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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기회다 1권-1

2015.02.04 조회 4,612 추천 48


 Prologue
 
 Camponotus Atrox
 머리, 가슴, 배로 나누어졌고 더듬이가 있다. 턱이 잘 발달되어 튼튼하며 다리는 3쌍이다. 배 끝에서 포름산을 배출하는 종이 많은데 독침을 가진 종도 있다. 페로몬을 분비해 의사소통을 하며 집단을 이루어 서식한다.
 생존력도 강해서 핵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종으로 분류되기도 하며, 몸집에 비해 엄청나게 강한 힘을 발휘한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집단적으로 사고를 공유하게 되면 아이큐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올라간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
 
 2012년 12월 21일.
 마야력에 의하면 B.C. 3113년에 시작된 시간이 5125년의 주기를 끝으로 끝나는 날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때를 인류의 종말, 아니 세상의 멸망이라고 말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파다하게 퍼진 이야기다.
 종말의 방식에 대해서는 많은 주장들이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빙하기의 도래, 외계인 침공,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출현, 그리고 태양 흑점의 대폭발 등등.
 과학자들은 이런 주장들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들도 한 가지 주장에 대해서 만큼은 가능성을 부정하지 못했다.
 바로 소행성 충돌이다.
 하늘은 넓고 우주는 광활하다.
 예측하지 못한 소행성의 갑작스러운 출현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고 있다. 실제로 지구상에 존재했던 여러 차례의 대멸종이 소행성 충돌로 인해 일어났으니 말이다.
 따라서 언제 다시 소행성이 지구를 찾는다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비록 인류를 비롯한 지구의 생명체들에게는 재앙이겠지만.
 이처럼 다양한 대멸종 이론들 가운데 특이한 주장이 하나 있다.
 바로 행성 X의 존재 여부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에 의하면, 니비루(Nibilu)라 불리는 이 행성은 지름이 지구의 4배, 질량은 23배, 그리고 공전주기는 3657년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다.
 그런데 이 행성이 2012년에 이르러 지구에 근접하거나 충돌하고, 그 때문에 지구가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NASA의 과학자들은 터무니없는 이론이라고 일축하지만 1982년도에 이미 NASA에서 이 행성을 발견했고, 미 정부에 의해 보도가 통제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행성 니비루로 인한 대재앙에 대비하기 위해 각종 시설물들이 지구 곳곳에 지어지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노르웨이 정부가 북극의 어느 섬에 건설하고 있다는 씨앗 저장고가 대표적인 시설물이다.
 계속 되풀이되는 이런 지구 종말론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지 아니면 실제로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2012년이 지나 봐야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1. 투 문(Two Moon)
 
 2012년 12월 20일.
 눈이 시리도록 맑은 하늘이 며칠간 계속되더니 갑자기 한파가 몰아쳤다.
 한낮의 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떨어지더니 저녁이 되자 영하 20도라는 기록적인 추위가 서울을 덮쳤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다.
 기상청에서는 밤사이 기온이 5~6도 더 떨어질 거라고 말했다.
 전기와 가스 소모량이 역대 최고를 갱신했고, 상수도가 터져 보일러를 돌리지 못하는 가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갔다.
 노숙자들과 노약자들을 중심으로 동사자들이 속출했다.
 정부에서 국가 비상사태를 고려하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거기다가 2012년 12월 21일은 지구 종말론자들에게 있어 운명의 날이나 마찬가지다. 곳곳에서 종말을 믿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휘젓고 다녔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서울이라는 도심 한복판에 있는 이 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상가와 유흥가가 밀집되어 있는 이곳은 흥겨운 음악 소리가 쉴 사이 없이 들린다.
 
 징글벨~ 징글벨~
 흰 눈 사이로 썰매를…….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며칠 전부터 크리스마스 캐럴이 지겹도록 흘러나와 거리를 가득 채웠다.
 젊은 청춘 남녀들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거리에 넘쳐났다.
 그들의 떠드는 소리, 웃음소리, 그리고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어우러져 거리는 뜨거운 열기로 넘실거렸다.
