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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리스 1권-1

2015.01.15 조회 696 추천 4


 비천신공의 비밀
 
 Prologue 단우현
 
 1
 
 단우현은 이름조차 없는 삼류무사에 불과했지만 꿈이 하나 있었다.
 언젠가 절대고수가 돼서 세상을 자신의 손아래 두겠다는 원대한 꿈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같이 표사 일을 하는 동료들은 피식 웃는다.
 상대할 가치도 없는 이야기니 말이다.
 기연은 개나 소나 얻는 줄 아는가.
 더군다나 자신들의 평균나이가 서른이 넘었다. 그동안 변변찮은 무공 하나 배우지 못해 삼류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기연을 얻는다 해도 어느 세월에 수련해서 절대고수가 된단 말인가.
 그런 핀잔 속에서도 단우현은 묵묵하게 수련을 했다.
 시간이 나면 모두 수련에 투자했다. 그렇기 때문인지 다른 동료들에 비해 월등한 실력을 자랑했지만, 그뿐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삼류는 삼류였다.
 제대로 된 내공심법 하나 없이 30년을 넘게 살아왔다.
 보통 사람보다는 낫겠지만, 차후 제대로 된 내공심법을 구한다 해도 익힐 수 있으리라 장담은 불가능했다.
 이미 내기가 흐를 기도(氣道)에 불순물이 가득 들어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단우현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수련을 했다.
 사실 자신도 자신이 하는 말이 얼마나 허황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런다고 절대고수가 될 리 만무하다는 것도.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이런 꿈조차 없다면 자신의 존재 이유가 사라질 것 같았기에 주위에서 아무리 망상이라 할지라도 희망을 놓지 않은 것이다.
 순진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단우현은 이렇게 생각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안된다고 손해 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2
 
 장칠환이 잠자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단우현을 발로 툭툭 차며 말했다.
 “어이, 우현. 어서 일어나라고.”
 그러나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왜 건드리냐고 짜증어린 표정과 신음을 흘리며 자신을 건드리는 장칠환의 발을 손으로 후려칠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장칠환과 동료들이 피식 웃었다.
 “어쭈, 어이 우현! 정말 안 일어날 텐가?”
 “우으응!”
 신음과 동시에 이불을 휙 들어 머리를 감싼다.
 시끄럽다는 반응이다.
 “허, 그러게 밤새지 말고 잠이나 쳐 자라니까. 무슨 수련을 한답시고 매일 같이 설치는지. 쯧.”
 장칠환이 답답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그때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옆에서 구경하던 다른 동료 표사가 말했다.
 “어이, 칠환. 어제 잠 안온다고 밤새 칼질 해대느라 피곤한 것 같은데 그냥 놓고 가지. 어차피 잠시 후엔 일어날 텐데, 깨면 허둥지둥 따라오지 않겠어?”
 “그럴까?”
 동료 표사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장칠환의 표정에 장난기가 머물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Chapter 1 비천신공을 얻다
 
 1
 
 단우현은 설마설마 했었다.
 자고 일어나 보니 주위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녀석들이 다 어디 갔지? 표두님도 없어졌네? 표물도? 서, 설마!”
 숙소 주위를 모두 둘러본 후 다급하게 주인을 찾아가니 깜짝 놀라며 아직도 안 떠났냐고 오히려 자신에게 되묻는다.
 ‘뭐 이런 엿 같은…….’
 주인의 말에 단우현은 뒤늦게 어찌된 사정인지 깨닫게 되었다.
 같이 표행을 하던 동료들이 장난삼아 자신을 버리고 떠난 것이다.
 “산적이나 만나라. 망할 새끼들. 퉷!”
 씩씩거리며 다급하게 숙소에서 나온 단우현.
 동료들의 뒤를 따르고자 급히 마을 밖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이미 시간이 꽤 지난 상태였다.
 따라잡으려면 꼬박 밤을 세어야 할 것 같았다.
 어차피 어떤 길을 통해 가는지 알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예전에 한번 가봤던 길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다만, 녀석들을 중간에 잡아서 내쳐야 이 꿍하니 뭉쳐있는 속이 풀릴 것 같았다.
 단우현은 씩씩거리며 험한 산등선을 올려다보았다.
 저곳을 통해 넘어가면 밤을 새기 전에 따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산행을 택했지만 단우현은 얼마 걷지도 않고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게 되었다.
 “날이 우중충하군. 제기랄! 비라도 올 것 같잖아.”
 놀랍게도 단우현이 투덜거리기 무섭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올 것 같아가 아니라 오는 군. 후…….”
 후두둑! 후두두두둑!
 빗소리가 갈수록 거칠어진다.
 걱정이다.
 이 빗길에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지.
 비오는 데다 어두운 산은 위험하다. 때문에 뒤를 돌아보며 다시 마을로 돌아갈까 생각해 보았지만, 다시 돌아가기 뭐한 어정쩡한 위치인지라 그냥 앞으로 가고자 마음먹었다.
 빗줄기가 서서히 굵어진다.
 단우현은 비를 피하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어느새 비는 한 치 앞을 살피기도 어려울 정도로 쏟아졌다.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큰 빗방울이 전신을 두드린다. 몸이 무겁다.
 ‘어디 잠시 몸을 숨길만한 동혈이라도 없나?’ 그런 생극을 하며 무작정 뛰다 보니까 방향을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그때 저 앞에 오두막 집이 눈에 들어왔다.
 단우현은 잘 됐구나 싶어 그곳으로 달렸다. 허름하다 못해 많이 헐어 보였지만 지금은 비를 피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동혈보다는 훨씬 나아보이지 않는가.
 우선은 비부터 피하고 보자는 생각에 무턱대고 오두막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주인을 불러 보았다.
 “여보시오.”
 하지만 당연히 반응이 있을 리 없었다.
 이렇게 낡은 것을 보니 주인이 오래전에 버린 것이 확실해 보였기 때문이다.
 멋쩍은 미소를 입가에 물고는 가볍게 물기를 털고 방문을 열었다.
 동시에 화들짝 놀랐다.
 차가운 방 한 귀퉁이에 나이를 알 수 없는 노인 한 명이 다 해진 이불로 온몸을 감싸곤 기침을 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으음, 쿨럭! 쿨럭…….”
 “노, 노인장!”
 단우현은 다급하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노인의 몸을 가볍게 흔들어 보았다.
 노인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맥을 잡아보았다.
 ‘맥이 희박하다.’
 기력이 한계에 도달한 듯해 보인다. 죽을 때가 다 된 것 같았다.
 그때 노인의 눈이 슬며시 떠진다.
 노인의 눈은 희뿌연 막이라도 쳐 있는 것처럼 뿌옇다.
 시력도 좋지 못하단 말이다.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질문은 던졌지만 괜찮을 리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에 반응을 하는 것을 보니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가는데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우선은 온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재빨리 자신의 우의를 벗어 놓고 밖으로 나갔다.
 불을 지피기 위해서다.
 하지만 아무리 집 안을 돌아봐도 땔감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젖은 나무를 쓸 순 없었다.
 그때 주방 쪽 구석에 썩어서 무너져 가는 나무기둥이 보여 잡아당겨 보았다.
 너무나 쉽게 부러지며 흙으로 쌓은 벽이 와르르 무너진다. 사실 이미 반쯤은 무너져 있던 벽인지라 크게 무너질 것도 없었다.
 단우현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화섭자를 이용해 아궁이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 썩은 나무를 아궁이에 밀어 넣었다.
 불은 금세 타올랐다.
 활활 타오르며 나무를 왈그락거리며 집어 삼키는 붉은 불길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무기둥은 양이 한정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집 안에 굴러다니던 낡은 도끼를 찾아낸 단우현은 집 주위의 나무를 벌목해 왔다. 그리고 불가에 말리곤 아궁이에 밀어 넣었다.
 체 마르지 않은 장작에서 연기가 자옥하게 피어오른다.
 “콜록! 콜록! 휴, 힘들다.”
 연기가 조금 심하긴 하지만 장작의 양을 보아 한동안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단우현이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니 어느새 아랫목이 뜨끈뜨끈해졌다.
 그 때문일까? 한우현의 눈엔 노인의 안색이 그나마 좋아진 듯 보였다.
 단우현은 자주 오가며 불이 꺼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노인을 보살폈다.
 
