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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022.02.24 조회 2,386 추천 26


 1화
 
 
 
 장엄했던 궁궐 안.
 그곳은 어둠을 틈타 잠입한 유령기사들에 의해 폐허로 변해갔다.
 그때 한 사내가 호위 기사들 앞으로 나섰다.
 한 순간 그의 검에서 피어오른 푸른 오러가 단숨에 유령기사들을 썰어버렸다.
 콰앙! 콰앙!
 팽팽했던 승부는 점차 유령기사들의 패배로 기울어졌다.
 열세의 주된 원인은 기사들을 원호하고 있는 한 마법사, 로한 때문이었다.
 그가 마법을 사용하자 호위 기사들의 상처가 말끔히 사라졌다.
 로한은 단순한 힐러가 아니었다.
 그의 마법은 기사들의 상처뿐만 아니라 그들의 병장기에까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가령, 로한의 마법이 닿으면 무뎌진 검에는 다시 날이 서렸다.
 깨지고 균열이 간 방패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하아, 하아”
 로한은 괴로운 듯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마력 고갈.
 그는 무려 사흘 넘게 이어지는 격전 속에서 쉬지도 않고 마력을 쏟아 붓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마침내 이 전투에 종지부를 찍을 존재가 궁궐 문을 박살내며 튀어나왔다.
 “퀴이이이익!”
 아름다운 여인의 용모와 거미의 하반신을 갖춘 몬스터는 포식이라는 본능에 사로잡힌 채 온몸에서 독기를 살포했다.
 “크아아아아악!”
 독기에 닿은 기사들은 뼈만 앙상히 남은 채 사라졌다.
 빠득!
 아랫입술을 바싹 깨문 로한이 자신과 기사들의 몸에 마법을 사용했다.
 황금빛 마나가 기사들의 몸속 독기를 빼냈다. 그 뒤로 로한은 기사들과 함께 거미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또다시 격렬한 격전이 30분 넘게 이어졌다.
 기사들이 차례차례 쓰러질 때마다 거미 또한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털썩.
 그리고 마지막 기사가 쓰러지자 거미는 홀로 남은 로한에게 달려들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로한은 무슨 생각인지 거미와 승부하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언령 마법을 읊었다.
 사르륵.
 독이 로한의 몸을 침투했고 동시에 마법이 완성됐다.
 그러자 눈부신 황금빛 광채와 함께 궁궐 안에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
 
 “헙!”
 숙면 중 눈을 번뜩 뜬 건우는 호흡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어느새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건우는 소매로 이마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아, 죽은 거야? 산 거야?”
 어째 미처 보지 못한 꿈의 결말 때문에 오늘 밤도 잠자리가 뒤숭숭할 것 같았다.
 시계를 살펴보니, 시침은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도 참 부지런하다.”
 건우는 물을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나갔다.
 “오빠, 지금 일어났어?”
 부엌에는 그의 여동생 최지혜가 토스트를 굽고 있었다.
 “넌 이른 아침부터 안 자고 뭐 하냐?”
 “오빠 아침하고 있잖아. 앉아.”
 건우가 자리에 착석하자, 지혜는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가만, 버터가 어디 있었더라.”
 건우는 조용히 커피를 음미하며 말했다.
 “없을걸. 문 쪽에 마가린은 있을 거야.”
 “아, 찾았다. 지난번에 선물 받은 식기는 어디 있어?”
 “왼쪽 선반에 있어. 키 안 닿으면 내가 도와줄게.”
 “닿거든요.”
 잠시 후 지혜는 구운 토스트를 식기에 담아서 건우 앞에 놓아주었다.
 “오빠는 보면 기억력 하나는 정말 끝내주는 것 같아. 공부를 했어도 괜찮았을 텐데.”
 “그러면 돈 버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잖아.”
 건우는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각성을 한지 어언 4년 차.
 각성자에게는 저마다 특별한 고유 능력이 있다.
 건우의 능력은 완전기억능력.
 분야만 따지면 마법사로의 진출이 얼마든지 가능했지만, 한 가지 큰 결점이 있었다.
 건우는 아직까지 헌터 협회의 평가원이 남긴 말을 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능력이네요. 기억력은 좋은데 마력은 F급이라니, 차라리 진로를 전향해보는 건 어떨까요?
 비아냥거림이 살짝 섞이기는 했지만, 당시에 그 평가원은 진지하게 건우가 헌터가 되는 것을 포기시키려고 했다.
 건우는 지혜를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그게 내 뜻대로 되냐고.’
 정말 그만두고 싶어도 빚부터 시작해서 당장 살길이 급급하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오빠 왜 그래?”
 “아니. 그냥 샌드위치나 사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 돼. 아침은 따뜻하게 먹어야지.”
 지혜의 단호한 일침에 건우는 구운 식빵을 입에 물며 말했다.
 “공부는 잘돼 가냐?”
 “오빠는 맨날 똑같은 거 물어보더라.”
 지혜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도 차석이야.”
 “오! 잘 됐네.”
 건우는 방긋 웃으며 말했지만, 지혜는 심통이 났는지 눈을 삐죽 올렸다.
 “좋기는 뭐가 좋아? 이번에도 반액 장학금이라고. 반액!”
 지혜는 무척 분한 것처럼 보였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니까 넌 하고 싶은 거 해.”
 “그러니까 난 오빠한테 부담 주는 게 싫다고.”
 “넌 그런 거 신경 쓸 필요 없어.”
 “······.”
 건우는 미안해하는 지혜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이런 말을 하기는 좀 뭐하지만 동생 하나는 참 잘 둔 것 같다.
 예쁘지.
 착하지.
 공부 잘하지.
 요리도 잘하지.
 사려 깊지.
 장점을 말하라고 하면 정말 끊임없이 말할 자신이 있었다.
 주변 친구들은 현실 남매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툴툴거렸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지혜를 보면 ‘천사가 존재했어!’라며 소개해달라고 난리였다.
 물론 그럴 때마다 건우는 꺼지라며 발로 찼다.
 “그나저나 오빠, 이번에 들어간 길드는 괜찮은 거야?”
 “음, 내가 길드 어디 들어가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
 “중요하지. 어떤 길드냐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잖아.”
 “나 같은 사람은 어딜 가나 있어서 별 상관없어.”
 “내 오빠는 세상에서 단 한 명뿐이라고.”
 “얼씨구, 영광입니다.”
 
