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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북천제 [E]

북천제 1권-1

2015.01.27 조회 1,337 추천 13


 1장. 맹호출림(猛虎出林)
 
 슈-아아아앙!
 귀를 찢을 듯 강렬한 파공성이 들렸다.
 두 눈동자 가득 한 대의 강전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강전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크기가 불어나고 있었다.
 시야에 보이는 것은 오직 강전의 거대한 화살촉뿐이다.
 퍼-어어억!
 고통이 일었다.
 좌측 가슴 상단, 심장이 있는 부위를 그대로 꿰뚫어 버리는 강전.
 절로 입에서 비명이 허공으로 터져 나갔다.
 “크-아아악!”
 강전에 실린 힘 탓에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귀에 수하들이 외치는 고함이 들렸다.
 “문주- 님!”
 “안- 돼!”
 전신이 등 뒤 지면에 그대로 내동댕이쳐졌다.
 꾸아아앙!
 아프다!
 너무 아파 눈물이 날 것 같다.
 흐릿한 시야로 푸르른 초여름의 하늘이 보였다.
 ‘이대로 죽는 건가?’
 문득 푸른 하늘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서 오라고 나에게 손짓을 하시는 아버지.
 ‘아버지, 곧 가겠습니다.’
 그때 귀에 누군가의 음성이 들렸다.
 ‘아마 환청이겠지.’
 군위산은 내심 나직이 중얼거렸다.
 ‘형!’
 나지막하게 자신을 부르는 음성.
 ‘위명아!’
 동생 군위명의 목소리다.
 ‘나쁜 놈! 이 형을 천하에 다시없을 몹쓸 놈으로 만든 나쁜 자식!’
 보고 싶다.
 집을 나간 지 어언 육 년이 되었건만 단 한 번조차 연락을 보내오지 않은 나쁜 놈.
 죽는 이 순간, 그 녀석이 왜 이리도 보고 싶은지.
 전신에서 힘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물먹은 솜처럼 추욱 힘없이 늘어진다.
 ‘위명아! 돌아와 다오!’
 간절한 소망을 담은 말을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백검문의 젊은 문주 군위산은 나이 스물여섯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툭!
 그의 고개가 옆으로 떨어뜨리어졌다.
 
 ***
 
 호북성 남부, 호남성과 호북성의 경계에 홍호가 있다.
 홍호는 호북성 안쪽으로 들어간 둥근 지세로, 장강의 요충지이다.
 사천성에서 호북성 의창으로 들어오는 장강의 물줄기는홍호 앞에 잠시 멈추어 선다.
 그러고는 홍호를 우측 옆으로 비스듬히 위로 돌아가듯, 호북성의 성도인 무한으로 흐른다.
 장강을 이용해 호북성의 성도인 무한과 안휘성으로 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홍호를 거쳐야 한다.
 또한 홍호는 호남성의 동정호로 이어지는 수운의 중간 기착지로 많은 배들이 드나든다.
 그 홍호 앞쪽에 동천현이 있다.
 동천현은 홍호를 낀 덕분에 여타의 다른 현에 비해 매우 부유했다.
 사람 또한 몇 만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
 동천현에서 남쪽으로 걸어서 약 한 식경을 걸어가면, 야트막한 지세의 한 야산이 보인다.
 동몽산이라 불리는 산이다.
 그 산의 중턱에는 한 대장원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강호인들은 그 장원을 가리켜 백검문이라 불렀다.
 왁자지껄! 웅성웅성!
 그 백검문의 의사청은 몹시 시끄러웠다.
 둥근 원형의 커다란 탁자 중앙에 있는 태사의는 비어 있었고, 태사의를 중심으로 좌우로 원을 그리는 듯 자리에 앉은 네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 격한 갑론을박이 오갔다.
 “이 공자를 불러야 하오!”
 “어디에 계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부른답니까?”
 “맞소. 돌아가신 문주님의 부인이신 주모께서 문주 위에 오르셔야 하오.”
 “닥치시오. 모친이신 대부인께서 계신데 어찌 문주님의 부인이신 소부인께서 문주 위에 오르신단 말이오.”
 “말조심하시오! 엄연히 우리 백검문의 주모이시고 작고하신 문주님의 정실부인이시오.”
 “흥! 상하의 구분은 명확해야 하오.”
 “옳은 말씀이오. 정히 공석인 문주 위를 채워야 한다면, 대부인께서 적합하시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
 탁자에 앉은 네 명의 장년인은 백검문의 장로들이었다.
 그들이 내뱉는 고성이 좌중의 허공으로 울려 퍼졌다.
 “어허! 말이 안 된다니! 그 무슨 소리요.”
 “어떻게 대부인이 문주가 된단 말이오.”
 “왜 안 된단 말이오. 엄연히 작고하신 선대 문주님의 부인이시오.”
 “허어! 후처가 본처 행세를 하고자 함이오.”
 “뭐라! 죽고 싶은가?”
 “어디 한번 죽여 보지 그래?!”
 “네 이노옴!”
 “누구에게 이놈이야!”
 그들은 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나 상대방에게 삿대질을 했다. 그 모습이 서로 멱살을 잡고 금방이라도 주먹다짐을 할 기세다.
 그런 의사청 안을 문틈 사이로 바라보는 한 쌍의 눈동자가 있었다.
 “휴!”
 이제 마흔 중반에 이른 중년인은 살며시 문을 닫으며 뒤로 돌아섰다.
 백검문의 총관, 응부회.
 그는 의사청 석계 위에 서서 고개를 위로 들었다.
 푸른 하늘이 보였다.
 몇 조각 하얀 구름들이 하늘을 두둥실 떠 가고 있었다.
 응부회는 머릿속에 전대 백검문의 문주인 군천상을 떠올렸다.
 “문주님….”
 나직한 음성이 허공으로 흘렀다.
 응부회는 암담한 표정을 지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처연하게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그 광경을 석계 아래 좌측에서 빗질을 하던 한 노인이 바라보며 서 있었다.
 백검문의 노복, 관아복.
 그는 응부회와 의사청의 문을 번갈아보며 입술을 질끈 힘주어 깨물었다.
 그날 밤.
 관아복은 남의 이목을 피해 야삼경에 백검문을 나왔다.
 
 이튿날 아침.
 백검문의 하인들과 시비들은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렸다.
 “어머! 관 할아범이 오늘은 안 보이네.”
 “다 늙은 분이 어디 몸이 편찮으신가?”
 “뭐, 별일이야 있으려고. 어디 다른 곳에서 일하고 계시겠지.”
 백검문에서 그 존재감이 거의 없다시피 하는 노복 관아복.
 그 누구도 관아복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총관인 응부회조차 관심이 없었다.
 
 ***
 
 몇 달 후, 머나먼 서쪽 녕하에 자리한 령녕.
 녕하의 서쪽과 남서쪽에는 감숙성이, 동쪽과 남동쪽에는 섬서성이, 북쪽으로는 몽고 초원이 있었다.
 또한 녕하는 장성의 끄트머리에 해당하는 터라 대규모 군세가 주둔하고 있었다.
 서로군벌!
 군부의 네 세력 중 하나인 서문 대장군가의 군세다.
 그들은 녕하에서 몽고의 대부족인 차가타르와 한창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본래는 장성을 지키는 것이 서로군벌의 본분이다.
 그런데 그 일보다 차가타르 부족과 싸우는 것이 본분이 되어 버렸다.
 차가타르 부족은 빈번하게 국경이라 할 장성을 넘어왔다.
 그들은 녕하 북쪽을 근거지로 감숙성과 섬서성을 침범했다.
 그러고는 대규모 약탈과 방화를 자행했다.
 그 때문에 두 성에서 견디다 못해 조정에 표문을 올렸고, 황제는 서로군벌에 차가타르 부족을 본보기로 멸족시키라는 황명을 내렸다.
 령녕 유일의 객잔, 운풍객잔.
 객잔 안에는 제법 손님이 많았다. 뜻하지 않게 저 사막에서 모래 폭풍이 불어오는 바람에 상인들의 발걸음이 묶였기 때문이다.
 평소에 객잔에는 늘 서로군벌의 병사들이 득실거렸다.
 한데 오늘만큼은 웬일인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병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객잔주, 화복의 장년인 우도는 기분이 좋았다.
 병사들이 나타나면 돈을 뜯기는 것은 기정사실이니.
 ‘재수 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고, 복 없는 봉사는 괘사(卦辭, 점괘를 풀이해 놓은 글)를 배워 놓으면 개좆부리 하는 놈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한 마디로 말해 재수 더럽게 없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돌연 객잔 입구에서 병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 수가 약 오십여 명.
 우도는 그들이 내는 기척에 고개를 좌측 객잔 입구로 돌렸다.
 일순 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더니 황급히 표정을 바꾸며 실실 웃었다.
 “헤헤헤, 고 총기(總旗, 오십여 명을 지휘하는 최하급 무장)님 오셨습니까?”
 우도는 사람 좋은 환한 얼굴로, 병사들의 앞에서 걸어 들어오는 한 털북숭이 장한에게 고개를 숙였다.
 장한은 웃통을 벗은 채 턱에 잔뜩 가시 같은 수염이 붙어 있었다.
 령녕의 치안을 책임진 천호소의 총기, 고청보다.
 고청보는 계산대에 서 있는 우도에게 걸어가며 소리쳤다.
 “아그들아!”
 그의 음성에 병사들은 일제히 대답하며 객잔 안으로 흩어졌다.
 “알겠습니다, 고 총기님!”
 우도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그의 앞에 서는 고청보를 쳐다보았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고 총기님.”
 “나야 뭐, 그렇지. 그런데 요즘 재미 좋다며.”
 “네?”
 우도는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고청보는 싱긋 웃었다.
 “이거 왜 이러시나 모래 폭풍 때문에 상인들이 장기 투숙하고 있을 텐데.”
 우도는 움찔했다.
 ‘에라이! 이 개잡놈아. 그냥 돈 내놓으라고 해!’
 그는 슬며시 계산대 아래로 손을 내렸다.
 언제나 준비해 두어야 했다.
 우도는 계산대 아래에서 돈이 든 작은 전낭을 꺼내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고 총기님. 헤헤, 잘 부탁드립니다.”
 고청보는 슬며시 전낭을 챙겨 품속에 갈무리하며 뒤로 돌아섰다.
 “알았어. 어……?”
 그는 우도에게 말하다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야에 수하 병사들이 객잔 탁자에 앉아 있던 손님들을 위협해 객잔 뒤로 밀어내는 것이 보였다.
 그중 한 탁자.
 한 노인이 엉거주춤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며 일어나고 있었다.
 고청보는 그 광경을 유심히 보며 눈살을 찡그렸다.
 머릿속에 문득 고향에 두고 온 아버지가 생각났다. 저 노인과 비슷한 연배다.
 “제기랄!”
 고청보는 노인을 보며 투덜거렸다.
 그는 노인이 일어서는 탁자로 빠르게 걸어갔다.
 
 두 병사는 노인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얼른!”
 “싸개 일어나쇼, 노인장.”
 노인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네, 네에!”
 연신 고개를 아래위로 숙였다.
 그때 두 병사의 등 뒤에 나타난 고청보가 냅다 그들의 뒤통수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따, 따악!
 꿀밤일까?
 “악!”
 “아코!”
 두 병사는 고개를 아래로 숙이며, 오른손을 뒤로 돌려 뒤통수를 감쌌다.
 고청보는 등 뒤로 급히 돌아서는 두 병사를 보며 언성을 높였다.
 “이 쌍놈의 시키들. 아무리 우리가 막 나가는 놈들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뻘 되는 노인에게까지는 아니야. 니들, 내 손에 한번 죽어 볼래?!”
 두 병사, 약섭과 해광걸은 재빨리 소리쳤다.
 “아닙다!”
 “죽을죄를 지었슴다!”
 고청보는 두 눈동자를 부라리며 약섭과 해광걸에게 말했다.
 “얼른 사과드리고 꺼져.”
 “예, 고 총기님!”
 약섭과 해광걸은 동시에 대답하며 노인에게 돌아섰다.
 그리고 곧이어 공손하게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죄송합니다.”
 노인, 관아복은 당황했다.
 “어이쿠! 이러지들 마십시오.”
 고청보는 관아복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놈들이 잘못한 겁니다.”
 그는 내심 뜨끔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잘못이다.
 ‘젠장! 아버지가 생각이 나지 않았으면. 쩝!’
 그사이 두 병사는 관아복에게 사과한 후, 다른 탁자로 걸어갔다.
 
