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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10년만 일찍 싸웠다면

2022.02.04 조회 27,485 추천 728


 대재앙은 의외로 모두가 예측할 수 있었던 시기에 나타났다.
 
 대지는 메말라갔고, 나라들은 쇠락했으며, 사람들은 나약해졌다. 모두가 이 순간에 재앙이 일어난다면 아마 세계가 멸망하고 말리라고 여겼던 바로 그 순간. 세계엔 기다렸다는 듯이 재앙이 닥쳤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었다. 세계에서 남은 최강자들 여섯이 한데 모여서 다가온 재앙과 맞서 싸웠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계를 위해 헌신하는 그들을 [구원자들]이라고 부르며, 그들 여섯 명의 활약과 위업을 칭송했다. 그리고 그들의 승리로 인해 버티며, 이제는 삶이 되어버린 재앙에 맞서 싸울 용기를 가졌다.
 
 그 용감한 구원자들은 오늘도 전투를 마치고 휴식하며 다음 전투를 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한숨이 나왔다.
 
 “네가 한 10년만 일찍 모험을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벌써 수백 번은 들은 것 같은 동료의 한탄에, 심해의 성기사 크레이톤은 어깨를 으쓱하며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허허. 어쩌겠나. 지나간 일이야. 그보단, 앞으로 어떻게 할지가 더 중요한 거지.”
 
 말을 꺼낸 세계 최강의 주술사이자 역대 최강의 주술사로 꼽히는 숲의 화신이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10년이 아니라 5년. 하다못해 그냥 1년만 일찍 시작했어도······.”
 “그러면 세상의 멸망이 10년, 아니면 5년, 그것도 아니면 1년 일찍 더 시작되었겠지. 나는 세상이 멸망이 시작되기 전에는 그냥 평범한 어부였을 뿐이니까.”
 
 그렇게 말하자 세계 최강의 전사이자 지고의 검객이라고 불리는 자가 툭 하고 내뱉었다.
 
 “그건 아니지. 네가 세상이 멸망하기 시작해서 모험 시작한 건 아니잖아. 어부 일 하다가 신의 계시를 받아서 성기사 된 거니까. 심해의 퀴엘라가 조금만 더 일찍 계시를 내렸다면, 넌 일찍 성기사가 됐을 거다.”
 
 일행의 대마법사이자 9성의 경지에 이른 궁극의 대마도사도 바로 끼어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세상이 10년 더 일찍 망하더라도 네가 빨리 성기사 되는 게 나았어. 그러면 세계가 10년만큼 더 멀쩡한 시기에 싸웠을 테니까.”
 
 크레이톤은 난감한 평가에 쩔쩔매며 답했다.
 
 “허허······. 설마. 자네들 이 크레이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구만. 아니 다들, 내가 10년 일찍 모험을 시작했다면 세계가 망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나? 응?”
 
 해와 달과 별, 세계를 가호하는 세 명의 대신에게 선택받은 천구의 삼간택자(三揀擇者)이자 역대 최강의 사제는 그 발언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랬을지도······.”
 
 대지의 인정을 받은 야생의 후계자이자 역대 최강의 무술사(巫術士)는 그냥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전적으로 동의.”
 
 다른 셋도 동의했으니 동료 모두가 동의했다. 파티의 마지막 동료인 심해의 성기사 크레이톤이 10년만 일찍 모험을 시작했으면, 대재앙은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고 말이다.
 
 “허허허······. 이것 참. 크레이톤이 자네들에게 못 할 짓을 한 것 같구만, 미안하다. 좀 더 일찍 모험을 시작할 걸.”
 
 사실, 크레이톤도 내심 수긍하는 것이었기에, 그는 죄인이라도 된 듯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고의 검객, 궁극의 대마도사, 숲의 화신, 천구의 삼간택자, 대지의 후계자.
 
 이 다섯 명은 세계 최강이자 역대 최강으로 꼽히는 다섯 명이다.
 
 그리고 심해의 성기사 크레이톤 샐보토어. 이 자는 딱히 세계 최강도 아니었을뿐더러 역대 최강도 아니었다. 오히려 성기사들 중에서는 발휘할 수 있는 권능이 약했으며, 그를 선택한 신은 그의 고향이었던 바다 제국 레렌스에서도 비주류로 취급되던 [안식의 닻 퀴엘라] 단 한 명뿐.
 
 최강의 바다 신이라고 불리는 [평화의 배 오베시스]도 아니고, 수많은 신도를 거느리고 있었던 [풍요의 타륜 텀] 하다못해 [번영의 궤짝 마이아시]가 아니었다. 그들은 크레이톤을 선택하지 못했다.
 
 왜냐면, 크레이톤이 성기사가 됐을 시점에 이미 그들은 전부 죽어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대재앙은 사람보다 먼저 신들을 죽였다. 아니, 재앙의 목적 자체가 신들을 살해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불리기를 신살(神殺) 재앙.
 
