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멸망이 전부인 세계

소설에 빙의하다

2021.07.01 조회 216 추천 2


 “······젠장!”
 
 나는 욕설을 내뱉었다.
 왜냐하면.
 눈을 뜬 나는 어느 세계에 들어와 있었다.
 하필이면 멸망이 예고된 소설 속으로.
 
  * * *
 
 이 소설은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마수라 불리는 존재의 침공을 받은 서울을 살아가는 헌터들의 이야기.
 요즘 나오는 여러 소설과 비슷한 흔한 소재였다.
 그런데도 내가 이 소설을 끝까지 모두 읽은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상당히 눈에 띄는 전개 때문.
 소설을 펼치자마자 등장인물들이 죽어 나가는데, 이게 정상적인 소설 전개일 리가 없었다.
 
 여타의 소설과는 상당히 달랐다.
 시작부터 상당히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정말 사람들이 밑도 끝도 없이 죽고, 죽고, 또 죽었다.
 마수들은 헌터들이 감당이 어려울 정도로 강했다.
 
 오죽했으면.
 ‘무슨 놈의 소설이 등장하는 사람들을 죄다 죽여?’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심지어 몇몇 중요 인물들조차 가차 없었다.
 그래도 이 사람은 살겠지 싶었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쯤 되자 나는 궁금해졌다.
 대체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글을 쓴 건지 말이다.
 그 생각 하나만으로 끝까지 읽기로 했다.
 뒤로 갈수록 재미가 없더라도 결말은 꼭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읽어 보니 의외로 볼만했다.
 예상외의 전개에서 나오는 재미와 필력이 가져다주는 몰입도가 대단한 것이다.
 
 “······재밌네.”
 
 다만 거슬리는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인, 등장인물들이 시도 때도 없이 죽어 나간다는 것.
 
 제법 중요해 보이는 등장인물이라도 상관없었다.
 일단 누구든 죽는다는 게 이 소설의 기본 전개였다.
 작가가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등장인물 죽이는 걸 어지간히도 좋아하는구나.’
 
 기본 스토리는 간단했다.
 마수를 사냥하는 헌터들.
 
 그들은 게임을 통해서 성장했다.
 게임에서 레벨을 올리면,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강해졌다.
 말 그대로 현실의 게임 캐릭터나 다름없었다.
 헌터들은 그 힘으로 인류의 생존을 걸고 마수와 맞서 싸웠다.
 
 하지만 결과는 패배. 이 소설의 세계관은 꿈도 희망도 없는 곳이었으니까.
 마수를 막아 내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제 인류는 멸망이 코앞이었고, 남은 생존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헌터가 될 만큼 좋은 재능을 보유한 이들 역시 소수였고, 뛰어난 헌터는 더더욱 줄어 한 줌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 그들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전적으로 ‘신’의 존재 덕분이었다.
 신.
 인류를 위하는 강대한 초월자들.
 
 신들은 가상현실 게임을 통해 헌터들을 만들어 냈다.
 또한 거대한 장벽을 만들어 그 안에서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다.
 사실 세계관부터 이미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헌터니 뭐니 해도 결국 장벽 뒤에 숨어서 간신히 숨만 유지하는 게 바로 인류였으니까 말이다.
 
 절망적이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절망적인 세계관이 소설의 배경이었다.
 
 그에 따른 결말도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마수들에게 내몰리고 몰려 인류 전체가 절멸한다는 게 이 소설의 엔딩이었다.
 상당히 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의 주인공마저도 거스를 수 없는 결말이었다.
 
  * * *
 
 “······.”
 
 다시 돌아와서.
 현재 내가 빙의한 등장인물의 이름은 ‘이한’이었다.
 사실 조금 묘했다.
 
 왜냐하면.
 현실 속 내 이름이랑 똑같았으니까. 쉽게 말해, 동명이인이라는 뜻이다.
 
 물론 거기까지라면 우연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다.
 정말로 우연히 이름이 같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단순히 이름만 같은 게 아니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 ‘이한’은.
 바로 고등학교 시절의 나였다.
 이름만이 아니라 얼굴 생김새마저도 똑같았다.
 
 ‘아니,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나는 가장 먼저 의심부터 들었다.
 어려진 것에 좋아할 만한 여유는 없었다.
 소설 속에 어째서 나의 모습을 한 인물이 존재하는가?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심지어 가족 관계마저 ‘동일’했다.
 그것만 해도 이미 넘치도록 의심스러운데, 꺼림칙한 구석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녀석을 소설에서 단 한 번도 보질 못한 거지?’
 
 나는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었다.
 그 때문에 자신할 수 있었다.
 등장인물 이한.
 녀석은 책에 조금도 언급이 없었다.
 
 ‘단 한 문장도 말이지.’
 
 나와 동일한 이름과 얼굴을 가진 존재.
 거기에 소설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점까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을 꼼꼼히 읽었던 내가 모른다는 건.
 
 ‘그것은 이한이 원래 소설의 등장인물이 아니라는 소리라는 거지.’
 
 사실 내가 빙의한 등장인물 이한은 상당히 특별한 인물이었다.
 검술은 물론이고, 현대 화기인 총이나 활을 사용한 저격술까지 모두 능했다.
 일단 그것이 손에 쥐는 무기라면, 적어도 못하는 게 없는 만능의 강자였다.
 그야말로 근접전과 원거리전 모두에서 완벽한, 천재 중의 천재.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 녀석의 특기는 다름 아닌 ‘총검술’이었다.
 이 녀석이 자랑하는 총검술은 완벽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모든 장기를 두루두루 섞어 낸 기술의 결정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마치 대놓고 사기캐를 노리고 만든 듯한 느낌.
 그런 녀석이었다.
 이런 녀석이 등장했다면 소설을 읽는 내내 모를 리 없었다.
 
