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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틱스 1권-1

2015.01.08 조회 1,960 추천 21


 생존
 
 내 이름은 김상현.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공부는 싫어한다.
 생각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암기하는 것은 싫어한다.
 덕분에 성적은 중위권이다.
 “인석아, 잘 가라.”
 “월요일날 보자, 상현아!”
 
 오늘은 토요일.
 일찍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등산 준비를 했다.
 
 평소 1달에 1번 정도 등산을 했는데, 산에서 많은 사람들을 사귀게 되었다. 그러다가 등산 동호회에 들어가 활동하게 되었다.
 부모님도 등산을 즐기는 나를 은근히 후원해주신다.
 산은 남자의 가슴을 넓게 해준다나?
 그러나 진짜로 등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솔직하고 대범한데, 아무래도 크고 높은 산의 맑은 정기를 마시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등산용 가방 안에 식량을 넣었다.
 3개에 1,000원 하는 초코바, 라면 2개, 참치 캔, 햄, 통조림 파인애플과 3인분의 쌀, 고추장과 고추, 멸치 이렇게 넣었다.
 각자 먹을 식량은 알아서 가지고 오기 때문에 자기 취향대로 챙기면 된다.
 그리고 작은 버너와 작은 냄비, 부탄가스 2개를 함께 챙겼다.
 이 정도면 라면과 밥을 해서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오는 반찬들도 있기 때문에 모든 구성원이 모이면 진수성찬이 될 것이다.
 그리고 등산용 지팡이와 구급약품, 100만원을 호가하는 하이엔드 급 디지털 카메라, 손잡이가 은색으로 된 만능 맥가이버 칼, 손전등과 건전지, 수통, 온도차를 생각해 몇 가지 옷들과 양말을 챙겼다.
 그리고 이번엔 등산은 등산 코스로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침반과 등고선이 표시된 지도 역시 필수품이었다.
 그리고 혹시 모르기 때문에 성냥과 라이터를 챙겼다.
 
 등산용 옷과 등산화를 신고 밖으로 나왔다.
 이번 등산은 1박 2일짜리이기 때문에 가슴이 설레었다.
 늘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휴식을 취하고 다시 내려오는 당일치기 등산이었는데, 동호회에 들어가고부터 좀 더 모험을 즐기게 되었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길로 등산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길 아닌 길을 통해 올라가기도 했다.
 약 2개월 전부터는 산에서 하루 지내고 내려오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 1박 2일짜리 등산이다.
 
 처음 산에서 밤을 지샐 때 얼마나 두근거렸던가?
 그때의 감성은 공포와 기대로 가득 차있었다.
 검정색 물감으로 캔버스를 칠한 것같이 사방이 온통 검은색뿐이었고, 여러 벌레 소리의 합주는 마치 공포영화를 볼 때 나오는 음악 같았다.
 그러나 평소 여러 책을 읽으면서 모험가들이 산에서 지내는 모습이나,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드넓은 들판에서, 혹은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산에서 화롯불 위에 사냥한 짐승을 칼로 다듬어 요리하며 지냈던 모습들을 얼마나 동경했던가?
 
 나는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며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 왔다.
 그리고 잠시 후 두 명의 동호회 사람을 만났다.
 모두 대학생으로 한 명은 23살의 이백현, 한 명은 26살의 김은한이다.
 물론 모두 남자다.
 동호회에는 딱 한 명만이 여성으로 24살에 채미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누나가 있지만, 아쉽게도 못생겼다.
 좀 힘 있어 보이는 덩치 좋은 누나이기 때문에 몸매가 좋지 못했다.
 나머지 사람은 지방 사람들이라 전라북도 익산역에서 오후 5시에 모이기로 했다.
 이렇게 열차를 타고 익산으로 향했고, 곧 다른 동호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총 6명의 멤버로 30대의 아저씨 두 명이 있었고, 한 명은 이제 막 대학교 1년생인 형이 있었다.
 그리고 두 명의 아저씨가 각각 하나씩 두 개의 텐트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6명이서 지리산을 오르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쳤다.
 뱀사골을 통해서 산행을 하기로 하고, 이동을 시작했다.
 비록 1박 2일이지만, 일반인들이 움직이는 등산 코스가 아닌 지도를 보고 찾아가는, 어찌 모면 위험하기도 한 등산이 시작되었다.
 물론, 천왕봉까지 올라간 다음에는 장터목, 백무동을 통해 일반 등산 코스를 통해 쉽게 내려올 생각이다.
 일단 오늘은 이미 오후 5시이기 때문에 뱀사골산장에서 좀 더 가서 밤을 지새고 아침 일찍 해 뜨자마자 출발해 천왕봉까기 오를 예정이다.
 뭐, 지리산에서 버너로 밥 해먹는 것은 불법으로 알고 있지만, 어차피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 우리들의 등산 코스니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들은 익산역에서 남원역으로 갔고, 거기서 지나가는 트럭을 얻어 탔다.
 자고로 산행은 버스가 아닌 트럭을 얻어 타야만 시작이 좋은 것이다.
 아, 나만 그런가?
 
 뱀사골까지는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두 명의 아저씨들은 10년째 등산을 하는 배테랑이기에 지리산같이 인기 있는 산은 눈감고도 목표 지점을 찾아갈 수 있을 정도였다.
 좀 더 걸어 산장까지 왔더니, 이미 주변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오늘 밤을 보낼 좋은 곳을 찾기 위해 나침판을 들고 지도를 보며 동쪽으로 향했다.
 나는 지도와 나침판으로 길 찾는 것은 못하기 때문에 조용히 내가 챙긴 것들을 백현 형에게 줬다.
 ‘이번 산행을 마치면 나도 공부해야지.’
 나침판과 지도를 보며 길 찾는 것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뭐랄까, 모험가의 냄새가 난다고나 할까?
 수없이 많은 사람들 중 우리들만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난 모험가 체질인가 봐. 키득키득.’
 난 조용히 웃으며 뒤따라갔다.
 주변이 어두워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할 때쯤 텐트를 치기 좋은 자리를 찾았다.
 나무가 좀 많았지만, 텐트 칠 정도의 공간은 됐고, 작은 풀들과 돌, 흙으로 되어있어서 특별히 정리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뒤쪽으로는 땅이 1미터 정도 올라가있는 것이 바람도 막아줄 것 같았다.
 조금 있으면 완전히 어두워질 것 같기 때문에 우리들은 재빨리 텐트를 쳤다.
 채미란 누나와 나는 다른 사람들이 텐트를 치는 동안, 버너에 불을 붙인 후, 물통의 식수를 냄비에 부어 쌀을 넣고, 다른 두 개의 버너를 더 켜서 햄을 볶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6명이서 먹을 양이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양을 준비했다.
 주위는 이미 어두워졌다.
 텐트는 각각 동쪽과 서쪽에 쳤고, 입구는 중심을 향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 사이에 자리를 마련했고, 위에 랜턴을 켜놓아 주변을 밝혔다.
 6월이지만 저녁이 되니, 조금 쌀쌀해졌다.
 그래서 각자 가지고 온 옷이나 모포를 걸쳤다.
 그리고 천천히 저녁을 먹었다.
 “캬! 역시 이 맛이야. 이 맛 때문에 내가 등산을 한다니깐.”
 30대 중반의 결혼까지 한 아저씨가 김치 찌게를 한 번 떠먹고 말을 했다.
 이름은 백대광, 좀 웃긴 이름이고 이 동호회의 회장을 맞고 있다.
 나도 조용히 김치찌개를 떠먹었다.
 찌게답게 조금 짰지만, 역시 산에서 직접 해먹는, 그것도 조금 싸늘한 밤공기를 맞으며 먹는 이 맛은 그 어떤 최고의 음식보다 훨씬 맛있었다.
 “아! 난 조금 짜다, 야.”
 “그래요? 뭐, 평소 은한 오빠가 싱겁게 먹으니 어쩔 수 없죠.”
 “그래, 임마! 진정한 맛은 좀 짜게 먹는 거야!”
 나는 밥을 먹으면서 주변을 힐끔거렸다.
 우리들 주변을 제외하고는 그 어디라도 빛이 없었기 때문에 시선은 공허한 어둠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이 움직이는 소리와 대화 소리를 제외하곤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가끔 우리들의 말소리가 끊길 때마다 조금씩 벌레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귀뚜라미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찌리리리.
 그리고 우리들이 밥을 다 먹었을 무렵 작은 메아리가 들려왔다.
 아우~ 우우우.
 오싹!
 그건 늑대가 우는 소리와 비슷했다.
 나는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소리는 아주 작았고, 나만 들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대화를 하거나 마저 밥을 먹었다.
 아우~ 우우우우.
 또 들려왔다.
 나는 다시 등골이 오싹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싶었다.
 그러나 왠지 그러지를 못했다. 단지 옆의 형들을 조심히 바라봤다.
 그러다가 곁눈질로 살짝 멀리 어둠을 바라봤다.
 오싹!
 그러나 랜턴의 빛이 점점 약해지면서 나타나는 어둠에 숨어 나를 바라보는 알 수 없는 눈동자가 생각나 온몸에 소름끼쳤다.
 “저, 형들. 늑대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응? 웬 늑대? 지리산에 그런 동물 없으니 관심 끊어.”
 23살의 백현 형이 말하자 전주에 사는 30대 아저씨가 말을 했다.
 “흐흐. 천만의 말씀. 지리산이 자연 보호구역이란 것을 모르는구나. 물론, 우리가 있는 이곳에는 그런 야생동물은 없지만, 조금만 넘어가면 호랑이도 볼 수 있을걸?”
 호랑이를 볼 수 있다고?
 나는 설마 하는 마음이었다.
 그때 좀 더 크게 늑대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우~ 우우우우우.
 “봐요. 늑대 울음소리잖아요.”
 “어? 그러고 보니 확실히 나도 들은 것 같은데요?”
 유일한 홍일점 미란 누나가 내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다시 그 소리가 들려왔다.
 아우~ 우우 아우~ 우우우.
 그때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악!”
 그건 여성의 비명이었다.
 순간 나를 포함한 주변의 사람들은 경직됐다.
 나는 등 뒤에 식은땀을 흘리며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동료들은 모두 조용했다.
 뭐지?
 이런 한밤중에 비명이 들리다니?
 귀신 소리인가? 아님 정말 사람의 소리인가?
 나는 이마에 땀 한 방울을 흘리며 천천히 동료들을 바라봤다.
 모두들 다시 소리를 확인하려는지 귀를 열고 조용히 있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귀뚜라미는 계속 울어댔다.
 찌리리리, 짜리리.
 그러다가 다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우~ 우우우.
 그런데 이번에는 제법 크게 들렸다. 마치 아까보다 더 가까이에서 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점점 공포에 휩싸였다.
 도저히 주변을 바라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내 몸은 지금 덜덜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이때.
 “은성아 그만 해라. 과한 장난은 오히려 역호과만 난다.”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며 내 어깨에 오른손을 얹었다.
 ‘장난?’
 “하하. 네, 그렇지 않아도 분위가가 너무 지나쳐 그만두려고 했어요.”
 은성이 형이 말을 하며 왼손에 뭔가를 들고 앞으로 내밀었다.
 그곳에서 다시 소리가 들렸다.
 “꺄아아악!”
 그건 미니 카세트였다. 그리고 작은 스피커에서 우리들이 들었던 늑대 소리와 비명이 들렸다.
 사람들은 순간 벌러덩 뒤로 넘어지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아- 뭐야.”
 “휴우~ 살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뭔가 적응을 못했는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러니까 내가 들은 늑대 소리와 비명은 은성이형이 녹음해 온 소리고, 그 말은 이곳에 늑대는 없다는 말?’
 나는 천천히 정리를 했고 주변을 바라봤다.
 “캬캬! 역시 이런 한밤중에는 공포가 빠질 수 없지. 하하하. 상현아, 밤에 오줌 싸지 마라. 아니지, 오줌 마렵다고 참지 말거라.”
 “하하하, 아니지, 상현아, 오줌 마려우면 나를 깨워라. 내가 같이 나가줄게.”
 사람들은 자기들도 무서워했으면서 나를 약 올리며 말장난을 했다.
 이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됐다.
 평소 이해력은 좋다고 생각했는데, 공포에 휩싸이니 사고가 현저히 떨어진 것 같았다.
 ‘아니, 이 사람들이 혹시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알고서도 모른 척한 것인가?’
 순간 나는 혼자만 무서워했을 뿐, 다른 사람들은 연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예요, 모두 무서워했으면서! 그리고 은성이 형, 정말 무서웠단 말야!”
 나는 벌떡 일어서며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지만 다들 웃으며 나를 말릴 생각도 안 했다.
 “하하하, 넌 모르지? 너 얼마나 떨었냐면, 이빨이 부딪치며 다다닥 소리를 내고 있었다고.”
 “크크큭! 눈깔 돌리던 소리도 나던데? 크크큭.”
 “키킥킥 그래도 라디오를 가지고 올 것이라면 뭔가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늑대 울음소리를 녹음해왔죠.”
 “아아! 정말 싫어, 싫어!”
 나는 분한 마음에 마음껏 소리쳤다.
 “하하, 역시 우리 귀염둥이구나. 내년에 고3이 되어도 절대 우리 모임에 빠지지 말거라.”
 그러나 이런 나의 행동은 동료들에게 귀엽게만 보일 뿐인가 보다.
 확실히 이제 18세밖에 되지 않는 나는 스스로 성인이라 생각하지만, 30대 중반의 가정이 있는 아저씨 입장에서는 아직 어리디 어린 꼬마일 뿐이다.
 우리는 곧 먹던 식기를 정리했다. 주변에 개울이 없기에 화장지로 깨끗이 닦았다. 나중에 개울을 발견하면 그때 씻기로 했다.
 텐트에는 3명씩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나란히 누워 잠에 빠지려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산이라 일찍 해가 졌기에 아직 10시도 안 된 밤은 평소 12시쯤에 잠을 자던 현대인으로서는 너무나 이른 밤이었다.
 그래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며 여러 번 눈을 뜨며 잠을 청했다.
 이날 밤 나는 오줌 마렵지 않는 것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를 것이다.
 만일 마려웠다면 긴긴 밤을 어떻게 보냈을까? 생각하기도 싫었다.
 
