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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정진 1권-1

2015.01.28 조회 1,503 추천 9


 * 효자 *
 
 숭산(嵩山)-!!
 
 오악 중의 중악으로 불리는 곳으로 준극(峻極), 태실(太室), 소실(小室)의 세 봉우리가 중앙에 있다. 그리고 세인들이 천년 고찰이라 하는 소림사가 있는 곳이다.
 
 한 인영이 숭산의 준극봉을 내달렸다. 그는 이제 갓 십칠, 팔세로 보였다. 인영의 어깨에는 활이 있었고 등에는 전통이 매여져 있었다. 인영은 무엇인가를 뒤 쫒는 듯했다. 인영은 수풀을 헤치며 가다가 서서 땅바닥을 살폈다. 얼마나 그렇게 살피며 갔을까? 인영이 어느 한 장소에서 멈추었다.
 
 "찾았다."
 인영의 눈에 한 작은 동굴이 보였다. 땅바닥에는 동굴로 이어진 핏방울이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인영은 조심스럽게 동굴이 보이는 맞은편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어깨에서 활을 풀어 시위에 화살을 재었다.
 스윽.
 
 얼마나 그렇게 화살을 재고 기다렸을까? 한 작은 짐승이 동굴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짐승은 너구리같았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 꼬리가 은빛이었다. 은빛 꼬리를 가진 너구리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밖으로 내밀어 주변을 살폈다. 그 때였다.
 피- 이잉!
 한 줄기 섬전이 고개를 내민 너구리를 향해 쏘아졌다.
 "케헤엥--!"
 퍽--!
 기묘한 울음이 울렸다. 그리고 너구리가 머리에 화살을 맞았다. 너구리는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몸을 축 늘어뜨렸다.
 
 "하하-! 오늘 운이 좋네. 그 귀하다는 은미를 가진 놈을 잡았으니." 한 인영이 너구리를 향해 다가갔다.
 "네 이노옴---!!"
 고성이 천지가 떠나가도록 크게 울렸다. 고성은 숲의 허공에 메아리쳤다.
 "크- 으윽!"
 인영은 두 손으로 귀를 잡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네 이놈. 소원아. 내 그리도 누누이 일렀거늘. 어이해 함부로 살생을 하느냐. 그것도 불문 성지인 소림이 있는 숭산에서·····. 이놈아. 부처님이 무섭지도 않느냐 아--?"
 "젠장. 나도 먹고살아야 되잖아요. 부처님이 어머니 약값을 줘요. 아니면 쌀을 줘요. 나도 이 짓이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세요. 이 빌어먹을 세상을 살아가려니. 할 수 없단 말이에요. 고영 스님."
 소원이라 불린 소년이 고래고래 악을 썼다. 소년은 자신의 귀를 따갑게 한 음성의 이와 안면이 있는 듯했다.
 "이놈아. 그래도 살생은 아니 돼. 살업은 쌓이고 쌓여 네놈이나 네 어미에게 화가 미치는 법이야."
 음성은 숲에 은은한 여운을 남기며 메아리쳤다.
 "체. 그런 거 일일이 따지다가는 어머니가 죽어요. 스님. 아시겠어요."
 소원은 자신이 잡은 너구리를 집어 허리춤에 매달았다. 그러자 숲에서 한 승려가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이제 삼십 후반 정도였다. 그의 이마로 계인이 뚜렷이 보였다. 승려는 소원이를 응시하며 일갈 성을 터트렸다.
 "이 빌어먹을 놈아. 만약 무양 사백이 아시는 날에는 넌 죽은 목숨이야."
 소원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고영 스님. 모른 척하시고 그냥 산을 내려가세요. 그놈의 악업이란 거 다 내가 감당할게요. 그리고 어머니나 병이 빨리 낫게 기도나 열심히 해 주세요."
 고영이란 승려의 얼굴에 기가 막힌다는 기색이 떠올랐다.
 "이런 뻔뻔한 놈을 보았나. 생명을 해친 놈이 제 어미의 병을 위해 치성을 드린다는 말이냐."
 소원은 그런 고영이란 승려를 향해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리고 안면에 불복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고영 스님. 그러면 우리가 굶어 죽어야겠어요.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이 짓밖에 없어요. 땅이 있어 농사를 짓겠어요. 밑천이 있어 장사를 하겠어요. 가진 것이라고는 이 몸뚱어리 하나가 달랑 있을 뿐이에요. 불쌍한 어머니는 누가 보살펴요. 앞이 안 보이는 봉산데. 내가 이 짓이라도 안 하면 우리 모자 어떻게 살아요. 어디 말씀 좀 해 보세요. 네에---?"
 소원은 고영이란 승려에게 대들 듯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그러자 고영 스님의 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떠올랐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제길, 그놈의 나무 아미는 그만 찾고 말씀 좀 해 보시라고요?"
 고영 스님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할 말이 없는 듯했다.
 "어머니가 소림사에 시주한 것만 따져 보아도 웬만한 집 한 채는 너끈히 살 수 있을 거에요. 그런데 빌어먹을······. 왜 어머니의 눈을 빼앗아 갔어요. 거기다, 가라(痂癩, 나병)까지 어머니가 왜 그런 병을 앓아야 해요. 왜요 오오----!!"
 소원은 눈가에 물기가 촉촉이 고였다. 소원의 음성에는 한이 서려 있는 듯했다. 고영 스님은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도 소원의 모자에 대해서는 잘 안다. 모친이 나병을 앓자 등봉현에서 쫓겨났다. 그나마 그간 독실한 불심 탓에 이 숭산에 자리한 것을 묵인 받았다. 집안 대대로 등봉현에 살며 소림사에 많은 시주를 했다. 제법 부유한 집안이 부친이 일찍 죽고 모친의 병구완으로 전 재산을 날렸다. 그리고 숭산의 외진 곳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가라를 앓는 이를 다른 이가 무척 싫어했다.
 "아미타불, 그렇다고 숭산에서 살생을 하면 안 된다. 만일 계율원의 무양 사백께서 아시는 날에는 너희 모자는 숭산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네놈도 온전하지 못할 것이다. 무양 사백의 성정을 너도 알지 않느냐. 불문 성지인 숭산에서 살생이라니. 그걸 무양 사백이 용납할 것 같으냐."
 고영 스님은 소년 소원을 타일렀다. 하지만, 소원은 고영 스님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몰라요. 나는 그런 거 하나도 몰라요. 내가 아는 것은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불쌍한 어머니를 살리려면 약이 필요하다는 것만 알아요. 그까짓 악업 올 테면 오라고 해요. 나는 그런 거 하나도 겁나지 않아요. 아니, 그런 악업이 온다고 해도 어머니에게 맛있는 음식이랑 좋은 약을 지어 드릴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까짓 거 내가 지옥에 가면 되잖아요. 안 그래요. 그러니 날 내버려 두라 고요."
 소원은 고영 스님의 옆을 스쳐지나 갔다. 고영 스님은 안타까운 눈길로 소년 소원을 바라보았다. 등봉현 일대에 효자로 이름이 난 장소원이었다. 그리고 살아온 삶이 힘들고 고달파서였을까? 그 성정이 무척 거칠고 폭급했다. 그러면서도 단순하고 따뜻한 심성을 가진 아이였다. 고영은 안타까운 눈으로 숲으로 차츰 모습을 감추는 소년의 등을 주시했다.
 "나무아미타불. 약사여래불······."
 
 @
 
 등봉현은 소림사 산문 아래에 자리한 곳이다. 일찍이 달마대사가 소림에 역근과 세수를 남긴 이후 소림과 그 성세를 나란히 하였다. 그런 이유로 등봉현은 웬만한 고을보다 더 번화했다. 그런 등봉현의 대로를 소년 장소원이 걸었다.
 
 "염병할 새끼들."
 장소원은 등봉현을 지나는 이들이 싫었다. 부친이 생존했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미소를 보내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부친이 급사하고 모친이 나병에 걸리자 그와 모친을 등봉현에서 매몰차게 내쫓았다. 장소원은 두 눈에 분노의 눈빛을 사방으로 뿌리며 대로의 한 점포로 걸어갔다. 점포에는 갖가지 털옷이 즐비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가죽으로 만든 비싸 보이는 공예품이 가득했다.
 "어, 소원이 왔냐."
 이제 스물이 되어 보이는 점원이 장소원을 보고 아는 체를 했다.
 "왕이 형. 고 노야 있지."
 "응. 안채에 계신데. 왜, 물건 팔려고."
 "응."
 왕이라는 점원의 눈이 장소원의 허리춤에 갔다. 그러자 은색의 꼬리를 가진 너구리가 눈에 들어왔다.
 "호, 오랜만에 은미를 가진 놈을 잡았구나. 너 또 숭산에서 사냥했냐."
 왕이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장소원을 바라보았다.
 "젠장. 그런 거 따지지 말고 어서 고 노야나 불러줘."
 "소원아. 너 그러다가 소림사 스님들에게 경을 친다. 너도 알다시피 숭산에서는 사냥을 못하잖아. 소림사 스님들이 두 손 놓고 있지를 않아."
 "왕이 형.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고 빨리 고 노야나 데려와."
 장소원은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왕이는 한숨을 쉬면서 몸을 돌렸다.
 "기다려. 들어가서 고 노야를 불러올게."
 왕이는 점포의 안쪽에 보이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장소원은 그 사이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포대를 풀었다. 그리고 포대에서 너구리를 꺼내어 점포의 계산대 위에 놓았다. 잠시 후,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왕이와 한 육십 대의 노인이 모습을 보였다.
 끼- 이이.
 노인은 입가에 가는 수염이 아래로 내려온, 무척이나 간사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찢어진 눈매가 그가 탐욕스러운 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말해 주었다. 노인은 계산대에 있는 너구리를 보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눈에서 탐욕스러운 눈빛을 반짝였다.
 "하하. 간만에 좋은 놈을 잡았구나. 역시 숭산이 영산은 영산이야."
 노인은 한눈에 너구리가 숭산에서 잡혔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잔말 말고 얼마나 줄 거에요."
 장소원은 단도직입적으로 돈을 요구했다. 그러자 노인, 고 노야는 짐짓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쩝, 물건은 좋은데. 소림사에서 알면······."
 고 노야는 소림사를 언급하며 말을 흐렸다. 그 눈치가 값을 후려칠 심산인 듯했다. 그러자 장소원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고 노야. 나랑 더는 거래를 하지 않을 참이에요. 나 말고 저런 것을 가져오는 사람이 있어요."
 고 노야는 장소원의 말에 움찔했다. 아닌게아니라, 장소원이 아니면 저런 숭산에서만 사는 것을 구할 수가 없었다. 숭산 인근에 사는 사냥꾼들은 절대 숭산에서 사냥을 하지 않았다. 모두 소림사를 염두에 둔 탓이다. 그런 까닭에 숭산에는 갖가지 동물이 많았다. 그리고 산 자체가 영산이라 여러 진귀한 것들이 무척 많았다.
 "은자 삼십 냥 주마. 더는 안 돼. 나도 소림사 눈치를 봐야 하고. 저런 물건은 남몰래 거래를 해야 하니 말이다."
 "좋아요. 어차피 그 정도면 당분간 어머니 약값은 충분히 되니. 주세요."
 장소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고 노야가 아니면 등봉현에서 물건을 팔 길이 없었다. 모두 숭산에서 잡은 동물을 사려고 하지 않았다. 소림사를 염두에 둔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불심이 무척 깊었다. 고 노야는 계산대 아래에서 은자 삼십 냥을 꺼내어 장소원에게 건넸다.
 "옜다. 다음에도 좋은 물건을 가져 오너라. 내가 좀 더 쳐 줄 테니."
 "알았어요."
 장소원은 이내 몸을 돌려 점포를 나갔다. 그러자, 고 노야가 주변을 살피며 급히 너구리를 들고 좋아했다.
 "히히. 이 부드러운 털 좀 봐. 잘 만들면 족히 은자 백 냥은 너끈히 받을 거야."
 고 노야는 간만에 손에 쥔 물건에 만족했다. 그 모습을 본 왕이는 내심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노친네. 이왕 줄 거 좀 더 넉넉히 주지. 그나저나 소원이 녀석 무사해야 할 텐데. 꼬리가 길면 밟힐 텐데.'
 왕이는 내심 장소원이 염려스러웠다. 한편, 장소원은 점포를 나와 몇 가지 물건을 샀다. 그리고 등봉현의 중심으로 걸음을 옮겼다. 등봉현의 중심에는 각종 상질의 물품을 취급하는 점포들이 모여 있었다. 장소원은 그 점포들을 지나 한 약포 앞에 섰다. 약포에는 다수의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점포의 입구 위에는 만약포(萬藥鋪)란 거창한 편액이 있었다. 만약포는 등봉현에서 제일가는 약초상이었다. 이 만약포로 숭산과 멀리 하남성에서 나는 약초들이 몰렸다. 바로 만약포가 소림사에 약재를 공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포는 의원을 겸했다. 그런 이유로 등봉현에서 상질의 약재는 모두 만약포에 다 있었다. 잠시 후, 장소원은 자신의 차례가 되자 만약포로 들어갔다.
 
