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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커넥션 1권-1

2015.01.14 조회 5,175 추천 66


 1. 전설의 시작
 
 “범석아, 여기 좀 잡아줘.”
 “준태야, 꼭 이래야겠냐? 그냥 이번 기회에 한 대 장만하지 그러냐?”
 “미쳤냐! 아마겟돈 캡슐 한 대가 얼마인데, 그걸 어떻게 사?”
 “야! 요즘은 12개월 무이자 할부도 되는데, 이런 개고생을 할 바에는 차라리 사는 게 낫지.”
 “그건 너 같은 부르주아들 얘기이고.”
 캡슐의 부품으로 보이는 여러 장치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이곳은 12평 남짓한 원룸이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는 낡고 오래되어 빛이 바랜 고물 캡슐 한 대가 뚜껑이 열린 채, 앙상한 속을 드러낸 상태로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상황을 보니 친구로 보이는 두 사내는 캡슐을 조립하거나 고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방 안에 널려진 여러 부품들에는 저마다 다른 게임회사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지랄하고 있네, 게임 열심히 해서 돈을 벌면 되지.”
 “야! 그것도 레벨이 어느 정도 받쳐줬을 때나 가능한 얘기지, 지금 우리 레벨로는 장비 맞추기도 버거워.”
 “짜샤! 남자라면 일단 지르고 봐야지.”
 “됐거든, 헛소리 그만하고 캡슐 스패너나 줘봐.”
 “여기, 그나저나 이게 정상으로 작동할까?”
 “당연하지!”
 “만일 안 되면 어떡해?”
 “너, 계속해서 재수 없는 얘기만 할래?”
 “그게 아니라… 온갖 캡슐의 부품을 섞어서 조립한 이 고물캡슐이 작동되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냐?”
 “캡슐이 아무리 구식이라고 해도 아마겟돈의 메인보드를 삽입하면 정상적으로 작동할 거야.”
 “그건 네 생각이지.”
 “아냐, 분명 작동될 거야.”
 원룸의 주인이자 캡슐의 주인인 준태와는 달리 범석은 캡슐의 작동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조립하고 있는 캡슐은 준태가 캡슐 폐기장을 돌며 구해온 각종 구식 캡슐의 부품으로 조립한 짝퉁 캡슐이었다.
 그러나 준태는 범석의 회의적인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캡슐을 조립했다.
 덕분에 앙상한 속을 드러냈던 캡슐은 시간이 흐르면서 제법 그럴싸해지고 있었다.
 “준태야, 아마겟돈의 메인보드는 어디에다 삽입해야지?”
 “안쪽에 매인보드용 슬롯이 있잖아, 거기에 장착해.”
 “메인보드용 슬롯에는 이미 다른 보드가 달려 있는데?”
 “아! 그건 건들지 말고, 바로 그 뒤에 있는 슬롯에다 달아.”
 “이건 뭔데?”
 “그건 원래 이 캡슐에 달려 있던 동조 보드야.”
 “동조 보드라고, 그럼 원래 이 캡슐은 성인용 섹스게임의 캡슐이었냐?”
 “응.”
 동조보드는 19금 성인용 캡슐에만 달려 있는 특별한 부품으로, 하나의 캡슐로 여러 가지 게임을 즐기게 해주는 일종의 호환장치였다.
 그러나 아마겟돈과 같은 정통 RPG 가상게임에는 사용하지 못하는 장치였다.
 왜냐하면 정통 RPG 가상게임은 성인용 게임과는 달리 월정액 외에도 캡슐 판매를 통한 이익이 상당했다.
 때문에 정통 RPG를 서비스하는 게임사들은 굳이 호환장치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호환에 대한 표준도 정립이 안 된 상태였다.
 “야, 그러다가 아마겟돈 메인보드와 충돌하는 것 아냐?”
 “걱정 안 해도 돼, 동조보드에 부착되어 있던 성인 게임용 메인보드는 이미 제거했어.”
 “그래도 동조보드를 아예 빼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전원회로가 동조보드에 달려 있어서 그걸 빼면 캡슐이 작동 안 돼.”
 “확실히 구식이라 다르긴 다르구나.”
 “야! 잔소리 말고 얼른 끼우기나 해.”
 “준태야, 만일 이 캡슐이 정상으로 작동되어서 아마겟돈을 이용할 수 있으면 그때는 한잔 진하게 쏘는 거다.”
 “캡슐이 작동만 되면 앞으로는 캡슐방 이용료가 굳는데, 당연하지.”
 캡슐방 이용료는 월정액 가입자의 경우 대략 시간당 3천 원이다.
 사실 몇백만 원이나 하는 캡슐 비용을 감안하면 캡슐방 요금이 결코 비싼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골 출신의 가난한 학생인 준태에게 시간당 3천 원의 캡슐방 이용료는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오픈베타 때부터 아마겟돈을 했던 준태가 아직까지 고렙이 되지 못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캡슐방 이용료의 압박 때문이었다.
 “준태야, 슬롯에다 메인보드 끼웠다.”
 “나도 헤드셋 연결하는 것 끝냈어.”
 “전원을 꽂아볼까?”
 “응.”
 “과연 작동이 될지…, 전기 콘센트에 플러그 연결한다.”
 “그래.”
 준태는 캡슐의 조립을 끝내자마자 헤드셋을 끼고는 확인에 들어갔다.
 잠시 후, 전원이 들어오면서 모터가 돌아가는 진동이 들리는가 싶더니 캡슐의 뚜껑이 자동으로 닫혔다.
 준태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캡슐의 변화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아마겟돈에 접속되었습니다. 홍채인식에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과연 정상적으로 접속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준태는 홍채인식을 위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시 후 캡슐의 한쪽 벽면에서 분출된 붉은색 빛이 자동으로 준태의 홍채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홍채 인식이 끝났습니다.
 ‘오! 된다.’
 -계정 확인을 위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대시기 바랍니다.
 “아이디는 KTF3*** 비밀번호는 N64***00.”
 -1개의 캐릭터 [박격포]가 확인되었습니다. [박격포]캐릭터를 불러올까요?
 “그래.”
 ‘아싸! 성공이다.’
 -[박격포]캐릭터를 불러왔습니다. 천외지천 월드에 접속하시겠습니까? 레볼루션 월드에 접속하시겠습니까?
 ‘어! 이상하네? 설마 실패한 것은 아니겠지.’
 전 세계 계임순위 1위를 자랑하는 아마겟돈은 원래 준태가 즐기던 천외지천이라는 게임과 레볼루션이라는 각각의 다른 게임이었다.
 그러던 것이 얼마 전에 두 개의 게임사가 하나로 병합되면서 아마겟돈이라는 통합 명칭으로 불려졌다.
 그러나 게임 자체가 통합된 것은 아니고 다른 월드로 구분되어 있어서 마치 각기 다른 게임이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이전에는 접속 시에 월드를 선택하라는 멘트가 나오지 않고 자동으로 천외지천에 접속되었다.
 “천외지천.”
 ‘아! 제발 접속이 되어야 하는데.’
 -어서 오십시오, 박격포 님! 모험의 세상, 천외지천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휴~! 이상이 없구나.’
 평소와는 달리 월드를 선택하라는 멘트에 당황했던 준태는 정상적으로 천외지천에 접속이 되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불안해서 실제 게임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확인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게임은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준태야, 어떻게 됐어?”
 “성공했어.”
 “진짜?”
 “그래.”
 “야, 축하한다. 한턱 쏴라!”
 “일단 나가자.”
 캡슐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준태는 조립을 도와준 범석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어쨌든 캡슐방의 압박에서 해방된 오늘은 맥주라도 마시며 기념하고 싶었다.
 
