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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수 시스템

2022.06.11 조회 31,873 추천 453


 * 본 소설은 현대 판타지로, 가상의 상황을 상정한 것일 뿐,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 사건은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100% 허구임을 밝힙니다.
 
 ***
 
 평생 살 것처럼 꿈을 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
 - by 제임스 딘
 
 ***
 
 대한민국 국민권익위원회 민원인 전용 주차장.
 
 지금 막, 대한민국 최대 그룹인 고려그룹의 탈세와 차명계좌, 비자금 조성, 돈세탁에 관련된 증빙서류를 권익위 부패방지실에 제출하고 나오는 길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지만, 권익위를 나서자 가슴이 파도처럼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잘 한 걸까? 청와대 권력을 넘어서고, 국정원 정보력을 능가한다는 고려그룹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수 십 번의 고뇌 끝에 벌인 일이지만, 내가 한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지 망설여졌다.
 
 “후우우~”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으로 걸어 와, 운전석에 앉았다. 심호흡을 하자 폐부 깊은 곳에서 일어나던 파도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조수석 서류가방에 들어 있는 증빙서류 원본들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권익위에 제출한 자료들은 복사본이다. 이 원본 서류들은 내 목숨이나 마찬가지. 이것들만 있으면 고려그룹과 싸워볼 만 하다.’
 
 고려그룹의 비리를 입증할 서류들.
 
 생명이나 다름없는 증거 서류들을 보자 요동치던 심장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오늘로서 고려그룹과의 모진 인연도 끝이다.
 
 권익위 공익신고에 이어, 다음은 MBS방송국 기자와 만날 차례.
 
 차를 몰아 MBS 기자와 약속한 장소로 이동했다.
 
 주월산 기슭에 있는 한적한 커피숍.
 MBS 최기자와 만나기 위해 커피숍 주차장에서 도착했을 때, 나는 거짓말처럼 괴사내들에게 납치됐고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는 창고 안에서 팔다리가 결박된 채로 묶여 있었다.
 
 “VIP 도착할 시간이다. 이강한, 저 새끼 깨워.”
 
 동시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이 얼굴과 몸을 때렸다.
 
 촤아악-
 
 “당신들, 내가 누군 줄 모르나 본데, 나. 고려그룹 구조본 이강한 차장이야. 내가 실종되면 그룹 구조본 차원에서 움직일 거야. 그때가 되면 당신들...”
 
 마지막 힘을 짜내 괴 사내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선글라스 사내의 비열한 웃음 뿐.
 
 “아, 그러세요? 크크, 이 새끼. 아직도 순진한 척 하네. 우리가 바로 니가 말하는 그 고려그룹 사직동 팀이라는 거, 니가 더 잘 알잖아. 안 그래? 어차피 곧 뒈질 목숨, 선수들끼리 이러지 말자.”
 
 양복이 터질 정도로 우락부락한 근육의 덩치사내가 내 엄지손가락을 붙잡아 각종 서류들에 날인했다.
 
 “개새끼들. 내가 이대로 죽을 거 같냐? 죽어서도 반드시 복수한다.”
 
 사내 말대로 저 덩치들이 진짜 사직동팀이라면, 여기서 살아나갈 가능성은 0.5%도 안 된다.
 
 곁눈질로 주위를 살폈다.
 
 덩치 사내가 내 손가락으로 지장을 찍는 동안, 졸개들은 드럼통 안에 시멘트를 들이 부었다.
 
 “부사장님과 통화 한 번만 하게 해줘. 그도 아니면, 변문우 본부장님이라도.. 통화 한 번 만. 그럼 더 이상 구질구질하게 안 할...”
 
 그때였다.
 
 낯익은 얼굴, 익숙한 음성이 어둠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강한 차장. 통화 보다는 직접 말하는 게 더 낫지 않겠어?”
 
 고려그룹 부사장이자, 그룹 총수 여무준의 아들 여명재.
 
 그가 구조본부장 변문우와 함께 걸어 나왔다.
 
 “부사장님.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묵묵히 열심히 일해 온 저에게 이러실 수 있는 겁니까? 살려만 주신다면, 일본이나 대만, 아니, 아프리카 변방으로 가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우리 이강한 차장. 지잡대 나왔어도 장학금 받고 대학 들어갔고, 집안 형편만 넉넉했으면 충분히 서울대도 들어갔을 실력이라고 하기에, 제법 똑똑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이건 뭐, 그냥 멍청이네. 아직도 왜 이러는 줄 모르겠어?”
 
