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새마을에서 재벌 할게요

우물에서 생긴 일

2021.10.01 조회 32,299 추천 497


 대체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걸까?
 
 “언니, 저예요. 미선이예요...!”
 
 내 기억 속에 그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엄마는 낯선 집 앞에서 큰 가방을 내려놓고 초인종을 눌렀다.
 
 “이게 누고?”
 
 남의 집을 전전하다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시골의 큰 이모 댁이었다.
 
 “제 꼴이 너무 엉망이죠?”
 
 이모는 엄마 얼굴에 멍 자국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큰이모는 엄마와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배 다른 언니였다.
 우리 엄마는 사생아였다.
 
 “뭐 하고 섰어? 비 다 맞는데 얼른 들어오지 않고?”
 
 퉁명스러운 목소리였지만 왠지 모를 따뜻함이 느껴졌다.
 
 “죄송해요. 자꾸 이런 모습만 보여서. 근데요, 제가 정말로 갈 데가 없어요.”
 
 엄마는 주눅이 들어서 비에 젖은 발만 꼼지락거렸다.
 
 “잘했다.”
 “예...?”
 “이혼이 뭐 대수가? 시간 지나면 그딴 거 아무것도 아니다.”
 
 이모는 금방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려주셨다.
 
 “얘, 이름이 형원이에요...”
 
 엄마는 싫다는 나를 억지로 밀어내며 말했다.
 
 “언니가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 이름을 형원이라고 지었어요.”
 “그건 네가 최고로 잘했다. 아이고, 애가 참 똘똘하게 잘 생겼네.”
 “엄마를 잘못 만나서 그렇지 정말 똑똑한 아이예요.”
 
 이모는 나와 눈을 맞추고 앉아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가 꼭 의사 선생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한다.”
 “의사가 되면 뭐가 좋은데요?”
 “의사 선생님은 뭐든 다 고칠 수 있거든.”
 
 무엇이든 고칠 수 있다고?
 그럼 망가진 내 가족을 고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난 막연하게 그런 상상을 하면서 의사가 되는 것을 꿈꿨다.
 
 “엄마는 왜 안 와요...?”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일을 핑계로 가끔 집에 들르던 엄마는 어느 날부터 인가 아예 발걸음을 끊었다.
 
 “아이고... 가여운 것...”
 
 이모가 나를 껴안고 등을 다독였다.
 나는 매일 식음을 전폐하고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엄마를 기다렸다.
 그러다 결국 열병이 나서 쓰러지고 만 것이다.
 
 “아이고 내 새끼... 이것 좀 먹어 봐. 응?”
 
 나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모가 억지로 떠먹인 국물이 너무나 달콤했다.
 그것은 황도 통조림에 얼음을 탄 간식이었다.
 
 “어때? 맛이 나냐?”
 “네.”
 “조금 더 먹어 볼래? 시원해서 열이 쑥 내려갈 거야.”
 
 나는 이모가 떠주는 황도를 받아먹었다.
 
 “이제부터는 나를 그냥 할머니라고 부르면 돼. 알겠니?”
 “할머니요...?”
 “그래, 내가 네 할미야.”
 
 큰이모는 사람들에게 날 손주라고 소개했고 우린 그렇게 한 가족이 되었다.
 
 “할머니...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는 내가 보고 싶지도 않은가 봐요.”
 
 할머니.
 나의 할머니.
 팔자에 없는 업둥이까지 맡게 되셨지만, 상처 많은 나를 끝까지 사랑으로 키워주셨다.
 
 “할머니, 제가 빨리 의사가 되어서 꼭 호강 시켜 드릴게요.”
 
 할머니는 나를 뒷바라지하시겠다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다.
 남의 밭일을 돕거나 노상에 나가 직접 뜯은 나물을 파는 일도 마다치 않으셨다.
 
 [경축! 유형원 군 경남북대 의대 합격!]
 
 나는 결국 동네에 합격 플래카드를 걸었다.
 
 “장하다, 내 새끼! 천재여, 천재!”
 
 서울에 있는 의대에도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졸업까지 전액 장학금을 제시한 지방 의대에 입학하기로 했다.
 
 “아이고 예쁜 것!”
 
 흙수저인 나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선택이 지금껏 내 발목을 잡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나는 수재 소리를 들으면서 의사면허를 취득했다.
 지도 교수님은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내가 서울 성화대학병원에서 PS(성형외과)전공의 과정을 밟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야, 이 새끼야! 일 똑바로 안 해?”
 
 성화대 교수님들은 대부분 모교 출신으로 지방에서 온 나를 무시하며 폭언을 일삼았다.
 
 “시골 똥개새끼가 뇌에 우동 사리만 들어차가지고!”
 
 함께 일을 하던 전공의들은 과학고와 성화대를 졸업한 진골 중의 진골이었다.
 그들은 동문 모임을 만들면서 나를 따돌렸다.
 
 “유 선생, 네가 오늘 나 대신 당직 좀 서야겠다.”
 
 선배 전공의들의 부당한 지시와 차별이 계속되었다.
 
 “예? 이렇게 갑자기요?”
 
