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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천붕지 1권-1

2015.01.29 조회 989 추천 9


 1 장. 자식이 아니라 웬수닷.
 
 응천부(應天府, 남경).
 강소성의 남서부에 자리한 유서 깊은 도시다. 응천부의 주위에는 양자강과 오송강이 있었다. 그 덕분에 사람과 물자들의 이동이 원활했다. 또한 주변 지형이 구릉지대라 천연의 요충지라 할 만 했다.
 자연스럽게 응천부의 중요성을 간파한 이들이 도읍지로 삼았다.
 오나라의 손권. 동진의 원제. 송. 제. 양. 진. 당 등등.
 응천부는 세월의 흐름 속에 다양한 명칭을 갖게 되었다.
 오의 손권은 건업이라 불렀고. 당나라 때는 금릉이라 불렀다. 오대십국의 이변은 강녕부로 개칭 하였다. 또한 남송 때는 건강부로, 원 나라 때는 집경로라 불리기도 했다.
 
 때는 바야흐로 새로운 명 황조가 그 문을 연 시기였다. 응천부는 날로 발전하고 있었다. 새로운 황도가 된 응천부로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또한 모여든 이들이 뿌리는 돈은 상인들을 불러 모았다. 절로 상업이 융성해지고 상인들이 응천부에 뿌리를 내렸다. 그 탓에 우후죽순처럼 많은 상가들이 샹겨나기 시작했다.
 
 응천부의 서쪽에는 장강 수로의 끝자락이 휘어지며 굽이쳐 흐른다. 그 수로는 홍택호에서 이어지는 수로와 만나 바다로 흘러간다. 자연스럽게 두 수로를 이용해 많은 배들이 응천부로 몰렸다.
 
  응천부의 서문대로는 대단위 상업 지역이 되었다. 각종 점포들과 상가들이 들어서며 날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점포들과 상가들은 응천부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온갖 물품들을 공급했다.
 서문대로.
 약칭 서문로는 마차 서너 대가 동시에 지나다닐 정도로 넓었다. 또한 항시 오가는 행인들이 매우 많았다.
 
 기웃기웃!
 한 사내가 서문로에 자리한 한 포목점을 슬금슬금 넘겨다보았다. 무엇을 보려고 하는지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기울이는 모습이 매우 수상쩍다.
 이제 스물 두서넛 어림으로 보였다. 호리호리한 체형하며.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몰골이 영판 시골 촌놈이다. 아마도 가끔씩 보이는 새 황도 구경을 온 이 같았다.
 
 사내 장운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닌데. 진짜 우리 집 맞나?"
 시야에 들어오는 선명한 한 포목점.
 장가 포목점.
 주변에 자리한 다른 포목점들 중 규모가 제일 큰 듯하다.
 
 장운평은 눈가에 걱정스러운 빛을 띠었다.
 "제길! 집 나온 지 딱 육 년 만에 다시 들어가려니. 영 께름칙해서··· 틀림없이 아버지가 날 죽이려고 달려드실 텐데."
 가슴이 두근두근 두 방망이질 쳤다. 손발이 절로 후들거리며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았다.
 장운평은 머리에 부친 장계창은 떠올렸다.
 성정이 무지 급하고 매우 무서웠다. 한 번 화가 났다. 하면 벼락이 치듯 했다. 상당히 자주 이성을 잃는 경향이 있었다. 뭐, 물론 장점도 있다. 화를 낸 후.
 "사랑한다. 내 아들!"
 그 말과 함께 힘껏 덥석 가슴에 안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상대방은 어떨지 몰라도 부친은 뒤끝이 아주 깔끔했다.
 장운평은 오른손을 들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 손짓에 머리에서 허연 것이 아래로 후두둑! 떨어졌다.
 "으- 아아아! 고민되네. 안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자니 낯 뜨겁고. 또, 아버지가 길길이 뛰실 텐데."
 장운평은 시선을 들어 포목점을 쳐다보았다. 육년 전 집을 나갈 때 그 자리에 있던 그의 집이다. 그런데 그 동안 어떻게 된 일인지 무지 커졌다. 또한 기억 속에 있는 집과는 영 딴판이었다. 그 때문에 장운평은 긴가민가하며 목하 고민 중이었다.
 
 그 때 장운평의 등 뒤에서 한 여아가 걸어왔다. 여아는 이윽고 장운평의 뒤. 약 여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이제 갓 열살 정도 되었을까?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양 뺨. 웃으면 보조개가 예쁘게 파일 듯한 얼굴. 전체적으로 귀여운 용모였다.
 장소미는 고개를 옆으로 까닥거렸다. 얼굴과 두 눈동자에는 의문이 한 가득이었다.
 "누구지?"
 장소미는 손에 든, 달디 단 당과를 먹는 것을 깜빡 잊었다. 그 정도로 앞에 보이는 사내 장운평에게 의문을 느꼈다.
 척 보아하니. 손님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하는 점포를 기웃거리는 폼이 매우 수상쩍었다.
 장소미의 머리로 얼마 전에 소꿉동무 소운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 소운이는 장소미와 함께 서문로에서 살았다. 집이 골동품을 취급하는 상가였다.
 '아, 글쎄 낮에 집을 염탐했다가 밤에 숨어들어서 도둑질을 해 갔어. 일당들이 도둑질하기 쉽게 먼저 우리집의 구조를 훔쳐 봤다고 하더라구. 붙잡아서 다행이지. 안 그랬더라면 우리 집 쫄딱 망할 뻔 했어.'
 장소미는 두 눈동자에 작은 눈빛을 반짝였다.
 '그래. 맞아. 소운이 말처럼 밤에 도둑질 하려고 낮에 염탐을 하는 걸 거야.'
 장소미는 어린 치기에 덜컥 장운평을 도둑으로 단정 지어 버렸다. 그녀는 재빨리 장운평을 향해 내달렸다.
 타다닥!
 그리곤 몸을 장운평의 오른발을 향해 날렸다. 장소미는 장운평의 오른발을 양손으로 덥석 붙잡았다. 그녀는 주변이 떠나가라 고함을 쳤다.
 "도- 둑- 이- 야!"
 그 음성이 오가던 행인들이 고개를 돌렸다.
 장운평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 야!"
 별안간 웬 여자 아이가 달려들어 다리를 붙잡았다. 게다가 생전 처음 보는데. 자신을 도둑이라고 소리를 치지 않는가?
 장운평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급히 말했다.
 "야- 아! 내가 왜 도둑이야. 다리 못 놔!"
 장운평은 오른쪽 다리를 잡고 늘어지는 장소미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장소미를 뒤로 밀어내려고 했다.
 장소미는 황급히 주위로 고개를 돌리며 악을 쓰듯 외쳤다.
 "도와주세요. 도둑이에요."
 행인들은 어린 장소미의 음성에 우르르 장운평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장운평은 당황했다.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 꼼짝없이 도둑으로 몰릴 판이었다. 그는 장소미를 향해 소리쳤다.
 "난 도둑이 아니야. 좀 놔- 아!"
 장소미는 장운평의 다리를 온몸으로 감싸듯 힘껏 끌어안았다. 그녀는 장운평의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는 듯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포목점 안에서 두 사내가 뛰쳐나왔다. 이제 스물 초반쯤으로 보이는 두 사내는 밖으로 나온 순간. 크게 놀랐다.
 "소미야!"
 "넌, 뭐 하는 거니?"
 장소미는 두 사내의 음성에 급히 그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추 아저씨! 장 아저씨! 도둑이에요. 좀 도와주세요."
 장가 포목점에서 일하는 추이와 장칠은 부리나케 앞으로 뛰었다.
 다다닥!
 두 사람은 다소 떨어진 장운평과 장소미에게 다가갔다.
 장운평은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완전 똥 밟았어.'
 장운평은 급히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그는 안면에 성난 빛을 띠며 오른손을 장소미의 목덜미로 뻗었다.
 꽈아악!
 장운평이 목덜미를 잡자 장소미는 놀라 반사적으로 외쳤다.
 "도둑놈이 사람 친다!"
 "너어어!!"
 장운평은 그를 궁지로 모는 장소미의 언행에 여간 부아가 치미는 것이 아니었다. 장소미는 매우 영악해 보였다. 사람 환장하게 만들 정도로···.
 도저히 그 연배에 어울리지 않는 언행이라 할 것이다.
 추이와 장칠은 어느새 장운평의 앞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장소미의 목덜미를 움켜 쥔 장운평에게 소리쳤다.
 "멈추시오."
 "당장 그 손 놓으시오."
 장운평은 두 사람의 고함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는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당신들은 누구요?"
 처음 보는 추이와 장칠이다.
 부아가 치민 상태에서 내뱉는 말이 고울리가 없다.
 추이와 장칠은 와락 인상을 썼다. 두 사람은 안면에 못마땅한 가색을 띠었다.
 "소미를 놔 주시오."
 "어린애를 데리고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오."
 두 사람의 말에 모여든 행인들이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쯧쯧. 저게 무슨 짓인지."
 "이제 겨우 열살 정도 된 듯 보이는 아인데. 어른이 되어 가지고서는."
 "도둑 놈?"
 "에이! 설마 백주 대낮인데."
 장운평은 낯이 무지 뜨거웠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것이 매우 거북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분위기가 요상했다.
 너! 나~ 아~ 쁘~ 은 놈.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그렇게 변해갔다. 게다가 장소미가 점입가경이었다. 별안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우- 와아아앙! 이 도둑놈이······ 훌쩍, 훌쩍."
 장소미는 울면서 시선을 힐끔힐끔 위로 올렸다. 그 눈치가 장운평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영악한 어린 여우.
 딱 그 짝이었다.
 장운평은 장소미의 행동에 입을 쩍 벌리며 망연자실했다.
 '강적이닷!'
 장운평은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한편 추이와 장칠 그리고 행인들의 언행이 난무했다. 다들 고함을 치며 장운평에게 장소미를 놔 주라고 했다.
 장운평은 장소미의 목덜미를 놓으며 필사적으로 그녀를 뒤로 밀었다.
 "제발 좀 놔라. 엉!"
 장소미는 장운평이 손으로 밀어내도 악착같이 매달렸다. 양손으로 장운평의 다리를 두르며 가슴에 꼬옥 끌어안았다.
 투철한 사명감일까? 에이! 설마······.
 "못 놔- 아! 이 도둑놈아!"
 "뭐, 놈! 이게 진짜. 야- 아아! 네 아버지가 누구야? 어엉! 당장 데려와. 무슨 딸년을 이리 키웠어. 이걸 그냥 콰아악!"
 "나다!"
 중간에 끼어드는 작은 음성.
 "나는 무슨 나아······."
 장운평은 말하다가 멈추었다. 귀에 익은 음성이었다. 그는 소리가 들린 좌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관복을 입은 삼십 초반의 사내. 장운상.
 장운평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부지불식간에 말했다.
 "형······."
 추이와 장칠 그리고 행인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장운평과 장운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장소미는 두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장운상은 동생 장운평을 보며 붉으락푸르락했다.
 "이 쳐 죽일 놈이······."
 장운평은 눈앞이 노랬다. 뇌리에 한 말이 맴돌았다.
 '나다.'
 즉, 장소미가 조카라는 말이 된다.
 '우라질! 엿 돼 버렸어.'
 장운평은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육 년 만의 귀가가 아주 꼬여도 더럽게 꼬여 버렸다.
 
 장가 포목점. 둘째 아들 돌아오다!
 
 자운장.
 장운평의 집이다. 그와 형 장운상의 이름 중간자가 자운장의 운자에서 나왔다. 죽은 어머니가 직접 장원의 이름을 지었고. 또한 장운상과 장운평의 이름을 지었다. 장운평의 경우 출산으로 죽기 전에 미리 지어 두었다. 그것이 장운평의 가슴에 슬픔으로 자리했다. 단 한 번도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니깐.
 