 아침 식사를 한 건우는 곧장 외출 준비를 마쳤다.
 현재 그는 녹색 후드티에 아공간 마법이 깃든 거대한 배낭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크기만 봐도 일반인들이 들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지혜는 새침한 표정으로 건우에게 말했다.
 “몸조심하고 이번에도 다쳐서 들어오면 안 된다.”
 “······네가 내 엄마냐?”
 “엄마 노릇은 하고 있다고 생각해.”
 “인정.”
 건우는 쉽게 수긍하며 발길을 뗐다.
 “다녀올게.”
 
 ***
 
 서울 신내동, 대형마트 지하 주차장.
 헌터들의 눈동자에 괴이한 빛이 비쳐 보였다.
 우웅!
 그것은 장막처럼 펼쳐진 빛이었다.
 게이트.
 그것은 세상을 혼란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재앙으로 크기와 종류가 매우 다양했다.
 탐사 전, 길드원들은 게이트를 분석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한 광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생각 외로 특이하네.”
 “그게 뭐 대단한 일이에요? 저런 거 흔하게 널려있는데.”
 그의 곁에 있던 건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에헴.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광부 인생만 10년인 내 경험상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고.”
 “어떤 점이요?”
 광부가 입을 열었다.
 “게이트가 발생하는 이유는 알고 있지?”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탑이잖아요.”
 탑이 출현한 건, 대략 30년 전쯤.
 태양과 달을 항상 볼 수 있듯 탑 또한 볼 수 있다.
 그것은 지평선 너머, 광활한 하늘 끝까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게이트가 무작위로 생성되는 현상은 바로 이 탑의 에너지에 기인한 것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탑은 또 하나의 세계이며 게이트는 탑의 부산물이었다.
 “근데 그거랑 뭔 상관이에요?”
 “게이트는 24시간 동안 탑의 에너지 파장을 역 추적해서 찾거든. 이런 게이트는 하루면 찾을 수 있다는 말씀. 근데, 저건 소리 소문 없이 며칠간 생성된 게이트야.”
 “아!”
 건우는 이해가 된 듯 절로 탄성을 내뱉었다.
 “특이한 경우도 있네요.”
 “그렇지. 그래도 뭐, 나름 무난할 거야.”
 광부는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레이드를 위해 풀템을 갖춘 일행이 있었다.
 건우는 일행 중 가운데 있는 백기사 갑옷을 입은 청년을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인마, 인상 펴. 너 선우진이 어떤 놈인 줄 알아?”
 “여기서 제가 더 잘 알걸요.”
 “뭐야? 설마 고등학생 동창이라도 되냐?”
 “·········.”
 “맞나 보네, 어떤 애였냐?”
 “지금보다 더 막 나갈 때였죠. 그때는 저렇게 가식도 안 떨었어요.”
 “쯧쯧. 괜히 험한 말 해서 저놈이랑 엮이면 안 된다.”
 “알아요.”
 건우는 퉁명스럽게 답했지만, 광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선우진.
 그는 한국에서 유명한 아크 길드 대표의 아들로 잠재성 S랭크를 받은 헌터였다. 또한 학창 시절에는 심보가 못돼 늘 힘없는 친구를 괴롭히기 일쑤였다.
 건우는 절로 기분이 불쾌해졌다.
 “아저씨, 그런데 저놈은 왜 탑에 안 들어가고 게이트에서 날뛴대요?”