 * * *
 
 “격포야, 오른쪽에 늙은 처녀귀신이 떴다.”
 “O.K! 내게 맡겨.”
 “봉팔아, 나도 원기회복 좀 시켜줘.”
 “걱정 말고, 격포를 도와서 처녀귀신들이나 쓸어버려!”
 어제 캡슐을 조립했던 준태는 그간의 한을 풀 생각인지 아침 일찍 천외지천에 접속해서 저녁이 된 지금까지 주구장창 게임만 했다.
 덕분에 1주일 전부터 벼르고 별러왔던 600레벨을 마침내 달성했다.
 “오! 아이템이다.”
 “격포야, 얼른 확인해봐.”
 “에이, 별거 아냐! 요즘 종종 나오는 이벤트 템이야.”
 파티원들과 처녀 귀신을 잡던 격포는 금색으로 번쩍이는 아이템이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반사적으로 주워들었다.
 그러나 확인 결과 그리 값나가지 않는 이벤트 아이템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실망스런 표정으로 파티원들을 둘러봤다.
 “격포야, 용의 심장이냐?”
 “응.”
 “아깝다, 원혼 들린 귀신 세트가 나오면 좋을 텐데.”
 “그러게. 여기서 몇 시간이나 사냥했는데 어떻게 된 게 귀신 세트가 하나도 안 나오냐?”
 “별수 없지.”
 “누구, 용의 심장 필요한 사람?”
 “난 됐어.”
 “나도.”
 “봉팔이, 넌?”
 “용의 심장은 나도 있어, 그냥 귀찮으니까 네가 가져.”
 공격력과 방어력을 랜덤으로 올려주는 용의 심장은 방학을 맞아 실시하는 이벤트에 맞춰서 나오는 행사용 아이템이었다.
 즉 같은 용의 심장이라고 해도 공격력과 방어력을 상승시키는 수치가 달랐고 지속시간도 달랐는데, 이벤트 안내에 의하면 공격력과 방어력을 영구적으로 상승시켜주는 용의 심장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종종 나오다 보니 다들 몇 개씩은 갖고 있었고, 복용해보니 하나같이 공격력과 방어력을 일시적으로 소폭 올려줬다.
 때문에 파티원들은 굳이 필요 없다며 사양했고 결국은 이를 주운 격포가 차지했다.
 “격포야, 계속 사냥할 거냐?”
 “왜?”
 “배 안 고프냐? 밥이나 먹고 와서 하자.”
 “봉팔아, 한 끼 굶는 게 대수냐? 그냥 사냥이나 계속하자.”
 “야! 점심도 안 먹었는데 어떻게 저녁까지 굶어?”
 “그래, 격포야.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 하자! 3일 후, 동아리 모임도 있는데 준비도 해야지.”
 “반디야, 동아리 모임이 글피였냐?”
 “그래, 그때는 우리 조가 과제를 발표하는 날인데 이틀 정도는 시간 내서 준비해야지.”
 “어떡하지, 난 준비를 하나도 안 했는데?”
 “걱정 마, 과제 준비는 내가 했어.”
 “낄낄~! 반디, 너라면 그랬을 줄 알았다.”
 “대신 발표는 네가 해야 해.”
 “헤헤헤~ 그 정도 수고는 내가 해야지.”
 봉팔과 반디를 비롯해서 파티원들은 한강대학교 캡슐 조립 동아리 회원들로, 격포와는 동기 사이였다.
 게임보다는 캡슐을 조립하는 것을 더 좋아했던 이들이 아마겟돈을 즐기게 된 배경에는 격포와 봉팔이의 선동 때문이었다.
 봉팔은 다름 아닌 범석이었다.
 게임을 더하고 싶었던 격포는 파티의 유일한 홍일점인 반디까지 그만하자고 하자 못 이긴 척 따랐다.
 그러나 단짝 친구인 봉팔에게는 밥 먹고 다시 만나자는 귓속말을 날렸다.
 그때 사냥터 아래쪽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혼비백산해서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마적단이다.”
 “흑호방 길드가 나타났다.”
 “마적단이 출몰했다, 모두 피해라!”
 “여러분, 빨리 피하세요.”
 마적단은 천외지천을 장악한 3개 연합 9개의 초대형 길드를 지칭하는 일반 플레이어들의 은어였다.
 그들은 높은 레벨과 길드 간 연합을 바탕으로 천외지천의 주요 사냥터와 몇몇 도시를 장악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지금처럼 필드에서 일반 플레이어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대다수의 일반 플레이어들은 너무도 막 나가는 그들의 만행이 지긋지긋했지만 게임에서는 레벨이 계급이기에 어쩔 수 없이 참고 지내야 했다.
 또 맞서 싸우려고 해도 그들의 레벨이 워낙 높고 장비가 좋아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아우~! 저것들, 내가 레벨만 되면 다 죽이는 건데.”
 “저것들 꼴 보기 싫어서라도, 하루빨리 레벨을 올려야 하는데.”
 “야! 뭐해? 얼른 접속 종료하자.”
 “나쁜 놈들, 언제고 현실에서 걸리기만 하면 그때는 그냥 콱!”
 어차피 이쯤에서 사냥을 멈추려고 했던 격포 일행은 마적단을 향해서 한마디씩 내뱉고는 접속 종료에 들어갔다.
 그런데 재수가 없었는지 바로 뒤쪽에서 또 다른 마적단 5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격포 일행이 홧김에 내뱉은 말은 들었는지, 씩씩대며 다가왔다.
 “이 허접들아, 아니꼽냐? 아니 꼬면 니들도 레벨을 올려?”
 “꼭 X도 아닌 것들이 뒤에서 깝죽댄다니까.”
 “야! 니들이 우리를 다 죽인다고 했지, 어디 죽여 봐?”
 “봉팔아, 조심해!”
 “반디야, 오지 마!”
 빠르게 다가온 마적단은 그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했던 봉팔을 향해 대뜸 무기를 휘둘렀다.
 봉팔은 당황해서 뒤로 물러났고, 그사이 일행 중에서 레벨이 가장 높은 반디가 반격을 했다.
 그러나 레벨이 높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격포 일행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얘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683레벨에 불과한 반디의 공격은 너무도 허무하게 무위로 돌아갔고, 봉팔은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해서 사라졌다.
 뒤쪽에 있어서 안전한 상태였던 격포는 봉팔이가 죽고 반디까지 위험에 빠지자 차마 그대로 로그아웃을 할 수 없어서 소리를 지르며 가장 강력한 공격스킬인 질풍검을 날렸다.
 “멈춰!”
 “어라! 네놈도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야! 저놈도 죽여.”
 “이놈, 받아라.”
 붕-!
 격포가 날린 스킬은 반디를 뒤쫓던 사내의 등판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그러나 레벨과 장비 차이 때문인지 상대의 피 통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다만 사내가 스킬에 얻어맞고 주춤한 틈을 이용해서 반디가 뒤로 물러났을 뿐이다.
 그런데 그 덕분에 이번에는 격포가 다른 마적단의 공격에 노출되었다.
 한편 운 좋게 위기를 벗어난 반디는 자신을 도와주다가 위기에 빠진 격포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격포야, 피해.”
 “반디야, 내 걱정 말고 어서 튀어!”
 “꼴값들 하고 있네.”
 “누가 보내줄 것 같아?”
 “건방진 놈! 분수도 모르고 우리에게 덤비다니, 두 쪽으로 쪼개주마.”
 “이놈, 내 추풍장을 받아라.”
 두 명의 마적단이 양쪽에서 공격을 해오자 격포는 반격하는 척 검을 고쳐 잡다가 재빨리 몸을 틀어 피했다.
 격포를 목표로 쇄도했던 두 개의 스킬은 간발의 차이로 비껴나갔다.
 그러나 그사이 다른 두 명의 친구가 잿빛으로 변해서 사라졌다.
 “반디야, 뭐해? 빨리 튀어!”
 “너… 넌?”
 “난 이런 놈들에게 절대 안 죽으니까, 어서 피해.”
 “하지만…….”
 “어서! 네가 피해야 나도 피하지.”
 친구들은 다 죽고 남은 이는 격포와 반디뿐이었다.
 반디는 격포를 두고 도망칠 수 없어서 우물쭈물 거렸다.
 격포는 걱정 말라는 뜻으로 씩 미소를 그려줬다.
 격포의 미소를 본 반디는 자신이 피해야 격포가 피할 수 있음을 깨닫고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반디가 피하는 것을 본 격포는 5명의 마적단을 향해 악을 쓰기 시작했다.
 “찌질이들아, 네놈들도 남자라면 약한 여자는 건들지 말고 나랑 붙자.”
 “오냐, 이놈! 네가 운 좋게 공격을 피하더니 겁 대가리를 상실했구나.”
 “건방진 놈, 네놈의 주둥이부터 뭉개주마.”
 격포의 도발에 마적단은 도망치는 반디는 신경 안 쓰고 격포에게 다가왔다.
 격포는 소리치는 와중에 재빨리 용의 심장을 꺼내서 복용했다.
 -용의 심장을 섭취했습니다.
 -30분간 공격력과 방어력이 100 상승합니다.
 ‘100이라, 이걸로 될까? 아마 어림도 없겠지!’
 비록 30분이지만 공격력과 방어력이 100이나 상승하다니, 지금까지 섭취한 용의 심장 중 최고로 높은 능력치였다.
 그러나 겨우 100이 증가한 상태로 마적단과 정면 대결은 무리였다.
 때문에 격포는 주변을 돌면서 도망칠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마적단들도 격포의 의도를 눈치 채고 동시에 공격을 가했다.
 ‘아!’
 어찌어찌 두 개의 공격은 피할 수 있겠지만 교묘하게 피할 방향까지 계산해서 날아온 세 개의 공격은 너무도 완벽했다.
 하지만 눈뜬 채로 죽을 수는 없기에 격포는 찰나의 틈을 파악해가며 공격을 피하기 시작했다.
 슉!
 스륵-!
 “헉!”
 ‘된다. 잘하면 피할 수 있겠다!’
 귀신같은 몸놀림으로 4개의 공격을 피해낸 격포는 잘하면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마적단도 놀면서 레벨은 올린 것은 아닌지 당황하지 않고 두 번째 공격스킬을 날렸다.
 펑!
 “커억!”
 -불발탄 님으로부터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치명적인 타격의 후유증으로 5초간 동작불능 상태에 빠집니다.
 꽝!
 “악!”
 -사망하셨습니다.
 -용의 심장 5개를 흘렸습니다.
 -1레벨이 하락합니다.
 ‘빌어먹을.’
 
 * * *
 
 “망할 놈들, 더럽고 치사한 놈들, 벼락 맞고 뒤질 놈들!”
 캡슐을 빠져나온 격포는 분이 안 풀려서 자신을 공격했던 마적단을 향해서 온갖 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욕을 하면 할수록 그런 자들에게 변변한 저항도 못한 자신의 처지가 한심해졌다.
 “아우~! 그것들, 죽인다. 죽이고 만다!”
 꼭 자신의 복수가 아니라고 해도 게임을 위해서 마적단 같은 자들은 심판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길드 순위 1위부터~9위까지의 길드가 합쳐진 것이 마적단이었다.
 그러다 보니 천외지천 내에서 그 어떤 세력이나 길드도 그들과 맞서는 자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마적단이 그리 설치고 다니는 것도 천외지천 내에서 그들을 견제할 세력이 없어서였다.
 “젠장, 어디 강한 길드가 없을까?”
 강한 길드가 있을지언정 마적단과 맞서는 길드는 없었다.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격포는 이내 체념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게 복수를 포기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런 길드가 없으면 내가 만든다.”
 사실 이건 희망사항이지 꼭 그렇게 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스스로를 위로해야 분이 풀렸다.
 “오늘 같은 날 레볼루션이나 해볼까?”
 사망 페널티 때문에 24시간 동안은 천외지천에 접속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같은 아마겟돈이라고 해도 레볼루션 월드에는 접속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천외지천이나 레볼루션을 즐기는 많은 플레이어들은 다른 쪽 월드에도 캐릭터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동안 캡슐방을 이용해야 했던 격포는 이용료의 압박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그래, 캡슐도 있는데 해보는 거야.”
 급히 저녁을 챙겨 먹은 격포는 다시금 캡슐에 들어가서 접속 절차를 밟았다.
 -[박격포]캐릭터를 불러왔습니다. 지금은 사망 페널티 때문에 천외지천 월드에 접속하실 수 없습니다. 레볼루션 월드에 접속하시겠습니까?
 “그래.”
 ‘뭐가 이상한데?’
 -어서 오십시오, 박격포 님! 꿈과 모험이 살아 숨 쉬는 레볼루션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엥! 캐릭터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냐?’
 아마겟돈이라는 같은 게임이라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형식의 문제이지 실제로는 각각 다른 게임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월드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캐릭터를 생성해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천외지천의 캐릭터가 그대로 불리어 오는 것 같았다.
 번쩍-!
 츠파파팟.
 “헙!”
 접속과 동시에 눈 부신 빛에 휩싸인 격포는 나무가 빽빽하게 자란 원시림에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레볼루션 월드에 접속한 격포는 자신의 상태부터 확인하기 위해 스텟 창을 띄웠다.
 
 이름: 박격포
 레벨: 599
 별호: 없음
 주 직업: 일류 낭인무사
 보조 직업: 자유표사
 소속문파: 없음
 성향: 중립
 명성: 50 악명: 0
 생명력: 6,108 내공(마나): 4,304
 피로도: 0%
 공복도: 18%
 공격력: 300 방어력: 347
 
 -기본 스텟-
 근력: 401 체력: 1,402 민첩: 191 기력:1,001
 스텟 포인트: 0/0
 
 -특수 스텟-
 집중: 26 정확: 38 의지: 23
 
 “헉! 정말로 박격포가 와버렸네.”
 믿을 수 없게도 천외지천에서 키운 박격포 캐릭터가 레볼루션에 소환되었다.
 격포는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 이곳이 천외지천인가 싶어서 주변을 살폈다.
 그때 창공을 가르는 2마리의 거대한 새가 때마침 나타났다.
 그것들은 다른 게임에서나 또는 아마겟돈의 광고화면에서 몇 번 봤던 와이번이 틀림없었다.
 이는 이곳이 레볼루션임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무협을 기본 배경으로 하는 천외지천에는 와이번이라는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남들과 달리 다른 월드의 캐릭터가 그대로 넘어온 사실에 당황한 격포는 그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조립한 캡슐에 달려 있던 동조보드 때문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은 그것밖에 없었다.
 ‘버그 신고를 해야 하나?’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상태는 일종의 버그 아닌 버그였다.
 때문에 격포는 이 사실을 게임사에 알려야 할지 망설였다.
 그 순간 계속해서 창공을 선회하던 2마리의 와이번이 괴성을 지르며 날아왔다.
 아마도 녀석들은 격포를 먹잇감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젠장, 이대로 죽을 수는 없지.”
 알려지기로 와이번은 900레벨대의 몬스터였다.
 아무리 다른 월드라고 하지만 599레벨의 격포가 와이번을 상대해서 이길 수는 없었다.
 게다가 지금 나타난 녀석들은 이름이 있는 것이 분명 보스급 몬스터였다.
 그러기에 격포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을 쳤다.
 하지만 와이번들은 그 거대한 몸뚱이를 이용해서 나무들을 통째로 부서트리며 다가왔다.
 게다가 날개가 달린 녀석들은 격포를 희롱이라도 하는 것처럼 양 방향에서 포위하듯 달려들었다.
 “망할 놈들, 그냥은 안 죽는다.”
 도망칠 수 없다는 생각에 격포는 인벤을 오픈해서 용의 심장을 찾았다.
 6개나 있던 용의 심장은 마적단에게 죽으면서 5개를 흘려서 딸랑 하나만 남아 있었다.
 ‘어차피 많이 먹는다고 해서 중복도 안 되는데 하나면 충분하겠지.’
 와이번의 쇄도로 마음이 촉박한 격포는 천외지천과는 달리 용의 심장이 ?로 표시되는 것을 못 보고 지나쳤다.
 그리고는 대뜸 용의 심장을 꺼내서 꿀꺽 삼켰다.
 “띠링~! 띠링~!”
 -막대한 기운이 담겨 있는 드래곤 하트를 섭취했습니다.
 -섭취한 드래곤 하트의 영향으로 공격력이 영구적으로 8,000 증가합니다.
 -섭취한 드래곤 하트의 영향으로 방어력이 영구적으로 8,000 증가합니다.
 -드래곤 하트에서 절대의 궁극스킬 [드래곤 브레스]를 흡수했습니다.
 -드래곤 하트에서 변신스킬 [폴리모프]를 흡수했습니다.
 “헉! 드래곤 하트라고?”
 천외지천의 이벤트 아이템인 용의 심장이 어떻게 해서 드래곤 하트로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라 주둥이를 쩍 벌리고 달려드는 와이번부터 처리해야 했다.
 “끼아루룩!”
 “시끄럽다, 이놈들아.”
 스각.
 싹둑-!
 격포는 흉포하게 악을 지르는 정면의 와이번을 향해 낭인 무사들의 대표 스킬이라고 할 수 있는 삼재검법을 펼쳤다.
 그리고는 이내 몸을 돌려서 뒤쪽의 와이번을 향해서 검을 깊숙이 찔렀다.
 푹!
 “꽥!”
 “쿠웨웩.”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하! 내가 이겼구나.”
 두 마리의 와이번을 죽이면서 한꺼번에 2레벨이나 올랐다.
 격포는 자신이 저지른 어마어마한 일이 믿기지 않아서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사이 시체로 변한 와이번은 시간이 지나면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격포는 와이번이 흘린 것으로 보이는 두 개의 구슬을 무의식중에 주워서 챙겼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900레벨을 훌쩍 넘는 보스급 와이번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용의 심장, 아니 드래곤 하트를 섭취해서였다.
 격포는 드래곤 하트 복용 직후 들었던 메시지를 떠올리며 상태 창을 열었다.
 아니다 다를까 상태 창의 공격력과 방어력은 사이좋게 8천씩 올라가 있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의 공격력과 방어력이라면 장비를 그럭저럭 착용한 1,000 레벨대의 능력치와 얼추 비슷할 것 같았다.
 ‘스킬도 확인해볼까?’
 드래곤 하트의 효험은 공격력과 방어력의 증가만이 아니었다.
 격포는 스킬 창을 열어서 드래곤 브레스와 폴리모프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드래곤 브레스-SSS급]
 지상 최강의 존재 드래곤에게 부여된 권능으로,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파괴하는 궁극의 공격스킬이다.
 단 너무도 강력한 스킬이기에 마나의 소모가 엄청나고 몇 가지 제약이 따른다.
 분류: 액티브
 종류: 무기를 이용한 공격스킬(어떤 무기도 사용 가능)
 숙련도: 0%
 위력: 스킬 공격력+12,000~18,000
 마나(내공)소모: 1회 시 10,000
 쿨 타임: 10초
 기타: 관통형 스킬이라 경우에 따라서는 다수의 적에게 동시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사용제한: 1일 3회
 