 @
 
 “…어나.”
 “일어나.”
 “음-.”
 누가 날 깨우나?
 “상현아, 빨리 일어나 정리하자.”
 “아! 넵!”
 순간 난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집이 아니라, 산 중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난 천막을 나와 아침 산의 맑은 공기를 마셨다.
 허파 깊숙이 들어가는 상쾌함이 온몸에 퍼지며 찌뿌듯한 몸을 풀었다.
 난 바로 천막을 걷는 작업을 도왔다.
 이미 여러 번 해봤기 때문에 쉽게 호흡을 맞추며 천막을 걷었다.
 그리고 식기나 수통, 랜턴 등 저녁에 사용했던 도구들을 정리하고 다시 산행할 준비를 마쳤다.
 이를 못 닦아서 입 안이 텁텁했지만 이곳이 산중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참았다.
 “이대로 30분 정도 걸어가면 계곡이 나오니 거기서 좀 씻자.”
 대광 아저씨의 말이 들렸다.
 아마 일찍 일어나 어디로 갈지 지도를 보며 이미 구상을 마친 것 같다.
 아직까지는 걷기 쉬운 길이었다. 그러나 산행을 하면 늘 그렇듯이 일렬로 대형을 맞추며 아무런 소리 없이 걸어갔다.
 모두들 배테랑답게 걸음걸이가 대범했으며 재빨랐는데, 대략 평지에서 빨리 걷는 정도의 속도였다.
 우리들은 일반 등산로로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주 지도를 살피고 주변을 살피며 걸어갔다.
 곧 시냇물을 찾을 수 있었고, 그곳에 가서 간단하게 세수를 했다.
 역시 산속의 물답게 시원하고 상쾌했다.
 시냇물 속을 잘 보면 가재도 있었다.
 어렸을 적에 많이 잡았던 기억이 난다.
 서울로 이사 오기 전, 기린봉이라는 작은 산에 올라가 절 옆에 있던 작은 시냇물 속에서 가재를 잡으며 놀았던 기억이다.
 이렇게 어렸을 때 산에 자주 올라갔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등산을 즐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 됐습니다. 이제 가죠.”
 나는 들려오는 소리에 내 옆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은성이 형이 수통에 물을 가득 담은 후 마개를 막으며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순간 이 물을 먹어도 되는지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 다른 동료들은 그런 은성이 형의 행동에 아무런 제동을 걸지 않았다.
 “형, 이 시냇물 먹을 수 있는 거야?”
 “응? 아! 그럼.”
 “저 물에 뭐가 들어있는지 어떻게 알아? 이상한 성분이 있어서 병이 든다거나 하진 않을까?”
 “하하. 너 아까 가재를 봤지? 이 기회에 알아둬라. 시냇물에 가재나 새우가 살고 있다는 것은 1급수 물이다. 그냥 먹어도 된다.”
 은성이형은 숨을 고르고 다시 이야기를 했다.
 “만일 하루살이 유충이 살고 있다면 2급수다. 이런 물은 침전이나 여과로 정수한다면 먹을 수 있다. 다슬기나 거머리가 있다면 3급수다. 이 다음부터는 먹을 생각을 말아라. 뭐, 화학처리를 한다면 먹을 수야 있지만, 4급수는 실잠자리나 나방의 유충이 있고, 5급수는 실지렁이나 장구벌레가 있다. 절대 먹을 생각 말아라.”
 나는 형의 말을 들으며 머릿속에 잘 정리해뒀다.
 ‘그러니까, 새우나 가재가 있으면 그냥 먹고, 하루살이 유충이 있으면 침전해서 먹으면 된다는 거고, 그 다음부터는 무조건 먹지 않으면 되는군. 그런데 침전이 뭐지?’
 나는 걸어가며 침전에 대해 생각했다.
 아마 가만히 물을 놔두면 물보다 무거운 것들은 아래로 갈아 앉으며 자연스레 물이 맑아지는 것이었던 것 같다.
 ‘그럼, 여과는 어떻게 하지?’
 언젠가 TV에서 정수기의 원리를 말하면서 큰 돌과 작은 돌을 넣은 후 물을 흘리는 것이 떠올랐지만, 확실하게 이것이 정수하는 방법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생각을 마치고 일행들의 뒤를 따라갔다.
 약 1시간 정도를 걸어갔나? 일행들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의 바위가 나타나자 우리들은 잠깐 쉬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각자 간단하게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꺼냈다.
 나는 통조림을 꺼냈다.
 가방 안에는 4개가 들어있었는데, 그중 하나를 까서 먹었다.
 물론, 통조림 안에는 밥과 참치가 비벼져 있다.
 이것을 두 개 정도 먹으면 간단한 식사거리는 된다.
 옆의 다른 형은 군용 비상식량을 먹고 있었다.
 작은 봉투 안에 약간의 물을 넣으면 그 안에 있는 다른 물질에 의해 물이 끊는다. 거기에 완전히 밀폐된 음식을 넣고 약 1분 후 꺼내 먹고 있는 중이다.
 미군용인지 안에는 함박스테이크같이 생긴 것이 들어있었다.
 우리들은 약 30분을 쉰 후 다시 이동을 했다.
 대형은 등산 초보인 내가 중앙에 서고, 일렬로 이동했다.
 이렇게 전진하다가 내리막길이 나왔다. 주변 곳곳에 큰 바위들도 보였다.
 내리막길이 점점 급해지다가 저 앞으로 오르막길이 보였다. 그런데 내리막길의 마지막쯤에 내 키만 한 바위들이 놓여있었다.
 옆으로 5미터 정도 돌아갈 수도 있지만 우리들은 그냥 뛰어내렸다.
 앞에서부터 천천히 한 명 한 명씩 뛰어내리자 곧 내 차례가 왔다.
 그런데 난 순간 어젯밤의 장난이 떠올랐다.
 ‘그래, 마지막에 안 뛰어내리고 숨어버릴까? 그럼 당황해서 나를 찾겠지? 킥킥! 어제의 복수를 하는 거야!’
 난 그렇게 하기 위해 딴 짓을 하며 후미로 빠졌다.
 일행들은 차례차례 뛰어내렸고, 마지막에 나만 남았다.
 그런데 난 순간 이 장난은 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난 아직 미성년이기 때문에 모두들 책임감에 자책할 거야…….’
 걱정과 자책의 모습을 하는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르자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난 힘차게 머리를 도리질치며 뛰어내리기 위해 바위 앞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이미 다른 동료들은 모두 뛰어내리고 보이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전부 뛰어내린 것 같다.
 “상현아, 빨리 와!”
 “예!”
 나를 부르는 소리에 답을 하며 앞으로 한 걸음을 디뎠다.
 순간 난 뭔가 기이함을 느꼈다.
 뭐랄까?
 따뜻한 온기가 온몸을 감싼다고나 할까? 아니면, 쏟아지는 잠을 이기며 공부하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침대에 막 누워 눈을 감았을 그 순간의 느낌이랄까?
 암튼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주변이 순간 하얀색으로 변화되었다.
 결코 빛으로 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빛을 내뿜었다. 그리고 한 점 빛도 없는 어둠으로 다시 변했다.
 그러나 이 현상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무의식중으로 걷던 걸음을 마저 걸었다.
 뇌에서는 ‘멈춰’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신경을 통해 다리까지 전달되는 시간 동안 이미 한 걸음을 디딘 것이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은 평지를 밟다가 움푹 들어가 있는 웅덩이를 밟아 발을 헛디뎠을 때 순간 놀라며 주저앉는 상황을 겪었다.
 그 순간 어두웠던 주변은 다시 하얀색으로 변했고 바로 없어졌다.
 덕분에 내 눈은 주변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주변을 보기도 전에 난 땅으로 떨어져야만 했다.
 “어?”
 한 걸음을 딛고 주저앉으려는 자세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동시에 주변의 경관이 순간 눈에 들어왔다.
 “어?”
 내 입에서는 계속 뭔가 모를 소리가 나왔고, 주변이 훤히 보이며, 내 눈에는 나무나 바위가 있는 산속이 아닌, 파란 하늘과 구름이 들어왔다.
 그리고 떨어지던 내 몸은 머리가 아래로 쳐지면서 자연스럽게 바닥을 볼 수 있었는데 그곳은 놀랍게도 온통 물뿐이었다.
 떨어지던 몸은 점점 가속되었다.
 자세를 잡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 낙하하는 내 몸은 마치 바이킹 맨 뒷자리에 앉았다가 바이킹이 수직으로 선 다음 아래로 떨어질 때 느끼는 스릴을 느꼈다.
 그러나 이 느낌은 스릴이 아니고 공포였다.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는 고함이 나왔다
 “으아아악!”
 풍덩!
 “부루루루루.”
 입에서는 공기가 빠져나갔다.
 순간 난 물 속의 차가움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영! 위로!’
 아직 뭐가 뭔지 모르지만 오로지 물 위로 올라가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등에 매고 있는 등산용 가방이 방수가 되는 재질이기 때문에 속에 있는 공기가 쉽게 빠져나가지 못했다.
 덕분에 수영을 하지 않아도 천천히 물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후하아! 하아하아.”
 난 얼굴을 내밀고 급히 숨을 쉬었다.
 물속에 오래 있지도 않았는데 숨이 찼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아하아, 하?”
 난 놀란 눈으로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온통 물뿐이었다.
 순간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게 뭐지? 어떻게 된 거야?’
 난 황당한 시선으로 다시 둘러봤다.
 다행이 저 멀리 육지가 보였다. 그러나 족히 1킬로미터 정도 되어 보였다.
 아마 실제로는 2킬로미터는 되지 않을까?
 마치 멀리 있는 산이 가까이 있는 것처럼, 시야가 확 트인 곳에서는 실제 거리보다 짧게 보이기 마련이니까.
 ‘일단 침착하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벗어날 방법이 있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난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난 방금 전까지 지리산에 있었다. 그리고 잠깐 기이한 기분을 느끼고 한 걸음을 걸었는데 허공을 밟았고, 그 허공은…….’
 난 잠시 머리 위를 바라봤다.
 하늘색 하늘에 흰 구름이 옹기종기 모여서 바람을 타며 놀고 있었다.
 ‘약 5미터 정도 위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내 뒤에 등산 가방이 있는 것으로 이건 꿈이 아닌 현실이다.’
 차가운 물속에 있기 때문에 정신은 맑아졌다.
 그래도 현 상황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단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저 멀리 있는 육지까지 가보기로 했다.
 “…….”
 난 아무런 말도 없이 천천히 헤엄을 쳤다.
 약 10분 정도 지났을까?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평소 수영을 즐겼던 것도 아니고, 1년에 한두 번 수영장에 가서 나름대로 자유형을 한다며 볼품없는 폼으로 수영을 하던 실력과 체력으로는 10분 동안 버틴 것도 잘한 것이다.
 ‘아아! 몰라. 잠깐 쉬자.’
 등 뒤에 있는 가방을 바라봤다. 공기가 조금씩 빠져나가는지 처음보다 약간 부피가 줄어든 것 같았다.
 난 인터넷에서 사람이 바다에 1시간 이상 들어가 있으면 몸의 체온이 떨어져 위험하다는 글을 읽은 것이 떠올랐다.
 그 글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이대로는 1시간은커녕 3시간이 지나도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난 다시 이동을 했다. 그러나 다시 체력은 바닥을 보였고 난 점점 공포를 느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있는 곳의 수심은 어느 정도지? 10미터? 50미터?’
 바다의 깊이를 생각하자 갑자기 공포가 엄습해 왔다.
 눈동자를 아래로 굴려 수면을 바라봤다.
 역시 바닥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내 정신은 깊은 수렁에 빠진 것처럼 헤어 나오질 못했다.
 무서웠다.
 그래서 난 발버둥치며 다시 앞으로 조금씩 전진했다.
 “아으아아, 으으아으아아…….”
 입에서는 알 수 없는 말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온몸은 조금씩 경련이 일어나기도 했다.
 “으아라으으, 야아아으야…….”
 정신없이 몸을 움직였다. 고개를 돌리며 바닷물 수면을 바라봤다.
 조금씩 내 옆을 흐르는 것을 확인했다.
 다시 앞을 바라봤다.
 조금씩이지만 몸은 앞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데 육지는 처음 거리 그대로였다.
 하도 멀어서 몇 십 미터 움직인 것 가지고는 티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더 두려웠다.
 팔과 다리를 휘저었다.
 어디서 다시 힘이 났는지 모르겠다.
 공포는 사람을 못 움직이게 하지만 반대로 초인과 같은 힘을 나게 하나 보다.
 다행히 난 후자였다.
 “아으! 아으! 야-으!”
 어느덧 내 입에서 힘찬 기합을 내질렀다.
 허나 아무리 움직여도 거리는 줄어들 생각이 없었다.
 어느덧 초인 같은 힘도 점점 없어졌다. 역시 자연은 한낱 인간이 어찌하지 못할 힘이었다.
 “아자! 김상현, 정신 차리자!”
 그러나 난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내 이름을 부르며 계속 움직였다.
 그리고 이렇게 어느 정도 육지를 향해 가고 있는데 뭔가 물의 움직임이 이상함을 느꼈다.
 뭐랄까?
 바다 속이 움직인다고나 할까?
 순간 물속에 어떤 거대한 것이 움직인다면 이렇게 물이 움직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난 다시 공포가 엄습해왔다.
 바다 속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으아! 뭐야!”
 물속에서 거대하고 시커먼 뭔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아! 아! 아으! 아!”
 난 있는 힘을 다해 기합을 내지르며 더 빨리 움직였다. 그러나 그것과의 거리는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였다.
 순간 내 몸은 낚시할 때 찌가 물 위에 둥둥 떠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저거 상어 아냐?’
 그러나 상어는 때를 지어 다니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했으나, 정말 상어가 그런 습성이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용기를 내서 바다 속을 들여다볼까?’
 마치 귀신을 무서워하듯, 저것들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더 무서운 것 같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얼굴을 수면 속으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턱과 코가 물에 잠겼을 쯤, 더 이상 움직이지를 못했다.
 ‘정말 확인해야만 할까?’
 마치 등 뒤에 귀신이 있다고 느껴지지만 무서워서 쳐다보지 못하는 것처럼 공포가 엄습해왔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얼굴을 마저 바다 속으로 들이밀었다.
 얼굴이 코를 지나고 이마를 지나 귀까지 들어가면서 느껴지는 수면의 경계면은 오싹한 느낌을 주었다.
 물속임에도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꽉 감았던 눈을 살짝 떴다.
 “……!”
 순간 거대한 그림자가 나를 향해 돌진해오는 것을 바라볼 수 있었다.
 “으아! 부루루루루.”
 물속에서 고함을 질렀기 때문에 입에서 거품이 나왔다.
 눈에 보인 것은 길쭉한 럭비공 같이 생겼는데, 맨 앞부분에는 반원으로 찢어진 라인이 보였고, 그 라인이 하나에서 둘로 갈라지며 삐쭉삐쭉한 이빨이 보였다. 그리고 이빨 하나가 내 손바닥만 했다.
 점점 나한테로 다가오더니 입을 더 크게 벌렸다.
 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고, 눈앞은 거대한 입이 보일 뿐이었다.
 난 고개를 바다 속에서 꺼내며 뒤로 제쳤다.
 몸이 이등분되는 고통을 참기 위해 눈을 힘껏 감으며 고함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악!”
 
 천천히 정신이 돌아왔다.
 몸이 무겁다. 배 쪽은 차갑고 등 쪽은 뜨거워 몽롱한 정신이 쉬이 깨어나지 않는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을 뜨니 반짝이는 수면으로 백사장이 보였다.
 철썩, 쏴아아.
 파도가 조금씩 내 몸에 부딪치며 밀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바다를 바라봤다.
 저 멀리 보이는 그것들은 마치 돌고래들이 쇼를 하듯 위로 점프를 하며 다시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대체로 검은색에 흰색이 군데군데 섞여있었는데, 물 밖에서 보니 범고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여섯 마리가 누가 더 멀리 뛸 수 있는지 시합이라도 하듯 서로 점프를 하며 멀어져갔다.
 난 이제야 범고래를 타고 육지로 오게 된 것을 알았다.
 예전에 TV에서 범고래가 바다에 빠진 사람을 살리거나 상어를 물리치며 사람을 구해주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바다의 무법자라고 하는 범고래가 이상하게 사람한테만은 친근하게 대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휴우, 살았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손을 들어 몸에 뭍은 모래를 털어냈다.
 저 멀리서는 아직도 점프를 하며 멀어져만 가는 범고래들이 보였다.
 