 “탑을 우습게 보면 안 되지. 잠재성 S랭크더라도 웬만큼 실전을 경험하고, 준비를 갖추지 않은 채 들어가면 시련 앞에서 뼈도 못 추려.”
 “하긴.”
 던전에서도 죽어 나가는 헌터는 많았다. 하지만 탑은 사망자의 단위 수가 달랐다.
 던전이 하나의 큰 폭풍이라면, 탑의 시련은 천재지변에 가까웠다.
 따라서 선우진은 게이트를 통해 실전 경험을 쌓고 탑에 들어가려는 것이다.
 그때, 게이트 분석을 마친 길드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진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자, 준비됐으니 한 번 가볼까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우진은 말을 마치고 그대로 건우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움찔.
 건우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한심하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학창 시절에 그가 선우진에게 딱히 괴롭힘을 받은 적은 없었다.
 다만 이렇게 보니, 비교가 돼서 견딜 수 없었다.
 격차를 느꼈다고 할까? 학생 때와 달리 사회에 나와 현재의 처지가 확연히 차이가 나니 절로 위축됐다.
 “어?”
 그때, 선우진의 팔에 걸려있던 아티팩트가 떨어졌다.
 건우는 아티팩트를 손에 쥐었다.
 ‘익스펠.’
 그가 주워든 붉은 보석 아이템은 위급한 상황 시 몬스터를 쫓아낼 수 있는 일회성 아이템으로, 하나에 가격이 천만 원 이상이었다.
 건우는 익스펠을 선우진에게 건넸다.
 “여기.”
 고개를 돌려 건우를 바라보던 선우진이 눈매를 지그시 좁혔다.
 얼굴에는 왠지 모를 불쾌감이 깃들어 있었다.
 “너 나 알아?”
 “고등학교 때 동창이었잖아.”
 “아.”
 그제야 이해가 된 듯 선우진은 탄성을 내며 익스펠을 손에 쥐었다.
 “그런데 이름이 뭐였더라?”
 “······건우, 최건우.”
 ‘졸업한 지 고작 4년밖에 안 됐는데, 그걸 잊냐?’
 달갑지는 않지만, 건우는 선우진과 같은 반을 두 번이나 한 사이였다.
 “아, 그래? 수고해. 고생 많이 할 것 같으니까 빵빵하게 챙겨줄게.”
 탁탁!
 선우진은 건우 어깨를 두 번 정도 치며 지나갔다.
 그 장면을 엿보던 광부가 혀를 끌끌 찼다.
 “동창한테 너무 면전에서 모욕을 주는데. 때려 치고 싶지?”
 “말이라고 합니까? 하루에 열두 번은 때려 치고 싶지.”
 흔한 직장인들의 담화였지만 언행에 담긴 무게는 무거웠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던전에서 위험한 함정과 몬스터와 조우하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건 정말 지긋지긋했다.
 차라리 목숨을 생각한다면 일반 회사에서 야근을 하거나, 현장에서 발로 뛰어다니고 싶었다.
 그럼에도 그가 레이드에 참전하는 이유는 그놈의 돈 때문이었다.
 F급 헌터, 최건우.
 그가 짐꾼으로서 레이드에 참가하면 한탕에 벌 수 있는 돈이 300만 원이었다.
 생명을 건 것치고는 적은 수당이지만, 일반 회사원과 비교할 바는 절대 아니었다.
 “저 먼저 갑니다.”
 “그래. 오늘 하루도 수고하고.”
 저벅저벅.
 게이트의 빛에 사로잡힌 건우는 은연중 생각했다.
 정말 돈 때문일까?
 건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부인하고 싶던 감정을 솔직히 표출했다.
 ‘강해지고 싶어.’
 그가 게이트에 진입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힘에 대한 갈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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