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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수모각 1권-1

2015.01.12 조회 1,379 추천 7


 모수모각毛手毛脚
 
 흔히 보기에 두렵고 끔찍한 자를 일컬어 삼두육비三頭六臂의 괴물이라 한다.
 세 개의 머리와 여섯 개의 팔을 지녔다는 뜻이다.
 단지 여섯 개의 팔을 갖추었다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말하는데, 만약 어떤 사람의 손과 다리가 가히 털처럼 많다면 얼마나 보기에 흉하겠는가?
 모수모각毛手毛脚!
 이처럼 듣기에 꺼림칙한 별호를 지녔던 화일운의 어린 시절은 세상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부모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무공은 매우 특이했고, 싸우는 모습도 남달랐다.
 그의 사부가 누구인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혹자는 화일운이 절대검문 출신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화일운이 무림인들 중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무적절대검 유정생 대협을 꼽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적절대검의 시대와 화일운이 살았던 시대가 백 년 이상 차이 남을 생각하고, 또한 그의 무공이 유정생 대협의 무공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달랐음을 감안한다면, 화일운이 절대검문 출신이라는 것은 사실일 수 없을 듯하다.
 그의 무공은 일종의 독자류獨自流였다.
 스스로 익히고, 스스로 깨달은 무공이라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고, 정해진 바가 없었다.
 그렇게 본다면, 모수모각 화일운과 무적절대검 유정생 대협 사이에 공통점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유정생 대협의 무적검 묵혼 역시 오로지 자신만의 깨달음과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기에.
 
 
 서장. 네 번의 독백
 
 첫 번째 독백 - 상인과 여인
 
 내 얘기를 시작하자.
 나는 혼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나를 낳은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태어난 것이라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래야만 한다고.
 어머니가 나를 낳은 것이라면, 나는 저주받은 운명을 피하지 못하므로, 나는 반드시 혼자서 태어난 것이어야 한다고 어머니는 늘 말하셨다.
 내가 스스로 태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머니는 세상을 헤매며 다니셨다고 했다.
 내가 저주받은 자가 아니라 진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세상을 떠돌며 진짜 사람의 마음을 찾으셨다고 했다.
 저주받은 일족의 운명.
 그 운명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일족 중에 진정한 인간이 탄생하는 것뿐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전해져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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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인 화만재는 돈을 사랑한다.
 가난했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세상의 모든 재물을 모으기를 바라며, 이름을 만 가지 재물이라고 지었다.
 화만재는 자라면서 재물을 모으는 법을 배우지는 못하였다.
 그의 아버지에게 재물을 모을 재주가 있었다면, 화만재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낼 필요가 없었으리라.
 그의 아버지는 오직 한 가지만을 말해 주었다.
 
 -재물의 겉이 아닌 속을 보거라.
 
 재물은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재물은 사람을 따라 움직인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면, 재물도 따라 흐른다.
 재물이란 본래 사람을 행복하기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만재는 무엇보다 인간을 사랑한다.
 화만재가 재물의 겉을 배우지 않고 그 속뜻을 배웠기에, 왜 재물을 모으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참으로 모순되다.
 재물의 참뜻을 아는 이에게, 재물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올해로 스무네 살인 화만재는 아직도 봇짐을 나귀의 등에 올리고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세상은 평화롭다. 하지만…….”
 화만재는 나귀의 등에 마지막 봇짐을 올리며 중얼거렸다.
 “……평화롭다는 게 우리 같은 놈들에겐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다. 여기저기 분란이 일고 혼란스러워야, 나처럼 떠돌아다니는 놈에게도 큰돈을 벌 기회도 찾아오는 법이지. 아! 물론 세상이 어지러워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큰돈을 못 벌기는 해도, 요즘처럼 평화로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
 나귀를 출발 시키려던 화만재는 객잔 앞에 웅성거리며 모인 사람들을 보았다.
 호기심이 없는 상인은 드물다.
 호기심이 많아야 기물을 발견하고, 기물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돈이 되는 법이다.
 사람들 사이로 들여다보니, 바닥에 눕혀진 한 구의 시체가 보였다.
 깡마른 시체는 굶어 죽은 듯, 죽은 후에도 피폐하여 보기에 안타까웠다.
 그리고 시체 옆에 한 명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역시 마른 모습에 퀭한 눈을 지닌 창백한 안색의 여인이었다.
 결코 아름답지 않았고, 너무나 말라 오히려 묘한 귀기마저 느껴졌다.
 “무슨 일이오?”
 옆에 서 있는 중년인에게, 그가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소. 노인은 죽었고 저 여자는 말없이 앉아만 있구려. 아마도 딸이 아비가 죽자 아비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몸이라도 팔겠다고 나선 모양이오. 쯧쯧! 그런데 저렇게 마른 장작처럼 깡말라서야 누가 나서겠소. 저런 여자를 안았다가는 삼 대가 재수 없겠구먼. 나 같으면 돈을 받고서도 싫다 하겠소.”
 중년인의 말처럼, 아무도 돈을 내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해가 저물자,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
 오직 화만재만 혼자 남아 여인과 노인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화만재는 돈을 벌기 위해 상인이 되었다.
 어린 시절 그의 집은 매우 가난했고, 끼니를 거르는 날이 제대로 먹는 날보다 더욱 많았다.
 화만재는 여인의 모습에서 어머니를 떠올렸다.
 자식들의 끼니를 챙겨 주시느라 언제나 배를 곯았던 어머니는 눈앞의 여인처럼 나날이 마르기만 했었다.
 화만재는 결국 주머니의 돈을 꺼내 놓았다.
 “이거…… 충분할지는 모르겠으나…….”
 화만재는 내놓은 돈은 그가 그날 번 돈의 대부분이었다.
 “당신을 사겠다는 뜻은 아니오. 동정해서도 아니고, 내가 돈이 많아서도 아니오. 나는 상인이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거래해야 한다고 배웠소, 마음의 거래는 무엇보다 남의 아픔을 헤아려 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화만재는 그렇게 돈을 놓고 서둘러 떠났고, 여인은 오래도록 그런 화만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화만재가 여인을 다시 만난 것은 닷새 후 또 다른 장터에서였다.
 정오부터 비가 내려 장은 일찍 끝났는데, 그때 여인이 나타나 화만재의 앞에 섰다.
 화만재가 피하려 했으나 여인은 계속 그를 따라왔고, 화만재가 숙소에 들어가도 그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
 “이럴 필요 없소. 당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해 준 것이 고마운 거라면 이미 말했지 않소.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아버지가 아니에요.”
 “……!”
 화만재가 놀라서 보자, 여인은 말을 이었다.
 “죽은 노인은 나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나는 돈을 줄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찾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연히 발견한 노인의 시체를 이용했어요.”
 “마음? 마음을 찾고 있었다고?”
 “가장 사람다운 마음. 나는 사람의 마음을 찾고 있었습니다.”
 뜻 모를 이야기만 잇던 여인이 갑자기 옷을 벗었다.
 화만재가 놀라 외쳤다.
 “뭐하는 거요?”
 여인이 힘없이 웃었다.
 “저도 제 몸이 사내를 흥분시키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요.”
 여인의 말은 화만재를 당황시켰다.
 “당신이 좋다 싫다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요. 나는 돈을 주고 여인을 사는 사람이 아니오.”
 “알고 있어요. 저는 지금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인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부탁을 드리는 거예요. 상인의 마음, 가장 사람다운 그 마음을 제가 나누어 주세요. 저희 일족이 저주를 벗어날 방법을 찾게 해 주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여인의 벗은 몸은 애처로웠다.
 너무나 마르고 가냘파 서글플 지경이었다.
 화만재는 마음 깊은 곳에서 뭉클 솟아오는 뜨거운 감정을 느꼈다.
 그건 욕정이 아니라 안타까움이었다.
 보호해 주고 싶었다.
 화만재는 여인의 일족이 입었다는 저주가 무엇인지 모른다.
 짐작할 방법조차 없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솟구치는 안타까움은 금할 길이 없었다.
 너무 말라 부러질 것 같은 여인의 몸을 잠시라도 따뜻하게 안아 주고 싶었다.
 그날 화만재는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여인을 안았다.
 여인도 화만재의 몸이 아니라 마음을 안았음이 틀림없었다.
 다음 날 사라진 여인아 남긴 한 장의 편지가 그것을 말해 주었다.
 
 -은인은 반드시 대상인이 될 것입니다. 은인의 마음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은인을 만나게 되어, 저는 운이 좋았다 생각합니다. 저희 일족 또한 운이 좋을 수 있도록 빌어 주십시오.-
 
 어떤 일은 쉽게 잊히고 어떤 일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훗날 화만재는 여인의 말처럼 대상인이 되었다.
 하지만 대상인이 된 후에도, 그날 밤의 일은 화만재의 마음에서 잊히지 않았다.
 여인을 꼭 닮은 모습을 한 일운이라는 아이가, 강씨촌의 밭에서 자신을 찾아올 때까지도, 화만재는 여인의 마른 몸과 슬픈 눈빛을 계속 기억했다.
 
 
 두 번째 독백 - 어머니의 유언
 
 어머니가 나를 낳은 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좋은 일, 그리고 나쁜 일.
 하지만 내게는 그저 무덤덤할 뿐인 일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나는 슬프지 않다.
 내가 슬픔을 느끼지 않는 건 어머니 때문이지만, 그것이 또한 어머니가 내게 해 줄 수 있었던 최대한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안다.
 다만 알 뿐이다.
 나는 슬픔이 무엇인지 모르듯,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니까.
 어머니는 내게 유언을 남겼다.
 내게도 아버지가 있다고 한다.
 나는 혼자 태어났지만, 그럼에도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는 것이다.
 아버지를 찾아가 은혜를 갚으라고 말했다.
 은혜를 갚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게 할 생각이다.
 어머니는 또한 말했다.
 아버지를 찾아가 은혜를 갚다 보면, 분명히 나 또한 진짜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그 순간, 우리 일족의 저주가 풀리는 것이라고.
 어머니의 말대로라면, 나는 아직 진짜 사람이 아니다.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머니의 말이 옳은 것 같다.
 나의 이름은 일운이다.
 하나의 운.
 어머니는 또한 나의 성이 화씨라고도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화일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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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만재는 대상인이 되었다.
 이름만 대상인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대상인이 되었다.
 중원의 사람들 중 적어도 삼분의 일은 매일 화만재의 상단에서 나온 물건을 쓰거나, 화만재 상단 소유의 땅을 밟거나, 화만재가 운영하는 전장을 찾아가 돈을 맡기거나 찾아온다.
 젊은 시절 화만재는 돈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거래했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은 어려웠지만, 일단 사들이게 되자 그 사람의 마음이 저절로 움직여 돈을 만들어 냈다.
 화만재는 그렇게 대상인이 되었다.
 화만재는 대상인이 된 후에도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계단처럼 놓인 연씨의 마을 밭을 즐겨 찾았다.
 모두 화예영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눈에 모든 딸은 예쁘다.
 늦게 얻은 딸인 화예영은 너무나 예뻐, 화만재의 입장에서는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내가 일찍 죽었음에도, 아비 혼자 키운 화예영은 예쁘면서도 또한 똑똑하게 자랐다.
 그녀는 아버지가 어린 시절 가난하게 살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젊은 시절 오늘의 부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도 알았다.
 열네 살 때, 화예영은 화만재에게 자신의 생일 선물로 한 가지를 요구했다.
 
 -재물을 얻기 위해, 재물을 가지고 행복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지, 그리고 노력하고 있는 지를 보여 주세요. 그게 제가 원하는 생일 선물이에요, 아버지.
 
