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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장 결국 이런 날이 오고 말았다.

2021.12.21 조회 252 추천 4


 1장 결국 이런 날이 오고 말았다.
 
 
 
 ‘결국, 이런 날이 오고 말았다.’
 앞을 가득 메우고 있는 혈교의 망자들이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무림에 나타나 패자가 된 혈교.
 인간계를 선계로 만든다는 교리를 가진 그 종교의 시작은 미약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점차 그 교리와 강함에 이끌린 광신도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어느새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세상은 혈교천하가 된 지 오래였다.
 세상의 주를 이루는 자들이 있으면 반하는 자들도 있는 법.
 혈교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못한 자들은 제각각 모두 흩어져 쥐새끼처럼 숨어 다녔다.
 종원이 속해 있는 용화도 그런 쥐새끼 중 하나였다.
 ‘축복은 얼어 죽을 축복.’
 혈교에서 사람들에게 내리는 축복이라는 이름의 저주.
 그 저주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구원자를 찾아 헤매는 무리.
 그것이 바로 그가 속한 쥐무리의 정체였다.
 그러나 이제 숨어 다니는 것도 마지막인 듯싶었다.
 용화의 교단이 존재하는 이곳에까지 혈교의 손길이 뻗친 것이다.
 “대주, 이제 어떻게 하죠?”
 용화의 지하에 건설된 도시 곳곳에 혈교의 망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종원은 자신의 어린 부관, 당유진을 바라봤다.
 사천당가 출신이라며 자신의 혈통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꼈으나······.
 글쎄, 진정 그 혈통이 맞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당유진과 같은 나이 어린 자가 전장에 나선다는 건 두 가지 중 하나의 이유가 있어야 가능했다.
 첫째 너무나도 뛰어난 공적과 실력을 지녔을 때.
 둘째 모두가 죽어 더는 직위를 맡을 자가 부족할 때다.
 당유진은 안타깝게도 두 번째에 속했다.
 “뭘 어떻긴 어떻게 해 뚫고 나가야지.”
 “이 많은 망자를요? 제정신인가요?”
 “제정신? 이런 세상에 아직 정신이라 할 게 남아 있을까? 시끄럽고 무기 들어. 길 열 테니 잘 따라오고. 알지? 못 따라오면······.”
 “버리고 간다고요. 압니다. 잘 알아요. 그러니 대주나 몸조심하세요. 방심하다 녀석들 식사 꺼리나 되지 말고요.”
 종원은 당유진의 대꾸에 고개를 저었다.
 “에잇, 한마디를 안 져. 한마디를.”
 묵빛의 대도는 크고 무거웠다.
 단단한 혈교의 인형들을 베기 위해서다.
 그 무거운 대도를 종원은 어렵지 않게 한 손으로 들어 보였다.
 콰앙.
 지면에 발자국을 찍으며 앞으로 나갔다.
 흙먼지가 뒤에 강하게 일었다.
 목표는 살아 있는 자를 찾아 헤매는 망자들.
 대도가 순간 번쩍였다.
 촤아아아.
 망자의 갈라진 몸에선 더러운 청혈과 벌레들이 쏟아져 나왔다.
 ‘썩을 새끼들.’
 혈교가 부리는 망자.
 본디 망자들은 혈교의 축복을 받아들인 인간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이지를 상실하고 오로지 명령과 본능만이 존재하는 인두겁을 쓴 괴물일 뿐.
 이런 괴물들의 생을 끝내기 위해선 몸 안 어딘가 존재하는 혈정을 부숴야만 했다.
 그때 그의 왼쪽 눈이 붉게 빛났다.
 ‘오른쪽 아래······!’
 아직 인세의 지옥에서 살아 있게 한 기물이 이번에도 종원을 도왔다.
 빛나는 눈앞으로 기이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붉은 기운이 뭉쳐진 빛을 내는 돌멩이 혈정.
 그 돌멩이를 망설임 없이 베어버렸다.
 끄아아아.
 귀청이 떨어질 만큼 비명을 지리는 망자.
 곧 녀석들의 몸이 바짝 마르며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러나 이제 겨우 한 놈 퇴치했을 뿐이다.
 종원은 다음 상대를 찾아 나섰다.
 바람을 가르며 대도가 휘둘러질 때마다 어김없이 망자들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죽지 않고 잘 따라오고 있냐?”
 “예 제 걱정은 하지 말고 어서 길이나 여시죠? 이러다 늦겠어요.”
 “오냐.”
 미워할 수 없는 당유진의 말에 다시 힘을 내어 나아갔다.
 ‘이미 바깥은 모두 포위가 되었다고 봐야겠지······.’
 지하까지 점령해 들어온 망자들이라면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그렇담 당유진과 가야 할 곳은 한곳뿐이다.
 복마지로.
 본래 일월신교에서 중원으로 향하는 통로로 사용하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본래의 목적을 잃고 진군이 아닌 후퇴의 길로 사용될 터였다.
