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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1

2021.12.29 조회 448 추천 3


 프롤로그
 1999년 12월 31일, 광화문 한복판에 우주에서 날아온 검이 꽂혔다.
 
 
 
 1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시기는 매우 혼란스러운 때였다.
 사람들을 혹세무민하는 사이비들이 판을 쳤고, 그들은 새 천 년이 오면 신의 심판을 받아 인류가 멸망할 거라며 천국에 가려면 회개해야 된다고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전 재산을 사이비교에 바치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덕분에 자살률이 솟구쳤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지구를 향해 똑바로 날아들고 있는 소행성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 소행성을 제일 처음 발견한 것은 지구에서 가장 발달한 레이더망을 가지고 있는 국가의 기관이었다.
 바로, 미 항공우주국 나사였다.
 “1984년에 발견된 소행성 195473, 통칭 메제드가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나사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메제드는 지구 근접 천체(Near-Earth object, NEO)로서 사실 이러한 ‘네오’들은 밝혀진 것만 하더라도 2만 개가 넘어가기 때문에 그동안 관심을 받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네오 연구 센터’에서 메제드의 궤도가 지구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면서 이슈가 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나사에서는 대기권에 돌입하기 전에 미사일로 격추시켜 파편으로 나누면, 대부분의 파편들은 대기권 돌입 시 발생하는 수천 도의 단열압축 효과로 인해 탄화해 스러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그날이 다가왔다.
 1999년도에서 2000년도로 넘어가는 12월 31일, 사람들은 제야의 종소리 대신 밤하늘을 꿰뚫고 솟구쳐 오르는 로켓들의 불꽃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곧 로켓들은 소행성 메제드를 직격했고, 육안으로도 관찰 가능할 정도로 선명한 섬광과 함께 소행성 메제드는 파괴되었다.
 “성공이야!”
 “예스!”
 허블 망원경과 정밀 레이더로 우주를 관찰하고 있던 나사의 직원들은 탄성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들의 탄성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메제드를 구성하고 있던 파편들 중 제법 큰 덩어리가 그대로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슈퍼컴퓨터의 계산상으로는 대기권에서도 연소하지 않고 지구에 충격을 입힐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덩어리가 향하는 곳은.
 한국, 그중에서도 광화문.
 동맹국에 벌어질 참사에 안색이 하얗게 질린 나사 연구소장의 비명과도 같은 고함 소리가 상황실에 울려 퍼진 것도 그때였다.
 “당장 직통으로 한국에 이 사실을 알려!”
 연락을 받은 한국에서는 당장에 난리가 벌어졌다.
 특히나 광화문 광장에는 새해를 맞아 시대의 빅 이벤트를 직접 관찰하기 위해 나온 인파가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제야의 종소리는 덤이었다.
 “이 상황에서 국민들을 어떻게 대피시키란 말이오. 당장에 대혼란이 벌어질 텐데.”
 “대피시키지 않으면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죽습니다, 대통령님.”
 그야말로 개미 떼처럼 몰려 있는 군중을 떠올리는 대통령에 얼굴에 공포가 맺혔다.
 보지 않아도 광화문 광장에 엄청난 대혼란이 불어닥칠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었다.
 성난 군중의 움직임에서 도태된 개인들은 코끼리 떼에 짓밟힌 쥐포 신세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정보를 숨기고 사람들을 앉은자리에서 죽게 만들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신이시여.”
 그리고 예고했던 대로 메제드의 파편이 떨어져 내렸다.
 “비켜, 비켜!”
 “꺄악!”
 “여기 사람 깔렸······!”
 “밀지 마! 씨바알-!”
 어두운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며 떨어져 내리는 파편의 모습에 한순간 모든 사람들이 시선을 빼앗겼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며 타인을 밀치고 광장에서 멀어지려던 사람들도, 광장 한가운데에 갇혀 벗어날 수 없음에 포기하고 멈춰 선 사람들도, 그런 광장의 모습을 멀리 고층 빌딩에서 바라보던 사람들도.
 또 TV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전 세계의 사람들도.
 그리고 마침내 그 파편이 지상에 충돌하는 순간.
 “······?”
 “뭐지?”
 예상했던 충격과 파괴는 벌어지지 않았다.
 다만 그 자리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낡은 검 한 자루가 꽂혀 있을 뿐이었다.
 우주에서 날아온 검이 광화문 광장에 꽂히게 된 순간이었다.
 