 나는 우리 과의 미운 오리 새끼였고 사람들은 그런 나를 노비 취급했다.
 
 “나 요즘 최 교수님 밑에서 PMS(임상)에 논문 작업까지 하느라 죽어나는 거 몰라?”
 “하지만 전 내일...”
 “박 교수님 수술은 내가 대신 들어가기로 했어.”
 “예?”
 “교수님께서 너는 어시로 넣지 말라고 하셔서.”
 
 박 교수님은 내가 어시스트로 참여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싫어하셨다.
 
 “괜히 가서 욕 들어 먹지 말고 알아서 빠지라고.”
 “네, 알겠습니다.”
 
 나는 조용히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럼 수고.”
 
 오전부터 외래 업무를 시작한 터라 1박 2일을 꼬박 지새우며 환자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꾹 참고 버티는 것뿐이었다.
 당직비 12만 원에 수명이 팍팍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아...! 선생님, 아파요!”
 
 PS병동의 입원 환자는 코에 넣은 보형물이 피부를 뚫고 나온 상태였다.
 
 “금방 끝나니까 조금만 더 참으세요.”
 
 상처 부위를 소독하는 드레싱을 진행했다.
 
 “아야, 아! 너무 아프다니까요?”
 “그럼 진통제를 추가로 처방해 드릴까요?”
 “약은 됐고 선생님 번호나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
 
 나는 무심한 얼굴로 링거의 밸브를 조절하며 답했다.
 
 “그건 안 됩니다.”
 “선생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그런 거 말고 내일 수술에 관해서 궁금한 건 없으세요?”
 
 환자는 이제 노골적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기 시작했다.
 
 “몸도 엄청 좋아 보이시는데 운동 좋아하시나 봐요.”
 
 정색하며 오른손을 허리춤에 가져다 댔다.
 
 “혹시... 지금 화나셨어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네, 제가 환자분께 이런 취급을 받으려고 힘들게 의대에 입학한 건 아니라 서요.”
 
 ‘디리링~♬’
 
 밤 10시가 넘어가자 내 전화기에는 불이 났다.
 대부분 진통제나 수면제 같은 일반적인 처방 요청이었다.
 
 “후루룩...!”
 
 늦은 새벽, 아무도 없는 의국에서 컵라면으로 늦은 저녁을 때웠다.
 
 ‘이게 사람 사는 건가...?’
 
 식사가 끝나면 낡은 소파 위에서 쪽잠이라도 잘 생각이었다.
 내일 오전 7시부터 콘퍼런스와 수술 스케줄이 빼곡하게 잡혀 있었다.
 
 ‘조금만 참자.’
 
 지옥 같은 병원 생활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할머니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내 소원은 하루빨리 성화대 간판을 따서 돈을 왕창 버는 것뿐이었다.
 
 *******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흐린 하늘이 심상치가 않았다.
 난 일찍부터 경기도 외곽에 있는 오래된 요양병원을 찾아가던 길이었다.
 
 “할머니! 괜찮아요? 아니, 어쩌다가 이러셨어요?”
 “아이고 우리 강아지 왔나?”
 
 나는 누가 들을까 황급히 주위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이, 강아지라니요...?”
 “똥강아지를 강아지라고 부르지 뭐.”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내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내가 의사인데 왜 숨겨, 다친 걸 왜 말을 안 하냐고요!”
 “바쁜 거 뻔히 아는데 뭐 하러 불러서 고생을 시켜?”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엑스레이부터 들여다보았다.
 
 “걱정하지 마, 할미는 정말 괜찮으니까.”
 “아니, 뼈가 부러졌다는데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넘어질 때의 충격으로 척추가 으스러지는 바람에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난 당장이라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할미 좀 일으켜 줄래?”
 
 나는 할머니가 상체를 일으켜 세울 수 있도록 침대를 조절했다.
 
 “너도 이 사진은 처음 보지?”
 “뭔데요? 할머니 옛날 사진이에요?”
 “그제 우재가 이걸 찾았다고 가져다 줬어.”
 “형이요?”
 “응, 참 좋을 때다. 사진을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지.”
 “지금도 곱지만 이때는 훨씬 더 고우셨네.”
 “이구, 녀석... 넉살은?”
 
 사진 속의 아가씨는 수줍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병원 생활은 좀 어떠세요?”
 “다 좋다. 도와주는 간병인 양반도 꼼꼼하니 마음에 들고.”
 “산책이라도 좀 하면 좋은데 움직일 수가 없어서 많이 답답하시죠.”
 
 나는 두 손으로 할머니의 다리를 꼭꼭 주물렀다.
 
 “나는 이제 너만 결혼해서 잘 사는 거 보면 아무 걱정이 없다.”
 “에이... 저는 결혼 생각이 없다니까요?”
 “그런 소리 말고! 이 할미가 너한테 딱 맞는 아가씨를 찾아 놨거든?”
 “예?”
 “지금 바로 병원 1층에 있는 찻집으로 가면 된다.”
 
 설마 이것 때문에 날 병원으로 부르신 건가?
 