 "응. 소원이 왔냐?"
 한 중년인이 장소원을 보고 아는 체를 했다. 점포 안에는 서너 명의 인영이 한쪽 벽에 있는 약장을 연신 열고 닫았다. 그리고 다소 뒤에 있는 작은 서탁 앞에 한 중년인이 앉았다. 바로 이곳 만약포 의원 중의 한 사람인 동초복이란 이였다.
 "안녕하셨어요. 동 의원님."
 장소원은 동초복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실거렸다. 하지만, 장소원의 내심은 달랐다.
 '젠장 이렇게라도 해서 보다 좋은 약재를 구할 수만 있다면. 백번이 아니라 구천 번이라도 한다.'
 "흐음. 아직 네 모친의 병이 차도가 없는 모양이구나."
 "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장소원은 불쌍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흐렸다. 그러자 동초복이 손가락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상질의 약재가 있기는 한데. 그게 좀 비싸서 말이다."
 동초복의 눈에는 돈에 대한 탐심이 엿보였다.
 "동 의원님.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아요. 제발 어머니에게 좋은 약재로 약을 좀 지어주세요."
 장소원은 애원에 가까운 음성을 흘렸다. 자신은 의술에 관한 지식이 없었다. 그저 좋은 약재를 많이 먹으면 어머니의 병에 차도가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알았다."
 동초복은 붓을 들고 서탁에 있는 종이에 무엇인가를 빠르게 적어갔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한 인영에게 건넸다.
 "얼마 전에 개봉에서 들어온 고려 인삼이 있지. 그것의 뿌리 하나를 넣고 약을 지어. 알았지."
 "네. 의원님."
 만약포의 점원이 종이를 받아들고 벽에 있는 약장으로 갔다. 그리고 잠시 약장에 있는 약을 꺼내어 작은 종이에 담아서 접었다. 그 사이 동초복은 장소원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은자 이십 냥만 내어라."
 장소원은 동초복의 말에 소매에서 은자를 꺼내어 동초복의 손바닥에 놓았다. 그러자 동초복은 입이 헤 벌어지며 냉큼 은자를 자신의 소맷자락으로 숨겼다. 잠시 후, 점원이 약봉지 꾸러미를 줄에 묶어 가져왔다. 동초복은 약봉지를 받아들고 이내 장소원을 향해 건넸다.
 "자, 여기 약이다. 그리고 잊지 마라. 병은 그저 좋은 약을 많이 먹는 것이 최고다."
 "예. 그럼. 저는 이만······."
 장소원은 동초복에게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몸을 돌려 만약포를 걸어 나갔다. 동초복은 그런 장소원의 뒷모습을 보며, 장소원이 안 보일 때까지 그를 주시했다.
 "동 의원님. 그래도 우리 만약포의 단골손님인데. 하수오를 고려 인삼이라고 속여 팔아도 되겠습니까?"
 만약포의 점원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킥킥! 이놈아. 나병에 무슨 약이 소용이 있어. 나병은 백약이 무효야. 그리고 약을 계속해서 비싸게 팔아먹으려면. 저놈의 어미 병이 오래가야 할 것이 아니냐. 안 그래. 그래야, 내가 중간에서 빼먹을 수 있는 돈도 많아질 것이 아니냐."
 동초복은 입이 귀밑에 걸릴 정도로 웃었다. 그리고 만약포에 있는 점원들을 둘러보았다.
 "야. 다들 오늘 저녁에 한 잔씩 하자. 간만에 멍청한 물주가 큰돈을 던져주고 갔다."
 "낄낄낄낄!! 좋죠. 장소원 그놈 돈은 날로 먹어도 됩니다. 감히 숭산에서 사냥을 하다니. 부처님께 천벌을 받을 겁니다."
 "암만. 그놈이 우리 물주만 아니었다면 벌써 소림사에 고변을 했을 거야."
 "아 참. 동 의원님. 고 노야에게도 몇 푼 찔러 줘야죠."
 동초복은 점원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줘야지. 저런 멍청이 물주를 소개해 주었는데. 우리만 입 싸악 닦을 수 있나. 하하--!"
 만약포의 점원 아칠은 동료들과 동초복을 곁눈질을 했다.
 '염병할 자식들. 천벌은 너희 놈들이 받아야 해. 아픈 병자를 볼모로 잡고 돈을 갈취하는 네놈들이 더 나빠.'
 아칠은 내심 세상인심을 모르는 장소원이 안타까웠다. 가차에 걸린 어머니를 봉양하는 장소원의 사정을 어느 정도는 아는 탓이다. 하지만, 장소원에게 말하지는 못했다. 그도 만약포에서 일을 해야 먹고사는 탓이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속담을 잘 아는 것이다.
 
 @
 
 숭산의 태실봉을 따라 험준한 지세가 내달렸다. 지세는 태실봉의 끝자락에서 차츰 완만한 지형을 이루었다. 그런 지세의 밑으로 한 작은 초막이 있었다. 얼기설기 묶은 다소 위험해 보이는 초막은 주변으로 무성한 초목이 자랐다. 그런 초막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장소원은 초막의 마당이랄까? 아무렇게나 방치된 곳에서 나무로 불을 지폈다.
 
 "콜록······콜록."
 초막의 안에서 기침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러자 장소원은 급히 불을 피우던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다 깨어진 독으로 달려가 조롱박으로 물을 떴다. 장소원은 행여나 조롱박에 있는 물을 쏟을세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장소원은 초막의 입구를 가진 거적을 들추고 안으로 걸어갔다.
 "어머니. 여기 물 좀 드세요."
 장소원은 모친에게 조심스럽게 조롱박을 건넸다. 그러자 온몸이 천으로 둘둘 말린 여인이 손을 더듬거리며 내밀었다. 그런 여인의 두 팔은 온통 딱지 투성이였다.
 "꿀꺽······꿀꺽."
 여인은 조롱박을 손에 쥐자 황급히 입으로 가져갔다. 그 모양새가 무척이나 목이 말랐던 모양이었다.
 "어머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곧 맛있는 타락죽을 끓여 드릴게요."
 장소원은 걱정이 가득한 음성을 흘렸다. 그러자 여인이 조롱박을 조심스럽게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소, 소원아. 내가 무슨 돈이 있어. 그 비싼 타락죽을 구해 왔니."
 "헤헤. 어머니. 오늘 제가 객잔에서 손님의 시중을 잘 들었다고. 손님이 웃돈을 넉넉히 주셨어요."
 장소원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장소원이 객잔에서 점소이로 일을 한 것은 무척 오래되었다. 그리고 점소이의 노임으로는 모친의 약값을 대기는커녕 끼니도 해결할 수가 없다.
 "그래. 오늘은 관세음 보살님이 돌보아 주셨구나."
 "············."
 장소원은 모친의 말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 그 빌어먹을 관세음보살은 우리 모자를 돌보아 주지 않아요. 어머니.'
 장소원은 내심 관세음보살를 욕했다. 자신의 모친과 부친 그리고 대대로 조상들이 거만의 재물을 소림사에 시주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가는 모친의 가자와 부친의 죽음 그리고 충격을 받은 모친의 실명이었다.
 '어머니. 저는 부처나 관세음보살 따위는 믿지 않아요. 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어머니뿐이에요. 어머니. 반드시 나으셔야 해요.'
 장소원은 모친을 물기에 젖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초막을 나와 다시 불을 지폈다. 모친의 저녁인 타락죽을 끓이기 위해서였다. 그런 장소원의 머리 위로 해가 서쪽으로 차츰 기울어 가고 있었다.
 
 "어- 허엉---!!"
 대호의 울부짖음이 산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산중의 뭇 짐승들이 그 포효성에 저마다 두려워하며 황급히 몸을 숨겼다. 그러자 어두움에 잠긴 숲에서 두 개의 붉은빛이 반짝였다.
 부스럭.
 수풀을 헤치고 한 대호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대호는 몸길이가 약 이, 삼장에 달하는 거대한 모습이었다. 그런 대호의 송곳니 사이로 피가 점점이 떨어져 땅바닥에 혈흔을 남겼다. 그리고 대호의 송곳니 사이로 옷 조각으로 보이는 천이 밤바람에 흩날렸다. 그 때였다.
 
 휘- 익!
 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일단의 무복인들이 허공을 날아왔다. 그러자 대호는 화가 난 듯 포효 성을 내질렀다.
 "크- 허엉······!!"
 "크······!"
 "허억······!"
 대호의 포효성에는 살기가 물씬 풍겼다. 대호의 살기가 밤의 허공을 가르며 주변으로 퍼졌다. 그러자 일단의 무복인들이 몸서리가 쳐지는 듯 몸을 떨었다.
 "지금. 뭐, 하는 것이냐 야아-------!!"
 무복인들의 뒤에서 누군가의 고성이 들렸다. 그 고성에는 내공이 담긴 듯했다. 그러자 무복인들이 그 고성에 가까스로 몸을 추슬렀다. 그 사이 대호는 두려운 눈빛을 흘리며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다.
 쉬- 이잇!
 대호는 한 발을 내 찍을 때마다 일, 이장을 가뿐하게 뛰어갔다. 그런 대호를 무복인들은 두 눈을 멀뚱거리며 우두커니 바라만 보았다. 그런 무복인들 중에는 바짓가랑이 사이로 노란 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휘- 이익!
 휘- 익.
 잠시 후, 방금 전까지 대호가 있던 자리에 세 명의 인영이 허공에서 떨어졌다. 그들은 이남일녀였다. 세 사람은 모두 사냥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들 중 가장 연배가 위로 보이는 서른 가량의 인영이 대호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이를 갈았다.
 "으- 드득! 빌어먹을 호랑이 새끼. 제 놈이 아무리 산중지왕인 호랑이라고는 하지만 설마하니 무공을 익힌 이들을 잡아먹을 줄이야."
 "형님. 아무래도 우리가 실수한 것 같습니다. 아무르 호랑이(시베리아 호랑이)를 풀어놓고 사냥을 하다니."
 이제 스물 중반으로 보이는 인영이 후회하는 듯한 음성을 흘렸다.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여인이 입가에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호호. 작은 오빠. 왜 그래요. 겁이 나는 거에요. 그러니 맨 날 다른 이들이 작은 오빠를 학산자(謔山者)라고 놀리는 거에요."
 "둘 다 시끄럽다. 내 반드시 저놈을 잡고야 말겠다. 뭐들 하느냐. 어서 놈을 뒤쫓지 않고서······."
 서른 가량의 인영이 수하로 보이는 무복인들을 다그쳤다.
 "예. 알겠습니다. 소 가주."
 "네."
 "예."
 무복인들은 인영의 다그침에 당황하며 허둥지둥 거렸다. 인영은 그런 무복인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놈들을 보았나? 너희가 그러고도 천하제일가라 부르는 우리 상관 세가의 무사들이랄 수 있느냐."
 "큰 오빠. 너무 야단치지 마세요. 아무르 호랑이는 웬만한 일류 고수 뺨치는 놈이에요."
 "닥쳐라. 상관 소연. 제아무리 아무르 호랑이가 사납다고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 호랑이 새끼 하나 잡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느냐?"
 인영은 두 눈을 부릅뜨며 상관소연에게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상관소연이 입술을 뿌루퉁하게 내밀었다.
 "체. 누가 절세 검공자 아니라고 할까 봐."
 "쉿! 소연아. 능양 형님이 들으시겠다."
 "작은 오빠는 왜 그렇게 담이 작아요."
 상관소연은 자신의 손위 오빠인 상관능운을 향해 불만스러운 음성을 흘렸다.
 "뭐 하는 거냐. 어서 따라와라."
 상관능양이 고함을 치며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그의 뒤를 상관 세가의 무사들이 바삐 뒤따랐다.
 "큰오빠 같이 가요."
 "형님. 천천히 좀 가시죠."
 상관능운과 상관소연이 다급하게 상관능양을 뒤쫓았다. 그들이 사라진 후 숲은 다시 고요한 정적에 잠겼다. 그리고 둥근 보름달이 잔잔한 달빛을 흩뿌리며 밤이 서서히 흘러감을 말없이 나타내었다.
 
 @
 
 아침이 밝았다. 장소원은 아침 일찍부터 사냥을 나갈 준비를 서둘렀다. 전날 모친의 약을 사면서 모든 돈을 다 썼다. 빨리 사냥을 해서 돈을 마련해야 했다. 그래야, 모친에게 몸에 좋은, 맛난 음식을 올릴 수 있었다.
 
 "어머니. 저 일 나갔다 올게요. 옆에 어제 저녁의 타락죽이 있으니. 꼭 때맞추어 드셔야 해요."
 "소원아. 조심해서 다녀·····. 흑-!"
 "어머니. 왜 또 그러세요."
 "나, 나 때문에·····."
 장소원의 모친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장소원이 급히 옆에서 작은 천을 들어 모친의 눈물을 닦았다.
 "어머니. 상처에 물기가 들어가면 안 좋아요. 그리고 그렇게 울지 마세요. 제가 어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흐흑! 소원아. 어, 어미 때문에·····."
 "어머니. 괜찮아요. 어머니 돌아가시면 저는 이 세상에 혼자에요. 어느 누구 하나 아는 이가 없는 천애 고아라고요. 그러니 굳게 마음을 잡수시고 어서 병이 나으셔야 해요."
 "소원아."
 모친은 장소원의 위로에도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모친의 그런 모습에 장소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장소원은 행여나 모친에게 그런 모습을 들킬 것 같아 황급히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그리고 씩씩한 음성을 흘렸다.
 "어머니. 저 갔다 올게요. 너무 늦으면 주인어른이 화내세요."
 "그래·····그래."
 장소원은 초막의 입구에 있는 거적을 들추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초막을 바라보았다.
 '어머니. 죄송해요. 거짓말을 했어요. 용서하세요.'
 장소원은 마음속으로 모친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숭산의 산자락으로 몸을 옮겼다. 또다시 먹고 사는 것이 급선무인 일상이 시작되었다. 초막을 나온 장소원은 숭산 태실봉의 산등성이 사이로 몸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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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 아앙!!"
 포효성이 울렸다. 숭산의 터줏대감인 호랑이는 화가 났다. 자신의 영역에 누군가가 침입했다. 자신이 영역을 표시한 나무의 줄기에 다른 동족이 오줌을 누웠다. 그 오줌에서 느껴지는 야수의 기세가 자신을 흥분시켰다. 호랑이는 이제 천천히 몸을 돌려 침입자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크르르·····!"
 낮은 으르렁거리는 울음소리가 호랑이가 분노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호랑이는 코를 땅에 대고 침입자의 흔적을 찾았다. 아마도 어제 밤에 자신의 영역으로 몰래 숨어든 것 같았다.
 "크- 와아아앙!!"
 침입자의 흔적을 찾았는지 숭산의 지배자 중 한 명이 앞발로 허공을 날카롭게 휘저었다. 그리고 이내 한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눈에 보이는 쓰러진 나무의 줄기를 껑충 뛰어넘었다. 그리고 바위를 타고 순식간에 계곡을 이동했다.
 
