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 단역 인생
인생이 고달플수록 술맛이 쓰다 했던가.
“크으...”
포장마차에서 오늘도 소주 한 잔으로 인생의 고달픔을 달래던 진후는 어질거리는 머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지갑을 꺼내본다.
가지고 있는 돈이라고는 고작해야 8천원.
이것이 현재 진후의 전재산이라 할 수 있다.
“술값도 안 나오겠구만... 히끅!”
무턱대고 술을 퍼마셨지만 돈을 낼 재간이 없다.
도망칠까?
이름도 모르는 포장마차에 무작정 들이닥쳐서 술이나 퍼마시는 자신을 보고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게다가 돈도 지불 못하고 도망치면 얼마나 한심스럽게 생각할까.
“나도 성공할 수 있었는데...!”
쾅!
탁자 위로 주먹을 내리친다.
예전에는 아역배우로 널리 알라져 나름 인기몰이를 했던 최진후.
학교에 가면 매번 그의 이름으로 도배가 되었다.
그러나.
연예계라는 건 언제나 성공가도를 장담할 수 있는 그런 쉬운 세계가 아니다.
아역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시절을 이어 연예계에서 또 한 번의 성공을 거두고자 했지만.
따내는 것은 고작해야 이름 없는 엑스트라가 전부였다.
사람들은 아역배우 진후를 기억할 뿐이지, 26살이 된 청년 진후를 기억하는 시청자들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잊혀진다.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게 진후에게 있어서는 매우 고통스럽다.
“유명해지고 싶어...”
저 반짝이는 무대 위에서 빛나고 싶다.
스타(Star)가 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잔혹했다.
“젠장!!”
소리를 치며 다시 한 번 테이블을 내려치려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신세한탄만 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
“...뭐?!”
언제부터일까.
자신과 같은 테이블에 마주앉은 한 여성이 입에 문 담배를 살짝 떼어낸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트렌치 코트를 입고 있는 수수께끼의 긴 생머리 여성.
이목구비를 보아서는 제법 미인으로 보이지만 선글라슥 워낙 커서 얼굴 전반을 가리고 있었기에 제대로 된 생김새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실패한 단역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어?”
여자가 직접적으로 진후에게 이상한 말을 한다.
술기운에 환상을 보는 것일까.
그래.
그럴 거야.
이미 만취한 뇌에서 자동으로 여성이라는 환상체를 만들어 꾸미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록 환상이라 하더라도 대답하고 싶었다.
“...벗어나고 싶다면...”
“내가 벗어나게 해줄 수 있어.”
“...하하... 거짓말 하지 마. 세상에 연예계가 그렇게 쉬울 줄 알아?!”
다시 한 번 테이블을 내려치려 하지만, 여자가 남자의 손을 낚아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진후가 놀란 점은 바로 여자의 근력이 생각 이상으로 너무 강하다는 점이었다.
“윽?!”
“여자한테 힘으로 밀린다고 자존심 상하지 않아도 돼. 내가 비정상이니까.”
“무, 무슨 소리...”
“뭐, 얌전히 잠이나 들라고.”
여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뒷덜미에서 낯선 충격이 전해진다.
쿵!
점점 잃어가는 정신 속에서 여자의 희미한 말소리가 진후의 귓가를 통해 들려온다.
“술값 정도는 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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