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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의 운명인 것인가 (1)

2022.02.21 조회 45,699 추천 705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일부 지명과 제품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 * *
 
 복도를 가득 메운 향냄새.
 울먹이며 서글픈 곡을 하는 사람들.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것은 조문 온 이들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애초에 이 공간은 애통함을 머금고 있어서인지 공기조차 무게감이 달랐다.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곳이지만,
 오늘의 임무는 상주라 어쩔 수 없다.
 부모님이나 형제를 잃은 것은 아니다.
 홀로 고독하게 사시던 작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상주를 맡을 사람이 없었다.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 무척 아껴주던 분이다.
 안타까운 일이나 장례식장에 조문을 오시는 분도 생각보다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더구나 상주 노릇을 혼자하고 있지도 않았다.
 
 삼촌도 함께하는 중이다.
 올해 마흔이 된 작은 삼촌 주기혁.
 나름 자수성가해서 현재는 제법 유명한 루프톱 바를 강남과 강북에서 운영하고 계시는 분이다.
 
 문제는 아직 미혼이라는 것이다.
 거기다가 시답지 않은 농담을 좋아했다.
 방심하는 순간에 비집고 나오는 아재 개그를 들으면 왜 아직도 결혼을 못 하시는 건지 충분히 이해되었다.
 
 매번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학문에 뜻을 두고 미국의 대학교에 계신 아버지와는 성향 차이가 상당히 컸다.
 두 분의 공통점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굳이 찾자면 애주가라는 것이 전부다.
 모처럼 형제가 만나면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전에 술부터 까시는 분들이다.
 무거운 눈꺼풀을 깜빡이며 벽에 기대어 앉아 있자 삼촌이 다가와서 털썩 앉았다.
 
 “아이구··· 힘들어 죽겠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아 계시던 어르신도 가셨다.
 조문객 하나 없이 텅 빈 장례식장은 너무 쓸쓸해 보였다. 옆 방에 있는 다른 이들의 장례식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
 
 “배웅해드리고 오시는 거예요?”
 “끝까지 장례식장에 남아 계시겠다고 하시는 걸 만류하느라 진땀 뺐다. 노친네가 아주 고집쟁이셔.”
 “고생하셨어요.”
 “이제 조문객도 더 안 올 것 같은데 우리도 상쾌한 공기 좀 마시면서 쉬자.”
 
 삼촌은 향냄새를 무척 싫어했다.
 그걸 맡으면 두통이 생긴다고 했다.
 장례식장에 들어선 이후부터 두통약을 계속 먹고 있을 정도였다. 다른 일에는 둔감한 분이나 후각과 미각은 제법 예민하셨다.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뒤.
 장례식장의 불을 끄고 밖으로 나갔다.
 삼촌과 함께 향한 곳은 주차장 쪽의 공터였다. 그곳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우는 상주들이 제법 많이 보였다.
 다들 시끌벅적했는데 뭐가 그리 급한 건지 벌써 유산 문제로 싸우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만 조문객이 너무 없어서 아쉽네요.”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차라리 작은할아버지가 사시던 삼척에 장례식장을 잡을 걸 그랬나 봐요.”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가게를 며칠씩 비울 수는 없잖아.”
 “그래도 임종하실 때 삼촌이 옆에 계셔서 다행이었죠.”
 
 그게 마음에 계속 걸렸다.
 나는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유독 예뻐해 주셨던 작은 할아버지였으나 아직은 국방부에 몸이 매여있는 탓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전역까지 남은 날은 고작 보름.
 병환이 깊어지셔서 삼촌이 급하게 서울로 모셔왔다고 하길래 말년 휴가를 조금 당겨서 나왔으나 안타깝게도 한발 늦고 말았다.
 하루만 더 빨리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까운 말년 휴가를 이런 음침한 장례식장에서 보내서 어쩌냐?”
 “이제 만날 사람도 거의 없는걸요.”
 “그래도 나 때는 말이야···.”
 
 
 또 시작이었다.
 삼촌의 ‘나 때는 말이야’는 지독했다.
 입대하기 전에 삼촌이 풀은 썰만 합쳐도 거의 2박 3일쯤은 가득 채울 수준이었다.
 귀를 막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지금까지 루프톱 바에서 얻어 마신 술값이 적지 않았기에 군말 없이 들어줘야 했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이 있다면,
 술을 그렇게 마셔도 만취한 모습은 못 봤다.
 아버지도 그렇고 두 분 모두 몸을 못 가눌 정도로 드시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당연히 나도 아버지와 삼촌에게 술을 배웠기에 그런 일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모든 술이 공짜는 아니다.
 삼촌의 기브 앤 테이크는 철저했다.
 한 번 놀러 갈 때마다 적어도 반나절 정도는 루프톱 바에서 일을 도와야만 했다.
 처음에는 청소부터 시작했으나 이제는 어느 정도 바텐더 역할도 해낼 수준은 되었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특히 강남 루프톱에서 일하는 바텐더 누나와 친해진 덕분에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가장 바빠지는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알바 형식으로 일하기도 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그걸 통해 용돈을 제법 쏠쏠하게 벌었지.
 