 "할짝·····할짝."
 강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침입자가 계곡의 얕은 곳에 웅크린 채 혀로 물을 핥아먹었다. 침입자의 눈이 게슴츠레한 것이 무척 피곤해 보였다.
 꾸르르.
 배에서 소리가 울렸다. 배가 고팠다. 지난밤 모처럼 만에 맛있는 고기를 먹었다. 하지만, 충분히 배를 채우지 못했다. 방해하는 인간들이 있었다. 침입자는 그런 인간들이 무섭지 않았다. 다만, 우두머리로 보이는 인간은 두려웠다. 그가 뿌리는 기운이 자신의 야성을 짓눌러 왔다. 본능이 그가 자신보다 강하다고 말했다.
 "크르르·····!"
 어젯밤을 생각하자 화가 났다. 벌써 오일 째다. 인간이 풀어주어 처음에는 무척 고마웠다. 비록 낯선 곳이었지만 자신이 살던 곳보다 좋았다. 바람결에 풍겨오는 먹이의 냄새가 무척 많았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보다 따뜻했다. 하지만, 자신을 풀어준 인간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
 "크- 와앙!"
 침입자는 화가 났는지 거칠게 포효했다. 그것은 자신을 갖고 논 인간에 대한 분노였다. 그리고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했다.
 꾸르르.
 배에서 다시 소리가 울렸다. 뭔가 먹잇감을 사냥해야 했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어젯밤에 먹었던 그 부드럽고 달짝지근한 맛의 고기가 불현듯 생각났다. 그리고 갑자기 그 맛이, 먹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어났다. 그때였다. 자신의 앞에 있는 개울가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벌떡.
 "크르르·····."
 침입자는 급히 몸을 일으켜 경계했다. 그리고 낮게 깔리는 울음을 흘려 위협을 가했다.
 "크- 허엉!"
 맞은편에서 동족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위협이었다. 영역을 침입한 것을 알리는 경고이기도 했다. 그리고 수풀을 가르며 한 동족이 나타났다. 그 순간 침입자는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엎드렸다. 침입자의 눈에 보이는 것은 너무나 작은 몸의 나약한 동족이었다. 아예 전의가 생기지 않았다. 너무 약한 존재라 무시했다. 그런데 동족이 끊임없이 으르렁거렸다. 낮게 울음을 깔며 이곳이 자신의 영역임을 알렸다. 침입자는 귀찮아 냅다 고함을 질렀다.
 "크- 아아앙·····!!"
 푸드덕.
 파다닥.
 침입자의 포효성이 숭산 태실봉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것은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그리고 포효성에 놀라 산새들이 다급히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일순, 허공에 검은 그늘이 생겨 햇빛을 가렸다. 숲의 모든 짐승들이 새로 나타난 강대한 존재에 대해 두려워했다. 숭산의 지배자 중 태실봉을 자신의 영역으로 하는 산중지왕은 은연중에 몸을 움찔거렸다. 침입자는 자신보다 강했다. 조금 전 그가 내지른 포효성이 그것을 말했다. 지배자는 선택해야 했다. 고개를 숙이고 그가 새로운 지배자임을 인정하든지. 아니면 싸워야 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자신의 죽음이었다. 만약, 여기에서 물러난다면 자신은 이후 지배권을 잃을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이자 생존의 법칙이었다.
 '싸울 것인가? 꼬리를 말고 몸을 숙일 것인가?'
 지배자는 고민에 빠졌다. 그런 지배자의 눈에 자신을 귀찮게 여기는, 하찮게 여기는 침입자의 의중이 보였다.
 "크르르·····!"
 화가 났다. 자신은 이곳의 왕이었다. 아무리 동족이라도 일단은 자신의 지배권을 인정해 주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도전해야 했다. 자신이 가진 지배권을 양도하라고 해야 했다. 그런데 침입자는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화가 났다. 숭산에 자리한 동족 중 눈앞에 보이는 침입자처럼 자신을 무시하는 존재는 없었다.
 "크- 와아앙!!"
 지배자는 홧김에 침입자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그리고 살기가 가득 담긴 포효를 질렀다. 그것은 생사를 건 싸움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러자 침입자가 맹렬히 살기를 내뿜었다. 그러자 계곡에 차가운 한기가 흘렀다. 계곡을 조용히 넘나들던 공기가 급격히 차가워졌다. 그리고 침입자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지배자를 죽이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감히 자신에게 살기를 뿌린 존재를 죽이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엿보였다.
 "어- 허엉!"
 침입자가 도약했다. 자신의 몸길이의 일곱, 여덟 배는 족히 될 계곡의 물줄기를 힘차게 건너뛰었다. 그 순간 지배자는 몸을 흠칫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뇌리를 스쳤다.
 스- 아악!
 날카로운 섬뜩한 기세가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지배자는 황급히 몸을 뒤로 날렸다. 그러자 방금 전 지배자가 있던 곳을 침입자의 앞발이 스쳤다. 앞발에는 섬뜩한 발톱이 삐쭉 튀어나와 있었다.
 턱-!
 침입자는 가뿐하게 지배자의 맞은편에 떨어졌다. 그리고 여유롭게 몸을 지배자에게 돌렸다. 그리고 눈을 번뜩거렸다. 그것은 강자로서 감히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낸 약자에 대한 응징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크르르·····."
 지배자는 두려움이 엿보이는 울음을 토했다. 그리고 전신의 털을 꼿꼿하게 세웠다. 분명 허세였다. 지배자라는 자존심이 허세를 부리게 했다. 그러자 침입자는 가소롭다는 듯이 천천히 다가왔다.
 "크- 아앙!"
 지배자는 온 힘을 다해 앞발로 침입자의 안면을 후려쳤다. 하지만, 침입자는 옆으로 살짝 비켜 그 공격을 무위로 돌렸다. 그리고 앞발을 들어 지배자의 옆을 강하게 후려쳤다.
 퍼- 어억!
 "크- 와아앙!"
 지배자는 고통에 가득 찬 울음을 토하며 허무하게 옆으로 퉁겼다.
 콰- 당!
 지배자는 침입자에게서 약 일장 정도 떨어진 땅바닥에 너부러졌다.
 "크- 아앙!"
 지배자는 고통스러운 울음을 토했다. 옆구리가 무척이나 아팠다. 아마도 갈비뼈가 부러진 듯했다. 지배자는 나가떨어져 힘없이 엎어졌다. 그런 지배자를 향해 침입자가 천천히 다가갔다.
 "크- 르르!"
 지배자는 다가오는 침입자를 보고 급히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크- 아앙!"
 침입자는 지배자를 비웃었다. 그리고 껑충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침입자는 허공을 단숨에 가로질렀다. 그리고 앞발로 지배자의 등줄기를 움켜쥐며 입을 벌려 단숨에 지배자의 목을 물어뜯었다.
 우두둑--!
 뼈가 강인한 턱의 힘에 부러졌다. 그러자 지배자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잠시 후, 지배자의 몸에 힘이 빠지며, 몸이 축 늘어졌다. 침입자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배자의 목을 문 입을 거칠게 좌우로 흔들었다. 그런 침입자의 입에 지배자의 힘줄이 물렸다. 침입자는 자신의 입에 있는 힘줄을 내뱉고는 이내 지배자의 목을 가차 없이 뜯었다. 침입자의 송곳니가 지배자의 목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지배자의 피가 바닥에 홍건이 깔렸다. 땅바닥이 지배자의 붉은 피로 뒤덮였다. 침입자는 지배자의 쓰러진 몸 위에 자신의 앞발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승리하였음을 온 숲에 알렸다.
 "어- 허어어엉!!!"
 
 
 * 탐욕 *
 
 장소원은 땅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장소원의 눈에 다소 떨어진 계곡이 보였다. 새로운 지배자가 된 거대한 몸집의 아무르 호랑이가 포효 성을 내질렀다. 그 포효성에 담긴 맹수의 살기가 온 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대, 대단한 놈이다."
 장소원은 아무르 호랑이를 보며 감탄했다. 그 앞에 쓰러진 지배자는 아무르 호랑이의 새끼처럼 보였다. 장소원은 기다렸다. 쓰러진 호랑이가 탐이 났다. 하지만 함부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호랑이의 후각은 무척이나 예민하고 또 냄새를 잘 맡았다. 장소원은 아무르 호랑이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아무르 호랑이가 천천히 계곡에 있는 수풀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장소원은 그 모습을 보고 몸을 일으키려했다.
 "안 돼. 혹시라도 몰라. 이왕 기다린 거. 좀 더 기다리자."
 장소원은 다시 몸을 땅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러길 약 두 시진이 지났다. 장소원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계곡으로 걸어갔다. 장소원은 두 귀를 활짝 열었다. 그리고 계곡으로 접어들기 전 다시 땅바닥에 귀를 대었다. 장소원은 주위를 빠르게 훑어보며 천천히 쓰러진 지배자에게 다가갔다.
 "하하.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구나. 이런 횡재를 하다니."
 장소원은 입가에 들뜬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죽은 호랑이를 자세히 살폈다.
 "쩝, 목에 난 상처가 없었으면 꽤 값이 나갈 것인데."
 호랑이의 목에 맹수의 이빨치고는 상당히 큰 자국이 남았다. 호랑이의 가죽은 상처가 적을수록 값이 더 나갔다. 하지만 이렇게 호랑이 가죽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았다. 장소원은 허리춤에서 한 자루 비수를 꺼냈다.
 스- 릉!
 장소원은 비수로 호랑이의 발에 상처를 내었다. 그리고 호랑이의 발부터 배, 등 그리고 머리의 순서대로 호피를 벗겼다. 그리고 벗긴 호피를 햇빛이 잘 스며드는 계곡의 바위 위에 펼쳐 놓았다. 장소원은 잠시 숨을 돌렸다. 호피를 펼쳐 놓은 바위 옆에 앉아 작은 죽통에 든 문을 마셨다. 그리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았다. 보기 보다는 힘이 들었다.
 "휴······!"
 장소원은 고개를 돌려 호피가 벗겨진 호랑이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장소원은 잠시 숨을 돌린 후 다시 움직였다. 호랑이는 버릴 것이 없었다. 고기와 호골이라 부르는 뼈. 그리고 그 내장까지 무척 값이 비쌌다. 장소원은 그날 해가 저물 때까지 호랑이를 해체했다. 그리고 잎사귀가 넓은 나뭇잎으로 해체한 호랑이의 고기와 뼈를 감쌌다. 그런 잎사귀 꾸러미가 무척 많이 나왔다. 장소원은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호랑이의 뼈는 귀한 약재로 쓰이니. 분명 몸에 좋을 거야. 어머니의 약에 쓰면 어머니도 금방 좋아지실 거야."
 장소원은 호골을 어머니의 약재로 쓸 생각이었다. 나이 열 살쯤 되었을 때 등봉현에서 쫓겨났다. 그 때부터 살기 위해 뭐든지 닥치는 대로 해야 했다. 장소원은 산에서 나는 산물이나 약초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그런 탓에 쥐와 토끼 등 온갖 짐승들을 잡아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그래야 어머니의 약값과 식량을 마련할 수 있었다.
 "흠, 이 호랑이 고기 중 일부는 동 의원께 드리자. 그리고 이 호골을 써서 어머니의 약을 다시 지어 달라고 하자."
 장소원은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머니의 병에 좋은 약이라면 닥치는 대로 쓰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짐이 너무 많았다. 장소원은 자신이 가져가기에는 양이 너무 많아 고민이 되었다.
 "할 수 없지. 가져 갈 수 있는 양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다른 곳에 잘 챙겨 두자. 그리고 아쉬울 때 조금씩 꺼내어 팔면 되지. 뭐."
 장소원은 자신이 가져 갈 수 있는 양만 조심스럽게 챙겼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신만이 아는 장소로 옮겼다. 장소원은 서쪽으로 떨어지는 해를 보았다. 마음이 급했다. 서둘러 등봉현의 만약포로 가서 호골을 주 약재로 해서 어머니의 약을 다시 지어야 했다. 장소원은 황급히 몸을 돌려 계곡을 빠져나갔다.
 
