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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강림 1권-1

2015.01.05 조회 6,801 추천 78


 개문(開門)
 
 호북(湖北)과 안휘(安徽)의 경계에 대별산(大別山)이 있다. 그 깊은 곳에 경험 많은 사냥꾼도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 계곡이 있다. 워낙 들어가는 사람이 적어 이름조차 없는 곳, 그래서 무명 계곡이라 불리는 곳이다.
 그 무명 계곡의 깊은 곳에서 쇠와 돌이 맞부딪치며 나는 날카로운 금속성이 연신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소리는 무명 계곡 깊은 곳에 위치한 이름 모를 동굴 안에서 나고 있었다.
 동굴의 초입(初入)은 사람이 허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동굴은 점점 넓어져 끝에 이르러선 수백 명이 모여 있어도 자리가 넉넉할 정도였다.
 그 넓은 동굴엔 수백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허름한 옷차림에, 곡괭이를 들고 있었다.
 인부들은 동굴의 막힌 쪽을 곡괭이로 파고 있었다.
 동굴의 벽은 은은한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푸른색의 벽은 얼마나 단단한지 죽을힘을 다해 곡괭이를 휘둘러도 손톱으로 후벼 파는 듯한 작은 자국만 날 뿐이었다. 선두의 인부들은 이를 악물고 곡괭이질을 하였다. 그러다 힘이 빠지면 뒤의 인부들이 교대로 나서서 곡괭이질을 했다.
 “힘을 내라. 힘을 내! 이것만 끝내면 자유롭게 풀어주겠다!”
 채찍을 쥔 십장들이 뒤에서 연신 인부들을 격려했다. 인부들은 그 말을 듣고 더욱 힘을 내어 곡괭이질을 하였다.
 
 인부들의 중간에 있는 양인명(梁仁明)은 초조한 얼굴로 동굴을 포위하고 있는 사내들을 훔쳐보았다.
 양인명은 비쩍 마른 체형에 흰머리가 희끗희끗해서 오십 대 초반의 늙은이로 보였다. 그러나 외모와는 달리 그는 이제 마흔을 갓 넘겼을 뿐이었다.
 양인명은 자신의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도 몰랐다. 열다섯의 나이에 이곳에 들어온 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곡괭이질을 하느라 세월의 흐름을 완전히 잊었기 때문이었다.
 
 황하마저 마를 정도로 극심한 가뭄이었다. 밑의 두 동생이 굶어 죽었고 위의 형이 팔려 나갔다. 끝내는 큰누나마저 기루로 팔려갔다. 양인명은 누나의 앞을 막고 가지 말라고 애원을 하였다.
 그러나 부모는 그런 양인명을 꾸짖었다. 누나는 여기 있으면 굶어 죽을 것이라고, 차라리 기루로 가는 것이 행복할 것이라고.
 그러나 이제 열두 살 먹은 누이마저 기루로 팔려가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다 들어온 일이 광산 일이었다.
 이레에 은자 반 냥이란 말에 눈이 뒤집혔다. 그래서 뒤도 안돌아보고 일에 자원했다. 그때까진 몰랐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선금으로 금화 두 냥을 받았다. 그 금화 두 냥을 가족에게 주고 마차에 실려 몇 날 며칠을 여행했다. 낮은 피해 밤만 하는 여행이었다. 정상적인 일이라면 어찌 밤에 길을 재촉할까. 그래도 돈에 눈이 어두워 뭔가가 잘못되었는지를 몰랐다. 아니 마음 깊은 곳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더라도 스스로 그것을 부인하였을 것이다. 그에겐 광산 일이 마지막 희망이었으므로.
 그래서 너무나 늦게 알아차렸다.
 그는 이름 모를 골짜기에서 무려 이십오 년을 썩은 것이다.
 
 “뒤를 보지 마!”
 그가 자꾸 뒤를 보자 옆에서 일하던 장달(長達)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들이 있는 쪽은 광장 크기였으나 동굴의 입구는 허리를 숙여야 간신히 빠져나갈 것처럼 작았다. 그 작은 입구 앞을 예기(銳氣)를 풍기는 무인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들의 실력으론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사람들.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내리치지 않는 한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였다.
 그 무인들의 앞엔 사람을 위압하게 만드는 기도를 풍기는 청수한 중년인이 있었다. 언뜻 보면 양인명과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그러나 그는 양인명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다. 중년인은 심후한 내공으로 노화를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틀림없나?”
 양인명이 속삭였다.
 장달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틀림없는 남궁천(南宮天)이야.”
 골짜기로 들어온 이후 끊임없이 곡괭이질을 해야 했다. 빠져나갈 길은 오직 죽음뿐이었다.
 매해 수많은 사람들이 힘든 노역(勞役)에 못 이겨 죽어나갔고, 죽어나간 수만큼 많은 자들이 다시 충원되었다.
 충원되는 사람들 중엔 나라에 죄를 지은 죄수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이곳은 사형수들마저 끌어올 정도로 힘이 있는 자들이 만든 또 하나의 감옥. 애초에 은자 반 냥을 준다는 말도 미끼에 불과했던 것이다.
 장달은 정덕(旌德)의 뒷골목을 다스리는 흑사회의 일원이었다. 살인을 저지르고 관아에 갇혀 있다 이곳까지 끌려왔다.
 정덕은 남궁세가의 본거지인 안휘 황산(黃山)의 바로 옆.
 창기의 기둥서방이나 하고 길거리에서 좌판을 하는 상인들의 푼돈이나 갈취하는 흑사회라고 해도 그 유명한 남궁세가를 모를 리 없다. 아니 무림 세가의 비위를 건드렸단 몰살당하기 십상이니 마주치면 피하기 위해서라도 상대를 더 잘 알아야 했다.
 저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중년인은 틀림없는 남궁천이었다.
 양인명의 얼굴도 장달처럼 암울하게 변했다.
 그도 이곳에서 수많은 흑사회의 인간을 만났고, 덕분에 강호에 대해 적잖이 알고 있었다.
 남궁세가라면 안휘(安徽)에 자리 잡은 유명한 무림 세가이다.
 구파일방과 더불어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육대세가 중 하나인 남궁세가가 왜 죄수들을 음성적으로 데려온단 말인가?
 인부를 쓰지 않고 죄수들을 데려온다는 것은 숨기고 싶은 것이 있다는 뜻이다.
 그럼 볼일을 다 보면 어떻게 될까?
 살인멸구(殺人滅口)!
 양인명과 장달 곁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던 사람들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남궁천의 뒤엔 두 명의 청년이 더 있었다.
 좌측에 있는 청년은 단단한 체형의 소유자로 온몸에서 예기(銳氣)를 풍기는 이십대 중반의 청년이었고, 우측의 청년은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잘생긴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양인명이 그들을 보고 물었다.
 “가주의 뒤에 있는 두 사람은 누구지?”
 장달이 대답했다.
 “소신검(小神劍) 남궁일(南宮逸)과 옥기린(玉麒麟) 남궁유룡(南宮游龍). 이복형제로 가주의 첫째와 둘째 아들이지.”
 “아들들까지 데려오다니 때가 다 된 모양이야.”
 양인명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때라면?”
 “저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때! 우리가 죽을 때!”
 “으음…….”
 양인명의 말을 듣던 사람들이 신음을 흘렸다.
 온갖 패류(悖類)들이 섞인 이 골짜기에서 순진한 양민이었던 양인명이 이제껏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예리한 판단력 덕분이었다. 인세의 지옥 속에서 양인명의 판단력은 극도로 발달되었고, 그의 예측은 지금껏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다른 때는 혼자만 오던 남궁천이 자식까지 데려왔다는 것. 그것은 오랜 시간 끌어온 작업들이 다 끝나간다는 뜻이었다.
 ‘도망가야 한다.’
 양인명을 위시한 눈치 빠른 이조의 수인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동굴의 입구는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철통같이 막고 있었다.
 곡괭이질 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앞 조의 수인들이 지친 듯 헐떡거렸다.
 “교대!”
 뒤에서 십장이 외쳤다.
 헐떡거리던 수인들이 물러나자 양인명이 속한 조가 앞으로 나서 곡괭이질을 시작했다.
 양인명은 곡괭이를 머리 위까지 들어 올렸다 힘껏 내리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이 지르르 울렸다.
 그러나 푸른빛이 감도는 벽엔 손톱으로 할퀸 듯한 미미한 자국만이 났다.
 이 푸른 벽은 그지없이 단단했다. 게다가 이상한 탄성(彈性)마저 있어 조금만 각도가 어긋나면 손목을 삐기 일쑤. 각도를 제대로 맞춘다 해도 전력을 다해 내리치지 않으면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덕분에 수인들은 조금의 요령도 피우지 못했다.
 수인들이 그토록 많이 죽어나간 것도, 양인명이 이토록 겉늙은 것도 바로 이 푸른 벽 때문이었다.
 그는 다른 수인들과 열을 맞추어 곡괭이질을 계속하였다. 한참동안 곡괭이질을 하는데 손끝에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양인명은 흘끗 장달을 보았다. 장달도 고개를 끄덕였다.
 장달도 이상한 감각을 느낀 것이다.
 “뭔가가 걸렸습니다.”
 다른 곳에 있던 수인이 소리를 질렀다.
 ‘눈치 없는 자식…….’
 양인명은 입술을 깨물었다.
 “비켜봐라!”
 화복의 중년인, 신검(神劍) 남궁천이 앞으로 나와 푸른 벽을 향해 일장을 가했다.
 꽝 하는 굉음과 함께 푸른 돌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남궁천은 다시 벽을 향해 장력을 날렸다. 무겁고 날카로운 벽산장(劈山掌)의 위력에 곡괭이로도 꼼짝 않던 벽이 움푹움푹 파이기 시작했다.
 남궁천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이 푸른 벽은 인간의 진력(眞力)을 흡수하였다 몇 배로 튕기는 이상한 성질이 있었다. 그가 세가의 무인들을 동원하지 않고 인부들을 동원한 것은 이 푸른 벽의 특성 때문이었다.
 몇 번 더 장력을 날리자 푸른 벽이 움푹움푹 파였다. 그리고 파인 벽 속에서 금광(金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무인들의 눈이 빛났다.
 “제가 해보겠습니다.”
 남궁천이 지친 듯하자 남궁천의 장자(長者) 소신검 남궁일이 나섰다.
 남궁일은 양손을 벽에 대고 비비기 시작했다. 그러자 벽이 날카로운 칼로 깎인 듯 퍽퍽 파이기 시작했다.
 남궁천의 얼굴엔 흡족한 빛이 어렸다.
 남궁일이 사용하는 장법은 도자장(刀子掌). 장력이 칼처럼 날카로워 붙여진 이름이었다. 남궁일의 공력이 남궁천만큼 깊었다면 남궁천보다 더욱 수월하게 벽을 깎았을 것이다.
 남궁일은 남궁세가의 자녀답게 검법을 주로 익혔다. 검법을 주로 익힌 남궁일이 도자장 같은 기학을 어떻게 익혔을까. 남궁일은 검기를 장법에 실을 경지가 되어 도자장을 자연적으로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넓은 이마. 흑백이 또렷한 맑은 눈. 준령처럼 우뚝 솟은 코. 옥기린이란 별호처럼 남궁유룡의 얼굴은 준수하였다. 그 준수한 남궁유룡의 얼굴은 형의 도자장을 보고 미미하게 일그러졌다.
 남궁유룡은 이제야 벽공장(碧空掌)의 요령을 익히고 있었다. 남궁유룡의 나이 이제 겨우 스물. 아무리 무림 세가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무술을 연마했다지만 권법가도 아닌 검사가 스무 살의 나이에 벽공장에 입문하는 것은 빠른 성취. 어디로 가든 기재(奇才) 소리를 들을 만하다.
 그러나 그렇게 따지면 남궁일의 나이는 스물다섯에 불과하다. 공력의 수위가 낮아 공간을 격하지는 못하지만 장법의 대가가 되어야 발휘할 수 있는 도자장을 스물다섯의 나이에 검기로 응용한다는 것은 천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남궁유룡에게 남궁일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벽이었다. 그 벽은 날이 갈수록 더욱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남궁일이 뒤로 물러나자 다른 세가의 무사들이 벽에 달라붙었다. 벽은 더욱 빠른 속도로 깎여나가고 있었다.
 양인명 일행은 주위를 살핀 후 눈빛을 교환했다.
 수인들의 얼굴도, 남궁천 부자의 얼굴도 흥분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입구를 지키는 무사들의 경계는 더욱 삼엄하게 변해갔다. 그걸 본 양인명 조는 자신들의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그들에게 자유를 줄 생각이라면 입구를 지키는 무사들의 눈빛이 저리 은밀해질 리 없었다.
 순식간에 벽이 다 깎이고 황금빛 문이 드러났다. 황금빛 문엔 아수라(阿修羅)와 제석천(帝釋天)의 싸움이 정교하게 묘사가 되어 있었다.
 남궁천이 앞으로 나와 낡은 양피지를 보며 신중하게 문을 더듬었다.
 크르릉 소리와 함께 문이 저절로 위로 올라갔다.
 “열렸다!”
 동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남궁세가의 입장에선 수대에 걸친 숙원 사업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고 수인들의 입장에선 드디어 약속된 자유를 되찾은 것이다.
 남궁세가의 인간들이 하나 둘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모두 안으로 들어가자 무사들이 서서히 동굴을 포위하고 좁히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살기를 느낀 수인들의 얼굴이 서서히 두려움으로 물들어갔다.
 무사들은 검을 뽑았다. 그제야 수인들은 사태를 파악했다.
 “아, 아무 말도 안 할 테니 살려주십시오.”
 몇몇 수인들이 무릎을 꿇고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걸 본 무사들의 얼굴에 망설임의 빛이 어렸다.
 아무리 명(命)이라 그래도 명문의 무사로서 반항할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칼질을 한다는 것은 못할 짓이었다.
 양인명 일행은 계속 주위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다 무사들이 망설이는 틈을 타 재빨리 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무사들은 미처 그것을 막지 못했다.
 양인명 일행이 문 안으로 뛰어들자 뒤를 이어 다른 수인들마저 문 안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막아!”
 그제야 무사들은 황급히 문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입구 쪽에서 새로 나타난 문까진 거리가 너무 멀었다.
 “모두 비켜!”
 무사들은 검으로 수인들을 마구 베며 문 쪽으로 다가갔다. 뒤에서 무사들이 접근하는 것을 보고 수인들은 필사적으로 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렇게 마구 들어오던 수인들 중 한 명이 문 옆의 벽면을 건드렸다. 무엇을 어떻게 건드렸는지 문이 그르렁 소리를 내며 저절로 닫히기 시작했다.
 뒤에 남아 있던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황급히 문에 다가가 문을 열려고 노력을 하였지만 끝내 문은 열리지 않았다.
 