 잠시 후 고청보는 관아복과 한 자리에 앉아 술과 양고기를 뜯어먹으며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니깐 저 먼 호북성에서 예까지 댁의 이 공자를 찾아왔다. 이 말입니까?”
 “예, 그렇습죠. 저희 이 공자님이 간간히 저에게만 연락을 보내 주신답니다. 어려서부터 이 공자님이 절 많이 따르셨죠. 허허!”
 관아복은 말하며 회상의 눈빛을 띠었다.
 
 “할아범! 할아범! 나, 업어 줘!”
 
 이 공자는 늘 그에게 달려와 칭얼거렸다.
 그의 눈빛이 어린 손자를 보는 듯 애틋하기 그지없다.
 천호소의 총기 고청보는 관아복을 보며 내심 짠했다.
 ‘대단한 양반일세. 그 먼 호북성에서 이곳 녕하까지 도대체 몇 리 길이야.’
 그는 관아복의 충정에 내심 감탄했다.
 그 때문일까?
 도와주고 싶다는 작은 호의가 마음속에서 일어났다.
 고청보는 술잔을 들며 말했다.
 “그래, 그 이 공자라는 사람이 서로군벌에 있다 이 말입니까?”
 관아복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 년 전에 저에게 얼마간의 돈과 서신을 보내시며 집안 사정을 물으셨죠. 물론 형님 몰래요. 이 공자님은 내색을 하지 않으시지만, 정이 많으신 분입죠. 그때 이 공자님이 이곳 서로군벌에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청보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술잔을 들이켰다.
 “크으! 그래, 어디에 있는 누구랍니까?”
 그는 고개를 돌려 관아복을 보며 물었다.
 관아복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허연 백발이 가득한 머리를 스슥 긁었다.
 “그게 정확히 어디에 무슨 직책으로 계시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 공자님을 걱정하는 저에게 서신을 전해 준 사람이 씨익 웃으며 말하기를, ‘북망고성이라면, 북방에서는 울던 아이도 뚝 그친다고.’라고 했습니다.”
 순간.
 고청보는 손에 든 술잔을 놓치고 말았다.
 술잔은 탁자 위로 떨어지며 따앙 소리와 함께 떼구루루 탁자 위를 굴렀다.
 관아복은 의아한 눈으로 앞에 앉아 있는 고청보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고청보는 전신을 와들와들 떨었다.
 그는 심하게 말을 더듬거리며 중얼거렸다.
 “부, 북망산에 뜬 외, 외로운 별.”
 “네?”
 관아복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청보에게 반문했다.
 그의 눈에 비치는 고청보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무엇에 잔뜩 겁먹은 표정이다.
 관아복은 몰랐다.
 그에게 항시 업어 달라 조르던 이 공자, 군위명.
 공포!
 그가 서로군벌에서 공포 그 자체를 상징한다는 것을.
 고청보는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눈앞이 새하얗다.
 그의 머리에 한 무장과 그를 따르는 서로 군벌 최강의 조직이 떠올랐다.
 북망고성, 혈혼질풍대.
 
 ***
 
 휘이이이잉!
 모래 폭풍이 황야를 휩쓸고 있었다.
 자욱한 흙먼지가 일어나며 허공으로 흩날렸다.
 얼마나 자욱하게 흙먼지가 일어나는지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황야 한 곳.
 다수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무장들이 흔히 앉는, 낮은 의자에 앉은 한 무장.
 그는 투구를 쓰고 코와 입을 천으로 가렸다.
 정면 앞에는 목만 내민 십여 명의 몽고인이 땅에 파묻혀 있었다.
 그들의 뒤에는 손에 철퇴를 든 갑주를 입은 두 명의 하급 무장이 서 있었다.
 두 무장의 좌측에는 땅바닥에 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수백여 명에 달하는 몽고인이 있었다.
 그들 사이사이에는 갑주를 입은 하급 무장들이 좌우에 서 있었다.
 의자에 앉은 무장, 군위명이 물었다.
 “툴루이, 이린지발은 어디에 있나?”
 땅에 파묻힌 몽고인들 우측 끝에 있는 장년의 몽고 장수 툴루이.
 그는 침묵하며 의자에 앉은 무장 군위명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
 군위명은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며 아래위로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한 무장이 몸을 돌려 우측 끝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저벅저벅!
 그 발걸음 소리에 땅에 파묻힌 몽고인들이 움찔거렸다.
 잠시 후,
 부우우웅!
 철퇴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울렸다.
 퍼억!
 “크아악!”
 머리가 터지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거의 동시에 떨렸다.
 툴루이는 의자에 앉은 무장 군위명을 향해 악을 쓰듯 소리쳤다.
 “북망고성! 이 비열한 놈!”
 그의 음성에 분노가 가득 어렸다.
 군위명은 차가운 눈빛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툴루이.”
 그의 음성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한데, 그 음성을 듣는 순간 전신 모골이 송연했다.
 음성에 배어 있는 살의 탓이다.
 허공으로 군위명의 낭랑한 음성이 흘렀다.
 “난, 가능하면 피를 적게 보고 싶다. 그 피가 내 수하들의 피든, 그대들 몽고인들의 피든,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난, 얼마든지 비열하고 잔인해질 수 있다. 바로 지금처럼.”
 군위명은 왼손을 살짝 위로 들었다.
 그러자 예의 소리들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퍼억!
 “크아악!”
 땅에 파묻힌 몽고인들, 한쪽에서 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몽고인들.
 그들은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툴루이는 이를 부서져라 악물었다.
 “으득!”
 군위명은 냉랭한 눈으로 툴루이를 보며 말했다.
 “네가 이린지발의 행방을 말할 때까지, 네 수하들을 한 명씩 죽이겠다. 다들 수백여 명이니 족히 며칠은 걸릴 것이다. 그래도 좋다. 모름지기 사내라면 너와 같이 의리를 지켜야 할 터. 허나, 그 대가는 매우 뼈아플 것이다. 툴루이!”
 그는 목만 내민 툴루이를 보며 낮게 웃었다.
 “후후! 선택은 내 몫이 아닌 네 몫이다.”
 툴루이의 전신에서 잔 떨림이 일어났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툴루이의 시야에 같이 땅에 묻힌 수하들과 한쪽에서 두 무릎을 꿇은 수하들이 보였다.
 다들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툴루이는 갈등했다.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맹우인 이린지발의 행방을 불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수백 명에 이르는 수하들이 눈앞에서 무참하게 죽어 가는 것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혼란스럽다!
 군위명은 눈을 반짝였다.
 툴루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필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갈팡질팡 하고 있을 터.
 ‘쇄기를 박는다!’
 군위명은 스윽 고개를 들어 땅에 파묻힌 몽고인들 뒤에 서 있는 두 무장을 쳐다보았다.
 두 무장은 군위명과 시선이 마주하는 순간 전신을 움찔거렸다.
 군위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무장은 손에 든 철퇴를 힘주어 잡았다.
 그들은 좌우로 갈라지며 걸었다.
 잠시 후 또다시 예의 소리와 비명이 들렸다.
 퍼어억!
 “크아아악!”
 연이어 울려 퍼지는, 섬뜩한 머리가 터져 나가는 소리와 비명.
 툴루이는 와들와들 전신을 떨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마-안!”
 그는 수하들이 무참하게 죽어 가는 것을 더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다 한 부족민들이고, 자신과 피를 나눈 혈족들이다.
 ‘용서해 다오. 이린지발! 나는 비겁한 놈이다.’
 툴루이는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리며 뚝, 뚝 굵은 눈물을 흘렸다.
 군위명은 앉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는 우측으로 돌아서며 툴루이를 향해 걸어갔다.
 터벅터벅!
 나지막한 발자국 소리가 천둥처럼 툴루이의 귀를 파고들었다.
 이윽고 고개 숙인 툴루이의 앞에 군위명이 섰다.
 “이린지발은 어디에 있나?”
 툴루이는 두 눈을 뜨며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는 군위명을 보며 두 눈동자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을 내뿜었다.
 “북망고성! 으드득!”
 “어디에 있나?”
 “그는 지금쯤 녕하 북쪽 끝인 혜농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흠. 언제 헤어졌지.”
 “나흘 전이다.”
 군위명은 툴루이의 대답에 눈매를 반짝였다.
 그는 뒤로 돌아서며 소리쳤다.
 “지금 즉시 출발한다.”
 혈혼질풍대의 무장들이 일제히 대답하며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명!”
 군위명은 걸어가며 냉혹한 음성을 내뱉었다.
 “모두 없애라!”
 “예!”
 수하 무장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툴루이는 소스라쳤다.
 그는 놀란 얼굴로 군위명의 등을 쳐다보았다.
 “약속이 틀리다. 북망고성!”
 군위명은 발걸음을 떼다가 우뚝 멈추어 섰다.
 그는 정면을 직시하며 낭랑하게 말했다.
 “난!”
 “…….”
 “너희들을 살려 준다고 말한 바도, 약속한 바도 없다!”
 비정한 음성.
 툴루이는 멍했다.
 들은 바가 없다.
 분명 군위명은 그와 따르는 수하 부족민들을 살려 주겠다. 말한 적이 없다.
 그사이 혈혼질풍대의 무장들이 닥치는 대로 몽고인들을 도살하고 있었다.
 쉿! 쇄액!
 검날이 일으키는 파공음이 섬뜩하게 울렸다.
 “으아악!”
 비명이 끝없이 들렸다.
 허공으로 붉은 선홍빛 선혈들이 튀며, 불어오는 모래 폭풍을 붉게 물들였다.
 툴루이는 목이 터져라 일갈했다.
 “살려다오! 북망고성, 나를 죽여도 좋다. 내 수하 부족민만은 살려다오!”
 애절한 음성이 허공을 뒤덮으며 메아리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위명은 대답이 없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빨리 이린지발의 뒤를 쫓아야 한다. 포로를 데리고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군위명은 모질게 마음을 먹었다.
 여기서 포로를 다른 부대에 인계할 시간 여유가 없었다. 한시바삐 차가타르 족을 쫓아야 했다.
 스스로에게 화가 나지만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는 무심히 앞으로 발걸음을 떼며 걸어갔다.
 등 뒤 허공으로 처절한 비명성들이 메아리쳤다.
 “끄아아악!”
 
 군막 안은 무척 넓었다.
 좌우 폭이 여덟아홉 장은 족히 될 듯했다.
 군막 안 중앙에는 둥근 탁자가 있었고, 탁자 위에는 커다란 지도가 놓여 있었다.
 둥근 탁자를 원을 그리며 선 다섯 명의 노 무장.
 그들은 정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정면에 서 있는 한 무장이 서둘러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몽고의 대부족인 차가타르의 족장 이린지발이 혜농을 향해 나흘 전에 움직였다’라고.
 보고를 마친 무장은 재빨리 군막 밖으로 뛰어 나갔다.
 다섯 명의 노 무장은 고개를 돌려 탁자 위 지도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안색은 매우 밝았다.
 탁자 중앙에 서 있는 노 무장, 서문여송.
 그는 희색이 만면한 얼굴로 득의에 찬 음성을 내뱉었다.
 “잡았어!”
 그의 주변에 서 있는 네 노 무장은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대장군. 놓쳐서는 안 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잘도 저희들의 포위망을 빠져나간 놈들입니다. 신중하게 놈들을 포위해야 합니다.”
 “하늘이 주신 기회입니다. 대장군.”
 “맞습니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이린지발만큼은 잡아 죽여야 합니다.”
 네 노 무장은 흥분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꾸라지처럼 서로군벌의 포위망을 잘도 빠져나간 이린지발이 이끄는 차가타르 부족이다.
 번번이 그들을 놓치는 바람에 조정에서 문책이 여러 번에 걸쳐 있었다.
 그 때문에 서로군벌의 수뇌들은 이를 갈았다.
 번번이 장성을 넘어와 약탈을 하고 몽고 쪽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냥 도망만 친 것이 아니다.
 뒤를 추적하고, 앞을 막아서는 서로군벌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상당한 수의 무장들과 병사들이 죽어 나갔다.
 몽고족들은 탁월한 기마술과 궁술로 서로군벌을 마음껏 조롱했다.
 악에 받친 서문 대장군 서문여송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서로군벌 산하에 무공을 아는 무장들을 모조리 다 불러 모아라.”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북망고성 군위명이 이끄는 혈혼질풍대다.
 그 후 몽골족들은 혈혼질풍대 탓에 힘겨워 하면서도 약탈을 멈추지 않았다.
 약탈이라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몽고족 내부에서도 마적 떼로 치부해 버리며, 내놓은 최악의 부족, 차가타르 족.
 초창기의 그들은 같은 몽고족을 약탈하였으나, 그 결과 전 몽고족으로부터 공동의 적이 되었다.
 전 몽고족이 그들을 공격하려고 하자 어쩔 수 없이 서쪽으로 도망쳐야 했다. 그리하여 자리 잡은 것이 녕하와 그 북쪽에 있는 몽고 초원이었다.
 서문여송은 좌우를 둘러보며 일갈했다.
 “지금 즉시 동원 가능한 모든 기마들을 혜농 방면으로 이동시키시오. 놈들이 혜농을 통해 초원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퇴로를 확실히 차단하시오. 아시겠소이까?”
 네 노 무장은 일제히 소리쳤다.
 “예, 대장군.”
 서문여송은 노 무장들을 보며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몇 년에 걸친 전쟁 아닌 전쟁이 드디어 그 결말을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장성을 지키는 본연의 임무로 되돌아가야 할 때다.
 