 그날 이후, 화만재는 화예영과 함께 연씨 일가의 밭을 자주 찾았다.
 가파른 비탈을 일궈 만든 밭은, 인간이 험난한 장애를 어떻게 극복하며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에 대한 무엇보다 명확한 증거였다.
 화만재는 연씨촌을 찾아 자신이 직접 화예영과 함께 밭을 매는 일이 너무나 즐거웠다.
 사건은 그러다가 일어났다.
 가파란 경사면의 밭 중, 아직 채 개척되지 않은 곳으로 걸어가던 화예영이 그만 발을 헛디딘 것이다.
 “아악!”
 경사면은 가팔랐다.
 비명과 함께 넘어진 화예영은 경사면을 따라 굴렀다.
 그때 그가 나타났다.
 화일운은 깡마른 체구에 키만 훤칠한 사내 하나가 달려오더니, 화예영을 안았다.
 그리고 자신의 등으로 경사면을 굴렀다.
 삼십여 장을 돌과 가시에 찔리며 미끄러진 사내는, 바닥에서 화예영을 안고 일어섰다.
 달려온 화만재의 앞에 화예영을 내려놓으며 사내는 어딘지 어색한 어조로 말했다.
 “무사……합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사내는 화만재의 아래위를 훑어보면서 말했다.
 “일운입니다. 한 가지의 운, 일운입니다. 제게는 아직 성이 없습니다.”
 화만재는 아직도 여인의 그 편지를 기억한다.
 그는 일운의 아래위를 보더니 갑자기 다가가 힘껏 안았다.
 일운은 말이 없었다.
 그의 눈길에는 일말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너는…… 너는…… 나의…….”
 목이 멘 듯 같은 말을 반복하던 화만재는 다급히 물었다.
 “너의 어머니는 어디에 계시느냐? 여기는 어떻게 온 것이냐?”
 일운이 대답했다.
 “어머니는 은혜에 보답하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셨습니다. 저는 열흘 전부터 대상인의 행렬을 따라왔습니다.”
 화만재가 거느리고 다니는 행렬 중에는 무림의 고수도 여럿 끼어 있다.
 그런데도 아무도 일운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화만재는 일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처음 보지만 느낄 수 있다. 너는 그냥 일운이 아니다. 네게는 성이 있다. 너는 화일운이다.”
 화만재는 화일운의 손목을 잡아끌고 뒤편으로 데려갔다.
 화예영은 자신의 아버지가 낯선 사내의 손목을 끌고 걸어가는 모습을 눈을 깜박이며 지켜보았다.
 “누구지? 아버지가 아는 사람 같았는데. 그런데 날 안아서 구해줄 때 정말 든든했지 뭐야. 꼭 어릴 때 아버지에게 안기는 기분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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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만재는 밭에서 오이 두 개를 따 와 화일운에게 하나를 건넸다.
 “여기의 야채는 유난히 맛이 좋다. 지대가 높아서일 것이다.”
 화일운은 오이를 건네받더니, 말없이 먹기 시작했다.
 껍질을 까지 않은 채 먹고, 쓴 머리 부분까지 모두 먹었다.
 화만재는 화일운이 오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그가 모두 먹자 들고 있던 나머지 하나의 오이도 건넸다.
 “왜 대상인은 먹지 않습니까?”
 “나는 지난 세월 동안 많이 먹었다.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또한 배불리 먹었다. 그 세월 동안 너는 어찌 살았느냐? 너 또한 나의 핏줄인데, 나는 그동안 너를 한 번도 먹여 준 적이 없구나.”
 화만재는 다시 한 번 나머지 하나의 오이를 건넸고, 화일운은 그것을 받아서 먹기 시작했다.
 화만재는 더없이 복잡한 눈빛으로 화일운이 오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오이를 모두 먹은 후, 화일운이 말했다.
 “어머니는 대상인에게 은혜를 갚으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뜻이냐? 나는 네게 베푼 것이 하나도 없는데, 이제야 겨우 오이 두 개를 주었을 뿐인데, 그것이 어찌 은혜라는 말을 하느냐?”
 “하지만 대상인, 어머니는 분명히 은혜를 입었으니 갚으라고…….”
 “나는 너의 아버지다. 대상인이라 부르지 말거라. 아버지라고 불러라.”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뭐? 무엇 때문에 말이냐?”
 “저는 아직 진짜 사람이 아닙니다.”
 그 말을 끝으로 화일운은 일어나 걸어갔다.
 화만재가 화일운의 등을 향해 외쳤다.
 “네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너는 앞으로 계속 나와 예영의 곁에 있을 거지?”
 “…….”
 “나는 너의 아버지다. 예영은 너의 동생이다. 너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단 말이냐?”
 “…….”
 화일운은 대답하지 않고 걸었다.
 화만재가 다시 외쳤다.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무조건 그 사람의 명령을 들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화일운은 그제야 몸을 돌렸다.
 화만재가 말했다.
 “내게 은혜를 갚겠다고 했지? 좋아. 내 명령을 들어라. 그러면 된다. 명령하마. 나의 딸을 지켜라. 아까 네가 구해 주었던 그 여자아이가 바로 너의 여동생이다. 화예영, 그 아이를 지켜라. 그것이 네가 은혜를 갚는 유일한 길이다. 예영은 사랑이 많은 아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지? 예영과 함께 있으면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화일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화예영을 지키겠습니다.”
 화만재는 화일운은 한참 보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며 물러갔고, 화일운은 그 자리에 한참이나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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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은혜를 갚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안다.
 그것은 상대방의 명령을 들어주는 것이다.
 화만재, 나의 아버지는 내게 화예영을 지키라고 명령했다.
 나는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안다.
 그것은 상대방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고, 울게 만들지 않는 것이다.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지켜 주겠다. 저주받은 운명 때문에 네가 슬퍼하지 않도록 내가 너를 지키겠다.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듯, 슬픔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은혜 갚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듯, 슬픔에 대해서도 배웠다.
 어머니는 죽기 진전에 두 눈에서 물을 흘렸다.
 눈물이라고 하였다.
 
 -사람은 슬플 때, 눈물을 흘린다. 그러니까 눈물을 흘릴 때, 그 사람은 슬퍼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화예영을 지킨다. 화예영이 슬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는 화예영이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세번째 독백 - 화일운과 노인
 
 “어린 녀석이, 평생을 굶어 온 모양새로 무슨 생각에 그리 깊이 잠겨 있느냐?”
 푸근한 음성이 뒤에서 들려왔다.
 화일운은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는데, 한 노인이 그 노을을 등에 건 채 서 있었다.
 노인은 짚대로 엮은 모자를 썼다.
 눈처럼 흰 백발에 주름투성이의 얼굴이었다.
 한데 기이하게도 그 주름진 얼굴이 맑아 보였다.
 아마도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 때문인 것 같았다.
 화일운과 시선이 마주치자 노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이쿠! 눈은 더하군. 무슨 갈증이 그리 깊으냐? 숫제 태어나지도 못한 아이 같지 않으냐?”
 화일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노인의 아래위를 보다가 고개를 돌리려 하였다.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 시선을 돌리려 했건만, 눈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곳을 보려 함에도 그의 눈은 여전히 노인을 보고 있었다.
 “따라오너라, 불쌍한 놈.”
 노인은 혀를 차며 걸어갔다.
 이상한 일이 다시 일어났다.
 화일운은 따라가고 싶지 않았으나, 자신도 모르게 발이 움직였다.
 그는 노인의 뒤를 따라 걸었다.
 노인은 연씨촌의 후미진 곳으로 가더니, 작고 낡은 모옥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노인의 손에는 호미가 들려 있었다.
 “조금 전에 먹은 오이를 잊지 마라.”
 화일운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노인이 다시 말했다.
 “네 아버지는 네가 오이를 먹는 동안 지켜만 보다가, 자신의 오이도 네게 주었다. 그 마음만 기억해라. 그러면 네 갈증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노인은 마치 모든 것을 안다는 듯 말했다.
 화일운은 노인이 어떻게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지를 묻지 않았다.
 노인의 미소 때문일 수도 있고, 노인의 주름 때문일 수도 있었다.
 모든 세월이 노인의 얼굴에 머무는 듯했고, 그래서 노인은 무엇이든지 알 것만 같았다.
 화일운은 노인이 자신의 마음을 훤히 뚫고 들여다본다고 생각했다.
 본래 비어 있는 자신의 마음을 말이다.
 “다시 따라오너라. 네게 보여 줄 것이 있다.”
 노인은 또다시 걸어갔다.
 그리고 밭에 앉더니, 호미로 천천히 밭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노인이 갈기 시작한 밭은 사실 밭이라고는 할 수 없는 땅이었다.
 자갈이 많고, 곳곳에 큰 돌덩이마저 보였다.
 돌을 파헤치고 밭을 가꾸기에, 노인의 호미는 너무 작았고 노인의 팔뚝은 너무 약해 보였다.
 “잘 보아라. 보고 계속 생각하여라.”
 노인의 호미 아래에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노인은 그 바위를 향해 호미를 휘둘렀다.
 깡!
 노인의 호미는 처음엔 힘없이 바위로부터 튕겨 나갔다.
 당연한 결과였다.
 바위는 너무나 단단하여 작은 호미로 부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믿기지 않는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노인이 다시 한 번 힘없이 호미를 내려친 순간!
 쩌엉!
 믿기지 않게도 커다란 바위가 깨끗하게 갈라져 나갔던 것이다.
 화일운은 눈을 크게 뜨고 바위를 바라보았다.
 뒤이어 호미를 보고, 노인의 약해 보이는 손목을 보았다.
 화일운은 가장 마지막으로 노인의 눈을 보았다.
 눈을 깊었으며,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으냐?”
 화일운은 물어보지 않았다.
 알기 위해 누군가에게 물어보기보다는, 스스로 해답을 찾아내는 것이 지금까지 화일운이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었다.
 노인이 다시 말했다.
 “그래, 물어보지 않는 편이 좋다. 물어도 말해 줄 수가 없으니까. 어떤 것들은 다만 깨달아야 할 뿐, 배우거나 가르쳐 줄 수가 없는 법이다.”
 노인은 다가왔다.
 그리고 화일운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여 주는 이유는 미안하기 때문이다. 커다란 물그릇에 오직 하나의 구멍만 존재한다면, 모든 물은 그곳을 통해 흐르게 된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으나 앞으로 너의 삶은 참으로 힘이 들 것이다. 그것이 네게 미안하다. 사람으로서,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난 존재로서 너의 삶에 대해, 나는 참으로 미안하다.”
 화일운이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을 때, 노인은 사라져 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인 듯, 노인은 기척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화일운은 주변을 살폈으나 노인이 어디로 갔는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바닥엔 작은 호미만이 놓여 있었다.
 화일운은 그 호미와 갈라진 바위를 번갈아 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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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노인이 내게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노인은 나에 대해 아는 듯이 말했고, 앞으로 있을 나의 삶에 대해서도 아는 듯이 말했다.
 노인의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그 말들은 모두 사실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다.
 나는 궁금증을 느끼지 않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는 알고 싶었다.
 작은 호미.
 힘없는 손짓.
 그리고 갈라진 커다란 바위.
 어떻게 한 것일까?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는 한참이나 그곳에 서 있었다.
 
 
 네번째 독백 - 화씨 상단의 멸망.
 
