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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조종 1권-1

2015.01.30 조회 1,842 추천 12


 서(序).
 
 -. 탄생의 장.
 
 
 강과 호수와 숲의 세계.
 
 강호 무림!!!
 
 무인들의 대지라 일컫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들이 살아가는 또 다른 세상.
 
 강호 무림의 시작은 대다수의 사가들이 보리달마 대사가 면벽구년 만에 역근과 세수의 두 경전을 남긴 때를 그 시작으로 본다. 그 후 천하공부출소림(天下功夫出少林)이란 말로 대변 되듯이, 소림의 영향을 받아 십문 오가가 강호에 태어났다.
 
 십문!
 소림사. 무당. 화산. 곤륜. 아미. 청성. 공동. 점창. 종남. 개방.
 오가!
 남궁세가. 하북 팽가. 황보 세가. 사천 당가. 제갈 세가.
 
 그들 십문오가(十門五家)는 정도 무림이라 불리우는 거대한 흐름을 이끌며 천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강호의 역사를 선도했다. 그런 그들과 맞서는 이들이 있었으니.
 
 마도 무림!
 
 흔히들 마도 무림인이라 불리우는 그들은 항상 십문 오가의 정도 무림과 대립 충돌하면서 강호 무림사라는 강호의 역사를 만들어 나갔다. 그런 마도 무림의 근원은 정도 무림보다 깊었다.
 
 상고시대!!
 달리 고대 무림이라 부르는 달마 대사 이전의 시대에 존재했던 무림이다. 그 고대 무림에 관해 전해지는 것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한 무인과 그가 이룩한 한 단체는 무수한 세월과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강호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며 전해져 왔다.
 
 천마조종(天魔祖宗), 주세업!!!
 달리 대천마라 불리우는 마도의 시조. 알려지기를 춘추전국의 시대 주 왕실의 왕족이라 한다. 주나라가 동주로 이전하며 왕실을 나와 그 성을 주라 고치며, 천하를 떠돌았다. 그리고 후에 마교라 칭하는 가공할 힘의 단체를 이룩한 강호사 최강의 무인이라 불리우는 이였다.
 
 마교(魔敎)!!
 천마조종 주세업이 천하를 유랑하며 거둔 아홉 제자가 주세업과 함께 만든 고금 최고 최강의 절대세.
 
 구마(九魔)!!
 달리 구대마존이라 칭하는 마교 구류.
 
 암흑, 혈마, 천요, 마뇌, 천살, 환마, 독마, 황금, 철마.
 
 그들은 천마조종 주세업과 고대 무림을 사상 최초로 일통하며, 뭇 천하 위에 군림했다.
 
 "꿇어라-----!!"
 
 천마조종 주세업의 일갈에 천하는 두 무릎을 꿇고 오체투지해야 했다. 그들의 힘은 바로 파천황!!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 또한 역사의 뒷 그늘로 사라져야 했다.
 
 강호의 사가들은 고대 무림사에서 홀연히 사라진 그들 천마조종과 구대마존 그리고 마교를 놓고 몇 가지 가설을 세웠다.
 
 첫째가 마교지존인 천마조종. 대천마 주세업을 그들 아홉 제자가 암산하여, 자중지란을 일으켜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과거 춘추전국 시대 천마조종 주세업과 비록 시대를 다소 달리 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신무대제(神武大帝) 능한천. 그가 남긴 세외삼부(世外三府)에 의해 무너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셋째가 제자백가. 춘추전국의 시대를 거대한 사상과 학문의 번성기가 되도록 한 그들 백가쟁명(百家爭鳴)의 기인이사들에 의해 멸망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가설들을 증명하지 못했다!!
 
 본시 마도 무림인들은 항시 핍박 받고 멸시 받는 약자들이었다. 춘추전국의 군웅할거의 시대에 그들은 살아남고자. 강해지고자. 자신의 가족과 소중한 그들만의 것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 쳐야 했다. 그런 마도 무림인들은 뜨거운 열혈의 피와 투쟁에 있어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는 호전적인 투지를 지니고 있었다.
 
 철혈의 무인!!
 
 그것은 초기 마도 무림인을 뜻하는 지칭이었다. 하지만 천마와 마교가 사라진 후 숱한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천마와 마교를 자칭, 타칭 하는 이들과 세력이 마도무림에서 일어났고. 그들은 강한 힘과 한 시대를 주름잡은 세력으로 천하에 피바람을 뿌렸다.
 
 그 탓에 세상 사람들은 차츰 마도 무림인들을 흉험하며 잔혹 무비한 마인들로 인식했다. 그리고 그런 마도 무림인들을 백안시(白眼視)했다. 그에 진정한 마도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은 과거 마도의 영광을 떠올리며 소리쳤다.
 
 "조종이시여·········위대한 마도의 시조시여·········언제나 오시리이까? 위대한 만마의 아버지시여·········언제쯤이면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실 것이옵니까?"
 
 마도 무림인들은 마도 무림에 전해져 내려오는 한 가지 언약을 기억했다.
 
 천마지약(天魔之約)!!!
 
 "나, 다시 돌아오리니. 기다리고 기다리라--. 마도여----!! 나, 천마 주세업. 무수한 세월과 공간을 넘어 다시 이 땅에 재림할 것이니. 그 때에 진정한 마도의 하늘이 현신하리라--. 뭇 만마의 위에 홀로 서서 군마를 질타하는 천마의 전설이 재림하리라---------!!"
 
 만마앙복(萬魔仰伏). 군마영세(群魔永世)!!!
 
 그 여덟 자로 대변되는, 천마재림의 맹약!! 그것은 마도 무림에 전해지는 영원한 전설. 바로 그것이었다.
 
 재림천마!!
 달리 이세천마라 전하는 천마조종 주세업의 계승자. 마도의 하늘.
 
 마도지존(魔道至尊)!!!
 
 그 영광의 명호. 그 주인을 마도 무림인들은 기다리고 기다렸다. 천년에 가까운 세월을·········.
 
 
 * 전란의 시대 *
 
 
 영락제(永樂帝)!!
 명, 삼대 황제. 정난의 변으로 조카 혜제(惠帝)를 몰아내고 힘으로 황위에 오른 일세의 패황. 그가 제위에 오른 지 칠 년이 되던 해. 동 몽골의 달단부 벤야시리가 세력을 통합하고 그 힘이 강대해져 명나라의 사신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에 영락제는 대노했다.
 
 "당장 멸하라---------!!"
 일세 패황의 분노는 컸다. 이에 조정은 대장군 구복을 주장으로 삼아 십만의 군사를 몽고의 켈루렌 강으로 파병했다.
 
 일 년 전. 영락(永樂) 육 년의 어느 여름.
 그 해 여름은 일찍이 찾아 볼 수 없는 가뭄과 찌는 듯한 폭염으로 천하의 민심이 무척이나 흉흉했다. 게다가 전쟁 준비로 인해 각처에서 홀아비와 노총각 그리고 고아들을 대거 징집하는 바람에 농사를 지을 손이 부족했다. 엎친데 덮쳤다고 해야 할까?
 
 
 안휘성(安徽省). 황산(黃山). 남궁세가(南宮世家).
 수나라 말엽 용검제 남궁용제가 황산 천도봉과 연화봉 사이에 자리한 분지에 최초로 문을 연 당대 강호 오대 세가의 수장 가문이었다. 그와 함께 대대로 이름 난 검사(劍士)를 배출하며, 창궁 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과 제왕 무적검강(帝王無敵劍剛)으로 유명한 검의 명가(名家)였다.
 
 노인!
 이제 육십을 갓 넘은 듯한 한 초로의 노인이 연화봉의 정상에 서서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다. 노인은 불어오는 산자락의 바람에 입은 장삼 자락을 휘날렸다.
 파-라라락!!
 노인은 세속을 탈속한 듯 단아하며 초연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스-으으!
 한 검은 무복인이 노인의 등뒤 지면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내 노인의 등뒤 바닥에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주군!!"
 "잠종영(潛踪影). 너였느냐?"
 "··················."
 잠종영이라 불린 검은 무복인은 침묵했다. 그러자 노인의 무심한 듯, 가라앉은 듯한 작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냐?"
 "그, 그것이·········."
 잠종영은 노인의 음성에 주저하며 머뭇거렸다.
 곤혹(困惑)!
 잠종영은 곤란한 일을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했다.
 "말하라·········."
 노인의 음성은 장중했다. 그 음성에서는 감히 거부할 수 없는 위엄이 스며 있었다.
 "이, 이 공자님께서 벼, 별세를·········."
 움찔!!
 노인은 순간 깜짝 놀랐다. 그리고 너무 갑작스러운지 몸을 움츠리는 듯했다.
 "어, 언제·········."
 "두, 두어 달 전인 것으로·········."
 "그런데 왜 이제야 나에게 보고를 한다는 말이냐--------!!"
 휙!!
 노인은 거칠게 몸을 뒤로 돌렸다. 그와 동시에 노인의 전신에서 사슬처럼 잠종영을 옥죄어 오는 무형의 기도가 일었다.
 쿵!!
 잠종영은 이내 두 무릎을 꿇으며 이마를 땅바닥에 찧었다.
 "죽여주십시오. 주군!! 개방의 제남 분타에서 너무 늦게 알려 왔습니다."
 바르르!!
 노인의 몸이 가볍게 떨렸다. 그와 함께 눈가로 고통의 눈빛이 스쳤다.
 심적 고통!
 노인은 마음이 무척이나 괴롭고 아픈 듯이 보였다. 그런 노인의 안면에 살짝 떠오르는 인상은 노인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겨, 결국. 이 아비보다 먼저 죽었단 말이냐·········여, 영호야---."
 노인의 음성을 슬픔과 괴로움으로 가늘게 떨렸다. 그리고 뒤돌아서는 노인의 손마디가 미세하게 떨렸다.
 휘-- 이이이이잉!
 불어오는 여름의 후덥지근한 바람이 노인의 안면을 스치며 지나갔다.
 물기!
 노인의 눈가에 고여 가는 것은 눈물이란 이름의 물기였다. 그리고 노인의 두 어깨가 무척 가냘프게 보이며, 살짝 앞뒤로 떨렸다.
 '주군!!'
 잠종영은 그가 모시는 주인. 당대 남궁 세가의 태상 가주 남궁무외의 등을 바라보았다.
 검왕(劍王)!
 항상 남궁 세가의 가주 앞에 붙는 명호였다. 검으로 당대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초절정의 고수. 그것이 지금 잠종영의 눈에 보이는 주인의 정체였다.
 "그, 그 놈이 조, 종국에는 이, 이 아비의 가슴에 못질을 하고 마는 구나·········."
 슬픔!!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아비의 찢어지는 듯한 통한의 아픔. 노인 남궁무외. 그의 음성에서는 그 아픔이 물씬 느껴졌다.
 또-르르륵!!
 남궁무외의 뺨으로 한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리고 이내 남궁무외의 발등에 떨어지며 팟 하고 터졌다.
 젖어드는 발등!
 뿌옇게 흐린 눈시울 사이로 아들의 얼굴이 스쳤다.
 
 곱상하게 생긴 전형적인 유사(儒士)의 얼굴. 짙은 눈썹과 곧게 뻗은 내린 콧날. 그리고 고집스럽게 꾹 다문 입술. 자신을 향해 증오와 분노 그리고 설움으로 마구 뒤섞여 뒤범벅이 된 눈빛.
 
 "왜 입니까? 왜--에--에---날 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하셨습니까? 왜 날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해서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왜요---왜-------!!!"
 
 아들의 절규가 환청이 되어 들리는 듯했다.
 아프다!!
 남궁무외는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렸다.
 "영호야·········."
 자식이 가엾고 측은하여 마음이 알알하게 찌르는 듯이 아팠다. 그 고통이 아리다 못해 자렸다. 마음이 못 견딜 정도로 쏙쏙 쑤시듯이 아프다!!
 "이, 이 못난 놈·········."
 자식이 자신을 왜 낳았느냐며 울부짖는 과거의 일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쳤다.
 아버지의 마음!!
 그것이 지독한 고통으로 자신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는다.
 
 이 세상에 뉘 있어 아비의 마음에 이는 고통을 알까?
 
 남궁무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의 눈 아래에 보이는 풍경을 주시했다.
 
 맞은편으로 길게 좌우로 힘차게 뻗은 천도봉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 몇 백 평은 될 듯한 분지에 자리한 고루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대에 걸쳐 선조들이 대대로 피와 땀을 흘리며 일구고 닦은 자신의 가문. 남궁 세가. 바로 그 존재가 자리해 있었다.
 "대관절 가문이 무엇이기에·········."
 자신의 아들에게 설움과 증오 그리고 슬픔을 안겨 준 가문이다. 남궁무외는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슬펐다.
 "잠종영·········."
 "네. 주군."
 잠종영은 주인 남궁무외의 짙은 슬픔이 묻어 나오는 음성에 잦아드는 듯한 작은 음성을 흘렸다.
 "여, 영호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지."
 "네. 주군."
 "이름이 아마·········제 어미의 성을 따 홍천양이라 지었지."
 "예. 주군. 소공께서는 이제 열일곱이 되십니다."
 남궁무외는 가볍게 고개를 아래위로 움직였다.
 "데려 오너라--. 영락없이 이제는 천애고아가 된 내 손자다."
 "··················."
 잠종영은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땅바닥으로 숙였다.
 "잠종영·········."
 슥!
 남궁무외는 잠종영이 말이 없자. 이상한 듯 뒤로 고개를 돌렸다.
 불안하다!!
 가슴이 뛰는 것이 무슨 일이 있는 듯했다. 남궁무외는 가슴을 스쳐 지나가는 불안감에 미간이 떨렸다.
 "무, 무슨 일이냐·········?"
 "주, 주군!!"
 "무슨 일이냐고 묻지를 않느냐----."
 후- 화아앗!
 순간, 남궁무외의 전신에서 무형의 기운이 일며, 잠종영의 전신을 억눌렀다. 그러자 잠종영은 몸을 부르르 떨며 나직한 음성을 흘렸다.
 "이, 이미 고아가 되신 소공을 좌군도독부에서 지, 징병을·········."
 "무, 무엇이·········!!"
 남궁무외의 안면으로 깜짝 놀란 빛이 스쳤다. 그와 동시에 남궁무외는 조정에서 동 몽골의 달단부 벤야시리와 전쟁을 준비한다는 것을 상기했다.
 "이, 이런·········왜에---이제야 그것을 말하느냐--. 조, 조금만 일찍 말해 주었던들. 내 이미 손을 쓰고도 남았을 터이거늘·········."
 남궁무외는 일순 분개한 듯 몹시 성을 내었다.
 두 달.
 이미 자신의 손자는 장성을 넘었을 것이다. 손을 쓰기에는 이미 때를 놓쳤다.
 쿵! 쿵!
 잠종영은 이마로 땅바닥을 찧었다.
 "죽여주십시오. 주군!!"
 "··················."
 꾸-우욱!!
 남궁무외는 양손을 힘주어 잡으며, 잠종영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남궁무외는 약 일각 동안 그렇게 잠종영을 응시했다. 그리고 힘겨운 듯 가느다란 작은 음성을 흘렸다.
 "무·········물러가라·········."
 "주군---."
 "물러가라 하지 않았느냐-------."
 남궁무외는 참다못해 일갈했다. 그러자 잠종영은 고개를 푹 아래로 숙인 채 말없이 신형을 땅바닥으로 스며들 듯이 움직였다. 그러자 남궁무외는 슬픈 눈으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안다!!
 자신의 아들을 지켜보던 개방의 전갈이 너무 늦게 자신에게 전달되었음을.
 "미안하구나·········미안하구나. 영호야-. 네 아들. 내 손자를 이, 이 할애비가 보호하지 못했구나·········."
 남궁무외의 짙은 슬픔이 배어나오는 음성이 황산 연화봉의 허공으로 나직이 울려 퍼졌다.
 휘- 이이잉!!
 그러자 한 줄기 바람이 남궁무외의 머리 위 허공을 스쳤다.
 