 
 2장. 백리추종(百里追從)
 
 
 황야는 허허벌판이다.
 끝없이 펼쳐진 평야 저 멀리엔 아득한 지평선이 있었다.
 황야에서 방향을 가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매일 밤 별자리를 보고 가고자 하는 방향을 추측한다. 그러고는 다음 날 그 방향으로 간다.
 날이 저물면 다시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나아가는 방향이 맞는지 살핀다.
 황야는 바다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끝없이 물결이 출렁거리는 대해.
 그 대해를 한 점의 배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간다.
 한 점의 배는 기마다.
 휘이이잉!
 불어오는 모래 폭풍에 모닥불을 피울 수 없었다.
 차가타르 부족의 몽고인들은 말을 지면에 눕혔다.
 그들은 눕힌 말들을 모래 폭풍의 방벽으로 삼고, 그 안쪽에서 두꺼운 양털 가죽으로 전신을 감쌌다.
 양가죽으로 만든 물주머니를 입에 대고 물을 마시고, 양고기를 말린 육포로 배를 채웠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황야.
 몇 천 명에 이르는 몽고인들은 서로의 몸을 꼭 붙인 채 밤을 뜬눈으로 보내고 있었다.
 “대족장님.”
 한 중년의 몽고인, 아율타는 물주머니를 장년인 이린지발에게 건넸다.
 이린지발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주머니를 받았다.
 아율타는 이린지발이 입에 물주머니를 물고 물을 마시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윽고 이린지발이 입에서 물주머니를 떼자, 아율타는 불안한 어조로 말했다.
 “대족장님. 툴루이 소족장이 아직 합류하지 않았습니다.”
 이린지발은 흠칫했다.
 그는 말없이 아율타에게 물주머니를 건넸다.
 아율타는 물주머니를 받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십중팔구는 혈혼질풍대에 따라잡힌 것이 분명합니다.”
 “…….”
 이린지발은 침묵했다.
 “대족장님!”
 아율타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린지발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툴루이는 나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맹우다.”
 툴루이를 믿는다!
 그는 그런 속내를 내비쳤다.
 아율타는 움찔했다.
 차가타르 부족은 세 개의 소부족이 모여, 대 씨족을 이룬다.
 그 세 소부족은 서로 혈연으로 이어져 있다. 다들 친, 인척이다.
 아율타는 이린지발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족장님, 만약에 툴루이 소족장이 북망고성의 손에 떨어졌다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아율타의 음성에 이린지발은 움찔했다.
 눈가에 불안한 눈빛이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린지발은 아율타를 바라보았다.
 “나는 툴루이를 믿는다.”
 굵은 음성.
 그는 여전히 툴루이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아율타는 고개를 아래로 숙이며 나지막한 음성을 흘렸다.
 “저도 툴루이 님을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북망고성입니다.”
 이린지발은 아율타의 음성에 움찔하며 움츠렸다.
 그의 머리에 한 사내가 떠올랐다.
 ‘북망고성.’
 서로군벌 최강의 무력 조직인 혈혼질풍대를 이끄는 젊은 무장.
 그는 젊었다.
 또한 그 누구보다 더 냉혹하고 잔인한 자다.
 수하 하나가 죽으면 사로잡은 몽고족 백여 명을 가차 없이 죽여 버렸다.
 말을 타는 기마술은 몽고족 못지않았으며, 지략은 현란하고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이린지발은 번번이 그와 그가 이끄는 혈혼질풍대에게 덜미를 잡힐 뻔했다.
 그때마다 몽고족 특유의 기마전술과 궁술로 위기를 모면했다.
 말을 타고 진형을 이루어 공격하는 혈혼질풍대.
 그들과 맞닥뜨리는 차가타르 부족의 소부족에 속한 몽고인들은 여지없이 일패도지했다.
 그 탓에 이린지발도 혈혼질풍대와 접전을 벌이는 것을 회피했다.
 맞싸워 봤자, 얻는 것이 전무했다.
 오히려 희생자와 중상자만 나올 뿐이다.
 지난날을 떠올리던 이린지발이 돌연 움칫했다.
 두…… 두…… 두!
 귀에 뭔가 소리가 들렸다. 얼핏 들리기로는 말발굽소리 같았다.
 위이이이잉!
 모래 폭풍은 기세를 더 하듯 몹시 사납게 불어오고 있었다.
 그 탓에 이린지발은 귀에 들린 소리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급히 지면으로 몸을 숙이며, 귀를 땅바닥에 갖다 대었다.
 아율타는 이린지발의 행동에 의아해 했다.
 “대족장. 왜, 그러십니까?”
 오른쪽 귀를 땅바닥에 붙인 이린지발.
 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빠르게 핏기가 사라지고 놀란 기색이 완연했다.
 이린지발은 황급히 땅바닥에서 일어나며 주위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곧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적이다! 기습이다-아아!”
 아율타는 기겁했다.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허리춤에서 검신이 굽은 곡도를 빼 들었다.
 아율타는 주변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고함을 질렀다.
 “일어나라! 적이다! 혈혼질풍대의 기습 공격이다!”
 그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들이 아니면 우리를 공격할 자들은 없어.’
 아율타는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주변에 앉아 있던 몽고인들은 화들짝 놀라 급히 자리를 박차며 일어섰다.
 그러고는 허리춤에서 곡도를 뽑아 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모래 폭풍 탓에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위이이이이잉!
 아율타는 앞에 서 있는 이린지발을 쳐다보았다.
 “대족장님!”
 “서쪽! 서쪽이다!”
 이린지발은 거침없이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아율타는 대답과 동시에 고개를 돌려 주위에 있는 부족민들에게 경고했다.
 “서쪽이다! 서쪽에서 적이 내습한다!”
 차가타르 부족의 몽고인들은 황급히 서쪽으로 돌아서며, 적을 맞아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이린지발은 그사이 허리춤에서 곡도를 뽑아 들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지독한 놈들! 이 모래 폭풍 속을 뚫고 우리 뒤를 따라붙다니.”
 ‘지독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은 모래 폭풍 속을 달려 자신이 이끄는 부족을 뒤쫓아왔다. 그러고는 이제 공격을 해 오려 하고 있었다.
 ‘미친놈들!’
 이린지발은 모래 폭풍을 뚫고 말을 달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다.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불어오는 모래 폭풍에 휘말려 어디론가 내팽개쳐질지 모른다.
 모래 폭풍 탓에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뿐더러, 전신으로 스며드는 가느다란 깨알 같은 모래는 쉬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런데도 혈혼질풍대는 모래 폭풍을 뚫고 말을 내달렸다.
 그들이 얼마나 지독한지 잘 알 수 있는 단면이다.
 이린지발과 아율타, 그리고 차가타르 부족의 몽고인들은 말을 타지 않았다.
 모래 폭풍이 불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말을 타지 않고 도보로 움직이는 것이 유리하다.
 모래 폭풍이 부는데 말을 타고 움직인다면, 그 움직임은 느릴 수밖에 없다.
 불어오는 모래 폭풍에 노출되는 부위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
 잠시 정적과 고요, 그리고 긴장이 감돌았다.
 차가타르 부족민들은 정면을 바라보며 곧 나타날 적을 기다렸다.
 마른침이 목 아래로 끌꺽 넘어가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흥분과 긴장으로 피의 흐름이 빨라졌다.
 두 눈은 정면을 향해 부릅떠지고, 곡도를 쥔 오른손 손아귀에는 비지땀이 배어 나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전방에 말을 탄 인마가 보이기 시작했다. 허나, 모래 폭풍 탓에 모습은 선명하지 않았다.
 희끗희끗!
 빠르게 잠깐잠깐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린지발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는 부족민들을 향해 소리쳤다.
 “준비하라! 곧 적들이 안쪽으로 쳐들어오…… 허어어억!”
 이린지발은 뒤를 보다가 숨넘어가는 숨이 넘어갈 듯한 격한 음성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아율타가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대족장? 뒤에 무엇이 있…… 우아아악!”
 그는 이린지발에게 말하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아율타는 소스라쳤다.
 등 뒤.
 일단의 무리들이 발소리를 죽인 채 걸어오고 있었다.
 터벅터벅!
 전신에 두꺼운 갑주를 입고, 양 어깨에는 보호용 호갑을 걸쳤으며, 등 뒤 허공으로 피풍의를 펄럭거렸다.
 머리에 깊숙이 눌러쓴 투구 아래에는 코와 입을 가린 천이 자리해 있었다.
 혈혼질풍대.
 그들은 고요함 속에 슬며시 찾아오는 어둠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오른손에 쥔 검의 검신은 검게 칠해져 있었으며, 두 눈동자에서는 서슬이 시퍼런 안광이 번쩍, 번쩍 불똥을 튕겼다.
 음습한 지옥을 뛰쳐나온 악령 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본 이린지발과 아율타는 발작하듯 외쳤다.
 “뒤다!”
 “등 뒤다!”
 두 사람의 다급한 음성이 허공으로 터져 나갈 때였다.
 혈혼질풍대 선두에 서 있는 군위명이 대갈일성을 터트렸다.
 “쳐라!”
 혈혼질풍대의 무장들은 일제히 소리쳤다.
 “명!”
 그들은 성난 파도처럼 앞으로 내달렸다.
 다다다다!
 차가타르 부족의 몽고인들은 당황했다.
 정면에서 치고 들어올 줄 알았다. 그런데 실상은 등 뒤라니!
 이린지발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빠득!
 “앞은 눈속임이었어.”
 그는 당황하며 급히 뒤로 돌아서는 부족민들을 살폈다.
 다들 허둥지둥거렸다.
 완벽하게 허를 찔려 버렸다.
 “아율타!”
 이린지발은 고개를 우측으로 돌렸다.
 “예, 대족장님.”
 그는 대답하는 아율타에게 말했다.
 “지금 즉시 뒤로 물러선다. 모든 부족민들에게 모래 폭풍 속으로 들어가라고 해라.”
 “대족장!”
 아율타는 어이가 없다는 어투로 이린지발을 불렀다.
 모래 폭풍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스스로 죽겠다는 것과 똑같다.
 이린지발은 말했다.
 “지금은 승산이 없다. 혈혼질풍대는 무공을 익힌 무장들이다. 그들을 상대로 우리는 말을 탈 수도, 활을 쏠 수도 없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우린 저들의 먹잇감에 불과하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하지만 대족장! 이대로 모래 폭풍 속으로 들어간다면, 전 부족민이 모두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살아남는 자는 있을 것이다. 모래 폭풍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우린 모두 혈혼질풍대에게 죽는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어느 쪽이든 살 확률이 높은 쪽을 선택해야 하지 않겠느냐?”
 아율타는 어금니를 꽉 악물었다.
 “알겠습니다.”
 그는 결연한 눈빛을 띠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린지발은 뒤로 돌아서며 언성을 높였다.
 “가라! 나는 퇴로를 막겠다.”
 “대족장!”
 “어서 가라! 누군가는 혈혼질풍대의 추적을 끊어야 한다.”
 “크흑!”
 아율타는 뒤로 뛰어가는 이린지발을 보며 비분강개했다. 그는 정면으로 고개를 돌리며 목이 터져라 외쳤다.
 “모래 폭풍으로 들어가라! 적들과 싸우지 말고 모래 폭풍 속으로 빨리 들어가라!”
 아율타는 필사적으로 외치며 정면으로 내달렸다.
 그의 두 눈동자에 사나운 기세로 황야를 휘몰아치고 있는 모래 폭풍이 보였다.
 
