 안에서 낡은 편지 한통과 시약병, 수정구를 꺼냈다. 시약병에는 금색 액체가 들어있었다. 마법으로 연성한 액체금이었다. 바닥에 붓고 마법을 영창하자 액체금이 이리저리로 흘러 마치 금색 펜으로 그리듯 마법진을 그려 나갔다. 완성된 마법진 중앙에 편지를 놓은 창식은 수정구를 꺼내 들고 마법을 발동시켰다.
 
 “아이즈 오브 월드. 편지의 주인을 보여줘.”
 
 바닥의 마법진에서 금색 빛들이 뿜어져 나와 위에 놓인 편지를 감쌌다. 물건의 기억과 관련된 곳을 보여 주는 8서클 마법인 아이즈 오브 월드 마법이 가동됐다.
 
 원래라면 7서클인 창식이 사용할 수 없는 마법이었지만 대마법사인 친구가 선물로 준 마법수정구, 아이즈 오브 월드를 사용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편지는 군 복무시절 중학생이었던 여동생 성희가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써서 보낸 위문편지였다. 아이즈 오브 월드는 세계의 법칙을 비틀어 편지의 주인인 성희가 현재 있는 곳을 찾아서 보여 줄 것이었다. 창식은 수정구 안을 들여다봤다.
 
 “음. 보자. 어디야. 온통 검정색이네. 옆에 얘는 누구지. 생긴 건. 가만 보자 성희랑 닮았는데 좀 어린 거 같고. 설마 성은이? 짜식 많이 컸네. 근데 웬 한복이냐. 그것도 검정색으로. 음. 사람들이. 왜 절을. 장례식장인가. 엄마는 아빠는 어디 계시지.”
 
 불안한 기분이 든 창식이 서둘러 수정구 위를 이리저리 문질러 영상의 각도를 바꿨다. 마치 터치패드 화면을 넘기듯 몇 차례 돌리자, 넘어간 화면에 실내 광경이 나타났다. 일산 한마음장례식장이라는 간판이 붙은 건물이 보였다.
 
 주저앉아 있는 성희와 막대여동생인 성은의 모습 뒤로 엄마의 사진이 보였다. 사진의 양쪽 위로 검은 리본이 둘러져 있었다. 영정사진이었다. 창식은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에이. 설마.”
 
 창식은 서둘러 수정구와 편지를 얼른 챙기고 마법을 영창했다. 마력을 아껴 써야한다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확인해야만 했다.
 
 “플라이.”
 
 떠오른 창식의 몸이 수정구가 보여주는 방향을 따라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댓글(91)

티비박스    
재밌게 읽고 갑니다! 화이팅하세요!
2021.05.19 01:58
북콜랙터    
자주 오세요~ 제발~
2021.05.19 08:34
할젠    
창식이.. 테드 창?!
2021.05.24 15:33
ga******    
요즘 귀환 소설의 국룰 귀환전에 이미 최강자급인데 내용 전개 하기 힘드니 밸런스 패치를 위해 귀환하니 지구는 마나가 없네 혹은 귀환하는데 마나써서 지금은 마나가 없네 공식이 그대로 적용됐네요
2021.05.28 16:24
북콜랙터    
예리하시군요. 제 마음 속 냄새나는 검은 뱀을 들킨 거 같네요
2021.05.28 21:01
he********    
비무장지대일테니까 빠릴 [빨리]
2021.05.29 13:01
tk****    
나도 그냥 전역시켜줘요
2021.05.29 14:52
겨울에핀꽃    
아 시작 설정 막무가내네요
2021.05.29 21:06
완전물    
요새는 중대장 마음대로 전역시킴? 상급부대에가서 전역신고 안함?
2021.05.30 06:27
스수무부    
땡땡이치다 이계간 건 자기 잘못인데
2021.05.3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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