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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샷 1권-1

2015.01.14 조회 990 추천 6


 스승을 공경할 줄도 모르는 놈
 
 어우우우-
 늑대들의 울음이 간간이 들려오는 산속에 한 사내가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옆에서는 간간이 풀벌레가 울어대는 것이 사내가 있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죽은 것처럼 꼼짝도 않고 있던 사내는 뭐가 못마땅한지 잔뜩 볼이 부어 있었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왜 나야? 다른 사형도 많은데.”
 사내의 말은 바로 옆에서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지만, 표정으로 봐서는 분명 화가 난 상태였다.
 한여름 밤의 산은 모기들의 천국이었다.
 사내도 모습과 기척을 완전히 숨기고 있었지만,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모기들의 공습은 피할 수 없었다.
 “젠장, 썩을 놈의 원한령, 잡히면 넌 죽었어!”
 사내의 말이 끝나자마자 왼손에 쥐고 있던 태극패의 눈금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여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사내도 이번에는 신중한 기색으로 태극패를 바라봤다.
 미묘한 변화를 보이던 태극패의 눈금에 그림자가 진해지기 시작했다.
 투투투툭.
 태극패에서 유리가 갈라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목표로 했던 원한령이 근처에 오고 있다는 소리였다.
 태극패의 눈금이 일건천(북서방향으로 귀신이 힘을 못 쓰는 방향)에 멈춰 서자 사내는 득달같이 몸을 날렸다. 허공으로 비상하는 와중에도 사내는 태극패를 열어 동경을 비쳤다.
 비록 보름달이 떴다고는 하나, 산속이라 달빛이 작은 거울에 들어오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 사실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작은 동경은 주황색의 밝은 빛을 토해냈다.
 빠르게 쏟아져 나간 빛줄기가 산속의 어딘가를 비추었다.
 그 순간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악!”
 “네 이년! 이미 죽어 썩어문드러진 년이 여기가 어디라고 돌아다니느냐!”
 어느새 사내의 앞에는 왼쪽 팔뚝이 타들어가며 고통에 신음하는 여인이 나타나 있었다. 머리를 곱게 길러 쪽머리를 한 여인은 당황하며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사내의 가벼운 손짓에 폭발이 일어나며 6개의 소혼(消魂) 부적이 나타나 병풍처럼 여인을 막아섰다.
 “그냥 가면 섭섭하지. 내가 너를 기다리다가 모기에 공양한 피가 얼마나 되는데 말이야.”
 “제발 절 보내주세요……!”
 “가증스러운 것, 멀쩡한 사람을 아흔아홉 명이나 죽이고도 네가 살기를 바래? 귀신은 다 너처럼 염치가 없냐?”
 사내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여인의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는 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자신이 얼마 전, 도술실험을 하다 산불을 내지 않았다면 아마 이 자리에는 다른 사형들이 와 있었어야 했다. 겨우 작은 산 한 개 홀랑 태워먹은 것뿐인데, 스승이 지극히 감정적으로 자신을 보낸 것이다.
 “부탁입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늦었어. 네가 저지른 죄가 너무 커서 당장 잡아오라는 염라대왕님의 명이다.”
 “앞으로는 조용히 살겠습니다. 그러니…….”
 “짜증난다, 그만해. 역천의 죄를 저질렀을 때 이미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던 거냐? 다 집어치우고 양심이 있다면 그냥 곱게 잡혀.”
 여름 밤 산속에서 장시간 은신하는 것은 사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었다. 산속의 굶주린 모기에게 스무 살의 사내는 훌륭한 만찬거리였다.
 평소에야 기공을 조금만 운용해도 모기들이 달려들지 않지만, 원귀에게 정체를 발각되지 않기 위해서 꼼짝없이 은신만 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기공을 사용했다가는 대번에 흔적이 드러날 것이고 원귀사냥은 실패로 끝날 것이었다.
 그리고 스승은 복날 개 패듯이 자신을 폭행할 것이 확실했다.
 “도련님, 제발 보내주세요. 전 이승에서 못 다한 일이 남아…….”
 “흥, 왜? 100명 채워서 요괴선(妖怪仙)이 되어보시게?”
 “아니에요. 제발, 제발이요…….”
 여인은 사내에게 애원을 하면서 몸을 비틀었다.
 아주 자연스러운 동작이었지만, 상의 저고리의 고름이 풀리면서 옷이 흘러내렸다. 여인의 가녀린 어깨가 드러났고 풍만한 가슴살이 반쯤 드러났다.
 순간 사내의 눈에 이채가 번뜩였다.
 그리고 여인은 사내의 눈에 나타났다가 빠르게 사라진 이채를 놓치지 않았다.
 “도련님께서 소녀를 보내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고…….”
 여인은 훌쩍이면서 비음 가득한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그녀의 몸은 한 바퀴 반 회전했고 한쪽 어깨에 살짝 걸쳐진 저고리와 치마가 스르륵 흘러내렸다.
 여인의 손이 가슴의 가리개를 내리는 순간, 사내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지랄하네. 못생겨서 소박맞고 스스로 목을 맨 계집이 미인계를 써? 아주 염병을 해라.”
 순간 가슴가리개의 매듭을 다 풀었던 여인의 손이 분노로 부르르 떨렸다. 자신의 한 맺힌 죽음을 비웃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분노한 그녀가 몸을 확 돌리자 매듭 풀린 가슴가리개가 밑으로 떨어졌고 풍만한 가슴이 흘러 내렸다.
 “…크크큭, 세상의 사내에게 복수를 하려 했건만. 오직 외모만 보고 모든 것을 평가하는 사내들을 전부 죽여야 하건만…….”
 “흥, 그러는 너는 본모습을 하지 않고 왜 위장을 했지? 죽어서라도 그런 외모를 갖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 아니고?”
 “닥쳐라!”
 여인의 쪽머리를 고정하고 있던 머리띠의 양쪽 끈이 길게 늘어났다. 길게 늘어난 끈은 뱀처럼 꿈틀거리며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사내는 상체를 비트는 것만으로 여인의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아니, 피한 것만이 아니라 어느덧 오른손에 작은 환도를 꺼내들고 집요하게 달려드는 뱀의 머리를 쳤다.
 사내의 칼질에 머리와 몸통이 토막 난 뱀은 바닥에 떨어졌고, 바닥에 떨어진 후에도 몇 번이나 파닥이던 뱀은 서서히 힘을 잃고 사라져갔다.
 “멈춰! 정녕 소혼부적에 걸려 혼(魂)마저 흩어지고 싶은 것이냐!”
 “흥, 네놈의 정기를 빨아먹고 빈 껍질은 가죽으로 쓰고야 말겠다!”
 “하, 아주 죽으려고 작정했구먼.”
 “…이승을 떠돈 지 10년, 너 같은 애송이에게 당할 내가 아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인의 몸이 공중으로 비상했다.
 하지만 사내는 그런 여인을 담담하게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사내의 여유 있는 표정에 여인이 당황할 때 허공에 나타난 6장의 소혼부적이 점점 커지면서 그녀를 따라서 비상했다.
 여인은 자신의 등 뒤에 바짝 붙은 소혼부적을 향해 강하게 일장을 내뻗었다.
 하지만 순백색 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여인의 신형이 실 끊어진 연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그건 보통의 소혼부적이 아니라구. 갓 태어난 사내아이의 첫 소변을 섞은 거란 말이지.”
 사내의 설명에 여인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이미 일장을 내뻗었던 여인의 오른손은 손목까지 사라지고 없었다.
 순수한 양기가 가장 넘쳐흐른다는 갓난 사내아이의 소변이 섞인 소혼부적이라면 자신의 혼을 단숨에 제압할 수 있기에 여인의 눈은 공포로 물들었다.
 “요…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인간의 정기를 욕심내지 않을게요.”
 “너무 늦었어.”
 사내가 다가서자 여인은 주춤거리며 서서히 물러섰다.
 하지만 등 뒤에 자리한 소혼부적에 등이 닿자마자 또다시 순백색의 빛이 번쩍였다.
 “꺄아악!”
 부적에 닿은 여인의 등에서는 아직도 치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크으윽, 죽여라! 그러나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반드시 너에게 복수하고 말겠다.”
 “헹, 혼까지 소멸될 예정이니 꿈 깨셔.”
 “…악독한 놈.”
 원한이 서린 여인의 표독한 눈빛을 마주보며 사내가 박(縛)자 수인을 맺었다. 그 순간 6장의 부적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여인에게 달려들었다.
 눈부신 빛이 사라졌을 때는 원래의 크기로 돌아온 6장의 부적만이 바닥에 남아 있었다.
 “에이, 눈 버렸네.”
 사내는 바닥의 부적을 주워 챙기고는 까닥하며 허공으로 손짓을 했다.
 그러자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르는 구름이 나무꼭대기에서 내려와 사내의 앞에 멈춰 섰다.
 사내는 망설이지 않고 구름 위에 올라탔다.
 사내를 태운 구름이 빠른 속도로 산등성이를 넘어갈 때 서서히 동이 트고 있었다.
 
 * * *
 
 사내를 태운 구름은 빠른 속도로 북상했고 얼마 안 있어 우뚝 솟은 백두산 근처에 이르렀다.
 사내는 침엽수가 무성하게 우거진 원시림으로 구름을 몰고 갔다.
 그와 스승을 비롯해서 사형과 사제들이 사는 천운도량은 구름을 타고 들어갈 수 없었기에 구름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에고, 피곤하다. 가서 낮잠이나 자면 좋으련만.”
 도량이 자리한 계곡과 인근 산자락에는 하늘까지 기문병진이 빼꼭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 외에도 천운도량을 찾아오는 다른 도량의 알량한 제자를 혼내고 실력을 과시하기 위한 스승의 세심한 결계도 여러 군데 마련되어 있었다.
 “이놈의 진, 대충 만들지. 들어갈 때마다 불편해 죽겠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백두산에서 산신들의 총회가 열렸다고 한다.
 산신총회에 참가한 많은 산신 중에서 호승심 강한 계룡산 산신이 스승의 기문병진과 결계를 깨기 위해 덤벼들었다가 3박 4일간 갇혀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뭐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만큼 기문병진과 결계가 강한 것은 사실이었다.
 구름에서 훌쩍 뛰어내린 사내는 안개 자욱한 숲을 거침없이 헤치고 나갔다.
 “늦었다고 스승님이 잔소리나 안 하시려나 모르겠네.”
 산신령도 가둔다는 대단한 기문병진과 결계가 펼쳐져 있지만, 자기 집을 못 찾아가는 이는 없다.
 사내는 숲속을 빠르게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계곡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두근이 왔냐?”
 “네, 스승님.”
 한때는 배달국 최고의 천재도사로 이름을 날렸던 스승이었다. 하지만 천수가 100세를 훌쩍 넘으면서 스승의 모습은 도사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허연 머리는 도사건으로 단정히 묶었고 도사의 상징인 허연 수염은 배꼽까지 길게 기르고 있었다.
 “일을 잘 마무리했느냐?”
 “당연하죠. 천운도량 최고의 기재, 한마루가 갔는데.”
 “방금 가마산 산신령이 다녀갔다.”
 “헉……!”
 얼마 전 사내는 가마산을 다녀왔다. 세상에서 제일 높다는 가마산은 사시사철 만년설로 얼어붙은 산이다.
 그런 가마산의 정상에는 만년설삼 두 뿌리가 막 꽃을 피운 상태였다.
 가마산의 산신령은 요즘 만년설삼 보는 재미로 살고 있었건만, 사내는 만년설삼이 꽃을 피웠다는 산신령의 말을 듣고 가마산을 몰래 다녀왔었다.
 “두 뿌리 다 뽑아버렸냐?”
 “…….”
 “이미 네놈 뱃속에 다 들어갔겠지.”
 “…….”
 사내의 스승은 입맛을 다셨다.
 만년설삼은 자신도 구경 못해본 진귀한 영약으로 만년설의 차디찬 얼음바닥을 뚫고 뿌리를 내려 일만 년 만에 꽃을 피운다는 천고의 약초였다.
 스승은 그런 만년설삼을 두 뿌리나 먹은 제자 놈이 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놈이 얼마 전 천오백 년 묵은 산삼을 주던 날, 바로 그날이 가마산을 다녀온 날 같았다.
 “고얀 놈, 스승 공경할 줄도 모르는 놈.”
 “…죄송합니다.”
 “닥치고, 어서 씻고 아침수련이나 준비해라.”
 “네.”
 
