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변태 탄생
화려한 조각으로 빈틈없이 장식된 24개의 기둥이 연달아 치솟아 있는 이곳은 주신 아리우스의 궁전 내에 있는 대전이다.
지금 이곳에는 반짝이는 금발을 허리까지 기른 여인이 바닥에 쓰러져서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고 있었다.
“아버지시여, 정녕 그를 죽이실 생각이십니까?”
“이 일은 나와 무관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를 살려주십시오. 그에게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그건 불가능하다.”
“차원의 관장자인 아버지께서 못하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부디 그를 살려주십시오.”
“아미리아, 내가 무엇 때문에 그깟 인간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느냐?”
오열하며 아리우스에게 사정을 하는 여인의 정체는 아리우스의 딸이자 빛과 자애의 여신 아미리아였다.
그녀는 처연한 눈빛으로 아리우스 옆, 허공에서 일렁이는 입체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상 속에는 성직자의 복장을 하고 있는 20대 초반의 사내가 붉은 선혈을 콸콸 쏟아내며 검은 안개에 휩싸인 다크나이트들과 힘겨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아버지시여, 저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지금의 상황은 핵터를 죽이기 위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계획되었음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마계의 존재까지 동원해 가면서 그를 죽이고자 하는지도 잘 알고 있겠구나?”
“아버지, 부디 우리의 사랑을 인정해 주십시오.”
“듣기 싫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면 어떻게 된다는 사실은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사랑하는 딸이 한낱 인간 때문에 거룩한 신의 지위를 포기하고 찰나와도 같은 유한의 삶을 살겠다는데, 절대 들어줄 수 없다.”
영상 속의 사내는 핵터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아미리아 교단의 고위 사제로 ‘대륙제일의 사제’라는 칭호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핵터와 아미리아는 사제와 여신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하지만 인간과 신의 사랑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으로, 아미리아가 신의 지위를 포기하고 인간의 삶을 선택해야만 둘의 사랑은 맺어질 수 있었다.
그러니 아미리아를 아끼고 사랑하는 주신 아리우스 입장에서는 둘의 사랑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아버지시여, 전 핵터만 있다면 다른 것은 아무도 필요 없습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아버지, 부디…….”
“듣기 싫다. 너의 고집으로 인해서 핵터는 오늘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만일 그를 살리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네 뜻을 꺾어라.”
“아버지시여, 그건 너무나 가혹한 처사입니다.”
“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주신 아리우스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 와중에도 영상 속의 핵터란 사내는 처절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슴과 배에 이미 몇 개의 커다란 구멍이 뚫린 핵터는 그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신성 마법을 펼치지도 못하고 단지 피하는데 급급하고 있었다.
그때 데스나이트의 암묵색 창이 핵터의 아랫배를 깊숙이 파고들어 갔다.
그 광경을 목격한 아미리아는 소스라치게 비명을 지르다가 다시금 아리우스를 불렀다.
“아아악∼ 안 돼! 아버지시여, 부디 그를 살려주십시오.”
“네 생각이 바뀌기 전에는 절대 안 된다.”
“제발… 아아악∼”
아미리아가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또 다른 데스나이트의 도끼가 핵터의 목을 파고들었다.
너무도 처참한 광경에 아미리아는 몸부림을 치다가 마침내 그 뜻을 꺾고 말았다.
“아버지의 뜻대로 그와의 사랑은 정리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핵터를 살려주십시오.”
“그 말이 사실이냐?”
“맹세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신의 언약을 할 수 있겠느냐?”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좋다, 지금 이 자리에서 언약을 해라.”
“그리하겠습니다.”
사랑을 지키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 때문에 핵터를 잃을 수는 없었다.
아미리아는 거의 넋이 나간 상태에서 황급히 언약을 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목이 반쯤 떨어져 나간 핵터는 피분수를 뿜어내다가 고목이 무너지듯 쓰러졌다.
하지만 데스나이트들의 공격은 멈추진 않았다.
그들은 쓰러진 핵터 옆으로 다가가서는 암묵색 창을 번쩍 치켜 올리더니, 이내 핵터의 심장을 향해 사정없이 짓쑤셨다.
막 언약을 끝낸 아미리아는 그 광경을 보고 대전이 떠나갈 듯 비명 소리를 토해냈다.
“꺄아악∼ 아버지, 어찌하여 그… 그를?”
“아차차∼ 너의 언약이 때 늦은 감이 있구나.”
“아버지시여, 안 됩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게 좀 더 빨리 결단을 내리지 않고.”
은근슬쩍 말끝을 흐리는 주신 아리우스는 마치 앓던 이가 빠져서 속 시원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사랑하는 이의 최후를 목격한 아미리아는 쉽게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비장한 표정으로 주신 아리우스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살려내셔야 합니다. 저의 언약은 그가 살아 있을 때만 유효합니다.”
“뭐라고?”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저는 분명 핵터가 살아남으면 그를 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끙∼ 하지만 이미 죽은 자를 어찌 살려낸다는 것이냐? 그건 나로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주신이신 아버지라면 분명 무슨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부디 그를 되살려 주십시오! 만일 이대로 그가 죽는다면, 저 역시 신의 지위를 버리고 인간이 되어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겠나이다.”
“뭐! 지금 그게 내게 할 소리냐?”
“먼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아버지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리 나라고 해도 죽은 그를 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영혼을 되살려서 다른 이의 육체를 빌려 환생시키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그렇게라도 해서 그가 되살아나게 해주십시오.”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핵터의 영혼이라도 살려내는 것이다.
비록 육체는 그의 것이 아니지만 그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면 그건 핵터라고 봐도 무방했다.
또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한 죄로 억울하게 죽어간 핵터를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또 한 가지, 그를 환생시킨다고 해도 그가 어느 차원의 어느 시대에 환생할지는 나로서도 잘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느냐?”
“차원만이라도 이곳 판도니아로 할 수는 없겠습니까?”
“그건 그의 영혼과 공명하는 육체를 찾아야만 환생이 되기에 나도 장담할 수 없다.”
“아버지시여, 다른 방법은 없는가요?”
차원만 같다면 환생한 핵터의 영혼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만일 다른 차원에서 환생한다면 그때는 영영 이별이었다.
아리우스는 아미리아가 망설이자 시간이 없다며 재촉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도 장담을 못한다. 그보다 빨리 결정해라, 시간이 많지 않다.”
“하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좋다, 그의 영혼을 되살려 주겠다. 대신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언약을 해라.”
“아버지께서 그의 영혼을 되살려만 주신다면 백 번이라도 하겠습니다.”
핵터의 영혼을 살려준다는 아리우스의 말에 아미리아는 새로운 언약을 했다.
아리우스는 아미리아의 언약을 듣고 나서야 생사의 저울과 영혼의 수정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놈이 이곳에서 환생을 하면 안심할 수가 없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아리우스의 권능이라면 핵터의 환생을 이곳 판도니아로 유도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핵터는 인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신성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신성력이라면 아무리 시대가 다르다고 해도 조만간 아미리아의 시선에 잡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른 차원이라면 둘이 다시 만날 가능성은 아예 없었다.
‘아미리아, 놈의 환생은 이곳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이뤄질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의 육체를 빌려서 환생하기에 놈은 두 번 다시 신성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신성력은 영혼의 힘이다.
그러나 영혼이 다른 이의 육체에 갇혀 있다면 아무리 엄청난 신성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발휘할 수 없었다.
한편 아리우스가 핵터의 환생에 관여하는 동안 아미리아는 간절한 마음으로 창조주에게 빌고 있었다.
‘모든 차원의 주인이신 창조주여, 억울하게 죽어간 핵터를 부디 가엽게 여겨 보살펴 주시옵소서! 아울러 그가 저를 간절히 찾을 때에 나의 의지만이라도 화답할 수 있게 하옵소서!’
***
서울의 한 종합병원,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계속 이어지며 한 대의 구급차가 응급실 앞에 멈춰 섰다.
응급실 앞에는 사이렌 소리를 들은 것인지 하얀 가운을 걸친 몇몇 간호사들이 미리 나와 있었다.
“끼이익∼”
“덜컹∼”
“교통사고인가요?”
“그렇습니다. 아마 졸음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난 것 같습니다.”
“환자 상태는 어떤가요?”
“부부는 현장에서 즉사했고 아들과 딸만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도 힘들어 보입니다.”
“일단 청년부터 안으로 옮기세요.”
구급차에서 내린 구급 요원과 간호사들은 중상을 입은 아들부터 옮겨서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
청진기를 목에 두른 의사가 달려온 것은 그때였다.
“김 선생님, 교통사고 응급 환자입니다.”
“바이탈 체크 결과는 어떤가요?”
“혈압, 맥박, 호흡, 체온 모두 안 좋습니다.”
“상처는요?”
“두부에 큰 상처가 있습니다.”
“정맥 주사부터 놓고, 상처 부위 드레싱도 합시다.”
“알겠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청년을 살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잠시 후 청년은 수술실로 옮겨졌고 장시간의 수술에 돌입했다.
하지만 너무도 큰 중상을 입은 청년은 수술 도중에 모든 바이탈 수치가 떨어지며 심장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의사들은 청년을 살리기 위해 제세동기를 이용해서 심장 마사지에 들어갔다.
“100줄.”
치칙∼
덜컹∼
“200줄.”
치치칙∼
덜컹∼
전기 충격을 받은 청년의 몸은 물 밖으로 끌려 나온 물고기처럼 퍼덕거렸다.
그러나 한 번 멈춘 심장의 박동은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그때 청년의 몸에서 붉은빛 덩어리가 쑤욱 빠져나왔다.
그렇게 빠져나온 붉은빛은 청년의 몸 주위를 한 바퀴 돌다가 이내 벽을 뚫고 하늘 높이 올라갔다.
하지만 수술실에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다.
“반응이 없습니다.”
“더 올려서 해봐.”
“알겠습니다.”
“300줄.”
치치칙∼
덜컹∼
전기 충격에 휩싸인 청년의 몸이 또다시 펄떡 뛰었다.
그때쯤 오렌지색 빛 덩어리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청년의 몸으로 쏙 들어갔다.
삐삐삑∼
띠링∼ 띠띵∼
“오! 심장박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다른 바이탈 수치도 정상적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살았습니다.”
“아냐,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야.”
“자! 다들 이럴게 아니라 어서 수술을 끝마치자고, 힘겹게 살아난 사람을 우리가 구해내야지.”
“알겠습니다.”
***
어느덧 3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3년 전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기호는 새벽에 누군가의 이름을 안타깝게 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미리아∼”
불이 꺼진 방 안에는 TV가 외롭게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기호는 탄식을 터트리다가 냉장고 문을 열고는 차디찬 냉수를 벌컥 들이켰다.
“크흑∼”
“또 꿈을 꿨구나.”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기호는 놀라지도 않았다.
오늘도 그는 꿈속에서는 기호가 아닌 핵터가 되어 아미리아와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
그리고 늘 그러듯이 이번에도 마계의 데스나이트가 나타나서 자신의 목을 치고 심장에 날카로운 창을 박는 것을 끝으로 깨어났다.
“도대체 내가 왜 이곳에 왔을까? 그리고 새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서 다른 이의 육체를 빌려서 환생을 했을까?”
이 부분은 의식을 차린 순간부터 지금까지 풀리진 않은 수수께끼였다.
분명 자신은 판도니아 대륙의 북부 산악 지역에서 데스나이트와 싸우다가 죽었다.
그런데 깨어나 보니 이곳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지구라는 차원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였다.
그리고 자신은 이기호라는 청년의 몸뚱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육체의 주인과 관련한 기억은 하나도 없지만 이곳의 언어를 이해하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의사나 간호사라고 부르는 이곳의 치료사들은 자신이 기억상실에 걸렸다고 했다.
덕분에 모든 것이 서툴러도 이곳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고 이해를 했다.
“치잇∼ 그러면 뭐 해, 신성력을 사용하지도 못하는데.”
신성 마법이나 신성력을 구현하는 방법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신성력이 발휘되거나 신성 마법을 펼칠 수가 없었다.
“하악∼ 죽은 것은 그렇다 치고 하필이면 이런 낯선 곳에서 환생을 했는지…….”