 난 마음을 진정시키고 주위를 둘러봤다.
 축구를 해도 될 만큼 넓은 모래사장이 있었고, 내 뒤로는 작은 바위들이 있었다. 그 뒤로 숲이 보였는데, 여기서 보면 그리 울창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하, 하하하…….”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바다에 빠져 죽으려다 살아났는데… 뭐야, 이거? 웃기지도 않는 순간 이동? 텔레포트?”
 사고력이 정지됐다.
 오직 허탈한 심정만이 가득했다.
 “하하하…….”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과정이 있게 마련, 지금 난 이상한 곳으로 이동되었다. 그리고 이것의 원인은…….’
 틀림없이 난 산에서 동료들의 뒤를 따라 내 키보다 약간 큰 바위를 뛰어내리기 위해 앞으로 한 걸음을 디뎠다. 그러나 기이한 기분과 함께 바다에 떨어졌다.
 사건의 시작과 끝을 보면 틀림없이 난 공간 이동된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공간 이동이라는 것이 실현 가능한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다.
 공간 이동은 이론적으로도 무리라고 알고 있다.
 워프라는 우주공간의 개념도 있긴 하지만, 가설만 있을 뿐이다.
 아마 가능하다면 외계인밖에 없을 것이다.
 ‘외계인?’
 설마 난 외계인에게 납치당하고 실험으로 쓰인 다음 모든 기억을 삭제당하고 저리로 떨어진 건 아닐까?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지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외계인에게 납치됐다고 주장하는 정신병자들도 있으니까.
 “하하, 내가 그 정신병자 멤버에 낀 건가?”
 난 좀 더 생각해봤다.
 ‘그래, 백 번 양보해서 외계인이든 워프를 했든 암튼 그랬다 치자. 그런데 왜 저기로 떨어진 것이지?’
 만일 누군가가 목적을 가지고 공간 이동시켰다면, 이동된 목적지가 이런 곳일 리가 없을 것이다.
 우주선이라거나 어떤 건물 안, 혹은 뭔가 장치나 동물, 사람, 그래 이것도 백 번 양보해서 뭔가 문명이 남기고 간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건 목적지 없이 이동됐는데, 재수 없게 바다 위로 떨어진 것 같지 않은가?
 만일 누군가가 목적을 가지고 날 이동시킨 것이 아니고, 정말 우연으로 어떤 특정한 뭔가의 힘에 의해 이동되었다면?
 그렇다면 무작위로 아무 곳에나 이동될 수 있다.
 
 이번 사건의 원인은 아직 알 수 없다.
 과정 역시 내가 기억하는 것은 하얀빛 같은 아니, 빛은 아닌 것 같았다. 암튼 하얀색의 이상한 공간과 어두운 공간을 경험한 것밖에는 없다.
 즉, 과정 역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이곳을 좀 더 조사한 후 결과를 파악한다.”
 나는 하나하나씩 천천히 생각하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결론이 나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특별히 몸에 이상은 없는 것 같다.
 순간 난 내가 이동될 때 느꼈던 따뜻하고 포근한 그 느낌이 아직도 느껴진다는 것을 알았다.
 난 손을 저으며 더 느껴보려 했지만, 순간 그 느낌은 사라졌다.
 아니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주 약하게 느껴진다. 단지 거의 없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공간 이동될 때 사용된 내가 알지 못하는 이상한 에너지인가?’
 나는 배낭을 메고 숲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약 1시간쯤 걸었으려나?
 주변을 샅샅이 뒤지며 걷던 걸음이 느려졌다. 그리고 조금씩 초조함이 밀려온다.
 언젠가부터 뒤를 자주 돌아봤다. 내가 걸어온 길이를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1시간쯤 더 걸었을까?
 여전히 숲만 더욱 울창해졌을 뿐 내가 찾는 것은 나오지 않았다. 더불어 제대로 걸을 땅조차 보이지 않았다.
 큰 갈대 같은 풀이나 나무, 넝쿨 등등 내 앞을 막는 것이 많았다.
 “결국 여기는 무인도란 말인가?”
 내가 찾던 것은 도로였다.
 대형 건물이나 큰 도로도 아닌, 작은 도로였다. 아니, 사람이 걸어 다니며 만들어진 길이라도 나오길 기대한 것이다.
 난 뒤를 바라봤다.
 족히 5킬로미터는 걸어온 것 같다.
 등산으로 다져진 내 다리라 할지라도 더 걷기에는 힘이 부쳤다.
 난 주변을 뒤지며 쉴 곳을 찾았다. 그리고 곧 찾았다.
 내가 걸어온 길 쪽으로 약 10미터 뒤에 큰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 아래에는 작은 풀밖에 없었다.
 ‘영양분이나 햇빛을 받지 못하니 큰 나무들은 자라지 못하겠지.’
 난 그리로 가서 앉아 배낭을 뒤졌다.
 촉촉이 젖은 옷과 배낭이지만, 다행히 날씨는 여름인지 따뜻했다.
 배낭의 단추와 지퍼를 열어 속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바닷물에 젖은 냄비나 부탄가스, 버너가 먼저 보였고, 랜턴과 맥가이버 칼, 옷가지가 보였다.
 식량인 초코바 2개, 라면 2개, 비빔밥 참치 캔 2개, 햄, 3인분의 쌀, 고추장과 고추, 멸치가 나왔다.
 난 오래 걸어서 지친 몸도 쉴 겸, 배고픈 배도 채울 겸, 젖지 않은 비빔밥 참치 캔을 하나 땄다.
 수저는 어젯밤에 먹고 다른 동료가 가지고 가는 바람에 없었지만, 다행히 나무젓가락이 있었다.
 나는 허겁지겁 먹다가 순간 뭔가가 떠올랐다.
 ‘아차! 이곳이 무인도일 수도 있었지!’
 만일 무인도라면 식량은 아껴 먹어야 한다.
 아니,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비상식량이 되는 것이고, 지금부터라도 당장 낚시를 하거나 나물을 캐거나 있을지도 모르는 동물을 사냥해야 한다.
 난 먹던 캔은 어쩔 수 없으니 천천히 먹었다.
 허기진 배를 못 채울까 봐 잘근잘근 평균 30번은 싶었다.
 이제부터는 소화도 잘해야 되는 것이다.
 비빔 참치 캔을 다 먹은 후 나머지 하나를 바라봤다.
 아직도 배고팠다.
 그러나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다.
 ‘그래, 아껴서 먹자. 어쩌면, 정말 어쩌면 난 이곳에서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난 이제야 내 처지를 깨달았다.
 지금 상황은 게임이나 소설 속의 상황이 아니다. 내 생명을 걸고 하는 생존게임이다.
 빌어먹을!
 퍼억!
 난 앉은 자세에서 오른발을 들어 바닥을 쳤다.
 두꺼운 등산화를 신었기 때문에 다리에 무리는 가지 않았다.
 난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잠깐 하늘을 바라봤다.
 빌어먹게도 엄청 맑았다. 저 멀리 떠다니는 구름은 동화 속 구름 같았다.
 “그래, 이것은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다. 이 빌어먹을!”
 난 갑자기 울컥하는 기분으로 소리를 질렀다.
 정말로 무인도면 어쩌지?
 이제 18세의 고2가 혼자 뭘 어쩌란 말인가?
 “아, 시팔!”
 평소 욕을 하지 않는 나였지만, 순간 욕이 나왔다.
 팔꿈치로 등 뒤의 나무를 세게 쳤다.
 쿵!
 “아야, 으읏!”
 그러나 나무는 끄떡도 없었다. 단지 내 팔꿈치만 아플 뿐이다.
 속이 안 풀렸다. 뭔가 꽉 막힌 기분이다.
 불안감 때문인가?
 “후후, 그래도 허기지진 않군.”
 위가 뇌에 음식이 들어왔다는 신호가 가는데 10분이라고 들었다.
 즉, 밥을 아무리 많이 먹어봐야 10분 후 배가 부르게 되는 것이다.
 소매로 글썽이던 눈물을 닦았다.
 다시 이빨로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어쩌지? 어디로 가지? 다시 바다로 가야 하나? 아님, 계속 숲 속으로 들어가야 하나?’
 그러고 보니 나침판도 없다.
 그럼 숲에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다.
 하루 종일 걸어도 같은 자리만 빙빙 돌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밤에 별을 보며 걸을 수도 없다.
 아무런 불빛도 없는, 오로지 달빛만으로 밤길을 걷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 다시 바다로 가자. 거기라면 최소한 조개라도 주워 먹을 수 있겠지.”
 바다에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모래사장 주변을 잘 뒤지면 게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근처에는 낚시를 할 수 있는 곳도 있을 것이다. 뒤는 숲이니 나물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일단은 모래사장으로 가자.’
 생각을 정리하고 하늘을 바라봤다.
 태양은 이제 바다를 향해 넘어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이크! 1시간 조금 지나면 어두워지겠는데? 서둘러야겠다!’
 난 재빨리 일어나 왔던 길로 다시 이동했다.
 올 때보다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이래봬도 산속에서 하루 종일 걷기도 했던 ‘나’이다.
 순간 난 뭔가 생각난 것이 있어서 손목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시계가 있었다.
 다행히 시계는 바늘 시계였다.
 다시 하늘을 바라봤다.
 ‘그래, 손목시계의 짧은 바늘이 태양을 향하게 한 후 12시의 눈금과 짧은 바늘이 만드는 각을 둘로 나눈 쪽이…….’
 순간 그 방향이 남쪽인지 북쪽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나도 참, 지금 태양이 지는 쪽이 서쪽이지.”
 나는 짧은 바늘로 해를 가리키고 12시의 눈금과 짧은 바늘의 각을 나눴다. 그리고 그쪽과 태양이 지는 쪽이 서쪽인 것으로 계산한 후 그쪽이 남쪽임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아침에 움직일 수 있다.
 태양이 있고, 내 손목에 시계가 있는 한 방향은 알 수 있다.
 만일 시계의 건전지가 다 떨어져 멈춘다면, 태양이 뜬 아침과 질 때만 이동한다면 무리 없이 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뭔가 알 수 없는 위기감을 느꼈다.
 ‘뭐지? 뭔가 이상한데?’
 난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시계를 바라봤다. 그리고 태양을 바라봤다.
 “아! 시간!”
 지금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태양은 바다 밑으로 지려고 했다. 즉, 5시간 정도의 시간차가 난다.
 “하하…….”
 난 허탈한 심정으로 시계를 바라봤다.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 일단 잊어버린 5시간은 나중에 생각하자. 먼저 식량을 구하고 이런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적응하는 것이 우선이다!’
 난 내가 할 행동의 선후를 생각하며 모래사장 쪽으로 이동했다.
 “그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난 소리치며 이제는 뛰다시피 이동했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온몸에 힘이 넘쳤다.
 방금까지 암울했던 기억은 저 멀리 보내버리고, 뭔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모래사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어두움이 다가왔을 때이다.
 그래서 주변의 사물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내가 처음 바다에서 올라왔던 그 모래사장이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무사히 모래사장으로 왔으니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됐다.
 난 이제 뭘 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해결해야 할 것이 있음을 생각했다.
 ‘아! 어디서 잠을 자지?’
 이미 주변은 어두워 잠을 잘 만한 곳을 찾기는 늦었다.
 ‘랜턴?’
 아니다.
 랜턴은 뭔가 확인할 때 귀중히 쓰일 물건이다.
 난 모래사장 근처의 부드러운 땅을 파기로 했다.
 깊게 팔 것도 없이 내 몸 하나가 딱 들어갈 만한 정도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옷을 이불 삼아 덮고 자면 될 것이다.
 난 땅을 손으로 짚어보고 랜턴으로 잠깐 비춰 확인했다.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지 확인하고 랜턴을 끄고 땅을 파기로 했다.
 ‘장작이라도 있다면 불을 지펴놓을 텐데 숲에서 급히 오느라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구나! 내일부터는 확실히 준비해놓자.’
 사람은 경험에서 지혜가 온다더니, 확실히 이런 상황을 겪어보니 뭐가 필요한지 알 것 같았다.
 땅을 다 판 후 가방을 베개 삼고 여벌 옷을 땅에 깔아 누웠다.
 ‘나름대로 포근하구나. 그러나 내일은 땅을 파서 잠을 자기보단, 잠자리로 좋은 곳을 먼저 찾아보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른다. 해야 할 일과 준비해야 할 것들. 문득 답답한 마음에 감았던 눈을 떴다.
 구름에 가려 반쯤 얼굴을 드러낸 밤하늘이 펼쳐졌고, 틈틈이 별들이 빛을 내며 자리해있었다.
 하늘을 살펴 달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구름에 가렸거나 아직 뜨지 않았나 보다.
 난 고개를 돌려 바다 쪽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바다는 있을 텐데 온통 암흑뿐이었다.
 숲 쪽을 바라봤다.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눈 먼 봉사가 된 기분이었다.
 순간 지금 이곳엔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둠에 묻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무서움이 엄습해왔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것을 생각하느라 몰랐는데, 점점 의식을 할수록 무서워졌다.
 눈을 감고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잠자려고 애썼다.
 그러나 반대로 이상한 생각이 들었고, 여러 곤충 소리나 파도 소리, 물이 빠지며 나는 소리 등등 여러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중에는 꼭 이상한 동물 울음소리 같은 것도 있었다.
 물론 착각일 테지만, 공포는 이렇게 조금씩 다가오는 것이다.
 순간 난 파도 소리가 이상함을 느꼈다.
 뭐랄까?
 쏴아아 하며 들어왔다 빠지던 파도가 누군가의 훼방으로 사방팔방으로 난리치는 것 같았다.
 무서웠지만 자연스레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파도소리는 점점 이상하게 들렸고, 나중에는 얕은 물가를 사람이 걸어갈 때 들릴 만한 소리가 났다.
 그러나 가벼운 소리가 아닌 육중한 소리였고,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그 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대신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쿠궁. 쿠궁.
 소리는 두 번씩 나는 것으로 보아 두 발 달린 짐승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땅이 울릴 정도의 덩치를 가진 존재가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그 크기는 생각만 해도 끔직했다.
 그리고 이 소리는 곧 나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의 어두운 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지금 무언가 내가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가 있다는 것은, 밤 12시에 공포영화를 보는 것과 비교할 수도 없는 무서움으로 다가왔다.
 온몸의 피부가 닭살같이 오돌토돌하게 변했고,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날까 봐 꽉 깨물었다. 신음이 나올까 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쿠궁. 쿠궁.
 그 소리는 내 머리 위쪽 바닷가에서 들려왔고, 점점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난 몸을 조금 움츠렸다.
 갑자기 써늘한 기분이 들어 몸을 따뜻하게 하려는 본능이었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계속 끊이지 않고 떠올랐다.
 내 눈에는 공포에 가득 찬 물줄기가 흘러나왔으나 손으로 훔칠 여유도 없었다.
 다행히 그 소리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땅의 울림도 없어졌다.
 그 존재가 멈췄다는 것을 알았다.
 ‘그 존재는 뭐지? 땅이 울릴 정도의 덩치라니, 설마 공룡? 아니면 바다의 거대한 괴물? 용?’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 더 그럴 것이다.
 나는 공포에 휩쓸려 잠을 자지도 못한 채, 몸을 오랫동안 움츠리고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한두 시간쯤 흘렀으려나?
 몸이 불편할 텐데 그런 것을 느낄 새도 없었다. 오로지 죽음과 공포라는 것 때문에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
 