 한편 차가타르 부족의 후미를 혈혼질풍대가 따라잡았다.
 그들은 후미의 몽고인들을 공격했다.
 쉭! 쉑!
 검날이 대기를 가르는 소리가 울렸다.
 “끄아악!”
 “으악!”
 죽어 가는 몽고인들이 내뱉는 비명 소리가 허공으로 울려 퍼졌다.
 그들이 뿌리는 선혈이 땅바닥으로 튀며 혈흔을 남겼다.
 혈혼질풍대는 일말의 사정도 보아주지 않았다.
 그들이 노리는 부위는 정해져 있었다.
 제일 먼저 목을 노렸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두 번째로 좌우 양팔 중 하나를 노렸다. 그도 어려우면 몽고인들의 허벅지와 옆구리를 노렸다.
 일검에 죽일 수 있는 부위, 모든 무력을 일순간 바닥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부위, 시간을 두고 무력을 잃게 할 수 있는 부위.
 교활하고 잔인했다.
 몽고인들은 저항했다.
 손에 든 곡도를 휘둘러 무장들의 검을 막았다.
 채앵! 차앙!
 곡도와 검이 맞부딪쳤다.
 그 순간 강한 반탄력이 일어나며 곡도를 허공으로 튕겨 버렸다.
 내공이라 불리는 무형지력이 무장들의 검에 실려 있었던 것이다.
 몽고인들은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그들은 무공을 익힌 무장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몽고인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무장들은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몽고인들을 검으로 찌르고 베었다.
 그 일련의 동작들은 몸에 익은 듯 매우 자연스러웠다.
 푸욱! 스아아악!
 “으아악!”
 “크-헉!”
 몽고인들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져 죽어갔다.
 
 허공으로 분노한 음성이 터졌다.
 “북망고성!”
 군위명은 눈매를 번뜩이며 씩 웃었다.
 “이번에는 안 놓쳐.”
 그를 알아본 듯 정면에서 한 사내가 내달려 오고 있었다.
 이린지발, 그다.
 비록 놓치기는 했지만, 과거 두어 번 본 적이 있다.
 군위명은 내공을 음성에 실으며 소리쳤다.
 “내 몫이다!”
 그의 주변에 있던 무장들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군위명은 달려오는 이린지발을 향해 마주 앞으로 내달렸다.
 “오랜만이다. 이린지발!”
 “죽여 버리겠다!”
 “누가 할 소리!”
 군위명과 이린지발은 상대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이윽고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지며 약 일 장의 거리를 남겨두었다.
 군위명은 지면을 박차며 허공으로 도약했다.
 그는 이린지발의 좌측 어깨 옆으로 이동하며, 검으로 이린지발의 목을 베어 갔다.
 슈-아아앙!
 검이 일으키는 기세가 매우 사나웠다.
 이린지발은 급히 고개를 아래로 숙이며, 전신을 좌측으로 틀었다.
 그는 곡도로 허공을 비스듬히 좌측 위로 베어 갔다.
 낮은 파공음이 울렸다.
 쉬이잇!
 군위명은 천근추로 전신을 아래로 뚝 떨어뜨렸다.
 아래로 떨어지는 그의 머리 바로 위, 한 치 어림의 허공을 곡도가 스쳤다.
 군위명은 태연했다.
 얼굴에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었다.
 무심하고 침착한 얼굴.
 군위명은 눈빛을 반짝였다.
 시야에 무방비로 텅 빈 이린지발의 우측 겨드랑이가 보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검을 앞으로 내뻗었다.
 푹!
 검날이 이린지발의 우측 겨드랑이 깊숙이 파고들었다.
 “끄-악!”
 이린지발은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뒷걸음질을 쳤다.
 군위명은 이린지발을 따라붙었다.
 “멍청이. 공격이 실패하면 상대에게 치명적인 허점이 드러난다는 것을 모르나?”
 “닥쳐라!”
 이린지발은 소리치며 곡도로 군위명을 내리치려고 했다.
 움찔!
 일순간 우측 겨드랑이가 멈칫거리며 고통이 일어났다.
 흡사 인두로 겨드랑이의 살갗을 지지는 것 같다.
 이린지발은 고통 때문에 머뭇거렸다.
 그 머뭇거림은 치명적이었다.
 어느새 정면 가까이 접근한 군위명이 좌장으로 이린지발을 공격했다.
 좌장이 허공을 가르며 이린지발의 가슴을 때렸다.
 꽈앙!
 이린지발은 가슴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그는 장력에 실린 힘에 등 뒤 지면으로 나가떨어지며, 떼굴떼굴 굴렀다.
 군위명은 이린지발을 보며 픽 실소했다.
 말에서 내린 몽고족이다.
 게다가 활이 아닌 곡도를 쥐었다. 단병접전에서는 혈혼질풍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군위명은 느긋하게 이린지발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그간 잘도 도망 다녔지.”
 빠드득!
 입가로부터 이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 네놈은 내 손에 죽을 것이다.”
 냉랭하기 그지없는 음성이다. 진한 살심이 잔뜩 묻어났다.
 이린지발은 신음성을 흘리며 지면에서 일어났다.
 그는 전신을 좌우로 비틀거리며 군위명을 쳐다보았다.
 “설마 툴루이가 입을 열었을 줄이야.”
 이린지발은 군위명과 혈혼질풍대가 뒤를 따라붙은 이유를 간파했다.
 군위명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는 맹우를 잘 사귀어라. 이린지발!”
 그는 말과 함께 정면 허공을 검으로 갈랐다.
 번쩍!
 순간 허공에서 검광이 번뜩였다.
 검광은 단숨에 이린지발의 목을 좌에서 우로 그어 버렸다.
 “크-하아악!”
 허공으로 비명과 함께 이린지발의 수급이 치솟았다.
 몇 년에 걸쳐 서로군벌을 애먹이던 한 존재가 세상에서 지워졌다.
 
 ***
 
 백검문의 노복 관아복은 자신이 호사를 누린다 생각했다.
 총기 고총보가 소속 천호소를 통해 관아복을 서로군벌 본영으로 인도했다.
 그 과정에서 관아복이 군위명을 찾아왔다는 것과 그가 군위명 집안의 오랜 가복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상식적으로 볼 때 관아복은 일개 늙은 종에 불과하다.
 한데 그런 그에게 상당한 편의와 음식이 주어졌다.
 이례적인 일이다.
 관아복은 어리둥절했다.
 “내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그는 내심 불안했다.
 자신이 묵는, 서로군벌 본영에 있는 한 군막은 매우 넓었다.
 약 이십여 명이 함께 기거해도 공간이 남을 듯했다.
 간소한 작은 의자, 서탁, 사각의 탁자, 한쪽에 있는 침상 등등.
 딱히 대단할 것이 없는 가재도구라 할 것이나, 군영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가재도구들이다.
 군막의 주인은 상당한 지위의 고위 무장인 것 같았다.
 저벅저벅!
 낮은 발걸음 소리가 들리며 투구를 쓴 한 무장이 군막 안으로 들어섰다.
 탁자에 앉아 있던 관아복은 군막 입구를 보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며 움찔거렸다.
 투구를 쓰고 콧잔등 아래를 천으로 가린 한 무장.
 그의 안광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또한 날카로운 것이 흡사 먹잇감을 노려보는 매의 눈 같았다.
 주눅이 든 것일까?
 관아복은 고개를 슬며시 아래로 숙였다.
 “쇤네는 관아복이라고 합…….”
 그는 말을 하다가 멈추었다.
 귀에 들린 무장의 낮은 웃음소리 때문이다.
 “크크큭!”
 웃음소리는 관아복을 놀리는 듯했다.
 무장은 웃으며 앞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관아복은 내심 불쾌했다.
 그는 자신의 등 뒤로 돌아가는 무장의 움직임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저기, 저희 이 공자님을 좀 뵙게 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만.”
 무장은 탁자 우측에 서며 양손으로 머리에 쓴 투구를 벗었다.
 “관 할아범, 대단하네. 호북성에서 예까지 날 찾아오고 말이야. 응! 그런데 말이야.”
 “…….”
 관아복은 무장의 돌연한 음성에 영문을 몰라 두 눈을 껌뻑껌뻑거렸다.
 “미쳤어! 길가에서 쓰러져 객사하고 싶냐고! 사람이 자신의 나이를 생각해야 할 것 아냐?”
 관아복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혹시, 이 공자님?”
 그제야 무장의 음성이 귀에 익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장은 투구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고개를 관아복에게 돌렸다.
 그러고는 오른손을 들어 입을 가린 천을 아래로 끌어 내렸다.
 그는 양손을 좌우로 활짝 벌리며 호쾌하게 웃었다.
 “으-하하하핫! 관 할아범. 육 년 동안 잘 지냈어?”
 “이 공자님!”
 관아복은 기뻐 소리쳤다.
 자신의 눈앞에 백검문의 이 공자 군위명이 서 있었다.
 
 잠시 후.
 “뭐-어어!”
 군위명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형!
 보고 싶어도 참고 또 참았던 형, 군위산. 그가 죽었다니?!
 노복이 말했다.
 “흐흑! 남제궁의 철궁보 놈들이 홍호로 쳐들어왔었습니다. 당시 인근의 문파들이 지원을 올 때까지, 문주님께서 문의 무사들을 이끄시며 사력을 다해 막으셨지만 결국에는…… 으흐흑! 그리고 지금 문은…….”
 군위명은 형이 죽었다는데, 문의 장로들은 아직까지도 장례조차 치르지 않았다는 말에 극히 비분강개했다. 게다가 어머니와 형수의 파벌이 서로 문주 자리를 놓고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다는 관아복의 말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공자님, 돌아오셔야 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버님이신 군천상 태상 문주님이 세우신 저희 백검문은 망하고 맙니다. 흐흐흑! 이 노복이 이리 무릎을 꿇고 애원합니다. 이 공자님, 부디 문으로 돌아와 주십시오.”
 관아복은 군막 아래 땅바닥에 두 무릎을 꿇었다.
 군위명은 기가 찼다.
 늙은 노복인 관 할아범이 이리 문에 충정을 다 바치는데, 장로라는 작자들과 형수, 그리고 어머니는 여태까지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울화가 치솟았다.
 그는 관아복에게 소리쳤다.
 “당장 일어나, 관 할아범. 누가 내 앞에서 두 무릎을 꿇으래. 관 할아범은 내게는 친할아버지나 다를 바가 없어. 당장 일어나!”
 “절대 안 일어납니다, 이 공자님. 문으로 돌아오시겠노라 쇤네에게 약조를 해 주시지 않으시면, 이 노복 죽어도 안 일어납니다.”
 “이익! 이 소 고집!”
 “이 공자님.”
 “일어나. 어서 일어나란 말이야. 나이 칠십이 넘은 지가 언제인데. 두 무릎을 꿇어. 호북성에서 여기까지 오는 도중 객사하지 않은 것만도 천행으로 여겨. 알겠어! 빨리 일어나, 어서!”
 “약속하시는 겁니까?”
 “그, 그건…….”
 군위명은 난처했다.
 자신은 군문에 매인 몸이다. 덜컥 군문을 나와 집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관아복은 군위명을 보며 배 째라는 듯, 등을 땅바닥에 대며 아예 드러누워 버렸다.
 “쇤네는 이 공자님께서 약조하시기 전에는 죽어도 안 일어납니다.”
 군위명은 기겁했다.
 “관 할아범. 지금 뭐 하는 짓이야. 그러다가 풍 맞으면 어쩌려고그래! 당장 일어나! 일어나라고.”
 “약조해 주십시오.”
 “관 할아범!”
 군위명은 언성을 높였다.
 관아복은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문으로 돌아오시겠노라. 약조해 주십시오. 만일 강제로 쇤네를 일으키시면 그 즉시 혀를 콰악 깨물고 죽을 겁니다.”
 “관 할아범.”
 군위명은 억장이 무너졌다.
 형이 죽고 백검문이 위기에 빠졌다.
 그 혼란 속에 진정한 충신이라 할 자는, 여기까지 찾아온 다 늙은 노복, 관아복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개 같은 놈들이!’
 군위명은 문의 장로들을 생각하며 치솟는 살심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는 관아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려서 자신을 자주 업어 주던 노복이다. 아니, 백검문에서 제일가는 충신이자 가신이다.
 ‘할아범!’
 목이 멨다.
 호북성에서 서북방 녕하까지, 천 리는 족히 되고도 남음이 있을 터다.
 자신이 서로군벌이 있을지, 없을지 알 수가 없음에도 늙은 노구를 이끌고 찾아왔다.
 그 충정에 군위명은 고마움을 느꼈다.
 천천히 군위명의 고개가 아래로 숙여졌다.
 “고마워, 관 할아범.”
 관아복은 군위명을 보며 흠칫했다.
 “이 공자님.”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줘.”
 관아복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군위명에게 대답했다.
 “기다리고말고요. 이 공자님께서 문으로 돌아오시겠노라 쇤네에게 약조만 해 주신다면 쇤네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이 공자님은 단 한 번도 저와 약조하신 것을 어기신 적이 없으시니까요.”
 군위명은 고개를 들며 관아복을 쳐다보았다.
 “관 할아범. 그거 알아.”
 “뭘요.”
 “관 할아범은 바보야. 세상에서 제일가는 바보.”
 관아복은 쑥스러운 듯 손을 들어 하얗게 샌 백발을 긁적였다.
 “쇤네가 배운 것이 없어 놔서.”
 군위명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아니, 관 할아범은 배우지 않았지만 이미 다 알고 있는걸.”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요?”
 관아복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군위명을 쳐다보았다.
 군위명은 관아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군막 허공으로 나지막한 웃음이 흘렀다.
 