 장소원이 계곡을 떠나고 약 한 시진이 지났을 때. 일단의 무복인들이 계곡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주위를 무척이나 경계했다. 그런 그들의 선두에 한 이십 대의 청년이 땅바닥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는 느린 걸음으로 뭔가를 뒤쫓는 듯했다.
 "감흥."
 상관능양이 청년을 불렀다. 그러자 청년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경계하면 고개를 뒤로 돌렸다.
 "예. 소 가주님."
 "놈의 흔적이 있느냐."
 상관능양은 기대가 어린 눈으로 추종술에 관한한 자타가 인정하는 감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감흥이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자 감흥의 고개 짓에 다른 이들이 바짝 긴장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겁내는 듯했다. 그리고 주위를 경계하는 눈초리를 번뜩였다.
 "소 가주님. 이쪽으로."
 감흥은 상관 세가의 소 가주 상관능양을 불렀다. 그러자 상관능양이 주위를 경계하면 다가갔다. 감흥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앞을 가리켰다.
 "보십시오. 소 가주님. 호랑이 발자국입니다. 이렇게 깊고 큰 발자국은 아마도 그 아무르 호랑이가 아니면 남기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상관능양은 감흥의 말에 땅바닥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의 눈에 두 개의 호랑이 발자국이 있었다. 하나는 작았고 다른 하나는 컸다.
 "감흥."
 "예, 소 가주님."
 "저 작은 발자국은 무엇이냐. 분명 호랑이 발자국 같은데."
 상관능양은 손가락으로 바닥에 피를 흘린 자국이 있는, 작은 발자국을 가리켰다.
 "저 정도의 발자국은 아마도 다른 호랑이 같습니다. 이곳이 숭산인 것을 감안하면 아무르 호랑이와 이곳의 호랑이와 서로 싸운 것 같습니다."
 "그럼 저 핏자국은?"
 감흥은 상관능양의 말에 다시 땅바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세밀히 살폈다. 혈흔이 낭자한 바닥의 흙을 한 움큼 집어 그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계곡의 한 바위로 가 그 곳에 있는 혈흔을 살폈다. 그리고 상관능양에게 다가와 말했다.
 "소 가주님. 제가 보기에는 누군가 어부지리를 취한 것 같습니다."
 "어부지리······?"
 "네. 그렇습니다. 아무르 호랑이와 이곳 호랑이가 맞붙어 싸웠다면. 십중팔구는 아무르 호랑이가 이겼을 겁니다. 호랑이는 동족을 먹지 않습니다. 그러니 필시 이곳의 호랑이 시체가 그대로 남았을 것입니다. 누군가 그것을 보고 이곳의 호랑이를 해체 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사냥꾼 같습니다."
 "그럴 리가 없네."
 상관능운이 중간에서 끼어들었다. 그러자 상관능양과 감흥의 시선이 상관능운에게 쏠렸다.
 "능운아. 네 생각을 말해 봐라."
 상관능양은 동생 상관능운을 향해 의견을 물었다.
 "형님. 이곳은 숭산입니다. 소림사가 있어. 숭산에서는 살생이. 사냥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런 이곳으로 사냥을 올 이가 있겠습니다. 소림사를 염두에 둔다면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아니다. 능운아."
 상관능양은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저었다.
 "숭산은 네 말대로 소림으로 인해 살생이 금지 된 곳이다. 그래서 뭇 짐승들이 많아. 네가 사냥꾼이라면 사냥감이 지천에 깔린 이곳을 욕심내지 않겠느냐."
 "큰 오빠. 그래도 소림사에서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상관소연은 어느새 두 오빠에게 다가와 아는 척을 했다. 상관능운은 그 모습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소연아. 사람의 욕심이란 것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단다."
 "치······."
 상관소연은 큰 오빠 상관능운의 말에 삐친 듯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자 상관능운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하하. 소연아. 형님 말씀이 맞다."
 "후후······!"
 "몰라욧!!"
 상관소연은 새 초름한 눈으로 두 오빠를 노려보았다. 그 때 세 사람의 귀에 감흥의 음성이 들렸다.
 "찾았습니다. 소 가주님."
 상관능양의 고개가 다급하게 돌아갔다. 그리고 감흥의 옆으로 뛰어갔다.
 "저쪽입니다. 아무르 호랑이는 저쪽으로 갔습니다."
 감흥은 정확하게 아무르 호랑이가 사라진 방향을 짚었다. 그러자 상관능양이 들뜬 음성을 흘렸다.
 "다들 빨리 이동하라. 반드시 놈을 잡아야 한다. 절대 개별 행동은 하지 마라.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조심스럽게 움직여라. 그리고 주위를 잘 살펴라."
 "네. 소 가주님."
 "예. 알겠습니다."
 상관능양은 자신의 두 동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상관능운과 상관소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능양은 선두에 섰다. 감흥을 길잡이 삼아 느리지만 주변을 엄중히 경계하면서 계곡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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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酉時), 장소원은 등봉현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곧장 만약포로 향했다. 만약포 앞에는 저녁이 다 되어가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장소원은 곧장 만약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동초복이 서탁에 앉아 있다가 장소원을 반갑게 맞았다.
 "소원이가 아니냐. 무슨 일이냐."
 "안녕하세요. 동 의원님."
 장소원은 동초복에서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나뭇잎으로 싼 꾸러미를 내밀었다.
 "저어······."
 "왜? 말해 보라."
 동초복은 장소원이 머뭇거리자 궁금해 했다.
 "어머니의 약을 다시 지었으면 해서요."
 "응······? 무슨 말이냐. 어제 가져간 약이 뭔가 잘못 되기라도 했느냐?"
 동초복은 내심 뜨끔했다. 지은 죄가 있기 때문이었다. 장소원은 그런 동초복의 내심을 몰랐다.
 "우연히 구한 약재인데. 이것으로 어머니 약을 다시 지었으면 해서요."
 장소원은 조심스럽게 나뭇잎 꾸러미를 풀었다. 그러자 동초복이 궁금한 듯 꾸러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허억······!"
 동초복은 외마디 음성을 토했다. 그의 눈에 상질의 호골이 보였다.
 "이, 이것을 어떻게 구했느냐?"
 "그냥 우연히 얻었어요."
 장소원은 머쓱한 듯 뒷 리를 손으로 긁었다. 하지만 동초복의 날카로운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동초복은 장소원의 옷에 묻은 핏자국을 보았다.
 '이놈이 어디서 호랑이라도 잡았나? 아니야. 설마하니. 이런 놈이 어떻게 호랑이를 잡았겠어.'
 동초복은 내심 의구심이 들었다.
 "어디 한번 보자."
 동초복은 꾸러미의 호골을 손에 쥐어 눈가로 가져갔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동초복의 눈은 시간이 갈수록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동초복은 나중에는 냄새를 맡아보고 살짝 혀로 맛을 보기도 했다.
 '분명해. 말리지 않은 진짜 호골이야. 그리고 이 뼈에 남아 있는 피 냄새와 맛은, 갓 잡은 호랑이의 뼈가 분명해.'
 동초복은 놀란 눈으로 장소원을 바라보았다. 호랑이를 잡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호골이었다.
 "동 의원님."
 장소원은 조심스럽게 동초복을 불렀다. 그러자 동초복이 이내 정신을 차린 듯 시선을 장소원에게 돌렸다.
 "그래. 이 호골로 네 어머니의 약을 다시 지어 달라는 것이지."
 "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것은 동 의원님이 드세요."
 장소원은 다른 작은 꾸러미를 건넸다. 그러자 동초복의 눈가에 궁금증이 반짝였다.
 "뭐냐?"
 "헤헤, 별것은 아니에요."
 장소원은 부끄러워했다. 그러자 동초복은 꾸러미를 펼쳐보았다.
 '부, 분명히 호랑이 고기다. 틀림이 없어.'
 동초복은 꾸러미에 있는 고기를 보고 확신했다. 분명 호랑이 고기였다. 간혹, 정력에 호랑이 고기가 좋다는 말을 듣고 약재로서, 또 보약으로서 호랑이 고기를 찾는 이가 있어. 호랑이 고기에 대해서 잘 알았다. 동초복은 놀란 눈으로 장소원을 바라보았다.
 "동 의원님. 날이 어두워져서······."
 장소원은 날이 어두워지니 빨리 약을 지어 달라는 말을 돌려서 말했다.
 "아, 알았다. 잠시만 기다려라."
 동초복은 마음이 급했다. 동초복은 벽에 있는 약장으로 가 호골을 주 약재로 해서 약을 다시 지었다. 그리고 장소원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동 의원님."
 장소원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동초복이 손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아니다. 조심해서 가거라."
 "네."
 장소원은 몸을 돌려 만약포를 벗어났다. 동초복은 만약포의 입구에서 장소원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동안 서 있었다. 그리고 장소원이 시야에게 완전히 사라지자 급히 밖으로 뛰어갔다. 그러자 때마침 만약포의 점원 아칠이 저녁을 먹고 난 후 만약포로 들어오다가 그 모습을 보았다.
 "동 의원님. 어디를 그리 급히 가십니까?"
 "잠시 다녀 올 곳이 있다."
 동초복은 아칠의 외침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오로지 앞만 보고 뛰어갔다.
 "어, 저쪽 방향은 고 노야의 점포 방향인데."
 아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틀 후, 소림사 계율원으로 투서가 날아들었다. 계율 원주인 무양대사는 자신의 손에 들린 투서가 미심 적었다. 투서가 말하는 이는 자신도 아는 아이였다. 나병에 걸린 모친을 극진히 봉양하면 사는 아이였다. 그 집안 대대로 불심이 깊은 신자였다. 투서는 그런 아이를 모함하고 있었다.
 
 "이 투서가 어떻게 전달되었느냐?"
 무양대사는 자신의 앞에 선 제자 심광을 바라보았다. 심광은 무양대사의 물음에 합장을 했다.
 "나무아미타불. 우연히 소승이 등봉현에 일이 있어 내려가다가 객잔에서 점소이가 준 것입니다. 웬 손님이 저에게 전달해 달라고 했답니다."
 "흐음······."
 무양대사는 심광의 말에 다시 한 번 꼼꼼하게 투서를 읽었다.
 
 "······장소원이라는 아이가 숭산에서 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숭산에서 짐승을 사냥해 무척 많은 재물을 모았습니다······숭산은 불문 성지라 살생이 금지 되어는 데도. 그 아이는 불쌍한 모친을 전면에 내세워 다른 이의 이목을 가리고 있습니다······불심이 깊은 신자로서 도저히 이를 두고 볼 수가 없어. 이렇게 글을 적습니다······널리 살펴 주십시오."
 
 무양대사는 내심 혼란스러웠다. 그 아이가 나병에 걸린 모친과 숭산에 들어와 사는 것을 은연중에 묵인했다. 나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등봉현에서 쫓겨난 처지가 안쓰러워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 아이가 살생이 금지된 숭산에서 짐승을 사냥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무아미타불."
 무양대사는 불호를 읊조리며 고민했다. 뚜렷한 증거도 없었다. 단순히 투서 한 장을 갖고 그 아이를 의심하기에는, 그 아이가 너무 착했다. 눈 먼 봉사에다 나병에 걸린 모친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사부님. 투서대로 그 아이를 잡아 올까요."
 심광은 짐짓 장소원을 이미 범인으로 단정한 듯이 말했다.
 "아니다. 투서를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심광은 내심 뜨끔했다. 사부 무양대사가 투서를 그대로 묻을 것 같았다.
 "사부님. 그래도 투서가 들어왔는데 이를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것이 아닌지요."
 "흐음."
 무양대사는 제자 심광의 말도 일리가 있다 싶었다. 투서가 들어왔는데 이를 무시하는 것도 옳지 않았다.
 "사부님."
 심광이 사부 무양대사를 불렀다. 그러자 무양대사가 고민이 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그러느냐."
 "이대로 가만있으면 장소원 그 아이는 누명을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 아이의 누명도 풀어주고 또 투서의 진위 여부도 확인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무슨 방법이 있느냐?"
 무양대사는 심광을 향해 궁금한 듯한 눈빛을 흘렸다. 그러자 심광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 아이의 집을 살펴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집을 살펴보자?"
 "예. 사냥을 했으면 그 잡은 짐승이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그 집을 살펴보아 짐승이 나온다면 분명히 그 아이는, 투서의 내용대로 살생을 한 것이고. 짐승이 나오지 않는 다면 투서가 고함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양대사는 제자 심광의 의견에 끌렸다. 그러자 심광은 확실하게 못을 박으려고 했다.
 "사부님. 그 아이의 억울함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이대로 투서를 무시하시면 사람들이 뒤에서 그 아이를 손가락질을 할 것입니다. 그 착한 아이에게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네 말도 일리는 있다. 사는 것도 힘든 아이인데. 누명까지 씌울 수는 없지. 심광아."
 "네. 사부님."
 "심료와 함께 계율원의 무승 서넛을 데리고 가서 그 아이의 집을 살펴보아라."
 "네. 사부님. 그런데······."
 심광은 스승 무양대사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무양대사가 의아하게 여겼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느냐?"
 "사부님. 참으로 말씀드리기 송구합니다만. 만약, 그 아이의 집에서 짐승이 나온다면 어찌 해야 할지······."
 심광은 이미 사전에 다 짜 놓은 것이 있었다. 그와 손을 잡은 이들이 미리 손을 다 써 두었다.
 "으음······."
 무양대사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심광이 말하는 경우는 참으로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묵인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잡아 오너라. 숭산은 불문 성지이니라.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살생은 할 수 없음이야."
 "예. 사부님."
 심광은 합장하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내 등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심광이 막 방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심광아."
 무양대사가 심광을 불렀다. 그 순간 심광은 자신의 심장이 뚝 떨어지는 줄 알았다. 심광은 황급히 침착한 음성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네. 사부님."
 "그 아이 모친은 나병에 걸린 불쌍한 여인이다. 선대 조상 때부터 우리 소림사의 신도로서 불심이 깊다. 그 여인과 아이를 대함에 있어 불가의 자비심을 항시 염두에 두어라."
 "예. 사부님."
 심광은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밖으로 바삐 걸어 나갔다.
 '제길, 하마터면 들킬 뻔했다.'
 심광은 내심 투덜거렸다. 이미 사전에 약조 한 것이 있으니. 자신이 할 바는 다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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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아침. 장소원은 일찍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어머니에게 호골로 새로 지은 약을 달여 드려야 했다. 잠시 후, 장소원은 초막의 앞에 구덩이를 팠다. 그리고 그 구덩이 위로 여남은 개의 작은 돌멩이를 촘촘하게 올려 쌓았다. 그리고 구덩이에 잔가지를 꺾어 불을 피웠다. 약은 중불로 달였다가 다시 약한 불로 은근히 달여야 약효가 잘 우러나왔다.
 
 "후우우······!"
 장소원은 땅바닥에 엎드려 입김을 조심스럽게 불었다. 어느 정도 불이 붙자. 이빨이 난 무척이나 오래된 듯한 약탕기를 구덩이 위에 놓았다. 그리고 약을 달였다.
 