 “에휴!”
 편의점 카운터에 서서 차창 너머로 오가는 커플들을 쳐다보며 한숨짓는 청년이 있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큰 키, 그리고 제법 잘생겼다고 할 만한 얼굴을 지닌 청년이었다. 그런데 왠지 그 청년의 표정은 고달픔으로 찌들어 있었다.
 하정우.
 나이는 23살이며 얼마 전에 군대를 제대한 후, 서울 대명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 복학을 기다리고 있는 휴학생이다.
 지방이 고향인 그는 넉넉지 못한 집안 환경 탓에 등록금을 직접 벌어야 하는 고학생이기도 하다.
 하정우는 지난 사흘 동안 10시간도 채 자지 못했다. 저녁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학생 한 명이 갑자기 그만둬 버렸기 때문이다.
 “망할 자식! 그렇게 대책 없이 그만둬 버리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벌건 눈으로 편의점을 지키는 하정우는 그렇지 않아도 돈 버느라 고단한 몸이 더욱 힘들어지니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11시까지만 버티면 오늘은 집에 일찍 돌아갈 수 있다. 편의점 사장이 밤 시간을 직접 봐주기로 약속을 했던 것이다.
 “오늘 밤에는 아무 생각 없이 푹 자야겠다. 어휴, 피곤해!”
 저녁 11시경이 되자 약속대로 사장이 나왔다.
 “정우야, 어서 들어가. 수고했다.”
 “예……. 그럼 전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그래. 사흘 동안 고생한 거 월말에 따불로 쳐줄 테니까, 힘내라.”
 사장의 말에 하정우는 눈을 번쩍 떴다.
 “정말이십니까?”
 “녀석! 속고만 살았나……. 빨리 들어가서 푹 쉬어.”
 “옙! 사장님, 그럼!”
 하정우는 사장에게 허리를 90도로 꺾어 인사를 한 후, 미리 챙겨 두었던 폐기 도시락을 들고 편의점을 나갔다.
 춥고 피곤하기는 했지만, 돈을 더 주겠다는 말을 들으니 왠지 힘이 나는 느낌이었다.
 하정우는 지독한 추위를 뚫고 한참을 걸어간 끝에, 버스조차 제대로 다니지 않는 한적한 산동네에 도착했다.
 지어진 지 수십 년은 지난 허름한 건물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서울의 대표적인 빈촌이다.
 이 빈촌에서도 가장자리 위치에 있는 작은 콘크리트 집.
 담벼락 곳곳에 금이 가 있고, 작은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휴우! 이제 다 왔군.”
 하정우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 조용히 지하로 내려갔다.
 그 집 지하에는 작은 방이 하나 있었는데, 원래 보일러가 있던 곳을 방으로 개조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항상 습하고 침침했다. 더구나 창문조차 하나도 없어 여름에는 1층으로 통하는 계단의 문을 열어 둬야 공기가 통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다.
 하지만 이 지하실은 하정우에게 소중한 보금자리다.
 보증금 없이 월 5만 원이라는, 아마도 서울에서는 기록적으로 저렴한 월세로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이리라.
 방에는 작은 옷장과 책걸상, 그리고 허름한 침대 하나가 구석에 놓여 있다.
 하정우는 두터운 외투를 벗어 걸상에 대충 걸친 후,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
 “에구구구!”
 오랜만에 침대에 몸을 누이니 입에서 절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따로 난로를 켜지 않아도 방은 따뜻했다.
 벽 하나를 두고 옆 쪽방에 설치되어 있는 보일러 덕분이다. 보일러에서 발생되는 열기가 벽을 타고 들어와 방을 항상 따뜻하게 데워 주었다.
 단지 윙윙거리는 소음이 귀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었다.
 하정우는 침대에 몸을 걸친 채 편의점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펼쳤다. 유통 기간이 막 지났기는 하지만 아직 상하지 않았고, 한 끼 때우기에는 충분했다.
