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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메이지 1권-1

2015.01.08 조회 1,579 추천 15


 프롤로그
 
 어떤 사람이 물었다.
 ‘현자시여, 검과 마법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현자는 말했다.
 ‘검은 사람의 몸속에 영원한 소우주를 담는 것이고, 마법은 사람이 끝없는 대우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검과 마법 중 어느 것이 더 강합니까?’
 그러자 현자는 답했다.
 ‘딱히 어떤 것이 더 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고 말들 하지만, 둘 중 더 강한 것은…….’
 휘이이잉.
 바람이 불어와 주변을 맴돌았다. 나뭇가지가 바람을 배웅해 주기 위해 나부끼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선생이시여.’
 그 어떤 사람은 답을 들은 후 얼른 자리를 피했다.
 
 
 1. 백작 성으로
 
 좌우로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은 옥수수밭. 그 가운데에 나 있는 제법 넓은 오솔길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데 용이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한 마리의 늙은 말이 끄는 작은 짐마차. 오돌토돌한 오솔길을 이동하느라 마차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짐마차 위에서 한 명의 중년인이 마부석에 앉아 조용히 마차를 끌고 있었다. 수레엔 어른 팔뚝만 한 옥수수가 수북이 쌓여 있다.
 마부석에는 중년인뿐 아니라 1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꼬마 한 명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크하하하, 쓰읍, 크하하하!”
 꼬마는 좋은 꿈을 꾸고 있는지 자면서도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른손을 들어 위에서 아래로 내렸는데, 마치 검을 든 자가 검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꿈속에서 한 행동을 따라한 것 같았다.
 “이놈 보게. 어서 일어나, 이놈아!”
 40대의 중년 남자가 침 흘리며 자다가 웃는 제자 녀석을 발로 쳤다.
 “으아악!”
 쿵!
 “어떤 놈이 감히 붸세크인 나를 건드리느냐!”
 어린 소년은 옥수수 마차에서 떨어지자 번뜩 일어나며 소리쳤다.
 “이놈 보게? 이상한 꿈을 꾸고 헛소리를 하는구나. 네놈이 뷰크지 무슨 붸세크냐?”
 중년인은 검은색 로브로 온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로브 속에서 하얀 손이 나오더니 옥수수 하나를 들어 바닥에 있는 뷰크에게 던졌다.
 “이까짓 거!”
 뷰크는 오른손을 들어 옥수수를 가리켰다. 곧 몸속의 소우주가 움직여…….
 퍽!
 “퀙!”
 “이놈아, 헛소리 집어치워라! 젊은 놈이 대낮부터 낮잠이냐!”
 “왜 옥수수가 사라지지 않지? 아, 꿈이었구나.”
 뷰크라 불린 꼬마는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마차로 달리기 시작했다.
 “쇼를 하는군. 이랴!”
 탁!
 중년인은 잠시 멈춰 버린 옥수수 마차를 다시 출발시켰다. 뒤에서 놈이 올라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같이 가요, 사부!”
 사부라고 외치며 마차로 뛰어든 뷰크는 곧 중년인의 옆에 앉았다. 그러자 사부는 제자 녀석 모르게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사부, 그런데 그거 알아요? 산 중에서 가장 깊고 넓은, 드래곤이 산다는 드래하임 산맥에 엄청난 구멍이 있잖아요. 그거, 붸세크라는 천왕이 만든 거래. 원래는 태산이라는 가장 높은 산이 있었는데 그가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산을 없애고 구멍을 만든 거래.”
 “붸세크?”
 “응!”
 “이놈아, 내가 45년밖에 살지 못하긴 했지만, 그런 이름은 들어 본 적도, 책에서 읽은 적도 없다!”
 “아니라니까. 정말이래도!”
 “어디서 들었는데?”
 “꿈속에서!”
 소년 뷰크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탁!
 “퀙!”
 사부는 옥수수 하나를 들어 뷰크의 머리를 쳤다.
 “뷰크야, 마법사는 자고로 정신이 멀쩡해야 한단다.”
 “사실이래도!”
 “꿈이?”
 “응.”
 덜컹.
 순간 마차가 돌을 밟았는지 흔들렸다. 그러자 뷰크는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퀙!”
 “바보는 약도 없다.”
 제자를 바라보는 중년인의 얼굴엔 ‘내가 왜 저런 놈을 제자로 들였지?’라고 후회하는 표정이 나타났다.
 ‘마법사라 함은 자고로 조용히 사색에 잠기고 신중히 행동해야 하건만, 에잉! 하긴 실력 없는 마법사가 주제 파악도 못하고 제자를 들이니 어디서 덜떨어진 놈이 나타난 게지. 에휴…….’
 40대의 중년인 마법사는 고개를 돌려 뒤에 실린 옥수수를 바라봤다. 이것으로 1개월 정도는 먹고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기에 그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사부, 배고프니 얼른 집으로 가자!”
 마법사의 미소는 어느덧 옥수수에서 제자 녀석에게로 향했다.
 ‘떨어져도 어디 뼈 하나 부러지지 않은 걸 보니 근골이 매우 뛰어난데. 차라리 나 같은 떠돌이 마법사는 잊고 검을 익히라고 할까?’
 “뷰크야, 너 검을 익혀 봄이 어떠하냐?”
 마법사는 물어보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제자의 대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싫어! 여자 후리기 기술이나 알려 줘!”
 탁!
 “네 나이는 열두 살이다, 이놈아!”
 어느새 뷰크는 세 번 연속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는 기록을 세웠다. 마법사의 얼굴에 있던 미소가 사라지고 대신 어디서 저런 이상한 녀석이 굴러 들어왔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나타났다.
 
 마차는 계속 움직여 곧 마법사의 집에 도착했다.
 한적한 마을, 옥수수와 밀 위주로 농사를 지어 살아가는 마을이다. 주변엔 흔한 오크 하나 없을 정도로 몬스터가 없었다. 그렇다고 도적 떼가 나타날 만한 위치도 아니었다. 동쪽으론 숲이 있었는데, 그 숲 속엔 마치 신이 도끼로 찍어 내린 것 같은 낭떠러지가 있어 숲을 지나갈 수는 없었다. 그 너머에 몬스터가 많다고 하지만 다행히 몬스터들 역시 낭떠러지를 넘어오지 못했다.
 서쪽으로는 백작 성이 있는 쥬렌 도시가 있어, 도적 떼가 나타난다면 백작의 용맹한 기사들에 의해 순식간에 전멸당할 것이다.
 북쪽으론 넓은 평원이 있어 마을에서 가난으로 허덕이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었고, 남쪽에서는 여러 마을이 사람들의 왕래를 도와주고 있었다.
 마법사의 집이 있는 마을은 그런 대로 평범하고 조용한 작은 마을이었다.
 “어이쿠, 갈리언 님.”
 마법사는 마을 사람이 나오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그쪽을 바라봤다.
 “테슨 씨, 무슨 일입니까?”
 “저기, 딸년이 갑자기 두통이 심하다고 해서…….”
 “그럼 어서 가 봅시다!”
 “감사합니다, 갈리언 님!”
 “이놈 뷰크야, 내가 오기 전에 옥수수 다 내려 놓거라. 그리고 마차는 원 주인에게 돌려주고!”
 마법사는 마을에 사는 마음씨 좋은 테슨 씨의 딸을 살펴보러 가기 전에 뷰크에게 할 일을 일러줬다.
 “앗, 사부! 스트랭스 마법 걸어 줘야죠!”
 몸의 근력을 증가시키는 스트랭스 마법. 평소 몸에 그 마법을 걸어 옥수수를 내려놓았기에 그가 외쳤다. 그러나 사부는 테슨 아저씨와 함께 뷰크의 외침을 무시한 채 마을로 달려갈 뿐이었다.
 “쳇, 스트랭스 마법 없이 이 많은 옥수수를 옮기라고? 흥, 배 째!”
 그는 마차에 가득 실린 많은 양의 옥수수를 절대 맨 몸으로 나를 수 없다는 듯 마부석에서 팔짱을 끼며 외쳤다.
 “배 째긴 뭘 째냐!”
 “앗, 삐삐야!”
 언제 마차로 다가왔는지, 빨강 머리를 두 갈래로 딴 여자 아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무슨 삐삐야, 비디라니까, 비디!”
 “비디나 삐삐나. 난 삐삐가 더 귀엽고 좋고만.”
 “너 좋으라고 있는 이름 아니다, 이 쀽아!”
 소녀는 자기 이름이 삐삐로 불리는 것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했는지 소년의 이름을 강하게 불렀다.
 “그래, 난 쀽이다, 이 삐삐야!”
 뷰크가 그렇게 외치며 마부석에서 내려 소녀에게 달려들었다.
 “여자 후리기!”
 뷰크는 큰 소리로 외치며 발을 앞으로 뻗었다.
 “이 저질!”
 소녀 비디는 뷰크의 놀리는 말에 약이 올라 오늘은 봐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날아오는 발차기를 옆으로 피한 후 주먹을 내밀어 뷰크의 가슴을 쳤다.
 “아이쿠!”
 뷰크는 소녀의 주먹을 피하기 위해 몸을 틀었으나, 너무나 빠르게 틀어 순간 중심이 무너져 넘어졌다.
 비디는 넘어진 뷰크 위에 올라타 주먹으로 얼굴을 쳤다.
 퍽, 퍽!
 “악, 악!”
 비디는 서쪽에 있는 백작 성의 성문 경비대장 루한의 딸로서,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호신술과 약간의 검을 배우고 있었다. 만일 비디가 남자였다면 검술을 본격적으로 가르쳤을 것이다.
 “이, 이년이!”
 뷰크가 계속 얼굴을 치는 비디를 들어 올리려고 했다.
 “어딜!”
 그러자 비디는 얼굴을 아래로 찍었다. 그곳엔 정확히 뷰크의 코가 있었다.
 쾅!
 “크악!”
 “꺄하하, 오늘도 승!”
 비디는 그렇게 외치더니 쏜살같이 뷰크에게서 멀어져 마을로 들어갔다.
 “무, 무슨 놈의 여자가 바, 박치기야!”
 열두 살의 여자치곤 제법 싸울 줄 아는 비디였다.
 “사, 사부! 제게 어서 여자 후리기 좀 알려 줘!”
 뷰크는 여자 후리기를 여자 때리는 방법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왕년에 사부가 여자 후리기의 대가라고 마을 사람들이 종종 말하곤 했는데, 뷰크는 그것을 들은 적이 있다.
 뷰크의 외침은 그저 허공에서 부는 바람과도 같을 뿐, 사부는 사람을 치료하러 마을에 들어간 지 오래였다.
 3서클 떠돌이 마법사가 제자랍시고 일곱 살 난 아이를 데려와 정착한 한적한 마을 튜산. 어느덧 이곳에 온 지 5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힐링.”
 스르륵.
 갈레오는 하나뿐인 제자의 얼굴에 멍이 들자, 힐링 마법으로 치료를 해 주었다.
 “쯧쯧, 여자에게나 맞고 다니는 놈.”
 “그년이 아야, 아구구. 그년 아빠가 누군지 사부도 잘 알잖아!”
 “그렇지. 그러니 네가 검을 익히고 싶다면 내가 말해서 비디의 아버지에게 검을 배울 수 있도록 해 주마.”
 “싫어, 난 마법사야!”
 “0서클 마법사도 있더냐.”
 마법사가 될 거라는 제자의 외침이 갈리언은 싫지 않았다.
 “그러니 어서 1서클로 만들어 줘!”
 “그래, 오랜만에 다시 한 번 해 볼까? 어쩌면 오늘 성공할 수도 있으니까.”
 뛰어난 마법사는 마법진을 만들어 마나를 모을 수도 있다. 그리고 마나를 모으면 마나를 느끼는 것이 한결 수월해진다. 하지만 갈리언는 뛰어난 마법사가 아니기에 알고 있는 마법진이 하나도 없다.
 그는 제자가 마법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지금 있는 튜산 마을로 오기 전, 숲 속에 버려진 아이를 주워 키우기 시작한 지 2년 째 되던 해에 아이의 마나에 대한 감각을 알아보기 위해 이미 여러 차례 실험을 해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3년째인 오늘, 오랜만에 뷰크의 마나를 느끼는 감각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어서, 어서!”
 뷰크는 오랜만에 신이 났다.
 ‘삐삐, 이년. 내가 마법사가 되어서 너를 날려 줄 테다, 크하하하.’
 “크하하하!”
 “이놈아, 조용해!”
 가끔 이상하게 웃는 제자 녀석을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갈리언은 곧 조용히 주문을 읊었다.
 “나타나 응집하여 힘을 키우리니, 매직 미사일.”
 갈리언이 가장 흔하며 누구나 쉽게 배우는 매직 미사일을 하나 만들었다. 그러자 허공에 마나가 응집하더니 약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뷰크의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이에 뷰크는 두 눈을 감고 집중했다.
 마흔다섯 살을 먹도록 3서클에 머물러 있지만, 그래도 연륜이 있어 매직 미사일의 컨트롤 능력은 제법 뛰어났다. 그래서 그는 마나가 응집하는 특성이 있는 매직 미사일로 뷰크가 마나를 느끼도록 도왔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이런 방법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떠돌이였기에 많은 마법을 모르는 갈리언은 이런 방법밖에 쓸 수가 없었다.
 “그래, 마나가 느껴지느냐?”
 “잠깐만요!”
 뷰크는 스승의 말에 좀 더 조용히 집중했다.
 “느껴진다. 느껴진다!”
 “오!”
 “잠이 느껴진다. 드르렁.”
 “이놈이!”
 퍽!
 갈리언은 이런 와중에도 장난이나 치는 뷰크에게 오늘 밤에 먹을 옥수수를 들어 머리를 쳤다.
 “아야, 하지만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걸 어떻게 해요!”
 “에잉, 관두자!”
 수영을 배우려면 물을 알아야 하듯, 마법을 배우려면 가장 먼저 마나를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그 어떤 마법도 할 수 없다.
 “치, 난 마법사가 될 테야, 반드시!”
 뷰크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네가?”
 “그래!”
 “마나도 느끼지 못하는 네가 할 수 있을까?”
 “난 할 수 있어, 반드시!”
 ‘두근!’
 순간 갈리언은 알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뛰어난 마법사가 내뱉은 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언령 같은 힘이었다.
 “시간이 나면 평원에 가서 바람이나 느껴 봐라. 예전에 읽어 본 책에 쓰여 있길, 그렇게 해서 바람 속의 마나를 느낀 마법사도 있다더구나.”
 마을 근처에 평원이 있기에 한 말이었다.
 ‘평원 속의 바람!’
 뷰크는 그날, 바람이 부는 날이면 평원으로 달려가리라 마음먹었다.
 
 휘이이잉!
 태풍 못잖은 바람이 평원에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파라라라라!
 갈대들이 바람에 떨리며 나뭇가지들이 흔들거렸다.
 콰광! 쏴아아.
 번개가 치더니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에, 에, 에취!”
 뷰크는 기침을 하더니 하늘을 바라봤다. 먹구름이 잔뜩 낀 게, 밤새 비가 올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젠장, 돌팔이 마법사 같으니라고, 에취!”
 바람이 심하게 불자 평원에 달려와 마나를 느끼기 위해 노력했지만 스승의 말처럼 바람 속의 마나는 느껴지지 않았다.
 “좀 춥지만 이 정도로 물러날 나, 뷰크가 아니지. 하하하!”
 뷰크는 비바람을 맞으며 좀 더 바람 속의 마나를 느끼기 위해 집중했다. 시간이 지나 태양이 저 멀리 보이는 산 너머로 기울고, 어둠이 몰려왔다.
 뷰크는 뚝심으로 버티며 조금만 더 해 보자는 생각에 비 오는 것도 무시한 채 계속 앉아 있었지만, 결국 밤이 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마을 외곽에서 1분만 걸어오면 있는 위치에 있다. 마법사 갈리언이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나무로 지은 집인데, 중앙에 난로를 지피면 꽤 따스한 집이었다.
 “에, 에취! 사부.”
 뷰크는 문을 열고 들어와 스승을 찾았다.
 “어라? 없잖아. 해 떨어졌는데 어디를 갔지?”
 뷰크는 순간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유, 춥네.”
 4월이 되어 춥지 않을 만도 하건만, 몸이 떨리자 뷰크는 중앙의 난로로 다가갔다.
 “에? 장작이 없잖아! 치, 하는 수 없지. 에취!”
 뷰크는 입고 있는 옷이 다 젖었기에 훌러덩 벗고 방구석에 있는 침대로 갔다. 그리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돌팔이 사부, 오기만 해 봐라. 바람 속의 마나는커녕, 추위만 느껴지더라. 에취!”
 본인의 감각이 모자란 건 생각하지도 않고 사부 탓만 하는 뷰크였다.
 