 실내는 손가락 끝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웠다.
 가장 선두에 있던 남궁일이 준비한 화섭자(火攝子)에 불을 붙였다.
 넓은 석실이 불빛에 드러나자 남궁천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본래 남궁세가의 사람들은 성정이 차가웠다. 그중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천의 성정은 더욱더 차가웠다. 그런 남궁천이 호흡을 놓칠 정도로 흥분한 것이다.
 이곳은 오백 년 전 한 검도 고수와 세상을 어지럽힌 대마두가 싸운 장소이다.
 그 검도 고수는 남궁세가의 오대 가주인 신룡검(神龍劍) 남궁화(南宮華)였다.
 당시의 천하제일 고수는 기라성 같은 구파일방의 고수가 아닌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화였다.
 남궁화는 나이 서른에 가문의 모든 검법을 대성하고 나이 마흔에 가문의 검법을 한 차원 높게 끌어올린 희대의 천재였다.
 당시에 세상을 어지럽힌 희대의 대마두가 있었으니 그 마두는 혈마존(血魔尊) 낙유성(落流星)이었다. 혈마존의 강함은 상상을 초월하여 천하제일의 고수라던 남궁화로서도 필승을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일세의 대협 남궁화는 세상을 위해 낙유성을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모처에 함정을 만든다. 당시에 남궁화의 세수(世壽)는 일흔둘. 새로운 심득을 막 깨달은 상태로, 그 심득을 정리해 가문에 남길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남궁화는 한 장의 서찰을 가문의 비고에 남기고 모처로 떠난다.
 그 서찰엔 혈마전과 대결을 벌일 장소와 대결에서 살아남으면 심득을 정리해놓을 테니 찾아오라고 적혀 있었다.
 원래 그 서찰은 행여 혈마존이 남궁화와의 대결에서 살아남아도 함정에서 못 빠져나오고 늙어 죽을 정도로 오랜 시간, 약 백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이 되도록 남궁화가 안배를 하였다. 그러나 몇 가지 착오가 생기는 바람에 무려 오백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남궁천의 대에 이르러 발견이 된 것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오백 년이면 강산이 아니라 왕조가 몇 번 바뀔 시간이었다. 역사의 부침 속에 수많은 고수가 명멸했고 혈마존과 남궁화의 존재는 까맣게 잊혀졌다.
 그러다 세가의 비고(秘庫)에서 우연히 발견된 서찰이었다.
 처음엔 누군가 심심파적으로 써놓은 장난인 줄 알았다. 그러나 서찰의 뒤에 빽빽하게 적힌 구결(口訣)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놀랍게도 그 구결은 어검(馭劍)의 구결 중 일부였던 것이다.
 남궁천은 서고의 한쪽에 먼지가 잔뜩 쌓인 채 뒹굴고 있는 세가연기(世家年紀)를 뒤적였다.
 
 -태조(太祖) 삼년(三年). 남궁화(南宮華), 가주(家主) 위(位)에 오르다.
 -태조(太祖) 오년(五年). 남궁화, 무림맹주(武林盟主)의 위에 오르다.
 -태조(太祖) 십오년(十五年). 남궁화, 마두(魔頭)를 처치하기 위해 세가를 나서다.
 
 그리고 돌아왔다는 소식은 적혀 있지 않았다.
 태조는 송(宋) 태조 조광윤(趙匡胤)을 말한다. 연대로 따지면 대략 오백 년 전. 어릴 때 할아버지한테 구전으로 듣던─다분히 허풍이 실린─전설과 세가연기와 서철의 내용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때부터 세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양피지에 적힌 곳을 찾았다. 그동안 들인 노고는 수만금. 이제 드디어 오랜 노고를 보상받을 때가 온 것이다.
 
 남궁천이 몇 걸음 걷다 소란이 일자 뒤를 돌아보았다. 웬 시커먼 놈이 곡괭이를 든 채 안으로 뛰어들었다.
 남궁천은 죄수를 향해 장력을 쳐냈다. 파앙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힘이 범달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천하고수의 장력을 한낱 건달이 막을 수 없는 일. 범달은 가슴이 뭉개진 채 피를 토했다.
 범달의 뒤를 이어 장이가 뛰어들었다. 남궁천은 장이를 향해 장력을 다시 장력을 쳐냈다. 우두둑 소리와 함께 장이의 갈비뼈가 모조리 부러졌다.
 거의 동시에 양인명이 뛰어들었다. 장이는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서다 양인명에게 걸려 넘어졌다. 동시에 남궁천의 장력이 양인명에게 짓쳐들었다. 장력은 양인명의 몸 위에 쓰러진 장이에게 격중되었다. 장이의 몸이 번개에라도 맞은 것처럼 펄쩍 뛰다 내려앉았다.
 “쿨럭! 쿨럭!”
 양인명은 가슴이 답답해지자 기침을 토했다. 답답한 가슴이 시원해 졌다. 장이가 방패가 되어 충격을 완화시킨 것이다.
 남궁천이 다시 손을 들었다.
 그때 우르르 사람들이 밀려들어 왔다. 죽음의 공포에 의해 눈이 벌게진 수인들이었다.
 “막아!”
 남궁천은 안색이 변하여 소리쳤다.
 남궁천과 남궁일, 남궁유룡은 등에서 장검을 뽑았다. 그리고 수인들을 향해 휘두르기 시작했다. 수인들의 선두에 있던 자가 가슴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그러나 뒤의 수인들은 그것을 모르고 계속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남궁천 일행은 결국 수인들에 의해 통로로 밀려갔다. 통로는 위로는 머리 하나 정도의 여유, 옆으로는 팔꿈치 하나 정도의 여유밖에 없었다. 그러니 장검을 마음껏 휘두를 수 없었다. 게다가 남궁천 부자의 선두는 가장 무공이 약한 옥기린 남궁유룡이었다. 남궁유룡은 수인들에게 밀려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고, 남궁천과 남궁일은 남궁유룡이 앞을 가로막은 덕분에 제대로 손도 못 쓰고 밀려났다. 얼마나 뒤로 밀렸을까 남궁유룡은 거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수인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방패로 삼아 무작정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저들을 죽여!”
 “모두 죽여버려!”
 동료의 시신을 밟고 밀고 가던 수인들은 눈이 뒤집혀 외쳤다.
 사람을 멋대로 끌고 와 암흑 속에 처박아두더니 용도가 다했다고 죽이려 들다니! 오랜 시간 억눌러왔던 수인들의 한이 드디어 폭발한 것이다.
 선두에 있던 수인들이 악머구리처럼 선두의 남궁유룡을 손톱으로 할퀴었다. 남궁유룡의 상의가 순식간에 갈가리 찢겼다. 그의 상체가 손톱에 찢겨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변했다.
 “유룡아!”
 “유룡아!”
 남궁일과 남궁천이 대경해 소리쳤다.
 “헉! 헉! 형, 아버지, 도와줘요!”
 남궁유룡이 소리쳤다. 얼마나 칼을 휘둘렀는지 어깨가 빠진 듯 칼을 들어 올릴 수 없었다. 그러나 통로가 너무 좁아 도저히 교대를 할 수 없었다.
 “조금만 힘을 내거라!”
 가장 뒤에 있던 남궁일이 남궁유룡의 등 뒤에서 연신 장력을 날렸다. 장력에 맞은 수인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러나 눈이 뒤집힌 다른 수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덤벼들었다.
 “유룡아! 조금만 버텨라!”
 남궁천이 안타까운 얼굴로 소리쳤다.
 
 한참 동안 뒤로 밀려나던 남궁천은 공기의 흐름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남궁천은 절정고수이다. 일반인이 전혀 못 느끼는 미세한 공기의 흐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양피지의 도형을 생각했다. 그 도형대로라면 이곳이 첫 번째 갈림길이었다.
 “정신 차려라!”
 남궁천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앞에 있던 남궁일의 옷깃을 잡아 뒤로 던졌다. 남궁일은 남궁천의 힘에 밀려 갈라진 다른 통로로 들어갔다.
 남궁천은 다시 남궁유룡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남궁유룡의 상의는 갈가리 찢겨 옷깃을 잡을 수 없었다. 남궁천의 손은 간발의 차이로 남궁유룡의 상체를 스쳐 지나갔다. 남궁유룡은 계속 수인들에게 쫓겨 뒤로 밀려났다.
 “유룡아!”
 남궁천이 안타까운 어조로 소리쳤다.
 분노가 폭발해 눈이 뒤집힌 수인들이 남궁천에게 달려들었다. 덕분에 남궁천과 남궁일은 다른 골목으로 밀려들어갔다.
 
 수많은 갈림길을 지났다. 남궁천과 남궁일 부자는 흩어지지 않았다. 흩어지면 더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한참 동안 수인들에게 쫓겨 뒤로 밀려나는데 어디선가 구릉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순간, 벽에서 쐐액 하는 소리와 함께 강전(鋼箭)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워낙 많이 들어오다 보니 그중 누군가가 함정의 기관 장치를 건드린 것이다.
 양피지의 도해를 통해 강전이 허리 위치에서 발사된 것을 미리 알고 있던 남궁천은 남궁일을 붙잡고 재빨리 땅에 엎드렸다.
 그러나 수인들이 그것을 알 리 없었다. 강전에 격중당한 수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강전이 다 날아오자 남궁일은 일어나려고 하였다. 그러자 남궁천이 다급히 남궁일의 머리를 눌렀다.
 “계속 엎드려 있어!”
 남궁일은 의아한 얼굴로 남궁천을 보았다. 다음 순간 쐐액 하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원반이 그들 쪽으로 쏘아졌다. 원반은 수인들의 머리를 사정없이 날렸다. 그것을 본 수인들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뒤로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제야 남궁천과 남궁일은 지친 얼굴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들의 몸은 수인들의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수인들은 되돌아가다 갈림길을 만나면 흩어지기 시작했다. 갈림길은 수없이 나 있었고, 수인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함정의 깊은 곳에서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연신 들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수인들의 비명이 들렸다.
 “이제 어떻게 하지요?”
 남궁일이 지친 얼굴로 물었다.
 “기관의 중추를 찾아야 한다. 그곳에 선조께서도 계실 것이다. 거기서 선조의 유진(遺眞)을 얻은 후 기관을 정지시키고 유룡을 찾자.”
 남궁천이 피곤한 어조로 대답했다.
 
 
 기연(奇緣)
 
 남궁천과 남궁일은 피범벅이 된 채 장방형의 석실로 들어갔다.
 장방형의 석실 중간엔 포단(蒲團)이 있었고, 포단의 위엔 왼팔과 양다리가 잘린 백염백발(白髥白髮)의 노인이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앉아 있었다.
 “불민한 후손 남궁천이 선조께 인사를 올립니다.”
 남궁천은 감격 어린 얼굴로 불구의 노인에게 구배를 올렸다.
 노인이 바로 오백 년 전의 천하제일 고수 남궁화였다.
 남궁천과 남궁일의 얼굴엔 경외의 빛이 어렸다.
 무려 오백 년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남궁화는 생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것이 남궁화의 생전의 경지가 얼마나 높았는가를 말해주는 듯하였다.
 남궁화의 무릎엔 한 권의 서책과 한 자루의 검이 놓여 있었다.
 오백 년의 시간이 흐른 탓인지 낡을 대로 낡은 서책은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남궁천은 서책을 펼쳐보았다. 서책의 서두엔 후인을 위해 검법을 남겨두었으니 이 검법을 얻은 자는 검을 남궁세가에 전해주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삼매진화를 이용해 서책을 태워버렸다. 남궁세가의 후인이 왔으니 서책은 소용이 없는 것이다.
 남궁천은 검을 뽑아 한쪽에 두고 빈 검갑을 공력을 발휘해 반으로 쪼갰다. 넓은 검갑에는 깨알만 한 글씨로 구결이 가득 적혀 있었다. 남궁화가 비고에 남긴 편지의 내용 그대로였다.
 서책에 있는 검법은 혹시 외인(外人)이 이곳으로 들어올 것을 대비해 남긴, 검갑에 실린 검법 중 전반부의 검법이었다.
 남궁화는 자손을 위해 여러 가지로 심력을 기울인 것이다.
 
 …하늘이 도와 마두와 양패구상(兩敗俱傷)을 하였노라. 마두 또한 중상(重傷)을 입었으니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리라. 다행이 잔명(殘命)이 남아 심득(心得)을 정리하노라. 후인은 이 심득을 협의를 위해 사용하기 바란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름 없는 검법의 구결은 삼 단계로 나뉘어 있었다.
 전반부는 이의기용검술(以意氣用劍術)!
 검기(劍氣)를 사용해 검을 사용하는 법. 즉 검술을 말한다.
 중반부는 이의강용검술(以意쾝用劍術)!
 검강(劍쾝)을 사용하는 검술을 말한다.
 후반부는 이어검용검술(以御劍用劍術)!
 전설의 어검술(御劍術)을 말한다.
 구결을 읽던 남궁천의 얼굴은 희열에 들떴다.
 평생을 검도에 매진하는 고수들이 말년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성취하는 게 검강지도(劍쾝至道)이다. 그것을 넘어서 어검(御劍)의 길을 인도하는 검법이라면 능히 절세의 검법이라고 할 수 있다. 남궁화는 이의강용술의 중반부까지 터득했다. 그가 이어검용술마저 터득했으면 능히 혈마존을 이겼을 것이다.
 수십 년의 탐색과 수만금의 투자가 조금도 아깝지 않은 수확이었다.
 “감사합니다, 선조님. 소손, 선조님의 유지를 받들어 기필코 남궁세가를 천하제일 세가로 키우겠습니다.”
 남궁천은 남궁화의 유체를 대하며 굳은 맹세를 하였다.
 사람은 자신이 보기 원하는 것만을 본다고 했던가.
 남궁화는 다만 협의를 위해 자신의 절학을 사용하기 바랐지 세가를 반석 위에 올려놓으라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다.
 그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마두와 함께 죽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는 일세의 대협(大俠)이었다. 남궁천은 멋대로 남궁화의 유지를 왜곡한 것이다.
 남궁화는 자신의 후예가 이곳을 찾기 위해 수많은 생명을 강제로 끌고 와 죽인 것을 알았다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일세의 대협이지만 그 역시 인간. 그는 자신의 후예가 자신처럼 대협이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죽어!”
 양인명은 수인들과 함께 악을 쓰며 남궁유룡에게 돌진했다. 남궁유룡은 수인들에게 밀리며 정신없이 안으로 쫓겨 들어갔다.
 남궁유룡의 준수한 얼굴에 언뜻 겁먹은 기색이 스쳤다. 든든한 아버지와 헤어져 혼자 죽음의 위기에 처하니 겁을 먹은 것이다.
 겁먹은 남궁유룡의 얼굴을 본 양인명의 얼굴은 분노로 불타올랐다.
 수많은 죄수들이 이곳에서 이름 없이 죽어나갔다.
 자신 또한 저들의 욕망으로 인해 이곳에서 젊은 청춘을 다 소진하고 죽음의 위기에 빠졌다.
 남궁유룡의 얼굴이 잘난 듯 뒷짐을 지고 서 있던 남궁천과 겹쳐보였다.
 “죽어라! 호로새끼야!”
 양인명은 악을 쓰면서 다른 수인들과 함께 남궁유룡을 할퀴었다.
 남궁유룡은 피투성이가 되어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갑자기 벽에서 강전이 날아와 수인들을 덮친 것이다.
 강전은 쐐액 소리를 내며 날아와 수인들의 몸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수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땅에 쓰러졌다. 대열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수인들에게 시커먼 원반이 날아왔다. 수인들의 목이 잘라지며 붉은 피가 천장까지 솟구쳤다.
 그 틈을 타고 남궁유룡이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놈을 잡아라! 저놈은 통로를 알고 있을 거야!”
 그제야 이성을 되찾은 양인명이 소리쳤다.
 정신을 차린 수인들이 황급히 남궁유룡의 뒤를 쫓았다. 남궁유룡은 이 안의 지리를 몰랐지만 수인들이 그것을 알 리 없었다.
 사방에서 강전과 원반이 날아들었다. 남궁유룡의 옆구리에도 어느새 강전이 깃털만 남긴 채 깊이 꽂혀 있었다.
 뒤를 쫓던 수인들은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은 수인들은 아득바득 남궁유룡을 쫓아왔다. 그렇게 쫓고 쫓기며 한참 동안 달리는데 갑자기 함정이 작동을 멈췄다. 남궁천이 남궁화의 유진을 얻고 기관을 정지시킨 것이다.
 강전의 습격이 사라지자 남궁유룡은 더욱 빨리 달렸다. 한참을 달리는데 그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벽들이 일제히 열리기 시작했다. 기관의 중추에 있던 남궁천이 모든 비밀 통로를 개방한 것이다.
 정신없이 달리던 남궁유룡은 열리기 시작하는 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정신없이 남궁유룡을 쫓아오던 수인들도 남궁유룡의 뒤를 이어 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게 실수였다.
 “죽어라, 개자식들아!”
 남궁유룡이 노갈(怒喝)을 터트리며 검을 휘두른 것이다.
 남궁유룡이 이제껏 제대로 검을 사용하지 못한 것은 통로가 워낙 좁아서였다. 그러나 검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싸늘한 검광이 석실을 가득 메웠다.
 “크악!”
 “으아악!”
 구슬픈 비명이 석실을 울렸다.
 
