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태권도 천재는 금메달이 너무 쉬움!

1. 통했다.

2021.12.20 조회 15,804 추천 261


 “아, 사범님. 언제까지 주무실 건데요오~”
 “하암···.”
 
 얼마나 존 거지?
 제법 그럴듯한 꿈을 꾼 걸 보니, 꽤 오래 졸았던 모양이다.
 
 “시킨 거 다 했어?”
 “네, ···아까 다했단 말이에요.”
 “하, 어머니 오늘은 왜 이렇게 늦으시냐.”
 
 이곳은 말이 태권도 도장이지, 어린이집이나 다름없다.
 방과 후 부모님의 퇴근 시간 전까지 아이들을 맡아주는 보육 시설.
 정규 수업 1시간 이후,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도장에 머물 수 있도록 했더니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높아지긴 했다.
 대개는 알아서 무리지어 놀기 마련인데,
 이렇게 짜여진 커리큘럼과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도 있다.
 
 “울 애기, 많이 기다렸지? 엄마 왔어~”
 “엄마아!!!”
 
 줄넘기나 백만개 쯤 더 시켜볼까. 입을 떼려던 순간.
 기다렸던 부모가 도장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네, 사범님. 안녕하세요. 오늘 제가 좀 늦었죠? 호호, 죄송해요. 가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학부모가 너스레를 떨며 인사했다.
 술냄새가 훅 끼쳐오는 게, 회식을 거나하게 하고 온 모양이었다.
 나로선 종종 있는 일이기에 개의치 않았다.
 
 “괜찮습니다. 잘가, 내일 보자.”
 “태권! 사범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때, 학부모가 경례를 하곤 허리를 푹 숙이고 있는 아이를 보며 웃음 지었다.
 
 “우리 아이가 태권도 다닌 뒤부터 인사를 너무 잘해요!”
 “배운 대로 잘하고 있나 보네요.”
 “감사해요, 사범님! 내일 봬요. 가자.”
 
 보자, 시간이 몇 시더라.
 늦게까지 남아있던 아이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나니, 벌써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하나 둘, 도장의 모든 불을 끄고, 어지럽게 널려진 놀이 도구를 정리하고.
 히터와 컴퓨터를 모두 끄고 나면.
 드디어 퇴근 시간··· 이긴 한데.
 
 [띠리리릭]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인은.
 
 [관장님]
 
 관장님은 도장을 차려놓고, 거의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다.
 서울에만 6개 도장을 하고 있으니 바쁘긴 하겠지만.
 
 “예, 문 닫았습니다. 관장님. 안그래도 전화드리려고 했는데.”
 “뭐야? 왜 이렇게 늦었어? 별 일은 없었고?”
 “아, 오늘 학부모들끼리 모임이 있었나 봐요. 별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 고생했고 들어가.”
 “예.”
 “아, 그리고.”
 “네.”
 “추가 근무수당은 어려운 거 알지?”
 
 나는 통화를 끊으며, 도장 앞에 주차되어 있는 낡은 봉고에 시동을 걸었다.
 
 [용희태권도 / 02-123-456x]
 
 한숨을 푹 내쉬자 차안에 입김이 모락 퍼졌다.
 
 “예, 알다마다요.”
 
 코너를 돌 때마다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는 봉고가 눈 쌓인 도로를 유유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쯤 달렸을까.
 봉고가 멈춘 곳은,
 [배달대행 부릉부릉] 사무실.
 
 “오늘 눈 오니까 추가 수당 있죠?”
 
 나는 낡은 헬멧을 쓰며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 * *
 
 태권도장 출근 시간은 12시.
 등원을 위한 차량 운행 때문에 일찍 집에서 봉고를 끌고 나온다.
 예정된 퇴근 시간은 8시이지만, 그보다 부모님들이 늦게 오면 자동으로 강제 야근행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시간은 배달대행업체에서 건당 페이를 받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배달입니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느냐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흙수저는 커녕 수저조차 물고 나오지 못한 천애 고아 인생은 살아 남기가 어렵다.
 대학 학자금과 생활비 대출 도합 4천만원의 이자와 원금이, 월급이 통장으로 들어옴과 동시에 물 흐르듯 꼬박꼬박 빠져나가고 있는 데다.
 월세과 관리비, 각종 세금을 제하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얼마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상황은 달라질 줄로만 알았다.
 실업팀이라도 들어가 후원사가 지원해 주는 돈을 받으며, 노력에 운까지 따라준다면, 메달권에 들어 연금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고.
 태권도라면 알아주는 용희대학교를 나왔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빚만 그득 쌓였을 뿐.
 
 “어이! 거기 배달! 후문으로 들어가셔야지 이쪽으로 출입하시면 안 돼요.”
 “···아, 원래 됐었는데. 알겠습니다.”
 
 욕심을 부린 탓이었다.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무리하게 하는 바람에 허리 디스크가 와버렸고,
 경기 컨디션에도 영향을 미쳐버렸다.
 한번 삐끗한 허리는 시도 때도 없이 고장 나버리기 일쑤였고, 결국 나는 선발전에서 번번이 탈락하는 노메달 선수가 되었다.
 