만일 이곳이 판도니아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아미리아를 찾아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이곳과 판도니아는 아예 다른 차원이었기에 그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이기호라는 엉뚱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다시는 아미리아를 만나지 못하는 걸까?’
차원이 다르기에 죽어서 환생을 한다고 해도 판도니아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다시금 그 사실을 떠올린 핵터는 슬픔이 가득한 미소를 쓸쓸하게 지었다.
‘이젠 어떡하지? 난 뭘 하고 살아야 하지?’
판도니아에서는 엄청난 신성력을 자랑하며 대륙 제일의 사제로 불렸다.
그러나 기술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이곳에서 핵터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기호의 육체는 교통사고로 많이 망가져 있었고 크게 다쳤던 오른쪽 다리는 아직도 불편한 편이라 육체노동은 할 수도 없었다.
“하아∼”
그가 장탄식을 하고 있을 때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이어서 머리를 짧게 커트한 깜찍한 용모의 여자가 들어왔다.
“어! 오빠, 안 자고 있었어?”
“응.”
“잘됐다, 가게에서 음식을 얻어왔는데 먹을래?”
“아냐, 너 먹어.”
“난 가게에서 늘 먹는데 오빠가 먹어. 가뜩이나 먹는 것도 부실할 텐데.”
지금 들어온 여자는 혜지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기호의 동생이었다.
그리고 사고로 부모를 잃은 지금은 그녀가 거의 3년째 이 집안의 가장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20살의 어린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유소와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가 고작이었다.
지금도 혜지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끝내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됐어, 나뒀다가 내일 먹자.”
“그럼 냉장고 안에 놔둘 테니까 오빠가 데워서 먹어.”
“그래, 알았어.”
“오빠, 그런데 약 안 떨어졌어?”
“응, 조금 남았어.”
“어! 떨어질 때가 훨씬 지났을 텐데?”
“아냐, 조금 남았어.”
“오빠, 돈 걱정하지 말고 약은 꾸준히 먹어. 그래야 예전처럼 건강해지지. 아무렴 내가 오빠 약값도 못 벌 것 같아?”
“으, 응.”
“오빠, 내일 오전에는 병원에 가자.”
“응.”
“난 씻고 잔다.”
“그래, 피곤할 텐데 어서 자.”
혜지는 점심 무렵부터는 주유소에서 일하고 저녁부터 늦은 밤까지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했다.
그 때문에 그녀는 다니던 고등학교도 중퇴한 상태였다.
“휴유∼ 어쩌다가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판도니아에서는 대신관으로 부족한 것 없는 삶을 살았던 핵터였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어린 동생의 헌신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버러지와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혜지라는 저 아이에게 너무도 큰 신세를 지고 있구나.’
혜지는 잠을 잘 때면 끙끙 앓는 신음 소리를 자주 냈다.
아마도 너무 어린 나이에 혹사를 당해서 그런 것 같았다.
혜지의 신음 소리를 들을 때면 핵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절망 속에 허송세월만 보내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비참했다.
하지만 망가지고 허약해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래도 저 게임 캡슐이라는 것을 반드시 팔아야겠어. 꽤나 값이 나간다고 하던데.’
거실의 한쪽 구석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게임 캡슐이 있었다.
예전부터 핵터가 게임 캡슐을 팔아서 몇 푼의 돈이라도 만들자고 하면 혜지는 결사반대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집에만 누워 있는 기호에게 그 좋아하는 게임을 다시 시작하라고 했다.
‘저게 뭐기에 기호라는 자는 밥 먹는 것보다 더 좋아했을까?’
***
“이걸 머리에 쓰면 되나?”
핵터는 캡슐을 팔기 전에 도대체 가상현실 게임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캡슐에 들어간 핵터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헬멧을 착용하고 캡슐을 작동시키는데 성공했다.
잠시 후 어디선가 여인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고객님.
‘음성 안내인가?’
3년의 시간 동안 21세기 지구의 과학 문명에 대해 어느 정도 적응한 핵터였다.
때문에 그는 당황하지 않고 음성의 다음 안내를 기다렸다.
―간단한 확인 절차에 들어가겠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지문 인식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왼손을 올려주십시오.
“이렇게?”
찌이잉∼
―지문 인식이 끝났습니다. 다음은 홍채 인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그냥 가만히 계시면 자동 스캔을 통해 확인합니다.
웅웅∼
―모든 인식이 끝났습니다. 이름 이기호, 나이는 23세… 3년 1개월 15일만의 접속이시군요.
“그, 그렇게 되었나?”
캡슐은 핵터를 육체의 원래 주인인 기호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핵터는 순간 당황했지만 대충 얼버무렸다.
―제디스 온라인에 복귀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캐릭터를 활성화시키겠습니다.
“캐, 캐릭터?”
―확인 결과 아스펠 서버에 레벨 78의 핵터라는 명칭의 캐릭터가 존재합니다.
“뭐! 해, 핵터라고?”
―그렇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접속을 안 해서 현재는 휴면 상태입니다. 때문에 캐릭터를 활성화시키는데 다소 시간이 걸립니다.
웅웅웅∼
캐릭터의 명칭이 핵터라니 아무래도 육체의 본 주인과 자신은 무슨 인연이 있는 것 같았다.
핵터는 묘한 인연의 끈을 느끼며 캐릭터가 활성화되기를 기다렸다.
―캐릭터의 복구가 끝났습니다. 아울러 이기호 님의 종량제 계정이 지금부터 소모됨을 알려드립니다. 참고로 현재 남은 시간은 25일 5시간 40분 남았습니다.
“종량제 계정이 무슨 말이지?”
―제디스 온라인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말합니다.
가상현실 게임은 오늘이 처음인 핵터였다.
그는 몇 번의 질문을 통해 게임이 유료라는 사실과 종량제 요금을 비롯한 여러 가지 정액제 요금에 대해서 알아냈다.
―더 물어보실 내용은 없습니까?
“응.”
―그렇다면 지금 바로 제디스 온라인에 접속하시겠습니까?
“그래.”
―꿈과 모험의 세상, 제디스에서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츠파팟―
안내가 끝남과 동시에 주변이 일시에 깜깜해졌다가 순식간에 밝아졌다.
본능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은 핵터는 천천히 눈을 뜨면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헐∼ 여긴 어디지?”
하늘에는 새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눈앞에는 울창한 산악 지대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핵터는 주변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어 있자 너무 놀라서 몇 번이나 눈을 비볐다.
“허∼ 세상에, 분명 게임이라고 했는데.”
이건 생생해도 너무 생생했다.
자신의 눈을 의심한 핵터는 주변의 나무며 돌덩이를 만져보기 시작했다.
“호오∼”
손끝에 쥐어지는 감촉은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핵터는 문득 어쩌면 자신이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좀 더 돌아봐야겠어.’
너무도 생생한 이 모든 것이 가짜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핵터는 산속에 난 오솔길을 따라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요란한 소리와 함께 폭포가 나타났다.
그때 난데없는 멜로디와 메시지가 귓가에 들려왔다.
딩동∼
―조르주가 말한 오염된 폭포에 당도했습니다.
―잠자리 날개옷은 이곳에서 구하실 수 있습니다.
‘잠자리 날개옷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난데없이 잠자리 날개옷을 구하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당황해서 주변을 살펴보던 핵터는 허공에서 깜박이는 물음표를 발견하고 손을 뻗었다.
물음표 밑에는 작은 글씨로 미션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건 뭐지?’
촤르르륵―
핵터가 물음표를 만진 순간 허공에 하얀 막이 스크린처럼 생겨났다.
{잠자리 날개옷을 가져와라!}
셔리우드 숲 속에서는 종종 의문의 실종 사고가 발생한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실종자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운 여인을 따라서 숲 속의 폭포로 들어갔다고 한다.
또 일부 목격자에 의하면 폭포 근처에서 가죽만 앙상하게 남은 실종자의 사체를 본 적도 있다고 한다.
이에 조르주는 폭포 근처에서 출몰하는 여인의 정체를 남자의 정기를 빨아먹는 링클 메피스로 짐작하고 있다.
종류:전직 미션(4―4:마지막 임무)
난이도:5
클리어 조건:잠자리 날개옷(상·하의 15벌)을 구해서 미론 시의 조르주에게 갖다주면 된다.
보상:전직(마침내 숨겨진 직업을 얻을 수 있다), 경험치, 10골드
주의:만일 여자의 정체가 링클 메피스라면 대단히 위험하니 극히 조심해야 한다. 특히 들키게 되면 뜻밖의 곤경에 처해질 수 있다.(상태창:이탤릭, 네모 박스 안에)
‘아무래도 이걸 나보고 하라는 얘기 같은데.’
안내문을 읽은 핵터는 잠시 망설였다.
예전 같으면 누가 시키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일은 발 벗고 나서서 해결했을 그였다.
그러나 지금은 신성력과 신성 마법을 발휘하지 못할뿐더러 육체적 능력도 떨어져 있다.
‘가만, 여기서는 내가 잘 걷는 것 같은데!’
이제 생각해 보니 이곳에서 걸을 때는 다리를 절뚝이지 않았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핵터는 제자리에서 뛰기도 하고 달리기도 해봤다.
“아싸∼ 여기는 행동의 제약이 하나도 없구나.”
가상 세계라고 하더니 육체의 조건이 현실과는 달랐다.
이에 용기를 얻은 핵터는 잠자리 날개옷을 가져오기 위해 폭포가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쏴쏴쏴아아악∼
콸콸콸∼
폭포 근처로 접근한 핵터는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폭포의 힘찬 물줄기는 산을 가르며 무서운 기세로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이곳에 뭔가가 있다면 물살이 센 여기보다는 하류 쪽에 있겠지?’
핵터는 무성한 풀을 헤치며 거센 물줄기를 따라서 밑으로 내려갔다.
약 5분쯤 내려갔을 때 작은 호수만 한 넓은 연못이 나타났다.
무서운 기세로 내려오던 물줄기는 여기부터서는 유속이 완만해졌다.
“엥? 정말 있네.”
연못 가운데에는 긴 머리를 치렁하게 기른 수십여 명의 여자들이 물놀이나 목욕을 하고 있었다.
특히 목욕을 하는 여자들은 벌거벗었는지 풍만한 가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녀들 머리 위에는 링클 메피스라는 붉은색 글씨가 적혀 있었다.
‘진짜 링클 메피스였구나.’
조금 전 읽었던 글에서는 링클 메피스가 대단히 위험한 존재라고 했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핵터는 조심스럽게 기어 다니면서 잠자리 날개옷을 찾기 시작했다.
‘저게 맞는 것 같은데?’
연못 근처의 수풀에는 옷으로 보이는 것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기어서 다가간 핵터는 일단 바닥의 옷을 살피기 시작했다.
‘에개, 날개옷이 속옷이었어? 이래서 상·하의를 모두 가져오라고 했었나.’
바닥의 옷들은 영락없이 여자의 속옷이었다.
그것도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 것으로도 부족해서 속이 훤히 보이는 재질로 된 것이 무척 야시시한 속옷이었다.
‘그래도 챙겨야겠지.’
핵터가 속옷을 집어 든 순간 어디선가 음성이 들려왔다.
―잠자리 날개옷 1벌을 습득하셨습니다.
―남은 잠자리 날개옷은 14벌입니다.
‘역시 이게 맞았구나!’
속옷이 잠자리 날개옷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핵터는 그 후로도 주변을 부지런히 돌면서 여자의 속옷을 닥치는 대로 챙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벤에 담는 법을 몰라서 두 손에 움켜쥐고 다녀야 했다.
속옷을 잃어버린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어! 내 속옷이 어디 갔지?”
“미나야, 왜 그래?”
“여기에 벗어둔 내 속옷이 사라졌어.”
“잘 찾아봐, 속옷이 어디 가겠어?”
“아냐, 분명 여기에 벗어놨는데.”
“헉! 내 속옷도 사라졌어.”
“뭐! 유미, 네 것도?”
“응. 아놔∼ 예전처럼 어떤 변태 자식이 온 것 아냐?”
“유미야, 변태가 빠져나가기 전에 링클 메피스를 풀어서 주변을 뒤져보자.”
“응.”