 오십 중반의 장년인. 장계창.
 그는 분노로 전신을 부들부들 경련하며 치를 떨고 있었다. 그의 앞에 두 아들이 서 있었다.
 장운상.
 자랑스러운 큰 아들이었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서책을 가까이 했다.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를 하며 밀어 주었더니. 어느덧 국자감(國子監) 정구품 학정(學正)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스승인 종팔품 오경박사(五經博士) 예호민의 딸 예설지. 그녀와 혼인하여 금쪽같은 손녀 장소미까지 떡하니 안겨 주었다. 더욱이 그 성정이 강직하고 청렴했다. 비록 낮은 품계의 관리였지만. 주위 평판은 "참. 아들 하나 잘 키웠다." 였다.
 장자 장운상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뿌듯했다. 절로 어깨춤이 덩실덩실 추어졌다. 자랑스럽다. 라는 감정이 절로 일어나는 큰 아들 장운상이었다.
 장운평.
 둘째 아들이다. 아내가 늦동이로 늦은 나이에 낳다가 덜컥 죽었다.
 장계창 그에겐 자식이 아니라 웬수였다. 태어날 때부터 마누라를 잡아먹더니. 두고두고 골머리를 썩게 하는 애물단지였다. 아들만 아니었다면 두 번 다시 눈에 안 띠게 집에서 내쫓아 버렸을 것이다.
 형이 수재로 학문에 정진할 때. 지지리도 공부를 하지 않고 사방으로 쏘다녔다. 육년 전만 해도 그렇다. 지, 어미 기일인데 패싸움을 하고 관부에 끌려갔다. 게다가 학당까지 며칠이나 빼먹었다. 먹고 사느라 장사에 전념한 그 틈을 타 허송세월을 한 불효막심한 둘째 아들이었다.
 더욱이 함께 어울려 다닌 놈들이 뒷골목 흑자들의 아이들이었다. 흑자라 하면 온갖 범법 행위를 하는 암흑가의 흑도들. 그들의 아이들과 어울려 다녔다. 장차 미래의 흑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은 아들놈이었다.
 주위 평판?
 "천하에 다시 없을 꼴통이로고. 뉘 집 아들인지는 몰라도. 그 부모 속이 어떤지 능히 알만 하구만." 이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는 폭급한 성정에 한껏 기세등등해졌다.
 분노충천. 노기등천.
 일단 두들겨 팼다. 이성이고 나발이고 없었다. 아들 장운평의 행실을 알게 되고 눈앞에 장운평이 서 있자 그만 헤까닥 해 버렸다.
 성질대로 반쯤 죽여 놓았다. 지 어미가 죽은 제삿날이었다는 점도 십분 작용했다.
 그런데 아들 장운평. 이놈이 감히 제 놈을 먹여 살리느라 등골이 휜 장계창. 그에게 반항했다.
 "에이! 씨! 내게 아버지가 해 준 게 뭐가 있어요. 허구 헌 날 형과 날 비교하면 사람 기만 죽이고. 언제 날 사람 취급해 준 적 있어요. 제발 날 가만 놔 달라 구요."
 겨우 열여섯 살이었다. 그런데 아비에게 바락바락 대들며 오장육부를 뒤집어 놓았다. 누가 꼴통 아니라고 할까 봐!
 어찌 살려 두겠는가? 반쯤 죽이고. 다시 또 반쯤 죽여 놓아야 직성이 풀리지.
 비 오는 날 먼지 날 정도로, 개 잡듯이 잡아 버렸다. 그날 밤 제 어미 제사가 한창 진행되는 도중에 서신 하나 달랑 남겨 놓곤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이놈의 집구석. 더러워서 나간다."
 형 장운상과 달리 성격이 장계창과 거의 흡사한 둘째 아들 장운평이었다. 어린 마음에 좁은 소견과 욱! 하는 감정 탓에 집을 뛰쳐나갔다.
 일명 둘째 아들 가출 사건.
 어버이의 마음이 장계창으로 하여금 장운평을 찾아다니게 만들었다. 그 마음고생과 몸의 고단함은 이루 필설로 형용할 수 없었다.
 지난 육년 동안 죽었을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하며 괴로움과 걱정 그리고 슬픔에 덮고 자는 요를 매번 눈물로 젖혔다.
 육년. 올해 나이 스물하고도 둘. 형 장운상과 여덟 살 차이였다.
 나타나는 것도 그렇다. 점포 앞에서 제 조카와 드잡이 질을 하며 나타났다. 그리곤 길가는 행인들을 죄다 불러 모았다.
 피가 머리 위로 거꾸로 치솟았다. 가슴에서 전신을 활활 불태우는 뜨거운 불덩어리가 머리끝까지 치달았다.
 분노와 화기 그리고 노기.
 세 가지 감정이 이성을 잃게 만들었다. 본능적인 세 감정에 장계창은 시선을 아래로 주었다.
 그의 앞에 자리한 서탁.
 장계창의 두 눈동자가 번개보다 빠르게 서탁 위를 훑었다. 필경 손에 쥘 것을 찾는 중임이 분명하다.
 장운평은 재빨랐다.
 '이크! 화나셨다.'
 그는 왼손을 옆으로 뻗어 형 장운상의 우측 어깨를 꽈악 잡았다.
 장운상은 움칫거리며 동생 장운평의 왼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웬걸.
 어깨를 움켜쥔 장운평의 손아귀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우악스럽고 무지 강했다. 우측 어깨는 물론이고 한 순간 몸이 장운평에 의해 우측으로 당겨졌다.
 장운상은 당황했다.
 '무슨 놈의 힘이·······.'
 장운평은 잽싸게 형 장운상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자연스레 장운상이 장운평의 전신을 가리며 앞에 서게 되었다. 장운상은 심중 분노를 느꼈다. 서슬이 퍼런 부친 앞에 무방비로 자신이 노출 되었다.
 동생 장운평의 속셈이 훤히 보였다.
 '휴우! 예나 지금이나 운평이 이 자식은·······.'
 장계창은 그 사이 오른손에 한 벼루를 집어 들었다. 그는 벼루를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동시에 방안이 떠나가라 대성일갈했다.
 "비. 키. 거. 라."
 장운상은 내심 중얼거렸다.
 '저도 비키고 싶습니다. 젠장.'
 장운상은 비킬 수가 없었다. 등 뒤에서 동생 장운평이 사력을 다해 양손으로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한 치의 움직임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가 엿보였다.
 장운상은 부친 장계창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아버지. 고정 하십시오. 그래도 집이라고 돌아 왔는데·······."
 장계창은 폭갈했다.
 "지이입! 누가 자운장이 저 놈 집이라고 하더냐? 자운장은 내 집이야. 내 집!!"
 장계창의 화광이 충천하는 눈동자가 장운상의 뒤에 숨은 장운평에게 향했다.
 "나- 와! 당장 형 뒤에서 나오지 못해. 이 개놈의 자식아! 이 아비가 지난 육년 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아. 연락 한 번 없이 육년 동안 네놈이 하고 싶은 대로 죄다 하곤. 이제는 심심하고 질리니. 집구석이라고 기어들어 왔지. 그래, 아주 잘 돌아 왔어. 오늘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당장 못 나- 와!!"
 장운평은 결코 나갈 의사가 없었다. 부친 장계창의 전신에서 강호 고수 찜 져먹을 살기가 충천했다. 나가면 반쯤 죽는다. 아버지 성정을 아들이 모르면 누가 알까?
 '나가면 뒈진다!'
 강호를 굴러먹은 세월이 발목을 붙잡았다.
 장운평은 몸을 움찔거리며 움츠렸다. 그는 나지막한 음성을 흘렸다.
 "저어··· 제가 올해 스물 두울·······."
 즉시다. 머뭇거리고 뭐고 없었다. 울분에 찬 노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입 안 닥칠래! 네놈이 이제는 컸다고 말하고 싶어. 이 개놈의 자식아! 내가 널 생각할 때마다 억장이 무너져. 이리 안 나와!"
 "못 나가는 데요. 나가면 그 벼루가 제 얼굴로 날아 올 게. 뻔한데. 제가 미쳤습니까? 나가게."
 복장 뒤집어 놓은 둘째 아들 놈이었다.
 장계창은 입에 거품을 물었다. 벼루를 든 오른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사태가 매우 중차대하고 위중하며 위급했다.
 '이러다가 자칫 내가 당할 수도·······.'
 영민한 머리가 재빨리 돌아갔다. 장운상은 다급한 어조로 외쳤다.
 "마! 빨리 밖으로 나가. 나중에 아버지와 얘기하고 지금은 튀어. 어서 빨리!"
 장운평은 말과 동시에 형 장운상은 부친 쪽으로 밀었다.
 "고마워. 형!"
 장운상은 뒤에서 장운평이 무지막지한 힘으로 밀자. 놀랐다. 앞으로 밀려 나가는 몸이 일순 제어가 되지 않았다.
 "어어어·······."
 장계창은 당황했다. 자랑스러운 큰아들이 시선을 완전히 가려 버렸다. 귀로 장운평이 밖으로 튀어 나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후다닥!
 방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그제야 밖으로 도망치는 아들 장운평의 모습이 보였다.
 장운평이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장계창이 오른손에 든 벼루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아버지. 나중에 얘기해요."
 벼루가 허공을 날았다.
 슈아아앙!
 장계창은 고성을 질렀다.
 "거기 안- 서어!!"
 벼루는 닫히는 방문과 부딪치며 아래로 떨어졌다.
 와장창창!
 벼루는 방바닥과 충돌하며 산산이 부서졌다.
 장계창은 어지러운 듯 오른손으로 머리를 쥐곤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장운상은 급히 부친 장계창에게 소리쳤다.
 "아버지!"
 장계창은 의자에 앉은 채 왼손을 위로 들어올렸다.
 "괜찮아. 피가 좀 머리로 쏠렸어. 그래."
 "아버지. 고정하십시오. 그래도 운평이 녀석 안 죽고 살아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그 놈은 우리 집안을 말아 먹으려고 태어난 놈이 틀림없어. 그 놈은 요괴가 우리 집안을 저주하고 있다는 살아 있는 증거야. 휴우우·······."
 "아버지. 운평이 녀석. 제법 철이 들었을 것입니다. 옛날처럼 사고만 치고 다니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 번 믿어 보십시오. 그리고 운평이가 삐뚤어진 데에는 제 책임도 있으니. 제가 잘 타일러 보겠습니다."
 "네가 무슨 책임이 있다는 말이냐? 다 내 탓이지. 그 때 너와 운평이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장계창의 안면에 짙은 후회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아들 장운상에 비해 모든 것에서 눈에 차지 않았던 장운평이었다. 그 탓에 분발하라고 말한 것이 그만 장운평을 다른 길로 빠지게 만들었다. 일종의 반발이자 충동이라고 보아야 했다. 흔히들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 때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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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장운평은 휘파람을 휘휙 불며 자운장을 돌아 다녔다. 많이 달라져 있었다. 장원은 소규모였으며 우측으로 포목점과 이어진 전각이 있었다. 부친 장계창의 거처이자 일을 보는 곳이었다.
 중앙과 북쪽은 대충 둘러보니 형과 혼인한 형수가 사는 곳 같았다. 제법 잘 가꾼 후원이 그럴 듯했다.
 좌측은 손님들과 그가 묵을 곳인 듯했다. 장원의 남쪽은 부친의 점포에서 일하는 이들의 거처였다. 육년 동안 제법 가세가 일어났다. 부친은 포목점을 크게 일으켰고. 주루 하나와 여인들의 보석과 장신구를 취급하는 보옥점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하긴. 뭐, 아버지가 이재에는 밝지. 그리고 지독한 구두쇠이기도 하고."
 장운평은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를 낳았을 때 출산의 후유증도 있었지만. 제대로 먹지 못해 산후조리가 부실했던 탓도 있었다는 것을. 그것이 부친 장계창에겐 한이 되었다. 가난하다. 라고 하는 것에 울분을 느꼈으니깐 말이다.
 "이제 돌아 왔느냐?"
 등 뒤에서 들린 한 줄기 음성.
 장운평은 발걸음을 멈추곤 뒤로 고개를 돌렸다.
 사십 후반의 중년인.
 부리부리한 눈매와 굵은 콧대. 그리고 굳건한 입술. 전체적으로 탄탄하고 다부져 보이는 몸. 중년인은 보는 순간 바위 덩어리를 연상 시켰다.
 "막- 숙!"
 장운평은 반가운 음성으로 막도영을 부르며 몸을 돌렸다. 삼십년 가까이 부친과 함께한 의형제이자 친구였다 또한 동업자였으며 포목점이 처음 문을 열 때. 최초의 점원이었다. 그리고 과거 자신이 집을 나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었다.
 막도영은 따뜻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 동안 연락 한 번 보내지 않다니. 너도 참 어지간하구나. 무심한 것이냐? 아니면 냉정한 것이냐?"
 장운평은 피식 웃었다.
 "제가 왜 연락해요. 막 숙부님이 계신데."
 "뭐?"
 "에이. 왜 그러실까? 강호에 친구 분들이 많이 계시던데요. 저,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풋! 다행이구나. 오룡봉성 중의 권호(拳嚎)가 내 덕을 보았다니."
 "큭! 낯 간지럽게 왜 그러십니까?"
 "그래. 강호 유람은 이제 끝난 것이냐?"
 "유람은 무슨 유람이오. 제가 몇 번이나 죽을 뻔 했는 줄 아십니까? 이제는 두 번 다시 강호로 나가지 않을 겁니다. 강호라면 이제는 진절머리가 난다. 이겁니다."
 "푸훗! 울부짖는 권이 하늘을 끊고 땅을 무너뜨리니. 권호라! 당대 최강의 고수 십오인 중 알려지지 않은 철면의 권사!"
 "놀리시지 마십시오. 다 허명입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제가 얼마나 싸웠는데요. 그나저나 고맙습니다. 그 동안 집안에 대해 아주 자세히 알려 주시는 바람에 아까 전에 생전 처음 보는 조카와 대로에서 드잡이 질을 벌렸습니다."
 막도영은 아쉽다는 빛을 띠었다.
 "아깝구나. 소미. 그 아이가 널 어떻게 상대하는지 봐야 했는데."
 장운평은 입맛을 다셨다.
 "쩝! 됐습니다. 그 녀석 갓난아기 때 본 후론 단 한 번도 못 보았는데. 이제는 알아 보지도 못할 정도로 훌쩍 컸더군요."
 "크크크·····! 그럴 수밖에. 일 년에 겨우 아주 간신히 한, 두 번 정도 연락이 닿을 정도로 종횡무진 강호를 누빈 사람이 누구냐? 그리고 작년에 너에게 연락을 보낼 때. 운상이 네는 황도에 없었다. 처가에 있다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체! 그럼 그렇지요. 형이 처가살이 할 법도 하지요. 옛날부터 아주 치사하고 약삭빠르며 남 약 올리는 데는 천재였으니까요. 그런데 처가에 뭐 먹을 게 있다고. 아버지. 혼자 내버려두고 처가에 있었답니까?"
 막도영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장운평을 쳐다보았다.
 "넌. 무려 육년 동안 가출 했었다. 그 놈의 철면. 혹시 그 얼굴 살 거죽 속에 있는 건 아니냐?"
 말문이 막힐 때는 그저 꾸욱 입을 다무는 게 상책이다.
 장운평은 난감한 얼굴로 당황한 빛을 띠었다.
 막도영은 웃으며 혀를 찼다.
 "쯧쯧! 뭐 묻은 개가 뭐 한다더니만. 녀석아. 운상이는 관리야. 정팔품 현승(縣丞)으로 처가 가까이 있다가 국자감으로 올라온 지 채 일 년도 안 되었어."
 "그래요. 처가 가까이 있었다면. 사돈어른이 힘깨나 쓰신 모양이네요."
 "너 여태까지 운상이에게 꽁한 마음을 품고 있는 건 아니냐?"
 "에이. 언제 적 일인데요. 그럴 리가 있어요."
 "글쎄. 뒤끝이 상당히 오래 가는 것이 아마 너지."
 "흐흠!"
 장운평은 헛기침했다.
 막도영은 싱긋 웃으며 몸을 좌측으로 돌렸다.
 "나중에 보자. 난 따로 할 일이 있어서 말이다.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네가 강호인이라는 건 숨겨라. 네, 아버지 성정에 네가 강호인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널 무슨 흑자들 왕초쯤으로 생각할 테니."
 "넵! 나중에 찾아뵙겠습니다."
 장운평은 고개를 공손히 아래로 숙였다.
 "그렇게 해라."
 막도영은 몸을 돌리며 걸어갔다.
 장운평은 고개를 들며 뒤로 돌아섰다.
 "그럼. 좀 더 둘러볼까?"
 장운평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막 초경(初更)이 지났을 때였다.
 자운장에 자리한 중앙에 자리한 한 전각의 방에서 도란도란 음성이 밖으로 흘러 나왔다. 방안에는 네 남녀가 둥근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장운상과 그의 아내 예설지 그리고 장소미와 장운평이었다.
 장운평은 조심스러웠다. 형수 예설지와 몇 번 대면해 보지 않았다.
 과거 그가 열한 살이 된 해였다. 당시 형 장운상은 열 아홉이었다. 스승의 딸 예설지는 장운상과 동갑이었다. 두 남녀는 전격적으로 결혼했다. 스승 예호민이 장운상을 사위로 매우 삼고 싶어 했다.
 장운평의 나이 열두 살이 된 해 가을. 조카 장소미가 태어났다. 장소미는 올해 열살이었다.
 장운평은 예설지와 장소미를 힐끔거렸다. 그의 눈가에 형에 대한 애증이 묘하게 교차했다.
 장운평은 형수가 거북하고 불편했다. 괜히 눈치가 보였다. 그의 눈가에 형에 대한 애증의 빛이 묘하게 교차했다.
 '쩝! 옛날 일은 잊어야겠지·······.'
 장운평은 앞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곤 입으로 가져갔다.
 예설지는 장운평을 보며 호기심이 어린 음성을 흘렸다.
 "도련님."
 "네."
 장운평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육년 동안 도대체 어디에 계셨다가 이제야 돌아오신 거에요."
 장소미는 모친 예설지가 던지는 질문을 듣고 초롱초롱한 눈빛을 반짝였다. 그녀는 장운평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궁금하다는 표정이 얼굴에 가득 떠올랐다.
 장운상은 말없이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의 귀에 장운평의 음성이 들렸다.
 "뭐, 여기 저기 좀 떠돌아 다녔죠. 중원은 물론이고 서장과 운남까지. 아무튼 세상 돌아다닐 수 있는 데는 다 돌아 다녔습니다. 그러다보니 육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렀더군요."
 장운상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툭 말을 던졌다.
 "운평아."
 장운평은 고개를 돌려 형 장운상을 응시했다.
 "네."
 "자랑이다. 응."
 삐딱한 말투.
 장운평은 대번에 안색이 급변했다. 그는 앓는 듯한 음성을 흘렸다.
 "끄으응! 여전하네. 형. 그 비꼬는 말투. 듣는 날 열 받게 하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그 음성."
 "시끄러! 아까는 아버지가 계셔서 참았지만. 네놈 때문에 육년 동안 아버지와 내가 겪은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빠드드득!"
 장운상은 이를 갈았다. 동생이 멀쩡하게 살아 돌아 왔으니. 안심이 되었다. 그 안심 뒤를 지난 세월 동안 한 마음 고생이 뒤덮었다. 자연스레 화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동생 장운평은 마음속으로 사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음에서 일 뿐이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항시 부친 장계창을 힘들게 한 동생에 대한 못마땅함이 있었다. 또한 주위에서 들리는 동생에 대한 평판.
 "야! 네 동생 천하 꼴통이라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동생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장운상의 눈동자에 노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예설지는 장운상과 장운평 사이가 험하게 변하는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그녀는 재빨리 말했다.
 "여보. 왜, 이러세요. 도련님. 이해하세요. 이 이가 그 동안 도련님을 많이 걱정해서 그래요."
 장운평은 예설지의 말에 시선을 그녀에게 돌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수님. 어차피 형과는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장운상은 장운평을 보며 성난 음성을 내뱉었다.
 "그래. 오늘 한 번 따져 보자. 그 날 왜 하필이면 어머님 기일에 가출했어. 어엉! 왜 그날을 있었냐고."
 장운평은 당황했다. 얼굴도 보지 못한 모친의 제삿날에 가출 했다. 불효막심한 자식이다.
 형 장운상은 그걸 돌려 말하고 있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장운평은 진실을 말하는 순간 형이 아마 앞에 있는 찻잔을 집어 던질 것이다. 분명하다. 동생이 형의 성격을 모를까?
 '젠장. 말하지 않을 수도 없고. 말했다간 저 샌님 같은, 타의 모범이 되는 형이 분명 가만 있지 않을 거고. 돌겠네! 차라리 집에 돌아오지 말걸.'
 장운평은 마음속으로 후회했다. 집에 돌아오자 곳곳에서 암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곤 곤혹스러운 상황들을 만드는 듯했다.
 "빨리 말해 봐."
 장운상은 장운평을 닦달했다.
 장운평은 장운상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게 말이야. 형. 그 날이 어머니 기일인 줄은······· 미처 몰랐어."
 "뭐? 너, 다시 말해 봐. 뭐가 어쩌고 어째."
 "진짜 깜빡 했다고. 믿어 줘. 일부러 잊은 게 아니라고."
 꼴통이 어디를 가겠는가?
 장운평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운상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유학을 배워 관리가 된 그였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감히 돌아가신 모친의 기일을 잊고. 그 날 밤중에 가출을 한 동생이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다.
 불효막심도 정도가 있지.
 장운상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앞에 놓인 잔을 향해 손을 뻗었다.
 "너, 이리 안 와!"
 장운상은 딸 장소미 곁으로 재빨리 움직이는 장운평에게 소리쳤다.
 "여- 보!"
 예설지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남편 장운상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장운상의 왼손 팔뚝을 붙잡으며 말했다.
 "고정하세요. 이미 지난 일이에요."
 "당신도 들었지. 어머님 기일을 잊었다는 말. 게다가 그 날 가출 했어. 제사를 지내다가 저 놈의 자식이 가출하는 바람에 제대로 제사도 못 지냈어. 저걸 그냥 놔둬야겠어. 동생이라는 놈이·······."
 장운상은 부친 장계창을 닮은 듯 찻잔을 높이 들었다. 잔 안에 남아 있던 뜨거운 찻물이 찰랑찰랑 거렸다.
 장소미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행여나 부친 장운상이 잔을 집어 던질 경우. 찻물이 허공으로 뿌려질 것을 염두에 두었다. 장소미의 등 뒤. 장운평이 서서 양손으로 장소미의 어깨를 붙잡았다.
 "놔요!"
 장소미는 장운평의 양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장운평의 양손은 꿈쩍하지도 않았다.
 "미안하다. 소미야. 네 신세 좀 지자."
 장소미는 버럭 소리쳤다.
 "숙- 부!"
 장운상은 왼손 검지를 들어 장운평을 가리켰다.
 "너! 옆으로 안 비켜. 지금 소미를 낮에 나처럼 인질로 잡을 셈이냐?"
 "헤헤헤! 미안해. 형. 일단은 그 잔 좀 탁자에 내려놓지. 그래."
 실실 쪼개며 이죽거리는 장운평의 얼굴. 무지 얄미웠다.
 예설지는 어이가 없었다. 동시에 골치가 아파왔다. 그녀는 눈가를 찌푸렸다.
 "도련님. 소미는 도련님 조카에요. 이제 겨우 열살 밖에 안 되었어요."
 "죄송합니다. 형수님. 하지만 형님이 저리 절 위협하시니. 저도 일단은 살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장운상은 장운평의 말에 두 눈동자에서 이글이글 불타는 화광을 뿜었다. 꼴통은 세월이 흘러도 꼴통이었다.
 "이 개놈의 자식! 넌,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어. 나이가 들어 철이 들었는가? 했더니. 지금 네놈이 무슨 흉악무도한 짓을 하는지. 알기나 해."
 "형. 그리 말하면 안 되지. 어려서부터 형은 아버지가 오냐오냐 했지만. 난 아니었다구. 어머니가 나를 낳다가 돌아가셨다고. 아버지가 날 얼마나 미워했는데. 그리고 말이지. 형이 머리가 좋으면 좋았지.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아버지는 사사건건 나와 형을 비교하며 내 속을 뒤집어 놓았어. 그러니 나도 내가 살 궁리를 할 밖에. 그러니깐 그 잔 내려 놔."
 "못 내려 놔. 이 자식아!"
 "헤헤! 형. 그 잔. 나에게 던지면 뜨거운 찻물이 소미에게 쏟아질지도 몰라."
 "이이익!! 이 교활한 자식. 옛날부터 넌 밥맛이었어."
 장운상은 장운평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예설지는 급히 남편 장운상에게 소리쳤다.
 "당장- 그 잔 못 내려 놔- 욧!"
 그릇이 깨지는 고성이었다.
 예설지는 쌍심지를 위로 돋우며 엄청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장운상은 아내의 돌변에 당황했다.
 "여보······· 그게 말이지."
 "여보고 뭐고. 일단 그 잔 내려 놔욧! 당- 장- 요!"
 "알았어. 알았다고. 진정해."
 장운상은 아내 예설지의 눈치를 살피며 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공처가라고 해야 할 모습이다.
 예설지는 고개를 돌려 장운평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이는 듯했다. 자고로 며느리들이 가장 대하기 껄끄러운 존재가 시누이와 도련님인 법.
 "도련님. 소미를 놔 주세요."
 "허, 험! 아, 예. 형수님."
 장운평은 장소미의 어깨에서 손을 떼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장소미는 뒤로 돌아서며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녀는 장운평을 빤히 올려다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숙부님."
 "응."
 장운평은 어물쩍 상황을 넘기려는 듯 어색한 미소를 머금었다.
 "오늘 낮에 우리 처음 만났죠."
 "그래. 그랬지."
 "헤에! 제가 그러니깐. 아버지의 분노로부터 숙부님을 지키는 일종의 방패이자 인질인 셈이네요."
 "그게 말이······· 끄아아악!"
 장운평은 별안간 비명을 질렀다.
 장소미가 느닷없이 있는 힘껏 그의 좌측 발등을 내리밟았기 때문이다.
 "미쳤어요. 미쳤느냐구요. 세상 어느 숙부가 처음 만난 그 날 조카를 인질로 잡아요."
 장소미는 대단히 화가 난 듯 연거푸 오른발로 장운평의 좌측 발등을 내리밟았다.
 장운상은 장소미를 보며 소리쳤다.
 "잘한다. 우리 딸. 아주 혼을 내줘라! 네, 숙부는 정신을 차리려면 아직 한참이나 멀었다. 잘한다. 잘해. 그렇지. 있는 힘껏 콱! 콱! 밟아라."
 예설지는 오른손을 들어 이마를 만졌다.
 '피곤해·······.'
 딸 장소미가 상당히 영리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남편과 그녀의 머리를 한데 모아 놓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헌데 문제는 여느 아이들에 비해 조숙해도 보통 조숙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아버지 장계창.
 그가 장소미를 귀여워하며 이른바 장기적인 안목에 따른 특별 교육을 시켰다. 그 특별 교육은 애 하나를 버려놓았다. 애늙은이 하나가 탄생했으니깐 말이다. 그것도 모친인 예설지를 매우 힘들게 하는, 소위 영재라고 해야 할 딸 장소미.
 퍼퍼퍼퍽!
 발을 밟는 소리가 방안에 메아리쳤다.
 동시에 장소미와 장운상의 음성이 크게 울려 퍼졌다.
 "숙부는 무슨·······."
 "잘한다. 우리 딸. 파팍! 밟아 줘라."
 장운평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끄- 아아아악! 마- 아아! 아퍼. 아프다구."
 명색이 숙부였다. 장운평은 조카를 인질로 삼은 미안한 마음에 고스란히 당해 주었다. 형 장운상보다 형수 예설지의 눈치가 무지 보였다.
 예설지는 안면을 찡그리며 힘없이 털퍼덕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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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 시진 후.
 장운평은 막도영과 함께 그의 거처에 자리한 탁자에 앉았다. 그는 왼발을 들어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렸다. 그리곤 양손으로 왼발 발등을 문질렀다.
 "아이고. 아파라. 고 계집애. 무슨 놈의 힘이 그리도 세."
 "쯧쯧. 참 잘한다. 당대 강호 최고 고수라는 열다섯 명 중 하나이면서. 조카에게 발등을 찍혀 아파하다니."
 "막 숙부님. 그럼 어쩌라고요. 제가 강호인이라는 걸. 감추라면서요. 그리고 육년 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명색이 숙부가 되어서 조카하고 싸우라고요. 그리고 말이죠. 소미 고 계집애 건드렸다간 아무리 보아도 우리 형수가 가만있을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한 성질 하시는 분이잖아요."
 막도영은 장운평의 말에 대소를 터트렸다.
 "푸- 하하하핫! 하긴. 설지 그 아이 성정이 웬만해야지. 하하하핫!"
 장운평은 고개를 위로 들며 웃는 막도영을 흘겨보았다.
 