 ***
 
 사경(四更, 새벽 한 시에서 세 시 사이) 무렵.
 서로군벌의 본영은 고즈넉했다.
 타탁거리는 화톳불의 불빛만이 밤을 밝히고 있었다.
 본영의 각 군막 앞에는 창을 든 병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각 고위 무장들의 거처인 군막에도 병사들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오와 열을 맞추며 서 있었다.
 병사들은 주위로 고개를 돌려 사방을 경계했다.
 그들은 유사시 고위 무장들의 명령을 각 해당 지대(支隊, 예하부대)에 전달하는 전령의 역할까지 맡고 있었다.
 군위명은 본영의 정중앙에 있는, 가장 큰 군막 앞으로 걸어갔다.
 터벅터벅!
 발걸음 소리가 밤의 허공으로 나지막하게 퍼졌다.
 군막 입구 좌우와 주변에 흩어져 있는 하급 무장들이 움칫했다.
 하급 무장들의 눈가에 경계의 눈빛이 빠르게 떠올랐다.
 야심한 시각에 서로군벌의 수장인 서문여송의 거처로 걸어오는 군위명이다.
 무조건적으로 간주하는 것이 경계의 수칙이다.
 한 하급 무장이 스윽 군위명의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혈혼대주님.”
 군위명은 그의 앞을 가로막은 정육품의 백호 복호룡에게 말했다.
 “대장군님을 뵙고 싶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러지.”
 군위명은 선선하게 대꾸했다.
 복호룡은 말없이 군위명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 후 뒤로 돌아섰다.
 그사이 주변에 서 있는 무장들이 오른손을 허리춤의 검병으로 가져갔다.
 그들은 여차하면 검을 뽑을 태세였다.
 군위명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쩝! 확실히 다른 사람의 이목을 피해 대장군을 만나는 것은 너무 까다로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처럼 야심한 시각이 아니면, 서로군벌의 수장 대장군 서문여송을 홀로 독대할 수 없다. 더욱이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야 하지 않는가?
 잠시 후 복호룡이 돌아왔다.
 그는 군위명의 앞에 서며 낭랑하게 말했다.
 “대장군께서 들어오시라고 하십니다.”
 “고맙네.”
 “별말씀을.”
 복호룡은 군위명의 우측 옆으로 비켜서며 오른손을 위로 살며시 들어 올렸다.
 그러자 주변의 무장들이 검병에서 손을 떼며 경계를 풀었다.
 대장군 서문여송의 허락이 떨어진 이상, 군위명은 적이 아니다.
 군위명은 복호룡의 앞을 지나 정면에 있는 군막을 향해 걸어갔다.
 이윽고 그는 군막 앞에 이르러 입구를 드리운 천을 옆으로 들추었다.
 군위명은 군막 안으로 들어서며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오른손 주먹을 들어 가슴에 붙였다가 떼었다.
 “첨사 군위명, 대장군께 인사드립니다.”
 서문여송은 서탁 앞에 앉아 붓을 든 채 무엇인가를 쓰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군위명의 음성에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저 하던 일에 열중할 뿐이었다.
 군위명은 얼굴을 슬쩍 찌푸렸다.
 ‘항상 이런 식이야.’
 그는 서탁 정면으로 걸어갔다.
 터벅터벅!
 서문여송을 만날 때마다 매번 그를 바라보며 기다려야 했다.
 군위명은 서탁 정면에 서며 서문여송을 쳐다보았다.
 서문여송은 여전히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상당히 집중하는 것 같았다.
 군위명은 어색하게 선 채 마냥 서문여송을 바라보았다. 슬금슬금 부아가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젠장. 의도적으로 아래 무장들을 괴롭히는 악취미는 여전해.’
 다 짐작하고 있었다.
 서문여송은 의도적으로 아래 무장들이 자신을 어려워하게 만들었다.
 일종의 복종심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군위명은 더는 견디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첨사 군위명이 대장군께 인사드립니다!”
 서문여송은 고개를 숙인 채 작은 음성을 흘렸다.
 “나, 귀 안 먹었네.”
 “대장군!”
 “언성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나? 군 첨사.”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대장군.”
 서문여송은 붓을 옆에 있는 벼루에 놓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군위명을 쳐다보았다.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한 변명을 하고 싶은 것인가?”
 군위명은 움찔했다.
 그의 귀에 서문여송의 음성이 들렸다.
 “차가타르 부족의 삼분지 이가 모래 폭풍 속으로 도주했네. 어떻게 생각하나? 군 첨사.”
 “이린지발의 목을 벤 이상 우두머리가 없는 양떼에 불과합니다. 설혹 모래 폭풍 속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전처럼 장성을 넘어와 감숙성과 섬서성을 약탈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대장군.”
 “그건 자네 생각이고, 드러난 정세는 차가타르 부족을 놓쳤다는 것이네.”
 군위명은 오만상을 찡그리며 입을 다물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놓친 것은 분명하니.
 서문여송은 미소를 머금은 채 물었다.
 “자아, 자네의 말을 한번 들어 볼까?”
 “대장군. 군문을 나가고자 합니다.”
 “뭐?”
 서문여송은 군위명의 음성에 깜짝 놀랐다.
 그는 눈매를 가늘게 찌푸리며 서늘한 어조로 말했다.
 “불가.”
 군위명은 긴장했다.
 서문여송은 전신에서 슬며시 살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제기랄!’
 군위명은 천천히 서문여송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일각 후, 서문여송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참, 뭐라 위로의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군.”
 “대장군, 돌아가야 합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곤란하네.”
 서문여송은 딱 잘라 말하며 거절했다.
 군위명은은 발끈했다.
 “대장군. 이대로 놔두면 저희 백검문은 무너집니다.”
 “그래도 자네가 군문을 나가는 것을 허락할 수는 없네.”
 “제가 탈문해도 말입니까?”
 “흐음,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허락하지 않으시면 저는 탈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군위명은 탈영을 의미하는 탈문을 거침없이 입에 올렸다.
 서문여송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걸리면 그 즉시 참형이네.”
 “대장군. 저는 서문 장군가의 수하 무장으로 군문에 잠시 몸을 담았을 뿐입니다.”
 “그분께서 자네가 군문에 있기를 원하시네.”
 군위명의 얼굴이 굳어졌다.
 두렵다는 감정이 마음속에서 일어났다.
 그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다.
 서문여송은 군위명을 보며 말했다.
 “내 뒤에 자네의 스승이신 그분께서 계시다는 것은 자네도 알 것이네.”
 “대장군.”
 “그분께서는 자네가 강호에 발을 딛는 것을 꺼려 하시네. 처음 자네가 그분 문하에 들 때, 그분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을 것이네.”
 “대장군, 제 가문이 사라지는 것을 저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허면 그분을 거스를 참인가? 정녕 그분이 싫어하시는 것을 할 생각인가?”
 군위명은 침묵했다.
 그는 양손을 힘주어 불끈 쥐었다.
 부담스럽다.
 스승과 등을 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있지만, 그 말보다 스승이 지닌 막강하기 그지없는 강대한 무력과 괴팍한 성정이 무섭다.
 서문여송은 군위명을 보며 말했다.
 “그분에게 내가 연락을 하겠네. 그때까지 군문에 몸을 두게.”
 “대장군.”
 “더는 말하지 말게. 그분의 허락이 없이는 자네는 군문을 나갈 수 없네.”
 서문여송은 단호했다.
 군위명은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스승을 거론하는 서문여송의 말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사이 서문여송은 시선을 서탁 위로 주며, 한 종이를 집어 들었다.
 “읽어 보게.”
 그는 말과 함께 서신을 앞에 서 있는 군위명에게 던졌다.
 종이는 날카로운 파공성을 일으키며 군위명에게 쏘아지듯 짓쳐 들었다.
 그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서문여송은 상당한 무공을 익힌 듯 보였다.
 군위명은 재빨리 오른손을 들어 종이를 낚아챘다.
 서문여송은 그 광경을 보며 말했다.
 “조정으로 올려 보낼 상소문일세.”
 군위명은 흠칫하며, 검지와 중지 사이에 낀 종이를 왼손으로 집어 들었다.
 그는 빠르게 서신을 읽어 내려갔다.
 ‘날 군문에 묶어 두시려고.’
 군위명은 서문여송의 의중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서문여송은 종이를 읽는 군위명을 보며 말했다.
 “어떤가? 이번에 이린지발의 목을 베고 차가타르 부족을 장성 밖으로 밀어낸 공을 높이 사, 내 자네를 황상께 천거하려 하네. 그리되면 적어도 종삼품의 지휘동지나 정삼품의 지휘사는 충분히 될 수 있을 것이네. 게다가 잘만 하면 장군가를 열 수 있는 황은도 있을 수 있고.”
 유혹이었다.
 군위명은 귀에 들리는 서문여송의 음성에 마음이 흔들렸다.
 지휘사.
 위지휘사사의 수장이다.
 황도와 지방의 군사 요충지에 설치된 위지휘사사는 예하에 모두 약 오천 육백여 명의 병사가 있다.
 또한 위라 짧게 호칭하는 위지휘사사 아래로 다섯 개의 천호소가 있다.
 무장으로서 가장 끗발 날리는 자리다. 게다가 장군가를 열 수도 있다라 하지 않는가?
 장군가.
 군부의 무장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무장들과 병사들을 거느릴 수 있다.
 물론 그 신분과 품계에 따라 거느릴 수 있는 무장과 병사의 수는 제한이 있다.
 하지만 그 유지 비용은 병부에서 따로 나온다.
 일종의 장군전이라 하여 토지가 하사된다. 또한 장군가를 열면 인근 지부와 현청들이 알아서 머리를 숙인다.
 위세가 능히 하늘을 찌른다.
 하여 군부의 무장이라면 누구라도 죽기 전에 장군가를 열고 싶어 한다.
 군위명은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고민이 된다. 그냥 고개만 끄덕이면 된다.
 ‘염병!’
 군위명은 어금니를 콱 악물었다.
 그는 천천히 서탁으로 다가가 종이를 서탁 위에 내려놓았다.
 “대장군. 솔직히 갖고 싶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으응? 사양하겠다고?”
 “네.”
 서문여송은 군위명의 대답에 깜짝 놀랐다.
 군위명은 서문여송에게 힘찬 어조로 말했다.
 “절 찾고자 집안 노복이 호북성에서 녕하 예까지 노구를 이끌고 찾아왔습니다. 저는 도저히 그 노복의 충정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작고하신 아버님이 세우셨고, 형이 지키다 죽은 백검문입니다.”
 단호했다.
 서문여송은 빤히 군위명을 쳐다보며 눈매를 반짝였다.
 군위명은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한참 후에 서문여송이 눈을 뜨며 군위명을 쳐다보았다.
 “자네 집이 홍호에 있는 백검문이라 했지.”
 “예.”
 “잘되었군. 홍호 인근에 장강 수군이 있으니. 자네를 장강 수군으로 배속시켜 주지.”
 타협이었다.
 군위명은 서문여송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습니다. 대장군.”
 “당분간일세. 그분께 연락을 보낼 동안만 장강 수군에 가 있게.”
 “대장군.”
 군위명은 음성을 높였다.
 서문여송은 날카로운 안광을 번뜩였다.
 “나는 자네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봐주고 있는 것이네. 아울러 가능하면 말썽을 일으키지 말게. 자네 가문이 강호 문파라 내 마음에 걸려 이리 말하는 것이네.”
 “약조 드릴 수 없습니다.”
 “후후! 자네 마음대로 하게나. 하지만 한 가지만 말해 두겠네. 자네로 인해 그분께서 은거지에서 나오실 경우, 강호는 그대로 뒤집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게.”
 서문여송은 경고했다.
 군위명은 한일자로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의 머리에 스승이 떠올랐다.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신적 존재!
 군위명은 스승이 두려웠다.
 상상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3장. 용기횡강(龍氣橫江)
 
 
 군위명은 서문여송의 군막을 나와 서로군벌의 본영을 가로질렀다.
 걸어가는 그의 머리 위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이 흐릿한 달빛을 아래로 비추었다.
 자연 지면에 군위명의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군위명은 자신의 그림자를 끌며 본영의 동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본영의 동쪽에는 군위명의 군막과 혈혼질풍대의 군막들이 있었다.
 군위명은 걸으며 아래로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머릿속에서 자신이 집을 나오던 때가 생각났다.
 벌써 육 년이 지났다.
 당시 어머니와 외숙부의 대화를 엿듣고, 몇 날 며칠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뜬눈으로 보냈다.
 식음을 전폐하며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집을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어머니가 야속하고 병석에 누운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비록 이복이라 하나 자신을 한 어머니의 뱃속에서 난 친동생처럼 여기며 사랑해 준 형, 군위산이었다.
 도저히 그런 형이 어머니에게 죽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결국 내린 결론은…….
 “내가 집을 나가야 해! 내가 집을 떠나면 백검문을 이어 받을 사람은 형밖에 없어. 아무리 어머니라고 해도 백검문의 문주가 될 형을 대놓고 죽이시지는 못하실 거야. 그리고 문주가 될 형에게 장로들과 문의 무사들의 힘이 실리겠지.”
 군위명은 결심하자마자 곧바로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그는 병석에 누워 콜록콜록 기침하는 부친 군천상에게 자신의 결심을 말했다.
 