  * * *
 
 광화문 광장은 몰려든 한미연합군에 의해 폐쇄 조치가 취해졌다.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우주에서 날아든 정체불명의 검에 관심이 쏠려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광화문에 쳐진 바리케이드와 폐쇄 조치는 2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 긴 세월 동안 한미연합 연구원들은 외계에서 떨어진 검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 동분서주했지만 한 가지도 알아낸 사실이 없었다.
 성분 검사를 하기 위해 검의 표면을 긁어내려고 해도, 검이 어찌나 단단한지 작은 부스러기 하나 얻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딱 한 가지 알아낸 사실이 있다면 광화문에 박힌 이 검은 기중기를 이용해도 뽑아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검이 박힌 그 주변의 땅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검이 땅을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마침내 20여 년의 세월이 더 흘렀을 때, 그 자리는 더 이상 바리케이드와 군인이 점령하고 있지 않았다.
 그 대신 ‘바닥에 꽂힌 검’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어 있었다.
 
  * * *
 
 “2000년이 오기 전 1999년은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새 천 년이 오면 인류가 멸망할 거라고 하는 사이비들이 판을 쳤고, Y2K 문제도 있었죠.”
 앞에서 가이드 로봇이 열심히 뭔가를 설명하고 있지만 무재한의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이 현장학습 날인지, ‘바닥에 꽂힌 검’ 주변 광화문 광장에는 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무재한은 바로 그 아이들 뒤에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외국에서야 바닥에 꽂힌 검 한번 보기 위해서 비싼 항공 티켓을 구매해서 넘어온다고 하지만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전국 어디에 있든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올 수 있는 관광지였다.
 덕분에 초, 중, 고등학교 현장학습으로 한번쯤은 여기를 와 봤던 학생들의 얼굴은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 ‘바닥에 꽂힌 검’은 처음에는 엑스칼리버라고 불렸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한국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정부에서 새로운 이름을 지정했고, 지금은 ‘환웅검’이 되었습니다. 환웅검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단군조선의 세 가지 신표인 천부인에 기인합니다. 신화에 따르면 단군의 아버지인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천제(天帝) 환인으로부터 3개의 신표를 받아 왔다고 하는데 그것들이 바로 칼, 거울, 방울입니다.”
 가이드 로봇의 설명을 듣고 있자 얼큰하게 올랐던 취기가 깨는 느낌이었다.
 무재한은 생각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때 그의 옆에 있던 김성국이 아직도 취기가 가시지 않아 벌게진 얼굴로 그를 치며 장난을 걸었다.
 “야, 내기 잊지는 않았지? 환웅검 뽑는 사람이 시키는 대로 문신하는 거다?”
 김성국은 생각만 해도 재밌다는 듯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반면 슬슬 술이 깨기 시작한 무재한은 은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곁에 서기만 해도 술 냄새가 풀풀 올라오는 그 둘을 사람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무재한은 실로 오랜만에 쪽팔리다는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
 전역하고 만난 불알친구 녀석이랑 기분 좋게 달린다는 게 좀 과음을 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문신 내기라니?
 물론 내용 자체가 여태까지 뽑힌 적이 없었던 환웅검을 뽑는 내기였으니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었지만, 누가 들을까 봐 창피한 내용의 내기였다.
 “······야, 야! 성국아. 그냥 가자. 이건 아닌 것 같다.”
 “뭐? 왜? 이제 와서 몸에 커다란 문신 하나 박을 생각 하니까 쪽팔리냐?”
 “너 인마, 지금 술에 취해서 제정신 아니라니까.”
 “내가? 아닌데? 나 오나전 멀쩡한데?”
 하지만 술에 취한 김성국은 아직도 인사불성,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너 방금 발음 꼬였어, 새끼야.
 “어휴~, 남자 새끼가 한입으로 두말하기 있기, 없기? 쪽팔리다, 쪽팔려. 재한이 이 새끼, 군대 갔다 오더니 다 죽어서 돌아왔네.”