 여명재는 입으로 웃고, 눈으로 욕을 하며 한걸음 다가섰다.
 
 “이강한이 니가 그동안 그룹 회계장부를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AEC 시스템에 수차례 접근했다는 걸 우리가 모르고 있을 거라 생각했나?”
 
 “그..그건....”
 
 말문이 막혔다. 완벽하게 보안시스템을 뚫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알고 있었다니.
 
 “그러게 이차장은 그냥 국세청에 있었어야 했어. 우리 같은 재벌들이 제일 무서워 하는 곳이 어딘 줄 알아? 검찰? 국정원? 아니야. 국세청이야. 국세청 출신이니 잘 알 거 아냐.”
 
 여명재가 능청스럽게 웃었다.
 
 “솔직히 검찰이 소환하면 환자복 입고 휠체어 타고 가서 대충 연기하면 90%이상은 집행유예 받거든. 근데 국세청은 다르다 이거지. 우리 돈을 빼앗아 가요. 피 같은 내 돈을 말이지. 그 뭐더라? 미국의 전설적인 마피아....뭐였더라...알...알...뭔데...알..알카에다? 맞나?”
 
 여명재는 ‘알카포네’ 단어가 안 떠올랐는지 변문우를 바라봤다.
 
 “알카포네입니다. 부사장님.”
 
 “맞아. 알카포네. 알카포네, 그 친구도 FBI가 아니라 IRS(미국 국세청)가 잡아 들였다지?”
 
 “그렇습니다. 부사장님.”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다.
 전설적인 마피아 알카포네를 잡은 건 FBI가 아니라 미국 국세청이었다. 알카포네는 1931년 연방소득세법 위반으로 11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된다.
 
 “자. 자. 작별인사가 너무 길었군. 자네 모친 명의로 해 놓은 비자금. 잘 사용하겠네. 억울하겠지만, 어쩔 텐가. 나는 귀족이고, 자네는 종놈인 것을.”
 
 여명재는 결박된 내 얼굴에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귀족? 종놈?”
 
 무슨 용기가 생긴 것인지, 그도 아니면 사직동팀을 보고 체념해 버린 것인지.
 
 여명재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여명재. 그리고 변문우. 너희 같은 부류들은 귀족이 아니야. 노블리스 오블리제. 안 들어 봤어? 세상 어떤 귀족들이 구조본 직원의 어머니. 그것도 요양원 생활을 하는 늙은 노모 이름으로 차명계좌를 만들고 비자금을 만들지? 그런 짓은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거리야.”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다.
 한 때나마 몸담았던 국세청 직원들 상대로 골프 접대하고, 거래처에 가짜 세금계산서 돌리고, 하청업체 후려쳐서 비자금 만들고... 그런 정도는 재벌이니까 으레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며 참으려 했다.
 
 그런데, 저 짐승만도 못한 자들은...
 폐암에 치매까지 걸려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늙은 어머니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오게 해주겠다고 속여서 내 어머니의 신분증과 도장을 받아갔다.
 
 그렇게 해서 우리 몰래 조세피난처에 차명계좌를 만들어 비자금을 조성하고 돈세탁을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변문우에게 항의했고, 그 때부터 나는 고려그룹 구조본에서 왕따를 당하기 시작했다.
 
 가슴에 담아왔던 말들을 쏟아내자, 여명재가 턱수염을 매만졌다.
 
 “호, 우리 이차장. 패기 지리네. 할 말은 그게 다야?”
 
 여명재는 마지막 담배 연기를 내 얼굴을 향해 뿜어 낸 후, 변문우 본부장에게 속삭였다.
 
 “변 본부장. 뒷일은 알아서 하세요. 경제 부총리와 선약이 있어서..”
 
 여명재는 담배꽁초를 튕겨낸 후 창고를 떠났다.
 
 여명재가 떠난 후, 변문우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강한 차장. 당신은 그래서 문제야.”
 
 변문우가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려그룹 구조본부장 변문우.
 
 여무준 회장의 ‘입 속 혀’로 불릴 정도로 그룹 총수의 복심 중 복심.
 
 기획력, 추진력, 대관능력은 업계 최고로 불리지만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비열함 때문에 좋은 평가를 못 받는 인간.
 
 그런 변문우가 나를 비웃고 있다.
 