 “이제 머리 아픈 것은 다 나았을 겁니다.”
 “갈리언 님,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죠.”
 갈리언은 마을 주민 테슨 씨의 딸이 머리가 아프다고 하자 며칠 전부터 마법으로 치료를 해 주었다. 물론 대단한 치료마법은 아니다. 유일하게 알고 있는 2서클 힐링 마법을 펼친 것인데, 이 마법은 신진대사를 촉진시키고 면역성을 올려 준다. 그리고 컨디션을 좋게 할 뿐 아니라, 몸속의 노폐물도 밖으로 내보내는 효력이 있어, 비록 상급 치료 마법과는 다르게 병이나 상처를 즉시 치료하지는 못하지만 비교적 효력이 좋은 마법이다.
 무엇보다 마법사라면 누구나 아는 쉬운 마법이기에 갈리언도 떠돌아다니며 힐링 마법을 익힐 수 있었다.
 “그럼 약소하나마 이거라도 받으십시오.”
 “아닙니다, 형편이 좋지도 않는데…….”
 “아닙니다. 제 성의입니다.”
 테슨은 딸이 너무 자주 아파 치료비로 그나마 있는 재산을 모두 날렸다. 만일 갈리언이 이 마을로 오지 않았다면, 딸은 치료를 받지 못해 큰 병에 걸리거나 죽었을 것이다.
 그래서 테슨은 갈리언에게 너무 고마워, 없는 형편임에도 양 잡을 때 잘 싸 둔 뒷다리를 주었다.
 평민이 고기를 먹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특히 양고기 뒷다리는 다른 부위보다 좀 더 비싼 부위다. 1주일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하는 고기를 테슨은 갈리언에게 주었다. 물론 갈리언이 해 준 것에 비하면 부족했다.
 그러나 갈리언은 실력은 없을지언정 인심은 좋았다.
 “그럼, 반절만 받겠습니다. 반절은 따님과 함께 드시지요. 그래야 딸의 병도 호전되지 않겠습니까.”
 “그, 그럼… 감사합니다.”
 테슨은 감사에 거듭 감사하며 갈리언을 보냈다.
 “갈리언 씨는 대마법사다. 비록 궁정의 뛰어난 마법사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대마법사다.”
 테슨이 딸아이 앞에 서서 혼잣말하듯 말을 했다.
 그에게는 멀리 있는 궁정 마법사보다 가까이 있는 갈리언이 더 대단했다.
 
 “후후, 뷰크 녀석, 오늘 좋아하겠군.”
 갈리언은 소박하게 살아간다. 비록 떠돌아다니며 배운 3서클 마법사지만, 그래서 도시에 가면 그럭저럭 괜찮은 돈벌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도시 생활을 하지 않고 마을 어귀에서 인심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긴다.
 오늘도 의미 있는 행동을 한 것뿐 아니라 맛있는 고기를 얻어 매우 즐거웠다.
 갈리언은 곧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뷰크 이 녀석아, 오늘은 무슨 말썽을…….”
 갈리언은 말을 하다가 말았다. 돌팔이네 못난 스승이네 하며 달려들 뷰크가 조용했기 때문이다. 아니,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아니, 이 녀석이 이렇게 일찍 잠을 자다니?”
 갈리언은 뷰크에게 다가갔다.
 “이런!”
 곧 뷰크의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 나고 온몸에 고열이 있는 것을 알았다.
 “아, 아.”
 뷰크는 자면서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갈리언은 자기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치료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힐링!”
 곧 갈리언의 두 손에서 마법이 펼쳐지자, 그는 손을 뷰크의 이마로 가져갔다. 그리고 또 마법을 펼쳤다. 그런 다음 이번엔 두 손을 뷰크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빛은 조용히 뷰크에게 스며들었다.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쉰 갈리언은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중앙의 난로를 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장작을 찾았지만 비가 와서 다 젖어 있었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고 장작을 가지고 와 중앙의 난로 속에 넣었다. 그런 다음 주문을 외워 파이어 마법을 펼쳤다. 그러자 젖은 장작일지라도 불이 붙었고, 곧 방 안이 훈훈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전혀 나아지지 않는구나!”
 하지만 뷰크의 상태는 그대로였다.
 “내 힘으론 안 된다. 무슨 병인지도 모르니 이를 어쩌지.”
 “쿨럭, 쿨럭!”
 그때였다. 갑자기 뷰크가 크게 기침을 했다. 그런데 기침을 하면서 피를 토해 냈다.
 “폐렴인가? 큰일이다!”
 폐렴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병에 대해 전문 지식이 없는 갈리언은 어떤 폐렴인지는 알지 못했다.
 “내 힘으론 안 된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갈리언이 방 안을 돌아다니며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방구석에 있는 작은 창고에 눈이 갔다.
 “그래, 이럴 때 써 먹어야지. 놔둬 봤자 뭐 하겠어!”
 그는 창고로 가서 작은 배낭을 뒤졌다. 그리고 거기서 여러 가지 양피지를 꺼냈다.
 “그래, 뷰크가 죽으면 하등 소용없는 것.”
 갈리언이 꺼낸 것은 스크롤이었다.
 뷰크가 좀 더 크면 도시의 학교라도 보내려고 했다.
 평민이 학교에 가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보통 돈 많은 상인이나 학교를 보낼 뿐, 일반 평민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갈리언은 예전에 떠돌아다니며 얻은 스크롤을 팔아 뷰크를 학교에 보낼 생각이었지만, 이제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스크롤을 지금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작 성의 두로임에게 가면 치료할 수 있을 거야. 그는 나보다 훨씬 뛰어난 마법사이니까. 하지만 나를 모른 체하면 어쩌지? 설마, 모두 다 옛일인데, 이제 와서 나를 모른 체하진 않겠지!”
 갈리언은 어떻게 할지 정했으면 빨리 행동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뷰크를 등에 없었다. 그런 후 밖으로 나와 주문을 외웠다.
 “세상의 근본이 되는 힘이여, 이곳에 모여 움직이소서. 움직이는 것은 움직임을 더하리니, 헤이스트!”
 2서클 헤이스트는 움직임을 두 배로 빨리하는 마법이다. 갈리언은 뷰크를 등에 업고 헤이스트 마법을 몸에 걸어 달리기 시작했다.
 “스트랭스!”
 곧 힘이 딸리자 온몸의 힘을 두 배로 올리는 마법을 걸었다.
 목적지는 백작 성이 있는 도시 쥬렌. 걸어서 7일 거리이니,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깝다. 말 타고 질주하면 하루 만에 도착할 수도 있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갈리언은 그 거리를 뷰크를 업고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말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평소 돈을 좀 더 벌어 놓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마을에 가면 말 1마리를 구할 수 있을 테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걸린다. 조금이라도 빨리 백작 성에 가야만 했다.
 ‘말 한 필이라도 구해 놓을 걸…….’
 그는 돈보다 여유 있는 삶을 원했다. 부대낀 도시 생활보다 한적한 마을에서 느긋하게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한적한 마을보다 도시에서 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리언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기보단 조금이라도 빨리 쥬렌으로 가야 했기에 생각을 떨쳐 버렸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갈리언은 뷰크를 업고 계속 달렸다. 몸속에 있는 모든 마나를 쥐어짜 헤이스트와 스트랭스 마법을 걸어 달리고 계속 달렸다. 그리고 반나절을 그렇게 달리자 결국 마나 고갈이 일어났다. 폭풍우와 어두운 밤길이기에 정신적 피로도 상당했다.
 갈리언은 품속에 잘 간직해 둔 스크롤을 꺼냈다.
 스크롤은 활성화된 마법을 봉인한 양피지다. 그것을 약품 처리해 쉽게 찢을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서, 찢으면 봉인된 마법이 실현된다.
 갈리언은 아쉬운 눈으로 손에 들린 스크롤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두 손에 힘을 가했다.
 찌지직.
 “헤이스트!”
 첫 번째 것은 그동안 갈리언이 계속 사용한 헤이스트였다.
 그는 두 번째 것을 찢었다.
 “스트랭스!”
 역시 그동안 계속 사용해 온 마법 스트랭스이었다.
 두 개 다 용병 상점에 팔면 상당한 값을 받을 수 있다. 용병들은 간단한 헤이스트와 스트랭스 마법으로 물리칠 수 없는 몬스터를 처치하거나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숨을 건질 수 있다.
 스크롤은 아무나 만들 수 없다. 정확한 원리는 스크롤을 만드는 사람만 알 수 있으며, 최소 5서클은 되어야 1서클 스크롤을 만들 수 있다.
 갈리언은 스크롤의 힘을 빌려 계속 달려갔다.
 그렇게 어느 정도 달렸을 때, 스크롤의 마법력이 다해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근력이 다해 더 이상 뷰크를 업고 있을 힘도 없었다.
 그는 품속에서 또 하나의 스크롤을 꺼냈다. 그리고 찢었다.
 “플라이!”
 3서클 플라이는 하늘을 나는 마법이다. 갈리언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렇게 빠르진 않았지만 힘 하나 들지 않고 날아갈 수 있기에 만족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그는 품속에서 또 하나의 스크롤을 꺼냈다.
 마지막 남은 스크롤이었다. 갈리언이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값비싸며, 유일하게 4서클 마법이 담긴 스크롤이다. 마법 상점에선 없어서 못 파는 스크롤이기도 하다.
 이거 하나만 팔면 평민 한 가정이 평생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값어치를 하는 것이다.
 갈리언의 몸이 점점 지상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플라이 마법력이 다해 간다는 증거다.
 ‘혹시 모르니 조금만 더!’
 갈리언은 지상에 내려와 다시 달렸다. 그러나 조금 쉬었다 할지라도 피곤이 풀릴 리가 없다. 그래서 곧 지쳐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제발 가능하길!’
 갈리언는 마지막 남은 스크롤을 아낌없이 찢었다.
 “텔레포트!”
 원하는 장소로 갈 수 있는 마법 텔레포트. 그러나 4서클의 마력이 담겨 있기에 거리에 제한이 있다. 만일 원하는 장소가 너무 멀면 마법은 무효화되며 허공으로 사라진다. 그래서 갈리언은 최대한 쥬렌에 가까이로 가서 스크롤을 찢은 것이었다. 가고자 하는 곳은 백작 성, 그곳에서 백작의 마법사로 있는 두로임을 만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
 쏴아아아.
 갈리언의 외침은 폭풍우에 묻혀 아무런 효용도 없었다. 오로지 빗소리를 잠깐이나마 작게 줄였을 뿐이었다. 이내 사방엔 빗소리로 가득했다.
 “하, 하하.”
 갈리언이 웃었다. 쓴웃음이었다.
 온 몸에 힘이 빠지는지 그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아, 아아, 쿨럭, 쿨럭!”
 등 뒤에서 뷰크의 신음 소리와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빗속이기 때문에 폐렴이 악화된 것 같았다.
 “하하하, 하하하!”
 갈리언은 웃었다. 허탈한 웃음이었다.
 텔레포트의 불발.
 이거 하나를 믿고 움직인 것인데,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대가는 하늘이 돕지 않는 한 제자 뷰크의 죽음일 것이다. 하지만 하늘이 도왔다면, 텔레포트가 성공했겠지.
 한 걸음 차이로 텔레포트가 불발됐을 수도 있다. 백작 성이 아니라 도시 쥬렌의 성문으로 목적지를 정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텔레포트가 됐을지도 모르니까.
 왜 A급 용병들이 비싼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상급 텔레포트 스크롤을 사려고 하는지 이해가 됐다. 만일 같은 4서클이라도 마력이 더 담긴 텔레포트 스크롤이었다면 불발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하하하!”
 갈리언이 크게 웃었다. 그는 곧 온몸에서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쓰러졌다.
 쏴아아아아.
 그의 웃음소리는 빗속에 묻혀 멀리 가지 못했다.
 “쿨럭, 쿨럭!”
 뷰크의 기침 소리가 탁해졌다. 얼핏 핏물이 보이는 게, 또 피를 토한 것 같았다.
 갈리언은 갑자기 육체적 피로는 물론 정신적 피로까지 몰려왔다.
 ‘하하하하.’
 그는 마음속으로 웃었다. 평생토록 힘없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힘을 부러워한 적이 없었다. 아니, 비록 세상에 내밀기엔 부족한 3서클 마법이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만 되도 남부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으며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몬스터 정도는 무찌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동안 생각한 모든 게 잘못된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그렇게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너무 몸을 무리해서 움직여 갑자기 몰려온 피로를 육체가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쏴아아아아.
 빗소리만이 그들의 상태를 말해 주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해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
 
 짹, 짹짹.
 툭, 툭.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밤새 내린 폭풍우에, 힘없는 나뭇잎은 애써 몸의 물방울을 땅으로 떨어트리며 온몸을 햇살에 말리고 있었다.
 땅에는 지렁이들이 오랜만에 날씨가 좋다며 밖으로 나와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고, 다람쥐같이 생긴 작은 동물은 폭풍우에 떨어진 나무의 열매를 가지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한차례 쏟아 낸 하늘은 높고 푸른 몸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물이 고인 길에서 마차 한 대가 웅덩이의 물을 가르며 지나가고 있었다. 사륜마차로, 제법 큰 마차였다.
 마차의 문에 호랑이와 검의 문양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제법 높은 사람이 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워, 워!”
 마부가 마차를 급히 멈췄다.
 “무슨 일인가?”
 마차 안에서 고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님, 앞에 사람이 쓰러져 있습니다.”
 “그럼 어서 가서 살피고 오거라. 만일 위험한 것 같으면 바로 되돌아와 마차를 몰고 빨리 성으로 가자. 위험한 것 같지 않다면 죽었는지 알아보고 죽었다면 근처에 묻어 줘라. 살았다면 마차로 데려온 후 성으로 가자.”
 “네, 마님.”
 고음의 목소리는 제법 어린 티가 났다.
 “너도 가서 도와라.”
 마님이라 불린 귀족 여인은 마차 안에 있는 호위에게 말했다.
 “전 백작 부인을 호위하는 자이지, 죽은 시체나 살피는 자가 아닙니다.”
 호위하는 자는 백작 부인에게 말을 함부로 했다. 하지만 부인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럼 네가 가거라.”
 백작 부인은 옆에 앉은 시종에게 말했다.
 “네, 마님.”
 시종은 호위 기사처럼 밖으로 나가는 것을 싫다 하고 싶었지만, 함부로 말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에 순순하게 따랐다.
 백작 부인은 두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마차 안에서 일이 해결될 때까지 기다렸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됐으려나? 주름 하나 없는 얼굴은 앳돼 보였고 풍부한 금발 머리카락은 부드럽게 굴곡져 있어 그녀의 성품이 어떠한 가를 말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눈썹 끝이 약간 올라간 것이, 부드러운 모습과는 다르게 단호한 느낌도 들었다. 그 두 가지 느낌이 여인의 아름다움을 한껏 받쳐 주고 있었다.
 그녀는 열여덟 살에 쥬렌의 주인 유탈리온 샤 유탈리온 백작과 결혼한 여인으로서, 가문을 살리기 위해 정략결혼이라는 명목으로 희생된 불쌍한 여인이었다. 백작의 나이가 올해 마흔셋 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한창 빛을 발해야 할, 막 핀 아름다운 꽃이 꺾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 후 마차는 출발했다. 중년인의 남자 한 명과 어린아이 한 명을 더 태우고서. 하지만 마차 안은 충분히 넓었기에 둘을 눕히고도 여유가 있었다.
 말 네 마리가 끄는 사륜마차는 역시 컸다.
 백작 부인은 성으로 들어가자마자 사람을 시켜 쓰러진 두 명을 치료 마법사에게 보였다. 치료 마법사는 둘 중 아이를 보더니 한마디 했다.
 “단순한 감기군요. 그리고 이빨이 하나 빠졌군요. 이 나이 때엔 이갈이를 하느라 작은 충격에도 곧잘 빠지니 별거 아닙니다.”
 그는 아이에게 간단하게 힐링 마법을 시전해 주었다. 그리고 이번엔 중년인을 보았다.
 “큰일이군. 3서클 마법사인데 심장의 서클이 불안정해. 쓰러지기 전에 모든 마력을 다 사용했을 뿐 아니라, 밤새 맞은 비와 추위에 몸이 너무 허해졌어. 육체가 약한 데다 정신을 잃어 서클의 구속이 너무 불안정해. 어쩌면 서클이 없어질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되면 정신적 충격으로 정신병자가 될지도 모르는데.”
 치료 마법사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그는 곧 마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빛은 따스해 모든 것을 인도하리니, 보이지 않는 것도 그에 순응하리라. 라이트 힐링!”
 치료 마법사의 손에서 따스한 빛이 나타났다. 그는 곧 손을 갈리언의 심장에 댔다. 그러자 빛은 알아서 약해진 심장으로 스며들었다.
 “응급처치는 했습니다만, 그 이상은 타인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특히 마법사의 서클은 더욱 그렇지요. 목숨에 지장은 없을 것입니다.”
 치료 마법사는 백작 부인에게 말했다. 그리고 자리를 떴다.
 