속옷을 잃어버린 두 여자는 미나와 유미라는 이름의 플레이어로 그녀들의 직업은 히든 클래스인 메피스 로드와 부로드였다.
잠시 후 아이템을 모두 착용한 그녀들은 각각 이십여 명의 링클 메피스를 이끌고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링클 메피스는 속옷 비슷한 복장을 착용한 상태였지만 십여 명은 아예 홀라당 벗은 상태였다.
아마도 그것들은 속옷을 잃어버린 링클 메피스 같았다.
‘이크! 어떡하지?’
핵터는 링클 메피스를 피해서 부지런히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다행이 방금 챙긴 두 벌을 끝으로 15벌을 모두 수집한 상태였다.
‘어쩌지? 이러다가 들키겠는걸.’
아무리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기어 다닌다고 해서 걷는 것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어느덧 주변은 링클 메피스로 완벽하게 뒤덮인 상태였다.
‘안 되겠어, 그냥 뛰어서 도망치는 게 좋겠어.’
퀘스트 안내에는 날개옷을 훔치다 들키면 뜻밖의 곤경에 처한다고 했었다.
핵터는 어쩔 수 없이 벌떡 일어나서 부리나케 도망치기 시작했다.
“유미야, 저기다!”
“어디?”
“저쪽!”
“얘들아, 변태가 저쪽으로 도망간다!”
“저자를 반드시 잡아라, 나의 아이들아!”
“반드시 도둑맞은 속옷을 찾아야 한다!”
수풀 사이에서 벌떡 일어나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는 사내라면 속옷을 훔쳐 간 변태가 분명했다.
유미와 미나는 뒤쫓는 와중에도 링클 메피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녀들의 명령을 받은 메피스들은 몸을 움츠리는가 싶더니 어깻죽지와 엉덩이 부근에서 두 쌍의 날개를 분출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잠자리의 날개와도 흡사했다.
하지만 속옷을 도둑맞은 메피스들은 날개를 분출하지 못해서 여전히 뛰어다녔다.
이는 유미와 미나도 마찬가지였다.
“변태야, 멈춰라!”
“나쁜 놈아, 내 속옷을 당장 돌려주지 못해!”
“변태가 숲을 빠져나가기 전에 어서 잡아라!”
‘젠장, 내가 뭐 한다고 이런 짓을 했는지.’
핵터는 메피스들이 빠른 속도로 날아오자 무조건 앞으로만 달렸다.
그 와중에 가시덤불이나 잔가지에 긁혀서 무수한 생채기가 생겨났다.
하지만 여기서 도망치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특히 가장 광분해서 소리를 치는 두 명의 메피스는 분명 플레이어가 틀림없었다.
“야! 당장 멈추지 못해!”
“네 얼굴 다 봤어, 좋게 말할 때 멈춰!”
“흐미∼”
펄럭펄럭∼
퍼러럭∼
“헉!”
어느 순간 날개를 이용해 앞질러 간 메피스들이 앞쪽에서 나타났다.
당황한 핵터는 방향을 급히 틀어서 다른 쪽으로 도망쳤다.
그때 메피스들의 입에서 분홍색 빛이 분출되었다.
티팅∼
―메피스들의 가루에 오염당했습니다.
―이동 속도가 5% 감소합니다.
―민첩성이 5% 감소합니다.
티티틱∼
―메피스들의 가루에 오염당했습니다.
―이동 속도가 추가로 7% 감소합니다.
―민첩성이 추가로 7% 감소합니다.
“헉!”
메피스들이 뿜어대는 분홍색 빛에 맞을 때마다 이동 속도와 민첩성이 떨어졌다.
덕분에 핵터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굼벵이가 되었고 결국은 메피스에게 완전히 둘러싸였다.
핵터를 포위한 메피스들은 그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머리카락을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트려서 공격을 했다.
슈욱∼
턱―
터텅―
“크윽∼”
텅텅―
“컥∼”
메피스의 머리카락 공격을 받을 때마다 맞은 부위에서 아릿한 아픔이 전해졌다.
참다못한 핵터는 결국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서 아무렇게나 휘두르며 저항했다.
그 와중에 들고 있던 몇 개의 속옷이 핵터의 머리에 모자처럼 씌어졌다.
미나와 유미가 당도한 것은 그때쯤이었다.
그녀들은 속옷을 머리에 뒤집어쓴 핵터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이 변태!”
“야∼ 이 더럽고 추악하고 사악한 색마 같은 놈아!”
“저, 그게 아니라 실은…….”
“헙! 어딜 다가와!”
“나쁜 놈! 너 같은 변태는 뒤지게 맞고 감옥에서 평생 썩어야 정신을 차릴 거야!”
핵터는 씩씩거리며 뒤쫓아 온 유미와 미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단단히 오해한 두 여자는 날카로운 호통과 함께 다짜고짜 공격을 했다.
“내 말 좀 들어보세요. 이건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커헉!”
“증거가 이렇게 명백한데, 이게 어디서 수작이야?”
“하여간 너 같은 변태들 때문에 마음 놓고 목욕도 못한다니까.”
“그게 아니라, 전 누가 시키는 대로… 크아악∼”
“옳아! 네놈이 그 유명한 변태 조직 소속이었구나.”
“미나야, 이 자식 어쩌면 우리가 목욕한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었는지도 몰라.”
“뭐! 너, 죽었어!”
핵터의 변명은 오히려 두 여자의 분노를 키우고 말았다.
핵터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지만 제디스 온라인에는 여자들의 속옷을 훔치거나 또는 목욕 장면을 찍어서 유포시키는 정체불명의 조직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곳에서 목욕을 하는 미나와 유미의 속옷을 훔쳐 간 적도 있었다.
때문에 두 여자는 그때의 일도 핵터가 했다고 여기고 더욱 거세게 공격을 했다.
특히 미나는 메피스의 로드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핵터에게 ‘여자의 속옷을 탐내는 뻔뻔한 치한’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를 부여했다.
‘여기 있다가는 꼼짝없이 죽겠구나.’
핵터는 오해를 풀기보다는 이곳을 탈출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때 오염 상태가 풀렸다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어!’
“이야야얍∼”
여태껏 당하고만 있던 핵터가 불현듯 악을 썼다.
갑작스런 그의 기합성에 미나와 유미를 비롯해서 메피스들의 공격이 순간 정지되었다.
핵터는 그 찰나의 틈을 이용해서 부리나케 달리기 시작했다.
“헉! 저놈 잡아라!”
“멈춰라, 변태!”
“야∼ 거기 안 서!”
“나쁜 놈, 속옷은 끝까지 훔쳐 가는구나.”
“얘들아, 죽여도 좋으니 저 변태를 어서 잡아라.”
2. 트롤의 피로 포션을 만들 수 있음을 누가 밝혔는지 아는가?
“헉헉∼ 이제는 안 쫓아오겠지.”
용케 메피스의 추격을 따돌린 핵터는 인근의 나무 밑동에 주저앉아서는 가쁜 숨을 헐떡였다.
저 아래쪽에서는 4명의 플레이어가 몬스터로 보이는 괴물과 싸우고 있었다.
“휴우∼ 이걸 조르주에게 갖다 주면 되겠지. 그런데 미론 시는 어디에 있는 거야?”
오늘 처음 접속한 그였기에 미론 시의 위치를 알 수가 없었다.
고민하던 그는 때마침 사냥을 하는 다른 이에게 물어보기 위해 밑으로 내려갔다.
한편 몬스터를 사냥하던 4명의 플레이어는 핵터의 칭호를 보고는 끽끽대기 시작했다.
“낄낄∼ 칭호가 여자의 속옷을 탐내는 뻔뻔한 치한이래.”
“큭큭∼ 저것 봐, 손에 여자 속옷이 아직까지도 들려 있어.”
“생긴 것은 멀쩡한데 왜 저러고 살지?”
“완전 사이코 변태인가 보지.”
“저 사람 동영상을 자게에 올리면 완전 대박이겠는데?”
“오! 얼른 찍자.”
“야∼ 조용해, 이쪽으로 온다.”
“어라? 그래도 쪽팔렸는지 여자 속옷은 뒤로 감추는데.”
“크큭큭∼ 그것까지 다 찍히고 있어.”
제디스 온라인은 칭호의 부여가 자유롭고 다양했다.
아울러 칭호를 부여받게 되면 무조건 공개가 되는 구조였다.
결국 핵터가 지금의 창피한 칭호를 감추기 위해서는 다른 칭호를 공개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칭호가 부여된지도 모르는 핵터는 사람들이 수군대는 것이 이상했지만 개의치 않고 다가왔다.
“실례하겠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미론 시가 어디인지 아세요?”
“이곳 레이크 왕국의 수도인 미론 시를 말하나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미론 시가 거기 말고 다른 곳에도 있나요?”
“글쎄요.”
“그렇다면 레이크 왕국의 수도는 어떻게 가야 합니까?”
“이동 스크롤이나 귀환 스킬 없으세요?”
“그게 뭐죠?”
“네?”
“제, 제가 게임은 오늘이 처음이라서…….”
이들이 추정하기에 핵터의 레벨은 착용한 장비를 봤을 때,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 정도면 950레벨 이상의 플레이어들이 즐비한 제디스 온라인에서는 거의 초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도 이동 스크롤이나 귀환 스킬 정도는 알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이 처음이라니 그건 너무도 속이 보이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저 사람 우리에게 귀환 스크롤을 구걸하는 것 아냐?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저 사람, 너무 뻔뻔한 것 같지 않냐?
―>그러니까 저런 칭호를 갖고도 부족해서 이런 식의 거짓말을 하는 거겠지.
―>야, 저 사람에게는 귀환 스크롤을 주지 말자.
―>당연하지.
사람에게는 누구나 선입견 또는 첫인상이라는 게 있다.
그런 점에서 치한의 칭호를 갖고 있는 핵터의 첫인상은 아무래도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들은 귓속말로 작당을 해서는 핵터에게 아무것도 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르쳐 주지도 않은 채 미론 시의 방향만 대충 알려주었다.
“동쪽으로 계속 가면 미론 시가 나온다고요?”
“좀 멀어서 그렇지, 나오기는 할 겁니다.”
“대략 얼마나 걸리나요?”
“글쎄요, 우리도 걸어서 가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그렇군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그러세요. 아참! 그런데 캐릭터 명이 어떻게 되세요?”
“전 핵터라고 합니다.”
“핵터요? 알겠습니다, 좋은 여행하세요.”
“여러분도 뜻하시는 모든 것을 이루기 빌겠습니다.”
이곳에서 미론 시까지는 걸어서 꼬박 나흘이 걸리는 거리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핵터는 깍듯이 인사까지 하고는 그들과 헤어졌다.
“야, 찍었냐?”
“당연하지.”
“그러면 자게에 빨리 올리고 와.”
“그냥 그대로 올리면 재미가 없지.”
“그럼 어쩌자고?”
“더 재미있게 편집을 해야지.”
“어떻게?”
“음성을 삭제하고 우리가 대사를 자막 처리하면 어떨까?”
“혹시, 엉뚱한 말을 집어넣자는 거야? 그런데 난 그런 재주가 없는데?”
“빙고! 우리에게 훔친 여자 속옷을 팔려고 한 것처럼 꾸미면 어떨까? 자막이야 내가 제작해서 너에게 보내주면 되지.”
“낄낄∼ 그것 재미있겠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속옷 말고 더 좋은 것까지 팔려고 했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들은 치한이라는 호칭만 보고 아무런 죄의식 없이 핵터를 중상모략할 계획을 꾸미기 시작했다.
얼마 후 핵터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뻔뻔하고 파렴치한 변태로 조작되었다.
“와우∼ 그렇게 하면 반응이 장난 아니겠는데?”
“어디 그뿐이겠어? 저 사람 얼마 못가서 게임 접어야 할 걸.”
“저런 뻔뻔한 자는 게임을 접는 게 차라리 좋은 일이 아닐까?”
“맞아, 나도 동감이야.”
“좋아! 우선 너희들끼리 사냥하고 있어, 나랑 창천이는 편집해서 자게에 올리고 올게.”
