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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이혼 후 각성하다

돌아가다

2022.02.10 조회 133,830 추천 1,711


 썩 잘 산 것 같지는 않다.
 20년 전,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7년 전에 돌아가셨다. 나는 불과 3년 전 이혼했고 2년째 양육비를 보내던 아들이 내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직업은 B급 감정사.
 대기업······이 아닌, 그 아래 하청 업체.
 미확인 아티팩트를 감정하고 낡은 아티팩트의 복구를 기계처럼 반복한다. 대기업 갑질은 기본이고 나보다 네 살이나 어린데 자격지심 가득한 상사는 어떻게든 날 쫓아내고 싶어한다.
 그러다 폭발했다.
 상사는 내 아버지를 입에 올렸고, 나는 주먹을 날렸다. 그놈은 사장 아들이었고, 나는 동종 업계에 블랙리스트가 되었다.
 
 스펙타클했다.
 스스로가 부끄러웠고, 내 인생이 한심했으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후회와 미련이 불쑥 올라왔다.
 결심했다.
 아버지가 있던 곳으로 내려가기로.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운명이었나.
 나는 각성했다.
 
 [설정 개입 권한]
 
 세상의 모든 설정을 수정할 수 있는 권한.
 난 치트키를 얻었다.
 
 
 * * *
 
 
 서울에서 한 시간 반.
 양평군 개군면 인근엔 높이만 400m가 넘어가는 [불굴의 탑]이 솟아 있다. 초기엔 빈번한 괴수 웨이브 탓에 개군면 일대는 폐허였다.
 지금은 다르다.
 저 멀리 탑을 향해 운전하다 보면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고 탑의 머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접근하면 이미 거리 안이다.
 
 [장인의 거리]
 
 대장간, 철제 무구점, 연금 잡화점, 가죽 장비 전문점, 포션 판매대, 스크롤 체인점, 사체 매입 공장, 부산물 상점 등등 수많은 상점이 들어서 있다.
 모두 저 [불굴의 탑]이 만든 상권이다.
 
 “······오랜만이구나.”
 
 신지후.
 그는 이곳으로 돌아왔다.
 20년 전, 아버지는 괴수만 출몰하던 이곳에 자리 잡은 개척 장인 중 한 명이었고 지후도 불과 4년 전까지 이곳에 있었다.
 차를 몰고 쭉 들어왔다.
 아는 사람들이 보였고, 그들도 누구의 차가 이렇게까지 깊숙이 들어가나 궁금해했다.
 지후는 애써 모른척했다.
 
 ‘결혼한다고 홀랑 서울로 도망가 버렸으면서, 다 실패하고 돌아왔는데······.’
 
 당당하기 쉽지 않다.
 지후는 장인의 거리 가장 앞에 도착했다. 이곳엔 조금은 낡았지만, 아직 멀쩡한 2층짜리 컨테이너 간이 주택이 그대로 있었다.
 
 ‘결국, 돌아왔구나.’
 
 지후는 잠시 서 있다가 상점 옆에 주차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렸을 땐, 바로 맞은 편 대장간에서 심지열 아저씨가 허둥지둥 달려오고 있었다.
 
 “지, 지후구나!”
 “네, 아저씨. 잘 지냈어요?”
 “그럼! 나야 잘 지냈지. 돌아온 거야?”
 “······네, 그렇게 됐네요. 금의환향하려고 했는데 잔뜩 실패해서 돌아오게 됐어요. 하하.”
 
 지후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백했고.
 지열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금의환향은 무슨. 여긴 우리들의 집이야. 항상 그 자리에 있으니까, 언제든지 편하게 오면 된단다.”
 
 그 말이 위로가 됐다.
 별거 아니었는데, 집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 시작하는 거야?”
 
 지열 아저씨는 턱짓으로 지후의 뒤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아버지가 평생 일궜으며 지후가 이어받아 운영하던 상점이 있었다.
 허름한 2층짜리 컨테이너 간이 주택.
 
 [신뢰의 잡화점]
 
 지후는 잠시 그 간판을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 * *
 
 
 일주일이 지났다.
 바로 그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알고 지내던 거리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녔다.
 돌아왔고, 다시 장사를 시작할 거라고.
 다들 환영했다.
 마음이 편했고, 다음 날부터 잡화점 문을 열었다. 창고에 물건은 많지 않았지만, 포션과 스크롤은 인근 도매점에서 구하면 되기에 장사는 가능했다.
 
 딸랑-
 
 오늘도 일찍 문을 연다.
 상점이라기엔 허술해 보이는 2층짜리 컨테이너 간이 주택. 1층은 잡화점이고, 2층에서 생활한다.
 
 드르륵, 턱.
 
 현관을 열어 고정하고 창문을 모조리 열었다. 창밖으로는 높이 솟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불굴의 탑]이 보인다. 아직 해가 제대로 뜨지도 않았는데, 탑 등반을 준비하는 사람이 수십 명이다.
 
 툭툭.
 
 먼지를 터는 게 중요하다.
 아무래도 잡화 상점이다 보니 청결하지 않으면 전체적으로 품질이 떨어져 보이고 회전율도 좋지 않아 보인다.
 