 열일곱!
 어렸다. 하지만 전장(戰場)으로 병사로 끌고 가려는 이들에게는 한 사람의 몫은 충분히 할 나이였다.
 "똑바로 찌르지 못해----."
 "이 새끼들아--. 지금 장난해---."
 "전장으로 나가면 지금 네놈들이 펼치는 육합창법만이 살 길이야--."
 갈색 무복을 입은 백여 명은 족히 될 이들이 사방을 뛰어 다니며 소리쳤다. 그런 갈색 무복인들이 뛰어 다니는 곳은 드넓은 들판이었다. 그 들판에 족히 수천 명이 이르는 황색 무복인들이 창대를 들고 겁에 질려 벌벌 몸을 떨고 있었다.
 몽둥이.
 길고 기름한 막대기. 얼핏 보아도 성인 남자의 목까지 이를 정도의 긴 뭉둥이.
 갈색 무복인들은 저마다 그런 몽둥이를 들고 사방을 뛰어 다니며, 가차 없이 성에 차지 않는 이들을 두들겨 팼다.
 퍽! 퍽!
 "새끼야--. 자랑스러운 대명 금군에 속한 놈들이 피죽도 못 먹었어--."
 "커, 컥·········하, 한 번만 요, 용서를·········."
 "닥쳐---. 전장에서 적에게 한 번 기회를 달라고 부탁해 봐---."
 퍽! 퍽!
 "끄- 어어억!"
 "아가리 안 닫아--."
 퍽! 퍽!
 "비연투관(飛燕透貫) 하나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새끼가 어디서·········."
 "아아악!! 요, 용서·········."
 퍽! 퍽!
 "용서 같은 소리 하네. 네놈은 이미 죽었어----."
 갈색 무복인들은 교련관(敎鍊官)인 듯 보였다.
 육합창법(六合槍法)!!
 명 금군의 기본 창법이다.
 비연투관(飛燕透貫). 창해일벽(蒼海一碧). 회월타격(廻越打擊). 아호심양(餓虎尋羊). 표자천애(豹子穿崖). 백사반서(白蛇盤鼠). 모두 여섯 초식으로 이루어진 병사라면 반드시 익혀야 하는 창법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제대로 육합창법을 펼치지 못하는 놈은 이 자리에서 죽는다."
 인영. 그는 황색 무복을 입고 이마에 금군이라 두 글자가 쓰인 건을 질끈 묶고 있었다.
 금군 교두.
 인영은 바로 금군의 무공을 가르치는 교두였다.
 
 "죽겠네. 이게 도대체 며칠 동안이야·········."
 "조용히 해. 교련관이 온다."
 "니미·········."
 황색 무복을 입은 다양한 연령층의 사내들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전신을 곳곳이 세웠다.
 저벅저벅!
 그러자 한 교련관이 사내들의 사이를 날카로운 눈빛을 흘리며 지나갔다.
 "후·········."
 소년, 홍천양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른다. 천양아-."
 홍천양은 좌측에서 들린 음성에 슬쩍 눈을 곁눈질했다.
 "담소 아저씨. 아직 멀었어요."
 "마-. 입 다물어. 담형님도 제발 가만히 좀 있어요."
 "우소야-. 너어·········."
 "또 온다."
 황색 무복을 입은 금군에 속한 사내들은 급히 입을 닫았다.
 뚜벅뚜벅!
 방금 전에 지나갔던 교련관이 다시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우수에 몽둥이를 들고 차가운 눈매로 사내들을 훑어보았다.
 "자---. 다시 육합창법을 시전한다---."
 금군 교두의 우렁찬 고함소리가 허공으로 울렸다. 그러자 황색 무복인들은 이내 금군 교두의 고함소리에 뒤지지 않는 함성을 내지르며 창대를 앞으로 세웠다.
 "비연투관(飛燕透貫)----."
 황색 무복인들은 좌측 발을 내디디며, 지면을 강하게 밟았다. 그리고 양손으로 창을 앞으로 빠르게 찔렀다.
 "창해일벽(蒼海一碧)----."
 황색 무복인들은 양손으로 창대를 잡으며 창날을 위로 한 채 창을 곤두세웠다.
 "회월타격(廻越打擊)----."
 황색 무복인들의 몸이 뒤로 돌았다. 그리고 그 회전력을 창에 실으며, 초승달의 궤적으로 창을 돌려쳤다.
 "아호심양(餓虎尋羊)-----."
 창대가 아래에서 위로 빠르게 치솟았다.
 "표자천애(豹子穿崖)-----."
 황색 무복인들의 손에 쥐여진 창이 이내 아래로 떨어지며 창날로 가상의 적을 내리찍어 갔다.
 "백사반서(白蛇盤鼠)----."
 황색 무복인들이 재빨리 뒤로 몸을 돌리며, 창을 힘차게 내뻗었다.
 
 갸웃!
 교련관 막관충은 고개를 좌우로 조금씩 기울였다.
 미심쩍다!
 분명하지 못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자식은 뭐야--. 육합창법을 펼치는 자세는 엉성한 데. 창날에서 느껴지는 이 미약한 살기는 도대체 뭐야·········.'
 교련관 막관충은 그의 시선을 잡아당기는, 창날에 맺힌 미약한 살기에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뚜벅뚜벅!!
 "왜 그래-. 제대로 시전하지 못·········."
 흠칫!!
 막관충의 동료 교련관 우해보는 막관중의 옆으로 다가오다가 갑작스럽게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살기!
 미약하지만. 분명 살기였다.
 "이게·········."
 우해보는 동료인 막관충을 향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말했다.
 "나, 나도 모, 몰라·········."
 막관충은 우해보의 말에 당황한 얼굴로 마주 보았다. 그러자 앞에 선 금군 교두 이서녕이 막관충과 우해보의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그---만------!! 거기------이리로 뛰어 와-------."
 "네, 네에---."
 "네----."
 교련관 막관충과 우해보는 금군 교두 이서녕의 말에 그 자리에서 앞으로 쏜살같이 뛰어 나갔다.
 타-다다닥!!
 그리고 이내 금군 교두 이서녕의 앞에 섰다. 그러자 금군 교두 이서녕이 두 사람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이내 서슬이 퍼런 모습으로 두 사람에게 무엇을 물었다.
 "왜 저러지?"
 인영.
 이제 삼십 초반쯤 되었을까? 평범한 얼굴에 순박한 눈매를 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의 인영. 담소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의 옆에 선 소년 홍천양을 향해 슬쩍 시선을 돌렸다.
 "천양아--."
 "예. 담소 아저씨."
 "너, 뭔가 잘못한 것은 없지."
 "네, 네에."
 홍청양은 겁에 질린 듯 음성이 떨렸다. 그러자 홍천양의 바로 뒤에 선 인영. 떡 벌어진 양 어깨와 힘깨나 쓸 것 같은 거구. 그리고 둥근 곰보 자국이 있는 얼굴에 눈매가 험악한 것이, 한 성질 할 것 같은 이십 후반의 인영. 우소. 그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마-. 너, 도대체 뭘 잘못한 거야--. 조금 전에 교련관이 너만 바라보고 있었어."
 "우, 우소 형. 나, 나는 자, 잘못한 거. 없어."
 홍천양은 자신은 죄가 없다는 듯이,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음성을 흘렸다.
 
 금군 교두, 이서녕.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홍천양을 향했다. 그러자 교련관 막관충이 뛰었다.
 타다닥!
 막관충은 빠르게 내달렸다.
 시선.
 수천 명의 시선이 그 순간 막관충에게 쏠렸다. 막관충은 단숨에 황색 무복인들의 사이를 지났다. 그리고 홍천양의 앞에 이르러 소리쳤다.
 "따라 와---."
 "왜, 왜요?"
 "이 자식이. 따라 오라면 따라 올 것이지."
 교련관 막관충은 얼굴에 인상을 쓰며 홍천양을 윽박질렀다. 그러자 홍천양은 몸을 움찔거리며 기가 죽는 듯했다.
 "따라 와--."
 막관충은 몸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뛰어 갔다. 그러자 홍천양은 겁에 질린 채 천천히 뛰며, 막관충의 뒤를 따랐다.
 "빨리 못 뛰어 와---."
 막관충은 뒤로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그러자 홍천양은 움찔거리며 급히 달음박질로 막관충의 뒤를 따랐다.
 타다다다닥!!
 
 잠시 후, 홍천양은 금군 교두 이서녕의 앞에 섰다. 그는 사십 초반쯤으로 보였다. 그리고 마치 철벽을 마주한 듯한, 갑갑함을 느끼게 했다.
 
 형형한 안광. 굳세고 야무져 보이는 콧날. 그리고 옹골찬 생김새. 그 가운데 절로 시선을 잡아당기는 것이 있었다. 바로 코밑에서 양쪽으로 갈라져 턱의 중간을 뒤덮은 수염이었다. 그 탓에 이서녕은 전형적인 무인의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날카롭다!!
 홍천양은 자신을 바라보는 이서녕의 눈빛에 움찍거렸다. 그리고 긴장과 겁에 질려 가슴이 두근거렸다.
 "펼쳐 봐라--."
 "네, 네에?"
 "육합창법을 펼쳐 보란 말이다."
 "예, 예에."
 홍천양은 이서녕의 음성에 화들짝 놀라며 급히 창대를 잡았다. 그리고 두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육합창법의 투로를 밞아갔다.
 
 엉성하다!!
 어설프고 절로 코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이서녕의 눈은 달랐다. 이서녕은 눈가에 반짝이는 이채를 띠었다.
 '이놈이·········.'
 이서녕은 알아보았다. 홍천양의 창날에 맺힌 미약한 살기를.
 "그만!!"
 "허, 헉!"
 홍천양은 이서녕의 외침에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멈추었다.
 "이리로 와 봐-."
 "··················."
 홍천양은 이서녕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그러자 막관충이 이서녕의 눈치를 살피며 거친 음성을 내뱉었다.
 "이 교두님이 부르시잖아---."
 "네, 네에."
 홍천양은 이내 이서녕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이서녕이 황급히 홍천양에게 걸어가, 홍천양의 전신을 주물럭거렸다. 이서녕은 홍천양의 어깨와 팔 그리고 다리의 근골과 역근을 살폈다. 그러자 홍천양은 전신을 주무르는 이서녕의 손길에 움찍움찍 거렸다.
 "가만히 있어·········."
 이서녕은 몸을 움직이는 홍천양을 째려보며 위압적인 음성을 흘렸다. 그러자 홍천양은 두려운 듯 몸을 경직했다. 그 사이 이서녕은 홍천양의 근골을 만지며 내심 감탄했다.
 '이놈. 물건이잖아--.'
 스윽!
 이서녕은 일어서며 홍천양을 쳐다보았다. 열예닐곱 정도의 곱상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무척이나 선량한 인상을 주었다.
 "으음·········."
 이서녕은 홍천양을 바라보며, 고심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이서녕은 막관충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놈은 후군도독부 예하에 있는 혈의대로 보내."
 "네에에!!"
 막관충과 그의 옆에 선 우해보는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하고 서서--. 내가 따로 서신을 써 줄 테니. 이놈은 후군도독부 혈의대로 보내란 말이야---."
 이서녕은 막관충을 향해 버럭 고함을 쳤다. 그러자 막관충은 이내 자세를 바로하며 소리쳤다.
 "넵!!"
 홍천양은 일순 어리둥절한 눈으로 이서녕과 막관충을 번갈아 보았다.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홍천양은 그렇게 후군도독부 예하 혈의대로 자리를 옮겼다. 영문도 모른 채·········.
 
 통료(通遼).
 동 몽고로 들어서는 입구였다. 통료는 장성밖에 자리한 탓에 그 주위 풍광은 황량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런 통료에는 가히 수천 개의 이르는 거대한 군막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그 간격은 빈틈없이 촘촘했다.
 
 야망!!
 패황 영락제는 부친인 태조 주원장의 소극적인 쇄국주의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 자신이 철혈의 무장 기질을 타고난 영락제는 한 가지 야망을 남몰래 불태웠다.
 제국의 건설!!
 영락제는 성길사한이 이룩한 대원 제국을 그 자신이 이룩하고 싶어 했다. 제 이의 성길사한. 그것이 영락제의 야망이자 꿈이었다. 그런데 그런 영락제에게 호기를 부여한 일이 생겼다.
 달단부!
 동 몽골을 지배하는 달단부의 세력은 강성했다. 서 몽골의 새로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오이라트부 조차 달단부의 눈치를 보았다.
 벤야시리!!
 달단부의 지배자이자. 위대한 황금혈. 초원의 푸른 이리의 피를 이어 받았다고 자처하며, 전 몽골의 힘을 통합한 오만한 자였다. 그 탓에 콧대가 높아져 명의 사신을 살해했다.
 
 "전쟁이다!!"
 패황 영락제는 남경 황실에서 사신이 살해당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그에 영락제와 함께 자리한 이들은 기겁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영락제에게 불가 하다고 말하지 못했다.
 
 방효유!!
 당대 유문의 거성이던 그는 영락제에게 찬탈의 대역 죄인이라고 질타했다. 그에 영락제는 방효유의 십족을 멸하라 명했다.
 
 구족!!
 관례대로라면. 아버지의 사대. 그리고 어머니의 일족 삼대. 아내의 일족 이대를 합쳐 일컬었다. 하지만 패황 영락제는 거기에 방효유와 친분이 두터웠던 친구들과 그 문하생들을 포함시켰다.
 십족!!
 황조의 역사상 공전절후의 십족을 멸하는 대 사건이 일어났었다. 죽어나간 수만 무려 일만이 넘었다. 영락제는 잔혹한 패황이었다. 방효유의 십족을 처형할 때 그 목을 자르기 전에 한 사람씩 방효유의 앞으로 끌고 가 방효유에게 보이는 가혹한 행동을 했다. 하지만 방효유는 결코 그런 영락제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일세를 풍미한 거유답게 방효유는 영락제에게 질타를 퍼부었다. 그에 광분한 영락제는 취보문 밖으로 방효유를 끌어내 책형이란 무자비한 형벌로 방효유를 죽였다.
 
 십만!!
 벤야시리의 오만무례한 행동에 영락제는 십만의 군사를 통료에 집결시켰다. 그리고 구복을 대장군이자 총병관으로 명했다. 그에 오군도독부(五軍都督部)에서 대거 무장들과 정병 각 일만씩 차출되었다. 그리고 북방과 가까운 산동과 산서 그리고 하북에서 대거 사람들이 징병 되었다.
 후군도독부!
 감숙, 녕하, 섬서 북부, 하북을 관할하는, 국경 방어의 책무를 띤 오군도독부 최고의 무력체였다. 그런 후군도독부에는 기존의 위(衛)와 소(所))외에 별도로 강호의 낭인들을 고용해 조직한 별동대가 있었다.
 혈의대!!
 정탐과 추종. 그리고 암살 등 다양한 임무를 맡은 생존율 일할의 조직.
 