 도시락을 까 먹은 하정우는 치우기 귀찮아 침대 옆에 대충 던져 놓은 후, 침대에 누웠다. 곧이어 잠이 쏟아졌고, 하정우는 꿈나라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나 잠을 잤을까.
 하정우는 따끔거리는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
 “으음! 뭐지?”
 단잠에서 깬 하정우가 불을 켰다.
 “헉! 이, 이건…….”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대충 던져 놓았던 도시락에 시커멓고 커다란 왕개미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아무리 산동네라도 그렇지 이 겨울에 웬 왕개미야?”
 하정우는 서둘러 도시락을 싱크대에 올려놓은 후, 바닥을 기고 있는 개미를 때려잡았다.
 탁! 타닥!
 왕개미들이 하정우의 손바닥에서 으깨지기 시작했다.
 겨울에 따듯함을 얻는 대신 참고, 감수해야 할 또 하나의 대가가 바로 해충이다.
 항상 따뜻하고 습한 지하실의 특성 때문에 예전에는 바퀴벌레들이 많이 살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갑자기 사라졌다.
 그런데 개미떼가 나타난 걸 보니 바퀴벌레는 개미떼에 의해 박멸된 게 분명했다. 원래 개미가 있는 집에는 바퀴벌레가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록 개미가 바퀴벌레보다는 덜하지만, 산에 사는 커다란 왕개미도 상당히 징그러웠다.
 그때 등과 배에서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상의를 풀어 헤쳐 보니 시커먼 왕개미들 몇 마리가 몸 위에서 기어 다니고 있었다.
 하정우의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
 
 NASA(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미국 휴스턴에 위치한 항공우주국의 어느 연구실.
 하얀 가운을 입은 과학자들이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모두의 표정이 심각한 것으로 보아 뭔가 중요한 일을 조사하고 있는 듯하다.
 연구실 가운데 있는 통제 센터.
 그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정장의 중년 사내가, 나이가 지긋한 선임 연구원과 함께 앉아 대형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그들이 주시하고 있는 대형 모니터에는 태양계의 모습과 행성들의 궤도가 나타나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 빨간색의 점 하나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삑! 삑! 삑!
 나이가 많은 선임 연구원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도대체 저 위치에서 시공간이 일그러지는 이유가 뭔가. 저 정도의 중력장이라면 큰 행성이 존재하고 있어야 마땅하거늘…….”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이 없던 빈 공간이었다. 그런데 몇 시간 전부터 그 공간이 일그러지며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방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비교적 젊은 연구원 한 명에게 물었다.
 “아직 발견된 게 없나?”
 “예.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파 망원경과 광학 망원경 전부를 동원했지만, 아무 것도 잡히지 않습니다.”
 “혹시 블랙홀 생성 징후는?”
 “없던 블랙홀이 빈 공간에서 갑자기 생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까.”
 “음, 그렇기는 하지만 관찰 자료들 모두가 블랙홀의 존재를 예시하고 있어.”
 그의 말에 모두들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정장을 입고 있던 사내가 선임 연구원에게 물었다.
 “박사님, 만약 블랙홀이 그 공간에 생성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합니까?”
 “블랙홀의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악의 경우 지구가 먹힐 수도 있소.”
 “지구가 먹힌다는 말은…….”
 “말 그대로요. 달과 지구가 완전히 파괴되어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뜻이오.”
 “세상에…….”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소. 하지만 소형 블랙홀이라도 생성된다면 그 에너지에 의해 지구는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요, 지진과 해일, 기후변화 등등… 아마 인류는 최악의 멸종 위기에 직면할지도 모르오.”
 “음…….”
 “잠시 후면 삼차원 가상 모델을 만들 수 있으니 그때까지 기다려 봅시다. 그럼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소.”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연구원들 중 한 명이 경악성을 토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바, 박사님! 이걸 보십시오!”
 선임 연구원이 그에게 뛰어가더니 모니터를 주시했다.
 그의 눈이 점차 커졌다.
 “헉! 이, 이건 행성! 어떻게 이런 일이…….”