 “으음!”
 뷰크는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라, 감기가 나았나? 아프던 이도 안 아프네? 예!”
 그는 예전에 비디와 싸울 때 잘못 맞아 어금니가 흔들거렸다. 그것이 밥 먹을 때마다 거슬렸다.
 게다가 바람 속의 마나를 느끼려고 집중만 하면 자기도 모르게 어느덧 혀로 흔들거리는 어금니를 만지고 있었다. 그래서 손을 넣어 어금니를 빼 버렸다. 피가 좀 나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날 잘 때 입 안에 피가 고였지만, 감기 기운이 있어서 피곤이 몰려왔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일어나 보니 개운한 것이 컨디션이 좋았고 상쾌했다.
 “으음, 어? 뷰크야!”
 그때 옆에 있는 갈리언이 깨어났다.
 “사, 살았구나, 살았어! 으하하하!”
 갈리언은 너무나 기뻐 뷰크를 얼싸 안았다.
 “사, 사부, 왜 그래?”
 뷰크는 영문을 몰라 갈리언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하하하하, 살았으니 됐다. 됐어!”
 뷰크는 무슨 말이냐고 따지려고 했지만, 기뻐하는 사부의 모습에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사부처럼 뷰크도 갈리언을 껴안았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그렇게 잠시 있던 뷰크는 이곳이 집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화려한 벽은 물론이거니와 창가 또한 마치 하나의 조각상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창을 살짝 가리는 커튼은 비싼 비단이 틀림없어 보였다.
 “사부, 이곳은?”
 “아마도 백작 성 같구나.”
 그제야 갈리언은 뷰크를 품에서 떼어 냈다.
 이들의 소란을 밖에서 들었는지 누군가 둘이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
 “깨어났습니까?”
 들어온 여인이 말했다. 이에 갈리언은 잠시 눈앞의 여인을 바라봤다.
 굴곡진 금발을 소유한 아름다운 여인. 2년 전에 백작과 결혼한 비운의 여인에 대한 소문이 떠올랐다.
 “유탈리온 백작 부인을 뵈옵니다.”
 갈리언의 말에 뷰크는 눈을 크게 뜨고 여인을 바라봤다. 예의 같은 것을 잘 모르는 뷰크는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마디 했다.
 “와, 누나 예쁘다!”
 이에 갈리언이 뷰크의 입을 막았다.
 “읍, 읍!”
 “죄송합니다. 제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 그러니 저에게 죄를 물으시옵소서!”
 갈리언이 당황하며 백작 부인에게 말했다.
 평민은 귀족의 말 한마디에 목숨을 잃을 수가 있기에 갈리언은 조심스러워한 것이었다. 하지만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구해 주는 마음을 가졌다면, 결코 자신들을 해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괜찮습니다. 아직 어리기에 몰라서 그런 것이겠죠. 그리고 아름답다는 말은 듣기 좋습니다. 특히 꾸밈없는 어린아이의 말이라면 더욱 믿을 수 있겠죠.”
 백작 부인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유탈리온 백작이 자작의 둘째 자녀에게 빠져 무리해서 결혼했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이 정도의 여인이라면 이해가 가는구나!’
 갈리언은 눈앞의 여인이라면 오히려 백작에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백작은 40대의 중년인이었기 때문이다.
 “죄를 용서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너그러움까지 가지고 계시니, 백작님께서는 복이 넘치시는 분이군요.”
 “호호, 칭찬엔 약하니 자제해 주세요. 몸은 괜찮은가요?”
 백작 부인은 부끄러운 얼굴을 가리며 화제를 돌렸다.
 “네, 덕분에 건강합니다. 위험했는데 멀쩡히 다 나은 것 같습니다.”
 갈리언은 뷰크의 입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어머, 서클이 불안정하다던데 다 나았나 보군요.”
 “서클이라니오? 이 녀석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갈리언은 뷰크를 보고 한 말이었고, 백작 부인은 갈리언을 두고 한 말이었기에 서로 대상이 엇갈려 대화가 이상했다.
 “아니요. 오해가 있었군요. 그런데 이름이 뭐지요?”
 “갈리언입니다. 이쪽은 뷰크지요.”
 “전 갈리언 씨를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듣기로는 서클이 불안정해 마법을 잃을 수도 있다던데…….”
 “저야 뭐, 마법을 잃으면 어떻습니까? 뷰크가 다 나았으니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네?”
 순간 백작 부인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둘의 사이가 설사 부자지간이라 할지라도, 고작 아들의 감기가 나은 것을 서클이 없어져 마법을 잃는 것에 비교하다니?
 하지만 곧 씁쓸해하는 갈리언의 표정에서 마법을 잃지 않고 싶다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설마, 뷰크라는 꼬마가 큰 병을 앓고 있었나?’
 부인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방금 서로의 이야기에서 뭔가 초점이 맞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뷰크가 죽을병이라도 걸렸나요?”
 “네, 다행히 이곳에서 치료가 된 것 같지만, 폐렴을 앓고 있었습니다.”
 “폐렴요? 잠시 만요.”
 백작 부인은 뭔가 이상함을 알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하인을 시켜 치료 마법사를 데려왔다.
 “이 꼬마의 이름은 뷰크입니다. 폐렴을 앓고 있다던데 사실인가요?”
 백작 부인이 물었다.
 “폐렴요? 설마요. 이렇게 튼튼한 체질은 드뭅니다. 폐렴은커녕 아마 어제 걸린 감기도 일생 동안 처음 걸려 봤을 겁니다. 그렇지, 꼬마야?”
 “네, 콧물감기는 걸려 봤어도 어제처럼 아픈 감기는 처음이에요.”
 뷰크가 치료 마법사에게 말했다.
 “하지만 어젯밤, 기침을 하며 피를 토했는데…….”
 상황을 지켜보던 갈리언이 한마디 했다.
 “피를 토하다니요? 아하!”
 순간 치료 마법사는 상황을 이해했다.
 “하하하! 얘야, 너 어제 잠자기 전에 어금니를 억지로 뽑았지?”
 “네, 자꾸 흔들거려서 자기 전에 뽑아 버렸어요.”
 “그럼 자기 전에 입속에 피가 고였겠구나?”
 “네, 뱉고 싶었는데 감기가 걸려서 그런지 움직이는 것이 귀찮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잤어요. 히히.”
 뷰크는 자기가 말하고도 부끄러웠는지 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폐렴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단순한 감기에 어금니가 하나 빠진 것일 뿐입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잘 가세요, 베릭 씨.”
 치료 마법사의 이름이 베릭인지 백작 부인이 그렇게 인사했다.
 “또 무슨 일 있으면 부르십시오.”
 치료 마법사 베릭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
 갈리언은 아무런 말도 없이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에 백작 부인이 그를 보았다.
 ‘충격을 받았나?’
 갈리언은 계속 멍한 표정이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어젯밤에 있었던 수없이 많은 일들이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뷰크가 죽을까 봐 걱정했던 일과 그의 미래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있던 값비싼 스크롤을 찢은 일, 심장의 서클에 무리가 갈 정도로 마법을 써 댄 일과 힘들어도 오로지 제자 하나 구하겠다며 전심전력을 다해 어둠 속을 뚫고 전진했던 일 그리고 마지막에 죽음의 냄새를 맡으며 자신의 힘없음을 한탄했던 일…….
 “하, 하하.”
 갈리언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하하하하!”
 그는 크게 웃었다.
 “그래, 아무렴 어떤가! 내 하나뿐인 제자 뷰크가 살아 돌아오지 않았는가, 하하하하!”
 신은 처음부터 시련을 주지 않았다. 스스로가 착각한 것일 뿐이다. 시련은 스스로가 미련해서 빠지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저주할 일도 아니며, 원망할 일도 아니다. 그저 죽을 것 같던 제자 녀석이 살아 돌아온 일에 기뻐하면 된다.
 뷰크가 폐렴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기뻐할 만한 것이었다. 설사 자신의 서클과 바꾼 것이라 할지라도.
 아니, 이러한 생각 자체가 어리석은 것이다. 서클을 잃은 것은 미련해서일 뿐이다. 그러니 앞으로 미련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간에 제자를 살리고 싶었고, 제자가 건강하게 살아 있으니 대단히 만족한 결과다.
 “감사합니다, 유탈리온 백작 부인.”
 갈리언이 깊이 머리를 숙였다.
 영문을 모르던 뷰크는 스승을 바라봤다. 그리고 사부처럼 고개를 숙였다.
 
 
 2. 검을 들려면 눈썰미와 머리가 좋아야 한다
 
 갈리언은 한 가지 고심을 하고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제자 뷰크에 대한 걱정이었다.
 물론 그가 말썽꾸러기여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의 건강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그를 가르칠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기 때문이었다.
 자식 같은 뷰크를 떠돌이 마법사인 자신처럼 키울 순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맞길 수도 없고, 돈도 없을 뿐더러, 지금은 서클까지 잃어 마법사로서의 힘도 없었다.
 물론 다시 서클을 만들면 된다. 하지만 후유증으로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게다가 그래 봤자 여전히 마법도 몇 가지밖에 모르는 3서클 떠돌이 마법사일 뿐이다.
 그날 밤 폭풍우 속에서, 뷰크만큼은 3서클 떠돌이 마법사가 아니라 강력한 마법을 구사하는 상급 마법사로 키우고 싶다고 결심했고, 그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뷰크가 재능이 있었다면 다른 마법사에게 부탁이라도 해 보련만…….’
 갈리언이 보기에 뷰크는 마법에 재능이 없었다. 오히려 검을 드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뷰크는 마법사가 되려고 한다. 한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마법사의 길을 포기하게 만들려고 했지만, 어린 녀석이 뭐 이리 고집이 센지 결국 마법사의 길을 포기하게 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뷰크가 어딘가로 나가고 혼자 방 안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사람이 들어왔다.
 “갈리언인가?”
 “두, 두로임?”
 갈리언이 방 안으로 들어온 중년인을 보며 이름을 불렀다.
 “그래, 두로임이네. 정말 오랜만이네.”
 학자풍의 모자에 마법 로브를 걸치고, 한 손에는 마법 지팡이를 들고 있는 중년인. 그는 유탈리온 백작의 전속 마법사 두로임이었다.
 백작 부인으로부터 어제 있었던 일을 들은 백작은 두로임을 불러 이야기를 했다. 그런 후 갈리언이 귀족이라면 백작 자신이 갔을 것이지만, 그가 평민이기에 두로임을 대신 보내기로 했다. 물론 두로임 역시 갈리언이라면 안면이 있다며 흔쾌히 수락했다.
 “반갑네, 두로임.”
 갈리언은 반갑게 인사하는 두로임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어렸을 적에 도시에서 한 마법사의 제자가 된 2명. 그러나 두로임의 집은 꽤 큰 상인이었고, 갈리언은 일반 평민이었다.
 둘 다 마법에 재능을 보여 둘의 스승은 마법을 잘 가르쳤지만, 화를 당해 죽었다. 그때 상인의 아들인 두로임은 바로 마법학회로 들어가 계속 마법을 배웠지만, 갈리언은 1서클을 마스터하고 나서 2서클을 채 배우지도 못한 채 떠돌이 신세가 되어 버렸다.
 두로임은 상인의 아들이어서 그런지 계산이 철저하고 절대 손해 보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것이 우정에 관한 것이라도 그렇게 했다. 이들의 사부는 두로임이 상급 마법사는 될지언정 대마법사는 되지 못한다고 했다. 반면 갈리언을 보고는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대마법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대마법사는 시대마다 다르지만 현재엔 7서클 마스터가 돼야 얻을 수 있는 호칭이다.
 어쨌든 두로임이 형편없는, 그나마 있던 3서클마저 잃어버린 자신을 잘 대해 주니 갈리언으로서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하, 갈리언 자넨 어려서부터 너무 착해 탈이었지.”
 “착하긴, 그저 마음이 여린 것이었지.”
 둘은 자리에 앉아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했다.
 같이 마법을 배웠던 시절, 같은 여자를 사랑해 서로 싸우던 때, 서로 경쟁하며 더 높은 서클의 마법사가 되기 위해 열심이었던 때. 그들의 사부가 죽자, 모든 것이 끝나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고, 둘은 이제 모두 남 이야기처럼 할 수 있을 정도로 무덤덤해졌다.
 “자네 혹시… 지금 어떤 경지까지 올라갔는가?”
 이렇게 계속 이야기를 하다가 갈리언이 조심스럽게 두로임에게 물었다.
 “나야 뭐, 이제야 5서클을 이루고 6서클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네.”
 모르는 사이라면 상대방의 경지를 묻는 것은 실례지만, 둘은 한때 서로 경쟁하던 사이이기에 무리는 없었다.
 “오, 축하하네! 곧 있으면 6서클 마스터를 볼 수 있겠구먼!”
 “하하, 이 친구. 어렸을 땐 숙맥이더니만 나이를 먹으니 화술이 늘었구먼. 남을 기쁘게 하는 칭찬도 하고 말이야, 하하하.”
 쉰 살에 6서클에 오르면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두로임이 40대 중반에 6서클에 도전하다니, 대단한 일이었다. 물론 뒷동산에 오르듯 6서클에 오른다고 해서 쉽게 6서클 마스터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두로임은 갈리언의 형편을 들었는지 그의 서클은 묻지 않았다.
 둘은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 우정을 쌓은 후 헤어졌다.
 그리고 그날 밤 뷰크가 돌아왔다. 그런데 어디서 싸우다 왔는지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고, 옷은 흙으로 더럽혀져 여기저기 찢겨 있었다.
 “하하, 또 한바탕 하고 왔구나.”
 백작 성이라고 해서 어린아이들이 없는 건 아니다. 뷰크는 어떻게 알았는지 백작 성에 있는 아이들과 어울리고 온 것이었다. 그것이 싸움이 되었든, 놀이가 되었든 상관은 없었다. 아이들은 싸우며 크는 것이니까.
 “치! 그놈들, 여럿이 덤비는 게 어디 있어? 비겁하긴!”
 뭔가 분통이 터졌는지 뷰크는 이를 갈았다.
 “너도 이제 열두 살이니까 싸움만 하지 말고 공부를 해야지.”
 “공부는 무슨 공부, 난 마법사 할 테야!”
 “하하, 마법사를 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단다.”
 “지, 진짜?”
 “그래.”
 “마, 마법사 해야 하, 할까……?”
 뷰크가 갈리언의 눈치를 봤다. 공부보다 몸으로 움직이는 것을 더 좋아하는 뷰크로서는 공부의 ‘공’ 자만 들어도 진저리를 쳤다. 그렇지 않았다면 비록 떠돌이 마법사라지만, 마법사의 제자로 있으면서 겨우 글이나 읽을 수 있는 수준인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리라.
 “하하하, 마법에 관한 공부만 하면 되지.”
 “그렇지? 히히, 난 마법에 관한 공부만 할래.”
 좋아하는 뷰크를 갈리언이 조용히 바라봤다. 그러곤 고개를 끄덕였다.
 “너를 두로임에게 소개시켜 줘야겠구나.”
 “두로임?”
 “그래, 이 사부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란다.”
 “맞아, 마법! 빨리 힐링 마법 좀 시전해 줘. 얼굴이 통통 부어 아프단 말이야.”
 “하하, 난 당분간 마법을 펼치지 못한단다. 그러니 아프더라도 참거라.”
 “싫어, 빨리!”
 뷰크는 떼를 썼지만 서클을 잃어버린 갈리언이 힐링을 시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갈리언은 뷰크가 잠들기 전까지 시달려야만 했다.
 