 [폴리모프-SS급]
 9서클 마법으로,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외모를 상당 부분 변경할 수 있다.
 하지만 성별 전환과 캐릭터 명칭 변경은 불가능하며 시전자의 얼굴 윤곽과 이목구비를 기본으로 하기에 샘플의 모습과 실제 폴리모프한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분류: 액티브
 종류: 외모를 변경하는 변신 스킬
 숙련도: 0%
 마나(내공)소모: 1회 변경 시 500
 시간제한: 없음
 기타: 숙련도가 올라가면 샘플을 직접 제작할 수 있다.
 
 “오! 세상에.”
 드래곤 브레스는 현재까지 공개된 스킬 중 최고의 등급이라는 트리플 S급 스킬이었다.
 천외지천이나 레볼루션이나 스킬의 등급은 가장 낮은 E등급부터 시작해서 D<C<B<A<S<SS<SSS까지 총 8개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런데 트리플 S급 스킬은 만렙을 달성한 현경의 고수들 중에서도 배운 사람이 2명에 불과하다는 최강의 스킬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위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격포의 내공(마나)이 턱없이 부족해서 아직은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문제는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을 장만하다 보면 언제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버그 신고는 절대 할 수 없지.’
 공격력과 방어력의 증가에 이어서 강력한 스킬까지 얻었는데 버그 신고를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버그 신고를 해서 이 일이 알려지면 게임사가 그 모든 것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가능성이 높아서였다.
 “어떻게 될 줄 모르니까 모습을 바꿔볼까?”
 비록 캐릭터 명칭은 바꾸지 못한다고 해도 폴리모프 스킬을 사용하면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캐릭터 명칭은 다른 플레이어가 볼 수 없게 비공개로 한다면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들키지 않을 것 같았다.
 격포는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폴리모프 스킬을 시전했다.
 다행히 폴리모프 스킬에는 여러 모습의 샘플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모습을 바꿀 수 있었다.
 “샘플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네. 그래도 아쉬운 대로 이 정도면 되겠지.”
 폴리모프 스킬을 통해 모습을 바꾼 격포는 바뀐 자신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봤다.
 폴리모프라고 해도 자신의 얼굴윤곽과 이목구비를 기본으로 해서 그런지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두 개의 얼굴에서 상당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니는 것보다는 이게 더 나았다.
 그때 문득 자신의 복장이 여전히 천외지천의 경갑 차림이란 사실이 떠올랐다.
 ‘레볼루션은 판타지 배경의 세상인데, 이런 옷을 입고 다니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이왕 정체를 감추기로 작정한 이상, 완벽해야 했다.
 복장 문제로 잠시 고민하던 격포는 사냥을 하다가 이곳의 아이템이 나오면 그것들을 착용한 후에 레볼루션 월드의 도시를 구경하기로 했다.
 “아차! 아까 주운 아이템이 뭔지 살펴볼까?”
 본격적으로 레볼루션을 돌아보려고 했던 격포는 와이번을 잡고 얻은 두 개의 구슬이 생각나서 확인에 들어갔다.
 붉은색으로 빛나는 두 개의 구슬은 천외지천에는 없는 최상급 정령석이었다.
 
 [셀레아나의 정령석]
 불의 최상급 정령인 셀레아나의 기운이 가득한 최상급 정령석이다.
 인첸트 계열의 속성 강화 스킬을 사용해서 무기나 방어구에 결합시킬 경우, 해당 아이템에 셀레아나의 기운을 담을 수 있다.
 종류: 강화 아이템
 등급: 최상급 정령석
 속성: 불
 효과: 평타공격력 3% 증가
 기타: 간헐적인 화염 데미지+500
 
 “아! 여기서는 정령석이 속성 강화석이구나.”
 레볼루션 월드는 판타지 배경의 게임이라 그런지 속성을 부여하는 강화도 가능한 것 같았다.
 반면 천외지천에는 인첸트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여기서 처분을 해야 할까? 아! 화폐도 두 개의 월드가 서로 다르지.”
 속성 강화석이라면 천외지천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게다가 천외지천에서 활동했던 격포에게는 속성 강화 스킬 자체가 없었다.
 때문에 격포는 정령석을 팔 생각을 하다가 두 개의 월드의 화폐 단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떠올렸다.
 그 말은 이곳에서 돈을 벌어봤자 막상 천외지천에서는 사용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아! 맞다. 화폐는 다르지만 아이템은 가져갈 수 있잖아?”
 천외지천의 화폐는 냥이고 레볼루션의 화폐는 골드였다.
 따라서 각기 다른 화폐는 가져가봤자 소용없지만 아이템은 가져갈 수 있었다.
 그 말은 속성 강화가 된 아이템을 구해서 가져가면 천외지천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아니지, 여기서 속성 강화 스킬을 배우면 되겠다.”
 비록 두 개의 월드로 구분되어 있지만 하나의 게임이라 스킬은 아무 지장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그것은 조금 전에 와이번과 싸울 때 삼재검법이 펼쳐진 것이 좋은 예였다.
 “그래, 이왕 온 김에 이것저것 살펴보면서 쓸 만한 스킬이나 아이템은 다 배우거나 가지고 가는 거야.”
 인첸트가 가능한 게임은 어떤 게임이든 누구나 손쉽게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게임에서는 아무리 흔한 인첸트 계열의 스킬이라고 해도 천외지천에는 없는 스킬이기에 그때는 히든 클래스를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막말로 속성 강화 스킬을 배운 후 정령석을 박은 무기나 방어구를 천외지천에 갖고 가서 판매한다면 그건 그야말로 대박이다.
 게다가 아직 몰라서 그러지, 찾아보면 그런 것들이 또 있을 가능성도 농후했다.
 “클클클! 드디어 내 인생에도 봄날이 왔구나.”
 
 
 2. 안 된다니까!
 
 “에고고고~ 허리야! 뭔 놈의 몹들이 이리도 많은지.”
 뜻하지 않게 레볼루션 월드에 접속한 격포는 잠시 눈을 붙인 시간을 제외하고는 사흘 밤을 새우며 산속을 누볐다.
 그런데 이놈의 산은 얼마나 광활한지 가도 가도 끝이 안 나왔다.
 대신 사냥은 원 없이 해서 어느덧 레벨은 689가 되어 있었다.
 격포가 사흘 만에 90레벨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용의 심장을 먹고 공격력과 방어력이 대폭 상승해서 레벨보다 훨씬 높은 몹을 사냥할 수 있어서였다.
 아울러 틈틈이 나온 아이템도 꽤 많아서 지금은 천외지천의 경갑 대신 레볼루션의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지금은 그 누가 봐도 레볼루션의 플레이어로 보였다.
 다만 문제는 조금 전부터 몇 분 간격으로 끊임없이 들려오는 경고 메시지였다.
 띠리링~! 띠리링~!
 -공복도가 97%입니다.
 -30분 이내에 음식을 섭취하지 않을 경우 사망하게 됩니다.
 -심한 굶주림으로 모든 움직임이 30% 둔화됩니다.
 “아! 벽곡단을 몇 알만 더 챙기는 건데.”
 공복도가 100%가 되면 굶어 죽는 것은 레볼루션만이 아니라 천외지천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천외지천의 모든 플레이어들은 공복도를 채워주는 벽곡단을 항시 넉넉하게 챙기고 다녔다.
 이는 격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숲 속을 누비는 시간이 사흘이 되다 보니 여유 있게 준비한 벽곡단도 이미 바닥이 난 상태였다.
 “어쩐다?”
 공복도 문제는 로그아웃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뭔 말이냐면 로그아웃을 하고 한참 후에 재접속을 해도 공복도 상태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즉 게임 내에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면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
 “나무 열매나 하다못해 도라지나 더덕 같은 것이 없을까?”
 천외지천의 경우 꼭 벽곡단이 아니라고 해도 사냥을 하거나 또는 열매나 도라지를 캐서 먹어도 공복도 문제가 해결되었다.
 격포는 레볼루션도 그럴 거라는 생각에 주변을 살피며 먹을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어! 저건 무 같은데?”
 운이 좋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근의 그늘진 곳에 무로 보이는 뿌리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격포는 우선은 아무 거라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걸 한 뿌리 뽑아서 흙을 대충 털어내고는 씹어 먹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식물의 뿌리를 섭취했습니다.
 -공복도가 22% 회복되었습니다.
 -공복도가 19% 회복되었습니다.
 “으! 쓰다.”
 아작아작.
 우걱우걱.
 -공복도가 17% 회복되었습니다.
 -공복도가 13% 회복되었습니다.
 -신체의 모든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무로 보이는 식물의 뿌리는 마치 한약처럼 쓰디썼다.
 하지만 공복도만큼은 착실히 회복시켜줬다.
 격포는 너무 써서 당장에라도 내뱉고 싶었지만 공복도를 생각해서 끝끝내 한 뿌리를 다 먹었다.
 “이게 뭔데 이렇게 쓰지?”
 공복도를 완벽하게 회복한 격포는 아직도 입가를 감도는 쓴맛에 오만상을 찌푸리며 옆에 있던 다른 무의 뿌리를 뽑았다.
 
 [이름 모를 식물의 뿌리]
 오랜 세월 땅의 기운을 받아 그 뿌리를 부풀렸다.
 많은 잔뿌리와 주름은 이 식물이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버텨왔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그 맛이 너무 써서 두 번 다시는 먹고 싶지 않다.
 종류: ?
 등급: ?
 기타: 아직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식물이다.
 
