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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현사의 사미승 (1)

2022.02.09 조회 11,770 추천 196


 001화 심현사의 사미승 (1)
 
 
 
 새벽 예불을 마친 해인은 쓸모도 없이 넓기만 한 대웅전 앞마당을 쓸었다.
 대웅전 앞마당은 밤새 떨어진 낙엽으로 가득했다.
 한참 만에 다 쓸어 낸 해인은 공양간 무쇠솥에 물을 채운 후 아궁이 재 속에 숨어 있는 밑불을 살려 장작에 불을 붙였다.
 잘 마른 장작이 특유의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자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요사채 뒤편의 땔감 더미에서 장작을 한 아름 들고 공양간으로 옮겼다.
 잠시 후 대웅전 마당으로 들어선 해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한차례 바람이 불고 간 대웅전 마당에는 또 낙엽들로 가득했던 것이다.
 이걸 또 언제 쓸어 내나 한숨을 쉬던 해인은 손바닥에 침을 뱉은 후 빗자루를 들었다.
 어차피 대웅전 마당 쓸기는 절간의 막내인 자신의 몫인데 한숨을 쉰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무서리가 내린 날이어서인지 해인의 승복 사이로 찬 기운이 파고들었다.
 한참 동안 마당을 쓸었더니 해인의 반짝이는 머리통에도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고 있었다.
 몸에서 난 열기를 다스리려면 승복 윗도리를 벗으면 되지만, 대웅전에서 아침 치성을 드리고 있는 아랫마을 김 진사댁 금동 아씨가 언제 나올지 몰라 주저되었던 것이다.
 새벽 예불을 마친 주지 스님이 금동 아씨의 아침 치성을 곁에서 도와주고 있었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저렇게 지극 정성으로 불전 앞에 엎드려 절한다고 죽어가는 사람이 살아나나? 부처님께 빈다고 다 살아나면 이 절간에는 사람들로 가득하겠네.’
 
 불제자인 해인이 품을 생각은 아니지만, 김 진사의 장녀인 금동이 드리는 불공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만 같았다.
 치성 드리는 정성으로 김 진사 옆에서 병구완을 하는 게 더 나을 것인데 말이다.
 불전에 치성 드린 이들 중 치성을 드린 만큼 소원을 성취하는 걸 못 봤기에 하는 말이다.
 잠시 생각에 잠기느라 빗자루질을 멈추고 있는데 걸걸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세속 나이로 환갑이 내일모레임에도 심현사의 주지인 보현 스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기운찼다.
 
 “이놈. 해인아. 아직도 마당을 다 쓸지 않았느냐? 새벽 예불 마친 지 언제인데 아직도 그러고 있누. 꼴을 보니 오늘도 아침 수련을 빼먹었겠구나.”
 “스님. 벌써 두 번째 쓸어 내고 있는 거라고요. 나뭇잎이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는 건 어쩌라고요. 그리고 배고파서 당장 수련할 힘도 없어요. 아침 공양한 후에 수련할 거예요.”
 “저놈이 배 속에 뭐가 들어앉아 있기에. 쯧쯧쯧···. 머릿속에 든 게 없으니 음식만 탐할 수밖에. 이놈아. 음식을 너무 탐하면 나중에 기아지옥에 떨어진다는 것만 알아라.”
 
 기아지옥이라는 말에 해인은 속으로 발끈했다.
 뭘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데 음식을 조금 탐했다고 기아지옥에 떨어진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리고 머릿속에 든 게 없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었다.
 재미도 없는 경전이지만 사형들만큼이나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해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투가 자연히 불퉁거릴 수밖에 없었다.
 
 “스님. 언제 배불리 먹은 게 있어야 기아지옥에 떨어지지요. 저승사자가 그렇게 사람을 못 가린답니까.”
 
 대웅전 마당을 가로질러 가던 셋째 사형인 법륜이 해인의 말을 듣고는 빙긋이 웃었다.
 둘의 대거리하는 모습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 터라 모른 척하는 게 낫다 싶은지 그냥 지나친다.
 
