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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검, 의인으로 죽다

2021.12.28 조회 2,748 추천 39


 현정검(玄井劍)은 건널목을 건너려고 기다리다가 가전제품 판매업소 진열대에 놓인 대형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뉴스화면에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주었다.
 뉴스 앵커의 말에 의하면 오늘 저녁 7시 12분에 태양계의 모든 행성들이 일렬로 서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달까지 그 일렬 상에 있게 된다고 한다.
 
 “벌써 몇 달째 방송마다 저 이야기군.”
 
 지리산중 깊은 곳에 박혀있는 정검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저 일은 최근 뉴스의 단골 메뉴였다.
 하긴 뉴스로 나올 만큼 희귀한 일이긴 했다.
 지금까지 관측된 바 없는 초유의 일이라던가.
 물론 지구가 생성된 것이 언젠데 그런 일이 처음일까.
 아마 전에도 그런 일은 일어났을 것이다.
 다만 그때의 과학수준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조차도 몰랐겠지.
 태양계 행성들을 관찰할 수 있을 만큼 우주과학이 발전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초유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이 일에 대한 그 어떤 기록도, 경험도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
 누구도 설명하지 못 하고, 예측할 수도 없는 미지의 세계라는 의미도 된다.
 그러다 보니, 너도 나도 아니면 말고 식의 온갖 견해들을 쏟아냈다.
 어떤 학자는 지구상에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환경 재앙이 올 거라고 주장했다.
 또 어떤 사이비 교단에서는 이 일로 지구의 종말이 올 거라는 거짓 선전을 해댔다.
 정검은 사이비교도들이 소리치는 그 광경을 실제로 강남터미널 앞 광장에서 직접 눈으로 목격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한심한 작태였다.
 인간은 현명한 듯하다가도 또 때론 이렇게 어리석은 존재였다.
 
 “집단지성이란 밝은 면 뒤에 어리석은 군중이라는 뜻의 우중(愚衆)이 함께 존재하는 게 인간사회이니까.”
 
 정검은 힐끗 자신의 왼쪽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7시 1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쯧! 사이비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1분 뒤엔 이 세상의 종말이 오겠군.”
 
 당연히 그들 사이비들의 말을 믿는 것은 아니다.
 또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환경적 재앙이라는 말도 믿지 않았다.
 
 ‘7시 11분인 지금까지도 멀쩡한 지구가 1분 뒤에 환경재앙으로 멸망할까? 과연 이런 식의 가짜뉴스를 양산해 놓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 뭐라고 변명할지 궁금하네.’
 
 항상 그러했듯 또 그 뻔뻔한 얼굴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행동하겠지.
 파렴치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그저 신기한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제일 높지.”
 
 띠리리리링!
 
 마침 건널목의 신호등이 청색으로 바뀌며 신호음이 울렸다.
 정검은 방금 본 뉴스를 뇌리에서 지우고 천천히 건널목을 건너기 시작했다.
 벌써 정검의 뇌리에는 어서 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타고 자신의 보금자리인 지리산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중앙선 못 미쳐 이쪽 건널목의 삼분의 이쯤 건넜을까.
 정검의 옆으로 웬 여자아이가 뛰어서 지나쳐갔다.
 이제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뛰지 마. 넘어질라.”
 
 뒤에서 엄마인 듯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혼자서 뛰어가는가 보다.
 여자아이는 막 중앙선을 지나치고 있었다.
 뛰는 것도 무척이나 빨랐다.
 다른 사람들은 어느 누구 하나 중앙선 근처에도 가지 않았는데, 여자아이는 벌써 중앙선을 지나쳤으니 말이다.
 
 “크면 건강하겠다.”
 
 정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지리산에만 있다가 이렇게 가끔 대도시에 오면, 저렇게 예쁘고 귀여운 꼬마들을 보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지리산에서의 삶은 만족할 만한 것이었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혼자인 삶이 외로울 때도 있는 법.
 그럴 때면 사람의 체온이 그립기도 했지만, 성인들의 체온은 달갑지 않았다.
 그들에게선 사회에 찌든 냄새가 너무도 강했기 때문이다.
 다만 아이들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그 특유의 순수함으로 아무런 심리적 거리감 없이 체온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저런 여자애면 더 좋지.”
 
 아마 결혼을 했다면 저런 딸을 원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검은 웃었다.
 물론 이번 생에 결혼할 생각은 없었지만.
 정검의 삶은 지난 과거가 그러했듯이 미래에도 온통 수행으로만 가득한 삶일 테니까.
 그런데.
 
 부아아아앙!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오는 외제 스포츠카 하나가 보였다.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저 스포츠카가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정검이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을 날려 막 스포츠카에 부딪히려는 아이를 밀쳐냈다.
 
 쾅!
 
 엄청난 충격이 몸을 강타했다.
 정검은 그 충격으로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마치 정지한 것에 가깝게 세상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는 것을 자각했다.
 그 느려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정검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건 스포츠카의 운전자였다.
 놈은 뒤늦게 사람을 친 것을 자각했는지 차가 건널목 중간을 차지하고 멈춰 섰다.
 
 ‘마약을 한 놈이군.’
 