 어느덧 해가 떠올라 나는 눈을 떴다.
 눈물이 굳어서 눈꺼풀이 붙었는지, 잘 떠지지 않았다.
 손으로 비벼 눈꺼풀을 뗀 후에야 눈을 뜰 수 있었다.
 온몸이 찌뿌듯했다. 그러나 상쾌한 바람이 나를 맞이해 가슴만은 시원했다.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특별한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언제 잠이 들었지?’
 나는 어제 그 소리를 떠올려보았다.
 그 존재의 흔적을 찾아보려는 호기심이 들었지만, 미지의 거대한 존재라는 공포가 더 강했다.
 ‘혹시 여기는 잃어버린 아틀란티스 같은 미지의 세계인가?’
 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더 이상 이곳에 있기 싫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부지런히 내가 편히 쉴 곳을 찾아 헤매었다.
 30분쯤 흘렀을 무렵, 목이 말라 가방에서 수통을 꺼냈다.
 그런데 서너 모금을 마셨나? 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수통을 머리 위로 들고 흔들었다.
 물이 없음을 알리기라도 하는지 몇 방울만 떨어졌다.
 순간 난 이제껏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아! 식수를 먼저 해결해야 하는구나! 음식은 바다가 있으니 나름대로 구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 어떻게 물을 구한단 말인가!’
 혹시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작은 강줄기나 시냇물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어디에 있는지 알고 언제 찾는단 말인가?
 어제 4시간가량 숲을 헤맨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강이나 냇가는 전혀 보이지 않았었다.
 ‘할 수 없이 증류수를 먹어야 한단 말인가? 아냐, 틀림없이 이렇게 큰 섬이라면 바다로 흘러가는 물줄기가 있을 거야!’
 나는 쭉 펼쳐져 있는 모래사장을 바라봤다.
 사람이 물을 안 먹고 4일을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일단 오늘 하루 종일 물줄기를 찾아보고 없다면 그 후 증류를 해서라도 바닷물을 먹어야겠다.’
 바다로 흘러가는 물줄기를 찾기 위해 계속 걸었다. 그러면서 혹시 잠자리로 좋은 곳이 있는지도 살폈다.
 만일 종이와 연필이 있었다면 지도를 그리며 움직였을 텐데 아쉽게도 이런 것은 없었다.
 3시간 정도를 걸었나?
 슬슬 다리에 무리가 갈 때쯤 소변이 마려웠다.
 적당한 자리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데 순간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이크! 어차피 나 혼자밖에 없는데 아무 데나 싸면 어떤가?’
 나는 내 키보다 3배쯤 큼직한 바위 위에 올라가 바다를 향해 소변을 눴다.
 ‘하하하! 혼자 있으면 이런 재미도 있구나!’
 순간 난 예전에 만화책에서 봤던 내용이 떠올랐다.
 ‘아! 오줌은 물을 대신할 수 있는 귀한 것인데!’
 만화책에서 주인공은 동생과 함께 대재앙을 만나 숲에 둘만 남게 되었다.
 형은 물이 없어 오줌이라도 마셨고, 동생은 오줌을 먹지 않았다. 결국 동생은 죽고, 형은 살아남아 계속 산 속에서 생존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난 나오던 오줌 줄기를 끊고, 당장 수통을 찾았다. 그리고 다시 나오는 그것을 수통에 받았다.
 그러나 이미 한참 나오던 것이었기 때문에 5분의 1정도밖에 차지 않았다.
 300밀리리터짜리 수통이니 60밀리리터 정도밖에 차지 않은 것이다.
 난 소변이 뭍은 수통을 조심히 들었다. 그리고 가만히 이것을 바라봤다.
 ‘과연 내가 이것을 먹을 수 있을까?’
 혹시 모르기 때문에 수통 마개로 꽉 막은 후 가방에 잘 넣어뒀다.
 이건 마지막까지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후의 보류로 어쩔 수 없을 때 꺼내서 먹을 것인가 먹지 않을 것인가 생각해야겠다.
 이것이 내 생명을 살릴 수 있으니까.
 뒤돌아서 바위를 내려오는데 이런 상황에 처해진 나 자신이 처량했다.
 내가 왜 이런 상황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나는 다시 이동을 했다.
 약 2시간 정도를 걸었을 때 배고파도 참고 먹지 않았던 식사를 하기로 했다.
 가방 안에 있는 것들은 최대한 안 먹으려 했지만, 물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하고 가방에서 통조림을 꺼냈다.
 쌀밥을 먹고 싶었지만, 물이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
 순간 난 땔감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성냥과 라이터가 있으니, 나무에 불을 지펴 바닷물을 냄비에 담에 끓이면 쉽게 증류수를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알았다.
 만일 오늘 중으로 물줄기를 찾지 못한다면, 5시쯤부터는 저녁꺼리와 땔감을 준비하고 잘 만한 곳도 알아보기로 다짐했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이동했다.
 산행으로 단련된 다리지만 어제도 하루 종일 걸었고, 오늘도 마찬가지로 걸었기 때문에 무리가 갔다.
 시계를 바라보니 4시 13분, 일단 오늘은 그만 움직이고 쉬기로 했다.
 약 30분 정도를 쉬기로 마음먹고 모래사장 쪽으로 가 적당한 자리에 누웠다.
 순간 혹시 잠들어 일어났을 때 해가 지고 어둠이 온 상태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상체만 일으켰다.
 이렇게 잠깐 쉰 후 잠을 잘 만한 곳을 물색했다.
 곧 커다란 바위 아래에 작은 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했고, 거기에 옷가지를 잘 깔아놓았다.
 여름 같은 날씨이니 추위는 걱정 없었다.
 땔감을 구하기 위해 숲으로 들어갔다.
 좀 쉬었다지만 다리는 다시 아파왔다. 한 걸음이 천근의 걸음 같았고, 발바닥이 시큰거렸다.
 많지는 않지만 양손에 안아 들 수 있을 만큼은 구했다.
 잠자리로 온 후 냄비에 바닷물을 떠 담았다.
 바닷물은 상당히 맑았다.
 한국에 있을 때 서해밖에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이렇게 맑은 바닷물은 처음 보았다.
 이제 문제는 나무에 불을 지피는 거였다.
 순간 마른 나뭇잎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숲으로 들어가 양손 가득 주워왔다. 그러나 양이 모자랄 것 같아 다시 그만큼 주워왔다.
 작은 돌 위에 냄비를 올렸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증류를 받을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뚜껑을 수시로 열어 이곳에 묻어있는 물방울을 털어 한곳에 모으기로 했다.
 효율적이지도 못하고 계속 냄비 곁에 있어야 한다는 결점이 있었지만, 조금이나마 증류수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턱없이 부족했다. 한 끼 식사 후 먹을 양도 되지 못한 것이다.
 ‘역시 물줄기를 찾아야겠구나!’
 이렇게 오늘 밤을 지새웠다.
 먹은 것이 적어 허기졌고, 물 또한 거의 먹지 못해서 목이 탔다.
 불붙어 타오르는 장작들은 주변을 조금이나마 밝혔지만, 불빛 넘어 어두움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아른거리는 불꽃 넘어 어두운 그림자가 착시를 일으켜 귀신같은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또 눈꺼풀이 안 떠졌다.
 손으로 비비며 눈곱을 뗀 후에야 눈을 떴다.
 눈앞에는 타다 만 장작들이 있었고, 배는 여전히 고팠다. 여전히 목말랐고, 피곤했다.
 ‘내가 또 울었나 보구나…….’
 눈꺼풀이 안 떠진 것은 밤새 울었기 때문에 눈물이 굳어서 붙은 것이었다.
 다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냥 가만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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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 온 지 3일째.
 오늘도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이동했다.
 어깨에 멘 가방은 내 발걸음을 더 힘들게 했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다.
 그 안에는 이제 조금밖에 남지 않았지만 내 생명을 연장해줄 식량과 여러 가지 도구가 들어있다.
 ‘그냥 물줄기 찾는 것을 포기할까?’
 순간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증류를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참을 걷자 주변 상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좀 더 숲이 울창해졌고, 여러 큰 바위들이 보였다.
 좀 더 걸어가니 확실히 뭔가 달랐다.
 이제까지는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이 마치 거대한 해수욕장을 생각나게 했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바위와 절벽으로 이루어졌고, 거창한 숲과 거대한 나무들이 보였다. 바닷가 쪽에는 갯벌 같은 곳도 보였고, 저 멀리에는 뭔가 물이 흘러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순간 귀로 폭포 소리가 들려왔다.
 눈에 힘을 주며 저 멀리 물이 흘러나오는 것 같은 곳을 자세히 보았다.
 ‘저것은?’
 난 당황하며 앞으로 뛰어갔다.
 큰 바위를 넘고, 숲을 해치며 다가가자 확실히 물줄기가 보였다. 그리고 폭포 소리 역시 더 크게 들렸다.
 좀 더 다가가니, 1시 방향에 폭포가 떨어지고 있었고, 그것은 물줄기가 되어 바다로 흘러갔다.
 폭포의 폭은 대략 7미터 정도로 거대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거대한 절벽이 있지만, 높이는 5미터 정도로 높지 않았다.
 ‘아아!’
 하늘의 신이 노하여 거대한 망치로 찍어 내린 듯한 절벽의 모습은 내 눈에 가득 차고도 남았다.
 난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좀 더 다가갔다.
 그러자 뭔가가 후다닥 도망가는 소리가 들렷다.
 난 재빨리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아!”
 내 입에서는 놀람과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동물이었다.
 아마 이곳으로 물을 먹으러 온 것이리라.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계속 폭포의 모습을 바라봤다.
 귀에는 대지의 신이 노래하는 듯 폭포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고요하고 조용한 노래가 아닌, 거창하고 웅장한 노래였다.
 순간 난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감정이 애매했다.
 이런 상황에 처한 내 처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난 생각을 정리하고 물줄기와 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다가갔다.
 ‘아마 저기에는 물고기들도 살고 있겠지?’
 민물고기들을 먹을 생각을 하자 군침이 돌았다.
 바다는 너무 넓고 깊어서 고기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민물고기는 다르다. 충분히 내 몸으로도 잡을 만한 장소가 있을 것이다.
 난 이곳에 자리를 잡기로 결심했다.
 수질을 확인해보기 위해 개울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큰, 강이라고 해야 맞을 정도의 큰 물줄기 쪽으로 다가갔다.
 물은 맑았다.
 바닥이 깨끗하게 보일 정도였고, 민물고기들이 물살을 가르는 물결까지도 보일 지경이었다. 내심 한숨을 쉬었다. 조금 묘한 생김이지만 물고기까지 있다는 사실은 굉장한 위안이 되었다.
 확실히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 같다.
 이번에는 안식처로 삼을 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역시 바위들이 많기 때문에 좋은 곳을 여러 군데 발견했다. 그중에서 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을 택했다.
 이곳에 동물이 있다는 말은 야수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폭포 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을 택할지, 아니면 그쪽에서 내가 보이지 않는 곳을 택할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먼저 발견하고 피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바다 쪽을 바라보는 곳으로 정했다.
 물론, 바위 틈 속이기 때문에 바다 쪽에서도 잘 보이지 않지만, 내가 고개를 내밀면 바다가 정면으로 보였다. 그리고 틈의 입구는 육지에서 약 3미터 정도 올라가있기 때문에 더욱 더 만족했다.
 손과 발을 이용할 수 있는 인간이면 모를까, 동물들은 쉽게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안쪽의 높이는 1미터가 조금 넘었다. 즉, 바닥에서부터 2미터는 다른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앉아있으면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일어서서 움직이기에는 불편했다.
 바닥은 반 평 정도 되는 삼각형 모양인데 약간 기울어졌을 뿐만 아니라, 큰 바위들로 이루어졌기에 누워있으면 상당히 불편할 것 같았다.
 ‘돌과 흙을 가지고 와 바닥을 평평하게 해야겠다.’
 나는 바로 주변의 모래와 흙을 이용해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옷을 깔고 누워봤다.
 ‘이거 생각보다 편안한데? 모래가 마치 침대 같구나.’
 곧 해가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에 폭포 주변을 둘러보는 것은 내일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욕심이 생겨 갯벌 같은 곳으로 가서 게를 잡고, 조개를 주워왔다. 되든 안 되든 삶아서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고기도 잡고 싶지만, 도구 없이 잡기란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냄비에 바닷물이 아닌, 민물을 가득 담아왔다.
 한쪽으로 잘 놓고, 증류수 만드는 장치를 만들기 위해 작은 돌과 큰 돌을 집어 들었다.
 몇 분 후 간다하게 만들었고, 숲에 들어가 땔감과 나뭇잎을 주워왔다. 불을 잘 지필 수 있게 놓은 후 냄비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위에다 올려놓으려는데 역시 냄비 속의 물은 아주 깨끗했다.
 마치 먹을 수 있다고 유혹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혹시 모르기 때문에 그 속에 게와 조개를 넣고 끓였다. 그리고 증류수를 받고 있는데, 순간 이럴 필요가 있는가 싶었다.
 바닷물은 염분이 있어서 먹지 못한다. 아니, 먹을 수야 있지만, 탈수증상으로 죽을 것이다. 그러나 민물은 염분이 없다.
 고로 끓이기만 해도 안전한 식수가 될 수 있기에 증류수를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난 순간 나뭇잎 판을 들고 가만히 바라봤다.
 ‘그래, 나중에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일단은 한쪽에 잘 놓아두자.’
 집 한쪽에 던져놓고 불을 지펴 냄비를 올려놨다.
 물은 곧 끓었고, 움직이던 게들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조개들도 어떤 녀석들은 ‘나 잡수셔’하듯 입을 벌리며 쩍쩍 쪼개졌다. 난 군침이 돌았다.
 ‘아! 그러고 보니 고추장을 가지고 왔지!’
 그동안 먹을 일이 없어서 잊고 있었다.
 당장 가방을 뒤져 고추장을 꺼냈다. 조개를 찍어먹는다면 맛있을 것이다.
 잠시 후 완전히 발라먹었다.
 비록 게는 먹기가 힘들었지만, 역시나 맛있었고, 조개는 속에 모래가 많아서 별로 먹지 못했다. 그래도 상당히 맛있었다.
 
 해는 수평선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일 햄과 물고기를 잡고, 조금 남은 쌀로 밥을 해먹을 것을 계획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비록 오늘 먹은 양은 적었지만, 그래도 만족했다.
 얼굴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입구에서부터 바닥으로 기울어진 곳에 등을 기대고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팔베개를 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3일간 그토록 고생했나 보다.
 예전 같으면 이런 상황이라도 힘들었을 텐데 역시 사람은 고생을 많이 해봐야 하나 보다.
 이곳에 와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었다.
 이때부터 나의 진정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니, 이것은 생활이 아니라, 생존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는지도 모르겠다.
 
 
 생활
 
 약 1주일이 흘렀을 때 그동안 가지고 왔던 식량 중 고추장과 약간의 쌀을 제외하고는 전부 먹어버렸다.
 그것도 틈틈이 현지 조달한 식량을 먹어왔기 때문에 1주일 동안 먹을 수 있던 것이다.
 오늘도 겨우 하루 식사로 만족할 만한 양의 식량을 현지에서 잡을 수 있었다.
 
 이곳에 자리 잡은 후 어떻게 하면 물고기를 잡을지 생각을 했다.
 물론, 처음에는 맨 손으로 내 무릎을 조금 넘을 정도의 깊이에서 시도해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 후 도구를 사용하기로 하고, 지름 5밀리미터 이하로 가늘고 탄력이 좋은 나무를 구해 잎사귀와 줄기로 묶어 입구는 크게, 그러나 점점 좁아지게 하고, 통 안은 넓게 해서 밖에서 들어오기는 좋아도 안에서 나가기는 힘들게 만들었다.
 그 속에 돌들을 넣고, 혹시 몰라 지렁이 같은 작은 벌래들을 죽여서 넣어두어 작은 물고기들을 잡았다.
 그리고 엄지손가락 두께 정도에 1.5미터 이상 되는 나무를 구해 끝을 뾰족하게 다듬었다.
 이것을 창같이 사용해 큰 고기를 잡으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문명의 시대에 살다가 온 나로서는 단 한 번도 이런 것을 접할 기회가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처음을 못했다고 해서 포기하면 될 것도 안 된다는 생각에 실패하더라도 꾸준히 노력했다.
 그 결과, 오늘 처음으로 내 창(?)이 정확히 팔뚝만 한 물고기의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그 후 ‘포기는 가능성을 0퍼센트로 만드는 지름길이다’라는 교훈을 얻었다.
 나는 일단 밥을 하기로 했다.
 3인분의 쌀 중에서 1인분 정도만 남은 마지막 쌀이다.
 냄비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불편했지만, 냄비는 만들 수 없었다.
 화덕은 두 개가 있었다.
 그동안 여유 있을 때 하나 더 만들어두었다.
 이곳에 온 지 5일 정도 지났을 때 비가 많이 왔었는데, 그때 화덕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혹시 몰라 더 만든 것이다.
 그리고 비가 온 날 물에 젖은 나무들 때문에 불을 지필 수 없자 날것으로 이것저것 주어먹었었다.
 그 후 비와도 젖지 않는 곳을 찾아 그곳에 땔감들을 모아놓았다. 2일 정도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양이었다.
 이렇게 마지막 남은 쌀로 밥을 하고, 고추장과 조개나 굴 같은 것들과 물고기를 잘 요리해 마지막 쌀밥을 먹었다.
 