 인의백검 군천상.
 그는 일찍이 어린 나이에 용성의 호법 중 한 명이었던 관중인검 사절생의 눈에 띄는 행운을 잡았다. 그 후 군천상은 그를 스승으로 섬기며 무공을 익혔다.
 그러다 용성이 북천성과 남제궁으로 갈라설 때, 북천성에 몸을 담았다.
 군천상은 청년기와 중년기를 남제궁과 싸우는데 다 바쳤다.
 그 대가로 북천성의 후원과 처가의 도움을 받아 나이 마흔여덟에 홍호에 자리를 잡으며 백검문을 세웠다.
 강북의 패자인 북천성은 그들을 위해 반평생을 바친 군천상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
 주변 문파들의 견제와 질시를 무마하며, 무사 팔백여 명을 거느린 어엿한 중견 문파로 백검문이 성장하도록 뒤를 봐주었다.
 당시 처가는 홍호 인근에서 가장 큰 상가로서 상당한 부를 자랑했다.
 군천상은 처가의 재력에 힘입어 나날이 백검문을 키워 나갔다.
 군위명의 외조부는 딸을 군천상의 후실로 들여보낼 때부터, 홍호를 세력권으로 하는 백검문을 염두에 두었다.
 큰 부는 곧 무력을 동반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까닭에 외조부는 부친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백검문의 성세는 홍호에서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허나, 호사다마라.
 호남성 동정호 우측, 악양에 기반을 둔 남제궁 소속의 철궁보가 호시탐탐 홍호를 노렸다.
 안휘성을 갖고 싶어 하는 남제궁이라, 안휘성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었다.
 그런 남제궁의 눈에 장강 수운의 요충지인 홍호가 들어왔다.
 결국 부친은 철궁보주 진천패궁 풍일소와 일전을 결하게 되었고, 그만 치명적인 내상을 입고 말았다.
 그때부터 백검문은 서서히 저무는 낙조가 되어 갔다.
 
 병석에 누운 아버지의 눈을 잊지 못한다.
 슬픔이 가득한, 안쓰러워하는 그 눈동자.
 “위명아, 고맙다!”
 부친의 그 한 마디에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때 알았다.
 아버지는 이미 두 자식 사이에 골육상쟁이 일어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문은 형님이 이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형의 입지가 탄탄해지기 전까지는 집에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콜록, 콜록. 네 마음을 안다, 위명아.”
 눈물을 보이는 나를 측은한 눈으로 보시는 아버지.
 “위명아.”
 “예, 아버지.”
 “한 분을 찾아가거라. 그분이라면 네 앞날을 활짝 열어 주실지도 모르겠구나.”
 “네?”
 놀랐다.
 아버지는 과거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들었다. 말하시며 한 기인의 거처를 말해 주셨다.
 난, 집을 나와 그 기인의 거처를 찾아갔고,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그 기인의 문하에 제자로 입문했다.
 그 괴팍한 노인네를 스승으로 섬기며 말 못할 온갖 고생을 다 겪었다.
 
 군위명은 발걸음을 잠시 멈추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흐으읍!”
 폐부 깊숙이 차가운 밤공기가 스며들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며 눈빛을 반짝거렸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현재 내가 당면한 가장 급한 일부터 처리해야겠지. 으득!”
 머리에 아버지와 함께 백검문을 세운 네 사람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백검문을 세울 때 처가인 외가에서, 북천성에서, 아는 인맥을 통해서 합류한 네 사람.
 그들은 현재 백검문의 장로로서 제법 잘나간다.
 “다 쳐 죽여 버리겠어!”
 군위명은 짙은 살의가 배인 음성을 내뱉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울화가 터져 견딜 수가 없었다.
 형이 죽었다.
 가장 먼저 형의 장례부터 성대하게 치르고, 문의 안팎을 단속하는 한편, 남은 후계자라 할 자신을 찾아와야 정상이다.
 한데 형의 장례는 치르지도 않고, 형을 제외하면 정당한 후계자인 자신에겐 아예 찾아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형의 부인인 형수와 어머니가 문주 자리를 노리며 서로 파벌 다툼을 벌인단다.
 “그 자리는 우리 군가의 것이야!”
 군위명은 강한 의지가 어린 음성을 내뱉었다.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어머니라고 해도, 형수라고 해도, 백검문의 문주 자리에 앉을 수는 없다.
 아버지가 치명적인 내상을 입으며, 반평생을 다 바쳐 세운 백검문이다.
 그러니 오직 군씨 가문의 사람만이 문주의 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 외에 타성은 절대 문주 자리에 앉을 수 없다.
 백검문에는 아버지의 피와 땀이 어려 있기 때문이다.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야!”
 군위명은 오른손을 불끈 쥐었다.
 전신에서 광폭한 기세가 일어났다.
 후우우웅!
 그의 주변에서 바람이 일며 바닥의 흙먼지를 위로 말아 올렸다.
 주변에 서 있던 병사들이 그 광경을 보고는 전신을 움찔거렸다.
 다들 군위명이 누구인지 잘 안다.
 북망고성 군위명.
 그는 서로군벌에서 상당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단 한 명의 수하가 부상당했을 뿐이었지만, 수하를 다치게 한 적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쳐 죽여 버렸다.
 
 “내 새끼를 건드리지 마라!”
 