 그곳엔 방어진까지 설치되었으니 망자들의 진격을 막아줄 것이다.
 쿠웅!
 그때 저 멀리 방향에서 돌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향을 보아하니 복마지로 쪽이었다.
 “대주 어서 서둘러요! 이미 저쪽까지 망자들이 간 모양이에요.”
 화들짝 놀란 당유진의 말이었다.
 벌써 저곳까지 갔단 말이야.
 손아귀에 대도를 꽉 쥐었다.
 “유진, 평소 하던 대로 하면서 간다. 할 수 있겠지?”
 “당연하죠. 저 믿고 그냥 쭉 달리세요.”
 “그래 믿는다.”
 종원은 당유진을 들어 목마를 태웠다.
 “간다! 준비하고 진기 보내!”
 “예! 걱정하지 마시라고요.”
 씩씩한 당유진의 말이 끝나고, 대도를 쥔 체 다가오는 망자들을 바라봤다.
 ‘괴물새끼들 많기도 하네.’
 그때, 백회혈로 차가운 진기가 흘렀다.
 당유진이 흘려보낸 것이다.
 하늘과 맞닿아 인간의 정신과 통하는 백회혈.
 그곳에 타인의 진기를 흘려보낸다는 건 죽으려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행위였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곧 종원의 몸에선 기이한 음기가 피어올랐다.
 당유진과 함께 만든 현상이었다.
 ‘내공이 없으면 빌려주면 되잖아요?’
 단전이 다쳐 외공뿐인 그에게 당유진이 내놓은 답이었다.
 그녀는 천병이라는 구음절맥을 타고났다.
 때문에 순수한 음의 기운을 가졌고, 순수한 기운이란 곧 타인에게 전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뜻했다.
 ‘만약 단전만 온전했다면······.’
 종원은 머리에서부터 내려오는 기운을 사지백해로 흘려보냈다.
 오랜 합을 맞추면서 대부분 혈맥이 타동 된 덕이다.
 내공을 모아 혈맥을 넓히는 방식과는 그야말로 전후가 바뀐 기이한 상황.
 무림의 누군가 이런 상태를 말했다면 거짓부렁 말라며 성을 낼 것이다.
 고오오오!
 바람은 점차 거세져 어느새 광풍이 되어 주변의 흙먼지를 끌어들였다.
 그 상태로 몸을 띄워 곧장 복마지로로 향했다.
 콰지지직!
 카아아!
 종원이 지나간 자리마다 망자들이 가루가 되어 무너졌다.
 진기가 담긴 대도에 통째로 혈정이 갈려 나간 탓이다.
 “하아, 하아.”
 “괜찮으냐. 유진.”
 “예, 하아. 이 정도는. 하아. 끄떡도 없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단번에 쏟아낸 내력에 당유진은 지쳐 있었다.
 “조금만 참아라. 곧 다와 간다.”
 “예. 염려 마시라고요, 대주.”
 “그래. 그래야 내 부관이지.”
 카아아!
 다시금 몰려드는 망자들.
 길게 이어진 길목마다 망자들을 터트리며 나아갔다.
 그리고 드디어 복마지로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저기 대주가 온다!”
 “이제 이곳을 나갈 수 있겠어!”
 “이봐 모두 비키라고! 길을 터야 여기로 올 거 아니야?”
 도착한 곳엔 다수 교도들이 존재했다.
 ‘그래도 머리는 있는 모양이야.’
 망자들에게 둘러싸인 교단에 유일한 탈출구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때마침 오시는군요.”
 그때 군중을 헤치며 목소리가 들렸다.
 모든 것이 다 더러운 이곳과 대비되는 백발백인의 미녀.
 혈교에 대항해, 구원자를 기다리는 용화의 성녀였다.
 “성녀님을 뵙습니다.”
 “성녀님을 뵙습니다.”
 “모두 예를 거두세요.”
 허리를 낮추자 성녀가 직접 종원을 일으켜 세웠다.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종원 대주, 유진 조장.”
 “다른 대주들은 도착하지 않았습니까?”
 “전음이 연결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모두 급한 상황에 놓인 거겠지요.”
 전음이란 멀리 떨어진 자들에게 자신의 말을 전하는 무공이다.
 용화에선 조마다 전음만을 담당하는 무사들을 따로 두고 있다.
 때문에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도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런 전음이 지금 먹통이라는 말은 한 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모두 당했다고 봐야겠군······.’
 그가 하는 생각을 성녀라고 하지 못할까.
 안타까워하는 성녀의 얼굴이 보였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사자들이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 여기서부턴 제가 성녀님을 모시겠습니다. 당유진.”
 “네! 대주님.”
 “교도들의 통솔을 명한다. 안전하게 통로로 안내하도록.”
 “알겠습니다.”
 유진에게 명령을 내리곤 곧장 성녀를 데리고 가려 했다.
 그때 사방에서 짐승 소리가 들려왔다.
 키이이이!
 “망, 망자다!”
 “우리 모두 죽을 거야!”
 “아아······ 미륵이시여! 우릴 구원하소서.”
