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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프롤로그

2021.06.10 조회 31,203 추천 534


 머나먼 옛날, 한 명의 초인이 세상에 드리운 야만의 그림자를 걷고 문명의 빛을 비추었다.
 
 그 초인은 온 북대륙을 정복하여 최초의 제국을 세우며 초대 황제가 되었다. 이로써 그는 세상의 혼돈을 종식시키고 질서를 부여하였으며, 말년에는 하늘로 승천하여 신이 되었다.
 
 세상을 비추던 등불이 사라지자 제국은 약 150년간 존속하다가, 초대 황제의 직계 혈통이 끊기며 마침내 버티지 못했다. 그것이 제 1제국의 끝이었다.
 
 그 후 50여 년간 제위가 공석인 대공위 시대를 거치며, 사람들은 다시 황제의 필요성을 느꼈다. 영지와 왕국을 초월하여 세상을 관리할 사람이 있어야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제 2제국이었다. 그러나 제 2제국의 황제는 이전 제국의 황제들처럼 군림하고 통치할 수 없었다. 황제에게 허락된 권한은 제국 내 도로정비 같은 ‘관리’뿐이었다.
 
 영주들에게 세금을 걷을 권리도 없었고, 소집령을 내릴 수도 없었다. 아무도 황제에게 충성하지 않았다.
 
 제 2제국이 이렇게 된 데에는 세상의 영주들이 황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식했지만, 그렇다고 황제가 자신들에게 적극적으로 간섭하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제후들은 황제를 그저 그런 백작 가문에서 선출했으며, 선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갈아치우기도 하고, 황제가 정치적 입지를 다지지 못하도록 여러 가문이 돌려 가면서 제위를 맡도록 했다.
 
 제 2제국의 황제들은 막강한 선제후들에게 벽을 느끼며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벨레스 왕국과 가우팅겐 변경백령, 루크레치아 시(市)가 제국으로부터 독립해나간 것도 이때였다.
 
 그러나 그들은 황제 선출권을 상징하는 신검 일리디아를 포기하지 않았다. 의무는 지지 않으면서 제국에 대한 권리는 유지하려고 했다.
 
 자연히 제국의 다른 선제후들과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었으나, 독립을 저지하기 위해서 피를 흘릴 각오가 된 제후는 아무도 없었다.
 
 제국에서 황제 선출권을 가진 열두 선제후 중 아홉이 남았고, 그들은 새로운 선제후를 만들려 했으나 독립해나간 세 선제후의 방해 공작에 번번이 실패했다.
 
 그 가운데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황제는 그 권위가 더욱 떨어졌고, 제국력 347년을 기점으로 선제후들은 다시 황제를 선출하지 않았다. 제 2제국의 끝이었다.
 
 다시 세월이 흘러 제국력 412년, 세 번째 제국이 일어섰다.
 
 저 먼 옛날 그 유명한 흑태자의 북방전쟁 이후 200여 년간 평화가 유지되던 제국의 북부는, 다시 기력을 회복한 북방 이민족의 침입에 만성적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1제국 시기 2대 황제, ‘현명한’ 하인리히 황제가 제국을 통치하던 때 성립했던 프루세니아 왕국도, 북부보다 더 북쪽에서 세력을 확장하며 북부의 영지들을 압박했다.
 
 잦은 약탈과 전투에 시달리던 북부는, 오랜 산고 끝에 영웅을 탄생시켰다.
 
 황제의 12기사 중 1인이었던 헤르만 공작을 시조로 하는 하멜슈트롬 왕가의 16대 왕, 콘라트 왕이 북부 영주들과 연합해 이민족을 격퇴하고 프루세니아 왕국을 굴복시킨 것이었다.
 
 장장 2년에 걸친 자잘한 전투들과 세 번의 결정적인 큰 전투로, 그는 마침내 북부의 수많은 가문을 상징하는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벌판에서 북부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초대 황제가 제국을 세우기 전, 그가 처음으로 북부의 왕이라고 불리던 때로부터 약 450년 만이었다.
 
 그런데 콘라트 대왕은 군대를 해산하지 않고 그대로 남하했다. 그가 야욕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시대적 사명을 느낀 것인지는 모르지만, 콘라트 왕은 황제가 되려 했다. 어쩌면 초대 황제와 자신을 동일시한 건지도.
 
 왕을 비롯한 세상의 영주들이 콘라트 대왕을 가리켜 명분도 없고, 자격도 없음을 지탄할 때, 그는 ‘황제는 북부에서 태어난다.’라는 말을 남겼다.
 
 어찌 되었건 콘라트 왕은 무수한 실전으로 다져진 막강한 북부군으로 대륙 중부의 수많은 군소 영주들을 짓밟고, 외스테른의 헬든부르크 대공 가문과 카부르크 공작 가문을 상대로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그는 세 번째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제 3제국은 전통적인 열두 선제후 중에서 고작 다섯 가문만 포함하고 있었고, 그 다섯 가문도 새로운 황제에게 마음으로 복종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3제국의 영역은 1제국에 비해 반도 되지 않았다.
 
 정복하는 것과 통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분야이며, 콘라트 대제는 군사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에 비해 다스리는 데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었다.
 
 결국 그는 교황에게 대관을 받음으로써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고, 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해 제국 내 많은 영지를 성직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성직자들은 원칙적으로 결혼할 수 없었고, 따라서 자식이 없기 때문에 사망 시 영지는 황제에게 귀속되므로 처음에는 황권을 강화시켰지만, 이것은 독이 든 사과와 같았다.
 