 어느 날은 손에 쥐고 있는 라이터를 바라보니 가스가 3분의 1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불현듯 ‘현재 이것은 내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불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물론, 가방에는 라이터 말고도 성냥이 있다. 그러나 그건 비상시 사용하기로 마음먹었기에 최대한 라이터 없이 불을 만들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래서 또 하나 만들어둔 화덕에는 수시로 나무를 넣어 불씨가 꺼지지 않게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기본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쉽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은 화덕에 공기가 잘 통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랬더니 확실히 덜 타는 것 같았다.
 그 후 가끔 나무를 넣어주며 불씨를 유지했지만, 효율성이 떨어졌다. 비가 오면 꺼져갔고, 오랜 시간동안 자리를 비우지 못했다.
 그래도 불씨를 살리는 것의 중요성을 알기에 비가 내려도 젖지 않을 위치에 화덕을 또 하나 만들었다.
 
 어느 날 유난히 더운 한낮에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태양을 바라보다가 돋보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카메라!’
 당장 돌집으로 달려가 가방을 뒤졌다.
 “그래, 이거야!”
 분해하기에는 아까운 카메라지만 이곳에서는 필요 없는 물건이기 때문에 과감히 분해했다.
 속에서 여러 렌즈를 볼 수 있었고, 그중 가장 큰 것을 골라 돋보기같이 햇빛을 모아봤다.
 “나이스!”
 그러나 검게 탈 뿐 불이 붙지는 않았다.
 뭐, 당연한 결과라 실망하지는 않았다.
 나는 당장 모아놓은 땔감 중에서 마른 잎사귀를 가지고 와 잘게 부순 다음, 그것에 렌즈를 갖다 대 태양열을 모았다.
 카메라 렌즈여서 그런지 보통 돋보기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것 같았다.
 밝은 빛은 아주 작은 점으로 모였고 곧 나뭇잎 가루가 검게 타들어갔다.
 입으로 후후 불어주며 좀 더 하자 곧 불이 붙었다.
 “이야호!”
 그 후 나는 라이터는 가방에 집어넣었다. 물론, 부서진 카메라도 언제 사용하게 될지 몰라 잘 보관했다.
 
 하루는 낮에 잠자고 있는데 뭔가가 발목을 물었다.
 “아얏!”
 스으으.
 “배… 뱀?”
 손가락 굵기만 한 나무 같은 것이 흐느적거리며 돌집 틈 사이로 들어가 자취를 감췄다.
 “서, 설마 독사?”
 뱀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진짜 독사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난 두려움에 휩싸였다.
 물린 곳이 장딴지 쪽이었는데, 혹시 몰라 구급약품 중 소독약으로 소독을 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다리가 부어오르고 통증 심해 잠을 설쳤다.
 다음 날 뱀이 물은 곳은 점점 악화됐고, 오후에는 재대로 걷지 못했다.
 그래도 살겠다고 바다로 가 몇 개의 조개만 겨우 줍고, 냄비에 물을 떠서 화덕에 올려놨다.
 그러나 걸음이 불편해 불씨 관리를 못했더니 역시 꺼져있었다.
 그래서 라이터로 불을 지펴 조개 몇 개만 익혀 먹고 계속 누워있었다.
 시간은 지날수록 몸에 열이 나고, 온몸에 힘이 없고, 식은땀이 많이 났지만, 다행이 구토나 다른 증상은 없었다.
 약 이틀 동안 앓으며 누워있었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보니 언제 아팠냐는 듯 온몸은 상쾌하고 힘이 넘쳤다. 땀을 많이 흘려서 찝찝한 것 빼고는 몸 상태가 매우 좋았다.
 바로 물가로 달려가 수영을 즐기며 몸을 씻고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다.
 
 이번 경험이 이곳에서 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좋은 경험이라 생각된다.
 만일 그 뱀 같은 것이 인체에 치명적인 독이 있었다면 어떻게 할 것이란 말인가?
 이날부터 나는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왔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이곳은 내가 모르는 위험요소가 넘쳐났다.
 이번같이 독을 가진 뱀에게 물릴 수도 있는 것이고, 알 수 없는 병에 걸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이곳에 온 첫날밤에 들었던 거대한 생물의 발소리가 생각났다.
 ‘그래, 이곳은 내가 모르는 것들이 많은 곳이야. 미리 대비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지.’
 그 후 나는 야생동물들 중 특히 호랑이나 늑대 같은 맹수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함정을 만들었다.
 그들을 만나면 함정 쪽으로 유도해 빠트릴 생각이다.
 함정은 땅을 파서 아래에 뾰족한 나무막대기를 심어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는 가느다란 나무 막대기와 나뭇잎으로 가리고 다시 모래를 뿌려두었다. 지능이 있다면 주변과 다르게 인위적인 느낌이 드는 곳이라 생각하고 의심할 테지만, 다행히 맹수는 지능이 없다.
 이런 함정을 몇 개 만들어두었다.
 그리고 내가 빠지지 않도록 그 위치를 완벽하게 기억해뒀다.
 방 안에는 나무로 만든 창 여러 개를 놓아뒀다.
 잠 잘 때 뭔가가 덤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 주위에는 먹고 버리지 않은 통조림 캔 하나를 이용해 간단한 알람 방범 장치를 만들었다.
 나무를 세우고 줄기를 엮어놓은 후 다른 쪽에 캔을 묶어뒀다.
 맹수가 다가오면 그 줄을 건들 것이고, 그럼 끝에 묶인 캔은 움직이며 돌과 부딪치며 소리를 낼 것이다.
 과연 이것이 얼마나 소용이 있을지 모르지만,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마음 적으로도 더 여유가 생기기에 만족했다.
 이렇게 생활하다 보니, 점점 자연에 익숙해졌다.
 다행히 바닷물을 끓이면 소금을 조금씩 얻을 수 있었기에 염분 걱정은 없었다.
 단지 요리하는데 여러 조미료가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나중에 생각해보기로 했다.
 언젠가부터 식물도 먹어야 된다는 생각에 숲에 들어가 먹을 수 있을 만한 식물을 찾았다.
 그중 버섯류는 절대 손대지 않았다.
 예쁜 버섯이 독이 있고, 못생긴 버섯은 식용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로 독 있는 버섯들 중에는 못생긴 것도 많다. 그래서 죽을 수도 있기에 버섯류는 일절 먹지 않았다.
 그 외에 나물 같은 것이나 열매 같은 것들도 하나씩 먹어본 후 몸에 무리가 없는 것들을 잘 기억해뒀다가 가끔 따먹거나 캐 먹었다.
 물론, 그중 설사를 일으킨 것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잘 기억했다가 다음부터는 먹지 않았다.
 이렇게 한 종류씩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조금씩 먹어본 후 서너 가지 먹을 만한 것들을 알게 된 후 시간 날 때마다 숲에 들어가 식량을 구했다.
 그리고 먹다 남은 것은 집 한쪽에 잘 보관했다.
 
 세월은 계속 흐르고, 어느덧 물가에서 나무창으로 두 번에 한 번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을 때였다.
 오늘도 여전히 물고기 두 마리를 잡을 목적으로 사냥을 하고 있는데 폭포 왼쪽 그러니까 물가 건너편에서 뭔가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키야아앙!
 쿠어어어어!
 그리고 잠시 후 부스럭거리며 동물 같은 것이 나타났고, 그 뒤로 또 다른 뭔가가 나타났다.
 키야아악!
 쿠어어억!
 먼저 나온 놈이 싸우려는지 뒤에 나온 놈을 향해 몸을 돌이켰다. 그러나 선 듯 덤비지는 못하고 기회가 생기면 도망가려는지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저, 저게 뭐지?’
 그것들 중 먼저 나온 것은 고양이같이 생겼지만 덩치는 송아지만한 크기의 무서운 맹수 같았고, 뒤에 나온 것은 원숭이 같았지만, 털이 없었다. 그리고 약 2미터 정도의 덩치에 두께가 내 허벅지만 한 나무를 뿌리 근처에서 뜯어내 몽둥이같이 들고 있었는데, 맹수라기보단 괴물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둘은 전투를 하려는지 서로 노려보며 자세를 잡았다.
 나는 뭔가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끼며 재빨리 물속으로 몸을 숨기고, 고개만 내밀어 바라보며 생각했다.
 ‘송아지만 한 고양이와 원숭이같이 생겼지만, 털 없는 저 존재는 뭐란 말인가?’
 원숭이 같은 놈이 굽혔던 허리를 쭉 피며 재빠르게 앞으로 도약을 했다.
 뒷다리가 근육에 꿈틀거리는 것이 미스터 코리아에서 우승한 남자들과 족히 비교가 되었다. 덩치는 일반 성인 두 배 정도 되어 보였고, 허리를 펴자 키는 3미터가 조금 못 되는 것 같았다.
 괴물이 고양이 같은 맹수에게 도약한 타이밍은 기가 막힐 정도로 정확했다.
 마침 맹수는 강을 건너려는지 몸을 돌이킬 때 그 몬스터도 움직인 것이다.
 맹수는 뒤로 돌아야 되니 타이밍이 늦어지고 속도가 나지 않았다.
 물론 0.5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안에 몬스터는 몽둥이를 휘둘러 몸을 돌린 맹수의 엉덩이를 쳐냈다.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몸놀림이었다.
 끼야아아옹!
 괴물은 한 번 더 몸을 숙이더니 고함을 지르며 옆으로 날아간 맹수 쪽으로 도약을 했다.
 한 번에 4미터 정도 뛰는 몬스터는 단번에 맹수에게 다가가 넘어져 버둥거리는 맹수를 손 같은 앞발로 들고 두 발로 일어섰다.
 맹수의 덩치도 작은 것이 아니었지만 괴물은 어린 아이를 들어 올리듯 아주 가볍게 들었다.
 그리고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후 땅으로 패대기쳐 버렸다. 머리부터 땅에 떨어진 맹수는 즉사했다.
 두개골이 깨졌는지 피가 흘러내렸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온몸을 덜덜 떨며 모든 장면을 지켜봤다.
 약 5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벌어진 장면이었다.
 그 몬스터는 기쁜지 크륵크륵거리며 그것을 어깨에 메고 두 발로 걸어 숲으로 들어가려는지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 잠깐 내 쪽을 바라봤다.
 움찔!
 순간 난 그 몬스터와 눈빛이 마주친 착각을 일으켰다.
 몸이 경직되며 깊은 공포에 눌렸다.
 다행히 괴물은 고개를 돌려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휴우-.”
 난 한숨을 쉬며 물가에서 나왔다. 그러다가 다시 돌아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물가로 들어가 창을 찔러 물고기를 잡았다.
 다른 때보다 잘 맞지 않았지만, 저녁에 다시 오기 싫어 4마리를 잡았다.
 이날 집에서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운이 좋았던 것이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첫날 만난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를 느낀 후, 온몸에 전율이 일 정도로 위험한 것들은 오늘 처음 보았다.
 야생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단지 등산을 좋아하는 고2의 18세 남학생이 이제까지 우연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존재를 알 수 없는 괴물의 눈빛을 떠올렸다.
 마치 나에게 ‘오늘은 식량이 충분하니 그냥 가마. 다음번에는 널 사냥하겠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저 멀리 바다 넘어 떨어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것을 느끼며 하루를 마감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오랜만에 눈이 떠지지 않았다. 역시 눈물이 굳어 눈꺼풀이 붙은 것이다.
 난 어젯밤 공포에 떨며 잠잤던 것이 생각났다. 그 와중에 울었나 보다.
 그래도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양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지만, 환해지기 시작했다.
 고개만 내밀어 주변을 살폈다.
 평상시와 다른 것은 없었다.
 나는 집에서 나와 간단히 체조를 하며 몸을 풀고 함정을 손봤다.
 집 근처의 바위틈에 만들어 높은 함정은 더 크게 할 수 없지만, 모래사장에 만들어 놓은 것들은 더 크게 하기 위해 나무막대기로 큰 원을 그렸다.
 ‘어제의 괴물이 꽤 컸으니, 이 정도는 되어야겠지?’
 이후 아침까지 거르며 함정을 더 만들었다. 그리고 끝을 뾰족하게 만든 나무막대기를 더 만들었다. 손가락 굵기의 작은 것에서부터 팔뚝만한 것까지 종류도 다양하게 했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을 했다.
 ‘혹시 나무를 깎아 낚시 바늘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괴물 대비가 먼저라 생각하고 마저 나무를 깎았다.
 검지만한 맥가이버 칼로 깎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이렇게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 점심 식사를 한 후 낚시 바늘을 만들기 위해 단단한 나무를 찾으러 숲에 들어갔다가 곧 나왔다.
 ‘그러고 보니 낚싯줄도 없잖아? 그리고 고기라면 창으로 잡을 수 있는데 굳이 바다에서 낚시를 할 필요가 있을까?’
 집으로 돌아와 운동을 시작했다.
 어떻게 운동을 할지 몰라 나무를 깎아 만든 창을 들어 찌르기 연습을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라곤 이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운으로 살아남았다면 이제부턴 미리 준비해 실력으로 살아남겠다! 기회도 준비된 자가 먼저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약 60일째 하루가 저물어갔다.
 