 식물의 뿌리를 확인하던 격포는 그나마 독이나 부작용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고는 주변에 있던 것 중 대충 5뿌리를 더 뽑아서 인벤에 함께 담았다.
 사실 너무 써서 두 번 다시 먹고 싶지 않았지만, 굳이 챙겨 담은 이유는 또다시 이런 상황이 올 것을 대비해서였다.
 “하! 도대체 어디로 가야 이 산을 벗어나서 도시로 갈 수 있을까?”
 사냥을 해서 레벨을 올리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속성 강화 스킬을 배우고 싶은 것이 격포의 속마음이었다.
 그때 바람을 타고 저 멀리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이 소리는!”
 가물거리기는 하지만 이건 분명 어떤 스킬의 폭발음이 틀림없었다.
 격포는 어쩌면 다른 플레이어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작정 소리가 나는 곳으로 뛰어갔다.
 
 “줄리엣, 피해!”
 “링고 오빠, 조심해! 뒤에도 몹이 있어.”
 “핵터야, 버프 줘!”
 “여기서 무너지면 전멸이니까, 다들 자리 지키세요.”
 “천둥아, 어쩌자고 이 많은 몹을 몰아온 거냐?”
 “링고 형, 미안해요.”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온 격포는 4남1녀로 이루어진 파티가 아이언 가고일 무리와 싸우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아이언 가고일은 980레벨대의 몬스터로 레벨에 비해서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했는데, 격포도 지난밤에 몇 번 잡아본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아이언 가고일이냐?’
 드래곤 하트 덕분에 공격력과 방어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격포였다.
 그러나 아직은 레벨이 낮아서 생명력은 고작해야 1,400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지난밤에 아이언 가고일과 싸울 때, 녀석들의 강력한 공격에 몇 번이나 죽을 뻔했던 격포였다.
 ‘에이, 그냥 모른 척 지나갈까?’
 한두 마리면 모를까?
 10마리가 넘는 아이언 가고일과 싸운다면 아직 피 통이 작은 격포는 죽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러기에 격포는 혼자서 산을 헤매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을 모른 척하기로 마음먹고 뒷걸음질을 쳤다.
 슬금슬금.
 “헙!”
 모른 척 도망치던 격포는 어느 순간 아이언 가고일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문제는 눈이 마주친 녀석이 놈들의 우두머리로, 카루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네이밍 몬스터라는 사실이었다.
 “저기도 인간이 있다. 죽여라!”
 “키룩!”
 “인간을 죽여라.”
 갑작스런 우두머리의 명령에 아이언 가고일 두 마리가 싸우다 말고 격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가고일과 싸우던 플레이어들도 도움을 바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격포를 바라봤다.
 안 들켰으면 모를까, 이미 얼굴이 마주쳤는데 사내 체면에 차마 모른 척 도망칠 수는 없었다.
 “에이, 재수 옴 붙었네.”
 싸우기로 작정한 격포는 아끼고 아꼈던 청심환 한 알을 꺼내서 삼켰다.
 천외지천의 상점에서 판매하는 청심환은 1천 냥에 판매되는 환단으로, 생명력을 5분간 300 정도 늘려주는 효과가 있었다.
 물론 천외지천에는 청심환보다 더 비싼 우황청심환도 있었고 청심환 같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환단이나 태청단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효과가 뛰어난 만큼 가격도 엄청나서 격포 같은 저렙들은 엄두도 못 내는 것들이었다.
 -청심환을 복용했습니다.
 -5분 동안 생명력이 300 증가합니다.
 청심환을 복용한 격포는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에서 싸우기 위해 앞으로 달려가며 표물 수송의 의뢰를 완수하고 보상으로 받은 질풍검 스킬을 날렸다.
 C등급 스킬인 질풍검은 기력(마나)을 3백이나 소모하지만 스킬 공격력이 300이나 되어서, 격포가 사용가능한 스킬 중 가장 강력한 스킬이었다.
 붕-!
 깡.
 채챙.
 이름 그대로 몸뚱이가 쇳덩어리로 이루어진 녀석들은 검에 얻어맞을 때마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격포는 녀석의 몸뚱이에 가느다란 실금이 생긴 사실에 만족하면서 연속기 계열의 스킬인 삼재검법을 펼쳤다.
 그때 허공에서 갑자기 뿜어져 나온 오색의 찬란한 빛이 격포의 몸을 휘감았다.
 -아미리스 여신의 축복 <광휘의 빛>을 받았습니다.
 -축복의 영향으로 30분간 공격속도가 10% 상승합니다.
 -축복의 영향으로 30분간 방어력이 300 상승합니다.
 -축복의 영향으로 30분간 마나 회복속도가 20% 증가합니다.
 -축복의 영향으로 청심환의 효과가 변경됩니다.
 -생명력이 영구적으로 300 상승합니다.
 ‘엥?’
 오색의 빛은 저쪽에서 싸우고 있는 플레이어들 중 신관으로 보이는 사내가 걸어준 일종의 버프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청심환의 효과가 변경되면서 생명력이 영구적으로 상승했다.
 ‘하나를 더 먹어볼까?’
 짐작이지만 청심환의 효과가 변경된 것은 신관이 걸어준 아미리스 여신의 축복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아울러 여신의 축복이 지속되는 동안은 그런 일이 반복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먹고 보는 거야!’
 청심환 한 알당 천 냥이면 10만 냥에 1만 원 하는 요즘 시세를 감안했을 때 개당 100원이나 했다.
 때문에 평소 같았으면 한 알 먹는데 몇 번이나 망설였겠지만, 이번만큼은 그 이후에 벌어질 행운을 기대하며 거침없이 삼켰다.
 -청심환을 복용했습니다.
 -5분 동안 생명력이 300 증가합니다.
 ‘그래, 다음… 다음……! 뭐야? 실패한 거야?’
 격포가 기대했던 효과는 영구적인 생명력의 증가이지, 고작 5분간의 증가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까의 행운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격포가 그렇게 우물쭈물 대는 사이 두 마리의 아이언 가고일이 뒤쪽에서 새롭게 다가왔다.
 순식간에 4마리의 아이언 가고일에 포위된 격포는 마음을 가다듬고 검을 휘둘렀다.
 몇 번의 타격으로 이미 금이 나가 있었던 가고일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푸드득.
 휙!
 “큭.”
 격포가 막 한 마리의 가고일을 처리했을 때 뒤쪽에서 다가온 두 마리가 날개와 발톱으로 가격을 했다.
 어깨와 옆구리를 동시에 얻어맞은 격포는 현기증과 함께 피가 쑥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여기서 머뭇거리다가는 꼼짝없이 죽겠다는 생각에 C급 경공스킬인 한계독보를 펼쳐서 빠져 나왔다.
 한계독보는 닭의 모양을 흉내 낸 경공술로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고 그 모양새가 조금 우습기는 하지만 변화가 신묘해서 이런 식의 난전에서는 꽤나 유용했다.
 “이놈들, 이번에는 내 차례다!”
 휘리릭.
 한계독보를 이용해서 놈들의 옆으로 이동한 격포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질풍검을 날린 후 삼재검법을 펼쳤다.
 ‘아! 공격스킬이 몇 개만 더 있으면 좋을 텐데.’
 밤새껏 강력한 몬스터와 싸우면서 느낀 것은 변변한 공격스킬이 부족한 점이었다.
 하지만 스킬의 창조가 불가능한 천외지천에서 NPC 사부에게 공격스킬을 배우거나 가뭄에 콩 나듯이 나오는 스킬 북을 사기 위해서는 소요되는 비용이 너무도 막대했다.
 ‘700레벨을 달성해서 절정무사로 전직하면 보상으로 B급 공격스킬을 요구해야겠어.’
 스킬 배우기가 어려운 천외지천에서 스킬을 공짜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전직할 때였다.
 격포도 100레벨을 달성해서 삼류 무사가 되었을 때 기본 내공심법인 무상신공을 받았고, 300레벨을 달성해서 이류 무사가 되었을 때는 D급 스킬인 삼재검법을 배웠다.
 그리고 경공스킬인 C급 한계독보는 500레벨을 찍고 일류무사가 되었을 때 받은 거였다.
 까강.
 챙.
 와르르륵.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크.”
 슈아아악~!
 뭉게뭉게.
 비록 공격스킬이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폭발적으로 증가된 공격력과 축복의 영향으로 빨라진 공격속도 덕분에 격포는 또 한 마리의 아이언 가고일을 잡았다.
 하지만 기뻐할 틈도 없이 남은 두 마리의 아이언 가고일이 내뱉은 독무를 피해서 멀찍이 뒤로 물러났다.
 간밤에 당해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녀석들이 내뱉은 독무는 10초간 몸을 경직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핵터야, 저쪽도 정화를 시켜줘.”
 “이미 준비 중이야.”
 “저기요. 이쪽으로 오실래요?”
 “그래요. 이쪽으로 와서 우리랑 같이 싸워요. 여기는 신관이 있어서 녀석들의 독무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독무를 피해 뒤로 물러난 격포의 귓가에 파티플레이를 하던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격포에게 자신들 쪽으로 오라고 했다.
 살펴보니 그들은 6마리의 가고일을 이미 잡고 지금은 네임드 몹인 카루와 남은 한 마리의 가고일만 상대하고 있었다.
 격포는 혼자 싸우는 것보다는 그들과 합류하는 것이 보다 안전하겠다는 생각에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말없이 합류했다.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맞아요. 님이 아니었다면 위험했을 텐데, 정말 다행이에요.”
 “일단 우리 파티에 합류하실래요?”
 격포가 다가오자 그들은 감사의 말을 하며 선뜻 파티 신청을 해왔다.
 어차피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도시로 이동할 생각이었던 격포는 이름과 레벨을 비공개로 설정하고는 파티 제안을 수락했다.
 “어! 레벨이 691밖에 안 되시네요?”
 “와우! 혼자서 아이언 가고일을 잡으시기에 최소한 1,000레벨 이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예상 밖인데요?”
 “아! 네… 네.”
 “어마! 이런 레벨로 우리를 돕겠다고 가고일을 상대하신 거예요? 박격포 님, 정말 대단하시다!”
 “줄리엣 누나, 잡담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카루부터 잡죠.”
 천외지천과는 달리 레볼루션은 파티로 묶이면 아무리 비공개로 설정해도 같은 파티원들에게 이름과 레벨이 무조건 공개되었다.
 덕분에 격포의 이름과 레벨을 알게 된 그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특히 일행 중 유일한 여성인 줄리엣은 격포가 일부러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줬다고 판단했는지 상당히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이름과 레벨이 공개된 일로 내심 당황했던 격포는 자세한 속사정은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씩 웃고는 전투를 준비했다.
 그사이 이들 중 몸빵을 담당하는 링고라는 사내는 격포를 따라온 두 마리의 가고일을 향해 도발 스킬을 날렸다.
 도발은 몬스터의 공격을 유도하는 것으로 몸빵 전문 클래스의 고유 스킬이었다.
 덕분에 격포는 안심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카루를 공격했다.
 채챙.
 깡.
 쾅.
 “오우! 박격포 님, 데미지 죽이는데요.”
 “천둥아, 공격력은 박격포 님이 너보다 강한 것 같다?”
 “그러게, 처음에는 멋모르고 무심코 지나쳤는데 가만 보니 거의 나와 엇비슷한 것 같은데.”
 “어쩌다 연거푸 크리티컬이라도 터졌나 보죠.”
 “글쎄, 그게 아닌 것 같은데?”
 “꺄아아~! 박격포 님, 멋있다.”
 이들의 평균 레벨은 950 전후였다.
 그런데 아직 700레벨도 안 된 격포의 공격력이 948레벨의 궁수인 천둥보다 더 강력했다.
 천둥은 다른 사람들의 핀잔에 무안했는지 운 좋게 크리티컬이 터졌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격포의 공격력이 천둥을 압도했다.
 천둥은 그게 자존심이 상했는지 앓는 소리를 종종 냈다.
 한편 질풍검과 삼재검법을 잇달아 펼친 격포는 두 스킬의 쿨 타임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평타 공격을 했다.
 ‘녀석의 날개나 발톱을 공격해서는 별 효과가 없어. 확실한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놈의 목줄을 따야 해!’
 몇 번 잡으면서 느낀 거지만 아이언 가고일의 약점은 목 부위였다.
 그런데 문제는 곧 죽어도 보스급 네임드 몹이라고 카루의 덩치가 다른 녀석들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녀석의 목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높이를 뛰어올라야 했다.
 ‘한계독보의 백계충천 수법을 사용하면서 몸을 틀어서 회전시키면 닿을 수 있지 않을까?’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격포는 무리를 해서라도 녀석의 목을 노리기로 했다.
 그것은 어쩌면 종종 야릇한 감탄사를 터트리며 자신을 얼굴을 힐끔 쳐다보는 줄리엣이라는 여자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래, 한번 해보는 거야.’
 붕.
 휙!
 결심을 굳힌 카렌은 뭔가에 쫓긴 닭이 화들짝 놀라서 지붕 위로 솟구치듯 몇 발의 도약과정을 거쳐서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리고는 약간 부족한 높이를 극복하기 위해 허리를 비틀며 몸을 회전시키면서 검을 휘둘렀다.
 서걱.
 싹둑-!
 -아이언 가고일 대장 카루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습니다.
 딩동~! 딩동~!
 -축하합니다! 상당한 난이도의 S급 공격스킬을 창조했습니다.
 -명성이 5 부여됩니다.
 -방금 전, 창조하신 스킬에 [스크루 라이징]이라는 정식 명칭이 부여됩니다.
 “오! 스킬이다. 내가 공격스킬을 창조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공격스킬을 창조했다는 메시지가 들려온 순간 격포는 너무도 좋아서 소리를 지르며 펄쩍 뛰었다.
 그리고 그 직후 천둥의 화살이 카루의 목을 관통하면서 녀석의 숨을 끊었다.
 “어마! 축하해요, 박격포 님. 저도 방금 카루를 잡아서 레벨이 올랐어요.”
 “가… 감사합니다.”
 “역시 네임드 몹이라 경험치를 많이 주는군. 핵터야, 나도 레벨-업했다! 박격포 님도 레벨-업한 것 같은데 축하합니다.”
 “아! 고맙습니다.”
 “링고 형님 그리고 박격포 님, 축하합니다. 전 레벨-업까지 아직 20% 남았습니다.”
 “네, 감사요.”
 “낄낄. 고맙다.”
 “링고 형님, 부럽습니다.”
 “꾸숑아, 넌 몇 %나 남았냐?”
 “전 아직 멀었어요.”
 “누군 스킬을 창조해본 적이 없는 줄 아나? 별 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이야.”
 카루를 잡으면서 격포 외에도 줄리엣과 링고의 레벨이 올랐다.
 때문에 일행들은 서로를 축하해주며 함께 기뻐했다.
 하지만 가장 막내로 보이는 천둥이라는 궁수만 격포가 소리 지른 것을 문제 삼으며 구시렁거렸다.
 ‘아! 레볼루션은 스킬 창조가 자유로웠지. 나도 모르게 그만 티를 내고 말았구나.’
 비록 아마겟돈으로 통합된 게임이라고 해도 여전히 다른 월드로 구분되어 있어서 많은 것이 낯선 격포였다.
 사실 하나로 병합된 레볼루션과 천외지천이 진정한 통합을 하지 못하고 마치 한 지붕 두 가족처럼 각기 다른 게임으로 존속하는 이유는 이렇게 적지 않은 차이점이 존재해서였다.
 격포는 자신의 정체가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좀 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하고는 남아 있는 가고일을 공격하는 도중에 스크루 라이징이라는 창조스킬을 살피기 시작했다.
 