 제 1제국의 초대 황제는 철저하게 정교를 분리했고, 그는 ‘영적인 구원은 교황이 하지만, 세속적인 구원은 황제가 한다.’라고 하며 제국에 대한 교황의 영향력을 원천적으로 차단했었다.
 
 그런데 제 3제국에 이르러 황제에게 대관을 해줌으로써 교황의 권위는 날로 상승하게 되었고, 제국력 965년, 마침내 황제와 교황 사이에 서임권 투쟁이 발생했다.
 
 제국 내 주교령에 대해서 누가 성직자를 임명할 권한이 있는지 다툼이 발생한 것이었다.
 
 당연히 황제는 말도 안 된다며 교황의 요구를 무시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파문이었고 오랜 세월 불만을 품고 있던 제국 내 영주들이 그것을 빌미 삼아 집단 반발에 나섰다.
 
 온 제국에 반란의 불씨가 지펴지자 결국 황제는 추운 겨울철 맨발로 교황청 앞으로 가서 굴욕적인 사죄를 해야 했다.
 
 교황이 황제를 용서해주고 파문을 취소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복수를 다짐한 황제는 20년 뒤 군대를 일으켜 교황령으로 진격했다.
 
 깜짝 놀란 교황이 피난길에 오르는데, 카부르크 공작, 외스테른 대공, 타란투스 공작이 연합하여 제국군과 맞섰다.
 
 제국군은 람베바르드 반도 산악지대에서 황제가 사로잡히는 참패를 당했으며, 결국 황제가 폐위되었고 제 3제국이 끝장났다. 그렇게 세 번째 대공위 시대가 도래했다. 제국력 985년이었다.
 
 황제가 폐위되자 교황의 권위는 하늘을 찔렀고, 그는 내부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고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제국력 1000년, 성지 자이렉슬 왕국의 구원 요청을 빌미로 신성한 초대 황제를 기념한다며 네 번째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구체적이고 명확한 전략적 목표 없이 일으킨 제 4차 십자군 전쟁은, 이제껏 본 적 없는 학살과 약탈이 벌어졌다. 성지에서.
 
 4차 십자군 전쟁은 아군과 적군이 모호했고 그래서 이교도에 대해서만 살인과 약탈이 벌어진 게 아니었다.
 
 남이 가진 것을 뺏기 위해, 혹은 내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 십자군은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끔찍한 짓을 자행하는 걸 서슴지 않았다.
 
 광기와 광신이 성지에 휘몰아치는데, 정작 일을 벌인 교황은 한도를 모르는 잔혹한 사태와 복잡한 상황에 당황하여 무책임하게도 전쟁에서 손을 놓았다. 그렇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전쟁에서, 구원은 없고 오로지 탐욕과 증오, 복수심만이 들끓었다.
 
 그런데 그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마치 밝게 빛나는 별처럼 이름을 떨치는 십자군 기사가 한 명 있었다.
 
 그 기사는 만성적인 수적 열세와 열악한 보급에 시달리면서도, 매번 몇 배나 많은 적을 무찔렀으며 한 번은 소수의 기사를 이끌고 모래 폭풍을 뚫고 나아가 수만의 적군을 기습해 패퇴시킨 적도 있었다.
 
 전장에서의 우레 같은 포효는 마른하늘의 구름을 떨게 만들 정도였고, 화산처럼 폭발하는 힘은 혼자서 불리한 전황을 뒤집는 수준이었다. 십자교도 중 그를 초대 황제, 신성자의 현신이라 믿는 자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15세에 처음 전쟁에 참전하고 10년이 흘렀을 때, 갑자기 종군 사제를 살해하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일이 발생했다.
 
 많은 이가 당황했고, 누군가는 그가 승천했다고 했으며, 누군가는 그가 객사한 뒤 모래 폭풍에 잠겼을 것이라 했다. 소문만 무성한 가운데 몇몇은 진실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10년 동안 무패의 신화를 써 내려가던 기사에 대한 십자군의 평가는 ‘간담은 무쇠요, 심장은 불꽃으로 이루어진 용감무쌍한 무적의 십자군 영웅’이라 했다.
 
 반면 적들의 평가는 이러했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 살인의 왕. 게르하르트 폰 리히터.

작가의 말

열심히 잘 하겠습니다.

Like빤쓰님 후원 감사합니다.

댓글(80)

[탈퇴계정]    
작가님의 두 전편을 다 읽어봐서 이해가 되긴 하는데. 이거만 읽는 사람들은 프롤로그가 겁나 길다고 생각될 것 같아요.
2021.06.10 10:12
얼른일해라    
오호 상당한 시간이 흘렀네요
2021.06.10 11:08
소요권법    
이번엔 어린시절부터 시작이 아닌가보네용
2021.06.10 11:30
yujhZ    
ㅇㅅㅇ
2021.06.10 12:28
霹靂    
드디어 연대기 3부작이 시작되는군효. 갓동파 파이팅 고고!
2021.06.10 17:25
프로메가    
믿고 갑니다
2021.06.10 18:40
나무방패    
오오
2021.06.11 02:08
으아아앙    
도동파 사랑해요!!
2021.06.11 08:47
n6*************    
동파야 쪽지라도 남기지 그랬니 몰랐자나
2021.06.11 10:58
gk*******    
제니 어디갓숴
2021.06.1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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