 사내의 이름은 한마루.
 그는 환웅의 직계자손의 나라라는 배달국 사람으로 천운도량의 열두 제자 중 여섯째였다.
 하지만 그의 사부 청운거사는 물론이고 그의 사형과 사제들은 두근이라고 불렀다.
 어릴 때부터 워낙 사고를 쳐서 그가 안 보이면 또 무슨 사고를 칠지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두근거린다 해서 붙여진 이름 아닌 이름이었다.
 “두근 사제, 수고했네.”
 “사제, 어서 오게.”
 “큰사형 수고는요, 원한령 하나 잡아오는 일인데.”
 도량의 뒤편에 있는 샘에는 벌써 열한명의 제자가 모두 모여 씻고 있었다.
 상의도복을 벗어 가지런히 접은 그들은 씻다말고 두근에게 인사를 건넸다.
 “두근 사제, 어서 씻고 도장으로 가세.”
 “알겠습니다, 둘째 사형.”
 “두근 사형, 다녀오셨어요.”
 “오냐, 이놈아.”
 “이번에는 별 일 없었어요?”
 “오냐! 그냥 얌전히 갔다 왔다.”
 다들 아침 수련 전이라 씻기 위해 도량 뒤편의 샘에 모여 있었다. 두근은 밤새 산속에 은신하느라 몸이 끈적거렸기에 목욕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욕을 하면 아침수련에 늦을 수밖에 없었기에 망설였다. 수련불참의 벌을 감당하기에는 오늘은 너무 배가 고팠다.
 “어제 나갈 때 챙겨갔어야 했는데…….”
 스승에게 듣는 잔소리야 늘 있는 일이니까 상관없지만, 아침을 굶어야 한다는 사실이 거슬렸다.
 스승은 12년 전부터 아침수련에 늦거나 불참하는 제자에게는 아침을 굶기는 비인간적인 교육방법을 선택했다.
 비인간적인 교육방법의 최대희생자는 두근이였다.
 그나마 평소 같으면 간밤에 챙겨둔 주먹밥이 있어 대충 때울 수 있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원한령을 잡기 위해 어제 오후에 나서느라 주먹밥을 챙길 기회가 없었다.
 “두근 사형, 안 씻고 뭐해요?”
 “사형, 오늘도 땡땡이치실 생각은 아니시죠?”
 “이 녀석아, 내가 땡땡이를 치면 얼마나 쳤다고 너까지 난리야!”
 “사제, 오늘 아침수련은 참석하게. 오늘 아침수련은 스승님이 아니라 특별교사가 하시기로 되어 있네.”
 “그래, 두근 사제. 오늘은 아침수련에 안 빠지는 것이 좋을 거야. 오늘 아침은 특식이 있다고 하는데 못 먹으면 후회할걸?”
 “두 분 사형도 참, 제가 이유 없이 아침수련에 불참한 적 보셨습니까? 저만의 특별수련을 하다 보니 피치 못해 그런 것을…….”
 “허허, 지나가는 귀신을 잡고 물어보게. 다 자신만의 특별한 이유가 있지, 그냥 이유 없이 귀신이 된 것을 본 적이 있는가?”
 “킁…….”
 둘째 사형 온조의 타박에 두근은 앓는 소리를 내더니 요란하게 씻기 시작했다. 짐짓 물을 과장되게 튕겼더니 근처에 있던 사형과 사제에게까지 물이 튕겼다.
 그들이 두근이 튕겨 보내는 물을 피해 도장 안으로 사라지자 두근도 씻는 것을 멈췄다.
 “에휴, 오늘은 어디의 산신령이 와서 따분한 소리를 늘여놓고 갈까?”
 특별교사라는 것이 별 것은 아니었다. 가르치기 귀찮아하는 스승이 주변의 산신령을 불러다가 대신 잔소리를 하게 하는 것이 전부였다.
 천운도량에서 21년을 지낸 두근이였기에 이미 수없이 경험했던 일이었다.
 도가 어떻고 선이 어떻고 하는 알량한 잔소리를 하고는 마치 천기라도 누설하는 것 마냥 근엄한 표정을 짓는 산신령의 모습이라면 이제 넌더리가 났다.
 “에이, 그냥 성질대로 어디 처박혀서 잠이나 자버릴까?”
 “사형! 스승님께서 빨리 오래요!”
 “…그래, 알았다!”
 막내 지율까지 보내서 자신을 찾는 것이 오늘 온 특별교사는 스승도 어려워하는 백두산 신령이나 금강산 신령쯤 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빠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두근은 대충 씻고 도장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특별교사는 아직 안 보였다.
 몰래 졸기 편한 뒷자리를 선택한 두근은 작은 앉은뱅이책상 밑으로 다리를 쭉 뻗었다. 어차피 뻔한 소리를 들을 바에는 부족한 잠이나 보충하는 것이 백 번 옳은 선택이었다.
 ‘분신술을 준비해야겠지.’
 졸음을 들키지 않고 안전하게 자기 위해서는 약간의 술수가 필요했다.
 능구렁이 같은 스승에게는 통하지 않겠지만, 어쩌다 한 번 오는 특별교사들은 달랐다.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놓고 몰래 벌레 같은 것으로 변신해서 서까래(한옥의 천장에 붙어 지붕을 받치는 기둥의 일종) 같은 데에 달라붙어 자면 확실했다.
 일단은 스승과 눈을 맞춰서 자신이 확실히 수업에 참가했고, 술수를 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줘야 했다.
 “다들 인사해라. 부족한 네놈들을 위해 오늘 특별히 수고해주실 동해용궁의 청파신녀님이시다.”
 “반갑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신녀님,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놈들, 나 없다고 헛짓하지 말고 신녀님 말씀 잘 들어!”
 “네, 스승님!”
 “걱정 마십시오, 스승님!”
 스승 청운거사가 신녀를 향해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나갔다.
 스승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두근은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청파신녀를 봤다.
 윤기 있는 피부에 잘록한 허리며 귀엽고 동글한 두 눈은 완전히 두근의 이상형이었다.
 평소 선녀들을 많이 알고 지내는 두근이지만, 단언하건데 청파신녀만큼 아름다운 여자는 처음이었다.
 두근의 가슴이 벌렁거리고 심장이 콩딱콩딱 뛰는 동안 신녀는 자신의 일일 제자들을 둘러봤다.
 “다시 한 번 인사드리지요. 만나게 되서 반가워요. 오늘 일일교사를 맡은 동해용궁의 청파라고 합니다.”
 “와! 신녀님, 목소리도 고우시네요.”
 “고마워요.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해양생물로 둔갑했을 때 나오는 몇 가지 문제점과 이의 해결법을 말하려고 해요.”
 신녀의 모습을 보던 두근의 입이 저도 모르게 벌어졌다.
 그리고 끈끈한 침이 꿀물처럼 길게 이어지며 떨어졌다.
 그 순간 청파신녀와 두근의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두근은 책상에 막 닿으려고 하는 침을 급하게 빨아들였고, 침은 다시 그의 입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빠르기였다.
 두근의 재빠른 사태수습 때문인지 신녀는 무슨 일이 벌어진지 모르는 것 같았다.
 “오늘은 좀 재미있겠는데?”
 “신녀님, 빨리 시작하지요!”
 신녀가 둔갑술교육을 한다고 하자 제자들은 신이 나서 수업을 재촉했다. 그들 역시 산신령들의 고리타분한 강연보다는 둔갑술 같은 실기수업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
 두근은 다른 제자들의 소란스러움을 뒤로하고 신녀를 유심히 봤다. 슬쩍 비추는 겉옷 사이로 그녀의 탄력 있는 속살이 언뜻 보이자 순간 두근의 두 눈이 순간적으로 파란 빛을 띠다가 이내 정상으로 돌아왔다.
 ‘헉! 예쁘다. 피부도 탱탱하네, 용궁에서 살아서 그러나?’
 의식하는 순간, 투시술이 절로 시전된 것이다.
 만일 이 순간 두근의 스승이 있었다면 경악했을 것이다.
 두근의 경지가 마음먹은 순간 술법이 진행된다는 탈혼경(脫魂境)의 경지였기 때문이다.
 스승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다른 산신령도 아직 그 단계까지는 못 이루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한편 무아지경에 빠진 두근은 처음에 가졌던 죄책감은 벌써 잊고 이제는 투시경을 통해 신녀의 속살과 가슴을 보는데 흠뻑 빠져 있었다.
 “여러분 중에 혹시 둔갑술을 극한까지 대성하신 분 있나요?”
 신녀의 말에 도량의 제자들은 모두 두근을 쳐다봤다.
 하지만 두근은 신녀의 얼굴과 몸매를 연신 쳐다보느라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아예 말이 귀에 안 들어오는 것 같았다.
 청파신녀는 제자들의 시선을 따라 두근을 봤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과 몸매를 계속 쳐다보며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를 보고 뭔가 불길한 생각에 기공을 운용해 자신의 몸을 둘렀다.
 “아… 안… 돼!”
 투시술을 발휘해 청파신녀의 몸을 구석구석 살펴보던 두근은 마지막으로 허벅지 안쪽의 깊숙한 비처를 살펴보려고 시선을 내린 순간, 안개의 막이 모든 것을 가린 것에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조용하던 도장에 안타까움이 가득실린 두근의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제, 무슨 소리야?”
 “사형, 벌써부터 졸고 있었던 거야?”
 “아! 아… 응…….”
 청파신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지만, 그 이유를 아는 제자는 오직 두근뿐이었다.
 “신녀님, 괜찮으세요?”
 “두근 사형은 그새 졸았던 거야?”
 그 순간 신녀의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녀가 기공으로 몸을 보호하는 순간, 녀석의 눈에 살짝 푸른빛이 스치고 사라졌다.
 분명 투시술이 깨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저걸 뒤지게 패고 개 값을 물어줘? 아니야, 용궁으로 유인해서 물고기 밥으로 확 던져버려?’
 신녀의 안색이 계속 변하다가 마지막에는 생각으로 멍해지자 제자들은 그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두근이가 졸았다는 사실이 큰 충격을 준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첫째 제자 수근이 나서서 변명을 해줬다.
 “신녀님, 두근 사제는 평소에도 자주 조는 편입니다. 그리 놀라시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신녀님. 어서 얘기해주세요.”
 두근을 제외한 열한 명의 제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보챘다.
 청파신녀는 우선 수업을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근이 자신의 알몸을 봤다는 사실을 내놓고 말하기도 부끄러웠고 막상 심증만 있지 증거가 없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깊은 바다에만 사는 빙잠어(氷蠶魚)의 비늘과 수염으로 만든 옷이었다.
 용왕이나 선녀 정도의 법력이나 도력이 없으면 어떤 술수도 통하지 않는 옷이었다.
 “…미안해요. 내가 어디까지 말했지요?”
 “둔갑술을 대성한 이가 있는지 물어보셨어요.”
 “예. 그리고 두근 사제가 둔갑술은 우리 중 최고의 경지에요.”
 “맞아요. 두근 사형의 둔갑술에 우리도 속을 때가 많지요.”
 예기치 못한 일로 당황하기는 했지만, 신녀는 신녀였다.
 자신의 알몸을 몰래 감상한 버릇없는 제자가 둔갑술에 가장 뛰어나다고 하자 뭔가 계략이 떠오르는 그녀였다.
 “둔갑술이 입문은 쉽다고는 하나, 대성은 어려운 술법입니다. 간혹 변신술의 얕은 재주를 배운 것만으로 둔갑술의 광대한 오의를 깨우쳤다고 하는 어리석은 이를 본 적이 있는데 여러분은 그러지 않겠죠?”
 “네!”
 열한 명의 제자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는 동안 두근은 대답하지 않았다.
 신녀의 말투에서 미묘한 도발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여러분 중 둔갑술의 단계를 정의하실 수 있는 분?”
 “예, 제가…….”
 “둔갑술의 정의는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요. 제가 하겠습니다!”
 열한 명의 제자들은 청파신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청파신녀가 상큼한 미소로 살짝 웃어주자 가슴을 쓸어내리는 제자들도 있었다.
 “예, 거기 끝자리에 계신 수련생이 말해 보지요.”
 신녀는 손을 번쩍 든 열한 명의 제자 중 막내 지율을 지적했다. 지율의 얼굴이 환하게 변한 것과 동시에 다른 10명의 제자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며 손을 내렸다.
 “둔갑술은 변신하고자 하는 대상의 대표적인 모습을 부분적으로 재현해내는 초급 단계가 있고 완벽하게 변신하며 그 특성까지 발휘하는 중급 단계로 이를 다른 말로 변신술(變身術)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변신자 본연의 능력까지 거리낌 없이 발휘할 수 있는 상급 단계가 있는데 이때부터 둔갑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럼 여기에 덧붙일 분은 안 계신가요?”
 “예!”
 처음과 달리 이번에는 다섯 제자만 손을 들었다.
 수련 기간이 짧은 어린 제자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다른 것이 또 있나 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신녀는 이번에는 셋째 제자 을부를 지목했다.
 “둔갑술의 수준에 따른 분류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많은 것으로 둔갑이 가능하냐는 것도 중요한 분류 방법입니다. 보통 중급자라면 30가지 내외의 둔갑이 가능하고 상급자는 100가지 이상의 둔갑이 가능했을 때 비로소 둔갑술을 대성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확해요. 역시 배달국 최고의 천운도량이군요.”
 “감사합니다.”
 “그럼, 천운도량 최고기재의 둔갑술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볼까요.”
 신녀는 노골적으로 두근의 둔갑술이 어느 정도인지 보고 싶다며 둔갑을 강요했다.
 그녀의 말에 다른 제자들이 두근을 일제히 쏘아보기 시작했고, 어서 일어나서 신녀께 재주를 보이라는 무언의 압력에 두근은 자리에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둔갑술을 배웠다고는 하나 아직 그 재주가 부족해서 신녀의 눈을 어지럽히지는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아니에요. 배달국 최고의 천운도량 최고의 기재라면 그 수준이 어떨지 내심 기대가 되는군요.”
 신녀의 말에 다른 제자들은 함성과 박수를 치며 두근을 재촉했다.
 그러나 두근은 왠지 모를 불안감이 자신을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섯 명의 사형을 비롯해서 모든 제자가 자신에게 무언의 압력을 보내오자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다.
 “미천하나마 그럼 재주를 부려보겠습니다.”
 두근은 평소 즐겨하던 백호로 변신하고자 주문을 읊조렸다.
 그 순간 신녀의 왼손이 엄지와 검지를 모으면서 안쪽으로 묘한 곡선을 그리더니 한 바퀴 회전했다.
 ‘흥, 어디 둔갑술이 되나 봐라. 감히 내 몸을 훔쳐봐?’
 다른 제자들은 두근의 둔갑술을 기대하느라 모두 그를 쳐다보고 있었기에 신녀가 수인을 맺은 사실을 몰랐다.
 아니, 봤다고 했을지라도 워낙 자연스럽고 극히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기에 몰랐을 가능성이 많았다.
 하지만 두근은 신녀가 자신을 골탕 먹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교묘하게 수인을 맺는 것을 봤다.
 그랬기에 주문을 외치다말고 잠시 자리에 멈춰 있었다.
 “어머, 둔갑을 보여주지 않고 뭐하시는 거죠?”
 “…꼭 그래야겠습니까?”
 시치미를 떼고 태연하게 독촉하는 신녀를 향해 두근은 자연스레 반문했다.
 하지만 그새 두근의 왼발은 앞으로 반보가 나오면서 북동의 곤천을 밟고 다시 오른발은 들어 슬쩍 뒤로 빼진 상태였다.
 남동의 감지를 밟음으로써 신녀가 펼친 일종의 결계를 무위(無爲)로 돌려버리는 무위보(無爲步)를 펼친 것이다.
 하지만 청파 역시 용궁 내에서는 손꼽히는 도력을 자랑하는 신녀였다.
 그녀는 두근의 무위보에 맞서기보다는 결계의 축을 옮기는 것을 선택했다.
 이윽고 그녀의 검지와 중지가 펼쳐지더니 밑에서부터 위로 반원의 구를 그렸다.
 “자, 어서 보여주세요.”
 “…킁.”
 너무나 자연스럽게 독촉하는 몸놀림으로 결계의 축을 신녀가 간단하게 이동시키자 두근은 오기가 생겼다. 보아하니 자신이 둔갑술을 펼치지 못하게 한 후, 무안을 주려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요. …내 책임은 아닙니다.”
 “흥!”
 두근이 최후통첩을 하는 것처럼 낮게 으르렁거리자 신녀는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신녀의 코웃음을 본 두근은 입으로는 주문을 외우면서 몸은 구궁의 묘리를 따라 팔괘의 방위를 밟기 시작했다.
 또한 뒷짐 진 그의 두 손은 빠른 손놀림으로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이 순간 두근의 마음은 복잡 미묘했다. 분명 양심은 자신이 잘못했다면서 적당한 기회를 봐서 사과하라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청파신녀에게 절대 질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겨버렸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녀에게만큼은 자신의 본신실력을 드러내고 뽐내고 싶었던 것이다.
 “바하마나 훔치 바랴바사 묘을천.”
 채앵- 퍼엉!
 “큭……!”
 두근의 주문이 끝날 때 수인도 끝났고, 이어 역발보(逆發步)도 펼쳐졌다.
 거스르는 모든 것을 쏘아 보낸다는 역발보는 신녀의 결계를 날렸다.
 뭔가 작은 잔이 깨지는 듯한 소리는 신녀의 결계가 역발보에 밀려 날아가는 소리였다.
 발하는 소리는 두근이 백호로 변신했을 때, 주변에 뭉쳐 있던 대기가 갈라지며 나는 폭발음이었다.
 끝으로 마지막에 들려온 작은 신음소리는 두근의 결(抉)자 수인에 신녀가 저항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힘을 물리면서 내는 신음이었다.
 ‘이럴 수가……!’
 청파신녀는 자신의 패배가 믿겨지지 않았다.
 두근이 둔갑주문과 결계를 무너트리기 위한 보법을 펼치자 신녀는 단전의 힘을 끌어올렸었다.
 결계를 굳건히 함과 동시에 두근의 보법을 무효화시키기 위한 신녀 본연의 힘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예상도 할 수 없었다.
 동시에 3가지의 힘을 사용하는 것은 자신도 불가능하고 용왕이나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두근은 뒷짐을 진 상태에서 신녀 모르게 수인을 펼쳤다. 오직 역발보를 무효화시키기 위해 온 힘을 쏟던 신녀는 난데없는 기운에 놀라 다급히 주의를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그 통에 결계도 깨져버렸고 신녀는 적지 않은 내상을 입게 되었다.
 “와! 역시 두근 사형이야!”
 짝짝짝짝.
 열한 명의 제자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두근의 둔갑은 참으로 완벽했다. 백호의 모습을 완전히 갖춘 것은 물론이고, 이글거리는 두 개의 불덩이처럼 번쩍이는 눈마저 완벽했다.
 특히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자연 그대로 백호의 기운이었다. 아무리 두근의 기운을 읽어내려고 해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제자들은 신녀와 두근의 대결은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두근의 둔갑술에만 감탄을 터뜨리고 있었다.
 ‘에휴, 댁들은 둔갑술에 얽힌 내 슬픈 사연을 모르니 재미가 있겠지.’
 둔갑한 두근은 아련히 예전의 추억을 떠올렸다.
 사실 두근이의 둔갑술이 대성한데는 스승과 두근의 처절한 숨바꼭질의 공이 컸다.
 15세가 된 이후, 사실상 배울 것이 없던 두근은 수업을 자주 땡땡이쳤다.
 그러나 스승은 도량의 면학분위기를 위해 그런 두근을 용서하지 않았다.
 두근은 자신의 분신을 세우고 다른 데서 놀기 일쑤였고, 청운거사는 그런 두근을 찾아다녔으며, 결국 두근은 스승을 피하기 위해 둔갑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승이 어찌 그것을 모를까.
 스승님은 두근의 기운을 읽는 방식으로 그를 찾았다.
 결국 스승과 제자의 숨바꼭질이 계속되면서 두근은 마침내 자신의 기운마저 완벽히 감추는데 성공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펑-!
 “이만하면 됐죠?”
 “네…….”
 자신의 내상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던 신녀였지만, 두근의 둔갑술이 상급을 넘어 극상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둔갑을 풀고 이제 자리에 돌아가도 되냐고 묻는 두근의 질문에 신녀는 힘없이 대답했다.
 ‘마지막 순간에 기운을 회수했으니 그리 큰 내상은 안 입었겠지. …내가 심했나?’
 자신이 마지막에 손을 썼기에 신녀의 내상은 내일이면 다 나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신녀가 은근히 고통스러워하자 두근은 미안했다.
 하지만 미안해하는 마음과는 달리 전음을 통해 전달되는 자신의 말투는 퉁명스럽기 그지없었다.
 막상 전음을 한 두근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억지로 내상을 돌보려고 하지 마세요. 하루가 지나가면 모두 정상으로 돌아올 겁니다.-
 신녀는 자신의 뇌리에 울려 퍼지는 전음의 주인공이 두근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한낱 인간에게 패배한 것이 믿을 수 없는 신녀였다.
 그녀가 전음을 사용하기 위해 잠시 기운을 돌리자 또다시 고통이 밀려왔다.
 아무래도 장기가 완전히 뒤틀어진 것 같았다.
 -오늘 하루는 가지고 있는 기운을 사용하지 마세요. 안 그러면 꽤나 고통스러울 겁니다. 그리고 오늘 일을 비밀에 부치지 않고 스승님에게 일러바치면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겁니다.-
 완벽한 자신의 패배였다.
 인간이 동시에 3가지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니.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은 본신의 모든 기운을 끌어내어 그의 힘에 저항했었다.
 만일 마지막 순간에 그가 술수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면 자신은 지금쯤 저승에 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자신을 간단히 격퇴시킨 인간은 오늘 일은 비밀에 부칠 것을 요구했다.
 물론 동해용궁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자신도 오늘 일은 비밀에 부칠 생각이었다.
 아니, 그의 사부에게는 쪽팔려서도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요구할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넋이 나간 신녀가 멍하니 있자 다른 제자들은 의아해하며 신녀를 쳐다보았다.
 “신녀님……?”
 -뭐하십니까? 수업해야지요.-
 또다시 두근의 전음이 날아왔다.
 다른 제자들이 눈치 챌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아! …미안해요. 제가 잠시 다른 생각을 했네요.”
 두근의 전음과 제자들의 독촉에 신녀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다행히 처음과는 달리 내상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기공을 전문만으로 파해하는 술수에 당한 것 같았다. 신녀는 가급적이면 두근과 시선을 맞추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경지를 넘어선 두근 앞에서 일일 특별교사라고 설치는 것이 영 무안했다.
 하지만 무시하고 넘어가려고 해도 아까부터 끈끈한 두근의 시선이 자신의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던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처음 열 받았던 이유도 두근이 자신의 몸을 훔쳐봤기 때문이었다.
 -여태껏 다 보여주고 이제 와서 왜 그러십니까?-
 두근은 신녀가 자신이 또다시 투시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두근이 신녀를 계속 유심히 쳐다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걱정되어서이지 절대로 투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투시를 안 하니 걱정 말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막상 뱉어낸 전음은 그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오늘 하루 자신은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이, 이 음탕한 놈!’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두근의 전음에 신녀는 열이 솟구쳤다.
 자신보다 경지가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비록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겠지만, 그래도 저런 음탕하고 부도덕한 놈은 세상에 알려 사회적으로 생매장시켜야 했다.
 아니, 배달국의 전 도량뿐만 아니라 선계와 각 용궁에까지 알려 더 이상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했다.
 분노한 신녀가 자신의 결심을 행동에 옮기려는 순간, 두근의 전음이 뇌리를 아프게 찔러왔다.
 -딴 생각 하지 마세요. 제가 투시한 영상을 천지에 흩어져 있는 각 도방과 사해바다의 용궁뿐만 아니라 선계와 명계까지 뿌리기 전에.-
 또다시 두근의 본심과는 다른 말이 나와 버렸다.
 이제는 안 봤다고 해도 믿어주지 않을 상황이었다.
 두근이 계속 헛 나오는 전음 때문에 고심하는 동안, 신녀는 신녀대로 두근의 협박에 놀라고 있었다.
 “헉……!”
 신녀의 가슴이 탁 막혀왔다.
 저놈 정도의 실력이라면 투시한 영상을 담아내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이럴 수가.
 아무리 극악무도하다고 해도 이럴 수는 없었다.
 결국 신녀도 여자였다. 자신의 나체 영상이 천지에 나돌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져왔고, 방금 전의 결심이 흔들렸다.
 계획대로 세상에 알려 놈을 벌할 것이냐, 타협할 것이냐 망설이는 신녀에게 두근의 전음이 또다시 날아왔다.
 -에휴, 정말 비싸게 구시네요. 예전 금파신녀는 알아서 다 보여주던데.-
 금파신녀는 동해 4신녀의 으뜸가는 신녀로, 자신이 천운도량에 일일교사로 간다고 하자 말없이 손을 잡아주던 사매언니였다.
 그때 금파 언니의 눈이 왠지 슬퍼보였던 이유를 이제야 깨달은 청파였다.
 금파신녀도 작년에 이곳 천운도량에 일일교사로 온 적이 있었고, 저놈에게 당한 것이 확실했다.
 -어어, 아직도 뻣뻣하네요. 그냥 한꺼번에 싹 뿌려버릴까요?-
 결정적인 한마디였다. 자신의 영상뿐만 아니라 금파 언니의 영상까지 뿌린다고 하자 청파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 혼자라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겠지만, 자신 때문에 금파 언니마저 피해를 입힐 수는 없었다.
 청파가 다시 수업에 열중하자 두근은 씨익 웃었다.
 하지만 그것이 쓴웃음이라는 사실을 청파는 몰랐다.
 사실 두근은 처음부터 영상을 뿌릴 생각이 없었다.
 아니, 나중에는 투시를 안 했으니 뿌릴 영상도 없었다.
 그는 만일 청파가 참지 못하고 사실을 폭로하면 스승에게 두들겨 맞고 참회굴에서 한 일 년 살 생각이었다.
 작년 금파신녀가 왔을 때는 몇 가지 술수로 그녀를 놀래게 해준 적은 있지만, 투시는 하지 않았다.
 약간 통통한 금파는 자신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저 청파의 분노가 극심한 것 같아 될 대로 되라며 공갈을 친 것으로 거의 도박하는 심정으로 작년에 왔던 금파를 끌어들인 것이 용케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공갈로 인해 자신에 대한 청파의 오해는 풀릴 길이 없을 것 같았다.
 “자, 오늘 수업은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녀님.”
 수업이 끝나자 청파는 서둘러 도장을 나갔다.
 그리고는 용궁에 급한 볼일이 있다며 아침도 마다하고 떠났다. 청운거사는 다급히 떠나가는 청파신녀를 보며 무슨 일이 있었다고 직감했다.
 원래 청파신녀는 이곳에서 며칠간을 묵으며 제자들을 가르치기로 했었다.
 그녀가 본래의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돌아간 것으로 보아 크게 마음을 상한 것 같았다.
 그리고 무슨 일은 분명 두근이와 관련이 되어 있을 듯했다.
 “수근이와 을부는 들어오너라.”
 “부르셨습니까? 스승님.”
 “청파신녀의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을 소상히 말해보아라.”
 몇몇 제자를 불러 도장 안에 있었던 일을 들은 스승은 두근과 청파신녀가 재주를 겨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분명 재주를 겨루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일일 스승으로 나선 신녀에게 창피를 준 것은 사실이었다.
 청운거사는 일일스승을 대할 때도 자신을 대하는 것처럼 하라고 가르쳤었으니 그것을 어긴 것이다.
 “수근아, 가서 두근이를 불러오너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 * *
 