 크레이톤은 가호하는 신이 없는 성기사였다. 그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신들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를 선택할 수 있었던 신은 약해서 재앙이 노리지도 않았던 심해의 퀴엘라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퀴엘라의 신도가 적다든가, 그 권능이 약하다든가, 다른 신들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든가, 그런 것들을 전부 무색하게 하는 것은 크레이톤이라는 사람이 지닌 힘 자체였다.
 
 그 자신을 가호하는 신이 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역사적인 위업을 해냈고, 기어코 최후의 파티에 합류해내어 구원자들과 동격의 일원으로 싸웠다.
 
 심지어는 그의 활약에 바다에서만 믿는 지역신에 불과하던 퀴엘라의 격이 높아져 모두가 퀴엘라를 신앙할 정도였으니 그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동료들은, 그리고 인류는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다.
 
 저 크레이톤이 만약 다른 신들의 축복을 받았다면, 아니면 여러 신에게 선택받아 이간택자. 혹은 삼간택자가 됐다면 어땠을까······?
 
 다른 가정도 필요 없이 심해의 퀴엘라가 아니라 대양(大洋)의 오베시스에게 축복받았다면 크레이톤은 이 시대 최강의 성기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 마이아시, 텀, 퀴엘라. 이 바다 신 셋에게 축복받은 삼간택자여도 좋다. 오베시스보다 격이 낮긴 하지만 그래도 이 시대 최강의 성기사가 되었을 터.
 
 그러려면 신들이 죽기 전에 선택받아야 하니 딱 10년만 일찍 모험을 시작했으면 되었다.
 
 최강의 성기사가 있을 테니 그의 고향도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고, 가족들과 친구들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레렌스의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졌을 것이며, 해양 제국 레렌스가 멀쩡하니 바닷길도 온전할 것이고, 그러면 무역과 교류가 가능하니 세계 전체가 구원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크레이톤은 그 귀중한 10년 동안 그냥 어부로 살았다. 세계의 멸망과 인류의 존속이라는 것은 그저 한 사람이 성기사 대신 어부를 한 것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크레이톤이 정말 미안하다. 크레이톤이 가업이 아니라 전장에 뛰어들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동료들은 괜찮다고 위로하지 못했다. 생각만 해도 속이 뒤틀리게 되니까.
 
 지금 부족한 힘으로 죽을 둥 살 둥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는 소중한 동료에게 ‘너는 왜 신들이 죽어 나갈 때 어부나 하고 있었냐?’라고 따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말을 대체 어떻게 하는가.
 
 “도저히 이 말을 하지 않고는 못 참겠다. 너는 왜 신들이 죽어 나갈 때 어부나 하고 있었냐?”
 “미안하다.”
 
 크레이톤은 그저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동료는 그렇게 말하고는 후회하며 사죄했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것은, 상황이 보다 안 좋아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이제 동료라기보다 그저 동업자가 되어 싸웠다.
 
 그 뒤로 구원자들은 인류를 위해서 악착같이 싸웠다. 날마다 열리는 차원문에서 쏟아지는 마물의 군세, 적들의 편을 들어버린 배신자, 그리고 그 역량을 짐작조차 불가능한 이계의 강자들과 죽어라 싸웠다.
 
 포기하는 것은 죽음, 그리고 그보다 더한 멸망이었으므로.
 
 낙관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은 아니었다.
 
 “네가 조금만 일찍 성기사가 되었다면.”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졌다. 그들은 괜찮았으나 인류는 무너졌다.
 
 “네가 조금만 더 강한 신에게 선택받았었다면.”
 
 무너진 인류는 이계의 존재들에게 사냥당했다. 대지도, 바다도, 창공도. 모두 메말라 이제는 신이 차지한 영역은 구원자들의 신으로 남아 있었던 심해와 천체들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그들에게 넘어갔다.
 
 “네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신들을 지킬 수 있었다면,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싸웠다. 가장 강대한 천구의 세 신과, 이제는 지상의 모든 인류의 신앙을 몰아서 받고 있는 심해의 신이 살아남아 있었다. 모두들 인류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나갔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졌다. 강대한 적의 공격을 막다가 성기사 크레이톤이 한 방에 나가떨어져 패배했다. 오로지 섬기는 신이 한 명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그의 육체와 기술은 완성되어 있었으나 부족한 신성력의 차이를 극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퀴엘라여! 진실로 미안하다! 내가 나약한 인간이라, 그대의 축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크레이톤은 신을 원망하지 않았다.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지도, 실수를 한탄하지도 않았다. 자신을 많이 탓하던 동료들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이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세상을 위해 싸웠다. 모든 것을 전부 지금의 자신이 못난 탓으로 돌렸다. 죽어가면서도 말이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동료인 천구의 삼간택자 헤이샨이 죽어가는 크레이톤을 불렀다.
 
 “크레이톤. 우리들은 이겼어. 강대한 적을 쓰러트렸어.”
 “그런가. 잘 됐구만.”
 “그리고 우리는 실패했어. 네키나는 싸우다 죽었어. 다른 셋은 죽어가고 있고······.”
 “끄응. 미안하네. 나라도 빨리 일어나지. 윽······.”
 