접속을 종료한 이는 동영상의 음성을 삭제하고는 자막 처리를 한 후 ‘딱 걸린 변태’라는 제목으로 자게에 동영상을 올렸다.
아울러 핵터의 캐릭터 명도 공개하고 그가 이 시간 현재 셔리우드 숲에서 미론 시로 걸어서 이동하고 있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
딱 걸린 변태의 동영상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있을 무렵 핵터는 여전히 숲을 누비고 있었다.
‘내가 잘 가고 있는 걸까? 다른 사람들이라도 만나야 길을 물어볼 수 있을 텐데.’
마음 같아서는 몇 번이나 접속을 종료하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이왕 시작한 것, 그 끝을 봐야 속이 편할 것 같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핵터는 마침내 다른 사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 전투 중인가?”
핵터가 발견한 이는 가냘픈 체구의 여자였다.
그런데 그 여자는 언밸런스하게도 거대한 도끼를 무섭게 휘두르며 오거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오거의 이름과 생김새가 판도니아와 똑같았다.
“와우∼ 무슨 여자가 저래?”
대한민국의 여자가 당차고 드센 것은 핵터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보기에도 무식해 보이는 거대한 도끼를 젓가락처럼 휘두르는 여자라니 너무 심한 것 같았다.
“이런, 내가 도와줘야 하나?”
잠시 전투를 지켜보던 핵터는 새롭게 6마리의 오거가 동시에 나타나자 도와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는 처음과는 달리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이크! 안 되겠어.”
검을 뽑아 든 핵터는 무작정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오거는 핵터를 바라보지도 않고 여자만 상대했다.
“이것들까지 날 무시하네.”
붕붕∼
서걱―
무시를 받았다는 생각에 힘이 잔뜩 늘어간 핵터의 검이 빠르게 허공을 가르며 오거의 다리를 가격했다.
불의의 공격을 받은 오거는 그때서야 시선을 돌려 핵터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이놈, 맛이 어떠냐?”
“크아아악∼”
“시끄럽다.”
퍼퍼퍽∼
“커허헉∼”
“이놈, 아직 멀었다.”
슈슈슉―
“오! 좋아.”
핵터의 검은 오거의 신체 곳곳에 깊은 상처를 내며 확실한 타격을 주고 있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핵터는 더더욱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내가 이렇게 강했던가?’
신성 마법의 도움 없이 검 한 자루로 오거를 상대하다니, 만일 여기가 판도니아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거의 레벨이 핵터와 얼추 비슷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사이 2마리의 오거를 처리한 여자가 시선을 살짝 돌렸다.
여자와 시선이 마주친 핵터는 전투 도중이었기에 고개를 슬쩍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여자는 핵터의 얼굴과 머리 위의 호칭 그리고 왼손에 들려 있는 속옷을 번갈아 보다가 질문을 했다.
“혹시 절 도와주기 위해 끼어든 건가요?”
“오거가 갑자기 많이 나타난 것 같아서요.”
“굳이 그러지 않아… 그런데 스킬은 사용 안 하나요?”
“네?”
“레벨이 그리 높지는 않은 것 같은데 왜 평타만으로 사냥하죠? 데미지도 그리 많이 들어가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제가 아직 서툴러서요.”
“그래도 스킬은 자주 사용해야 숙련도가 오르죠.”
“어떻게 쓰는지 몰라서…….”
둘의 대화는 오거의 날카로운 비명 때문에 중단되었다.
마침내 한 마리의 오거를 힘겹게 처리한 핵터는 여자를 공격하던 3마리의 오거 중에서 제일 뒤쪽의 놈을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넌, 내가 상대해 주지.”
휘리릭∼
퍼퍼퍽―
“크아악∼”
퍽―
“커헉∼”
어느 순간 오거의 묵직한 앞발이 핵터의 가슴을 강타했다.
핵터는 숨이 막히는 것을 느끼며 엉거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사이 또다시 한 마리의 오거를 가볍게 처리한 여자가 한마디 했다.
“피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포션을 마시지 그래요?”
“갖고 있는 포션이 없는데요.”
“포션도 안 가지고 다녀요?”
“그게 어쩌다 보니… 이크!”
“조금만 기다려요, 이것들 잡고 도와줄게요.”
“그, 그럴 필요 없는데.”
“지금 피가 바닥이라 곧 죽을 것 같은데, 그런 말이 나와요?”
“그, 그게 무슨 말인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나요?”
“실은 오늘이 처음이라…….”
“네에?”
여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핵터를 공격하던 오거를 떼어갔다.
덕분에 숨을 돌린 핵터는 어지럼증을 느끼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잠시 후 오거를 다 처리한 여자가 다가와서는 몇 개의 동전을 건넸다.
“이건 당신 몫이에요.”
“네?”
“당신이 잡은 오거가 흘린 돈이라고요. 포션도 없다면서 이렇게 흘리고 다니면 안 되죠.”
“아! 네.”
몬스터가 돈을 주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엉겁결에 돈을 받은 핵터는 그걸 어디다 둘지 몰라서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결국은 오른손에 쥐었다.
“돈은 인벤에 담아야지, 왜 손에 쥐고 있죠?”
“인벤은 뭐죠?”
“헉! 인벤도 몰라요?”
“아까 말했지만 게임은 오늘이 처음이거든요.”
“그게 말이 되요? 얼추 70렙 이상은 되어 보이는데.”
이제 시작한 플레이어가 레벨75의 오거에게 데미지를 줄 수는 없었다.
핵터는 의혹이 가득한 여자의 눈빛을 보고서야 자신은 처음이지만, 이 캐릭터의 원래 주인은 예전부터 게임을 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제가 3년 만에 처음으로 접속을 했거든요.”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무것도 모를 수가 있죠?”
“실은 3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기억상실에 걸렸어요.”
“기억상실이요?”
“그래서 이 게임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에, 그런 일도 있는가 보군요?”
“저도 처음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처럼 난처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기억상실에 걸렸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갔다.
눈앞의 여자도 조금은 미심쩍어 하는 것 같았지만 대충 수긍을 하고 넘어갔다.
“허공에다가 상태 설정이라고 외쳐 보세요.”
“상태 설정이요?”
“네.”
“상태 설정.”
촤르르륵∼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허공에 뭔가가 나타났다.
여자는 허공에 나타난 영상 앞으로 핵터를 불렀다.
“아이템의 등급은 노멀<레어<매직<유니크<레전드<신급의 순인가요?”
“이제 이해하겠어요?”
“감사합니다. 이제야 제디스 온라인에 대해서 뭔가를 안 것 같은 기분입니다.”
“참! 스킬 쓰는 법도 익혔죠?”
“네.”
“그리고 빨리 전직을 해야 더욱 강해져요.”
“그래야죠.”
약 2시간 동안 여자는 핵터에게 제디스 온라인의 인터페이스 조작법부터 시작해서 포션이나 스크롤 같은 소모품의 구입 방법과 사용법 그리고 퀘스트며 스킬까지 핵심적인 내용은 다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어쩌면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핵터의 말에 측은지심이 들어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 칭호는 어떻게 된 거죠?”
“저, 칭호가 어떤 거라고 했죠?”
“어떤 조건을 달성했을 때 부여되는 것으로 칭호마다 그 특성과 옵션이 있어요. 제디스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칭호는 몇 개쯤 있어요.”
“그렇다면 지금의 내 칭호는 뭐지?”
“여자의 속옷을 탐내는 뻔뻔한 치한이요.”
“네? 누가요?”
“핵터 님이요.”
“어! 아닌데?”
“지금도 머리 위에 그 칭호가 버젓이 연두색으로 빛나고 있는데요.”
“흐미∼ 미치겠네. 괜히 이상한 부탁을 들어줘서.”
핵터는 황급히 칭호 슬롯을 열어서 확인에 들어갔다.
<여자의 속옷을 탐내는 뻔뻔한 치한>
여자의 목욕 장면을 훔쳐본 것으로도 모자라 속옷까지 훔친 그대의 치졸함과 뻔뻔함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에 모든 여성들의 분노를 모아 그대를 응징하는 바이다.
―체력 -300
―마나 -300
―공격력 -10
―방어력 -10
―최초로 칭호를 부여받은 직후 2시간은 의무 장착
*바바리맨과 파티 사냥 시 경험치 +5%(상태창)
“헉!”
체력과 마나의 감소에 이어서 공격력과 방어력의 약화까지 있다니 이건 차라리 저주에 가까웠다.
핵터는 급히 다른 칭호를 살펴보다가 그나마 옵션이 좋은 녹색 숲의 수호자라는 호칭으로 바꿨다.
다행히 2시간은 경과한 상태였기에 칭호를 바꾸는 것은 가능했다.
여자는 그 과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질문을 했다.
“어쩌다 그런 칭호를 얻게 되었죠? 난 처음에 내 속옷을 노리고 접근한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전 큐티 님에게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요.”
“호호홋∼ 정말요? 이렇게 안심시켜 놨다가 나중에 슬쩍하는 것 아니에요?”
“아닙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푸훗∼ 알았어요, 믿어주지요.”
여자의 이름은 큐티로, 특이하게도 여자의 몸으로 방어구나 무기를 제작하는 대장장이 계열의 제작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을 하는 핵터의 모습이 우스운지 계속 웃음을 터트렸다.
핵터는 행여나 그녀가 믿지 않을까 봐 미션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아마 그런 호칭을 얻게 된 이유는 미션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도대체 어떤 미션을 받았기에 그 꼴이 되었어요?”
“사악한 몬스터의 옷을 훔치라는 미션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몬스터가 암컷이었고 훔치라는 옷이 속옷이었어요.”
“하하하∼ 그런 미션도 있어요? 정말 신기하네요.”
“지금도 그 미션 때문에 미론 시로 가는 중이었어요.”
“어! 저도 퀘스트 때문에 미론 시로 가긴 가야 하는데.”
“오! 그럼 우리 같이 갈래요?”
핵터는 큐티와 헤어지는 것이 괜히 아쉬웠다.
그러던 차에 그녀도 미론 시로 갈 일이 있다고 하자 같이 가자는 제안을 했다.
“가고 싶지만 아직 필요한 재료를 못 구했어요. 제가 직업이 특이하다 보니까.”
“저도 처음에는 놀랐어요, 여자가 대장장이와 비슷한 제작사라니.”
“다들 처음에는 비슷한 반응을 보여요. 하지만 돈을 벌기에는 제작사가 최고예요.”
“돈이라면 게임 내 화폐를 말하나요?”
“네. 그리고 그걸 팔아서 현금으로 만들죠.”
“현금이라면 현실의 돈을 말하나요?”
“네. 전 제디스 온라인을 통해서 생활비며 용돈을 충당하고 남은 돈은 모으고 있어요.”
“헉! 그런 것도 가능한가요?”
게임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다니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핵터는 게임 속 화폐를 어떻게 현금으로 바꾸는지 물어봤고 큐티는 아이템의 등급부터 판매 과정까지 세세히 들려줬다.
“그렇구나! 그렇게 해서 돈을 벌수가 있구나.”
“전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 이만 가봐야겠어요.”
이것저것 묻다보니 어느덧 꽤나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핵터는 좀 더 많은 얘기를 하지 못하는 것을 무척 아쉬워 하다가 친구 등록을 떠올렸다.
“저, 큐티 님을 친구로 등록해도 될까요?”
“직접 해보실래요?”
“네. 지금 친구 초대 메시지 보냈는데 도착했나요?”
“전 방금 수락했으니까 핵터 님도 승인을 누르세요.”
“헤헤∼ 초대만 하면 끝나는 게 아니었군요.”
아무리 설명을 들었다고는 하지만 직접 하는 것은 또 달랐다.
핵터는 큐티를 친구로 등록하고는 그녀에게서 미론 시로 향하는 이동 스크롤을 얻었다.
“수고하시고, 득템하세요.”
“큐티 님도 원하시는 재료들 모두 얻으세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네, 오늘 고마웠습니다.”
큐티와 헤어진 핵터는 곧장 이동 스크롤을 찢었다.
스크롤은 찢어지자마자 형광등과 비슷한 백색의 빛을 분출하더니 서서히 원형 형태의 문을 만들었다.
‘저 문을 열어야 하나?’