 큰사형이 다가와 스승이 찾는다는 말에 두근은 행여 청파신녀가 사실을 말한 것은 아닌지 덜컥 겁이 난 상태로 스승의 내실로 들어갔다.
 “…스승님, 부르셨습니까?”
 “네 이놈! 너란 놈은 대체 어떻게 된 놈이 그리 사고만 치는 게냐!”
 “죄… 죄송합니다. 전 그저 장난으로…….”
 “아무리 장난이라 해도 그렇지! 감히 동해용궁의 신녀를 상대로 장난을 치면 되느냐!”
 “저도 처음부터 그리 할 생각은 없었…….”
 “닥쳐라! 네가 그 알량한 재주를 믿고 까불다가는 분명 언제고 크게 경을 칠 것이다!”
 “…죄송합니다.”
 “에이, 듣기 싫다. 썩 물러가 있거라! 네 벌은 내가 추후에 따로 내릴 테니 그리 알아라!”
 “…예, 편히 쉬십시오.”
 자신이 벌인 일이 워낙 큰 사고라 스승이 대노한 것 같아 두근은 잔뜩 겁을 먹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당장 회초리를 가져오라 해서 늘씬 두들겨 패고 참회굴에 처박았을 스승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몇 마디의 꾸지람만 하고 나가란 것이 수상했다.
 아무래도 여태껏 한 번도 당해보지 못한 큰 벌을 내리려는 것 같았다.
 일단 스승이 화났을 때는 피하고 볼 일이었기에, 두근은 급히 부엌으로 가서 주먹밥 몇 덩이를 쥐고는 부리나케 도량을 빠져 나갔다.
 “젠장, 최악이야. 정말 불어버릴지 몰랐는데.”
 도량을 빠져나온 두근은 천지를 지나쳐 비호봉으로 향했다.
 그곳은 산자락의 형세가 비상하는 호랑이를 닮았다고 해서 비호봉으로 불리는 지역이었다.
 스승이 모든 사실을 알았다고 여기고 두근이가 도망간 사이 청운거사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두근이를 혼내기는 했지만, 그도 마음속 한편으로는 자신의 제자가 용궁의 신녀를 제압했다는 사실이 흐뭇하기만 했다.
 “그놈 참 용하기도 해. 매일 놀면서도 언제 그리 도력을 높였는지.”
 “스승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다. 너희들은 가서 알아서 수련이나 하거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갓 태어난 젖먹이를 주워 기른 지 올해로 20년째였다.
 처음에는 먹일 젖이 없어 주변의 산신령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래서 먹인 것이 공청석유였다.
 그나마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새끼를 낳은 백호의 젖을 먹였지만, 두 달간 두근이가 먹은 공청석유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 외에도 갓난 두근이가 귀엽고 예쁜 재롱을 잘 떨어 인근의 산신령뿐만 아니라 선계의 선녀나 신장까지도 그를 예뻐했다. 그랬기에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세상에 버려진 두근을 위해 축복을 걸어주었고, 심지어는 선계의 신과(神果)까지 가져와 먹였다.
 그 덕분에 나이가 10살도 못되어 두근은 8갑자(480년)에 달하는 공력을 얻기까지 했다.
 거기다 여태까지 두근이가 먹은 삼천년 이상급 산삼만 해도 아마 오십 뿌리는 넘을 것이었다.
 “허허, 청출어람이라… 두근이가 벌써 그 정도라니.”
 그렇게 청운거사가 두근이를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그리는 동안, 두근은 비호봉 정상에서 열나게 귀를 후비고 있었다.
 “크윽, 왜 이렇게 간지러운 거야? 신녀가 내 욕이라도 하나?”
 
 
 주인 없는 만금보주
 
 천운도량을 부리나케 나선 청파는 정처 없이 백두산을 떠돌았다.
 처음 동해용궁을 나설 때는 대략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을 했었기에 떠나온 지 얼마 안 되어 돌아가는 것이 껄끄러워졌다.
 “이렇게 빨리 가면 다들 이유를 물어보겠지……?”
 급하게 돌아온 자신을 본다면 용왕을 비롯해서 용궁의 많은 인사들이 이유를 물어볼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두근에게 알몸을 보인 것도, 그에게 패한 것도 너무 부끄러워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선계나 가자!”
 결국 예정된 시간을 채우고 돌아가기로 결심한 청파는 다시 몸을 날렸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선계에 가서 견문도 넓힐 겸 구경이나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특히 선계 선녀궁의 월아선녀와는 평소에도 언니 동생 할 정도로 교류가 있었기에 이왕 갈 생각을 하니 그녀가 보고 싶었다.
 