 "저기입니다. 심료 사형."
 음성이 들렸다. 장소원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런 장소원의 눈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우르르 몰려오는 계율원의 무승들이 보였다. 그들은 보법으로 오는지 눈 깜빡할 사이에 초막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장소원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상대는 소림사의 무승들이었다.
 "나무아미타불. 이 보시게. 소 시주. 나는 계율원의 심료라 하네. 자네가 숭산에서 사냥을 한다는 투서가 있었다네. 해서, 잠시 자네 집을 살피고자 하네."
 심료는 정중하게 말했다. 하지만 옆에 있는 심광은 아니었다.
 "어서 살펴보아라.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야 한다."
 심광의 말에 그의 사제가 되는 무승들이 고개를 숙였다.
 "예. 사형."
 "알겠습니다. 심광 사형."
 "자, 흩어져서 찾자."
 무승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자 장소원은 안색이 핼쑥했다.
 "아니, 왜들 이러십니까? 집에 아픈 병자가 있습니다. 이러지들 마십시오."
 "닥쳐라. 감히 살생이 금지된 숭산에서 사냥을 한 놈이 무에 그리 할 말이 많으냐."
 "이 보게. 심광 사제."
 심광은 심료의 말에도 못 들은 척했다. 심광은 은연중에 자신이 스승 무양대사의 명을 받았다는 것을 과시하는 듯했다. 그러자 심료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안 됩니다. 안에 아프신 어머님이 계십니다."
 "저리 비켜라."
 휘- 익!
 콰- 당탕!!
 심광은 방으로 들어가려는 자신을 제지하는 장소원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급히 방안으로 들어갔다.
 "뉘······."
 와장창-!
 "어머니."
 방안에서 집기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장소원은 황급히 땅바닥에서 일어나 방으로 뛰어 들려고 했다. 그 순간 방안에서 심광이 나왔다.
 "찾았습니다. 사형."
 심광은 자랑스럽게 한 쪽 손에 들린 은색 꼬리의 너구리를 들어보였다. 그런데 심광은 너무 빨리 찾았다. 방에 들어 간지 얼마 되지 않아 짐승을 찾았다. 하지만 다른 무승들은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소 시주. 이것을 해명해 주셔야겠소이다."
 심료는 장소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장소원은 창백한 얼굴로 심광을 보았다. 분명 심광의 손에 들린 것은 자신이 잡았던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등봉현의 고 노야에게 팔았던 것이다. 장소원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것이 신호였을까? 무승들이 잇따라 초막의 주변에서 대 여섯 마리의 짐승을 찾았다.
 "여기에도 있습니다."
 "이곳에도 있습니다."
 장소원은 고개를 푹 숙였다.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심료가 안타까운 음성을 흘렸다.
 "소 시주. 어서 해명을 해 주시오. 이대로 침묵을 한다면 우리는 소 시주가 숭산에서 사냥을 한 범인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소."
 그 때였다.
 "소, 소원아."
 장소원의 모친이 장소원을 부르며 방문을 더듬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온몸을 천으로 둘둘 감았다. 천 사이로 들어난 얼굴과 몸은 부스럼과 함께 흡사 녹아내린 듯했다.
 "우- 웨애액!!"
 심광이 장소원의 모친을 보고 다급히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급히 고개를 돌려 초막의 한 쪽 구석으로 뛰어가 토했다. 무승들은 장소원의 모친을 보고 안면을 찡그렸다. 무승들 중 그 누구도 심광처럼 토악질을 하는 이는 없었다.
 "소원아······."
 "여기 있어요. 어머니."
 장소원은 어머니에게 뛰어갔다. 그리고 황급히 방을 나서려는 어머니를 부축했다. 심료는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짠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심료는 불호를 읊조렸다. 그러자 심광이 고개를 들며 소매로 입을 닦았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 어서 저놈을 묶어라. 계율원으로 끌고 가야 한다."
 심광은 마치 자신이 저승차사라도 되는 양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무승들이 주춤거리며 심료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심료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장소원은 분명 죄를 지었다. 그리고 심광이 다소 심한 것은 있으나 그 일을 함에 계율에 어긋난 것은 없었다. 그리고 스승 무양대사의 직접적인 명을 받았다. 만약 자신이 나선다면 스승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 된다.
 "아니, 이놈들이. 너희들은 사형인 나의 명을 거역할 참이더냐."
 심광의 질타에 무승들이 천천히 움직였다.
 "스, 스니임. 우리 소원이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절 잡아 가세요. 우리 소원이는 가만히 내버려 두세요. 스니임."
 장소원의 모친이 애원했다. 그 애달픈 음성이 송곳처럼 심료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심료는 자신의 두 귀를 막고 싶었다. 불제자로서 차마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았다.
 "이놈들아. 뭐들 하는 것이냐 아---. 어서 저놈을 묶으란 말이다."
 심광은 고성을 질렀다. 그러자 무승들이 한숨을 쉬면서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장소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장소원을 묶었다.
 "아, 안 됩니다. 스님. 이러지 마세요. 스님."
 장소원의 어머니가 손으로 아들을 더듬었다. 그 손길에 아들을 묶는 줄이 만져졌다. 장소원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차마 입이 있어도 말할 수가 없었다.
 털- 썩!!
 장소원의 어머니가 땅바닥에 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싹싹 빌었다.
 "스님. 이, 이렇게 빕니다. 제발 우리 소원이는 잡아가지 마세요."
 "어, 어머니."
 장소원은 떨리는 음성을 흘렸다.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
 "크- 흑!!"
 장소원은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울음을 삼켰다. 그리고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그런 장소원의 얼굴에서 눈물이 한 방울씩 아래로 떨어졌다. 심료는 그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머니의 애절한 모습에 참담한 마음을 금하지 못했다.
 "아니······."
 심광은 장소원의 어머니를 보고 화가 났다. 급히 주위를 둘러보니 무승들이 저마다 고개를 돌렸다.
 "어서 저리 비키시오. 숭산에서 살생이 금지 된 것을 모른단 말이오."
 심광은 황급히 장소원의 곁으로 갔다. 그리고 장소원의 몸을 묶은 줄을 잡고 장소원을 끌고 갔다.
 "소, 소원아---."
 장소원의 어머니가 손으로 땅바닥을 더듬었다. 그러자 장소원이 심광에게 끌려가며 소리쳤다.
 "어머니. 방문 옆에 쌀이 있어요. 제가 없어서 쌀을 지어드리지 못해도 꼭 그 쌀을 꼭꼭 씹어 드셔야 해요. 절대 끼니를 거르시면 안 돼요. 아셨죠. 제가 없어도 꼭 드셔야 해요. 저 금방 돌아올 거에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기다리세요. 저. 꼭, 돌아와요."
 장소원은 심광에게 끌려가면서도 어머니의 끼니를 생각해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무승들이 은근히 주춤거렸다. 그들 딴에는 장소원에게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 요량인 듯했다. 하지만 심광은 달랐다. 한시바삐 끌고 가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 같았다.
 "어서 걸어가. 이놈이--."
 심광은 연신 거칠게 장소원을 밀었다.
 "어머니. 저 금방 와요. 그러니 염려하지 마세요. 아셨죠----."
 장소원은 심광에게 끌려가며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
 "소원아······소원아-----!!"
 장소원의 어머니가 아들을 부르며 맨땅을 기었다. 보이지 않는 눈 대신에 다 썩어가는 손으로 땅바닥을 더듬으며 조금씩 앞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아들을 불렀다.
 "소원아--. 소원아---."
 아들을 부르는 모성의 안타까운 음성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
 "소······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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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진 후, 소림 계율원의 넓은 연무장에 장소원이 뒤로 팔이 꺾인 채 묶여 있었다. 그리고 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양옆으로 무승들이 손에 봉을 쥐고 서 있었다.
 
 "············."
 무양대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뚫어져라 장소원을 응시할 뿐이었다. 장소원은 온 정신이 두고 온 어머니 생각으로 가득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왜 그랬느냐."
 무양대사가 나직이 물었다. 하지만 장소원은 그 음성을 듣지 못했다.
 "왜 그랬느냐. 이놈 아아---."
 무양대사가 노성을 질렀다. 그러자 그제야 장소원이 고개를 들었다.
 
 "살아야 했어요. 그렇게라도 살아야 했어요. 저 혼자라면 굶어도 흙을 파먹어도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요. 나병에 걸려 살던 곳에서 쫓겨 온 어머니는 요. 매일 밤 아파도 내가 그 소리를 듣고 가슴 아파할까 봐. 아파도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는 어머니는 요. 어머니를 굶길 수는 없잖아요. 약이 필요 했다 구요. 어느 누가 우리 어머니에게 약을 준 사람이 있었어요. 조상 대대로 시주했던 소림사에서 우리 어머니에게 약 한 첩이라도 주셨어요. 기껏 숭산에 사는 것을 모른 척 했을 뿐이잖아요. 나도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이 좋아서 그런 줄 아세요. 그 짓이라도 안 하면 어머니 약값을 구할 길이 없는데 어떻게 해요. 어머니에게 쌀밥이라도 드시게 해야 했다구요 오오오-------."
 
 처절한 울부짖음처럼 장소원이 외쳤다. 그러자 무양대사가 눈을 질끈 감았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무양대사는 장소원의 말에 차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불문에 적을 둔 승려로서 차마 장소원을 처벌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처벌해야 했다. 불문에는 자비와 계율이 공존했다. 자비를 생각해 계율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장소원의 옆에 선 무승들 중 일부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 무승들의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들도 사람인 까닭에 장소원의 마음이 와 닿기에 가슴이 찡 했다.
 "부탁드려요. 무양 스님. 우리 어머니가 지금 혼자 계세요. 하라는 대로 다 할 게요. 때려도 다 맞을 게요. 제발 빨리만 보내 주세요. 우리 어머니가 혼자 계세요. 무양 스님."
 장소원은 팔이 뒤로 묶인 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두 무릎을 꿇은 채 기다시피 무양대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애원했다.
 "무양 스님. 절 어떻게 해도 좋아요. 제발 집에만 보내 주세요. 어머니가 걱정이 된다 구요. 제발요. 무양 스님."
 
 소림사 계율원주.
 
 무양대사는 자신의 어깨에 걸린 짐이 너무 무거웠다. 태산보다 무겁고 대해보다 더 무거웠다. 자신이 계율원주라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부처님. 이 제자는 너무나 힘듭니다. 부처님. 제가 전생에 무슨 업이 있어. 이 효자를 처벌해야 합니까? 부처님. 제가 이 아이를 처벌할 권한이 있는 지요. 부처님. 이 제자에게 해답을 내려 주십시오.'
 
 무양대사는 괴로웠다. 대저, 불문에 이르기를 효자는 함부로 하지 말라 했다. 불문에도 효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처님도 그 효심에 감복한 효자가 있었다.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것들 중 제일은 모정이요. 이는 곧 어머니의 사랑이라, 이 모정은 부처님도 어쩌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두 번째가 바로 효라고 했다.
 
 '목갈리나(목련존자)---!!'
 무양대사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불렀다.
 '목련존자(目連尊者)여---. 어이 해야 합니까?'
 
 소림사 계율원에 고요했다. 어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그 고요 속에서 애원하는 장소원의 외침만이 메아리쳤다. 잠시 후, 무양대사가 입을 열었다.
 "이 아이를 계율원의 형옥에 가두어라. 처분은 추후에 할 것이다."
 무양대사는 그 말과 함께 몸을 돌렸다. 그리고 마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듯이 모습을 감추었다.
 
 
 * 모정 *
 
 밤이다. 주위가 무척이나 깜깜하다. 푸드덕 거리는 새들의 퍼덕임이 섬뜩하다. 부엉이가 어둠속에서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어두운 밤의 허공을 내달렸다. 무섭다. 두렵다. 어둠도 무섭고 밤이라는 또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이 겁이 났다. 하지만 가야했다.
 
 "소원아······."
 나직한 음성이 흘렀다. 칠흑 같이 어두운 숭산의 산자락을 뭔가가 꿈틀거리며 기어갔다. 그것은 얼핏 보기에 지렁이 같았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은 연신 꿈틀거리는 한 인영의 모습이다.
 "소원아······."
 인영의 입에서 아들을 부르는 음성이 새어나왔다. 바로 장소원의 어머니다. 자식이 걱정이 되어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땅바닥을 기었다. 과거의 기억에 의존해 산길을 손으로 더듬어 갔다.
 "소원아······."
 어머니가 자식을 부른다. 그 음성이 어두운 숲의 허공에 은은히 울려 퍼졌다. 어머니는 자식을 찾았다. 어머니는 자식이 걱정이 되어 무작정 땅바닥을 기어갔다.
 "소원아······. 내 새끼."
 어머니의 모정이 이미 말라버린 눈물샘을 터트렸다. 두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 그 물기에 젖은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소원아······."
 어머니가 자식을 불렀다. 다 썩어가는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아팠다. 몸을 둘둘 만 천은 이미 헤지고 다 떨어졌다. 앞으로 꿈틀거리며 움직일 때마다 아팠다. 자잘하고 날카로운 돌멩이가 아픔과 함께 살을 파고들었다.
 "소원아······."
 어머니는 자식을 걱정했다. 머릿속에는 자식에게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자식을 걱정하는 모정이 어머니에게 고통과 아픔은 생각하지 못하게 했다. 스 으윽. 땅바닥을 기는 옅은 소리가 어두운 밤길에 스산하게 퍼졌다.
 "소원아······내 새끼······소원아."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자식이 어떤 봉변을 당하고 있을지 몰랐다. 자식이 매를 맞았는지도 모른다. 가야 한다. 자식의 곁으로 가야 한다. 가서 자식을 만나 봐야 한다. 어머니의 가슴에 자식에 대한 염려가 가득했다.
 "소원아······이 어미 때문에······."
 어머니가 자신을 탓한다. 모든 것을 자신의 죄인 양 여긴다. 어머니의 마음이 슬펐다. 자식이 어머니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이 슬펐다. 어머니는 자식을 생각하며, 자식을 위해 힘겹게 꿈틀거리며 앞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요, 용서해라 소원아. 이 어미 때문에······."
 어머니가 자식에게 용서를 구한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여긴다. 어머니의 눈가에 자식에 대한 사랑이 흐른다. 그리고 그 사랑이 방울져 땅바닥으로 똑똑 떨어진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어머니의 사랑이 밤을 밝혔다.
 "소원아······흐흐흑!!"
 어머니가 운다. 자식을 염려하는 어머니가 운다. 자식이 걱정이 되어 운다. 어머니의 사랑이 자식을 생각하며 가슴으로 파고든다. 어머니가 자식을 찾는다. 어머니가 오열했다. 어머니가 자식을 걱정하며 운다.
 "관세음 보살님······관세음 보살님."
 어머니가 통곡한다. 어머니가 찾는다.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존재를 애타게 찾는다. 어머니의 눈물 젖은 음성이 대자대비 관음보살을 부른다. 그 애달픈 음성이 슬펐다. 마음을 송곳처럼 파고들어 갈가리 헤집는다.
 "관세음 보살님. 우리 소원이······소원이를 보살펴 주세요. 흐흐흑!!"
 꿈틀거리는 어머니가 어느새 멈추었다. 부들거리는 두 손을 마주 합장한다. 흙투성이, 날카로운 돌멩이 투성이의 땅바닥에서 엎드려 운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을 찾으며 합장한다. 그런 어미의 가슴이 아프다.
 "소원 아아······!!"
 어미가 자식을 찾았다. 어두운 암흑 속에서 자식을 생각하며, 자식을 찾으며 자식을 불렀다. 그 음성이 숲의 허공에 은은히 메아리쳤다. 보고 싶다. 아니, 만지고 싶다. 자신의 사랑하는 자식이 무사한 것을 두 손으로 확인하고 싶다.
 "소원아······. 으흐흑!!!"
 어미의 슬픔이 한 줄기 흐느낌이 되어 흐른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미의 사랑이 자식을 찾는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자식을 부르며 운다. 자식을 걱정하는 모정이 숲에 울린다.
 "가야 해. 우리 소원이에게 가야 해."
 어머니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헤집는다. 그리고 힘겹게 몸을 앞으로 이끈다. 손가락의 손톱이 어느새 빠졌다. 아프다. 형용할 수 없는, 표현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이 온 전신을 낱낱이 파고든다. 그러나 자식을 사랑하는, 염려하는,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쩌지는 못한다.
 "소원아, 무사해야 한다. 소원아, 무사해야 한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피가 흘렀다. 어머니는 피가 나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손을 내뻗어 앞으로 꿈틀거리며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어미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부, 부처님. 요, 용서해 주세요. 제, 제 아들······."
 어머니가 부처에게 용서를 구한다. 자식이 저지른 죄를 대신하는 냥 죄를 청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런 애달픈 모정을 무심한 달빛만이 지켜본다. 어미의 간절한 사랑이 숲에 전해졌을까? 숲이 숨을 죽인다. 어머니의 깊고도 깊은 사랑에 감동을 받아 그런 것인지. 숲은 침묵했다.
 "부처님. 다 제 잘못이에요. 제 죄에요. 부디 소원이는 용서해 주세요."
 어머니는 모든 잘못을, 모든 죄를 자기의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 연약한 몸으로 자식의 죄를 대신하려 한다. 그런 어미의 마음이 슬펐다. 어미의 가슴과 배 그리고 다리를 감은 천이 다 떨어졌다. 어미가 기어가며 땅바닥에 긴 혈선을 남긴다.
 "용서해 주세요. 제에발 용서해 주세요."
 어미가 자식을 대신해 용서를 구했다. 어미가 자식을 대신해 빌었다. 어머니의 사랑이 깊고도 깊은, 어머니의 사랑이 숭산의 밤을 밝힌다.
 