 자의용한(紫衣龍翰) 막도영.
 강호인이었다. 이십여 년 전 그와 원한이 있는 한 문파와 충돌했다. 그리곤 공멸해 다 죽어갔다. 막도영은 생사기로에 서서 신음했다. 그를 연히 지나가던 부친 장계창이 발견했다. 혈혈단신이던 막도영은 그 신분을 숨기고 자운장에 머물렀다. 막도영은 자운장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반복되는 평온한 일상이 주는 안온함. 장계창의 호의. 장사라는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와 재미. 지난 온 삶에 대한 회의 등등.
 막도영은 손에서 검을 버렸다. 그는 장계창과 함께 포목점을 열었다. 장운상과 장운평은 어려서부터 막도영을 숙부라고 부르며 따랐다.
 막도영은 어릴 때 장운평에게 무공의 기초를 가르쳤다. 형 장운상과 달리 장운평은 무에 소질이 있었다.
 더불어 강호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그것이 실수였다. 가뜩이나 부친과 형에 대한 원망과 불평 그리고 분노에 불타던 장운평이 강호에 대한 동경을 가슴에 품곤 가출해 버렸으니. 막도영은 급히 그가 아는 과거의 인맥을 통해 장운평을 찾았다. 그는 장운평의 뒤를 봐 주었다. 알기 때문이다. 명석한 형과 늘 비교 되며 아내를 죽였다는 장계창의 미움 아닌 미움을 받던 장운평임을.
 "어디 네 원대로 한 번 강호를 주유해 보거라. 단 내가 소개하는 분에게 무공을 배운 후다. 알겠지."
 불감청 고소원이었다.
 장운평은 막도영의 제안을 즉시 받아 들였다. 좋아하는 무공도 배우고. 동경하는 강호 행도도 하고. 끝내 주었다. 다 착각이었지만···.
 그 후 육년. 장운평은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는 최고의 고수 십오인의 일인이 되었다.
 오룡봉성(五龍鳳星)의 일인. 울부짖는 권, 권호(拳嚎)가 말이다. 오룡봉성은 다섯 명의 신진 고수와 다섯 명의 여 고수 그리고 다섯 명의 전대 고수들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당대 강호에서 누구나가 다 강하다. 라고 알아주는 이들이다.
 
 막도영은 웃음을 그치며 장운평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래.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느냐?"
 장운평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고개를 처연하게 아래로 숙이며 말했다.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막 숙부님. 과거 왜 막 숙부님이 손에서 검을 놓았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는 그만 쉬고 싶습니다. 오룡봉성 따윈 아무래도 좋습니다.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그런 것에 매달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강호인들 자체도 싫구요."
 막도영은 찬찬히 장운평을 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소식은 들었다. 어쩌면 잘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는 강호 무가나 문파 출신이 아니니. 차라리 네 아버지의 뒤를 따라 장사나 하는 게. 어쩌면 나을지도 모르겠구나. 더욱이 네 형이 관리로서 계속 관직에 있다면. 이 자운장을 책임져야 할 사람은 네가 되어야 하니 말이다."
 장운평은 고개를 들며 매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말입니다. 사실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만약에 상황이 그리된다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와 매일 얼굴을 맞대야 합니다. 저요. 이 세상에서 딱 한 사람이 무섭습니다. 다른 한 사람과 진짜 얽히고 싶지 않습니다."
 막도영은 피식 웃었다. 장운평이 말한 두 사람 중 전자는 장계창이며 후자는 장운상이었다.
 장운평 최대의 적은 바로 부친인 장계창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이길 불효막심한 아들은 아마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깐. 아버지가 까라면 아들은 깔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만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효(孝)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미워도 아버지는 아버지고 형은 형이다!!
 
 
 2 장. 놀고먹는 꼴은 죽어도 못 봐.
 