 2
 
 이튿날.
 새벽녘에 그친 비로 인해 시원하고 상큼한 공기가 폐 속 가득히 밀려들어 온다.
 단우현은 그 공기를 잔뜩 들이마시며 찌뿌듯한 몸을 풀었다.
 부엌 한쪽 구석에서 잠깐 눈을 붙였지만 충분한 휴식을 해서 그런지 피로가 달아나는 기분이다.
 방 안에 들어가니 노인은 아직도 자고 있다.
 죽이라도 해먹여야겠다 싶어 부엌을 뒤져보았지만, 별게 없었다.
 그나마 쌀독에 약간의 쌀이 남아 있었는데 그 위에 작은 쌀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단우현은 인상을 구기곤 그 쌀을 퍼서 개울가에서 씻었다.
 그리고 쌀을 으깨서 죽을 끓였다.
 그냥 쌀죽만으로는 모자라 보였기에 주위에서 쑥 같은 것을 캐와 같이 으깨 넣었다.
 노인이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단우현은 재빨리 노인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노인장! 노인장! 괜찮으십니까?”
 “누, 누구…….”
 노인이 힘없는 표정으로 단우현을 올려다보았다. 단우현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나가던 과객인데 비를 피하기 위해 이 집에 들어왔다가 노인장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찌하여 이런 곳에 혼자 있습니까? 다른 식솔은 없습니까?”
 그 말에 노인이 힘없이 말문을 열었다.
 “없다오…….”
 “가족이 없단 말씀입니까?”
 노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단우현은 순간 속이 울컥하며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마지막 순간을 지켜줄 가족이 없다니…….
 순간 예전에 돌아가신 부모님이 떠오르자 갑자기 외로움이 전신을 사무친다. 그래서 다른 말을 더 안하고 밖으로 나가 지어놓은 죽을 가져왔다.
 “이거라도 드십시오. 먹어야 힘이 날 것 아닙니까.”
 “머, 먹지 않아도 된다오. 어차피 죽을 늙은이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늙은이가 먹어서 무엇 하겠소.”
 노인의 눈동자가 흐릿하게 젖어온다.
 단우현은 눈앞의 이 노인이 사연이 많은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순간, 어째서일까.
 노인의 얼굴과 자신의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지는 이유가.
 조금 전 가족을 떠올린 탓인가?
 “어서 드십시오! 죽어가는 귀신도 먹어야 때깔이 고운 법입니다. 귀신 먹으라고 재사도 치르는데 산사람이 못 먹어서야 쓰겠습니까! 어서 드십쇼!”
 단우현은 노인의 몸을 일으키고는 입에 죽을 떠 넣어줬다.
 잠시 죽을 바라보던 노인은 한줄기 눈물을 흘리더니 결국 입을 열어 죽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 노인은 다시 자리에 누웠다.
 앉아 있을 기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맙소, 젊은 양반.”
 “됐습니다. 공치사 들으려고 한 것이 아니니. 제가 아니라도 누구라도 눈앞에 사람이 쓰려져 간다면 이리 했을 것입니다.”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쉬운 일이 아니라오. 내 이런 말을 하긴 뭐한 추잡한 늙은이지만 젊은 양반 같은 사람은 흔치 않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오. 쿨럭! 쿨럭!”
 단우현은 그런 노골적인 칭찬에 낯을 붉히고 말았다.
 “그런데 이 산은 어찌하여 올라오셨소?”
 “아차! 이놈의 망할 녀석들!”
 뒤늦게 자신을 버리고 떠난 동료 표사들이 머릿속에 떠오른 단우현이었다. 분노의 빛이 역력했으나 곧 시들해지고 말았다.
 사실 자신이 장난이었던 것을 가지고 오래 꽁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흠, 무슨 사정이 있었나 보군요.”
 “아닙니다. 그런 게 사정이면 이 세상에 사정 아닌 게 어디 있겠습니까. 큭큭.”
 노인이 웃는다.
 “후후, 사정이란 별 게 아니라오. 사람이 사는 일이 모두 사정인 것이니 말이오.”
 “그런 노인은 무슨 사정이 있어 이렇게 혼자 있단 말입니까? 아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하지 않았군요. 저는 단우현이라고 합니다.”
 “난 내 이름을 잊은 지 오래라오. 그냥 방 노인이라 불러주시구려.”
 더 깊이 파고 들어갈 이유도 없기에 단우현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럼 방 노인. 어찌하여 이곳에 혼자 살게 되셨습니까?”
 “나는, 쿨럭! 쿨럭!”
 “괜찮으십니까!”
 노인이 손을 가볍게 흔든다.
 “괘, 괜찮다오. 그럼 이야길 하외다. 나는 그다지 좋지 못한 일을 하던 사람이었소. 한때는 가족이란 것도 있었지만……. 큭큭.”
 입은 웃지만 눈에서는 하염없이 반성의 눈물이 흐른다.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 욕심이 가족을 가져갔다오. 사실 그리 될 줄 모르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나는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오. 가족도 잃고, 집도 이웃도, 친구도 모든 것을 잃게 되었지. 으흐흐흑. 모, 모두 내 구차한 욕심 때문이었소. 쿨럭!”
 “…….”
 자세한 이야기는 굳이 숨기려는 모습의 노인.
 오랜 시간이 흘렀을 법한데도 아직까지 이야길 못하는 그의 슬픔이 가슴에 느껴진다.
 노인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세상에 환멸을 느끼게 된 다는 모든 것을 지우고자 이 깊은 산중에 들어와 홀로 살다 홀로 죽기로 결심했다오. 그런데 정작 죽음에 임박하고 보니 너무나 무섭더이다.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죽음 직전에 깨닫게 된 것이라오. 바로 외로움이라오. 외로움.”
 “외로움…….”
 “그렇다오. 내가 죽어도 죽은 것을 아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오. 아니, 나란 존재가 있었는지도 아는 사람이 없겠지. 그렇지만 나는 살아 있었다오. 내가 선택하긴 했지만, 나는 혼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었다오. 가족들이 너무도 보고 싶었소. 죽고 싶지 않았단 말이오. 윽윽윽!”
 약간 횡설수설하기는 했지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짐작 할 수는 있었다.
 울고 싶어도 아직까지 크게 목 놓아 울지도 못하는 노인의 심정에 가슴이 전해진다. 그때 다시 아버님과 어머니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신이 사고만 치고 다니던 철부지 그때 그 시절 부모님은 화병으로 돌아가셨다.
 하나 있던 자식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얼마나 속이 상하고 외로우셨을까. 단우현은 그때 부모님의 마음이 지금 방 노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중에 철이 들고 자신의 모습에 분을 토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단우현은 그때부터 공부와 무공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이 혼자 배울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늦추지 않고 자신이 배울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 수련을 쌓았다.
 저승에서나마 자랑스럽게 느끼실 만한 아들이 되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절대고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그런데 지금 어째서인지 방 노인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 방 노인과 부모님이 겹쳐 보이는 것이다.
 결국 단우현은 방 노인의 임종을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원래는 이대로 떠날 생각이었으나, 부모님께 못해드렸던 그 기억이 단우현을 붙잡았다.
 아마도 방 노인의 수명은 며칠 남지 않았으리라.
 지금 이 상황이 그때 부모님께 못해드린 것을 해드리라는 하늘의 뜻처럼 여기고는 성심성의를 다했다. 며칠도 되지 않았으나 단우현은 정말 방 노인을 자신의 돌아가신 부모님처럼 모셨다.
 그런 단우현의 진심이 느껴졌던 것일까?
 방 노인이 숨을 거두기 바로 전 단우현을 불렀다.
 “이, 이보게 현이, 고맙네. 나 혼자 외로이 죽을 것을 생각하며 두려워했네만 자네로 인해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네.”
 “그런 말 마십시오. 저도 영감님 덕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영감의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아버지를 느낄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따스하더군요. 그때 아버지께서 부르셨을 때 왜 그렇게 피해 다녔었는지 후회가 일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분명 영감님께서 알려준 것 이상으로 따스했을 것인데…….”
 단우현의 이야기에 방 노인이 웃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품에서 책을 한 권 꺼내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내 작은 선물이라네.”
 단우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게 무엇이냐 다시 물었다.
 그러나 방 노인은 신중한 표정만 지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대충 보니 겉표지에 비천신공(飛天神功)이라는 거창한 제목이 쓰여 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용(龍)이나 호(虎) 혹은 파천(破天)이나 또 신공(神功)이란 글자가 들어간 이런 부류의 삼류 무공 서적은 저잣거리에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방 노인의 모습을 보니 한 번도 품에서 놓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 어찌 보면 이 책 때문에 은거를 생각하고 이 깊은 산중에 살아온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허무맹랑한 이름의 무공서가 정말 대단한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말이다.
 순박하고 무지한 이 방 노인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단우현은 그런 속내를 모두 지우고 태연하게 거절하며 말을 이었다.
 “이런 거 필요 없습니다. 그냥 쾌차하여 일어나시기만 하십쇼.”
 “허허, 한낮 범인에 불과한 노인이지만 알 수 있다네. 내 수명이 끝을 보고 있음을 말이지. 그런 내가 이것을 가지고 있어서 무엇 하겠는가. 이게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른다네. 하지만 그 뭔지도 모르는 이것을 나는 욕심을 냈었고, 그 욕심의 대가로 내 가족들을 모두 잃었다네.”
 반어법이다.
 그만큼 이 책을 중히 여겨왔다는 걸 알리고 싶은 것이다.
 이런 책이 뭐라고 그렇게까지 강조를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방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정말 뭐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한참 이야기를 듣고 말문을 열었다.
 “영감님”
 거절 의사를 밝히려 했지만 방 노인은 단우현에게 말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나에게는 쓸모가 없는 책이라네. 하지만 자네에겐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만. 이제 이 책과 관련된 나의 업이 모두 다한 것 같네. 제발 받아주게나.”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우습다고 남의 성의를 무시 할 수는 없었다.
 노인은 자신을 돌봐주었다는 이유로 이것을 주며 고마움을 표현하려는 것일 테니 말이다.
 ‘마음만 받자.’
 단우현이 받아들자 방 노인이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쿨럭쿨럭. 이, 이제 갈 때가 된 듯하군. 생판 남인 나를 돌봐줘서 너무 고마웠다네.”
 방 노인은 그 말을 남기고 마치 잠에 빠진 듯이 눈을 감았다.
 모든 근심과 상념을 털어낸 듯 시원한 표정이다.
 단우현이 편안하게 숨을 거둔 노인을 보고 말문을 열었다.
 “감사하게 잘 받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노인장께서는 편하게 눈을 감으십시오.”
 단우현의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숨을 거둔 방 노인의 입꼬리가 약간 올라간 듯처럼 보였다.
 그 후 단우현은 방 노인의 시신을 양지바른 땅에 묻고 정성을 다해 상을 치룬 후 뒤늦게야 그 책을 꺼내들었다.
 “후, 이 책이 뭐기에…….”
 단우현은 책 표지를 가볍게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단우현의 눈에 이채가 띄었다.
 어째서 방 노인이 책을 건네줬을 때 보지 못했던 것일까?
 이 글씨체를 말이다.
 
