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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살인마

2021.06.15 조회 315 추천 1


 #001. Prologue : 살인마
 
 
 
 
 
 은은한 노란 불빛이 비치는 고해 성사 방.
 아이의 주먹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작은 구멍만이 신부와 사내의 사이를 이어 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사내는 두 손을 모은 채 방에 놓인 무릎 받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사내가 정성스레 성호를 그었다.
 뒤이어 신부의 자애로운 목소리가 작은 구멍을 통해 사내에게 들렸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굳게 믿으며, 그동안 지은 죄를 뉘우치고 사실대로 고백하십시오.”
 죄를 고백하라는 신부의 말이 끝난 후 사내가 갈라진 목소리로 신부를 나직하게 불렀다.
 “신부님.”
 “말씀하십시오.”
 “한 달 전에 다른 성당에서 고해 성사를 봤습니다.”
 “네.”
 신부는 뜸을 들이는 사내의 다음 말을 차분히 기다렸다.
 “신부님.”
 사내는 뭔가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신부를 불렀다. 말을 함에 따라 그의 왼쪽 뺨에 새겨진 징그러운 상처가 보기 싫게 이지러졌다.
 신부는 사내의 부름에 여전히 자애로운 목소리로 응답했다.
 “네, 교우님.”
 “신부님은 세상에 죽어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내가 거친 목소리로 질문한 내용은 신부에게는 뜻밖의 내용이었다. 신부는 구멍을 가리고 있는 흰 커튼 쪽으로 몸을 바짝 붙이며, 사내의 물음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대답했다.
 “세상에 죽어야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걸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에 관한 건 오직 하느님만이 결정하실 수 있는 일이지요. 하지만 하느님은 누구의 생명도 함부로 생각하시는 분이 절대 아니십니다.”
 신부의 말을 다 들은 남자는 무언가를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신부님. 그럼 왜 죄 많은 사람이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겁니까? 왜 신은 그런 자들을 가만히 놔두는 것입니까? 왜 그런 자들 중에 천벌을 받지 않고 잘 살다가 천명을 다 누리고 죽는 사람들이 있는 겁니까? 그리고 설혹 신이 그를 단죄하더라도, 그것이 매우 늦어져 그 사람이 또 다른 죄 없는 누군가를 죽인다면, 그것이 오히려 신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까?”
 사내의 말에 신부는 금방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류의 질문은 신부 생활 십수 년간 수도 없이 받았었지만, 받을 때마다 대답하기 어렵고 힘든 질문이었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실상 정답이 없었다. 그래서 신부가 선택한 방법은 사람마다 그에 맞춰 다른 대답을 해 주는 것이었다.
 신부는 커튼 너머 있는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에 맞는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신부의 대답은 한참 뒤에나 사내의 귀에 들려왔다.
 “그런 것도 모두 신이 결정하실 일이지요. 우리는 누구도 그 자신 개인의 임의적인 척도로 상대방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신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이지요. 그런데 왜 그런 걸 물으십니까? 교우님?”
 신부가 선택한 대답은 결국 흔히 사람들이 정론이라고 부르는 틀을 벗어나지 않는, 틀에 박힌 ‘정답’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정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도 있지만, 정답이 없는 질문도 분명히 존재한다.
 신부의 대답에 사내의 입에 자조적인 미소인지 신부에 대한 비웃음인지 모를 희미한 웃음이 어렸다.
 이 신부도 똑같다. 신부란 인간들은 하나같이 모두 똑같다. 언제나 똑 부러진 대답을 회피하고 현학적인 답만을 내놓는다. 항상 신의 뒤에 숨어서 비겁하게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사내의 생각에는 지금 얘기를 나누는 이 신부도 그저 그런 신부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한 달 만에 또다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신부는 사내의 짧은 한마디 말에서 지독한 섬뜩함을 느꼈다. 신부는 그와 사내를 연결하는 작은 철망이 쳐진 구멍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젖혔다. 하지만 그 작은 구멍으로는 사내의 모아진 양손밖에 확인할 수 없었다.
 “그는 어린아이 6명을 강간하고 죽인 자였습니다. 나는 그자를 죽였습니다. 신부님. 신부님의 귀에는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를 기쁜 마음으로 죽였습니다.”
 “······”
 사내의 말이 잠시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그가 말을 멈춘 잠깐이 신부에게는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다시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죽어야만 하는 사람은 없는 겁니까?”
 신부의 목소리에 당황함과 다급함이 섞여 약간 커졌다.
 “교, 교우님. 세상에는 죽어야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오직 하느님만이 결정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설사 어떤 이가 죄를 지었더라도 그것을 또 다른 이가 임의로 단죄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럼 법관이 단죄하는 것도 안 되지 않습니까?”
 “자연스럽게 형성된 법에 의한 심판은 하느님의 행사 이전에 사회를 위해 필요한 법이지요.”
 사내는 신부와 대화를 나누며 점점 더 목소리가 갈라져 갔다.
 “후후······ 신부님의 말씀은 저 같은 무지렁이에게는 그저 궤변으로만 들립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사람의 생명은 세상의 무엇보다 귀중한 법입니다. 아멘.”