 “이놈이 오늘 매를 버는구나. 이리 오너라. 오랜만에 대련이라도 해 보자꾸나.”
 “싫습니다. 스님과 대련하는 건 재미없습니다. 만날 지면서···.”
 “오호! 그래? 오늘 제대로 손을 나눠 볼까?”
 
 보현이 가사 소매를 걷어붙이며 섬돌 아래로 내려섰다.
 그러나 해인은 이미 요사채에 붙어 있는 공양간으로 부리나케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헛웃음을 터뜨린 보현은 쓸다 만 대웅전 마당을 내려다보며 혀를 끌끌 찼다.
 오갈 곳 없는 갓난쟁이를 받아들여 15년 넘게 키웠기에 온갖 정이 다 들어 버렸다.
 불제자가 인연에 얽매이면 안 되지만 마음으로 낳은 자식 같은데 어쩌겠는가.
 사람답게 키운다고 엄하게 대하기는 했지만 제자들 중 막내여서 오냐오냐한 게 화근이었다.
 금이야 옥이야 정도는 아니어도 유난히 정을 쏟았던 아이다.
 덩치가 장정이라고 할 만큼 컸고 세속 나이로 17세임에도 여전히 동자승 때의 응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 이놈. 그렇게 수련을 게을리했다가는 어디 가서 두들겨 맞기 딱 좋을 게다.”
 “지금 실력으로도 어설픈 산적들 서넛 너덧은 우습다고 첫째 사형이 말해 줬단 말이에요.”
 “그 말을 믿느냐? 이놈아. 그 실력으로 속세에 나가면 큰일 나는 줄이나 알아라.”
 
 먹을 게 부실한 절집 생활로 인해 유난히 잔병치레가 잦은 탓에 조금 튼튼해지라고 달마대사로부터 유래된 역근경을 가르쳤는데, 이제는 거기에 더해 조선검법도 능숙하게 펼치는 수준이 되었다.
 무섭도록 빠른 성취를 보여 혹여 자만할까 싶어 주의를 주는 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제 위의 사형 셋 모두가 덤벼도 해인의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성취가 빨랐던 것이다.
 
 “저는 언제까지나 스님 곁에 있을 거니까 그런 걱정은 마셔요.”
 “그러니까 절밥을 먹으려면 밥값을 해야지. 이놈아.”
 “치. 땔감 해 오고 장작 패고 밥하는 게 얼마나 큰일인데···.”
 “오늘따라 저놈이 왜 저리 불퉁거리누. 얼른 공양이나 지어라. 금동 아씨께서 시장하시겠다.”
 
 금동 아씨라는 말이 나오자 해인의 표정이 유난히 실쭉거렸다.
 
 “춘심이가 따라왔는데 왜 저보고만 공양주 노릇을 하라고 하십니까.”
 “이놈아. 공양간이 아무나 드나드는 곳이더냐.”
 “초파일에 보살님들이 공양간에 드나드는 건 봐주셔놓고선.”
 “어허! 이놈이 그래도.”
 “알았다고요. 얼른 아침 공양 올리고 수련할게요.”
 
 불퉁한 말과는 달리 공양간으로 들어가는 해인의 발걸음은 유난히 가벼웠다.
 사실 해인은 공양간에 드나들 때가 되지 않았음에도 셋째 사형에게 공양간을 넘겨받았기 때문이다.
 온 산을 헤매는 것도 시들해질 무렵, 바로 위인 셋째 사형의 나이가 스물이 되어 구족계를 받자 이때다 싶어 공양주 노릇을 자처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밤이나 옥수수를 구워 먹을 수도 있었고, 가마솥에 남는 누룽지도 온전히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공양간은 수행자의 식사를 제공하는 공간인 동시에 수행 공간이기도 하지만, 해인에게는 배를 채울 수 있는 곳간 같은 곳이었다.
 사형들이 불목하니라고 놀림을 해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유난히 식탐이 많은 해인으로서는 공양간을 차지한 게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동자승 때부터 온 산을 헤매고 다니며 잔대나 더덕, 도라지, 칡을 캐고, 다래나 머루를 따 먹었지만 먹고 돌아서면 배고팠기 때문이다.
 때로 운이 좋으면 산삼까지 얻어걸리기도 했다.
 보현 스님에게 들키면 치도곤을 맞을 짓도 서슴없이 저지르곤 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육식이었다.
 