 비천신공(飛天神功)
 
 용사비등(龍蛇飛騰)의 필체(筆體).
 글씨 한 획 한 획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힘이 담겨 있다.
 글이란 사람의 마음이다.
 글씨 하나만 봐도 사람의 모든 것을 보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창이라 불린다.
 처음에는 우습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런 글씨는 아무나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든 방 노인의 무덤으로 시선이 간다.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린 단우현이 책장을 넘긴다. 일필휘지로 써 내린 강한 필체가 시선을 압도한다.
 ‘이것은 진짜다!’
 단우현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기연이다.
 기연을 만난 것이다.
 단우현은 기쁨으로 인해 머릿속이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 순간 단우현은 무덤을 향해 아홉 번의 절을 했다.
 지금부터 방 노인은 단우현의 스승이 된 것이다.
 단우현은 방 노인이 기거하던 곳을 집 삼아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책을 펼쳐보니 이 비천신공은 특이하게도 심법만 존재했다. 아니 정확히는 몇 가지 기문(奇問)의 술법(術法)과 수법(手法)이 포함 되어 있긴 했다.
 하나 더 독특한 것이 있다면 심법에 단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총 19단계였다.
 첫 수련을 하기 전에는 그것을 보곤 의심을 했다.
 아니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심법에 단계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이것을 믿어야 하는가.’
 하지만 한번 뽑은 칼이었다.
 단우현은 과감하게 입문에 적혀 있던 첫 단계의 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순간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청량한 기운이 전신을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자신이 익히고 있던 심법나부랭이로서는 느낄 수 없던 강렬한 충격이었다.
 더 이상 의심을 하고자 해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한 단계를 넘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그 기문의 술법과 수법도 익혀야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것들은 쉽게 수결로 구성이 되어 있었기에 익히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전혀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었지만, 그냥 익히기로 했다. 몸이 익으면 언젠가 자연스레 깨닫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3
 
 그 후로 14년의 시간이 지났다.
 방 노인의 임종을 지켜보았을 당시 서른이었으니 지금은 마흔넷이 된 것이다.
 헌데 놀랍게도 단우현의 얼굴은 20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비천신공을 익히자 생각지도 못하게 얼굴이 어려진 것이다.
 어려진 수준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검사답지 않게 여린 생김새로 놀림을 당하던 단우현의 얼굴이 더욱 여리게 변해버렸다.
 선이 가늘어지고 눈, 코, 입이 둥글게 자리 잡았다.
 얼핏 보면 여자로 오해를 받을 정도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근골도 약간 가냘프고 날렵하게 변해버렸기에 그 정도가 심했다.
 신경이 쓰였다.
 젊어 보이는 것은 상관이 없었지만, 여성스러워 보이게 되는 것은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부작용인가? 아니면 효용인가.’
 그럼에도 단우현은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심법의 놀라운 효능 때문이다.
 단전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득 들어찬 이 기운.
 그 기운이 얼마나 대단한지 검을 들고 순수한 기운을 밀어내는 것만으로도 강(罡)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였다.
 ‘검강이라니. 검강이라니…….’
 항상 시도해보는 일이지만, 오묘한 빛의 검강을 볼 때면 언제나 심장이 미칠 듯이 뛰는 게 느껴진다.
 과거 자신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꿈의 경지가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강해진다는 것은 중독이었다.
 스스로 강해지는 것이 느껴지자 단우현은 무공을 쌓으며 일어나는 의문을 무시하며 비천신공을 연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법을 익히면서 중간 중간 단계별로 있는 기문의 술법이 미심쩍었으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만 보았을 때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기에 신경을 끊었다.
 더군다나 어째서인지 기문의 술법을 익히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가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에 익히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또 지났다.
 만류귀종이라 했던가.
 축기만으로 일대종사 수준의 내력이 쌓이자 자신이 보지 못하던 것이 보이고 알지 못하던 사실을 알게 되며 모르던 사실들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오성(悟性)이 그만큼 발달되었다는 뜻이다.
 드디어 단우현이 진정한 초절정 고수의 풍모를 지니게 된 것이다.
 단지 14년 만에 말이다.
 “이제 이것만 익히면 끝인 것인가.”
 단우현은 비천신공의 최종단계인 19번째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효능을 바탕으로 믿음이 생긴 단우현은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고 책에 적힌 데로 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잔잔하게 전신을 흐르던 기가 마치 장마철의 강물마냥 범람하려는 것이 아닌가!
 눈 깜짝할 순간에 벌어진 일이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논리적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막을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최대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갑자기 불어난 기를 막기 위해 애를 썼다.
 이대로 가다가는 전신의 혈맥이 거대한 기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제, 제길 이, 이게 대체 무슨…….”
 기가 계속 불어난다.
 위험하다.
 불어나는 기를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다.
 방출이건 뭐 건 기를 소모해야만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를 버리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비천신공을 익히며 자연스럽게 습득했던 기문의 술법과 수법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와 동시에 단우현은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익힌 비천신공이 이런 상황으로 자신을 이끌었단 사실을 말이다. 한마디로 지금까지의 모든 수련이 이런 상황이 되도록 유도해왔다는 것이다.
 으드득.
 분노로 이가 갈렸다.
 자신에게 떡을 먹이면서 눈을 가린 것이다.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비천신공의 의도대로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기를 방출하기 위해 기가 흘러 들어가려는 통로를 열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그러자 자신이 익혔던 익숙한 수결을 따라 기가 방사되기 시작했다.
 그 기는 사방으로 흩어지며 땅에 거대한 진을 그렸다.
 자신이 익히고 있던 기문의 술법이 이 진 안에 담겨진다.
 무의식중에 그 방향으로 기를 뿌리고 있다는 뜻이다.
 알 수 없는 문장과 무늬가 혼합되며 거대한 원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지만 단우현은 주위에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몰랐다.
 제대로 살펴볼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가 소멸되며 일어나는 엄청난 고통 때문이다.
 “으으으으윽!”
 이제는 기를 방출하는 수준이 아니다.
 방출되는 기의 흐름에 따라 남아 있어야 할 최소한의 기조차 엄청난 속도로 빨려나간다. 이대로 가다가는 진원진기마저 빨려서 목내이(木乃伊)로 변할 것이다.
 죽지 않기 위해, 기를 방출한 것 때문에 죽을 상황에 처하다니…….
 웃기지도 않은 일이다.
 기의 방출을 더 이상 허용해서는 안됐다.
 막아야만 했다.
 단우현은 자신 있었다.
 이 비천신공의 심법이 아무리 뛰어난 효능을 지니고 있다 해도 자신의 끈질긴 집념이 없었다면 14년 만에 대성이란 있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비천신공에 맨 첫 장에 적혀 있던 글귀였다.
 침장면균(沈長綿勻).
 그것이 떠오름과 동시에 고통을 이겨내며 눈을 감았다. 동시에 숨을 들이마시고 내뿜는 것에 집중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숨 쉬는 것을 자율신경에 맡긴다.
 그러다보니 올바른 호흡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올바른 호흡법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게 된다. 호흡법이 무에 중요하냐고 반문할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올바른 호흡만으로도 무병장수가 가능하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호흡이 신체의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신체의 균형은 마음의 균형과도 같다.
 올바른 호흡법은 실천하는 것은 어렵지만 운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들숨과 날숨은 자율신경의 작용이긴 하지만 정신의 지배로도 운용이 가능하므로 집중을 통해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면 호흡이 조절되기 때문이다.
 침장면균(沈長綿勻)이라는 글귀의 뜻은 바로 이러했다.
 호흡은 언제나 깊고(沈) 길며(長), 끊이지 않고(綿) 고르게 하라(勻). 마음(心)을 따라서 뜻(意)이 움직이고, 뜻을 따라서 기(氣)가 움직인다. 그리하면 기를 따라서 혈(血)이 움직이게 되고, 혈(血)을 따라서 몸이 움직인다.
 이것을 심조복(心調伏)이라 한다.
 심조복이란 마음을 다스려 내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단우현은 이 심조복(心調伏)에 충실했다. 마음도 제어하지 못하면서 기를 제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단우현은 그렇게 정신을 집중하게 되었다.
 그러자 미친 듯이 빨려나가던 기의 흐름에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좋은 현상이다.
 단우현은 이를 악물고 그 기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단우현은 그 기의 흐름을 바꾸어 자신의 혈도로 다시 밀어 넣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상당한 양의 기가 몸 밖으로 나가고 난 후였다.
 기력이 쇄한 탓에 다리가 휘청거린다.
 바로 그때.
 우우우우우웅!
 자신의 발밑에서 거대한 빛무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단우현은 당혹감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대한 진 한 중앙에 자신이 서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이 이름 모를 진이 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안했다.
 단우현은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겨우 건저 낸 티끌만한 내력을 다리로 밀어 내며 바닥을 박차려던 순간.
 화악!
 거대한 빛무리가 단우현의 몸을 집어 삼켰다.
 그때 사람의 인형을 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단우현을 집어삼킨 그 빛무리 속으로 스며든 것처럼 보였던 것은 착각일까?
 