 “알았네. 자네 부탁을 들어주지. 단, 자네도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줘야 하네.”
 “당연하지, 두로임. 자네가 내 부탁을 들어줬는데, 내 목숨이라도 내놓으라 하면 그리하겠네!”
 갈리언이 기뻐하며 말했다.
 “정말로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네.”
 “당연히 그래도 해 주겠지만, 무슨 일인데 그러나?”
 갈리언은 호언장담하다가 진짜로 목숨을 언급하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한 가지 물건을 가져오는 것일세. 3서클을 이룬 자네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걸세.”
 “난 서클을 잃었다네. 짐작컨대 최소 3서클을 가진 자야만 할 수 있는 일 같은데 지금의 내겐 무리 아닌가?”
 “걱정 말게. 몸속의 서클보단, 3서클이 감당할 수 있는 마나 양을 운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비록 자네가 3서클에 머물렀지만, 나와 함께 열다섯 살부터 마법을 배우기 시작해 30년 동안 마나를 다뤄 오지 않았나? 자네만 한 자격을 갖춘 자가 없네. 만일 자네가 무사히 온다면 3서클 마법서를 내가 선물로 주겠네.”
 “지, 진짠가?”
 순간 갈리언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3서클 마법서를 주다니? 그건 검사로 따지면 가문의 비기를 전수해 준다는 것과 비슷한 말이다. 사제지간에도 잘 전수해 주지 않는 것이 마법이다. 그만큼 마법사의 세계는 폐쇄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응용할 수 있는 마법의 수가 마법사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같은 3서클이라 할지라도 다섯 가지의 마법을 아는 자와 스무 가지를 아는 자의 힘은 서로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3서클엔 유용한 마법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3서클 마법서를 얻는다면 어쩌면 갈리언이 4서클로 넘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만큼 두로임의 조건은 충격적으로 들릴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당연하지.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네. 어쩔 텐가?”
 당연했다. 달콤한 만큼 쓴 맛도 강한 것이 무정한 마법 세계이기 때문이다.
 갈리언은 고민했다. 만일 한가하게 마을에 계속 있었더라면 이런 고민은 하지도 않고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폭풍우 속에서의 경험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하겠네.”
 “하하하, 갈리언 자네가 할 의향을 보이다니, 역시 세월은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군! 만일 자네가 어렸을 때 지금과 같은 모험심이 있었더라면 어쩌면 나보다 더 높은 경지를 바라보고 있었을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성공하든 못하든 관계없이 뷰크를 봐주는 것이겠지?”
 “그건 걱정 말게. 그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목숨을 담보로 한 부탁을 한 것이 아닌가? 성공 여부는 그다음 일일세.”
 “고맙네.”
 “이 친구가, 싱겁긴. 하하하!”
 갈리언은 고마우면서도 뭔가 뒤끝이 좋지 않았다.
 ‘이 친구는 모험은 지지리도 싫어했지. 어서 마음이 바뀌기 전에 움직이자!’
 두로임은 갈리언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얼른 일을 진행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부, 사부!”
 뷰크가 문을 활짝 열고 갈리언을 찾았다. 하지만 방엔 아무도 없었다.
 “크흠, 아무리 백작 부인의 손님이라지만, 성 안에서 함부로 뛰거나 소리치면 안 된단다.”
 뒤에서 들려온 말에 뷰크가 뒤돌았다.
 “누구세요?”
 뷰크는 말한 사람이 가진 학자풍 모자와 마법 로브 그리고 마법 지팡이를 보자 마법사라는 것을 알 순 있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난 두로임, 네 사부 갈리언과는 어렸을 적 동기이자 친구였단다. 자, 나를 따라오거라. 갈리언이 너를 찾는구나.”
 “사부가?”
 뷰크는 사부가 찾는다는 말에 마법사를 따라갔다. 그리고 곧 말에 타고 있는 갈리언을 만났다.
 “사부?”
 “하하, 사랑스러운 나의 제자 뷰크야, 내가 갔다 올 때까지 저 마법사를 따르거라. 내게 한 것처럼 사부 모시듯 해야 할 거야.”
 갈리언은 기왕 해야 할 일이라면 빨리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3서클 마법서를 손에 넣고 익혀 당당하게 뷰크에게 전수해 주고 싶었다. 뿐만 아니라 4서클로 올라가 더 큰 힘을 손에 넣고 싶었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두로임에게 부탁해 뷰크를 찾아 달라고 한 것이다. 상급 마법사인 그라면 쉽게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 가?”
 “그래, 우리 뷰크를 훌륭한 마법사로 만들기 위해 준비하러 간단다.”
 “지, 진짜?”
 “그래, 그러니 당분간 저 친구를 잘 따르거라.”
 갈리언이 두로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응, 알았어.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와.”
 “녀석.”
 “근데 언제 와?”
 “글쎄다, 빠르면 한두 달 후일 테고, 늦으면 좀 많이 늦… 겠구나.”
 목적지가 말을 타고 보름 거리이니, 일이 잘 풀리면 못해도 두 달 이내엔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 풀리지 않으면 영원히 오지 못할 것이다.
 갈리언은 떠나기 전에 뷰크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줬다. 그리고 말머리를 돌려 떠나려는데,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두 손을 움직여 말에게 출발 신호를 보내야 하건만, 이상하게 머뭇거리고 있었다.
 순간 갈리언의 뇌리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설마… 두로임의 말에 의하면 실수만 하지 않으면 그럴 일이 없다고 했으니, 잘할 수 있겠지.’
 갈리언은 쉼 호흡을 한 다음, 마음속으로 결심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사히 와서 웃는 얼굴로 뷰크를 만나기로. 그리고 4서클에 올라 부끄럽지 않은 스승이 되리라 굳게 다짐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갈리언의 두 눈에서 물줄기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왜 눈물이…….’
 “사부, 잘 갔다 와.”
 ‘그래, 잘 갔다 오마.’
 갑자기 목이 메어 말하지 못했다. 혹여 제자 녀석이 눈물을 볼까 봐 고개도 돌리지 못했다. 대신 두 손을 움직여 말고삐를 잡은 후 말을 출발시켰다.
 “사부, 올 때 과자 좀 사와!”
 뒤에서 뷰크의 외침이 들려왔다. 갈리언은 오른손을 들어 흔들었다.
 다그닥, 다그닥
 말은 거침없이 달렸다.
 갈리언은 조금이라도 빨리 성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뒤돌아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순간, 갈리언이 말고삐를 잘못 쥐었는지 말이 갑자기 흔들거렸다.
 ‘이크!’
 갈리언은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상체를 흔들었다. 하지만 말을 타 본 경험이 많지 않은 그는 그만 말에서 떨어졌다.
 쿵!
 “으악!”
 그가 온몸에 전해지는 충격에 고함을 질렀다. 머릿속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달려오는 뷰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고통도 잊은 채 얼른 상체를 일으켜 성을 바라봤다. 꽤 달려왔는지 백작 성이 작게 보였다.
 저 멀리, 두로임과 뷰크가 성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왜 쓸쓸한 걸까?’
 뷰크는 갈리언의 걱정과는 다르게 달려오기는커녕 돌아보지도 않았다.
 휘이이잉.
 바람이 불어와 바닥의 모래를 일으켰다.
 
 “자, 우린 가자꾸나.”
 두로임이 뷰크에게 말했다.
 “네, 아저씨.”
 “아저씨라고 하지 말고, 메이지라고 부르거라.”
 “메이지?”
 “그래, 마법사를 통상적으로 분류할 때 1, 2 서클은 하급 마법사, 보통 견습 마법사로 부른단다. 3, 4 서클은 중급 마법사로서, 이제야 마법사의 호칭을 받을 자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지. 5, 6 서클은 상급 마법사로서 메이지라는 호칭을 갖는단다. 그리고 7서클 이상부터는 마스터라고 부르지.”
 “오호, 그럼 아저씨는 5, 6 서클?”
 “그래, 이 아저씨는 5서클이다. 그러니 아저씨라는 호칭은 그만 하도록.”
 “알았어, 메이지.”
 “그래. 높임말은 나중에 제대로 교육시켜 주마.”
 “응?”
 두로임의 끝말이 작아서 잘 듣지 못한 뷰크가 반문했다.
 “아니다. 어서 가거라.”
 두로임은 뷰크를 데리고 백작 성으로 들어갔다.
 “어? 루한 아저씨!”
 뷰크가 백작 성 입구 안쪽에서 말을 타고 성으로 들어가는 한 남자를 바라보며 외쳤다.
 “어이쿠, 뷰크 아니냐. 메이지 두로임, 안녕하십니까.”
 성문 경비대장 루한이 의외의 장소에서 뷰크를 보며 인사를 하고 나서, 뒤에 있던 두로임을 발견하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한가, 루한.”
 메이지의 호칭을 받으면 평민이라도 평민의 신분이 아니다. 5서클 이상의 마법사는 그만큼의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백작 성의 이인자인 두로임은 귀족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뷰크야, 여긴 웬일이냐?”
 “여기? 음, 잘 몰라. 사부가 데리고 왔어.”
 “갈리언 님이?”
 루한은 주변을 둘러보며 혹시 갈리언이 있는지 살펴봤다.
 “그 친구는 떠났네. 언제 올지는 모르지. 가자, 뷰크.”
 “네, 아저씨, 아니 메이지.”
 두로임은 루한과 별로 친하지 않은지, 별말 없이 뷰크를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 루한은 멀어져 가는 뷰크와 두로임의 머리를 유심히 바라봤다.
 “좋지 않군.”
 
 “자, 이리 와 봐라.”
 두로임은 뷰크를 연무장 구석에 있는 나무 아래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심장에 있는 5개의 서클을 돌렸다.
 “보아하니 아직 서클은 만들지 못한 것 같군.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니 산만한 아이고. 버릇없는 것을 보니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했겠군. 하긴, 사부가 그러니 제자도 그러겠지. 디텍트Detect!”
 두로임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마법을 시전했다. 그리고 뷰크를 자세히 살펴봤다. 그러자 뷰크의 몸속에 있는 마나가 속속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서클을 만들려는 시도조차 전혀 안 했군. 아니, 아예 마나도 모으지 못했군.”
 서클은 마나를 모아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1서클을 만들지 못했다 할지라도 소량의 마나가 심장에 모여 있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제 겨우 마나를 알게 되어 아직 시도조차 해 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마나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로임은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터 갈리언과 함께 있었느냐?”
 뷰크는 두로임 앞에서 꿈쩍도 하지 못했다. 알 수 없는 기운이 전신을 옭아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 일곱 살 때부터야.”
 “지금 몇 살이냐?”
 “열, 열두 살이야.”
 “시간 낭비했군. 됐다. 저기 보이는 갈색 지붕 있지? 그리로 가서 두로임이 보냈다고 하면 네 거처를 알려 줄 것이다.”
 두로임은 그렇게 말한 후 뒤돌아 연무장을 가로질러 갔다.
 “메, 메이지!”
 뷰크가 두로임을 불렀다. 그러자 그가 뒤돌아 다가오더니 손을 휘둘렀다.
 짝!
 “님 자를 붙이거라. 앞으로 반말은 용서하지 않는다.”
 “왜, 왜?”
 뷰크가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두로임은 대답 대신 손을 휘둘렀다.
 짝, 짝!
 뷰크의 볼이 빨갛게 물들며 부어올랐다.
 “다음번엔 엉덩이 한 쪽이 없어질 때까지 맞을 줄 알아라.”
 두로임은 그렇게 말한 후 다시 뒤돌아 연무장을 가로질러 갔다.
 “…….”
 뷰크는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맞았는지, 아니 그 이전에 메이지가 왜 차갑게 대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야, 왜 때리고 난리야!”
 뷰크가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두로임은 이미 멀어져 뷰크의 말을 듣지 못했다.
 “이씨, 내가 참는다. 하하하!”
 뷰크는 분했지만 제자리에서 웃기만 했다.
 태양이 머리 위로 오려면 아직 멀었다. 그래서 점심 먹을 시간이 되려면 좀 더 걸릴 것이란 사실을 알았다.
 뷰크는 연무장 구석에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연무장엔 아무도 없었다. 연무장을 둘러싼 건물은 여러 채 있었는데, 가끔 건물에서 사람이 나와 다른 건물로 움직이는 것이 보이곤 했다.
 그중 갈색 지붕을 가진 건물이 뷰크의 눈에 들어왔다. 건물은 매우 작았는데, 어른이 팔을 크게 벌리면 건물의 한쪽 벽을 다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맞아, 저기로 가 보라고 했지.’
 뷰크는 할 일도 없어 갈색 지붕의 건물로 가기로 했다.
 
 “누구냐!”
 뷰크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덩치 큰 남자가 외쳤다.
 “욱, 냄새!”
 순간 똥 냄새가 풍기자 뷰크는 이곳이 백작 성 내에 있는 화장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구냐니까!”
 덩치 큰 남자가 성큼 다가왔다.
 “메이지가 보내서 왔어. 여기 오면 거처를 알려 준다고 했어.”
 “좋아. 나를 따라와라. 칫, 메이지님도 너무하는군. 이런 어린애를 보내다니.”
 덩치 큰 남자의 뒷말을 뷰크는 듣지 못했다.
 “내 이름은 주큼. 성에서 가장 지저분한 일을 하지. 하하하!”
 덩치 큰 남자는 갑자기 크게 웃었다.
 ‘미쳤나? 몸에서 똥 냄새가 나는 것도 그렇고 미친 듯이 웃기나 하고 말이야.’
 뷰크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이 앞으로의 자신의 모습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덩치 큰 남자 주큼은 뷰크를 데리고 계속 걸었다.
 “이놈아, 그러고 보니 네 이름은 뭐냐?”
 “난 뷰크. 장래 궁정 마법사가 될 거야.”
 “마법사? 크하하하! 하긴, 미치지 않고서야 이 일은 못 하지. 그렇군, 그래서 두로임 님이 이놈을 내게 보낸 것이로구나, 카하하하!”
 그는 뷰크가 약간 모자란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누구나 꺼리는 일을 시키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것은 세월이 지나면 해결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요즘 유행하는 조개 교육이군. 하하하!”
 “조개 교육? 우하하, 조기 교육이잖아, 이 바보야.”
 뷰크는 공부를 싫어하지만 마법사 스승 아래서 어느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았기에 주큼의 이상한 단어를 제대로 짚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 뷰크는 어렸다.
 “뭐, 바보? 이 녀석이!”
 주큼이 뷰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뷰크가 제빨리 고개를 숙였다.
 붕!
 주큼의 주먹은 허공을 때렸다.
 “이놈이!”
 주큼은 화가 났다. 원래 몇 대 때려 주고 관두려고 했는데 주먹을 피하자 부아가 치밀었다.
 주큼이 뷰크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뷰크가 피하려고 했으나 열두 살의 어린아이가 어른의 몸을 피하기란 힘들었다.
 “악, 이거 놔!”
 주큼이 뷰크를 들어 올렸다. 뷰크가 소리 질렀지만 주큼은 상관하지 않고 땅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아악, 하학!”
 뷰크는 충격에 호흡이 곤란해졌다.
 퍽, 퍽!
 “악, 흐읍, 악!”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뷰크를 향해 주큼이 발길질을 했다.
 “이놈, 앞으로 말 함부로 하지 마라!”
 그렇게 수차례 맞은 후 주큼이 한마디 한 후, 뷰크를 들어 올려 어깨에 짊어졌다. 그리고 계속 걸어가더니 마구간으로 들어갔다.
 주큼이 뷰크를 가장 끝에 있는 마구간으로 가서 던졌다. 다행히 짚이 쌓여 있어 위험하진 않았다.
 “여기가 네가 살 곳이다. 도망갈 생각은 말아라. 잡히면 죽는다. 이따가 점심 먹고 내게 와라. 일을 알려 주지.”
 주큼이 말을 한 후 마구간을 떠났다.
 뷰크는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주큼이 발길질을 할 때부터 그랬다.
 “아구구, 미친놈이 힘은 세네.”
 뷰크가 웅크리던 몸을 펴며 말했다.
 “내 몸이 튼튼해서 망정이지, 애를 잡네, 잡아. 크하하!”
 뷰크는 뭐가 그리 기쁜지 크게 웃었다. 하지만 기뻐서 웃는 게 아니란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뷰크가 두 주먹을 세게 쥔 상태로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여기가 내 집이란 말이야? 내가 말인가? 참 나.”
 마구간의 한쪽을 비워 정리한 후 짚을 깔아 사람이 누울 수 있도록 만든 공간, 그곳이 뷰크가 배정받은 방이었다.
 “스승이 오면 당장 나가야겠다. 히히.”
 뷰크는 조금만 참으면 스승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네놈이 할 일은 이거다.”
 뷰크는 어디서 점심을 먹을지 몰라 일찍 주큼에게 갔다. 그래서 겨우 점심은 얻어먹을 수 있었다. 주큼은 뷰크를 데리고 성의 동쪽에 있는 큰 연무장으로 갔다.
 “저곳의 똥을 퍼서 이곳에 담아 저리로 옮겨 놓아라.”
 연무장이 어찌나 큰지 화장실이 여럿 있었다. 그중 똥이 어느 정도 찬 곳에 가서 똥을 푼 다음, 통에 담아 수레에 실어 놓으라는 것이었다.
 “엑, 아저씨의 몸에서 똥 냄새가 나더니 이것 때문이었군요.”
 “크하하, 이제 네게서 날 테니까 좋아하지 마라.”
 “내가 이걸 왜 해요?”
 “왜? 맞기 싫으면 해야지.”
 덩치 큰 주큼은 아까처럼 뷰크를 두 손으로 잡았다. 그런 다음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악, 자, 잠깐!”
 “하하하, 이미 늦었다. 일은 맞으며 배워야 제대로 배우지.”
 퍽, 퍽!
 “아악!”
 뷰크는 또다시 몸을 웅크렸다. 보호 본능에 의해 위험 부위를 맞지 않기 위해서였다.
 주큼 역시 바보가 아닌지 위험한 부위는 때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리 하나 정도는 부러져도 좋을 정도로 강하게 때렸다.
 ‘이놈, 어리지만 쓸 만하겠어. 하하하!’
 보아하니 맷집이 매우 강해 보였다. 아까도 꽤 세게 때렸지만 점심 때 밥을 달라며 힘차게 걸어오지 않았던가. 지금도 뼈가 하나 부러질 만한데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톡톡히 두들겨 패서 일을 가르쳐야겠군.’
 주큼은 어디서 이런 좋은 놈이 들어왔나 싶어 신이 났다.
 