 군위명은 행동으로 말하며 실천으로 보여 주었다.
 자신이 이끄는 혈혼질풍대를 건드리는 자는 그가 누구든 가만 놔두지 않겠다라고.
 그 탓에 서로군벌의 중, 상위의 고위 무장들은 절대 혈혼질풍대를 건드리지 않았다.
 ‘미친개에게 물리면 약도 없다’라고 무장들이 서로 소곤거렸다던가?
 군위명은 발걸음을 앞으로 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일단 최대한 빨리 백검문으로 돌아가야겠지.”
 서둘러야 한다.
 자칫 어머니나 형수가 문주 자리에 앉으면 골치 아파진다.
 아무리 그래도 어머니이고, 죽은 형의 부인이다.
 서로군벌에서처럼 막 나갈 수는 없다.
 저벅저벅!
 서로군벌의 본영 허공으로 군위명의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얼마 후, 서로군벌 동쪽에 자리한 군막들 중 으슥한 한 군막의 뒤.
 “야! 돌려.”
 “짜식이, 나도 한 모금 해야 할 거 아냐.”
 “마! 빨리 마셔.”
 “썩을 놈들 같으니라고.”
 다섯 명의 무장이 빙 둘러앉아 두어 개의 술병을 들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손에 육포를 들고 술을 마셔 가며 뜯었다.
 “크-! 죽인다.”
 무장 무풍은 간만에 마시는 술에 반색했다.
 그의 옆에 있는 동료 보종운은 왼손 팔꿈치로 무풍의 우측 옆구리를 툭 쳤다.
 무풍은 고개를 돌려 보종운에게 언성을 살짝 높였다.
 “뭐?”
 어투가 다소 사납다.
 보종운은 무풍의 어투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너, 이 술과 육포 어디서 구해 왔냐?”
 “킥!”
 무풍은 실소했다.
 함께 모여 술을 마시던 다른 무장들도 보종운의 말에 무풍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나도 궁금해.”
 “어이, 무풍. 어디서 훔쳐 왔냐?”
 “내가 늘 무풍 너에게 감탄하지만 말이야. 야심한 한밤중에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술과 육포를 가져올 수 있는지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무풍은 웃었다.
 “히히히! 그게 다 이 몸의 능력 아니겠어.”
 자랑스럽다는 어투의 음성.
 보종운은 고개를 돌려 무풍에게 물었다.
 “말해 봐. 으응.”
 “짜식이. 말해 주면, 너도 나중에 나처럼 하려고 그러지. 맞지?”
 보종운은 흠칫했다.
 그 모습이 무풍의 말이 맞다라고 시인하고 있었다.
 다른 세 무장은 소리 죽여 실소했다.
 “야! 전우 좋다는 게, 뭐냐? 빨리 불어라.”
 보종운은 은근슬쩍 위협조로 말했다.
 무풍은 눈을 흘기며 보종운을 째려보았다.
 “맨 입으로는 안 되지.”
 “이 자식이!”
 보종운은 짐짓 화를 내었다.
 그때였다.
 “잘들 한다. 이 밤에 여기서 술판이나 벌이고, 이것들이!”
 옅은 노기가 배인 음성.
 일순 다섯 무장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전신이 경직되었다.
 너무나도 귀에 익은 음성이다.
 무장들은 본능적으로 후다닥 땅바닥에서 일어났다.
 무풍은 일어나며 소리쳤다.
 “일동 기립!”
 무장들의 우측 뒤에서 군위명이 걸어왔다.
 군위명은 앞에 서 있는 두 무장에게 다가가, 그들의 좌우 어깨를 옆으로 밀쳤다. 그러고는 원을 그린 무장들의 안쪽, 중앙으로 갔다.
 군위명은 중앙에 서서 천천히 무장들을 둘러보았다. 한 명씩 쳐다보는 그의 눈매가 살벌했다.
 “이 잡것들이 밤중에 자지 않고 남몰래 술판이나 벌여? 니들 오늘 밤 곡소리 한번 내 볼래?”
 무장들은 전신을 미세하게 떨었다.
 혈혼질풍대주 군위명.
 수하들을 수족처럼 아끼는 동시에 숨통 또한 철저하게 조인다.
 무풍은 군위명의 눈치를 살피며 은근슬쩍 말을 흘렸다.
 “대주, 이 밤중에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겁이 없다!
 무풍을 제외한 무장들은 일제히 보종운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 시선들이 무척 따갑다.
 ‘젠장!’
 보종운은 내심 투덜거렸다.
 그와 무풍은 군위명의 최측근이자, 그의 분노로부터 혈혼질풍대의 무장들을 지키는 일종의 방벽이었다.
 보종운은 재빨리 말했다.
 “대주, 그게 툴루이와 그 부족민들을 죽인 것이 영 께름칙해서 말입니다. 잠이 안 옵니다.”
 그럴 법도 하다.
 멀쩡한 사람을 땅에 파묻고, 그 골통을 철퇴로 날려 버렸다.
 머리가 터지고 비명을 내뱉는 자가 바로 사람이었다. 더욱이 살아남아 있는 수백여 명을 가차 없이 도살해 버리지 않았는가?
 군위명은 보종운의 음성에 움칫했다.
 이해할 수 있다.
 그 일을 명령한 자신도 잠이 잘 오지 않는데, 행한 수하들은 말해 무엇할까?
 군위명은 말했다.
 “니들이 그 일에 관해 힘들어 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말이다. 그놈들에게 전재산과 목숨을 빼앗기고, 아내와 딸이 겁간을 당한 피해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이 너희들에게 잘했다라고 박수를 칠까? 아니면, 살인을 한 짐승 같은 놈들이라고 손가락질을 할까?”
 “…….”
 무장들은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다물며 침묵했다.
 군위명은 거침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털어 버려라! 그놈들은 그렇게 죽어도 싼 짓을 했다. 너희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다. 사람의 탈을 쓴 짐승들을 죽인 것이다. 오히려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라!”
 그는 말하며 오른손 검지를 위로 치켜들었다.
 검지는 하늘을 가리켰다.
 “저 위에 계신 양반들은 바쁘시다. 누가 그러더라. 천도시비는 그 누구도 모른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죽을 짓을 한 놈은 죽어야 하고, 올바른 일을 한 사람은 마땅히 칭찬을 하고 존경을 해 주어야 한다. 나는 내 양심에 비추어, 사람들이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는 상식이라는 통념에 입각해, 나 자신이 행한 일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
 “언놈이고 나에게 미친 망나니라고 말하는 놈이 있으면 그놈의 아가리를 주먹으로 날려 버릴 것이다. 당한 피해자는 생각하지 않고, 가해자만 챙기는 고따위 개 시러베아들 같은 인간은 패도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군위명은 고개를 돌려 무장들을 쳐다보았다.
 “이의 있는 놈 있나?”
 “없슴다! 대주!”
 “좋아. 마시던 술은 마저 마시자.”
 “예에에!”
 “짜식들.”
 군위명은 신나 소리치는 무장들을 보며 웃었다.
 그는 뒤로 돌아서며 외쳤다.
 “무풍.”
 “예, 대주.”
 “지금 즉시 술을 왕창 가져와라. 그리고 이왕 가져오는 김에 돼지고기든 닭고기든 가리지 말고 넉넉하게 고기 좀 챙겨 와라.”
 “네?”
 무풍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시각이 몇이던가?
 오경(五更, 새벽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초다.
 야심한 한밤중인데, 느닷없이 술과 고기를 어디서 조달해 온다는 말인가?
 무장들은 무풍을 보며 크큭거렸다.
 보종운은 고소하다는 듯 입꼬리 끝을 비틀었다.
 군위명은 무풍을 보며 말했다.
 “네 능력을 발휘해 봐.”
 “대, 대주.”
 무풍은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뭐해? 빨리 움직이지 않고.”
 무풍은 우거지상을 하며 슬쩍 말을 흐렸다.
 “대주, 근데 돈이 좀…….”
 군위명은 무풍의 음성을 단호하게 잘라 버렸다.
 “난, 돈 없어.”
 “네?”
 무풍은 연이은 황당함에 멍하니 정신을 놓아 버렸다.
 무장들은 다들 고개를 옆으로 돌려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이를 악물며 참았다.
 “끄끄끅!”
 “푸-크크큭!”
 무풍은 넋이 반쯤 나간 모습이었다.
 군위명은 무표정한 얼굴로 무풍을 향해 언성을 높였다.
 “뭐 하나? 정육품 백호 무풍. 지금 상관의 명령에 항명하는 것인가?”
 무풍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악랄하십니다, 대주.”
 군위명은 씩 웃었다.
 “억울하면 진급해라.”
 “네에, 진급합니다, 해요. 체!”
 무풍은 말과 함께 뒤로 돌아서며 어기적어기적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었다.
 그 모습을 보는 무장들은 일제히 폭소했다.
 “푸하하핫!”
 “우하하하!”
 군위명은 고개를 좌측으로 돌려 보종운을 쳐다보았다.
 “보종운.”
 “예, 대주.”
 보종운은 웃다가 급히 멈추며 신속하게 대답했다.
 “지금 즉시 자고 있는 놈들 다 깨워라. 긴급 소집이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보종운은 말끝을 흐렸다.
 “뭐냐?”
 “시각이 야심한 밤입니다, 대주. 다른 분들이 뭐라고 하시지 않겠습니까?”
 보종운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분들이란 고위 무장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군위명은 거리낌이 없었다.
 “내가 내 새끼들하고 술 마시겠다는데, 어느 누가 시비를 걸어. 내가 언제 위 눈치 보고 술 마셨나? 보종운.”
 “아닙니다. 절대 아니지요. 지금 당장 아이들 집합시키겠습니다.”
 보종운은 목청을 높였다.
 “실시!”
 “예, 실시!”
 그는 군위명의 말에 대답하며 재빨리 뒤로 돌아섰다.
 군위명은 뛰어가는 보종운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일다경 후.
 불어오는 바람에 고기를 굽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게다가 술을 마시는 호쾌한 음성들이 몹시 시끄러웠다.
 군막의 경계를 서는 주변 병사들은 고욕이었다.
 솔솔 후각을 자극하는 고기 냄새, 코끝을 벌렁거리게 만드는 주향.
 미칠 노릇이다. 그리고 귀에 들려오는 음성들.
 “꺄! 죽인다. 야, 무풍아. 너 술 어디서 가져왔냐?”
 “저 자식 재주도 좋아. 이 밤중에 닭고기랑 돼지고기를 다 가져오고.”
 “야! 마셔. 무풍이 저 녀석은 우리들 중에서 보급 하나는 끝내주는 놈이잖아.”
 “암만! 무풍이 저 녀석에게 돈만 주면 아마 과부도 구해다 줄 걸.”
 “크하하하! 맞다. 맞아.”
 병사들은 얼굴을 험악하게 구겼다.
 기분 더러운 밤이다.
 혈혼질풍대 일백여 명의 무장은 웃으며 술과 고기를 뜯었다.
 주흥이 도도하고 기분은 하늘을 찌를 듯 호기로웠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군위명이 말했다.
 “이 자리를 빌려 말하겠다.”
 그는 자신이 장강 수군으로 보직이 변경되어 배속된다고 설명했다.
 무장들은 놀랐다.
 “대주, 좌천입니까?”
 “모래 폭풍 속으로 놈들을 쫓아 들어가 우리들이 다 죽으면 속이 시원하겠답니까?”
 군위명의 장강 수군 배속.
 그것은 좌천이었다.
 군위명이 수군에 관해 아는 것이 아는 것은 그다지 없다. 말을 타고 황야를 내달리는 늑대에게 물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 오라고 하는 것과 똑같았다.
 무장들은 거침없이 불만을 드러냈다.
 군위명은 눈을 부라렸다.
 “좌천 아니야. 이놈들아. 내 집안 사정 때문이야.”
 그는 비교적 자세하게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말했다.
 무장들은 침통했다.
 그들은 군위명과 헤어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는 공동 운명체다!’
 혈혼질풍대가 서문 대장군에 의해 만들어진 이래 단 한 번도 망각해 보지 않은 말이다.
 “몇 놈은 나와 함께 장강 수군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이건 여담이다만…….”
 군위명은 서문여송에게 들은 장군가에 관해 말했다.
 “운이 좋으면 너희들 전부 내 밑으로 다시 끌어 모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확답은 줄 수 없어. 다들 앞으로는 각자 알아서 잘 처신해라. 그동안은 내가 위의 질책을 어느 정도 막아 왔지만, 앞으로는 힘들 것이다. 행여 내 후임으로 너희들 상관으로 오는 사람을 물 먹이지 말고, 함께 잘해 보도록 해. 내 말 알겠지.”
 무장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대주, 그러면 이 자리가 이별을 위한 자리입니까?”
 “…….”
 군위명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장들은 툴툴거리며 한 마디씩 말했다.
 “젠장!”
 “망할!”
 그들은 노골적으로 싫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허나, 군위명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그의 집안 사정이 급박했으니.
 그사이 몇몇 고위 무장들이 혈혼질풍대의 무장들이 술판을 벌이는 곳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들은 무장들 사이에 군위명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곤 오만상을 찌푸렸다.
 “후레자식 같은 놈!”
 “저, 저……!”
 “저놈을, 내 당장에!”
 다들 못마땅한 음성을 거칠게 내뱉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군위명에게 다가가 그의 면전에다 대고 뭐라 말하지는 못했다.
 북망고성.
 그 명칭은 곧 피를 의미했다.
 수틀리면 검을 빼 들고 달려드는 자가 바로 군위명이다.
 
 “목숨 걸고 싸우다가 살아 돌아와서 한잔하는데, 그걸 이해 못해 주는 놈은 상관도 뭐도 아니야.”
 
 군의 기강과 군기를 헤집는 발언이나, 딱히 틀린 말도 아닌 터라 유야무야 몇 차례 넘어갔다.
 더군다나 서문여송이 든든하게 뒤를 봐주니…….
 몇 번 충돌이 있은 후에는 그 누구도 군위명과 혈혼질풍대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날 밤새 동이 틀 때까지 군위명은 부하들과 함께 술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몇 가지 당부를 남겼다.
 
 다음 날 아침 군위명은 무풍, 보종운, 복호룡, 세 사람을 데리고 서로군벌의 본영을 출발했다.
 그는 노복 관아복에게 말했다.
 자신이 먼저 백검문으로 돌아갈 테니, 그는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라 했다.
 관아복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군위명이 백검문으로 돌아가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군위명이 변복을 한 세 무장을 데리고 출발할 때, 본영의 허공으로 몇 마리 전서구가 날아올랐다.
 대장군 서문여송의 배려다.
 바야흐로 육 년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군위명이다.
 그가 향후 어떤 행보를 걸을지 심히 궁금하다.
 
 ***
 
 후원이었다.
 자그마한 아담한 정자를 중심으로 장인들의 섬세한 손길이 간 호젓하고 고풍스러운 풍광.
 한 노인이 정자에 앉아 입으로 찻잔을 가져가고 있었다.
 그때 노인이 있는 정자로 한 사내가 걸어왔다.
 사내는 정자 입구 아래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추며 공손하게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할아버님.”
 “일붕아.”
 “네, 할아버님.”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사내 팽일붕은 흠칫하며 고개를 위로 들어 정자에 앉아 있는 노인을 쳐다보았다.
 “할아버님, 저는 다른 사람의 이목을 피해야 합니다.”
 “알고 있다.”
 “으음.”
 팽일붕은 침음성을 흘렸다.
 다른 사람의 이목을 피하라고 명을 내린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는 노인 조부였다.
 “할아버님, 어떤 일인지 여쭈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노인은 정면을 응시하며 나직이 말했다.
 “한 사람을 시험해 보았으면 한다.”
 “네?”
 팽일붕은 의아한 낯빛을 띠었다.
 노인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낭랑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음성이 이어지는 동안 팽일붕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
 
 녕하에서 호북성 남동쪽에 있는 홍호까지의 최단 거리는, 섬서성과 호북성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 상단에서 좌 하단으로 비스듬히 사선을 긋는 듯한 행로다.
 군위명과 그의 일행인 세 무장은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다들 군부의 무장 신분이라 역참을 이용했다.
 말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렸다.
 약 보름이 지났을 때, 그들은 호북성의 성도인 무한에 도착했다.
 군위명은 무한에 도착하는 즉시 호북성 도지휘사사에 들렀다.
 이미 사전에 서문여송이 조치를 취한 터라 용무는 빠르게 끝났다. 그는 도지휘사사에서 뜻밖의 소식을 접하곤 당황했다.
 승차!
 도지휘사사의 수장, 정이품 도지휘사 황소중이 자신의 집무실로 군위명을 불렀다.
 군위명은 그와 자리를 함께하며 내심 투덜거렸다.
 ‘그 양반이 끝내는…….’
 머리에 서문 대장군가의 가주이자 군부의 실력자인 서문여송이 떠올랐다.
 황소중은 놀랍다는 얼굴로 군위명을 보며 말했다.
 “이렇게 젊은데, 종삼품의 지휘동지라니. 허허! 세운 전공이 대단한가 보네.”
 그는 군위명의 나이가 어린 것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서문 대장군이 뒷배로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 전공도 없는 자를 대뜸 지휘동지로 끌어 올릴 수는 없을 터.’
 이례적인 승차였다. 게다가 병부에서 황소중에게 긴급 전서로 그 사실을 알렸다.
 ‘필시 엄청난 전공을 세웠을 터. 장차 군부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지도 몰라.’
 미리 안면을 터놓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두는 것이 차후를 위해 좋을 터다.
 군위명은 서문여송의 발 빠른 조치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그는 황소중과 잠시 환담을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둘러야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군위명은 재빨리 황소중에게 말하며 급히 도지휘사사를 빠져나왔다.
 황소중은 군위명과 저녁을 함께 하자 붙잡으려 했으나, 군위명이 서두르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음을 기약했다.
 