 "크 르르······!"
 섬뜩한 소리가 흘렀다. 피 냄새를 맡고 광폭한 짐승이 다가왔다. 짐승의 눈이 빛을 뿜어내는 것 같았다. 짐승은 땅바닥을 기어가는 한 어머니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길고 시 벌건 혓바닥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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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그 시각 암흑의 숲을 가로지르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경공을 펼쳤다. 그리고 앞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그들이 지나간 뒤에 숲이 온통 엉망이었다. 검에 베이고 꺾이고 연약한 어린 초목이 짓밟히어 안쓰러웠다.
 
 "소 가주님."
 감흥은 몸을 바짝 엎드렸다. 그리고 황급히 상관능양을 불렀다. 그러자 상관능양이 경공으로 빠르게 감흥의 옆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
 "저기를 보십시오."
 감흥은 손가락을 들어 정면을 가리켰다. 그러자 상관능양의 시선이 감흥의 손가락을 따라갔다. 약 이십여 장쯤 떨어진 곳에 집채만 한 호랑이가 머리를 숙이고 무엇인가를 뜯어먹는 것이 보였다.
 "드디어 찾았구나."
 상관능양의 음성이 떨렸다. 그의 눈에는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는 단호한 결심이 엿보였다.
 "모두들 흩어져서 인혈검진(靭血劍陣)을 펼쳐라."
 상관능양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자 상관 세가의 무사들이 흠칫했다.
 "형님. 호랑이를 상대로 검진까지 펼칠 필요가 있겠습니까?"
 상관능운이 옆으로 다가와 조심스러운 눈으로 아무르 호랑이의 기척을 살폈다.
 "그래요. 큰 오빠. 인혈검진은 절정 고수를 상대하기 위해 고안된 거잖아요. 한낱 호랑이를 상대로 펼치기에는 너무 과하다고요."
 상관소연이 상관능양에게 다가오며 활에 화살을 재었다. 그러자 상관능양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모르는 소리. 저놈은 이미 일류 고수를 잡아먹은 놈이다. 그리고 인육에 맛들인 놈이야. 여기에서 끝장을 보아야 해."
 상관능양은 단호했다.
 "모두 바람을 정면으로 맞아라. 절대 등 뒤에 바람을 두면 안 된다. 자칫 놈이 바람을 타고 풍기는 냄새를 맡고 도망을 친다면 만사휴의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저놈을 놓쳐서는 안 된다. 알겠지."
 "네. 소 가주님."
 "예."
 "네."
 "어서 움직여라."
 상관능양은 상관 세가의 무사들에게 급히 입을 열었다. 그러자 상관 세가의 무사들이 저마다 손에 검을 들고 조심스럽게 보법으로 신영을 옮겼다.
 "소연아."
 상관능양은 동생 상관소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네. 큰 오빠."
 "네 활 솜씨를 믿겠다. 정확히 놈의 양 미간을 노려라."
 "호호. 걱정 마세요."
 상관소연은 자신감이 충만한 음성을 흘렸다. 그러자 상관능양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능운아."
 "예. 형님."
 상관능운은 자신을 부르는 상관능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회강지(懷剛指)를 몇 성이나 익혔느냐?"
 "약 칠, 팔성 정도입니다."
 "그래. 좋다. 너는 놈이 달아나지 못하게. 회강지로 놈의 시야를 어지럽혀라. 명심해. 절대 놈의 공격 반경 안으로는 들어가지 마. 알겠지."
 "예. 형님."
 상관능운은 침착한 눈빛을 흘렸다. 그러자 상관능양은 시선을 돌려 먹이를 먹기 바쁜 아무르 호랑이를 바라보았다. 다소 떨어진 거리였지만 그 거대한 체구 때문에 한눈에 모든 움직임이 다 보였다. 상관능양은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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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입자는 연신 머리를 흔들었다. 이상한 것이 자꾸 어금니에 걸렸다. 그리고 맛이 없었다. 뭔가 이상한 냄새가 풍겼다. 배가 고파 덮쳤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먹지 못할 것을 잡은 것 같았다.
 
 "크- 르렁!"
 침입자 아니 새로운 태실봉의 지배자는 낮게 으르릉 거렸다. 기분이 나빴다. 최근 새로운 자신의 영역을 차지한 이래로 무척이나 불쾌했다.
 사 사삭.
 뭔가가 풀잎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지배자 아무르 호랑이는 귀를 쫑긋거렸다. 그리고 머리를 들어 코를 킁킁 거렸다. 하지만 바람결에 풍겨오는 냄새는 없었다. 지배자는 다시 머리를 숙이고 자신이 잡은 것을 입으로 물어뜯었다.
 찌- 이익!
 천이 찢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때 지배자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자신의 감각에 살기가 잡혔다. 그것은 무척이나 옅은 살기였다. 지배자는 몸을 낮추고 주위를 경계했다. 그러자 수풀이 흔들리며 일단의 인간들이 자신을 둘러쌌다.
 "크- 허어엉!!"
 지배자는 위협 성을 질렀다. 자신에게 살기를 뿌리는 먹잇감들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인간들은 잠시 주춤거릴 뿐. 자신에 대한 적의와 살기를 거두지 않았다. 지배자는 기분이 나빴다. 이제 이 산 봉우리는 자신의 영역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들에게 서서히 화가 났다.
 쇄- 액!
 한 줄기 섬전이 허공을 가르며 쏘아졌다. 섬전은 새로운 지배자의 허리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크- 아아앙!!"
 지배자는 고통에 울부짖었다. 그리고 껑충 허공으로 뛰었다. 그 사이 인간들이 빠르게 지배자를 빙 둘러쌌다. 인간들은 약았다. 지배자와 충분히 거리를 벌렸다. 지배자는 고통스러워 땅바닥에 몸을 뒹굴었다. 그러자 연거푸 두 줄기의 섬전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왔다. 지배자는 허공을 가르는 섬전에 황급히 땅을 박차고 몸을 허공으로 날렸다.
 파- 앗!
 퍽-!
 퍼 퍽-!
 지배자가 몸을 날린 땅바닥에 두 개의 화살이 땅에 꽂혔다. 화살은 깃대를 부르르 떨었다. 지배자는 다른 위치로 몸을 옮겼다. 그 순간 한 줄기 기운이 소리 없이 다가와 등줄기를 꿰뚫었다.
 퍼- 어억!
 등줄기가 터졌다. 작은 구멍이 생기며 피가 콸콸 흘렀다.
 "크- 아앙!"
 지배자는 연이은 고통에 온 산이 떠나가라 포효 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몸을 마구 뒤틀었다. 지배자는 울화가 치밀었다. 자신에게 한낱 먹잇감에 불과한 인간들이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다.
 
 저벅. 저벅.
 한 인간이 검을 늘어뜨리고 자신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다른 인간들이 그를 두려워하는 듯했다. 지배자는 고통을 참으며 으르렁거렸다. 한눈에도 그가 이 인간들의 우두머리 같았다. 지배자의 뇌리에 야성이 꿈틀거렸다. 무리를 이룬 짐승은 그 지배자만 없애면 산산이 흩어진다는 것이 뇌리에 떠올랐다. 지배자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간에게 살기를 일으켜 흘렸다.
 "후후. 그간 잘도 도망을 다녔지만 이 자리가 네놈 무덤이 될 것이다."
 인간은 자신 못지않은 살기를 뿌렸다. 그리고 인간의 살기와 자신의 살기가 만나 서로 부딪쳤다.
 휘- 이잉!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차가웠다. 지배자와 인간이 서로 줄기차게 흘리는 살기로 인해 허공은 무척이나 스산했다.
 "타- 아앗!!"
 인간이 자신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쇠붙이,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지배자는 내심 연약한 인간의 버둥거림이 낮은 울음을 흘렸다.
 "크르르······!"
 지배자는 인간을 비웃으며 자신의 앞발에 발톱을 세웠다. 그리고 인간의 검을 후려쳐갔다.
 후- 우욱!
 지배자의 앞발이 허공을 갈라갔다. 그리고 인간의 검과 지배자의 앞발이 서로 충돌했다.
 서- 걱!
 "크- 와아앙!"
 지배자는 울부짖었다. 강하기 이를 데 없는 자신의 앞발이 너무나 허무하게 베였다. 그리고 아팠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지배자는 고통에 앞발을 급히 거두며 몸을 비틀거렸다.
 "소연 아아······!"
 "알았어요. 큰 오빠 아아---."
 쇄- 애애액!!
 눈부신 섬전이 일순 터져 나왔다. 그것은 한순간 나타났다 싶은 순간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푹--!!
 "크- 허어엉!!"
 지배자는 눈과 눈 사이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에 있는 대로 포효했다. 몸이 허공으로 띄워 뒤틀었다. 마구 사지를 허공에 버둥거렸다. 견딜 수 없는 아픔이 느껴졌다. 그런 지배자의 시야에 자신을 향해 검을 허공에서 내리 그는 인간이 보였다. 그는 자신을 풀어주고 죽이려는 인간들 중에서 지배자가 두려워하던 인간이었다.
 쉬- 이잇!
 지배자가 어두운 밤의 허공에서 빛을 보았다. 그 빛은 자신의 안면을 향해 정확히 떨어졌다. 그리고 일순 머릿속에 아찔한 느낌이 느껴졌다. 그리고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투- 우웅!
 쿠- 웅!
 지배자의 육중한 몸이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휴우······!"
 상관능양은 팔소매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았다. 그리고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단한 놈이었다. 특히, 마지막 포효성은 내 내공으로도 버티기가 어려웠다.'
 상관능양은 내심 아무르 호랑이에게 감탄했다. 웬만한 무림 고수와 맞먹는 엄청난 맹수였다.
 "호호, 큰 오빠. 역시야."
 상관소연이 걸어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그러자 상관능양에 씨익 웃었다.
 "하하-. 형님. 역시입니다. 절세 검공자라는 무명이 무색합니다. 하하."
 상관능운은 자신의 형 상관능양에게 감탄했다는 듯 호기로운 음성을 흘렸다.
 "녀석들."
 상관능양은 두 동생의 칭찬에 기분이 좋았다. 온몸에 힘이 넘치고 자신감이 충만했다.
 '하하. 이 맛에 사냥을 하는 것인가?'
 상관능양은 내심 자신이 승리자라는 느낌이 들어 무척이나 들떴다.
 "아아악--!!"
 "아가씨이이----!"
 "소연아아----!"
 상관능양은 돌연 자신의 귀에 들리는 고성에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런 상관능양의 눈에 죽은 줄 알았던 지배자가 마지막 혼신의 힘으로 앞발을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그 앞에는 화살을 뽑으려고 다가가던 상관소연이 있었다.
 "안 돼 에에-----!!"
 상관능양은 급히 자신의 손에 있던 검을 지배자를 향해 내공을 실어 내던졌다.
 쇄- 애액!
 "캬 아아악······!!"
 상관소연의 비명이 밤의 허공에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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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호는 공인이다. 여러 목 공예품을 만들었다. 최근 소림사에서 목불상을 조각하는 일을 맡았다. 그런 이유로 황호는 등봉현에 거처를 마련했다. 소림사에서 술과 고기를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황호는 매일 새벽 동이 터는 시각에 소림사로 오르는 산길을 통해 소림사로 갔다.
 