 @
 
 “합!”
 부웅붕.
 “합!”
 부웅부우웅.
 처음에는 찌르기만 연습하던 나는 이제는 봉술을 연습하듯 옆으로, 아래로, 대각선으로 휘둘렀다. 그러다가 순간 힘을 모아 앞으로 다시 찌르기를 했다.
 팔뚝의 3분의 2정도 되는 끝이 뾰족한 나무 막대기는 1.5미터 정도 되었는데, 양손으로 잡아 휘두르기에도 좋았다.
 그러나 봉이라는 것이 살상력은 적어, 결정타는 역시 찌르기라 생각했다.
 비록 나무라지만 끝으로 찌르면 아무리 두꺼운 피부라도 뼈만 아니라면 뚫을 수 있을 것이다. 저번 괴물같이 아무런 방어구도 없는 맨 몸이라면 충분히 치명타를 날릴 수 있을 것이다.
 “아압! 햡! 얍!”
 쿵, 촥!
 “하압!”
 마지막은 한 발 앞으로 강하게 밟으며 온몸의 힘을 실어 앞으로 찌르기를 했다.
 진각!
 언젠가 영화에서 발을 강하게 구르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진각이라고 하는데 체중과 무게 이동을 이용해 힘을 배가시키는 방법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배운 것도 아니고, 정확한 방법을 알 수는 없었기에 그저 그 원리만 응용해 결정타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 떨어지는 물건이 땅에 부딪치면 순간 무게가 올라간다. 이건 저울에 올라간 사람이 앉았다가 일어서면 눈금이 올라갔다가 제자리로 오는 것과 같은 이치. 그리고 그 순간이 찌르는 힘은 가장 클 것이다. 이건 몸무게가 많은 사람의 펀치가 더 강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권투 같은 스포츠에서 체급이 나눠지지 않던가!’
 체계적으로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술을 배운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폼은 허접할지 몰라도 덩치가 큰 녀석을 상대할 때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괴물은 한 달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덕분에 확실히 운동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하루라도 운동을 안 하면 온몸이 찌뿌듯하기까지 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식량을 구하는 데 거의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일에 익숙해졌다.
 갯벌에서는 어떻게 어디를 뒤져야 조개가 잘 나오는지 알았고, 게나 다른 먹거리들도 어디에 숨어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20분 정도 움직이면 하루 먹을 양을 잡을 수 있었다.
 활동 범위도 넓어졌다.
 숲 속에도 10분 거리까지 들어갔다 나왔고, 물줄기도 폭포 너머까지 올라가봤다.
 그곳에는 넓게만 느껴지는 우거진 숲과 그 가운데를 넓은 물줄기가 가르고 있었다.
 봉술을 연습하게 된 후로 물고기 잡는 실력도 늘어 대부분 한 번에 잡을 정도가 되었다.
 숲에서 구할 식물 역시 주 서식지를 발견한 후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오히려 가끔 동물들이 눈에 띄어서 괴물을 잡은 후 사냥도 해볼까 생각 중이다.
 
 다음 날.
 어김없이 운동 후에 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쉬고 있었다.
 부직!
 크어-어어어어!
 움찔!
 난 재빨리 일어나 소리 난 쪽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 소리는 집이 있는 바위 뒤쪽에서 들렸다.
 평소 연습으로 사용했던 봉을 들고 조심조심 걸어갔다.
 쿵쿵, 쿵쿵!
 뭔가 덩치 큰 놈이 뛰어가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재빨리 바위 끝까지 가 고개만 살짝 내밀어 바라봤다.
 ‘음, 그놈이 틀림없군!’
 그날 공포에 떨게 했던 괴물이 저 멀리 발을 절면서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의아한 마음에 주변을 살펴보니, 뭔가가 부자연스러운 것을 발견했다.
 “하하, 하하하!”
 그건 내가 만들어놓은 여러 함정 중 하나였는데, 그것이 부서져있었다.
 나는 그리로 가서 살펴봤다.
 함정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놓은 덮개는 완전히 부서졌고, 그 아래 박아놓은 나무들이 이리저리 흩어져있었다.
 어떤 나무는 살짝 피가 묻어있는 것이, 그놈이 창에 찔려 발을 다친 것 같았다.
 솔직히 이런 작은 함정에 걸릴 줄은 몰랐다.
 특히나 함정 중 가장 작은 함정이었다. 폭 40센티미터 정도에 깊이는 V자 모양으로 70센티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놈의 키와 덩치를 생각할 때 발도 꽤 클 것인데, 정확히 함정을 밟았는지 저렇게 작은 곳에 빠진 것이다.
 또한 그놈 나름대로 머리를 쓴다고 내 집을 살핀 후 조용히 바짝 붙어서 뒤돌아 오다가 걸린 것 같다.
 나는 웃음을 멈추고 심각하게 생각했다.
 ‘그놈이 운이 나빠 함정에 걸려서 다행이지, 이게 아니었다면 당한 것은 그놈이 아니라 나였을 것이다.’
 집 앞에 있는 모래사장 겸 운동장으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그놈이 도망간 것도 운이 좋았군, 그대로 덤볐더라도 내가 당했을 텐데…….’
 순간 등짝이 오싹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내가 훈련에만 너무 힘썼구나!’
 절뚝거리며 도망간 것으로 보아 다리를 심하게 다친 것 같았다. 그러니 저 상처가 나은 후 다시 올 것이다.
 ‘이 기회에 이곳을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떠날까?’
 그러나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조금 전에도 운이 좋아 그놈을 좇았고, 이제까지도 운이 좋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운이 좋을까?
 아니, 아무리 운이 좋더라도 언젠가는 넘어지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내 힘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도 계속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함정을 손봤다.
 ‘그놈이 몰래 뒤로 오려는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지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다음에는 같은 함정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또 다른 함정을 만들 생각을 했지만, 이곳에서 내가 만들 수 있는 다른 함정이 생각나지 않았다.
 재료도 없을 뿐 아니라, 경험도, 지식도 없었다.
 그래서 몇 개의 함정을 더 만들고 싸움을 하게 되면 도망가며 함정으로 유인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저번에 만들어놓은 경비 장치가 떠올라 그쪽으로 가봤다.
 깡통이 하나밖에 없어서 폭포와 가까운 왼쪽에 설치했는데, 그놈은 오른쪽으로 돌아서 온 것 같았다.
 ‘과연 그놈이 걸릴 것인가?’
 그러나 답은 ‘NO’였다.
 이제는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조심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무껍질을 벗겨 만든 두꺼운 줄은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실이면 모를까, 아무리 그놈의 시력이 사람보다 나쁘다 할지라도 지능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됐다.
 나는 당장 집으로 들어가 바닥에 깔아놓은 옷들을 살폈다.
 거기에 있는 제봉 실을 뜯어도 보고, 칼로 옷을 찢어 옷감을 한 올 한 올 뽑아보기도 했다.
 ‘그래, 이것을 연결해서 만들어보자!’
 육체적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줄 함정을 만들 아이디어는 없다. 그러니 경보장치라도 제대로 걸리게 해 최소한 오늘같이 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맞닥트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실을 뽑아 연결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올 한 올 연결하면 얇아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좋았지만, 너무 약해서 잘 끊어졌다. 그래서 두세 겹을 겹친 후 연결했다. 그리고 집이 있는 바위를 중심으로 반경 10미터 정도 떨어져 반원을 그리듯 실을 연결했다.
 3일 후, 실을 이용한 알람 장치를 완성할 수 있었다.
 띄엄띄엄 나무막대기가 꽂혀있지만, 그놈은 저것의 용도를 모를 것이다.
 설사 뭔가 이상해서 부숴버릴지라도 한쪽에 묶여있는 캔이 땅에 떨어서 소리가 날 것이다.
 오로지 피할 방법은 실을 넘어가거나 크게 돌아 앞쪽으로 오는 방법뿐이다.
 이것을 만드느라 운동을 별로 하지 못한 나는 몸을 풀었다. 그리고 여유 있게 쉬었다.
 다음 날 물고기 내장을 도려내고 나무에 꽂아 불에 굽고 있는데 캔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텡! 카강!
 ‘왔다!’
 나는 긴장한 몸을 바로잡으며 집으로 들어가 그놈이 오길 기다렸다.
 경험이 없어 온몸이 덜덜 떨렸다. 꽉 잡은 손도 지금 잘 잡고 있는지 잘못 잡고 있는지 감이 오지 않아 눈으로 몇 번이고 확인했다.
 “…….”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래도 그놈이 머리를 써서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다.
 약 5분이 지났나?
 슬슬 긴장이 풀렸다.
 살짝 머리만 내밀고 좌우를 살폈다.
 아무것도 안 보였다.
 조금 기다린 후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자 밖으로 나와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바위 끝까지 이동한 후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저 멀리에는 땅에 떨어진 깡통만 있었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집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나 그놈은 보이지 않았다.
 알람 장치를 자세히 살폈다.
 중간 부분의 끈이 끊겨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부분은 옷감에서 뽑은 실 두 가닥으로 연결되어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약해서 스스로 끊어졌나?’
 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평소보다 더 조일 것이다. 그래서 긴 실 중 가장 약한 부분이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끊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래, 절뚝거릴 정도의 상처를 입은 놈이 이렇게 빨리 올 리가 없지.’
 “휴우-.”
 긴장했던 몸이 풀리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조심조심 주변을 살피며 옷을 벗어 물가에 들어가 몸을 담갔다.
 다시 나와 몸을 털고 옷가지를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알몸이었지만 혼자였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몸의 물기를 다 말린 후 옷을 입으려는데 옷이 상당히 지저분하고 여기저기 터져서 옷이라는 것을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훗! 걸레가 다 됐군.’
 집 바닥에 깔아놓은 긴팔을 집어 갈아입고, 이것은 냇가에 가서 빨은 후 바닥에 깔았다.
 이렇게 옷을 갈아입자 색다른 기분이다.
 “하하! 3달 하고도 10일 만에 갈아입는 옷인가? 세계 신기록이군, 하하하!”
 괜스레 웃음이 났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절대 해볼 수 없는 유쾌한 일이었다.
 밤이 찾아왔다.
 여느 때와 같이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러고 보니 그놈이 사냥할 때면 으레 동물 울음소리가 들릴 텐데, 저번에 송아지만 한 고양이 맹수를 잡을 때 빼고는 들어본 적이 없군.’
 이 근처에서 다람쥐 같은 작은 동물은 보았지만, 그놈이 사냥할 만한 큰 동물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놈의 활동 반경이 상당히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 맹수를 사냥한 후 한 달이 넘도록 이곳에 다시 오지 않은 것도 그만큼 멀리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번에도 한 달이 넘도록 오지 않을 가능성이 많겠군.’
 다음 날부터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왔다.
 언젠가부터 냇가의 물고기가 별로 없어 폭포 위로 올라와 고기를 잡았다.
 폭포 양 옆에는 절벽이 있었는데, 대부분 바위들로 이루어졌다. 높이가 5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아 타고 올라갈 수 있을 정도였다.
 절벽은 양쪽 방향으로 조금씩 경사가 지며 40미터까지 이어졌다. 즉, 절벽의 양 폭은 거의 100미터의 길이였다. 그래서 내 집이 있는 바위로 돌아오려면 꽤 먼 거리를 돌아야 했다.
 생각 같아서는 폭포에서 다이빙을 해서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5미터의 다이빙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약 172센티미터 정도 되는 내 키와 합하여 7미터가량의 높이에서 바라본 폭포 줄기는 고소공포증이 없는 자라 할지라도 아찔한 느낌을 줄 것이다.
 경보기의 줄이 끊어져 다시 손본 후 이틀이 지났을 무렵, 이제는 완전히 주식이 되어버린 물고기를 잡기 위해 폭포 위에서 손에 창을 들고 물속을 살폈다.
 폭포 근처는 물살이 빠르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거리를 물줄기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적당한 위치까지 이동하자 난 움직임을 멈추고 물속을 살폈다.
 처음 내 움직임 때문에 도망갔던 물고기들이 다시 돌아왔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한 사냥이었기 때문에 내 그림자는 폭포 쪽을 향해 길게 늘어져있었다.
 태양은 이제 막 숲에서 올라와 붉은 얼굴을 들어 아침 노을을 만들고 있었다.
 평온함이 이런 것인가?
 마치 무아지경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소리는 졸졸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왔고, 저 멀리서는 폭포 소리가 ‘쏴아’하며 멀어져만 갔다. 구름은 바람에 날려 떠밀려갔고, 물고기들은 자기가 마치 양반이라도 된 듯 느릿느릿 움직였다.
 이 모든 것이 한순간 느껴졌다.
 그리고 하나의 그림자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건 마치 내 그림자가 늘어진 모습과 비슷했다.
 이것을 발견한 것이 신호인가?
 난 재빨리 손에 든 창을 던졌다.
 촤아!
 그러나 창은 물고기를 향해 던진 것이 아니라, 그림자의 실체가 있는 쪽으로 던졌다.
 그리고 재빨리 창 던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 날아가는 창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으로 넘어지듯 한쪽 무릎을 굽어 창을 피한 그놈이 보였다.
 순간 난 생각할 것도 없이 폭포 쪽으로 뛰었다.
 첨벙첨벙, 탁탁탁!
 물줄기는 내 무릎을 조금 넘기 때문에 발을 크게 놀려 육지로 재빨리 올라와 무조건 달렸다.
 뒤를 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앞만 바라봤다.
 공포라는 것이 내 뒤통수에 달라붙어 나를 따라왔다.
 크어어어엉!
 다행히 그놈은 여유를 부리는지 크게 울부짖을 뿐이었다.
 그러나 공기를 타고 다가온 울부짖음은 내 마음을 진탕치기에 충분했다.
 공포가 다가와 두 다리를 붙잡은 것 같았다.
 아무리 빨리 뛰어도 느리게 뛰는 것 같았다.
 쿵쿵쿵!
 그놈이 달리기 시작했나 보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땅이 진동하는 것 같았다.
 겨우 폭포에 다가서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폭포에 뛰어들었다.
 아니, 용기가 아니라,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어서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첨벙! 푸화!
 엄청난 충격을 받으며 물속에 들어간 나는 온몸을 등 뒤로 쫙 폈다.
 내 몸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들어가던 힘을 받아 앞으로 나가게 되었다.
 푸화!
 “하악, 학!”
 깊이 숨을 쉬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재빨리 물에서 나와 집으로 뛰었다.
 처엄벙! 푸화아!
 나를 쫓던 그놈도 뛰어내렸는지 거대한 바위 같은 것이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이 정도면 가능성이 있어!’
 난 이미 물 위로 올라와있었다. 그놈은 이제 막 들어갔으니, 집까지 충분히 따라잡히지 않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옷이 물에 젖어 뛰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런 걸 느낄 새도 없이 무조건 뛰었다.
 곧 집이 있는 바위에 다가왔고, 함정을 피하며 바위 앞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가 얼떨결에 잠깐 뒤를 바라봤다.
 움찔!
 그놈이 바로 뒤에 있어서 놀랐다.
 그러나 다행히 그놈이 함정을 무서워해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그놈은 손에 들고 있는 내 허벅지만 한 나무를 들어 바닥을 찍었다.
 쾅! 광!
 부직!
 가장 앞에 있던 함정이 파괴됐다.
 그놈의 얼굴이 피식 웃는 것 같은 모습을 마지막으로 나는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세상에! 나무를 가지고 뛰어내렸나? 그래도 함정이 있어 다행이다. 아마 없었더라면 집에 들어올 시간은 없었으리라.’
 난 미리 준비해놓은 여러 개의 나무 창 중 가장 굵은 것을 골라 양손으로 잡았다.
 좁은 집이었기 때문에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었다.
 쾅! 쾅!
 계속 나무로 땅을 치며 전진해 오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정신을 다스렸다.
 ‘그래,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 호랑이 굴에…….’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떨리는 손을 가슴에 안고 눈도 감았다 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이제는 입으로 말했다.
 긴장과 공포가 자꾸 몸을 죄어왔다.
 그때 그놈이 앞으로 나타났다.
 “으악!”
 난 놀라며 경직된 몸을 뒤로 제겼다.
 사람이 놀라면 자동으로 행해지는 행동이다.
 크어어어어어어엉!
 그놈이 다시 고함을 지르더니 거대한 나무를 내 쪽으로 찔렀다.
 그러나 집의 입구는 겨우 50센티미터 정도, 그 안은 반 평 남짓이라지만, 내 몸이 누울 수 있을 정도의 넓이는 되었다.
 덩치나 키, 힘, 순발력 등 모든 것에서 떨어지는 내가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지리적 이점이다.
 역시 생각대로 그놈이 나를 노리고 찌르는 나무의 행동 범위는 너무 작았다.
 특히 휘두르는 것이 편해 보이는 나무라면 더욱 더 내 쪽이 유리했다.
 ‘그래, 내건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찌르기 전용이지!’
 그놈이 한 번 찌른 후 다시 찌르기 위해 나무를 뒤로 들었을 때 재빨리 창을 찔렀다.
 아쉽게도 집의 뒤쪽이 깊지 않아 창의 길이는 1미터도 채 안 됐다. 그런데 그놈의 나무 길이는 내 창보다 두 배는 되어 보여서 리치가 짧은 내 쪽이 불리했다.
 역시 내가 찌른 창에 그놈은 ‘움찔’하기만 할 뿐, 맞지는 않았다.
 ‘저놈을 가까이 유인해야 된다!’
 저놈도 몇 번 찔러 나를 공격했지만, 난 쉽게 피할 수 있었다.
 ‘큭! 이럴 줄 알았으면 집 앞에 함정을 만들어 가까이 다가오게 하는 것이었는데!’
 입구에서 2미터 정도 떨어져 거대한 함정을 만들면, 그놈은 함정 앞에 있거나 뒤에 있어야 하는데, 뒤에 있으면 공격을 못할 테니 앞쪽으로 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짧은 내 창으로도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
 크어어어어어!
 그놈은 잘 맞지 않는 내가 짜증났는지 다시 고함을 질렀다.
 순간, 나도 모르게 창을 던졌다.
 촥! 팍!
 그놈은 나무를 들지 않는 왼손으로 막았다. 대신 그놈의 팔뚝에는 내가 던진 창이 살짝 박힌 후 땅으로 떨어졌다.
 크아아아아앙!
 그놈은 나를 노려보며 다시 고함을 질렀다.
 나는 흔들리는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그놈이 다시 나를 찔러왔다.
 나는 다시 피하고 그놈의 공격을 보기 위해 몸을 원 위치시키려 했다.
 움찔!
 그러나 그놈의 공격은 페인트였는지, 공격을 회수하더니 다시 찔러왔다.
 퍽!
 “으악!”
 다행히 왼쪽 어깨에 가격당하지 전 몸을 뒤로 빼 충격을 감소시켰지만, 그래도 그 힘은 엄청난 것이었다.
 난 뒤로 넘어지며 양손을 뒤로 짚었다.
 “으윽!”
 왼쪽 어깨에 상당한 고통이 따랐다. 순간, 또다시 날 공격하려는 것 같아 아예 바닥에 누워버렸다.
 쿵!
 나무의 끝이 집 반대쪽 벽에 부딪치며 울렸다.
 그놈이 아예 작정하고 깊이 찌른 것 같았다. 그러나 집의 높이는 3미터 약간 넘는다. 그리고 그놈의 키 역시 3미터 정도다.
 그래서 바닥에 누운 내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새끼발을 집거나 점프를 해서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런 위치 때문에 찌르기의 힘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때 나는 양손에 느껴지는 흙을 생각했다.
 집의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 깔아놓은 흙이었다.
 즉시 오른손에 나무창을 집고, 왼손에 흙을 쥐었다.
 그놈이 나를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와 나무를 뺄 때 나도 재빨리 일어나 왼쪽 어깨의 아픔을 참고 흙을 뿌렸다.
 촥!
 그놈은 나를 확인하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점프를 한 후였는지, 공중에서 어정쩡한 모습으로 흙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오른손에 들고 있던 창을 힘껏 내질렀다.
 이때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창의 굵기도 가장 작은 것으로, 겨우 손가락 굵기였지만, 이런 걸 의식하지도 못하고 재빨리 그놈의 눈을 향해 찔렀다.
 땅에 착지한 그놈은 눈에 흙이 들어가 손을 들어 눈을 만지려는 그때 정확히 그놈의 왼쪽 눈을 찔렀다.
 푹!
 손가락 굵기여서 그놈의 눈에 깊이 파고 들어가기에는 더 좋았으리라!
 크아아아아앙!
 그놈은 양손으로 아픈 눈을 붙잡고 상체를 뒤로 젖히며 뒷걸음쳤다. 그리곤 고개를 뒤로 들고 포효했다. 아니, 포효가 아니라, 고통의 울부짖음이었으리라.
 나는 또다시 손을 뻗어 창을 들었다.
 어떤 것이 잡히든 상관하지 않았다.
 오로지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창을 들어 위에서 그놈의 명치를 향해 찍었다.
 푸욱!
 성공이다!
 나무는 가슴을 보호하는 뼈를 피해 명치 부분에 대각선으로 박혔다.
 그놈은 나무 창을 붙잡고 뒷걸음쳤다.
 나는 남은 것 중에서 가장 굵은 것을 집고 집에서 내려왔다.
 위에서 어정쩡한 자세로는 제대로 창에 힘을 실을 수 없었다.
 그놈은 눈과 명치에서 오는 아픔이 큰지 포효하며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었다.
 크어어허! 크어어허! 크어어헉!
 나는 그놈의 헐떡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세 걸음을 도약하듯 크게 걸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걸음은 땅을 찍어 누르듯 강하게 밟았다.
 내 몸무게가 최고조에 달한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오른손에 들린 창을 그놈의 배를 향해 꽂았다.
 턱, 푸욱!
 이놈 역시 동물이기 때문에 척추와 갈비뼈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뼈가 없는 부분에 나무를 박아 넣었다.
 크륵, 르르르륵!
 역시 나무를 뾰족하게 한 것으로도 피부를 뚫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놈의 근육이 상당했기에 많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실제 사람도 칼에 찔리면 근육이 뭉치며 그것을 조인다고 한다. 그래서 운동을 많이 한 사람은 칼 맞아도 깊게 안 들어간다고 하지 않던가? 하물며 두꺼운 나무라면 더할 것이다.
 그래도 충분히 그놈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것은 확실하다.
 지름이 7, 8센티미터 정도 되는 두꺼운 나무가 배에 꽂혔으니, 그 어떤 동물이 멀쩡할 수 있을까? 아마 속의 내장들이 뒤죽박죽이 되었을 것이다.
 그놈은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뒷걸음치는 듯하다가 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처가 상처인지라 재빠른 몸놀림은 아니었다.
 나는 쫓아가서 죽여야 된다는 생각에 집에서 던진 창을 집어 들고 쫓아갔다.
 그놈은 도망가다가 가슴과 배에 꽂힌 창을 뽑아 던진 것 같았다. 아마 도망가는데 상당히 거치적거렸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게 그놈의 실수였다.
 배에 꽂힌 것의 두께가 내 손목만 한데, 그것이 빠졌으니 배에선 창자들이 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가슴에서도 피가 흘러내렸다.
 그놈은 양손으로 배와 가슴을 누르며 도망갔지만, 피는 계속 흘러내렸다.
 나는 그놈의 기력이 빠지길 기다린다는 생각으로 계속 쫓아가기만 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저놈은 스스로 쓰러질 것 같았다.
 쿵!
 역시나 시간이 좀 지나자 그놈은 오른쪽 무릎을 땅에 찍으며 하체를 낮췄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놈에게 다가가 창으로 그의 옆구리를 찍었다.
 푹!
 크륵, 쿠우우우우!
 그놈의 입에서는 붉은색 거품이 나오다가 피가 흘러내렸다.
 푹!
 푸욱!
 나는 여러 번 그놈을 찔렀다.
 그놈은 이제 고함도 지르지 않고 뒤로 넘어졌다.
 쿵!
 “…하, 하아하아, 하아악, 하아악! 하아악!”
 이제야 내 숨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덜덜덜.
 온몸이 떨리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윽!”
 그놈이 쓰러지는 것을 본 후에야 긴장이 풀렸는지 왼쪽 어깨의 고통이 찾아와 나를 짓눌렀다.
 온몸에 힘이 빠지며 피로가 몰려왔다.
 나도 저놈같이 뒤로 눕고 싶었다. 그러나 저런 모습은 사양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꽤 먼 곳까지 온 것 같다.
 천천히 자리에 앉아 하늘을 바라봤다.
 넓은 하늘이 한눈에 가득 들어왔다.
 ‘이제 보니 하늘 가운데만 구름 한 점 없잖아? 하늘이 뚫린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이대로 가만히 있고 싶었다.
 땅에서 시원한 기운이 올라와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천천히 뒤로 누웠다.
 온몸으로 퍼지는 시원한 느낌 그리고 평온함.
 마치 이곳으로 이동될 때 느꼈던 그 따뜻하고도 포근한 느낌이었다.
 가만히, 아주 조용히, 이 모든 것을 놓치기 싫은 나는 절대 그 어느 존재도 알지 못하도록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모든 것의 느낌은 그대로 살아나 마치 눈을 뜬 것 같았다.
 ‘아! 이대로 영원히 있고 싶구나…….’
 