 “이강한 당신. 국세청 법인납세국에서 우리 고려그룹 구조본으로 스카웃 됐을 때, 내가 했던 말 기억하나?”
 
 “무슨 말? 당신한테 나한테 뭐라고 씨부렸는데?”
 
 “세상을 좀 둥글둥글 하게 살라고. 당신처럼 모서리가 뾰족한 사람들은 누군가를 찌르게 되어 있다고..기억 하나?”
 
 “그래서, 둥글둥글하게 살라고 대관업무에 뇌물 공여 시키고, 돈세탁 시키고 했던 건가?”
 
 “대한민국 월급쟁이들, 우리나라 대다수 종놈들이 다들 그렇게 살아요, 이 사람아. 이것 봐. 뒈지기 일보 직전에도 그 뾰족한 모서리로 상급자를 후벼 파고 찌르고 있잖아. 안 그래?”
 
 “씨발! 개소리 작작해. 퉷.”
 
 변문우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창고로 끌려와 얼마나 구타를 당했는지 입 안에는 응고된 피가 가득 고여 있었다.
 
 입 속 검붉은 핏덩이와 타액이 뒤엉킨 침이 변문우의 얼굴에 묻었다.
 
 변문우는 명품 손수건을 꺼내 볼에 묻은 침을 닦으며 사직동 팀에게 명령했다.
 
 “뭣들 해. 물고기 밥으로 던져 버려.”
 
 “예. 본부장님.”
 
 변문우의 명령이 끝나기 무섭게 선글라스 사내가 내게 다가와 드럼통을 힘껏 밀었다.
 
 “씨팔.....”
 
 드럼통이 기우뚱 하는가 싶더니 ‘풍덩’ 소리와 함께 차디찬 바닷물 속으로 내던져졌다.
 
 ‘개새끼들.... 죽어서도, 귀신이 되어서라도 ..반드시 복수한다.’
 
 삽시간에 드럼통은 무저갱 속으로 가라앉았고,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이 코와 입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질식사 직전에 놓이자, 죽음에 대한 공포 보다 세상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다.
 
 ‘복수한다...반드시...’
 
 나는 그렇게 익사했다.
 
 ***
 
 그리고,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이번 생도 결국은 흙수저다.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인생 2회차를 받아들이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회귀자 이강한은 전생의 이강한과 크게 두 가지가 달랐다.
 
 첫째, 전생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고, 둘째, 【징수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징수 시스템】
 【레벨 1단계 : 9급 공무원 - 추징금액의 0.05%를 포인트로 보상】
 【레벨 2단계 : 8급 공무원 - 추징금액의 0.1%를 포인트로 보상】
 【레벨 3단계 : 7급 공무원 - 추징금액의 0.15%를 포인트로 보상】
 【레벨 4단계 : 6급 공무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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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벨 9단계 : 1급 공무원(가급 고공단) 추징금액의 0.5%를 포인트로 보상】
 
 
 회귀라는 게 흙수저를 금수저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엄청난 치트키인데, 거기에 【징수시스템】까지 장착했다.
 
 ‘세금을 추징하면 포인트 보상을 얻고, 그 포인트를 통해 능력치를 키우거나, 스킬 등을 구입할 수 있다. 한 직급 승진할 때 마다 포인트 보상비율도 올라가고, 특별 보상까지 있다.’
 
 하늘의 뜻이라 생각했다.
 
 재벌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국세청 조사요원이 돼서 그들에게 복수하라는 하늘의 뜻.
 
 “이렇게 된 거, 인생 2회차. 국세청장까지 간다.”

작가의 말

첫 연재 날 입니다.

연참에 들어갑니다. 

댓글(27)

동렬이도가    
신선하네요
2022.06.12 14:19
배라모스    
일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2.06.19 16:51
ki******    
시스템....?
2022.06.13 19:03
배라모스    
킴님, 일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ㅋ.
2022.06.19 16:52
타오르    
소재가 좋네요
2022.06.19 13:06
하구둑    
굿~! 출발이 좋군요.. 대박기원합니다흐~!
2022.06.19 23:39
푸른평원    
잘 보고 갑니다.
2022.07.08 09:40
he******    
이야! 쾌속발진 좋습니다!
2022.07.11 09:44
어쩌지    
국세청장이 되면 뭐 별다를거 있나요...
2022.07.11 14:39
어림없지    
저기..드럼통이면...이미 시멘트에 질식사 일텐데요..
2022.07.1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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