 “배달입니다.”
 “네! 거기 문 앞에 두고 가주세요.”
 “죄송하지만 결제가 안 되어 있어서요.”
 “아 정말요?”
 
 스륵.
 문이 열렸다.
 나는 익숙하게 헬멧을 열며 카드 결제기를 내밀었다.
 
 “오빠 결제가 안 됐다는데?”
 “아, 잠깐만, 여기 카드.”
 
 젊은 여자가 파자마 차림으로 나와 남자를 불렀다.
 반라차림으로 있던 남자가 카드 하나를 들고 나왔다.
 남자의 카드를 집어들고 결제를 하려는데,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었다.
 
 ‘이 얼굴 어디서 봤더라?’
 
 내가 멈칫하며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자, 그 쪽에서도 나를 한번 유심히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너. 김신 아니냐?”
 “···최우석?”
 
 * * *
 
 “와하하, 이 새끼 많이 컸네.”
 “난 너 TV에서만 봤지, 이렇게 실물로 보니까 또 다르네.”
 
 최우석은 같은 도장 출신 중 제일 잘 풀린 케이스.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데다, 집안도 잘 사는 편이라고 들었다.
 녀석과는 다른 고등학교로 배정되고 나서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됐다.
 가끔 씩은 대회에서 마주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마저도 내가 부상을 입은 뒤로 겨루기 대회 보다는 품새 대회 위주로 나가게 되면서 아예 마주치지 않게 되었다.
 
 “연락 좀 하지 그랬어. 다른 애들은 그래도 조금 보는데.”
 “이렇게 사는데 뭘 연락을 해.”
 “그래, 너 허리 다쳤단 얘긴 들었어. 그래도 품새 대회에서는 입상도 하고 그랬다고.”
 “그것도 다 옛날이야. 요즘은 ···그냥 작은 도장 사범으로 다니고. 이렇게 알바 하면서 지내.”
 
 최우석이 한사코 들어와 한잔하고 가라는 통에 앉긴 했지만.
 할 말이 떨어지니, 슬슬 어색한 타이밍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 그만 가볼게.”
 “야, 한잔 하고 가라니까.”
 “괜찮아. 나 하던 일도 마저 해야 되고.”
 “야, 이거 배달하면 기껏해야 얼마나 버는데. 내가 줄게 인마.”
 
 취기가 오른 탓인지 점점 속엣말을 서슴없이 꺼내놓는 최우식 때문에.
 슬슬 기분이 나빠지려 하기도 했고.
 
 “새끼야,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지갑에서 만원 짜리 몇장을 꺼내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다, 내가 벗어둔 헬멧 속으로 지폐를 밀어넣는 녀석을 보니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 했을 쯤.
 
 “맞다 오토바이 끌고 왔지, 대리비도 줄게. 너 집이 어디지? ···자아, 삼만원이면 되려나? 아니 오토바이가 대리가 되나? 크큭.”
 “오빠 취한거 가태.”
 “나 슬슬 올라온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이기도 하고, 대충 분위기만 맞춰주고 가려 했는데 점점 이건 아니지 싶었다.
 
 “갈게.”
 “어딜가, 임마. 튀는거냐?”
 “튄다니.”
 “큭···. 왜, 너 그때도 맨날 나랑 겨루기 하면 뒤로 쫄래 쫄래 튀기만 했었지. 기억 안 나냐? 사범님이 공격 좀 하라고 했던 거.”
 
 최우석이 내 변해버린 눈빛을 보며 한마디를 보탰다.
 
 “이 새낀 나한테 한번도 이긴 적이 없어.”
 
 이놈의 기억은 왜곡되어 있었다.
 또래보다 머리 하나가 컸던 초등학교 시절 때나 그랬지.
 그 뒤로는···.
 취한 놈과 말해 뭐할까.
 
 “친구가 많이 취한 거 같은데 잘 챙겨줘요.”
 “에이쒸~”
 
 헬멧 속에 꼬깃하게 구겨져 있는 지폐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뒤,
 머리에 꾹 눌러 쓰고 있는데.
 어디선가 벼락같은 발차기가 날아온다.
 
 퍼억!
 
 “이거 꼭 호구 헤드기어 같이 생겼네. 3점 추가요!”
 
 개소리는 어떻게 참아주겠는데 이건 선 넘었지.
 나는 고개를 돌려 장난스럽게 웃으며 주먹을 명치쪽으로 틀어오는 녀석의 손목을 콱 틀어쥐었다.
 
 * * *
 
 빠득 이가 갈렸다.
 어제 녀석을 패주고 왔어야 하는데,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만취 상태였던 점도 그랬고, 뒷 감당이 안 되서 그런 점도 있었다.
 
 감정에 휘둘려 철없는 짓을 벌일 만큼 여유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잠시라도 허튼 생각을 했다간 지금까지 버텨온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나는 각종 고지서가 쌓여있는 식탁에 앉아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띠링]
 
 그때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경애보육원]
 
 내가 스무살 성인이 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 별다른 왕래 없이 지내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육원에서 먼저 연락을 해온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신님을 보육원에 맡겼던 분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분이 돌아가시면서 김신님의 할아버지 되시는 분의 유품을 맡기며 전달을 요청해, 택배로 보냅니다. ㅡ경애 보육원장>
 
 인정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문자 메세지.
 안부 하나 묻기는 커녕 너무나도 사무적인 말투였다.
 하긴, 그때도 고아원생들을 그저 정부보조금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바라보는 것 같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었으니까.
 