 “그, 그만해. 이제 제발…… 그만 둬.”
 욱승표의 입술 사이로 신음 같은 음성이 새어 나왔다.
 맥없이 주저앉은 그의 오른손에 들린 것은 반으로 부러진 창대다.
 그의 몸은 온통 상처였다.
 모든 상처 중에서도, 허리를 긋고 지나간 칼날의 상처가 가장 깊고 무거웠다.
 욱승표는 사일창법의 고수다.
 해를 쏜다는 창 하나만을 들고 빈손으로 강호에 나온 초기에, 그는 많은 고생을 했다.
 대부분 먹고사는 문제에 얽힌 고생이었다.
 강호가 평화로우면 무사들이 할 일이 적어진다.
 하지만 화씨 상단에 들어간 이후 욱승표는 더 이상 먹고사는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화만재의 호위 무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소귀곡의 입구에서 욱승표는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주변을 온통 포위한 자들은 모두 검은 옷에 복면을 하고 있었다.
 저마다 손에 둥글게 휜 반월도를 들었다.
 복면인들의 우두머리는 얼굴이 희고 고우며 몸매가 가냘픈 여인이었다.
 오직 그녀만이 복면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복면을 하지 않은 그 여인은 지금 욱승표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욱승표는 이 여인을 안다.
 이름은 방방.
 방방은 화씨 상단의 총관인 고대보의 딸이었다.
 먼 곳에 공부하러 보냈던 딸이 돌아왔다고 고대보 총관이 말한 이후, 욱승표는 방방을 세가 안에서 몇 번인가 보았었다.
 방방은 욱승표를 볼 때마다 눈웃음을 흘렸고, 그래서 욱승표는 속으로 방방이 자신에게 마음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조금 전 방방의 검은 욱승표의 허리를 길게 베고 지나갔다.
 그 칼의 빠름은, 결코 상인의 집 총관의 딸이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욱승표의 뒤에는 화만재가 서 있었다.
 화만재는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은 욱승표와 방방을 번갈아 보더니 탄식처럼 말했다.
 “믿을…… 수가 없다. 너는…… 너는 고 총관의 딸이 아니었구나.”
 “호호호! 화만대 대상주님, 당연히 그의 딸이 아니지요.”
 방방은 달콤하게 웃으며 칼에 흐르는 피를 닦아 냈다.
 “딸의 엉덩이를 그렇게 엉큼한 눈으로 쳐다보는 아버지가 세상 어디에 있겠어요?”
 방방이 눈짓을 하자 복면인 중의 하나가 무엇인가를 끌고 왔다.
 사람이었다.
 길게 베여 피가 흘러나오는 가슴이 조금씩 요동치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살아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시체와 다를 바 없었다.
 피마저 이제는 거의 흘러나오지 않을 정도로 가슴의 요동은 미약했다.
 화만재는 또다시 길게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복면인이 끌고 온 사람은 바로 고대보 총관이었기 때문이다.
 고대보는 흐릿한 시선으로도 화만재를 보았는지, 가쁜 호흡으로 말했다.
 “가, 가주님, 저는…… 저, 저는…….”
 방방이 힘겨워하는 고대보의 얼굴을 만졌다.
 “말하지 말아요. 너무 힘들잖아요. 말하지 않아도 알 거예요. 당신과는 달리 화만재 대상인은 현명하니까요.”
 천천히 고대보의 얼굴을 만지던 방방의 손이, 돌연 고대보의 왼쪽 눈알을 파고들었다.
 “당신처럼 멍청하게 내 엉덩이에 눈이 팔려서. 호호호! 딸도 아닌 여자를 딸이라고 집안에 들이지는 않을 테니까요. 호호호!”
 “아악! 컥!”
 비명 지르는 고대보의 입을 방방의 발이 뭉개 버렸다.
 그 틈에 방방의 손은 고대보의 오른쪽 눈알마저 뽑아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눈알을 화만재의 앞으로 들어 보이며 방방이 웃었다.
 “자, 이 정도면 화 대상인께서는 고대보 총관을 용서해 주실 수 있죠? 사실 고 총관의 죄는 아니랍니다. 따지자면 화 대상인의 죄이지요.”
 “나의 죄?”
 “네. 대상인은 너무 많은 돈을 벌었어요. 꽃이 너무 향기로우면 벌과 나비가 몰려오기 마련이듯, 돈이 너무 많으면 우리들 또한 달려들기 마련입니다.”
 “……너희는 누구냐?”
 “우리들도 상인이에요.”
 “상인?”
 “네. 화 대상인은 스스로 마음을 사고파는 상인이라 말하길 좋아하셨다죠? 우리는 우리들을 이렇게 불러요. 죽음을 사고파는 상인이라고요.”
 욱승표가 눈을 부릅떴다.
 “매, 매혼상買魂商 흑당黑堂?”
 방방이 빙그레 웃었다.
 “맞아요. 어둡고 어두운 무리들이 모여 있는 곳. 바로 흑당이에요. 우리는 혼을 사고 대신 죽음을 주죠.”
 흑당은 상인이라 불리지만 상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돈을 받고 사람을 죽여 주는 청부 살인 집단이었다.
 흑당은 치밀하다.
 그들이 살인을 시작할 때는 우선 상대방의 약점과 장점을 낱낱이 조사하고,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해 상대를 무너지게 만든다.
 총관 고대보를 이용해 화씨 상단의 내부로 들어와 지금의 혈겁을 일으킨 것처럼.
 하지만 흑당의 무서운 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흑당은 살인을 할 때 상대방의 피를 보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그들의 즐기는 것은 상대의 피가 아니라 절망.
 흑당의 무리들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영혼의 죽음을 사랑한다.
 피 흘리며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절망으로 그 영혼마저 무너지는 것을 흑당은 즐긴다.
 흑당이 혼을 사는 상인이라 불리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때문에 흑당이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는 때는, 상대방이 모든 것을 잃은 후다.
 화만재의 눈빛이 쉬지 않고 흔들렸다.
 “너희들은…… 내 모든 기업을 무너뜨렸느냐?”
 방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스물두 곳에서, 당신의 입김이 닿은 전장錢莊과 염방鹽幫, 마방馬房, 포목점이 모두 무너졌어요, 화만재 대상인.”
 화만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욱승표를 보며 말했다.
 “욱 호위장, 자네는 그간 일들을 제법 잘해 주었네. 하지만 요즘은 자네의 태도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 자넨 해고일세.”
 욱승표의 눈빛이 흔들렸다.
 방방이 소리 내어 웃었다.
 “호호호! 그렇게 해고를 시켜서 욱승표만은 죽지 않도록 만들려고요? 그것도 좋겠군요. 우리 흑당도 굳이 해고당한 떠돌이 무사까지 죽일 생각은 없어요.”
 “헛소리!”
 욱승표가 창을 쥐며 날아올랐다.
 “안 돼!”
 화만재가 외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방방의 가슴팍에 창을 채 겨누기도 전에, 날아든 스무 발의 쇠 화살이 욱승표의 몸을 꿰뚫었다.
 욱승표의 가슴 상처는 깊었다.
 상처가 없었다 해도, 그에게는 본래부터 방방을 해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욱승표는 굳이 달려들어 죽음을 껴안은 것이다.
 “아아!”
 방방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욱승표의 몸이 썩은 고목처럼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질 때, 방방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휴우! 제법 잘생긴 놈이었는데. 왜 굳이 살 길이 있는데도 죽을 길을 찾았지? 그냥 살아 있으면 며칠쯤은 너랑 놀아 줄 수도 있었는데.”
 욱승표는 원통하다는 듯 방방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화만재를 한차례 본 후 이윽고 눈을 감았다.
 “아아! 아아아!”
 화만재가 몸을 떨었다.
 방방이 말했다.
 “당신에겐 이상한 재주가 있군요.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걸 아까워하지 않아요. 아마도 그 재주 덕분에 지금의 재산을 이룬 것이겠죠?”
 화만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방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요. 당신은 왜 묻지 않죠?”
 화만재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뭘 물으란 말이냐?”
 “당신의 재산은 이제 모두 우리의 것이 되었어요. 하지만 아직 당신이 재산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남았죠. 당신 딸의 안위에 대해서 왜 나에게 묻지 않나요?”
 화만재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 역시 묻고 싶었다.
 소리라도 질러 알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흑당은 스스로를 혼을 사는 상인이라고 부르는 집단이다.
 그들이 하나를 줄 때는 반드시 무엇인가 대가를 요구한다는 것을 화만재는 안다.
 이윽고 화만재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믿을 만한 녀석에게 나의 딸을 맡겼다.”
 방방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다른 걸 물어볼 수도 있잖아요. 가령, 도대체 누가 우리에게 당신의 죽음을 청부했느냐와 같은 질문도 좋잖아요.”
 화만재도 방방을 마주 보며 웃었다.
 “묻는다면 말해 줄 테냐?”
 방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저는 처음부터 말해 줄 생각이었어요.”
 화만재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듣지 않겠다.”
 방방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왜죠? 당신은 자신을 해치라고 한 사람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나요?”
 “나는 한 가지를 안다. 진실이 날 절망시킬 만한 것이 아니라면 네가 굳이 말하려 들 이유가 없을 것이다.”
 “호호호! 호호호호호!”
 방방이 소리 높여 웃었다.
 “그렇게 명확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아요. 당신이 조금만 젊었다면 큰일 날 뻔했어요. 아니, 그렇게 큰 딸만 없었어도 문제가 될 뻔했어요. 내가 당신에게 반해서 당신을 죽이지 말자고 건의했을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호호호.”
 방방은 다가와 화만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한 명의 이름을 화만재의 귀에 대고 말하였다.
 화만재의 눈이 커졌다.
 그의 눈빛이 절망으로 물들 때, 방방의 칼은 화만재의 가슴을 깊숙이 찔렀다.
 “편안히 쉬어요. 저승에서 쉬면서 당신의 딸을 기다리면 될 겁니다. 누가 당신의 딸을 지키고 있건, ‘우리들’을 당해 낼 수는 없을 테니까요.”
 죽어 가면서 화만재는 자신의 딸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딸을 지키고 있는 한 사내를 떠올렸다.
 화일운.
 자신의 아들이다.
 마른 목을 축일 수 있도록 건네주었던 두 개의 오이!
 그것만이 화만재가 아들에게 줄 수 있었던 전부였다.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하지만 꼭 지켜다오. 네 동생을, 나의 딸을. 나의 아들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물건이 아니라 마음을 사고판다 말하며, 언제나 나보다는 남을 아꼈고 기꺼이 베풀었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남의 마음을 샀으며,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대상인이 되었다.
 하지만 결국 화만재는 죽었다.
 그의 삶이 위대했던 것에 비해, 그의 죽음은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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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 일이 벌어지는 것을 몰랐다.
 알았다 해도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명령을 듣는 일이다.
 화만재, 내 아버지라고 하는 사람은 내게 화예영을 지킬 것을 명령했다.
 그래서 나는 그 일이 벌어졌을 때도, 그 후의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도 언제나 화예영의 옆에 있었다.
 