분위기로 짐작하건데 문을 열어야 이동이 될 것 같았다.
그 순간 핵터의 몸의 저절로 둥실 떠오르더니 어느새 활짝 열려진 문 안으로 빨려 들기 시작했다.
“어어어∼”
처음 겪는 색다른 현상에 핵터는 비명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음도 아닌 이상한 괴성을 내다가 공간 너머로 사라졌다.
잠시 후 핵터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미론 시의 중앙 광장이었다.
“휴우∼ 이제 끝났나?”
스크롤을 이용한 공간 이동은, 기다리고 이동을 시작하는데 10초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심하게 울렁거리고 현기증이 나는 판도니아의 텔레포트보다는 훨씬 안락하고 편안했다.
‘이제 조르주를 만나면 되겠지.’
***
“미나야, 미나야∼”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내가 지금 뭘 보고 왔는지 알아?”
“너 또 아이템 중계 사이트 뒤지고 왔구나. 오늘은 제법 쓸 만한 아이템이라도 나온 거야?”
핵터가 조르주를 찾기 위해 미론 시를 해매고 다니고 있을 무렵 잠시 접속을 종료했던 유미가 미나를 찾고 있었다.
둘은 친구 사이로 또 다른 친구의 소개로 한날한시에 제디스 온라인을 시작해서 메티스 로드와 부로드라는 똑같은 직업까지 얻은 단짝 친구였다.
“그게 아니라 그 나쁜 자식이 자게에 올라왔어.”
“나쁜 자식이라니, 지난번 소개팅 때 바람 맞췄다는 남자를 말해?”
“그 사람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네가 입버릇처럼 나쁜 자식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 남자뿐이잖아.”
“아니, 우리 속옷을 훔쳐 간 그놈 말이야.”
“그자식이 왜 자게에 나와?”
“글쎄, 그 작자가 훔쳐 간 우리 속옷을 팔고 다니나 봐.”
“뭐! 우리 속옷을 팔아? 우린 속옷이 없어서 날아다니지도 못하는데.”
“거기다가 우리가 목욕한 동영상은 물론이고 다른 여자들의 속옷이나 더 야한 동영상도 팔고 다닌데.”
“그놈, 완전 변태 아냐?”
“지금 그것 때문에 자게가 완전 난리야.”
사실은 있지도 않은 일로, 철저히 조작된 사건이었다.
그러나 치한이라는 칭호와 함께 속옷을 들고 있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모든 이들은 자막에 나온 것을 100% 신뢰했다.
덕분에 핵터의 이름은 제디스 온라인 이용자들 사이에서 뻔뻔하고 파렴치한 치한의 대명사로 빠르게 각인되는 중이었다.
“어쩔 거야, 이번 일을 모른 척 넘어갈 거야?”
“분하고 화가 나지만 우리도 레벨 업을 빨리하려면 여기를 벗어날 수 없잖아.”
유미와 미나가 메피스의 로드와 부로드가 된 것은 불과 8개월 전이었다.
그사이 둘은 520에 불과하던 레벨이 어느덧 760을 넘은 상태였다.
두 사람이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이만큼의 폭발적인 레벨 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메피스 로드와 부로드라는 직업 때문이었다.
즉, 그녀들이 오염된 폭포 주변에 있는 동안은 메피스들이 인근의 몹이나 플레이어를 사냥할 경우 그 경험치의 상당량이 두 사람에게 돌아왔다.
때문에 둘은 상황을 고려해서 앞으로 몇 달간 이곳에 더 머물면서 800레벨을 달성한 후에 떠날 생각이었다.
“굳이 우리가 직접 움직일 필요는 없지.”
“다른 방법이라도 있어?”
“우리도 이 기회에 청부를 이용해 보면 어떨까?”
“유미야, 청부 P.K 말해?”
“그래.”
“그것 비싸지 않아?”
“알아보니까 생각보다 안 비싸더라고, 그리고 우리 사진을 같이 올리면 특별 할인도 받을 수 있어.”
제디스 온라인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가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를 상대로 P.K 청부를 할 수 있었다.
이런 식의 청부 제도가 도입된 배경에는 고 레벨 플레이어들의 무분별한 저 레벨 플레이어들의 사냥을 막고, 힘이 없어서 억울하게 죽은 자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물론 청부를 하기 위해서는 청부 대상자의 실력과 레벨에 따른 적정한 보수를 시세에 맞춰 지불해야 했다.
또 청부를 할 만한 근거나 정당성을 제출해서 심의를 통과해야 했다.
이는 전적으로 청부법관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플레이어나 청부대법관을 맡고 있는 운영자가 수행했다.
하지만 그렇게 청부를 받을 경우, 청부 대상자를 마을에서 죽여도 아무런 제재가 없었고 P.K에 따른 페널티도 없었다.
“우리 사진을 올리다니?”
“청부 신청란에 스샷이나 동영상 첨부도 가능하거든. 그래서 다른 여자들도 사진 찍어서 사연과 함께 올리더라.”
“그래… 그러면 우리도 해볼까?”
“히히힛∼ 내가 그럴 줄 알고 벌써 올리고 왔지.”
“벌써? 청부금은 얼마나 준다고 했어?”
“미나야, 놀라지 마. 단돈 10골드!”
“에계∼ 겨우 10골드에 청부가 가능해?”
“원래는 그자의 레벨을 고려하면 기본 금액인 50골드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 작자의 죄질이 너무 안 좋고 우리가 미인이라서 그렇게 해준대.”
“정말?”
“그렇다니까, 우리 청부에 걸린 선행 포인트가 최고 점수인 100점이야. 그건 그렇고 누군가가 벌써 청부를 수락했더라.”
“그렇게 빨리?”
“응. 그것도 두 명이나, 어쩌면 지금은 3명 모두 꽉 찼는지 몰라.”
“청부는 한 건인데, 청부 수락은 3명까지 할 수 있는 거야?”
“그렇더라고, 하지만 대개의 청부는 1∼2명만 수락해. 우리 경우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야.”
“하지만 3명이 청부에 나서면 그 사람 너무 많이 죽는 것 아닐까?”
“그건 우리가 알 바가 아니지. 그리고 속옷을 전부 만들려면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목욕을 해야 하는데.”
메피스의 속옷은 단순한 옷의 역할을 넘어서 날개의 역할을 병행하고 있었다.
한 번 날개를 잃어버린 메피스들은 로드나 부로드가 다시 제작을 해줄 때까지는 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로드라고 해서 무제한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메피스의 가루가 잔뜩 녹아 있는 호수에서 꼬박 4시간 동안 목욕을 하면서 가루 액을 흡수해야만 한 벌의 속옷 제작이 가능했다.
즉, 잃어버린 15벌을 모두 만들기 위해서는 둘이 합쳐서 장장 60시간의 목욕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유미야, 3명이 청부를 승낙하면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금액도 더 늘어나는 것 아냐?”
“그건 아니고 10골드를 가지고 그 사람들이 분배를 하는 시스템이야.”
“헉! 그럼 그 사람들은 거의 푼돈 받고 일하는 거네?”
“그게 다 우리 외모가 받쳐 줘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부터 열심히 목욕이나 하자고.”
“아∼ 짜증, 메피스가 된 뒤로 거의 매일같이 목욕이야.”
“그래도 오염된 연못 안에 있어야 경험치도 많이 받고, 스텟도 올라가잖아.”
“그러니 싫어도 목욕해야지. 최소한 속옷만이라도 입고 목욕하면 좋을 텐데…….”
“날개는 젖으면 안 된다는 설정인데 별수 없지.”
***
핵터는 지도에 나타난 분홍색 불빛을 쫓아서 작고 허름한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미론 시 외곽의 빈민가를 돌고 있었다.
“대충 이 집이 맞는 것 같은데.”
핵터가 멈춰선 집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낡은 판잣집이었다.
지도의 불빛은 조금 전부터 정신없이 깜박이는 것이 마치 이곳에 조르주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계십니까?”
“누구세요?”
“여기에 조르주라는 분이 계시니?”
“우리 할아버지인데요.”
“지금 계시니?”
“할아버지는 주변 이웃집에 가셨는데, 왜요?”
핵터를 맞이한 이는 빨간 머리를 양 갈래로 딴 8∼9세의 소녀였다.
소녀는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할아버지를 찾는 이유를 물었다.
핵터는 소녀에게 할아버지가 부탁한 물건을 갖고 왔다며, 할아버지를 모셔올 것을 부탁했다.
소녀는 잠깐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는 부리나케 어딘가로 달려갔다.
소녀가 60대 중반의 노인과 함께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몇 분 후였다.
“날 찾은 이가 젊은이라고, 우리가 언제 본 적이 있었던가?”
“아마 3년 전에 만났을 것 같은데요.”
“3년 전이라고, 그런데 무슨 일로?”
“잠자리 날개옷, 15벌을 구해왔습니다.”
“잠자리 날개옷?”
“네, 그걸 구하느라 상당한 곤욕을 치렀습니다.”
“오! 이제 생각이 났어. 그러고 보니 자네는 3년 전에 몇 번 찾아왔던 그 친구로구먼?”
“네.”
핵터는 인벤을 열어서 15벌의 속옷을 건넸다.
조르주라는 노인은 감회 어린 표정으로 속옷을 받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알람과 메시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띠링∼ 띠링∼
―잠자리 날개옷을 가져와라 미션을 완료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히든 클래스 ‘해부학자’가 되실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내 직업이 해부학자가 된다는 말인가?’
도대체 게임 내에서 해부할 게 뭐가 있겠는가?
핵터는 해부학자라는 직업에 대해서 진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 사이 조르주의 얘기가 시작되었다.
“약속대로 자네에게 해부학자의 길을 알려주겠네.”
“잠깐만요, 직업이 해부학자면 뭘 해부해야만 하는 건가요?”
“그렇지. 아나토미 또는 해부라고 불리는 그런 일을 통해서 인류 발전에 공헌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네.”
“여기서 해부할 게 뭐가 있다고요?”
“세상천지가 온통 몬스터로 가득한데, 왜 해부할 게 없겠는가?”
“헉! 몬스터를 해부한다고요?”
“그래. 거세고 드센 몬스터와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우리 인류에게 있어 해부학은 많은 도움을 주는 더없이 소중한 학문이지.”
핵터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상식으로, 해부학은 생물체를 해부하여 그 구조를 조사하는 학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해부학이 몬스터와 싸우는데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리고 피할 수만 있다면 해부학자라는 직업을 피하고 싶었다.
“제가 얻게 될 직업이 그것 말고 다른 것은 없나요?”
“당연한 것을 왜 물어보는가?”
“전 해부학자가 될지 몰랐는데요.”
“내가 예전에 말을 해주지 않았던가?”
“3년 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해부학자라는 직업이 몬스터와 싸우는데 왜 큰 도움이 되죠?”
“당연하지. 우리가 연구하는 해부학이야말로 인류 생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학문이네.”
“어떻게요?”
“어허∼ 그것도 몰라?”
“네, 전혀 이해가 안 가는데요.”
“트롤의 피로 포션을 만들 수 있음을 누가 밝혔는지 아는가? 그리고 만드라고라의 뿌리가 정력에 좋다는 사실은 누가 밝혔겠는가?”
“그게 왜요?”
트롤의 피가 포션의 재료로 사용되는 것은 이곳이나 판도니아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큐티를 통해 포션의 효능을 알고 있던 핵터는 그것들과 해부학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물었다.
“답답하기는, 그것들은 우리 같은 해부학자들이 밝힌 성과이네. 막말로 포션이 없었다면 우리 인류가 지금처럼 포악한 몬스터와 맞서 싸울 수 있었겠는가?”
“상당 부분 일리가 있군요.”
“또 마나석을 품고 있는 몬스터를 밝혀낸 것도 우리 해부학의 빛나는 성과이네. 그 외에도 여러 몬스터의 치명적인 약점을 밝혀낸 것도 마찬가지로 우리 같은 해부학자들의 업적이네.”
“오! 의외로 유용한 직업이네요.”
“당연하지. 인류가 오늘날 이만큼의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배경에는 우리들의 보이지 않은 헌신이 있어서 가능한 게야.”
“좋습니다, 저도 해부학자가 되겠습니다.”