 “이렇게 큰 행성이 어떻게 빈 공간에 갑자기 나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크기라면 지구 반대편에서는 자세히 보일 겁니다!”
 “모니터를 켜 봐!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어떤 나라라도 좋아, 어서!”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잠시 들리더니, 모니터에 아주 특별하고도 기괴한 광경이 나타났다.
 “저럴 수가…….”
 연구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화면을 주시했다.
 그때 연구원 한 명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다시 소리쳤다.
 “이걸 보십시오. 엄청난 에너지가 행성에서 분출되고 있습니다.”
 “뭐? 에너지라니?”
 “어떤 자기장도 아니고… 뭔지 모르겠습니다. 엄청나게 퍼져 나옵니다.”
 “빨리 분석해 봐! 어서!”
 연구원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며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
 
 퍽! 퍽!
 “이놈들 정말…….”
 하정우는 미칠 것 같았다.
 몸에 붙은 왕개미를 3마리나 잡았는데, 또 한 마리가 등을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거울에 자신의 몸을 비추면서 왕개미를 찾았다.
 “도대체 어디로 숨은 거야? 눈에 띄기만 해 봐라…….”
 하정우는 눈에 불을 켜고 거울을 보며 왕개미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하정우의 뒷머리가 쭈뼛 섰다.
 슬금슬금.
 뒷덜미에서 뭔가 스멀거리는 느낌이 들더니 왕개미 한 마리가 얼굴 쪽으로 기어 올라오는 게 아닌가.
 하정우는 반사적으로 손바닥을 휘둘러 뺨을 후려쳤다.
 짝!
 “아이고 아파라…….”
 얼마나 세게 후려쳤는지 눈에서 불이 번쩍하는 듯했다.
 하지만 왕개미는 잡히지 않았다.
 놈은 무서운 속도로 하정우의 뺨과 코를 가로질러 기어 가더니 귓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게 아닌가!
 “허걱!”
 하정우는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마구 팠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귓구멍 안에서 유달리 크게 들렸다.
 “으아아아! 이놈의 개미…….”
 겁에 질린 하정우가 괴성을 지르며 손으로 귀를 마구 후려쳤다.
 퍽퍽퍽!
 “나와라! 어서 나오란 말야!”
 하지만 왕개미는 하정우의 귓구멍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황한 하정우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개미가 귀에서 나오지?”
 그때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바로 물이다.
 귀에 물이 좀 들어간다고 해서 사람이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다. 그러니 귓구멍에 물을 집어 넣으면 개미를 익사시키든지, 아니면 휩쓸려 나오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황당한 생각을 했다.
 하정우는 곧바로 1층에 있는 샤워실로 뛰어갔다.
 샤라라랑!
 갑자기 주변이 환해졌다.
 하지만 하정우의 온 정신은 샤워실로 빨리 가야 한다는 사실에만 집중되어 있어, 오로라 같은 기이한 빛이 벽을 뚫고 들어와 자신의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가던 하정우는 급히 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어이쿠!”
 우당탕탕!
 하정우가 비명을 지르면서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바닥에 축 늘어졌다.
 천장이 빙빙 돌아갔고, 주변이 온통 알록달록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으으! 이, 이게 무슨 조화냐…….”
 그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정신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신기한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벽을 뚫고 들어온 오로라 같은 빛이 하정우의 온몸을 둥글게 감싸더니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가기 시작했다.
 2012년 12월 21일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
 
 “으음!”
 하정우가 신음성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여기가 도대체…… 아!”
 하정우는 뭔가 떠오른 듯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볐다.
 “어디 갔지? 왕개미가 귓구멍으로 들어갔었는데…….”
 하정우는 그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아아!’하는 목소리를 내 보기도 했다.
 결과는 정상이었다.
 “휴! 기절한 사이에 왕개미가 귓구멍에서 빠져 나간 모양이구나. 다행이다. 그나저나… 온몸에 멍이 다 들었구나. 아이고, 아파라…….”
 하정우는 곧바로 1층으로 올라가 세면실로 갔다.