 딱 칠 주야다.
 간만에 편안하게 수욕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편안한 잠자리에 들어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빈둥빈둥 거리며 오전을 보냈다. 정오가 되어 알아서 챙겨주는 맛깔스러운 요리를 먹고. 오후를 자운장의 후원을 거닐며 보냈다. 저녁이 되어 해가 지면 알아서 내오는 밥을 먹곤. 서문대로로 나가 소일하며 밤을 보냈다. 그리곤 다시 밤이 깊어지면 자운장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일곱 날의 낮과 밤이 꿀맛 같았다.
 잠을 자더라도 항상 한쪽 눈을 뜨고 있어야 하는 강호의 나날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팽팽한 긴박감 대신에 느긋하고 평온함이 주변에 한 가득이었다. 음식을 먹을 때도 독이 들어 있나? 조심에 또 조심을 해야 하는 강호의 생리에 비하면. 자운장은 지상 낙원이었다. 심리적으로 집이다. 라고 생각하는, 편안함이 주는 느슨한 나태.
 꿀맛이라는 것이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꿈같은 나날은 꼭 이레로 종을 쳐야 했다.
 "공짜 밥은 없다. 라고 전하라 하셨다."
 장운평은 안면을 우그러뜨렸다.
 붉으락푸르락.
 그는 그러면 그렇지. 라고 말하는 듯한 기색을 띠었다.
 "막숙(막 숙부의 줄임말). 아버지가 저에게 뭘 시키셨습니까?"
 막도영은 오른손을 말아 쥐며 입가로 가져갔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꺼내는 것을 주저했다.
 "흐흠. 형님께서는 네가 서문대로와 북문대로 사이에 있는 창평방(昌平坊, 일종의 행정구역 명)의 희선루를 맡았으면 한다. 네 형수는 북문대로에 있는 보옥점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희선루는 주루인지라 마땅히 맡을 사람이 그 동안 없었다. 그런데 네가 돌아왔지. 그래서 앞으로 먹고 살 호구책으로····."
 장운평은 왼손을 위로 들어 올리며 막도영을 향해 쭉 내밀었다. 그는 손바닥을 막도영의 눈앞에서 활짝 펼쳤다.
 그 모습은 어찌보면 매우 무례했다. 허나, 막도영은 개의치 않았다. 장운평은 그에겐 자식이나 매 한 가지였기 때문이다.
 "되었습니다. 굳이 아버님이 저에게 말씀하신 것을 중간에서 듣기 좋게 바꾸실 필요 없으십니다."
 막도영은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눈치 챘나?"
 "제가 누굽니까? 서문대로 최고의 수전노 장계창 대인의 아들 아닙니까? 칠일!! 딱 이레입니다. 그 동안 가만히 절 내버려 주셨으니. 엄청 편의를 봐 주신 겁니다. 그나마 제가 아들이니깐. 이 정도지요. 다른 사람 같았으면 벌써 자운장에서 쫓겨 나갔습니다. 아시지요. 막숙."
 민망했다. 서문대로에 돈에 관한한 악착스러운 장계창을 모르는 상인은 없었다.
 막도영은 무안한 낯빛을 띠었다.
 "네 아버님이다."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잘 알지요. 좋게 말해서 지독한 근검절약이고. 나쁘게 말해서 돈독이······ 아니지. 돈에 한이 맺힌 수전노이자 금전노지요. 뭐, 다른 사람의 눈에 피눈물이 흐르게 돈을 버신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유달히 혹독하게 처신하시며 돈을 버신 분이니. 달리 드릴 말씀은 없지만서두······."
 "좀 그렇다. 아들이 부친을 그리 말하니 말이다."
 "제가 없는 말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 어릴 때 형님이 읽고 싶은 서책을 사주신다고. 하루에 한 끼씩 무려 한 달 동안 굶으신 아버지입니다. 결국 형이 원하던 서책을 사주셨으니.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요. 그 때 제가 학당을 빼먹었을 때. 저를 개 잡듯이 잡으신 아버님 심중에, 허공으로 날려 버린 학당에 달마다 주는 돈이 분명 있으셨을 겁니다. 그 돈이 너무 아까워 저를 비 오는 날 먼지 날듯이 두들겨 패신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제 아버지 성격 모릅니까?"
 막도영은 입을 다물었다.
 "··················."
 그가 생각해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장운평의 말이었다.
 장운평은 이미 각오를 했다는 듯 말했다.
 "제가 집에 돌아 올 때. 절 아버지가 분명 부려 먹을 것이라고 이미 예상을 다 했습니다. 제가 놀고먹는 꼴 두고 보실 아버지가 아니시니까요. 거두절미하고 희선루에 대해 설명이나 좀 해 주십시오. 아버지가 저에게 맡기실 때에는 분명 희선루에 뭔가 문제가 있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할 말 없었다. 이미 다 알아 차렸다.
 '허! 눈치 하나는 가히 천하제일이라고 해야 하나?'
 막도영은 내심 감탄하며 말했다.
 "실은 희선루가 본래 수로를 오가는 선부들과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낮에는 간단한 면과 교자를. 해가 진 후로는 화주만 팔았다. 인근 창평방에 사는 이들이 그리 형편이 좋지가 않아, 제일 잘 팔리는 게 싸구려 화주였다. 헌데 최근 응천부에 거의 매일이다시피 주루와 객잔들이 들어서고 있어, 하루가 다르게 매상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최근 창평방에 응천부의 양대 흑자 조직 중 하나인 흑응파가 세력을 뻗치고 있어. 그 때문에 안 그래도 떨어지는 매상이 더 떨어지고 있다. 형님에겐 골칫거리 중에 골칫거리지."
 "그래서 뭡니까? 문을 닫기 직전인 주루를 저보고 알아서 운영하라구요. 막말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손에 쥐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무보수 노동을 하라구요. 싫습니다. 전 죽어도 공짜로 일 안 합니다."
 "네 집안의 점포이고. 네 아버지의 재산이다."
 "그렇지요. 그 주루 아버지 재산이지. 제 재산 아니지요. 그리고 말입니다. 막숙. 아버지 성격에 나중에 저에게 유산을 물려주실 리가 없습니다. 듣자니 소미 고것을 아버지가 가르치시고 있다니. 분명 우리 자운장의 재산은 몽땅 소미에게 돌아갈 겁니다. 그리고 저에겐 조카 것에 눈독 들이지 말라고. 아주, 아주 쥐꼬리만 한 돈만 남겨 주시고. 입 싸아앗 닦아 버릴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아버지를 모릅니까?"
 막도영은 정색했다. 부자지간에 골이 상당히 깊었다. 막도영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어찌 그리 생각이 깊지 못하느냐? 네가 장사가 뭔지 아느냐? 그런 너에게 처음부터 덜컥 큰 것을 맡길 수 있다고 보느냐? 아니다. 네가 경험을 쌓고 장사가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면 그 때에는 네 아버님이 큰 것을 맡기실 것이다. 그러니깐. 그냥 맡도록 하거라."
 장운평은 히죽 웃으며 고개를 가볍게 좌우로 흔들었다.
 "막숙. 왜 이러십니까? 제가 다른 것은 몰라도 눈썰미 하나는 끝내 주는 놈입니다. 제가 누구 아들입니까? 분명 아버지가 막숙에게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그 놈. 이참에 아주 고생이라는 것이 뭔지 뼈저리게 해 봐야. 정신을 차릴 거야. 이왕 문을 닫을 거. 운평이 놈. 교육시키는 데나 써 먹어야겠어."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막도영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귀신같은 놈.'
 막도영은 내심 가슴이 철렁했다. 누가 장계창 아들 아니라고 할까 봐. 눈치 하나는 귀신 저리가라였다.
 장운평은 막도영을 분명 내심 자신의 말이 맞다. 라고 확신했다.
 "막숙. 아버지에게 가셔서 말씀을 전해 주십시오. 제가 가서 말씀 드려 봐야.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아버지가 불같이 호통을 치시며 눈에 띠는 대로 아무 거나 집어 저에게 던지실 겁니다. 그러니 막숙께서 저 대신 잘 말씀드려 주십시오. 제가 희선루를 맡는 대신 희선루에서 떨어지는 순수익의 반은 제가 가지겠다고 말입니다."
 "반? 너무 많아."
 "에이! 얼마 나오지도 않는 주루 아닙니까? 그 반이 얼마나 된다고 이러십니까?"
 "허!"
 막도영은 노련한 협상을 하는 장운평을 보곤 내심 중얼거렸다.
 '그럼. 그렇지. 피가 어디로 가겠는가?'
 막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내 가서 말씀 드려보지."
 막도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운평은 막도영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막숙. 아버님께 가셔서 허락을 받는 즉시 창평방으로 가겠다고 말씀드려 주십시오. 그래야 아버지가 한시라도 절 빨리 일을 시키시려고 흔쾌히 허락하실 테니까요."
 "풋! 너. 아주 형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말하는구나."
 "쩝! 이 세상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아버지는 제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꿰뚫고 있습니다."
 장운평은 자랑스럽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 모습이 꼭 철없는 아이 같았다.
 막도영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알겠다."
 그는 뒤로 돌아서며 방문으로 걸어갔다.
 장운평은 막도영의 등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니미! 그럼, 그렇지. 형님이라면 몰라도 나를 아버지가 빈둥거리게 놔 둘리가 없지. 체! 앞으로 아버지와 전쟁 아닌 전쟁을 할 걸 생각하면···· 아이고! 골 아파!!"
 장운평은 부친 장계창을 생각하자 머리가 쑤셔 왔다.
 "차라리 검을 들고 달려드는 놈들을 상대하는 것이 낫지. 원!"
 지상 최강이자 최악의 상대. 아버지 장계창과 앞으로 치열하고 처절한 전쟁을 할 것을 생각하자. 장운평은 눈앞이 아득했다.
 
 운향각.
 장가 포목점의 주인 장계창의 거처이다. 방안에 그와 장소미가 한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장소미는 앞에 한 서책을 두고 있었다. 장계창은 몸을 앞으로 숙여 우측 검지로 서책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소미야. 잘 봐라. 요기가 장부를 오기하며 돈을 빼돌리기에 가장 좋은 부분이란다. 늘 들고나는 돈이 들쭉날쭉하지."
 장소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할아버지."
 "자고로 말이다. 돈을 갖고 장난치는 놈들은 제 딴에는 잔머리를 열심히 굴린단다. 하지만 그 놈들이 굴리는 잔머리는 대부분 다른 놈들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란다. 그러니 잔머리를 굴리는 수법을 많이 알면 알수록 그 놈들 수법을 훤히 꿰뚫어 볼 수가 있단다. 그리고 말이다. 가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돈을 빼돌리는 놈들이 있는데. 그런 놈들은 단순 무식한 방법으로 대처하는 것이 최선이란다. 알겠지."
 "예, 할아버지."
 "꼭 기억해 둬라."
 "네에!"
 참 잘하는 짓이었다. 열살 손녀를 데리고 장계창은 먼 훗날을 위해 조기 영재 교육을 시키고 있었으니.
 밖에서 한 줄기 낭랑한 음성이 들렸다.
 "형님. 도영입니다."
 장계창은 고개를 방문으로 돌리며 대꾸했다.
 "들어오게."
 "예."
 대답과 함께 잠시 후 막도영이 방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장소미는 발딱 일어서며 방안으로 들어서는 막도영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막 할아버지."
 "으응. 그, 그래······."
 막도영은 말을 더듬거렸다. 할아버지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영 떨떠름하다.
 장계창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틀린 말은 아니지 않는가? 자, 이리로 와 앉게. 소미 너도 앉고."
 "네, 할아버지."
 장소미는 냉큼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탁자로 다가오는 막도영을 보며 눈빛을 반짝였다.
 '헤헤. 할아버지 말씀대로 인사를 많이 잘하면 다들 나를 경계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맞네.'
 영악했다. 나이와 인사라는 상관관계가 주는 이로운 점을 체득하고 있었으니. 장계창의 교육이 헛되지는 않은 듯하다.
 
 막도영은 자리에 앉자마자 장운평의 말을 꺼내었다.
 장계창은 안면에 와락 인상을 쓰며 막도영의 말을 들었다. 막도영이 말을 끝마치자 장계창이 입을 열었다.
 "그놈이. 감히 이 아비에게 거래를 하자고 해. 고이얀!"
 "형님. 그리 역정을 내지 마시고. 운평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시지요. 어차피 그 주루 골칫거리 아니었습니까?"
 "끄응."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네 말이 맞긴 하지만. 운평이 그 놈이 그런 말을 할 때에는 뭔가 노림수가 있는 것 같은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막도영은 궁금한 듯 물었다.
 장계창은 막도영을 응시하며 말했다.
 "운평이 그놈 옛날부터 잔머리 무지 굴렸네. 학당을 며칠 동안 빼먹으면서 나에게 사기를 쳤다? 이 말일세."
 "형님. 왜 자꾸 지난 일을 들추어내십니까? 그 때 운평이 겨우 열여섯 살이었습니다. 지금은 장성한 청년입니다. 이제 그만 운평이를 놔 주십시오."
 "무슨 소리를 하는가? 내가 언제 운평이 그 놈을 붙잡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형님! 저도 나름 압니다. 운평이를 볼 때마다 돌아가신 형수님이 자꾸 생각난다는 것을 요."
 장계창은 당황하는 눈빛을 띠며 급히 헛기침을 했다.
 "어허엄!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게. 내가 그 놈에게 그리 대하는 것은 놈을 의젓한 한 사람의 쓸모 있는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네. 운평이는 매를 들어 다듬어야 사람이 될 놈일세. 어려서부터 온갖 꼴통 짓을 다 하고 다녔네. 그 녀석은 매로 다스려야 할 놈일세. 아무튼 그 놈에게 가서 지금 당장 창평방으로 가라고 하게. 알겠는가?"
 "예에.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두 부자 사이에 끼어 제가 이게 뭡니까? 나아, 참."
 장계창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막도영의 말에 무안한 듯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막도영은 그 사이 몸을 뒤로 돌려 방문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막도영이 방문 밖으로 사라지자. 장계창은 손녀 장소미에게 시선을 주었다.
 "소미야."
 "예, 할아버지."
 "이 할아버지가 조금 전에 말했지. 잔머리 수법을 많이 알수록. 잔머리 쓰는 놈들 수법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말이다."
 "네에. 조금 전에 그렇게 말씀 하셨어요."
 "옳커니. 우리 손녀 머리도 좋구나. 해서 말인데 말이다. 네 숙부 하는 짓을 눈여겨보아 두거라."
 "네?"
 장소미는 어리둥절했다.
 장계창은 손녀 장소미를 보며 눈매를 반짝였다.
 "네 숙부는 말이다. 어려서 뒷골목 흑자들의 자식들과 어울려 놀며 그 놈들 잔머리를 배웠단다. 그래서 이 할애비도 한때는 네 숙부의 잔머리에 당했단다. 그러니 네 숙부를 눈여겨보며, 숙부가 쓰는 잔머리를 파악 하거라. 또한 그 잔머리 수법을 네 것으로 만들거라. 알겠지."
 "와- 아! 숙부님이 그렇게 잔머리를 잘 써요."
 장소미의 안면에 감탄의 빛이 떠올랐다. 그녀에겐 하늘이나 다를 바가 없는 조부 장계창이다. 그런 조부가 숙부 장운평에게 당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장계창은 오른손을 앞으로 뻗어 손녀 장소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 숙부의 잔머리는 이 응천부 제일이었단다. 그 때 나이가 열여섯이었으니. 지금 스물둘의 네 숙부 잔머리가 얼마나 심후해졌겠느냐? 잘 지켜보면 얻는 바가 제법 될 게다. 알겠지."
 "예, 할아버지. 눈여겨 볼 게요."
 "그래. 그래야 귀여운 내 손녀지."
 "헤헤헤······."
 조손지간에 죽이 착착 맞았다. 장계창은 장소미를 보며 눈가에 이채를 반짝였다. 미래를 대비한 포석이라 할 것이다.
 
