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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축구 천재의 인생 2회차

프롤로그

2022.02.03 조회 41,216 추천 479


 “9년! 9년 만입니다! FC 바르셀로나가 9년 만에 유럽 정상에 올랐습니다!”
 “여러분! 믿겨지십니까? 바르셀로나가 첼시를 꺾고 9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번 시즌 지휘봉을 잡은 박 감독은 부임 1년 만에 명장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감독님, 지금 소감이 어떠십니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이쪽으로 집중된다.
 
 번쩍이며 터지는 플래시. 사람들의 아우성과 환희에 찬 저 표정들.
 
 하지만 나는 카메라를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대단한 성과입니다. 이런 위대한 업적을 이룬 구성원 모두에게 축하를 전합니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려 인터뷰룸을 빠져나갔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조금 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승리한 건 다소 운이 좋았다.
 
 만약 첼시의 수비수가 헛발질하지 않았더라면.
 
 가비의 결승골은 결코 들어가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그 덕에 부임 첫 시즌 만에 리그와 컵 대회.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 우승까지.
 
 트레블을 막 달성한 참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동갑내기 절친인 이니에스타가 ‘네가 아니면 안 돼!’라며 강하게 설득하지 않았더라면 굳이 감독직을 맡진 않았을 거다.
 
 사실 독이 든 성배였지.
 
 팀의 상징이었던 메시가 떠난 이후 바르셀로나는 줄곧 내리막이었다.
 
 그럼에도 이 글로벌 빅클럽에 대한 기대치는 대단해서 팬들은 결코 패배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감히 바르셀로나의 감독직을 쉽사리 수락할 수 있겠는가.
 
 아니. 그랬기에 나밖에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바르셀로나 유스팀 코치와 1군 코치로 활동했던 경력.
 
 짧은 기간이나마 월드클래스급 선수로 활약하여 레전드라는 수식어가 붙은 탓이 컸다.
 
 그래서 행복하냐고?
 
 글쎄올시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세계 최고 클럽인 바르셀로나의 감독으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막 쌓아 올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조금 전 피치 위에서 빅이어를 직접 들어 올렸을 때조차 별 감흥이 들진 않았다.
 
 오히려 선수 시절이 더 실감 나고 대단했지.
 
 뭐랄까. 남이 이뤄낸 성과에 숟가락만 얹는 느낌?
 
 감독과 선수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느끼는 것도 전혀 달랐다.
 
 “빡! 이렇게 기쁜 날 왜 똥 씹은 표정이야? 얼굴 풀고 한잔해.”
 
 2023-2024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렸던 런던 웸블리 스타티움의 VVIP실.
 
 전임 감독이자 절친인 이니에스타 녀석이 와인잔을 흔들면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왜 그래? 넋 나간 사람처럼. 우승해놓고 뭐 아쉬운 거라도 있어?”
 
 아쉬운 거? 아쉬운 거야 많지.
 
 선수 생활은 짧았고, 사랑하는 여자도 잃어버렸다. 내게 남은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수로도, 감독으로도.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면 감사할 줄 알아야지. 넌 너무 욕심이 많아.”
 
 욕심이 많다는 말에 나는 잡아먹을 듯 녀석을 노려보았다.
 
 고작 6년이었다.
 
 내가 선수로 생활했던 시절 말이다.
 
 한때는 발롱도르를 타고, 세계 4대 미드필더에 이름이 오르기도 하였지만 내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커리어의 정점을 달리던 24살.
 
 경기 중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두개골 골절이었다.
 
 팀 닥터는 내게 은퇴를 권했다.
 
 축구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기를 쓰고 유럽에 남아 코치 자격증을 땄고 이를 계기로 바르셀로나 유스팀을 맡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금, 이 순간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나름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왔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딴 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그저 이 지옥 같은 삶에서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 버틴 결과일 뿐.
 
 “후회돼?”
 
 이니에스타가 애잔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자식은 동네 바보 형처럼 생겨가지고는 쓸데없이 감성적이다.
 
 그래. 당연히 후회되지.
 
 정작 이루고 싶었던 것은 선수로서의 커리어였으니, 감독의 삶은 결코 그걸 대체해주지 못했다.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이니에스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씨발. 그게 가능했으면 진즉에 했지.
 
 누굴 놀리나.
 
 그런데 어째 녀석의 표정은 너무도 진지하다.
 
 갑자기 녀석의 주변으로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녀석의 눈동자가 마치 마블의 모 히어로처럼 하얀빛으로 번쩍였다.
 
 어어. 너 설마.
 
 무슨 마법사라도 되는 거냐!
 
 내가 놀라며 뒷걸음질을 치는 사이.
 
 녀석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못 해낸 부임 첫해 트레블을 이뤄냈으니 보상은 받아야겠지. 과거로 돌려줄 테니 한번 잘해보게나, 친구.”
 
 과거로?
 
 잠시만. 그때가 언젠데?
 
 아아악!
 
 하얀빛이 내 몸을 관통했고 나는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작가의 말

담하파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댓글(26)

Mep    
오호~
2022.02.03 23:59
풍뢰전사    
신이 감독했었나 ? 왜 자긴 못했다고 하는건데? 건필하세요
2022.02.12 00:36
OLDBOY    
잘 봤습니다.
2022.02.18 22:55
sk***    
비야 왈: 같이가요
2022.02.25 17:05
꿈꾸는백수    
축구는 감독 싸움인데...감독의 역량이 과소 평가 된듯
2022.02.26 23:51
돌리라    
감독 역량을 과소평가한 것보다 은퇴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컸나보죠
2022.02.27 11:51
하늘맑음    
오~~~~~~ 달려볼께요
2022.02.28 02:23
k7***************    
잘 읽었습니다~ !!
2022.03.01 05:22
뻔쏘    
차라리 환생트럭이...친구가 신이었다는 별로네
2022.03.07 23:04
성호신    
축구물 좋아
2022.03.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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