 얼마 후, 남궁유룡은 옆구리를 붙잡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의 검에선 진득한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그의 앞엔 수인들의 시신이 무더기로 널려 있었다.
 “으윽!”
 “사, 살려줘!”
 요혈을 비켜 맞은 수인들이 바닥에 누워 헐떡거렸다.
 남궁유룡은 독기(毒氣)가 가득 어린 얼굴로 수인들을 노려보았다.
 “이 벌레들이 감히!”
 벌레들이 감히 천하의 옥기린에게 수모를 준 것이다!
 남궁유룡은 신음을 흘리는 수인들을 검으로 찌르기 시작했다.
 “악!”
 “으악!”
 처참한 비명이 석실을 가득 울렸다. 남궁유룡은 검으로 베어 죽이는 게 성에 차지 않는지 발로 수인들의 머리를 짓뭉개 터트리기 시작했다.
 “헉, 헉, 천벌을 받을 놈.”
 그걸 본 양인명은 바닥에 누워 헉헉거리며 중얼거렸다.
 남궁유룡은 열다섯 살 때 시녀를 간살(姦殺)한 이상 성격자였다. 타고난 외모, 치밀한 성격이 그런 그의 품성을 가려주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조차 그의 이상 성격을 몰랐다.
 벌레 같은 놈에게 당한 수치가 그런 그의 성질을 단단히 건드리고 있었다.
 “천벌이라고?”
 남궁유룡은 냉소를 지으며 양인명에게 다가갔다. 흑백이 뚜렷한 아름다운 그의 눈은 살기로 인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천벌? 흥! 얼마든지 내리라지. 그러고 보니 네놈이 제일 앞에 서서 나를 괴롭혔지?”
 남궁유룡은 칼을 들어 양인명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잠자리의 날개를 떼는 것처럼 양인명의 사지를 잘랐다.
 너무 큰 고통에 양인명은 비명도 못 지르고 입만 뻐끔뻐끔 벌렸다.
 그런 양인명의 얼굴을 보는 남궁유룡의 얼굴이 흥분으로 인해 벌겋게 상기되었다.
 손맛이 괜찮았다. 생각해보니 얼마 전부터 자신을 쳐다보는 시녀, 취앵의 눈길이 심상치 않았다. 가문으로 돌아가면 취앵을 유혹해 다시 손맛을 느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대로 죽어라!”
 남궁유룡은 사지가 잘려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양인명에게 퉁명스럽게 말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크윽!”
 남궁유룡은 입술을 깨물고 허리에 깊게 박힌 강전을 뽑았다. 그리고 바지를 찢어 허리를 묶은 다음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가 있는 곳은 장방형의 석실이었다. 석실의 중간엔 소름 끼치는 마기(魔氣)를 풍기는 붉은 옷의 외팔이 노인이 정좌(正坐)를 하고 있었다.
 “이자가 혈마존이군.”
 남궁유룡은 노인을 보고 중얼거렸다. 보는 사람을 질리게 하는 이런 마기는 마도의 인물이 아니면 풍기기 힘들었다.
 혈마존 또한 남궁화처럼 시신이 조금도 훼손이 되지 않았다. 혈마존은 눈을 부릅뜨고, 남은 한 손을 품에 집어넣은 채 숨을 거두었다.
 그걸 본 남궁유룡은 눈을 빛냈다. 혈마존 같은 천하의 고수가 죽는 순간에 찾는 물건이라면 평범할 리 없었다.
 그는 통증조차 잊고 혈마존에게 다가가 품을 뒤졌다. 다음 순간 혈마존의 유체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이런!”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서던 남궁유룡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혈마존이 앉아 있던 자리엔 어린아이의 머리통만 한 커다란 구슬과 작은 옥병이 놓여 있었다.
 남궁유룡은 구슬을 들어 살펴보다 실망에 찬 얼굴을 하였다.
 구슬은 아무 특색도 없는 시커먼 돌에 불과했다.
 “천하의 고수가 죽어 돌덩어리를 남기다니. 이거 실망이군.”
 그는 돌 구슬을 아무렇게 던지고 옥병을 집어 들었다. 옥병에서 따스한 기운이 손에 스며들더니 온몸에서 활기가 솟아올랐다.
 “이럴 수가!”
 그는 옥병을 자세히 살펴보다 흥분으로 손을 벌벌 떨었다.
 “만년온옥(萬年溫玉)! 만년온옥이라니!”
 놀랍게도 옥병은 만년온옥이었다.
 만년온옥. 천산의 온옥이 한 덩어리로 응축이 되며 자연스럽게 지기(地氣)를 품은 보물이 된다. 그 보물이 바로 만년온옥이다. 범인이 가지고 있으면 평생 무병장수하고 무림인이 가지고 있으면 저절로 공력이 급증. 양강지력을 익힌 자는 성취가 배가된다는 무가지보(無價之寶)이다.
 이런 무가지보를 병으로 쓰다니 내용물은 얼마나 귀한 것일까?
 그는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향긋한 냄새가 코로 들어가며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감돌았다.
 그는 안을 들여다보았다. 유백색의 액체가 병 안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만년온액(萬年溫液)!”
 그는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만년온액(萬年溫液).
 만년온옥이 한 덩어리로 응축이 되며 저절로 형성된 정화를 말한다.
 한 방울만 먹어도 선체(仙體)를 이룰 수 있다는 전설의 지보가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크하하하! 고맙소! 선배!”
 그는 기쁨으로 인해 광소를 터트렸다.
 혈마존은 중상을 입은 채 남궁화에게 쫓겨 이 석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중상을 치료하기 위해 만년옥액을 마시기 위해 손을 안으로 집어넣다 그대로 숨을 거뒀을 것이다.
 “남 좋은 일만 시켰구려. 흐흐흐…….”
 남궁유룡은 먼지만 남은 포단을 보고 음충맞게 웃었다.
 “어떻게 하나…….”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시킨 남궁유룡은 옥병을 보며 중얼거렸다.
 상의가 다 찢어졌으니 숨길 데가 없었다. 이대로 손에 들고 가면 부친이 볼 테고 그렇게 되면 뺏길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물론 남궁천이 혼자 다 먹을 리는 없고 그에게도 나눠주겠지만 남궁유룡은 천하의 영약을 가족들과 함께 나눌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남궁천은 이 석실의 도해를 가지고 있다. 조금만 있으면 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다.
 남궁유룡은 잠시 망설이다 그 자리에서 영약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마셨다. 그리고 옥병을 깨뜨려 석실 밖의 시체 더미 안에 숨겼다. 아무리 남궁천이라도 시체 더미를 뒤지지 않을 것이니 완벽한 증거 인멸이었다.
 그리고 남궁유룡은 석실의 한 곳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운기(運氣)를 하기 시작했다.
 만년옥액의 영기가 단전으로 모이며 단전이 점점 뜨거워졌다. 그러다 단전이 붉은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붉은색이 점점 짙어지더니 황금색으로 변화하였다.
 
 황금빛의 영기(靈氣)는 단전을 지나 고환 밑의 회음(會陰)으로 들어갔다. 회음을 지나 꼬리뼈 밑의 장강(長强)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등뼈를 통해 주욱 올라오기 시작했다. 독맥(督脈)을 통과한 영기는 사통팔달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영기는 저절로 정수리 부분 백회(百會)와 전정(前頂)을 지나 인당(印堂)을 지난 후 임맥(任脈)을 통해 내려갔다.
 선배 고인이 도와줘야 간신이 타통할 수 있다는 임독양맥이 아무 도움 없이 저절로 열렸다. 선천진기(先天眞氣)를 연마하는 관문인 생사현관(生死玄關)의 굵은 빗장이 빛나는 영기 앞에서 불 앞의 얼음처럼 녹아 사라졌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남궁유룡의 몸이 아이처럼 작아졌다 어른처럼 커졌다. 피부가 계속 벗겨지며 은은한 백광(白光)이 빛나는 새하얀 피부가 드러났다.
 필요 없는 악골(惡骨)은 모조리 제거하고 새로이 몸을 형성하는 탈태환골(奪胎換骨)을 이룬 것이다.
 운기로 정신이 없는 가운데서도 남궁유룡의 마음은 흥분으로 들떴다.
 그러나 영기는 생사현관을 타통한 뒤에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응?’
 남궁유룡의 얼굴이 곤혹으로 물들었다.
 그가 전수받은 창궁심법(蒼穹心法)은 임독양맥과 생사현관을 타통하기 위한 심법이었다. 그는 생사현관을 타통한 뒤에 대주천을 운기하는 창궁무애심법(蒼穹無涯心法)은 아직 전수받지 않았다. 그런데 영기는 계속 갈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남궁유룡이 어찌 이런 경우를 예상했으랴.
 ‘내친걸음이다.’
 남궁유룡은 멈추지 않고 창궁심법을 계속 운행하였다.
 지금 운기를 중단하면 주화입마에 걸린다. 약효가 다 사라질 때까진 운기를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영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온몸을 운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정수리에 있는 백회로 모이기 시작했다. 황황홀홀(恍恍惚惚)한 기분이 머리끝부터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과연 만년옥액은 천고의 영약이었다. 옥액으로 이루어진 영기는 남궁유룡의 내부에서 영성(靈性)을 갖추고 주인의 도움이 없자 스스로 갈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양광개현(陽光開顯)!
 만년옥액을 제대로 소화할 만한 심법을 운기했으면 생사현관을 타통하고 나면 삼화취정(三華聚頂), 오기조원(五氣朝元)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무학의 단계이다. 오기조원의 단계에 이르면 남궁화가 창안한 이어검용술을 마음껏 사용할 신체를 가지게 되는 것이고 남궁유룡은 천하제일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궁유룡은 만년옥액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 심법을 운기했다. 덕분에 만년옥액의 영기는 체내에서 극도로 압축이 되었고, 영기가 발생하며 전혀 새롭게 변화가 된 것이다.
 양광개현은 선도의 최종 관문이다. 양광개현이 이루어지면 정수리의 백회(百會)가 천지와 통한다. 백회가 천지와 통하면 양신(陽神)이 이루어진다.
 양신을 키우면 양신이 몸을 대신하는 시해선(尸解仙)의 경지가 된다. 그 경지는 수백 년이 흘러야 간신히 이루어지는 것이고, 수행 또한 만만치 않게 해야 하니 남궁유룡으로선 이루기 힘든 지경이지만 일단 양신이 이루어지면 길을 달리해 삼화취정, 오기조원을 이루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
 남궁유룡은 어쨌든 천하제일인이 되는 길을 밟아가는 것이다.
 ‘이럴 수가!’
 백회가 열리며 천기(天氣)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뇌가 깨끗이 씻기며 머리가 한없이 맑아졌다. 그가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무학의 요체가 저절로 이해가 되었다. 양신이 형성이 되며 또 하나의 자신이 머리를 통해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양인명은 흐린 눈으로 앞을 보았다. 남궁유룡 개자식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탈태환골을 이룬 남궁유룡의 모습은 천상에서 막 내려온 신장(神將)처럼 장엄하게 보였다.
 그 꼴을 보니 안 그래도 아픈 몸이 더욱 아파왔다. 잘린 사지에서 지독한 통증이 밀려왔다.
 너무나 분하고 억울했다. 어찌하여 악인은 저리 기연을 얻고 죄 없는 자신은 죽어가야 하는가!
 정신이 아득해지는데 남궁유룡이 집어던진 검은 구슬이 눈에 띄었다. 거기서 이상한 기운이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양인명이 있는 시체 더미에서 피가 작은 시냇물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그 피는 흘러 검은 구슬에 닿았다. 검은 구슬은 시체 더미에서 흐른 피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피를 흡수한 검은 구슬이 혈광(血光)을 내뿜기 시작했다.
 양인명은 홀린 듯이 혈구(血求)를 보았다. 혈구는 죽음 직전에 놓인 사람의 시선마저 붙잡을 정도로 사이(邪異)한 마력(魔力)을 풍기고 있었다.
 혈구는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연신 광채가 흐려졌다 밝아졌다.
 혈구를 보는 양인명의 눈이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양인명의 숨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그러더니 끝내 양인명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러나 혈구의 변화는 끝나지 않았다. 혈구에서 안개와 같은 붉은 광채가 서서히 번지기 시작했다. 그 광채가 양인명의 정수리를 통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양인명의 정수리에서 검은 기운이 나오기 시작했다.
 양인명의 유체(幽體)였다.
 검은 구슬은 전설로만 존재하는 마교의 제일 지보(至寶)로 천마신주(天魔神珠)라고 한다.
 이 천마신주엔 다양한 기능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혼(離魂)의 기능. 혼을 육신에서 분리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기능이었다.
 혈마존은 남궁유룡의 추측처럼 만년옥액을 마시기 위해 손을 품에 집어넣은 게 아니었다. 그는 천마신주를 꺼내기 위해 품에 손을 집어넣은 것이다.
 그가 만년옥액을 구했을 때는 본래의 수명이 얼마 안 남았을 때였다. 그것을 알고 그는 만년옥액을 복용하지 않았다. 다른 놈에게 만년옥액을 복용시키고 그 몸을 빼앗기 위해서였다.
 모처에 쓸 만한 젊은 놈까지 준비하고 막 대법을 실행하려던 그는 남궁화의 도전을 받았다.
 남궁화를 우습게본 그는 진다는 생각은 꿈에도 안 하고 만년옥액과 천마신주를 지닌 채 이 함정에 들어온 것이다.
 문제는 한창 싸울 때 육체의 수명이 다한 것이다. 그래도 그는 중상을 입고 간신히 남궁화를 물리쳤다.
 남궁화는 자신이 무명 검술을 다 못 익혀 양패구상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혈마존이 알면 펄쩍 뛸 일이었다.
 석실에서 혈마존은 자신의 혼을 천마신주에 봉인할 생각이었다. 그러다 누군가 안으로 들어오면 그 몸에 이혼전이대법(離魂轉移大法)을 펼쳐 혼을 교환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천마신주를 사용하기 위해선 한 사람 이상의 혈액을 흡수를 해야 한다는 것. 혈마존은 남궁화에게 한쪽 팔을 잘리며 인체의 삼 할에 달하는 피를 이미 잃었다. 그래서 가슴에 천마신주를 박고 강제로 피를 흡수시켰지만 피의 양이 부족해 천마신주는 발동이 되지 않았다. 혈마존은 허무하게 숨을 거둔 것이다.
 천마신주는 계속 불길한 혈광을 내뿜었다. 혈광은 양인명의 유체에 계속 흡수가 되었다.
 범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랫동안 수행을 한 도인의 눈에는 보이는 유체. 그 유체는 천마신주의 혈광을 계속 흡수하며 지독한 살기를 발하고 있었다.
 