 
 4
 
 “으, 으아아아아악!”
 무중력상태의 기분을 느끼며 전신의 기운이 모조리 소멸된 듯 무기력한 상태에 빠진 단우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비명을 지르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빛무리는 아직도 그대로인데 몸에 무게감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민감한 단우현의 피부로 바람이 느껴진다.
 그것을 느낀 시점으로부터 자신을 감싸고 있던 빛무리가 서서히 옅어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주위의 사물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빛무리가 사라진 것과 자신의 몸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단우현은 안도의 한숨을 토했다.
 “뭐, 뭐야? 아무것도 아닌가? 괜히 겁을 먹었던 모양이로군.”
 주위의 풍경이 조금 변한 것 외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쿵! 쿵! 쿵! 쿵!
 거대한 땅울림이 일어났다.
 거친 기척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뭐, 뭐지?”
 짙은 살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쿠흐! 쿠흐!
 거대한 아름드리나무가 뒤로 넘어간다.
 그 뒤로 소머리를 한 거대한 괴물이 시뻘겋게 충혈된 거대한 눈을 대굴대굴 굴리며 사방을 돌아본다.
 그러다가 단우현을 찾아냈다.
 그 눈에 흉성이 드러난다.
 공격하려는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괴물을 목도한 단우현은 당황했다.
 “허헙! 이, 이게 뭐…….”
 하지만 다급하게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을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상대의 저의가 뭔지 알고 있으면서 곱게 당해줄 단우현이 아니다.
 툭툭.
 움찔.
 단우현의 얼굴빛이 보기 좋게 질려간다.
 검이 손에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련을 할 때 검을 풀어 놓고 주위에 놔두는 습관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가부좌를 틀고 내공을 축기하는 수련을 하려는데 허리춤의 검은 상당히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떠오르자 상당히 암울해졌다.
 “썩을! 그래도 그냥 죽진 않겠다.”
 녀석의 몸을 보니 저돌적 힘은 있겠지만 별로 민첩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몸 안의 내력을 살펴보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과거 자신이 처음 비천신공을 익히기 전보다 못한 것 같다.
 그래도 완전하진 않지만 무(武)의 극(極)을 경험한 자신이다.
 단우현은 발바닥에 있는 용천혈로 진기를 밀어 넣은 후 녀석의 움직임을 기다렸다.
 아니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녀석은 괴성을 토하며 단우현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단우현은 바닥으로 땅을 가볍게 박찼다.
 그러자 몸이 부웅 뜨더니 나무 위로 가뿐하게 날아올랐다.
 마치 깃털보다 가벼운 움직임이다.
 ‘어, 어떻게…….’
 이것은 단우현조차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생각은 나중의 일.
 지금은 생존이 걸린 전투가 임박한 순간이다. 바짝 긴장한 채 나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쿵!
 그때 소머리 괴물이 단우현이 있던 자리를 그대로 들이 받으며 뒤에 있던 나무에 뿔이 박히고 말았다.
 힘겹게 뿔을 뽑아낸 소머리 괴물이 콧김을 킁킁거리며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쿠루? 쿠릉쿠릉.”
 단우현을 찾는 것이리라.
 하지만 하늘 위로 날아올랐을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의아한 듯 고개를 꺄웃거리곤 이윽고 쿵쿵거리며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단우현은 그것을 보고 멍한 표정으로 땅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얼마 후 그와 비슷한 녀석들 다섯 놈이 조금 전 녀석이 간 길을 따라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뒤늦게 생각을 정리한 단우현이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펼쳐진 거대한 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숲의 바다 위로 떠있는 크고 작은 3개의 달.
 그것을 목격한 단우현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이, 이럴 수가…… 여기는?”
 이곳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이 살던 중원의 그 어느 곳도 아닌 것 같았다.
 이런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3개의 달이라니.
 자신이 있던 세상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Chapter 2 오투크를 따르다
 
 1
 
 단우현은 난감했다.
 내려갈라치면 밑에는 수많은 괴물들이 우글거리며 몰려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다시 올라가서 한숨을 내쉴라치면 사방에서 괴성과 단말마의 비명이 고막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불안했다.
 어디서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몸 상태가 완전치 못한 지금 움직인다는 것은 자살 행위일 것이다.
 ‘이곳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단우현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몸 상태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를 끌어 올려 내부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전신 이곳저곳에 일어난 경락의 손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과도한 기의 폭주로 인해서 경락에 약간의 타격이 있었던 듯하다.
 그나마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몸 상태가 좋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라면 일주일 정도의 요양으로 완치가 가능할 듯싶었다.
 단지, 문제라면 이런 곳에서 일주일 동안 요양할 곳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신이 어째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 떠올리게 되었다.
 비천신공.
 “으득! 대체 어떤 개 같은 자식이 그런 책을 만든 거야! 왜!”
 그 책을 건네준 방 노인의 얼굴이 떠오르긴 했지만 금세 지웠다.
 방 노인이 무슨 죄겠는가.
 보물이라 생각한 것을 고마움의 표시로 준 것일 뿐인데 말이다.
 무엇보다 의도적으로 건네 준 것도 아닐테고 말이다.
 이런 책인 것을 알고 있었다면 평생을 그렇게 외로이 살지 않았었을 테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된 것도 자신이 택한 길이라 볼 수 있었다.
 자신이 그 신공을 배우지 않았다면 이곳에 왔을 이유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지금 화를 내봤자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냥 미련을 버리고 이곳이 어딘지 확인하고 수긍하며 살아가는 게 속편한 일일 것이다.
 재수가 없었으려니 하는 수밖에…….
 물론 방법이 떠오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몸을 완전히 회복시킨 후 비천신공의 19단계를 다시 시전해 보면 어떤 현상이든 일어나지 않겠는가.
 하지만 위험한 일이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목숨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대체 누가 다른 세상으로 이동시키는 술법을 어째서 만든 것인지 알고 싶었다.
 단우현은 심기를 정리하고 손실된 내기를 보충하기위해 축기를 시도했다.
 ‘침장면균. 침장면균.’
 호흡을 다듬고 외기를 느끼기 시작한 단우현은 이내 깜짝 놀랐다.
 세상에 이토록 기가 충만하다니.
 피부의 땀구멍이 기운을 모두 흡수하지 못하고 찌릿하게 저릴 정도다.
 물론 깊은 숲이라 자연지기가 많은 것은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수준이 너무 과했다.
 과거 자신이 비천신공을 가지고 수련하던 깊은 산속도 자연지기로 가득했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 기운의 3배는 넘지 않을까 싶었다.
 고오오오오!
 축기하는 속도를 인위적으로 늦춰야 할 정도였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신의 기에 자신이 잡아먹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축기를 많이 한다고 모두 좋은 것이 아니다.
 축기를 마치고 자신이 쌓은 기운과 맞는 기운만 분별하여 흡수해야 한다.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축기된 기운을 자신이 지니고 있는 내기와 함께 일주천시키면 자연스럽게 그분별 작업이 끝나니 말이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상당량의 기가 걸러지게 된다.
 그리고 남는 것은 처음 축기한 기의 100분지 1정도.
 그렇다고 욕심을 부려 자신이 지니고 있는 기운 이상의 기를 끌어들여 운기하다가 사기(邪氣)라도 흡수되면 모든 것은 말짱 도루묵이 된다.
 정신 차리고 보면 동료가 전멸되어 있는 것을 보기 십상이니 말이다.
 그것은 양반이다.
 수 년 후, 정신 차렸더니 광마(狂魔)나 혈마(血魔), 혹은 천마(天魔) 소리를 듣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욕심을 부리지 말고 천천히 해야 했다.
 원래 중원이었다면 천천히 받아들인다는 걱정 따위는 할 필요 없이 어떻게든 축기를 하기 위해 몸부림쳤겠지만…….
 여하튼 이런저런 주의를 기울이며 일주천을 했다.
 “이, 이럴 수가! 정말 엄청나군!”
 몸에 힘이 들어선다.
 축기의 양을 확인해보니 놀랍게도 모두 소멸되고 ‘남아 있던’ 본신 진기의 양에서 1할에 가까울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잃어버린 진원진기가 보충 되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곳의 기운이 그만큼 순수하다는 말과 같은 뜻이라 볼 수 있다.
 이 상태라면 완치에 일주일도 필요 없을 듯하다.
 3일, 아니 이틀이면 충분해 질 것 같았다.
 물론 이틀 동안 잃어버린 기운을 다시 되찾는 것은 무리다.
 단우현이 죽지 않기 위해 방출한 기의 양은 상식으로 이해가 불가능한 천문학적인 양이기 때문이다.
 수식이 존재했다고 하나 공간이 뒤틀려 전혀 다른 세상에 떨어질 정도의 양이었으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충분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상한 경락을 완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 할 수 있다.
 그렇게만 되더라도 자신이 그동안 익힌 무공을 펼치는데 무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단우현은 눈을 감고 비천신공을 속으로 떠올리기 시작했다.
 비천신공에 의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지만 단우현은 알 수 있었다.
 비천신공에 함정이 있긴 하지만 그 알맹이는 진짜라는 사실을 말이다.
 거짓으로 거짓을 가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진실 뒤에 숨겨진 거짓은 찾기 어려운 법이니 말이다.
 단우현은 이번 일로인하여 자신이 의아스러워 했던 부분들을 모두 떠올리고 삭제해 나갔다. 이미 비천신공의 끝을 보았던 단우현으로서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필요 없는 부분만 잘라 내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약 하루의 시간 동안 운기를 마친 단우현의 눈이 떠졌다.
 반짝.
 그 맑은 눈동자에 현기가 가득하다.
 몸 상태가 상쾌해지자 단우현은 결단을 내렸다.
 “우선 이동하자. 한동안 굶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미리 대책을 찾지 못하면 힘들어 질 것 같으니. 계속 이곳에서 살 것도 아니고.”
 단우현이 자신이 가부좌를 틀고 있던 나뭇가지를 박차고 튀어 올랐다.
 슈욱!
 한 마리의 새처럼 비상한 단우현은 뒤늦게 소머리 괴물을 피하던 그 순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몸이 날아올랐었지. 그 덕에 녀석을 피할 수 있었지.’
 의아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런 경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허공을 걷는 허공답보(虛空踏步)라는 최상승 경공이 실존하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경지는 초상비(草上飛 : 풀 위를 밟고 달리는 경공) 수준이다.
 이렇게까지 전개를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전력을 다한다면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이토록 가볍게 뛰었는데 새처럼 비상이 가능하다니.
 이 정도라면 거의 허공답보의 수준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단우현은 알지 못했다.
 자신의 무공이 진일보하였음을.
 그도 그럴 것이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 비천신공의 마지막 부분을 수련하던 순간 내력이 폭발적으로 증폭하여 죽을 뻔했던 사건이 설마 기연으로 다가올 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내력이 갑자기 증폭하자 기가 흘러 다니던 길이 운하에서 대운하의 크기로 넓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포화상태에 이르자 개발되지 않았던 미세 경락과 기도로 파고 들어가며 강제적으로 모든 길을 뚫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기가 증폭되어 모든 기도(氣道)가 터지려던 찰나 밖으로 방출되었고, 그로 인해 평소 사용되던 기의 길목에 끼어 있던 불순물들도 빠져나가며 더욱 매끄럽게 정돈된 것이다.
 불순물이란 음식을 먹고 숨을 쉬면 자연히 몸에 쌓이는 탁기와 같은 것으로 그것을 완전히 버리기 위해선 환골탈태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런 기연을 얻은 지금, 단우현의 몸은 태어났을 때와 다름없는 순수지신 그 자체란 뜻이다.
 그러다 보니 기의 움직임이 활발해져 몸이 가볍게 느껴지게 된, 아니, 실제로 몸이 가벼워진 것이다.
 여하튼 단우현은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며 하늘을 비상하는 그 기분을 만끽했다.
 그렇게 기도가 모두 열리며 초감각이 형성된 단우현이 지금 하늘을 날며 느끼고 있는 감각이란 세상에 현존하는 말과 문장으로 표현이 불가능했다.
 몸이 가볍게 떨어지면 단우현은 그 밑에 있는 나무꼭대기를 가볍게 차며 몸을 날아 올렸다.
 