 “칫!”
 뷰크는 인상을 찡그리며 긴 손잡이가 달린 통으로 똥을 펐다.
 얼굴 여기저기에 멍이 들은 게, 꽤 심하게 맞은 것 같았다.
 연무장에서 아무리 많은 사람이 훈련을 한다 할지라도 똥을 싸는 양은 적었기에 다행히 일이 많지는 않았다. 이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따라와라.”
 주큼은 뷰크가 똥을 다 퍼서 수레에 싣자, 그에게 수레를 끌고 따라오라고 했다. 그런 후 성의 뒷문으로 갔다.
 “이 문은 농노나 머슴 같은 놈들이 드나드는 문이다. 여기에 수레를 놓으면 농노들이 와서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올 때 빈수레를 가져오지. 넌 그것을 가지고 와서 아까처럼 똥을 퍼다 놓으면 된다. 자, 따라와라.”
 주큼은 똥 푸는 곳을 알려 주기 위해 백작 성을 돌아다녔다.
 “이곳은 하녀들이 묵는 숙소다. 키키, 가끔 운 좋으면 이곳에서 똥 누는 하녀를 볼 수도 있지. 따라와라.”
 둘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저곳엔 절대 다가가지 마라. 잘못 들어가면 모가지가 잘린다.”
 “어라? 나 저기서 나왔는데?”
 그곳은 쓰러진 갈리언과 뷰크를 구한 후 백작 부인이 머물게 한 귀족이 사는 건물이었다.
 “하하하! 운이 좋아 저기를 들어가 봤다 할지라도 이제는 접근하지 마라. 저기 있는 분들 중 똥 냄새 나는 너를 가만히 놔둘 사람은 없으니까. 내 말 명심해라.”
 “응.”
 “하지만 그래도 똥은 치워야지. 그런데 그 똥을 귀한 귀족들이 치울 리가 없지 않겠어? 그렇다고 깨끗한 하녀들이 할 리도 없지.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하녀장의 인도를 따라 똥통을 비우는 날이 있다. 그때 우리들이 가서 비워야 돼. 자, 다음 곳으로 가자.”
 주큼은 뷰크를 데리고 백작 성 곳곳을 돌아다녔다.
 사람이 모여 살면 반드시 배설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 곳곳에 화장실이 있었다.
 “여기까지가 똥을 치우는 곳의 전부다. 하지만 네 방은 마구간, 넌 마구간도 청소해야 됨을 잊지 마라. 그러라고 거기에 방을 잡은 것이니까.”
 “마구간?”
 “그래.”
 “인간인 내가 한낱 미물의 똥까지 치워야 하는구나.”
 “하하하, 마구간의 말 한 마리가 죽으면 네 목이 10개라도 모자람을 잘 알아야 한다.”
 그날부터 뷰크는 똥 치우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강대강 하려고 했다. 일이 그만큼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큼은 일을 확실하게 가르치겠다는 생각으로 그럴 때마다 뷰크를 때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뷰크는 맞으면서 일을 했다.
 “크으, 나중에 마법사가 되면 똥파리로 만들어 영원히 똥통에서 살아가게 할 테다!”
 마법 중에는 사람을 변신시키는 것도 있다. 뷰크는 언젠가 반드시 그렇게 하고 말리라 다짐했다.
 쉬리리릭.
 바람이 불어와 걸어가는 뷰크의 주변에 맴돌았다. 그 바람은 뷰크에게 할 말이 있는지 그를 따라다녔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 사람과 대화할 수 없었다. 이것을 바람도 잘 아는지 곧 뷰크를 떠나가 다른 곳으로 갔다.
 “하하하, 좋은 녀석이 들어왔어.”
 주큼은 멀리 걸어가는 뷰크를 바라봤다.
 “앞으로 편하게 생활하겠군. 킁킁, 이 냄새도 좀 없어지겠어. 하하하!”
 그가 자기 몸에서 나는 똥 냄새를 맡았다. 그러다가 바닥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챘다.
 모래들이 뭉쳐서 이상한 문자를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글을 모르는 주큼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에 그냥 지나쳤다.
 바닥의 문자는 ‘그렇게 될지어다.’라고 쓰여 있었다.
 휘이이잉.
 바람이 불어와 문장을 지웠다.
 문장이 있던 자리는 방금 뷰크가 다짐하며 걸어간 곳이었다.
 
 @
 
 “웃차!”
 뷰크는 마구간을 다 청소했다.
 “휴, 이놈의 말 한 마리가 나보다 귀하단 말이야?”
 뷰크가 옆에 있는 말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히이이잉.
 말이 고개를 끄덕이며 울었다.
 “이놈아, 그렇긴 뭐가 그래!”
 뷰크가 고개를 끄덕인 말의 머리를 한 대 쳤다.
 이히이이잉!
 말이 눈알을 부라리며 뷰크를 향해 크게 외치더니, 콧바람을 내뿜었다.
 “이크, 이 마구간은 전투마를 보살피는 곳이었지!”
 백작 성에 마구간은 많았다. 그중 가장 귀한 곳을 꼽으라면 백작의 가족이 타는 말이 있는 곳이다. 그다음을 꼽으라면 기사들이 타는 말이 있는 곳이었다.
 백작의 말들은 순하다. 그러나 기사들의 말은 매우 거칠다. 특히 전투마는 더 그렇다. 뷰크는 혹여나 말이 뛰쳐나와 덮칠까 봐 얼른 자리를 피했다.
 “넌 뷰크 아니야. 네가 여긴 웬일이냐?”
 “어? 로한 아저씨!”
 마구간을 나가려는 찰나, 로한이 뷰크를 발견하고 불러 세웠다. 그런데 뷰크에게서 똥 냄새가 나자 로한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설마 너, 마구간지기로 있느냐?”
 “비슷해요. 마구간지기보다 조금 더 냄새나는 것을 하죠. 하하하.”
 “네가 왜 그런 일을 하지? 메이지 두로임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두로임 아저씨가 시켜서 하는 일인데요?”
 “뭐라고?”
 순간 로한이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사부가 오면 이곳을 떠날 테니 상관없어요.”
 “음…….”
 로한이 뭔가 깊이 생각했다.
 백작 성의 정문 경비대장 로한은 평민으로선 꽤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너, 내일부터 이 시간에 이곳으로 와라.”
 “왜요?”
 “검술을 가르쳐 주겠다. 그리고 경비 일을 하든 다른 일을 하든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
 “하지만 일하지 않고 이곳에 있으면 엄청 맞을 텐데요?”
 “그럼 일을 마친 후에 이곳으로 와라. 당분간 나도 이곳에서 지낼 테니까.”
 “네! 하지만…….”
 “하지만?”
 “전 마법사 할 건데요?”
 “마법사? 하하하, 그래. 넌 갈리언 님의 제자였지. 그럼 검을 배우고 마법사를 하면 되지 않겠냐.”
 “음… 그렇군요.”
 “그래, 그럼 가 봐라. 내일 오거든 이 나무를 두드려라.”
 탕탕!
 로한이 주먹으로 나무판을 때렸다. 그러자 나무 2개가 서로 부딪치며 큰 소리가 났다. 훈련용으로 세워 둔 나무판이었다.
 “네!”
 뷰크는 힘차게 대답을 한 후 뒤돌아 뛰어가기 시작했다. 로한이 멀어져 가는 뷰크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나저나 난 마법사 할 건데 검을 들어도 되나?”
 뷰크는 내심 걱정이 됐지만, 상관없을 것이라 생각한 후 다음 마구간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퍽, 퍽!
 “크윽!”
 “일 똑바로 해, 이놈아!”
 퍽, 파악!
 “크악!”
 뷰크는 매일 맞다 보니 맞는 것에도 요령이 생겼다. 그중 하나가 맞을 때 고함을 크게 지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때리는 사람이 통쾌해서 그런지 맞는 횟수가 줄었다. 하지만 너무 과하게 지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또 하나의 요령이라면, 맞을 때 기합을 넣듯 고함을 지르라는 것이다. 원인은 모르지만 맞는 순간 온몸이 팽창하며 충격에 대비하게 되어, 몸이 상할 일도 적어지고 고통도 줄었다.
 “하압, 악!”
 뷰크는 발길질이 날아오자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함을 질렀다. 그렇게 어느 정도 지속되자 주큼은 발길질을 멈췄다. 평소보다 몇 배나 많은 발길질을 했다.
 “만일 또 그러면 그땐 죽을 줄 알아라. 오늘 중으로 이거 다 치우고 물로 깨끗이 씻어 놔라.”
 오늘 낮에 뷰크가 똥을 실은 수레를 이끌다가 실수로 엎어버렸다. 그래서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그래서 죽도록 팬 것이었다. 뷰크는 땅바닥에 웅크린 자세로 누워 있었다.
 “카아앗, 퇘!”
 주큼이 침을 뱉더니 자기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뷰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온몸을 툴툴 털기 시작했다.
 “칫, 별로 아프지도 않고만. 히히.”
 맞을 때 기합을 넣는 것은 즉효였다.
 뷰크는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을 다 치우고 똥을 수레에 퍼다 나른 다음, 전투마가 있는 마구간으로 가서 로한 아저씨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히히, 검술을 잘 배우면 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단 말이지? 좋다! 그런데 그 전에 사부가 오면 어쩌지? 에이, 뭐 그럼 좋지, 히히.”
 뷰크는 부지런히 똥을 치우고 수레를 움직인 후 마구간으로 갔다.
 
 “로한 아저씨!”
 탕, 탕, 탕!
 뷰크는 마구간으로 오자마자 훈련용으로 세워 둔 나무판을 계속 치며 외쳤다.
 “녀석, 급했나 보구나.”
 “아저씨!”
 “어디 보자. 킁킁, 이런! 일단 씻고 와라!”
 로한은 뷰크의 몸에서 똥 냄새가 심해 가르칠 맛이 나지 않았다.
 “킁킁, 냄새가 심한가? 난 별로 안 나는데.”
 “어서!”
 “응!”
 뷰크는 혹시나 검술을 가르쳐 주지 않을까 봐 얼른 마구간의 옆에 있는 우물로 갔다. 그리고 물을 몸에 마구 뿌리며 옷을 벗지도 않고 씻었다.
 ‘이제 4월, 좀 따스해졌다지만 물을 퍼부어 씻기엔 아직 추울 텐데, 근성이 있군.’
 로한은 오래전부터 뷰크를 봐 왔다. 맡은 직책이 있어 많은 시간을 성에서 보내지만,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잠깐 집에 갔다 온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뷰크와 친했기에 그때마다 뷰크를 지켜볼 수 있었다.
 ‘언제고 한 번 검술을 가르쳐 보고 싶었던 아이지.’
 스승이 마법사라 말을 꺼내진 못했다. 하지만 마법사보다는 검사가 더 어울리는 아이였다. 맷집도 있고 몸놀림도 빨랐으며 무엇보다 근골이 너무 좋았다. 거기에 뷰크 특유의 고집스러운 성격이 검술을 익히기에 매우 좋았다.
 뷰크는 대강 씻고 로한에게 왔다. 옷이 물에 젖어 있었다.
 “옷은 벗어서 햇볕에 마르도록 저기에 두어라.”
 로한이 사람이 앉기에 좋은 돌을 가리켰다. 그러자 뷰크는 얼른 옷을 모두 벗고 돌 위에 놓았다.
 열두 살의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옷을 다 벗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좋아, 우선 검술을 익히기에 앞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넌 검술을 익히기 시작하면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그만두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당연하죠! 결코,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일이 있어도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하하, 너무 강조하지 마라. 오히려 가벼워 보인단다.”
 로한은 뷰크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어린아이의 말이기 때문이다. 단지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검을 관두지 않겠노라는 마음을 심어 주기 위해서 물어본 것이었다.
 “검술은 단기간에 배운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아직 검을 잡기엔 네 나이가 이르니, 일단은 기초부터 다지자꾸나. 먼저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마구간 전체를 열 바퀴씩 돌고 오너라. 약속할 수 있느냐?”
 “당연하죠!”
 “좋아. 그렇게 한 후 시간이 되면 이곳에 오거라. 내가 자리를 비우게 된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너를 가르칠 것이다.”
 “네!”
 “오늘은 한 가지 자세를 알려 주겠다. 틈틈이 시간이 나면 이 자세를 연습하거라.”
 로한은 그렇게 말하며 모든 자세의 기본이 되는 기마 자세를 취했다.
 “중요한 점은 무릎이 정확히 이만큼 꺾여야 된다는 거다.”
 로한은 손으로 무릎을 가리키며 90도를 강조했다.
 “허리는 반드시 펴야 한단다. 그런 후 주먹을 쥐고 앞으로 뻗어라. 팔 사이에 항아리가 있다는 생각으로 손을 고정시켜라. 이 자세는 마치 말을 타는 것 같다 해서 기마 자세라 한다. 만일 무릎이 펴지거나 허리가 휘면 잠시 쉬었다가 하거라. 오랜 시간 동안 대강 하는 것보다 짧더라도 정확한 자세를 취하는 게 더 좋다. 알았느냐?”
 “네!”
 뷰크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녀석, 처음엔 할 만하지만 아마 하기 싫어질 때가 올 거다. 하지만 이것을 꾸준히 해야만 검술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네!”
 “그럼 자세를 교정해 줄 테니 기마 자세를 취해 보거라.”
 뷰크는 로한의 말에 기마 자세를 취했다.
 “좋아, 그대로 유지하거라.”
 ‘역시 생각보다 잘 따라하는군.’
 보통 기마 자세를 취하면 무릎을 덜 굽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뷰크는 마치 오랜 시간 동안 기마 자세를 해 온 사람처럼 딱 알맞은 정도로 무릎을 굽혔다. 그래서 특별히 자세를 교정시켜 줄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밥 한 끼 먹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아직 어린데 생각보다 잘 버티는군.’
 뷰크는 힘든지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자세는 흐트러지지는 않았다. 밥 한 끼 먹을 시간이 더 흘렀다.
 ‘역시 끈기가 있어. 검을 배울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마음가짐이지.’
 뷰크는 처음 그 자세 그대로 유지했다. 보통 차 한 잔을 마실 정도의 시간만 지나도 다리가 점점 올라가는 법인데, 뷰크는 상당한 시간을 버틴 것이다. 물론 힘든지 얼굴에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어디까지 하는지 두고 보자.’
 로한은 그만두게 하려다가 생각을 바꿔 계속 지켜봤다.
 “에구, 힘들어. 쉬었다 할게요.”
 뷰크는 자세가 흐트러질 것 같아서 그만두고 땅바닥에 누웠다.
 “매일 오늘 한 만큼만 자세를 취하거라. 그러면 충분하다. 그리고 오늘은 푹 쉬어라. 다리가 풀려서 힘이 없을 것이다. 내일은 목검을 주마. 그것으로 검에 익숙해지도록.”
 뷰크의 검술 첫 날 연습은 기마 자세 하나로 끝났다.
 ‘뭐야, 별거 아니잖아.’
 기대를 잔득한 뷰크는 실망했다. 하지만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검술을 배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똥 치우는 일을 그만둘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음 날, 뷰크는 마구간을 열 바퀴 달리고 싶어도 다리에 알이 배겨 제대로 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약속했기에 온 힘을 다해 열 바퀴를 달렸다. 그런 후 마구간을 치우기 시작했다.
 말들이 먹을 짚을 넣어 주고 특별히 지정된 말은 당근도 줬다. 그리고 물을 길러 말을 닦기도 했다.
 대부분 주인이 있는 말들이고, 보통 말을 가질 정도면 시종도 가지고 있기에 뷰크가 관리할 말은 별로 없었다. 아직 주인이 없는 말을 닦는 것과 먹이 주는 것 그리고 마구간을 청소하며 말똥도 치우는 것이 뷰크가 할 일이었다. 또한 성내에 있는 똥통을 관리하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똥을 싸 봤자 얼마나 싸겠는가? 뷰크의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단지 처음에 많게 느껴진 것은 그동안 산재한 일을 주큼이 모두 뷰크에게 시켰고, 제대로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때리거나 아직 청소하지 않아도 되는 곳까지 청소를 시켰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성에서 보내는 날이 길어질수록 뷰크의 일은 줄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점점 일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쉬워지기도 했다.
 혼자서 일을 잘하게 되자 주큼의 간섭도 적어졌다. 몇 가지 중요한 지역의 청소를 제외하곤 뷰크 혼자서 처리했다.
 이렇게 점점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자 자연적으로 검술을 배우는 시간은 늘어났다.
 