 이태 전인가 보개마을에 심부름을 갔다가 우연찮게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가재와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 먹고 난 후로는 그 맛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불제자가 살생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해인은 그런 것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해인이 익히고 있는 검술이 살생을 전제로 한 것인데, 미물들을 좀 잡아먹었다고 설마 무간지옥에 떨어지겠는가 하는.
 그러나 보현은 해인의 일탈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었다.
 고기를 구워 먹고 냄새를 풀풀 풍기고 절간으로 돌아오는데 그걸 어찌 모르겠는가.
 
 * * *
 
 ‘심현사’는 보개산 자락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낡은 대웅전만이 유일한 볼거리지만 한때는 대단했다고 한다.
 신라 때 영원조사가 심현사를 창건한 이후 고려 때까지는 절이 사뭇 웅장했단다.
 몽골의 침입 때 대웅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전각들이 소실되어 그 후 대웅전 등을 중창했으나, 조선이 들어서면서 유교를 숭상하자 절간은 쇠락을 거듭한 끝에 지금에 이르렀다.
 해인이 심현사에 들어올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못했다고 한다.
 김 진사 댁에서 아들을 얻으려고 심현사에 와서 치성을 드리기 전까지는.
 운이 닿았는지 김 진사 댁이 10년 전에 득남을 했고 그 덕에 때마다 시주를 받을 수 있었기에 그나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김 진사 댁 사람들은 심현사를 아예 개인 사찰쯤으로 여기고 무시로 드나들었다.
 
 민가가 50여 호인 아랫마을은 보개산 자락에 위치했기에 보개마을이라고도 부르기도 김 진사 골로도 부른다.
 대부분의 땅이 김 진사의 소유였기에 김 진사 골로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해인은 동자승 때부터 종종 보개마을을 기웃거렸는데, 보현 스님의 심부름으로 김 진사 댁에 기별을 넣는 일을 도맡았기 때문이다.
 아랫마을에 내려갈 때마다 동네 꼬마들이 해인의 반짝거리는 머리통을 두고 놀리기 일쑤였지만 해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겼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진사 댁만 다녀오면 어김없이 약간의 곡식이 심현사로 올라왔던 것이다.
 
 * * *
 
 아침 공양을 마친 해인은 지게를 지고 산 중턱의 연무장으로 올랐다.
 지게에서 목검을 꺼내 들고 찌르기 베기 등으로 가볍게 몸을 풀었다.
 사실 목검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대충 다듬은 막대기였지만, 보현이 박달나무를 진검과 비슷한 무게로 만들어 준 거였다.
 잠시 후, 검술을 펼치는 해인은 조금 전의 치기 어린 표정은 간데없고 묵직한 기운을 풀풀 풍기는 검사로 돌변해 있었다.
 
 보현에게 사사받은 조선검법은 52개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33개 동작은 공격이고 19개 동작이 수비인 꽤나 살벌하고 공격적인 검법이었다.
 검술에 입문한 지도 5년이 다 되어, 이제는 모든 동작을 물 흐르듯 구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건 곧 어떤 상황에서도 공격과 수비가 자연스럽게 펼쳐질 수 있는 수준을 뜻한다.
 이는 각 동작을 수만 번 반복해야만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음이다.
 불경 공부보다 검술 수련이 더 재미있는 해인은 보현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검술 수련으로만 보냈다.
 
 보현은 불교에 귀의하기 전, 20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종6품 종사관으로 있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벼슬을 놓고 불교에 귀의했다고 한다.
 보현의 무술 실력이 대단한 건 아니었으나 무과에 급제할 만큼 체계적으로 조선검법을 익혔다는 게 해인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보현이 승려가 되어 천하를 주유하다가 우연찮게 습득한 태식호흡법까지 익히게 되었다.
 