 “전역이 보름 후라고 했지?”
 “신기하게도 그렇다네요. 영영 그날이 오지 않을 줄 알았거든요.”
 
 입대할 때만 하더라도 그랬다.
 앞날이 까마득해서 날짜도 세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덧 전역하는 날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거꾸로 매달아 놔도 국방부 시계는 어떻게든 돌아간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엊그제 입대한 것 같은데 벌써 전역이라니 신기하네. 전역하면 곧장 삼척에 있는 작은아버지 양조장부터 좀 가봐라.”
 “거기는 왜요?”
 “급하게 모셔 오느라 뒷정리도 하지 못해서 신경 쓰이네. 그리고 이제 그 양조장은 엄연히 네꺼잖아.”
 
 삼촌은 악동처럼 짓궂게 웃었다.
 작은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을 통해 양조장을 나에게 물려주기로 하셨다.
 아직도 왜 그러신 건지 이해가 안 되었다.
 미리 언질조차 주시지 않으셨다.
 
 “아니, 그걸 도대체 왜 저한테 주신 거죠?”
 “나도 몰라. 반드시 너한테 주셔야겠다고 유서까지 써놓으신 걸 나보고 뭐 어쩌라고.”
 “차라리 삼촌이 가지시는 게 더 좋았을 거란 말이죠.”
 
 아니 막말로 양조장은 가업도 아니다.
 실용성으로 보자면 차라리 바를 운영하는 삼촌에게 더 유용한 게 아닐까.
 물론, 그것만 내게 주신 것은 아니다.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땅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말하는 거냐?”
 
 거의 4억 정도는 된다던가.
 아무리 외지고 임야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도 5만 평이나 되는 곳이다.
 문제는 거기 있었다.
 
 주식도 팔아야 내 돈이 된다.
 땅이라고 다를 것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세금을 내야 하는 걱정부터 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당장은 이득보다 손해가 더 커다랗다. 만약에 아버지가 세금을 정리해주지 않았다면 안 받았을 것이다.
 
 오히려 삼촌과 아버지가 부러웠다.
 작은할아버지는 아버지와 삼촌에게 각각 3억 원에 달하는 현금을 유산으로 남겼다.
 기왕이면 나도 돈으로 주시지!
 
 “어차피 처분할 곳이잖아. 그러니 시간 있을 때 가 봐.”
 
 언젠가 한 번 가보기는 해야 했다.
 고인이 되신 작은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전문적인 업체도 있으나 부르기 전에 한 번 살펴봐야 했다.
 혹시 세상에서 유일한 손자 녀석을 위해서 금덩이라도 숨겨 놓으셨을지 모르잖아.
 
 “눼눼, 그렇게 하겠습니다.”
 
 *
 
 전역하는 날은 뭐랄까.
 실감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평소와 똑같은 하루의 시작 같았다.
 부대 정문을 통과해서 나오는 게 왠지 휴가를 나가는 기분과 꽤 흡사했다.
 
 그래도 가장 친하게 지내던 동기 유수호 병장이 끝까지 따라와서 인사를 나눴다.
 입대일은 나보다 3주나 뒤늦었으나 우리 부대는 한 달 단위로 동기로 보고 있었다.
 
 우리는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전공은 달라도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갑내기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등병 때부터 휴가를 가더라도 언제나 날짜를 맞춰서 같이 나가고는 했다.
 
 하지만 전역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여기서 손잡고 밖으로 같이 나가는 순간.
 유 병장은 탈영이 될 것이고 영창에 들어간 날만큼 전역이 뒤로 미뤄지게 될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것도 썩 나쁘진 않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수호는 아쉬운 마음을 가득 담아 작별 인사를 했다.
 
 “주도찬, 전역하면 연락할 테니 씹지 마라.”
 “과연 네게 그런 날이 오긴 할까.”
 “섭섭하게 무슨 악담을 하는 거야!”
 “전역하면 연락해. 전에 같이 갔었던 바에서 거하게 한턱 쏠 테니.”
 
 작별 인사는 그리 길지 않았다.
 어차피 조만간 다시 만날 것이 분명했다.
 부대에서 나온 나는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곧장 집이 있는 서울로 향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삼촌의 집이었다.
 