 "꿀꺽·········."
 홍천양은 긴장과 설레임 그리고 무의식적인 두려움으로 마른 침을 삼켰다.
 "풋!!"
 "풉!!"
 "큭!!"
 그러자 홍천양이 선 탁자에 앉은 사십 후반의 무장과 그의 양옆에 선 삼십 대의 무장이 실소를 흘렸다. 세 무장은 홍천양을 물끄러미 주시하며 잠시 그렇게 웃었다.
 슥!
 찌- 이익!
 탁자에 앉은 사십 후반의 무장이 천천히 탁자 위로 놓인 서신을 들어 찢었다. 그 사이 홍천양은 그 무장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깨에 견갑인 듯한 귀면을 걸쳤다. 그리고 가슴으로 사나운 맹수를 표현한 듯한 흉갑을 걸쳤다. 그리고 왼쪽 뺨에 긴 검흔이 절로 섬뜩한 긴장감을 안겨 주었다.
 "·········응?·········흐음·········."
 "장군!! 왜 그러십니까?"
 "무슨·········."
 사십 후반의 무장이 서신을 보며 묘한 신음성을 흘리는 듯 보이자. 그에 그의 좌우에 자리한 두 무장이 의아한 듯 물었다.
 "보게--."
 스윽!
 사십 후반의 무장은 손에 든 서신을 두 무장에게 주었다. 그러자 두 무장은 서로 서신을 동시에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차츰 안면에 흥미로운 빛을 띠었다.
 "이름이 뭔가?"
 "네. 홍천양이라고 합니다."
 "뭐 하다가 군문에 들었나?"
 "본시 유생이었습니다."
 "뭐!! 유생?"
 사십 후반의 무장은 홍천양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홍천양을 쳐다보았다.
 황당하다!!
 사십 후반의 무장. 후군도독부 도독동지(都督同知) 황보숭은 터무니없다는 얼굴로 홍천양을 주시했다.
 "유생이 왜 국자감에 있지 않고. 군문에 들어 왔는가?"
 "시생은 얼마 전에 부친이 작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미 오래전에 모친께서도·········."
 "고아라·········이건가?"
 "네."
 "··················."
 황보숭은 미간을 찌푸렸다.
 
 유생(儒生)!!
 달리 유사(儒士)라고도 모른다. 그들은 유학을 공부하는 관료 조직의 근간이다. 그 탓에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서 있지 않는 이상 함부로 전장으로 끌고 올 수 없는 존재였다. 난세라면 모르겠지만.
 
 '알만 하군. 지방에 있는 도지휘사사에 있는 놈들이 농간을 부린 것이 뻔해.'
 황보숭은 신생 황조 명이 아직 제 자리를 잡지 못해 지방에서 지방관들의 월권과 권력 남용이 심각한 것을 상기했다.
 "장군--."
 "장군--."
 삼십 대의 두 무장. 정 삼품의 지휘사(指揮使). 경단주와 종 삼품의 지휘동지(指揮同知). 천시백은 이내 시선을 돌려 황보숭을 바라보았다. 이미 서신을 읽으면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슥!
 황보숭은 좌수를 어깨 높이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경단주와 천시백은 입을 다물었다.
 "이미 군적에 이름이 오른 이상 빼도 박도 못해."
 황보숭은 말과 함께 홍천양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내 갑자기 금군 교두 이서녕의 서신을 갖고 한 병사가 왔다는 말에 궁금증을 참지 못해 이리 자네를 불렀지만. 나 또한 자네를 도와 줄 수 없어."
 "··················."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자네도 유생이라면 글깨나 읽었을 것이야."
 "이, 이미 각오한 일입니다."
 "흐음."
 황보숭은 이미 삶을 체념한 듯한 홍천양의 눈을 주시했다.
 '응?'
 옅은 눈빛. 그것은 한이 맺힌 듯 보였다.
 '쯧쯧·········.'
 황보숭은 그 눈빛에 홍천양이 억울하게 군문을 들어 내심 불만이 쌓인 것으로 오해했다. 실상은 전혀 다른 이유인데도············.
 "이 사람을 서문 천호에게 데려가게. 오늘부터 혈의대 소속이네."
 "예. 알겠습니다. 장군."
 천시백은 말과 함께 황보숭에게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며 홍천양에게 눈을 돌렸다.
 "날 따라 오게."
 "네."
 홍천양은 몸을 돌려 군막을 나서는 천시백의 뒤를 따라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내 군막을 나갔다.
 "쯧쯧············안타까운 일이야············."
 황보숭은 홍천양의 등을 바라보며 애석하다는 눈빛을 흘렸다. 그런 황보숭의 뒤에 시립한 경단주가 흥미로운 눈빛을 띠며 홍천양의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경계심!
 홍천양은 절로 조심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척이나 거칠어 보이는 낭인들이었다. 저마다 무복을 입은 채 왔다. 갔다. 하거나, 여기저기 흩어져 웃통을 벗고 아무렇게나 앉거나 누워 있었다. 그리고 땅바닥으로 각종 병장기들이 굴러 다녔다.
 저벅저벅!!
 무장. 그는 홍천양의 앞에 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이름이 서문자유라고 했던가?'
 홍천양은 그 무장의 등을 바라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그리고 천시백이 알려준 말을 머리에 떠올렸다.
 '혈의대는 무척이나 위험한 일을 하는 곳이네. 매사 조심하는 것이 좋네. 단주는 서문 장군가의 서문자유라는 천호장이네. 꽤 거친 성격이니. 될 수 있는 한 그의 심기를 거슬리지 말게.'
 호의!!
 천시백은 홍천양이 유생이었다는 것이 마음에 든 듯 미소를 머금으며 그렇게 말해 주었다.
 "아-, 씨. 또야--."
 "내 놔--."
 "허허--, 또 따군. 그래."
 "당연하지요. 백 노야."
 서너 명의 낭인들이 서로 모여 골패를 만지작거리며 떠들고 있었다.
 "그---만----!!"
 그러자 그들의 앞에 이른 서문자유가 소리쳤다.
 "젠장--."
 "뭐요--. 서문 나리."
 "쓰벌! 이제 끝발 떨어졌어."
 낭인들은 무례했다. 상대가 정 오품의 정천호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천호(正千戶)!
 천 명의 군사가 상주하는 천호소(千戶所)의 수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인들은 제각기 거친 음성을 내뱉기 바빴다.
 "입들 닥치고 내 말 듣기나 해--. 새로 온 신병이다. 금군 교두 이서녕이 소개장을 써 준 놈이야. 뭐, 일반 병졸로 죽이기에는 아깝다나 뭐라나. 하여튼 무공에는 완전 무지한 초짜니. 알아서들 해--. 소속은 삼조다. 그럼············."
 빙글!
 서문자유는 낭인들이 무례한 언동을 하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할말을 함과 동시에 몸을 돌렸다.
 "서문 천호님--."
 "자, 잠깐만············."
 "좀 기다려 보십시오--."
 벌떡!
 낭인들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느새 등을 돌리고 걸어가는 서문자유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서문자유는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볼일은 다 끝났다는 듯이 빠르게 사라졌다.
 "이, 이············."
 "니미············."
 "우라질············."
 "으- 아아악!! 신참이라니. 그것도 아무 것도 모르는 놈을············."
 "하하핫--!! 그러게 서문천호의 심기는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육십 후반의 한 노인이 웃으며, 신경질이 머리끝까지 치민 듯한 낭인들을 다독이는 듯한 음성을 흘렸다. 그리고 이내 시선을 돌려 홍천양을 바라보았다.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홍천양이라고 합니다."
 "고향이 어디인가?"
 "산동성 제남입니다."
 "그래."
 스윽!
 노인, 백 노야라 불린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주위에서 노름을 하던 세 낭인을 우수 검지로 가리키며 소개를 해 주었다.
 "이쪽은 황사문이라고 하네. 검을 아주 잘 쓰지."
 "기어오르면 죽을 줄 알아--."
 황사문인 듯한 인영이 홍천양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쯧쯧, 고약하게. 아무 것도 모르는 신참에게 그러는 게. 아닐세."
 "체, 그만 하십시오. 백 노야. 때 아닌 유모 노릇하게 생겼는데············."
 황사문은 눈가에 살짝 그늘을 드리웠다. 그러자 백 노야는 이내 다른 두 명을 소개해 주었다.
 "이쪽의 두 사람은 각각 팽한기, 단위규라고 하네. 도와············아참. 저 사람 단위규는 박투술과 비도술을 쓴다네."
 "쓰바--. 너어--, 대가리 숙이고 말 잘 들어."
 "아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릴 테니깐."
 팽한기와 단위규는 홍천양을 으르렁 거리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며 짙은 살기를 흘렸다. 그러자 백 노야는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어리네."
 "어리긴요. 벌써 전장으로 끌려올 정도라면. 이미 다 컸다고요."
 "아무렴요. 자칫 저놈 때문에 우리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백 노야."
 "쯧쯧--, 사람들 하고는············."
 백 노야는 팽한기와 단위규를 향해 혀를 찼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려 걱정스러운 눈으로 홍천양을 바라보았다.
 "너무 무서워 할 필요 없네. 전장에서 자네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이가 오면············더욱이 무공을 전혀 모르는 이가 오면, 자칫 다른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기에 그러는 것이니. 자네가 이해하게."
 "네, 네에············."
 홍천양은 살갑게 대해 주는 백 노야에게 자신도 모르게 의지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 후 홍천양은 그들과 함께 생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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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 몇 달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홍천양에게는 그 세월은 지옥이었다. 황사문과 팽한기 그리고 단위규가 시도 때도 없이 패기 시작했다. 잠을 자다가도 느닷없이 행해지는 폭행에 비명을 질러야 했다. 그리고 밥을 먹을 때도 세 사람은 홍천양을 두들겨 팼다. 그 뿐이 아니었다. 심지어 볼일을 보는 와중에도 기습하여 도집과 검집 그리고 두 주먹으로 홍천양을 실신 직전까지 두들겨 팼다.
 "허허--."
 그럴 때마다 백 노야는 어디서 구해 왔는지 모를 고약을 발라주며,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죽고 싶다!!
 홍천양은 세 사람이 자신에게 가하는 폭행에 저항을 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돌아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뿐이었다.
 
 사람은 참으로 간사한 존재였다. 아니 생존에 있어 무척이나 발 빠른 동물이라고 해야 했다.
 적응!
 홍천양은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맞추어 알맞게 응하고 있었다. 좋게 말해 생존 본능에 눈을 뜬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성격이 변했다고 해야 했다.
 
 "아아악············이 개자식이 어디를 물어---."
 단위규는 그의 발목을 이빨로 물어뜯는 홍천양의 행동에 기겁했다.
 "푸-- 하하핫!!"
 "낄낄낄낄!!"
 그러자 황사문과 팽한기는 그런 광경을 보며 배를 잡고 웃었다.
 "뭐, 뭐 해에---. 이 자식 좀············아악!! 그, 그만 해---."
 털썩!!
 단위규는 땅바닥으로 주저앉으며 홍천양의 머리를 뒤로 밀었다. 그러자 황사문과 팽한기는 천천히 홍천양에게 다가갔다.
 "그만 해라--."
 꾸욱!!
 황사문은 홍천양의 목덜미의 천용혈과 천돌혈을 손가락으로 압박하며, 홍천양의 목을 뒤로 잡아당겼다.
 "으윽············."
 홍천양은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맥없이 뒤로 떨어졌다. 그러자 팽한기가 이내 홍천양의 가슴에 자리한 구미혈과 중정혈을 연거푸 걷어찼다.
 퍼, 퍽!!
 "크- 어어억!"
 홍천양은 숨이 막히는 듯한 고통에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이내 땅바닥을 떼굴떼굴 굴렀다.
 "이············이 자식이--."
 그 사이 단위규가 일어나며, 금방이라도 홍천양을 죽일 듯한 얼굴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팽한기가 옆으로 손을 뻗어 만류했다.
 "됐어. 일단 시험은 통과 했으니. 네가 참아-."
 "뭐야--. 뭘 참아--. 비켜---."
 "그만 해--. 단위규!! 오늘이 천양이 놈이 시험을 통과한 날이잖아--."
 황사문은 흥분한 단위규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단위규는 황사문의 말에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바닥을 뒹구는 홍천양에게 나직한 음성을 흘렸다.
 "내일부터 두고 보자--. 아주 뼈마디를 추려 줄 테니깐."
 "킥킥!!"
 "쿠쿡!!"
 "뭐가 우스워---."
 단위규는 웃는 황사문과 팽한기에게 고개를 돌려 버럭 소리쳤다. 그리고 세 사람은 서서히 장내를 떠나갔다.
 
 그 날 밤. 홍천양은 자신의 상세를 돌보아 주는 백 노야를 통해서 자신이 왜 맞아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전장에서는 오직 두 가지 뿐이다. 바로 죽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다. 너는 근골이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한 탓에 이곳 혈의대로 들어 왔다. 흔치 않은 경우이지만. 종종 있는 일이다. 그 동안 황사문을 비롯한 세 사람이 가혹하게 널 폭행한 것은 기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 그게 무, 무슨············."
 "전장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한 자가 가장 위험하다. 자신의 행동과 말 그리고 무심결에 행하는 그 모든 것이 자신과 주변의 동료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기에············위험한 것이다."
 "························."
 "그간 세 사람은 내 근골을 남몰래 살폈다. 그리고 굳어진 네 몸의 각 경혈과 숨겨진 잠혈을 자극했다. 또한, 네 의지를 시험했다. 싸우고자 하는 의지. 투기(鬪氣)!! 전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지녀야 하는 것이다.············천양아--. 너는 오늘 그들 세 사람의 시험을 통과해 인정을 받은 것이다. 축하한다."
 "노, 노야············."
 홍천양은 황당한 눈으로 백 노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백 노야는 눈과 입을 슬며시 움직여 소리 없이 가볍게 웃었다.
 싱긋!
 "오늘은 푹 쉬도록 해라. 내일부터는 단위규. 그 사람이 너에게 기본적인 박투술을 가르칠 것이다."
 "노야--. 왜? 그 사람이 저에게 무공을 가르칩니까?"
 홍천양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백 노야를 쳐다보았다. 그런 홍천양을, 백 노야가 노려보았다.
 "너와 나. 그리고 그들 세 사람을 포함해 우리 다섯 명은 공동 운명체다. 즉, 같은 조란 말이다. 우리는 항상 조별로 움직인다. 맡은 일이 항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 일을 함에 있어. 약한 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원들과 비슷한 무위까지 강제로 그 무공을 끌어 올린다. 그래야 우리가 조금이나마 더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 혈의대는 단 두 가지에 의해서 움직인다. 바로 군령과 죽음이다."
 홍천양은 내심 두려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이 불안했다.
 전율!
 소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당할 것 같은 한 줄기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내, 내 앞에서 나, 날 기다리고 이, 있는 것은 뭐, 뭐지············.'
 홍천양은 앞날에 대한 짙은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문득 머릿속으로 작고한 부친 남영호를 떠올렸다.
 '아버지············.'
 홍천영은 부친 남영호를 생각하며, 이가 부서져라 이를 악물었다.
 
 
 * 담금질 *
 
 
 쇠를 다루는 것이나 사람을 다루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똑같다. 한 사람을 강하게 만들려면. 쇠를 두들겨 강하게 만드는 것처럼 끝없이 두들겨야 한다.
 
 쇠는 두들길수록 강해진다!!
 