 
 2
 
 그렇게 얼마를 날았을까.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이 숲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감(五感)을 동원하여 느끼는 세상이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한 자극이었다.
 보지 못했던 것을 보는 것과 듣지 못하던 소리가 들리는 것, 느끼지 못하던 사소한 감각이 모두 열려 바람의 결이 느껴지고 세상의 향이 폐를 자극한다.
 그렇게 날아가는 단우현의 눈에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존재들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
 단우현은 다급하게 비상하던 몸을 갈무리하고 근처 나무 위에 안착했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나무 위에 안착하기 전에 기척만으로 그들이 인간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호기심이 그를 붙잡았다.
 “꾸익. 꾸웨익! 취췩!”
 “꾸어억! 꿰익!”
 돼지와 같은 생김새를 지닌 괴물들이었다.
 상당히 소란스럽다.
 마치 대화라도 나누는 듯한 모습이다.
 설마 했으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것을 보고 단우현은 충격을 먹었다. 인간도 아닌 것이 대화를 하다니.
 바로 그때 앞장서던 돼지괴물이 무리를 멈춰 세운다.
 그러자 돼지괴물들이 옹기종기모여 앉더니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닌가.
 놀랠 노자였다.
 그들의 행동이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간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 생각을 떠올림과 동시에 단우현이 마른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설마 이곳에는 저런 녀석들만 사는 것은 아니겠지?”
 단우현은 도리질을 쳤다.
 하지만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이런저런 가능성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달도 3개인데 불가능한 것이 뭐가 있겠는가.
 정말 상상도 하기 싫었지만 정말 저들이 인간과 같은 존재라면…….
 “제길! 대체 여긴 뭐하는 곳이야!”
 가볍게 씹어 내뱉은 단우현.
 결국 이들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만일 저들이 정말 이 세계의 인간과 같은 존재들이라면 군락 같은 것을 이루며 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 꿀꿀한 감정을 확실하게 정리하지 않고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마땅하게 할 것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녀석들은 아직도 이동할 생각을 하지 않는 듯했다.
 그때 달달한 냄새가 단우현의 코를 자극했다.
 “뭐지?”
 시선을 돌려 두리번거리는데 반대편 나무에 과일 같은 것이 열려 있었다.
 처음 보는 종류였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그곳으로 이동하여 과일을 움켜쥐고 땄다.
 노란 과일이었는데 참으로 맛깔나게 생겼다.
 아삭!
 독이 들었는지 의문도 들지 않았는지 거침없이 베어 물었다.
 “꾸룩?”
 단우현이 과일을 따기 위해 움직였던 소리가 생각보다 컸는지 밑에 있던 돼지머리 괴물들이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
 단우현은 재빨리 몸을 움직여 나뭇잎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잠시 올려다보던 괴물들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 쉬었으니 가자는 모습이다.
 단우현은 그들이 떠나는 것을 기척으로 확인하며 과일을 다시 베어 물었다.
 맛이 좋았다.
 아삭하고 시원하며 달짝지근한 맛이 입 안에 감겨온다.
 독은 없어 보인다.
 “냠냠, 이거 좋은데?”
 단우현은 그 자리에서 그 이름 모를 과일을 따서 아삭아삭 씹어 먹으며 배를 채웠다.
 어차피 녀석들의 기척을 파악했으니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먹었을까.
 “꺼억.”
 가벼운 트림을 내뱉고 주머니에 주섬주섬 과일 몇 개를 챙겼다.
 “부족한가?”
 주머니에 가득 넣었음에도 아쉬운 나머지 양손에 과일 2개를 더 움켜쥐었다.
 그리고 신형을 날렸다.
 그 돼지괴물들의 뒤를 쫓아야 했기 때문이다.
 의문은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녀석들은 열심히 걸었다.
 천천히 녀석들 뒤를 따르다보니 다섯 시간이 지났다.
 ‘녀석들 어리를 얼마나 가려는 걸까. 그걸 좀 알면 편할 텐데. 쯧.’
 그렇게 생각하고 얼마 후.
 단우현은 언제부턴가 자신도 모르게 베어 물고 있던 과일에서 입을 땠다.
 저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눈에 들어온 탓이다.
 “설마.”
 그냥 일어난 산불 같은 것이 아니다. 일정한 간격과 연기의 양을 보았을 때 이것은 인위적으로 불을 피워 뭔가를 한다는 뜻이다.
 마치 마을에서 밥을 짓는 것처럼 말이다.
 이 괴물들의 발걸음을 보아하니 그곳으로 가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단우현은 조바심이 났다.
 혹시나 해서 따라오긴 했지만 그것은 호기심이었을 뿐 어떤 생각이나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저런 괴물들을 인간으로 생각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곳이 가까워져 가면 갈수록 단우현의 심장은 쿵쾅쿵쾅 뛰었다.
 발걸음을 서둘렀다.
 돼지머리 괴물들보다 빨리 가서 그곳의 정체를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연기가 나는 곳에 도착한 단우현.
 결국 나뭇가지 위해 힘없이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약간 독특한 것을 빼면 자신이 살던 세상의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는데,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인간들이 아닌, 돼지머리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이럴 수가…….”
 단우현이 넋을 잃고 있는 와중에 어느새 마을에 도달한 돼지괴물들이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멍한 시선으로 주시하던 단우현은 망연자실했다.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다.
 설마 했던 일이 사실로 다가온 탓이다.
 정말 저들이 인간과 같은 존재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곳에서 인간은 자신하나 뿐이란 말인가.
 부정하고 싶었지만, 눈앞의 현실은 잔혹했다.
 새끼 돼지괴물들이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놀고 있고 어른 돼지괴물들은 어슬렁거리며 일을 하거나 잡담을 떨거나 바삐 어딘가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평소 자신이 보던 저잣거리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아, 달이 세 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저들과 접촉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곳을 돌아다녀봐야 하는지.
 그렇지만 이 장면을 보니 다른 곳을 돌아다닐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현실을 회피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바뀌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냥 현실에 수긍하고 살아가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물론 저들을 보았을 때 현실을 수긍하고 살아가는 것이 상당히 괴로울 것 같았지만 말이다.
 결국 선택을 했다.
 저들과 접촉하기로 말이다.
 물론 아무렇지도 않을 수는 없었다.
 사실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현실적 괴리감을 이기지 못하고 부평초처럼 떠돌다가 죽거나 자살을 택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단우현은 달랐다.
 표사 같은 위험한 일을 주로 하며 용병으로서 오래 살아온 탓인가.
 그는 생에 대해 누구보다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었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원만하고 긍정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단우현으로서는 단지 인간의 형태가 조금 다르다고 그것으로 죽는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것이다.
 정말 힘들다면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 자신이 어떻게 이곳으로 왔는지를 파악하고 다시 돌아가도록 노력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후……. 그 방법은 정말 사용하고 싶지 않았는데, 여차하면 다시 비천신공의 19단계를 다시 돌려봐야 할지도 모르겠군. 이곳으로 왔으니 다시 하며 돌아 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물론 가능성이 없는 말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봤지만 그것은 현실도피에 불과하지 않았다.
 단우현은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도피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에효…….”
 나무 위에서 뛰어내린 단우현은 무거운 마음을 갈무리 한 채 터덜거리며 그 돼지괴물 마을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3
 