 한국에는 내 집이 없었다.
 나의 정체성은 조금 애매했다.
 태어난 곳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은 한국에서 보냈고 10대 초반부터 하이 스쿨까지는 미국에서 다녔다.
 그 덕분에 양쪽 세계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얻은 것도 있다.
 선천적인 복수국적자의 자격이다.
 이제 군대를 다녀왔으니 미국 국적 불이행 서약만 하면 복수 국적이 된다.
 솔직히 이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누가 군대를 가고 싶겠냐고!
 
 그러나 길게 보면 가야만 했다.
 미국에서 보낸 시간도 제법 길지만,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18개월이란 시간이 아깝다고 여길 수도 있으나 그만큼의 혜택도 분명 있었다.
 
 무엇보다 인종차별을 밥 먹듯이 하는 미국보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게 편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백인에게는 무시당하고 흑인에게도 혐오를 받는 것이 동양인이다.
 
 최근에는 그나마 K-POP이 뜨면서 조금 달라졌다고 하는데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동양인 남자는 개와 고양이 사이쯤에 있었다.
 동물은 귀엽다고 쓰다듬기라도 하지.
 아무 이유 없이 시비 털고 총으로 위협하는 강도를 만나면 오만 정이 떨어진다.
 
 띠띠띠띡··· 철컥!
 
 삼촌이 사는 아파트의 현관문을 열자,
 감출 수 없는 홀아비 냄새가 밀려 나왔다.
 벽과 바닥 모든 곳에 스며들어 버린 터라 방향제와 환기를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군대도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다.
 일단 군복부터 벗고 샤워를 시작했다.
 한시라도 빨리 살결 깊숙하게 스며든 군바리 냄새를 지워야지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이제 자유랍니다.
 
 도비 이즈 프리!
 
 원하는 시간에 자고 일어날 수 있고,
 언제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갈 수도 있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소파에 누워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으나 당장은 해야 할 일이 있다.
 
 “차 키가 어디 있으려나.”
 
 일단은 양조장부터 갈 생각이었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있는 것은 내 성격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벌써 한 달 가까이 비워둔 터라 조바심이 저절로 생겼다.
 하지만 대중교통으로 거기까지 가는 것은 엄두도 안 났다.
 
 양조장은 산골 깊은 곳에 있었다.
 차가 없으면 들어가기 꽤 어려웠다.
 차 키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거실에 있는 탁자 위에 메모와 약간의 현금과 함께 고이 놓여 있었다.
 
 [사고 나지 않게 조심히 다녀와.]
 
 삼촌의 차는 꽤 고물이었다.
 돈도 많은 분이 차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차를 타고 다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직접 관리하는 강남의 바는 여기에서 가까워서 걸어 다닐 거리다.
 애초에 그 이유 때문에 이곳에 아파트를 구한 것이라고 봐도 되었다.
 
 폭음을 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 한두 잔의 술을 마시는 분이다.
 그때마다 집까지 태워다 줄 대리운전 기사님을 부르는 것도 아깝기는 했다.
 그래도 차는 관리가 꽤 잘 되어 있었다.
 내가 쓴다니 직접 정비소도 다녀오고 세차도 말끔하게 해놓은 것 같았다.
 
 정오 무렵에 출발했지만,
 삼척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제천까지 고속도로가 있으나 그곳부터 덕월 계곡까지는 2시간이나 걸린다.
 행정 구역이 참으로 미묘한 탓이다.
 
 주소지는 삼척이 맞다.
 그러나 태백이 더 가까웠다.
 한마디로 시 경계에 있는 곳이었다.
 산세 험한 곳에 있는 마을에는 겨우 수십 가구만 살고 있는데 그곳에 양조장이 있는 것이 한때는 이해가 안 되었다.
 
 ‘하지만 물맛 하나는 기가 막히지.’
 
 술의 맛을 좌우하는 요소 중.
 물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아무리 좋은 재료를 써도 결국에는 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위스키를 만들 때는 맥아를 발효하는 과정에도 들어가고 술의 알코올 도수를 맞출 때도 어쩔 수 없이 물을 섞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덕월 계곡은 훌륭했다.
 강원도 중에서도 정말 깡촌인 곳이다.
 더구나 수원지에 가까운 상류인 덕분에 물이 깨끗할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괜히 작은할아버지가 그곳에 양조장을 세운 게 아니었다.
 
 그렇게 양조장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오래된 간판이 보였다.
 벽향주(碧香酒)를 만드는 오저당이었다.
 삼척이 보유한 두 가지의 전통주 중의 하나인 벽향주는 원래 평안도의 술이다.
 오저당이란 이름도 옛날 술도가의 이름을 따온 것인데 그걸 재현하기 위해 작은할아버지가 들인 노력은 상당했다.
 
 “이게 얼마 만이지···.”
 