 “아이, 할머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
 
 나는 복잡한 심경으로 1층 카페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보게 된 맞선이 영 내키지 않았다.
 
 “혹시, 유형원 님?”
 
 이 병원의 간호사 복장을 한 여자가 내게 다가왔다.
 
 “네, 맞는데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효주라고 합니다.”
 
 싱그러운 미소가 매력적인 여자는 하얀색 유니폼이 잘 어울렸다.
 
 “반갑습니다. 저기... 차는 뭐로 드시겠어요?”
 “그냥... 아무거나 마실게요.”
 
 나는 가게의 사장님을 향해 가볍게 손을 들었다.
 
 “사장님, 여기 아무거나 한 잔 주세요.”
 
 잠시 뒤, 그녀 앞으로 따뜻한 허브티가 나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직업은 의사고요, 간호사는 안 만납니다.”
 “네?”
 “일하는 공간에서 사적으로 얽히는 건 딱 질색이거든요.”
 “죄송하지만, 저는 정일련 할머니 부탁으로 잠깐 인사만 드리러 온 건데요?”
 “잘됐네요. 저도 할머니 때문에 억지로 나온 거니까요.”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이효주 간호사는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일련 할머니는 참 좋으시겠어요. 이렇게 든든한 손주분을 두셔서요.”
 “네?”
 “할머니를 생각하시는 마음이 보기 좋네요.”
 
 확실하게 선을 그으려고 일부러 더 형편없는 사람처럼 굴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친절했다.
 
 “효심이 아주 지극하신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인데, 우리 병원에 내려오는 유명한 전설이 하나 있거든요?”
 “전설이라니요?”
 “안 쓰는 건물 앞에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옛날 사진을 태워서 버리면 건강했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대요.”
 
 나는 황당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게 지금... 대한민국 의사한테 할 소립니까?”
 “그러게요. 관심 없어 하실 줄 알았어요.”
 
 그녀는 민망한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창을 내다보았다.
 그 모습이 꽤 사랑스러워 보였다.
 
 ‘우르르 쾅!’
 
 “근데... 오늘은 비가 많이 와서 아무도 없겠네요.”
 
 창밖에는 거센 태풍이 쉴 새 없이 비를 뿌리고 있었다.
 
 *******
 
 병원을 나서자 눈을 뜨기 어려울 만큼 강한 비바람이 불었다.
 
 “밑져야 본전이지...!”
 
 나는 자꾸만 벗겨지려는 우비를 붙잡고 병원 뒤쪽에 있는 우물 앞에 도착했다.
 바짝 마른 우물은 오래전에 버려져서 으스스한 느낌을 풍겼다.
 
 “할머니 건강만 좋아질 수 있다면 뭔 짓을 못 해?”
 
 간신히 몸을 똑바로 세우고 할머니의 사진을 꺼내 들었다.
 분명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붙어라, 제발 좀 붙어...!”
 
 손에 들린 사진이 바람에 나부끼며 파닥거렸다.
 나는 라이터로 불을 붙여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어? 됐다, 앗 뜨거!”
 
 갑자기 쾅 소리와 함께 벼락이 내리쳤다.
 
 ‘콰직, 쾅!’
 
 그 바람에 나는 깜짝 놀라서 사진을 떨어뜨렸다.
 
 “어우, 씨! 어? 사진!!”
 
 급하게 손을 뻗다가 빗물에 발이 미끄러졌다.
 
 “어! 어어?”
 
 나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으아악!!!!!!”
 
 시야가 빙글빙글 돌면서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 마을을 가꾸세!’
 
 귓가에 자꾸만 이상한 노랫소리가 맴돌았다.

작가의 말

어서오세요.

즐겁게 읽어주세요. :)

오늘 오후 11시 30분에 2편이 업로드 됩니다.

댓글(28)

이공이공    
국민체조~ 시작~!
2021.10.01 14:38
헥토콘    
하나 둘 서이 너이 다서 여서 일고 여덟~! 잘 보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2021.10.01 15:04
묘한인연    
'미선'이에요//'미선이'예요 형원이에요 플랜카드//플래카드 벨브//밸브
2021.10.07 06:31
장타치    
감사합니다. 수정 완료하였습니다.
2021.10.07 08:14
파초군    
선작하고 출발해봐요
2021.10.12 00:32
dj메탈    
척추뼈가 으스러지면 신경이 멀쩡할수도 없고 그럼 앉는것도 불가능합니다.
2021.10.12 07:05
장타치    
정일련캐릭터는 저희 큰이모님에서 따온겁니다. 1.나이가 많아서 뼈에 탄력이 없어 깨끗하게 부러지지않고 여러조각 남. 2.신경손상 안됨 3.복대하시고 침대 기대앉는것 가능 다른 독자의 몰입을 깰수도 있어서 리플남깁니다.
2021.10.12 07:22
파이널번    
신박한 희귀다 . 트럭 희귀라는 클리세를 안 따르는 점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듯
2021.10.17 12:09
네버로스트    
공포물인가 ㄷㄷ
2021.10.18 21:06
호이학개론    
정치... 크르르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2021.10.20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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