 마당 한쪽 구석에 있는 작은 세면실에는 변기가 있어 화장실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정우는 손과 얼굴을 깨끗이 씻은 후, 마당으로 나왔다.
 “아, 개운해!”
 그가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시리도록 맑은 겨울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아! 날씨가 정말 좋구나. 그러고 보니 추위도 많이 가신 것 같아, 다행이다.”
 하정우가 빙긋 웃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오늘따라 기분이 좋았다. 마음도 상쾌했고 컨디션도 상당히 좋은 것 같았다.
 “정우 총각 일어났어?”
 1층 현관문이 열리더니 할머니 한 분이 나왔다.
 하정우가 세들어 사는 주택의 주인이며 홀로 사는 독거노인이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할머니?”
 “그래. 한데 총각도 어젯밤에 봤어?”
 “예? 뭘요?”
 “저런! 못 봤구먼. 어제 하늘에 달이 두 개 떴데.”
 “예? 뭐가 두 개 떠요?”
 “달 말이야 달. 그 때문에 뉴스에서 난리가 났어.”
 하정우가 잠시 멍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혹시 치매가…….’
 그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아, 글쎄 정말이라니까!”
 “에이, 할머니도 참…….”
 “나도 아침에 뉴스에서 보고 깜짝 놀랐어. 총각도 어서 확인해 봐.”
 “예. 나중에 확인해 볼게요. 추운데 어서 들어가세요.”
 “그런데 총각, 밥은 먹었어?”
 “아직…….”
 “들어와서 같이 먹을래?”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때 하정우의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할머니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헐헐헐,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걸?”
 하정우가 자신의 배를 툭툭 쳤다.
 ‘이놈의 위장이 쪽팔리게…….’
 그러고 보니 배가 무지 고프기는 했다.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잠을 잤으니 배가 고플 만도 하다.
 “그럼 염치 불구하고…….”
 “헐헐헐, 염치는 무슨, 그냥 그렇게 서로 도우면서 사는 거지 뭐.”
 “고맙습니다, 할머니.”
 할머니가 하정우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만 기다려, 밥 차릴 테니까. 그리고 총각은 안방에 들어가서 텔레비전이나 봐. 거기 나올 거야. 아침부터 계속 그 이야기만 나왔으니까.”
 “아닙니다. 여기서 기다리죠.”
 하정우는 다소 쌀쌀한 거실에 앉아 기다렸다.
 할머니가 잠시 후, 상을 들고 부엌에서 나왔다.
 하정우가 재빨리 상을 받아 들었다.
 “무거우신데 저 주세요.”
 “그래. 고마워.”
 “고맙긴요.”
 “여긴 추우니까 안방에 들어가.”
 “안방에요?”
 남의 집 안방에까지 들어가는 건 내키지 않았지만, 추운 거실에서 할머니와 밥을 먹을 수는 없었다.
 결국 하정우는 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어.”
 “잘 먹겠습니다.”
 하정우가 입맛을 다시며 상을 내려다보았다.
 음식을 보자 갑자기 허기가 무섭게 몰려왔다.
 그는 원래 식탐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일정량 이상은 먹지 않았다. 때문에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음에도 호리호리한 체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눈앞에 있는 음식들을 모두 먹어치우고 싶은 욕구가 가슴 속에서 들끓었다.
 ‘내, 내가 왜 이러지?’
 하정우는 밥숟가락을 듣고 천천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응?”
 하정우가 눈을 크게 떴다. 말 그대로 밥맛이 꿀맛이었던 것이다.
 하정우는 숟가락에 밥을 커다랗게 퍼서 입에 넣은 후, 반찬까지 쑤셔 넣었다.
 하정우의 입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우물우물.
 꿀꺽!
 “아!”
 하정우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밥은 처음 먹어 보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밥맛이 좋지? 얼마 전에 할머니와 먹었을 때에는 이렇지 않았었는데…….’
 하정우는 계속해서 밥과 반찬을 입에 퍼 넣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총각, 그동안 굶었어?”