 정오(正午).
 무한제일루 안은 손님들로 넘쳐났다.
 앉을 자리가 부족해 점소이들이 손님들을 합석시키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터벅터벅!
 군위명은 무한제일루의 삼 층 계단 위로 올라서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의 눈에 우측 세 번째 탁자에 앉은 세 사람이 보였다.
 무풍과, 보종운, 그리고 복호룡.
 군위명은 탁자에서 엉거주춤 일어서는 세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망할!’
 그는 복호룡을 보며 내심 얼굴을 꾸겼다.
 서문여송이 자신의 옆에 붙여 둔 이목이다.
 일종의 감시이자 유사시 연락망이라고나 할까?
 이윽고 군위명이 탁자 앞에 이르자 세 사람이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셨습니까?”
 “앉자.”
 “네.”
 세 사람은 군위명이 자리에 앉자, 각자 앉았던 자리에 다시 엉덩이를 걸쳤다.
 무풍은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군위명을 쳐다보았다.
 “대주, 가셨던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장강 수군의 보직이…….”
 은근슬쩍 말을 흐렸다.
 북방에서 이름깨나 날린 군위명이다. 장강 수군으로 자리를 옮기니, 좌천이 아니라면 분명 어느 정도의 승차가 있을 터였다.
 군위명은 피식 웃었다.
 “승차했다.”
 무풍과 보종운은 기뻐했다.
 “하하! 축하드립니다, 대주.”
 “품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대주.”
 복호룡은 군위명을 곁눈으로 흘낏거렸다.
 ‘확실히 난 사람이야. 더욱이 대장군께서 음으로 양으로 밀어주시니.’
 그는 대장군 서문여송이 자신에게 당부한 것을 상기했다.
 
 “그의 옆에 꼭 붙어 있도록 하게.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즉시 나에게 알리도록 하고.”
 
 복호룡은 내심 의문이 들었다.
 비록 군위명이 북망고성으로 불리고, 혈혼질풍대의 대주로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다.
 한데 공적은 공적일 뿐, 뒤를 봐주는 건 별개다.
 복호룡은 서운여송이 어째서 군위명의 뒤를 적극적으로 봐주려 하는지 쉬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사이 군위명은 무풍과 보종운에게 자신의 승차를 알렸다.
 두 사람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왜들 그래?”
 군위명은 언성을 높였다.
 무풍은 침을 삼키며 말했다.
 “대주,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희가 본영을 떠나온 지 약 보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사이 본영에서 병부로 연락이 가고, 병부에서 다시 호북성 도지휘사사로 연락이 왔다니. 너무 빠르지 않습니까?”
 보종운이 끼어들며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습니다, 대주. 일련의 상황을 보면 마치 황상 폐하께 올라가는 상소나 표문의 경로를…… 설마?”
 보종운은 머리에 떠오른 한 생각에 얼굴빛이 급변했다.
 크게 놀란 얼굴이다.
 무풍은 굳은 얼굴로 군위명을 쳐다보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대주, 종삼품의 지휘동지와 장군가를 여는 특전은 황은을 뜻합니다. 그리고 종운이 녀석 말대로 이렇게 조치가 빠르다는 것은 딱 하나뿐인 경우인데요.”
 복호룡은 소스라쳤다.
 “폐하!”
 그랬다.
 황제가 직접 황명으로서 명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군위명은 입맛을 다셨다.
 “쩝……! 폐하의 귀에 내가 들어갔나 보지, 뭐.”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젠장할! 누가 황족인 사부님의 정체를 황상께 고자질한 것이 분명해. 썩을!’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머리에 떠올랐다.
 서문 대장군 서문여송.
 무풍과 보종운, 그리고 복호룡은 멍한 얼굴로 넋 나간 사람마냥 군위명을 쳐다보았다.
 군위명은 언성을 높였다.
 “뭣들 해! 밥 안 먹을 거야?”
 무풍이 재빨리 말했다.
 “대주. 지금 밥이 문제입니까?”
 보종운은 황급히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대주. 밥은 천천히 먹어도 됩니다. 도대체 대주의 정체가 뭡니까? 혹시 황상 폐하의 숨겨진 비밀 무사라도 됩니까?”
 복호룡은 침묵했다.
 굳게 입을 다물고 군위명을 지그시 응시했다.
 “미친놈들.”
 군위명은 무풍과 보종운의 말을 간단히 무시해 버렸다.
 두 사람은 제법 끈기가 있는 듯 군위명에게 달라붙으며 채근했다.
 “대주, 말씀 좀 해 보십시오.”
 “대주,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무풍과 보종운은 눈빛을 반짝였다.
 오래전부터 군위명의 정체가 궁금했었다.
 이제 그의 나이 겨우 스물둘이다.
 처음 그가 서로군벌에 나타났을 때만 해도, 채 약관에 못 미치는 연배였다.
 비록 서문 대장군가에 속한 무장이라곤 하나 대뜸 정사품 지휘첨사의 자리를 꿰찼으니, 실로 파격적인 인사다.
 더욱이 일신에 지닌 무공 또한 서로군벌 최강이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인간, 군위명.
 그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혈혼질풍대 내부에서 군위명의 정체를 두고 내기가 한창이다.
 군위명은 무풍과 보종운을 쳐다보며 풋 실소했다.
 “너무 앞서 나가지 마라. 그래 봐야 위지휘사사의 종삼품 지휘동지다. 도지휘사사의 지휘동지가 종이품인 것을 감안하며 품계가 한 단계 아래다.”
 복호룡은 군위명의 말에 반박하듯 입을 열었다.
 “대주님, 통상 종삼품 지휘동지가 되려면 군문에서 적어도 십 년 이상 있어야 합니다. 또한 나이가 적어도 서른여덟아홉은 되어야 앉을 수 있습니다. 대주의 승차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무풍과 보종운은 복호룡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대주. 복 백호의 말이 맞습니다.”
 “대주의 승차는 비정상이라고요.”
 군위명은 험악한 인상을 쓰며 눈동자를 부라렸다.
 “이놈들이! 니들 지금 내가 무슨 뇌물이라도 써서 승차했다 이거냐?”
 “아따, 대주! 누가 그렇답니까? 다만 대주 뒤에 있는 뒤 배경이…… 헤에에!”
 무풍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그 얼굴이 밉지가 않았다.
 군위명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모르는 게 약이다. 그리고 이번 승차는 달갑지 않다.”
 “네?”
 무풍과 보종운, 그리고 복호룡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군위명은 시큰둥한 어조로 말했다.
 “내 발목을 잡는 족쇄나 다를 바가 없다.”
 세 사람은 군위명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충 그렇게 알고 밥이나 먹자.”
 군위명은 서둘러 마무리를 지어 버렸다.
 세 사람은 묻고 싶었으나 군위명이 회피하는 듯 보이자 입을 다물었다.
 ‘분명 뭔가 있어!’
 세 사람이 심중으로 짙은 의혹을 느끼는 사이, 계단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우르르!
 일단의 무복인들이 삼층 계단 위로 올라섰다.
 그들은 빠르게 삼 층 곳곳으로 흩어지며 소리쳤다.
 “당장 아래로 내려가라!”
 “지금 즉시 움직여라!”
 “일어나!”
 위압적인 명령조의 고함이 사방에서 울렸다.
 삼 층에 자리했던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일부 사람들은 강하게 항의했다.
 “이게 무슨 짓이오.”
 “당신들이 누군데, 우리더러 일어서라 마라 하는 것이오.”
 “우리가 왜 당신들의 말에 따라야 하오,”
 그러자 무복인들은 허리춤에 꿰찬 검을 슬쩍 검집에서 꺼냈다.
 스릉!
 서슬이 퍼런 검날이 번뜩였다.
 “알겠지.”
 낮게 으르렁거리듯 말하는 음성.
 여차하면 무력을 행사하겠다는 위협이었다.
 그 위협에 삼 층에 자리했던 사람들과 그들 중 항의했던 사람들은 모두 어깨를 움찔거리며 겁을 먹은 듯 움츠러들었다.
 법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주먹이 아니던가?
 무풍과 보종운은 그 광경에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뭐, 저런 놈들이 다 있어.”
 “지들이 여기 무한제일루의 주인이야, 뭐야!”
 언성이 높은 것이 화가 난 것 같다.
 군위명은 곁눈으로 무복인들을 힐끗 흘겨보았다.
 시야에 무복인들 좌측 가슴에 있는 이룡문이 보였다.
 두 마리 용이 꼬리와 허리를 서로 꼬며, 서로 고개를 쳐들어 마주 보는 문양.
 복호룡은 군위명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대주님.”
 어떻게 하겠느냐는 물음.
 군위명은 앞에 있는 소면을 젓가락으로 건져 올리며 말했다.
 “상관하지 마라. 모른 척해. 북천성 본단 소속의 무사들이니.”
 무풍과 보종운, 그리고 복호룡은 흠칫했다.
 북천성 본단.
 강북의 패자 북천성 직속의 무력 조직에 속한 무사라는 말이 된다.
 무풍은 군위명에게 분기 어린 음성을 내뱉었다.
 “대주, 저런 꼴을 그냥 보고만 있으란 말입니까?”
 “무풍!”
 군위명은 무풍을 노려보았다.
 “…….”
 무풍은 군위명을 가만히 마주 바라보았다.
 군위명은 눈매를 반짝이며 말했다.
 “관과 강호는 상호 불간섭이다. 만일 강호의 일에 관부나 관인이 관여하면 일이 커질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그 경계가 허물어져 큰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다 이 말이다. 물론 강호인도 마찬가지지만.”
 “대주!”
 무풍은 승복하지 못하겠다라는 투로 군위명을 불렀다.
 군위명은 서늘한 음성을 흘렸다.
 “참아라.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니고, 단지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는 것뿐이다.”
 그 때 보종운이 군위명을 보며 말했다.
 “대주! 대주께서는 강호 출신이시니 그리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저나 무풍은 저런 꼴은 배알이 꼴려서 못 참습니다.”
 보종운의 음성은 언뜻 듣기에는 무례했다.
 군위명의 출신을 언급하며 불복하고자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군위명은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서 두 가지를 엿볼 수 있었다.
 첫째는 군위명과 무풍 그리고 보종운 사이가 남다르다는 것이고, 둘째는 군위명이 수하의 생각이나 의견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넓은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군위명은 고개를 돌려 보종운을 쳐다보았다.
 “참아라. 북천성은 이미 육십 년 가까이 강호에서 자리를 잡은 세력이다. 만일 네가 나선다면 나 또한 나설 수밖에 없다. 괜한 분란이 일어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무풍은 고개를 돌려 보종운에게 말했다.
 “일단 참자. 대주께서 명하셨잖아.”
 보종운은 무풍의 음성에 끄응 앓는 소리를 흘렸다.
 그의 눈에 무풍이 한쪽 눈을 찡긋거리는 것이 보였다.
 군위명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복호룡은 눈빛을 반짝이며 군위명과 무풍, 그리고 보종운을 흘낏 쳐다보았다.
 묘한 신뢰감이 세 사람 사이에 흐르는 듯했다.
 그리고 군위명의 명령에 무풍과 보종운이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따르는 것 같았다.
 무례하게 보이듯 하면서도 상명하복에 철저한 모습.
 ‘알다가도 모를 사람들이야.’
 복호룡은 세 사람이 정확히 무슨 관계인지 알고 싶었다.
 단순히 혈혼질풍대의 대주와 그 수하 무장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무풍과 보종운은 자신처럼 정식 무과를 통해 군문에 들지 않았다.
 둘 다 서문 대장군가를 통해 군문에 몸을 담았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면 군위명과 무풍, 그리고 보종운은 서문대장군이라는 배경을 등에 업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때 네 사람이 앉은 탁자로 두 무복인이 걸어왔다.
 터벅터벅!
 두 무복인은 군위명의 왼쪽에 서며 낭랑하게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이 층으로 내려가라.”
 “빨리 일어나라.”
 고압적인 음성.
 무풍과 보종운은 고개를 돌려 두 무복인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헉!”
 “흐흠!”
 두 무복인은 뒤로 황급히 한 걸음 물러났다.
 무풍과 보종운의 눈초리 때문이었다.
 그들의 눈은 수풀 사이에 몸을 납작 낮추어 먹잇감이 바로 앞을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승냥이를 연상시켰다.
 전장에서 구른 경험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눈빛이다.
 두 무복인은 본능적으로 행동했다.
 촤-앙!
 채-애앵!
 그들이 황급히 검을 뽑아 들자, 군위명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놈 새끼들이!’
 그는 고개를 돌려 무풍과 보종운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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