 마을 입구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2마리의 오투크 중 하나가 숲속에서 뭔가가 나와 이곳으로 오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꾸이익? 저게 뭐냐?”
 “뭐가 꾸익 뭐냐. 꿰이익!”
 동료 오투크는 두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며 건성으로 말을 듣다가 깜짝 놀랐다.
 자기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분명히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이다! 퀙퀙!”
 “인간이 어떻게 꾸익 이곳에 올 수 꾸엑 있지?”
 “동료들에게 꾸익 연락을 해야겠지? 꾸이익.”
 말을 꺼내고 돌아보기 무섭게 옆에 있던 오투크가 벌써 종을 치고 있었다.
 땡! 땡! 땡!
 그 소리에 안에 있던 오투크들이 부리나케 뛰어나왔다.
 그들이 하나같이 ‘무슨 일이냐?’라고 질문했으나 일일이 대꾸해주기엔 너무 귀찮았다.
 그냥 손가락을 뻗어 목표물만 지시해주어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방지다는 이유로 그 보초보다 급이 높은 놈들은 주먹으로 한 방씩 가볍게 내질러주었다.
 “버릇없는 놈!”
 퍽!
 “꾸이익!”
 하지만 그 보초 오투크보다 높은 오투크가 정말 많았다. 이곳에 몰린 백수십의 오투크 중 그보다 서열이 낮은 것은 다섯에 불과했었으니 말이다.
 쉽게 말해 녀석은 그냥 말단이었다.
 퍽! 퍽! 퍼퍽! 퍼퍼퍼퍽!
 “꿰웨웨웨웩!”
 결국 녀석은 멱따는 비명을 지르곤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그럼에도 이미 때리겠다고 마음먹은 오투크들은 그가 기절했던 말든 때리고 봤다.
 그대로 멱을 따려는 모양이다.
 정말이지 무식한 놈들이 아닐 수 없었다.
 녀석들에겐 정도라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뒤늦게 한 녀석이 말문을 열었다.
 “정말 인간이군. 꾸익.”
 이곳 오투크 마을을 이끄는 쿠쒜르다.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저 인간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중인 것 같았다.
 사실 자신도 인간을 본지 3년은 된 것 같았다.
 여기는 인간의 마을과 멀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가서 보려고 마음먹지 않으면 보기 힘든 존재가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러는 반면에 일부러 찾기도 어려운 몬스터들이 와글거린다. 그러다보니 다른 몬스터들은 보기 싫어도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들어온 거지? 취릭.”
 정말 의아했다.
 이곳 어둠의 숲은 인간들이 몬스터의 천국이라고까지 부르며 감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곳이다.
 물론 희귀 약초를 캐거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들어오는 인간들이 종종 있긴 하지만 그들은 떼로 몰려다니지 저렇게 혼자 들어오지는 않는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그 위험하다는 어둠의 숲에서도 중심지에 속한 곳이다.
 이곳의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전투의 종족 오투크 자신들조차 홀로는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는데 웬 겁 대가리를 상실한 인간 하나가 들어왔으니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반 길거리나 산 속에서 보게 된 인간이라면 이렇게 경계할 이유가 없을 것이지만 위치가 위치니 만큼 경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길을 잃은 것이라면 크게 상관할 것 없지만, 일부러 찾아 온 것이라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인간이 자신들을 보더니 언젠가부터 발걸음을 멈추고 주시만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이 더 불안했다.
 인간의 잔머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의문이 든다.
 “약아빠진 인간이다. 꾸익.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크룩. 애초 길을 잃었다고 해도 목적 없이 왔을 리가 없으니까. 최악의 꾸익 상황이 올지도 킁 모르겠군. 취릭.”
 쿠쒜르는 가벼운 손짓으로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사인을 보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 사인을 알아본 오투크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쿠쒜르가 즉석에서 만들어 낸 사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해진 사인이 있어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 중에서는 사인을 해도 그게 사인인지 안이면 그냥 한 동작인지조차 파악할 정도로 눈치가 뛰어난 녀석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사인을 보넨 쿠쒜르도 그들이 알아보든지 말든지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뭐, 불안하면 알아서들 긴장하고 있겠지 라고 생각하는 듯한 눈치였다.
 그러나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은 오투크들만이 아니었다.
 단우현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했다.
 “뭐, 뭐야. 저것들은…….”
 척 봐도 환영하려고 꽃가루 뿌릴 준비를 하는 것 같진 않았다.
 노골적으로 드러난 살기.
 당연히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짐작은 했었지만 이렇게까지 열렬한 반응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더군다나 저들의 저런 긴장감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한참을 서서 그들을 지켜보다가 이대로 있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멈췄던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때 등 뒤에서 거대한 살기와 더불어 굉음처럼 들리는 괴성이 터져 나왔다.
 “쿠워오오오오오오오!”
 등줄기가 오싹할 정도의 짙은 살기다.
 