 그와 동시에, 다른 메세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일류택배 금일 고객님의 택배가 도착할 예정입니다. 배달 예상시간은 9-11시 입니다. 부재 중일 경우 택배를 받으실 위치를 지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9시에서 11시 사이면 이제 곧 온다는 얘기인데.’
 
 대체 유품이라는 게 뭘까.
 나를 보육원에 맡긴 사람은 할아버지의 지인이라고 들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나를 그분에게 맡겼고, 그분은 나를 키울 형편이 되지 못해 경애 보육원에 나를 맡긴 것이다.
 기억도 나지 않는 갓난아이 일 때의 얘기지만, 보육원 선생님이 얘기해줘서 알고 있었다.
 
 ‘나를 보육원에 맡긴 분께서 이 아이는 꼭 태권도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지.’
 
 안그래도 취미나 여가 활동을 고민하고 있던 보육원장이 몇 해 후 인근 태권도장과 결연을 맺었고.
 나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태권도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 이렇게 태권도 사범 일을 하고 있고.
 
 쾅쾅ㅡ
 
 왔나 본데.
 
 문을 열자, 택배 기사는 온데 간데 없고 택배 박스 하나가 문 앞에 놓여있었다.
 
 ‘뭐길래···.’
 
 유골함만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택배박스를 열어 제끼자,
 의외의 물건이 박스 안에 다소곳하게 놓여 있었다.
 
 검고 기다란 물건의 정체는.
 
 ‘검은 띠?’
 
 나는 슬몃 웃으며 띠를 꺼냈다.
 군데군데가 낡고 해진 띠를 훑어 내리자, 가장 끝에 써 있는 이름 석자가 보였다.
 <김 태 용>
 
 ‘할아버지의 이름인가?’
 
 가만,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이름인데.
 
 띠를 들어 허리에 한번 휙 감아 보았다.
 그리고 능숙한 솜씨로 띠를 동여 메자,
 
 [신규 주인 확인 중···]
 [’띠’가 신규 주인을 만나 활성화 됩니다.]
 [’김 신’ 확인 됨]
 [띠 레벨 이 초기화 됩니다.]
 [···]
 [Lv.1 흰 띠]
 [포인트를 획득해야 레벨업 할 수 있습니다.]
 [블라인드 미션이 부여되었습니다.]
 [0/2 ??포인트]
 
 “뭐야?”
 
 주르륵 떠오르는 게임 같은 시스템 창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크게 내버렸다.
 방음이 안되는 낡은 고시원이기에 주인 아주머니가 청소를 하다 말고 놀라 내 방을 힐끔 들여다 봤다.
 
 “무슨 일이야, 총각?”
 “아, 별일 아니에요. 아주머니.”
 
 나는 고개를 숙이며 소란스럽게 해서 미안하다는 제스쳐를 취하며 말했다.
 그러자,
 
 [Lv.1 흰 띠]
 [블라인드 미션 달성이 감지되었습니다.]
 [달성 주제는 ‘예의’입니다.]
 [예의 있게 행동하면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고시원장 김숙자가 당신을 예의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의 포인트 1/2]
 
 “아휴, 놀랬잖아. 요즘 세상이 흉흉해서 조금만 누가 소리쳐도 놀란다니까요. 밥은 먹었고? 주방에 밥 해놨으니까 가서 챙겨먹고.”
 “예.”
 
 지금 이걸로 뭔가 된 거라고?
 그렇다면.
 나는 살갑게 웃으며 한마디를 더 건넸다.
 
 “아주머니는 드셨어요?”
 
 [예의 포인트 2/2]
 [예의포인트 달성 완료.]
 
 [띠링!]
 [레벨 업!]
 [Lv.1 흰 띠 → Lv.2 노란 띠]
 [축하합니다! 보상을 획득합니다!]
 
 ‘통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눈 앞의 모든 형체가 허물어지며 하늘이 노래지기 시작했다.

댓글(24)

sh*******    
오우 술디님작품이네요 잘보고 가겠습니다^^7
2021.12.21 22:59
술디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7
2021.12.23 18:04
남소월    
ㅋㅋㅋㅋㅋ 재밌어요! 잘읽고갑니다
2021.12.25 21:16
숲속고요    
1화가 길어서 좋네요
2022.01.10 00:38
Mep    
건필
2022.01.10 02:01
세비허    
잘 보고 갑니다 건필 하세요
2022.01.10 02:30
ra********    
재밌는 설정이네요~
2022.01.10 02:42
Bhagavat    
요즘은 태권도장이 키즈카페와 어린이집 겸용 시설 처럼 운영된다고 하더라고요
2022.01.10 06:09
팔랑의    
으음 시스템이었네
2022.01.10 22:16
bs****    
잘 보고 갑니다
2022.01.10 22:38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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