판도니아에서는 고위 신관으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며 거기서 보람을 얻었던 핵터였다.
그러기에 비록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해부학자가 맘에 든 핵터였다.
해부학자가 되겠다는 핵터의 말에 조르주는 큰소리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탁월한 선택이었네. 그리고 해부학자가 되면 적지 않은 돈도 벌 수 있네.”
“에이∼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빈민촌의 판잣집에서 사는 조르주의 행색은 누가 보기에도 궁핍해 보였다.
그러기에 핵터는 돈을 벌 수 있다는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건 자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야.”
“적지 않은 돈을 버신다는 분이 이런 곳에서 사세요?”
“여기가 어때서? 그리고 나는 벌어들인 만큼 남을 위해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사람이야.”
“아! 네.”
“어허∼ 믿지 않는군. 하지만 아나토미스트가 되면 내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될 거야. 아무쪼록 돈을 벌거든 남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 되게.”
“아나토미스트요?”
“그래, 해부학자를 다른 말로 아나토미스트라고 하지.”
“뭐, 좋습니다! 아무튼 제 코가 석 자이지만, 만일 많은 돈을 벌게 된다면 남들을 배려하면서 살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 말을 믿지. 자네를 정식으로 아나토미스트로 만들어주지.”
딩동∼ 딩동∼
―초보 해부학자가 되었습니다.
―기본 스텟과 직업 스텟의 모든 항목이 15포인트 증가합니다.
―해부학 대사전이 지급되었습니다.
―초보 해부학자의 필수 장비인 마스크와 낡은 해부 장갑 그리고 낡은 메스가 지급되었습니다.
―해부에 필요한 잡다한 도구가 들어 있는 해부 상자가 지급되었습니다.
―전직과 관련해서 직업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전직과 관련해서 직업 스텟(집중. 정확. 관찰)이 생성되었습니다.
―전직과 관련해서 특별 스텟(손재주)이 생성되었습니다.
―부여받은 직업 스킬과 직업 스텟은 세부창을 통해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직과 관련해서 몇 가지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부여받은 페널티는 세부창을 통해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직업과 관련한 페널티로 방어구의 착용 상태가 강제 해제되었습니다.
―직업과 관련한 페널티로 무기의 장착 상태가 강제 해제되었습니다.
3. 하늘이 준 기회?
초보 해부학자가 되는 순간, 많은 메시지가 정신없이 들려왔다.
아울러 착용하고 있던 무기며 모든 아이템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갑작스런 상황에 핵터는 어떻게 된 일이냐는 뜻으로 조르주를 바라봤다.
조르주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제 장비들은 어떻게 된 거죠?”
“해부학자가 되었으니 그것들은 다 필요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아마 사라진 장비들은 자네의 인벤에 다 들어가 있을 거야.”
“왜요?”
“왜기는, 해부학자가 되면 원래 그렇게 되는 것을. 미리 말하지만 해부학자는 무기나 방어구를 착용할 수 없어.”
“헐∼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사냥을 해요?”
“대신 해부학자용 장비를 착용하는 거지.”
“그런가요?”
핵터는 그때까지만 해도 해부학자용 장비가 엄청 뛰어나서 그런 페널티가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오해였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먼저 해부학자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게나.”
“그래야죠.”
핵터는 먼저 캐릭터 창을 오픈했다.
이름:핵터
레벨:81
칭호:녹색 숲의 수호자(장착된 타이틀)
작위:무
직업:초보 해부학자
명성:22
생명력:750 마나:560
공격력:38 방어력:28
<기본 스텟>
근력:151 체력:150 민첩:112 지능:112
스텟 포인트:15/15
<직업 스텟>
집중:15 정확:15 관찰:15
스텟 포인트:0/0
<특별 스텟>
손재주:10
스텟 포인트:0/0(상태창)
캐릭터창에는 조금 전 3레벨이 올라가면서 받았던 스텟 포인트 15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또 무기와 모든 방어구의 착용이 해제되면서 캐릭터의 순수한 능력치만 나오고 있었다.
핵터는 모든 능력치가 이전에 비해 떨어진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아이템을 착용하면 복구되리라는 생각에 새로 지급받은 아이템을 살피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핵터가 살핀 것은 해부 상자였다.
그건 등급도 없는 아이템으로 상자 안에는 봉합용 바늘과 실이 들어 있었다.
상자의 뚜껑을 닫은 핵터는 다음으로 마스크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해부용 마스크]
먼지나 병균 또는 세균이나 독의 흡입 및 비산을 막기 위하여 코와 입을 가리는 물건이다.
몬스터를 해부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위험으로부터 해부학자를 보호해 주는 기본 장비이다.
등급:레어
종류:직업 아이템(해부학자 전용)
특성:진화형(인첸 불가)
내구도:무한
방어력:50
옵션1:먼지, 병균, 세균, 독 물질 83% 차단
옵션2:생명 회복력 5% 증가(상태창)
[낡은 해부 장갑]
마스크와 함께 해부학자를 보호해 주는 기본 장비이자, 해부 작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를 보조해 주는 역할을 한다.
등급:노멀(초보 해부학자용)
종류:직업 아이템(해부학자 전용)
기타:인첸 불가
내구도:무한
방어력:10
공격력:10
옵션1:장갑 착용 후 회복 또는 치료 아이템이나 마법 사용 시, 효과가(본인 외 타인까지) 2배 증폭된다.
옵션2:손재주 +20(상태창)
[낡은 메스]
해부학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비이자 유사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다.
비록 낡은 메스지만 그 어떤 몬스터의 가죽도 자를 수 있다.
단 드래곤과 마족 그리고 반인반수나 정령 형태의 몬스터는 예외이다.
등급:노멀(초보 해부학자용)
종류:직업 아이템(해부학자 전용)
기타:인첸 불가
내구도:무한
공격력:15(상태창)
“헉! 무슨 아이템의 능력치가 이렇게 형편없어요?”
“그게 어때서?”
“장갑하고 메스를 합쳐 봐야 공격력이 25밖에 안 되잖아요? 제가 이전에 쓴 장검은 공격력이 120이 넘었는걸요?”
“메스는 공격력보다는 못 자르는 가죽이 없어야지. 우리 때는 그런 금속제 메스도 없어서 일회용 나무 메스를 사용했어.”
“그래도 그렇지 이런 걸로 어떻게 몬스터를 잡아요?”
“왜 못 잡아? 우리는 나무 메스로 그 살벌한 드레이크도 잡고 그랬는데.”
“흐미∼”
큐티가 설명할 때는 전직을 하면 더 강해진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건 더 강해진 것이 아니라 되레 약해진 느낌이었다.
핵터는 갈수록 솟구치는 불길한 예감에 해부학자라는 직업을 취소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뭔 성질이 그리 급해.”
“하지만 막상 해부학자가 되고 보니 별 볼일 없잖아요?”
“스킬도 살펴보고 그런 소리 한 거야?”
“아이템이 이 정도면 스킬이라고 별것 있을까요?”
“일단 보기나 해. 그리고 한번 선택한 직업은 절대 취소하지 못해.”
취소를 못한다니 이왕 이렇게 된 것, 스킬을 살펴봐야 했다.
핵터는 제발 스킬만큼은 위력적인 스킬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스킬창을 열었다.
<경직:직업 스킬>
모든 생명체(인간 포함)를 상대로 펼칠 수 있는 스킬로, 경직에 걸린 생명체는 일시적으로 움직임이 정지된다.
추후 중급 해부학자가 되면 쇼크 스킬로 발전한다.
분류:액티브
시전 거리:1미터
쿨 타임:15초
지속 시간:2초∼6초
제한:식물에게는 사용할 수 없다.
기타:경직에 걸린 대상을 공격할 경우 스킬이 자동 해소된다.(상태창)
<초급 마취:직업 스킬>
연속기 스킬로 경직에 걸린 생명체만 마취할 수가 있다.
단 인간은 그 어떤 경우에도 마취시킬 수가 없으며, 1분 이내에 해부에 들어가지 않으면 마취는 자동으로 풀린다.
아울러 해부에 성공한 종은 두 번 다시 마취를 걸 수 없다.
분류:액티브
쿨 타임:30분
지속 시간:10분∼15분
기타:마취에 걸린 대상을 공격할 경우 스킬이 자동 해소된다.(상태창)
<초급 해부:직업 스킬>
연속기 스킬로 마취에 걸린 생명체만 해부할 수가 있다.
해부에 성공할 경우 조건과 상황에 따라서 경험치가 차등 지급되며 추후 해당 생명체에 대한 어드밴티지가 적용된다.
또 몬스터의 능력을 무작위로 흡수할 수 있다.
단 해부에 성공한 몬스터는 그 이후에는 해부를 해도 아무런 혜택이나 보상이 없다.
하지만 초급 해부로는 드래곤과 마족 그리고 정령과 곤충 형태의 몬스터와 반인반수 형태의 몬스터는 해부하지 못하다.
아울러 해부한 몬스터가 죽게 되면 해부는 실패한 것으로 간주된다.
분류:액티브
쿨 타임:30분
제한:식물에는 사용할 수 없다.
기타:해부에 성공해서 인간에게 유용한 물질이나 해당 몬스터의 약점을 발견할 경우 3년간의 지적 재산권이 인정된다.(상태창)
<추출:직업 공통 스킬>
몬스터로부터 필요한 물질을 얻어내는 스킬이다.
해부에 성공한 몬스터의 경우, 굳이 해부를 하지 않아도 사냥을 통해 손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추출 스킬을 펼치지 않으면 해당 물질을 획득할 수가 없으며, 추출 스킬은 생산직 또는 채집 계열의 공용 스킬이다.
분류:액티브
쿨 타임:없음(상태창)
<해부 검술:직업 보조 스킬>
오직 메스만 사용 가능한 해부학자를 위한 공격 스킬로, 레벨에 상관없이 상대에게 데미지를 입힐 수 있다.
추후 추가 전직을 할 때마다 해부 검술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위력도 증가한다.
절개술=>일(一)자 절개 및 십(十)자 절개로 이루어진 연속기.
=>쿨 타임 10초
일자 절개:공격력 +30
십자 절개:공격력 +50(상태창)
“허∼ 세상에.”
너무 어이가 없으면 말도 안 나온다고 했다.
지금 핵터가 딱 그 상황이었다.
“어때, 이제 흡족한가?”
“지금 장난치십니까?”
“내가 자네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장난을 치겠는가.”
“피유우∼ 전 완전히 똥 밟은 기분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아이템과 스킬뿐인데, 이래서야 무슨 수로 사냥을 하겠습니까?”
아무리 인류 발전에 이바지한다고 하지만 그것도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어야 가능했다.
막말로 지금 상태에서 해부한다고 나섰다가는 맞아 죽기 딱 좋은 상태였다.
“어허∼ 직접 해보지도 않고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가? 경직 스킬과 마취 스킬이 있는 이상, 세상의 어떤 몬스터라도 해부할 수 있거늘.”
“마취 시간이 기껏해야 15분이 최대인데 중간에 몬스터가 깨어나면 어쩝니까? 또 몬스터들이 해부하기 편하게 한 마리씩만 다닌답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해부에 성공할 경우 경험치가 지급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비단 해부학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제디스 온라인의 특징 중 하나였다.
즉, 생산직 계열의 직업을 갖고 있는 플레이어들은 생산 활동을 통해서도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생산을 통해서 레벨을 올리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때문에 거의 모든 생산직 계열의 플레이어들은 생산과 사냥을 병행하고 있었다.
“누가 처음부터 어려운 몬스터를 하라고 했는가? 그리고 몬스터의 능력을 흡수한다는 게 보통일 인지 아는가?”
“그래 봐야 몬스터인데 별 다를 게 있으려고요?”
“허허∼ 몰라도 이렇게 모르나? 일단 해부에 성공해 봐, 아마 어지간한 아이템을 얻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얻게 되고 그것 때문에 엄청 강해질 테니까.”
“정말입니까?”
“일단 해부에 성공이나 하고 와. 그리고 나중에 떼돈 벌거든 내 은혜를 잊지 말라고.”
“흥!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떼돈을 번다는 말은 동의하지 못하겠는데요.”