 태식호흡법은 기 수련의 일종인데, 배꼽 밑에 기운을 모아 두는 수련이었다.
 숨을 들이쉰 다음 바로 내쉬지 않고 60 내지 80을 헤아릴 동안 단전에 힘을 가둔다는 일념으로 참다가 코로 서서히 숨을 내쉬는 조금은 괴상한 호흡법이었다.
 어찌 보면 무식할 정도로 숨을 참는 호흡법이기는 하나 실제로 반복 수련을 하다 보면 그 정도는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만약 태식호흡으로 헤아리는 숫자가 1천에 이른다면 늙은이도 다시 젊어진다는 거였다.
 조금은 터무니없는 말이기는 하나, 1천을 헤아릴 수 있는 경지라면 사람이 아닌 신선이나 다름없으니까 제법 설득력이 있기는 했다.
 1천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150을 헤아리는 수준에만 도달해도 오장과 삼초를 보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겉으로 드러난 상처도 빨리 아물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인은 최근에 100까지 숫자를 헤아리는 경지에 올랐는데, 그 결과 오감이 예민해지고 검술도 물 흐르듯 펼칠 수 있게 되었으나 한 가지 흠이 있다면 허기였다.
 수련이 끝나고 나면 걷잡을 수 없는 허기가 뒤따른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유난히 식탐이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수련을 끝낸 해인은 서둘러 가을 약초 채취에 나섰다.
 오늘 아침 무서리가 조금 비쳤기에 조만간 된서리가 내릴 것이다.
 된서리 한 번이면 온 산의 풀이 순식간에 시들어 버린다.
 쇠락한 심현사를 신자들이 찾아주는 이유도 보현 스님이 정성 들여 만든 환약이 한몫을 했는데, 예전보다 양이 턱없이 적어서 걱정이었다.
 보현 스님이 조제한 환약은 각종 병증에도 잘 들었고 묽게 개어 상처에 바르면 빨리 아무는 효능도 있었다.
 심지어는 독사에 물렸어도 환약을 재빨리 복용하면 며칠 만에 거뜬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던 것이다.
 숨이 꼴깍 넘어가는 사람도 며칠을 붙잡아 둔다는 소문에 사람들은 곡식 자루를 들고 절을 찾아오곤 했다.
 그러나 환약을 만드는 법제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대량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해인도 환약을 만드는 방법을 어깨너머로 배우고는 있지만 아직 보현 스님이 만든 것만큼 약효를 내지 못했다.
 제대로 된 환약을 조제해 보겠다는 욕심에 틈만 나면 약초 채집에 열을 올리는 거였다.
 아프거나 다칠 때를 대비해서도 필요하지만, 호구지책으로도 요긴할 것 같아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언젠가는 절을 떠날 날이 올 것이기에.

댓글(14)

악지유    
밤새 떨어진 낙엽들로..... 밤새 떨어진 잎새들로... 간밤의 낙엽들로...
2022.02.23 04:50
동쪽사람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2.23 10:28
철혈오랑    
잔대, 더덕, 도라지, 칡은 따는게 아니라 캐는 겁니다.
2022.03.01 07:25
동쪽사람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3.01 12:40
borislee    
알림 보고 찾아 왔어요. 오랜만에 글을 보니 반갑네요. 춘삼월에 동면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켰으니 멀리 멀리 나아가시길 빕니다.!!!
2022.03.03 10:55
임현    
반갑습니다. 기대하고 들어가겠습니다.
2022.03.03 15:06
소카이    
오랜만이네요
2022.03.04 19:08
천통제    
근디.조선시대 무과 급제할라면 말타기 활쏘기 사서삼경 무경칠서는 반드시 몸에 익어야 할거고 말타고 달리면서 활쏘기 즉 기마궁술은 속된말로 달인급 즉 눈감고도 할수있어야합니다.그리고 기창..기마창술 이것도 말타고 달리면서 정해진 허수아비들이나 과녁들 정확히 휘둘러서 찌르고 치고 던져셔 맞추고 해야하고요.검술이 필수중 하나이지 절대필수는 아닙니다.다른 훈련하는게 잘 안나오는군요.
2022.03.05 00:06
별그리고나    
배고프면 마를 캐먹어야죠.
2022.03.09 09:56
ESTD    
몰아서 한 번에 봐야할듯요.
2022.03.23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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