 구타.
 치고 때린다.
 "커- 헉!!"
 가슴으로 주먹이 파고들었다. 그러자 처음에는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이내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에 질식할 것 같았다. 그 후, 전신에서 힘이 빠지며 몸이 축 늘어졌다.
 털썩!
 홍천양은 두 무릎을 꿇었다.
 "일어나--. 그 까짓 고통 따위에 무릎을 꿇지 말란 말이야--."
 쉿!!
 다리. 강맹한 힘이 실린 다리가 가슴으로 빠르게 쇄도했다.
 퍽!!
 짧고 강렬한 타격음. 그리고 고통스러운 느낌과 절로 새어 나오는 신음성.
 "컥!!"
 홍천양의 상체가 자연스럽게 뒤로 꺾였다. 그러자 단위규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사람의 몸은 아주 신기하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굳어져. 하지만 적절한 움직임을 유지하면, 그 몸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민첩하고 재빠르지. 한 마디로 말해 영활하다는 말이다. 그간 네놈의 굳어진 경혈과 잠혈을 적당히 주물러 놓았으니. 몸을 재빨리 민첩하게 움직일 줄 알아야 할 거 아니야---."
 휘- 익!
 단위규는 우측 발을 들어 땅바닥에 모로 누워 일어나려는 홍천양의 몸을 내리밟아 갔다. 그러자 홍천양은 서둘러 땅바닥을 떼굴떼굴 뒹굴었다.
 쾅!!
 단위규의 우측 발이 땅바닥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후후--, 그렇게 나와야지. 일어서--."
 스윽!
 홍천양은 몸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자세를 잡아--. 두 다리를 어깨너비 만큼 벌리고 전신에서 약간 힘을 뺀 듯이, 풀어진 듯이 자세를 취해--. 두 발의 뒤꿈치는 살짝 들어 언제든지 몸이 재빨리 움직일 수 있도록 하고············."
 홍천양은 단위규의 말에 천천히 자세를 잡아 갔다.
 휘-익!!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단위규의 우측 주먹이 홍천양의 좌측 뺨으로 날아들었다.
 퍽!!
 "크- 허억!"
 콰- 당!
 홍천양은 주먹에 실린 힘에 의해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러자 단위규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소리쳤다.
 "이 멍청한 놈아--. 가만히 서서 주먹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피해야 할 거 아냐---. 당장 일어서지 못해--."
 단위규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홍천양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잘 들어--. 박투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배짱이야--. 한 마디로 말해 겁이 없어야 해--. 상대가 주먹을 날리든, 발을 날리든. 두려워하지 않고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 자신이 죽는 것을 겁내지 않고 상대에게 너 죽고 나 죽자는 독기를 뿌릴 줄 아는 것이 바로 박투술의 기본 중의 기본이야--."
 단위규는 일어서서 다시 자세를 잡는 홍천양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좌측 주먹으로 다시 홍천양의 우측 뺨을 가격해 갔다.
 쉭!!
 그러자 홍천양은 단위규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두 눈을 부릅떴다.
 퍽!!
 "크- 악!"
 홍천양의 목이 좌측으로 돌아가며, 절로 몸이 또 다시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우당탕탕!
 "자식아--.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피하란 말이야. 너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직이도록 하란 말이야--. 어릴 때 싸움 한 번 안 해 봤어--. 친구와 싸울 때 너 자신도 모르게 팔을 들어 친구의 공격을 막아낸 기억 하나도 없냔 말이야-. 겁에 질려 눈을 감고 무의식적으로 친구에게 주먹을 내지르거나 막은 경험이 없냔 말이야---."
 "으으············."
 홍천양은 분한 듯이 단위규를 노려보았다.
 맞고 기분 좋은 놈은 없다!
 "킥킥!! 그래. 그 눈빛이야--.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공방을 주고받는 반사 신경을 키워--. 박투술의 두 번째 기본이야. 어서 일어서서 날 향해 주먹을 날려 봐--."
 단위규는 웃음을 흘리면서 뒤로 조금 물러섰다. 그러자 홍천양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재빨리 단위규를 향해 우측 주먹을 날렸다.
 휙!!
 그러자 단위규는 그 주먹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주먹이 안면에 격중 되려고 하는 순간.
 빙글!
 단위규의 고개가 우측으로 돌아갔다.
 미끄덩!
 주먹이 마치 미끄러지듯이 단위규의 안면을 스쳤다.
 퍼-어억!!
 "끄- 아아아악!"
 털썩!
 홍천양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양손으로 하초를 움켜쥐며 이내 바닥으로 두 무릎을 꿇었다.
 "쿡쿡!! 멍청한 자식. 두 귀 씻고 잘 들어. 상대는 가만히 서 있지 않아. 항상 움직인다는 것을 명심해. 단 한순간도 긴장과 경계를 늦추지 말란 말이야--."
 단위규는 천천히 우측 무릎을 내리며, 고통스러워하는 홍천양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무자비한 구타가 이어졌다.
 휙! 휙!
 퍼- 퍼- 퍼- 퍽!!
 단위규의 두 주먹이 홍천양의 안면을 두드렸다. 그러자 홍천양의 얼굴이 좌우로 마치 춤을 추는 듯이 움직였다.
 묘하다!!
 단위규는 홍천양의 몸이 한 쪽 방향으로 쏠려 넘어지려고 하면 이내 다른 주먹으로 그것을 받치며, 그 반대 방향으로 가격했다.
 퍼- 퍼- 퍼- 퍽!!
 "명심해라--. 박투술에 있어 또 중요한 것은 온몸이, 전신이 곧 무기라는 것이다. 전신의 모든 것을 활용하는 것이 곧 박투술이다."
 홍천양은 고통으로 정신을 잃어가면서 내심 중얼거렸다.
 '개새끼---.'
 유사!!
 유학을 배우고 익히는, 유약한 유사의 껍질을 깨고 천천히 한 사람의 무인이 깨어나고 있었다. 그 피 속에 흐르는 무인의 기질을 함께 깨우며············.
 
 며칠 후, 홍천양은 팽한기에게 목도로 두들겨 맞고 있었다. 비록 나무로 만든 도였지만. 몸속으로 파고드는 고통을 진절머리가 났다.
 웃는다!!
 남을 두들겨 패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듯, 무척이나 변태적인 미소다.
 "푸- 하하핫!! 뭐, 남들은 검을 검중지왕. 천일검 백일도라는 말을 내뱉지만. 내가 보기에는 다 개소리다. 검이나 도는 단지 병기일 뿐이다. 다만 그 병기의 주인인 사람이 강할 뿐이다."
 퍽! 퍽!
 팽한기는 아주 착했다. 한 번 때린 곳은 두 번 때리지 않았다. 그저 전신을 골고루 두들길 뿐이었다.
 "으- 아아악!"
 그럴 때마다 홍천양은 몸을 움츠리며 양손에 든 목도를 허공에 휘둘렀다. 상대인 팽한기가 맞을 리도 없는데············.
 "도는 중병이다. 무거움으로 적을 베는 병기다. 그런 도의 도법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힘이다. 무지막지한, 상대가 감히 어쩔 수 없는 그런 힘으로 적을 베며 압박하는 것이 도법의 요체 중 하나이다. 이성을 잃은 듯, 미쳐 날뛰는 듯한 광기의 폭발! 그게 바로 도법이란 말이다."
 휘- 이익!
 아래에서 목도가 위로 치솟았다.
 빠-악!!
 "커- 어억!!"
 목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 그와 함께 저절로 허공으로 들려지는 얼굴.
 보인다!
 두 눈 가득 너무나 커다란 목도가.
 쉭!
 퍼---어억!
 "끄- 아아악!!"
 이마에서 화끈한 통증과 함께 뼛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머릿속이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환상이 보였다. 흔히들 별이 보인다는············.
 "미쳐라--미쳐 날뛰어라--. 그래야 적이 겁을 집어 먹는다. 적의 심신을 제압하지 못하는 놈은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팽한기는 정신을 잃어가는 홍천양을 향해 미친 광인 같은 음성을 흘렸다.
 
 또 다시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자비한 구타가 없었다. 단지 전신의 각 혈로 파고드는 콕콕 쑤시는 듯한 송곳 같은 고통이 있을 뿐이었다.
 "검을 쥘 때에는 오른손 검지는 살짝 펴라--. 그리고 엄지는 검지와 중지 사이에 가볍게 둬라--. 또한 양 손목은 안쪽으로 살포시 조여 주며, 양손의 합곡부분이 칼등과 일직선이 되도록 해라--."
 황사문은 고통으로 몸을 비틀거리는 홍천양에게 나지막한 음성을 흘렸다. 그리고 빠르게 검을 앞으로 찔러, 홍천양의 전신의 혈에 검봉을 찔러 넣었다.
 "커, 컥!!"
 홍천양은 몸의 혈도 자리에 파고드는 검봉이 주는 고통에 말을 잇기 어려웠다. 그런 홍천양의 귀로 황사문의 음성이 들렸다.
 "말로 검론을 듣고 외우려 하지 마라--. 네 몸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통해 검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라--.············검은 기본 요결은 대략 일곱 가지로 나뉜다. 나는 그 일곱 가지를 칠검휴(七劍休)라 부른다. 자(刺, 찌르기). 참(斬, 베기). 변(變, 변화). 절(切, 끊기). 중(重, 무거움). 류(流, 흐름). 유(柔, 부드러움).············천하에 수많은 검가(劍家)와 검법이 있지만. 그 무엇도 칠검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황사문은 말과 함께 목검을 홍천양의 가슴 명치를 향해 빠르게 찔러갔다.
 쉬-이잇!
 퍽!!
 "크-억!"
 홍천양은 신음성과 함께 명치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숨이 막혔다. 그 탓에 홍천양은 몸을 휘청거렸다.
 "그것이 자(刺)다. 찌르기!! 빨라야 한다. 자는 무조건 빨리 상대의 급소를 찔러야 한다."
 쉬-각!!
 허공을 목검이 가르며 홍천양의 어깨에 자리한 견우혈과 거골혈에 떨어졌다.
 빡!!
 "으-아악!"
 "참(斬)!! 참은 강하게 힘을 실어 적을 베어야 한다. 망설이지 마라-. 망설이는 순간 너는 죽는다."
 황사문은 인정사정이 없었다. 단호한 음성을 흘리며 홍천양의 전신을 목검으로 가격했다.
 퍼- 퍼- 퍽!!
 "크- 흑!"
 홍천양은 비틀거렸다. 전신을 파고드는 고통의 들쑤심에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변(變)은 빠름과 환(幻)을 포함해야 한다. 적의 시선을 흔들고 검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
 쉬-익!
 목검이 허공으로 파공성을 흘리며, 홍천양의 머리 바로 위에서 멈추었다. 그러자 황사문은 웃었다.
 "크크···········. 절(切)은 순간적으로 적의 공격의 흐름을 끊는 것이다. 그것은 민첩함과 자신의 힘을 제어할 줄 알아야 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미소!
 무척이나 불쾌하고 기분이 나쁜 미소였다.
 '비, 빌어먹을···········.'
 홍천양은 황사문의 입가의 미소를 바라보며 내심 성을 내고 있었다. 홍천양은 그 자신도 모르게 차츰 성격이 변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 후, 약 한 시진 정도 황사문의 거친 검론은 이어졌다. 그리고 홍천양은 또 다시 의식을 잃었다.
 
 그날 밤. 자시(子時) 초경. 사위가 고즈넉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무수한 군막들 사이로 화톳불이 여기저기에서 타닥거리며 작은 불씨를 허공으로 튕기고 있었다. 그런 군막들 사이에 자리한 작은 공터의 한 쪽에서 홍천양은 백 노야와 함께 가부좌를 틀고 마주 앉았다.
 "숨을 자연스럽게 쉬어라--. 무리하게 인위적으로 숨을 조절하려고 하지 마라--. 가장 바르고 이상적인 호흡은 갓난아기의 본능적인 호흡이다. 그러니 머릿속으로 상상해라--. 지금 자신이 어머니의 태속에 있다는 상상을 하며 호흡을 해라---."
 홍천양은 귓가로 들리는 백 노야의 음성에 따라 천천히 호흡에 전념해 갔다.
 "네가 지금 행하는 것은 도가의 진기토납법의 일종이다. 흔히 동자공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천양이 네가 동정을 잃지만 않으면 상당한 내력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정을 잃으면, 네가 지금 익히는 동자공은 이내 무너진다. 내가 굳이 너에게 이 동자공을 전하는 이유는 무리가 없으면서도 후에 다른 내공을 익히더라도 너에게 아무 후유증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만큼 탄탄한 기본공이기도 하다."
 "후···········우욱!"
 홍천양은 심호흡을 하며 백 노야의 음성을 귀담아 들었다.
 "일찍이 보리달마 대사가 면벽구년 만에 역근과 세수를 남긴 이후 무림에 존재해 왔던 거의 모든 내가 신공은 대개가 후천의 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즉, 인위적으로 외부에서 기를 끌어와 자신의 힘으로 삼는 것이지.···········하지만 보리달마 대사 이전에 존재했던 고대 무림의 내가 신공들은 대개가 선천지기를 바탕으로 몸의 내부에서 기를 찾는 것이다. 흔히 도가에서 말하는 원기나 원정 같은 기를 말이다.···········그런 고대 무림의 내가 신공들은 그 익힌 이의 의지에 따라 힘의 강약이 달라진다.
 
 간단하게 말하면, 익힌 이가 느끼는 감정과 의지의 강함과 약함에 따라 그 위력이 극명하게 달라진다. 그에 고대 무림의 내가 신공들은 현 무림의 내가 신공보다 강하다.···········역근과 세수는 그런 고대 무림과 현 무림을 잇는 징검다리 같은 것이다. 만약 네가 인연이 있어 고대 무림의 무공을 접하게 된다면. 반드시 네 것으로 만들어라. 네 몸 안에 존재하는 원기와 원정지력을 얻는다면. 너는 분명 한 시대를 풍미할 강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백 노야는 말과 함께 어느새 호흡에 깊이 빠져든 홍천양을 물끄러미 주시했다.
 열일곱!
 어린나이였다. 그 나이에 고아라는 이름으로 전장으로 끌려 왔다.
 '후···········이것도 인연인가?'
 백 노야는 암암리에 손을 써 알아본 홍천양의 신분 내력을 떠올리며, 내심 한숨을 쉬었다.
 '타고 난 자질은 더 할 나위 없이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하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 기본이 전혀 닦여 있지 않다. 분명 무가의 자식 같은데···········왜 유생일까? 그리고 이제까지 이 아이의 근골을 알아 본 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너무 이상해···········.'
 백 노야는 내심 욕심이 났다. 이제 그의 나이 육십을 훌쩍 넘겼다. 죽기 전에 자신의 비전을 전할 이를 얻고 싶었다.
 백 노야!
 그는 무림인이었다. 신분과 이름을 감춘···········.
 '어쩌면 이 아이 천양이가 조사님의 일수유를 완성할 인재인지도···········.'
 백 노야. 도명 청운. 무당 청자 배 서열 이 위. 백 노야는 차츰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다.
 
 과거 주원장은 백련교에 몸을 담았었다. 그 탓에 무공을 접했고 일부 무림인을 포섭했다.
 대의명분!!
 주원장은 반원 전쟁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그에 강호의 일부 무림인들이 대거 반원 전쟁에 참여했다.
 한족!
 그들만의 자존심이 강호의 무림인들을 끌어당긴 것이다.
 주원장!!
 일세의 효웅이자 간웅. 그는 힘을 얻기 전까지 철저하게 몸을 숙였다. 그리고 남경에서 등극하여 명을 건국했을 때. 그는 무자비한 피의 숙청을 통해 절대 독재의 철혈 황권을 손에 걸머쥐었다.
 금의위(錦衣衛)!
 주원장의 절대 황권의 기반이 된 조직이다. 주원장은 무당파에 절대 황권으로 거절할 수 없는 명을 내렸다. 겉으로는 요청이란 껍질을 쓴 강요.
 "황궁의 금의위를 가르치라--. 또한 관부 무림의 기반을 만들라--."
 그 누가 절대 황제로 군림하는 주원장의 명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결국 무당파에서 몇몇 도사들이 남경으로 갔다. 그리고 그들은 감금 아닌 감금 상태에서 관부 무림과 금의위에게 무공을 가르쳐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무당파의 비전을 전하지 않았다.
 자존심!!
 절대 꺾일 수 없는 천하 도문의 정점에 선 무당 도문. 그 자부심과 긍지가 무당파의 비전을 전하지 못하게 했다. 그에 주원장은 대노해 몇몇 무당파의 도사를 참살했다. 그 원통하고 사무치는 한이 오죽했으랴--. 그러자 무당파의 도사들은 주원장에게 과거 대원 황궁 무고에서 주원장이 획득한 일부 재화를 요구했다. 그에 주원장은 무공에 대한 탐욕이 남다른 무림인들의 속성을 아는 탓에 선선히 회유의 목적으로 내주었다.
 뒤틀린 무당 무공!
 무당파의 도사들은 금의위와 관부 무림에 속한 이들에게 그렇게 무당파의 무공 아닌 무공을 전수했다. 무당파의 무공과 과거 원 황궁 무고에서 흘러나온 무공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인 실전 무공. 그것이 달리 황궁 무공이라 불리우는 관부 무림의 시작이었다.
 