“자네가 해부에 성공해서 새로운 업적을 세워보게. 가만히 있어도 돈과 명성이 굴러 들어올 테니까.”
“어떻게요?”
“장려금이나 또는 지적 재산권을 통해서 로열티를 받으니까 그렇지.”
“장려금과 로열티요?”
조르주는 딱하다는 표정을 하며 혀를 끌끌 찼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장려금과 로열티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일단 몬스터의 해부에 성공하면 장려금이 무조건 지급된다고 했다.
그리고 몬스터의 치명적인 약점을 밝혀내거나 인류 생활에 이용 가능한 물질을 발견할 경우 로열티를 지급받을 수 있다고 했다.
쉽게 말해 포션의 재료가 되는 신물질을 발견하고 이게 포션으로 제작되어서 판매될 경우, 판매 금액의 1%를 3년간 지급받는 구조였다.
“이제 이해했는가?”
“그런데 몬스터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아내도 로열티를 받습니까?”
“암! 당연하지, 몬스터로부터 항상 위협받는 인류에게 있어서 그것처럼 중요한 일이 뭐가 있겠는가?”
“조르주 님은 혹시 그런 것을 밝혀내서 로열티를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질문을 하는 핵터의 눈은 처음과는 다르게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한편 질문을 받은 조르주는 목에 한껏 힘을 주기 시작했다.
“허험∼ 당연히 있고말고! 3년이 지나서 지금은 로열티가 들어오지 않지만 슬라임의 배설 구멍이 약점인 것을 밝혀내서 꽤나 많은 돈을 매달 지급받았지.”
“그것도 1%입니까?”
“그렇다네.”
“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이곳과 판도니아의 몬스터는 거의 대부분 일치했다.
그리고 판도니아에서 살다가 온 핵터는 몇몇 몬스터의 약점은 물론이고 인간에게 유용한 성분을 갖고 있는 몬스터도 알고 있었다.
‘이건 어쩌면 하늘이 준 기회인지도 몰라!’
만일 판도니아의 몹과 이곳의 몹이 똑같은 특성을 갖고 있다면 어렵지 않게 돈을 벌 수 있었다.
핵터는 지금 이 순간 두 명의 여자를 떠올렸다.
한 명은 자신을 대신해서 생계를 꾸리는 불쌍한 여동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사랑했던 여인 아미리아였다.
‘아미리아, 보고 있소? 모든 것이 낯선 지구에서 드디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 같소. 이게 전부 당신의 가호가 있어서 가능했소.’
“어때, 이래도 아나토미스트가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해?”
“아닙니다, 만족합니다.”
“그래야지. 어서 전직 조건을 달성해서 다시 오게. 그래야 가운도 착용하고 더 좋은 스킬도 익히지.”
“가운이요?”
“해부학자라면 당연히 가운을 걸쳐야지. 그 외에도 해부용 장화와 모자도 있지. 아참! 해부학자의 멋과 품위를 한껏 살려주는 셔츠와 바지와 벨트도 있다네.”
방어구를 착용하지 못한다고 하더니 이를 대신하는 다른 의류들은 있는 것 같았다.
핵터는 전직의 조건이 무엇인지 물었다.
“중급 해부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조건 20종의 몬스터를 해부하거나 아직 해부가 안 된 몹을 3종 해부하거나 또는 신물질이나 약점 1가지를 발견하면 되네.”
“그 다음은요?”
“상급은 더 어렵지, 그건 중급으로 전직할 때 가르쳐 주지.”
“이미 해부에 성공한 몬스터가 많나요?”
“적지는 않지.”
“헉! 그러면 제가 돈을 벌 수 있는 건수가 그만큼 줄어든 것 아닙니까?”
만일 핵터가 알고 있는 몬스터들을 트롤의 경우처럼 다른 이들이 이미 해부에 성공했다면 그때는 말짱 도루묵이었다.
조바심이 난 핵터는 그 부분을 질문했다.
하지만 조르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실소를 터트렸다.
“허∼ 해부가 그리 만만한 줄 아는가? 그리고 해부에 성공했다고 해서 무조건 약점을 발견하거나 신물질을 찾아내는 것은 아니네. 그러면 세상의 모든 해부학자가 돈방석에 올라앉았게?”
조르주의 말대로 해부에 성공한다고 해서 무조건 약점을 발견하거나 신물질을 발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일은 정말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에 불과했다.
핵터는 넌지시 그동안 약점이나 또는 유용한 물질이 발견된 몬스터의 종류를 물었다.
조르주는 대답 대신 해부학 대사전을 끝까지 자세히 읽어볼 것을 권유했다.
해부학 대사전에는 그동안 해부에 성공한 모든 몬스터와 약점이나 신물질이 발견된 몬스터가 기재되어 있었다.
‘휴∼ 없구나!’
핵터가 목표로 생각하고 있는 몬스터들은 다행히 해부학 대사전에 언급되지 않은 상태였다.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핵터는 그 후로도 조르주와 많은 얘기들을 나누고 나서야 그의 집을 나왔다.
***
“이제 뭘 사지?”
조르주의 집을 나온 핵터는 상점을 돌며 스크롤과 회복 계열의 포션 그리고 공격력과 이동 속도를 올려주는 음식 몇 가지를 구입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안해서 계속해서 상점가를 기웃거렸다.
그사이 시간은 어느덧 정오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크! 오전에 혜지랑 병원가기로 했지.”
제디스 온라인의 하루는 24시간으로 현실과 똑같았다.
동생과의 약속을 떠올린 핵터는 부랴부랴 접속을 종료했다.
윙윙∼
끼이익∼
캡슐의 뚜껑을 열고 나온 핵터는 동생부터 찾았다.
그러나 아르바이트 시간이 다되어서인지 동생의 모습은 안 보이고 대신 정성스럽게 차려진 밥상과 그 위에 올려놓은 메모지가 보였다.
“짜식, 부르지 않고.”
아마도 동생은 핵터가 게임을 하자 그냥 나간 것 같았다.
핵터는 괜히 미안해져서 한마디 하고는 동생이 남긴 메모지를 주워들었다.
-오빠가 게임하는 것, 3년 만에 보네.
늘 집에서 누워만 있는 오빠를 볼 때마다 행여나 오빠가 다른 생각 할까 봐 덜컥 겁이 나곤 했는데 오늘은 좋다.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밤에 들어올 때, 아무 기척도 없으면 내가 얼마나 불안한지 알아?
히히∼ 엄마, 아빠 계실 때에는 게임만 하는 오빠가 얄미울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안심이 되니까 그것도 우습다.
아무튼 게임을 하더라도 건강 생각해서 쉬엄쉬엄해.
가스레인지에 오빠 좋아하는 북어국 끓여놨으니까 데워서 먹고 약도 빼먹지 말고 꼭 챙겨 먹어.
병원은 나중에 같이 가자.
오빠, 파이팅∼ 아자! 아자!-
메모를 다 읽은 핵터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병원에서 깨어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자신은 차원 이동과 환생의 혼란스러움으로 망연자실 허송세월만 보내었다.
그런데 동생은 그런 오빠를 보면서 남모르게 마음을 졸였던 것 같다.
‘미안해, 내가 그동안 내 생각만 했어.’
지금 생각해 보니 혜지에게 오빠로서 따뜻하게 대해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핏줄은 같을지언정 영혼이 다르기에 무의식중에 친동생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자신을 생각해 주는 혜지는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에 하나뿐인 친 혈육이었다.
핵터는 팔뚝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사 후에는 설거지를 한 후, 생전 처음으로 밀린 빨래며 청소를 시작했다.
비록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진심으로 오빠 노릇을 해야 했다.
핵터가 제디스 온라인에 다시 접속한 것은 모든 일을 끝내고 한숨 자고 깨어난 그날 저녁 7시쯤이었다.
츠파팟∼
“여기는 그대로 미론 시구나.”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위치를 확인한 핵터는 본격적으로 몬스터를 해부하기 위해 포탈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일단 해부의 시작은 조르주의 충고대로 저 레벨 몹부터 차근차근 할 생각이었기에, 먼저 초보자 마을로 이동을 해야 했다.
잠시 후 핵터의 모습이 나타난 곳은 엘테넨이라는 작은 요새 마을이었다.
이곳은 대략 30∼70레벨의 몹이 출현하는 곳이었다.
‘여기서 시작하면 적당하겠지.’
마을을 빠져나온 핵터는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서 움직였다.
20분쯤 걸었을까, 토그라는 이름의 들개 비슷한 몬스터가 두 마리 나타났다.
“저것부터 시작해 볼까? 안전을 위해서 한 마리는 잡고 시작하는 게 좋겠지.”
토그의 레벨은 35에 불과했지만 핵터의 방어력도 기껏해야 38에 지나지 않았다.
이 정도의 방어력은 거의 20레벨 초반의 수준이었다.
‘왼쪽 놈부터 잡자.’
해부 도구이자 유일한 공격 무기인 메스를 꺼내든 핵터는 토그 앞으로 다가갔다.
선공 몹인 토그들은 핵터를 발견하고는 침을 질질 흘리며 다가왔다.
개처럼 생긴 토그들은 이동 속도 하나는 엄청 빨랐다.
“경직∼”
찌잉∼
한 마리의 토그를 경직으로 잠재운 핵터는 남은 한 마리를 향해 메스를 날렸다.
메스는 털이 수북하게 자라난 토그의 앞가슴을 깊숙이 찌르고 들어갔다.
“으르릉∼”
“어쭈, 이놈 봐라?”
“왈∼ 왈∼”
“오냐, 이번에는 스킬 공격이다.”
메스의 공격력이 15에 불과해서 그런지 토그는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덤벼들었다.
핵터는 공격 스킬인 일자 절개와 십자 절개를 연달아 펼쳤다.
스윽∼
“깨깽∼”
그나마 스킬 공격이라 그런지 토그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때 경직에 풀린 토그가 맹렬히 짖어대며 달려들었다.
“이크!”
“왈∼ 왈∼”
“귀찮은 놈, 경직.”
―스킬의 쿨 타임이 끝나지 않아서 발동할 수가 없습니다.
또다시 경직을 걸어놓고 편하게 사냥하려고 했건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핵터는 한쪽 다리를 녀석에게 내준 채 쓰러진 토그를 사냥했다.
하지만 그가 쓰러진 토그를 잡았을 때는 피가 거의 바닥까지 떨어진 후였다.
조급해진 핵터는 황급히 경직 스킬을 발동하고는 포션을 벌컥벌컥 들이켜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이래서야 어떻게 해부를 마음 편하게 하겠어?”
“썩을, 또 실패야!”
토그의 해부에 나선 핵터는 장장 3시간 동안 내리 9번을 실패했다.
특히 마지만 두 번은 모든 해부를 성공적으로 끝냈지만, 해부 후 토그가 죽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한 번 배를 짼 놈을 왜 다시 살리라는 거야?”
계속된 실패에 짜증이 솟구친 핵터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리젠 시간이 다 된 토그 한 마리가 생성되었다.
“빌어먹을, 하면 뭐 해? 또 실패할 게 뻔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해부한 생명체를 반드시 살려내라는 것은 억지 같았다.
차라리 이쯤에서 포기하고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 것 같았다.
“안 해! 더럽고 치사해서 다시는 안 해!”
핵터가 일어선 순간 토그가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이제 토그라면 신물이 나올 정도로 지긋지긋한 핵터는 경직 스킬을 시전하고는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 틈에 등 뒤로 다가온 한 명의 사내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자신보다 몇 살 어려 보이는 사내의 머리 위에는 고용된 암살자라는 주황색 글씨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고용된 암살자가 뭐였더라?’
“네가 그 변태 치한이구나.”
“그게 무슨 소리죠? 난 변태나 치한이 아닙니다, 아마 사람을 잘못 찾아온 것 같군요.”
“병신, 다 알고 왔는데 그런 거짓말에 내가 속을 것 같아?”
“도대체 뭘 알고 왔다는 것이오?”
“네가 여자들 속옷을 훔치는 사실과 또 그렇게 훔친 속옷이며 몰카 동영상을 판매한다는 사실을 난 알고 있다.”
“내가 속옷을 훔친 것은 미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었소. 그리고 그 외의 것들은 나하고 무관한 일이오.”