 어찌 되었든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사실은.
 바로 이런 대단한 능력을 가진 인물에 빙의했다는 것 정도겠다.
 유일하게 안도할 만한 점이었다.
 적어도 갑자기 마수에 의해 비명횡사할 위험은 덜었으니까.
 
 이 세계에서는 마수에게 죽는 확률이 어마어마했다.
 교통사고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말이다.
 
 고오오.
 손바닥을 펼치자 새파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바로 소설 속 헌터들의 능력인 마력이었다.
 지금 나의 신체 능력은 그저 웃어넘길 수준이 아니었다.
 이 강력한 신체는 무슨 일이든지 가능했다.
 수백 킬로가 넘는 트럭조차 가뿐히 들어 올릴 수 있고, 심지어 무딘 칼날은 박히지도 않을 만큼 단단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아 나는 몇 번이고 확인해 보았다.
 나는 맨몸으로 돌을 가루로 만들 수 있었고, 단단한 콘크리트 외벽을 주먹질만으로 깨부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가공할 수준의 초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이런 능력을 가지고서도 헌터들이 죽어 나간다는 말이지······.”
 
 ······정말 빌어먹을 처지가 아닐 수 없었다, 젠장.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하필 들어와도 왜 여기로 들어온 거야?’
 
 최악 중 최악이다.
 세상에 넘치는 게 소설이 아닌가.
 잘 먹고 잘사는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소설도 얼마든지 있었다.
 
 근데 왜 하필이면 이 빌어먹을 소설로 온 것인지 모르겠다.
 
 “······.”
 
 나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눈앞의 홀로그램 화면을 바라보았다.
 
 [상태창]
 이름 : 이한
 레벨 : 49
 클래스 : 전사
 경지 : 최상급 플레이어
 힘 : 234 민첩성 : 237
 체력 : 240 생명력 : 176
 마력 : 99 저항력 : 96
 
 [특성창]
 무기술
 감정 절제
 인물 간파
 
 감정 절제와 인물 간파.
 이것들은 오로지 나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었다.
 소설 바깥의 존재였기에 가질 수 있는 것.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나마 감정 절제가 없었다면 우울증에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지.”
 
 감정 절제란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의 감정을 극도로 절제하는 특성이었다. 제아무리 흥분하고 놀랄 일이 있더라도 평정을 되찾을 수 있게 만들었다.
 
 지금 나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게 없었다면 나는 진작에 자살을 시도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나에게 있는 건 49레벨과 이것들뿐.”
 
 어찌 되었든 나는 이 세계에서 살아야 했다. 적어도 내가 이 세계에서 탈출할 방법을 알 때까지는 말이다.
 
 “하아!”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이 세계의 엔딩은 끝맺음이 좋지 않다.
 멸망이 확정된 세계.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사기적인 재능, 아이템, 기연으로 떡칠을 했었다.
 하지만 녀석조차도 멸망을 막지 못했다.
 
 당장 눈앞의 미래가 암담했다.
 이대로라면 나는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죽는다.
 설령 마지막까지 버티고 버티더라도, 결국에는 모든 것이 끝날 터였다.
 
 그러니 내가 살 방법은 정해져 있는 셈이었다.
 둘 중 하나였다.
 이 소설 속 세계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든가.
 아니면 여기서 현실 세계로 도망칠 방법을 찾아내든가.
 
 당연하지만 첫 번째는 기각이었다.
 
 “그 주인공도 살아남을 방법을 찾지 못했는데, 내가 어떻게 방법을 찾아?”
 
 하지만 두 번째 방법도 암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세계에서 탈출할 방법 따위를 알 리가 없었다.
 그저 책 읽다가 눈을 떴더니 이 세계였다.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지났다.
 내가 이곳에 온 지도 어느덧 2주일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필사적으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았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매일같이 온갖 책을 샅샅이 뒤졌다.
 
 이곳에는 검과 마법이 존재했다.
 그런 만큼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동안 찾아낸 것이라고 해 봤자, 기껏해야 공간 이동 마법인 텔레포트 정도가 전부였다.
 결국 당장은 방법이 아예 없었다.
 
 사실 어쩌면 알 법한 이들도 있긴 있었다.
 한계를 초월한 대마법사들과 신들.
 하지만 겉보기에 나는 고작해야 평범한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그런 나를 그들이 만나 줄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내가 빙의한 이한은 이곳에서 평범한 학생이었다. 어지간한 헌터는 압도할 능력을 가졌음에도 힘을 숨겼다.
 그리고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가 가진 능력을 드러내고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정답은 처음부터 나와 있었다.
 지금 당장은 이 세계에서 기약 없이 지내야 했다.
 가능한 한 아주 조용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갈 만한 방도는 보이질 않았다.
 어쩌면 평생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결국 결론은 하나뿐이라는 소리인데.”
 
 살아남기 위한 정답은 간단했다.
 내가 어떻게든 소설의 끝을 바꾸는 것이다.
 주인공조차 못한 일을 내가 해야 했다.
 하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 않으면 세계 전체가 멸망할 테니까.”
 
 나는 답답해하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한동안 신세타령이나 하고 있자니 시간이 벌써 지나갔다.
 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아침 7시 50분이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나는 고등학생이다.
 벼랑 끝까지 몰린 인류라지만 결국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다.
 학생은 학교를 가야 했다.
 
 “이 나이에 다시 학교를 가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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