 아구아구! 쩝쩝!
 “아인데요.”
 밥을 한가득 입에 넣고 말을 하니 발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헐헐헐, 그래, 사내는 자고로 밥을 많이 먹어야 해. 그래야 힘을 쓰지. 어여 먹어, 밥 더 가져올 테니.”
 예전 같았으면 당연히 사양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머리까지 숙였다.
 할머니가 TV를 켜고는 부엌으로 나갔다.
 하정우는 아무 생각 없이 계속해서 밥을 먹다가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입맛을 다시며 빈 밥그릇을 쳐다보던 하정우는 그제야 TV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과학자들로 한국과학기술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위원들은 지난밤에 있었던 투 문 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연구에 들어갔습니다. 미항공우주국 나사의 발표에 의하면…….
 
 ‘투 문? 무슨 소리야?’
 하정우는 관심을 가지고 뉴스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때 화면이 바뀌면서 밤하늘이 나타났다.
 하정우의 눈이 커졌다.
 “저, 저게 뭐야? 왜 달이 두 개지?”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두 개의 달.
 하나는 늘 보던 평범한 달이었지만, 그 옆에 있는 다른 달은 짙푸른 색을 띠고 있었다. 게다가 기존의 달보다 서너 배는 될 정도로 컸다.
 
 과학자들은 갑작스러운 새로운 행성의 출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달보다 세 배나 더 큰 행성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출현했다가 갑자기 사라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모두들 입을 모아 말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공간이동, 즉 우주에 있는 수많은 웜홀들 중 하나를 통해 행성이 이동해 왔다가 다시 다른 공간으로 사라졌다고 하는데, 이 또한 과학자들은 믿기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투 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 이것이라는 점을 부정하기 힘들 듯합니다.
 러시아의 한 과학자는, 당시 이 미지의 행성으로부터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분출되어 지구로 쏟아졌다고 하는데, 그 에너지의 성분은 지금까지 지구상에 알려진 그 어떤 것과도 달랐다고 합니다.
 한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진 이 행성은 이십일세기 최대의 미스터리로 남을 전망입니다. 한편, 백악관의 대변인은……
 
 하정우가 한참 뉴스에 열중해 있을 때, 할머니가 밥그릇에 밥을 가득 담아 들어왔다.
 “정우 총각, 밥 먹어.”
 “할머니! 정말이네요. 어제 달이 두 개가 떴답니다.”
 “헐헐헐, 내가 말했을 때는 뭘 들었어?”
 “세상 뿐만 아니라 우주까지 제정신이 아닌 모양입니다.”
 “그러게 말이여, 내 팔십 평생을 살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여.”
 “아, 아깝다! 그런 구경거리를 놓쳤다니…….”
 하정우가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치며 안타까워했다.
 할머니가 가져온 밥 한 그릇을 더 먹어 치운 하정우는 반찬들까지 거의 깨끗이 비운 후에 숟가락을 놓았다.
 이상한 건,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지만 아직도 포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치 밥을 먹자마자 모두 소화가 되어 버린 그런 느낌이었다.
 입맛을 다시던 정우가 상 위를 보고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에고! 반찬을 내가 모조리 먹어버렸네. 할머니는 반도 드시지 못했는데…….’
 할머니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정우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정말 잘 먹네, 정우 총각.”
 “그, 그러게요. 정말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제가 반찬을 다 먹어 버렸네요.”
 “헐헐헐, 괜찮아, 반찬이야 또 내어 오면 되지. 한데 정우 총각 안 나가도 돼?”
 “아! 시간이…….”
 정우가 벌떡 일어나더니 머리를 꾸벅 숙였다.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헐헐헐, 어여 가 봐.”
 “네. 그럼!”
 정우는 재빨리 안방을 나와 세면실로 갔다.
 그곳에서 양치를 하고 머리를 정리한 후, 지하 방으로 돌아간 정우는 재빨리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던 정우가 시익 웃었다.