 [스크루 라이징-S급]
 엄청난 도약력으로 점프를 한 후, 허리를 비틀어 그 반동을 이용한 원심력과 회전력을 가미해서 파괴력을 극대화시킨 스킬이다.
 무기를 이용한 공격스킬로 회전속도가 빠를수록 그 위력이 증폭하며 치명타가 터질 확률이 증가한다.
 분류: 액티브
 종류: 무기를 이용한 검술스킬(한 손 검만 사용 가능)
 숙련도: 0%
 위력: 공격력+1,500~2,000
 마나(내공)소모: 1,500
 쿨 타임: 10초
 
 ‘오! 진짜 S급 스킬이다.’
 스킬을 확인한 격포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서 절로 미소를 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천외지천에서 S급 스킬을 얻기 위해서는 1,200레벨을 달성해서 화경의 반열에 올라야만 하는데, 아직 절정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스킬을 얻다니 그야말로 행운의 연속이었다.
 그사이 남아 있던 아이언 가고일은 일행들의 공격을 받고 차근차근 쓰러지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인사나 합시다. 난 링고라고 하고 보다시피 몸빵 전문 기사요. 나이는 26세요.”
 “저는 핵터라고 하는 21살의 사제입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오빠는 새삼스럽게 인사는 무슨……. 호호호~! 안녕하세요, 전 줄리엣이고 나이는 21살이고 직업은 이도류를 쓰는 블레이드예요.”
 “아까는 고마웠습니다. 전 꾸숑이라고 하고 나이는 20살이고 마법사입니다. 이쪽의 천둥하고는 현실에서도 친구사이입니다.”
 “반갑습니다, 전 박격포라고 하고 21살입니다.”
 “오! 박격포 님 21살이세요? 저와 핵터랑 나이가 같네요. 그런데 직업이 뭐기에 그렇게 공격력이 강하세요?”
 아이언 가고일을 다 잡은 링고 일행들은 여유가 생기자 정식으로 격포와 인사를 했다.
 다만 천둥은 슬쩍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한편 격포는 직업이 뭐냐는 줄리엣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검을 쓰는 직업 중 공격력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는 워리어라고 둘러댔다.
 “공격력이 강하다 싶더니, 역시 워리어였구나! 그런데 워리어가 왜 양손 검을 안 쓰세요?”
 “전 검 자체의 파괴력보다는 빠른 몸놀림을 중요시해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워리어라면 데미지딜러인데, 투 핸드 소드나 쯔바이 소드 같은 양손 검이 낫지 않나요?”
 “다들 그렇게 얘기하는데 전 이런 한 손 검이 더 좋더라고요.”
 인사를 나눈 이후 대화의 중심은 단연코 줄리엣이었다.
 그녀는 그 뒤로도 많은 것을 물어왔다.
 격포는 최대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실대로 대답했다.
 격포와 줄리엣의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지자 천둥이 투덜거렸다.
 “링고 형, 언제까지 여기 있을 생각이에요? 어차피 퀘스트도 끝낸 이상, 사냥 안 할 거면 마을로 돌아가죠.”
 “천둥아, 넌 왜 자꾸 투덜거리니?”
 “누나, 내가 언제 투덜거렸다고 그래요? 그냥 시간이 아까우니까 그런 거죠.”
 “너, 박격포 님보다 데미지가 약하게 나와서 삐쳤지?”
 “아니에요, 그게 어디 개인의 문제인가요? 게임의 밸런스를 제대로 잡지 못한 무능한 개발사의 책임이지.”
 “거봐, 삐친 것 맞잖아?”
 천둥의 이런 반응이 불편한 것은 격포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격포는 자신의 공격력이 비정상적으로 강한 것은 특별한 아이템 때문이라고 대충 둘러댔다.
 격포가 이렇게까지 나오자 천둥도 더 이상 내놓고 싫은 척을 못 했다.
 “박격포 님, 저희는 이쯤에서 도시로 갈 생각인데 어쩔 생각이십니까?”
 “링고 님,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데 그냥 편하게 격포라고 불러주십시오.”
 “그… 그래도 될까?”
 “네, 저도 그게 편합니다.”
 “링고 오빠, 그렇게 해! 격포야, 우리는 나이도 같은데 그냥 말 트자.”
 “으… 응.”
 “격포야, 너도 도시로 돌아갈 거지?”
 “응.”
 줄리엣은 말 트기 무섭게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편하게 대했다.
 격포도 그게 편해서 그렇게 했다.
 “지금 바로 이동한다. 파티용 스크롤을 사용할 테니까 다들 준비해.”
 “오빠, 얼른 가요.”
 츠파팟.
 윙~!
 천외지천에서는 이동주문서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스크롤로 불리고 있었다.
 명칭이야 어찌 되었든 그 효과는 똑같았다.
 잠시 후, 빛에 휘감긴 격포는 링고 일행과 함께 제논이라는 도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판타지 배경의 월드라 건물들의 생김새도 천외지천과는 완전 다르구나.’
 레볼루션의 도시를 처음 와본 격포는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링고가 앞으로 어찌할 것인지 물었다.
 “우리는 퀘스트 해결 때문에 도시의 치안대장을 만나야 하는데, 넌 어쩔 거니?”
 “저도 배울 스킬이 있어서 다른 곳으로 가봐야 합니다.”
 “그래, 오늘은 즐거웠다. 나중에 기회 있으면 다시 보자.”
 “네, 저도 좋은 경험했습니다.”
 “격포 형, 즐거웠어요! 나중에 또 봐요.”
 “그래, 꾸숑아. 다음에 기회 있으면 또 보자!”
 일단 도시에 들어온 이상 필요한 것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물어봐서라도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
 때문에 격포는 이쯤에서 링고 일행과 헤어지려고 했다.
 그런데 줄리엣이 일행으로부터 떨어져 나와서는 어디로 가는지 물어왔다.
 “격포야, 어디로 가는데?”
 “응?”
 “스킬 배우러 어디로 가냐고?”
 “별거 아냐, 생각난 김에 인첸트 관련 스킬을 배워볼까 해서 거길 찾아갈 생각이야.”
 “인첸트 스킬을 배운다고? 보조 직업이 인첸터였니?”
 “응. 비슷해.”
 천외지천에서 활동하는 격포의 보조 직업은 자유표사였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말할 수는 없기에 대충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같이 갈까? 난 어차피 퀘스트를 받은 것이 아니어서 굳이 같이 갈 필요가 없거든. 링고 오빠, 그래도 되죠?”
 “으… 응, 그래라.”
 “격포야, 가자.”
 줄리엣은 어찌해볼 새도 없이 격포의 손을 잡고 끌기 시작했다.
 격포는 황당해하는 링고와 다른 일행들을 향해 황급히 작별 인사를 하고는 줄리엣이 끄는 대로 따라갔다.
 “격포야, 너 혹시 연예인 지망생이니?”
 “아니! 그냥 평범한 대학생인데, 왜?”
 “정말? 그랬구나! 난 널 처음 봤을 때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너무 근사하게 보여서 연예인 지망생인 줄 알았어.”
 ‘아!’
 현재 격포의 외모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폴리모프 스킬 때문에 본래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상태였다.
 그런데 폴리모프 스킬에 나온 샘플들은 하나같이 연예인을 능가하는 꽃미남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시 격포는 아무 생각 없이 많은 샘플 중에서 하나를 고른 상태였다.
 하지만 그 또한 샘플 중의 하나였기에 엄청난 미남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아무리 폴리모프 스킬이라고 해도 격포의 얼굴 윤곽과 이목구비가 기본적으로 받쳐 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아까부터 여자들이 날 자꾸 쳐다봤구나.’
 사실 격포의 본 모습도 상당히 준수해서 잘 차려입으면 어디 가서도 빠지지 않은 외모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폴리모프 상태인 지금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짐작이지만 격포의 지금 얼굴을 성형수술하면 이런 얼굴이 나올 것 같았다.
 하여간 그 때문인지 스쳐 지나가는 여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나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하염없이 격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래서 여자들이 성형을 하나보구나!’
 뜻하지 않게 뭇 여성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게 된 격포는 지금의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아서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걸음을 멈추고 격포를 바라보는 여성들의 숫자는 늘어만 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격포는 폴리모프한 외모 때문에 앞으로 엄청난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 왔어, 여기가 인첸터의 전당이야.”
 “의외로 가깝네.”
 많은 여성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격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꽤 넓어 보이는 2층 건물 앞에 당도했다.
 “당연하지, 어떤 도시고 대장장이나 인첸터 NPC들은 중앙광장 동쪽 편에 몰려 있잖아?”
 “으… 응.”
 지금 줄리엣이 하는 얘기는 레볼루션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 상식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몰랐던 격포는 당황해서 허둥거렸다.
 그러나 줄리엣은 너무도 기본적인 내용이라 그런지 별다른 의심 없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격포는 행여나 줄리엣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다급히 쫓아 들어갔다.
 “격포야, 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넌 2층에 올라가서 인첸터 명장에게 스킬을 배우고 와.”
 “응. 고마워.”
 안 그래도 건물 안에 있는 수많은 NPC 중 누구에게 스킬을 배워야 할지 몰라서 당혹해하던 격포는 줄리엣의 말을 듣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가 막 2층에 올라선 순간 NPC로 보이는 여성 안내원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시죠?”
 “속성 강화 스킬을 배우려고 인첸터 명장을 찾아왔는데요?”
 “오른쪽 두 번째 방에 있는 스미스 씨를 만나시면 됩니다.”
 “오른쪽 두 번째 방이요, 고맙습니다.”
 안내원의 말대로 오른쪽 두 번째 방으로 다가간 격포는 문 앞에서 노크를 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대답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다시 노크를 한 격포는 그래도 대답 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는 고개를 안쪽으로 들이밀었다.
 ‘젠장, 뭔 NPC가 플레이어가 온 줄도 모르고 낮잠이야?’
 방 안에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60대 중반의 늙은 사내가 의자에 앉아서 코까지 골며 졸고 있었다.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간 격포는 낮잠을 자고 있는 스미스를 깨우기 위해 헛기침을 했다.
 “허~ 험!”
 “드르렁~ 피유~ 우!”
 “여보세요, 스미스 씨!”
 “헉! 누… 누구냐?”
 “안녕하세요, 스미스 씨 되시죠? 속성 강화 스킬을 배우려고 왔는데요?”
 좀처럼 일어나지 않던 스미스는 격포가 몸을 흔들어대자 화들짝 놀라서 깨어났다.
 격포는 아직 정신을 못 차려서 어리둥절해하는 스미스에게 인사를 하고는 찾아온 용건을 설명했다.
 “속성 강화 스킬을 배우려고 왔다고?”
 “네.”
 “안 돼.”
 “네, 왜요?”
 “아직 인첸트 스킬도 마스터하지 않은 주제에 어떻게 속성 강화 스킬을 배우겠다는 거냐?”
 “속성 강화 스킬을 배우기 위해서는 인첸트 스킬부터 마스터해야 하나요?”
 “당연하지.”
 “죄송하지만 그건 어디서 배우죠?”
 “이런 답답한 친구를 봤나, 이미 두 개의 직업을 선택한 자가 이제 와서 인첸터가 되겠다니 어디 아픈 것 아냐?”
 “네?”
 “내가 봤을 때 자네는 이미 두 개의 직업을 선택한 것 같은데, 아닌가?”
 “맞는데요.”
 “그런데 어떻게 인첸터가 되겠다는 건가?”
 “인첸트 기술이야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속성 강화 스킬은 고급 스킬이라 전문 인첸터만 배울 수 있어. 그런데 자네는 이미 두 개의 직업을 선택했는데 무슨 수로 인첸터가 되겠다는 것인가?”
 천외지천은 보조 직업을 얻는 데 제한이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2~3개의 보조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5~6개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레볼루션은 오직 1개의 보조 직업만 얻을 수 있었다.
 때문에 이미 보조 직업을 갖고 있는 격포는 인첸터가 될 수 없었다.
 “어차피 인첸터는 보조 직업인데 그냥 하면 안 되나요?”
 “이보게, 지금 인첸터를 우습게 여기는 건가?”
 “그게 아니라… 전 무슨 일이 있어도 속성 강화 스킬을 배워야 돼요.”
 “그거야 자네 사정이지.”
 “아! 미치겠네.”
 만일 속성 강화 스킬을 배우지 못하면 속성 강화가 된 이곳의 아이템을 가져가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레볼루션의 아이템이 천외지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그 수치나 성능이 떨어져서 막상 가져가 봤자 쓸모가 없었다.
 이는 두 개의 월드가 원래는 다른 게임으로 출발해서 그런 점과 약 2년 늦게 서비스를 시작한 레볼루션의 레벨이 아직은 낮아서 그런 것 같았다.
 쉽게 말해서 천외지천은 현재 1,500레벨이 만 레벨로 설정된 상태로 만 레벨을 달성한 플레이어의 숫자가 상당했다.
 반면 늦게 서비스를 시작한 레볼루션은 원래 1,200레벨이 만 레벨이었다가 이후 두 월드의 통합을 대비해서 1,500레벨로 조정된 상태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1,400레벨을 넘긴 플레이어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상황이 이렇다고 해도 천외지천에 존재하지 않은 아이템은 예외로, 그것들은 천외지천에 가져가면 분명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 확실했다.
 “볼일 없으면 이만 나가보게.”
 “혹시 무슨 수가 없을까요?”
 “수는 무슨, 바빠 죽겠는데 나가지 않고 뭐하나?”
 “제발요!”
 “허헛! 방법이 없다는데.”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지 말고 방법이 있으면 숨기지 말고 알려 주십시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방법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뭡니까? 아무리 어려워도 좋으니 알려만 주십시오.”
 “그냥 못 들은 걸로 하게.”
 “이미 들은 얘기를 어떻게 못 들은 걸로 합니까?”
 “설령 자네가 그걸 듣는다고 해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냥 포기하게.”
 “들어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포기할 테니까, 제발 알려만 주십시오.”
 “그게 그렇게 듣고 싶은가?”
 “네.”
 “정 그렇다면 알려주지, 하지만 듣고 나서 실망하지는 말게!”
 “걱정 마십시오.”
 