 “어, 누가 선계에 가나?”
 비호봉 정상에서 귀를 후비던 두근은 대처봉 근처에서 피어오르는 무지개를 봤다.
 일반적인 칠색무지개와는 달리 구색의 무지개는 선계에 올라가는 현상이었다.
 근처의 산신령이 업무 차 선계에 간다고 생각한 두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아래에는 황소를 능가하는 거대한 몸집의 백호가 아까부터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가자, 두호야.”
 -오늘은 뭔 일이야, 또 사고 쳤어?
 “몰라, 묻지 마.”
 -이제는 철 좀 들어라. 네가 우리 호랑이 같으면 손자도 볼 나이다.
 “알았어, 잔소리 좀 그만해.”
 거대한 백호인 두호는 두근이에게 젖을 물려주었던 백호의 새끼였다.
 어릴 때 같은 어미의 젖을 먹고 자라서 그런지 두호는 두근을 잘 따랐고, 그 모습에 스승과 인근의 산신령들은 두근이의 형제호랑이라고 해서 아기 백호에게 두호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독특하게도 두근이는 두호와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불과했지만, 두근은 두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갓난아이 때 호랑이의 젖을 먹고 자랐던 두근은 백수의 제왕이라는 호랑이를 통해 동물과 의사소통을 하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돌아가.
 “헹, 지금 가면 최소 1년간은 참회굴에 처박혀 있어야 할 걸?”
 -그 정도로 큰 사고야? 이거, 천 년 묵은 산삼 가지고는 안 되겠네.
 “턱도 없지, 최소한 만년하수오 한 뿌리 정도는 있어야 봐줄 것 같던걸.”
 -그러게 저번에 얻은 두 뿌리 중 한 뿌리는 남겨두라니까.
 “내가 이런 일이 생길지 알았냐?”
 -너는 그게 문제야. 얼마 전 만년설삼도 그래.
 “뭐가 어때서?”
 -한 뿌리는 남겨두고 오라 했더니 두 뿌리 다 뽑아 먹었다며?
 “…너도 알았냐?”
 -몰랐다. 그래서 나만 백두산 신령님에게 엄청 깨졌다구.
 “그게, 하나만 먹으려고 했는데 제법 맛이 좋더라고.”
 -에휴, 제발 철 좀 들어라.
 “아, 씨! 너까지 왜 그래!”
 백수의 제왕이자 영물인 백호와 어울리면서 두근은 산에서 나는 온갖 약초를 독식했고, 그 때문에 산신령들은 골머리를 싸매야 했다.
 선계나 용궁에서 특별한 효험을 갖고 있는 과일이나, 약초 또는 영물이 있듯이 인간계의 자연에서만 나는 특별한 약초가 있었다.
 바로 산삼과 만년하수오가 그 대표적인 것으로, 산신령들은 자신의 관할 산에서 나는 수천 년 묵은 산삼이나 만년하수오를 간혹 선계나 용궁에 바치곤 했었다.
 하지만 두호를 통해 천지의 산에서 나는 약초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두근은 언제나 그들보다 먼저 캐서 먹어버렸다.
 산신령들은 나중에서야 이 사실을 알고 스승 청운거사에게 항의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선계나 용궁으로 가야 할 귀한 약초는 이미 두근의 뱃속에 들어간 지 오래였던 것이다.
 다행히 두근은 어느 순간부터는 아주 귀한 것이 아니면 취하지 않았다.
 갓난아이 때부터 밥 먹듯이 먹었던 온갖 영약과 약초로 인해 더 이상 효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두근의 공력은 10갑자로 자그마치 600년에 달하고 있었다.
 “두호야, 어디 쓸 만한 약초 없을까?”
 -이제는 알아도 못 가르쳐줘. 돌아가신 어머니가 너 때문에 선계에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닌대.
 “…백호 엄마가?”
 -그래.
 “쩝, 별수 없군.”
 두근은 언제나 사고를 치고 나면 적당한 약초를 캐서 스승에게 뇌물로 바쳤다.
 스승은 거부하는 척하면서도 두근이가 가져온 약초는 은근히 다 먹어치웠다.
 도사 체면에 산신령들 모르게 약초를 캐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산신령들도 요 근래는 두근이가 예전처럼 싹쓸이를 해가지 않자 적당히 넘어가주고 있었지만, 이번에 만년설삼 두 뿌리를 뽑은 일로 선계에 간 어미백호마저 난처한 상황이라니 방법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사고를 쳤는데 그 정도야?
 “음… 동해용궁의 청파신녀를 조금 데리고 놀았거든.”
 -뭐야, 별거 아니네. 네가 사고 친 것 치고는 약소한 걸?
 “그게… 조금 심하게 놀았거든.”
 -올 봄에는 천지에 내려온 선녀 옷을 다 불태워서 난리 났었잖아?
 “그때야 선녀들이랑 같이 새로운 형태의 다기능 선녀복을 만들려다가 그만 실수로 사고가 난 거지.”
 -그런데 선녀 옷은 왜 속옷까지 다 벗겼어?
 “기능성 속옷까지 만들려고 한 것뿐이야.”
 -그때 선녀 한 명은 머리털이 다 타고 난리 났잖아. 너보고 책임지라며 아예 도장에 눌러 살겠다고 해서 사천신장군(四天神將軍)까지 내려오고.
 “…에휴, 그 정도 사고라면 좋겠다.”
 -도대체 무슨 사고를 쳤기에 그 정도라는 거야?
 “그게… 내가 신녀를 상대로 협박했거든.”
 -협박? 무슨 협박?
 두근은 자신이 행했던 야만적이고 몰염치한 범죄행위를 고백했다. 그리고 청파신녀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어서 말했다.
 두근의 고백이 계속 이어지자 두호는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철딱서니 없는 두근이지만, 신녀를 상대로 그런 협박을 한 것은 해도 너무한 일이었다.
 자신이 스승이라고 해도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리자고 달려들 것 같았다. 이제는 오해를 풀겠다고 매달리는 것이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에휴, 내가 미쳤지, 어쩌자고 그랬는지…….”
 -내가 너 때문에 미친다.
 “나도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구.”
 -그래, 말해봐. 신녀가 그렇게 예뻤어?
 “…흐흐흐, 꿈에서나 나올법한 여자였어. 지금도 신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걸.”
 -너, 혹시 그 신녀를 좋아하는 것 아냐?
 “내가……?”
 -그래, 선녀들이 천지에 단체로 내려와서 같이 목욕을 하자해도 안 하는 네가 몰래 훔쳐본 것도 그렇고 너답지 않게 치졸하게 협박한 것도 이상한데?
 “나도 모르겠어. 처음 본 순간 입에서는 침이 질질 나오고 괜히 더 알고 싶고…….”
 -네가 본심과는 다른 말을 한 것도 사실은 그녀에게 더 관심을 끌기 위해 한 것은 아닐까?
 “으아아! 몰라! 나도 모르겠다구! …두호야, 이제 어떻게 하냐?”
 -안 되겠다. 방법은 하나뿐이야.
 두호는 누구보다 두근을 잘 알았다.
 배달국 전 도량을 뒤져도 두근보다 더한 망나니가 없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두근도 사연 많은 인간이었다.
 어릴 적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인간이 두근이었다. 미물이라는 짐승도 자식은 버리지 않는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부모에게 버림받았으니 두근은 알게 모르게 어미를 그리워했다. 어릴 적 두근은 얼굴도 모르는 어미의 그림을 그릴 때도 많았다.
 두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이 두근을 욕해도 자신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릴 적 어미의 젖을 같이 빨아먹을 때도 자신이 배고파하면 양보해주던 두근이였다.
 비록 심하게 장난을 치더라도 절대 악하지 않은 인간이 두근이였다.
 아마 청파라는 신녀의 모습에서 두근은 모성을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두호였다.
 “두호야, 방법이 뭐야?”
 두근은 두호의 말에 눈을 빛내며 그 방법을 물었다.
 -수컷답게 네가 책임져. 우리 호랑이도 암컷을 부끄럽게 만들면 수컷이 책임지거든.
 “책임? 책임을 어떻게 지는데?”
 -간단해, 같이 데리고 살면 모든 것이 해결돼. 그러다 새끼라도 배면 상황 종료야.
 “그게 정말이야?”
 -당연하지, 신녀를 찾아가서 이렇게 뒤로 돌고나서 엉덩이를 보여줘. 그 다음에…….
 “야, 그만해. 그것은 호랑이가 구애하는 방법이잖아. 그녀는 동해용궁의 신녀라고!”
 -참, 그렇지. …으음, 아! 이렇게 하면 될 거야.
 “어떻게?”
 -세상에서 구하기 힘든 보물을 그녀에게 주고 사실을 고백하는 거야. 내가 얼마 전 백두산 신령하고 금강산 신령이 얘기한 걸 들었는데 말이지. 얼마 전 남쪽의 지리산 신령이 서북쪽의 곤륜산 여신령과 혼인을 한 사실은 알지?
 “응. 주변 신령들이 노총각신령이 도둑장가를 가네. 해외에서 여신령를 구해왔네 하면서 말이 많았잖아.”
 -맞아. 그때 지리산 신령이 선계의 아는 신장을 통해서 선계에서도 귀하다는 만금보주(萬金寶珠)를 구해서 구애했다는 거야.
 “정말?”
 -그래. 그래서 그 만금보주에 뻑 간 곤륜산 여신령이 두말 않고 청혼을 받아들인 거래. 너도 만금보주를 신녀에게 주면서 사실대로 얘기하고, 그녀를 좋아해서 그런 거짓 협박을 했다고 고백해.”
 “정말 그렇게 하면 될까?”
 -당연하지. 나를 믿어!
 잠시 의심이 간 두근이였지만, 두호의 자신만만한 얼굴을 보니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갔다.
 “그럼, 만금보주를 어서 구하지? 보통 귀한 것이 아닐 텐데.”
 -내 듣기로는 선계의 선녀궁에 아직 몇 개가 있다고 하더라. 백두산 신령께서 하신 말씀이니 틀림없겠지.
 “고마워, 두호야. 나는 스승님께 편지 쓰고 바로 선계로 가야겠다. 비록 청파신녀가 화가 많이 났다고 하지만 내가 만금보주를 들고 가면 용서해주겠지?”
 -당연하지. 자, 어서 가봐.
 두근은 두호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두근이 사라지고도 두호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있었다.
 -…어머니!
 잠시 뒤,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부르는 두호의 눈에 닭똥 같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이제 하나 남은 두근이도 제짝을 찾은 것 같습니다. 몇 년 만 더 천수를 누리시다가 승천을 하셨으면 두근이가 장가가는 것도 보고 술도 한잔 직접 받아보셨을 텐데…. 어머니…! 어흐흥!
 그날 비호봉에는 호랑이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밤늦게까지 계속 울려 퍼졌다.
 
 * * *
 
 천운도량으로 돌아간 두근은 참회굴에 들어간다며 짐을 챙겼다. 큰 사형 수근부터 막내 지율까지 다른 제자들은 스승이 두근을 혼낸 것을 알기에 그러려니 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참회굴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두근은 준비한 서신을 한구석에 놔두고는 몰래 참회굴을 빠져 나갔다.
 둔갑술에 능통한 두근에게 참회굴은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었다.
 “그나저나 만금보주가 그만큼 귀한 거라면 선녀궁에서도 쉽게 안 줄 텐데… 어떻게 한다?”
 만금보주는 말 그대로 만 가지 귀금속이 자연의 정기와 어우러진 보물 구슬이다.
 보석 자체로만으로도 그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품에 지니고만 있어도 영력 증진과 법력 증진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신물로, 들려오는 말에는 용이 죽으면서 흘린 여의주가 선계의 땅에 일만 년 간 묻히면서 주변의 정기를 빨아들여 그렇게 변한 것이라고도 했다.
 아무튼 현재 선계에도 몇 개 있지 않은 귀한 신물이었다.
 “에이, 몰라. 일단 부딪쳐는 봐야지.”
 다행히 천운도량에 스승은 보이지 않았다.
 근처의 산신령들과 모여서 내기바둑을 두고 있을 가능성이 많았다.
 완전범죄를 위해 두근은 구름도 부르지 않고 축지법을 사용해서 남으로, 남으로 달렸다.
 일단 스승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곳까지 내려간 후, 선계로 갈 생각이었다.
 “헤유, 한때는 배달국 최고의 기재였던 내 신세가 참으로 처량하구나.”
 정신없이 달린 두근은 해질 무렵에나 걸음을 멈추었다.
 저 아래에서 바다 내음이 풍겨오는 것이 멀리도 온 것 같았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은 두근은 드디어 선계로 가기 위해 구름을 불렀다.
 그나마 선녀궁에 상좌선녀로 있는 월아선녀와는 아는 사이인지라 그녀에게 도움을 청해볼 생각이었다.
 짙은 번민과 고뇌를 담고 두근은 그렇게 선계에 접어들었다.
 
 “수문선장(守門仙將)님, 안녕하세요.”
 “아니, 두근이 아니냐. 네가 웬일이냐?”
 선계의 입구를 지키는 두 명의 선장은 두근을 반갑게 맞이했다. 젖먹이 때부터 산신령의 품에 안겨 선계 출입을 자주했던 두근이었다.
 지금이야 배달국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사고뭉치지만, 그때만 해도 모든 이의 사랑을 독차지했기에 아직까지 그를 보는 이들의 시선은 따스한 편이었다.
 “선녀궁의 상좌선녀님을 뵈러 왔어요.”
 “음, 월아님을 만나러 왔나 보구나? 그럼, 어서 들어가 보거라.”
 “예, 두 분 수문선장님도 수고하세요.”
 “오냐.”
 선계에 들어서자마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왼쪽의 길은 망자들의 세계라는 명계로 향하는 길이였다.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면 그 유명한 망자의 강이 흐르고 그 건너편에는 명계제일문(冥界第一門)이 있어 명계의 저승사자들이 별도로 지키고 있었다.
 두근도 어릴 적에 호기심에 명계를 간 적이 있었고, 그 덕분에 선계가 발칵 뒤집히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저승사자와 금강야차를 비롯한 명계의 많은 이들을 알게 되었으니 복이라면 복일 수도 있었다.
 “아귀들은 잘 있을까?”
 만금보주를 구하는 길이 아니라면 두근은 먼저 명계에 들렀을 것이었다.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고리타분한 선계보다는 명계가 재미났다.
 특히 인간들을 심판하는 염라부가 압권이었다.
 대부분은 중죄인으로 지옥에 떨어질 화상들이 염라대왕 앞에서도 무죄를 주장하는 모습은 꽤나 재미있었다.
 두근이 짓궂은 사고를 치면서도 악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어릴 적부터 자주 봐왔던 십이지옥의 무서움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특히 명계가 부탁하는 원한령이나 부유령 잡는데 열심인 까닭도 먼 미래를 내다본 장기투자였다.
 “…벌써 다 왔네. 이제 어떻게 하지?”
 처음 선계로 향했을 때의 배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봐도 선계에서도 귀하다는 만금보주를 쉽게 내어줄 리 없었다.
 아무리 자기가 막 나간다고 하지만, 훔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머! 이게 누구야.”
 “두근아! 와, 몰라볼 정도로 컸네.”
 “그래, 두근이 훤칠한 것이 그야말로 사내대장부가 다 되었어.”
 선녀궁의 입구에서 수다를 떨고 있던 몇몇 선녀들이 두근이를 보고 달려왔다.
 이제는 스물한 살이 되어 훤칠한 사내대장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녀들에게 두근이는 영원한 귀염둥이였다.
 어릴 적부터 두근이를 자주 봐왔던 미향과 은비선녀는 두근이를 꼭 껴안고 놔주지를 않았다.
 “미… 미향선녀님, 저 좀 푸… 풀어주세요.”
 “어머! 두근이, 이제는 다 컸다고 수줍어 하니?”
 “그러게요, 언니. 언니 젖을 빨다가 안 나온다고 깨물어 버린 게 엊그제 같은데.”
 “제, 제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요!”
 “와~ 두근이 얼굴 빨개진 것 좀 봐봐.”
 “꺄르르르~”
 그러다가 은비가 두근의 볼을 꼬집었다.
 온갖 영약과 약초를 밥 먹듯이 먹고 자란 두근의 피부는 탄력이 넘치다 못해 탱탱했다.
 은비는 볼이 늘어날 수 있는 한계까지 잡아당겼다.
 팽팽하게 당겨진 두근의 볼을 은비가 갑자기 놓자 두근의 볼은 활시위가 당겨지는 소리를 내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머! 두근이 피부 좋다.”
 “그러게. 영체로 만들어진 우리보다 피부가 더 곱네.”
 “…에이, 정말! 나 그냥 가버릴래요.”
 “호호, 애들아 그만하자. 두근이 울겠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니?”
 “저 실은 부탁이 있어서요.”
 “부탁? 무슨 부탁?”
 장난감 다루듯 두근이를 갖고 놀던 선녀들은 두근이가 부탁이 있다 하자 눈을 빛냈다. 그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주겠다는 눈빛이었다.
 두근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선녀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들의 눈빛에 가득 실린 호기심과 선의의 뜻을 읽자 용기가 생겼다.
 “저… 실은 만금보주가 필요한데. 그걸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왔거든요.”
 “뭐, 만금보주? 네가 그것을 어디다 쓰게?”
 “글쎄 말이야.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
 “월아선녀님에게 부탁해도 마찬가지일까요?”
 “당연하지. 그리고 월아선녀님은 마침 용궁에서 손님이 와서 같이 외출하고 없는걸. 아마 저녁에나 들어오실 것 같은데.”
 “이걸 어쩌지…….”
 아무리 선계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난 두근이라지만, 만금보주는 선계에서도 귀한 신물이었다.
 행여나 하며 말을 한 두근이였지만, 선녀들의 반응은 역시나였다.
 선녀들은 두근이가 크게 낙담하자 그를 달래기 시작했다.
 “두근아, 그러지 말고 여의주나 다른 보물을 달라고 그래.”
 “고맙지만 다른 것은 필요없어요….”
 “꼭 그게 필요한 거라면, 차라리 네가 직접 구해오는 것은 어떠니?”
 “어머! 안 돼. 그것은 너무 위험해.”
 “하긴, 두근이 혼자서 그곳을 찾아가고 구해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거야.”
 “그래. 아무리 두근이가 도술에 능통하다고 해도 너무 위험해.”
 “그냥 우리가 만금보주를 두근이에게 주라고 집단시위라도 할까?”
 “안 될걸. 선장들이 휘두르는 진압봉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실의에 빠져 있던 두근은 선녀의 말에 귀가 확 트였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떤 특정한 장소를 가면 아직 소유자가 결정 나지 않는 만금보주를 구할 수도 있다는 말 같았다.
 “제가 만금보주를 구해올 수 있는 건가요? 거기 가서 만금보주를 구하면 제가 가질 수 있나요? 그곳에 있는 만금보주는 주인이 없는 건가요?”
 “그렇기는 하지만 거긴 너무 위험해.”
 “그래, 두근아, 그러지 말고 다른 것을 알아봐.”
 “저는 괜찮으니까 제발 가르쳐줘요, 만일 위험하면 바로 돌아올게요.”
 두근의 말에 선녀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잠시 망설임을 보였다.
 “괜찮을까?”
 “글쎄… 두근아, 위험하면 그냥 돌아와야 해. 알았지?”
 “네, 약속할게요.”
 