 자신이 죽었다는 게 선명히 인지(認知)되었다. 오수(汚水)속에 잠겨 있는 듯 아주 기분 나쁘고 불쾌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는 남궁유룡을 보았다. 남궁유룡의 머리 위엔 어린아이 형상을 한 밝은 빛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개자식!’
 양인명의 유체가 두둥실 떠올라 남궁유룡의 머리 위에 올라왔다. 저런 나쁜 놈이 이런 밝은 빛을 지니고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양인명은 양신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어린아이 몸을 한 양신이 눈을 뜨고 양인명을 애원의 눈으로 보았다.
 ‘죽어!’
 양인명은 양신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양신은 어린아이 같은 비명을 지르다 산산이 흩어졌다. 흩어진 양신의 몸은 양인명의 유체의 머리 부분으로 흡수가 되었다.
 양신이 없어지자 남궁유룡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그의 오공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흐흐흐흐!’
 양인명은 그것을 보고 통쾌하게 웃었다. 하늘은 역시 공평한 것이다.
 양인명의 유체에서 음사(陰邪)한 기운이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남궁유룡의 머리를 빙 둘러쌌다. 그러더니 남궁유룡의 백회, 정수리 부분에 바늘구멍만 한 구멍이 뚫렸다. 귀신만이 볼 수 있는 구멍이었다.
 그 구멍에서 흡력이 발생해 양인명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혈마존이 발동하려다 실패한 이혼전이대법이 시공을 초월하여 드디어 발동한 것이다.
 양인명은 흡인력에 몸을 맡기고 남궁유룡의 백회를 통해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들끓는 기혈을 안정시키느라 정신이 없던 남궁유룡은 양인명의 혼이 몸 안으로 들어오자 대경실색하였다.
 ‘내 몸에서 나가!’
 ‘못 나간다, 개자식아!’
 양인명과 남궁유룡의 혼백은 남궁유룡의 몸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귀신이 들린다는 말이 있다. 세상에 한이 있는 자는 혼백으로 변해도 그만큼 끈질기게 남의 몸을 탐한다.
 그런 혼을 선가(仙家)에선 양신의 반대가 되는 말로 음혼(陰魂)이라고 부른다.
 양인명은 온갖 간난신고를 겪고 억울하게 죽은 뒤 천마신주의 마기를 흡수해 음혼 중의 음혼이 되었다.
 세가의 깊은 곳에서 보살핌을 받고 자란 남궁유룡이 그런 지독한 음혼을 당해낼 리 없었다.
 양인명의 혼에게 진 남궁유룡의 혼이 백회를 통해 쫓겨 나왔다.
 몸 밖으로 쫓겨 나온 남궁유룡은 억울한 얼굴로 자신의 몸을 보다 다시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때 천마신주가 더욱 빛을 발했다. 그리고 시체 더미에서 시커먼 그림자들이 일어나 남궁유룡의 혼백에게 다가왔다.
 천마신주의 마기에 자극받아 일어난 억울하게 죽은 수인들의 혼백이었다. 남궁유룡은 그들을 보고 공포에 질린 채 뒤로 물러났다.
 ‘크하하!’
 ‘너도 한번 당해보거라!’
 시커먼 그림자들은 남궁유룡의 유체를 꽉 붙잡고 시체 더미로 달려갔다.
 ‘안 돼!’
 남궁유룡은 시커먼 그림자들에게서 빠져나가기 위해 마구 몸부림쳤다. 그러나 시커먼 그림자들은 남궁유룡의 몸부림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유체를 아직 기능이 멈추지 않은 양인명의 육체에 강제로 집어넣었다.
 “이럴 수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눈을 뜬 남궁유룡은 비명을 토했다.
 그의 육체는 사지가 잘린 양인명의 육체였다. 참을 수 없는 통증으로 남궁유룡은 다시 기절했다.
 ‘모두 죽여!’
 ‘산산이 파괴해!’
 천마신주의 마기에 이끌려 죽은 수인들의 영혼들이 모조리 석실로 몰려왔다. 수인들의 음혼들은 천마신주의 주위에 몰려 외치기 시작했다.
 그 외침이 이르자 천마신주는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천마신주는 한과 분노 같은 음성(陰性)적인 기운에 반응한다. 한을 품고 죽은 수인들의 혈액을 잔뜩 흡수하고 수인들의 음혼에 자극을 받으며 천마신주는 극도로 활성이 되고 있었다.
 ‘세상을 아수라(阿修羅)지옥으로 만들어라!’
 ‘세상을 시산혈해(屍山血海)로 만들어라!’
 음혼들은 증오를 담고 천마신주의 기운을 한때 자신들의 동료였던 양인명의 혼백이 머문 남궁유룡의 육체로 인도하였다. 천마신주의 붉은 혈광이 마치 가는 실뱀처럼 변하여 남궁유룡의 육체로 들어갔다.
 “으흐흐!”
 잠시 후 남궁유룡의 육체를 차지한 양인명은 눈을 떴다. 그의 눈에선 흰자위 대신 붉은 불꽃이 이글거렸다.
 세상을 산산이 파괴하고 싶은 욕구가 불같이 일어났다.
 욕구가 일어나자 그의 몸에서 소름 끼치는 마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그러다 갑자기 양인명은 머리를 움켜잡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양인명은 유체 상태에서 남궁유룡의 양신을 흡수하였다. 양신과 음신은 극과 극. 흡수된 남궁유룡의 양신이 음신을 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양인명의 머리 위로 후광이 일기 시작했다. 후광이 폭발하듯 커지며 양인명의 온몸으로 번졌다.
 남궁유룡의 육체에 잠복한 만년온액의 영기가 양신에 자극받아 마저 일어난 것이다.
 아무런 수행도 안 한 남궁유룡에게 양신을 만들어줄 정도로 신령한 기운이 만년온액의 영기였다. 그 영기의 도움을 받아 마기는 서서히 정화가 되기 시작했다.
 ‘안 돼!’
 ‘우리의 한을 기억해!’
 음혼들이 그것을 보고 분노하였다.
 천마신주가 음혼들의 분노에 자극받아 검붉은 불꽃으로 화했다. 검붉은 불꽃은 천마신주에서 분리되어 양인명의 육체로 들어갔다. 마지막 정화(精華)까지 다 토해낸 천마신주는 평범한 돌덩어리로 변하더니 저절로 부서져버렸다.
 양인명의 얼굴이 악귀같이 일그러졌다. 마기와 서기가 번갈아 그의 몸에서 빛나기 시작했다. 그의 오공에서 다시 폭포수 같은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운기의 절정에서 연이어 극심한 자극을 받자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진 것이다.
 “으아악!”
 끝내 그는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잠시 후.
 석실 안으로 남궁천 부자가 들어왔다. 사방에 널린 시체를 보고 남궁천 부자는 모두 깜짝 놀랐다. 그러다 바닥에 누워 있는 남궁유룡을 보고 기겁을 하였다.
 남궁유룡의 몸은 마치 벌레처럼 사지가 뒤틀려 있었다.
 “유룡아!”
 남궁천이 황급히 남궁유룡의 몸을 안았다.
 “어서 빠져나가지요.”
 두 부자는 석실 밖으로 나갔다.
 “아…버…….”
 그때 입구에서 사지가 잘린 놈이 묘한 소리를 뱉으며 몸을 굴려 그들의 앞을 막았다.
 남궁천의 눈에 한기(寒氣)가 스쳤다.
 “이 벌레가!”
 남궁천은 남궁유룡과 같은 말을 뱉으며 사지가 잘린 놈을 걷어찼다.
 사지가 잘린 벌레는 벽에 부딪친 후 바닥에 굴렀다. 그리고 경악어린 얼굴로 남궁천을 보다 숨을 거두었다.
 천망회회(天網恢恢) 소이불루(疏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성긴 것 같아도 결코 악인을 빠트리지 않는다.
 남궁유룡은 자신의 몸으로, 남궁천은 자식을 죽임으로 그 대가를 받은 것이다.
 
 
 새로운 몸
 
 아침이 다가오자 양인명은 눈을 떴다.
 어서 일어나 작업 준비를 해야 한다. 조금만 늦으면 십장이 화를 낼 것이다. 십장 양오는 지독한 놈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웬일이지?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몇 십 년 동안 잘도 움직이던 육체가 왜 움직여지지 않는단 말인가?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며 조금씩 천장이 드러났다.
 ‘……?’
 이상했다.
 항상 보아오던 음습한 동굴의 울퉁불퉁한 천장이 아니라 매화 문양을 한 화려한 벽지로 장식한 번듯한 천장이었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편안한 느낌. 숙면을 취하지 않으면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무명 계곡에 들어온 후 하루에 세 시진 이상은 자본 적이 없었다.
 ‘난 죽었는데?’
 자신은 남궁유룡, 그 죽일 놈의 칼에 사지가 잘려 죽지 않았던가?
 하지만 저승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푹신푹신한 비단 금침의 감촉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졌다.
 ‘죽은 게 아니고 꿈이었던가?’
 어렴풋이 죽은 후의 일이 생각이 났다.
 너무나 분하고 억울했다. 힘만 있다면 온 세상을 발기발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때 붉은 광채를 본 것 같았다. 붉은 광채가 자신의 유체로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은 남궁유룡의 육체를 빼앗았다.
 뭐가 꿈이고 뭐가 꿈이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였다. 그러나 몸은 나무토막이라도 된 듯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는 눈을 밑으로 굴렸다. 신체 부위 중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눈밖에 없었다.
 가슴께에서 비단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대야의 물에 수건을 적시고 있었다. 여인은 물을 적신 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부드럽게 닦기 시작했다.
 양인명은 속으로 어찌할 줄 몰라 했다. 그가 언제 이런 대접을 받아봤는가?
 여인은 시녀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그는 시녀에게 절을 하고 음식을 구걸하던 신분이었다. 가난으로 인해 몸 깊이 밴 하인 기질은 무명 계곡에서 지낸 그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없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는 시녀의 부드러운 손길을 황송스러워했다. 그러나 온몸이 마비된 상태라 하녀의 손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순간 시녀와 남궁유룡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시녀의 얼굴에 홍조가 깃들었다. 그녀는 더욱 정성스럽게, 마치 보석이라도 다루듯이 양인명의 몸을 닦았다.
 ‘왜 날 보고 부끄러워하지?’
 다시 일어나는 혼란. 폭삭 늙은 중늙은이의 몸을 닦으며 도대체 뭘 부끄러워한단 말인가?
 그가 혼란에 빠지든지 말든지 시녀는 더욱 정성스럽게 양인명의 얼굴을 닦았다.
 시녀가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말끔하게 닦을 때 다시 문이 열렸다. 그리고 차가운 얼굴의 중년인이 들어왔다.
 시녀는 중년인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인 후 밖으로 나갔다.
 그 중년인을 보자마자 양인명은 기겁을 했다. 몸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그는 백 리 밖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양인명이 노력해도 그의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 중년인은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천이었다.
 “깨어났느냐?”
 남궁천은 양인명의 앞에 앉아 손목을 짚으며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구나. 난데없이 주화입마라니.”
 남궁천은 양인명의 손목을 짚고 그의 신체에 기(氣)를 흘려보았다. 남궁천의 기운은 남궁유룡의 몸의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을 타고 내부로 스며들더니 중부혈(中部穴)에 이르러 산산이 흩어졌다.
 신체의 경락이 완전히 꼬여버린 극단적인 주화입마의 증상이었다. 경락이 꼬인 덕분에 생사현관과 임독양맥이 닫히고 탈태환골의 흔적마저 없어져버렸다.
 수인들에게 쫓겨 다른 석실로 들어갔는데 상처를 입은 게 아니라 주화입마라니. 남궁천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양인명은 그저 눈만 깜박였다. 그는 아직도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 있었다.
 양인명의 내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궁천은 주위를 둘러보고 은밀한 어조로 다시 물었다.
 “혹시, 혹시나 말이다. 그 석실 안에서 다른 것을 보지 못했느냐?”
 “혈마존이 있을 만한 곳은 그곳밖에 없던데, 그 석실 안엔 아무것도 없더구나.”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거겠지. 조상님이야 생전에 높은 경지에 이르러 유체를 보존하셨겠지만, 한낱 사파의 마두가 그런 경지에 이르렀을까. 놈의 시체는 썩어 없어졌을 거야. 게다가 중상을 입은 몸으로 진전을 남기지도 못했겠지……. 아쉬운 나머지 혼잣말을 했구나.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나 보다. 신의(神醫)를 붙여줄 테니 어서 일어나거라.”
 남궁천이 밖으로 나가자 다시 시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공자님이 정신을 차리셔서 다행이에요.”
 시녀가 얼굴을 붉히며 양인명의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았다.
 
 며칠이 지나자 자신이 처한 상황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남궁유룡과 자신은 몸이 바뀌었다.
 오만 가지 감정이 느껴졌다.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드디어 빠져나온 것이 기뻤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곳에서 해방된 것을 생각하면 전신 마비라도 기꺼이 수용할 만하다. 어릴 적의 자신은 하루 한 끼를 걱정해야 할 처지였다. 이곳에선 왕이 부럽지 않게 시중을 받지 않는가?
 그러나 남궁세가라는 것이 문제였다.
 그를 지옥에 처박은 남궁세가였다. 그것을 생각하면 원망과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두려움이 더 컸다. 매일 그를 찾아오는 남궁천만 생각하면 그저 무섭고 두렵기만 하였다. 만약 남궁천이 그의 정체를 눈치 챈다면 꼼짝없이 죽는 것이다.
 몸이 마비된 게 오히려 복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의 근육조차 움직일 수 없으니 그가 가짜라는 티가 안 났고, 그래서 노회(老獪)한 남궁천조차 자식이 가짜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양인명은 필사적으로 남궁유룡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마비가 된 몸으론 시녀들이 머리맡에서 하는 잡담이나 얻어들을 뿐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남궁유룡에 대한 정보를 알기 위해 항상 귀를 열어두고 있었다. 남궁유룡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면 알수록 그가 살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니.
 그러던 어느 날 변화가 일어났다. 그가 정신을 차린 지 이레 만의 일이었다.
 
 ‘취앵.’
 머릿속에 하나의 단어가 떠오르자 양인명은 흠칫 놀랐다.
 취앵은 자신을 보살피는 시녀의 이름이었다.
 ‘내가 시녀의 이름을 어떻게 알지?’
 영상이 떠올랐다.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양인명의 사지를 찢으며 웃는 남궁유룡의 영상. 그때 남궁유룡은 자신이 돌아오면 취앵을 손보겠다고 생각한다.
 ‘미친놈이군.
 그는 그 영상을 보고 생각했다.
 양인명의 혼백이 남궁유룡의 육체에 안착이 되자 남궁유룡의 뇌에 있는 기억이 조금씩 흡수가 되어가는 것이다. 직감적으로 그 사실을 깨달은 양인명은 내심 다행이라고 중얼거렸다.
 자신이 비참하게 죽을 뻔하다 운 좋게 살아난 것을 까맣게 모르는 취앵은 양인명의 얼굴을 정성스럽게 닦아주었다. 그리고 얼굴을 붉히고 양인명의 상체를 마저 닦았다.
 “공자님, 답답하시죠?”
 취앵은 양인명을 번쩍 들어 바퀴가 달린 나무 의자에 앉혔다. 세가에서 자란 시녀답게 취앵도 무공을 할 줄 알았다.
 양인명은 취앵의 손에 이끌려 나무 의자에 앉아 밖으로 나갔다. 시원한 바람이 양인명의 머리를 날렸다. 양인명의 얼굴이 드러났다. 양인명의 외모는 과거와는 달리 조각처럼 아름다웠다. 주위를 지나치던 시녀들이 양인명의 얼굴을 보고 얼굴에 홍조를 띠고 고개를 숙였다.
 양인명은 취앵의 손에 이끌려 정원으로 나왔다. 아름다운 기화이초가 정원에 가득하였다. 정원의 가운데엔 넓은 연못이 있었고 연못에선 물오리가 떼를 지어 헤엄을 쳤다.
 골짜기에선 꿈도 꿀 수 없었던 광경.
 그 광경을 보니 어쩐지 눈물이 나왔다.
 자유!
 지옥 같은 골짜기에서 해방되었다는 실감이 드디어 들었다.
 “어머나, 공자님!”
 옥같이 아름다운 양인명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취앵은 깜짝 놀라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양인명은 남궁유룡의 기억을 조금씩 흡수하며, 시녀들끼리 말하는 것을 듣고 세가의 돌아가는 사정을 조금씩 파악해갔다.
 매일 비단 금침에서 자며 미녀의 시중을 받으며 몸에 좋은 영약을 먹는 나날이 이어졌다. 처음엔 천국같이 편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마음이 불편해졌다.
 만의 하나라도 자신이 양인명이라는 것을 들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경멸하고 증오하는 인간들과 함께 지내는 괴로움이 복합적으로 섞인 불편함이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공자님, 제갈 소저께서 오셨습니다.”
 취앵과 더불어 자신을 시중드는 취취의 목소리였다.
 문이 드륵 열리며 차가운 안색의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양인명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냉설연(冷雪蓮) 제갈미미(諸葛美美). 육대세가 중 제갈세가의 여인. 어릴 때 그와 혼약(婚約)한 사이였다. 기묘하게 제갈미미를 보자 존경과 두려움과 애증(愛憎)의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별일이군.’
 양인명은 실소를 흘렸다.
 남궁유룡의 육체 속에 있는 기억이었다. 이 변태가 사람에게 이렇게 복잡한 느낌을 가지다니 별일은 별일이었다.
 양인명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제갈미미를 보았다.
 제갈미미는 양인명의 손목을 잡고 가늘게 눈을 떴다.
 손목을 통해 한기가 들어왔다. 그리고 제갈미미는 고운 눈썹을 찌푸렸다.
 “주화입마군요.”
 ‘의술까지 아나 보군. 만박통지(萬博通知) 제갈세가라더니…….’
 “주화입마란 운기 중 심마에 들어 기가 잘못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기가 뇌에 침범하면 백치나 광인이 됩니다. 기가 신체에서 꼬이게 되면 불구가 되지요. 주화입마라도 상세가 가벼우면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건…….”
 제갈미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십이경락이 모두 뒤집어졌군요. 이런 경우에는 백약이 무효입니다. 유감이에요, 공자.”
 제갈미미는 냉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파혼(破婚)입니다. 어쩔 수 없군요.”
 양인명은 실소를 터트렸다.
 제갈미미는 외인에겐 차가운 여인이었지만 남궁유룡에겐 항상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여인의 태도가 순식간에 바뀐 것이다.
 ‘마음대로.’
 양인명은 제갈미미를 보고 생각했다.
 아무리 똑똑하다지만 이제 겨우 스무 살의 계집아이. 인생의 막장까지 경험한 양인명으로선 뻔히 보이는 수작. 창기들이 단물 다 빼먹은 남자를 내쫓을 때 하는 짓거리였다.
 남궁유룡이라면 배신감에 치를 떨겠지만 이제 처음 보는 계집이 이별을 고한다고 양인명이 무슨 충격을 받겠는가.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갈미미는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
 시녀들이 안타까운 얼굴로 파혼당한 이공자를 보았다.
 