 
 Chapter 3 불타는 전우애
 
 “뭐, 뭐야!”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직 그 괴성의 주인공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감을 살려 주위를 탐색해 보았지만 기척도 없다.
 “어떻게 된 일이지?”
 단우현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단우현보다 오투크들의 당황이 더욱 컸다.
 그들은 이 목소리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 오우거다. 꾸익.”
 “꿰익 꾸익.”
 “꾸웨이에익!”
 오투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쿠쒜르가 자신들 앞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사들이여! 모두 취륵 무기를 들어라! 뀌엑!”
 그 말에 오투크들이 무기를 뽑아들었다.
 바로 그 순간.
 콰광!
 쿠구구궁!
 오투크의 마을 안쪽에서 거대한 굉음과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우거가 나타난 것이다.
 어떻게 안에서 나타났는가 하는 의문보다는 빨리 안으로 들어가 막아야 한다는 본능이 먼저였다.
 오투크들이 나름 일사분란하게 뛰어 들어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쿠쒜르가 분노로 충혈된 눈동자로 단우현을 노려보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예상컨대 이 오우거를 저 인간이 데려 온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사실 상황이 절묘하게 그렇게 보일만한 타이밍이긴 했다.
 단우현으로서는 상당히 억울한 노릇이었지만, 그로서는 그다지 억울할 이유는 없었다.
 뭘 알아야 억울하지.
 “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저들을 도와야하는지 아니면 그냥 지켜봐야하는지.
 하지만 길게 생각할 시간이 사라지고 말았다.
 “크르르.”
 흠칫!
 바로 등 뒤에서 들린 괴음.
 단우현은 살기가 느껴지는 순간 몸을 날렸다.
 파팟!
 동시에 단우현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주먹이 내리 꽂혔다.
 콰쾅!
 단우현이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을 끔뻑였다.
 단순한 힘만으로 바닥이 터져나갈 정도의 파괴력을 보이다니…….
 아니 그것은 둘째 치고 진짜 문제는 이 거대한 괴물이 자신의 등 뒤까지 왔음에도 전혀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는 것에 있었다.
 “대, 대체…….”
 하지만 알아차리는 것이 더 놀라운 일일 것이다.
 감히 형용이 불가능한 거대한 힘으로 숲의 폭군이라 불리는 오우거지만 그의 속성은 다른 몬스터들과 차원이 달랐다.
 다른 몬스터들은 자신의 힘과 행동을 주체하지 못하기에 기척을 흘리지만, 오우거는 숲에 자신을 파묻고 활동한다.
 숲과 동화가 되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때문에 오우거에게는 또 다른 별칭이 하나 더 있었다.
 숲의 암살자.
 그 기척을 숨기는 능력은 정말이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모든 살기와 기척을 지우고 숲이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단우현이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 사실은 은연중 짐작은 하고 있었다.
 다만 모든 신경이 저 돼지괴물들에게 쏠려있었던지라 깨닫지 못했었을 뿐이지.
 후웅! 부웅!
 오우거는 엄청난 힘과 속도를 십분 발휘하여 단우현을 공격했다.
 한순간에 자신의 공격을 피한 인간이 만만치 않음을 느낀 탓이다.
 인간이란 한없이 약하며 부드럽고 연한 고기를 지닌 별미긴 하지만 그들 중에는 정말 강한 녀석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오우거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호흡을 놓치지 않고 몰아친 것이다.
 이 인간이 그 강한 인간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우거의 공격을 받는 단우현은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 거대한 덩치가 저렇게 민첩한 공격을 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속도가 빠르다고 민첩하다 말할 수 없다.
 속도와 민첩은 다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움직임에 얼마나 빨리 대응을 하고 반응을 하는가가 바로 민첩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덩치가 큰 동물들은 그 반응이 느리다.
 그런데 여기 있는 녀석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크기에 4배는 되어 보이는 괴물이 자신보다 빠른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된 녀석들인지!’
 단우현은 민첩하게 움직이며 가능하면 거리를 벌리기 위해 노력했다.
 녀석을 공략하기 위해선 관찰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뭔가 습성이나 버릇들을 알아야 보다 효율적으로 상대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타탓!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 붙는 것이다.
 ‘징한 녀석!’
 “쿠와오!”
 ‘네가 수상한 짓을 하도록 놔두지 않겠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노골적인 움직임이다.
 녀석의 날카로운 손톱이 자신의 전신을 훑기 위해 날아온다.
 찌지직!
 “크흣!”
 옷이 너덜너덜 찢어졌다.
 단 한 치의 차이였다.
 자칫하다가는 고깃덩어리가 되어 녀석의 한 끼 식사가 될 뻔했다.
 “제길! 무기라도 있으면 어떻게라도 해볼 텐데, 대체 어떻게 해야…….”
 그때 단우현의 머릿속에 반짝하고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단우현의 시선이 순간 오투크 마을로 향했다.
 조금 전 오투크들이 들고 있던 검류의 무기가 떠오른 것이다.
 “그래, 그것만 있으면…….”
 단우현은 두 번 생각하지 않았다.
 오우거의 행동을 계산하면서 녀석의 틈을 찾았다.
 지금 현란한 보법과 신법으로 오우거의 공격을 피하고 있을 뿐이지 순수한 속도 면에서는 오우거의 공격속도가 더 빨랐다.
 물론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경공은 자신이 빠르겠지만, 오우거는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마음처럼 등을 돌려 뛸 수가 없다.
 저처럼 민첩하고 반응속도가 빠른 녀석의 범위 내에서 등을 보이는 것은 자살 행위인 것이다.
 녀석은 전투본능이 확실한 전사였다.
 단우현은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었다.
 녀석은 틈이 없었다. 공격을 하고 그 반동으로 또다시 공격을 한다.
 알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보여주는 것은 공격으로 수비를 만들어내는 최상의 공격법이자 방어법인 것이다.
 하지만 단점은 그 범위가 극히 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우현과 비례적으로 볼 때 범위가 넓다고 할 수 있겠지만, 오우거의 크기로 보았을 때 가장 적당하고 적절한 범위 공격만 하고 있는 셈이다.
 정말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큰 동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크게 움직이기만 한다면 분명 시간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살을 주고 뼈를 깎는다.’
 물론 저놈의 뼈를 깎기 위해서는 조금 많이 힘들 것이다.
 자칫하다가는 살을 주는 수준이 아니라 그대로 골로 갈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에 드는 무언가를 단번에 얻기 위해선 큰 도박도 필요한 법이다.
 순간 단우현은 달리다가 발목이 삐끗한 것처럼 허점을 드러냈다.
 고통어린 표정.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결코 인위적으로 하는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말 삔 것 같았다.
 오우거의 눈빛이 반짝였다.
 마치 ‘걸렸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우거가 득달같이 덮쳐왔다.
 ‘크다. 지금이다!’
 단우현의 몸이 기묘하게 비틀리더니 그 상태로 튕겨져 나간다.
 전신의 근육이 고무줄처럼 탄력적인 움직임이다.
 파팟!
 자신의 범위를 가볍게 벗어나는 것을 보며 오우거는 당황했지만 크게 벌린 몸을 다시 움츠리기는 쉽지 않았다.
 다 잡은 먹이라 생각한 탓에 전력을 다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더 큰 실수는 그냥 공격을 한 상태로 몸의 중심을 잡았으면 상관이 없었을 텐데, 시선을 빼앗겨 무리하게 반응하다가 중심이 흐트러진 것이었다.
 쿠당탕탕탕!
 오우거는 볼썽없는 모습으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단우현은 기척으로 오우거의 상태를 확인하며 그 모습이 몹시 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런데 시간을 허비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잠시 후, 오우거가 자리에서 일어나 공격의 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이미 단우현은 없었다.
 “……크르?”
 타탓! 타핫!
 단우현이 엄청난 속도로 멀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끓어오르던 전의를 상실한 오우거는 멍하니 단우현이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감히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엄두가 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쩝…….”
 오우거는 단우현의 뒷모습을 보며 머리를 긁적이고는 슬금슬금 그 뒤를 따라 오투크 마을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2
 
 오투크의 마을에 들어선 단우현은 눈앞에 펼쳐진 마을의 광경을 보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
 마을에 난입한 오우거 녀석에게 죽어서 널브러진 오투크들의 시체가 사방에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죽은 오투크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오우거의 잔혹한 성향으로 인하여 사체 덩어리들이 사방에 흩뿌려진 탓에 피해가 엄청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을 보니 분노가 치민다.
 단우현에게는 오투크들의 사체가 인간의 사체로 비춰져 보였기 때문이다.
 아직도 단우현은 오투크가 인간과 같은 존재들이라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환상이 보인 것이다.
 당장 달려가서 잔혹한 오우거의 목을 따버리고 싶었다.
 그때 마침 한 오투크가 붙잡혔다.
 오우거는 이렇게 군집하는 녀석들은 뭉치면 무섭지만 흩어지면 보잘 것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본보기로 붙잡은 오투크의 머리를 아득 씹어 먹었다.
 그리고 사지를 찢어 이곳저곳에 집어 던졌다.
 눈뜨고 보기 힘든 끔찍한 장면이었다.
 그럼에도 오투크들은 전의를 잃지 않은 상태로 오우거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두려움을 줘서 이들의 군집을 해체시키려 했던 오우거의 생각과 달리 역효과가 난 듯했다.
 그들이 분노하며 더 짙은 살기를 뿌려댔기 때문이다.
 오투크, 이들은 타고난 전사다.
 죽음 앞에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고, 결코 굴하지 않는 전사들.
 그들의 진중한 기세가 느껴진다.
 ‘뭐, 저쪽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군.’
 단우현은 조금 전 날아와 자신의 발아래 떨어진 오투크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죽어서 사지가 찢어졌음에도 오투크의 손은 자신의 무기를 꼬나 쥐고 있었다.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절절이 묻어나 보였다.
 단우현은 검을 들어올렸다.
 무게가 자신이 쓰던 검보다 조금 무거운 중검이다.
 이가 잔뜩 빠졌지만 아직은 쓸 만해 보였다.
 “……심각하군.”
 뭐, 없는 것보다 났다는 말이다.
 오투크의 손을 손잡이에서 떨어트리려 했다.
 하지만 얼마나 강하게 움켜쥐고 있었던 것인지 그대로 근육이 경직된 듯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단우현은 잘려나갔음에도 검을 움켜쥐고 있는 오투크의 손을 보며 말했다.
 “그래. 같이 싸워주마. 하지만 검을 휘두르는 것은 네가 아니라 나다. 방해는 하지 마라.”
 손목은 대답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손목이 말하면 상당히 무서울 것이다.
 바로 그때 어느새 따라온 오우거가 괴성을 지르며 단우현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꾸오오오오!”
 쿵쾅! 쿵쾅!
 반갑다고 외치는 모습과는 사뭇 거리가 멀었으나 단우현은 달려오는 오우거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단우현은 그 오우거가 반갑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친우를 만난 것처럼 말이다.
 단우현이 오우거를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그래. 일부러 찾으러 가지 않도록 해줘서 고맙다.”
 “쿠워워워워!”
 오우거가 잇몸을 드러내며 건치를 자랑했다. 더군다나 녀석의 송곳니가 지금 단우현 자신이 들고 있는 검보다 날카로워 보였다.
 아무리 봐도 단단해 보이는 것이 물리면 아플 것처럼 보였다.
 그것도 상당히…….
 단우현은 가볍게 몸서리를 치며 검에 기운을 불어 넣었다.
 우웅!
 기를 검에 보내자고 마음먹기 무섭게 검에 흡수된다.
 하지만 검 전체를 뒤덮는 것도 모자라 한 자루의 검이 형성되던 과거와 달리 한줄기의 강기만 일어설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강기의 일종인 검사(劍絲)인 것이다.
 단우현은 그 한줄기의 강기를 검날 앞에 세웠다.
 무딘 날에 날카로움과 강도를 주기 위함이다.
 단우현은 자신이 생겼다.
 손에 무기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그토록 컸던 것이다.
 이 녀석을 빨리 처리하고 저들을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그때, 그 오우거가 다시 단우현에게 달려들었다.
 단우현은 오우거의 공격을 보며 몸을 뒤로 쓱 뺐다.
 예상대로 녀석이 파고 들어온다.
 자신이 예측하고 있던 그 방위 안이다.
 단우현의 입꼬리가 가볍게 올라간다.
 ‘기회다!’
 검을 휘둘렀다.
 푸억!
 묵직한 고기가 베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단우현의 표정을 그다지 밝지 못했다.
 ‘이런, 설마 얕은가!’
 입 밖으로 안타까운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제길!”
 생각보다 오우거의 피부가 질기고 두꺼웠던 탓에 생각했던 것만큼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강기가 없었다면 그나마 이정도도 베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우거가 고통에 의아하여 자신의 상처 부위를 내려다보더니 함성을 내지른다.
 “크와와와와와!”
 단우현에 의해 쩍 벌어진 살가죽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장기 근처까지 검이 파고들었으니 당연한 결과이리라.
 다만 장기와 급소를 벗어난 공격인지라 오우거의 분노만 건드렸을 뿐이다.
 고통과 분노로 물든 오우거가 퉁방울만한 눈동자로 단우현을 노려본다.
 충혈이 되다 못해 실핏줄이 터져 붉게 물든 눈동자가 주는 위압감은 대단했다.
 부우웅!
 오우거의 주먹이 거침없이 단우현을 향해 날아든다.
 상황을 보니 오우거의 주먹을 피할 길은 후방뿐이다.
 단우현은 검을 회수함과 동시에 발로 바닥을 박찼다. 마치 빙판 위인 것처럼 몸이 뒤로 쭉 미끄러진다.
 오우거가 미끄러지듯 멀어지는 단우현을 따라 달라붙는다.
 쿵! 쿵! 쿵!
 바닥을 박차며 뛸수록 흐르는 피의 양이 더 많아진다.
 그러나 분노한 탓인가?
 자신의 상처를 아랑곳 하지 않고 범위 밖에 있는데도 다짜고짜 주먹부터 휘두른다.
 “크와앙!”
 부우웅!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큰 행동들이다.
 단우현은 일 검에 죽이지는 못했지만, 상황을 예컨대 시간을 끌기만 해도 이길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냥 시간을 끌기만 하는 것은 위험성이 컸다. 무림의 격언 중에 눈먼 검이 무섭다는 말이 있다.
 전투 와중에는 언제나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이야기다. 좋은 이야기다. 그런데 단우현은 그 생각이 떠오르자 괜히 투덜거렸다.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 긴장을 늦출 수 있는 인간이 어딨겠냐? 죽은 사람들은 모두 긴장을 늦춰서 죽었다는거냐?’
 잠시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반대편의 오투크들이 다른 오우거와 싸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조금 전 이 오우거를 무찌르고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시 떠올랐다.
 ‘제길! 누가 누굴 도와. 나 하나 살기도 바쁜데. 오히려 내가 놈들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싶구만. 뭐, 저놈들도 바쁜 것 같아서 그냥 있었다만…….’
 사실 녀석들이 바쁘지 않더라도 도와줄지는 의문이었다.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군.”
 단우현은 서서히 지쳐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몸을 생각지 못하고 경공을 비롯하여 내력을 사용하였다. 게다가 검사의 수준이긴 하지만 강기까지 사용했다.
 지금 상태에서 검사라니.
 상당히 무리를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내력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쓰지 않을 상황도 아니었다. 만일 쓰지 않았었다면 그대로 죽었었을 테니 말이다.
 단전을 두드려보니 빈 통 소리가 날 정도다.
 “미치겠군.”
 다시 이어지는 오우거의 공격.
 그런데 처음과 달리 그 움직임과 반응이 상당히 둔하다.
 녀석도 지친 것이다.
 예상하고 있던 시간보다 빨랐다.
 좋은 현상이다.
 단우현은 망설임 없이 그 녀석의 틈을 파고 들어가 검에 내력을 밀어 넣고 그대로 겨드랑이를 베어나갔다.
 써억!
 역시 모든 동물의 급소인 부분은 한정되어 있다.
 전신 중 가장 가죽이 연한 부위인지라 가볍게 썰어져 나갔다.
 두터운 뼈마저 강기를 이기지 못하고 잘려나갔으니 오른팔은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깨부분의 두꺼운 가죽으로 인해 완전이 떨어져나가지 않고 덜렁거린다.
 녀석이 눈을 부릅뜨더니 비명을 지른다.
 “캬오오오오오오!”
 울부짖는 소리 같다.
 그때 오투크들 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짙은 살기가 자신을 향해 몰아쳐오는 것을 단우현은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오투크들과 싸우고 있던 다른 오우거가 단우현과 싸우던 오우거의 비명을 듣고 달려들은 것이다.
 “크워어어엉!”
 “크허허허헝!”
 