 몇 번이나 확인을 받고서야 선녀들은 만금보주가 있다는 신비의 장소를 얘기했다. 물론 그곳에 간다고 만금보주를 100% 구한다는 보장도 없다고 했다.
 두근은 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도 들었지만, 이제 와서 시도도 안 하고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일단 부딪쳐 보는 거야.’
 두근은 선녀들이 얘기한 대로 선계의 가장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 * *
 
 선계의 북쪽 끝은 환계로 가는 통로였다.
 명계가 오직 죽음과 심판, 그리고 그에 따른 응징이 가득한 곳이라면 환계는 또 다른 죽음과 혼란이 가득한 곳이었다.
 어찌 보면 명계보다 더욱 불행한 영혼이 모이는 곳이 환계였다.
 “에휴, 하필이면 환계야? 명계면 수석저승사자 아저씨에게 부탁하면 되는데.”
 명계로 가는 영혼은 자신의 죄값에 따라 형벌을 받고 다시 윤회할 수 있었다. 즉 죄의 사함을 받고 또 다른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환계는 역천(逆天)을 범한 존재가 가는 곳이었다.
 흔히 말하는 요물이나 큰 죄를 범한 원령들이 가는 세상으로, 그곳에 간 원령들은 (그들은)삭제 명계로 간 영혼과는 달리 죄의 사함을 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이 우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환계에 갇혀 있어야 했다.
 얼마 전, 두근에게 의해 소멸되었던 원한령의 영혼도 환계의 어느 구석에서 완전한 소멸을 기다리며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을 터였다.
 이는 살아생전의 죄도 큰 죄이지만, 죽어서 죄를 짓는 것은 더욱 큰 죄로 역천에 해당되었기에 주는 벌이었다.
 두근이 목표로 하는 곳은 바로 선계와 환계의 경계에 있는 소멸하(消滅河)였다.
 “휴우, 다 온 것 같은데?”
 저 멀리 누런 하늘이 보였다. 명계가 암천(暗天)이라고 불리는 어둠의 하늘을 갖고 있다면, 환계는 황천(黃天)이라고 불리는 누런 하늘이었다.
 황천이 보이자 두근은 목적지에 다왔다는 생각에 서서히 긴장되기 시작했다.
 “여기가 소멸하(消滅河)가 맞는 것 같은데…….”
 현재 두근은 선계의 북쪽 끝을 굽이쳐 흐르는 거대한 강을 마주하고 있었다. 환계에서 소멸된 영혼이 녹아 흐른다 해서 붙여진 강의 이름이었다.
 그렇다고 강처럼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것은 아니다.
 소멸하를 흐르는 것은 물이 아닌 용암이었다. 마치 모든 것을 녹이기라도 할 것처럼 용암은 쉼 없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흐미, 뜨거워라. 열기가 여기까지 전달되는걸.”
 선녀들은 소멸하는 소멸하를 절대 건너서는 안 된다고 했었다. 아니, 건너는 순간 두근의 영혼도 소멸하에 빨려 들어간다고 했기에 두근은 잔뜩 긴장했다.
 만금보주는 소멸하 바로 옆의 둔덕에서 간혹 발견된다고 했다. 만금보주는 용의 여의주가 변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선계에 드는 일반적인 용과는 달리 역천을 행한 마룡의 여의주가 변한 것이었다.
 역천을 범한 마룡의 영혼이 완전히 소멸되어 소멸하를 흐를 때 선기(仙氣)가 남은 여의주를 소멸하가 토해내는 것이다. 용암의 불길도 이겨낸 여의주가 선계의 정기를 빨아들여 변한 것이 바로 만금보주였다.
 “막상 오긴 왔는데 이 넓은 곳을 언제 다 둘러보냐…….”
 소멸하를 흐르는 용암의 열기로 둔덕은 거의 90도에 가까운 수직을 이루고 있었다. 더구나 선계의 선기를 피해서 흐르다보니 양의 창자처럼 심하게 꼬불꼬불했다.
 그리고 간혹 범람도 있었는지 갑작스럽게 넓혀지거나 좁아진 지형도 있었다. 만금보주에만 신경 쓰다가 발이라도 헛딛게 되면 끝장이었다.
 두근은 자신의 감각을 전부 개방하고는 가파른 둔덕을 향해 자신의 기운을 빠르게 흘려보냈다.
 만금보주 정도의 신물이라면 그 자체가 내뿜는 기운이 어마 어마하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커… 억!”
 순간 두근은 갑작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만금보주를 찾기 위해 자신의 감각과 기운을 개방하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헉… 헉… 세상에… 내 기운마저 빨아들이다니…….”
 소멸하는 영혼이 존재하는 것은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발출한 기운도 빨아들이고 나아가 자신까지 끌어당기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두근은 거의 반갑자에 달하는 공력을 뺏긴 상태였다.
 “…제길! 본전 생각나서라도 이제는 못 물러나!”
 두근은 급히 자신의 몸 상태를 둘러보고 나서 소멸하가 떠나가도록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런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할 소멸하는 아니었다.
 두근은 처음과는 달리 기운을 세심하게 조정하면서 분출했다. 소멸하의 두 치(약 6센티) 앞까지를 경계로 한 것이다.
 “…미치겠네, 이거 보통 힘든 일이 아니잖아.”
 잠시 뒤, 이제야 선녀들이 왜 힘들고 위험하다고 말했는지 이해가 가는 두근이었다.
 선계의 북쪽을 아예 가르고 흐르는 소멸하의 그 어마어마한 길이를 혼자서 뒤지고 다니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동해바다 깊은 곳에 바늘을 빠트리고 그걸 찾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일 듯했다.
 특히 소멸하가 기운은 물론이고 자신마저 빨아들일 수 있기에 두 치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보통 심력을 소모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이크, 또 빠질 뻔했네!”
 두근은 자신의 기운을 조율하는 데만 신경을 쓰다가 갑작스럽게 넓혀진 소멸하에 이번에도 빠질 뻔했다.
 벌써 다섯 번째였다.
 겨우 칠백 보 정도를 걷는데 생사의 경계를 다섯 번이나 넘은 것이다.
 하지만 두근은 포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뺏긴 반 갑자의 공력이 아까웠다.
 이제는 오기가 나서라도 반드시 만금보주를 얻고 싶었다.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손바닥에 침을 뱉어 탁탁 털고 일어선 두근은 다시 자신의 기운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에 물러선다면 배달국 전체를 들썩이는 두근이가 아니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두근은 소멸하를 따라 서서히 서쪽으로 이동했다.
 “으, 으아악!”
 한참 뒤, 그렇게 조심하고 신경 쓰며 걸었건만, 결국 두근은 발을 헛딛고 말았다.
 거의 12시간 이상의 강행군을 하다 보니 두근의 체력도 심력도 고갈이 되어버린 것이다.
 눈 깜짝할 새에 밑으로 굴러 떨어진 두근은 필사적으로 오른손을 뻗었고, 동시에 그의 손은 단단한 가지가 되어 선계의 땅을 움켜쥐었다.
 떨어지는 속도를 감당 못하고 단단한 가지도 바닥을 끌며 따라갔지만, 다행히 두근이 소멸하에 빠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휴우, 살았다…….”
 두근은 지금 소멸하의 가장자리 상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의 발 밑 일 장 아래에는 시뻘건 용암이 빠른 유속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만일 자신이 조금만 더 소멸하 안쪽으로 들어갔거나, 밑으로 떨어졌다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을 것 같았다.
 가지로 변신한 오른팔을 이용하여 빠르게 선계의 대지로 올라가던 두근은 절벽 같은 둔덕의 한 틈에서 뭐가 반짝이는 것을 봤고, 그것이 순간적으로 자신이 그렇게 찾고 다녔던 만금보주라는 생각에 함성을 질렀다.
 “시임~ 봤다아~!”
 일단 위치를 확인한 이상 자세를 바로잡고 내려와야 했다.
 한때 소멸하가 범람하면서 강의 둔덕을 휩쓸고 갔는지 만금보주가 묻혀 있는 둔덕은 용암이 휩쓸고 간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있었다.
 수직에 가까운 절벽에 선명하게 남은 회오리모양의 둔덕은 착지가 가능할 것 같았다.
 “조심, 조심…….”
 누가 옆에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을 다독이고 격려하기 위해 두근은 조심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몇 번씩 다짐하고 있었다.
 체중을 버티기 위해 두 팔을 동시에 선계의 대지에 뿌리박고 내려온 두근은 회오리모양의 둔덕에 아주 천천히 한 발을 내렸다.
 오랜 세월의 영향으로 겉에 있던 흙이 약간 구르며 소멸하에 떨어졌고, 그것은 순식간에 녹으며 사라져갔다.
 하지만 두근이 두 발을 모두 딛고 체중을 실었음에도 회오리모양의 둔덕에서는 더 이상의 변화는 없었다. 재차 확인하기 위해 제자리에서 힘껏 뛰어봤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자신의 체중을 버틸 수 있다는 생각에 두근은 왼팔의 변신을 풀었다. 한 손이라도 자유스러워야 묻혀 있는 만금보주를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또 무슨 요지경이야?”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용암이 휩쓸고 가며 남긴 회오리모양의 둔덕 사이에 작은 틈이 하나 보였다.
 그 틈에는 사람 두 명 정도는 쉽게 들어갈 만한 구멍이 나 있었다.
 신기한 것은 구멍 안에 이글거리는 용암이 보이지 않았다.
 워낙 깊게 뚫려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두근이 안력을 돋우고 살펴봐도 보이는 것은 짙은 어둠뿐이었다.
 “신기한 걸. 우선 만금보주를 캐고 나서 확인해 볼까?”
 영롱한 광채를 발하며 지면위에 살짝 드러나 있는 작은 구슬에서는 웅장한 서기(瑞氣)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근은 만년하수오를 캘 때처럼 주변에서부터 서서히 바닥을 파고 들어갔다.
 
 * * *
 
 “지율아, 가서 두근이를 불러 오너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저녁때가 되자 스승 청운거사는 참회굴에 들어가 있다는 두근을 찾았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들어가 있었다면 충분히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스승이었다.
 스승과 다른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저녁을 들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 지율이 황망한 표정으로 혼자 돌아왔다.
 “아니, 두근은 안 데려오고 왜 혼자 왔느냐?”
 “죄, 죄송합니다, 스승님.”
 “죄송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참회굴에 들어갔더니 두근 사형은 안 보이고 이것만 있었습니다.”
 “허허… 이놈이 아직도 사람이 안 되었구나.”
 청운거사는 지율이가 건네는 한 통의 서신을 받았다.
 곱게 접은 서신의 겉면에는 ‘스승님 친전’이라는 다섯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놈이 제 딴에는 변명을 하고 도망간 것 같아 청운거사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디보자, 뭐라고 변명을 했는지 읽어봐야겠구나.”
 
 -스승님 친전(親傳)-
 존경하옵는 스승님.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는 것이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낮이 되면 찌는 듯한 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젊은 저희들도 참기 어려울 진데 연로하신 스승님께서는 얼마나 고통스러우시겠습니까.
 하여 제가 스승님의 건강을 위하여 삼천년 묵은 산삼 한 뿌리를 장만했사옵니다.
 혹시 제가 무슨 흑심이 있어서 이것을 드린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직 스승을 위한 참된 마음에서 드리는 점을 헤아려 주십시오. 간혹 제자의 진실한 마음을 왜곡하는 사형과 사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못난 제자는 스승님께서 저의 진실한 마음을 알고 계시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노파심에서 한 말씀드리자면 이번 산삼은 정상적인 유통과정과 경로를 거친 제품입니다.
 합법적인 과정을 통해 구한 제품이니 안심하고 드셔도 좋습니다. 제가 산신령님께 민폐를 끼치고 구해온 것은 절대 아니라고 장담합니다.
 ***중략***
 제자 그날은 계속되는 퇴마 업무와 과도한 잠복근무를 하고 막 돌아온 날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새벽에 처치했던 원한령은 색을 무기로 하는 처녀귀신이었습니다. 엄청난 처녀귀신의 색공에 제자의 기운이 오염되었지만, 제자는 그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이 사건의 결정적인 원인입니다.
 지나친 과로에 이은 장시간 색공의 노출이 없었다면 제자는 절대 그런 짓을 안 했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두근이가 남긴 편지의 앞부분을 읽은 청운거사는 직감적으로 두근이가 큰 사고를 쳤다고 생각했다. 삼천년 묵은 산삼을 바칠 정도라면 이번에는 꽤 큰 사고를 친 것 같았다.
 하지만 죄는 죄이고 스승을 위한 제자의 갸륵한 마음은 별도였다. 안 그래도 새벽이면 예전만 못한 것이 아무래도 몸보신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청운거사였다.
 “허허, 이놈이 대관절 무슨 사고를 쳤기에.”
 다시 서신을 읽는 청운거사의 표정은 중간 부근에 가서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기 시작했다.
 “이, 이런 못된 놈, 감히 신녀에게 협박을 하다니! 허허… 통재로다.”
 “스승님, 무슨 일이옵니까?”
 “스승님, 두근 사제가 또 무슨 짓을 저질렀습니까?”
 “아니, 아니다, 너희들은 어서 저녁을 들거라.”
 “스승님께서 안 드시는데 어찌 저희들만…….”
 “나는 괜찮다. 내 먼저 방으로 들어갈 테니 지율이는 두근이 방에 가서 벽장 안에 있는 푸른색 행낭을 내 방으로 가져오너라.”
 “예, 스승님.”
 제자들을 남겨두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스승은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 사이 지율은 두근이나 남긴 산삼을 가지고 왔다. 푸른 행낭 안에는 편지에서 말한 산삼이 들어 있었다.
 행낭을 열어 산삼을 확인한 청운거사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삼천년을 묵었다고 하기에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거의 무만 한 크기도 크기였지만, 자연지기를 듬뿍 머금어 선기까지 내뿜고 있었다.
 이만한 산삼이라면 회춘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나저나, 선계부터 가야겠군. 이놈이 만금보주를 구한다고 선계를 또 들쑤시지는 않았으려나?”
 산삼을 소중하게 챙긴 청운거사는 방을 나섰다.
 젖먹이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산속에서만 자라 이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둔한 두근이었다. 아니, 거의 문외한이라고 봐야 했다.
 스승은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적은 편지를 보고 두근에게 이제는 남녀의 이치를 보다 현실적으로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밥 먹듯이 먹고 자란 영약과 온갖 약초 때문인지는 몰라도 두근의 도술은 이미 자신을 능가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인간세상의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몰라도 어떨 때보면 두근은 참으로 아이 같은 짓을 하기도 했다.
 이번 일도 처음의 시작은 장난에서 비롯된 것이 확실했다.
 
 선계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청운거사는 두 명의 수문선장이 지키고 있는 선계의 입구에 다다랐다.
 “멈추시오. 청운거사, 선계에는 무슨 일이오?”
 “혹시 두근이가 오지 않았소?”
 “오전 일찍 왔소. 선녀궁의 상좌선녀이신 월아선녀를 뵙겠다고 하더이다.”
 “아이고, 그놈이 만금보주를 구한다고 선계에 왔다 해서 내가 왔소이다.”
 “만금보주를? 그것을 두근이가 어찌 구한다고.”
 “그러게 말이오, 선계에서 또 한 번 사고치기 전에 내가 빨리 데려가야 할 것 같소.”
 “알겠소, 어서 가보시오. 아마 선녀궁에 있을 것이오.”
 “고맙소.”
 반갑게 맞이했던 두근과는 달리 청운거사를 대하는 수문선장의 태도는 딱딱했다.
 아무리 도를 깨우치고 우화등선을 눈앞에 둔 청운거사라고 하지만, 선계의 출입이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일반인은 죽어서야 밟을 수 있는 것이 선계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죽은 사람 전부가 선계에 드는 것도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 명계에서 자신이 이승에서 행한 죄 값을 치루고 다시 윤회를 해야 했다. 통상 수천만의 영혼 중에서 단 하나의 영혼만이 선계에 드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빌어먹을 놈들, 두근이는 선계를 자유롭게 출입을 시키고 이 늙은이는 사사건건 간섭하다니.”
 청운거사도 우화등선을 하면 자유롭겠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근은 달랐다.
 어릴 적부터 신령들을 따라 선계출입을 했고 덕분에 선계와 명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란 아이였다.
 거기다 도술도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 탈혼경에 접어든 두근이였다. 육신은 인간이었지만, 그의 혼백은 벌써 상급 신선의 경지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정해진 인간의 수명을 다하면 머지않아 선계의 팔대상선(八代上仙)에 오르리라고 소문이 자자한 두근이였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근이가 접하는 인간은 함께 도술을 배우는 열한 명의 제자가 전부였다.
 그래서 인간보다 산신령이나 신수 또는 선녀나 신녀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악(惡)을 가까이하고 배우기보다는 날 때부터 천지의 도(道)와 음양의 술(術)을 배워 궁극의 조화를 깨우쳤고, 그 외에도 배달국과 나아가 천지를 어지럽히는 원귀나 요괴를 잡는 일로 덕도 많이 쌓은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선계에서도 두근을 아껴 그의 스승에게 인간세계와 유리시키라고 명을 내린 일은 온 계에서도 잘 알려진 유명한 일화였다.
 