 
 제일 장. 뱀과 여우
 
 화만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화예영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분명히 화예영은 슬퍼하였다.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울 수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화만재에게 받았던 명령을 지키지 못했다.
 화예영이 슬퍼하지 않도록 지키지 못했다.
 화예영을 죽이려는 자들이 오고 있다 하였다.
 나는 또다시 명령을 지키지 못하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화예영을 데리고 어디론가 떠나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는 곳이 없었다.
 세상에 내가 아는 곳이라고는 오직 한 곳뿐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곳.
 내가 어릴 때 살았던 그 마을.
 나는 화예영을 데리고 마을을 향해 떠났다.
 흑당의 놈들이 그런 나와 화예영을 뒤를 추적해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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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맹도진을 보면 하나의 동물을 떠올린다.
 올해 서른세 살의 맹도진은 조물주가 얼굴을 만들 때 좌우에서 힘주어 눌러 놓은 것처럼 길쭉했다.
 눈매가 가늘고 좌우로 길게 찢어져 있으며, 얼굴은 창백하고 입술은 금세라도 피가 흐를 듯 유난히 붉었다.
 목소리에는 바람 새는 소리가 섞여 있고, 붉은 입술 사이로 날름거리는 혀는 남달리 길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맹도진을 보며 뱀을 연상하는 이유는 그러한 외모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는 채찍을 무기로 사용한다.
 맹도진의 채찍은 꿈틀거리며 허공을 날아 상대방의 살점을 찢거나 목을 휘감아 조른다.
 그 채찍은 마치 생명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살아 있는 뱀처럼 말이다.
 하지만 맹도진의 채찍 역시 맹도진을 뱀처럼 보이게 만드는 이유 중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맹도진을 뱀처럼 보이게 만드는 이유는 그의 마음 씀씀이였다.
 뱀은 차갑다.
 차가운 뱀은 상대를 동정하지 않는다.
 먹이를 삼키거나 독아를 박아 넣을 때, 뱀은 추호의 망설임이 없고 주저함도 없다.
 또한 뱀은 같은 동족을 잡아먹기도 한다.
 신화 속에는 심지어 자신의 꼬리를 삼켜 스스로 소멸한 뱀의 얘기도 전해지고 있지 않는가?
 맹도진이 그랬다.
 그는 화만재의 상단을 없애면서 자신의 수하가 세 명 죽었을 때,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적의 시체와 수하의 시체를 한데 모아 불에 태웠다.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화장火葬을 한 것은 아니었다.
 맹도진은 그저 시체의 썩어 가는 냄새가 싫었을 뿐이다.
 맹도진에게 있어 수하와 적은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맹도진의 수하들은 그런 일들을 당연시한다.
 맹도진이 열네 살 때, 처음 살해한 상대가 누구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맹도진은 고아였다.
 그가 일곱 살 때, 거리를 헤매던 맹도진을 데려다 키운 여자는 장터에서 기름을 짜서 파는 노파였다.
 맹도진은 열네 살 때 그 노파를 죽였다.
 어릴 때 맹도진은 생김새 때문에 동네 아이들의 놀림을 많이 받았었다.
 그런 아이들과 싸우다 심하게 얻어맞은 맹도진은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했다.
 강해지는 일에는 세 가지의 종류가 있다.
 남보다 힘이 세어지는 것이 그 하나이고, 남보다 마음이 굳건해 지는 것이 그 둘이다.
 세 번째의 강함은 남보다 힘이 세지 않고 마음이 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바로 남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말이다.
 맹도진은 세 번째의 강함을 선택했다.
 사람을 죽이려면 사람의 몸을 알아야 한다.
 그는 우선 자신보다 약하고, 자신을 경계하지 않는 사람을 택했다.
 바로 자신의 양어머니인 기름 파는 노파.
 맹도진은 골방에 노파를 묶어 놓은 뒤 그녀를 천천히 죽였다.
 이 첫 번째 살인으로, 맹도진은 충분하게 흑당에 들 자격을 얻었다.
 자신이 데려다 키운 고아 소년.
 늙어 아들로 의지하고픈 마음에 데려다 키운 아이가 자신을 묶어 놓고 죽이려 할 때, 노파의 마음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맹도진은 그 부서지는 마음을 보는 일이 즐거웠다.
 그래서 맹도진은 사람의 몸을 죽이는 일과 마음을 죽이는 일이 모두 동일한 종류의 살인임을 그 어린 나이에 이미 깨달았다.
 그 후, 그는 매일 살인을 했다.
 더러 죽일 적을 찾지 못해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그는 종종 수하를 죽이기도 하였다.
 수하들은 그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의 살인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은혜를 베풀어 준 상대를 해칠 수 있는 자는 세상의 그 누구라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키운 부모를 잡아먹는다는 살모사.
 사실 살모사는 자신의 부모를 잡아먹지는 않는다고 한다.
 어미의 몸속에서 알을 깬 뒤에 나오기에 어미의 몸을 뜯어 먹는다 착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생각해 보면, 세상에서 부모를 잡아먹는 동물은 어쩌면 사람 외에는 없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맹도진은 모든 면에서 뱀을 떠올리도록 만든다.
 생김새보다 사용하는 무기가, 사용하는 병기보다 마음 씀씀이가 뱀과 닮았다.
 아니, 뱀보다 더 악독하다.
 그런 맹도진이 흑당의 수하 열두 명을 이끌고 사교산의 자락에 나타난 것은 화만재가 죽은 지 열흘 만의 일이었다.
 화만재의 혈육인 화예영을 죽이기 위해서 말이다.
 본래 맹도진은 죽이거나 괴롭히는 역할이지 일을 꾸미거나 적을 추격하는 역할이 아니다.
 그런 맹도진이 험한 사교산 자락까지 수하를 이끌고 나타난 이유는 한 마리의 여우 때문이었다.
 여우는 교활하다.
 교활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 그지없는 이 한 마리의 여우는, 남으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도록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한 마리의 뱀조차 여우가 달콤한 목소리로 귀에 속삭이면, 그 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우의 이름은 방방이다.
 방방은 화씨 상단 멸망에 대한 청부를 총괄적으로 책임지고 있다.
 화만재는 죽었지만 화예영은 아직 죽지 않았다.
 여우 방방은 자신이 맡은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하여, 뱀 맹도진을 꾀어 사교산까지 끌고 왔다.
 방방은 직접 자신의 손으로 화만재를 죽였다.
 그리고 화예영까지 직접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싶어 했다.
 아버지의 피 맛과 딸의 피 맛을 함께 맛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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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이 특이하군.”
 맹도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지 않아도 가는 눈을 찡그리자, 눈이 사라지고 짙은 음영이 생기며 실선만이 남겨졌다.
 뒤에 서 있는 열두 명의 복면인들이 움찔 몸을 움츠렸다.
 미소를 지은 유일한 사람은 맹도진의 옆에 서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래요, 특이해요. 산이 험하고 나무는 울창하죠. 풍성하고 온화한 나무가 아니라 모두 깡마르고 거친 나무들뿐이에요. 두 개의 가파른 산 사이를 이어지는 협로와 그 협로 위에 자란 거친 나무들의 모습이 흡사 죽은 자가 건너는 다리 같아 사교死橋山이라고 불려요.”
 방방은 맹도진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달콤한 머리 향이 부드러운 목소리와 어울리며 맹도진의 코와 귀를 함께 간질였다.
 “아무리 사랑하는 남녀라 해도 저런 곳을 함께 건너기란 두려울 거예요, 그렇죠?”
 방방은 사내를 다루는 법을 알고 있다.
 그 방법이란 의도적이라기보다는 몸에 밴 일종의 습관이었다.
 사내는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여인 중에서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자신을 좋아해 주는 여자를 더욱 좋아한다.
 때문에 방방은 사내를 보면 언제나 웃고, 사내의 옆에 서면 언제나 다감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맹도진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험! 하지만 저곳으로 도망친 화예영과 그녀의 종놈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다.”
 “바로 그 점이 중요해요.”
 방방은 다시 한 번 웃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도 아닌 두 남녀가 저곳으로 달아났으니 반드시 더 크게 두려워하고 있을 거라는 얘기지요.”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가 받은 청부는 화씨 상단의 멸망에 대한 것이었다.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마지막 남은 계집아이 하나까지 쫓을 필요는 없지 않느냐?”
 “하지만 청부자가 원하고 있거든요. 단순한 멸망이 아니라 완전한 멸망. 말하자면 일종의 소멸을 말이에요.”
 방방의 미소는 어딘지 설명하기 힘든 짙은 색기를 머금고 있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태도예요. 만약 죽인다면 완전하게 죽여서 필요 없는 분란의 싹을 남기지 말아야겠지요? 나는 그렇게 일의 마무리가 확실한 사람이 좋더라고요.”
 방방은 걷기 시작했다.
 가파르고 험준한 사교산.
 나무와 그 풍광이 어딘지 모르게 기묘한 이질감을 주는 산이었다.
 사교산을 천천히 오르며 방방은 노래 부르듯 명랑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아, 그럼 이제 만나러 가 볼까요? 듣기에 이 산의 나무처럼 깡마른 사내라고 하던데. 호호! 그 종놈의 어디에 숨겨진 힘이 있어 화예영을 우리 흑당의 손아귀로부터 지난 열흘간이나 도망 다닐 수 있게 했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걸음마다 잘록한 허리 아래에서 팽팽한 엉덩이가 춤을 추었다.
 꿀꺽.
 맹도진은 마른침을 한차례 삼킨 후 방방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복면인들은 모두 흑당의 살인 무사들이다.
 그들도 맹도진과 방방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오직 한 명, 복면인들 중 가장 키가 작은 한 명만이 부자연스레 움직이며 자꾸만 뒤로 처졌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의 눈동자는, 무엇인가를 크게 두려워하는 듯 쉬지 않고 주변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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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산은 좀 이상해.”
 화예영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화일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나무들 너머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추억이 깃든 장소를 바라볼 때, 사람은 아련한 표정을 짓기 마련이다.
 만약 화일운이 보통 사람이었다면, 지금 그의 얼굴에는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흘러내리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화일운의 얼굴에는 언제나 표정이 없다.
 “어딜 보고 있어, 일운? 숲 안에 뭔가 있어?”
 화일운이 보는 수풀 안에서 무엇인가 흔들리는 것도 같았다.
 바람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화일운은 고개를 돌려 화예영을 보았다.
 “없다.”
 “하, 하지만 뭔가 움직이는 것 같았는걸.”
 “착각이다. 살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너를 지킨다. 그렇게 명령을 받았다. 절대 울게 만들지 않는다. 너는 그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
 화일운의 긴 팔이 화예영의 어깨를 잡았다.
 화일운의 팔은 말랐음에도, 힘이 있었다.
 화예영은 마음이 가라앉으며 불안감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항상 느끼지만 일운, 너의 팔에는 나를 안정시켜 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 꼭 아빠의 팔 같아. 아빠의…….”
 화예영은 화일운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화만재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화일운이 밝히고 싶어 하지 않았기에, 화만재는 화예영에게 자신이 고용한 호위 무사 정도로만 화일운을 소개하였다.
 하지만 화예영의 본능은, 화일운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화일운은 화예영의 어깨를 감싼 채 다시 숲을 보았다.
 숲 안에서 정말로 무엇인가가 움직였다.
 화일운은 화예영의 어깨를 돌려 그녀가 숲을 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숲 안에 존재하는 그 무엇.
 화예영이 그것을 보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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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잠깐만요! 여기에서 멈추셔야 합니다.”
 키 작은 복면인이 외친 것은 사교산의 좌측 봉우리를 절반 정도 올라갔을 때였다.
 일행은 마르고 뾰족한 나무들이 울창하게 솟은 수풀 사이의 좁고 구부러지는 길에 있었다.
 앞장서서 걷던 방방과 맹도진은 느닷없이 들려온 수하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소리냐, 칠호? 더 이상 가지 말아야 한다니? 네놈이 지금 감히 영주님들의 명령을 거역하겠다는 소리냐?”
 복면인들 중 가슴에 별 하나가 그려진 옷을 입은 자는 부조장이었다.
 부조장이 칠호를 보며 질책했다.
 칠호는 몸을 떨며 고개를 조아렸다.
 “저, 저는 어릴 때 이 근처에서 살았습니다. 이 사교산에는 전설이 있습니다. 나, 나무귀신에 대한 전설입니다.”
 “나무귀신?”
 방방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얘기를 좀 더 해 봐. 재미가 있겠는데.”
 “아, 아주 오래전 이 산의 나무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한 명의 천신에 의해 모두 베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무가 있잖아. 있어도 너무 많아서 우릴 귀찮게 만들잖아.”
 “그 나무를 심은 것이 바로 나무귀신들이라는 겁니다.”
 “귀신들? 호호!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야? 이것 봐라. 더 재미있어 지는데.”
 “재,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무를 벤 천신에 원한을 품은 나무귀신들은 그 후에 자신들이 다시 나무를 심은 이 산에 인간이 들어오면, 그 인간을 해악을 끼치기 시작했다는 것이 전설의 내용입니다.”
 “해악? 어떤 해악?”
 “이 산의 나무들은 모두 나무귀신들의 몸이고 분신입니다. 산의 나무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모두 깡마르고 헐벗어 보이지 않습니까? 산에 사람이 들어오면 나무들이 그 사람을 잡아 피와 원기를 모두 빨아 먹는다고 합니다. 나무귀신은 사람의 생명력을 먹고 산다고 들었습니다.”
 “호호호! 그건 별로 재미가 없다.”
 방방은 소리 내어 웃었다.
 “이러는 게 좋지 않겠어? 나무귀신 말고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 사는 거야. 그래서 들어온 자가 사내라면 피와 원기를 빨아 먹는 거지. 사실은 내가 그런 걸 좋아하거든. 물론 사내들도 좋아하고 말이야.”
 방방은 이야기의 마지막에 맹도진을 향해 눈웃음치는 일을 잊지 않았다.
 칠호는 몸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전설이 아닙니다. 어릴 때 제가 보았습니다. 마을의 남자 하나가 이 사교산에 들어왔다가 피와 내장이 모두 빨리고 난 뒤에 뼈에 가죽만 씌워 놓은 시체가 되어 발견이 되었습니다.”
 “호호호호! 나도 그런 재주 배우고 싶네.”
 방방은 끈적거리는 시선으로 맹도진을 보며 말했다.
 “어때요, 맹 영주? 내게 정력을 모두 빨리고 난 뒤 뼈와 가죽만 남고 싶지 않나요?”
 혀로 입술을 핥는 방방의 모습에서 그 어떤 행위를 상상하지 않을 사내는 없을 것이다.
 맹도진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 복면인 칠호가 다시 외쳤다.
 “쉽게 말하실 일이 아닙니다, 영주님. 바로 저 앞이었단 말입니다. 저 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우리도 마냥 사교산으로 들어가다 보면, 나무귀신을 만나 그런 시신으로 변할지도 모릅니다.”
 칠호는 손을 들어 숲을 가리켰다.
 그의 검지는 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때 한 줄기 차가운 바람이 칠호의 손목을 훑었다.
 취릭!
 칠호의 오른손이 거짓말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약간 비친다 싶던 피는 이내 분수가 되어 솟구쳤고, 칠호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크아악! 내 손! 내 손!”
 채찍을 거둔 맹도진은 천천히 걸어갔다.
 걸어가 바닥을 뒹구는 칠호의 복면을 잡아챘다.
 드러난 칠호의 본 얼굴은 맹도진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였다.
 무림의 세계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 마찬가지다.
 능력이 닿지 않는 자는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자는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얼굴이나 이름을 남에게 당당하게 보여 주지 못한다.
 맹도진의 손은 단단했다.
 단단하고 쥐는 힘이 강하며 손목이 강철과 같아야만 펼치면 길이가 일장이나 되는 채찍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것이다.
 그 단단한 손이 칠호의 아랫입술을 잡았다.
 “너는 내게 고마워해야 한다. 손이 없으니 이제 무서운 것을 가리키며 겁먹을 필요가 없을 것이고…….”
 찌지직!
 맹도진은 잡은 입술을 그대로 잡아 뜯으며 말을 이었다.
 “입마저 없다면, 무서운 것을 보고 호들갑에 떨지도 못할 테니까 말이다.”
 “크아아아아아악!”
 생으로 뜯겨 나간 입술 안으로 누런 이와 벌건 잇몸이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고이지 못하는 침이 뜯겨 나간 살점 너머로 피와 섞이며 쏟아졌다.
 “그리고…….”
 맹도진의 발이 바닥을 뒹구는 칠호의 머리를 눌렀다.
 퍽!
 수박이 터져 나가는 듯,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복면인들은 누구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조용해진 복면인들을 보며 맹도진이 말했다.
 “목숨이 없다면 더 이상 두려움을 느낄 필요도 없겠지. 말해 보거라. 아직도 두려움을 느끼는 자가 있느냐? 있다면 내가 그 두려움을 없애 주마.”
 입을 여는 복면인은 없었다.
 오직 한 명, 방방만이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을 뿐이다.
 “누가 나에게 손 잘리고 입술을 뜯긴 다음 머리통이 터져 죽는 것과, 피와 정혈이 빨린 깡마른 시체로 죽어 가는 것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호호호! 난 후자를 택하겠어요.”
 웃으며 방방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사교산에 나무귀신이 있다 한들, 한 마리의 흉포한 뱀보다 무서울 리는 없단 소리예요. 암! 무서울 리가 없지요. 호호호호호!”
 다시 허리가 흔들리고 엉덩이는 실룩거렸다.
 맹도진은 다시 방방의 뒤를 따라 걸었고, 복면인들은 가늘게 몸을 떨며 그런 맹도진의 뒤를 따랐다.
 그때 나무가 움직였다.
 스슷!
 스스스스슷!
 마르고 헐벗은 나무들 몇몇이 조금씩 움직이며 서로를 스치며 소리를 내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나무가 아니었다.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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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이 되자 추웠다.
 산속의 밤이기에 더욱 추웠다.
 마음이 추우면 몸도 더욱 추운 법이라, 화예영은 몸이 저절로 떨리는 것을 멈추기 어려웠다.
 하지만 화일운은 불을 피워 주지 않았다.
 모닥불만 피워도 추운 몸을 녹일 수 있으련만.
 화예영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화일운을 보았지만, 화일운은 불을 피울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심지어 겉옷을 벗어 화예영을 따뜻하게 해 주거나 안아 주어 체온을 올려 줄 생각도 없어 보였다.
 언제나 그랬다.
 화예영의 목숨을 구해 준 이후, 화일운은 언제나 옆에 있었고, 그녀를 위해 많은 일들을 해 주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따듯한 말이나, 따뜻한 눈길을 건넨 적은 없었다.
 지켜 준다고 말할 때 화일운이 짓는 표정은, 낯선 이에게 좋은 날씨라고 말하는 나그네의 그것처럼 무미하고 또 건조했다.
 하지만 화예영은 진심으로 화일운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화예영은 화일운이 없었더라면 자신이 지금과는 달라졌을 거라고 언제나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 고마워, 일운. 지금 나를 살리기 위해 네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 정말로 이 산 깊숙한 곳까지 가면 안전해질 수 있는 거지?”
 화일운은 고개를 흔들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은 몰라도 적어도 흑당의 추적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있을 것이다.”
 화일운은 화예영에게 말을 높이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화예영으로서도 그 편이 마음 편했다.
 화일운의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자신보다 적어도 열 살 이상은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몇 가지 물어도 돼?”
 그렇게 말한 뒤, 화예영은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물었다.
 “처음 날 구했을 때, 정말 우연이었어? 아니지? 아버지와는 본래 아는 사이였어? 지금까지 계속 궁금했었어. 말해 줘. 아버지와 어떤 관계야, 일운?”
 “…….”
 “나는 일운의 이름만 알고 있잖아. 성이 뭔지도 말해 줘. 일운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나는 대상인에게 은혜를 갚으러 왔다. 그래서 그의 명령을 듣는다. 그의 명령은 너를 지키라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다.”
 화예영은 물끄러미 화일운을 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 해.”
 화만재가 생각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화예영은 고개를 숙이기는 했어도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에게는 흘러야 할 것이 눈물 외에도 더욱 많았다.
 자신의 눈물이 아니라 원수의 피를 흘려야만 하는 것이다.
 화예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살아서 강해지겠어. 내 아버지를 죽인 자들, 아버지의 상단을 없앤 자들. 강해진 뒤에, 그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화일운이 하늘을 보고 다시 주변의 숲을 보더니, 몸을 일으켰다.
 “휴식은 이만하자. 다시 출발이다. 조금만 더 들어가면 마을에 도착할 것이다.”
 화예영은 즉시 일어섰다.
 이렇게 추울 때는 힘들어도 걷는 편이 추위기를 이기기엔 더 좋다.
 “그래, 걷자. 그런데 이것 한 가지만큼은 꼭 대답해 줘. 일운은 도대체 아버지에게 무슨 은혜를 입었어? 다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것만큼은 꼭 대답해 줘. 부탁이야.”
 “나는…….”
 화일운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나는 아직 진짜 사람이 아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세상에는 진짜 사람이 아니면서도 사람처럼 보이는 모습으로 태어나는 존재들이 있다. 대상인은 그런 나에게 진짜 사람이 될 수 있는 씨앗을 주었다. 그것이 내가 입은 은혜다.”
 화예영은 눈을 몇 번 끔벅이다가 이내 한숨을 길게 쉬었다.
 “휴우! 듣고 나니 더욱 모르겠네.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의 말들이야?”
 화일운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산에는 나무귀신이 산다는 전설이 있다.”
 “……!”
 “나무귀신은 나무들 사이에 서서 세상의 사람들을 보며 언제나 묻곤 한다. 나는 무엇일까? 저들은 무엇일까? 나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렇게 오랫동안 스스로 질문을 하다 보니 나무귀신은 문득 한 가지를 증명하고 싶어졌을 것이다. 무엇일 것 같나?”
 화예영은 눈만 끔벅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좀 알아듣게 말해 줘.”
 “나무귀신이 증명하고 싶었던 건 아마도 한 가지가 아니었을까?”
 화일운의 목소리는 나직했다.
 “나도 저들과 같을지도 모른다. 나도 저들과 같을 것이다. 나무귀신은 자신 역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졌을 것이다. 진짜 사람이 되고 싶어졌을 것이다. 틀림없이 말이다.”
 그리고 화일운은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피로한 눈의 착각이었을까?
 화예영에게 화일운의 모습이 어쩐지 주변의 깡마르고 헐벗은 나무들과 혼동되어 보였다.
 바람이 불어왔다.
 한기를 머금은 바람이 나무를 흔들자, 여기저기서 탁한 마찰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화예영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워졌다.
 하지만 신음을 흘리거나 화일운에게 도와 달라 외치지는 않았다.
 그녀는 대상인 화만재의 자식이다.
 하나뿐인 딸이며, 그 원과 한을 모두 짊어지고 가야 할 유일한 존재이다.
 화예영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도 안다.
 강해져야 한다.
 그것만이 지금 화예영에게 남은 운명이다.
 화예영은 화일운의 뒤를 말없이 좇았다.
 