 “오늘은 한가하겠군.”
 
 이곳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다.
 4년 만에 돌아왔지만, 쭉 이곳에 있던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하다.
 지후는 잠시 앉아서 커피를 내려 마셨다.
 
 ‘이 광경이 참 그리웠다.’
 
 잡화점 바로 앞에는 큼지막한 느티나무와 오래된 벤치 하나가 있다. 그곳에 앉아 마시는 커피와 정면에 보이는 탑은 장관이다.
 그 아래 수많은 등반자는 인간의 미약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웃기기도 했다.
 
 ‘아버지가 자리는 참 잘 잡았어.’
 
 아버지는 ‘신뢰’를 간판 삼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불굴의 탑]이 솟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SUV에 하나에 모든 짐을 싣고 지후와 함께 이동했다.
 그게 바로 20년 전이다.
 몇몇 장인 동료와 헌터가 함께 자리를 잡았다. 지후가 15살 때였지만, 빈번한 괴수의 침입을 모두가 힘을 합해 버텨냈다.
 이곳은 탑이 허용하는 경계선 바로 앞이다. 그 말은 이 잡화점 앞으로는 어떠한 건물도 없다는 뜻이다.
 
 명당(明堂)
 
 [장인의 거리]에서 가장 좋은 자리다.
 왼쪽으론 대장간이 하나가 있다.
 처음 왔을 때 인사한 심지열 검장(劍匠)님이 운영하는 대장간 겸 무기 상점이다. 이곳에서 최고의 명당을 꼽자면 이 둘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뒤쪽으로 이어진 널찍한 도로가 이 상권의 중심이니까.
 
 “저기.”
 “안녕하세요. 신뢰의 잡화점입니다.”
 “여기서 감정도 한다는데, 맞습니까?”
 
 척 보니 알겠다.
 [일반] 등급. 아이템 레벨 2 정도의 무기와 방어구를 착용했으며, 앳된 얼굴과 어색한 분위기를 보아 이제 입탑(入塔)한 초보다.
 대충 D등급 헌터.
 
 “네, 어떻게 보면 감정 전문이라고 할 수 있죠.”
 “여기가 유명하다고 해서 왔습니다.”
 
 벌써 소문이 그렇게 난다.
 이 잡화점이 아버지 때부터 감정으로 유명하긴 했다만, 이곳에 온 지 아직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다.
 거리 사람들이 도와주는 모양이다.
 
 “이런 것도 되나요?”
 
 그는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낡은 손목 보호대를 내밀었다. 그의 눈빛에서 기대감이 느껴졌다.
 지후는 웃으며 그 물건을 받았다.
 
 “감정료는 최종 감정가에 4%입니다. 착수금은 20만 원이고 아티팩트로 판정되지 않더라도 환불되지 않습니다.”
 “이, 이십만 원이요?”
 “네, 저희는 착수금이 저렴한 편입니다. 하급 감정서도 100만 원부터 하시는 건 아시죠?”
 “그, 그렇긴 하죠.”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다.
 그럴 수 있다. 막 입탑한 뉴비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존재들이니까. 20만 원이면 큰돈이다.
 
 “감정, 받으시겠습니까?”
 “네, 해주세요! 잘 부탁드릴게요.”
 
 지후는 손목 보호대를 받았다.
 이럴 땐 난감하다. 큰 기대감을 안고 감정하는 것일 텐데, 아무것도 아닐 경우가 훨씬 많다.
 
 “한 시간 정도 걸리니까, 식사라도 하고 오세요.”
 “아, 아뇨! 밥 먹었어요. 여기 구경 좀 해도 될까요?”
 “네, 마음껏 하세요. 아직 물건은 많이 없지만요.”
 
 [감정]이라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남들 공룡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지후는 아티팩트가 장난감이었다. 아버지에게 평생을 배웠고 제대로 감정을 시작한 것도 10년이 넘는다.
 남들이 대학에서 ‘아티팩트 감정’과 ‘마력 회로’를 전공하며 걸음마를 뗄 때, 지후는 이미 실전에서 구르고 있었다.
 물론, 학력이 없어서 취직이 힘들었고.
 재능이 부족했던 것도 맞다.
 하지만 이 정도는 쉽다.
 
 ‘나쁘지 않은 물건은 맞네.’
 
 지후도 슬쩍 미소가 지어진다.
 높은 등급은 아닐 것 같지만, D등급 뉴비에겐 이 정도만 해도 굉장한 행운이다.
 
 ‘재질은 블랙 오크의 가죽에 그린 슬라임 체액으로 산화된 대나무 줄기. 제작한 지 12년 정도가 된 물건이네. 역사라고 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확인해볼까.’
 
 앳된 얼굴의 뉴비 헌터.
 그가 행복해할 것을 생각하면 조금 수고를 더 해도 나쁘지 않겠다. 또, 이번엔 금방 죽지 않고 오래 봤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4년 만에 왔어도, 어색하지가 않네.’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는 것.
 회사에서 수천 개의 아티팩트를 기계적으로 감정하면서 생각 따윈 없었다. 그저 시켰고, 해냈으며, 욕먹으며, 버텨냈다.
 그래서 이런 느낌을 잊은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래, 이게 나였지.’
 