 '그 때 연왕이 남경을 무너뜨리는 혼란을 틈 타 군부로 스며들지 않았다면···········나는 죽었을 것이다. 그들 황밀(皇謐)!! 주원장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골수 한족주의자들.'
 백 노야는 내심 자신의 과거를 더듬으며 천천히 품속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이내 유지(油紙)에 겹겹이 싸인 한 작은 물건인 듯한 것을 꺼내었다. 천천히 유지가 벗겨졌다.
 
 철환!
 거무틱틱한 닳고 닳은 잔뜩 녹이 쓴 듯, 녹색의 이끼가 묻은 듯한 철로 만든 반지.
 
 "운철은 말로만 들어 보았지. 실제로 본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백 노야는 유지속에 있는 철환(鐵環)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런 철환의 안쪽 면에는 여덟 자의 고대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상형문자!!
 현재 사람들이 쓰는 한자의 원형이 되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형성이 되어 있는 희미한 알아보기 어려운 여덟 자의 글.
 
 만마앙복(萬魔仰伏). 군마영세(群魔永世).
 
 "휴! 내공으로 안력을 돋구어 보지 않으면 알아 볼 수 없는 글. 분명 천마의 전설이 말하는 지존환(至尊環)!! 그것이 분명하다."
 백 노야. 무당 청운 도장은 물끄러미 자신의 손안에 있는 철환을 보며 회한에 잠겼다.
 "이따위 물건 때문에 그간 수십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니···········."
 백 노야의 음성은 허탈함과 무심함으로 가늘게 떨렸다. 그리고 짙은 허무감이 전신에 흘렀다.
 스윽!
 백 노야는 시선을 돌려 어느새 깊이 그가 전한 동자공에 빠져든 홍천양을 바라보았다. 처음 볼 때부터 묘하게 그의 눈을 끌어 당기는 아이였다.
 인연!!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이자. 불가에서는 원인이 되는 결과의 과정이라 말하는 것.
 "무릇 도가나 불가나 도를 닦는 이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인연. 저 아이와 나와 전생에 무슨 연이 있기에···········휴우!! 그간 내가 아무리 알아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종내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한 것이니···········조사님!!"
 백 노야는 아련한 기억속에 가물거리는 한 과거를 회상했다.
 
 청수한 하얀 백의의 도복. 길게 아래로 뻗어 내린 백염. 비록 나이가 들고 늙어 주름살이 진 얼굴이었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 주는 따뜻함이 가득한 노도인.
 
 "허허-, 청운아--. 무엇을 그리도 붙잡고 있느냐--?"
 "씨. 조사님--. 손을 놓으면 떨어진다고요---."
 예닐곱 소동이 도복을 입고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허허, 그러기에 왜 나무에 올라가서 매달려 있느냐?"
 "치이, 같이 놀다가 다들 나만 쏙 빼고 가버렸어요. 조사님--. 좀 내려 주세요."
 노 도사는 미소를 지은 채 말없이 하얀 백염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조사님--. 좀 내려 달라고요----."
 소동의 언성이 커졌다. 하지만 노 도사는 미소를 머금은 채 묵묵히 소동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조사님-----!"
 소동의 언성이 신경질적으로 커졌다.
 "놓거라--. 놓으면 되는 것을 왜 붙잡고만 있느냐?"
 "네에!!"
 소동은 노 도사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노 도사를 바라보았다.
 "놓으란 말이다. 왜 붙잡고만 있으려고 하느냐? 단지 손을 놓기만 하면 되는 것을···········."
 "아아앙!! 너무 하세요. 조사님--. 놓으면 떨어지잖아요. 떨어지면 아프다고요. 아아앙!!"
 소동은 겁에 질려 울었다. 그러자 노 도사는 천천히 소동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내 가볍게 땅바닥을 박차고 소동에게 몸을 솟구쳤다.
 휘-이익!
 노 도사는 소동을 안은 채 다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소동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노 도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휴···········죽는 줄 알았네. 조사님. 고맙습니···········."
 소동은 노 도사가 웃으며 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키는 모습에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이상하다는 듯, 천천히 뒤돌아섰다.
 스윽!
 "어?"
 낮다!
 조금 전 소동이 매달려 있던 나무 가지는 땅바닥과 그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겁!!
 두려움에 사로잡힌 어린 소동의 눈에는 나무 가지가 높다는 선입견과 두려움이 주는 착각과 환상에 휩싸였던 것이다. 그러자 노 도사가 어리둥절한 듯한 모습의 소동. 청운에게 천천히 말했다.
 "청운아--. 매사 눈으로만 보이는 것에 매달리지 말거라-. 그저 네 마음에서 느껴지는 대로만 보고 행하거라--. 알겠지."
 스, 스슥!
 노 도사는 인자한 미소를 띤 채 한 손으로 어린 소동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조사님. 저, 청운은 저 아이 천양이에게 이 지존환과 조사님이 남기신 일수유를 전하고 싶습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저 아이를 처음 본 순간. 제 마음이 저 아이에게 끌립니다. 조사님!! 이해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저 아이에게 마음이 갑니다. 저도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반드시 저 아이에게 저와 무당의 인연을 이어야 한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어납니다. 조사님!!"
 마음의 충동!!
 순간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하는 마음속의 자극.
 백 노야, 청운 도장은 홍천양을 보며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후···········."
 홍천양은 길게 숨을 내쉬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전신에 따뜻한 아주 작은 기운이 흐르는 것 같은 상쾌함에 기분이 무척 좋았다.
 스윽!
 홍천양은 밝은 얼굴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앞에서 자신을 주시하는 백 노야를 쳐다보았다.
 "백 노야--."
 홍천양은 백 노야를 부르며, 이내 두 손을 공손하게 배꼽으로 가져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움찔!
 그러자 백 노야의 몸이 가볍게 흔들렸다.
 "녀석···········."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그간 홍천양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다른 세 사람과 달리 이모저모 홍천양의 뒤를 봐 주었다. 그 탓에 고마움을 느껴 저리하는 것이리라···········.
 "천생 유생(儒生)이로구나."
 홍천양은 백 노야의 말에 쑥스러운 듯, 얼굴을 살짝 붉혔다.
 "이리 와 봐라--."
 "네."
 저벅저벅!
 홍천양은 자신을 부르는 백 노야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백 노야의 앞에 이르러, 그를 바라보았다.
 "우수를 내밀어 봐라--."
 "네?"
 홍천양은 뜬금없는 백 노야의 말에 의아했다.
 "우수를 내밀어 보란 말이다."
 "아, 네에."
 슥!
 홍천양은 백 노야의 말에 우수를 내밀며, 안면에 의아한 낯빛을 띠었다. 그 사이 백 노야는 홍천양의 우수 중지에 철환을 쑥 밀어 넣었다.
 "어? 노야--."
 "네. 선물이다. 그리고···········."
 백 노야는 놀라는 홍천양을 향해 긴장된 음성을 흘렸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라--. 알겠지."
 "무슨···········?"
 홍천양은 백 노야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그러자 백 노야는 그런 홍천양의 말을 무시하고, 이내 입을 오물거렸다.
 -내 말이 들리느냐?
 "어? 배, 백 노야---."
 홍천양은 귓가에 들리는 백 노야의 음성에 깜짝 놀라는 음성을 내뱉었다. 그러자 백 노야는 황급히 어둠속에 잠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내 시선을 홍천양에게 돌렸다.
 "아무 말 말고 그저 듣고 외우기만 해라--."
 "그, 그렇지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거라--."
 백 노야는 홍천양에게 눈빛을 반짝이며 무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러자 홍천양은 내심 의아해하며, 말없이 백 노야의 말에 따랐다. 그런 홍천양의 귀로 백 노야의 전음입밀이 무척이나 오래 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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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르!!
 몽고의 전통 가옥이다. 가옥이라고 해 봐야 그저 천막일 뿐이지만. 게르는 추운 북방의 날씨에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포근한 안식처다. 옆으로는 두툼한 짐승들의 털가죽을 얹어 추운 바람을 막았고, 위로 중앙이 뻥 뚫린 원형이라 안에서 연기와 통풍이 무척 잘 되었다. 그런 게르의 내부에 일단의 이들이 양가죽 위에 앉아 마유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흐음. 구복이 대장군이 되어 십만의 군사를 이끌고 켈루렌 강으로 온다. 이 말이오."
 "그렇습니다. 왕야."
 "왕야--. 까짓 거 오라고 하십시오. 구복 따위의 놈이 이끄는 십만쯤이야. 무에 신경을 쓸 것이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왕야--. 케르커허 부족장의 말대로 이참에 명나라 놈들에게 우리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우리를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 아닙니까?"
 네 명!!
 게르의 안에 앉아 있는 이들은 네 명이었다. 세 명은 머리를 딸아 전통 몽골 양식을 한 채 두툼한 가죽 옷을 입었다. 그리고 제대로 씻지 않은 듯, 얼굴에는 때와 기름기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바로 달단부의 지배자 벤야시리와 달단부 최고의 무력을 가졌다는 케르커허 부족의 족장과 아루타이 부족의 족장 아루타이였다.
 한인!!
 그들 세 사람의 맞은편에 앉아 손에 마유주가 든 접시를 입으로 가져가는 이는 분명 장삼을 입은 한인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문인 대인."
 달단왕을 자처하는 벤야시리는 자신의 앞에 앉은 한인 문인백능을 바라보았다.
 미소!
 간교하고 음흉해 보였다.
 "글쎄요. 과연 구복이 왕야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기병이라고 해 봐야 고작 일만도 채 되지 않는데 말입니다."
 "으--하하하핫!!"
 달단왕 벤야시리는 순간 대소를 터트렸다. 그러자 그의 좌우에 앉은 케르커허와 아루타이가 입가에 흉악해 보이는, 섬뜩한 미소를 머금었다.
 여유!!
 문인백능은 아무 근심도 걱정도 없는, 태평한 모습으로 마유주를 마셨다.
 '보나마나다. 구복은 대패한다. 사전에 모든 정보가 벤야시리에게 넘어가고. 제대로 적을 파악하지 못한 채 빈약한 군세로 무슨 전쟁을 하겠다고···········후후--, 이로서 지존의 뜻대로 세상을 난세로 접어들게 되었어. 크크크크···········.'
 문인백능은 내심 흡족한 듯, 눈가로 득의양양한 눈빛이 빠르게 스쳤다. 그런 문인백능의 귀로 달단왕 벤야시리의 음성이 들렸다.
 "좋소이다. 신황부에서 이처럼 우리 몽골을 위해 애를 써 주는데. 내 어찌 신황부와 손을 잡지 않을 수 있겠소."
 "고마우신 말씀이십니다. 왕야--. 저희 신황부 또한 신강과 서장에 자리한 세외. 같은 세외끼리 뭉쳐 저 오만불손한 연왕 주체를 상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핫!! 당연하오. 아암. 당연하고말고. 역시 과거 우리 원의 왕족답소이다."
 "별 말씀을···········."
 문인백능은 접시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이번에 신황부에서 어떤 지원을 보내 주실 것이오?"
 스윽!
 문인백능은 벤야시리의 우측에 앉은 케르커허 부족의 부족장 케르커허를 향해 눈을 돌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문인백능은 말끝을 흘렸다. 그 눈치가 적당히 슬그머니 넘어가고자 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케르커허가 날카롭게 안광을 번뜩였다.
 "동맹은 신뢰가 아니오. 우리 달단부가 명군과 전쟁을 하는데. 동맹인 신황부가 가만히 있는 다는 것은 어폐가 있지 않소."
 "으음···········이처럼 정보를 다 구해다 드리는데 무슨 지원이 더 필요합니까? 어차피 다 이긴 전쟁이 아닙니까?"
 문인백능은 양팔을 옆으로 벌리며,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시늉을 했다.
 "케르커허! 문인 대인의 말씀이 맞다. 어차피 이 전쟁은 다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야. 이 이상 무슨 지원이 더 필요한가?"
 아루타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케르커허는 불쾌한 듯 고개를 아루타이에게 돌렸다.
 "아루타이! 명군에게는 낭인들이 있다. 강호인들이란 말이다."
 "풉!! 우리도 무공을 익혔다. 과거 토곤 테무르님께서 대도를 빠져 나오실 때. 가지고 나오신 무공 비급을 우리도 익혔다."
 "아루타이. 무공 비급을 보고 익힌 것과 싸우면서 무공을 익힌 것은 다르다. 그들은 과거 황실과 싸우면서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흥! 우리도 놈들 못지않게 잘 싸운다. 우리는 초원의 용사들이다. 푸른 이리의 자손이란 말이다."
 "자만하지 마라--. 우리는 말등에서 내리면 저들보다 약하다."
 "뭣이! 케르커허. 우리 몽고의 용사들을 믿지 못하느냐?"
 아루타이는 케르커허와 논쟁을 벌이며 다투었다. 헌데도 달단왕 벤야시리는 모르는 척 마유주를 마시고 있었다.
 '후후--, 내 자리를 위협할 여지가 있는 놈들은 서로 물어뜯게 해야 해. 그래야 내 자리가 공고해져.'
 권력의 속성!
 벤야시리는 자신의 두 측근 케르커허와 아루타이를 서로 시기하며 싸우게 했다. 바로 반간계와 이간계를 본능적으로 적절하게 써 먹는 것이었다.
 '호오--,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두 측근을 갈라놓는다. 이거 보기 보다는 머리가 좋은데···········.'
 문인백능은 접시를 들며 마유주를 마시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앞에 앉은 세 사람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그가 아는 벤야시리는 힘만을 숭상하는 전형적인 몽고인이다. 그리고 동 몽고를 기반으로 전 몽고 초원으로 강대한 힘을 뻗고 있었다. 그 탓에 머리는 없다고 생각했던 자였다.
 '훗!!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경우인가?'
 문인백능은 천천히 접시를 내려놓으며, 그대로 놔둔다면 끝없이 다툴 것 같은 아루타이와 케르커허 사이에 끼어들었다.
 "잠시만···········지원을 해 드리죠."
 "응?"
 "어?"
 반짝!
 케르커허와 아루타이는 일순 논쟁을 멈추고 문인백능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 벤야시리는 마유주가 든 접시를 입가에 댄 채 매서운 눈빛을 띠었다.
 "단. 낭인들을 상대하는 것에 한해서 입니다."
 "좋소."
 "흠흠. 도움을 주시겠다면야···········."
 "고맙소이다. 문인 대인."
 케르커허는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반해 아루타이는 헛기침을 하며 멀쑥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벤야시리가 고마운 마음을 표시했다. 준다는 데 거절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저희 신황부의 고수 몇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들이라면 낭인들쯤이야. 가뿐하게 처리할 것입니다."
 "하하--, 내 기대 하겠소이다. 문인 대인."
 벤야시리는 문인백능의 말에 호기로운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문인백능은 내심 그를 비웃으며 마유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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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은 어느덧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자 추운 북방의 한풍이 통료(通遼)의 허공으로 불어 왔다. 북방의 한기는 뼛속까지 파고드는 시리디 시린 것이었다. 절로 몸이 추위로 떨리고 입에서는 뜨거운 김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병사들은 밤이면 저마다 두툼한 솜옷의 옷깃을 여미며 따뜻한 불가를 찾아 모여들었다.
 "크···········역시 술은 회주야--. 안 그래."
 "화주 좋지. 싸고 마시며 이내 몸을 따뜻하게 덥혀 주는···········참으로 고마운 술이지. 아암."
 "마실 수 있을 때 마셔 둬. 곧 우리에게 움직이라는 군령이 떨어질 거야."
 "휴우···········그러겠지. 이 추운 겨울이 가면 곧 전쟁일 테니."
 백 노야는 말과 함께 주위에 앉은 세 사람. 황사문, 팽한기, 단위규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어둡다! 무척이나 안색이 어둡다.
 "젠장-, 조금만 더 시간이 있으면 천양이 자식을 좀 더 다듬을 수 있을 텐데."
 단위규는 아쉬운 듯했다. 그러자 팽한기가 씨익 웃으며 단위규를 쳐다보았다.
 "왜? 애 하나 잡으려고···········."
 "뭐야--."
 "크큭! 맞잖아. 우리 세 명 중 위규 네가 천양이를 가장 모질게 팼잖아."
 "그 거야--. 당연하잖아-. 박투술은 모든 것의 기본이야. 기본."
 단위규는 팽한기와의 대화에 끼어든 황사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강하게 주장했다. 박투술은 모든 무공의 기본이라고.
 끄덕끄덕!
 백 노야는 단위규의 말에 천천히 아래위로 고개를 흔들었다.
 "위규 말이 맞네. 박투술은 곧 몸을 움직이는 법이니. 박투술을 가장 중점적으로 익히는 것이 살아남을 확률이 가장 높네."
 "킥킥!! 백 노야-. 그 거야. 우리들 사이의 얘기지요. 위규 놈에게 여름부터 지금까지 거의 반 년 동안 두들겨 맞은 천양이 입장에서야 아마 위규 놈을 갈아 먹으려고 할 겁니다. 킥킥!!"
 팽한기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자 황사문이 단위규를 흘끗거리며 나지막한 음성을 흘렸다.
 "말로 배우는 것보다 몸으로 고통을 느끼며 배우는 것이 머리에 잘 박히는 법이긴 하지. 하지만 때때로 천양이 녀석이 시전하는 검로를 보면 얼핏 살기가 감돌아. 그 살기는 천양이 녀석 마음에 맺힌 무슨 한 같은 것이 원인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도 느꼈어. 그 녀석 무슨 응어리가 진 것인지 잘 모르지만. 간혹 나도 뜨끔할 때가 있어. 마치 밖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쌓이고 쌓인 그 무엇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단 말이야."
 단위규는 황사문의 말에 동조하는 듯했다. 그러자 팽한기가 거침 음성을 내뱉었다.
 "니미--. 나만 느끼고 있는 줄 알았잖아-. 그 자식은 말이야. 밖으로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려고 하지 않아. 그저 마음속 깊이 감추려고만 해. 그러다가 그 감정의 억눌림이 한순간 밖으로 터져 나올 때는···········."
 팽한기는 말과 함께 고개를 돌려 다른 세 사람. 단위규, 황사문, 백 노야를 한 명씩 둘러보았다.
 "피깨나 뿌릴 놈이야--. 심성은 착한데. 자신의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고 적당히 조절할 줄을 모르는 놈이야."
 스윽!
 팽한기는 눈을 돌려 백 노야를 바라보았다.
 "백 노야--. 그래도 천양이 놈. 백 노야라면 껌뻑 죽는 놈이니. 노야가 잘 좀 봐 주쇼. 젠장---, 간만에 쓸만한 놈 하나 만들어 놨다고 생각했더니···········니미 샹!!"
 팽한기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지 불안한 눈빛을 띠었다. 그러자 백 노야가 천천히 낮은 음성을 흘렸다.
 "그 아이 고아라고 하더구먼. 자네들도 어느 정도는 알겠지. 과거 원이 무너지며 지금까지 무수한 전란이 있었네. 고아들이 살기에는 너무 척박한 세상이야. 하지만 우습게도 그 놈 유학을 배우고 익힌 놈이라. 알게 모르게 그 영향을 받아 무척 사리판단에 밝아--. 그리고 이성이 본능을 억누를 정도로 제법 심지도 굳고."
 "노야--. 하지만 이곳은 전장이오. 그깟 것은 살아남는데 아무 소용이 없소. 내가 염려하는 것은 곧 봄이 오면 전쟁이 벌어지고. 그 전에 우리 혈의대가 먼저 피를 뿌려야 한다는 거요. 노야도 잘 아시지 않소. 사람을 죽여야 하는, 첫 임무에 나서는 신출내기가 지닌 위험을 말이오."
 황사문은 마음에 걸렸다.
 살인!
 사람을 죽이는 것. 자신들이 있는 곳은 사람을 죽여야 하는 전장이다. 헌데, 홍천양이 과연 사람을 죽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손에 피를 묻히고도 침착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 탓에 세 사람은 홍천양을 무자비하게 팼다. 독기와 저항심 그리고 투쟁심을 심어 주기 위해 일부러 구타를 가했다.
 ············································.
 침묵!!
 백 노야와 팽한기 그리고 단위규는 황사문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불안!!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흔들렸다. 조마조마한 마음의 흔들림이 무척이나 불안했다.
 과연 한 사람의 병사로서 제 몫을 다해낼 수 있을까?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믿어 볼 수밖에···········."
 "우라질-,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잖아--. 뚜껑을 열어 봐야 알 수 있으니깐--."
 "너무 걱정들 하지 말게. 천양이 그 아이라면 자네들의 믿음을 배신하지는 않을 게야. 내 보기에는 그 아이. 천양이는 문사가 아니라 무인이야.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 근골과 성정 그리고 그간 자네들에게 단련이 되는 것을 보면. 필시 무인의 피를 타고난 것 같은 생각이 드네. 그러니 한 번 믿어 보게. 적어도 자네들이 그간 흘린 땀을 천양이가 모른 척 하는 일은 없을 것이네."
 백 노야는 말과 함께 슬쩍 눈동자를 네 사람이 앉은 천막 밖으로 돌렸다.
 '녀석. 숨어서 엿듣기는···········.'
 밖!! 홍천양이 귀를 쫑긋거리며 엿듣는 기척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 혈로 종행 *
 