 
 제이 장. 나무귀신
 
 처음엔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깊은 밤.
 숲은 깊고 길은 험하니, 뒤에서 따라 오던 사람 중의 하나가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생각하였다.
 하지만 십일호에 이어 십호마저 보이지 않자, 맹도진은 전진을 멈추게 하고 주변을 살폈다.
 “이상하군.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당신이 죽인 칠호의 말처럼 정말로 사교산에 나무귀신이 있나 보죠. 호호호! 아니면 칠호가 귀신이 되어 나타났던지요.”
 방방이 웃으며 말했지만 복면인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들은 아직 칠호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가는 눈을 더욱 가늘게 뜨며 주변을 살피던 맹도진이 왼쪽 수풀을 향해 외쳤다.
 “웬 놈이냐?”
 고함과 더불어 눈짓.
 사호가 반월도를 빼들며 몸을 날렸다.
 츠츳!
 우거진 수풀 사이로, 강한 마찰음을 남기면서 사호의 몸이 사라졌다.
 “난 전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데…….”
 방방이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맹도진은 미간을 찡그렸다.
 “나도 느끼지는 못했다. 사람의 기척이 전혀 없었는데도 무엇인가가 움직였다.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분명하게 보았다. 사호가 돌아오면 그림자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사호는 돌아오지 않았다.
 홀연히 일행으로부터 사라진 십호와 십일호처럼, 수풀 사이로 들어간 사호로부터는 소식이 없었다.
 “수하들이 겁을 먹었나 봐요. 겁먹고 도망친 것은 아닐까요? 호호호!”
 맹도진은 인상을 썼다.
 흑당은 단순한 조직이 아니다.
 한 번 흑당이 든 자는, 결코 조직을 떠날 수 없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방방은 수하가 겁을 먹고 도망쳤다고 말하고 있다.
 맹도진을 놀리고 있는 것이다.
 “그 입, 다물지 않으면 영원히 입으로는 다른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마.”
 “호호호! 그렇게 되면 오히려 영주의 손해가 아닌가요? 호호호.”
 맹도진은 결국 화를 내지 못했다.
 그는 몸을 돌려 자신이 앞장서서 사호가 사라진 수풀 길을 헤치고 들어갔다.
 스무 걸음을 채 걷지 않았을 때, 맹도진은 결국 사호를 찾아냈다.
 사호는 나무에 걸려 있었다.
 그는 숨을 쉬지 않았다.
 나무에 걸린 사호의 몸은 그야말로 모든 수액이 빨린 듯 말라비틀어진 모습이었다.
 방방의 얼굴에서 마침내 미소가 사라졌다.
 자신도 모르게 하나의 이름이 그녀의 입술 사이로 흘러 나왔다.
 “……나무귀신?”
 우지끈!
 맹도진의 오른손이 흔들리자, 사호가 매달린 나무가 통째 부러져 떨어졌다.
 사호의 시체를 살피는 맹도진의 표정은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피가 한 방울도 없이 사라졌다. 그런데도 바닥에는 한 점도 떨어져 있지 않다. 피부와 근육들도 마치 늙은이의 그것 같다. 피를 빨리기 전, 내공과 기력을 모두 빨린 것이다. 생명력…….”
 그는 잠시 쉬었다가 말했다.
 “생명력……이 모두 흡수당한 모양새다.”
 맹도진의 결론은 칠호가 경고했던 것과 같은 내용이었다.
 칠호는 지금 죽고 없다.
 맹도진은 칠호를 직접 죽였다.
 맹도진은 미간을 찡그린 채 일어났다.
 “강호에는 기이한 일들이 많다. 어쩌면 흡정대법 같은 무공을 지닌 고수가 이 근방에 있을지도 모른다.”
 맹도진의 언급처럼, 사람이 피를 빨려 죽거나, 내공이 빨려 죽는 일도 넓은 무림에서는 그다지 희귀한 일이 아니다.
 방방과 맹도진의 안색은 굳은 이유는, 사호가 어떻게 죽었는가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사호가 죽을 때, 방방과 맹도진은 불과 스무 걸음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런데도 사호의 신음조차 듣지 못하였다.
 요란한 살인자는 두렵지 않다.
 소리를 듣고 싸우거나, 혹은 도망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소리 없는 살인자는 두렵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나타나 자신을 죽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방방이 말했다.
 “북명신공이 다시 나타난 것일까요?”
 북해 너머에 존재한다는 넓디넓은 바다.
 차갑고 아득한 북명의 바다를 닮아, 상대방의 어떠한 내공도 흡수해 버린다는 전설의 마공.
 맹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북명신공에 당하면 온몸이 오그라들어 짓눌러진 공처럼 되어 죽는다고 들었어. 하지만, 사호의 몸은 말라비틀어지긴 했어도 알아볼 수 있었잖아.”
 맹도진은 오른손을 수도로 세워 사호의 배를 찔렀다.
 북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맹도진의 손이 사호의 배를 파고들었다.
 배를 찢어 내장을 끄집어내면서 맹도진이 말했다.
 “내장이 녹아 붙지도 않았어. 마른 흙처럼 퍼석거릴 뿐. 북명신공은 절대로 아니다.”
 맹도진은 복면인들을 두 조로 나누었다.
 “너희는 이쪽, 너희는 저쪽으로 간다.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살피되 움직임을 발견하면 가장 먼저 소리부터 질러라. 목이 잘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죽기 전에 소리부터 질러라. 그러면 나와 방 영주가 간다.”
 어두운 밤.
 하늘의 달만 사방을 비추는데, 사호의 퍼석거리는 내장을 손에 쥔 맹도진의 표정이 유난히 창백했다.
 “네놈들이 죽는 건 상관 않는다만 사호처럼 멍청하게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는다면…….”
 맹도진의 손에서 사호의 내장이 부서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꼴이 될 것이다.”
 “존명!”
 복면인들은 고개를 숙인 뒤에 좌우로 갈라져 숲속으로 들어갔다.
 “천하의 맹도진 영주님께서 설마 귀신을 무서워하는 것은 아닐 테고…….”
 복면인들이 모두 사라진 후에, 방방이 맹도진을 보며 물었다.
 “죽은 사호의 복수를 하시겠다는 생각도 절대 하실 리 없겠고. 음! 혹시 화가 난 건가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적의 흔적도 찾지 못했다는 사실에 스스로에게 화가 난 게 맞는군요.”
 맹도진의 눈이 방방의 눈에 고정되었다.
 다가와 방방의 목덜미 움켜쥔 맹도진은, 그녀의 얼굴을 자신의 앞으로 바짝 잡아당겼다.
 “누구든, 날 놀리려고 들면 죽인다. 너도 그 허여멀건 몸뚱이를 온전히 보전하고 싶으면, 내 앞에서 그딴 표정은 짓지 않는 게 좋아.”
 사람에게는 주변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이기적인 사람일수록 그러한 욕구는 강하다.
 자신이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면 미친 듯이 화를 내는 사람이 있는데, 맹도진은 바로 그러한 종류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한 사람의 또 다른 특징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 주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진짜 모습이 스스로도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맹도진의 손아귀는 억셌다.
 방방은 맹도진에게 잡힌 목덜미가 아팠지만 비명을 지르는 대신 배시시 웃었다.
 “어머! 멋있어라. 난 이렇게 우악스런 사내가 좋더라.”
 방방은 사내를 다루는 법을 안다.
 맹도진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방방을 보다가, 결국 목덜미를 잡은 손을 놓고 말았다.
 “언젠가…….”
 맹도진은 입속이 마르는지 연방 마른침을 삼켰다.
 “널 묶어 놓고 조금씩 죽여 보고 싶다. 조금씩 죽어 가면서도 네가 그렇게 색기를 흘리면서 웃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겠다.”
 “호호호! 묶어 놓고 그것만 하시게요?”
 방방은 두 손으로 자신의 몸을 가슴에서 허리 아래로 쓸어 내렸다.
 “솔직히 말해 봐요. 정말로 하고 싶은 건 뭐죠? 영주가 진심으로 보고 싶은 건 내가 죽어 가는 모습이 아니라 혹시 다른 것이 아닌가요?”
 공포로 가득한 비명이 들려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으아아악!”
 “사, 살려 줘!”
 맹도진과 방방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을 날렸다.
 비명은 불과 백여 장 거리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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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다. 드디어 도착했다.”
 화일운이 깊었던 밤이 더 깊어진 시각에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한 채의 돌집이 화일운의 앞에 보였다.
 돌집은 특이했다.
 돌 위에 돌을 쌓고, 사이의 빈틈을 진흙으로 메웠다는 점은 일반의 돌집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지붕이 달랐다.
 짚을 흙에 개어 사용하거나, 나무껍질을 계속 이어 지붕을 만드는 다른 집들과는 달리 화일운이 멈춘 곳의 돌집은 지붕조차 흙과 돌을 이용해 만들어져 있었다.
 밤이고 달빛뿐인지라,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나무가 사용된 흔적은 전혀 없었다.
 돌집은 주변의 나무를 반경 오십여 장 이상 베어 낸 빈 공간에 홀로 서 있었다.
 하늘에서 본다면, 울창한 숲의 한 부분이 탈모된 듯 동그랗게 빠져 보일 터였다.
 “저 집은 마치 나무를 피해 지어진 것처럼 보이네. 지붕을 저렇게 만들면 비가 올 때 새지 않아?”
 화예영이 물었지만 화일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돌집 앞에 우두커니 선 채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볼 따름이었다.
 하늘의 달빛.
 그 어스름한 빛 아래에서 깡마르고 키 큰 사내가 무표정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념을 자아냈다.
 화예영은 그 상념이 무엇인지, 왜 느껴지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거구나, 일운. 너는 오래전에 이곳에 살았다고 했지? 그래서 이곳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거야.”
 화일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인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화예영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 자신은 이곳을 그리워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스스로 느끼지 못할 뿐이다.
 화일운은 돌집의 뒤로 걸어갔다.
 그곳에 무덤이 하나 보였다.
 묘비도 없이 흙만 덮인 작은 무덤이었다.
 화일운은 무덤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누구의…… 어느 분의 무덤이야?”
 “내 어머니.”
 화일운은 담담하게 말했다.
 “아!”
 화예영은 나직이 탄성을 뱉더니 물었다.
 “언제 돌아가셨어?”
 “내가 이곳을 떠나기 전.”
 “병이라도 드셨던 거야?”
 화일운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이제는 더 이상 떨리지 않음을, 화예영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어머니는 살해당하셨다.”
 “누, 누가 네 어머니를 해쳤다고? 누가? 도대체 누가? 누가 그런 짓을 했어?”
 화예영은 자신의 아버지를 흑당에게 잃었다.
 그녀는 스스로도 깜작 놀랄 정도로 흥분하여 물었다.
 하지만 화일운의 대답은 차분했다.
 차분하며 담담했는데 그 내용은 더할 나위 없이 차가웠다.
 차가운 밤공기보다 더욱 차가웠다.
 “내가.”
 화일운은 화예영의 눈을 똑바로 보며 또렷한 음성으로 말했다.
 “바로 내가. 이 손으로 죽였다. 이 두 손으로.”
 구름이 달을 가려 갑자기 더 어두워졌다.
 화예영은 화일운의 눈에서, 밤의 어둠보다 더 짙은 어둠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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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기억한다.
 내 손에 닿던 어머니의 마지막 감촉.
 힘없이 떨다가 점점 멈추던 그 핏줄의 맥동.
 
 -미, 미안하구나.
 