 “짜식! 오늘따라 더욱 멋있는걸? 넌 할 수 있어, 열심히 살면 언젠가 네 꿈을 이룰 수 있단 말이야. 그러니 포기하지 마! 좌절 금지! 실망 금지! 아자! 아자! 아자!”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른 후, 정우는 상쾌한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그의 온몸에서 넘쳐흐르고 있었다.
 거리에 나오니 사람들 모두 지난밤에 있었던 투 문 현상에 대해 떠들었다. 특히 그걸 직접 본 사람들은 입에 침까지 튀겨 가며 신비로운 그 현상을 설명했다.
 홀로 걸어가던 사람들도 신문이나 핸드폰을 통해 뉴스를 보고 듣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하정우에게는 그렇게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세상에서 인간의 지식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 열에 하나도 되지 않을 것이다.
 아직 피라미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게 인간이 아닌가. 그러니 광활한 우주에서 일어난 특별한 일을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건 당연할 것이다.
 하정우는 ‘그냥 그랬나?’하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투 문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가질 만큼 그의 삶은 여유롭지 못했다. 당장 출근을 해서 편의점에서 일해야 하고, 또 틈틈이 공부도 해야 했다.
 학원에 다닐 시간도, 돈도 없는 그로서는 독학만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는 3학년 과정을 모두 마치고 군대를 다녀왔다. 원래는 2학년을 마치고 입대하려 했지만, 한창 공부하고 있던 영어를 중간에 그만두기 아까워서, 3학년까지 마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몇 달 후에 4학년으로 복학을 하면 당장 졸업 후를 대비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취업의 문이 더욱 좁아졌기에, 하정우로서는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하정우가 편의점에 도착하자 사장이 녹초가 된 표정으로 카운터에 서 있었다.
 “사장님.”
 사장이 하정우를 보더니 구세주를 만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오! 정우야.”
 “수고하셨어요. 그만 들어가서 쉬세요.”
 “그래. 난 들어가마, 수고해라.”
 사장은 정우의 어깨를 툭툭 친 후 편의점을 나갔다.
 문 앞에서 허리와 목을 돌리며 몸을 푸는 사장의 모습이 창을 통해 보였다.
 하정우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쯧쯧쯧, 그러게 평소에 운동이라도 좀 하시지. 겨우 하룻밤 샜다고 저렇게 힘들어 하다니…….”
 하정우는 카운터에 자리 잡고 앉아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누가 보면 음악을 듣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어학공부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정우가 낀 이어폰에서는 중국어가 흘러나왔다.
 군대 다녀오기 전 3년 동안 꼬박 영어공부에 시간을 쏟아 부은 덕분에 이제 영어실력은 누구와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았다. 그래서 제2외국어, 즉 한창 뜨고 있는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정우의 일과가 시작되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뜸하던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주로 끼니를 간단히 해결하려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인근에 있는 가게나 직장의 직원들이 돈과 시간을 아끼느라 편의점에서 인스턴트 음식을 사 먹기 위해 몰려드는 것이다.
 정신없는 1시간이 지나 점심시간이 끝나자 손님들이 다시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문에 달아 놓은 종이 울리더니 젊고 아름다운 여성 한 명이 들어왔다. 20대 초반의 직장 여성으로 보였는데,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는 세련된 여성이었다.
 그녀를 본 하정우의 표정이 밝아졌다.
 “어서 오세요.”
 그녀는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안쪽으로 들어가서 커피 캔 하나를 가지고 카운터로 왔다. 그리고는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재빨리 바코드를 찍고 지폐를 받은 후, 거스름돈을 내밀었다.
 그녀가 거스름돈을 받는 순간, 하정우의 손끝이 그녀의 손바닥을 스쳤다.
 하정우는 온몸이 짜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고,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네.”
 작은 소리로 대답한 그녀가 편의점을 나갔다.
 하정우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자신의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 쪽 하고 뽀뽀를 했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녀다.
 하정우는 그녀의 이름은 물론, 어디서 일을 하는 직원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동안 매일같이 찾아오는 그녀는 하정우에게 있어 여신이었다.