 
 남경(南京)!
 양자강 가에 자리 잡은 강소성의 성도. 명나라 초기 주원장(朱元璋)이 처음 도읍을 정한 도시. 또한 동오(東吳), 동진(東晋), 남북조시대 송(宋), 제(齊), 양(梁),진(陳)의 고도였던 탓에 구조 도읍지라 불리는 곳. 그런 남경의 한 기루의 방에 두 사람의 인영이 서로 술상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양 대인. 꼭 좀 부탁합니다."
 "남궁 대협. 그것은 좀···········."
 관복을 입은 중년인. 병부 정 오품 각사난중(各司郎中) 양사기는 말끝을 흘렸다.
 곤혹스럽다!!
 양사기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그의 앞에 앉은 남궁용운은 슬그머니 품속에서 한 전표를 꺼내어 탁자 위에 내려 놓았다.
 "황금 일천 냥입니다."
 "컥!!"
 양사기는 순간 사레가 들린 듯한 얼굴로 남궁용운을 쳐다보았다.
 황금 일천 냥!
 웬만한 고대광실 같은 장원을 살 수 있는 거금.
 "꼭 부탁드립니다."
 "나, 남궁 대협--. 대관절 그 병사와 무슨 관계이기에···········."
 "죄송합니다. 양 대인. 그것은 말씀 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 아이를 꼭 전장에서 빼내 주십시오."
 "남궁 대협! 이미 전장으로 배치가 된 병사를 뒤로 빼내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양사기는 탁자 위에 놓인 전표를 흘끗거리며 망설였다.
 '잘못되면 죽는다.'
 양사기의 머리에는 그런 생각이 자리해 있었다.
 "양 대인. 저 또한 알 것 다 압니다. 적당히 손을 쓰면 부상자로 둔갑시키거나 사지 중 하나가 없는 이로 둔갑시켜 군문에서 내보는 일이 종종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그것은···········커-허엄!! 흠흠."
 양사기는 헛기침을 했다.
 있다!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소위 권력이나 금력 등. 힘이 있는 자들의 자식들의 경우였다. 적당한 서류 조작과 중간에서 얼버무리는 손 장난. 그리고 서류상으로 죽은 것으로 처리한 후. 전쟁이 끝난 후에 서류를 없애 버리는 등. 장난을 칠 여지는 충분히 많았다. 하지만. 걸리면 죽는다. 특히 군과 관련된 일에 어설픈 장난을 쳤다간. 일선의 무장들이 들고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양사기 자신의 목이 수십 개가 있어도 부족하다.
 집어넣을 것인가? 아니면 모른 척 할 것인가?
 양사기는 고민이 되었다. 어떻게 할 바를 몰랐다.
 갈팡질팡!
 양사기의 마음은 그랬다. 그런 양사기의 말에 말뚝을 박는 듯한 음성이 들렸다.
 "양 대인. 남궁가가 부탁하는 일입니다. 우리 남궁가가···········."
 파르르!
 양사기의 눈가가 떨렸다.
 남궁 세가!
 그 명칭이 주는 무게가 묵직하게 양사기의 전신을 내리눌러 왔다.
 '제기랄-, 안휘성 최고의 호족이자 강호에 명망이 높은 세가고. 막말로 그 인맥은 승상조차 무시하지 못하는 가문의 청탁을···········.'
 거부할 수 없다.
 양사기는 마음을 굳혔다. 거부했다가는 무슨 후환이 그에게 돌아올지 너무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슥!
 양사기는 손을 뻗어 전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급히 품속으로 갈무리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나 말고도 다른 쪽도 좀···········."
 "아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양 대인. 이미 다른 쪽도 손을 써 두었습니다."
 "여, 역시···········나, 남궁가입니다. 하하핫!!"
 양사기는 웃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다른 놈들도 받아먹었다면 자신이라고 못 받아먹을 이유가 없었다.
 '못 받아먹는 놈이 바보지.'
 양사기는 기분이 좋은 듯 이내 남궁용운과 술잔을 들어 부딪쳤다. 그리고 거나하게 마음 놓고 달아오르는 취기를 즐겼다.
 
 화려한 듯, 하면서도 수수한 방이었다. 벽에는 은은한 운치가 느껴지는 서화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한 쪽 벽면에는 고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도자기들이 자리해 있었다. 그런 방안에는 운남산 자단목의 고급 탁자를 사이에 두고 두 인영이 서 있었다.
 
 "무슨 소리야--. 그게."
 "가주-. 사실입니다. 이미 용운님께서 재화당에서 황금 일천 냥을 가져 가셨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태상 가주께서 물경 은자 십만 냥을 조정의 요로에 있는 이들에게 은밀히 뿌리셨습니다."
 "그, 그런 일이···········."
 당대 남궁 세가주 남궁용검은 어안이 벙벙했다. 너무 뜻밖의 일인데다가 놀랍고 터무니없었다. 그러자 그의 앞에 선 중년인. 남궁 세가 금검대주 남궁영소는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가주--. 이 일을 이대로 묵과 하셔서는 아니 되십니다. 분명히 따져 물어야 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가주께서 모르는 사이에 그런 거금을 쓰실 수 있단 말입니까? 최소한 그 용처만이라도 가주께 언질을 주셔야 하는 일이 아닙니까?"
 "······················."
 "가주!!"
 남궁영소는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남궁용검은 천천히 한 쪽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아, 아버님이 하시는 일이다."
 "가주!! 그래도···········."
 "아버님은 태상 가주시다!!"
 "······················."
 남궁영소는 남궁용검의 일갈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남궁용검은 천천히 작은 음성을 힘없이 흘렸다.
 "아, 알아보아라-. 아버님이 왜, 무엇 때문에 그리 하셨는지···········."
 "알겠습니다. 가주. 그럼."
 "······················."
 남궁용검은 말없이 손을 가슴 앞 허공에서 내저었다. 그만 물러가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남궁영소는 말없이 몸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이내 남궁 세가주 남궁용검의 처소를 나갔다.
 비틀!
 남궁용검은 몸을 가볍게 휘청거리며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털썩!
 "아버지--. 아, 아직도 절 용서하지 않으셨습니까?"
 남궁용검은 슬픈 음색의 흐느끼는 듯한 음성을 흘렸다.
 후회막급!
 이미 잘못된 뒤에 아무리 후회하여도 다시 어찌할 수가 없는 그 표정. 남궁용검의 얼굴은 그랬다.
 "도, 도대체 어, 언제나 저와 어머니를 용서해 주실 겁니까?"
 원망스럽다! 부친이 너무나 원망스럽다. 불만과 불평 그리고 부친에 대한 미움이 회오리쳤다.
 "그깟 놈이 무엇이라고----."
 덥석!
 남궁용검은 탁자 위에 놓인 벼루를 집어 내동댕이쳤다.
 쨍!!
 벼루가 바닥에 부딪치며 깨어지는 소리가 나직하게 방안에 울렸다.
 거칠다!!
 남궁용검의 숨소리가 거칠고 탁한 음색을 띠었다.
 "젠장·············제기랄···········왜에·············왜·············?"
 남궁용검의 외침이 차츰 흥분한 듯 격해졌다. 그리고 그런 남궁용검의 머리로 한 이름이 스르륵 떠올랐다.
 
 남궁영호!
 그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존재다. 과거 원말과 명초는 전란이 끝없이 되풀이 되는 난세였다. 그 때문에 숱한 유민들이 천하를 유랑했다. 그들은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기거할 곳이 없는 고달픔으로 인해 종종 자식들을 팔았다.
 
 여인. 그녀는 미인이었다. 그 탓에 후한 값을 받고 남궁 세가의 하녀로 팔렸다. 그런 그녀는 이내 당시 가주였던 남궁무외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그러자 남궁무외의 아내인 예운향은 그녀를 죽도록 미워했다. 강호의 여인이기에 남편의 사랑을 어떻게 받는 방법을 몰랐다. 그리고 그녀의 기질은 좋게 말하면 여장부였고. 나쁘게 말하면 악처의 기질이 다분했다.
 
 애초에 스스로 정략혼으로 남궁무외에게 시집왔다. 강호 오대 세가의 수장 가문인 남궁 세가의 안주인 자리는 가히 여인들이라면 누구나 앉고 싶어 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남궁무외는 아기자기한 맛이 없는 예운향에게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남궁무외에게 순박하고 애교가 넘치는 여인이 생겼다.
 
 씨앗을 이뻐할 여인은 없다!
 
 예운향은 알게 모르게 그녀를 괴롭히고 박해를 가했다. 그러던 차 그녀는 아들을 낳았다. 남궁영호. 바로 그였다. 남궁영호의 무재는 가히 발군이었다. 검왕이라 일컫는 남궁무외의 피를 매우 진하게 타고 났는지. 가히 기재라는 소리를 들을 만 했다. 그러자 소가주인 남궁용검의 위치가 위협을 받았다. 이에 예운향은 암암리에 남궁영호를 죽이고자 했다. 그런데 자식을 살리고자 남궁영호의 모친이 암수를 대신 받았다.
 
 평지풍파!!
 
