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 이루지 못한 꿈
그저 노래가 부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다 이룬 남자, 박태공.
돈이면 돈, 권력이면 권력, 그리고 여자면 여자.
하나부터 열까지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전부 이뤄낸 강철의 남자라 불리우고 있다.
세간에는 그를 가르켜 성공한 인생, 혹은 모범적인 인생이라 부른다.
허나 박태공, 그 자신에게는 결코 스스로에게 성공한 인생이란 말을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난 그저 노래가 부르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미 늙고 병든 몸뚱아리로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가 없다.
그저 병실에 누워 하루하루 다가오는 죽음의 사신을 기다리는 수밖에.
바깥 풍경은 태공이 죽음을 맞이하든 말든 상관없이 잘도 돌아간다.
그렇다.
세상이란 본래 이런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하지만, 결국 남은 것은 자신의 재산을 탐하는 자식 새끼들과 외부 친인척들뿐.
그리고 박태공이라는 이름 석자밖에 없다.
수식어로는 성공한 인생, 박태공이라고 남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의 신세가 정말 한탄스러워진다.
그저 통기타 하나를 들고 웃고 떠들고 그러면서 노래를 부르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하루하루를 먹고 살아야 했기에. 뒤늦게나마 노래를 시작하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달려왔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만약, 돈으로 시간을 살 수만 있다면.
박태공은 전 재산을 투자해서라도 그 시간을 살 것이다.
그만큼 그에게 있어서 노래란 인생의 전부였고.
그리고 가지지 못한 유일한 꿈이었기에.
“꽤나 돈이 많은 거 같은데.”
“......”
병실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분명 간호사로 보이는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처음 보는 간호사다.
“내가 말이야. 이래봬도 ‘시간을 파는 상인’이거든.”
“......”
“아, 말을 할 수 없는 건강상태라는 건 잘 알아. 그래서 말이야. 시간을 사고 싶다면 말이지, 당신의 재산 중 일부를 여기에 기부한다고 사인하면 돼. 그러면 당신은 과거로 돌아가서 못다이룬 꿈을 이루게 되겠지. 그리고 나는 인간계에서 연구를 계속 할 수 있는 자금을 얻게 되는 거고.”
“......”
마치 여성은 자신이 ‘인간이 아니다’라는 전제를 깔고서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여성은 태공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기라도 하듯 빠르게 말을 이어간다.
“자, 여기에 사인만 하면 돼. 아, 사인 할 힘이 없다면 엄지손가락에 인주만 찍어서 계약서에 찍어주면 돼.”
“......”
“뭐? 대신 해달라고? 정말~ 어쩔 수 없네.”
말도 안 했는데 알아서 여성이 스스로 계약서를 작성한다.
미소를 지으며 계약서를 바라보던 여성이 만족스러운 듯이 말한다.
“오케이, 이것으로 계약 성립. 그럼 이제 당신에게 ‘시간’을 팔게.”
여성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
힘없이 축 늘어지는 손.
그리고 태공의 심장 고동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박태공.
성공한 인생이라 불리던 남자는 결국 8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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