 동요하는 교도들과 함께 당유진의 얼굴엔 낭패가 가득했다.
 “대주!”
 벌써 여기까지 온 건가?
 예상보다 망자들이 도착한 시간이 빨랐다.
 그 말은 사방에서 교단을 지키던 대주들이 기어코 모두 사달이 났다는 걸 말했다.
 이제 용화에서 무력을 책임질 자는 통로의 끝. 단주가 있는 곤륜뿐이었다.
 성녀와 교도들을 그곳까지 안전하게 모셔야 했다.
 크에에에.
 시끄러운 괴성의 망자들을 바라보며 대도를 들이밀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당유진이 화들짝 놀랬다.
 “설마!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아니죠? 그렇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내가 후방을 지킬 테니 서둘러 통로로 가서 문을 닫아.”
 “하지만······.”
 종원은 끝말을 흐리는 당유진을 바라봤다.
 진한 검은 눈썹에 불그스름한 뺨이 말괄량이 같은 느낌을 줬다.
 그러나 그 속은 겉과 달리 당차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구음절맥이라고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어차피 저 오래 살지도 못해요. 그러니 기왕 죽을 거, 혈교 놈들한테 한 방 먹이고! 그리고 죽으렵니다.’
 ‘이제 제가 대주의 부관이에요. 그러니 함부로 죽을 생각하지 마세요.’
 왜 지금 이 순간 당유진과의 인연이 떠오른 것일까.
 어쩌면 이게 마지막이란 생각에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당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용화의 패도라 불리는 걸 잊은 거냐? 다 생각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진짜죠?”
 “그래.”
 ‘미안하다, 유진······.’
 마지막 말은 속으로 삼켰다.
 당유진 뒤로 성녀의 얼굴이 보인다.
 파르르 떨리는 성녀의 미간은 슬픔을 참으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면목 없습니다, 종원 대주. 본녀가 힘이 없어 이렇게 교도들의 희생만을 강요하게 되었습니다.”
 “성녀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저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뿐. 그저 그뿐입니다.”
 “하지만······.”
 그때, 그는 당유진에게 고갯짓을 했다.
 “뭐 하고 있어, 당유진! 어서 성녀님을 모셔라.”
 “예, 대주. 명을······ 받습니다.”
 당유진이 성녀를 데리고 통로로 향하기 시작했다.
 “모두 당황하지 말고 통로를 향해 떠나라! 이 앞은 나 패도가 막아설 터이니 동요할 것 없다!”
 그가 소리치며 교도들을 달래자 웅성거리던 소리가 줄어들었다.
 끼이이이.
 망자들의 시선을 따돌리던 이곳의 방어진이 점차 부서지고 있었다.
 막아서는 힘의 용량을 초과했기 때문이다.
 ‘곧 부서지겠어.’
 힐끗 뒤를 돌아봤다.
 다행히 대부분 인원이 통로에 들어간 시점이었다.
 그때 결국 진법의 한쪽이 허물어지며 망자 일부가 들이닥쳤다.
 “문을 닫아라, 당유진! 어서!”
 “꼭! 꼭! 살아서 오십시오, 대주. 아니 그러면 저한데 죽습니다.”
 드드드득.
 문의 지렛대를 당유진이 건들자 석문이 서서히 닫혀갔다.
 좁혀지는 문틈 사이, 그를 보는 당유진이 보였다.
 그때, 당유진과 눈이 마주쳤다. 울먹이는 눈이었다.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 했거늘······.’
 쿵!
 짧은 시간이 지나, 복마지로의 석문이 닫히자 주변 횃불이 흔들렸다.
 그와 함께 뚫린 방어진으로 들어온 망자들을 베어냈다.
 크에에에.
 그러자 녀석들은 경계하며 잠시 공격을 멈춰 세웠다.
 “거 참, 많기도 하네.”
 대도를 어깨에 걸치곤 전방을 보았다.
 사방에서 몰려든 망자들의 수는 족히 수천은 되어 보였다.
 “자! 이제 다 온 거냐?”
 망자들에게 포위 됐으나 마음은 그리 심란하진 않았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으니까.
 오히려 혈교에 잡혀 망자가 되느니, 이렇게 스스로 죽을 길을 찾아 나서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 여겼다.
 적어도 의지 없이 천하를 떠돌지는 않을 게 아닌가.
 “그럼 어디······.”
 종원은 조용히 몸을 관조했다.
 그러곤 곧장 최후의 수단까지 쓰지 않았던 선천지기를 터트렸다.
 선천 지기는 혈도를 돌며 사혈을 지나 백회로 그 기세를 몰아갔다.
 거센 기의 소용돌이가 그의 주변을 휘몰았다.
 “······부서져볼까.”
 대도를 위로 치켜들었다.
 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단순한 내려치기.
 태산압정(泰山壓政)이다.
 “도래미륵불식천하(到來彌勒拂拭天下)”
 부우우웅!
 마지막 말과 함께 대도가 깨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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