 남궁 세가는 요동쳤다. 골육상쟁이라 말해도 부족함이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남궁영호가 부친 남궁무외의 거처로 찾아가 땅바닥에 부복한 채 울부짖었다. 그간 그와 모친이 당했던 설움과 피맺힌 한을 울부짖으며 토해낸 후 남궁영호는 남궁 세가를 떠났다.
 
 "두, 두 번 다시 이 집안에 발을 들여 놓지 않겠습니다. 나는 오늘 이 순간부터 남궁씨를 버리겠습니다."
 
 남궁무외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슬픔과 아들의 설움과 한에 차마 자식을 붙잡지 못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아내 예운향과 아들 남궁용검에게 그 분노는 돌아갔다.
 
 
 "이십 년도 넘었습니다. 아버지! 이, 이제는 용서해 주실 때도 되었지 않았습니까? 예-에에---. 아버지-----!!"
 남궁용검의 눈가로 작은 물기가 고였다. 그 또한 가슴에 멍울이 맺혀 있었다. 지워지지 않는 낙인 같은, 부친의 사랑을 갈구하는 멍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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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흑 같은 어둠!
 그 어둠을 뚫고 다섯 명의 인영이 한 이름 모를 야산을 질주하고 있었다. 그들이 질주하는 야산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었다. 나무들은 그 줄기가 굵고 무척 높았다. 추운 북방의 날씨에 적응해 살아남은 나무들은 하늘을 찌를 듯이 위로 뻗어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 아래로 수풀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잡초 같은 것들이 지면에 자리해 있었다.
 
 두- 두- 두-두!!
 약 십여 기의 인마가 말을 몰며 빠르게 다섯 명의 뒤를 쫓았다. 그들 십여 기의 말에 탄 이들은 두 다리로 말의 허리를 꽉 조이며, 허리의 움직임으로 말이 나아가는 방향을 제어했다. 그로 미루어 보아 기마술이 무척 뛰어난 듯 보였다.
 
 슈--우욱!
 활의 시위가 강한 힘이 이내 뒤로 당겨지며, 둥근 만월의 형상을 띠었다. 그런 활의 시위에는 한 강전이 걸려 있었다.
 번뜩!!
 화살의 촉날이 어렴풋한 달빛에 섬뜩한 빛을 반짝였다.
 퉁! 퉁! 퉁!
 쇄- 애-애-애-액!
 순간 허공으로 십여 개의 강전이 어두운 밤의 허공을 찢으며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러자 십여 개의 강전은 단숨에 공간을 뛰어 넘어 그들 다섯 명의 등을 향해 쇄도했다.
 '흑!!'
 백 노야는 등뒤에서 느껴지는 섬찍함과 강한 파공성에 몸을 흠칫했다. 그리고 급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강전들!
 짙은 살의를 품은 듯한 십여 개의 강전.
 "피해라--. 쇄석전(碎石箭)이다--."
 과거 원 제국 시절 서방 원정에서 숱한 이민족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바위조차 꿰뚫는다는 쇄석전. 그것이 어둠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시- 파!"
 "피해--."
 "니미!!"
 "헉!"
 백 노야의 말에 네 사람. 황사문과 팽한기 그리고 단위규와 홍천양이 급히 좌우로 흩어졌다.
 푸--우욱!!
 꽝!!
 푸- 우욱!!
 강전들이 땅바닥으로 떨어지며 깊숙이 박혔다. 그리고 또 다른 강전들이 강렬한 굉음을 흘리며, 나무의 줄기를 꿰뚫었다.
 뻐- 어억!
 "크- 아아악!!"
 "위, 위규야--."
 "임마--."
 "··························."
 "위험해--."
 단위규의 다리로 한 강전이 그대로 날아와 꽂혔다. 그러자 이내 단위규의 비명소리와 함께 그가 땅바닥을 뒹굴었다. 그에 다른 이들이 고함을 치며 서로를 돌아보았다.
 까- 아앙!
 까- 아앙!
 열 개의 강전 중 남은 두, 서너 개를 백 노야가 검으로 쳐내었다. 그러자 강전들은 이내 땅바닥으로 투둑 거리며 떨어졌다.
 찌---이잉!
 '흐- 으음·············.'
 백 노야, 무당 청운 도장은 검신을 타고 손목으로 전해지는 경력의 진동에 내심 신음성을 흘렸다. 몸의 내부로 스며드는 경력에 잠시 내기의 흐름이 방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크- 아악!"
 우당탕탕!
 그 사이 남은 한 강전이 빠르게 황사문의 좌측 어깨에 내리 꽂혔다. 그러자 황사문의 몸이 쇄석전의 힘에 뒤로 튕겨지며,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사문아--."
 "······················."
 홍천양과 팽한기는 황급히 흩어져 황사문과 단위규에게 달려갔다. 그 사이 백 노야가 다급한 모습으로 뛰어 왔다.
 타- 다다닥!
 "어서--피해---."
 두-두두!!
 십여 기의 인마가 넓게 퍼지며, 그들 다섯 명을 중앙에 둔 채 원을 그렸다. 그리고 빠르게 원을 따라 돌며 차츰 말의 속도를 늦추었다.
 그런데 뜻밖이었다. 그들은 전혀 공격을 해 오지 않았다. 쇄석전! 조금 전까지 쏘았던 강전. 그 강전으로 다시 공격을 해 온다면. 꼼짝 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전혀 공격이 없었다.
 "크---. 나, 낭아기(狼牙騎) 놈들이야."
 단위규는 십여 기의 인마를 보며, 옅은 두려움의 음성을 내뱉었다. 그러자 홍천양은 단위규를 부축하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단위규가 그런 홍천양의 기색을 읽은 듯, 빠르게 설명을 해 주었다.
 "우, 우리와 마찬가지로 무, 무공을 익힌 놈들이야."
 "네, 네에!!"
 홍천양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과, 과거 원 순제가 대도에서 도망칠 때 원의 황궁 무고에서 숱한 재화를 빼내었어. 그, 그 속에는 무공비급도 있었고. 저 놈들은 그것을 익힌 거야. 제, 제기랄···········."
 단위규는 흥분한 얼굴로 불만이 가득한 음성을 흘렸다. 그 사이 팽한기와 백 노야가 황사문을 부축하며 가까이 다가왔다.
 "끄- 으으···········."
 털썩!
 황사문은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는 듯했다. 그리고 이내 땅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그러자 팽한기와 백 노야가 도와 검을 손에 들고 주위를 경계했다.
 "가, 가서 도와줘---."
 "제, 제가 마, 말입니까?"
 홍천양은 눈가에 두려움의 눈빛을 띠며 망설였다. 그러자 단위규가 와락 안면에 오만상을 지으며 소리쳤다.
 "지금은 누구라도 도와야 할 위급 상황이야--. 우물쭈물 하다가는 다 죽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냉정하게 판단해---."
 "네, 네에!!"
 홍천양은 단위규의 고함에 갑자기 정신이 드는 듯, 이내 대답과 함께 검을 빼들었다.
 채-애앵!
 그리고 재빨리 몸을 돌려 팽한기와 백 노야의 옆으로 뛰어 갔다.
 타- 다닥!
 "하, 하필이면 처, 처음으로 임무에 나와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다니."
 "지, 지랄···그, 그런 게 우리 마음대로 돼. 염병, 많고 많은 길 중 하필이면 낭아기 놈들이 경계를 선 길로 접어들다니···········."
 "재수가 없어도 너무 더럽게 없어."
 황사문은 단위규의 말에 뭐 씹은 듯한, 소태를 삼킨 듯 인상을 썼다.
 따- 가닥!
 따- 각!
 십여 기의 인마들은 천천히 말들의 속력을 늦추며 여유로운 모습으로 다섯 사람의 주위를 원을 그리며 맴돌았다.
 "케아산님. 놈들을 쇄석전으로 죽이시지. 왜에···········?
 한 경기병이 그의 앞에 있는 한 삼십 초반으로 보이는 인영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몽고 경기병 특유의 경갑을 입은 인영은 중앙에 있는 다섯 명을 쳐다보았다.
 "아가륵. 놈들은 혈의대 놈들이 분명한다. 그 놈들이 아니면 겁도 없이 저렇게 소수로 몽고 깊숙이 정탐을 위해 들어오는 놈은 없다."
 "그런데···········왜 놈들을 죽이시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아가륵이라 불린 이는 케아산을 향해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반짝였다.
 "흐흐--. 알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달단부 최고의 용사들인 낭아기가 익힌 과거 황실의 무공이 저들 혈의대의 낭인들이 익힌 무공보다 강한 것인지. 나는 확인을 하고 싶다."
 호승지심(好勝之心).
 남과 겨루어 이기기를 좋아하는 마음.
 케아산, 그는 무인들 특유의 승부욕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싸우고 싶다. 흥분으로 온몸의 피가 뜨겁게 달구어지는, 그 짜릿한 전율을 맛보고 싶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붉은 피가 주는 희열과 쾌감을 맛보고 싶다. 내 손끝으로 전해지는 살을 가르는 그 섬뜩한 느낌을 느끼고 싶다. 죽어가는 자가 지르는 찢어질 듯한 비명성을 듣고 싶다. 내 손으로 살아 있는 존재를 죽이는, 그 파괴의 황홀한 기분을 맛보고 싶다."
 케아산. 그는 무척이나 호전적인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몽골족 중 최고의 용사라 칭하는 낭아기에 속한 이였다. 그와 함께 그는 낭아기를 통틀어 그 무위가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다. 그리고 남과 승부를 겨루어 승자로서 패자의 목숨을 앗아 가는 것에 흥분과 희열을 맛 본 자였다.
 
 파괴의 기쁨!!
 
 그것은 흔히 앵속이라 불리는 마약이 주는 쾌감보다 더 지독한 쾌감과 희열을 준다. 그리고 그 중독성은 마약보다 더 지독하다. 한 번 파괴에 맛들이면. 사람의 인성이 파괴된다. 존재하는 것을 깨트리고 부수는 그 전율. 그것은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심연에 존재하는 가장 어두운 본능. 바로 그것이다.
 
 바르르!!
 아가륵의 몸이 두려움과 소름으로 떨렸다. 살갗으로 무엇인가 돋아나는 듯한 전율이 스쳤다.
 "모두 말에서 내려라---."
 케아산의 일갈에 아가륵의 제외한 여덟 명의 몽고 기병들이 가뿐하게 말등에서 뛰어 내렸다.
 휙! 휙! 휙!
 그러자 케아산은 천천히 말등에서 내리며, 소리쳤다.
 "오늘 중원의 낭인들이 익힌 무공과 우리 낭아기가 익힌 무공 중 어느 쪽이 강한지 겨루어 본다. 약한 놈은···········흐흐!! 이 자리에서 죽!! 는!! 다!!"
 지독한 살의가 엿보이는 음성이다. 아가륵은 케아산을 따라 말등에서 내리며 내심 잠시 후에 벌어질 혈전에 두려움을 느꼈다.
 살기!!
 적을 죽이고자 하는 케아산의 의지. 그 살기의 서늘한 한기가 장내로 서서히 흘렀다. 그러자 팽한기가 몽고 말을 아는지 이내 긴장한 모습으로 험한 막되먹은 듯한 음성을 내뱉었다.
 "니미, 십팔--!! 개지랄 떨고 있네."
 "꿀꺽···········."
 홍천양은 목이 마른지, 침을 삼켰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긴장으로 경직되어 있었다.
 "심호흡을 해라--. 긴장으로 몸이 굳으면 움직임이 둔해진다."
 백 노야는 흘끗 홍천양을 일별한 후 급히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홍천양은 고개를 홱 돌려 백 노야를 바라보며, 즉시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눈은 무조건 적에게 고정해--. 적을 단 한순간도 놓쳐서는 안 돼--."
 팽한기는 그런 홍천양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백 노야를 쳐다보며 외쳤다.
 "백 노야--. 가장 뒤에 선 놈이 우두머리요. 놈은 부하들이 익힌 무공과 우리의 무공을 목숨을 걸고 싸우면서 확인해 보고 싶어 하오. 오늘 아무래도 피깨나 흘려야 할 것 같소--."
 "휴우--!! 별 수 없지. 조심하게."
 "나보다 저 녀석이나 좀 봐 주시오-. 싸움이 시작되면 과연 저 녀석을 봐 줄 여유가 있을 지는 의문이지만···········."
 꽈- 아악!
 팽한기는 도병을 힘주어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앞으로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떼어 놓았다. 그러자 백 노야가 팽한기의 좌측으로 거리를 벌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후- 우우···········!!"
 홍천양은 심호흡을 하며, 두 사람의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었다.
 떨린다!!
 심장의 박동소리가 급격히 빨라진다. 그리고 숨이 거칠어진다. 손이 자신도 모르게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머릿속이 텅 빈 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힘들다!!
 발걸음을 한 발 앞으로 내딛는 것이 무척 어렵다.
 '가, 가야 해--. 두 사람의 걸음과 보조를 맞추어야 해--. 하, 한 가지만 생각하자. 사, 살려면 주, 죽여야 한다는 것만···········생각하자!!'
 홍천양은 될 수 있는 대로 한 가지만 생각하려고 했다.
 죽여야 산다!
 홍천양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되뇌였다. 죽여야···········자신의 앞에 서 있는 몽고족을 죽여야 산다는 것만을.
 저벅저벅!
 