 3
 
 두 오우거는 암컷과 수컷이었는데, 단우현과 싸우던 것이 암컷이었고, 오투크들과 싸우던 녀석이 수컷이었다. 둘은 부부였는데 사냥을 하기 위해 나섰다가 단우현의 냄새를 맡고 쫓아 나섰다.
 오랜만에 맡는 인간의 냄새인지라 들뜬 마음으로 뒤를 쫓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윽고 한 마리뿐이라는 사실에 실망하는데, 그러던 와중에 오투크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입맛이 까다로운 암컷에게 인간을 양보한 수컷은 오투크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난입한다.
 장난기가 많은 탓에 오투크들을 놀래려고 녀석들이 모여 있는 입구를 피해 빙글 돌아 외벽을 타고 넘어간 것이다.
 그런데 녀석들이 놀라진 않고 주제도 모르고 덤빈다.
 약간 신경이 쓰였다.
 먹이들이 까부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별로 좋지 못했던 것이다.
 장난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난동을 부리고 싶었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나하나의 힘은 자신에게 상대가 될 수 없었지만, 녀석들의 연합공격은 결코 우습지 않았기 때문이다.
 겁도 줘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오투크들은 생각 이상으로 집요하게 덤벼들었다.
 약한 주제에 말이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자신의 부인이 인간을 잡아먹고 난 후 이곳으로 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은 수컷은 무리하지 않고 하나하나 잡아서 죽이며 시간을 때웠다.
 암컷이 돌아오면 그때는 정말 제대로 된 공포를 알려주겠노라 생각하며 말이다.
 그런데 암컷이 생각보다 빨리 오질 않는다.
 조금 늦는구나 싶은 정도를 넘어섰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물론 인간 따위에게 당했으리라는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인간이란 자신들의 입맛을 자극하는 별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바로 그때 자신의 피앙세가 비명을 지른다.
 “캬오오오오오오!”
 수컷은 다급히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시선 외각에서 들린 비명이다. 다급하게 이동해서 암컷을 찾았다.
 인간이 무슨 짓을 했는지 시야에 들어온 암컷의 팔이 덜렁거리고 있다.
 팔 뿐만이 아니다.
 복부도 깊은 상처로 쩍 벌어져 있었다.
 그것을 보니 분노가 피어오른다.
 “크워어어엉!”
 “크허허허허허허헝!”
 주위를 보니 오투크들이 무기로 위협하며 자신과 피앙세 사이를 가로 막고 있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녀석들을 뚫고 암컷을 향해 달려 나갔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다.
 그만큼 다급했던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의 부인이 그만 죽을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로 인해 오우거는 많은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오투크들이 그토록 빈틈이 많이 드러난 오우거를 가만히 보낼 리가 없지 않겠는가.
 오투크들의 대장인 쿠쒜르를 시작으로 많은 오투크들이 몸을 던져 오우거를 공격했다.
 푸푹! 푸푸푹!
 “끄웨우에에!”
 고통이 전신을 감쌌지만 손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가가는 것을 멈추진 않았다. 그리곤 잡히는 대로 찢거나 짓이겨 죽였다.
 그 발광에 많은 오투크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자신들의 포위를 빠져나가는 오우거를 막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깊은 치명상은 안겨줄 수 있었다.
 오우거는 고통스러워 비명을 지르는 암컷을 향해 달려갔다.
 자신의 상처도 작지 않지만 암컷을 위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그런 암컷을 괴롭힌 인간에게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크와아아앙!”
 단숨에 달려든 수컷 오우거는 단우현에게 육탄돌격을 시도했다.
 전신으로 뭉개버리겠다는 뜻이다.
 물론 단우현은 그냥 당해줄 생각이 없었다. 죽을 것이었다면 애초에 죽었을 테니 말이다.
 수컷 오우거의 공격 범위를 확인한 단우현은 가뿐하게 피할 수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팔을 종횡으로 휘저으며 다시 덤벼든다.
 이미 이성을 잃은 녀석들의 공격이라 그 수가 뻔하다.
 물론 더 위력적이긴 하다.
 전력을 다해 덤벼드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위력적인 공격이라 해도 피하면 그만인 것이다.
 더군다나 단우현은 그 공격을 피할 만한 능력이 되었다.
 후우웅!
 쿠구구궁!
 요리조리 피하는 단우현을 잡지 못하고 뒤에 자리하고 있던 애꿎은 건물 벽에 구멍만 뚫었다.
 “후욱! 후욱! 후욱!”
 수컷 오우거는 상당히 지쳤다.
 오투크들에게 당한 상처에서 피가 너무 흐른 탓이다.
 상처들이 욱신거리며 움직임을 방해한다.
 수컷 오우거의 눈빛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저 인간을 잡아야 하는데, 복수를 해야 하는데…….’
 그 눈빛을 마주하며 단우현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지쳤다곤 하지만 단우현 역시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억지로 끌어 쓸 내력도 없어졌다.
 조금만 숨을 돌릴 틈이라도 생긴다면 어떻게든 주위의 기운을 끌어 모아 한방을 노려볼 텐데, 그게 쉽지 않다. 기운이 생성될 동안 검을 사용할 수도 없다.
 그냥 댕강 부러질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어설픈 공격은 안하느니 못하다.
 ‘언제까지 피해야 하는가.’
 바로 그때 오투크들이 달려왔다.
 그리고는 적당한 거리에 서서 오우거와 인간이 싸우는 모습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뭐냐. 인간이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끌고 온 녀석들이 아니란 말인가? 꾸익.’
 쿠쒜르는 잠시 머리를 굴렸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뒤늦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냥 둘 다 조져버리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취르륵! 쳐라! 아작을 꾸윅, 내라!”
 “꿔익꿔익! 꾸웩!”
 “꾸익! 꾸익!”
 오투크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검은 오우거에게만 향하지 않았다. 단우현도 공격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기습적인 공격에 단우현은 당황했다.
 “어, 어이! 나는 너희 편이라고!”
 “꾸익! 꿰익?”
 못 알아듣는 표정이다.
 “이런 썩을. 무슨 말이 통해야…….”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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