 “계십니까?”
 “어머, 청운거사님. 어쩐 일로 여기까지?”
 “월아선녀님을 뵈려고 왔습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제는 두근의 스승으로 선계에서도 널리 알려진 청운거사였다. 선녀궁의 선녀들은 두근의 스승이 찾아왔기에 월아선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마침 월아선녀와 같이 있던 청파신녀는 자신이 약속을 어기고 부랴부랴 빠져 나온 일도 있기에 같이 나왔다.
 “월아선녀님을 뵙습니다.”
 “어서 오세요, 청운거사님.”
 “여기서 또 뵙네요, 거사님.”
 “아, 청파신녀님께서도 여기에 계셨군요.”
 “네, 그런데 선녀궁에 무슨 일로?”
 “혹시 두근이가 여기에 오지 않았습니까?”
 “네, 두근이가요?”
 두근의 이름이 나오자 월아선녀가 반색을 하며 묻는 것과는 달리 청파신녀의 눈에는 순간 그늘이 생겼다.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그와 겨뤄서 패한 사실과 그가 자신에게 행한 행동이 잊히지 않았다.
 “아니요, 못 봤는데. 제가 잠시 어딜 다녀왔다가 조금 전에야 들어와서요. 무슨 일이시죠?”
 “그게, 녀석이 여길 다녀오겠다고 편지를 두고 떠나서…….”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청운거사님께서는 청파신녀와 함께 우선 제 방에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그리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청파신녀의 안내로 월아선녀의 방에 들어간 청운거사는 아직 찻잔이 치워지지 않은 탁자에 앉았다. 그가 오기 전까지는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 같았다.
 청운거사는 맞은편 의자에서 아직도 씁쓸한 표정을 하고 있는 청파신녀를 바라봤다.
 청파신녀는 청운거사의 표정을 보고 그가 자신에게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신녀님께 죄송합니다, 이 모든 것이 저의 불찰입니다.”
 “아닙니다, 거사님께서 불찰이라니 당치 않습니다.”
 청운거사의 말에 청파신녀는 그가 모든 것을 알았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자기도 모르게 당황했다. 청운거사는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품안에서 서찰을 꺼내들었다.
 “신녀님, 노여우시더라도 잠시 화를 푸시고 이 서찰을 읽어주십시오.”
 청운거사에게서 서찰을 받아든 청파신녀는 서서히 편지를 읽어갔다. 편지에는 두근이가 자신에게 행한 모든 일의 진실과 용서를 비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청파신녀를 향한 두근의 마음도 솔직히 드러나 있었다.
 청파신녀는 두근이가 자신에게 한 협박이 사실은 거짓이었고, 본심과 다른 말이 나와 두근이 자신도 놀랬다는 부분에서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도 그랬지만, 자신을 향한 두근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신녀님, 불쾌하시겠지만 용서해주십시오.”
 “아, 아닙니다.”
 “녀석이 아직도 어리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벌써… 하긴 사내 인간의 나이로 스물을 넘었으니 꼭 어리다고 볼 수는 없겠지요.”
 “저도 그 순간은 당황했는데 이제 두근의 마음을 알았으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그런데 만금보주를 구하겠다며 선녀궁으로 간 녀석이 어디로 갔는지…….”
 청운거사와 청파신녀가 얘기를 나누는 그때, 월아선녀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황급히 들어왔다.
 “청운거사님, 급히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예? 무슨 일입니까, 월아선녀님.”
 “제가 잠시 자리를 비웠던 오전에 두근이가 이곳을 다녀간 것 같아요.”
 “하면 지금 어디에 있다고…….”
 “글쎄, 만금보주를 구하겠다고 선계 북쪽 끝의 소멸하로 갔답니다!”
 “…소, 소멸하요?”
 “언니, 그게 정말이야?”
 소멸하에 대한 소문은 청운거사나 청파신녀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영혼이 담겨 있는 것은 무엇이고 빨아버린다는 소멸하를 모른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특히 두근이가 남긴 편지를 읽은 청파신녀는 두근이가 무슨 이유로 만금보주를 구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더욱 놀랐다.
 바로 자신에게 청혼하기 위해 만금보주를 구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녀석이 어쩌자고 그런 위험한 곳을……!”
 “언니, 빨리 찾으러 가 봐요!”
 “그래, 선녀궁의 선녀들도 데리고 가서 같이 찾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이렇게 선녀궁이 발칵 뒤집어졌다.
 만금보주를 구하러 간 두근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에 다른 선녀들도 청운거사들을 따라 나섰다.
 두근의 도술 실력이 뛰어나기에 큰 걱정은 안 들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안 왔다는 것이 맘에 걸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청운거사를 비롯한 여덟 명이 소멸하를 향해 급하게 날아갔다.
 
 “넓은 소멸하를 뒤지려면 흩어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녀석의 도술이 뛰어나니 별 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빨리 찾는 것이 좋겠지요.”
 “그럼 청운거사님은 미향과 같이 다니세요.”
 “언니는 저랑 같이 다녀요.”
 “그래, 그러자구나.”
 두 명이 일개조가 되어 4개조로 갈라진 일행은 각자 자신이 맡은 지역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 * *
 
 스승을 비롯해서 청파신녀까지 나서서 자신을 찾는 줄도 모르는 두근은 콧노래를 부르며 만금보주를 캐고 있었다.
 “만금보주야! 어서 나오너라, 두근이 장가가야지.”
 만금보주를 발견한 두근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캐는데 성공, 묻어 있던 흙을 침을 발라가며 닦아낸 뒤 만기보(萬奇褓)에 담았다.
 만기보는 만 가지의 물건을 담을 수 있다는 보자기로 아무리 무겁고 부피가 큰 물건도 제약 없이 담을 수 있었다.
 특히 쉽게 변하는 음식도 담아두면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근의 만기보 안에는 예전에 캔 산삼이나 음양빙옥부터 온갖 약초와 내단까지 꽤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만금보주를 구한 두근은 밖으로 나가려다 만금보주를 파낸 밑에 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저게 뭐지?”
 붉은색을 띠고 있는 그것은 만금보주보다 더 깊은 곳에 묻혀 있었다. 어쩌면 만금보주가 묻히기도 전에 묻힌 것 같았다.
 처음에는 호두알 정도의 작은 크기로 보였던 그것은 파면 팔수록 더욱 더 신비한 붉은빛을 내고 있었다.
 “무지 크네! 만각화룡의 내단보다 더 큰 것 같은데?”
 기이하게 여기며 계속 밑을 파던 두근은 어린아이의 두 주먹만 한 작은 내단을 발견했다.
 내단이라고는 하지만, 누가 죽어서 남긴 내단인지 모르기에 처음은 조심히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느껴지는 기운이 결코 악하거나 흉하지 않았기에 두근은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아무리 봐도 내단 같은데……?”
 그렇게 두근의 손이 닿는 순간, 내단은 빨리듯이 두근의 손안으로 스며들었다.
 순간 어마어마한 열기가 느껴지며 두근의 머리가 핑핑 돌았고, 그와 동시에 내단은 마치 두근의 몸속에 흡수라도 되는 것처럼 점점 사라져갔다.
 오천년 묵은 백사의 내단도 먹어보고 승천에 실패한 만년 묵은 이무기의 내단도 맛본 두근이었지만, 그게 모두 자신이 먹으려고 해서 먹었고 입 안으로 들어갔지 이렇게 손을 통해 들어간 적은 처음이었다.
 “뭐, 내단이니까 몸에는 좋겠지?”
 기이한 현상에 잠시 당황했지만, 두근은 이내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난 변화를 느끼며 명상에 잠겼다. 어차피 먹으려고 했던 내단이었고, 비록 입으로 먹지 못해 맛을 못 본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별 수 없었다.
 두근은 내단의 정기와 선기를 자신의 내력으로 바꾸기 위해 명상과 함께 주문을 외었다. 두근의 몸 안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던 내단은 아무래도 극양의 기운을 품은 것 같았다.
 주문과 동시에 두근이 자신의 진기를 운용하자 저항하던 내단이 서서히 끌려오기 시작했다.
 “끄응… 아이구, 이놈이 끝까지 흡수가 안 되네.”
 두근은 저항하는 내단을 자신의 기운으로 바꾸기 위해 무던히도 고생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주문과 기운에 의해 조금씩 스며들었지만, 이윽고 심장 부근에 도착해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새 녹은 내단으로 인해 자신의 내력은 잃어버렸던 반 갑자의 내력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미 너무 많은 약초와 영물을 먹은 자신의 몸이었기에 아무리 좋다고 해도 더 이상은 내력으로 바뀌지 않는 것이다.
 “후아, 다시 10갑자 만땅이군.”
 두근은 10갑자에 달하는 자신의 내력을 확인하고 이번에도 그 이상의 효력은 발휘되지 않나 보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상했다.
 이전의 경험에 의하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내단이나 약초는 서서히 녹아 몸 안 곳곳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심장위에 자리 잡은 이 녀석은 아예 뿌리를 박은 것처럼 굳건했다.
 아무리 움직여 보려고 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처음 느껴보는 기운인 걸?”
 내단은 분명 극양의 기운을 띄고 있었지만 처음 접해보는 이상한 힘이 느껴졌다. 어찌 보면 요물들에게서 느껴지는 힘 같기도 했고 또는 자신의 도술과도 비슷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분명 자신이 처음 접해보는 이상한 힘이라는 사실이었다.
 “좋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움직여볼까?”
 두근은 정신을 집중하면서 내단의 주위로 기운을 보냈다.
 자신의 기운을 뭉쳐 내단을 감싸 안은 후, 움직여봤지만 여전히 꼼짝도 안 했다. 아니, 심장과 어떻게 연결이 되었는지 오장육부가 들썩이며 고통까지 안겨줬다.
 “에이, 때가 되면 지가 알아서 녹겠지!”
 
 두근이가 내단과 씨름하는 동안 그를 찾는 이들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한참 허공을 날던 청파신녀는 월아선녀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월아 언니, 두근이를 잘 아세요?”
 “그럼, 갓난아이 때부터 봤는데. 어릴 때는 내가 기저귀도 갈아줬어.”
 “장난이 너무 심하다고 하던데…….”
 “하긴, 보통 심한 게 아니지. 그런데 왜?”
 “아… 아니에요!”
 청파신녀는 자신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리질을 했다. 월아선녀에게 괜히 마음을 들킨 것만 같았다.
 하지만 월아선녀는 청파신녀의 마음도 모르고 계속 두근과 관련된 얘기를 했다.
 대부분 두근의 장난과 관련된 얘기였다.
 월아선녀의 얘기를 듣는 동안 청파신녀는 서서히 두근이가 장난은 심하지만, 악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두근이의 뛰어난 도술과 재주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하기는 자신이 직접 겨뤄봤기에 그 점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선계의 선녀들은 모두 두근이를 좋아해.”
 “모두요?”
 “두근이의 도력은 선계 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데다가 마음도 정말 착하거든. 그래서 선녀뿐만 아니고 선계의 존재 중에 두근의 도움을 받은 이가 의외로 많아. 두근이는 누가 어려움을 당하면 그냥 안 넘어가고 자신이 같이 달라붙어서 도와주는 애야. 그래서 신계에서는 어려운 일을 당하면 당장 두근이부터 찾고 그러지. 자기에게 힘들고 손해가 생기더라도 남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주는 그런 존재거든.”
 “그런 면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아마 두근이는 평범한 인간하고는 혼인을 할 수가 없을 걸?”
 “그, 그건 왜요?”
 “두근을 짝사랑하는 선녀들이 너무 많아서. 모두들 두근이가 어서 천수를 누리고 선계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걸.”
 월아선녀의 얘기를 듣는 동안 청파신녀는 두근의 다른 면을 알 수 있었다.
 처음 생각과는 달리 두근에 대한 많은 것들이 달리 보였다.
 그리고 모든 선녀들이 좋아하는 두근이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하자 왠지 우쭐해지는 청파신녀였다.
 “언니, 우리 이제 저쪽을 찾아봐요.”
 “그래.”
 
 * * *
 
 “두근아, 어디 있니?”
 “두근님, 어디 계세요.”
 “…이 목소리는?”
 두근이 더 이상 녹지 않는 내단과 씨름하고 있을 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월아선녀와 청파신녀의 목소리였다.
 두근은 조용히 둔덕을 올라가 고개를 조심히 내밀었다.
 “헉…! 우아, 미치겠네.”
 자신이 생각한 대로 월아선녀와 청파신녀가 자신을 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용궁으로 돌아가 있어야 할 청파신녀가 왜 선계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스승에게도 자신의 파렴치한 범죄행위를 고자질한 청파신녀였으니 분명 월아선녀에게도 고자질했을 가능성이 많았다.
 이제 선계에도 자신의 뻔뻔한 범죄행위가 드러난다고 생각하자 눈앞이 노래졌다.
 “아이, 정말 어디 간 거야? 이 자식 잡히기만 해봐. 아주 혼쭐을 낼 거야!”
 “두근님, 어디 계세요~.”
 “커헉…!”
 거의 확실했다.
 월아신녀가 저렇게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단단히 화가 난 것이 확실했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은 몸을 피해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아직 자신이 이곳에 있는 줄은 모른 것 같았다.
 하지만 두근은 몰랐다.
 월아선녀가 자신을 혼낸다는 말이 자신을 걱정해서 홧김에 내뱉은 말이라는 것을.
 그리고 청파신녀의 가슴에 자신이 점점 크게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것도 모르는 두근은 좀 더 살펴보기 위해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
 “언니, 저기 뭐가 있는 것 같은데요.”
 “어디?”
 “저기요.”
 “헉!”
 아무래도 자신의 고개를 얼핏 본 것 같았다.
 점점 다가오는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두근은 당황했다. 이제 와서 둔갑술이나 다른 술수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선녀궁의 상좌선녀인 월아선녀라면 기운의 변화를 감지할 가능성이 많았다. 차라리 몸을 가리고 끝까지 기척을 숨기는 것이 더 안전했다.
 “…에라, 모르겠다! 저 구멍 안에 숨어 있자.”
 두근은 용암이 남긴 흔적의 틈 사이에 있는 구멍 안으로 몸을 날렸다.
 움푹 안으로 파인 지형 때문에 자신도 밑에 내려와서야 발견한 구멍으로, 월아선녀나 청파신녀가 밑으로 내려오기 전에는 절대 발견할 수 없는 장소였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요? 죄송해요, 언니. 제가 잘못 봤나 봐요.”
 “아냐, 혹시 모르니 계속 찾아보자.”
 말소리가 가까워지자 두근은 더욱 밑으로 내려갔다.
 그때였다.
 조심히 밑으로 내려가던 두근은 발밑이 허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을 빨아들이는 엄청난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두근은 본능적으로 몸을 빼기 위해 다급히 기운을 분출했지만, 두근의 힘보다도 빨아들이는 소용돌이의 힘이 더 빠르고 강력했다.
 그렇게 두근은 자신을 삼킨 소용돌이 안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갔다.
 