 뷰크는 기마 자세를 풀고 땅바닥에 누웠다. 첫 날보다 익숙해지긴 했지만,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휴, 그건 그렇고 검술은 언제 알려 주려나?”
 뷰크가 검술을 훈련한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러나 그동안 기마 자세와 달리기만 했을 뿐, 그 외의 다른 것은 배우지 않았다.
 검을 배우기 시작한 다음 날, 목검을 주며 기초라도 가르쳐 줄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목검을 가지고 있으라고만 했다.
 뷰크는 배운 것이 없기에 검을 가지고 휘둘러 보기는 했어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심심해서 나무를 흔들고 떨어지는 잎사귀를 베거나 눈높이에 있는 가지를 향해 힘껏 찔러 보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엉성하기만 했다.
 5월 중순, 완연한 봄이 오고 사방에 향긋한 꽃 냄새가 가득했다. 하지만 뷰크의 몸에선 여전히 똥 냄새가 진동했다.
 옷이라도 자주 갈아입으면 좋으련만, 똥 치우는 시종 같은 자에게 옷이 많을 리가 없었다. 특히 맨 몸으로 이곳에 왔기에 그나마 로한이 준 몇 벌이 전부였다.
 아침마다 마구간 주변을 열 바퀴 돌던 것이 어느덧 이십 바퀴를 넘고 삼십 바퀴로 늘었다. 기마 자세도 이제는 성의 종이 한 번 울리고 다음 번 종이 울릴 때가지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종은 12시를 기준으로 3시간 간격으로 울리니 3시간 동안 기마 자세를 유지한 것이다.
 언젠가부터 뷰크는 기마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 힘들어지면 ‘합, 합’거리며 기합을 넣었다. 주큼에게 맞을 때 터득한, 맞아도 아프지 않은 방법을 기마 자세가 힘들 때 응용한 것이다. 그 후로 3시간은 가볍게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았다. 너무 지루하기 때문이었다.
 로한은 뷰크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하지만 뷰크가 기마 자세를 할 때 로한은 검술을 연마했다. 물론 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뷰크가 보고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로한은 검술뿐만 아니라 검이 없을 때를 대비해 맨손 전투 기술도 연습했다. 뷰크는 지루한 기마 자세를 취하는 동안 그나마 구경거리가 생겨 지루함을 달랠 수 있었다.
 뷰크는 12시에 종이 한 번 울리고 다음번에 한 번 더 울리면 마구간에서 벗어나 성문 근처에 있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때 로한이 경비병을 훈련시키는 걸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약 20여 명의 경비병이 손에 검 대신 창을 들고 있었는데, 로한의 기합에 맞추어 찌르기와 휘두르기 등 간단한 창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뷰크는 그 모습을 보고 찌르기를 흉내 냈다. 하지만 창과 검은 너무나 다른 무기, 창의 찌르기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왜 내게 검술을 가르쳐 주지 않는 거야!’
 뷰크는 점점 불만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만큼 검술을 배우고 싶은 욕망도 높아져갔다.
 그렇게 1달이 지났다.
 6월이 되자 햇볕은 점점 뜨거워졌고, 사람들의 옷은 점점 얇아졌다.
 뷰크는 성에서의 생활에 완전히 적응해 어린 나이임에도 한 사람의 몫을 다 했다. 그리고 그가 검을 잡은 지 2달이 넘어가고 3달이 되어갈 때, 뷰크의 옆에 한 사람이 나타나 검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뷰크보다 조금 더 큰 키에 조금 더 마른 체격을 가진, 로한의 딸 비디였다.
 “로한 아저씨, 왜 삐삐가 여기 있어?”
 “삐삐?”
 “아빠, 뷰크가 나를 부를 때 그렇게 불러.”
 비디가 아버지인 로한에게 말했다.
 처음 비디가 나타났을 땐 무슨 일인지 궁금했던 뷰크였다. 그러나 어린 그녀가 곧 얇은 검을 들고 여러 자세를 취하자 뷰크가 로한에게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뷰크, 난 여검사가 될 거니까 아빠에게 와서 검술을 배우는 것은 당연하잖아?”
 비디가 말했다.
 “뭐? 여자가 무슨 검이야. 부엌에서나 열심히 잡을 것이지!”
 “이것이, 나보다 약한 게 어디서!”
 “하하, 예전의 나로 알고 있으면 안 되지!”
 비디가 덤빌 것 같이 자세를 취하자 뷰크가 그동안 힘든 일을 해 온 보람을 느끼며 몸을 풀었다.
 “호호, 왜 기쁘지? 몰라, 덤벼!”
 비디는 뷰크와 싸운다는 사실에 흥분하며 덤벼들었다.
 “이크, 덤비라며 왜 네가 덤비냐!”
 비디의 손에 들린 얇은 목검과 반대로 뷰크에겐 비교적 굵은 목검이 들려 있었다. 여자인 비디가 다 컸을 경우 힘이 약한 대신 빠른 검을 구사할 수 있도록 아버지인 로한이 배려한 것이다. 반대로 힘이 센 뷰크의 경우 일반 목검보다 약간 더 굵은 것을 가졌다.
 뷰크가 갑자기 검을 앞으로 내밀고 돌진하는 비디를 향해 외치며 얼른 옆으로 피했다. 그동안 기마 자세를 해 왔기에 자세에서 힘이 잘 전달돼 빠르게 비디의 목검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뷰크는 배운 게 아무것도 없다. 반면에 비디는 언제부터 검을 배웠는지 모르지만, 제법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비디가 바로 찌르기에서 뷰크가 피한 방향인 우측 배기로 자세를 바꿨다.
 “이크!”
 이에 깜짝 놀란 뷰크가 어쩔 줄을 몰랐다. 발이 땅에서 떨어져 있었기에 비록 몸이 반응을 했지만, 다른 방향으로 도망갈 순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손에 들린 목검을 들어 막았다.
 따닥, 팍!
 “크악!”
 비디의 우측 배기는 막았지만, 그다음에 펼쳐진 찌르기를 막지 못해 비디의 목검이 뷰크의 오른쪽 가슴을 찍었다. 만일 진검이었으면 관통했을 것이다.
 “호호호, 승리!”
 비디의 검술은 어리지만 몇 개월 동안 배운 것으로 나올 수준이 아니었다.
 “이이, 쳇! 로한 아저씨!”
 “왜 그러냐?”
 무심히 둘의 대결을 바라보던 로한은 뷰크의 물음에 느긋하게 대답했다.
 “저도 검술 좀 가르쳐 주세요!”
 “아직 기초 단계라 이르구나. 여름이 다 가고 저 나무에 열매가 맺으면 그렇게 하자꾸나.”
 로한이 마구간 옆에 심어져 있는 한 그루의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좋아요! 삐삐, 너 그때 다시 붙어!”
 뷰크가 억울한지 비디를 향해 외쳤다.
 “호호, 그때가 되면 난 실력이 더 올라가 있을걸?”
 “흥, 난 더 높은 실력을 가질 거야!”
 뷰크가 흥분하며 외쳤다.
 “어? 어, 그, 그래. 응? 내가 왜?”
 갑자기 비디가 뷰크의 외침에 대답을 했다. 하지만 자기가 왜 대답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로 비디는 집으로 가지 않고 백작 성에 기거했다. 성문 경비대장의 직분이면 딸 한 명 정도는 얼마든지 머물 수 있게 할 힘이 있었다.
 뷰크는 다음 날부터 마구간의 청소와 똥 치우는 일을 최대한 빨리 끝냈다. 그리고 기마 자세를 3시간 동안 한 후, 오후에 창술 훈련장에 가서 검을 가지고 그들의 모습을 흉내 냈다. 그러다가 비디가 검을 들고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몰래 훔쳐 배우기 시작했다.
 3일 후, 창술을 훈련하는 경비들이 사방으로 몸을 움직이는 훈련을 시작했다. 그것은 공격과 방어를 하기 위해 일정한 법칙으로 만든 일종의 보법이었는데, 앞으로 발을 내밀 때 공격을, 뒤로 물러날 때 방어를 그리고 좌우로 움직일 때 피하는 기본 움직임이었다.
 뷰크는 그 모습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비디의 검을 피했을 때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렇구나. 다리는 땅을 미끄러지듯 움직여야 다음 움직임에 바로 대응할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자세는 기마 자세 때처럼 숙이는 것이 더 좋구나!’
 열두 살의 뷰크였지만 경비병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뷰크는 사방으로 움직이는 보법을 따라 연습하기 시작했다. 한 발 앞으로 내밀고 바로 뒤로 두 보 후퇴, 그런 후 다시 한 발 앞으로 내밀고 좌로 한 발, 우로 두 발 그리고 다시 좌로 한 발, 이렇게 하면 처음 위치로 돌아온다. 그러면 다시 한 발 앞으로 내밀고 다시 뒤로 두 발 물러난다. 이렇게 해서 사방으로 움직이는 보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나고 1주일이 넘어 1달이 되었을 무렵이다.
 사람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시원한 물로 씻었다. 태양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하늘에 떠 있기를 원했는지 긴 낮을 유지했다.
 뷰크는 1달 동안 단 하루도 빼 먹지 않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마구간 주변을 1시간 동안 달렸다. 그런 후 오전 중으로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친 후 늘 그랬듯 3시간 동안 기마 자세를 했다. 그리고 사방으로 움직이는 보법을 1,000번 정도 반복했다. 창술을 배우는 경비병이 500번을 하고 마무리하므로, 뷰크는 그의 2배를 했다. 그런 후 비디의 훈련 모습을 훔쳐보며 알게 된 찌르기와 베기를 각각 1,000번씩 했다.
 어느 날 로한이 뷰크에게 다가와 나무에 핀 꽃을 한 번의 찌르기로 떨어트릴 수 있도록 하고, 한 번의 베기로 베어 버릴 수 있도록 하라고 했다. 자세가 어떻고 다음 동작은 어떻게 하라고 일러 줄 만도 하건만, 로한은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뷰크는 그날부터 찌르기와 베기를 할 때 목표물을 가지고 연습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기마 자세의 시간을 줄이고 사방으로 움직이는 것을 1,000번에서 3,000번으로 늘렸다. 어른인 경비병이 500번하는 것을 생각했을 때,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뷰크는 절대 무리하는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발을 디딜 때마다 기마 자세를 취할 때처럼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발을 내밀 때 ‘흡!’거리며 호흡을 하고 배를 팽창시켜 온몸에 가득 기합을 넣었던 것이다. 그렇게 했더니 1,000번을 하면 지쳐 버렸던 몸이, 아무리 오래 해도 지치지 않았다. 그리고 좀 더 빠르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비슷한 시간 동안 거의 2배의 효과를 보게 되자 아예 3,000번으로 정하고 연습하기 시작했다.
 뷰크는 연습을 할 때면 늘 인적이 없는 곳에서 했기 때문에, 그의 훈련 모습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가끔 지나가는 하녀나 주변을 청소하는 일꾼이 본 게 전부였다. 비디는 늘 아버지와 같이 있었기 때문에 역시 뷰크가 뭘 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로한은 뷰크가 뭘 하는지 알고 있었다. 경비병을 훈련시키느라 매일같이 확인하진 못했지만 언제나 눈여겨 관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뷰크는 왜 자신이 이토록 검술에 매달리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힘들고 따분하고 반복적인 훈련이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하지 않으면 온몸이 근질거렸고, 하루 동안 열심히 훈련하고 나면 너무나 개운한 것이 그 어떤 놀이보다 재미있었다.
 언젠가부터 마구간 옆의 나무에 열매가 열리면 로한에게 검술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그때가 되면 비디와 대련을 하기로 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검술을 배우고 대련에서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훈련 그 자체에 만족을 하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하게 되었다.
 이렇다 보니 성문 경비대장에게 검술을 배워 똥 치우는 일에서 벗어나겠다는 것도 관심 밖의 일이 돼 버렸다. 지금 하는 일에 익숙해지니 나름대로 할 만하기도 했고, 자기 시간이 많았기에 만족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경비대의 일원이 되는 것보다 지금처럼 마음껏 수련할 수 있는 현실이 더 좋았다.
 