 기회다 싶어 필사적으로 깐족거리는 김성국의 불콰한 얼굴을 어이없는 눈으로 쳐다보던 무재한은 푸욱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술에 취한 사람하고 이성적인 대화를 하려고 했던 내가 바보지.
 어차피 술이 깨면 정신을 차릴 테니 그때까지는 조금 어울려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한 채로 스테이지에 나가 칼을 뽑는다고 난리를 칠 김성국을 상상하니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는 무재한이었다.
 아, 씨! 존나 필사적으로 남인 척하고 있어야겠다.
 무재한이 혼자 속으로 결심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가이드 로봇의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자, 여러분 앞에 보이는 검이 바로 바닥에 꽂힌 검, ‘환웅검’입니다.”
 환웅검이라는 이름이야 한국 정부에서 멋대로 붙인 이름이었고, 사실 우주에서 날아온 검에 지구식 이름을 붙인다는 것도 웃긴 일이라고 무재한은 생각했다.
 차라리 이름 없이 그냥 ‘바닥에 꽂힌 검’이라고 불리는 게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줄이 정말 길죠? 이 줄이 바로 환웅검을 뽑아 보기 위해 대기하는 줄입니다. 여러분도 여기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한번 시도해 보세요. 전설에 나오는 아서왕처럼 환웅검을 뽑고 검의 주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글쎄, 만약에 칼을 뽑는다고 해도 한국 정부에서 순순히 내줄 것 같지는 않은데.
 매년 환웅검을 뽑아 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 수가 장난 아니라고 들었거든.
 환웅검 주변에는 새치기를 하지 못하도록 가이드라인이 쳐져 있었고 그 중앙에 ‘환웅검’이 있었다.
 사실 검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아~, 저게 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그냥 모르는 사람 눈에는 검의 모양을 어설프게 따라 한 커다란 쇠막대기로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다만 특이한 부분이 하나 있다면 힐트 부분에 튀어나온 작은 고리에 장신구처럼 보이는 물건이 걸려 있다는 정도였다.
 쇠막대기에서 제일 약해 보이는 부분이었는데, 연구진에게 특히 공략을 많이 당한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부서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기다랗게 늘어선 줄을 따라 순서를 기다린 사람들이 자신의 차례가 오면 칼을 뽑는 시늉을 하며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근데 보면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인일 뿐, 한국인은 드물었다.
 그도 당연한 것이, 한국인들은 어려서부터 부모님 손을 잡고 여기를 놀러 와서 다들 한번씩은 칼을 뽑아 보기 위해 용을 써 봤기 때문이다.
 “흡! 흐읍!”
 “하하하, 좀 더 힘을 써 봐, 제임스! 헬스로 단련된 근육들이 울겠어!”
 “크흡! 닥치고 기다려. 내가 오늘 영국인이 아서왕의 후세임을 증명해 보일 테니까!”
 지금도 어떤 유쾌한 서양인과 그 친구들이 바닥에 꽂힌 검을 잡아당기며 신나게 사진을 찍어 대고 있었다.
 줄은 빠르게 줄어들었고, 곧이어 그들의 차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런 그들의 바로 앞에는 현장학습을 나온 건지 고등학생 무리가 있었는데, 당연하지만 환웅검을 뽑아 보겠다고 나서는 애들은 없었다.
 괜히 관종 짓 한다고 비웃음이나 사기 일쑤였고, 그런 일은 이미 더 어릴 적에 다들 한 번씩은 해 보았으니까.
 “야, 시작하자마자 끝나 버리면 재미없으니까 네가 먼저 해라.”
 “어?”
 애들 차례가 후딱 지나가고 무재한이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김성국이 장난스럽게 말하며 등을 떠밀었다.
 김성국에게 떠밀린 무재한은 본의 아니게 스테이지로 발을 디뎠고, 그뿐만 아니라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어, 어?”
 놀람 섞인 탄성이 뒤에서 터져 나오는 가운데, 무재한은 넘어지지 않으려 균형을 잡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환웅검’의 장신구 부분을 잡아챘다.
 그러자 절대 뽑힐 리 없었던 그 검은, 너무도 간단하게 뽑혀 나와 그의 손에 쥐였다.
 당연히 환웅검을 지지대로 삼으려 했던 무재한은 검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고 말았다.
 떨어져 나온 장신구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장신구는 넘어지는 무재한을 잡으려 뻗히던 김성국의 손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멈추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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