 해도 너무 한다!
 부친의 말을 전한 막도영의 전언에 곧장 자운장을 나와 창평방으로 갔다. 가면서 그래도 주루이니. 어느 정도는 규모가 될 줄 알았다. 헌데 막상 희선루에 당도해서 주루를 보니 말문이 막혀 버렸다.
 입구 위에 있는 보람판은 썩어 문드러져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고색이 창연한 것이 무슨 귀신이 나올 듯했다. 게다가 거미줄이 곳곳에 쳐져 보기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게 진짜 주루 맞아?"
 장운평은 망연자실했다. 단층의 희선루 안에 있는 탁자와 의자는 실금들이 쩌억 가 있었다. 몸무게가 상당한 이가 앉으면 틀림없이 부서지며 폭삭 주저앉을 것이다. 게다가 주루에서 일하는 이는 단 두 사람이었다.
 "길평이라고 합니다. 공자님. 올해 열일곱이 되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 공자님. 쇤네 노적삼이라고 합니다. 올해 일흔 둘입니다."
 장운평은 기가 찼다.
 '돌아가시겠다.'
 열일곱 살짜리와 다 늙은 일흔 두 살의 노친네.
 주루의 점원이라고 그들 둘 뿐이었다.
 "일단 길평이 너는 옆으로 빠져 있고. 노적삼이라고 하셨죠."
 "네, 이 공자님."
 "제 질문에 기분 나빠하지 마십시오. 노 노야. 이리 불러도 되겠죠."
 "아, 예."
 "올해 일흔 두 살이시라니. 어떻게 그 연세에 주루에서 일을 하시는 것입니까?"
 노적삼은 안면에 부끄러운 빛을 띠었다. 그러자 길평이 중간에서 끼어들었다.
 "공자님. 본래 이 주루는······."
 길평의 설명은 간단했다. 주루가 망했고. 그런 주루를 부친 장계창이 싸게 사들였다. 주루 운영에 대해 잘 아는 전 주인 노적삼을 고용했고. 좀 잘 나간다 싶은 순간. 매상이 아래로 와르르 무너졌다.
 장운평은 머리가 지끈지끈 거렸다.
 '미치겠네. 이 노인네를 어떻게 한다?'
 차마 나가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일흔 둘의 고령에 주루에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주루에 대한 애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필시 그의 손때가 묻은 주루일 것이다.
 장운평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부터 열흘 동안 문을 닫습니다."
 길평과 노적삼은 놀랐다.
 "네에?"
 "공자님?"
 "여러 말 하게 하지 마시고요. 무조건 제 말에 따라 주십시오. 지금 상태로는 장사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누가 이런 주루에 와서 술을 먹습니까?"
 길평과 노적삼은 입을 다물며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장운평은 계속 말했다.
 "문을 닫는 열흘 동안 주루 안을 대대적으로 청소하고. 집기도 싸악 바꾸겠습니다. 제가 얼마간 갖고 있는 돈이 있으니. 일단 그 돈을 쓰기로 하구요. 나중에 주루 매상에서 깝니다. 장부 정리할 때 제 돈 확실히 빼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길평과 노적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열흘 동안 저와 함께 주루 안을 청소하고 집기도 새로 들여 놓고. 일을 좀 해야겠습니다. 아시겠지요."
 "예에."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운평은 두 사람의 대답에 시선을 주위로 돌렸다. 그는 무엇을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근데 주방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쪽입니다. 공자님."
 노적삼은 좌측으로 몸을 틀며, 입구 우측에 자리한 주방을 왼손으로 가리켰다.
 장운평은 노적삼의 왼손을 따라 주방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아래로 고개를 푸욱 떨구었다. 왜 자신이 주방 입구를 못 찾았는지 알 수 있었다. 시야에 보였던 것은 벽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시커먼 벽 아닌 벽인 천 조각이었다.
 '우라질! 강호에서 권호인 내가 이런 다 쓰러져 가는 주루를 운영하는 것을 알면 죄다 날 비웃을 거야. 아니 나더러 미쳤다고 할 거야. 니미럴!!'
 장운평은 심중 욕이 절로 튀어 나왔다. 해도 너무한 부친 장계창이었다. 어떻게 희선루 같은, 주루 같지도 않은 주루를 맡으라고 던져 준단 말인가?
 '아주 날 물 먹이시려고 작정을 하셨어. 내 치사해서 원. 이런 식으로 내가 가출한 보복을 하시려고······.'
 장운평은 오기가 생겼다. 헌데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내가 아는 게. 뭐가 있지?'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내심 어느 정도는 희선루가 돌아가고 있을 줄 알았다.
 잘 차려 입은 능숙한 루주와 잽싸고 눈치 빠른 점소이들.
 자신은 그저 그들만 잘 관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헌데 그게 착각이자 환상이었다. 희선루에 도착하고 죄다 깨어지고 부서져 나갔다.
 '주루가 창평방에 있다고 할 때 알아 봤어야 했는데··. 썩을!! 좋다. 이거야. 내가 여기서 쉬이 물러 날 것 같아. 절대 그렇게는 못하지. 빌어먹을! 내가 주루에 관해 아는 거라곤. 단조웅 그 자식이 옛날 지가 나중에 꼬옥 한 번 해 보고 싶다고 말했던······ 크크큭! 그대로 하면 되겠네. 뭐! 까짓 거. 별 거 있어. 뒷골목 흑자들 주루나 이런 주루나 다 그 기서 거기지.'
 장운평은 희선루 안 중앙에 서서 히죽히죽 웃었다.
 길평과 노적삼은 그런 장운평은 의구심이 깃든 눈으로 바라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튀어 나왔다. 장운평은 관리자로서 주루를 운영하는 것이 아닌 직접 몸으로 때워야 했다. 사실상 점소이 노릇까지 해야 했다. 주루를 뜯어 고치는 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아니 누가 요리며 면을 만들었단 말입니까?"
 길평과 노적삼은 말이 없었다.
 장운평은 그들을 다그쳐 답을 얻어 냈다. 기존에 주방에 일하던 사람은 나갔다. 매상이 시원치 않았으니 나가는 노임이 풍족할 리가 없었다. 응당 주방에서 일하는 이가 나갈 수밖에. 그 후 노적삼이 주방을 맡았다. 제대로 요리며 면이 나올 리가 없었다.
 "어- 머- 니- 이이이!!"
 장운평은 죽은 모친을 소리쳐 불렀다. 뭘 어쩌란 말인가? 그가 언제 주루 같은 곳에서 일을 해 본 적이 있었는가? 주루에서 술을 마셨으면 마셨지.
 열흘 동안 장운평은 입을 꾸욱 다물었다. 전신에서 흉흉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분노와 울분 그리고 부친에 대한 치가 떨리는 노기. 장운평은 이를 빠득빠득 갈며 열흘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손을 털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하지만 자존심상 도저히 손을 털 수가 없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오기가 치밀어 올랐다.
 "좋아. 갈 데까지. 가 보자. 이미 다 망한 주루. 더 망할 래야 망할 구석도 없어."
 장운평은 이성을 쬐끔 잃은 듯했다.
 길평과 노적삼은 불안한 눈으로 장운평을 곁눈으로 흘겨보았다.
 
 그 후 장운평은 무슨 속셈인지 창평방에서 두 여자를 고용했다. 이른바 주루업계의 전대미문의 괴사를 일으켰다.
 열아홉의 섭상란과 스물 살의 호정옥.
 장운평은 두 여인에게 비장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제부터 두 사람은 여자 점소이닷!"
 길평과 노적삼은 황당했다. 황당무계한 괴사를 두 사람은 목전에서 목격했다.
 장운평은 두 여인에게 일갈했다.
 "지금 당장 일해."
 장운평은 두 여인과 길평 그리고 노적삼에게 희선루를 맡겼다.
 
 사실상 재 개업이라고 해야 했다. 열흘이라는 시일을 두고 총력을 다 퍼부었다. 여드레가 되는 날이었다.
 사시정(巳時正).
 장운평은 서문대로의 뒤에 자리한 약재상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창포 약포점이란 한 약재상을 찾아 갔다. 어릴 때부터 서문대로에서 살아 창포 약포점의 주인 포양풍을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 장계창의 친구였다.
 장운평이 약포점 안으로 들어서자 장년인 포양풍이 놀랐다.
 "너어! 설마 운평이."
 "안녕하셨어요. 포 아저씨."
 "너, 언제 돌아 왔냐? 그래. 어디 몸은 괜찮고."
 "예. 괜찮습니다."
 "이놈아. 어디 할 짓이 없어 집을 나가. 그것도 육년 동안이나 코배기도 안보이고.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널 꼴통이라고 부르지. 못난 놈 같으니라구."
 잠시 동안 포양풍의 잔소리이자 야단이 이어졌다.
 장운평은 꾸욱 눌러 참았다. 아버지의 친구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보다 내심 노림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포양풍의 말이 잦아질 때쯤. 장운평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포 아저씨. 저어, 필요한 약재가 좀 있는데요."
 "약재? 너, 혹시 어디 다쳤어."
 "아니에요. 실은 제가 창평방의 희선루를 맡았어요."
 "뭐어! 그 골칫거리 주루를."
 "네."
 "미쳤군. 미쳤어. 계창이 그 친구. 그 주루 접는다고 하더구만. 어떻게 그런 주루를 너에게······."
 포양풍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장운평을 쳐다보았다.
 장운평은 히죽 웃었다.
 "예전부터 제가 아버지 봉이었잖아요."
 "············."
 포양풍은 아무 말하지 않았다. 자운장의 속사정을 어느 정도 알기 때문이었다. 그는 화제를 돌리는 듯 장운평에게 말했다.
 "그래. 무슨 약재들이 필요 하느냐?"
 "그게 요."
 장운평은 포양풍에게 필요한 약재들을 말했다.
 "구기자, 음양곽, 파극, 해마, 고량강, 두자, 수랍과, 수양매······."
 열 가지 이상이 너끈히 넘어가는 약재들의 명칭.
 포양풍은 황당무계하다는 표정을 짓곤 물끄러미 장운평을 직시했다. 그는 장운평이 말을 끝내자 곧바로 말했다.
 "운평아."
 "네, 포 아저씨."
 "너, 지금 말한 약재들이 뭔지는 알고 있느냐? 알고서 그런 약재들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냐?"
 "알고 있습니다. 아저씨. 그리고 깜빡 했는데요. 그 약재들 모두 최상질의 것으로 주세요. 그래야 효능이 최대한 나지요."
 "너. 꿀꺽······."
 포양풍은 마른침을 삼키며 옅은 긴장기가 어린 어조로 말했다.
 "도대체 그 약재들을 가져다 뭘 만들 생각이냐? 그건······ 커허어엄!!"
 장운평은 헛기침을 하며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하는 포양풍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에이! 아저씨도. 저 이제 스물 두 살입니다. 그 약재들 모두 정력증강용 약재라는 것 정도는 다 알고 있습니다."
 포양풍은 다소 민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약재를 만일 한 곳에 모아 동시에 그 약효를 우려내었다간. 큰일이 난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그럼요. 알지요. 주체할······ 크큼!"
 장운평은 말을 하다가 얼굴에 붉은 기운이 돌았다. 차마 직접적으로 말하기엔 민망했다.
 포양풍은 장운평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내가 따로 챙겨서 희선루로 보내 주마."
 "예, 부탁 드려요."
 "그래 걱정하지 마라."
 "그럼. 저 가 볼 게요."
 "그래. 나중에 다시 한 번 찾아오너라. 내가 술 한 잔 사 주마."
 "하하. 알겠습니다."
 장운평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 후 뒤로 돌아섰다. 그는 약재상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포양풍은 장운평의 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그 정력제들을 모아 무엇을 하려고 그러지······."
 포양풍의 안면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정력제를 욕심내어 너무 과도하게 복용하면 큰 탈이 생긴다?
 
 약정한 열흘을 하루 앞두고 덜컥 문제가 또 생겨 버렸다. 노적삼 일흔 둘의 노인네가 만든 안주용 세 가지 요리.
 "차라리 굶겠다."
 장운평은 포기했다. 네 맛도 내 맛도 없는, 요리인지 음식 쓰레기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길평이 끼어들었다.
 "그래도 술을 팔려면 안주가 있어야 하는데요."
 돌아가시겠다.
 일흔 둘이 된 노친네에게 할 일을 만들어 주어야 했다. 또, 주방에서 음식 만들 사람을 천상 구해야 할 판이었다.
 "마! 돈이 어디에 있어. 내가 지닌 은자 여남은 냥 죄다 다 썼어."
 장운평은 돈이 없었다. 은자 한 냥은 쌀 한 가마. 상당한 금액이었다.
 길평은 돈이 그의 사정이 아닌지라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도 안주가 없으면 술이 안 팔릴 텐데요."
 장운평은 고개를 들어 희선루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 버- 지- 이이이!'
 부친 장계창에 대한 분노가 샘솟았다. 차라리 목숨을 건 비무를 하는 것이 낫지. 골 아파서 견딜 재간이 없었다.
 "으드드득!!"
 장운평은 이를 갈았다.
 "지금 손 털면 아버지에게 지는 거야. 죽으면 죽었지. 아버지에게 못 하겠다. 라고 나는 말 못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장운평은 대성일갈했다.
 "빌어 처먹을! 앞으로 우리 희선루 저녁 장사에 나오는 요리는 무조건 소채볶음 하나다! 대신 소채 볶음은 공짜닷!!"
 길평과 노적삼 그리고 섭상란과 호정옥은 대경했다.
 "예엣!!"
 "말도 안 됩니다."
 "세상에 공짜 안주가 어디에 있어요."
 "어떻게 감당하시려구요. 손해가 엄청날 텐데."
 장운평은 고함을 쳤다.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 할 거 아냐. 너희들도 노 노야 요리 먹어 봤지. 그 요리 먹고 돈 내고 싶디. 아니잖아. 그리고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시는 게 사람이라고. 그러니깐 공짜로 소채볶음 주면 요리가 맛이 없다고 소란 피울 놈은 아마 없을 거야. 술장사에서 가장 골치 아픈 것 중에 하나가 술 취해서 시비 걸고 소란 피우는 놈이니깐. 까짓 거. 손해를 조금 보고 말지. 뭐!"
 오기가 어린 음성이었다.
 장운평은 강호를 떠돌며 참으로 온갖 군상들을 다 겪어 보았다. 강호를 돌아다니는 강호인에게 주루와 객잔은 즐거움이자 친구였다.
 
 길평과 노적삼 그리고 섭상란과 호정옥.
 그들은 재차 장운평에게 말하며 그를 말렸다. 하지만 장운평은 요지부동이었다. 오기가 일대로 일어 소 힘줄 보다 더 질긴 고집이 되었다. 희선루 허공으로 장운평의 고성이 메아리쳤다.
 "이래 망하나 저래 망하나. 망하는 것은 마찬가지야. 이왕지사 망할 것. 하고 싶은 대로 왕창 하고 망하는 게. 나- 아아!!"
 자포자기가 지나쳐 광기가 된 것은 아닐까?
 네 남녀는 머릿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의 눈앞에 서 있는 장운평은 맛이 가도 상당히 간 이였다. 결국 네 남녀는 포기했다.
 '뭐, 내가 주인인가?'
 '어련히 알아서 잘 안 할까?'
 '난 노임만 받으면 돼.'
 '휴우! 이제 희선루도 끝장이구나.'
 장운평은 마음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내가 아는 게 뭐 있어. 그냥 가는 거야. 앞만 보고 뛰면 되지 뭐. 어차피 다 망해가던 주룬데.'
 막 나가자!
 장운평의 희선루 영업 방침이 결정 되었다.
 
 바야흐로 전대미문의 주루가 응천부 창평방에서 생겨나고 있었다.
 상상초월. 전대미문. 경천동지.
 개업 박두!
 두두두두두두둥!!
 
 마침내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장운평과 네 남녀는 비장한 모습으로 각자의 오른손에 장대를 쥐고 서 있었다.
 장대는 제법 길었다. 위에 가로로 작은 봉이 달렸다. 장대에 펄럭이는 사각의 네모난 깃발.
 네 남녀가 손에 든 네 장대의 깃발에는 각기 다른 글이 쓰여 있었다.
 
 먹으면 힘이 불끈불끈!! 철전 한 냥.
 화주 한 병 시키면 안주는 공짜!! 화자 한 병에 은자 한 푼.
 들어나 봤나? 먹으면 밤이 행복해지는 복야면!!
 이 이상의 면은 없다. 최고 최강의 면!!
 
 두서없이 쓴 글자들.
 장운평은 소리쳤다.
 "꽂아! 이제 곧 정오 장사 시작이야!"
 길평. 노적삼. 섭상란. 호정옥은 동시에 대답했다.
 "예, 루주님."
 네 남녀는 희선루 앞에 땅바닥에 각자가 든 장대를 꽂았다.
 퍼퍼퍼퍽!
 장운평은 결연하며 비장한 얼굴로 네 깃발을 노려보았다.
 '승부닷!!'
 
 오시초(午時初).
 창평방의 소로를 한 중년인이 걷고 있었다. 중년인은 의기소침한 모습이었다. 양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힘없이 양팔을 휘적휘적 흔들었다. 걸어가는 그 모습이 매우 지친 듯했다.
 "하아! 어쩌지. 오늘 일을 못 했으니."
 창평방에 사는 장가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포구에서 짐을 나르며 생계를 이었다. 아내도 일을 나갔다. 그렇게 번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 일을 공쳤다. 당연히 돈을 손에 쥐지 못했다.
 "꼬르르······."
 배에서 밥 시계는 정확한 끼니때를 알리고 있었다.
 장가는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젠장. 배는 고프고 수중에 가진 돈은 철전 두 냥 뿐이고."
 하소연하는 말투의 음성.
 그런 장가의 시선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으응?"
 네 개의 깃발.
 "이상하네. 저 곳은 거의 장사가 되지 않는 희선루인데. 별안간 뭔 깃발이."
 장가의 발길은 호기심에 이끌려 희선루로 향했다. 점점 희선루가 가까이 시야에 들어오자 깃발에 쓰인 글들이 보였다. 장가는 실없다. 라는 표정을 지으며 피식 웃었다.
 "원. 장사가 안 되니. 별 놈······ 으응. 철전 한 냥?"
 장가의 눈가가 반짝였다. 그의 주머니 사정에 적합한 한 끼의 식사 복야면.
 당연히 장가의 발길은 희선루 안으로 그를 이끌었다.
 저벅저벅!
 장가가 희선루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 있던 길평. 섭상란. 호정옥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세 남녀는 동시에 크게 외쳤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장운평은 계산대에 앉아 장가를 보며 눈빛을 반짝반짝 거렸다. 동시에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재 개업 첫 손님이다. 과연······.'
 장운평은 심장이 생사투를 벌이듯이 두근두근 뛰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모든 신경과 이목이 장가에게 쏠렸다.
 장가는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앞에서 자리를 안내하는 섭상란과 호정옥. 전신에 입은 옷이 몸에 착 달라붙었다. 또한 무릎 위까지 다리가 밖으로 드러나도록 일부러 찢은 듯했다.
 뒤에서 두 여인의 몸매를 감상하는 눈요기에 장가는 깜빡 오늘 공쳤다는 것을 망각했다. 그는 연신 실실 웃었다. 흡사 바보처럼······.
 