 “신부님. 그렇다면 말입니다.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을 죽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어떤 누군가. 그런 사람의 존재도 신이 예정하신 것입니까?”
 “······그게 누구입니까?”
 다시 잠시 간의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순간 사내의 입에서 기괴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크크. 저입니다. 저라는 인간은 사람을 죽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괴물입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고는 미칠 것 같습니다.”
 신부는 광기에 젖은 그 웃음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신부는 자신과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는 남자와의 짧은 대화를 통해 사내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퇴폐적인 음성에서 왠지 모를 진실성이 느껴져 어쩌면 사내가 진짜 살인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왕 죽일 거면 죽어야만 하는 사람들을 찾아 죽이는 것입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요. 과연 신은 저 같은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저 같은 경우 과연 어떻게 해야 옳은 것입니까?”
 계속되는 사내의 말에서 신부는 직감했다. 저 사내는 정말 살인을 수도 없이 저지른 살인마라는 사실을. 간혹 고해 성사 방에 들어와 거짓을 고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금 벽 건너편에 앉아 있는 사내는 진짜 살인마가 확실하다는 것을
 여기서 자신이 하는 말에 따라 어쩌면 살인마 하나가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 신부는 오랫동안, 정말 오랫동안 생각했다. 보통의 고해 성사가 5분 이내에 끝나는 걸 생각해 보면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아마 밖에 고해 성사를 위한 줄이 제법 길게 이어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신부의 대답이 늦어지자, 사내는 이번 신부에게서도 결국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의 무릎이 신부의 대답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마침내 무릎 판에서 떨어졌다. 그는 또 때가 되면, 살인을 위한 사냥감을 물색하여 사냥에 나설 것이다.
 그가 일어서서 방을 나서려던 그 순간, 드디어 신부에게서 다급한 대답이 들려왔다.
 “대안을 찾아보십시오! 정말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꼭 죽여야 한다면 대안을 찾아보십시오. 사람이 아닌······ 다른 대안을 말입니다.”
 신부로서는 절대 해선 안 되는 살생에 대한 제안을 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은 동물의 목숨보다 귀중하다. 최소한 카톨릭의 가르침에서는 그랬다. 신부들도 육식을 하니까.
 하지만 신부의 벼랑 끝 제안도 사내에게는 실효적인 해답이 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신부님. 그건 이미 시도해 본 적이 있는 방법입니다. 그 때문에 죄 없는 고양이와 개가 수십 마리나 제 손에 희생되었습니다.”
 사내는 신부의 말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고는 문손잡이로 손을 뻗었다.
 끼릭.
 문고리가 돌아가며 듣기 싫은 소리가 고해 성사 방 안에 울렸다.
 그에 다급해진 신부의 음성이 다시금 그의 발을 잠시나마 붙잡았다.
 “최근에 가상현실 게임이라는 것이 생겼다고 합니다. 혹시 그것을 해 보셨습니까? 그 안에서는 마음 놓고 살생 아닌 살생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그것이 혹 대안이 되지는 않겠습니까?”
 신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제 읽은 신문의 표제어 ‘게임 내 폭력성 이대로 좋은가’라는 기사의 내용을 인용해 대안 살인을 제시했다.
 사내는 문고리를 잡은 채로 굳은 듯 한참 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
 신부는 긴장된 표정으로 양손을 모은 채 신에게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에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렸다. 신부가 결국 살인마를 없애는 데에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떨구던 그 순간, 사내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아직 나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신부님.”
 “······!”
 신부는 사내의 부름에 떨구던 고개를 바로 들었다.
 “저 같은 사람의 생명도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귀중할 수 있는 것입니까?”
 “······”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 그리고 이미 수많은 사람의 피를 손에 묻힌 사람. 그런 사람의 생명도 신의 보호를 받을 가치가 있는 귀중한 생명일 수 있습니까?”
 “······”
 사내는 신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문을 열고 고해 성사 방을 나갔다. 신부의 대답은 어차피 들으나 마나였으니까.
 살인마라도 사람은 사람이었으니까. 아마도 신부의 대답은 고리타분한 카톨릭 성서의 틀을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달칵. 탁.
 한명학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살인마는 잠시 고해 성사 방 앞에서 신부와 나누었던 대화를 되돌려 봤다.
 “가상현실 게임이라······”
 
 2013년의 어느 날, 연쇄 살인마 한 명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는 네버 엔딩 스토리라는 가상현실 게임의 봉인술사 미카엘이 되었다.
 살인마의 귀환
 
 지은이 : 미카엘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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