 
 3. 소원을 말해봐?
 
 “이 세상에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대륙이 있음을 자네는 알고 있는가?”
 “알려지지 않은 대륙이 또 있다고요?”
 “그렇다네, 못 믿겠지만 틀림없는 사실이라네.”
 “그게 어디에 있는데요?”
 “그건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다네.”
 “에이,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어허, 내가 할 일이 없어서 자네에게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나가게! 나도 내 말을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굳이 그런 수고를 할 생각은 없네.”
 “아닙니다! 너무 놀라서 그런 거지, 못 믿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영감탱이, 성질 한번 열라 더럽네.’
 지금 당장 아쉬운 이는 어떻게든 속성 강화 스킬을 배우고 싶은 격포였다.
 그러기에 격포는 툭하면 성질부터 내고 악을 쓰는 스미스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꾹 참고 그의 비위를 맞췄다.
 하지만 속성 강화 스킬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무슨 연유로 또 다른 대륙을 들먹이는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이건 내 추측인데, 난 새로운 대륙이 바다 건너편에 있다고 믿고 있네.”
 “바다 건너편이요?”
 “그래, 바다 건너편에 새로운 대륙이 존재하는 게 틀림없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있고말고!”
 “그게 뭔데요?”
 ‘휴~! 도대체 속성 강화 스킬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언제나 알려주는 건지…….’
 “자네, 이게 뭔지 알겠는가?”
 격포가 마음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을 때 스미스는 품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꺼낸 것은 천외지천에 가면 많은 이들이 쓰고 다니는 철제투구였다.
 다만 너무 낡고 심하게 훼손되어 있어서 겨우 형체만 알아볼 수 있지, 아이템으로서의 가치는 상실된 상태였다.
 ‘이건 분명 강철투구인데, 이 영감이 이걸 어떻게 갖고 있지?’
 “이보게, 이게 뭔지 알겠는가?”
 “네?”
 “장담하건대 대륙 어디에도 이런 물건은 존재하지 않네. 즉 이 물건은 우리가 모르는 다른 대륙의 인간들이 사용하는 물건이 틀림없네.”
 “이게 다른 대륙의 인간들이 사용하는 물건이라고요?”
 “그렇다네.”
 “제가 잠시 살펴봐도 될까요?”
 “그렇게 하게, 하지만 아주 귀한 물건이니 조심히 다루게.”
 ‘사용도 못 하는 쓰레기를 귀한 물건이라고 하다니, 미치겠군!’
 스미스로부터 투구를 넘겨받은 격포는 즉시 확인에 들어갔다.
 
 [알 수 없는 미지의 물건]
 해안가에 떠밀려온 난파선의 파편에서 발견된 미지의 물건이다.
 디자인의 형태를 봤을 때 모자나 헬멧의 일종으로 추측되어지나 워낙 훼손이 심하게 된 상태라 정확하지는 않다.
 특히 정중앙에 새겨진 정교한 문양은 대륙 어디에서도 사용되지 않은 아주 특별한 형태를 갖고 있는데, 현묘한 힘이 느껴진다.
 종류: 훼손이 심각해서 확인이 불가능하다.
 등급: 훼손이 심각해서 확인이 불가능하다.
 용도: 훼손이 심각해서 확인이 불가능하다.
 특성: 훼손이 심각해서 확인이 불가능하다.
 기타: 스미스는 이 물건이 발견된 위치와 낯선 디자인과 문양을 감안했을 때 다른 대륙의 물건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혹시 영감이 말하는 다른 대륙이 천외지천이지 않을까?’
 투구를 확인한 격포는 문득 미지의 대륙이 천외지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마겟돈의 초기 화면이나 광고 영상을 보면 천외지천과 레볼루션의 캐릭터가 함께 움직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문에 아마겟돈을 즐기는 많은 이들은 두 개의 월드가 언젠가는 통합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래, 내 생각이 틀림없어!’
 격포가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스미스의 얘기가 이어졌다.
 “이보게, 내 소원이 뭔지 아는가? 다른 대륙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나는 그곳 사람들이 만든 온전한 물건을 살펴보고 싶다네.”
 “온전한 물건이요?”
 “그래. 이렇게 파손되고 훼손된 물건이 아니라 원래의 형태를 갖추고 있고 그 기능을 잃지 않은 물건을 찾아서 온갖 인첸트를 해보고 싶네.”
 “다른 대륙의 아이템에 인첸트를 해보고 싶다고요?”
 “왜, 내가 망령이라도 든 것 같은가?”
 “아… 아닙니다. 그런데 다른 대륙의 아이템은 어떻게 구해야 하는데요?”
 “바닷가 해변을 뒤지는 수밖에 없네. 분명 해변 어딘가에는 난파를 당했거나 또는 파도에 떠밀려온 다른 대륙의 물건이 있을 것이네.”
 “어느 바닷가 해변이요?”
 “그건 나도 알 수 없네. 다만 나는 어떤 거라도 좋으니 훼손되지 않은 다른 대륙의 물건을 구하고 싶네. 그걸 자네가 해결해준다면 나도 특별히 자네의 부탁을 들어주겠네.”
 “정말 약속하시는 거죠?”
 “그렇대도.”
 띠링~! 띠링~!
 -스미스의 소원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Y/N)
 {늙은 인첸터, 스미스의 소원}
 인첸터로 평생을 살아온 스미스의 소원은 바다 건너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다른 대륙의 온전한 물건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드넓은 해변을 뒤지는 일은 어마어마한 시간과 체력을 요구한다.
 게다가 대륙의 3대 명장인 스미스는 늙기도 했지만, 인첸터의 전당에 묶여 있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
 그를 대신해서 다른 대륙의 물건을 구하자.
 퀘스트 명칭: 스미스의 소원!
 퀘스트 종류: 스페셜(다른 대륙의 흔적을 찾자!) 퀘스트.
 클리어 조건: 다른 대륙의 물건을 구하면 된다.
 난이도: 11
 기한: 무기한
 보상: 경험치 및 소원 한 가지를 들어준다.
 
 “다른 대륙의 물건을 구해오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그렇다네. 하지만 파괴되거나 파손되지 않아야 하네.”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대신 성공하면 약속을 반드시 지키셔야 합니다!”
 “걱정 말게, 내 부탁만 들어주면 그때는 속성 강화 스킬이 아니라 아예 리메이킹 스킬을 알려 주겠네.”
 “리메이킹 스킬이 뭔데요?”
 “속성 강화만이 아니라 아이템에 소켓을 뚫을 수 있는 스킬이지. 자네가 인첸터가 아니기에 그 한계는 뚜렷하겠지만 속성 강화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강화를 할 수 있을 것이네.”
 “모든 종류의 강화가 가능하다고요?”
 “그래. 사실 리메이킹 스킬을 이렇게 함부로 알려줘서는 안 되는데, 자네는 인첸터가 아니라서 그 한계가 뚜렷하니까 안심하고 특별히 알려주겠다는 거네.”
 “좋습니다! 분명 약속하셨습니다.”
 재차 확답을 받은 격포는 이 자리에서 천외지천의 아이템을 꺼낼 것인지 고민했다.
 그러나 스미스가 아무리 NPC라고 해도 처음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다른 월드의 아이템을 꺼내면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천외지천의 물건을 여기서 바로 넘기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인벤을 열어서 천외지천의 아이템을 넘겨서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퀘스트를 성공하든 실패하든 위험천만했다.
 때문에 격포는 나중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스미스의 방을 나섰다.
 