 "으허엄. 카아악. 뒈에에."
 황호는 목의 가래를 뱉었다. 어젯밤의 술이 과했다. 아직 몸에서 숙취가 다 빠져나가지 않았다.
 "젠장, 어제 술을 조금만 하는 건데."
 황호는 내심 후회했다. 숙취로 인해 행여나 오늘 해야 할 일을 못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런 황호의 눈에 저만치 앞에 늑대 같은 것이 보였다.
 "아니, 아침부터 재수 없게······."
 황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 황호의 눈에 주먹만 한 돌이 보였다. 황호는 급히 두어 개의 돌을 집었다. 그리고 힘껏 늑대를 향해 던졌다.
 휘- 익!
 퍽-!
 "케헹······!"
 늑대는 돌멩이에 맞아 울음을 토했다. 그리고 몸을 뒤틀었다. 아픈 모양이었다. 황호는 다시 돌멩이를 던졌다.
 휙-!
 타 탁.
 이번에는 돌멩이가 늑대의 바로 앞에 떨어졌다. 그러자 늑대는 급히 몸을 돌려 숲으로 뛰어갔다.
 "빌어먹을 새끼."
 황호는 그런 늑대를 보고 욕설을 내뱉었다. 황호는 천천히 조금 전에 늑대가 있던 곳으로 다가갔다.
 "우- 웨액액······!!"
 황호는 속에 있던 것을 다 게워내었다. 그의 눈에 맹수에게 물어뜯긴 차마 두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는 사람의 시신이 있었다. 황호는 급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토했다. 황호의 토하는 소리가 한동안 소림사로 오르는 산길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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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소림사 고자 배 제자 고영은 참담했다. 장소원에게 닥친 일련의 불행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들었다.
 "그 아이에게 이런 일들이 닥치다니."
 고영은 마음이 아팠다. 사백 무양대사에게 선처를 부탁했다. 그러자 무양대사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계율원을 나오는 자신의 귀에 들려온 장소원의 모친이 당한 호환은 참으로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고영은 합장을 하며 불호를 읊조렸다. 그리고 계율원의 형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호피는 어디에 있느냐? 어서 말해라. 그러면 사부님께 잘 말씀 드려서 널 풀어주마."
 "진짜 호피를 주면 절 풀어주실 겁니까?"
 "그러 테 두."
 심광은 장소원을 구슬렸다. 모친을 미끼로 구슬렸다. 장소원이 모친이라면 끔뻑 죽는 것을 이용했다.
 "네가 여기에 오래 있으면 가라에 걸린 네 모친은 어떻게 되겠느냐? 누가 네 모친을 돌보아 줄 것이냐? 네 모친이 지금 굶고 있는 줄도 모른다. 네가 하남성 제형안찰사로 끌려가면 이후 네 모친은 죽을 지도 모른다."
 장소원은 심광의 말에 흔들렸다. 심광의 말마따나 어머니가 지금 자신을 찾으며 굶고 있을 줄도 몰랐다. 자신의 어머니라면. 아니, 이 세상의 어머니라면 자식이 끌려갔는데 마음 편히 입으로 밥을 떠넘길 어머니는 없다. 장소원은 마음이 급했다. 몹시 허둥지둥 거렸다.
 "틀림없죠. 호피만 주면 절 풀어주실 거죠."
 장소원은 심광을 향해 재삼 다짐을 받았다.
 "그럼. 풀어주고 말고. 어서 말해 봐라. 어디에 숨겼느냐."
 심광은 내심 어리숙한 장소원이 자신에게 넘어왔다고 생각했다.
 "······호피는 태실봉 계곡에서······."
 장소원은 심광을 믿었다. 그가 승복을 입은 승려이기에, 그가 어머니와 조상님들이 대대로 믿었던 소림사의 스님이기에 믿었다.
 "오, 그래. 그런 곳에 숨겨두었구나. 하하. 그런 곳에 있었어."
 심광은 자신의 생각대로 장소원이 술술 불자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내심 자신이 그 호피를 독차지 할 생각을 굳혔다.
 "저, 절 이제 풀어주실 거죠."
 "암. 풀어주고 말고. 조금만 기다려라."
 심광은 조급한 장소원을 달랬다. 그리고 급히 계율원의 형옥을 나갔다. 그런 심광을 고영이 이글거리는 불길이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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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림사에서는 장소원을 하남 제형안찰사로 넘겼다. 하남성 정주(鄭州)에서 정 오품의 첨사(僉使)가 일단의 군사를 이끌고 왔다. 장소원은 말이 틀린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말이 틀리잖아요. 호피가 있는 곳을 말하면 날 풀어 준다고 했잖아요. 심광 스님."
 장소원은 발버둥을 쳤다. 그러자 무양대사가 노성을 질렀다.
 "이 축생 같은 놈을 보았나. 어디서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내 안찰사사께 선처를 당부했건만. 애매한 심광을 끌어들이다니. 네 이노옴."
 "아니에요. 분명히 심광 스님이 말씀하셨어요. 호피가 있는 곳을 말하면 절 풀어주신다고 하셨다고요."
 장소원은 너무나 억울했다. 연신 악을 바락바락 쓰며 심광을 찾았다. 그런 장소원을 보다 못한 무양대사가 심광을 불렀다. 하지만 심광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호피라니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사부님. 저 같이 출가한 승려에게 그런 물건이 무에 필요가 있습니까? 그리고 저놈의 말을 믿으십니까? 저놈은 어떡하든지 발 뼘을 하고 싶어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잡아온 절 해코지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심광은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장소원의 그런 심광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심광 스님. 절 풀어주시기로 약조하지 않으셨나요. 왜 거짓말을 하세요. 왜 약속을 어기세요."
 "닥치라. 이놈. 어디서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느냐. 나는 사부님의 명을 받아 네놈을 끌고 왔을 뿐이다. 어디서 물귀신처럼 나를 물고 늘어지려 하느냐."
 장소원은 기가 막혔다. 그리고 자신이 속았음을 알았다. 장소원은 길길이 날뛰었다. 하지만 소림사의 무승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무양대사의 노호성과 더불어 하남성 제형안찰사로 끌려갔다. 장소원은 소림사의 산문을 나서면서 내심 피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모친이 너무나 보고 싶었다. 이제 자신이 제형안찰사로 끌려가면 모친은 어떻게 될까? 그 생각만이 뇌리에 감돌았다. 장소원은 힘없이 터벅터벅 걸었다. 소림사의 산문을 나서 등봉현으로 내려가는 산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불연듯 어머니의 근황이 너무나 궁금했다.
 
 "저어······. 나으리"
 장소원은 자신을 끌고 가는 하남성 제형안찰사 소속의 첨사에게 어렵게 말을 건넸다.
 "뭐냐."
 관복을 입은 첨사는 퉁명스러웠다.
 "······어머니가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 잠시 들렀다가 등봉현으로 내려가면 안 되겠습니까?"
 장소원은 첨사에게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첨사는 냉정했다.
 "도망갈 생각 마라. 그런 얕은 술수에 넘어갈 내가 아니다."
 첨사는 차디찬 음성을 흘렸다.
 "절대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제발 어머니를 한 번만 보고 가게 해 주십시오."
 "안 돼. 곧 해가 떨어질 것이다. 그 전에 등봉현의 현청으로 들어가야 한다. 모두 서둘러라."
 첨사는 자신이 이끄는 군사들에게 고개를 돌려 다그쳤다.
 "나으리--."
 장소원은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그러자 첨사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이런 놈을 보았나. 안 된다고 하지를 않았느냐. 그리고 아까는 소림사의 스님에게 덤터기를 씌우려하다가 그게 안 되니 이제는 도망칠 잔꾀를 부리느냐."
 "아닙니다. 나으리. 진짜 아닙니다."
 장소원은 자신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항변했다. 하지만 이미 선입견이 확고부동한 첨사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애들아."
 첨사는 노기가 치솟았는지 거친 음성으로 군사들을 불렀다.
 "예. 첨사 어른."
 "네."
 첨사는 손가락으로 장소원을 가리키며 일갈했다.
 "이놈이 아직도 자신의 죄를 뉘우칠 줄을 모르는 구나. 이대로 끌고 가 봐야. 사람 피곤하게 만들 놈이다.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어라."
 "예, 첨사 어른."
 "심려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단단히 손을 보겠습니다."
 군사들은 그 말과 함께 장소원을 근처의 나무에 묶었다. 그리고 장소원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휙-!
 퍼- 어억!
 "커- 어억!"
 휘- 익!
 "캑- 액!"
 퍽-!
 "이, 이러지 마세······. 끄- 어억!!"
 장소원은 나무에 묶여 자신을 때리지 말아 달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이미 남을 때리는 것에 한창 흥을 내는 이들이 멈출 리 만무 했다. 첨사는 한쪽에서 지긋이 그 모습을 보며 만족감에 젖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작은 권력이 주는 달콤함에 푹 빠진 듯했다.
 
 "멈춰라--."
 휘- 이익!
 한 복면인이 허공에서 떨어졌다. 그는 재빨리 앉아 있던 첨사를 점혈했다. 그리고 아직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기색의 군사들을 재빨리 제압했다. 그는 무공을 익힌 무림 고수인 듯했다. 그는 군사들을 너무나 손쉽게 제압하고는 장소원을 데리고 이내 그 자리를 벗어났다. 잠시 후, 복면인은 어깨에 장소원을 걸치고 빠르게 경공을 펼쳤다. 그는 숭산의 준극봉으로 달렸다. 복면인의 어깨에 걸쳐진 장소원은 정신을 잃은 듯했다. 얼마나 그렇게 산길을 탔을까? 복면인은 한 작은 암자에 도착했다.
 
 "저 왔습니다. 태 사조님."
 복면인은 작은 암자의 방 앞에서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끼이익-!
 방문이 열리며 한 중년인이 모습을 보였다. 그는 머리를 깎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승복을 입었고 손에는 염주를 굴렸다.
 "아미타불."
 중년인은 반장의 예를 하며 복면인을 바라보았다. 그런 중년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쯧쯧. 고영아. 그 시커먼 것은 좀 벗지 그러느냐?"
 "죄송합니다 태 사조님."
 복면인은 중년인의 말에 무척 송구하다는 듯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리고 복면을 벗었다.
 "어깨에 있는 아이가 내가 말한 아이냐."
 "예. 태 사조님. 우리 소림이 빛이 진 것이 많은 아이입니다."
 중년인은 고영의 말에 말없이 한쪽 손을 들어올렸다. 길게 말하지 말라는 듯했다.
 "나는 모르는 것이 좋다. 아이는 방에다 눕히거라."
 "네 태 사조님."
 고영은 급히 암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에 밖으로 나와 중년인의 앞에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일어 나거라. 땅바닥에 그렇게 앉아 있으면 병에 걸린다. 그리고 이곳은 금지이니. 될 수 있으면 출입을 삼가 하는 것이 좋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예. 태 사조님."
 중년인은 고영의 대답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세상에서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내가 여기에 살아 있는 것이 밝혀지면 과거 내가 뿌린 씨앗이 소림으로 찾아 올 것이다. 나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는다."
 "예. 태 사조님. 명심하겠습니다."
 "그만 가 보아라."
 "그럼. 옥체 보중하십시오. 태 사조님."
 "그래."
 중년인은 몸을 돌려 저 멀리 아래에 보이는, 숭산의 이름 모를 산 등성이를 바라보았다. 빼어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무난한 정경이었다. 그간 무수한 세월 동안 지겹게 봐 온 경치다. 그런 중년인의 뒤에서 고영이 몸을 날리는 것이 느껴졌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변한 것이 없어. 착하면 복을 받는 다고. 악하면 벌을 받는 다고. 개소리. 세상은 있는 놈들의 세상이지. 없는 인간들의 세상은 아니야."
 중년인의 눈가에 뜨거운 불길이 줄기줄기 허공으로 그 열기를 뿌렸다. 중년인의 몸에서 소름이 돋는 음산한 기운이 흘렀다. 중년인은 일순 자신의 변화를 알아차린 듯 깜짝 놀랐다.
 "아미타불. 아직도 세상에 대한 분노를 씻어내지 못했구나. 휴우······!!"
 중년인은 반장의 예를 올렸다. 그리고 안타까운 눈으로 승방을 바라보았다. 약 이각 정도 지났을 때였다. 중년인의 귀에 암자의 방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으으······."
 중년인은 천천히 몸을 돌려 암자의 방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중년인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장소원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장소원은 방을 두리번거렸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어디긴. 절이지."
 장소원은 영문을 몰라 중년인을 보고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다가 머릿속에 어머니가 스쳤다. 장소원은 황급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중년인이 그런 장소원을 보며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어디를 갈 참이더냐."
 장소원은 중년인의 말에 그제야 자신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지 않은 것을 알았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때문에 급히 집에 가 보아야 합니다."
 장소원은 급히 방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갈 필요 없다. 이미 네 모친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장소원은 중년인의 말에 멈칫했다. 그런 장소원의 귀에 청천벽력 같은 말이 들렸다.
 "네 어미는 호환을 만나 죽었다."
 쿠- 우웅!!
 장소원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장소원은 중년인을 향해 고함을 쳤다.
 "거짓말 하지 마세요. 어머니가 왜 호환을 만나요. 어머니는 방에서 한 발자국도 옮길 수 없는 몸이에요."
 장소원은 중년인에게 악을 쓰듯 고함을 쳤다. 그런 장소원을 향해 중년인은 고영으로 부터 들은 것을 말했다. 장소원은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장소원의 귀로는 중년인의 음성이 화살처럼 와 박혔다. 가슴은 비수로 난도질 하는 것 같았다. 두 눈가에 물기가 고여 눈물이 되어 흘렀다. 두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다. 뿌연 안개 같은 눈물 사이로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온몸에 천을 둘둘 감은 어머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환상처럼 다가왔다.
 "어······머······니············!!"
 장소원의 입에서 덜덜 떨리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충격과 경악 속에서 어머니란 말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장소원의 몸이 기우뚱거렸다.
 쿵-!!
 장소원의 몸이 방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두 눈에 흰자위가 보이는 것이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이런······."
 중년인은 급히 손을 들어 장소원의 몸을 향해 허공에서 휘저었다. 그러자 장소원의 몸에서 툭툭 하는 기음이 들렸다. 중년인은 쓰러진 장소원을 향해 허공에서 손을 자신의 앞으로 당겼다. 그러자 장소원의 몸이 두둥실 허공으로 떠올라 중년인을 향해 다가왔다.
 "쯧쯧, 나만 모진 삶을 살았는 줄 알았더니. 나 같은 놈 못지않은 삶을 사는 놈도 있을 줄이야. 이놈에게 심광의 일을 말해 주었다가는 장차 세상에 제 이의 검마를 내놓는 것과 진배없으렷다. 휴우······! 참으로 세상의 일이란 알 수가 없구나. 알 수가 없어."
 중년인은 장소원을 물끄러미 보며 중얼거렸다. 중년인은 손을 들어 장소유의 몸을 가볍게 때렸다. 일종의 추궁과혈 같았다. 그러면서 중년인은 살며시 눈을 감아 과거를 회상했다.
 
 검마(劍魔) 구여송.
 
 전, 전대 무림 제일마였다.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버림을 받고 세상을 전전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상고 시대 무공을 얻어 무림인이 되었다.
 "내 앞에서 고개를 똑바로 들지 마라. 내 앞에서 잘나 빠진 명예니. 사랑이니. 하는 것들을 지껄이지 마라."
 구여송은 자신의 마음 내키는 대로 강호 무림을 질타했다. 앞을 막는 자는 그 누구든 그의 검 아래에 죽어나갔다. 가로막는 것이 사내건 여인이건 가리지 않았다. 숱한 무림인이 죽어갔다.
 시산혈해(屍山血海)-!!
 말 그대로 시체가 산이 되고 피가 바다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이였다. 그는 거칠 것이 없었다. 무림 오대 세가건 개방이건 구대 문파건 그는 가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이를 일러 당시 강호인들은 검마혈세(劍魔血世)라고 불렀다. 그런 검마의 앞길을 막아선 이가 있었다.
 황승(晃僧) 법혜선사.
 소림사 유일의 검. 달마삼검의 계승자인 그가 막아섰다. 구여송과 법혜선사는 끊임없이 검으로 싸우고 싸웠다. 구여송은 사력을 다해 법혜선사를 죽이려고 했다. 시간이 갈수록 구여송의 검에는 살기와 살의가 짙어졌다. 하지만 법혜선사의 달마삼검은 항상 올곧았다. 아무 변화가 없었다. 결국 법혜선사는 궁지에 빠졌다. 그런 법혜선사를 구여송은 단칼에 베어버렸다. 그 순간 황승 법혜선사의 입에서 한 줄기 음성이 흘러나왔다.
 "미, 미안해. 형. 아버지와 어머니도 어쩔 수 없었어."
 구여송은 법혜선사의 말에 경악했다. 법혜선사가 죽어가며 남긴 정황은 이랬다.
 