 덩치가 산만 한 청년과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이 같이 들어왔다.
 ‘남궁대력(南宮大力). 남궁표(南宮豹)…….’
 청년들을 보자 희미하게 이름이 떠올랐다.
 남궁천은 세 부인에게서 일곱 아들을 두었다.
 두 형제는 남궁천의 삼부인인 팽화련의 아들로 남궁표는 남궁유룡과 동갑, 남궁대력은 두 살 위였다.
 남궁대력이 물었다.
 “아룡(兒龍), 몸은 좀 어떤가?”
 “이런 꼴이 되어 돌아오다니 유감이군. 제갈 누님하고도 파혼했다면서?”
 남궁표가 물었다. 두 형제의 얼굴엔 미소가 어려 있었다.
 양인명은 눈만 깜빡였다.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이복형제라지만 명색이 형제 사이다. 이복형제가 불구가 되어 돌아왔고 파혼마저 당했다는데 두 형제는 위로하러 온 기색이 아니었다.
 남궁표는 양인명을 보고 이죽거렸다.
 “미미 소저가 네게 반한 건 그 반반한 외모 덕분이었지. 하지만 네가 병신이 되니 미미 소저도 정신을 차린 거야.”
 “덕분에 내게 기회가 생겼지. 우리를 남기고 간다고 아버님께 원망도 많이 했는데, 화가 변하여 복이 되었군. 하하하!”
 남궁대력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소가주가 되더라도 너는 평생 돌봐 주지. 네 몸이 멀쩡했더라면 되레 피를 봤을지도 몰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라고.”
 두 형제는 양인명을 보고 한참 이죽거리다 돌아갔다.
 두 시녀는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며칠이 지난 후 아름다운 중년 부인이 찾아왔다.
 “못난 놈.”
 양인명을 보며 대번에 하는 소리였다.
 중년 부인을 보자 머릿속으로 남궁유룡의 기억이 떠올랐다.
 남궁유룡의 모친이자 남궁천의 둘째 부인인 제갈연이었다. 제갈연은 제갈세가 출신으로 남궁천과 정략결혼을 한 사이였다.
 그는 제갈연을 보고서야 남궁유룡이 왜 제갈미미를 보고 그런 복잡한 감정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제갈미미는 제갈연과 닮았다.
 제갈미미와 남궁유룡을 약혼을 시킨 사람도 제갈연이었다. 남궁유룡은 어머니에게 가진 감정을 제갈미미에게 전이(轉移)한 것이다.
 “미미가 파혼을 원하기에 허락했다. 아무리 내 아들이라지만 병신과 같이 살라고는 못하니.”
 ‘그 아들에 그 어미군.’
 양인명은 쓴 웃음을 지었다.
 “기회를 노려 남궁일을 손보라고 했더니 엉뚱하게 네가 병신이 되어 왔구나. 이제 기아에게 기대를 가져야겠다.”
 남궁기는 남궁유룡의 동복동생으로 올해 열다섯 살이었다.
 그제야 양인명은 세가 내에서 일어나는 알력을 눈치 챘다.
 ‘지독한 년이군.’
 양인명은 혐오감이 어린 눈으로 제갈연을 보았다.
 남궁유룡은 항상 제갈연을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그녀와 마주하면 주눅이 들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지만 양인명은 남, 객관적으로 제갈연을 볼 수 있었다.
 자식이 불구가 되어 드러누웠는데 이제야 찾아온 것부터 시작해서 이복형을 병신으로 만들라는 것까지.
 그녀는 정상이 아니었다.
 제갈연은 남궁유룡이 들었다면 미치고 환장할 소리를 남기고 무정하게 자리를 떠났다.
 그 후로 남궁유룡의 이복형제들이 한 명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겉으론 애도의 말을 표하고, 뒤로는 비웃음의 눈빛을 던지고 자리를 떴다.
 그제야 양인명은 자신이 처한 입장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남궁천은 일곱 명의 자식 중 남궁일과 남궁유룡을 가장 아꼈다. 남궁일과 남궁유룡만 무명 계곡으로 데리고 간 것은 그런 연유였다.
 그런데 차기 가주의 유력한 후보자 중 한 사람인 남궁유룡이 병신이 되어 돌아왔다. 기뻐할 사람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
 양인명의 가족은 그러지 않았다.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족들이 생이별하였지만 그것은 불가항력, 같이 있을 때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였다.
 원래부터 남궁세가를 증오하고 있었지만 막상 내부에서 인간들을 겪어보니 만정이 다 떨어졌다.
 ‘차라리 흑사회가 훨씬 났군.’
 무명 계곡에서 만난 장달 같은 하류배도 제 가족들한텐 이러지 않았다. 비록 원수지만 남궁유룡이 왜 그렇게 비뚤어진 것인지 이해가 되는 양인명이었다.
 
 “공자님 그건…….”
 취앵과 취취는 난감한 얼굴로 남궁유룡을 보았다.
 양인명의 앞에는 천자문이 적힌 종이가 널려 있었다. 그는 일자무식이었다. 그러나 남궁유룡의 기억을 흡수하며 천자문도 조금씩 알아갔다.
 취앵이 천자문의 글자를 하나하나 짚으면 남궁유룡이 눈을 깜빡이고 취취가 그 글자를 붓으로 적는 방식으로 그들은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천자문(千字文)은 말 그대로 천 자(千字)나 된다. 문자가 그렇게 많으니 한 단어를 표현하는 데 하루 종일 걸리지만 꼭 필요한 의사를 소통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고(武庫)에서 무공비급을 가지고 오너라.
 
 양인명이 하루 종일 눈을 깜빡여 표현한 글자였다.
 취앵과 취취는 시녀에 불과하다. 그녀들은 무고에 출입할 수 없는 신분이었다.
 취앵과 취취가 난감한 표정을 짓자 그제야 양인명도 그 사실을 깨달았다.
 양인명도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세가에서 지낸 지 벌써 육 개월이 지났다.
 언제까지 이대로 살 수는 없는 일. 그러나 의원들은 그를 고치지 못하고 있었다.
 주화입마는 결국 기를 잘못 인도해 생긴 일, 그는 내공심법을 이용해 기를 다시 경락에 제대로 인도하여 주화입마를 고칠 생각이었다. 설혹 소용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는가.
 그러나 남궁유룡의 기억에서 내공 구결 같은 세세한 것은 조각조각 나 있었다. 천상 무공비급을 다시 꺼내 읽어야 하는데 첫 단계부터 막힌 것이다.
 “첫째 공자님이라면 방도를 찾아주실 것입니다. 잠깐 기다려주세요.”
 취앵은 잠시 생각하다 취취와 함께 방을 나갔다.
 양인명은 나가는 두 여인을 묵묵히 보았다. 말리고 싶어도 말을 못하니 말릴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남궁유룡은 남궁일에 대해 앙앙불락하였지만 남궁일은 남궁유룡에게 한 번도 적의를 보이지 않았다.
 
 “무공비급을 보고 싶다고?”
 얼마 후, 남궁일이 들어와 말했다. 그의 얼굴은 예전에 비해 훨씬 수척한 모습이었다.
 양인명은 시녀를 시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남궁일은 끈질기게 앉아 양인명의 말에 귀 기울였다.
 “음……. 그럴 법하구나. 몸은 움직일 수 없으나 기는 움직일 수 있으니 한번 시도해보려무나. 어떤 심법을 보고 싶니?”
 
 기초부터 차근차근히 보고 싶습니다.
 
 “내가 무고에 가서 필요한 비급을 가져오겠다. 그리고 여기서 읽어주지. 그러면 되겠지?”
 
 예.
 
 “잠깐만 기다리거라. 곧 가지고 오마.”
 남궁일은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양인명의 말을 필답으로 전하던 두 시녀는 감격 어린 얼굴로 나가는 남궁일을 보았다.
 ‘괜찮은 사람이군.’
 양인명은 남궁일의 등을 보고 생각했다.
 사람 같지 않는 사람들만이 있는 남궁가에서 그나마 남궁일이 인간처럼 보였다.
 
 남궁일은 책을 한 아름 들고 와 양인명의 앞에 앉았다. 그러자 취앵과 취취는 황급히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이런 심법은 외인은 함부로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유운심법(流雲心法)부터 시작하자.”
 남궁일은 책을 내려놓고 그중 유운심법이 적힌 책을 꺼내 그 구결을 읽어주었다.
 양인명은 정신을 집중하고 유운심법의 구결을 들었다. 심법의 구결이 머릿속에 쏙쏙 파고들었다. 아니 오래전에 알고 있다 잊었던 기억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남궁유룡의 뇌는 유운심법의 구결을 알고 있었다. 남궁일이 유운심법의 구결을 불러주자 남궁유룡의 뇌가 그 구결을 되살린 것이다. 덕분에 양인명은 유운심법의 구결을 쉽게 외울 수 있었다. 남궁일은 다음으로 삼재심법(三才心法)과 육합심법(六合心法)의 구결을 불러주었다.
 남궁일이 불러준 구결은 강호상에 일반적으로 퍼져 있는 가장 기본적인 내공 구결이었다.
 양인명은 그 구결을 들으며 기의 운행과 경로에 대해 기본부터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에 남궁일은 천풍심법(天風心法)과 천뢰심법(天雷心法), 창궁심법(蒼穹心法). 무애심법(無碍心法)의 구결을 불러주었다.
 네 심법의 구결은 첫 구절만 들었는데 나머지 구결이 저절로 떠올랐다. 네 심법은 남궁유룡이 가장 최근까지 기억하고 있던 구결이었다.
 다시 남궁일이 하나의 구결을 불러주었다. 지금껏 한 번도 듣지 않았던 긴 구결이었다.
 양인명은 놀란 얼굴로 남궁일을 보았다.
 -창궁무애심법(蒼穹無碍心法)의 구결이다. 듣기만 하여라.
 남궁일은 전음으로 나직하게 말하고 구결을 불러주었다.
 창궁무애심법은 현 가주인 남궁천과 가문의 일부 장로들. 그리고 가문의 장자인 남궁일만 알고 있는 구결이었다. 놀랍게도 남궁일은 그 구결을 양인명에게 전수한 것이다.
 그 구결은 지금껏 전수받은 모든 구결을 합친 것보다 길었다.
 다시 남궁일은 하나의 구결을 불러주었다. 내공비결이 아닌 심오한 검법의 도리였다.
 -이번에 내가 전수받은 이의기용검술(以意氣用劍術)의 구결이다.
 이의기용검술은 창궁무애심법 못지않게 길고 난해했다.
 생전 처음 듣는 상승의 검학(劍學)에 양인명은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남궁일은 창궁무애심법과 이의기용검술의 구결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불러주었다. 그리고 양인명이 두 구결을 완전히 숙지한 것을 확인하고 부르는 것을 멈추었다.
 양인명이 의문에 찬 얼굴로 남궁일을 보았다.
 남궁일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번에 우리 가문은 천도(天道)를 어겼다.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은 어떤 이유로든 용서받을 수 없다. 이 일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것이라 도저히 막을 수가 없더구나. 어쩔 수 없이 수인들의 입을 막았지만 하늘에 눈이 있다면 결코 그 응보(應報)를 피해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남궁일은 깊은 눈으로 양인명을 보고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 응보가 네게 먼저 내린 것 같다.”
 남궁일은 동생인 남궁유룡이 돌연히 불구가 된 것이 그 응보라고 생각하고 말한 것이다. 남궁유룡은 이미 친아버지의 손에 의해 죽은 것을 그는 몰랐다.
 “하늘의 심판이 아무리 엄해도 이미 심판을 내린 곳에 다시 내리진 않겠지. 내가 가문의 절학을 모두 전수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만약에 가문이 응보를 받더라도 이미 응보를 받은 너는 살아남겠지. 그렇다면 네가 세가의 뒤를 있어라.”
 남궁일은 책을 챙긴 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나갔다.
 ‘당신에겐 미안하지만 나도 이 가문이 응보를 받기 바라오.’
 양인명은 나가는 남궁일을 보며 생각했다.
 