 * * *
 
 때랭~! 때랭~! 때랭~! 때랭~!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팀장님, 누군가가 월드 통합과 관련한 스페셜 퀘스트를 받았나 봅니다.”
 “또?”
 “네.”
 “에이~ 시끄러워서 일을 할 수가 있나?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경고음을 들어야 하는지.”
 때랭~! 때랭~! 때랭~! 때랭~!
 “아이! 짜증, 누가 어떻게 좀 해봐.”
 “팀장님, 잠시만 기다립시오! 지금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날카로운 경고음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이곳은 아마겟돈을 서비스하는 G소프트사의 제2사업본부 사무실이었다.
 제2사업본부는 아마겟돈에서도 레볼루션을 담당하는 부서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경고음은 격포가 스미스의 부탁을 수락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잠시 후, 누군가가 레볼루션을 담당하는 슈퍼컴퓨터를 조작하자 요란하게 울리던 경고음이 멈췄다.
 제2사업본부 직원들은 그때서야 하던 일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과 몇 분 후 또다시 날카로운 경고음이 사무실 전체를 울리기 시작했다.
 때랭~! 때랭~! 때랭~! 때랭~!
 “또 뭐야?”
 “이번에도 누군가가 스페셜 퀘스트를 받았나 봅니다.”
 “아! 짜증나.”
 “젠장, 언제까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군.”
 “말도 말게. 난 경고음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려 대서 이제는 경고음만 들으면 경기가 날 정도네.”
 “나도 마찬가지야.”
 경고음이 계속되는 동안 곳곳에서 직원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요 근래 계속해서 들려오는 경고음 때문에 제2사업본부 직원들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안 당해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날카로운 경고음 소리는 여러모로 사람들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도대체 요 근래 월드 통합 퀘스트가 자주 부과되는 이유가 뭐지?”
 “그건 두 월드의 통합시점이 가까워져서 그런 것 아닐까?”
 “그게 무슨 소리야?”
 “레볼루션과 천외지천을 동시에 개발했던 정 회장님이 각각 다른 회사로 구분되어 있던 것을 통합시켰을 때부터 어느 시점이 되면 두 개의 월드가 합쳐질 수 있도록 미리 세팅했다는 소문이 있어.”
 “회장님은 쓰러져서 지금 병원에 계시잖아?”
 “회장님이야 쓰러지셨지만 미리 심어놓은 프로그램은 작동하겠지.”
 “하지만 쓰러진 회장님을 대신해서 경영을 맡고 계시는 두 분 이사님은 통합에 반대하는 입장이잖아?”
 “그건 두 분 이사님만이 아니라 다른 이사님들도 비슷한 것 같더라고.”
 “하긴 G소프트사의 지분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겠지? 막말로 두 개의 월드로 구분된 지금도 잘 나가고 있는데, 굳이 막대한 비용과 위험을 부담해가면서 통합시킬 필요는 없지.”
 “그게 어디 경영진의 입장만 그러겠어? 각각의 월드를 장악하고 있는 거대 길드의 유저들도 큰 변화가 동반되는 통합을 반대하는 입장이야.”
 “아마겟돈을 통해서 상당한 이득을 보는 그들의 반대야 당연하지. 하지만 대다수 유저들은 찬성하지 않을까?”
 “몰라, 우리야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세간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천외지천과 레볼루션의 개발에는 G소프트사의 창업주인 정경룡 회장이 깊숙이 관여되어 있었다.
 그는 원래부터 동 · 서양의 특징이 공존하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기술적인 한계로 각기 다른 게임으로 개발했다가 기술이 진보하자 이를 하나로 통합할 생각으로 두 개의 게임사를 하나로 병합했다.
 그러나 두 개의 월드로 구분된 아마겟돈을 하나로 통합하려고 했던 그가 쓰러지면서 통합 작업은 완전히 스톱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김 이사와 박 이사로 대표되는 G소프트사 경영진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었다.
 40대 중반의 김 이사는 통합 전, 천외지천의 경영을 책임진 자였고 50대 초반의 박 이사는 레볼루션의 경영을 책임진 사내였다.
 그리고 그 둘은 쓰러진 정 회장 다음으로 가장 많은 주식을 갖고 있는 G소프트사의 대주주들이었다.
 아울러 그 둘은 G소프트사의 경영권을 독점하기 위해서 암중에 경쟁하고 있었다.
 때랭~! 때랭~! 때랭~! 때랭~!
 “아! 또야?”
 “미치겠네.”
 “본부장님, 아무래도 시나리오 퀘스트라 유저들이 무슨 대단한 퀘스트라도 되는 줄 알고 무조건 달려드는 것 같습니다.”
 “본부장님, 무슨 대책을 수립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맞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도저히 업무를 볼 수 없습니다.”
 잠시 들리지 않던 경고음이 또다시 들려오자 여기저기서 직원들이 투덜거렸다.
 그러나 날카로운 경고음에 가장 짜증이 난 사람은 다름 아닌 본부장이었다.
 그는 레볼루션의 전체적인 시나리오를 관리하는 담당 직원을 불렀다.
 “유 대리, 유저들이 월드 통합 퀘스트를 받을 때 들려오는 경고음을 안 들리게 할 수 없는가?”
 “가능은 합니다만 그렇게 하면 월드 통합 퀘스트의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가 없습니다.”
 “자네는 그 퀘스트가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지금으로서는 단 1% 가능성도 없습니다.”
 “잘 알고 있구먼, 당장 그렇게 하게! 경고음 때문에 짜증이 나서 도저히 업무를 볼 수가 없어.”
 “안 됩니다.”
 “왜?”
 “아시잖습니까, 박 이사님께서 월드 통합과 관련한 일은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말고 모니터링하라고 했잖습니까?”
 “이봐, 해결될 가능성은 1%도 없는 퀘스트야. 그런데 그걸 모니터링해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그래도 박 이사님께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항상 지켜보라고 했는데요.”
 “됐어!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당장 조치하게.”
 “그러다가 만에 하나라도 해결이 되면 어쩌고요?”
 “답답한 소리 하고 있네. 그게 어떻게 해결이 된다는 건가? 그리고 설령 운 좋게 그게 해결된다고 해도 그 뒤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퀘스트를 유저가 무슨 수로 해결해?”
 본부장은 자기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큰소리를 빵빵 쳤다.
 아울러 박 이사에게 그 문제를 보고하는 당사자도 자신인 만큼 아무 걱정 말라고 했다.
 결국 유 대리는 슈퍼컴퓨터를 조작해서 월드 통합과 관련한 상황은 두 번 다시 알리지 못하게 했다.
 그가 슈퍼컴퓨터를 조작하는 동안 사무실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 * *
 
 “격포야, 여기야! 스킬은 배웠어?”
 “간단한 퀘스트를 해결하고 와야 알려준데.”
 “그럼, 지금 바로 퀘스트를 해결하러 갈 거야?”
 “아니, 바로 가기보다는 상점을 돌면서 잡템도 처분하고 필요한 물품도 구할 생각이야.”
 아래층으로 내려온 격포는 기다리고 있던 줄리엣과 만났다.
 그런데 들어올 때와는 달리 1층에는 많은 여성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격포가 내려오자 탄성 내지는 환호성을 지르며 자기들끼리 뭐라고 쑥덕거렸다.
 “거봐, 내가 이곳으로 들어왔을 거라고 했잖아.”
 “어때?”
 “죽인다!”
 “그러게, 내가 레볼루션 제일의 완소남이라고 했잖아?”
 “와! 너무 멋져.”
 “도대체 저 사람의 정체가 뭘까?”
 “혹시 기획사에 소속된 연예인 지망생 아닐까? 예전에도 연예인으로 데뷔하기 전에 이런 게임에 먼저 등장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잖아?”
 가상 게임의 캐릭터는 현실의 외모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물론 게임이다 보니 머리색이나 눈동자의 색을 바꾸거나 본래의 키나 덩치를 약간 조정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원판 불변의 법칙은 존속했다.
 즉 아무리 머리색이나 눈동자를 바꾼다고 해도 본래의 외모가 따라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다 보니 여자들은 폴리모프된 격포의 모습이 본래의 모습이라 여기고 연신 감탄하고 있었다.
 그때 모여 있던 여성들 중 누군가가 격포에게 버프를 걸어줬다.
 -포차이돈 신의 축복 <대지의 기운>을 받았습니다.
 -축복의 영향으로 30분간 이동속도가 30% 상승합니다.
 -축복의 영향으로 30분간 공격력이 400 증가합니다.
 -축복의 영향으로 30분간 생명력 회복 속도가 20% 증가합니다.
 ‘어! 축복이네?’
 축복은 신관계열의 플레이어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그런데 게임을 해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선뜻 축복을 걸어주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사실 이는 격포에게 잘 보이고 싶은 해당 여성의 노림수였다.
 반면 격포는 핵터에게 축복을 받고 생명력이 영구적으로 300이 증가했던 사실을 떠올리고 청심환을 복용했다.
 -청심환을 복용했습니다.
 -5분 동안 생명력이 300 증가합니다.
 ‘제발!’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생명력이 영구적으로 증가한다는 메시지는 들려오지 않았다.
 ‘아! 이번에도 그때의 기연은 생기지 않는구나.’
 격포는 이번에도 메시지가 들려오지 않자 그때의 일은 우연히 생긴 일이라고 여겼다.
 그 순간 또 다른 빛이 격포의 몸을 휘감았다.
 -헤나 여신의 축복 <성스러운 호흡>을 받았습니다.
 -축복이 중복되면서 이전에 부여된 <대지의 기운>은 그 효력을 상실합니다.
 -축복의 영향으로 30분간 회피 능력이 20% 상승합니다.
 -축복의 영향으로 30분간 마나가 500 증가합니다.
 -축복의 영향으로 30분간 물리공격력이 10% 증가합니다.
 -축복의 영향으로 청심환의 효과가 변경됩니다.
 -생명력이 영구적으로 300 상승합니다.
 ‘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또다시 생명력이 영구적으로 상승했다.
 격포는 크게 기뻐하는 한편 어떤 경우에 청심환의 효과가 변경되는지 다각도로 궁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청심환을 먹은 이후에 축복을 받아야 하는 것 같아. 그리고 한번 받은 축복은 더 이상 효과가 없는 게 확실해.’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이 두 가지 조건은 확실했다.
 그런데 두 번 모두 생명력이 300씩 상승하는 점이 공교로웠다.
 이는 청심환의 효과와 일치했다.
 ‘혹시 우황청심환이나 소환단을 먹고 축복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상점에서 파는 우황청심환은 10분간 생명력을 400이나 상승시켰고 소림사의 소환단은 20분간 생명력 500과 내공 1,000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 앞으로는 그런 걸 먹고 축복을 받는 거야. 청심환처럼 해당 영단의 효과가 영구적으로 변한다면, 그때는… 클클클~!’
 만일 격포의 예상이 맞는다면 청심환을 먹고 축복을 받는 것보다는 이왕이면 비싸더라도 더 좋은 영단을 먹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줄리엣, 대륙에 교단이 몇 개나 있지?”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7개인데 히든클래스가 탄생하면서 창시된 교단이 2개 더 있다고 하는데, 그게 어떤 교단인지는 모르겠어.”
 “핵터는 어느 교단 소속이었지?”
 “아미리스 교단이야.”
 ‘아미리스 교단과 헤나 교단의 축복은 더 이상 받을 필요가 없겠군.’
 영단의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는 교단이 아직도 7개나 남아 있다는 말에 격포는 싱글벙글댔다.
 그리고 그의 미소가 작렬한 순간 주변에 있던 여성들이 자지러지는 소리를 냈다.
 “꺄아아악!”
 “어머! 너무 멋져.”
 “아! 남자의 미소가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다니.”
 “안 되겠어. 리플레이라도 찍어서 내가 찾은 완소남이라고 게시판에 올려야겠어.”
 “맞다!”
 “나도.”
 “다 비껴! 저 남자는 내가 찍었어.”
 “왜 이래? 지 주제를 알아야지.”
 시간이 흐를수록 여성들의 반응은 더욱 뜨거워져서 몇몇 여성들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자리싸움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들이 격포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는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모습이 널리 알려지는 것은 격포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줄리엣, 빨리 가자.”
 “어디?”
 “일단 여기부터 나가자. 불편해서 안 되겠어!”
 “으… 응.”
 격포가 밖으로 나가자 여자들도 따라서 밖으로 나왔다.
 그중 몇몇 여성은 대뜸 친구 신청을 해오거나 다가와서 이름을 묻는 경우도 있었다.
 당황한 격포는 더 놀라서 달음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이봐요, 잠시만요.”
 “님, 이름만 알려주세요?”
 “저기요, 사냥 가실 거면 같이 가실래요? 전 파티도 안 맺고 축복만 계속해서 걸어 드릴게요.”
 “저도요!”
 “몰이는 제가 해올게요.”
 