 촤아악!
 뷰크의 목검이 허공을 가르며 나뭇잎에 맺힌 꽃의 줄기를 정확히 찔렀다. 그러자 그 꽃은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쏴아악!
 뷰크의 목검이 공기를 가로지르며 땅으로 떨어지는 꽃잎을 베어 갔다.
 완벽한 자세였다. 뷰크는 누가 알려 주지 않았지만 너무나 완벽한 찌르기와 베기를 구사했다. 그것은 남들의 자세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훈련을 하면 할수록 몸이 스스로 완벽한 자세를 기억하듯 만들어져 갔다.
 뷰크는 하루 훈련을 마치면 늘 나무 옆에 서서 마지막으로 베기와 찌르기를 연습해 왔고, 오늘에 이르러서 한 번의 찌르기와 베기로 정확하게 꽃잎을 떨어트리고 베어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구간 옆의 나무에 열매가 맺힐 때가 되었다. 하지만 그 해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았다. 그 나무는 2~3년에 한 번만 열매가 맺히는 나무였던 것이다.
 뷰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가진 목표보단 훈련 그 자체에 만족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뷰크는 누가 알려 주지 않았음에도 스스로의 훈련법을 계속 만들어 갔다. 꽃을 향해 찌르기를 할 때 사방으로 움직이는 보법을 밟으며 시도한 것이다. 몸을 좌로 움직이며 검으로 찌르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자세도 엉성했고 찌르기의 힘도 떨어졌다. 그리고 정확도도 낮아졌다. 하지만 계속했다.
 뒤로 움직이며 찌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두 보 전진하며 찌르기를 했다. 그리고 사방으로의 움직임과 찌르기를 접목해 연습하기 시작했다. 물론 베기도 그렇게 했다.
 이 모든 것은 로한에게 훈련받던 경비병이 사방으로 보법을 밟으며 창을 움직이던 것을 떠올리며 뷰크가 만든 훈련법이었다.
 나무에 꽃이 없을 땐 잎사귀를 목표로 했고, 잎사귀가 없을 땐 가지의 끝으로 했다. 사방에 나무는 많았기에 목표물이 없어질 염려는 없었다.
 가을이 넘어가며 겨울이 되자, 경비병의 훈련은 끝났다. 약 반년 동안의 훈련이 끝나는 시점이기도 했지만, 겨울이 되면 모든 훈련을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마을의 경비 일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들 중 몇 명은 로한의 눈에 띄어 성에 남기도 했다.
 겨울이 되자 밖에 있는 똥을 치우는 일이 힘들어졌다. 추위도 추위지만 똥이 얼어 버릴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날씨가 풀릴 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마구간 일도 할 일이 별로 없었다. 날씨가 추우면 말을 탈 일도 적어지기 때문이다. 가끔 훈련을 한답시고 말을 몰 때도 있었지만 그런 날은 적었다.
 하지만 주큼은 계속 뷰크가 일하도록 만들었다. 어릴 때 일을 확실하게 배워야 커서도 잘한다는 그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주큼이 한 일은 뷰크를 패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뷰크는 주큼의 발길질에 맞아도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한 것이 마치 안마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어쨌든 뷰크는 똥이 얼어도 그것을 깨서 치웠다. 만일 뷰크가 검술을 연습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호흡법을 몰랐다면 똥을 깨는 것은 힘든 일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뷰크는 그 모든 일을 훈련의 연장이라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해 나갔다.
 뷰크는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아침에 하는 달리기는 잊지 않았다. 오히려 추운 날씨에 호흡을 하면서 달리면 몸이 더 상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 해 온 훈련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그는 아무리 추워도 옷을 두껍게 입지 않았다. 옷이 두꺼우면 움직임이 둔해졌고 갑갑했기 때문이다.
 계속 뷰크를 지켜본 로한은 그런 뷰크를 보며 눈빛을 빛냈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왔다.
 추운 대지는 따스한 햇볕을 받아 점점 녹아내려 갔고, 하얀색으로 물든 눈들은 어느덧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대신 꽃들이 사방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다.
 뷰크가 성에 온 지도 1년이 되었다.
 그는 오늘도 그동안 해 온 것처럼 모든 일과를 마친 후 마구간에 들어왔다.
 열두 살 아니, 이제 열세 살이 된 뷰크는 어린 나이에 비해 몸에 꽤 많은 근육이 붙었고 키도 제법 커졌다.
 “뷰크, 있는가?”
 밖에서 로한이 뷰크를 불렀다.
 “아저씨, 웬일이세요?”
 이 시간에 찾아온 경우는 없었기에 뷰크가 물었다.
 “간단한 제의 하나 하지. 들어 볼 테냐?”
 “뭔데요?”
 “크흠, 내일부터 검술을 가르쳐 주겠다.”
 “검술요? 좋죠!”
 뷰크는 좋다고 했지만 막상 그렇게까지 좋진 않았다. 현제로도 만족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 내일 비디와 대련을 해서 이기면 그렇게 하지.”
 “삐삐요?”
 “어떤가?”
 “흠, 좋아요!”
 언젠가 비디에게 빚을 갚아야 하기도 했지만, 새로 훈련할 것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기쁜 제안이었다.
 “그럼 내일 점심 먹고 그 마구간 옆에서 보지.”
 “네!”
 로한은 요 근래 1년 동안 고민이 있었다. 바로 딸 비디 때문이었다.
 아들을 원했지만, 딸을 낳은 후 더 이상의 자녀를 낳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딸에게 호신용으로 주먹 쓰는 방법이나 가르쳤다. 그러다가 시간이 되면 가끔 검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만족했다. 비록 딸이지만 검술에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사로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뷰크를 성에서 봤을 때 저런 아들이 한 명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검술을 익히면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룰 것 같았다. 그래서 검술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엔 뷰크의 사정이 딱한 것도 한몫했다. 아무리 봐도 메이지 두로임에게 이용당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뷰크가 검술을 시작했을 무렵, 로한은 딸을 성으로 데려왔다. 그때 딸의 재능을 다시 한 번 봤다. 뷰크와의 대련 때 딸이 보여 준 움직임은 그동안 생각한 것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가 슬슬 뷰크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려고 할 때였다. 하지만 로한은 생각했다.
 뷰크와 딸 비디. 둘 다 검술에 재능이 상당하고 1명은 남자 아이, 1명은 여자 아이였다. 그래서 서로의 검술을 익히면 둘에게 모두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남자는 힘과 파괴의 검술을, 여자는 빠름과 정확성의 검술을 익히면 경쟁의식이 있는 아이들이니 서로의 장단점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던가? 로한은 뷰크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딸이 좀 더 강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약간의 조언만 했을 뿐, 다른 것은 일절 가르치지 않았다. 대신 훈련 모습을 훔쳐 봐도 모른 척했다.
 하지만 날로 훈련의 강도를 높이는 뷰크를 보며 로한은 엄청 놀랐다. 어린아이는커녕 어른조차 절대 소화할 수 있는 훈련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점점 훈련에 적응해 가며 성장하는 뷰크를 보며 갈등했다.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뷰크를 내버려 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계속 고민하며 딸을 봤다.
 상당한 재능을 가진 딸, 하지만 뷰크만큼은 아니었다. 뷰크는 아무리 봐도 검술을 위해 태어난 천재였다. 그 재능이 딸에게 있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무수히 했다. 그러면서 뷰크를 질투하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을 보냈는데 딸이 더 이상 검술에 매진하지 않았다. 사춘기가 온 것이다.
 로한은 딸에게 뷰크와의 대련이 필요함을 느꼈다. 어려서부터 검술을 배워 온 딸이 기초 훈련만 한 뷰크에게 진다면 성격상 검술에 매진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뷰크를 이용하는 내 자신이 한없이 밉구나. 하지만 뷰크는 남의 아이, 비디는 내 딸… 만일 뷰크가 내 아들이었다면 좋았으련만…….’
 거창하게 제자를 두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비록 성문의 경비대장이지만, 성에 있는 가장 실력 없는 기사 1명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기사가 되려면 반드시 필요한 힘, 오러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로한은 어떻게 해서든 딸을 기사 중 1명의 제자로 보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가 이루지 못한 기사의 꿈을 딸을 통해 이루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뷰크와의 대련이 반드시 필요했다.
 로한은 뷰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저녁을 먹기 위해 마구간을 벗어났다.
 