 양인명은 남궁일이 나간 뒤 눈을 감고 심법의 구결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았다. 유운심법, 삼재심법과 육합심법은 단전에 양기를 발생시키고 임맥과 독맥으로 유통시키는 가장 일반적인 심법이었다. 세 심법의 구결을 되새겨보니 운기의 요령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그는 세 심법의 구결에 따라 운기를 해보았다. 그러나 내부의 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부의 경락이 워낙 뒤집어져 평범한 방법으로는 운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다음에 양인명은 천풍심법의 구결대로 운기를 해보았다. 아랫배에서 뜨거운 기운이 일어나 순식간에 경락을 휘돌았다. 그러면서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느낌이 들었다.
 양인명은 황급히 운기를 중단하였다. 조금만 늦게 운기를 중단하였다면 이것보다 더 심한 상태에 빠져들었을 것 같았다.
 ‘제대로 되지는 않지만 효과가 있긴 있군.’
 어찌 됐건 꼼짝도 안 했던 기가 움직인 것이다.
 양인명은 다음엔 천뢰심법을 운기해보았다.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 갑자기 그의 코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공자님!”
 두 시녀가 황급히 달려와 조심스럽게 그의 상세를 살폈다.
 ‘왜 안 되지?’
 양인명은 눈을 감고 왜 기가 유통이 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았다.
 그의 뇌리 속으로 몇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기억이 떠오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천풍심법과 천뢰심법은 남궁세가의 가전 검법인 천풍검법(天風劍法)과 천뢰검법(天雷劍法)을 펼치기 위해 창안된 심법이었다.
 천풍검법은 변화를 위주로 한 검법이고 천뢰검법은 파괴력을 위주로 한 검법이었다. 두 검법의 특성이 그러니 두 심법도 또한 흐름이 빠르고 급격하다. 내부의 경락이 뒤집어지고 약화된 양인명이 운기하기엔 무리가 있는 심법이었다.
 창궁심법(蒼穹心法)은 소주천(小周天)에서 대주천(大周天)까지 인도하는 심법이다.
 창궁심법의 12성은 임독양맥, 생사현관의 타통이지만 그 경지까지 이루는 것은 지난(至難)한 일.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유운심법이나 삼재심법 같은 기본심법으로 기초를 다지고, 창궁심법으로 기둥을 세운 뒤 각자의 특성에 맞는 천풍심법이나 천뢰심법을 익히고 거기에 맞는 검법과 권법, 보법을 익힌다.
 남궁유룡의 육체는 경락이 뒤집혀 있어 정상적인 운행 경로를 따르는 삼재심법이나 육합심법 같은 심법이나 그 연장선에 있는 창궁심법을 익히지 못한다.
 창궁무애심법은 대주천 이후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심법으로 천풍심법과 천뢰심법의 장점을 모두 포함한다. 운기의 흐름이 때에 따라 더욱 천뢰심법보다 과격해지고 천풍심법보다 더욱 급격해진다. 양인명으로선 익힐 수 없는 심법인 것이다.
 ‘그럼 내가 익힐 수 있는 심법은…….’
 무애심법!
 양인명이 익힐 수 있는 심법은 무애심법밖에 없다는 뜻이다.
 무애심법은 남궁세가에서 창안한 심법이 아니었다. 어디에도 걸림이 없다는[無碍] 말처럼 무애심법은 오래전에 불가에서 창안되어 남궁세가로 흘러 들어온 심법이었다.
 무애심법은 기존의 어떤 심법과도 궤를 달리한다.
 기존의 심법은 정사의 어떤 유파를 막론하고 고도의 정신 집중을 요구한다. 의수단전(意守丹田), 기침단전(氣沈丹田)을 요령으로 정신을 극도로 집중해 아랫배에 양기를 발생시킨 후 발생한 양기를 심법요결(心法要訣)에 따라 전신의 경락으로 운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애심법은 다르다. 무애심법은 느낌을 멈추고[止感], 호흡을 잊고[忘息], 외부의 자극을 잊고[止觸], 마음을 근본 자리에 두고[心根] 오직 자신을 관하는 심법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관하면 몸과 마음은 가장 편한 상태에 빠진다. 몸과 마음은 표리일체(表裏一體)고 심신과 기운은 표리일체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면 기운은 신체의 가장 적절한 곳으로 저절로 찾아 들어가는 것이다.
 이 무애심법은 마음을 닦는 심법으론 더할 나위 없이 좋으나 기를 운용하는 운기법으로선 도인법보다도 효율성이 떨어진다. 보다 많은 양의 축기를 효율적으로 하는 심법을 원하는 세가에서 이런 심법이 대접을 받을 리가 없다. 그래서 무애심법은 이류 심법의 취급을 받으며 사장되고 있었다.
 만약 양인명이 아닌 남궁유룡이 이렇게 누워 있었다면 무애심법은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양인명은 삼재심법도 처음 접하는 상태였다. 세가의 내공심법에 대해 아무런 선입관이 없는 그가 보기에는 이 무애심법엔 다른 심법엔 없는 특별한 무엇이 있었다.
 양인명은 눈을 감고 요결에 따라 마음을 풀었다. 등창이 생기도록 방에만 누워 있던 그로서는 생각보다 쉽게 지감(止感)에 이를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진 정도 흐르자 아랫배에서 무엇인가가 꿈틀거렸다. 다시 두 시진이 지나자 꿈틀거림은 단전에서 느릿느릿 회음혈로 내려왔다.
 그러자 신체의 한 부분이 저절로 꼿꼿이 일어났다. 단전에 양기(陽氣)가 발동하며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양인명의 얼굴에 기쁨의 빛이 어렸다.
 단전에서 회음까지 기가 들어가는데 세 시진. 무려 반나절이 소모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기가 움직인 것이다.
 
 무애심법은 다른 심법에 비해 진전이 너무나 느렸다. 만일 양인명의 몸이 조금만 건강했더라면 무애심법은 결코 익히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엔 눈가를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한 달의 시간이 흐르자 고개를 미미하게 흔들었다. 다시 한 달이 지나자 입에서 ‘어… 어…….’ 하는 소리가 나왔다. 너무나 진도가 미미해 처음엔 아무도 양인명이 좋아지는 것을 알지 못했지만 넉 달이 지나 양인명의 입에서 또렷하게 ‘취앵, 취취’란 소리가 나오자 세가의 사람들은 모두 양인명이 좋아지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세가의 사람들은 양인명이 가짜인 것을 누구도 몰랐다. 넉 달 동안 양인명은 완전히 남궁유룡으로 변해 있었고, 세가의 사람들은 병신이 된 남궁유룡에게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인명은 마음 편하게 수련에만 신경 썼다. 그렇게 양인명이 다섯 달째 무애심법을 수련할 때였다.
 단전에서 뭉친 기가 서서히 회음(會陰)으로 내려갔다. 회음의 기는 꼬리뼈 부근의 미려(尾閭)로 내려갔다. 미려의 기는 독맥으로 올라가다 말고 가지가 뻗듯 독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갔다. 사방으로 퍼진 기운은 말단에서 다시 사방으로 갈라졌다.
 양인명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기의 흐름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된다.’
 양인명의 얼굴에 기쁨의 빛이 스쳤다.
 무애심법은 걸림이 없다는 말처럼 신체 어디에도 막힘없이 흘러갔다. 그러나 운기의 과정이 너무 늦었다. 그는 다섯 달 동안 주천(周天)이 조금이나마 빨리 되기를 원했다. 기는 마음에 따른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기운이 조금씩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신체 내부의 흐름에 정신을 집중했다.
 기가 더욱 빨리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조금 더 기의 흐름에 정신을 집중했다.
 기의 흐름이 더욱 빨라졌다.
 어지러움과 함께 구역질이 일어났다. 아마 처음 같았으면 벌써 피를 토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에는 치유의 성질이 있다. 그런 기가 조금씩이나마 경락을 돌며 경락을 조금씩 튼튼하게 만들어줘 이제 이만한 흐름은 견디는 것이다.
 오른쪽 손가락 끝에 감각이 느껴졌다.
 그는 손가락 끝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이 미약하게나마 꿈틀거렸다.
 내친걸음이다.
 그는 더욱 흐름에 정신을 집중했다.
 기의 흐름이 더욱 빨라졌다.
 더욱 깊게 느껴지는 현기증, 구역질!
 그는 구토를 참으며 더욱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이마에선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의 손가락은 외부에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하게 움직였다.
 “공자님!”
 그걸 본 취앵과 취취가 기쁜 얼굴을 하였다.
 
 “뭐라고 아룡의 손이 움직인다고?”
 방문이 덜컥 열리며 남궁천이 구생활의(求生活醫) 유옥인(柳鈺仁)과 함께 들어왔다. 그 뒤로 남궁천의 세 부인과 자식들까지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양인명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또렷하게 말했다.
 “아주 좋아졌구나.”
 남궁천이 웃으며 말했다.
 “손을 움직여보십시오.”
 유옥인이 말하자 양인명은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여보았다. 긴 손가락이 방바닥을 두들기자 유옥인은 깜짝 놀라며 양인명의 손을 잡고 진맥을 하였다.
 “놀랍군요. 뒤집어진 경락이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오른손의 경락은 완전히 제자리로 돌아왔군요. 도대체 어떤 치료법을 쓰셨습니까?”
 양인명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자리에만 누워 있으려니 할 일이 없더군요. 그래서 계속 무애신공을 계속 운기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팔이 움직이더군요.”
 “무애신공을?”
 사람들의 얼굴에 놀람의 빛이 어렸다.
 “어디 내가 좀 보자꾸나.”
 남궁천은 양인명의 손목을 잡고 진기를 흘려보냈다.
 잠시 후 남궁천이 말했다.
 “진기가 미약하게나마 네 몸으로 들어가고 있구나. 경락이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장하다!”
 장하다라는 말에 사람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남궁천은 칭찬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무애신공은 어지간한 인내심이 없으면 입문도 못하는 신공이다. 덕분에 아무도 익히는 자가 없었고, 익히는 자가 없어서 그 효용을 아는 자도 없었다. 네가 지금 무애신공의 효용을 입증해준 것이다. 활의, 앞으로 룡아에게 무엇이 필요하오?”
 유옥인은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무애신공이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효과가 있었다니 정말 놀랍군요. 정기를 보(補)하는 약을 지어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정기를 보하는 약을 상복하시고 계속 무애신공을 운기하십시오. 상체가 완전히 마비에서 풀리면 침과 뜸을 병행하겠습니다. 그럼 좀 더 수월하게 주화입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하하하! 열심히 무애신공을 수련하려무나. 네가 주화입마에서 벗어나면 같이 본격적으로 무애신공을 연구해보자꾸나.”
 남궁천은 대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남궁천이 대소를 터트릴 정도로 기뻐하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무명 계곡에서 발견한 무명 검법의 삼단계는 전설의 어검술을 다루는 만큼 난해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난해한 검법은 주화입마의 위험이 강하다. 그래서 남궁천은 삼단계에는 아직 입문도 못하고 있었다.
 무애신공이 주화입마의 위험을 해소할 수 있다면 무명 검법의 후반부를 익힐 수 있는 가능성이 한결 커지는 것이다.
 남궁천의 뒤에서 남궁일은 축하한다는 듯 양인명을 보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다른 이복형제들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조금 더…….’
 양인명은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정신을 집중했다. 기의 흐름이 점점 유장하게 변해갔다. 취앵과 취취는 옆에서 숨도 못 쉬고 양인명의 운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딸꾹! 아룡은 있는가?”
 취기(醉氣)에 젖은 목소리와 함께 남궁표가 거칠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안으로 들어오자 술 냄새가 실내에 가득 퍼졌다.
 “고, 공자님. 나중에 오시지요.”
 취앵이 다급하게 남궁표의 앞을 막았다.
 “이 계집이!”
 짝 하는 타격음과 함께 취앵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리고 술 냄새를 풍기며 남궁표가 양인명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양인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표(兒豹), 이게 무슨 짓이냐?”
 양인명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흐흐흐. 무슨 짓이냐고? 며칠 전까지 말도 못하던 인간이 이제 술술 말이 나오는군. 운도 좋은 놈……. 제갈세가하고 네놈하고 다시 혼담이 오가고 있다. 빌어먹을……. 끅!”
 남궁표는 푸념하듯 말했다.
 그에게 제갈미미는 여신이었다. 그런 제갈미미가 반반한 얼굴밖엔 아무것도 없는 이따위 녀석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못마땅했다. 제갈미미와 이 자식 사이에 혼담이 오갈 때 그는 하늘을 원망했다. 이제 그에게 차례가 돌아올까 기대하고 있는데 엉뚱하게 이 녀석하고 다시 혼담이 오가는 것이다.
 ‘이 녀석이 제갈미미를 좋아했군.’
 양인명의 얼굴에 짜증이 어렸다. 아무 관심도 없는 계집 때문에 이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난 제갈미미에게 흥미가 없다. 그러니 날 건드리지 말도록.”
 양인명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으흐흐흐!”
 남궁표는 어깨를 흔들며 웃었다.
 “넌 얼굴이 반반해 따르는 계집이 많으니 당연히 그녀에게 흥미가 없겠지. 하지만 그녀를 모욕하지 마! 그녀는 네가 모욕할 만한 여자가 아니야!”
 그는 이죽거리며 들고 있던 술병을 양인명의 얼굴에 부었다. 향긋한 주향과 함께 술이 양인명의 얼굴 위로 주르륵 쏟아졌다.
 남궁표와 남궁유룡은 같은 또래였다. 그러나 언제나 남궁유룡만이 아버지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여신마저 가져가려는 것이다.
 “아악!”
 “공자님!”
 취앵과 취취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는 운기 중에 있었다. 무애신공은 다른 신공과는 달리 운기 중에 말도 할 수 있고, 행동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다. 이런 식으로 마음을 격동시키면 주화입마에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주화입마에 걸린 남궁유룡이 다시 주화입마에 걸리면 어떻게 된단 말인가?
 양인명은 멍한 얼굴로 남궁표를 보았다. 그러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남궁표는 양인명의 얼굴에 술을 모조리 부으며 웃고 있었다.
 “쿨럭!”
 양인명은 피를 울컥 토했다. 치미는 분노를 못 이기고 온몸의 기운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운기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나 기운은 그의 통제를 벗어나 광마처럼 날뛰었다.
 “그녀는 여신이다! 네까짓 게 넘볼 여인이 아니란 말이다!”
 남궁표는 울부짖으며 양인명의 머리에 술병을 내리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술병이 산산조각 났다. 양인명의 이마에서 피가 솟아 술과 섞였다.
 온몸의 기운이 그의 통제를 벗어나 폭주하기 시작했다.
 기운이 난마처럼 얽히며 정신이 흐릿해졌다. 그는 허탈한 심정으로 남궁표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남궁표와 눈이 마주쳤다.
 남궁표의 눈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그제야 남궁표가 술에 취하지 않은 것을 알았다. 오직 살기위해 평생을 남의 눈치만 보고 살아온 양인명이었다. 아무리 똑똑한 척하여도 갓 스무 살 먹은 남궁표가 그의 눈을 속일 수 없었다. 녀석은 술에 취한 척 연기하며 그를 죽이려는 것이다.
 분노가 극에 달하며 온몸이 뜨거워졌다. 남궁세가의 개새끼들은 하나같이 인간 같지가 않았다. 아비는 사람을 사람같이 안 보더니 자식은 계집에 정신이 팔려 형제를 죽이려 한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
 이런 개 같은 놈에게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악문 입술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그는 필사적으로 무애신공의 구결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나 기운은 여전히 그의 통제를 벗어나 미친 말처럼 날뛰었다.
 남궁표는 입으로만 웃으며 그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올라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때였다.
 몸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검은 격류처럼 과격하고 음산한 기운이었다. 꼬인 경락이 그 기운이 몰아치며 온몸이 찢어지는 것같이 아파왔다. 그러면서 불같은 살기가 치밀어 올랐다.
 “남궁표!”
 양인명은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남궁표는 손을 멈칫했다. 양인명의 목소리는 마치 지옥의 유부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같았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등골에 소름이 끼쳤다. 남궁표는 양인명의 머리맡에서 물러나려고 하였다.
 그때 양인명의 우수가 뱀처럼 움직여 남궁표의 뒷머리를 잡아채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얼굴이 맞닿자 남궁표의 코를 재빨리 물어뜯었다.
 
 두 시녀는 황급히 밖으로 나가 후원의 무사들을 불렀다. 사정을 들은 무사들은 황급히 후원으로 뛰어왔다.
 “아아악!”
 그때 안에서 처참한 비명이 들렸다.
 “서둘러!”
 무사들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그들은 취한 남궁표가 남궁유룡을 해치는 줄 알았다. 그것은 남궁세가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리는 패륜이었다.
 “멈추시오!”
 무사들은 방을 박차고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안의 광경을 보고 입을 벌렸다.
 남궁표는 남궁유룡의 얼굴에 얼굴을 맞대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남궁표의 얼굴에서 시뻘건 선혈이 남궁유룡의 얼굴 위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남궁유룡은 남궁표의 코를 물어뜯고 있었던 것이다.
 “허어, 이럴 수가…….”
 무사장 강일환(姜一煥)은 두 사람을 간신히 떼어놓으며 중얼거렸다.
 남궁표는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연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의 코는 절반 이상이 사라져 없어진 상태였다.
 남궁유룡은 그런 남궁표를 보고 입술을 축였다. 피를 핥는 남궁유룡을 보고 강일환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등골에 소름이 오싹 끼쳤다.
 