 잠시 후.
 장가는 젓가락을 들고 멍하니 눈앞에 있는 면을 쳐다보았다. 그의 옆에 길평이 서서 빠르게 말하고 있었다.
 "저희 희선루는 낮에는 오직 면! 하나밖에 팔지 않습니다. 면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 면이 바로 이 복야면. 드시면 밤이 행복하실 겁니다. 손님."
 장가는 길평의 말이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그의 모든 정신은 탁자 앞에 자리한 복야면에 향해 있었다.
 면은 분명 면이로되. 육수는?
 "뭐, 이런 면이 다 있어. 시커멓건 둘째 치고. 이 냄새. 킁킁! 완전 한약재 달인 탕약 냄새잖아. 어디······."
 장가는 그릇을 들고 한 모금 먹어 보았다.
 "우웨엑! 써!! 이건 그냥 탕약 물에 면을 말아 놓은 거잖······ 가만! 장사를 하는 집에서 이런 면을 내놓았을 때는."
 장가는 착각했다.
 '맞어! 몸에 무지 좋을 거야. 그래서 이 한 가지 밖에 팔지 않는 거야. 값도 싸고. 몸에도 좋고.'
 착각은 자유닷!!
 장가는 별 의심하지 않았다. 설마 장사를 하는 집에서 먹는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치겠나? 라는 천추의 방심을 그는 하고야 말았다.
 '가난한 놈 뱃속에 들어갈 음식이야. 양 많고 값 싸면 금상첨화지. 간혹 이런 몸에 좋은 약재가 들어간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그 날은 노 나는 날이고.'
 장가는 탕액 냄새가 나는 복야면을 꾹 참고 다 먹었다.
 '몸에 좋을 테니깐. 국물 하나도 남기지 말자!'
 어쩌려고 그러느냐? 장가야!! 네가 먹은 그 국물은 최상질의 정력제만을 모아 달인 지상 최강의 정력 육수인 것을!!
 
 잠시 후 장가는 배를 채우고 꺼억꺼억 트림을 하며 희선루를 나왔다. 그 뒤를 따라 길평과 섭상란과 호정옥이 걸어 나왔다. 세 남녀는 첫 손님 장가의 등을 향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안녕히 가세요. 손님. 또. 오세요."
 장가는 걸어가며 귀에 들리는 세 남녀의 음성에 오른손을 위로 들었다. 그는 허공에서 오른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곤 중얼거렸다.
 "나중에 또 한 번 가 봐야지."
 몰랐다. 장가는 그가 지옥에 갔다. 왔음을.
 
 정확히 한 시진 후였다. 장가는 방바닥을 뒹굴었다. 그는 양손으로 하초를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으아아아악!"
 치솟는 양기가 쏠린 그 곳.
 미칠 것 같았다. 양기를 배출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듯했다. 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일을 나가고 없었다. 장가는 방바닥을 구르다가 벽에 머리를 쳐 박았다.
 쿵! 쿵! 쿵!
 장가는 오열하듯 외쳤다.
 "부처님! 옥황상제님! 크- 으으으······ 저 좀 살려 주십시오. 미치겠습니다."
 장가는 몸부림쳐야 했다. 치솟는 불끈불끈을 어떻게 해야 했다. 결국 그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곤 지쳐 쓰러지기 위해 창평방을 내달렸다.
 타다다닥!
 창평방을 내달리는 장가의 달음박질 속도는 실로 경이적일 정도로 빨랐다. 동시에 장가의 입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아- 우우우우우!"
 그 고성은 흡사 늑대에 달밤에 밤하늘에 고개를 들고 우는 소리와 매우 비슷했다.
 그런 장가를 창평방에 사는 몇몇 이들이 보았다. 그들은 의아한 눈으로 장가를 보며 말했다.
 "저 친구 왜 저래."
 "어디 맛이 간 것 같은데."
 "혹 미친 거 아냐?"
 "사람. 말을 해도."
 "안 미쳤으면 저럴 리가 없잖아."
 그들은 궁금했다. 도대체 장가가 뭔 짓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장가는 땅거미가 질 때까지 하루 반나절을 달렸다. 얼마나 창평방을 맴돌았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기는 죽지 않았다. 가히 천하제일의 정력 육수였다. 그 위력은 능히 죽은 자를 벌떡 일으켜 세울 정도였으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다음 날. 또 그 다음날. 삼일 후. 닷새 후.
 정오가 되면 희선루의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그 사람들은 죄다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먼저 희선루로 들어가기 위해 몸싸움을 하고. 끼어들기를 하며, 말다툼을 했다.
 "이 봐! 어디를 끼어들어. 뒤로 못 가."
 "아, 차례 지킵시다."
 "거 사람. 내가 아까 와서 자리를 찜해 두었단 말이오."
 장운평은 희선루 앞에 서서 킬킬거리며 웃었다.
 "우- 하하핫! 아버지. 배가 좀 아프실겁니다. 으- 헤헤헤헷!"
 희선루는 그렇게 창평방의 명물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정오의 희선루에서 파는 복야면은 반드시 하루에 한 번은 먹어야 하는 음식이 되었다. 안 먹고 집에 들어갔다간 마누라에게 맞아 죽기 때문이다.
 "자요. 이 돈 줄 테니. 집에 올 때 꼭 희선루에서 복야면 먹고 와욧!"
 마누라가 신신당부했다. 밤을 행복하게 해 주는 남자들의 필수 일용식. 복야면!!
 소문은 사람들의 입을 타고 퍼져 나갔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보다 빠른 것이 세상에 있을까?
 장운평은 상당한 돈을 끌어 모을 수 있었다. 초기에 쓴 은자 여남은 냥은 이미 회수했다. 그리고 순 수익의 반이 그의 몫이었다. 장운평은 돈을 버는 솔솔 한 재미에 푹 빠졌다.
 
 
 3 장. 술은 헌헌 미장부요. 안주는 절세가인이라·······.
 
 장가가 복야면을 정오에 먹은 그날 밤.
 초경을 막 한 시진 정도 남겨 놓은 시각이었다. 희선루는 낮 장사를 마치고 저녁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주루 입구 우측 옆에 자리한 계산대. 그 한 켠에 주(酒)가 쓰인 종이가 붙은 술 단지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길평. 노적삼. 섭상란. 호정옥은 어안이 벙벙했다. 술 단지 앞에 서 있는 장운평이 한 말 때문이었다.
 "뭐 해. 당장 술에 물 타!"
 길평은 영문을 몰라 물었다.
 "루주님."
 일단 호칭은 루주로 통일시켜 버린 장운평이다.
 "왜?"
 "아니 비싼 소흥주나 여아홍 같은 술이라면 몰라도. 겨우 싸구려 화주인데요. 그리고 화주에 물 타면 맛이 좀·······."
 "마! 안주를 공짜로 주는데. 최소한의 만회라는 것이 있어야 할 거 아냐. 그리고 누가 술에 물 왕창 섞으래. 적당히······· 알겠어. 적당히 섞어. 술을 먹는 놈들이 혀에 느껴지는 화주의 맛에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게. 길평이 너 주루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놈이라며. 계속 입 아프게 사람 말 시키지 말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나 해."
 길평은 입을 다물었다. 눈앞에 있는 상대 장운평은 그에게 노임을 주는 사람이었다. 고용된 몸으로 주인이 까라면 깔 수밖에 없었다.
 길평과 노적삼 그리고 두 여인 섭상란과 호정옥은 장운평이 시키는 대로 술에 물을 탔다.
 길평은 두 여인에게 말했다.
 "단지에서 약 사분지의 술만 따로 따라 놓구요. 그 단지에 물을 채워 놓으세요. 될 수 있으면 맑은 물을 부어야 해요. 그리고 물을 부은 다음 잘 저어 주세요. 만일 안 저어 주면, 단지 밑의 술과 위의 물이 서로 충분히 섞이지 않아요. 그리되면 미묘한 맛의 변화가 생겨 버려요. 손님 중에 술꾼이 있다면 단박에 그 맛의 차이를 알아 채 버리니깐. 조심해서 충분히 저어 주세요. 요즘은 고급 술 보다 싸구려 술에 사람들이 더 민감하니깐. 십분 주의를 하셔야 해요."
 나이 열일곱 살. 어릴 때부터 주루업계에서 점소이로 잔뼈가 굵었다. 길평의 현란한 술에 물 타기 비법에 두 여인은 멍했다. 여인인지라 주루에 술 먹으러 갈 일이 없었다. 헌데 희선루에서 사상 최초의 여자 점소이로 일하게 되었다. 주루의 드러나는 실상에 두 여인은 내심 결심했다.
 '울 아버지. 절대 싸구려 주루에서 술 마시지 말라고 해야겠어.'
 '차라리 집에서 담가 먹는 술이 낫지. 나중에 시집가면 신랑에게 꼭 술은 집에서 먹으라고 말해야지.'
 장운평은 그 사이 노적삼을 데리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른바 비법의 전수라고 해야 했다.
 "노 노야. 솔직히 연세가 일흔 둘이나 되는 노 노야를 우리 희선루가 계속 고용을 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죽겠다고 자폭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시겠습니까?"
 "··············."
 노적삼은 말없이 고개를 아래로 푸욱! 숙였다. 귀에 들리는 장운평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장운평은 노적삼을 힐긋 쳐다본 후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 희선루를 너무나도 아끼시는 노 노야를 보면 저는 도저히 노 노야를 해고 할 수가 없습니다. 양심상 말이죠."
 노적삼은 고개를 들어 장운평을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동자에는 희망의 빛이 그득했다.
 "해서 말인데. 무조건 제가 시키는 대로 안주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먼저 저녁 장사에 나가는 안주는 소채볶음이라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우린 그 거 하나만 합니다. 공짜이니. 소채에 서너 종류 이상의 것을 넣지 마십시오. 뭐, 물론 소채를 사들일 때부터 무조건 가장 싼 소채 세 종류만 살 겁니다만. 각설하고 푸줏간에서 얻어 오는 돼지비계를 솥에 적당히 두르시고요."
 노적삼은 눈빛을 반짝이며 장운평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나이에 희선루에서 나가면 일할 곳이 없었다. 필사적으로 희선루에 붙어 있어야 했다. 쫄딱 망해 일해야 먹고 사니깐.
 장운평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소채를 볶을 때는 소금이고 뭐고 일절 아무 것도 넣지 마십시오. 그저 생 소채만 볶는 겁니다. 다 볶은 후에는 낮에 팔다 남은 복야면의 육수 있죠. 그 걸 소채볶음에 적당히 뿌리십시오. 너무 많이 뿌려 탕인지 볶음인지 헷갈리게 하지 마시구요. 신경 좀 쓰십시오. 적당히 양념장처럼 복야면의 육수를 뿌리시는 거.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루주님."
 "좋습니다. 그러면 어서 저녁 장사 준비 하십시오."
 장운평은 양손을 들어 가슴 앞에서 손뼉을 쳤다.
 짝!
 장운평은 뒤로 돌아서는 노적삼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의 입가에 자연스레 한 미소가 걸렸다.
 음흉하고 사악한 미소.
 장운평은 노적삼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별 거 있어. 다 그렇고 그런 거지.'
 장운평은 눈빛을 반짝였다. 그도 몰랐다. 전신 혈관(血管)에 흐르는 그의 피. 그 핏속에 부친 장계창의 피가 형 장운상보다 더 진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상인의 피는 진하고 진하다!
 
 초경이 되어 손님들이 몰려 왔다. 값이 싸다는 것. 안주가 공짜라는 것이 손님들을 끌어 모았다. 희선루 안은 손님들로 서서히 꽉 들어차기 시작했다.
 희선루 안에 있는 탁자는 모두 여섯 개. 그 자리가 모두 차고 입구 밖으로 길게 손님들이 줄을 섰다.
 장운평은 계산대에 앉아 두 손을 머리 뒤로 돌렸다. 그는 두 손을 깍지를 끼며 느긋하게 전신을 뒤로 기댔다. 시야에 길평과 섭상란 그리고 호정옥이 바삐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여기 한 병 더."
 "예에."
 "안주 한 접시 더 줘."
 "알겠어요. 곧 갔다 드릴 게요."
 "여기 좀 치워 줘."
 "네."
 길평과 섭상란 그리고 호정옥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희선루 입구로 두 장한이 들어섰다.
 뚜벅뚜벅!
 마침 탁자 하나가 비어졌고. 밖에서 기다리다가 그것을 본 두 장한이었다.
 "장사가 잘 되는 모양인데."
 "하하. 당연하지 않겠어. 안주가 공짜인데. 누가 안 오겠어."
 "하긴."
 "어여 가서 자리에 앉자구."
 "알겠네."
 응천부에 자리한 보운 표국의 두 쟁자수 편육과 육오종. 가진 돈이 얼마 없었다. 표국의 짐을 나르는 쟁자수라 수입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싸고 많이 마실 수 있는 싸구려 화주를 즐겨 찾았다. 헌데 오늘 뜻밖에도 안주가 공짜라는 희선루를 알게 되었다. 술꾼이 뜻밖에 구미가 당기는 술집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모래사막에서 녹주(오아시스 지칭)를 만난 기쁨과 같다.
 편육과 육오종은 빈 탁자에 앉으며 히죽 웃었다. 두 사람의 시야에 가까이 다가오는 호정옥이 보였기 때문이다.
 호리호리하고 가느다란 허리의 굴곡.
 얼굴은 그저 그렇지만 유려하고 부드러운 곡선이 돋보이는 호정옥이었다.
 '흐흐흐·······.'
 '꿀꺽!'
 자고로 술집에서 여자를 고용하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여인의 몸매가 유달리 술을 당기게 한다는, 확인되지 않는 속설 때문이 아니던가?
 호정옥은 주문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편육과 육오종이 앉은 탁자 위에 화주 한 병과 소채볶음 하나를 내려놓았다.
 "저희 희선주는 무조건 화주와 소채볶음만 팔아요. 소채볶음은 공짜이고. 떨어지면 말씀만 하세요. 그 즉시 갔다 드릴 테니까요. 그리고 화주 한 병 당 저희는 은자 한 푼이에요. 싸죠!!"
 생긋 웃는 호정옥.
 편육과 육오종은 불만이 없었다. 은자 한 푼이면 하루 세 끼를 사 먹을 수 있다. 물론 싸구려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이다. 없는 이에겐 나름 큰돈이라 할 것이나. 안주가 공짜로 따라 나온다. 게다가 모자라면 계속 준다고 하지 않는가?
 다른 주루에서 화주 한 병에 은자 한 푼에 못 미치는 철전 여덟 냥을 받는다. 또한 안주는 별도다. 안주까지 치면 못해도 은자 서너 푼은 주어야 했다. 그에 비하면 희선루는 엄청 싼 것이다. 더욱이 덤으로 호정옥의 몸매를 눈요기 할 수 있었으니. 어찌 불만이 있을 수 있을 쏘냐? 기꺼이 아주 흔쾌히 편육과 육오종은 값을 치렀다.
 