 @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 채, 가만히 눈을 떴다.
 이제는 제법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하늘을 바라봤다.
 ‘아! 저 멀리 먹구름이 보이는구나.’
 구름은 대체로 낮게 떠있었고, 저 멀리 바다 넘어 어둠을 몰고 오는 구름이 보였다.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났기에 하늘이 이렇게 변했을까?’
 괴물과 싸울 때엔 구름이 제법 많긴 했지만, 지금처럼 비올 것 같지는 않았다.
 난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 가방을 뒤졌다.
 시계를 바라보니 9시 1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에 텔레포트 시 잃어버린 5시간을 더하면 2시 12분이다.
 ‘내가 아침 식사 준비하다가 그놈과 싸웠으니, 대략 6시간 정도를 누워있었나? 흠, 깜박 잠이 들었나 보군.’
 그러나 곧 뭔가가 이상함을 알았다.
 2시라면 태양이 머리 위에 떠있어야 하지 않나?
 바로 밖으로 나와 태양을 찾았다.
 동쪽 숲 넘어 구름 때문에 보이지 않았지만, 구름 뒤로 밝은 곳이 보였다.
 ‘저 위치라면 9시 정도쯤 되었겠는걸.’
 괴물과 싸울 때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폭포수 위로 올라가 아침노을을 맞으며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때 약 8시쯤이었을 것이다. 그럼 대략 1시간 정도 누워있었다는 계산이다.
 시계 밥이 떨어졌나? 아니면 어딘가 고장 난 것인가?
 그런데 온몸이 개운한 것이 하루 푹 쉰 것 같은데?
 나는 제자리에서 점프를 해봤다.
 몸이 상당히 가벼웠다.
 방금까지 초긴장 상태에서 싸움으로 모든 힘을 소진한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 이곳에 온 후 최상의 컨디션을 느꼈다.
 ‘내가 잡은 그놈 좀 구경하러 가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놈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대략 집에서 8분 정도의 거리였다.
 그놈이 보이자 가까이 다가가 살폈다.
 눈과 명치, 배와 옆구리에 상처가 보였다. 그놈의 피부는 갈색으로 마치 흑인과 황인의 중간쯤 되는 색이었고, 상처에서 피가 배어나와 굳어져 끔찍할 만하건만, 오히려 피부색과 비슷해 구역질 날 정도는 아니었다.
 ‘일반 동물이라면 가죽을 얻을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이놈을 묻어줘야 하나?’
 잠깐 그놈을 끌어봤다. 그러나 최소 200킬로그램 이상 나가는 이놈을 끌고 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집에서도 먼 거리니 그냥 놔두자. 알아서 썩거나 다른 동물이 와서 먹겠지.’
 꼬르르륵.
 ‘아! 아직 아침을 안 먹었구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유 있는 걸음으로 집으로 들어가 나무창을 들고 물가로 향했다.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여유와 힘이 넘쳐나는 것이 앞으로 모든 일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그놈을 스스로의 힘으로 잡았기에 이런 기분이 드나 보다.
 “하하, 하하하!”
 나는 소리 내며 웃었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더욱 더 크게 웃었다.
 ‘그래, 할 수 있다. 이번같이 모든 일에 준비를 하고 생각을 하면 할 수 있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지? 노력 없이는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고, 준비가 되어있다면 할 수 없는 것도 할 수 있다!’
 그놈의 전투력과 내 전투력을 비교하면 내가 한참 못 미친다.
 그럼에도 나는 그놈을 이겼다.
 그건 내가 싸움을 잘해서가 아니다. 미리미리 준비해놨기 때문이다.
 그놈에게는 없고 나에게 있는 것은 오직 지혜밖에 없었다.
 지능 있는 자는 모사를 꾸미고 승리는 지혜 있는 자가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 준비한 자가 기회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하하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대견하기만 했다.
 그런 무지막지한 놈을 이기다니!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웅장한 폭포도 이제는 작게만 느껴졌고, 우거진 숲도 얼마든지 속으로 들어가 저 멀리까지 탐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폭포수를 바라봤다.
 ‘내가 저곳에서 뛰어내렸단 말이지? 그래,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어.’
 그땐 오로지 빨리 내려가야 된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폭포에 올라가 바로 앞에 서서 아래를 바라봤다.
 아찔한 높이같이 보였지만, 이미 한 번 뛰어봤기 때문에 예전같이 두려움이나 공포감은 없었다.
 ‘그래, 처음이 어려운 것이지, 한 번 해보고 나면 쉬운 것이지.’
 나는 손을 위로 올려 손바닥을 붙이고 뛰어내렸다.
 슈우우, 풍덩!
 귓속에는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나며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몸을 쫙 피며 등 뒤로 더 젖이자 자연스럽게 물살을 가르며 위로 올라갔다.
 푸화!
 “하압! 후우~ 하압! 후우~.”
 물 위로 올라와 깊게 숨을 쉬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위로 올려 떨어지는 물살을 바라봤다.
 “…….”
 멀리 있는 물들이 점점 가까워지며 속도를 더해갔다.
 푸아아아.
 공기 자체를 진동시키며 가슴을 울리는 소리를 내며 거침없이 떨어졌다.
 그 어떤 것도 훼방하지 못할 기세였다. 그중에 나도 포함되어 저 위로부터 뛰어내렸다.
 “그래! 할 수 있다!”
 힘차게 주먹을 꽉 쥐며 소리 질렀다.
 이곳에 와서 생활한 지 약 3개월.
 어떻게 해서든 살아가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사람이라곤 나 혼자밖에 없는 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사회라는 곳에서 적응되어진 몸을 이끌고 이 험난한 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할 수 있음을 알았다.
 이날 나는 정말 오랜만에 잠자는 시간에 눈물을 흘렸다.
 첫 날 해가 졌을 때 바다와 숲 사이에 혼자 버려져 어둠에 먹혀 두려웠을 때 얼마나 울었던가!
 먹을 것, 마실 것도 없어서 걷고 또 걷지 않았던가!
 질병에 걸릴까 봐 두려움에 떨었고, 외로움과 싸우며 어떻게 해서든 먹을 것을 구하려고 발버둥치지 않았던가!
 매일 밤이 두려워 해가 떨어지면 바로 잠을 잤고, 어머니, 아버지, 동생과 학교 친구들이 그리워 있지도 않은 소매로 눈가를 닦으며 쓸쓸히 하늘이나 바다나 저 폭포나 숲을 바라보며 그들을 그리지 않았던가!
 매일 아침 일어나면 밤새 흘린 눈물이 굳어 눈이 떠지지 않았던 적이 몇 번이던가!
 “흑, 흐흐흐흑.”
 눈물을 흘린 적은 많다. 그러나 이렇게 소리 내며 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흐으으으… 흐으으으으.”
 오늘 하루만 울고 내일부턴 절대 울지 않을 것이다.
 오늘밤은 예전의 ‘나’를 졸업하는 마지막 밤이다. 내일부터는 새로운 ‘나’가 될 것이기 때문에 실컷 울어나 보자, 울어나 보자…….
 “흐으으으… 흐으으으으— 어어엉— 으어엉!”
 그동안 쌓아놓은 모든 설움이 폭발했다.
 