 힘없이 말하며 유언을 남기던 어머니의 마지막 목소리.
 나는 슬프지 않지만 기억하고, 애통하지 않지만 잊지는 못한다.
 내가 죽였다.
 어머니는 그것만이 당신이 진짜 사람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였다.
 네 손에는 아직도 어머니의 핏물이 가득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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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운아!”
 늙어 거칠게 갈라지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한 사람이 달려왔다.
 달려온다고는 하지만, 쉽게 나가지 않는 발을 급한 마음이 억지로 미는 듯 비틀거리는 사람이었다.
 손에 횃불을 들고 달려오는 사람은, 굽은 허리로 마른 몸을 지탱하고 있는 노인이었다.
 “일운아, 아아! 맞구나. 부쩍 커 버렸지만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너는 정말 일운이구나. 아아!”
 노인은 울먹이고 있었다.
 울면서 다가와 화일운을 끌어안은 후에는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돌아올 줄 알았다. 언젠가 돌아올 줄 알고 있었어. 반갑구나. 정말로 반갑다!”
 화일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는 노인을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려 주변을 둘러볼 뿐이었다.
 노인의 등을 다독여 주지도 않았다.
 “누구이셔?”
 화예영이 조심스럽게 묻자, 화일운은 노인을 밀어 자신의 몸에서 떼어 냈다.
 “이 마을의 촌장님.”
 이어 화일운은 촌장이라는 노인을 보며 말했다.
 “돌아온 게 아닙니다. 저는 아직 찾아야 할 것은 찾지 못했습니다.”
 “마을의 촌장?”
 화예영은 집이라고는 하나뿐인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을이라고?”
 촌장이 화예영을 보며 말했다.
 “과거에는 주변의 땅이 모두 집들이었소. 마을이 있었지. 내 정신 좀 보게. 손님을 모셔 왔구나, 일운아. 손님, 안으로 들어갑시다. 밤이 늦었으니 쉬셔야지. 배가 고프시면 먹을 것도 내어 드리리다.”
 촌장이 돌집의 안으로 들어갔다.
 화예영과 화일운도 그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이 돌집 안으로 사라졌을 때, 구름 속으로 사라졌던 달이 다시 밖으로 나왔다.
 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며 돌집을 덮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흐르기 시작했다.
 낮은 목소리.
 낮으면서도 높낮이가 일체 없어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기묘한 속삭임이 끈적한 안개처럼 주변을 덮었다.
 
 -돌아 왔다.
 -일운이 왔다. 그가 돌아왔다.
 
 일체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고, 호흡조차 없었다.
 결코 살아 있는 사람의 음성은 아니었다.
 목소리는 이어졌지만 더 이상 커지지는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귀 기울여도 듣지 못하고, 청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웅성대는 소음으로 느낄 정도의 음향.
 달이 움직이자 나무의 그림자가 함께 흘렀다.
 천천히 흐르는 나무 그림자는,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고 뒤틀린 느낌을 주었다.
 그때 멀리서 비명이 들렸다.
 공포의 감정을 잔뜩 실은 비명이었다.
 비명은 시작하는가 싶더니 짧게 이어졌고, 이내 끝이 났다.
 그 비명은, 맹도진과 방방이 들었던 바로 그 비명이었다.
 
 @
 
 마지막 비명!
 지금까지의 것 중에서 가장 크고 높은 비명을 끝으로 더 이상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방방은 고수다.
 맹도진 또한 고수이며 방방보다 경신술이 뛰어나다.
 그런 두 사람이 불과 백여 장 거리를 달려오는 동안에, 단말마의 비명은 시작되었다가 끝나 버린 것이다.
 맹도진이 먼저 도착했고 방방은 맹도진보다 조금 늦게 비명이 들려왔던 곳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맹도진은 딱딱한 안색으로 주변을 훑어보는 중이었다.
 복면인들이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사호가 그러했듯, 피와 정기를 모두 잃은 메마른 몸이 되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모, 모두 죽었군요. 맙소사! 우리가 달려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겨우 몇 초가 되지도 않았는데 그사이 흉수는 숫제 흔적도 없다니…….”
 방방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름답고 색기 짙은 여인은 사내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신에 다른 것은 무서워한다.
 방방은 자신의 몸뚱이로 사로잡을 수 없는 존재들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저, 정말로 이곳에 귀신이 있을까요? 칠호의 말처럼 나무귀신이 살고 있어서…….”
 맹도진은 대답하지 않고 삼호의 목을 감고 있는 나무를 향해 채찍을 날렸다.
 스컥!
 나무는 맥없이 잘렸고, 삼호의 몸이 떨어졌다.
 맹도진은 떨어지는 삼호의 몸을 받았다.
 삼호는 맹도진이 이끄는 복면대의 대원들 중에서는 가장 무공이 강하다.
 일호보다 무공이 강한 자가 삼호의 번호를 부여받은 이유는 그에게 두려움이 많기 때문이었다.
 삼호는 남을 해치는 것을 두려워했고, 자신이 해침 당하는 것은 더더욱 두려워했다.
 조금 전 마지막으로 가장 큰 비명을 지른 자는 틀림없이 삼호였을 것이다.
 “삼호가 당했다면, 다른 조의 놈들 상태도 뻔하지. 아마도 여기에 삼호가 있어서 다른 놈들도 비명이나마 지를 여유가 있었던 것이겠지.”
 맹도진은 삼호의 등을 빠르게 문지르더니, 내공을 주입시킨 손으로 명문혈을 한차례 쳤다.
 “커헉!”
 삼호가 기침을 토해 내며 눈을 떴다.
 맹도진은 호흡이 멈추고 심장이 멈춘 자의 숨을 되돌리는 재주를 보여 준 것이다.
 비록 호흡이 되돌아오긴 했지만 삼호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시선이 풀어졌고, 호흡도 일정하지 못하였다.
 맹도진은 오른손을 들어 삼호의 천령개를 쥐었다.
 내공이 주입하자, 삼호의 눈에 희미한 빛이 돌아왔다.
 “너무하네요. 정말. 기껏 숨이 되돌아 왔는데 그렇게 내공으로 신지를 각성시켜 놓으면 몸이 부담을 느껴 다시 죽게 될 거예요. 쯧쯧! 되살려 놓겠단 생각은 전혀 없는 거죠?”
 맹도진은 방방의 말을 무시하며 삼호를 향해 물었다.
 “누구냐? 누가 너희를 해쳤느냐?”
 삼호가 입을 열었다.
 “나, 나무귀신. 으아악!”
 맹도진은 기껏 되돌려 놓은 삼호의 심장박동이 다시 멈추었음을 느꼈다.
 겁이 많던 삼호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본 나무귀신의 모습을 회상했고, 그 결과 공포에 질려 다시 죽은 것이다.
 “이런 멍청한 놈.”
 맹도진은 고함을 질렀다.
 삼호의 죽음이 아쉬운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천령개를 통해 억지로 신지를 각성시킨 탓에 무리를 느낀 육체는 오래 견디지 못할 터였다.
 맹도진은 삼호의 시체를 옆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향해 내던졌다.
 “적어도 왜 죽었는지는 말해 주고 죽어야 할 것 아니냐? 멍청한 자식!”
 퍽!
 죽은 시체가 다시 부서졌다.
 피는 흐르지 않았다.
 흐를 만한 피는 모두 그 어떤 존재에 의해 흡입당하고 없는 것이다.
 방방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화만 낼 일은 아니에요. 칠호의 말, 그리고 이어진 상황. 이 사교산에 정말로 나무귀신이 있는 걸지도 모르잖아요.”
 “방 영주, 영주마저 그런 멍청한 소리를 하나? 세상에 귀신 따위가 있다고 믿나?”
 방방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땅을 가리키며 비명을 질렀다.
 “아악! 맹 영주, 그 발에…… 바, 발에…….”
 바닥에 떨어졌던 나무.
 맹도진이 잘라 냈던, 삼호의 목을 졸랐던 나무가 바닥을 기더니 맹도진의 발목을 휘감았다.
 휘감는다 싶더니, 맹도진의 발을 타고 올라왔다.
 “이게 무슨!”
 맹도진은 내공을 돋운 손으로 나무의 중간을 잘랐다.
 칵!
 잘린 두 조각의 나무가 바닥을 뒹굴며 꿈틀거렸다.
 “사, 살아 있어요. 아니, 자세히 보니 나무가 아니네요. 이것 설마…….”
 나무의 끝에 달린 검은 털 같은 물체.
 처음에 이끼나 나뭇잎이라 생각했던 것들은, 자세히 보니 다른 무엇이었다.
 방방은 확인을 위해 얼굴을 조금 더 가깝게 나무를 향해 가져갔다.
 그 순간.
 캬앗!
 잘린 나무가 소리를 지르며 방방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무껍질, 아니 껍질이라 생각했던 부분이 열리며 흰 이와 붉은 혀가 머리를 내밀었다.
 맹도진이 채찍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나뭇조각이 아니라 사람이다. 이, 이건 사람의 조각이다!”
 사람의 조각!
 잘린 조각이 도마뱀의 꼬리인 양 꿈틀거리더니, 다시 소리를 지르며 방방의 얼굴로 달려들었다.
 “꺄아악!”
 취리릭!
 방방이 비명을 지를 때 맹도진의 채찍이 매서운 파공음을 뿜으며, 방방의 얼굴 바로 앞에서 사람의 조각을 박살 냈다.
 조각으로 부터 튀어 나온 액체가 방방의 얼굴에 튀었다.
 피가 아니라, 나무의 수액처럼 끈적거리는 액체였다.
 그녀와 맹도진은 마침내 수하들을 해친 흉수를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흉수의 정체는 방방의 심장을 떨리게 만들고도 남음이 있었다.
 방방의 비명에 자극을 받았을까?
 아니면 먹잇감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사방에서 나뭇조각, 아니 사람의 조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조각들의 모습을 보고서야, 방방은 맹도진의 말이 옳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곳엔 사람의 눈과 코와 입이 있었다.
 팔과 다리와 몸통도 보였다.
 모든 것이 조각조각 잘린 채, 피부는 나무의 껍질처럼 거칠었다.
 그런 상태로, 각각의 조각은 살아 있는 생명체인 듯 움직이며 다가왔다.
 맹도진은 채찍을 고쳐 쥐었다.
 “생명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들은 움직이지만 결코 살아 있는 것이 아냐. 빌어먹을! 도대체 정체가 뭐란 말이냐?”
 묻지만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맹도진은 이미 사람 조각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그들이 어떻게 불리는지는 말이다.
 방방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나무귀신.”
 그 부름에 호응이라도 하듯, 나무귀신들은 방방과 맹도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캬아앗!
 
 @
 
 촌장이 내온 말린 고기와 찐 산마를 먹으면서, 화예영은 말이 없었다.
 촌장 역시 음식을 내준 뒤에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굳어 있는 그의 얼굴에서, 화예영은 두 가지의 마음을 동시에 읽었다.
 촌장은 기뻐했다.
 기뻐하면서도 동시에 무엇인가를 근심하고 있었다.
 사실, 화예영이 물을 만한 내용은 많았다.
 화예영은 돌집을 들어온 직후 들려왔던 비명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었다.
 또한 화일운이 말한 모친의 죽음에 대해서도 물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화예영은 결국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한 마디의 말 때문이었다.
 
 -나다. 내 두 손으로 죽였다.
 
 자신의 손으로 혈육을 살해할 만한 상황은 대체 어떤 것이 있을까?
 그 의문이 화예영의 마음을 가득 메워, 다른 것은 생각할 틈이 없었다.
 살인은 과거의 일이다.
 화예영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과연 자신의 모친을 살해한 사람과 같이 다닐 수 있단 말인가?
 언제까지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한참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던 화예영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날 보호해 줄 거지, 일운? 나는 언제부터 스스로를 지킬 준비를 해야 해?”
 화일운이 화예영을 보며 물었다.
 “너는 내가 떠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화예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그건 사실이잖아.”
 “왜 그런 생각을 했지?”
 화예영은 주변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이 집은 낡고 거칠며 살기에 힘들어 보여. 그런데도 너는 이곳에 왔을 때, 분명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였어.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한동안 말이 없었거든. 너는 이곳을 그리워했어. 그렇지?”
 화일운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라면, 화일운은 언제나 대답할 말이 없는 것이다.
 화예영이 말을 이었다.
 “그토록 그리워하면서도 지금까지 한 번도 이곳에 오지 않았던 건, 올 수 없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거야. 네가 만약 어머니를 미워해서 해쳤다면, 너는 그 무덤에 무릎을 꿇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니까 네게는 어머니를 해쳐야 했던 이유가 있을 것이고, 또 이곳을 떠나야 했던 이유가 있을 것이야. 내 말이 맞지?”
 화일운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래, 맞다.”
 “그러니까 너는 나를 떠날 거야. 이곳에 있어야 내가 안전하니까 나는 이곳에 두고 너는 떠날 거야. 그 말도 맞지?”
 화일운은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은 틀렸다.”
 “틀렸다고?”
 “내가 언젠가 네 옆을 떠날 것이라는 건 맞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니다. 나는 너를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 명령을 모두 지키고 나면 나는 진짜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그때 너의 옆을 떠날 것이다.”
 화예영은 화일운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다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또 그 헛소리! 왜 자꾸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도대체 진짜 사람이라는 게 뭐야? 난 이제 너의 그 표정 없는 얼굴이 무서워. 갑자기 네가 두려워 졌어!”
 화예영은 소리를 지른 후 밖으로 나가 버렸다.
 화일운은 가만히 화예영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화일운은 공터에 홀로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는 아이처럼 멍하니 있었다.
 촌장이 그의 등을 두드렸다.
 “여자아이들의 감정은 사내보다 복잡하다. 네가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내가 한번 나가 보마.”
 