 "흐흐······역시 혈의대 놈들이군. 맞서 싸우겠다. 좋아···아주 좋아···········."
 마음에 든 듯 흡족한 미소. 케아산의 눈빛은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전신을 스치는 듯한 흥분이 한 줄기 상쾌함을 느끼게 했다.
 "쳐-------라----아------!!"
 파- 파- 파- 팟!!
 여덟 명의 몽고 기병들이 손에 창을 들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러자 케아산은 천천히 맞은편의 세 사람을 물끄러미 주시했다. 그 모습이 마치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려고 하는 이 같았다.
 챙! 챙!
 창날과 검날. 그리고 도신과 창날이 부딪치는 소리가 밤의 허공으로 울렸다. 그러자 크고 작은 불빛들이 어둠속에서 깜빡거렸다.
 쉭! 쉭!
 허공을 가르는 파공음이 낮게 흐르며, 듣는 이의 청각을 자극했다.
 휘- 익!
 채- 애앵!
 홍천양은 좌측 발에 무게 중심을 두며, 좌측 뒤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몸이 이내 뚫을 곤( I ) 자의 형태가 되었다.
 쇅!
 날카로운 창날이 가슴 앞을 스쳤다. 그러자 홍천양은 좌측 발을 옆으로 크게 벌리며, 우측 발을 당겼다.
 몽고족!
 그의 우측 어깨가 일순 가슴 앞에 나타났다.
 꾸욱!
 스- 팟!!
 홍천양의 검이 순간 허공을 횡으로 스쳤다. 칠검휴 참(斬) 자결의 궤적이 한 몽고족의 우측 옆구리를 베었다.
 "크- 아악!"
 비명이 울렸다.
 촥!!
 그와 동시에 몽고족의 우측 옆구리에서 피가 튀었다.
 후-두둑!!
 얼굴과 가슴으로 뜨거운 선혈 방울들이 부딪쳤다. 그 느낌은 뭐라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기괴함이었다.
 멍했다.
 한순간 이 세상이 사라진 것 같았다. 아무것도···아무것도 오감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두 가지의 감정이 의식의 수면 위로 치솟았다.
 '주, 죽었을까?'
 '기, 기분이···········떠, 떨려.'
 사람을 죽였다!! 왠지 후련하다!! 두 가지 이율배반적인 모순된 감정들이 느껴졌다.
 아주 잠깐의 순간에 일어난 내면의 변화.
 "정신 차려---. 죽고 싶어--------!!"
 그 순간 팽한기가 허리를 숙이는 한 몽고족의 등을 도신으로 가르며 소리쳤다.
 깜짝!!
 홍천양은 그제야 정신이 되돌아 왔다. 그 때 홍천양의 눈에 붉은 핏빛 혈안을 하고, 좌수에 비수를 쥐고 몸을 덮쳐오는 몽고족이 보였다.
 휘-- 이잇!
 빠- 아악!!
 "으- 아아악!!"
 홍천양은 재빨리 우측 발을 무의식적으로 올려 찼다. 그러자 발끝으로 몽고족의 하초가 걸리는 촉감이 느껴졌다. 그에 몽고족은 비명을 지르며 좌수에 쥔 비수를 놓았다.
 쨍그랑!
 그리고 몽고족의 허리가 저절로 앞으로 숙여졌다.
 쉭!
 꽉!
 홍천양은 급히 좌수로 몽고족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고정(固定)!
 홍천양은 되돌린 우측 발로 땅바닥을 강하게 박차며 무릎으로 몽고족의 안면을 올려쳤다.
 쩌- 어엉!!
 흔들! 몽고족의 머리가 잠시 좌우로 흔들렸다.
 풀썩!
 그리고 몽고족은 맥없이 땅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단위규가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참으며, 웃었다.
 "하하핫!! 그렇지. 그렇게 하는 거야. 으- 하하핫!!"
 단위규는 만족했다. 지난 반년 동안 자신이 노력한 결과가 눈앞에서 보였다. 홍천양이 무의식적으로 하초와 안면의 공격을 연거푸 퍼붓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절로 단위규로 하여금 웃게 만들었다.
 "킥킥킥킥!! 완전히 의식을 잃은 것 같은데···········."
 "아무렴. 누가 가르쳤는데···········."
 "푸- 하하핫!!"
 "으- 하하핫!!"
 단위규와 황사문은 서로 말을 주고받다가 갑자기 웃었다. 두 사람이 지금 자신들과 동료들이 처한 상황을 잊고 무척이나 유쾌한 웃음을 흘렸다. 그 사이 여덟 명의 몽고족 중 넷이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러자 남은 네 명의 몽고족이 백 노야와 팽한기에게 몰렸다.
 혼자!!
 그렇게 상황이 돌아가자. 홍천양은 홀로 서서 거친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냉철한 이성으로 내리눌렀다. 유학!! 그것은 단순히 책을 읽고 선현들의 말씀과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니었다.
 정신!!
 바로 방효유와 같은 학자로서의 고집스러움과 절대 굴복하지 않는 의지. 그리고 사람의 본성을 강한 이성으로 누를 수 있는 정신력. 그것을 유학을 배우고 익히는 이들의 뇌리에 깊숙이 심었다.
 
 케아산은 장내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 케아산의 눈에 홍천양이 보였다.
 먹잇감. 맛있게 보이는 먹이가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크크···········."
 케아산은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손에 든 창을 아가륵에게 던졌다. 그러자 아가륵은 몸을 흠칫하며, 창을 받아 들었다.
 "잠시 놀다 오겠다."
 "······················."
 빙글!
 케아산은 몸을 돌려 허리춤에 있는 철검을 뽑았다.
 스르릉!
 철검은 낮은 소성을 내며 천천히 싸늘한 검신을 달빛 아래에 드러내었다.
 저벅저벅.
 케아산은 천천히 홍천양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 케아산의 전신에서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듯한 투기가 꿈틀거렸다.
 
 쭈뼛!!
 홍천양은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에 황급히 시선으로 들었다. 그러자 케아산이 보였다.
 활화산.
 홍천양이 보는 케아산의 느낌은 그랬다.
 '꿀꺽···········가, 강한 자다.'
 홍천양은 등줄기로 차가운 한기가 흘러내리며, 머리와 전신을 이내 아득한 심연으로 가라앉히는 듯한 느낌을 느꼈다.
 긴장감. 홍천양은 근육과 신경의 중추에서 일어나는 수축을 느끼며 차츰 흥분했다.
 무인의 피.
 홍천양은 자신의 몸에 흐르는 조부와 부친으로 부터 물려받은 무인의 피가 주는 흥분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사이 케아산은 홍천양의 앞 이 장 어림에 다가와 섰다.
 "크크···········고통 없이 죽여주마--."
 케아산은 홍천양을 바라보며,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홍천양은 몽고말을 몰랐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홍천양은 내심 궁금함을 느끼며, 지난 반년 동안 단위규에게 구타당하며 몸에 익숙해진 자세를 취했다. 전신에서 살짝 힘을 빼고 흐느적거리는 듯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발뒤꿈치를 들며, 몸의 체중을 발의 앞부분에 실었다.
 슥!
 홍천양은 몸을 아래로 조금 숙였다. 그러자 케아산은 홍천양의 자세를 보며 소리 없이 미소를 지었다.
 "제법이다만. 글쎄 실제로도 그런지. 어디 한 번 볼까?"
 파- 앗!
 케아산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홍천양에게 몸을 날렸다. 그리고 우수에 쥔 철검으로 홍천양의 목을 노려갔다.
 쉭!!
 홍천양은 철검이 목을 노리며 다가오는 느낌을 느꼈다. 그간 황사문과 팽한기 그리고 단위규에게 두들겨 맞으며, 몸에 익힌 본능적인 반사신경이 절로 홍천양의 몸을 움직였다.
 휙!
 홍천양은 몸을 숙인 채 우측으로 빠지며, 아래에서 철검을 쳐 올렸다.
 깡!!!
 그러자 짧고 강렬한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케아산의 철검이 살짝 위로 들렸다.
 "응?"
 케아산은 뜻밖이라는 눈빛을 띠었다. 그 순간 홍천양이 우측에서 몸을 틀며, 칠검휴의 절(切) 자결로 케아산의 좌측 옆구리를 노렸다.
 "풉!!"
 케아산은 실소를 흘리며, 빙글 몸을 홍천양을 향해 돌렸다. 그리고 이내 철검을 위에서 휘두르며, 홍천양의 검을 우측 바깥으로 튕겼다.
 채- 애앵!!
 "큭···········!"
 홍천양은 검신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작은 신음성을 흘렸다. 그리고 바깥으로 튕겨 나간 검의 검병을 힘주어 잡았다.
 쉬- 익!
 홍천양은 우측 발을 급히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몸을 케아산의 가슴으로 안기듯 날렸다. 그런 홍천양의 우수가 빠르게 좌에서 우로 허공을 스쳤다.
 검병의 끝.
 뾰족하게 모가 나 있는 검병의 끝이 일순 케아산의 코밑에 자리한 수구와 태단혈을 노렸다.
 "컥!!"
 그러자 케아산의 눈가에 당황한 눈빛이 스쳤다.
 방심과 자만심.
 그 두 가지 틈이 어이없게도 홍천양의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콰지직!!
 뚜둑!
 뼈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뇌리를 엄습했다.
 "크- 아아악!"
 케아산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거렸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뒤로 세 발자국을 물러섰다.
 터- 터- 턱!!
 
 그러자 아가륵이 안면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 말도 안 되는···········."
 케아산. 케르커허 족장의 단 하나 밖에 없는 친동생이다. 그리고 달단부 최고의 용사들인 모인 낭아기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자다. 그런데 그런 케아산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그것도 뒷걸음질로.
 황당함. 아가륵은 너무 터무니없는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잠깐의 방심이 불러온 결과는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이 성이 나 견딜 수 없었다.
 "이, 이익···········."
 케아산은 안면을 일그러뜨리며 이내 홍천양을 향해 막강한 검력을 쏟았다.
 콰-- 아아아!!
 막강한 검력은 허공을 가로지르며, 홍천양의 정면으로 쇄도했다.
 "허- 어억!!"
 홍천양은 기겁한 얼굴로 다가오는 검력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내력. 검력은 공력이라는 이름의 강한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천양아-. 빠름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 아무리 작고 미약한 힘일지라도 빠를 래야 더 빠를 수 없는 극한의 빠름으로 나아간다면. 그 앞을 가로막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극한의 빠름. 다함이 없는 무극(無極)의 쾌(快)!! 그것이 바로 일수유의 요체다.'
 홍천양은 백 노야, 무당 청운 도장이 전한 그간 남몰래 수련한 일수유(一輸幽)의 검로를 떠올렸다. 그리고 청운 도장이 가르쳐준 동자공의 있는 내기 없는 내기를 모조리 끌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팔과 손목의 혈맥을 따라 검으로 흘려보냈다.
 콰아악!!
 홍천양은 우측 발을 앞으로 강하게 내디뎠다. 그리고 단위규가 전한 발경의 투로를 밟아 나갔다. 우측 발로 땅바닥을 강하게 밟아 그 힘을 다리와 허리 그리고 어깨와 팔로 전했다.
 나선.
 발경의 힘이 나선경의 흐름을 일으키며, 이내 검신으로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부르르르!!
 검신이 떨렸다. 그 순간이었다. 홍천양이 우측 발을 밟으며 발경의 투로를 밟는 그 때. 홍천양이 앞으로 내미는 검봉에서 한 작은 빛이 터졌다.
 확!!!
 빛줄기. 작고 미약하며 가느다란 실 같은 빛줄기가 앞으로 뻗었다.
 츠- 와 아-아-아-앗!!
 전대미문(前代未聞).
 이제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광경이 벌어졌다. 빛줄기가 검력을 꿰뚫으며 앞으로 거침없이 뻗어 나갔다. 그리고 빛줄기는 눈부신 속도로 이내 케아산의 미간으로 짓 쳐들었다.
 경악.
 케아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밝은 빛. 너무나도 작은 빛이 한순간 두 눈 가득 들어왔다.
 퍽!!!
 덜렁!
 케아산의 머리가 순간 뒤로 재껴졌다. 그리고 머리는 이내 다시 앞쪽으로 흔들렸다.
 스르륵!
 케아산은 두 눈을 경악으로 부릅뜬 채 앞으로 쓰러졌다.
 쿠웅!!
 케아산의 몸이 지면과 부딪치며 무거운 소리를 내었다.
 
 아가륵은 그 모습을 보고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
 아가륵은 말문이 막히는 듯, 입을 쩌어억 벌렸다. 그리고 충격을 받은 듯 멍한 눈으로 앞으로 바라보았다.
 불신.
 아가륵의 눈가에 가득하다 못해 넘쳐흐를 것 같은 불신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있을 수, 수 없어···········."
 아가륵의 입에서 일어날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는 음성이 튀어 나왔다.
 
 그 사이 홍천양의 전신이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듯이 아래로 주저앉았다.
 털썩!
 홍천양은 파리한 얼굴로 멍하게 자신의 앞에 자리한 케아산을 쳐다보았다.
 무력감.
 전신의 모든 힘이 다 빠져 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릿속이 왱왱 거리는 것 같았다.
 홍천양은 몸을 가늘게 덜덜 떨었다.
 등.
 홍천양의 등은 땀에 푹 젖어 옷이 착 들어붙어 있었다.
 
 황사문과 단위규는 홍천양이 케아산을 죽이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두 사람은 충격을 받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자신들도 모르게 나직한 음성을 흘렸다.
 "내, 내가 지, 지금 자, 잘못 보, 본 것은 아니지···········."
 "서, 설마····꾸, 꿈을 꾸고 있는 것은···········."
 황사문과 단위규는 자신들의 눈에 들어온 광경에 넋을 잃었다. 그런 두 사람의 시선은 바닥에 주저앉은 홍천양을 향했다.
 "내, 내가 괴, 괴물을 가, 가르친 것은 아, 아니지."
 "내, 내가···너어···········에게 무, 묻고 싶은 말이야."
 황사문과 단위규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뭐라 할 말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이 백 노야는 두 사람의 몽고족을 단숨에 베어 버리고 황급히 몸을 홍천양에게 돌렸다.
 기감.
 백 노야는 그의 기감에 잡힌 강대한 기운에 내심 조마조마했다.
 홍천양.
 백 노야는 그 기운의 주인이 홍천양을 노린다고 짐작했다. 그러자 마음이 급해졌다. 겨우 반년이었다. 백 노야는 자신이 살아온 날보다 곧 죽을 날이 가까웠다. 그 탓에 말년에 인연이 닿아 거둔, 내심 제자로 생각하는 홍천양의 신변이 걱정이 되었다. 백 노야는 홍천양과 정식으로 사승의 관계를 맺고 싶었지만. 사문인 무당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것이 무당의 문규였기 때문이다. 제자를 거둠에 사문의 허락을 먼저 구해야 하는···········. 그런데 그런 홍천양에게 그조차 경시할 수 없는 존재가 갔다.
 죽음.
 백 노야, 무당 청운 도장은 홍천양에게 찾아온 검은 불안의 그림자에 진신 무공을 살짝 드러내 두 명의 몽골족을 죽였다. 그리고 황급히 홍천양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한 줄기 작고 미약한 가느다란 빛줄기가 허공에 그어지듯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이, 일수유!!!'
 백 노야는 그 광경에 마음이 격동과 환희로 뒤흔들렸다.
 전인.
 조사의 마지막 비전을 이어받은 존재가 드디어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 이제 내, 내가 죽어도 조사님의 최후 비전이 실전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백 노야는 내심 기꺼웠다. 뿌듯하고 뭐라 말할 수 없는 감격에 젖은 뜨거움이 마음속에서 회오리쳤다.
 
 한편, 팽한기는 다소 뒤늦게 그가 상대하던 두 몽골족을 참살하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땅바닥으로 쓰러지는 케아산이 눈에 보였다.
 "헉!!"
 팽한기는 일순 단말마의 음성을 삼켰다. 내심 홍천양을 걱정했다. 케아산이 말에서 내려 내뱉는 음성과 그 살기에 그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강적이라고 판단했다. 그 탓에 팽한기는 내심 홍천양이 죽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팽한기의 예상을 뒤집는 파란이 일어났다.
 "어, 어떻게···········겨, 겨우 바, 반년밖에 안 되었는데···········."
 팽한기는 어이가 없는 눈으로 홍청양을 쳐다보았다.
 몰랐다. 팽한기는 홍천양이 남몰래 백 노야, 청운 도장의 가르침을 받아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성장한 것을 전혀 몰랐다. 그에 팽한기는 놀란 눈으로 홍천양을 쳐다보았다.
 
 
 조금 전이었다. 아가륵은 백 노야가 몸을 돌릴 때. 재빨리 말등으로 올랐다. 그리고 이내 말의 고삐를 잡아채며, 두 다리로 말의 배를 걷어찼다.
 "하--아---앗!!"
 아가륵의 다급한 외침이 터지자. 말은 이내 몸을 들며 앞발을 허공에 허우적거렸다.
 "히-- 이이잉!!"
 말은 울음소리를 길게 흘리며, 이내 말발굽으로 땅바닥을 강하게 찼다. 그러자 땅바닥이 발굽에 패이며, 흙들이 말의 뒤로 튀었다.
 두- 두- 두- 두!!
 말은 앞으로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그러자 아가륵은 만에 하나라도 몰라 몸을 말등에 바짝 붙였다. 그리고 연신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 사이 말은 빠른 속력으로 질주하며, 장내에서 멀어져 갔다.
 
 그 후, 홍천양은 다음 해 늦봄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몽고로 숨어들었다. 그런 홍천양의 옆에는 항상 백 노야, 황사문, 팽한기, 단위규가 있었다. 그들 다섯 사람은 차츰 동료로서 한데 어우러져 갔다. 그리고 끈끈한 정을 바탕으로 서로의 목숨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생사를 함께하는 전우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명군 십만이 대장군 구복의 지휘 아래 몽고의 켈루렌 강으로 출군했다. 바야흐로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잔혹무비한 피와 죽음의 전쟁이···········.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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