“뻔뻔한 놈, 비싼 밥 먹고 할 짓이 없어서 그런 짓을 하냐?”
“다시 말하지만 난 그런 적이 없소. 그리고 보아하니 나보다 여러 살 어린 것 같은데 왜 반말을 하는 것이요?”
“오냐, 난 이제 20살이다. 그래서 억울해? 그럼 나이 값을 하던지.”
“됐소,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 돌아가시오! 그리고 맹세하건데 난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소.”
“누구 맘대로? 난 널 꼭 죽여 달라는 청부를 받았거든.”
“그런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소. 그러니 그만 돌아가시오.”
“X같은 소리는 듣기 싫으니까 집어치워. 그리고 네 말이 진실이라고 해도 난 상관없어. 어차피 친구랑 누가 먼저 너를 잡는지 내기를 했거든. 또 널 죽여야 내 살인자 상태가 풀리거든.”
게임 내에서 이유 없이 다른 플레이어를 죽이는 것을 살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살인을 많이 하면 살인자 상태라고 해서 많은 페널티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정당한 청부를 받아서 성공할 경우 선행 점수를 획득해서 살인자 상태를 벗어날 수 있었다.
특히 핵터에 걸린 선행 포인트는 100점이었기에, 이 정도면 그 어떤 살인자라도 살인자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실 눈앞의 청부업자는 게임 내에서 유명한 살인자로, 청부 성공 후 받게 되는 선행 점수를 바라고 청부를 수락한 상태였다.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냐? 그리고 난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해.”
“오! 살려달라고 빌어도 부족할 판에, 이제는 막 나가겠다?”
나이도 어린 청부업자가 욕설까지 하자 핵터도 화가 났다.
그래서 그런지 그도 반말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반말을 하고 욕설을 한 것은 너였다. 나이 어린 너도 세상을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X도, 곧 죽을 놈이 나이를 들먹이고 있어.”
“도저히 얘기가 안 되는구나, 더 보고 싶지 않으니 어서 돌아가라!”
“네놈은 죽이고 가야지.”
청부업자가 다가온 순간 경직에서 풀린 토그가 핵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핵터는 토그를 상대하는 동안 청부업자가 공격할까 두려워, 도망을 쳤다.
하지만 토그의 이동 속도가 더 빠르기에 핵터는 계속 공격을 받았고, 덕분에 그의 피는 쑥쑥 빠지기 시작했다.
“엥! 저놈 완전 허접이잖아?”
상황을 지켜보던 청부업자는 핵터의 상태를 체크했다.
그리고 핵터의 피가 쭉 빠진 것을 알고 허둥대기 시작했다.
만일 핵터가 이대로 토그에게 죽는다면 그건 청부하고는 무관한 죽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살인자 상태를 벗어날 수 없었다.
또 재수 없이 친구가 먼저 잡는다면 내기에서도 질 수도 있었다.
‘저 토그부터 잡아야겠군.’
생각을 정리한 청부업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이발을 드러내며 핵터를 공격하던 토그는 스킬 한 방에 곧장 소멸되고 말았다.
그렇게 토그를 간단히 처리한 청부업자는 빠른 속도로 핵터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봐, 어딜 가려고? 또 나이 들먹이면서 한마디 하지 그래.”
“아무리 게임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은 있을 것이다. 네가 나보다 레벨이 높다고 해서 그게 예의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허접새끼, 그냥 죽어!”
청부업자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핵터는 몸을 숙여 피하면서 청부업자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쿨 타임이 끝난 경직 스킬을 걸었다.
찌잉∼
“엥?”
후다닥∼
경직이 몇 초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핵터는 부디 오랜 시간 지속되기를 기대하면서 부리나케 도망갔다.
그러나 엄청난 레벨 차이 때문인지 경직은 불과 3초 만에 풀렸고, 핵터는 원거리 스킬에 맞아서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흥, 너 같은 허접이 날 상대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
“헛소리 말고 어서 날 죽여라.”
“그럴 수는 없지. 날 이렇게 개고생 시켰는데 최대한 즐기다가 죽여야지 않겠어?”
푹∼ 푸푹∼
“크윽∼”
―양쪽 다리에 부상을 입어서 이동 속도가 30% 감소합니다.
“아프냐, 아프지? 무릎 꿇고 싹싹 빌면 도망칠 수 있도록 1분의 시간을 주지, 어쩔래?”
“차라리 날 죽여라, 어서!”
오연히 버티고 선 청부업자는 한 발로 핵터의 가슴을 짓누른 채 검으로 두 다리를 찌르며 조롱하기 시작했다.
핵터는 억울한 오해를 산 것으로도 부족해서 이제는 나이 어린 자에게 심한 희롱까지 당하자 죽고만 싶었다.
‘이럴 때 신성력이 있었다면…….’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생각할 수 있고 느낄 수 있기에 그 비참함과 모멸감은 현실과 똑같았다.
핵터는 분노를 참아내기 위해 입술을 깨물며 아미리아를 향해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아미리아, 보고 있소? 신성력이 없는 나는 현실에서나 게임에서나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놈인 것 같소. 그대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던 그때가 그립고 행복할 뿐이오. 부디 찰나라도 좋으니 그대의 자애로움을 다시 느낄 수는 없겠소?’
그의 기도가 너무 간절해서일까? 어느 순간 가슴 부근에서 미약하나마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설마?’
익숙한 이 기운은 환생 후, 완전히 상실해 버린 신성력과 너무도 흡사했다.
핵터는 믿을 수 없는 현상에 신기해하면서도 신성력이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 조심히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병원에서 깨어난 직후, 그렇게 노력을 해도 반응이 없어서 포기했던 신성력이 게임에서 발휘되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지금은 신성력을 끌어 올려서 눈앞의 괘씸한 청부업자부터 응징해야 했다.
“야∼ 살려달라고 빌어보라니까? 허접 주제에 자존심은 있어서 그렇게 못하겠냐?”
나이 어린 청부업자는 아예 핵터의 뺨을 찰싹찰싹 때려가면서 갖고 놀기 시작했다.
핵터는 분했지만 두 눈을 질끈 감고 신성력을 끌어 올리는 일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게임이라 그런지, 아니면 신성력이 너무 미약해서 그런지, 예전과 다르게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제발!’
“이 자식이 벙어리가 됐나. 야∼ 대답 안 해?”
푸욱∼
푹푹∼
“오! 네가 참는다 이거지?”
푸욱∼
핵터가 일부러 대답을 안 한다고 생각한 청부업자는 이번에는 그의 양쪽 어깨를 검으로 사정없이 쑤셔댔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핵터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자 재미없다는 표정을 그렸다.
“젠장, 더럽게 재미없네. 야! 여기서 끝내자.”
청부업자는 조금 전과는 달리 검을 두 손으로 단단히 움켜쥐고는 한껏 치켜들었다.
아마도 그는 이번 공격으로 핵터를 죽일 생각인 것 같았다.
그 순간 핵터의 뇌리에는 알람 소리와 메시지가 숨 가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딩동∼ 딩동∼
―새롭고 특별한 직업 ‘베일에 싸인 떠돌이 신관’이 되었습니다.
―전직의 영향으로 신성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신관이 되었기에 신성력이 200 부여됩니다.
―직업 스텟 신앙이 생겼습니다.
―기본 스텟과 직업 스텟이 15씩 증가합니다.
핵터의 눈이 번쩍 떠진 것은 그때였다.
“오! 죽을 때가 되니까 겁이 나냐?”
“건방진 놈, 신의 준엄한 심판을 받으리라! 홀리 썬더∼”
―새로운 스킬을 창조하셨습니다.
―홀리 썬더가 스킬로 등록됩니다.
“놀고 있네.”
퍼퍼퍼펑∼
한껏 비웃던 청부업자의 머리 위로 한줄기 불벼락이 떨어졌다.
난데없는 공격에 당황한 청부업자는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어딜 보는 것이냐? 파멸의 토네이도!”
―새로운 스킬을 창조하셨습니다.
―파멸의 토네이도가 스킬로 등록됩니다.
“헉!”
휘리리리릭∼
“커헉∼ 네가 어떻게 마법을?”
두 번째 공격은 허공이 아니라 지상에서 분출되었다.
청부업자는 걸리는 것은 뭐든지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는 파멸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는 솟구치는 와중에도 의혹이 가득한 눈빛으로 핵터를 바라봤다.
핵터는 두 번째 신성 마법을 펼치고는 벌떡 일어선 상태였다.
“이건 단순한 마법이 아니라 신성 마법이다. 심장을 꿰뚫는 아이스 애로우!”
부웅∼
슈슈슛―
퉁퉁퉁―
“크으윽∼”
핵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새로운 스킬이 창조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은빛으로 빛나는 6대의 얼음 화살이 생겨났다.
얼음 화살은 청부업자의 몸이 땅에 곤두박질하자마자 기다렸던 것처럼 날아가서는 그의 심장을 차례로 관통했다.
하지만 963레벨을 자랑하는 청부업자는 이번에도 죽지 않고 바닥을 기며 버둥거렸다.
반면 거의 대부분의 신성력을 소비한 핵터는 크게 휘청거렸다.
‘아! 신성력이 예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구나. 게다가 그 위력도 많이 반감되었어. 어쩌지? 기껏해야 한 번의 공격을 펼치면 바닥날 것 같은데.’
신성력이 돌아온 것은 좋았지만 그 위력과 양은 예전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초초해진 핵터는 남은 신성력을 전부 끌어 모아서 최후의 공격 마법을 펼쳤다.
“제발 죽어라, 파이널 피스트!”
웅웅웅∼
새로운 스킬이 창조되었다는 메시지가 끝나자마자 핵터의 주변으로 엄청난 빛이 모여들더니 하나의 거대한 주먹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주먹은 눈 깜짝할 사이에 청부업자의 몸을 강타했다.
“안 돼∼”
꽝∼
“커허헉∼”
―청부업자 ‘눈깔아’ 님을 물리쳤습니다.
―눈깔아 님은 더 이상 청부를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남은 청부업자는 2명입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눈깔아의 레벨이 워낙 높았기에 한꺼번에 5레벨이 오르면서 86레벨이 되었다.
핵터는 레벨이 오른다는 메시지를 들으며 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워들었다.
그것은 조금 전까지 눈깔아가 사용하던 검이었다.
“녀석이 흘린 검인가?”
[+11 파멸의 힘이 깃든 빛나는 검]
솜씨가 뛰어난 명장이 정령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명품 검이다.
미스릴과 오리하르콘 합금으로 이루어졌기에 스킬 증폭력도 뛰어나다.
등급:레전드(제작 아이템)
착용 제한:레벨 950 이상부터 착용 가능
내구도:5,341/6,000
공격력:800∼821(+74)
스킬 증폭: +580
기타:공격 속도 5% 증가. 화염계 스킬 데미지 12% 증가(상태창)
“오! 레전드급 제작 무기에 +11까지 강화된 무기라니.”
큐티가 말하기를 아이템 중에서 가장 최고의 등급은 신급이라고 했다.
하지만 신급 무기는 서버를 통틀어도 4∼5개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등급의 아이템이 레전드라고 했고 같은 등급이라고 해도 제작 아이템의 가격이 고가라고 했다.
또 강화라고 해서 +12까지 띄울 수 있는데, 특히 +10이상 강화된 무기는 상당한 금액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처음 경험해 보는 득템에 기분이 좋아진 핵터는 급히 아이템 거래창을 열었다.
“이 검의 시세가 어느 정도이지?”
아이템 판매 시 아무리 우수한 아이템이라고 해도 터무니없이 비싸게 올리면 판매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동안 아이템 거래 사이트를 뒤진 핵터는 마침내 똑같은 무기를 발견했다.
“어! 저건 강화가 안 되어 있는데도 3만5천 골드네.”
똑같은 무기지만 눈깔아의 검은 +11로 강화된 상태였다.
잠시 고민하던 핵터는 4만 골드의 가격에 눈깔아의 검을 판매 코너에 올렸다.
만일 검이 팔린다면 4만 골드는 100골드당 1만원 하는 현재의 시세를 감안했을 때 400만원이나 되는 거금이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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