 크레이톤은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사제는 그저 평온한 눈으로 성기사를 내려다보았다.
 
 “이 모든 게, 생각해보면 네가 그저 10년 일찍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어. 네가 만약 신들을 일찍 지킬 수 있었다면 달랐을 거야.”
 “그건 진심으로 미안하다······.”
 
 단 한 번도 자신을 원망하지 않던 헤이샨이 자신을 원망하는 것에, 크레이톤은 그저 미안함만을 느꼈다. 억울함도 원망도 없었다. 크레이톤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헤이샨은 원망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로지 그 하나만을 바꾸기로 했어.”
 “뭐?”
 
 헤이샨의 몸에서 신성력이 움직였다. 하늘이 요동치며 이 대지, 바다, 창공의 모든 신위를, 인류의 모든 의지와 신앙을 하나로 뭉쳤다.
 
 “천구에 박힌 해와, 달과, 별의 세 신은 곧 생명과 시간, 운명의 신. 우리의 패배에 지금 드디어 전 세계 모든 인류의 소망이 하나로 뭉쳤어. 우리는 한 번밖에 없는 기회를 모두 너에게 걸기로 했어.”
 “그게 무슨 소리인가. 걸다니?”
 
 그리고 헤이샨의 몸이 순식간에 마르기 시작했다. 남은 모든 생명력을 지금 이번 한 수에 불태우기로 한 것이다.
 
 “시간을 되돌아갈 거야.”
 “!”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건 단 한 사람이야. 그리고 이런 무리한 기적을 일으켰으니 아마 과거의 상황은 더 나빠져 있겠지······. 그래도 남은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
 “잠시만, 그러면 이 크레이톤 말고 다른 사람을 되돌리도록 하게. 자네를, 아니면······.”
 “아니야. 너밖에 없어.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도 바뀌는 거 하나도 없어. 기껏해야 조금 더 버티다가 말겠지. 그렇지만 넌 달라. 모두 알고 있었어. 우리 중 가장 뛰어났던 건 너라고, 그 확신을 우리 모두 가지지 못해 시도하지 못했어. 한편으로는 원망했지만, 이젠 아니야. 알고 있어······. 확신해.”
 
 헤이샨은 생명력이 빨려 이미 초점이 사라진 눈으로 크레이톤을 바라봤다.
 
 “네가 돌아가야 해.”
 “!”
 “다들 동의는 받았어. 네가 돌아가면 모든 게 바뀐다고. 네가 처음 싸웠을 때보다 10년 일찍······. 그러니까 네가 15살이던 시절로 되돌려 보내기만 한다면.”
 “뭐라고? 그때 크레이톤은 수염도 제대로 나지 않은 애송이였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해. 분명 너는 그때도 강했을 거야.”
 
 그리고 드디어 시간을 되돌리는 역천(逆天)의 기적이 발휘되었다. 크레이톤은 주변 풍경이 일그러지는 걸 느꼈다. 사제는 자신의 유언이 될 말을 건넸다. 아마 되돌아간 과거, 자신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미안해. 매번 무리한 일만 맡겨서. 우리 모두 너에게 미안했어. 못난 우리를 용서해줘.”
 
 사제의 웃음이 희미하게 사라져갔다. 크레이톤은 눈물을 꾹 참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무엇을 용서하나! 크레이톤을 믿어준 너희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되돌아가면 반드시, 세계를 지키도록 하지!”
 
 그렇게 성기사 크레이톤은 15살로 회귀했다. 부모와 친구가 살아 있고, 나라가 온전하며, 신들이 죽지 않았던 그 시절.
 
 본인의 키가 고작 2미터를 겨우 넘고 체중은 120킬로그램밖에 되지 않아, 겨우 고래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대포보다 살짝 빠르게 포탄을 던지며 작은 철갑선조차 옮기지 못하고 드는 게 고작인.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본인 혼자만 나약하다고 생각하는 어린 시절로 말이다.

작가의 말

용어를 다소 수정했습니다.

댓글(68)

La만차    
이미 인간이 아니었자나
2022.02.04 04:21
Ripple    
이미 최강인뎈ㅋㅋㅋㅋㅋ
2022.02.04 19:28
n7**********    
빨리 복귀하셨군요! 반갑습니다
2022.02.04 23:45
ys****    
파이팅!
2022.02.05 04:21
runarual    
그냥 쩌리일때도 탈인간이였는데? 뭐가약하단?
2022.02.05 20:48
양파오리    
인간 성기사, 크레이톤!
2022.02.12 01:09
무에리수에    
전작보다 더 미쳐서 돌아왔다!
2022.02.12 09:10
SyRin    
인지강 그자체
2022.02.12 18:04
th****    
25세에 된거면 늦은나이도아닌데....선택되고 20년이나30년뒤에서 선택받은나이의 10년전인15살인가??
2022.02.13 02:11
뚜근남    
네.
2022.02.13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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