 막상 도착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 가족은 한국에 오면 무조건 이곳에 계신 작은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오고는 했다. 인사드릴 목적도 있으나 이곳의 덕월 계곡에서 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사이 시간이 흐른 탓일까.
 기억보다 양조장은 상당히 허름했다.
 시간의 흐름이 한눈에 느껴질 정도였다.
 한국에 돌아와 입학하기 전에 왔던 것이 마지막이니 거의 3년 전의 일이었다.
 그래도 지저분하다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누군가 꾸준히 관리한 티가 났다.
 
 양조장의 유일한 직원 정 씨 할아버지.
 아마 그분이 계속 관리해주신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제법 쉰 탓도 있으나 워낙 산골 깊은 곳이라 해가 짧은 편이었다.
 잠시 주변을 살펴본 나는 곧장 양조장 옆에 딸린 제법 오래된 한옥으로 향했다.
 
 끼이익!
 
 닫혀 있던 철문을 살짝 밀자.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작은할아버지가 계실 때는 올 사람도 없다며 닫고 살지 않던 문이라 더 심했다.
 
 삼촌이 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른 뒤.
 안으로 들어선 나는 우선 불부터 켰다.
 그러자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사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봐도 미인이셔.”
 
 한때 작은할아버지는 잘 나갔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이곳에 양조장을 세웠다.
 갑자기 왜 그런 결정을 내리신 걸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모른다.
 뭔가 이유가 있으셨겠지.
 
 일단 집안 내부를 살폈다.
 짐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가구도 몇 개 없고 있는 거라고는 TV와 냉장고 같은 기본적인 것들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적어도 20년쯤은 된 것 같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기는 했다.
 집안에 냉장고가 두 대나 있다는 것이다.
 커다란 것은 냉장고이고 나머지 하나는 오로지 술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셨다.
 작은할아버지의 보물 창고다.
 
 솔직히 조금 기대되었다.
 저 안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을까.
 전국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전통주를 마시는 것이 유일한 취미셨던 분이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자고 갈 생각이라 전역을 자축하는 의미로 냉장고를 열었다.
 
 하지만 곧장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가득 채워져 있던 냉장고는 비어 있었다. 보물섬인 줄 알고 땅을 팠는데 똥만 나온 해적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이건 너무 실망스럽잖아.
 
 그렇다고 텅텅 빈 것도 아니다.
 그 안에는 고작 100ml 정도 되는 미니어처 사이즈의 위스키병이 하나 들어 있었다.
 라벨도 없어서 어떤 술인지 알 수 없었다.
 연한 황금빛이 감도는 것을 보아 위스키라기보다는 럼에 더 가까웠다.
 
 “설마 참기름은 아니겠지?”
 
 위스키를 냉장 보관할 이유는 없다.
 스스로 합리적인 의심이라 생각되었기에 뚜껑을 얼어서 코를 가져다 댔다.
 그러자 알코올 향이 뛰쳐나와 코를 찔렀다.
 얼핏 맡은 향이 너무 감미로워서 아찔할 정도였다. 평범한 술은 아닌 것 같았는데 마시다가 남은 술을 보관해 놓은 걸까.
 
 별로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삼촌도 절반 이하로 남은 위스키는 이렇게 작은 병에 담았다. 공기와의 접촉이 맛과 향을 바꾸기 때문이었다. 나는 거실에 놓인 소파에 앉아서 일단 한 모금을 크게 마셨다.
 어차피 다 정리할 거라 아깝진 않았다.
 
 첫 모금을 마시는 순간에 나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황홀한 맛을 느꼈다.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드는 술이랄까.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캬! 이건 도대체 무슨 술이지?”
 
 지금껏 마셨던 술은 술이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 몇 모금의 술이 나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댓글(36)

g2**************    
잘보고갑니다 작가님
2022.02.22 18:48
Chonnom386    
상속세 아닌가요?
2022.02.27 03:17
l살별l    
수정했다고 생각했는데 놓친 부분이 있었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2.02.27 03:27
cl******    
..
2022.03.07 04:27
mean    
손해가 더 커다랗다>크다
2022.03.20 09:25
보라빛바다    
뒤늦게 이 글을 보기 시작했는데, 삼척이면 한반도에서 얼마 되지 않는 경수(센물)가 나오는 곳으로 물이 별로 좋지 않은 곳일텐데요.
2022.03.20 16:54
후발대    
근데 미국 국적 얻고 한국 국적 얻으면 세금 두배로 내야 할지도... 미국은 해외에서 살아도 세금 내야 한다던데...
2022.03.24 01:35
Vaseline    
아버지의 형제면 작은 아버지 아님? 삼촌은 외가 남자형제를 이르는 말이고
2022.03.26 12:14
천둥박쥐    
잘 보고 갑니다
2022.03.27 18:56
여월    
아버지 남동생이라고 나이차이가 크지 않는경우 삼촌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2022.03.3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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