 이른 아침에 일어난 뷰크는 늘 그래 왔듯 마구간 주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귀족이 타는 말을 모아놓은 마구간, 기사들이 타는 말을 모아놓은 마구간 그리고 기병들이 타는 말들을 모아놓은 가장 큰 마구간, 그 외에 마차용이나 일반 말을 모아놓은 마구간 등, 성 안에 마구간이 있는 곳은 매우 넓었다. 뷰크가 한 바퀴를 돌면 대략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허비됐다. 그런 곳을 뷰크는 삼십 바퀴 돌았다. 그것도 처음엔 천천히 한 바퀴를 돈다. 그런 다음 전력질주로 한 바퀴를 돈다. 그리고 다시 한 바퀴를 천천히 뛴다. 이런 식으로 속도를 조절하며 뛰었다. 물론 이것 역시 로한에게 훈련받는 병사들이 이런 식으로 뛰는 것을 보고 흉내 낸 것이다.
 뷰크는 다 뛴 다음 가볍게 숨을 골랐다. 발을 디딜 때마다 호흡을 하면 쉽게 지치지 않았다.
 뷰크는 성내에 있는 수십 개의 화장실 중 똥이 어느 정도 찬 곳을 떠올렸다.
 ‘오늘은 치울 곳이 없군. 귀족들이 쓰는 곳이 좀 찼지만, 거긴 3일 후에나 시녀장에게 허락을 맡아 치울 수 있으니 그 때까진 일이 없구나!’
 이 일을 1년 동안 해 보니 요령도 늘었다. 예전엔 하루에 한 곳은 반드시 치웠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3일에 한 곳만 치워도 충분했던 것이다. 주큼도 이제는 뷰크가 어떻게 치우든 관여하지 않았다. 1년 동안 충분히 가르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구간 청소도 굳이 오늘 할 필요는 없지. 내일로 미뤄야겠구나.’
 마구간 수가 많아 하루에 한 곳씩 청소를 했지만, 하루 미룬다고 해서 티 나진 않았다.
 ‘그럼 오늘은 자유 시간인가? 좋아!’
 뷰크는 가끔 이런 식으로 해서 자유 시간을 누렸다.
 ‘아이들과 신 나게 놀자!’
 성내에는 열 살 전, 후반의 아이들이 꽤 많다. 백작의 영지를 다스리고 지키는 어른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들도 많았던 것이다.
 ‘아니야, 오늘은 성을 좀 나가 볼까? 히히.’
 백작 성이 있는 도시 쥬렌은 특이한 구조다. 부채꼴 모양의 도시인데, 중심에 성이 있고, 그 뒤로 활짝 핀 부채처럼 도시가 형성돼 있다.
 큰 길은 중심이 되는 성을 통과하지 않고선 도시로 갈 수가 없다. 이 길은 군대나 대형 상단이 이용하는 길이다.
 규모가 작은 상단이나 일반인이 움직이는 길은 따로 있다. 마차 한 대가 움직일 정도의 좁은 길이었는데 부채꼴의 호 즉, 성이 있는 곳의 반대쪽에 두 곳이 있다.
 뷰크는 가끔 일이 없는 날엔 비슷한 또래들과 놀거나 성을 나가 도시를 구경하기도 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쉬는 날을 맞이해 도시로 나가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돈이 없잖아? 쳇, 그냥 구경만 해야지.’
 성에서 머슴 비슷하게 일을 하고 있지만, 품삯을 받은 적은 없다. 가끔 받는 옷 한 벌과 밥이 전부였기에 1쿠퍼copper조차 없었다.
 뷰크는 똥을 치울 때 이용하는 성의 뒷문으로 갔다. 머슴이나 하인이 이용하는 문이었다.
 성을 나간 적이 거의 없어 도시를 제대로 구경한 일이 없는 뷰크는 내심 기대하면서 문을 나섰다.
 ‘로한 아저씨와의 약속이 있으니 점심 때까진 돌아와야지. 히히.’
 뷰크는 빠른 걸음으로 성문을 나갔다. 그런데 뭔가, 앞에서 알 수 없는 기이한 힘이 느껴졌다.
 ‘뭐지?’
 그 힘은 성문을 이제 막 나간 뷰크에게 점점 다가오더니 옆을 스쳐 지나갔다.
 ‘바람인가?’
 그 힘이 지나갈 때 뷰크는 머리카락이 휘날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뷰크가 뒤를 바라봤다. 그 힘이 성의 뒷문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뷰크는 곧 신경을 끄고 다시 앞을 보며 오른발을 떼어 걷기 시작했다.
 “잠깐!”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말에 뷰크가 뒤를 바라봤다.
 “누구?”
 거기엔 검은 로브를 깊이 눌러 쓴 남자가 서 있었다. 양손이 품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는지 그 끝에 달린 둥그런 보석이 로브의 목 부위로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보석이 약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걸 보니, 보통 지팡이가 아닌 것 같았다.
 ‘마법사인가?’
 뷰크는 스승 갈리언이 가끔 로브를 입고 지팡이를 들고 있었기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순간 깜짝 놀랐다.
 ‘맞아, 스승!’
 어느덧 잊고 지낸 스승의 모습이 떠올랐다.
 “네놈은 갈리언의 제자 아니냐?”
 “아!”
 생각 중에 들려온 음성에 뷰크는 깜짝 놀랐다. 스승의 이름을 아는 자를 만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꽤 컸군. 흥, 씹어 먹을 갈리언, 내 물건을 가지고 도망쳤다 이거지? 크흐흐.”
 로브를 둘러쓴 남자는 뷰크를 보며 말하다가 지팡이를 들고 있는 손을 로브 밖으로 내밀었다.
 “못난 스승을 탓해라. 로프rope!”
 남자가 시동어를 외치자 지팡이가 밝게 빛나더니, 곧 허공에 약하게 빛을 내는 밧줄 하나가 나타났다. 그 줄은 스스로 움직이더니 어느새 뷰크의 몸을 둘러 감싸 버렸다.
 “어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뷰크가 영문을 몰라 하는데, 갑자기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빡!
 “아악!”
 마법사가 어느새 다가와 지팡이로 뷰크의 머리를 친 것이었다.
 “감히 두로임의 이름이 걸린 물건을 가져오지도 않고 도망치다니, 크흐흐.”
 빡, 빡!
 “악, 아악!”
 두로임은 밧줄에 묶인 뷰크의 머리를 계속 지팡이 끝으로 내리쳤다. 이에 뷰크가 고함을 질렀다.
 “네 녀석의 스승은 너를 버렸다. 크흐흐, 저주를 하려거든 스승에게 하거라!”
 뷰크는 머리를 강하게 맞아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지러워 땅에 넘어졌다.
 두로임이 지팡이를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런 다음 강하게 뷰크를 향해 내리쳤다.
 뷰크는 영문도 모른 채 맞다가 순간 위험을 느꼈다.
 “힛!”
 순간 맞을 때 하던 호흡을 하며 온몸을 웅크렸다. 손이라도 자유로우면 머리를 감싸고 싶었지만, 이상한 로프에 묶여 있어 불가능했다.
 빠악!
 두로임의 지팡이가 뷰크의 어깨를 맞혔다. 다행히 몸을 움직여 머리를 피한 것이었다.
 “아악!”
 하지만 주큼에게 맞을 때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큰 고통이 따랐다. 만일 맞을 때 하는 호흡을 하지 않았다면 더 큰 고통이 따랐을 것이다.
 “제법 버티는군. 스트랭스!”
 두로임은 자신에게 힘을 2배로 강하게 하는 마법을 걸더니 다시 지팡이를 높이 들어 올렸다.
 하늘 높이 올라간 지팡이가 계속 약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으로 봐, 보통 지팡이는 아니었다.
 팍, 파악!
 “아악, 흡! 악, 흡!”
 두로임은 지팡이로 뷰크의 온몸을 두들겨 팼다. 이에 뷰크는 고함을 지르면서도 죽지 않기 위해 호흡을 했다.
 열세 살의 뷰크는 제법 키가 자라 어른의 어깨까지 닿았지만, 아직 어렸다. 1년간의 검술 훈련으로 온몸을 단련했지만 곧 6서클로 올라갈 5서클 마스터의 공격을 쉽사리 넘길 능력은 없었다.
 “크아악, 후읍, 아악, 후흡!”
 뷰크는 두로임의 매질이 끝날 때까지 고통을 참으며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호흡을 계속했다.
 식사 한 끼를 할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매질이 멈췄다.
 “하아, 하아, 크하하하, 그나마 속이 좀 풀리는군. 무거운 짐은 영원히 너를 따라다니리니 이터네티 버든eternity burden! 공기여, 늘 머물지 않고 모이지 않으리다, 브리싱 다운breathing down!”
 두로임이 주문을 외워 두 가지 마법을 뷰크에게 걸었다. 하나는 몸에 하중을 걸어 마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하는 마법, 또 하나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게 하는 마법이다.
 두로임보다 높은 마법사가 나타나 풀어 주지 않는 한, 뷰크는 힘과 호흡을 잃었다.
 “네놈의 스승이 나타나면 풀어 주지, 하하하!”
 두로임은 그렇게 말한 후 다시 바람처럼 사라졌다.
 뷰크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지팡이에 맞은 데다 이상한 마법에 결려 온몸은 천근만근 같았다. 다행이라면 어느새 몸을 묶고 있던 로프가 사라져 손을 올려 다친 머리를 어루만질 수 있는 것이었다.
 “하악, 하악!”
 ‘왜 이리 숨이 가쁘지?’
 뷰크는 왜 맞아야 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몸이 이상한 이유도 몰랐다. 눈을 들어 지팡이로 때린 남자를 찾았지만, 주변에 보이진 않았다. 고통을 계속 참았다. 그러나 온몸의 힘이 떨어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흐읍, 흡! 흐읍, 흡!”
 맞을 때 하는 호흡 그리고 검술을 연마할 때 하는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고통이 조금씩 사라졌고, 무거운 몸을 어느 정도 지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쁜 숨도 편안해졌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는데, 설마 두로임?’
 뷰크는 자신을 때린 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스승을 아는 데다 성내에서 익숙한 얼굴이고, 마법사라 생각되는 자는 1명밖에 없었다.
 뷰크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무언가가 몸을 눌러서 휘청거렸다.
 “이크, 후읍, 흡!”
 뷰크는 호흡을 했다. 그러자 온몸에 힘이 돌아와 겨우 흐트러진 몸의 중심을 바로잡았다.
 “후읍, 흡! 후읍, 흡!”
 뷰크는 공기를 들이마신 다음 배에 힘을 주어 몸속의 공기를 팽창시키듯 기합을 넣는 식으로 계속 호흡을 했다.
 ‘두로임, 두로임!’
 뷰크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두로임을 생각하니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일어나 온몸을 휘감았다. 그것은 분노라는 기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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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 아픈가?”
 로한은 뷰크와 딸의 대련 시간이 되자 마구간 옆으로 왔다. 그런데 그곳에 서 있는 뷰크의 안색이 매우 안 좋아 보였다.
 뷰크는 두로임이게 맞은 후 성 밖으로 나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자신의 보금자리인 마구간으로 돌아왔다. 그런 후 피 흘린 머리를 씻고 옷은 벗었다. 그리고 욱신거리는 온몸을 어루만지며 편히 쉬었다. 다행히 호흡을 할 때마다 상처가 조금씩 낫는 것 같았다.
 로한과의 약속 시간이 되자 뷰크는 정상적이지 않는 몸으로 밖으로 나갔다. 일어설 때 그리고 걸어갈 때마다 호흡법을 하지 않고선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대결을 미루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약한 모습은 보이기 싫었다.
 “괘, 흡, 괜찮습니다, 흡!”
 말을 하면서도 호흡법을 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순식간에 숨이 가빠질 뿐만 아니라 온몸에 힘이 빠져 서 있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몸이 좋지 않으면 내일로 미뤄도 되네.”
 “아, 아닙니다, 흡!”
 뷰크는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말하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로한은 가만히 뷰크의 눈을 바라봤다.
 ‘눈빛은 살아 있군. 그럼 됐어.’
 뷰크는 생각할수록 두로임이 싫어졌다. 그리고 화가 났으며 반드시 복수를 하고 말 것이라 다짐했다.
 ‘이길 수 있으면 이겨야겠구나. 그래야 로한 아저씨한테 검술을 배울 수 있지. 이거… 괜히 오늘 대련한다고 했나?’
 뷰크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흥, 이 정도 일에 질 내가 아니다! 그리고 약속은 약속, 오늘 대결이다!’
 “크하하, 흡, 하하하!”
 뷰크가 호흡을 하며 크게 웃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는 그의 표정에서 사나이 대장부의 포부가 느껴졌다.
 로한이 웃는 뷰크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그도 싱긋 웃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흐르자 비디가 왔다. 오른손에 얇고 가벼워 보이는 목검 한 자루를 쥐고 있었다.
 “아빠는 참, 뷰크는 어렸을 때부터 나를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단 말이야.”
 비디는 오자마자 귀찮다는 표정으로 로한에게 말했다.
 “하하, 길고 짧은 건 재 봐야 안단다.”
 “아무튼, 오늘 뷰크를 이기면 난 이제 더 이상 검을 잡지 않을 거야. 알았지?”
 “그래, 그것이 오늘 대련의 약속이지. 뷰크는 오늘 대련에서 이기면 정식 경비병의 훈련을 시키도록 하겠다. 거기서 1년 동안 훈련을 마치면 지금의 일은 관두고 경비병이 될 수 있다.”
 로한은 언젠가 뷰크가 하는 일을 바꿔 주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리고 이기게 된다면 제자로 둘 생각이기에 경비병의 일이 제격이었다.
 ‘그래, 뷰크 정도면 제자로 둬도 좋겠지. 어쩌면 오러를 만드는 제자를 하나 둬 큰 명성을 얻을지도 몰라.’
 로한은 뷰크가 지금처럼 노력한다면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아도 언젠가 오러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좋아요, 아저씨, 흡!”
 뷰크가 숨을 안정시키며 작게 말했다.
 “흥, 늘 내게 지기만 한 주제에!”
 비디가 대결의 시작도 알리지 않았는데 목검을 들고 뷰크에게 다가갔다. 이에 로한이 놀라 멈추려 했지만, 로한보다 더 빠른 몸놀림으로 비디가 뷰크에게 다가갔다. 뿐만 아니라 거리도 가까웠기에 로한이 말릴 순 없었다.
 “흡!”
 뷰크가 호흡을 하며 온몸에 힘을 돌렸다. 그래야 겨우 서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다, 아니 어깨다!’
 비디의 검이 머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떨어지다가 잠깐 흔들렸다. 검로를 바꾸려는 것이었다. 뷰크는 그것을 보고 머리가 아닌 어깨로 공격하리란 것을 눈치 챘다.
 뷰크는 그동안 해 온 사방으로 움직이는 보법을 떠올렸다. 그래서 바로 왼쪽으로 움직였다.
 그때였다. 순간 몸을 누르던 힘이 더 무거워지더니 휘청거렸다.
 “흡!”
 뷰크가 호흡을 하며 비디의 검을 막기 위해 목검을 어깨로 들어 올렸다.
 ‘너무 느려!’
 뷰크의 눈은 이미 상대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지만 몸의 반응이 너무 느렸다. 그리고 팔이 너무 무거웠다.
 타악!
 “크악, 흡!”
 뷰크가 얼른 호흡을 하며 어깨의 고통을 흩트렸다. 그런 다음 목검을 다잡았다.
 “진검이었다면 넌 오른팔을 잃었다.”
 비디가 말하자 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 갑자기 공격해 오는 것이 흡, 어딨어!”
 “흥, 좋아. 그럼 네가 먼저 공격해.”
 비디가 뷰크를 아니꼬운 눈초리로 바라봤다.
 “이이, 흡!”
 뷰크가 속에서 올라오는 화를 참았다.
 ‘왜 하필 오늘 몸이 이러는 거야!’
 처음엔 승부에 집착하지 않았지만, 똥 치우는 일에서 벗어나 경비병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서 비디에게 오른쪽 어깨를 맞자 이기겠다는 의지가 일어났다. 하지만 몸이 비정상이어서 화가 났다.
 뷰크가 호흡을 강하게 하며 목검을 들고 비디를 향해 달려갔다. 다섯 걸음이면 다가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하지만 또다시 몸을 누르는 힘이 갑자기 커졌다. 그래서 뷰크는 다리가 꼬이기 시작했다.
 “흡!”
 다시 한 번 호흡을 하며 온몸에 기운을 퍼트렸다. 그러자 강한 힘이 온몸에 퍼졌다.
 뷰크가 비디를 향해 검을 들어 올렸다. 위에서 아래로 긋는 간단한 동작이지만 검의 가장 기본 동작 중 하나, 세로 베기였다.
 “흥!”
 비디가 콧방귀를 뀌며 몸을 옆으로 이동했다. 너무나 느린 동작이었기에 굳이 검을 들어 막을 필요가 없었다.
 비디는 몸을 피하자 바로 뷰크를 향해 찔렀다. 하지만 곧 검을 회수했다.
 ‘이런 바보를 봤나? 세로 베기를 했으면 얼른 검을 회수해야지, 왜 땅을 찍어?’
 검술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면 세로 베기에 온 힘을 다하지 않는다. 상대가 피한다면 반격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뷰크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자기 힘을 이기지 못하고 목검으로 땅을 찍었다.
 팍!
 땅이 파이며 사방으로 튀었다.
 “이이, 흡!”
 뷰크가 부끄러운지 아니면 화가 났는지 붉어진 얼굴로 검을 들어 올려 다시 비디를 향해 휘둘렀다. 가로 베기였다.
 “바보!”
 비디가 한마디 외친 후 뷰크를 향해 검을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찔러 갔다.
 ‘이런 멍청이가 어디 있어? 그래도 1년 동안 나름대로 검술을 연습했을 거 아냐!’
 비디의 눈으로 본 뷰크는 기본 중의 기본도 안 되어 있었다. 힘은 강하지만, 너무 큰 힘을 실어 검의 움직임이 둔해졌고, 자세도 일격 필살의 자세였기에 오히려 반격당하기에 딱 좋았다.
 “흐읍!”
 순간 뷰크가 호흡을 하며 몸에 힘을 줬다. 그러면서 무거운 몸을 좌로 약간 움직였다. 그러자 비디의 검이 뷰크의 옆구리를 찔렀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흐읍!”
 뷰크는 있는 힘을 다해 가로로 검을 베어 갔다.
 부우우웅!
 바람이 갈라지며 소리를 냈다.
 ‘이크!’
 순간 비디는 깜짝 놀랐다.
 찌르기를 하느라 피할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만일 찌르기를 성공했다면 피하기 전에 이미 상대는 목숨을 잃었을 테지만 자신 또한 무사하진 못할 것이다.
 비디는 검을 들어 올렸다. 그래서 베어 오는 뷰크의 검을 막아 갔다. 하지만 검속에 큰 힘이 실린 것을 느꼈다. 그래서 검을 몸 쪽으로 당기며 살짝 몸을 띄워 뷰크의 검이 향하는 방향으로 뛰었다. 그러자 뷰크의 검은 마치 비디를 베는 것이 아니라 밀쳐내는 듯했다.
 이 모습을 본 로한은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언제 내 딸이 저런 실력을 가졌지?’
 이제 열세 살의 어린 딸이 보통의 기사나 펼칠 수 있는 기술을 펼친 것이다.
 ‘저런 움직임과 느낌이라면 남자의 힘을 넘어설 수 있다!’
 로한은 또다시 딸을 보며 감탄했다.
 여자로 태어나면 어쩔 수 없이 남자보다 힘이 약하다. 그것은 어렸을 때보다 컸을 때가 더 심하다. 그래서 보통 여검사는 남자보다 약하다는 것이 평론이다. 하지만 딸은 움직임과 느낌으로 남자의 힘을 이용할 줄 아는 검을 펼치고 있었다.
 “꺄악!”
 비디는 뷰크의 검에 밀려 저 멀리 날아갔다. 그녀는 허공에서 몸이 기울어져 중심을 잃어 엉덩방아를 찧며 땅에 떨어졌다.
 “하아, 후흡, 하아, 후읍!”
 뷰크가 제자리에 서서 무릎을 꿇고 호흡을 했다. 너무 격한 움직임으로 인해 숨이 막혔고, 몸을 누르는 힘이 더 커져 제대로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저 나이에 비디를 저 정도로 날려 보내다니, 뷰크의 힘은 범인의 것을 넘어섰구나!’
 둘 다 너무나 탐나는 인재였다.
 “햐압!”
 비디가 일어서더니 기합을 넣으며 뷰크를 향해 달려왔다. 이에 뷰크가 호흡을 하며 겨우 무릎을 폈다. 그리고 비디를 향해 검을 내밀었다. 하지만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비디의 검이 뷰크의 안면을 향해 찔러 왔다. 만일 초보라면 순간 눈을 깜박일 것이다. 하지만 뷰크는 마지막까지 비디의 검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본 비디는 허초를 섞어 상대를 교란시키는 검법을 펼쳤기 때문에, 언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가슴!’
 순간 비디의 손목이 위로 올라가며 검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봤다. 이에 뷰크가 검을 아래로 내렸다. 몸이 너무 무거워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해 검으로 막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순간 뷰크가 두 눈을 빛냈다.
 ‘좋아, 나도 찌르기다!’
 “후읍, 하아압!”
 뷰크가 마지막 공격이라 생각하고 크게 호흡을 한 후 기합을 넣었다.
 비디의 검이 눈을 찔러 오다가 순간 검 끝이 아래로 떨어졌다. 본 대로 눈을 찌르는 것은 허초, 목표는 가슴이었다. 그때 뷰크가 비디의 발을 봤다. 왼쪽 발이 앞으로 내밀어져 있고 뒤쪽 발은 허공에 떠 있었다.
 뷰크가 미소 지었다. 확실한 승리를 장담했기 때문이다.
 뷰크는 무거운 검을 살짝 올려 비디의 검 끝이 향하는 곳을 막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 검을 비디의 가슴이 아니라 배를 향해 찔러 갔다. 가슴은 상체를 움직여 피할 수 있지만, 배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발의 위치상 피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들어 올려 비디의 검을 막으려던 손은 오히려 아래로 떨어졌다. 덕분에 찌르기는커녕 비디의 검이 뷰크의 가슴을 찔렀다.
 ‘왜?’
 순간 뷰크는 의문이 들었다. 왜 손이 들어 올려지지 않았을까?
 가슴에서 통증이 몰려왔다. 그리고 알았다.
 ‘그렇군. 몸이 너무 무거워…….’
 뷰크는 순간 정신이 점점 멀어짐을 느꼈다.
 
 “정지!”
 비디의 검이 뷰크의 가슴을 찌르자 로한이 대결을 멈췄다. 그리고 얼른 뷰크에게 다가가 가슴의 상처를 살폈다.
 “다행이다. 역시 내 딸이다. 마지막에 힘을 조절해 찌르기의 힘을 약화시키다니!”
 만일 비디가 힘 조절을 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목검이라지만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뷰크는 기절했을 뿐, 죽을 염려는 없었다. 옷을 벗겨 가슴의 상처를 봐도 그리 심각하진 않았다. 한 1주일 정도 쉬면 나을 상처였다. 그래서 로한은 딸의 목검이 뷰크의 몸을 찌르려는 순간 힘 조절을 했다고 생각했다.
 “응? 응. 그, 그럼 내가 이긴 거 맞지? 야호!”
 비디는 갑자기 정신을 차린 사람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하하! 녀석, 그리 좋으냐? 하지만 이제부터 검을 들라고 강요하지 않으마.”
 로한은 뷰크를 등에 업으며 딸 비디에게 말했다.
 “응? 으응, 아, 아니. 나 계속 검을 들 거야.”
 “응?”
 로한이 그토록 싫어하던 검을 들겠다는 딸을 바라봤다.
 “이 녀석을 이기는 이 기쁨, 아니 방금 그 한 순간의 희열을 잃고 싶지 않아!”
 “뭐? 하하하하!”
 로한은 큰 소리로 웃었다. 딸이 승자의 기쁨을 알았기 때문이다. 비디는 아버지의 등에 업힌 뷰크를 바라봤다. 그런데 갑자기 손이 떨렸다.
 ‘손이 왜?’
 두근두근!
 갑자기 심장이 요동치며 가슴도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곧 두 다리도 떨려 왔다.
 ‘왜, 왜 이러지?’
 순간 비디는 떠올랐다. 찌르기가 뷰크의 몸에 닿으려는 찰나, 이상한 힘이 비디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때의 찌르기가 이상한 힘에 막혔고, 거의 모든 힘이 흩어져 버렸다. 하지만 비디는 그 힘이 무엇인지 몰랐다.
 ‘내가 사람을 찔러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이었나?’
 
 ‘하하하, 딸도 딸이지만, 뷰크 이 녀석을 제대로 가르쳐 봐야겠어. 만일 이 녀석이 조금의 기초만 있었으면 딸이 졌을 거야.’
 대련에서 그가 본 뷰크는 너무 허술했다. 힘 조절부터 시작해 움직임까지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잘 싸웠다. 만일 부족한 것을 메워 주면 훌륭한 검사가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로한은 뷰크를 등에 업은 다음 마구간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떼었다. 그런데 의외로 뷰크가 무겁자, 로한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로한은 몸의 균형이 흐트러지며 기우뚱거렸다.
 ‘땅이 왜 이래?’
 그가 밟은 땅이 푹 파여 있어 발이 접질렸다.
 ‘뷰크 녀석, 이런 곳에 서서 싸웠단 말인가? 운이 없군. 좀 평평한 땅을 선점했다면 싸우는 데 유리했을 텐데 말이야.’
 로한은 그 누구보다 검에 대해 열정이 있으며, 그만큼 노력해 왔지만 오러를 만들지 못해 성문 경비대의 대장이 한계였다. 그리고 그 이유가 여기 있었다.
 땅이 파인 것은 뷰크의 발 폭과 같았으나 그는 그 사실을 알아챌 수 있는 눈썰미와 머리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다음에 계속...

댓글(1)

천개의가면    
매력적안 시작과 과정을 그리는 작가! 그러나 뒤뜰린 결말을 보며 인상 찌푸릴 독자를 보며 기뻐할 변태 작가. 꼬인 인간이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지 한다면 도전하길 권한다.
2022.11.10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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