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이이이잉.
거친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황야.
대지의 열기에 피어오른 아지랑이 속,
말 한 마리가 느릿느릿 마을로 다가온다.
다각 다각 다각.
히이이이잉.
“워워.”
실뭉치처럼 굴러다니는 뿌리 뽑힌 회전초가 말의 신경을 건드린다.
고삐를 잡아 진정시킨 남자는 카우보이들이 쓰는 텐갤런 햇을 슬쩍 들어 올렸다.
쌍꺼풀 없는 날카로운 눈매, 검은 눈동자.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동양인의 시선이 마을을 훑어내린다.
건물이라곤 고작해야 몇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덜컥.
드르르륵.
곧 불어닥칠 피바람. 마을을 휘감은 전운에 사람들은 황급히 문을 닫고.
누군가는 술집 안으로 들어가 동양인의 등장을 알렸다.
“마, 막스 조가 왔습니다!”
“흠······”
자신의 이름을 따 갱을 만든 톰 벨이 깊은 침음을 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갔다 와서, 마저 마시지.”
바텐더는 침을 꿀꺽 삼키곤 고개를 끄덕였다.
위스키는 그대로 둔 채, 톰 벨은 술집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부하들이 뒤를 따른다.
삐걱 삐걱.
기름이 마른 스윙 도어가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밖을 나온 톰 벨은 주변을 힐끔거렸다.
몇몇 수하들은 마차 뒤, 건물 옥상에서 놈을 겨냥하고 있었다.
‘온몸에 총알을 박아주마.’
한쪽 입꼬리를 올린 톰 벨.
눈을 가늘게 떠 말에 탄 채 다가오는 동양인, 막스 조를 쳐다봤다.
다각, 다각.
히이이잉.
말이 멈추고 막스 조가 내려선다.
여유로운 행동 뒤엔 날카로운 눈빛이 톰 벨을 향했다.
톰 벨의 콧수염 끝자락이 씰룩거린다.
그는 검은 머리 막스 조를 오시하며 말했다.
“혼자 오다니, 남자는 남자로군. 도망갈 줄 알았는데 말야.”
서로의 거리는 대략 20m.
홀스터를 향한 오른손을 꼼지락거리며, 톰벨이 목소리를 높인다.
“오늘, 내 동생의 복수를 끝낸다!”
막스 조가 피식 조소를 지었다.
으득 하며 어금니를 깨문 톰 벨의 눈빛이 흉포해졌다.
“네놈뿐 아니라 차이나 놈들을 모조리 죽여주마!”
광기 섞인 일갈에도 막스 조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또 시작이네. 대한··· 아니, 조선에서 왔어, 인마.”
“헛소리! 당장 네놈을 죽이고 캘리포니아의 중국 놈들을 모조리···.”
톰 벨의 말이 끝나기도 전.
막스 조의 손이 쾌속하게 움직였다.
총을 꺼내 리볼버의 해머를 젖혀 코킹까지 그야말로 찰나의 시간.
타탕!
패스트 드로우에 이은 패닝.
털썩.
톰 벨과 수하들이 썩은 볏 짚단처럼 쓰러졌다.
“속···도가···.”
미쳤다.
톰 벨의 몸이 꿈틀거리다 이내 잠잠해졌다.
하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타아앙! 탕! 탕!
여기저기 총소리가 들려오고, 마차 뒤 건물에서 추락한 자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잠시 후.
“후우우.”
막스 조는 총구의 연기를 날려버리고.
휘리릭, 허리춤에 총을 집어넣고는 판초를 휘날리며 휘적휘적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으로는 막스 조의 동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총소리가 그치자, 마을 사람들이 슬그머니 창문을 열었다.
여기저기 널린 시체들.
그리고 석양을 등지고 서 있는 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븐 스트롱!”
그런데 왜 여덟이지?
마을 사람들이 의문을 풀고 있을 때.
리더이자 유일한 동양인 막스 조가 옆을 힐끔 쳐다봤다.
“숫자 안 맞는다. 막내 뒤로 빠져.”
“씨···.”
막내가 입을 삐죽 내밀며 뒤로 빠졌다.
‘이제야 그림이 좀 나오겠군.’
와일드 웨스트.
골드러시.
카우보이.
그리고 무법자.
이곳은 낭만이 가득한 혼돈의 카오스 서부.
19세기 중반 미국의 텍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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