 
 몽달이와 깨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온통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두근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찌나 강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는지 온몸이 뻐근했다.
 소용돌이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별의별짓을 다하면서 사방에 부딪쳤기에 그런 거였다.
 “에고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네.”
 두근은 몸을 돌려 다시 자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한걸음도 뗄 수 없었다. 오던 길로 되돌아가려하자 또다시 어마어마한 힘이 자신을 끌어당겼기 때문이었다.
 “뭐야, 이거 왜 이래?”
 이것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두근은 별 수 없이 방향을 돌려 어둠속을 헤쳐 갔다.
 구멍을 통해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신기하게도 되돌아가려 할 때마다 자신을 방해하던 강한 힘은 되돌아가는 것을 포기하자 바로 느껴지지 않았다.
 “도대체 이 끝에 뭐가 있기에 이런 조화를 부리는 거야?”
 머리 위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두근은 그것이 지하수맥인가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멸하가 아닐까 걱정했다.
 자신이 빨려 들어올 때, 어느 순간 방향이 틀어진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에이, 아닐 거야. 설마…….”
 심안(心眼)술을 사용하자 어둠속에 길이 희미하게나마 보였다. 본래라면 대낮처럼 훤히 드러나야 하는데 너무 어둡게 보이는 것이 이상했다.
 하지만 몇 번이나 해제하고 다시 심안술을 사용해도 마찬가지기에 포기했다.
 우지지직.
 순간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어둠과 침묵만이 가득한 공간이기에 그 소리는 너무도 또렷이 두근의 귀에 들렸다.
 두근은 뭔가 나타난 줄 알고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뒤에서 벌어진 일을 목격하자마자 무조건 앞으로 달렸다.
 쿠르르릉-!
 자신이 지나쳐온 지하 동굴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너진 틈을 타고 소멸하의 뜨거운 용암이 지독한 열기와 함께 동굴 안을 빠르게 채우고 있었다.
 행여나 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두근은 축지법을 써가며 동굴 안을 빠르게 질주했다.
 간혹 미처 피하지 못하고 바위 등에 몸을 부딪쳤지만, 아픔을 느낄 새도 없었다.
 
 “휴~우, 죽는 줄 알았네.”
 숨도 못 쉬고 동굴 밖까지 달려 나온 두근은 그제야 잊고 있던 호흡을 했다.
 두근은 아직 헐떡거리는 가슴을 안고 자신이 막 빠져나온 동굴을 봤다.
 조금 전까지 동굴이었던 그 자리는 완전히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고, 대신에 땅에서 용암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크, 여기도 안 되겠다.”
 두근은 그때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노란하늘 황천(黃天)을 보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이 환계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두근이 예기치 못한 일에 잠시 넋을 놓고 있는 사이, 무너진 동굴 틈으로는 계속 용암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영혼도 녹여버린다는 소멸하의 용암이었다.
 “내가 어쩌다가…….”
 후회해도 늦은 일이었다.
 두근이 동굴로 뛰어든 순간,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그를 빨아들이던 미증유의 거대한 힘은 영혼을 삼키려는 환계의 힘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유일한 탈출구였던 지하 동굴마저 무너진 상황이었다.
 “우선은 살고 봐야겠지.”
 가만히 있다가는 차오르는 용암에 자신의 몸이 흔적도 없이 녹을 수도 있는 일이다. 두근은 내키지 않지만 눈앞의 둔덕을 뛰어넘어 환계의 영역에 발을 들여놨다.
 “헉…! 귀신 천지네.”
 어둠 속에 뻘건 눈만 드러내놓고 자신을 지켜보는 수많은 존재가 있었다.
 어찌 보면 깊은 산속에서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빛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맹수의 눈빛과는 다른 처절한 귀기(鬼氣)와 원한이 서려 있었다.
 “크크크큭, 육신을 가진 자다.”
 “저 놈의 영혼에서 냄새나는 도력이 느껴진다.”
 “죽여라!”
 죄를 범한 역천의 존재들이 벌을 받고 유폐된 곳이 환계라고 했다. 지금 두근에게 다가오는 존재들은 처녀귀신부터 몽달귀신까지 온갖 귀신들의 혼(魂)이었다.
 이미 벌을 받아 백(魄)은 사라지고 혼만 남은 그들은 두근을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12신장(神將) 소환!”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귀신들이었다. 더구나 백이 사라졌기에 물리적 타격으로 잡기에는 힘들었다.
 두근은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를 흔들며 12신장을 소환했다.
 하지만 당연 나타나서 도와줘야 할 12신장은 소환되지 않았다.
 “흠타리 흠바사하 흠타리 흠파.”
 결국 두근은 자신의 내력을 주입하며 신장을 강제 소환하는 주문을 외웠다.
 그러는 동안에도 혼만 남은 귀신들은 두근의 주변으로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었다.
 “어리석은 놈, 감히 이곳에서 소환이 통할 것 같으냐.”
 “놈의 육신을 먹으면 백이 생겨날 것이다……!”
 “어서 죽여라!”
 두근은 자신의 팔찌를 바라봤다.
 항상 영롱한 오색 빛을 내던 팔찌였다.
 하지만 지금은 죽은 생선의 눈알처럼 짙은 회색의 희뿌연 빛만을 내고 있었다.
 “클클클, 놈! 너의 피부터 마셔주마!”
 흐릿한 그림자와 함께 여자의 얼굴과 짐승의 몸통을 하고 있는 귀신이 덤벼들었다.
 아마도 어린 구미호의 혼 같았다.
 두근은 급한 마음에 왼손으로는 태극패를 꺼내 구미호의 얼굴을 향해 비추고 다리로는 충(衝)과 파(破)의 보법을 연속으로 밟았다.
 콰콰쾅!
 “꺄아아악!”
 “쿠에웩!”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나며 구미호의 혼이 그 자리에서 불탔고 선두로 달려들던 다른 귀신들의 혼이 흐트러지며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소환술은 통하지 않지만, 직접 방위를 밟으며 기운을 빌리는 보법술은 사용가능했던 것이다.
 “좋아, 사라지거라! 간악한 귀신들아!”
 품안을 뒤져 잡히는 대로 4장의 부적을 뿌렸다.
 다행히 얼마 전 처녀귀신을 잡으러가면서 축귀(逐鬼) 부적을 많이 준비했었던 것이 있었다.
 환계의 황천에 노출되자마자 부적은 바르르 떨며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담겨진 힘을 토해냈다.
 콰콰쾅!
 우르르르-
 꽝! 꽝-!
 번개와 벼락이 작렬하고 주변 20장을 완전히 불태우는 불기둥이 솟아났다.
 천지의 모든 귀신들을 불태우는 푸른색의 신성한 불기둥에 달려들던 귀신들의 남은 혼이 타들어갔다.
 그러나 귀신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큰일이군. 우선 피하고 봐야 해.”
 “놈이 도망간다!”
 “잡아라!”
 다급히 도망가는 두근을 따라 수많은 귀신들이 벌떼처럼 쫓기 시작했다.
 “제길, 빨리 결계를 만들어야 해!”
 두근은 소멸하를 따라 밑으로 계속 내려갔다.
 축지법을 극한으로 발휘했기에 그의 주변에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두근은 마지막 수로 다시 소멸하가 흐르는 아래로 뛰어내렸다.
 둔덕 위에 착지한 그는 빠르게 방위를 밟으며 자신의 손목에 상처를 내서 피를 뿌렸다.
 결계를 만드는데 가장 좋은 쑥을 탄 수탉의 피가 없었기에 자신의 피로 대신한 것이다.
 “우선 몸부터 가리고.”
 팔방 천하에 그 빛이 흐른다는 칠성의 힘을 빌려 둔형(遁形)의 결계를 만들어 모양과 기척을 숨겼다.
 다음으로는 하늘위의 하늘이라는 제천의 힘을 풀어 무위(無位)의 결계를 안에 다시 펼쳤다.
 혼백(魂魄)과 육신의 정기를 가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귀식대법을 펼쳐 만일을 대비했다.
 “주변을 살펴 놈을 찾아라!”
 “어서 쫓아라!”
 귀신들은 두근이가 숨어 있는 소멸하의 둔덕을 그냥 지나쳐 계속 밑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두근은 바로 나올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또 다시 귀신들이 나올 줄 몰랐다.
 “휴우, 스승님을 속일 때 사용했던 것이 나를 구했구나.”
 이것은 이미 신선의 경지에 든 스승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무수히 잡혀가며 만든 결계였다.
 귀신들은 두근을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밑으로 내려갔다.
 “…이제 어떡해야 할까?”
 환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었다.
 설령 죽는다 하더라도 혼백이 남아서 환계를 떠돌 것이 분명했다. 그러다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해 백이 사라질 것이고, 마지막으로 혼이 사라지면 녹아 소멸하로 흘러들 것이었다.
 보통 하나의 생명은 억만겁의 윤회를 해야 깨우침을 얻어 선계에 들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환계에 온 이상 윤회의 기회도 얻을 수 없었다.
 “우선 돌아다녀보자,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이대로 죽기만을 기다릴 수 없었다. 죽어도 백과 혼이 사라질 때까지 환계에 머물러야 한다면 차라리 육신을 가지고 있을 때 이곳을 벗어날 방법이 있는지 찾아봐야 했다.
 “우선 준비부터 철저히 하자.”
 조금 전처럼 수많은 귀신에 둘러싸인다면 방법이 없었다.
 자신의 최고절기라 할 수 있는 소환술을 사용 못하는 이상 다른 것이라도 많이 만들어둬야 했다.
 만기보를 뒤져 누황지와 붓 그리고 경면주사통을 꺼냈다.
 부적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만들 생각이었다.
 촤르르륵.
 붓이 한번 휘어 갈겨질 때마다 부적은 완성되었다.
 부적을 완성한 두근은 주변에서 작은 자갈을 모았다.
 보법술과 수인술을 계속 남발하다가는 도력이 남아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부적술을 본 딴 투척술이었다.
 먼저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흘려 자갈에 직접 문구를 새겨 넣었다. 이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흠치 만을치흠 묘리 바라챠흠 흠순 흠치흡.”
 자신의 내력을 쪼개 자갈에 옮기는 전이(轉移)의 주문이었다. 주문이 계속됨에 따라 두근의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이 맺혔다. 반대로 자갈은 거무튀튀한 자신의 본래 색깔을 잃고 붉고 푸른색의 신비한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휴~우, 오늘 피 많이 보네.”
 스무 개의 자갈을 품에 챙긴 두근은 운기조식을 해서 내력을 보충했다. 우선은 소멸하를 따라 걸으며 혹시 건너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찾아볼 생각이었다.
 소모된 내력이 보충되자 두근은 천리통(千里通)을 시전했다. 사방 수십 리 내에 있는 귀신의 기운을 탐지하기 위해서였다.
 “다행이군, 전부 밑으로 몰려갔구나.”
 두근은 자신이 내려왔던 길을 거슬러 갔다.
 어차피 소멸하를 건너는 방법이 딱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행여나 있을지 몰라 찾는 길이었다.
 두근은 그렇게 정처 없이 소멸하를 따라 올라갔다.
 
 * * *
 
 “…벌써 며칠째 걷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두근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벌을 받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금쯤 편지를 발견한 스승이 자신을 찾기 위해 애태울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스승님, 죄 많은 두근이 여기서 이렇게 죽게 되나 봅니다.”
 두근이의 마음도 모르고 소멸하는 모든 것을 삼키겠다는 기세로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냥 이대로 소멸하에 뛰어들어 모든 것을 끝내자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냐, 이대로는 허무해. 두호 말대로 나는 아직 장가도 못 갔다고.”
 고개를 저은 두근은 축지법을 써서 빠르게 소멸하를 올라갔다. 하지만 소멸하는 끝이 없었다.
 며칠을 헤매고서야 두근은 소멸하가 환계를 따라 돌면서 흐르는 원형의 모습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완만하게 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내부로 들어가야겠어. 우선 누구라도 만나야지.”
 이렇게 소멸하를 따라 돌아다녀봐야 해답이 없다고 생각하자 두근은 누군가를 잡고 물어보기로 했다. 물론 누군가는 귀신이고, 물어보는 방법은 힘을 적절히 사용할 생각이었다.
 일단 생각이 결정되자 주변의 기운을 살폈다.
 저번처럼 귀신들의 무리로 뛰어들어 달리기 시합을 할 생각은 없었다.
 “이쪽은 조용하군.”
 감각을 계속 유지하며 걷는다는 것은 많은 내력과 심력의 소모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기에 느리지만, 안전하게 가기로 결정했다.
 “옳지, 저쪽이다.”
 두근의 감각에 혼자 떨어져있는 원귀가 하나 들어왔다.
 두근은 근처까지 접근해서는 자신의 몸을 어둠속에 숨기는 은신술을 발동시켰다. 이승이라면 완벽하게 숨길 수 있겠지만, 환계에서는 그림자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놓고 달려들 수는 없기에 그렇게라도 하고 접근했다. 귀신은 자신이 다가가는 줄도 모르고 바닥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야!”
 “아이코, 깜짝이야!”
 “뭐 하나만 물어보자.”
 “너… 너는 인간?”
 귀신은 많이 놀라했지만, 자신의 그림자를 정확히 발견하고 있었다.
 만일 그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접근도 어려웠을 것 같았다.
 “그래, 인간이다. 살고 싶으면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이… 인간이 어찌 이곳에? 더구나 육신을 가지고?”
 “어이, 나 지금 시간이 얼마 없거든?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응?”
 “으…응.”
 두근이 가만 보니 상대는 몽달귀였다.
 장가를 가지 못하고 죽은 총각의 영혼이 이승을 떠돌며 애꿎은 아녀자를 희롱하는 것이 몽달귀로, 처녀귀신과 달리 죽음 당시의 형상을 하고 다니는 것이 특징이었다.
 녀석은 죽기 직전 멍석말이를 당했는지 온몸에 매자국과 달라붙은 피딱지가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
 “짜식, 멍석말이에 맞아 죽었구나.”
 “응.”
 의외로 몽달귀는 순순히 모든 것을 불었다.
 두근은 몽달귀의 반응이 여느 귀신같지 않아서 그의 최후장면을 영사(靈寫)했다.
 살아 있는 영혼의 영사는 대상이 동의하지 않는 이상, 아주 피상적인 모습만 보여주지만 귀신의 경우는 영사를 하면 거의 대부분의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두근이 자신의 이승기억을 영사해도 몽달귀는 그저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이웃마을의 처녀와 서로 좋아했던 몽달귀는 가난 때문에 그 처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시집가던 날, 물레방앗간에서 서럽게 울던 몽달귀의 모습에 두근도 코끝이 찡해졌다.
 “많이 억울했겠는데?”
 “이미 지난일인 걸.”
 좋아하는 몽달귀를 두고 재물 많은 부자에게 시집간 처녀는 그 후로 갖은 학대를 받았다. 특히 부자는 몽달귀와 처녀의 과거를 의심하고 심한 구타를 했었다.
 결국 학대와 구타를 못 견딘 처녀는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하고 말았다. 부자는 부인의 죽음을 몽달귀와 연결시켜 그날 밤 바로 그를 멍석말이했다.
 그리고 모진 매를 맞은 그도 결국 죽어 몽달귀신이 되었던 것이다.
 “그럼 그 자에게 복수를 한 거니?”
 절레절레.
 두근의 질문에 몽달귀는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환계로 끌려온 인간의 영혼은 귀신이 되어 많은 사람을 해친 원귀가 대부분이었다.
 두근은 몽달귀가 왜 환계로 끌려왔는지 궁금했다.
 귀신이 된 이후의 일은 영사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럼 왜 이곳에 있는 거야?”
 “난 그녀가 목을 맨 줄 몰랐거든. 그래서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향했어.”
 “그래서……?”
 “나를 보고 그 부자가 발작을 일으키고 죽었지.”
 “아!”
 그랬다.
 몽달귀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좋아했던 처녀의 행복을 빌었다. 죽어 귀신이 되자 그녀를 한번 보겠다는 일념으로 부자의 집으로 향했다.
 부인의 자살원인을 몽달귀와의 불륜으로 몰았던 부자는 귀신이 되어 찾아온 몽달귀를 보는 순간 심장이 멎어 죽고 말았다.
 몽달귀는 자신이 귀신이 된 줄도 모르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 정도의 죄라면 지옥에 가서 죄 값을 치루면 되었을 텐데?”
 “그게 다가 아니야.”
 “그럼 다른 일도 있었어?”
 끄덕끄덕.
 몽달귀는 자신의 얘기를 이어서 했다.
 자신 때문에 부자가 쓰러지자 당황한 몽달귀는 사람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부자의 어머니마저 심장마비로 죽게 했다.
 그제야 몽달귀는 자신이 귀신이 된 것을 알고 무조건 근처의 산으로 도망갔다.
 하지만 아들과 부인을 잃은 부자의 아버지는 복수를 위해 몽달귀의 홀어머니마저 멍석말이로 죽였다.
 나아가 도사를 불러 자신의 소멸시키기 위해 추격에 나서게 했다.
 “그래서 그 부자의 아버지를 죽인 거야?”
 “응.”
 이유가 어찌되었든 귀신이 된 이후에 여러 사람을 죽인 죄에다가 일부러 죽이기까지 했다면 그 죄는 큰 죄였다.
 “조금만 참지, 왜 그랬어?”
 “도사에게 어머니와 그녀의 영혼마저 소멸시키는 역천혼령소멸대법을 시전하게 했거든.”
 “도사가 어찌 그런 사술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갖은 고생 끝에 도사도 죽였지.”
 “아!”
 “나는 괜찮지만 나 때문에 비명횡사하신 어머니와 그녀를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었어.”
 죽은 지 사흘이내의 영혼에만 시전이 가능한 술법이 역천혼령소멸대법이었다.
 이 술법은 죽은 자의 영혼을 억지로 불러내 갈가리 찢어 환생마저 못하게 하는 지독한 술법이었다.
 하늘이 정한 윤회의 법칙을 금제한 술법이기에, 선문(仙門 도인들의 세계)에서는 사술로 규정하고 사용을 절대 금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덕분에 다시는 새로운 삶을 살지는 못하지만 후회는 안 해.”
 “…….”
 두근은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인간세상이 참으로 복잡하고 요지경속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자신은 환계에 온 영혼은 무조건 역천의 죄를 범한 대죄인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의 몽달귀처럼 억울하고 원통한 영혼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천지의 이치가 오묘하다고만 생각했거늘…….”
 “그러니 나처럼 대죄를 지은 자는 이곳에 있지.”
 두근은 초연한 몽달귀의 태도를 보고 머리에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귀신이 되어 여러 인간을 죽인 그는 역천의 벌로 환계에 와서 그 죄 값을 필요 이상으로 받고 있었다.
 하지만 진정 대죄를 범한 부자나 그의 아버지 그리고 도사는 명부에 있을 것이 뻔했다.
 물론 자신들이 범한 죄 값은 받겠지만, 그들은 다시 죄의 사함을 받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돌 것이 확실했다.
 두근이에겐 생각했던 절대 선(善)이나 도(道)의 극심한 혼란이 찾아왔다.
 “그런데 너는 인간이 어떻게 이곳에 있지? 보아하니 보통 인간은 아닌 것 같고.”
 “나도 몰라, 어찌하다보니 이곳에 오게 됐어.”
 “너처럼 육신을 가진 자를 보면 이곳의 원귀나 요물들이 가만 안 놔두려고 할 텐데.”
 “말도 마, 처음 여기에 온 날 난리가 났어.”
 “그럼 이제 어쩔 셈이야?”
 “들어온 길이 있었으니 빠져나갈 길이 있지 않나 찾아 볼 생각이야.”
 “그렇게 육신을 가지고?”
 “방법이 없잖아. 우선 은신술이라도 쓰면서 돌아다녀봐야지.”
 “어림없어, 그림자가 드러나잖아.”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손만 빨 수는 없잖아.”
 “…은신술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 내가 빙령(憑靈)을 할게.”
 “빙령? 빙의도 아니고 빙령을 하면 그나마 남은 너의 혼이 흔들릴 텐데……!”
 귀신이 이승에서 살아 있는 인간에게 달라붙어 그와 어느 정도의 교감을 이루는 것을 빙의라고 한다.
 하지만 빙령은 인간이 귀신의 혼을 불러오는 것이었다.
 같은 귀신이라고는 하지만 혼백(魂魄)이 온전히 남은 귀신은 빙령을 해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여기 환계에 있는 것은 역천의 죄를 범한 죄인이기에 백이 소멸되고 혼만 남은 귀신들뿐이었다. 빙령을 하다가는 몽달귀의 혼이 산산이 흩어지며 완전히 소멸될 수 있었다.
 완전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괜찮아. 내가 도사를 죽인 것을 잊었어? 도사의 능력 중 일부를 얻었다구.”
 “…좋아, 대신 힘들면 말해.”
 다행히 몽달귀는 흡입술의 재주가 있었다.
 상대를 죽이면 그 자의 능력을 추가로 얻는 것이 흡입술이었다. 귀신 중에는 간혹 그런 재주를 획득하는 경우가 있는데, 몽달귀가 바로 그랬다.
 두근도 빙령을 하면 자신의 그림자를 가릴 수 있다는 점을 알았다.
 그러기에 빙령을 하자는 몽달귀의 말을 따랐다. 몽달귀가 도술의 힘을 사용한다면 혼이 흔들리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나도 환계의 여러 곳을 가보고 싶었어. 혼돈의 강을 건너 다른 차원에서 왔다는 원귀들도 보고 싶고.”
 “다른 차원?”
 몽달귀의 말에 두근은 신기해하는 얼굴로 되물었다.
 “응, 환계는 여러 개의 우주와 연결되어 있어. 각각의 우주에서 대죄를 범한 혼을 가두는 곳인 거야.”
 “처음 듣는 얘기인데.”
 “당연하지, 나도 이곳에서 수 만년 살았다는 선배몽달귀에게 들은 얘기거든.”
 “그는 지금 어디 있는데?”
 “다른 차원의 처녀귀신을 찾아서 떠났어.”
 “헉, 귀신이 되어서도 여자 타령이야?”
 “귀신이지만 남자라고. 거기다 그는 혼돈의 강을 건너온 다른 차원의 원귀를 만난 적이 있대.”
 “정말이야?”
 “그래, 그 귀신은 리치라는 불리는 존재였대.”
 “우와……!”
 두근으로서는 처음으로 듣는 환계의 숨겨진 비밀이었다.
 그저 이승에서 역천의 죄를 범한 원귀나 요물이 갇히는 곳이 환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여러 차원에서 동시에 사용하는 흉악혼(凶惡魂) 종합수용소였던 것이다.
 