 화예영은 돌집의 뒷벽에 기대어 하늘을 보며 울고 있었다.
 촌장이 다가와 말했다.
 “휴우! 아가씨는 매우 귀하게 자랐구려. 그 옷차림을 보면 알 수 있소. 하지만 지금은 매우 외롭고 힘겨우며, 천지에 기댈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구려.”
 화예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커다란 눈에는 눈물이 금세라도 떨어질 듯 잔뜩 매달려 있었다.
 “아가씨는 일운이 두려워진 게요?”
 “네.”
 화예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촌장이 한숨을 쉬었다.
 “저 무덤 때문에 그렇소? 일운은 거짓말을 못 하는 아이니, 저 무덤이 자신의 모친의 것이라고 말을 했을 테지.”
 “했어요. 그리고 어머니를 자신의 두 손으로 직접 죽였다고도 했어요.”
 “그 말을 믿소?”
 “조금 전 촌장님께서도 일운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고 말하셨잖아요. 저는 그 말을 믿어요.”
 “그래서 두려운 것이로군. 어머니를 해친 일운이니, 나중에 아가씨도 해칠 수 있다 생각하여 두려운 것이로군.”
 “그게 아니에요.”
 화예영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오랫동안 일운을 보아 왔어요. 그는 무심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그가 어머니를 해쳤다면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그렇소. 이유가 있지.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소.”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저 자신이에요.”
 “아가씨 스스로를 두려워한다?”
 “일운은 표정이 없어요. 때로는 표정 없이 마치 인형처럼 말하고 행동해요. 저는 그래서 두려워요. 지금의 저는 위험한 처지입니다.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이 앞으로 수도 없이 있을 거예요. 그럴 때, 어쩌면 저는 일운을 이용하려 들지도 몰라요. 생명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무표정한 사물처럼 말이에요.”
 “아!”
 “그러면서 제 스스로 핑계를 댈지도 모르지요.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운이 어머니를 해쳤던 일’처럼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라는 핑계 말이에요.”
 촌장은 물끄러미 화예영을 보더니 웃었다.
 “아가씨는 일운을 좋아하고 있구려. 그를 아껴 주고 있구려.”
 “일운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요. 그가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져요.”
 “하지만 일운의 마음에는 그 누구도 쉽사리 들어갈 수가 없소. 그건 알지 않소?”
 “네. 저의 아버지는 상인이셨어요. 사람을 누구보다 잘 보시죠.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일운의 마음에는 커다란 문이 있고 그 문은 굳게 닫혀 있다고 하셨어요.”
 “아! 상인.”
 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아가씨가 누구인지 알 것 같소. 아니, 아가씨의 아버지를 아는 게지. 일운의 모친은 살아 있을 때 자주 아가씨의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곤 했었다오.”
 “일운의 어머니께서 제 아버지를 안단 말인가요?”
 “알지.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아주 잘 알고 있었다오.”
 촌장은 얼른 말꼬리를 돌렸다.
 “아가씨는 혹시 화일운의 마음이 매우 차갑고 황량하며, 따뜻한 정이 없다 생각하고 있지는 않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적어도 일운의 마음에 사람의 평범한 감정이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잘못 보았소.”
 “제가 잘못 보았다고요?”
 “일운의 마음은 사실…… 아무래도 그 얘기를 하려면 일운의 어린 시절부터 어느 정도 말해 주는 것이 좋겠군.”
 촌장은 고개를 돌려 옆을 보며 물었다.
 “괜찮겠느냐? 내가 그 이야기를 해도. 듣기에 괴롭다면 밖을 좀 다녀와도 좋다. 좀 전에 비명도 들려왔고 하니 말이다.”
 그곳에, 어느새 밖으로 나온 화일운이 서 있었다.
 화일운은 촌장을 보고 이어 화예영을 보더니, 몸을 돌려 걸어갔다.
 촌장이 멀어지는 화일운의 등을 보면서 말했다.
 “화일운의 마음은 그 겉을 보면 말라 버린 고목의 껍질처럼 차갑소. 표정에 부드러움이 없지. 하지만 속마음은 절대 그렇지 않소. 춥고 힘든 계절을 견디는 나무의 껍질이 아무리 딱딱해 진다고 해도, 그 속은 물이 흐르고 부드러운 수액이 고여 있지. 그의 속은 부드럽고 다감하오. 누구보다도 정에 약하고 따뜻하오. 하지만 그걸 표현하지 못하오. 아니, 스스로도 느끼지 못한다오.”
 “느, 느끼지 못한다고요.”
 “그렇소. 남도 알지 못하고 스스로도 느끼지 못하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촌장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아! 불쌍한 녀석. 하지만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오. 녀석을 살리기 위해서는 말이오. 녀석을 우리들의 저주로부터 벗어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말이오.”
 촌장을 말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화예영은 촌장으로부터 너무나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어, 눈도 깜박이지 못한 채 굳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 일운을 본 것은 그 녀석이 일곱 살이 되던 때였소. 우리 마을을 떠나 희망을 품고 세상으로 나갔던 소소가 돌아올 때, 일운을 데리고 있었지. 아! 소소는 바로 일운의 모친의 이름이오. 그때의 일운은, 세상의 그 어떤 아이보다 쉽게 웃고, 울고, 명랑하게 뛰어 노는 아이였다오. 나는 아직도 귀엽던 일운의 모습이 기억에서 가시질 않는구려.”
 
 
 제삼 장. 사람의 마음
 
 운이 아무리 나쁜 경우에도, 사소한 부분만 본다면 운이 좋을 수 있다.
 지금 방방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방방은 지금까지 항상 스스로를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채 태어났고, 그 외모를 이용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뻔뻔스런 심성도 지니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무귀신과 만난 것까지는 운이 좋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 터였다.
 얼굴에 달라붙은 나무귀신이 귀에 거슬리는 괴성을 지를 때, 전신의 힘이 무기력하게 빠져나갔으니까.
 그때 방방은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든 피와 기력을 빨린 채 죽은 사호와 삼호의 볼품없는 시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싫어, 절대로 그런 모습으로 죽기는 싫어.’
 그 와중에, 나무귀신이 나무를 닮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을 두고, 운이 나쁜 와중에도 운 좋은 일면이라 할 수 있을 터였다.
 오행 중 상극에는 화극목火克木이 존재한다.
 불이 나무를 극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내공의 운용법 중에는 내공의 근원을 불로 바꾸어 밀어내는 수법이 존재한다.
 삼매진화!
 화르르르르!
 불길이 솟구치자 나무귀신은 괴성을 다시 지르며 얼굴에서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뒤 불에 타들어 가더니, 빠른 속도로 재로 변했다.
 방방은 하마터면 바닥에 털썩 주저앉을 뻔하였다.
 힘이 없었다.
 안도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얼굴에 붙었던 나무귀신이 방방의 내공을 일부 빼앗아 갔던 것이다.
 내공이라기보다는 생명력 그 자체를 훔쳐 가는 것 같았다.
 칠호가 말했던 사교산의 나무귀신 전설은 거짓이 아니었다.
 오늘 방방은 그 명확한 증거를 본 것이다.
 방방은 힘이 빠지는 다리에 억지로 기운을 불어넣으며 맹도진을 보았다.
 취릭! 취리리릭!
 퍼퍼퍼퍼퍽!
 어지럽게 채찍을 휘두르며 주변에 채찍의 방어막을 만들어 내는 맹도진.
 나무귀신은 아직 맹도진의 몸에 들러붙지 못하였다.
 맹도진의 채찍은 빠르면서도 촘촘했다.
 방방은 소리쳤다.
 “불이에요, 맹 영주! 나무귀신은 불에 약해요.”
 맹도진의 몸과 채찍 끝에서 뜨거운 불길이 솟구쳤다.
 불기에 닿은 나무귀신들은 마른 땔감이 그러하듯 빠른 속도로 타들어 갔다.
 “뭐야, 이거? 불이 이 괴물의 약점이었나? 잘라도 죽지 않더니, 불에 타면 사라진다 이거지?”
 “이런 괴물이 사교산에만 있고 세상 밖으로 퍼져 나가지 않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방방도 삼매진화를 쏘며 소리쳤다.
 “이따위 약한 놈들에게 부하를 모두 잃다니. 흑당으로 돌아가서 뭐라 변명하란 말인가?”
 나무귀신들은 계속하여 재로 변했다.
 하지만 삼매진화는 내공을 빠르게 소진시킨다.
 모조리 태워 버리기엔 나무귀신의 수가 너무 많았다.
 더구나 나무귀신이 불에 타는 와중에도, 또 다른 놈들이 숲으로부터 꾸역꾸역 몰려 나왔다.
 “젠장! 정말로 생각이 없는 놈들이기는 하구나. 이건 마치 죽기 위해 계속 모여들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불로 덮인 채찍을 계속 휘두르며 맹도진은 외쳤다.
 “이러다 지쳐서 우리가 먼저 쓰러지겠다. 숲을 벗어나야 해. 어느 방향이 좋을까?”
 “기왕이면 화예영이 달아났음 직한 방향이 좋겠죠. 이쪽이에요.”
 방방이 먼저 달려갔다.
 수풀 사이로 빠르게 달려가는 방방.
 하지만 이내 맹도진이 방방을 따라잡았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괴물들이지? 생명이 없는 게 확실한데, 살아 있는 양 달려드는 걸 믿기 어렵군.”
 “사람의 피와 내공을 먹고사는 괴물이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 어렵네요. 아까 내 얼굴에 달라붙었을 때, 순식간에 내공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잘라 버려도, 그 잘린 조각이 살아서 움직였다. 이 괴물들을 죽일 방법은, 아까처럼 태워 없애 버리는 것뿐인 모양이다.”
 “혹시 고목신공을 익힌 자들이 아닐까요?”
 “고목신공은 말 그대로 사람의 몸을 단단한 나무로 만드는 무공이야. 하지만 단지 그뿐일 뿐, 저놈들처럼 죽은 채 조각이 나도 움직이는 건 불가능해. 게다가 고목신공 중에는 불기운을 피하는 수법이 있어서, 저 망할 것들처럼 쉽게 불에 타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방방이 힐끗 뒤를 돌아보다가, 몸을 떨었다.
 “쪼, 쫓아오고 있어요.”
 키잇!
 취이이이잇!
 나무귀신들은 여전히 달려왔다.
 팔 조각들과 몸통 조각들이, 발 조각들과 다리 조각들과 힘을 합하여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이렇게 도망만 치다간 끝이 없겠어요.”
 방방이 소리를 질렀다.
 “이 자리에서 끝장을 보는 게 나아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맹도진은 걸음을 멈추며 몸을 돌렸다.
 왼손에 삼매진화를 돋우고, 채찍을 든 오른손에도 삼매진화를 주입시키며 달려오는 나무귀신들을 노려보았다.
 “덤벼 봐라, 괴물들아!”
 캬아웃!
 가장 앞서 달려오던 나뭇등걸 모양의 두 발이 쭈욱 늘어나며 맹도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맹도진은 채찍을 휘둘러 그 발을 휘감으며, 왼손으로는 불길을 머금은 장력을 쏟아 냈다.
 발 모양의 나무귀신이 채찍에 감겨 돌진을 멈추는 순간, 맹도진은 자신의 뒤에서 멈췄던 방방이 다시 달아나기 시작하는 기척을 느꼈다.
 그제야 맹도진은 방방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이런 쳐 죽일!”
 목이 터져라 욕설을 퍼붓는 맹도진의 앞에서, 발 모양의 나무귀신 뒤에서 달려오던 다른 나무귀신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솟구쳐 오른 뒤, 빗물이 떨어지듯 맹도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빌어먹을! 피할 틈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맹도진은 근원지기가 손상되는 것조차 아랑곳할 여유 없이, 몸의 잠재력까지 모두 삼매진화의 불길 속으로 밀어 넣으며 외쳤다.
 “방방, 다시 만나면 죽여 버릴 테다! 이 더러운 계집년아!”
 화르르르르르르!
 