 “이 어리석은 놈!”
 앙칼진 목소리가 큰 방을 쩌렁쩌렁 울렸다.
 짝!
 시원한 격타음이 방에 가득 퍼졌다.
 취앵과 취취는 안절부절못하고 뒤에 서 있었다.
 “가만히 몸이나 회복하지, 왜 남궁표의 코를 물어뜯어!”
 제갈연은 노기가 등등한 얼굴로 남궁유룡을 노려보았다.
 남궁유룡은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의 입가론 격타의 충격으로 핏물이 주르륵 흘렀다.
 남궁유룡이 회복되어가자 제갈연은 다시 남궁유룡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음으로 양으로 손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자식 놈이 그런 상황에서 사고를 친 것이다! 남궁표의 무례한 난입과 주화입마에 처한 남궁유룡에 대한 동정론 때문에 남궁표만 폐관 형을 받은 것으로 일이 끝났지만 덕분에 남궁유룡은 후계자에서 한 걸음 멀어진 상태였다.
 일이 어찌 됐건 참을 땐 참아야 했다.
 코를 물어뜯을 정도로 독기가 강한 자를 가주로 삼는 것이 꺼려진 것이다.
 “다음부턴 내가 시키는 대로만 행동하도록 해라! 알았느냐!”
 상황을 들어보니 자식 놈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참을 땐 참아야 했다. 그녀는 자식을 단속할 목적으로 짐짓 노한 얼굴로 소리를 쳤다.
 남궁유룡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제갈연을 보았다.
 제갈연은 미간을 찡그렸다.
 남궁유룡은 제갈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제갈연과 눈이 마주칠 때면 남궁유룡은 항상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럴 때면 제갈연은 자신의 남편 남궁천이 눈을 내리까는 듯한 기분에 잠겼다.
 성격상 남의 위에서 올라서야만 직성이 풀리는 제갈연은 그럴 때마다 묘한 만족감에 잠겼다.
 그런데 남궁유룡이 감히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뭘 잘했다고 똑바로 쳐다봐!”
 그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처음과는 달리 어느 정도 진심이 깃든 노성(怒聲)이었다.
 “가시오!”
 그때 남궁유룡이 무뚝뚝이 말했다.
 “뭐라고?”
 그녀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더 이상 내 인내심을 시험치 말란 말이오.”
 남궁유룡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너 미쳤…….”
 ‘너 미쳤냐!’라고 고함을 지르려던 제갈연은 입을 다물었다. 남궁유룡의 눈에서 시퍼런 살기가 이글거렸다.
 그 살기를 본 순간 등골로 소름이 올라왔다.
 “나, 나중에 다, 다시 얘기하자꾸나.
 제갈연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양인명은 이를 악물었다. 마기가 치밀어 오르자 사소한 일에도 살기가 치밀어 올랐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남궁세가의 사람들도 일부 호위무사들만 깨어 있었다.
 그러나 남궁세가의 후원 깊은 곳에서 전혀 잠들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양인명이었다.
 양인명은 필사적으로 호흡을 흩트렸다. 그가 호흡을 흩트리자 기맥으로 흐르던 진기도 산산이 흩어졌다.
 그러나 몸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마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준동했다.
 남궁표와의 만남이 방아쇠가 되었다. 그 후로 사소한 일에도 불끈불끈 살기가 치밀어 오르더니 몸 깊은 곳의 마기가 서서히 표면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여태 자신의 몸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던 마기. 무명 계곡에서 흡수한 천마신주의 마기였다
 남궁표와의 일로 마기가 폭발한 후부터 온몸이 찢어질 것만 같은 통증이 계속 밀려오고 있었다.
 ‘기맥이 뒤틀렸기 때문이다.’
 무애심법의 자연스러운 경로만으로 간신히 돌리던 진기였다. 그런 기맥에 거칠고 파괴적인 마기가 날뛰니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만약 당시에 그의 몸이 멀쩡했다면 그는 마성(魔性)을 이기지 못하고 발광하고 날뛰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일이 쉽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마기는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파괴적인 기운이었다. 그 기운은 자신을 자신이 아니게 한다.
 그는 무애심법을 깊이 연구하여 이제 내가의 원리에 대해 어떤 무림인 못지않은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뒤틀린 기맥(奇脈)은 아직 거칠고 파괴적인 마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일단 마기가 폭발하면 아얏 소리도 못 내고 죽게 되는 것이다.
 기껏 살아났는데 이대로 죽으면 너무나 억울하지 않은가!
 그래서 양인명은 필사적으로 호흡을 흩뜨렸다.
 그러나 호흡에 관계없이 진기는 몸 내부에서 유장(悠長)하게 흐르고 있었다. 마기에 자극받은 무애신공은 저절로 화후(火候)를 더해가고 있었다. 지금 무애신공의 화후는 사성. 무애신공이 사성에 이르면 어떤 점혈법도 통하지 않는다. 호흡을 흩트려도 진기는 계속 일어나는 것이다.
 진기가 일어나자 거기에 자극받은 마기도 계속 일어나는 것이다.
 ‘위험하다.’
 마기가 일어나며 심각할 정도로 고통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시퍼런 핏줄이 돋아났다. 뒤틀린 경락이 분출하는 마기를 감당치 못하는 것이다.
 ‘별수 없다.’
 양인명은 입술을 깨물었다. 일이 이렇데 된 이상 최후의 수단을 써야 했다.
 
 아미파의 십오대 제자 자운(紫雲)은 몇 년 전에 우연히 남궁유룡과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절에서 자라 비구니(比丘尼)가 된 그녀는 세상 물정을 조금도 모르는 순진한 여자였다.
 임풍옥수(臨風玉樹)의 준수한 외모. 명문의 제자다운 고귀한 기품. 남궁유룡의 겉모습에 반한 그녀는 그만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하고 만다.
 세상을 여행하다 아미파로 돌아오던 그녀는 섬서(陝西)의 석천(石泉) 부근의 야산에서 하룻밤을 유하게 된다. 당시에 그녀는 동굴에서 하룻밤을 쉬다 표면이 거의 삭은 낡은 책자를 발견했다.
 호기심으로 책자를 들추게 된 자운은 제목을 보고 기절할 듯 놀랐다. 놀랍게도 그 비급은 도가의 전설적인 비급인 양심신공(兩心神功)이었다.
 자운은 이 비급을 바랑에 숨기고 황급히 사문으로 길을 재촉했다. 그러다 우연히 준수한 남궁유룡을 만나자 그 외모에 혹해 양심신공을 얻었다고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하게 되었다.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애초에 남궁유룡은 자운의 미모에 음욕을 품고 접근한 것이다. 결국 순진한 아미파의 여제자 자운은 남궁유룡의 손에 죽음을 당하고 양심신공은 남궁유룡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양심신공에는 분심이용(分心二用), 쌍수호박(雙手互薄)의 비결(秘訣)이 있다. 분심이용은 마음을 둘로 나누는 것이요, 쌍수호박은 신체의 좌우를 자유자재로 쓰는 것이다.
 양심신공엔 커다란 장점이 있다. 마음을 둘로 나누니 한 사람이 두 사람의 힘을 낼 수 있고, 신체의 좌우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
 무술을 실용적인 면에서 단순하게 표현하면 마음의 뜻대로 몸을 사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양심신공은 특별한 무술 초식은 없으나 그런 목표에 한 걸음 다가가게 해주는 신공이었다. 만일 남궁유룡이 이 양심신공을 익히고 있었다면 애초에 양인명에게 몸을 뺏길 일도, 수인들에게 따로 쫓길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궁유룡은 끝내 이 양심신공을 익히지 못했다. 왜냐하면 양심신공에는 남궁유룡으로선 도저히 익힐 수 없는 난관이 몇 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양인명은 필사적으로 양심신공의 구결을 떠올랐다.
 남궁유룡의 뇌는 영상이나 감정 같은 강렬한 기억은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구결 같은 세세한 것은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양인명은 남궁유룡의 기억에서 양심신공의 흔적을 발견하고 끈질기게 구결을 떠올린 끝에 대부분의 구결을 모두 떠올릴 수 있었다
 
 心息相依 方是眞息 非眞我眞識 是息卽口鼻出入之息…….
 
 양심신공의 처음은 무애신공처럼 진아(眞我)를 발견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무애신공은 그 후에 대자연의 이치에 따라 진기를 가장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지만 양심신공은 진아의 통제 아래 마음을 둘로 나눠버린다.
 양인명은 구결에서 말하는 대로 호흡을 인도하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자신이 누워 있는 모습이 심안으로 명료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진아의 그림자를 붙잡은 것이다.
 그 상태에서 그는 구결에 따라 집중과 지관을 동시에 실행하였다.
 서서히 마음이 둘로 나뉘었다. 그러면서 머릿속이 혼탁해지기 시작했다. 분심이용을 실행하면 분심이 자랄 때까지 두뇌의 기능마저 평상시의 절반 수준으로 내려 가버리는 것이다.
 머릿속에 혼탁해지며 그는 다시 몸 안으로 들어갔다. 집중력이 떨어지자 구결대로 운행하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그의 몸에 흐르던 진기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분심을 하면 기존의 내공마저 모조리 사라져 처음부터 내공을 다시 수련해야 한다. 기존의 내공이 모조리 심맥으로 스며들어 호심진기(護心眞氣)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나중에 익힌 내공이 기존의 내공 수준이 되거나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 호심진기의 역할을 하던 진기가 다시 표면으로 올라온다.
 형제들 사이에서 매순간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만 하는 남궁유룡으로선 화중지병(畵中之餠). 익히고 싶어도 익힐 수 없는 내공심법이었다. 그러나 양인명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양인명의 몸에 있던 진기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진기가 사라지자 몸 내부에 숨어있던 마기가 요동을 치며 일어났다. 그러자 요동을 치던 마기도 수챗구멍으로 물이 빠지듯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기도 결국 진기의 일종, 분심(分心)의 효과로 인해 모두 심맥(心脈)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다행이군.’
 양인명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마심은 분심의 구결로 억눌렀고 마기는 호심진기로 변해 안으로 깊숙이 사라졌다. 다행히 자신을 잃지는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갑자기 으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양인명의 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사지가 우그러들더니 입마저 한쪽으로 돌아갔다.
 양인명은 기경팔맥이 뒤집힌 상태였다. 거기서 그의 몸을 지탱해주던 진기가 사라져버리니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출가(出家)
 
  세월여류(歲月如流). 세월은 물같이 흘러 어느새 일 년이 지났다.
 남궁세가의 후원에도 봄이 왔다. 연무장 쪽에선 힘찬 고함이 들렸다. 초목은 싱싱함을 뽐내었다. 활짝 핀 꽃 냄새가 방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계절에 안 맞게 방 안엔 한 청년이 누워 있었다.
 청년은 사지가 벌레처럼 뒤틀리고 입이 한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지극히 추할 모습인데도, 천성적인 미모 덕분인지 그의 모습은 그리 추해 보이지 않았다.
 “날 일으켜다오.”
 청년이 말했다. 입이 돌아간 덕에 말할 때마다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예, 공자님.”
 눈이 큰 시녀. 취앵이 청년, 양인명을 일으켜 난간에 몸을 기대게 하였다.
 취취가 은색의 대야에 물과 수건을 가져왔다. 취앵이 양인명의 등 쪽의 옷을 걷었다.
 드러난 양인명의 등은 등창으로 인해 피고름이 가득했다. 취취가 수건에 물을 적셔 양인명의 등을 닦았다.
 두 시녀의 얼굴은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남궁유룡은 어느 날 갑자기 주화입마에 걸렸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무공을 수련해 조금씩 몸을 회복시켜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술에 취한 남궁표 공자가 방으로 쳐들어왔다. 덕분에 남궁유룡의 상세는 더욱 악화된 것이다.
 
 出門無所見
 春色滿平蕪
 可歎無知己
 高陽一酒徒
 
 문을 나서 봐도 바라볼 것 없는데
 봄빛만 제 홀로 무르녹아라.
 찾아볼 친구조차 나는 없는가.
 주도라 일컬어도 서럽진 않아.
 
 양인명은 나지막하게 당시(唐詩)를 읽으며 정원을 완상하였다. 무지렁이 천민 출신치곤 괜찮은 솜씨였다. 앉느니 눕는다고, 움직일 수 없는 김에 조금이나마 글줄을 읽은 덕분이었다.
 “봄빛이 좋구나.”
 양인명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엔 대부분의 환자가 보이는 절망과 고통의 음습한 빛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얼굴엔 봄의 활력과 여유가 가득했다.
 “아픈 덕에 사물을 더 자세히 보는구나. 그리 생각하면 아픈 것도 나쁘지 않군. 하하하!”
 양인명은 정원을 보며 웃었다.
 “어서 완쾌하실 생각을 하셔야지.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취취가 애조 띤 목소리로 말하였다. 양인명을 보는 두 시녀의 얼굴은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안 나을 병이면 어떤 약을 써도 안 나을 것이요, 나을 병이라면 가만히 있어도 나을 것이다. 굳이 애태울 필요는 없지.”
 양인명은 느긋하게 말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면 전화위복이라고 해야지.’
 진기가 모두 사라진 후, 무애신공을 처음부터 다시 익혔다. 신공을 처음부터 익히려니 절망이 밀려왔다. 될 대로 되라고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절망이나 좌절, 짜증 같은 마음들이 저절로 사라지고, 평온한 마음이 들었다.
 양심신공과 무애신공이 결합하며 일어난 상승효과였다. 분노나 좌절 같은 격렬한 감정은 심신의 균형을 극단적으로 일그러뜨린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무애신공은 심신의 균형을 회복시키기 위해 양심신공을 부르고, 양심신공은 분심결(分心訣)을 발동해 극단적인 감정을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분리해버리는 것이다.
 무애신공은 무애(無碍)라는 말이 의미하듯 불가의 상승 공부이고, 양심신공은 도가의 상승 공부이다. 두 공부는 똑같이 진아를 발견하는 것으로 출발하고 똑같이 몸 공부보단 마음 공부에 가깝다. 유사점이 많은 두 공부는 빛과 그림자처럼 서로를 보완하며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두 신공의 화후가 깊어지며 마기도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하였다.
 ‘하지만…….’
 두 신공은 마음 공부로는 뛰어날지 모르지만 운기법문(運氣法文)으로는 너무나 효율이 낮다. 무애신공으로 소주천을 이루어 몸을 회복하려면 최소한 팔성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거기까지 예상기간은 최소한 십 년. 최소한이 십 년이니 잘못하면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이거 잘못하단 다 늙어 꼬부라진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겠군.’
 양인명의 얼굴에 얼핏 초조감이 스쳤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참 정원을 완상하는데 갑자기 두 시녀가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양인명은 고개를 들어 입구를 보았다.
 남궁천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양인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남궁천의 몸에서 창창한 기파가 느껴졌다.
 ‘더 강해졌군.’
 남궁천이 다가오자 한 자루의 날 선 검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일 년 전에는 전혀 못 느꼈던 기도였다. 아마 무명 계곡에서 얻은 검학을 수련해서 그런 것일 것이다.
 원수인 남궁천이 강해지는 것. 아니, 원수 여부를 떠나 저런 위선자가 강해지는 것이 양인명으로선 그리 기쁘지 않았다.
 양인명은 속마음을 숨기고 입을 열었다.
 “오셨습니까.”
 “그래, 오랜만에 보는구나.”
 남궁천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잠깐 나가보려무나.”
 남궁천은 두 시녀에게 말했다. 두 시녀는 고개를 숙인 후 밖으로 나갔다.
 “네게 청혼이 들어왔다.”
 “청혼이요? 이 몸을 한 나와 누가 결혼하고 싶답니까?”
 양인명은 실소를 터트렸다.
 그러자 남궁천이 양인명의 눈을 슬쩍 피하며 말했다.
 “귀주위가(貴州慰家)이니라. 귀주위가의 가주 위장천이 첫째 딸인 위지연(尉遲延)과 너를 인연을 맺어주고 싶다는구나.”
 양인명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귀주위가는 귀주에 있는 무림 세가로 사천당문과 더불어 가장 폐쇄적이고 편협한 성격을 지닌 세가였다. 사천당문처럼 강호에 문인을 내보내지 않으며 사천당문처럼 데릴사위를 들여 명맥을 잇는다.
 “귀주위가라면 데릴사위를 원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
 “이해가 안 되는군요. 귀주위가 정도라면 얼마든지 훌륭한 데릴사위를 구할 수 있을 텐데 왜 남궁세가까지…….”
 남궁천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귀주위가는 내내 자손이 귀했다. 그래서 데릴사위를 뽑는 데도 신중을 기하지. 네 재질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그쪽의 귀에까지 들어간 것 같구나. 우리뿐 아니라 다른 무림 세가에게도 사람을 보낸 모양이다. 사윗감 후보를 모두 귀주로 데려가서 심사한 후, 그중 가장 뛰어난 한 명을 사윗감으로 삼을 심산인 모양이다.”
 씨내리 후보로 자신을 보낸다는 말이다. 남궁유룡이라면 혀를 깨물고 싶을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남궁유룡이 아닌 양인명이었다. 호굴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이 싫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구석이 있었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군요. 하고많은 사람 중에 하필 저 같은 병신을 후보로 뽑다니요. 귀주위가는 제가 병신이란 소문을 못 들었답니까?”
 그러자 남궁천이 뜻밖의 말을 하였다.
 “그쪽에선 네 몸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구나. 내가 너를 거기에 보내려는 것은 사실은 그것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주화입마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어떻게인지는 모르지만, 가능하다고 한다. 내가 너를 그곳에 보내고자 하는 것은 그 이유이다.”
 