 울음은 영혼이 되어 넓은 바다와 깊은 숲에까지 메아리쳐 멀리, 아주 멀리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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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부터 내 활동 반경은 더 넓어졌다.
 이곳의 최고 맹수 아니, 괴물이라 생각되는 그놈을 이긴 후부터 이곳의 주인은 내가 된 것이다.
 물론, 다른 맹수를 내가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곳은 그놈의 영역이었는지, 다른 맹수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숲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 보기도 했고, 여러 가지 과일나무와 먹을 만한 나물도 찾을 수 있었다.
 가끔 보이는 동물들을 잡기 위해 활도 만들어봤지만, 그리 효과적이지는 못했다.
 정확성이 상당히 떨어졌기 때문인데, 활을 가공할 도구가 맥가이버 칼밖에 없었고, 한 번도 만들어본 경험이 없기에 어떻게 만들어야 좋은 활이 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니 실력은 둘째 치더라도 활 자체가 최하품이니 화살이 멀리 날아가는 동안 엄청난 오차를 만들어버렸다. 그러니 아무리 연습을 하더라도 목표물을 맞힐 확률은 극히 적었다.
 그러나 안 봤으면 모를까, 이미 동물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동안 물고기와 조개류 또는 나물만 먹던 나는 동물의 살코기를 먹고 싶었다.
 소금을 사르륵 쳐서 간을 맞추고, 때론 강하게, 때론 약하게 불에 구워 겉은 살짝 타게, 속은 완전히 익힌 고기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맛을 줄 것이다. 특히나 그동안 먹지 못해 입 안이 그 맛을 강력히 원할 때는 그 어떠한 조미료보다 더욱 더 맛을 돋워줄 것이다.
 난 활을 포기하고 함정을 만들기로 했다.
 일단, 동물들이 움직이는 길이 어디인지 관찰했다. 아무 곳이나 함정을 만든다고 해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내와 오기로 며칠을 보내며 관찰한 결과 몇 군데 좋은 자리를 찾았고, 그곳에 함정을 만들어놓았다.
 함정은 아주 간단하게 만들었다.
 땅을 깊게 파되, 입구보다 속을 더 넓게 파서 벽을 타고 올라오지 못하게 한 다음 나뭇가지를 놓고 이파리를 놓은 후 그 위에 먹이를 놓았다.
 저 먹이를 먹기 위해 위로 올라오는 순간 나뭇가지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고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처음에는 다람쥐를 잡을 생각으로 작게 만들어 도토리를 놓았고, 4일 만에 한 마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귀여운 다람쥐를 죽이려니 도저히 죽일 수가 없었다.
 먹을 것도 별로 없어 보였고, 무엇보다 쥐같이 생겨 먹기에 꺼림칙했다.
 다람쥐는 놓아주고, 좀 더 깊은 숲에 들어가 봐두었던 자리에 또 함정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한 곳만 만든 것이 아니라, 여러 군데 만들었다.
 숲의 땅은 잘 파지지 않아 꽤나 힘들었지만, 이틀 동안 함정만 만들어서 5군데를 완성했다.
 이렇게 함정을 만든 곳은 이상한 과일이 있는 곳이다.
 생긴 건 사과같이 생겼지만, 맛은 매우 단 맛이다. 처음에 사과인 줄 알고 먹었다가 설사를 했었다.
 그러나 그 맛이 상당히 좋아 설사 할 것을 각오하고 또 먹어보았는데, 점점 먹을수록 설사의 양이 적어졌다.
 바로 이 과일을 주식으로 하는지 이곳에 자주 나타나는 동물이 있었는데, 사슴같이 멋진 뿔은 아니지만, 비슷한 뿔이 있고 돼지같이 살이 많이 찌진 않았지만, 그래도 먹음직스럽게 살이 찐 동물이었다.
 얼핏 보면 뿔 달린 멧돼지 같았으나 다리가 좀 더 길었고, 얼굴은 순해 보이는 것이, 공격과는 거리가 먼, 초식동물일 것이라 생각되었다.
 이 동물을 잡을 만한 크기의 땅을 파느라 상당히 힘들었다. 그리고 나뭇가지와 이파리 및, 여러 가지 풀들을 이용해 덮개를 만들고, 그 위에 사과 같은 그 과일을 몇 개 따서 놓아뒀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오니 함정은 그대로였다. 그래서 과일만 몇 개 따가고 다음 날 다시 오니 역시 마찬가지로 함정은 그대로였다.
 ‘혹시, 땅에 떨어져있는 것은 먹지 않는 것인가?’
 다음 날 추운 산속에서 입는 잠바를 가지고 다시 왔다. 그리고 과일나무의 모든 열매를 딴 후, 옷을 보자기 삼아 잘 감싸서 집으로 가지고 왔다.
 물론 함정 위에 있는 것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다음 날 다시 오니 생각대로 함정이 손상되어있었다.
 기쁜 생각으로 재빨리 함정으로 다가가니 역시 생각대로 한 마리가 잡혀있었다.
 이날 처음으로 포식자의 입장에서 동물을 죽여봤는데, 도저히 못할 짓이었다.
 80센티미터 정도 되는 순한 동물을 죽이기 위해 짧은 맥가이버 칼로 몇 군데 찔렀다.
 물론,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큼지막한 눈동자를 외면한 채 떨리는 손으로 찔렀다.
 그러나 동물은 죽지 않았다. 다리를 묶어놨기에 발버둥치지 못하고 몸을 꿈틀거리며 크게 울부짖었다.
 구슬픈 울음소리, 아파서 부르짖는 소리가 마치 며칠 전에 잡았던 그 괴물이 나를 잡아다 천천히 죽이는 것 같았다.
 ‘아!’
 손에서 맥가이버 칼을 떨어트리고 뒷걸음치며 멀리 떨어져 손으로 귀를 막았다.
 잠시 후 소리가 잠잠해지자 다가가서 바라보니 피를 많이 흘려서 죽은 것 같았다.
 경험이 없어 어떻게 할지 모르는 나지만, 순간 동맥을 찌르면 쉽게 죽을 것 같아서 목을 찔렀는데, 그곳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왔던 것이다.
 다행히 동물을 잡을 때 피를 생각해서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에서 잡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피로 젖은 땅바닥은 알아서 깨끗하게 씻어줄 것이다.
 그러나 그 동물을 집 근처에 있는 아궁이(?)로 옮기기 위해 만졌는데, 그 느낌은 마치 죽은 사람을 만지는 것 같았다.
 그 괴물을 만질 때는 이러지 않았었는데, 아마 죄책감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괴물은 내가 살기 위해 공격했고, 그 결과의 승리가 자랑스러웠지만, 이 동물은 내가 단지 좀 더 맛있는 식사를 하기 위해 힘없는 자를 핍박한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난 이제껏 고기는 수없이 먹어왔지만, 이렇게 원래의 모습을 유지한 채 하나하나 직접 손으로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가죽을 벗기는 작업에서 한 번 구토를 했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낼 때 두 번째 구토를 했다.
 그리곤 그동안 모아둔 소금 웅덩이에다 넣어두고 하루 동안 손을 한 열 번은 씻었고, 고기 비슷한 것만 봐도 식욕이 뚝 떨어졌기 때문에 과일만 먹었다.
 다음 날, 맥가이버 칼로 작게 자르는 작업을 했다.
 물론, 처음 시작했을 때 또 한 번 구토를 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처음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되자 정육점에서 구입한 돼지고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생 끝에 겨우 고기를 굽고 소금을 친 후 잘 익혀서 먹을 수 있었지만, 생각보다 맛은 별로였다.
 아마 그동안 보아온 것들이 있어서 식욕이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날 고기를 어떻게 보관해야 될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일단, 햇볕에 말리는 방법이 있고, 훈제를 시키는 방법이 있다.
 ‘훈제를 할까?’
 어떤 책에서 말린 고기보다 훈제한 고기가 더 맛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언젠가 책에서 언뜻 보았던 훈제도구를 만들기로 했다.
 이날 굵기가 손가락 두개정도 되는 기다란 나무를 여러 개 잘랐다. 그리고 나무껍질을 가늘게 잘라 끈 대용으로 사용해 절구통 모양의 훈제 통을 만들었다.
 덮개는 연기가 빠질 수 있도록 구멍을 내되, 너무 잘 빠지지 않게 작게 냈다. 그리고 그 속에 고기를 매달 수 있도록 나무막대를 가로로 놓아 나무껍질을 이용해 고정시키고, 가운데에 단단한 나무로 만든 낚싯바늘을 만들어 고정시켰다.
 그런 다음 소금에 절인 고기를 걸어놨는데, 통을 들어 흔들지 않는 한 고기는 떨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아궁이와 연기를 보내는 방법이었다.
 고민 끝에 경사진 땅을 찾아 위쪽에 훈제 통을 놓고, 그 아래로 땅을 팠다. 기다란 파이프가 없어서 얇고 긴 나무를 여러 개 역어 지름 10센티미터 정도 되는 통을 만들어 땅에 묻고, 흙을 덮었다. 훈제 통이 있는 곳 반대쪽 끝에 다시 땅을 파고, 돌과 흙을 이용해 아궁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아궁이의 한쪽 구멍에 나무로 만든 통의 한 쪽을 연결했다.
 이제 아궁에서 불을 때면 연기는 나무통을 통해 훈제 통까지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연기의 기운을 흡수한 고기는 점점 말라서 훈제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슴과 멧돼지를 닮은 동물의 고기는 첫날 먹은 것을 제외하고 모두 훈제해버렸다.
 이날부터 나의 또 다른 삶이 시작되었다.
 그동안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구하기 위한 삶이었다면 이제는 점점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삶이었다.
 적당한 두께의 나무를 잘라 젓가락이라고 사용하던 것을, 이제는 맥가이버 칼을 이용해 잘 다듬어 훌륭한 나무젓가락을 만들었다. 수저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무를 깎아 나무수저를 만들었고, 물 컵도 생각나 숲 속을 샅샅이 뒤져 속이 빈 나무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역시 그런 나무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나무 같은 것이라도 보이면 좋으련만, 바닷가 근처여서 그런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두꺼운 나무를 깎아 만들기에는 무리라 생각하고 포기했다.
 그리고 숲을 돌아다니며 발견한 밤나무나 도토리나무에서 밤과 도토리를 모아뒀다.
 혹시 모를 겨울을 준비하려는 것이었다.
 큰 물고기를 잡았을 때는 거기서 나온 가시를 이용해 바늘도 만들었다.
 디지털 카메라에서 나온 얇은 철을 불에 달궈 가시의 두꺼운 부분에 구멍을 뚫어 실을 연결할 수 있게 했는데, 옷은 꿰맬 수 있어도 가죽은 꿰매지 못하는 것을 보고 버렸다.
 오히려 가시에 구멍을 뚫을 때 사용했던 얇은 철의 한쪽을 돌로 쳐서 넓게 만든 후 거기에 구멍을 뚫고 다른 쪽을 갈아 뾰족하게 만들었다.
 조잡한 바늘이었지만, 충분히 가죽을 뚫고 꿰맬 수 있었다.
 부족한 실은 지금까지 사용했던 나무껍질을 가늘게 자르고, 여러 겹으로 역어 좀 더 실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듬었다.
 굳어지는 가죽을 두들겨 최대한 펴서 옷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옷은 여러 벌 있어서 신발을 만들었다.
 평소 생활할 땐 가죽신발을 신고, 언젠가 이곳을 떠날 때 다시 등산화를 신으려는 생각이다.
 등산 가방은 너무 커서 평소 들고 다니기에 부적합하다. 그래서 어깨에 멜 수 있는 간단한 가방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물고기나 여러 가지 열매, 혹은 돌이나 나무 등등 여러 가지를 담을 용도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높은 나무에 있는 열매를 딸 때 사용할 용도로 긴 끈에다 돌을 매달았다. 그리고 이걸 던져 나무에 돌돌 말리게 한 후 끈을 당겼다 놓았다 하는 식으로 흔들어 열매를 떨어트리기도 했다.
 망치 같은 것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망치 대용으로 사용할 돌을 구하고, 엄지손가락 두께만 한 나무를 구해 거기에 끈으로 매달아 돌도끼도 만들었다.
 이렇게 하루하루 필요한 여러 도구를 만들었고, 점점 이곳에서 생활하는데 익숙해져 갔다.
 어느 날은 오랜만에 세수를 하기 위해 물가에서 물 묻은 손을 얼굴에 갖다 대니 턱수염이 만져졌다.
 그래서 이곳에 온 지 며칠이 지났는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거의 반년이 다 된 것 같았다.
 ‘그래, 나도 이제 19세구나!’
 그러다 불현듯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는데, 내 생일은 9월이다. 즉, 더운 여름이 지나고 쌀쌀해질 때쯤 생일을 맞이하곤 했다. 그런데 이곳은 아직도 여름같이 따뜻하다.
 ‘혹시 이곳은 겨울이 없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혹시 모르기 때문에 겨울 준비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점점 삶은 여유로웠고, 익숙해져갔다. 그러나 잡생각이 많아졌고, 이곳이 어떤 곳인지 의문점이 쌓여갔다.
 일단, 듣도 보도 못한 짐승들과 괴물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그놈 그리고 이곳에 온 첫날 밤 땅을 울릴 정도로 거대한 덩치를 가졌을 것이라 생각되는 알 수 없는 존재 그리고 산에서 이곳으로 갑자기 이동된 이상 현상 등등…….
 왜 하필이면 나일까?
 왜 그날 그 자리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이곳은 지구의 어느 곳이지?
 잃어버린 뮤 대륙이나 아틀란티스인가? 아니면 단순히 지구의 어느 섬의 한곳일 뿐?
 혹시 방사능에 오염된 동물들이나, 돌연변이를 시험하는 곳은 아닐까?
 외계인이 나를 납치한 후 이곳에 버린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점에 답할 만한 그 어떠한 단서도 없었다.
 ‘그래, 언젠가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래서 눈으로 직접 뭐가 있는지 확인하마!’
 나름대로 목표를 정하고 생활해갔다.
 그리고 야생에서 생활하기 위해선 힘이 필요함을 느끼고 운동을 했다.
 나무창을 사용하는 방법을 더 생각하고 익혔고, 돌도끼를 이용하는 법도 생각했다. 활을 다시 다듬고 만들어 연습하기도 했다.
 이렇게 하루하루 생활하다 보니, 이곳에 겨울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충분히 1년까지는 아니지만, 그만큼 생활을 했다.
 나름대로 겨울나기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날씨는 따뜻했고, 나무들은 풍성한 잎을 가졌으며, 숲은 언제나 우거졌다.
 넘치도록 많은 식량 덕분에 여유 있는 삶을 살았다.
 단지 그럴수록 다가오는 지독한 고독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난 사회적 동물이란 말이다!’
 큰 소리로 외치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다음에 계속...

댓글(3)

은사시나무    
이거2부까지 이어집니까?예전에 책으로 봤었던거 같은데
2015.12.12 02:22
천개의가면    
야뇨. 그럴리가요. 그냥 이러저러한 이유로 종결 됐습니다만 2부는 안나올 겁니다. 작가가 심적으로 맺힌게 많은 듯 합니다. 아울러 정신적으로도 뭔가 뭌제가 있는 듯하고요. 보통은 현실의 이루지 못한 뭨가를 글을 통해서라도 해소하고지하는 것이 노멀한 인간의 행태인데 이 ㄹ의 작가는 결국 주잌곹까지 시궁창에 처박습니다. 아마도 광인같아요. 광인이 쓴 글을 보고 싶으면 일독을 권헙니다. 아마 작가가 앞에 있다면 한 주먹 날리고 싶을 겁니다. 장담합니다.
2022.11.10 22:52
블랙포스    
집에 책이있는데 끝맺음도 안한 책을 이북으로 내면 작가 양심은 어디에 있는걸까요
2023.03.1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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