 "······형. 그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형을 버린 것은 어쩔 수 없었어. 백 년 만에 찾아온 대 흉년은 부모가 자신의 자식을 다른 이의 자식과 맞바꾸어 잡아먹을 정도였어. 아버지와 어머니는 형을 버려야 했어. 그렇지 않으면 형을 잡아먹을 지도 몰랐거든. 그······그 만큼 굶주림은 무서웠어. 나, 나도 부모님께 잡아먹히기 직전 소림사의 스님에게 구함을 받았던 거야. 혀어엉······!!"
 구여송은 통곡했다. 자신을 버린 부모에 대한 원망과 저주로 세상을 피로 씻었다. 그런데 자신의 손으로 동생을 죽였다. 그리고 자신은 버려졌던 것이 아니었다. 차마 자식을 잡아먹지 못한 부모가 행여나 이성을 잃고 자식을 잡아먹을까 봐. 자식을 버린 것이었다.
 "······으- 아아아아아악!!!"
 구여송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통곡했다. 자신의 가슴을 마구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이, 이럴 수는 없는 거잖아. 이럴 수는 없어어어어······!!!"
 구여송은 죄책감에 몸부림쳤다. 자신의 두 손에 묻은 지워지지 않는 동생의 피에 목 놓아 울었다. 자신을 저주하고 또 저주했다. 그렇게 무림에서 검마 구여송은 사라졌다.
 
 주르르······!
 중년인의 뺨에 눈물이 흘렀다. 잊고자 했지만 잊을 수 없는 과거의 화인이었다.
 "······미, 미안하구나. 내 동생아······."
 중년인 검마 구여송의 눈에 한 줄기 피눈물이 흘렀다.
 
 
 * 분노 *
 
 장소원이 준극봉의 암자에 온지 열흘이 지났다. 그간 장소원은 식음을 전폐했다. 장소원은 매일 우두커니 암자 앞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호환으로 죽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장소원은 차츰 폐인이 되어 갔다. 머리는 봉두난발이 되었다. 씻지를 않아 몸에서는 비위에 거슬릴 정도의 구린 냄새가 진동했다. 눈은 넋을 잃었다.
 
 "휴우······."
 구여송은 장소원을 물끄러미 보았다. 가슴이 아팠다. 장소원의 모습에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구여송은 고개를 돌렸다. 장소원의 모습에서 동생을 죽이고 미쳐버렸던 과거의 검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응······."
 구여송의 눈에 이채가 반짝였다.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곳 암자는 소림의 금지였다. 과거 자신의 동생. 황승 법혜선사의 거처였다. 구여송은 이곳에 자리를 잡은 후, 그 누구도 이곳을 드나들지 못하게 했다. 예외가 있다면, 단 한 명 동생의 제자뿐이었다. 고영이 바로 그 제자의 후예였다.
 "풋-! 누군가 했더니. 고영이었군."
 구여송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유일하게 반기는 이였다. 고영이 천천히 암자로 들어섰다. 고영은 자신을 바라보는 구여송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태 사조님."
 "쯧쯧. 네 녀석도. 네 사부처럼 어지간히 말을 안 듣는 구나. 출입을 삼가 하라 하지 않았느냐."
 구여송은 고영을 가볍게 힐책했다.
 "죄송합니다. 태 사조님."
 고영은 장소원을 향해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이 장소원이 마음에 걸린 듯했다. 구여송이 그것을 보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녀석. 그 마음 씀씀이는 영판 법혜를 닮았어.'
 구여송은 내심 기분이 좋았다. 동생이 남긴 일맥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들어가서 얘기하자. 저놈은 해가 저물고 달이 떠도 꼼짝하지 않는 놈이니. 내버려 둬라."
 "휴······! 아직 입니까? 이제 털고 일어설 때도 되었건만."
 고영은 장소원이 안타까웠다. 고영은 몸을 돌려 구여송의 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
 
 "들어라."
 "감사합니다. 태 사조님."
 고영은 구여송의 권유에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찻잔을 들어 조금 마셨다.
 "그······. 심광이란 놈 어떻게 했느냐."
 "소원이가 사라지고. 하남 안찰사사에서 다시 사람이 나왔습니다. 다행히 소원이의 사정을 들은 아칠이란 이와 왕이라는 이가 나서서 진술을 해 주어 좋게 끝이 났습니다."
 "그래. 다행이구나. 하지만 고영아."
 "네. 태 사조님."
 "너는 아직 심광이란 아이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마음에 걸리느냐. 같은 소림 제자라서······."
 구여송의 음성에는 은은한 노기가 서렸다. 고영은 구여송의 음성에서 그것을 느꼈다.
 '이크······! 태 사조님이 화가 나신 것 같구나.'
 고영은 내심 흠칫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가 누군가? 석년 천하를 피로 물들게 한 천하 제일마. 검마다.
 "심광 사제는 파문이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무양 사백께서 스스로 참회동에 입동 하셨습니다."
 "흐음······."
 구여송과 고영은 한동안 장소원을 해코지 했던, 장소원의 모친을 죽도록 그 단초가 되었던 이들의 행적과 그들이 받은 대가에 대해서 얘기했다.
 벌- 컥!!
 갑자기, 문이 열렸다. 그리고 장소원이 이글거리는 불길로 가득한 눈으로 고영을 노려보았다.
 "고영 스님. 사실이에요."
 "소, 소원아--."
 고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설마하니. 장소원이 엿듣고 있을 줄은 몰랐다. 사실 장소원은 고영이 온 것을 느꼈다. 하지만 모른 척했다. 장소원은 허공을 보다 모친의 시신이 생각났다. 호환을 당했다. 하더라도 그 입은 옷가지는 있을 터였다. 장소원은 그것이 생각나자 모친의 묘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방문 밖에서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다 듣고 말았다.
 
 덜. 덜. 덜.
 부들. 부들.
 빠드득--!!
 장소원의 눈에서 분노가 이글거렸다. 세상에 대한 분노가, 인간에 대한 저주가,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부셔버리고 싶은, 모든 눈에 보이는 것을 다 죽여 없애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까- 드드드!!!"
 장소원의 이를 가는 소리가 소름이 끼쳤다. 장소원의 눈은 귀신의 눈.
 귀안(鬼眼)!!
 바로 그 자체였다.
 
 "다 부셔 버릴 거야. 이 더러운 세상. 다 죽여 버릴 거야."
 낮다. 아주 낮은 음성이 흘러 나왔다.
 
 "가 아아알---!!!"
 구여송이 일갈 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장소원의 눈을 노려보았다. 구여송의 눈은 살안(殺眼)이었다. 무수한 사람을 죽인 눈이다. 그런 눈이 장소원의 귀안을 제압해 갔다.
 
 "이미 죄를 받은 놈들이야. 그리고 네놈 따위가 그들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냐. 고작 산 짐승들을 사냥하던 놈이 무슨 힘으로 누구를 죽여."
 장소원은 구여송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심혼을 짓밟아 오는 구여송이다.
 "소원아-. 태 사조님의 말씀이 맞다. 그리고 이것은 네 업이야.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무수한 생명을 죽이면 그것이 업장이 되어 네게 되돌아온다고 말이다."
 고영은 장소원을 타이르는 듯한 음성을 흘렸다. 그러자 장소원은 눈이 뒤집혀 대뜸 일갈 성을 터트렸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어요.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요오--. 내가 그 사람들 것을 훔쳤어요. 내가 그 사람들에게 욕을 했어요. 내가 그 사람들을 때렸어요. 내가 그 사람들 것을 빼앗았어요. 내가 그 사람들에게 무슨 모진 짓을 했나요. 대답해 보세요. 내가 그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 말이에요 오오------."
 
 장소원은 방문을 연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했다.
 "어머니······어머니. 으- 흐흑!!"
 "나무아미타불."
 고영은 눈을 감고 불호를 외웠다. 구여송은 민망한 듯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
 
 얼마 후, 고영은 홀로 소림사로 돌아왔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 아이 마음속에 사람에 대한 증오와 세상에 대한 분노가 있으니."
 고영은 소림사 경내를 천천히 둘러보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장소원과 그 모친이 죽은 것은 다 업이라 생각했다. 호환을 만나 죽은 것을 세상에 그 화살을 돌리는 것은 옳지 않았다. 하지만 장소원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아무런 해를 끼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그를 괴롭혔고 모친의 죽음에 단초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그 원망과 탓을 돌리는 것은 옳지 않았다.
 "휴······!"
 고영은 한숨을 쉬면서 막 반야당(般若堂)의 뒤로 돌았을 때였다.
 "너무 적어."
 "무슨 말씀입니까? 무홍 대사님. 저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어허-. 이 사람이. 누구를 속이려고 들어."
 "무홍 대사님. 진짜 너무 하십니다. 속가 제자 하나 받으시면서 아예 한 밑천 잡으시려고 하십니까?"
 "모르는 소리 마. 속가 제자를 받아도 위에 계신 장로님과 방장 사형의 허락을 받아야 해. 그게 어디 쉬운 줄 알아."
 "쩝. 하긴, 그도 그러 습죠."
 "아니 다행이군. 그러니 그쪽에다 좀 더 얹으라고 해. 알겠지."
 "예에-. 알아 모시겠습니다. 하지만······."
 "알아서 다음번에는 자네 구전을 좀 더 쳐 주지."
 "헤헤. 고맙습니다."
 한 승려와 상인으로 보이는 이가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고영은 기가 막혔다. 승려는 자신도 익히 아는 이였다. 반야 당주 무홍대사. 바로 고영 자신의 사숙이었다.
 '이······이럴 수가? 그 불심이 깊은 사숙이 저런 사람이었다니. 우, 우리 소림이 언제 이리도 썩었단 말인가?'
 고영은 자신의 눈과 귀를 믿을 수 없었다. 무홍 대사는 불심이 깊기로 경내에서 소문이 돌아 그 덕분에 반야 당주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사숙이 뒤로는 저런 협잡을 하는 사람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영은 행여 무홍 대사에게 들킬까 봐 조심스럽게 그 자리를 떠났다. 고영은 걸으면서 내심 당혹스러웠다. 소림이. 자신의 사문이 언제 부터인가 변했다. 불문 도량에 돈이 오갔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고영은 대웅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처님의 불단 앞에서 엎드려 사죄를 하고 싶었다. 부처님께 탄원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런 고영의 귀에 음성이 들렸다.
 "어허-. 이런 미욱한 중생을 보았나."
 "스님. 쇤네는 그저 부처님께 예불을 올리고 싶어서······."
 대웅전이 있는 본당으로 접어드는 곳에 한 이십 초반의 승려와 한 촌로로 보이는 이가 보였다. 이십 초반의 승려는 할아버지뻘이 되는 촌노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부처님께 향이라도 올려야 할 것이 아닌가? 왜 이리 뻔뻔한가? 빈 손으로 부처님께 예불을 올리다니. 자네가 제 정신인가? 잔말 말고 이 향화(香華)나 사게. 은자 두 냥일세. 두 냥."
 촌노는 젊은 승려의 말에 기겁했다.
 "네에에---!! 두······두 냥이라고요."
 촌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스라치게 외쳤다. 그러자 승려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너무 싼가?"
 "스, 스님. 너무 비쌉니다요. 저희 집 식구가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해서 버는 돈이 겨우 은자 세 냥입니다. 그, 그런데 은자 두, 두 냥이라니. 너무 하십니다요."
 "뭐? 이런 가난한 놈을 보았나. 가난하면 요즘 세상에 부처님께 예불을 올리지 못한다는 것도 모른단 말이냐. 향화를 불단에 올리고 시주도 해야 우리 승려도 먹고 살 것이 아니냐. 이 후안무치한 것을 보았나. 당장 꺼져라."
 승려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촌노가 통사정을 했다.
 "스님. 저는 이제 살아온 날보다 죽을 날이 더 많습니다. 좀 만 있으면 저승사자가 절 데리러 올 것입니다. 그 전에 부처님께 제가 살아오면서 지은 죄를 사죄하고 싶습니다. 스님. 부디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사정합니다."
 촌노는 손자뻘이 되는 승려에게 깊숙이 머리를 숙이며 사정했다. 하지만 승려는 매몰찼다.
 "저리 꺼져."
 승려는 촌노를 거칠게 뒤로 떠밀었다. 그러자 촌노는 힘없이 뒤로 밀려나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꽈- 당!
 "어이쿠. 허리야."
 촌노는 일순 허리가 아픈지 연신 손으로 허리를 만졌다.
 "당장 안 꺼져."
 승려의 음성은 기고만장했다. 그 때 한 사십 초반의 가사 장삼을 입은 승려가 세 명의 여인들을 데리고 왔다. 여인들은 나이가 지긋했다. 모두 최소 사십은 넘은 듯했다. 여인들은 비싸 보이는 비단으로 옷을 해 입었고 몸에는 옥으로 만든 값비싼 장신구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그들 네 명의 인영이 젊은 승려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 회송아."
 "어서 오십시오. 심송 사백님."
 사십 대의 승려. 지객당에서 일을 보는 심송은 땅바닥에 나동그라진 촌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회송이라는 젊은 승려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니, 글쎄. 저 늙은이가 돈도 없으면서 맨몸으로 대웅전에 들겠다지 뭡니까? 향화 값이 너무 비싸다고 타박을 다 놓고 말입니다."
 "스, 스님. 제발 부처님께 예불 좀 올리게 해 주십시오. 햐, 향화 값은 나, 나중에 반드시 드리겠습니다."
 "이런 늙은이를 보았나? 돈이 없으면 집구석에 얌전히 쳐 박혀 있을 것이지. 어쩌자고 소림사에 기어들어와. 기어 들어오기를······."
 "스, 스님-!!"
 촌노는 황당한 눈으로 심송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심송과 함께 온 한 여인네가 손을 얼굴 앞에서 흔들었다.
 "스님. 어서 들어가요. 어디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아, 예······예."
 심송은 그 여인의 말에 안면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연신 굽혔다. 그러자 회송이 눈치 빠르게 여인들에게 향화를 건넸다. 그러자 여인네들이 저마다 소매에서 금원보로 보이는 전표를 꺼내어 회송에게 건넸다.
 "허억--!! 으, 은자 배, 백 냥."
 회송은 자신의 손에 들린 금원보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회송의 눈에 백 냥짜리 전표가 세 장이 있었다.
 "호호. 별거 아니에요. 스님. 그렇죠."
 한 여인이 입술로 손을 가져가며 웃었다. 그리고 다른 여인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호호. 당연하죠. 등봉현에서 어깨에 힘깨나 주는 황가장이라면 은자 백 냥은 푼돈이죠. 호호."
 "그렇고말고요. 호호."
 여인들은 무엇이 즐거운지 연신 교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대웅전이 있는 본당으로 들어갔다. 촌노는 허망한 눈빛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고영은 그 모습을 보고 내심 한탄했다.
 '소림이 어쩌다가 이리 되었단 말인가?'
 그런 고영의 귀전에 장소원의 음성이 환청처럼 들렸다.
 '이 더러운 세상. 다 죽여 버릴 거야.'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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