 @
 
 아까, 일운이 자신의 손으로 어머니를 죽인 사실을 들었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일운에게 그 일을 시킨 사람이 누구인지는 얘기 들었소?
 아마도 듣지 못했을 테지요.
 그렇소.
 나였소.
 바로 내가 시켰다오.
 하지만 그 전에 알아야 할 것들이 있소.
 왜 우리 마을이 사라졌는지.
 나만 홀로 이렇게 남았는지.
 왜 일운이 감정을 잃었는지.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는 감정들과의 연결 끈이 모두 끊어지게 되었는지.
 그러한 것들을 알아야만 하오.
 그래야 이 모든 일들을 이해할 수 있소.
 누구보다 잘 웃고 잘 놀던 일운을 지금처럼 만든 것은 바로 나와 그 녀석의 어머니인 소소이니까 말이오.
 우리에게 내려진 저주가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하오.
 그래야 우리 마을이 사라지던 날의 일, 일운이 자신의 손으로 소소를 죽였던 날을 일들을 이해할 수가 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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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방은 정신없이 달렸다.
 뒤에서 욕설이 들려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욕을 먹는 편이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으니까.
 맹도진은 강하다.
 그의 무공이라면 최소한 일각의 시간은 벌어 줄 것이다.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 이 저주받은 숲을 벗어나기에는 말이다.’
 쉬지 않고 숲을 달리다가, 방방은 일호가 이끌었던 또 다른 복면인 무리를 발견했다.
 살아 있는 자는 없었다.
 이곳에도 나무귀신이 나타났던 것이다.
 “아아! 도대체가 이 산은…….”
 복면인들을 휘감고 있던 나무줄기들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각이나 걱정을 할 여유가 없었다.
 맹도진이 막고 있을 나무귀신들이 이 숲의 모든 나무귀신들은 아닐 것이다.
 방방은 다시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수풀 사이에서 방방은 몸을 멈추었다.
 바닥을 따라 길게 이어진 흙의 궤적.
 나무가 없고 풀도 별로 없는 좁은 흙의 궤적이 숲 사이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기, 길이다. 사람이 다닌 길이야.”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한 올의 지푸라기를 붙잡은 사람의 심정이었다.
 사람이 있다면 나무귀신을 피할 방법도 알고 있을 것이다.
 방방은 좁은 길을 따라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숲 안에서 나무가 완전히 사라진 곳을 발견했다.
 방방은 더욱 속도를 내어 달렸다.
 멀리 나무가 사라진 곳이 보였다.
 누군가 나무를 완전히 베고 나무가 없는 공간을 만들어 둔 것이다.
 하지만 방방은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뜀박질을 멈추었다.
 좁은 길을 막고 한 명의 깡마른 사내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너는?”
 방방은 사내가 누구인지를 안다.
 사내도 방방이 누구인지 안다.
 방방은 화씨 대상단에 총관의 수양딸로서 잠입해 있었고, 그때 일운을 여러 번 보았었다.
 방방은 뒤를 돌아보았다.
 나무귀신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방방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일운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일운, 맞지? 뜻밖이구나. 너처럼 천한 종놈 하나 때문에 우리 흑당이 이렇게 고생을 할 줄 누가 알았겠느냐?”
 화일운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미간을 찡그린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방방이 조소를 머금었다.
 “도망칠까 말까를 고민하나? 지금이라도 도망치면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거야?”
 화일운은 여전히 대꾸하지 않았다.
 방방은 땅을 박차고 삼장을 한 번에 건너 뛰어 화일운의 앞으로 내려섰다.
 내려서면서 허리의 검을 뽑아 화일운의 목을 겨누었다.
 차킹!
 차가운 검날이 화일운의 목에 닿았다.
 “화예영은 어디에 있지? 순순히 말하면 네 목숨만은 남겨 주마.”
 화일운은 대답 없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돌집을 바라본 것이다.
 방방은 한차례 차갑게 웃더니, 검을 거두었다.
 “저기냐? 그래, 너희도 나무귀신을 만났을 테니까 당연히 저기 밖에는 피할 곳이 없겠구나.”
 방방은 화일운을 지나쳐 돌집을 향해 걸어갔다.
 말없이 방방의 뒷모습을 보던 화일운은 고개를 다시 돌려 숲을 보았다.
 그리고 숲의 깊숙한 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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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방은 돌집의 앞에 서더니, 오른손을 들어 일장을 내쏘았다.
 꽝!
 장력에 얻어맞은 돌집에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부서지지는 않았다.
 보기보다 훨씬 단단하게 지은 집인 모양이었다.
 “이것 봐라. 제법 튼튼한걸.”
 방방이 내공을 더 돋우어 다시 한 번 장력을 내치려는 순간, 돌집의 문이 열리며 촌장이 걸어 나왔다.
 “그렇게 힘들게 두드리실 필요 없소. 이렇게 주인이 이미 나왔지 않소. 나는 이 마을의 촌장이오.”
 “마을? 촌장?”
 방방은 주변을 둘러보며 냉소했다.
 촌장이 손짓을 했다.
 “누추한 곳이지만 안으로 들어갑시다. 안에는 또 다른 손님이 계시다오. 아무튼 우리 마을에 잘 오셨소.”
 방방은 촌장의 안내에 따라 돌집의 문을 들어섰다.
 그리고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그곳에 화예영이 앉아 있었다.
 화예영은 멍한 모습으로 앉아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방방을 보고서도 화예영은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아아! 저 손님의 마음은 참으로 곱소.”
 촌장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우리의 일을 얘기해 주었더니 저렇게 계속 눈물만 흘리고 있다오. 손님께서도 혹시 우리 마을의 이야기에 대해 듣고 싶은 마음이 있소?”
 “아니요. 나는 다른 것을 원해요.”
 “다른 것?”
 방방은 허리의 검을 뽑았다.
 그리고 그 검으로 촌장의 목을 겨누었다.
 “왜 이러는 거요, 손님?”
 “당신은 혹시 나무귀신을 알고 있나요?”
 “당연히 알고 있소.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소?”
 “하긴 알고 있으니 이렇게 튼튼한 돌집을 지은 것이겠군요. 자, 말해 봐요. 당신은 나무귀신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고 있죠?”
 “숲에서 나무귀신을 보았다면…… 불을 가지고 물리칠 수가 있을 거요.”
 “과연 그렇겠네요. 해 보니까 그랬어요. 좋아요. 이곳에서 횃불만 몇 개 만들어 가면 나무귀신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방방은 검을 거두더니 이번에는 화예영을 향해 겨누었다.
 “나를 알고 있지요, 대상단의 아가씨?”
 화예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총관의 딸. 서역으로 공부하러 보냈던 딸이 장성하여 돌아왔다고 총관이 소개해줬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거짓이었던 거죠?”
 “물론이에요.”
 방방은 빙그레 웃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진실을 말했던 기억이 별로 없답니다.”
 “영원히 거짓이 승리할 순 없어요. 언젠가는 진실이 승리를 거두는 법이지요.”
 “아가씨께서 굳이 그렇게 말한다면. 호호! 나는 진실을 적어도 한 가지는 말해 주고 싶네요.”
 방방은 오른손을 들어 화예영에게 보여 주었다.
 “여기 보여요? 아직도 핏 자욱이 좀 남아 있을 텐데. 바로 이 손이에요. 이 손이 화만재 대상인의 가슴을 뚫었답니다. 눈을 크게 뜨고 보면 보일 거예요.”
 화예영은 눈을 크게 뜨고 부들부들 떨더니, 결국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채 그녀는 말했다.
 “당신은 세상을 저주하나요? 왜 이런 짓들을 벌이죠? 내 아버지를 해치고 이젠 다시 나를 해치고 싶나요? 당신이 원하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요?”
 “내가 원하는 것? 듣지 못했나요? 흑당은 어둠의 상인. 본래 흑당이 사고파는 건 사람의 목숨, 흑당이 원하는 대가는 언제나 사람들의 절망과 고통이에요.”
 “촌장님이 말해 주셨어요. 예전에 당신네들 같은 사람이 있었다고요. 세상에 대한 그 사람의 증오는 당신네들보다 오히려 더 지독했다는군요.”
 화예영은 말을 이어 갔다.
 “잠시 그 얘기 좀 들어 볼래요? 나무귀신은 바로 그 사람으로 인해 탄생했다는 거예요. 그는 지금으로부터 약 삼백여 년 전에 이 마을을 찾아왔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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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귀신!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이름 부르는 존재는 바로 그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해요.
 삼백 년 전의 그 사람은 이곳을 찾아오기는 했으나 스스로의 이름도 밝히지 않았대요.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자신도 기억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그는 몸이 성치 못한 채로 왔대요.
 팔과 다리가 거의 없고, 눈과 귀마저 성치 않았으며, 몸에서 살아 있는 부분이 죽은 부분보다 오히려 적었다고 해요.
 마을 사람들은 죽어 가는 그를 사교산에서 나오는 온갖 약초를 동원하여 살리려 했대요.
 하지만 소용없었죠.
 그는 놀랍게도 온몸에 피가 아니라 독액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는 그렇게 스스로 살아났대요.
 그는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 살았는지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몇 가지만은 기억했대요.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요.
 그는 늘 말했대요.
 자신이 신과 싸웠노라고요.
 인간을 벗어나 신이 되어 버린 자와 싸워 이렇게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들었어요.
 그는 자신이 본래 죽었는데 스스로 다시 살아났으며, 그래서 그 자신도 곧 신이 될 거라고 말했대요.
 신이 아니면 악마가 될 거라고요.
 아무튼 그는 살아나긴 했으나, 손과 발 모든 것을 거의 잃은 상태였다고 해요.
 보지 못했고 말도 거의 하기 힘들었지요.
 그는 말하자면, 어느 정도 생각하고,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는 고깃덩이에 지나지 않았지요.
 혼자서는 심지어 움직일 수조차 없었대요.
 상상해 보세요.
 스스로 생각하는 고깃덩이.
 몸속에 끔찍한 독액이 흐르는 고깃덩이가 계속 세상을 저주하면서 살아 있는 거예요.
 그건 살아도 산 것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그의 마음 깊은 곳에 깃든 신에 대한 증오와 인간에 대한 저주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고 해요.
 그는 스스로 인간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기를 원했대요.
 죽어도 죽지 않고, 손과 발이 없어도 움직일 수 있는 존재!
 단전이라는 거추장스런 제약이 없이도 끊임없이 내공을 증가시키고 강해질 수 있는 새로운 존재가 되기를 원했다고 들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 그를 구해 주었지만, 차츰 그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대요.
 한 명의 사람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증오와 원념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깨닫기 시작한 것이지요.
 어느 날 마을 주민들은 해서는 안 될 결정을 내려요.
 마을 어귀에서 곡괭이와 몽둥이를 들고서 모인 마을 주민들은 그를 찾아갔어요.
 그리고 그를 거적에 말아 매질하기 시작했죠.
 눈도 제대로 없고, 손발도 거의 남지 않은.
 오직 천천히 움직이는 입뿐인 고깃덩이는 아무리 때려도 죽지 않았어요.
 누군가 나서 칼로 찔러도, 찢어진 상처 같은 입 사이로 계속 거친 호흡이 들어가고 흘러 나왔다.
 마을 주민들은 모두 느낄 수 있었어요.
 그 호흡에 깃든 살의.
 세상 모두를 죽이겠다는 살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부숴 버리고자 하는 증오.
 마을 주민들은 결국 그를 마을 뒤편의 커다란 고목나무 아래에 묻었다고 해요.
 산채로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그를 집어넣은 뒤, 그 위에 흙을 덮었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실수였다고 하네요.
 그 고목 아래에서, 흙속에 파묻힌 채로 그는 결국 깨달았단 거예요.
 강해지는 방법.
 죽어도 죽지 않고, 손과 발이 없어도 움직일 수 있으며 단전이 없어도 끊임없이 강해질 수 있는 새로운 존재로 변하는 방법을 그는 마침내 찾아냈던 겁니다.
 바로 스스로 나무가 되는 것이에요.
 온몸으로 공기와 햇살을 흡수하고 뿌리로는 물을 빨아들여 생명력을 강화시키는 나무처럼, 온몸으로 사람의 피와 정기와 기력을 흡수하면서 영원히 살아가는 사람 나무가 되는 방법을 그는 마침내 찾아냈던 거예요.
 그것이 나무귀신이에요.
 나무귀신의 능력은, 이미 보고 확인하였지요?
 하지만 숲에 있는 나무귀신은 진정한 나무귀신이 아니라고 하네요.
 모두 나무귀신이 죽고 난 후의 시체라고 하네요.
 꽤 오래전에, 누군가 숲의 나무귀신을 대부분 죽였고, 그래서 숲에는 시체만이 남아 있다고 나는 조금 전에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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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도진은 모든 기력을 다 쏟아 내고 지쳐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얼마나 많은 나무귀신들을 태웠는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
 그저 무수히 태우고 또 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나무귀신의 숫자는 맹도진이 태운 숫자보다 많아 보였다.
 그 점에 더욱 맹도진을 절망시켰다.
 ‘젠장! 이렇게 죽게 되는 건가? 방방, 그년도 함께 저승으로 데려가야 하는데.’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화일운이 나타났다.
 화일운은 나타난 후, 나무귀신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맹도진을 향해 걸어왔다.
 “이러면 안 되지 않습니까? 가세요. 이러면 안 됩니다. 모두 알고 있지 않습니까?”
 처음에 맹도진은 화일운이 자신을 향해 말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채찍을 고쳐 잡으며 냉소했다.
 “너는 화씨 상단의 종놈이구나. 네까짓 놈이 지금 감히 내게 충고를 하겠다는 거냐?”
 “안 됩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화일운은 맹도진의 말에 아랑곳없이 다시 중얼거렸다.
 그제야 맹도진은 화일운의 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를 알아 차렸다.
 화일운이 걸어올 때, 나무귀신들이 바다가 갈라지듯 좌우로 비켜섰기 때문이다.
 “이, 이게 어떻게……? 너, 너는 나무귀신과 말을 할 수 있단 말이냐?”
 화일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맹도진의 앞에 섰다.
 화일운의 눈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감정의 흐름이, 그 깊으면서도 흐릿한 눈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도, 도대체 어떻게……. 네놈은 나무귀신과……?”
 “대상단을 망하게 만든 것이 흑당이라 들었다. 너는 흑당에서 나온 자냐?”
 화일운이 맹도진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그, 그렇다. 나는 맹도진……. 이, 이런.”
 자신도 모르게 대답하던 맹도진은, 실태를 깨닫고는 인상을 썼다.
 아무리 기력이 약해지고 지친 상태라고는 하나, 자신의 말을 끊으며 되물은 애송이에게 스스로 먼저 대답한 형국이 되지 않았는가?
 맹도진이 입을 다물고 노려보자, 화일운이 돌연 그의 머리를 쥐었다.
 “맹도진, 너를 구하러 온 게 아니다. 더러운 피로 이분들을 물들일 수 없어서 왔다.”
 맹도진의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힘이 갑자기 빠져나감을 느꼈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으으.”
 그 느낌을 끝으로, 맹도진은 정신을 잃었다.
 맹도진은 쓰러졌고, 화일운은 그런 맹도진을 어깨에 걸머졌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모두, 이러지 않기 위해서 그토록 많은 시간들을 보냈지 않습니까? 이러지 않기 위해서 모두 그토록 큰 희생을 치렀지 않습니까?”
 화일운은 나무귀신들을 보았다.
 나무귀신들도 화일운을 보았다.
 눈이 있는 나무귀신은 눈으로 보고, 눈이 없는 나무귀신은 온몸으로 그를 보았다.
 
 -일운이다.
 -일운이 돌아왔다. 일운이다.
 
 조각들 중 입이 달린 부위들은 여기저기서 중얼거렸다.
 화일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일운은 그들에게 감정이 없음을 안다.
 또한 생각이 없음도 알고 있다.
 그들은 이미 죽었다.
 그저 저주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죽기 전의 그들이 지녔던 마지막 감정의 잔재가 아직 남아 있기에, 그저 화일운을 기억하고 반응할 뿐이었다.
 나무귀신들은 천천히 흩어졌다.
 화일운은 맹도진을 어깨에 걸머진 채, 돌집을 향해 돌아갔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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