 * * *
 
 “자, 어서 가자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몽달?”
 “큭큭, 사실 나도 다른 차원의 처녀귀신을 만나고 싶었거든.”
 “어째 속은 기분인데……?”
 빙령을 해서 두근의 모습은 영락없이 몽달귀신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림자를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 마음 편하게 환계를 다닐 수 있었다.
 어느새 둘은 서로를 편히 부르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몽달아, 이쪽으로 가면 맞아?”
 “그래, 서쪽으로 가면 나온다고 했어.”
 “그나저나 안으로 들어가면 원귀나 요물이 더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안 나오네.”
 “환계도 서열이 있으니까.”
 “그럼 안쪽에는 더욱 강한 놈들이 사는 거야?”
 “응.”
 “이거, 재수 없이 귀신굴로 뛰어든 것 아닌가 모르겠네.”
 “그래 봐야 육신이 사라지는 것 외에 별일 있겠어?”
 “왜 그래, 나는 아직 이승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아니라구!”
 서쪽으로 방향을 잡은 두근은 몽달과 함께 환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간혹 환계의 다른 존재를 만난 적은 있지만, 들킨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점점 들어갈수록 나타나는 존재는 더욱 강해졌고 공격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와! 저놈 진짜 세다! 뭐해, 아까처럼 부적을 날려!”
 “몽달아, 좀 조용히 안 할래! 집중이 안 되잖아!”
 두근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인면오공(사람의 얼굴형상을 한 지네)을 맞아 고전하고 있었다.
 녀석은 이승에서 도사하고 싸워본 경험이 많은지 거리까지 조절해가면서 싸웠다.
 얼마 전 싸운 이무기보다 더욱 영악한 놈이었다. 더구나 요물들 역시 혼만 남은 상태였기에 도력의 소모가 심했다.
 “썩을…! 뒈져버려!”
 빙령을 한 몽달귀 때문인지 두근의 입에서는 거친 말들이 자주 나왔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르게 손속도 악랄해졌다.
 아무리 몽달귀가 착한 원귀라고는 하나, 환계에서 오래 살면서 원귀의 본능은 어쩌지 못한 것 같았다.
 퍼퍼펑!
 두근의 피와 내공을 부어 만든 두 개의 돌이 빠르게 날아갔다. 인면오공은 날아오는 돌을 가볍게 보고 미처 피하지 않다가 뒤늦게 다리를 부지런히 놀렸다.
 하지만 두근의 내력이 실린 자갈이 더욱 빨랐다.
 곧바로 인면오공이 폭발과 함께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오오, 어느새 이런 공격까지!”
 “몽달아, 조용히 아가리 닥쳐라. 응?”
 “우아, 너 완전히 쌈꾼이잖아?”
 두근이 보법술을 발휘하는 것을 보고 몽달귀가 감탄의 소리를 주절거렸다. 빙령이 되었기에 몽달귀는 두근의 생각을 미리 읽을 수 있었다.
 허나 그는 이승의 말로 얘기를 했다.
 오랜 환계 생활로 무료함에 시달린 그는 배달국의 언어를 사용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두근은 몽달귀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멸(滅)의 힘을 담은 보법을 펼치고 있었다.
 후우웅-
 자갈의 폭발에 휘말렸다가 떨어지던 인명오공이 최후의 수로 검은색의 독무를 뿜었다.
 두근은 호흡을 정지하고 눈을 감고 코를 막으면서도 보법을 완성했다. 막 퍼지기 시작하는 검은색 독무를 뚫고 가는 붉은빛 한줄기가 보였다.
 따따따딱.
 이윽고 마치 나무를 쪼개는 요란한 소리가 나며 인명오공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인명오공의 가장 약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아랫배 부분에 멸의 힘이 집중적으로 작렬한 것이다.
 바닥에 우수수 떨어진 인면오공의 조각은 이내 연기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오우! 대단해. 처음 보는 술법이야.”
 “귀찮은 놈이었어.”
 “이 정도 힘이면 거의 산신령정도의 힘인데? 나를 잡으러 왔던 저승사자보다 더 세잖아!”
 “이봐, 머리 아픈데 그만 떠들어.”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야.”
 “…너 혹시 사실은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멍석말이 당한 것 아니야?”
 빙령이 된 몽달귀는 쉼 없이 말을 걸어왔다. 나중에는 몽달귀의 수다에 지친 두근이가 말대꾸를 해주지 않아도 혼자서 주절거렸다.
 주로 몽달귀가 살아생전에 있었던 일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중에는 두근이의 관심을 끄는 얘기도 많았다. 인간들의 세상에서 살아보지 못한 두근이였기에 특히 그랬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어, 내 얘기 듣고 있었어?”
 “내 머리에 대고 떠드는데 안 들을 수가 있어.”
 “어떻게 되기는, 바로 금도끼랑 은도끼 팔아서 부자가 되었지.”
 “그럼, 이웃마을 욕심쟁이는?”
 “산신령에게 얻어터지고 머리가 돌아서 나중에 바보가 되었지.”
 “에이, 시시해.”
 “너는 인간이라는 놈이 그렇게 감정이 없냐? 그런 감동적인 얘기를 듣고도 시시하다니.”
 “내가 왜 감정이 없어?”
 “인간이라면 당연히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있어야 하는데 너는 그게 너무 약해.”
 몽달귀의 말에 두근은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자신의 스승이나 주변의 산신령이 자주 했던 말이었다.
 그들은 두근이 인간 세상에 대해서도 모르고 인간 본연의 감정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며 걱정하는 뜻으로 자주 그런 말을 했었다.
 “…몽달아, 내가 정말 그러냐?”
 “정말 그래. 나이는 이제 스물하나라는 놈이 하는 짓은 산신령보다 더 고리타분하다니까.”
 “도대체 인간다운 게 뭔데?”
 “인간다운 거? 자기감정에 가장 충실한 동물다운 거 아닐까.”
 “자기감정에 충실한 게 뭔데?”
 “그게… 저… 아, 몰라! 넌 도사라는 놈이 무식하게 그것도 모르냐?”
 어릴 때부터 두근이 보고 배운 것은 도사들과 산신령의 삶이었다. 간혹 만나는 사람도 선녀나 신선 같은 초월적인 존재였다. 나중에 스승이 제자를 받아들이고서야 인간들과 살아본 두근이였지만, 그들도 스승이 고르고 고른 인재라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다.
 “후우, 가자.”
 “그래, 가자고~! 처녀귀신 찾으러!”
 몽달의 수다는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하지만 두근은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 * *
 
 “몽달아, 그만가자.”
 “왜, 운기조식하게?”
 “응.”
 환계에서 은신술과 빙령술을 계속 유지하는 데는 많은 내공의 소모가 있었다.
 두근이가 아무리 방대한 내공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10일 이상은 무리였다.
 특히 내공이 거의 소모된 상태에서 강한 귀신과 맞닥뜨리면 큰일이었다.
 얼마 전, 아흔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구미호와 싸울 때가 그랬다.
 덕분에 두근의 팔에는 적지 않은 상처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럼, 조심해.”
 몽달귀가 빙령을 풀고 주변을 경계했다. 호법을 서주기 위해서였다. 운기조식을 하는 순간만큼은 모든 술법을 풀어야 했다.
 그렇게 두근이가 운기조식을 하고 있는 중에 뒤쪽의 언덕에서 뭔가가 나타났다.
 몽달귀는 나타난 존재에 대해서 아직 모르고 있었다.
 “휴우, 다 끝났어.”
 “그럼, 다시 빙령을 할까?”
 “응.”
 그때였다.
 “웬 놈들이냐?!”
 “누… 누구냐!”
 두근이 놀라며 소리가 난 곳을 돌아봤다.
 그곳에는 툭 튀어나올 것처럼 커다랗고 찢어진 눈을 하고 있는 거대한 존재가 반쯤 땅에 묻혀 있는 상태로 있었다.
 굵은 팔뚝에 불거진 힘줄하며 태산이라도 무너트릴 기세가 보통 귀신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살아 있는 인간에 몽달귀라… 도대체 너희들은 누구냐?”
 “당신이야말로 누구요?”
 “버릇장머리 없는 놈들! 어쨌든 환계는 육신을 지닌 존재가 있을 곳이 아니다. 꺼져라!”
 “누가 오고 싶어서 왔는 줄 알아?”
 “…존재하지 말아야 할 곳에 존재한 너도 어차피 역천의 존재, 차라리 내가 소멸시켜주마.”
 “흥, 내가 혼만 남은 존재에게 죽을 사람으로 보이는 거냐!”
 “네 이놈!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러느냐!”
 “하, 도깨비 주제에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뭐라, 지금 도깨비 주제라 했느냐?”
 “그래, 그랬다. 웃겨. 도깨비가 뭐 대수라고.”
 “…네놈, 용서할 수 없다!”
 땅속에 반쯤 묻혀 있던 도깨비가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두근은 그때서야 도깨비의 키가 팔대장만 하다는 것을 알았다.
 도깨비 수호령의 바로 아래에 있는 도깨비가 팔대장 도깨비로, 등에 차고 다니는 커다란 극으로 산도 밀어버린다는 괴력의 도깨비였다.
 붕- 붕-
 도깨비는 커다란 극을 젓가락 휘두른 것처럼 휘두르며 다가왔다. 그가 극을 휘두를 때마다 요란한 바람소리가 났고, 주변에서는 돌개바람이 피어올랐다.
 “인간, 나를 알아봤을 때 피했어야 했다.”
 “닥치고 덤비기나 하셔.”
 팔대장 도깨비의 극이 워낙 날카로웠기에 두근은 축지법으로 피했다.
 겨우 7자 조금 넘은 극이었지만, 공격할 때마다 쭉쭉 늘어났기에 피하기가 여간 까다로웠다.
 “뭐야, 인간, 겁먹은 것이냐?”
 “그 정도 재주에 당할 것 같으냐.”
 “그럼, 어디 이것도 피해봐라!”
 “어림없지!”
 두근과 도깨비의 대결에 몽달귀는 감히 끼지 못하고 물러나 있었다.
 도깨비의 극에서 강한 암흑의 힘이 생겨났고, 이내 모진 폭풍우가 되어 두근을 덮쳤다.
 “파(破)!”
 우지끈.
 주변의 땅이 지진이라도 나는 것처럼 들썩거렸다.
 도깨비의 극에서 뻗어 나온 폭풍우는 두근의 보법술에 가로막혀 폭발했다.
 반면 두근이가 날려 보낸 부적은 도깨비가 코로 뿜어대는 강력한 기운에 사그라졌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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