 그동안 잊고 살았다.
 지후는 미소를 지으며 감정을 계속했다.
 
 ‘미술품 진품 감정하듯. 반은 지식이고, 반쯤은 경험에서 오는 감이지. 그리고 확인 과정이 마법 노가다고.’
 
 1성 마법.
 아주 단순하기에 마력만 사용할 수 있다면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도 배울 수 있다. 그렇다고 쉽다는 건 절대 아니다.
 마법은 마법이니까.
 금속, 가죽, 목재 등의 재료를 구분하는 자잘한 마법 12개. 연대를 추측하고 물건이 지닌 역사를 가늠하는 마법 7개, 마력의 흐름을 읽어 옵션을 파악하는 32개의 마법.
 
 ‘약간의 재능이라도 있어서 망정이지. 그것도 없으면, 평생 감정서에 의존해야 하는 반쪽짜리 감정사로 남았겠지.’
 
 지후의 재능도 뛰어난 것은 아니다.
 ‘무리 없이’ [역사] 등급 이상의 아티팩트를 감정할 수 있어야 A급 감정사라 불리는데, 최소 2성 마법은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지후의 마법적 재능은 딱 1성까지다.
 
 “후- 다 됐다.”
 “다 됐습니까!?”
 
 지후는 미소를 지으며 기지개를 켰다.
 손님은 급하게 일어나 다가왔다.
 
 “네, 축하드려요.”
 “······!”
 
 『 빛바랜 블랙 오크의 손목 보호대 [일반 – 암(暗)] (Lv.03)』
 
 설명 : 질긴 블랙 오크의 가죽과 그린 슬라임에 산화된 대나무 줄기를 엮어 만든 손목 보호대. 어설픈 마력 회로가 희미하게 보이지만, 일정 ‘격’을 넘지 못해 점차 낡아 간다.
 
 * [최하급 힘 증폭]
 * [최하급 손목 강화]
 * 상태 이상 : [빛바랜]
 
 - 감정가 : 1,300만 원
 
 “와아아아아! 대박!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축하드려요. 그리고 그 밑에 찍혀 있는 [감정 협회 공인]이라는 도장은 정부와 협회에서 인증하는 감정 자격이라는 겁니다. 감정가도 그 이하로는 절대로 팔지 마시구요.”
 
 지후는 상세하게 설명했다.
 아무래도 뉴비였으니까.
 
 “혹시 각성자신가요?”
 “네!”
 “그럼 상태창도 있으시겠네요. 최하급 힘 증폭은 30 이하 스텟일 때, 3까지 상승이 가능하고 50 이하일 때는 1에서 2까지 상승합니다. 그 정도 되면 장비 변경하실 때가······.”
 
 지후는 천천히, 친절하게 설명했다.
 이런 서비스는 단골을 만드는 것도 있지만, ‘신뢰’를 간판으로 하라는 아버지의 유지(遺志)이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그 감정료는 바로 입금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오전 일과가 끝났다.
 이름은 잡화점이지만, 미확인 아티팩트를 매입해 [감정]하고 [복구]하여 진열 판매하는 게 메인이다.
 요즘 돈이 된다고 스크롤하고 포션도 기본적으로 팔고는 있지만, 결국은 [감정] 전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 좋다.”
 
 왜 이곳을 떠났을까.
 여자 하나에 홀려선······.
 아직도 후회가 된다.
 아니, 오히려 한 번 제대로 겪고 나니 지금이 더 좋은 걸 수도 있다. 이게 행복이라는 걸 그놈과 그년······이 알려준 거다.
 
 신지후는 저녁 때가 되자 퇴근했고.
 그날 저녁, 각성했다.

작가의 말


 매일 17시 30분에 찾아뵙겠습니다.

댓글(91)

TS는어디    
도입부가 가슴을 아리게 하는군요
2022.02.11 21:38
댄댄댄댄    
잘볼게요!
2022.02.12 00:59
아빠겟돈    
찾았다! 분명 노란집으로 간다해서 얼마나 기다렸는데! ㅈㅇㄹ에서 여기로 오다니!
2022.02.12 04:27
쿨스타    
일단 개인적으로 이런 분위기 좋아하는 편이고 대화나 문장력도 나쁘지 않은듯
2022.02.12 12:06
쉰다리    
재연재인가요? 리메도 섞인건가요?
2022.02.12 23:11
잠이오는날    
퐁퐁이형...
2022.02.13 03:55
묘한인연    
스탯
2022.02.13 06:17
Tffyc    
예전같으면 이런설정이 아침드라마에나 나온다고 생각됐었는데 ㅋㅋ
2022.02.13 15:39
大殺心    
이혼후 각성해도 퐁퐁단 인생은 바뀌지 않음. 진중권 같은 망한 인생
2022.02.13 22:33
다크스나    
제목은 유입 좀 되면 바뀌겠네
2022.02.14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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