 잠시 후 두 사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소태를 씹은 얼굴이었다.
 네 맛도 내 맛도 없다!
 완전 입맛을 버려 버리게 만드는 소채볶음이었다. 게다가 볶음에 끼얹은 양념장. 시커먼 것이 맛이 영판 한약재를 다린 탕약이었다.
 육오종의 입에서 거친 음성이 튀어 나왔다.
 "염병. 그러면 그렇지. 공짜가 어디 가."
 "섞을! 술은 군자이고. 안주는 절세가인이라. 술과 안주가 만나는 것은 곧 군자호구나 마찬가지인데. 우라질!"
 편육과 육오종은 안주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냥 나갈까?"
 "쩝! 그냥 마시자구. 싸잖아."
 "하긴. 우리 형편에 이런 술이 어디야. 하지만 안주 빨이 영·······."
 "참고 마시게. 술을 좀 더 많이 마시면 되니깐."
 "체!"
 두 사람은 참고 술을 마셨다.
 싸다!
 그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엉덩이를 뗄 수 없었다. 한 세 병을 비웠을까? 두 사람은 알딸딸했다.
 "그만 일어나세. 가서 자야지."
 "그러지. 내일 또 일을 해야 할 테니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셈을 치르고 희선루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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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경(四更) 말(末).
 좌우에 널찍한 일자로 자리한, 평상 같은 곳. 보운표국의 쟁자수들 거처였다.
 "끄아아악!"
 "사, 사람 살려!"
 절규가 야심한 밤에 쟁자수들 거처를 떨어 울렸다.
 쟁자수들은 그 소리에 잠을 설치며 뒤척거렸다.
 "뭐야."
 "야. 잠 좀 자자."
 "저 자식들. 술 쳐 먹고 들어와서 뭔 지랄이야."
 잠을 설친 쟁자수들은 편육과 육오종에게 화를 내었다.
 편육은 두 무릎을 바닥에 꿇고 양손으로 거시기를 움켜쥐었다. 그리곤 머리를 바닥에 가져다 대었다. 그 자세는 엉덩이를 높이 위로 치켜든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나, 죽어·······."
 육오종은 편육의 뒤에서 자리한 벽에 전신이 착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오른손으론 벽을 짚고 왼손으로 거시기를 움켜쥐었다. 육오종은 숨을 할딱거리며 처절하게 외쳤다.
 "허, 헉! 살려 주세요······· 제발 날 좀·······."
 편육과 육오종은 미칠 것 같았다. 강렬하게 치솟는 양기. 감당할 수가 없었다. 보운표국의 쟁자수라는 가난한 직업 탓에 일찌감치 혼인은 포기했다. 가끔 창기들이 있는 창관을 이용했다.
 "가야·······."
 "도··· 돈!"
 편육과 육오종은 사력을 다해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거처 입구를 향해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갔다. 가야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창기들이 있는 창관으로 가지 못한다면 필경 전신이 터져 죽을 것 같았다.
 그들 두 사람 탓에 보운표국의 쟁자수들은 잠을 설쳤다. 쟁자수들은 베고 있던 베개를 거처 입구를 기어가는 편육과 육오종에게 집어 던졌다.
 휘익! 휙!
 그리곤 소리쳤다.
 "야! 사람이 잠을 자야 할 거 아냐?"
 "여기에 너희만 살아."
 "저 자식들 뭐야. 왜 기어 가."
 보운표국의 쟁자수들은 몰랐다. 편육과 육오종이 최강의 정력 육수를 맛 본 것을.
 
 약 이레가 흘렀다.
 보운표국의 국주 보경운은 그의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기가 막혔다. 동시에 치밀어 오르는 격한 분노를 느꼈다.
 앞에 서 있는 약 삼십여 명의 쟁자수들.
 하나 같이 눈이 휑했다. 한 눈에 보아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굴은 피로에 절어 푸르죽죽했고 전신은 지칠 대로 지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비실비실 거리며 비틀거렸다.
 보경운은 그 광경에 절로 입에서 욕설이 튀어 나올 것 같았다. 그는 매우 화가 나는 듯 고개를 우측으로 홰액 돌렸다.
 보운표국의 총관 언수견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곧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언수견의 귀에 보경운의 고성이 들렸다.
 "자네는 뭐 하는 사람인가? 표행을 나가야 하는 쟁자수들이 짐을 들지도 못할 정도로 저런 되었는데. 어찌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표국주님."
 "이익!"
 보경운은 언수견을 죽일 듯이 노려 보았다.
 주변에 자리한 표두들과 표사들이 기가 막힌 얼굴로 쟁자수들을 쳐다보았다.
 "나 참. 저런 몸으로 무슨 표행을 나간다고."
 "도대체 저 사람들 무슨 생각으로 저리 몸을 엉망으로 만들었어."
 "날새군. 이번 표행은 무리야. 짐을 운반할 쟁자수들이 저런데. 무슨 표행을 나가."
 "표국주님. 열 상당히 받으시겠군. 표행을 나가지 못하면 손해가 얼마야."
 보경운은 전신을 분노로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거칠게 고개를 돌려 쟁자수들을 쳐다보았다.
 "다 해고야!"
 보경운의 분노 어린 외침에 쟁자수들은 얼굴이 하얗게 돌변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그와 같은 상황들이 응천부 곳곳에서 벌어졌다. 상가와 표국 그리고 관부까지. 어찌된 셈인지 다들 몸이 정상이 아닌 자들이 속출했다. 반면 입이 찢어져라 귀밑까지 입 꼬리가 벌어진 이들이 있었으니.
 "으- 하하하핫!"
 "오- 호호호홍!"
 졸지에 엄청난 거금을 벌어들인 응천부의 환락가이자 사창가. 남문대로와 동문대로 사이에 있는 추서방의 두 거물.
 국춘호와 진월화.
 두 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전 남경의 돈이 모조리 사창가로 모여드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돈 벼락을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장운평이 희선루를 맡은 지. 덜도 더도 아닌 딱 한 달 후였다.
 운향각에 자리한 장계창과 막도영은 얼이 빠진 얼굴로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맞은편에는 장운평이 앉아 있었는데. 그의 앞 탁자 위에는 장부와 한 궤가 놓여 있었다. 궤에는 은자들이 그득했다.
 장운평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부친 장계창을 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지난 한 달 동안 희선루의 순 수익이 정확하게 은자 백구십 여덟 냥이었습니다. 처음 약속대로 아흔 아홉 냥이 제 몫입니다. 이미 따로 제 몫을 챙겼습니다. 자아, 약속대로 매상의 절반입니다."
 장운평은 왼손으로 궤를 앞으로 밀었다.
 장계창은 그야말로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그는 멍한 눈으로 궤에 가득한 은자를 바라보았다.
 막도영은 납득이 가지 않는 얼굴로 장운평을 보며 물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장운평은 히죽 웃었다.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됩니까? 돈 번 거죠."
 "네가 어떻게 그리 쉽게. 게다가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막도영은 믿을 수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장운평은 싱긋 웃으며 곁눈으로 부친 장계창을 흘겨보았다. 동시에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했다.
 "다 제 능력이 출중해서 이리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으- 하하하핫!"
 장운평은 고개를 위로 들며 호탕하게 웃었다.
 장계창은 그 웃음에 정신을 차리며 아들 장운평을 주시했다. 눈가를 가늘게 뜨며 날카로운 눈빛을 띠었다.
 '뭔가 있어. 분명 내가 모르는 야료를 부렸거나. 저 놈이 무슨 교활한 잔머리를 굴린 것이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저 돈들이 설명이 되지를 않아.'
 장계창은 장사로 잔뼈가 굵은 상인이다. 장사를 한 지 삼십여 년 가까이 된다. 그 세월이 주는 경험과 연륜은 상당하다. 노련하며 철두철미하고 앞뒤 이재를 살피는 탁월한 안목. 나름 상황의 핵심을 간파하는 통찰력. 드러난 사실 이면에 자리한 감추어 진 것을 추측하는 판단력 등등. 장운평이 맞상대하기엔 저 위에 앉아 있는 상인이다.
 장계창은 아들이 장사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 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이 돈을 벌었다? 분명 뭔가가 있는 것이다.
 장계창은 눈빛을 반짝이며 아들 장운평을 예의주시했다.
 장운평은 부친의 따가운 시선에 내심 흠칫했다.
 '이크! 아버지가 뭔 냄새를 맡은 것 같은데.'
 눈치 하나는 귀신 저리 가라. 라고 할 그였다. 장운평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그럼 할 일이 있어서·······."
 막도영은 실소했다. 자리를 피하고자 하는 속내가 여실히 드러나는 장운평이었다. 그는 왼손을 위로 들어 올리며 장운평에게 뻗었다.
 "잠깐만. 기다려 보거라."
 "죄송합니다. 막숙. 제가 희선루 일로 좀 바빠서요."
 장운평은 부리나케 뒤로 돌아서며 방문으로 황급히 뛰다시피 걸어갔다.
 막도영은 왼손을 내리며 허! 하는 외마디 음성을 흘렸다.
 장계창은 그 사이 눈매를 번득이며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씨이이익!
 막도영은 고개를 우측으로 돌려 장계창을 쳐다보았다.
 "형님. 저 녀석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숨기는 것이 있지. 운평이 저 놈. 예나이나 지금이나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면. 일단 자리를 피하고 보는 버릇은 여전해. 그리고 불과 한 달 만에 문을 닫기 직전인 희선루를 기사회생 시키고. 이렇게 은자까지 벌어들일 정도라면. 자네나 내가 모르는 뭔 수를 썼다고 봐야하네. 저 놈은 잔머리 하나는 귀신 같이 굴리니·······."
 아들을 꿰뚫어 보는 아버지의 말이다.
 막도영은 피식 웃었다.
 "형님. 너무 운평이를 부정적인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제가 보기에는 운상이보다는 운평이가 형님 피를 더 진하게 받았습니다. 보십시오. 이 정도의 상재를 보이지 않습니까?"
 막도영은 탁자 위에 있는 궤를 오른손으로 가리켰다.
 장계창은 막도영의 말에 고개를 숙여 궤를 바라보았다. 그는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꼼수로 벌어들인 돈은 공돈이나 매 한 가지일세. 그런 돈은 쉽게 손에서 빠져 나가네. 진짜 돈은 땀과 노력으로 손에 쥐는 것이라네."
 장계창은 아들 장운평이 벌어들인 돈을 보며, 아들을 인정하지 않는 말을 내뱉었다.
 막도영은 눈가를 찌푸렸다. 두 부자 사이가 상당히 멀리 벌어져 있었다.
 "형님. 대체 언제쯤이면 운평이와 사이가 좋아지실 겁니까?"
 장계창은 크게 헛기침을 했다.
 "어- 허어엄!"
 그는 민망함을 감추려는 듯 막도영을 보며 말했다.
 "운평이 녀석은 가출한 후 육년 만에 집에 돌아 왔네. 분명 그 동안 세상 질릴 대로 돌아 다녔을 것이네. 그 놈을 이대로 가만 놔둔다면, 필경 사람 구실을 못하는 폐인이 되고 말 것이네. 나는 내 아들이 그리 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네. 옛말에 이르기를 "아들이 소중하면 매와 야단을 아끼지 마라!" 라는 말이 있네. 운평이 녀석은 조이고 닦고 닦달해야 제대로 사람 구실 할 아일세."
 막도영은 할 말이 없었다. 오해였다. 장계창은 아들 장운평을 정확히 보고 있지 못했다. 과거는 모르지만 지금 현재의 장운평은 달랐다. 장계창이 생각하고 보는 것은 과거의 장운평이었다.
 "형님. 운평이는 달라졌습니다. 그러니 너무 그리 운평이를 몰아 세우지 마십시오. 그리고 좀 넉넉하게 운상처럼 대해 주십시오."
 장계창은 막도영의 말에 슬그머니 말문을 닫아 버렸다. 막도영의 말에 답하기가 나름 난처했기 때문이었다.
 막도영은 장계창을 보며 입술 사이로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한 사람의 집 입구 땅바닥에 몇 개의 돌이 박혀 있다. 헌데 그 중 유달리 한 돌이 지면 위로 삐죽 튀어 나와 있었다. 그 탓에 집을 출입할 때마다 그 돌에 걸려 한 사람이 넘어지곤 했다.
 당연히 그는 열을 받았다. 집에 들어가서 그는 망치를 들고 입구로 나왔다. 그리곤 눈에 거슬리는 돌을 망치로 때려 부셔 버렸다.
 사람들은 그런 경우를 가리켜 모난 돌이 정을 박는다. 라고 말한다. 너무 튀고 눈에 잘 띠는 대가이다.
 장계창에게 아들 장운평은 그 돌이었다. 아들이란 쇠를 늘 두들겨 때려야 명검이 만들어진다. 라고 생각하는 장계창이었다.
 
 장운평은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온 순간 흠칫했다. 앞에 어린 조카 장소미가 생글생글 웃으며 서 있었다.
 이제 나이 열살. 하지만 겉만 보고 속아서는 안 된다. 장계창의 특별 교육을 통해 지적 능력은 상상을 불허했다. 또래의 아이들을 초월한지 오래다. 하지만 감성은 열살 어린 아이다. 어찌보면 기형적인 성장을 하는 가엾은 구석이 있는 아이다.
 강적 출현!!
 장운평은 가죽신을 신고 뜰로 내려섰다. 그는 장소미를 못 본 척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장소미는 쪼르르 잽싼 걸음으로 장운평의 우측으로 따라 붙었다. 그녀는 장운평과 보폭을 맞추려고 애를 썼다.
 "숙부. 이번에 보니 엄청 많은 돈을 버셨던데요."
 장운평은 내심 장소미를 경계했다.
 '요것이 무슨 낌새를······· 에이. 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장운평은 조카 장소미의 나이를 생각했다. 아직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허나 그것은 착각이었으니. 부친 장계창의 원대한 포석인 장소미는 충분히 장운평을 쪔 져먹을 만 했다. 장소미는 귀여운 보조개를 만들며 웃었다. 그 모습이 매우 앙증맞고 귀여웠다.
 "숙부님. 저에게 좀 가르쳐 주세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요."
 초롱초롱한 눈망울 가득, 돈에 대한 집요한 집착의 눈빛을 띠었다.
 장운평은 걸어가며 곁눈으로 장소미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의 시야에 장소미의 눈빛이 보였다.
 '이크!'
 장운평은 내심 화들짝 놀랐다. 여느 아이와 달라도 너무 다른 장소미였다.
 '썩을! 분명 아버지는 자신의 후계자로 소미. 조것을 염두에 두시는 것이 틀림없어.'
 눈치가 보였다. 부친의 특별 교육을 받는 장소미.
 장운평은 침묵했다. 입을 꾸욱 다물고 걷기만 했다. 입을 열면 장소미가 꼬투리를 잡으며 귀찮게 할 것이 자명했다.
 터벅터벅!
 장소미는 고개를 좌측으로 돌려 장운평을 올려다보았다.
 '체! 만만하지가 않네. 하긴. 뭐, 할아버지도 당한 잔머리의 소유자인 숙부라면 당연 하겠지만서두.'
 누가 알까? 열 살짜리의 머릿속에 한 마리 능구렁이가 들어 앉아 있다는 것을. 달리 세상은 장소미 같은 아이들을 가리켜 천재라고 하던가? 상술에 특화된 천재 장소미.
 "숙부. 왜 말이 없어요. 제가 귀찮아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시무룩한 기색을 띠었다. 누군가가 장소미를 보았다면 분명 미소를 머금을 것이다. 사람의 경계심과 마음을 사르르 녹이는 어린아이들 특유의 천진난만함. 그것이 장소미의 얼굴에 한 가득 어려 있었다.
 장운평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 잡았다. 이를 꽈악 다물며 중얼거렸다.
 '크···· 만음곡의 요녀들 색혼소가 차라리 낫지.'
 장운평은 최선을 다해 장소미의 천진난만함에 저항했다. 흔들리는 마음을 혼신을 다해 붙잡았다.
 장소미는 여전히 말없이 걸어가는 장운평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만만하지가 않네. 그렇다면·······.'
 장소미는 고개를 든 채 빠르게 눈빛을 바꾸기 시작했다.
 "숙부님. 아이잉! 좀 가르쳐 주세요. 소미는 꼬오옥 알고 싶다구요."
 간절한 열망을 담은 맑고 고운 어린아이의 눈빛!
 어느 마도의 절세 마두가 그런 가공할 안공(眼功)을 펼칠까? 추운 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하고. 따뜻한 햇빛은 옷을 벗게 한다고 했던가?
 장소미의 강력한 눈빛 공격에 장운평은 매우 힘들었다. 곁눈으로 장소미를 흘겨보는 것을 최대한 자제했다.
 '과연 아버지의 교육을 받은 녀석답다. 아니 년인가? 형의 그 알아주던 머리를 고스란히 이어 받은 데다. 아버지의 그 상술을 건네받았으니.···· 방심하는 순간 내가 당할 수도 있다.'
 장운평은 이마에 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작은 땀방울들이 서서히 이마 위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내가 긴장을 한다는 것인가?'
 장운평은 기가 막혔다. 그 자신도 모르게 본능이 어린 조카에게서 위험을 느끼고 있었다.
 대단하다. 장소미. 천하에서 제일 강한 열다섯 명 중 한 사람인. 숙부 장운평을 긴장하게 만들다니. 역시 천재!!
 