 * * *
 
 “헉~! 격포야, 숨찬데 그만 가자.”
 “이제 안 쫓아오니?”
 “몰라, 그런 것 같은데.”
 “휴우~! 다행이다.”
 “그러게, 좀 못 나지 그랬어? 네가 워낙 잘생겨서 그런 것 아냐?”
 “나도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지.”
 “그게 무슨 소리야?”
 “엉?”
 “내가 봤을 때 오늘 같은 일이 처음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안 그래?”
 “으… 응.”
 격포의 지금 모습이 폴리모프 상태라는 것은 줄리엣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격포가 이런 상황을 종종 겪었다고 여겼다.
 격포는 자신이 또다시 실수했음을 알고 황급히 말을 돌렸다.
 “줄리엣, 안 쓰는 로브라도 없니? 아무래도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할 것 같아.”
 “때마침 사냥하다가 얻은 것이 있는데 줄까?”
 “응.”
 “써봐, 옵션은 별 볼일 없어도 얼굴 가리는 데는 충분할 거야.”
 “고마워.”
 줄리엣으로부터 로브를 얻어 입은 격포는 등 뒤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상점가를 돌기 시작했다.
 얼굴이 가려져서인지 아까처럼 넋 놓고 격포의 얼굴을 바라보는 여자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격포야, 뭘 사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거야?”
 “갖고 있는 잡템을 팔고 난 후에는 정령석을 살 생각이야.”
 “정령석을 사려면 재료 상회로 가야지.”
 “응. 나도 그럴 생각이었어.”
 “가자, 재료 상회는 맞은편에 있어.”
 이건 거짓말이었다.
 사실 격포는 정령석을 어디서 사야 하는지 몰라서 상점을 무작위로 돌면서 간밤에 사냥하면서 얻은 아이템을 처분하고 있었다.
 아울러 다른 한편으로는 레볼루션의 무기와 방어구를 확인하면서 천외지천과 비교하고 있었다.
 상점을 돌면서 느낀 건데, 확실히 같은 등급의 아이템이라면 천외지천의 아이템이 레볼루션의 아이템보다는 기본 성능과 옵션이 더 좋은 것 같았다.
 다행인 것은 어제 얻은 아이템들이 비교적 고가에 팔려서 사냥하면서 획득한 골드와 합치면 자그마치 39,000골드나 되었다.
 특히 카루를 잡으면서 자동으로 들어온 도끼는 꽤나 고가여서, 무려 32,000 골드에 팔렸다.
 사실 도끼는 창조된 스킬을 확인하느라 격포도 미처 몰랐던 사실로 이런 경우는 파티 플레이를 할 때, 종종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무슨 일인가?”
 “정령석을 살려고 하는데요?”
 “어떤 속성의 정령석을 원하는가?”
 “살펴보고요.”
 재료 상회로 들어온 격포는 정령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정령석은 물, 불, 바람, 냉기, 뇌전, 대지, 나무, 금속, 빛, 암흑의 속성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최하급부터 하급과 중급 그리고 상급과 최상급까지 5개의 등급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정령석을 살펴보던 격포는 속성 강화 스킬을 배운다는 보장이 없어서 가장 저렴한 최하급 정령석을 개당 2,500골드에 4개를 샀다.
 놀라운 사실은 격포가 얻은 최상급 정령석이 하나에 5만 골드나 되었다 것이다.
 이는 1만 골드에 1만 원 하는 레볼루션의 시세를 감안할 때 현금으로 5만 원이나 하는 고가의 아이템이었다.
 “더 필요한 것은 없는가?”
 “또 뭐가 있죠?”
 “방어구나 무기의 재료가 되는 금속은 어떤가?”
 “어떤 게 있는데요?”
 “각종 강철은 물론이고 미스릴부터 시작해서 아다만티움과 오리하르콘도 있지.”
 “제가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이쪽으로 오게나.”
 상인 NPC를 따라서 가게의 안쪽으로 들어간 격포는 푸른색과 은색 그리고 검은색으로 빛나는 3종류의 금속과 마주했다.
 확인해보니 푸른색은 미스릴이었고 은색은 오리하르콘, 검은색은 아다만티움이었다.
 “격포야, 대장장이에게나 필요한 금속은 뭐하려고 그래?”
 “쓸 데가 있어서 사놓으려고.”
 “이런 건 상점에서 사는 것보다는 개방된 광산에 가서 직접 캐면 되는데, 대략 1시간쯤 캐면 7~8개는 얻을 수 있을걸?”
 “귀찮아서.”
 “몇 개나 필요한데, 나도 사냥 도중에 얻은 게 있는데 줄까?”
 “네가 쓸려고 모아둔 것 아니었어?”
 “내가 대장장이도 아닌데, 그런 걸 뭐하게?”
 다른 게임과 달리 레볼루션은 광산이 여러 군데 있어서 미스릴은 물론이고 오리하르콘이나 아다만티움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덕분에 격포는 줄리엣에게 아다만티움 4개를 얻었고, 상점에서는 오리하르콘 12개를 각각 1,500 골드에 샀다.
 “또 살 것 있니?”
 “아차! 생명력회복 포션이랑 텔레포트 스크롤도 사야겠다.”
 “가자.”
 재료 상회를 나온 격포는 줄리엣을 따라서 스크롤 상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어디에 있든 제논시로 돌아올 수 있는 스크롤을 한 장당 500골드씩 해서 8장 샀다.
 덕분에 이제 남은 돈은 7천 골드뿐이었다.
 그런데 포션 상점에서 파는 생명력회복 포션들은 명칭만 다를 뿐, 천외지천에서 파는 것과 그 효과가 똑같았고 가격도 시세를 감안하면 차이가 없었다.
 ‘젠장, 이래서는 포션을 사갖고 가봐야 별 의미가 없잖아?’
 겨우 7천 골드밖에 안 남은 돈을 허투루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격포는 레볼루션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본 이후에 남은 돈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때 문득 스킬 북을 사가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줄리엣, 괜찮은 스킬 북이 나온 게 있을까?”
 “포션은 안 사고 스킬 북을 사게?”
 “살펴보니 포션은 아직 여유가 있는 것 같아서, 그나저나 스킬 북은 요즘 얼마나 할까?”
 “스킬 북은 가격이 만만치 않을 텐데, 어떤 스킬을 배울 생각인데?”
 “A급이나 S급 공격스킬은 얼마씩이나 할까?”
 “A급 스킬 북이면 못해도 10만 골드는 갈걸.”
 “컥!”
 레볼루션은 스킬 창조가 가능해서 스킬 북의 가격이 쌀 줄 알았는데 비싼 것은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격포는 다른 물건을 사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포션 상점을 나왔다.
 
 * * *
 
 “범석아, 준태랑 같이 안 왔니?”
 “응. 왜?”
 “준태가 아직 안 왔어.”
 “뭐! 동아리 모임 시간이 얼마 안 남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어서 전화해봐.”
 “응. 알았어.”
 격포가 줄리엣과 함께 제논시의 상점을 돌고 있을 무렵 반디는 동아리 회관 앞에서 격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디는 본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캐릭터 명칭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혼자 들어오는 범석을 발견하고는 격포의 행방부터 물었다.
 그러나 격포의 행방을 모르는 것은 범석도 마찬가지였다.
 “전화 안 받는데.”
 “혹시 무슨 일 생긴 것 아닐까?”
 “일은 무슨, 분명 신 나게 게임하느라고 동아리 모임도 잊어먹고 있을 거야.”
 “아냐. 어제오늘 내가 잠깐씩 게임에 접속해봤는데 준태는 없었어. 내 생각이지만 마적들에게 죽은 후로는 게임에 접속하지 않은 것 같아.”
 “뭐! 준태도 죽었어?”
 “그래. 나를 구하다가 죽었어.”
 “낄낄낄~! 그 말 사실이지?”
 “그렇다니까.”
 “우하하하~! 그것참 고소하다. 난 준태는 살고 나만 죽은 줄 알고 억울해서 잠도 못 잤는데.”
 “야! 지금 그런 말이 나오니? 난 걱정되어 죽겠는데.”
 “네가 왜 준태를 걱정해? 반디, 너 혹시 준태를 좋아하냐?”
 “아냐, 그런 것! 난 준태가 나를 구하다 죽은 게 자꾸 마음에 걸려서…….”
 “야, 게임하다가 마적단에게 죽은 게 어디 한두 번이야? 너, 아무래도 이상해?”
 “아니래도!”
 반디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반디가 예전부터 준태를 좋게 생각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같은 동아리 동기로서의 감정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 애쓰는 준태의 모습을 보고 남다른 호감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는데, 더 수상해?”
 “으이그, 내가 말을 말아야지.”
 짓궂은 범석의 추궁에 반디는 아니라며 도리질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준태의 전화번호를 대며 맞는지 물었다.
 “야! 네가 준태 전번은 어떻게 아냐?”
 “동아리 연락망 보고 알았지, 그나저나 이 번호가 맞긴 맞는 거야? 오늘 발표는 준태가 한다고 했는데, 어떡하지.”
 “흠! 아무래도 냄새가 나, 한번 파헤쳐봐야겠는데.”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파헤치긴 뭘 파헤쳐?”
 “호! 그 말은 준태를 좋아하기는 한다는 거네?”
 “내가 언제 그래? 그나저나 얘는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범석의 집요함 때문인지 반디는 전화를 안 받는 준태에게 짜증을 냈다.
 하지만 범석은 반디의 짜증이 가식이란 것을 알고는 실실 웃다가 한마디 했다.
 “전화를 안 받는 것이 어쩌면 알바를 하고 있는지도 몰라.”
 “무슨 알바?”
 “녀석이 학비라도 번다고 캡슐방의 고장 난 캡슐을 고쳐주는 일을 종종 하거든. 그리고 지금 같은 방학 때는 지방 출장을 갈 때도 있어. 자식이 알리기 싫어서인지, 알바를 할 때는 꼭 전화를 안 받더라니까.”
 다른 건 몰라도 캡슐 조립과 튜닝 실력만큼은 동아리 내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준태였다.
 때문에 반디는 그런 준태라면 어지간한 고장은 척척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학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한다는 점이 의외였다.
 “준태 사정이 그렇게 안 좋아? 그런데 그런 형편에 아마겟돈 캡슐은 어떻게 산 거야?”
 “말도 마라! 그것 폐기장이랑 캡슐방 돌면서 고장 나서 버린 구식 캡슐이랑 부품을 모아서 조립한 거야.”
 “그랬구나.”
 준태의 성격이 명랑하고 항상 밝아서 부유한 형편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는 줄 알았던 반디였다.
 아울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티를 전혀 내지 않은 준태가 더 의젓해 보였다.
 반디가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시간을 확인하던 범석이가 다급히 외쳤다.
 “반디야, 이러다 우리도 늦겠다.”
 “아! 나라도 발표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서둘러.”
 “같이 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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