 놈이 눈에 보인 순간 놈의 상태를 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
 놈의 눈은 게게 풀려있었고, 방금 자신이 한 생명을 앗아갔음에도 실실 웃음을 흘릴 정도로 약에 취해 있었다.
 그 때 귀에 틱! 하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려왔다.
 왼쪽 팔목에 찬 시계의 초침이 12시 정각을 가리키며 7시 12분으로 시간이 바뀌는 것이 보였다.
 천둥소리는 초침이 움직이며 내는 소리였던 모양이다.
 
 ‘무슨 초침 움직이는 소리가 이렇게 큰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아무 것도 없던 허공에 갑자기 검은 점 하나가 생겨났다.
 
 ‘저 검은 점은 또 뭐지?’
 
 정검은 지각되어진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낯설면서도 신기했다.
 
 정지화면에 가깝게 느려진 시간의 감각도.
 천둥소리처럼 들리는 초침소리도.
 생전 보지 못하던 하늘의 검은 점도.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고, 현상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들보다도 훨씬 더 낯설고 신기한 것이 있었다.
 바로 그 감각과 현상을 지각하고 있는 자신의 상태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기한 것은 정지화면에 가깝게 느껴지는 느린 시간 감각이었다.
 
 ‘이렇게 시간이 느리게 인지되다니!’
 
 그러나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 중에서도 숨이 넘어가는 그 찰나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자신이 살아온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서 인생 전체를 되돌이켜 보았다고 증언하는 자들은 꽤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죽음이라는 극단의 상황에서 인간 뇌의 인지작용이 극한으로 발휘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평소에는 뇌의 인지작용을 100퍼센트 발휘하지 못 하게끔 진화했다.
 만약 인간이 평소에도 뇌를 100퍼센트 사용한다면, 인간은 미치거나 죽었을 것이다.
 아직 지구라는 별에서의 생물체는 그 정도로 뇌가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소에는 뇌의 10 퍼센트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다가 죽음이라는, 너무도 두려운 순간에 임하게 되면 마치 마지막 불꽃처럼 그 찰나에 100 퍼센트 역량 전부를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 그 현상이 정검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다만 그 대상이 지난 삶이 아니라 눈앞에서 일어나는 현실의 조각들인 것이 달랐지만 말이다.
 
 정검은 이런 식의 뇌의 작용을 평소에도 사용했던 사람들을 잘 안다.
 아니 무척이나 부러워한다.
 자신이 지리산에 머물며 수행하는 최종 목표가 바로 그 경지에 가닿는 것이니까 말이다.
 죽음의 순간에나 100퍼센트 사용할 수 있는 뇌를, 수행을 통해 평소에도 사용할 수 있었던 사람들.
 
 아트만을 일깨운 요기들.
 아라한의 경지에 달한 선승들.
 신선의 경지에 이른 도인들.
 
 그런 사람들이 수련하는 수행이 뭔지도 잘 안다.
 정검 스스로가 그런 수행 중 한 가지를 평생 해왔으니까.
 이 힘은 깊은 집중과 관조에서 나온다.
 깊은 집중과 관조를 수행하여, 뇌와 뇌의 통제를 받는 신체의 능력을 100퍼센트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기록되어진 바에 의하면, 깊은 집중과 관조의 상태로 들어갔던 고승은 찰나의 순간에 인간의 내면에서 예순네 가지의 욕념이 솟아올랐다가 스러지는 것을 모두 알아채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욕념이 솟고 또 스러지는 그 모든 과정을 찰나에 다 알아챌 수 있는 까닭은, 수행을 통해 닦은 집중력과 관조의 힘이 찰나의 시간조차 무한의 시간의 조각들로 나눠서 인지하기 때문이다.
 무려 예순네 가지의 욕망의 솟고 스러짐을 찰나의 순간에 보다니, 그 수행의 경지는 얼마나 지고한가.
 그야말로 정검이 평생을 수행하면서 원했던 경지인 것이다.
 
 평생 수행하면서도 이르지 못했던 그 경지를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슷하게 경험해 보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의 의식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 직후 땅에 부딪혀 물수제비처럼 튕겨가는 자신의 육체가 보였다.
 
 ‘어? 내가 내 육체를 본다고? 그럼 죽어서 영혼이 육체와 분리된 건가?’
 
 정검은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의 의식, 아마도 영혼인 것 같은, 의식이 검은 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으아아아!’
 
 
 그렇게 정검은 자신의 부서진 육신만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작가의 말

[이것저것 다 하지 뭐]로 스토리아레나에 참가하고 있는 글쟁이 임산입니다.

이 작품 [금강반야]는 대중적으로 술술 읽히는 작품은 아닐 겁니다.

그래도 그냥 제 컴퓨터에 묻혀있기는 아까운 것 같아서 올립니다.

스토리아레나에 전념해야 할 처지라서 매일 올리지 못합니다.

일단 화, 수, 목. 금으로 주 4일 올릴 각오이긴 한데, 어쩌면 그것보다도 더 띄엄띄엄 올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 나름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더 정성을 들여서 쓴 작품이긴 하지만, 요즘 트랜드에는 맞지 않는 내용일 겁니다.
그럼에도 애정을 가지고 읽어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특히 명상이나 정신 수행 쪽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에겐 흥미진진한 이야기 소재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시작이라 3화 연참합니다.

연말에 독자님들 건강 유의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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