 ‘하늘엔 사흘 맑은 날이 없고, 땅엔 삼 리(里) 명지가 없고, 백성에겐 삼등분해줄 은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것이 귀주를 가리키는 말이다. 귀주는 지형의 기복이 심해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많다.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가 적고 기온이 안정되어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많다. 사람이 살 만한 곳은 적고 농사지을 곳도 부족하다. 중원에서 가장 깡촌이 귀주인 것이다.
 귀주에 묘족(苗族), 부이족(布依族), 회족,(回族), 이족(彛族), 수족(水族), 장족(壯族) 등 무려 16개 소수부족이 사는 것은 그런 연유이다. 다른 풍요로운 땅은 한족이 모조리 차지하고 있어 이족들은 어쩔 수 없이 귀주로 몰려와 사는 것이다. 귀주위가가 다른 가문에 비해 폐쇄적인 것은 그런 환경 탓이 크다.
 귀주위가는 그런 이족들을 다스린다. 그러면서 이족의 문화와 문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들의 무공도 이족의 영향을 받아 일반적인 중원의 상리를 벗어난 구석이 많았다.
 “솔직히 말하마. 그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더구나. 그 과정을 잘못 통과하면 죽거나 백치가 되기 쉽다고 한다. 하지만 평생 누워서 사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 그러니 그곳으로 가거라.”
 남궁천은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무명 검술은 너무나 어렵고 난해하다. 하나의 초식을 익힐 때마다 수십 번은 주화입마의 위험에 빠지지. 그래서 나도 무명 검술의 후반부는 아예 손을 못 대고 있다. 이래서는 가문의 절기로 삼을 수가 없구나. 나는 무애신공이 주화입마를 고칠 수 있으리라고 희망을 가졌는데 네가 주화입마에 다시 빠진 것을 보니 무애신공은 아닌 것 같구나. 나는 네가 그곳에 가서 그들이 어떻게 주화입마를 고치는지 알아봐 주기를 바란다.”
 ‘이것이었군.’
 양인명은 그제야 남궁천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 남궁천은 주화입마를 고치는 방법을 알아오기를 원하는 것이다.
 핏줄로 이루어진 무림 세가는 문파보다 더욱 폐쇄적이다. 그래서 절기를 함부로 외인에게 전수하지 않는다. 다른 세가보다 더욱 폐쇄적인 귀주위가가 그것을 허락할 리 없다. 남궁천의 말은 몰래 절기를 훔쳐오라는 것이다.
 “남궁세가가 천하제일가가 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여기에 달렸다. 그 방법만 알아오면 너를 소가주로 삼겠다.”
 남궁천은 양인명을 보고 말했다.
 양인명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식의 목숨을 담보로 무공을 알아오라니. 새삼스레 남궁천에 대한 혐오감이 들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람 같지 않은 사람만 있는 남궁세가엔 더 있기 싫었다. 기회가 왔을 때 떠나고 싶었다.
 
 제갈세가(諸葛世家)가 있는 호북(湖北)의 융중산(隆中山)에서 수주(隨州)를 지나는 길은 험하고 힘들었다. 설마 설마 하다 한노가 귀주로 가는 길목인 의창(宜昌)으로 가지 않고 대별산(大別山) 쪽으로 방향을 틀자 마른 체구에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 편수재(偏秀才) 제갈인(諸葛仁)이 물었다.
 “이대로 대별산 끝 자락을 타고 가면 안휘(安徽)인데 남궁세가 쪽으로 가는 것입니까?”
 “그렇소.”
 앞에서 죽장을 짚고 가던 계피학발 노인 한노(翰老)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도대체 몇 명이나 데려가려고 하는 것입니까?”
 곰 같은 어깨에 잘록한 허리를 가진 근육질의 청년, 불요이권(不要二拳) 황보운(皇甫雲)이 헉헉거리며 물었다.
 “남궁세가가 마지막이라오.”
 “좀 쉬었다 갑시다. 이대론 도저히 못 걷겠소.”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황보운이 땅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러시구려.
 한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 옆의 바위에 앉았다.
 강행군을 못 이겨 나무 그늘에 몸을 피한 두 청년의 몸에선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송장이 될 듯한 늙디늙은 한노도, 한노에게 차를 따라주는 흑의(黑衣)와 백의(白衣)의 두 미녀도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두 미녀는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흑의녀 동묘는(童苗)는 작은 체구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갈색의 피부를 가진, 마치 한 마리의 탄력 있는 고양이를 보는 듯한 건강미 넘치는 소녀티가 가시지 않은 미녀였다. 반면 백의녀 설요(雪妖)는 동묘와는 전혀 반대로 큰 키,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에 백설 같은 피부를 가진 미인이었다.
 불알이 달린 사내라면 이 개성 넘치는 미녀들을 보고 눈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미녀를 보는 황보운과 제갈인의 얼굴은 덤덤했다.
 그들이 특별히 수양이 뛰어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처음엔 그들도 그녀들을 본 다른 사내들처럼 두 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두 미녀에게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산동(山東) 제남(濟南)의 황보세가(皇甫世家)에서 태산(泰山)의 제갈세가를 거쳐 안휘로 접어드는 기나긴 여정 동안 두 여인은 인형처럼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 마치 시체같이 구는 여인들의 행동은 어딘가 모르게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한노는 가르릉 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자님들이 목이 마르신 모양이군요. 동묘, 설요야. 두 공자님에게 차를 따라드려라.”
 “예, 알겠습니다.”
 두 여인은 고저장단이 전혀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다기(茶器)를 들고 뻣뻣이 다가와 두 청년에게 차를 따랐다.
 “고맙소.”
 두 청년은 묵묵히 차를 받았다. 두 여인의 손은 모공이 전혀 없는 것처럼 매끄러웠다. 그런 손으로 차를 따르는 무표정한 두 여인은 마치 시체처럼 느껴졌다.
 ‘좀 생동감이 있으면 좋을 텐데…….’
 황보운은 아쉬움이 어린 얼굴로 동묘와 설요를 보았다.
 “남궁세가에선 누구를 데려가는 것입니까?”
 제갈인이 차를 마시며 물었다.
 “옥기린(玉麒麟) 남궁유룡(南宮游龍) 공자라오.”
 한노가 제갈인을 보며 말했다.
 한노가 그들 쪽을 보자 황보운과 제갈인은 황급히 노인의 시선을 피했다.
 ‘자연히 알 일을 왜 쓸데없는 질문을 해서…….’
 황보운은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스스로를 귀주위가의 종복이라고 일컫는 한노는 명성이 자자한 귀주위가의 사람답게 정말 이상했다. 한노와 시선을 마주하면 마치 거미줄에 걸린 곤충처럼 지극히 불편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제갈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말을 이었다.
 “몇 년 전 무당의 태을진인(太乙眞人)이 남궁세가에 들렀다 남궁유룡을 본 후 가히 ‘옥기린이로다!’ 하며 감탄을 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남궁유룡은 옥기린이란 별명을 얻었지요. 구파의 장로들이 남궁세가로 놀러 가는 것은 남궁유룡을 제자로 삼기 위해서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니 그의 근골은 정말 발군(拔群)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 남궁유룡을 남궁세가에서 내놓겠습니까?”
 “그는 주화입마에 걸려 있습니다. 귀주위가는 주화입마를 치유할 수 있지요.”
 동묘가 책을 읽듯이 뻣뻣하게 말했다.
 제갈인과 황보운은 서로 눈을 마주 보았다.
 뜻밖의 경쟁자가 생긴 것이다.
 제갈인과 황보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경쟁자가 생긴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 경쟁자가 ‘근골제일(筋骨第一)’이라고 하는 남궁유룡이라면 더욱 반가운 일이다. 그들은 억만금을 준다 하더라도 이런 사람들이 있는 귀주위가에서 살고 싶진 않았다.
 “쉴 만큼 쉬었소. 어서 갑시다!”
 길을 재촉하는 제갈인과 황보운의 걸음엔 생기가 돌았다.
 
 남궁세가의 문이 활짝 열렸다.
 남궁천을 비롯한 세가의 요인들이 모두 밖으로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여로(旅路)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남궁천이 한노에게 말했다.
 “고생은요. 종복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요.”
 한노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한노가 나와 말을 하자 웃던 남궁천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다시 펴졌다. 그러나 남궁천의 뒤에 있던 식솔들의 얼굴은 모두 굳어져 있었다.
 ‘당신은 좀 낫군.’
 뒤에서 그것을 보던 제갈인이 중얼거렸다. 제갈 가주는 한노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얼굴을 펴지 못하였다.
 남궁천과 한노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남궁세가의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남이녀를 보았다. 그들은 제갈인과 황보운도 귀주위가의 사람들로 오해하는 듯하였다.
 그때 사람들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인아가 여기 웬일이니?”
 남궁천의 뒤에 있던 제갈연이 의아한 얼굴로 제갈인을 보고 물었다.
 “백모님, 오랜만입니다. 저도 이번에 데릴사위 후보로 뽑혔습니다. 아, 이 친구는 황보세가의 황보운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도 역시 데릴사위의 후보지요.”
 “룡아도 그럼 후보 중 하나란 말인가?”
 제갈연의 얼굴에 언뜻 불쾌한 빛이 스쳤다.
 자기 자식이 데릴사위로 간다는 것도 불쾌한 일이다. 그런데 데릴사위의 후보라니.
 “소가주님의 배필을 뽑는 일입니다.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일이니 양해해주십시오.”
 뒤에서 동묘가 고저장단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 무림 세가에서 동시에 사윗감을 보내다니, 귀주위가의 명성이 대단하긴 대단하군.”
 뒤에서 말을 듣던 남궁대력이 이죽거렸다.
 동묘와 설요가 고개를 돌려 남궁대력을 보았다. 두 여인의 눈에 한노와 비슷한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남궁대력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끝내 남궁대력은 시선을 피했다.
 남궁천과 대화를 하며 등 뒤로 슬쩍 남궁대력을 보던 한노의 얼굴에 조소가 스쳤다. 그러나 누구도 그 미소를 보지 못했다. 하나같이 한노의 시선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남궁유룡 공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서 그분을 뫼시고 가고 싶습니다만…….”
 “하루라도 쉬었다 가시지 않고요.”
 “죄송합니다. 일정이 바빠 그럴 수가 없군요.”
 “할 수 없군요. 너희는 어서 가서 유룡을 데리고 오너라.”
 남궁천은 입맛을 다시며 무사들에게 말했다. 마음 같으면 억지로라도 세가에 며칠 유하게 하고 귀주위가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노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불쾌감이 치밀어 올라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제갈인과 황보운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남궁유룡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소신검 남궁일과 더불어 명성이 자자한 남궁유룡을 그들은 처음 보는 것이다.
 잠시 후, 안으로 들어간 무사들이 가마를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한 무사가 가마의 주렴을 걷었다. 주렴을 걷자 드러누운 한 청년의 모습이 나타났다.
 일행의 시선이 청년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청년은 얼마나 잘생겼는지 도저히 그 얼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심지어, 동묘와 설요조차 청년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소?”
 청년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동묘와 설요가 얼굴을 붉히고 시선을 돌렸다.
 그제야 일행들은 제정신을 차렸다. 일행은 청년의 사지가 뒤틀린 것을 의식했다. 그런 상태가 오래된 듯 청년의 팔다리는 다른 사람에 비해 무척 가늘어 보였다.
 ‘저자가 옥기린인가? 굉장하군.’
 제갈인과 황보운은 생각했다. 얼굴에 정신이 팔려 사지가 이상한 것조차 눈치를 못 챘다니, 저 정도라면 얼굴이 무기인 셈이다. 심지어 목석같았던 두 계집조차 얼굴을 붉히고 있지 않은가?
 한노와 청년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나 양인명의 얼굴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양인명은 한노를 보고 중얼거렸다.
 “귀주위가엔 사람이 별로 없는 모양이군. 다 늙어 꼬부라진 할아범을 보내다니 말이오.”
 한노의 얼굴에 얼핏 놀람의 빛이 스쳤다.
 한노는 양인명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그의 눈에 얼핏 푸른 섬광이 스쳤다.
 양인명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재미있는 양반이군. 눈에 구슬이라도 박았소?”
 “허, 초연물외(超然物外)라니…….”
 한노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대부분의 무림인은 한노의 눈빛을 견디지 못한다. 공력이 뛰어난 무림인만이 내공으로 한노의 눈빛을 억누른다. 그런 눈빛을 양인명은 순수한 심력으로 견뎌낸 것이다. 양심신공은 신공이라기보다 심공(心功)에 가까웠다. 그래서 한노는 양심신공의 존재를 눈치 못 채고 있었다.
 한노는 경탄 어린 얼굴로 양인명을 보다 말했다.
 “갈 길이 머니 지금 출발해야 될 것 같습니다. 남궁 공자께서는 준비가 되셨습니까?”
 “물론이오. 나도 집 안에만 있는 것이 갑갑하던 참이었소. 어서 갑시다.”
 양인명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무사들이 다가와 가마를 들려고 하였다.
 그러자 한노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공자 외에 다른 사람은 세가로 올 수 없소. 제갈세가와 황보세가도 사정을 이해하고 두 공자만 보냈소.
 “하지만…….”
 남궁천이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려 하였다.
 “걱정 마시오. 가마는 우리 아이들이 들 것이오.”
 한노가 뒤를 보고 두 여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여인이 성큼성큼 앞으로 나와 가마를 번쩍 들었다. 그걸 본 사람들이 모두 놀란 얼굴을 하였다. 두 여인은 양인명이 누워 있는 가마를 공깃돌을 들듯 들어 올린 것이다.
 한노 일행은 인사를 나누고 순식간에 사람들에게서 멀어졌다.
 그렇게 떠나는 일행을 남궁표는 싸늘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

댓글(3)

프로    
재밌긴 한데... 내공심법 설명부분이 꽤 기네요 ㅋㅋㅋㅋ
2016.01.28 05:56
Blueapp    
개지뢰
2018.08.13 12:04
ro******    
양심신공? ----> 양의신공 (무당파? 전진파? 절기)
2022.07.19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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