 장운평의 속과 달리 장소미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벌써 몇 번에 걸쳐 숙부 장운평을 공격했다. 그런데 죄다 무산 되었다. 장소미는 장운평을 강적이라고 판단했다.
 '무지 센데. 할아버지가 당했다고 하신 말씀이 맞아. 으으음.'
 장소미는 입술을 살며시 깨물며 전신을 장운평의 우(右) 반신(半身)에 기대었다. 동시에 사근사근한 귀여움이 한 가득 묻어 나오는 음성을 흘렸다.
 "숙부님. 귀여운 조카에게 좀 가르쳐 주세요. 어떻게 하면 숙부님처럼 그렇게 돈을 많∼ 이∼ 벌수가 있어요. 숙부님. 아잉! 사랑하는 숙부님. 소미에게 좀 말해 주세요."
 장운평은 장소미의 음성을 듣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전율스러운 한 줄기 기운이 전신을 훑으며 아래로 스쳐 지나갔다.
 사아아아앗!
 오싹하며 으스스했다.
 머리카락과 전신 솜털이 허공 위로 일제히 일어설 듯했다.
 설마 이런 지독한 공격을 장소미가 가해 올 줄 미처 몰랐다.
 장운평은 마음이 뒤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일순간 말해 주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안- 돼- 에에!'
 장운평은 마음속으로 크게 외치며 사력을 다해 장소미의 공격에 맞서 갔다.
 "커- 허어어엄!!"
 허공으로 크게 일부러 헛기침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장소미는 일순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장운평에게 발출한 공격이 무산되며 산산이 흩어졌다.
 '에이! 씨- 이이!'
 장소미는 장운평이란 강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은 듯 했다. 작은 조막손을 굳게 쥐며 양 팔뚝을 가늘게 떠는 것이 귀엽다.
 "호호. 숙부님이 소미에게 이렇게 냉정하실 줄은 몰랐네요. 할 수 없죠. 뭐, 그럼. 저는 일이 있어서요. 나중에 봐요. 숙부님."
 장소미는 냉큼 몸을 우측으로 돌렸다. 그리곤 발랄하게 깡충깡충 뛰어 갔다.
 "랄∼라라∼랄!"
 그 모습이 뒤에서 바라보는 이에게 극심한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장운평은 전신을 비칠비칠 거렸다.
 몸을 바로 가누지 못하고 쓰러질 듯하다. 그는 전신을 좌우로 비틀거렸다.
 "아버지. 애 하나 완전히 버려 놓으셨습니다. 누가 소미를 보고 열살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도대체···."
 장운평은 몸을 바로 하며 중얼거렸다.
 아버지 장계창. 그의 심모원려가 예상 외로 막강했다.
 한편 장소미는 걸어가며 힐끔 고개를 뒤로 살짝 돌렸다. 시야에 몸을 돌려 계속 걸어가는 장운평이 보였다.
 '빠득! 두고 봐요. 내 언젠가는 숙부를 반드시 이겨 보일 테니깐.'
 장소미의 두 눈동자에 강렬한 전의가 활활 불타올랐다.
 승부는 이전(二戰) 일승일패. 무승부였다.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한 입 건너 두 입. 두 입 건너 세 입. 희선루가 재 개업한 지 한 달이 갓 지났을 때. 응천부에서 창평방의 희선루를 모르는 사람은 몇몇 부류 밖에 없었다.
 부자와 고위 관료 그리고 남부러울 것이 없는 이들.
 특히 서문대로와 북문대로. 두 곳에는 희선루에 대한 입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다들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않았다.
 거시기 하다.
 남자의 거시기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낮에는 가난한 이들이 복야면을 위해 길게 줄을 섰고. 밤에는 싼 화주와 공짜 안주에 혹해 사람들이 몰렸다. 자연스럽게 희선루가 많은 돈을 벌었다. 라고 카더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그 말들은 바람을 타고 창평방에 은밀히 세력을 뻗치던 흑응파 수뇌들의 귀에까지 이르렀다.
 
 한 방안.
 네 명의 사내가 떡 벌어지는 술상을 앞에 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면에는 한 눈에 보아도 흉측하게 생긴 한 장년인이 앉아 있었다. 그의 우측으로는 이제 스물 초반의 한 청년이 있었고. 맞은편에는 한 중년인이 앉았다. 그리고 장년인의 맞은편에는 청년과 서너 살 차이가 나는, 멧돼지를 연상시키는 한 우락부락한 장한이 있었다.
 흑응파의 두목(頭目) 단도린은 좌측에 앉은 중년인 판상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비사파 놈들. 요즘 어때."
 "예, 형님. 그 놈들. 국춘호와 진월화 덕분에 살판났습니다. 돈을 무더기로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끄으응!"
 단도린은 앓는 신음성을 흘렸다. 그는 안면에 아까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도린의 맞은편에 앉은 장한 양장귀.
 그는 오른손으로 가슴을 탕탕 치며 호기롭게 말했다.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두목. 제가 추서방으로 가서 두 년 놈을 박살내고. 추서방을 저희 흑응파의 구역으로 만들고 오겠습니다."
 단도린의 우측에 앉은 단조웅.
 그는 안면에 인상을 쓰며 양장귀에게 눈을 부라렸다.
 "입 안 다물래. 양장귀."
 "아따. 소 두목. 왜 그러십니까? 저는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이 머리 없는 무뇌아 자식아. 네놈이 추서방을 치면 비사파 애들이 잘도 가만히 있겠다. 만일 그놈들이 치고 나오게 된다면 곧장 전쟁으로 돌입해. 지금 우린 그놈들에게 힘이 딸려. 알겠어. 비사파 놈들과 국춘호 그리고 진월화가 손을 잡는 바람에 우리가 세가 기운단 말이야."
 양장귀는 움칫거리며 전신을 움츠렸다.
 판상우는 양장귀를 보며 혀를 찼다.
 "쯧쯧. 머리는 어디에 놔두고 몸만 와 있는지·······."
 못마땅한 음성이었다.
 단조웅은 눈에서 불을 키듯 음산한 눈빛을 띠며 시선을 판상우에게 주었다.
 "부 두목. 그래도 우리 흑응파 제일의 역사입니다. 제일 앞에서 싸우는 돌격대장인데·······."
 판상우는 움찔했다. 맞은편에 앉은 단조웅. 흑응파의 두목 단도린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양장귀는 단조웅의 측근이었다.
 '빌어먹을 놈. 제 측근을 욕하는 것은 곧 자신을 욕하는 거다. 이거지.'
 판상우는 안면에 불쾌한 빛을 띠었다.
 단조웅은 판상우를 직시하며 도전적인 눈빛을 번득였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냉랭했다.
 단도린은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탁자를 가볍게 쳤다.
 타, 탕!
 그는 아들 단조웅과 판상우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지금 우리가 서로 싸울 때냐? 비사파의 발효봉. 그 자식이 국춘호와 진월화 덕에 날로 돈을 벌어들이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가 비사파 놈들에게 먹혀! 알겠어. 정신들 똑바로 차리란 말이야. 썩을 놈들 같으니라구."
 단도린은 역정을 내며 안면에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판상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부 두목."
 "예, 형님."
 "창평방 일은 어떻게 되었나? 가난한 놈들이 사는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만만하게 돈을 쥐어 짤 수 있는 구역인데."
 판상우는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대형. 돈을 짜내어 보려고 해도 그리 만족스럽게 돈이 나오지 않습니다. 워낙에 가난한 놈들이 모여 살다보니."
 단도린은 판상우를 보며 고함을 쳤다. 그는 상당히 속이 쓰린 표정을 지었다.
 "돌겠군. 그래. 그럼. 어디서 돈을 만든단 말이야. 지금 비사파 놈들 추서방에서 들어오는 돈을 마구잡이로 뿌리며 세력 확장하고 있다는 걸. 알아, 몰라."
 "··················."
 판상우는 말이 없었다. 그는 남몰래 맞은편에 앉은 단조웅의 기색을 살폈다. 아니다 다를까? 단조웅이 입을 열며 끼어들었다.
 "아버지. 제게 맡겨 주십시오. 제가 단숨에 창평방에서 돈을 만들어 내겠습니다."
 단도린은 픽 실소하며 고개를 아들 단조웅에게 돌렸다.
 "내가 뭔 수로 돈을 만들어 내! 여기 있는 부 두목도 못 만들어 낸 일인데."
 은연중에 판상우를 자극하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단도린은 그 자신이 내뱉은 말실수를 전혀 알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판상우는 내심 욕설을 내뱉었다.
 '육시럴. 니미! 아주 부자지간에 다 해 먹어라. 명색이 부 두목인데. 우라질!'
 판상우는 심중 불만이 가득했다. 허나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가슴 깊숙이 숨겨만 두었다.
 단조웅은 부친의 말에 머릿속으로 급히 대답할 말을 생각했다. 그러나 적절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양장귀가 호탕한 음성을 내뱉었다.
 "창평방에서 돈이 나올 곳이 있습니다. 두목!"
 좌중에 자리한 세 사내의 이목이 양장귀에게 쏠렸다.
 단도린은 양장귀를 보며 소리쳤다.
 "무슨 말이야?"
 "네, 두목. 최근에 창평방에 있는 희선루가 돈을 왕창 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놈들에게 보호비를 뜯어내면 됩니다. 그러니 제게 한 번 맡겨 봐 주십시오."
 양장귀는 자신만만했다. 고개를 넙죽 아래로 숙였다.
 판상우는 양장귀에 말에 아! 하며 작은 외마디 음성을 흘렸다. 깜빡하고 있었던 것이다.
 양장귀는 고개를 들며 단도린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 단도린이 판상우에게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는 곳이야. 부 두목."
 "그게 얼마 전에 재 개업을 한 주루입니다. 그런데 최근 한 달 동안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판상우는 단도린에게 희선루의 복야면과 안주가 공짜인 것을 설명했다.
 단도린은 판상우의 설명에 침을 꼴깍 삼켰다. 그의 혀가 그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살짝 핥는 것이 구미가 동하는 것 같았다.
 단조웅은 부친 단도린을 보며 내심 피식 웃었다. 아버지도 사내였던 것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군. 내가 옛날부터 생각하던 주루 형태와 똑같아······.'
 단조웅은 의문을 느꼈다. 옛날부터 그가 한 번 운영해 보고 싶은 주루. 그것이 딱 희선루였다. 마치 그가 생각한 것을 그대로 희선루에 옮긴 듯하다.
 단도린은 판상우의 설명이 끝나자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렸다.
 "이상한데. 그 주루. 꼭 우리 흑도에나 있을 법 하잖아. 혹시 다른 성에서 황도에 알 박기 하려고 세력을 뻗치는 거. 아냐."
 판상우는 안면에 긴가민가 하는 낯빛을 띠었다.
 "글쎄요. 응천부에 틈만 있으면 고개를 들이미는 흑자 놈들이 한, 둘이 아니니······."
 단도린은 판상우의 음성에 고개를 돌려 양장귀를 쳐다보았다.
 "양장귀."
 "예, 두목."
 양장귀는 단도린을 보며 대답했다.
 "그 주루. 누가 운영하는 지. 아는 것이 있냐?"
 "예, 제가 아는 바로는 서문대로의 장가 포목점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도린은 양장귀의 말에 안면에 의구심을 떠올렸다.
 "장가 포목점?"
 판상우는 맞은편에 앉은 단조웅을 힐긋 쳐다본 후 시선을 단도린에게 주었다.
 "장 대관(부자를 지칭)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 집 둘째가 옛날 친구····."
 판상우는 말을 흐리며 눈짓으로 단조웅을 가리켰다.
 단도린은 판상우의 말에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 장 대관."
 양장귀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네, 제가 들으니 얼마 전에 가출 했던 그 집 둘째가 돌아와 희선루를 맡았다고 합니다."
 순간 단조웅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동시에 그는 이를 갈았다.
 "으드드득!!"
 이가는 소리에 단도린과 판상우 그리고 양장귀가 시선을 단조웅에게 주었다.
 단도린은 아들 단조웅을 보며 물었다.
 "갑자기 이는 왜 갈아? 그리고 너. 인상 안 풀래. 이게 어디서 아비 앞에서 인상을 써. 죽고 잡냐?"
 단도린은 아들이 시건방지다고 생각하는 듯 험악한 눈빛을 부라렸다.
 단조웅은 재빨리 얼굴을 풀며 무엇인가 꾸욱 눌러 참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한 짓 뭐 하러 해. 임마. 죄송하다고 말할 것 같으면. 아예 처음부터 그런 말 할 짓을 하지 않으면 되잖아. 안 그래."
 "네, 명심 하겠습니다."
 단조웅은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아버지이자 조직의 두목이었다. 괜히 맞서 봐야 손해 밖에 볼 것이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장운평. 너, 이 새끼! 돌아 와서 한다는 짓이 내가 생각한 것을 훔쳐서 돈을 번다. 이거지. 넌, 이제 죽었어.'
 단조웅은 어릴 적 친구인 장운평을 생각하며 내심 이를 갈았다.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 놈 중 하나가 친구 등을 치는 놈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운평이 그 놈에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내가 왜 그 때 말을 했는지. 빌어먹을! 빠드득!!'
 단조웅은 시선을 슬쩍 양장귀에게 주었다.
 '단단히 일어 두어야겠지. 그 자식 아주 반 죽도록 두들겨 패라고.'
 단조웅은 머릿속으로 처절한 응징을 생각했다.
 단도린은 그 사이 판상우와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 그는 이윽고 시선을 돌려 양장귀를 바라보며 말했다.
 "양장귀."
 "네, 두목."
 "가서 매상의 반 가져와. 말 안 들으면······ 알지?"
 "옙! 두목. 당장 가서 멱살을 잡고 패대기를 쳐 버리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말고. 적당한 때를 노려. 명색이 장 대관의 둘째 아들이 한다니. 흐흠! 그 전에 한 번 말로 경고 좀 하고. 그래도 옛날 조웅이 녀석하고 어울려 다닌 놈인데. 편의를 한 번 봐 주라고 알겠어."
 단도린은 기억하고 있었다. 장운평과 아들 단조웅이 다른 한 놈과 어울려 다니며 사고를 친 것을.
 단조웅은 부친 단도린의 눈치를 살피며 눈가를 슬며시 찡그렸다. 웬만하면 잊어 주었으면 하는 옛 일이었다.
 양장귀는 그 사이 씩씩한 어투로 단도린에게 대답하며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판상우는 암암리에 단조웅을 살피며 눈가에 작은 눈빛을 반짝였다. 마치 꼬투리를 잡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이었다.
 
 한편 희선루는 여전히 미어 터졌다. 밀려드는 손님 탓에 길평과 노적삼 그리고 두 여인은 장운평에게 말했다.
 "사람을 고용해 주세요."
 "루주님. 손이 딸립니다."
 장운평은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사람을 고용하면 돈이 나간다. 그 돈을 셈하고 부친에게 매상의 절반을 준다?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다. 아버지 장계창이라면 자신의 몫에서 사람을 고용한 돈을 떼려고 할 것이다.
 '쩝! 돈이 아까운데.'
 장운평은 희선루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섰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지출을 줄이려고 했다.
 '지금에야 손님들이 미어터지지만 나중에는 손님들이 질려서 자주 안 올 텐데.'
 장운평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맛있는 요리라도 자주 먹으면 질린다. 그리고 처음에는 문지방이 닳도록 자주 오지만. 어느 정도 만족감을 느끼면 발길이 뜸해지는 것이 음식 장사다. 그리고 안주를 공짜로 주는 것을 필시 다른 주루에서 모방할 것이 틀림이 없었다.
 '지금은 돈을 아껴서 모아야 할 때야.'
 장운평은 그의 몸속에 흐르는 상인의 피가 주는 본능적인 감각에 탁월한 판단력을 발휘했다. 어려서 형 장운상은 글만 파고들었지만. 그 자신은 아버지 장계창이 일을 시켰다.
 공짜 밥은 없어!!
 장자보다는 차자를 잡았던 부친 장계창이었다.
 장운평은 옛날을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속 쓰려······."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영 불쾌했다.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 회상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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