 하정우가 한숨을 내쉬더니 탄성을 내뱉었다.
 “워우! 오늘따라 그녀의 존재감이 확 느껴지네. 아! 아쉽다. 손이라도 한 번 잡아 봤으면…….”
 그는 아쉬움의 입맛을 다시며 그녀가 사라진 문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잠시 후 새로운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고, 하정우는 상념에서 깨어나 손님을 맞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아르바이트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하정우는 무척 배가 고픈 것을 느꼈다.
 “어디 보자, 오늘은 뭐가 남았나…….”
 하정우는 진열대의 인스턴트 식품코너를 뒤적였다.
 “어라! 오늘은 거의 다 팔렸네? 젠장, 또 굶어야 하는 거 아냐?”
 그가 투덜거리며 유통 기간이 거의 끝나가는 도시락이나 삼각김밥을 찾았다.
 “아! 하나 있구나.”
 하정우는 진열대 맨 구석에 있던 도시락 하나를 꺼내 카운터로 가져간 후, 잠시 기다리다가 시간에 맞춰 폐기코드를 찍었다.
 이제 폐기된 도시락은 하정우의 차지였다. 유통 기간이 조금 지나기는 했지만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이었다.
 그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도시락을 종이가방에 넣었다.
 잠시 후, 사장이 시간에 맞춰 편의점에 들어서며 투덜거렸다.
 “어휴. 피곤해 죽겠네. 빨리 야간 아르바이트생을 구해야지, 원.”
 “푹 주무셨어요?”
 “말도 마라. 몸은 피곤한데 도통 잠이 안 오더라.”
 “하하, 밤낮이 바뀌면 그게 안 좋아요.”
 “어쨌든 수고했다, 들어가 봐.”
 “예, 사장님. 그럼 수고하세요.”
 하정우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시락 가방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밤늦게 집에 돌아온 하정우는 곧바로 도시락을 꺼냈다.
 물 한 잔을 떠놓고는 도시락 뚜껑을 연 하정우의 안색이 굳었다.
 “뭐야? 웬 쉰 냄새가…….”
 킁킁!
 하정우가 도시락에 코를 갖다 대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심하지는 않지만 살짝 쉰내가 났다. 상하기 일보직전이라는 뜻이다.
 ‘이 정도면 먹어도 될 것 같기는 한데, 혹시 잘못되면 바로 식중독 걸리는데…….’
 하정우는 이런 경우가 가장 짜증이 났다. 버리기는 아깝고, 먹자니 찝찝한 경우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늦은 시간에 어디 가서 밥을 사먹기도 어려웠다. 식당을 찾기도 마땅치 않았지만, 그보다는 돈이 들기 때문이다.
 꼬르륵!
 배는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목구멍에서는 연신 침이 넘어간다.
 워낙 배가 고파서인지는 모르지만 약간 쉰 냄새가 이상하게 식욕을 더욱 돋운다.
 “에라, 모르겠다.”
 하정우는 수저를 들고 도시락을 순식간에 깨끗이 비웠다.
 “쩝!”
 하정우가 빈 도시락을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예전에는 하나만 먹어도 충분히 배가 불렀는데, 지금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이거 살이 찌려고 하나… 왜 이렇게 입맛이 당기지?”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1층에 있는 세면실로 올라가 씻은 후,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갔고, 하정우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2. 변화
 
 삐빅! 삐빅!
 아침 8시가 되자 알람시계가 울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 죽은 듯 잠들어 있던 하정우가 가느다란 신음성을 흘리며 힘겹게 눈을 떴다.
 안색이 어두웠고, 두 눈은 붉게 충혈되었다. 게다가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있기까지 하다.
 “으으… 몸이 왜 이렇지? 어제 먹은 도시락 때문에 탈이 났나?”
 하정우는 손을 뻗어 머리맡에 있던 시계의 알람 소리를 멈추게 한 후,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천근만근이다.
 하정우는 그대로 다시 침대에 풀썩 쓰러졌다.
 온몸이 나른하고 근육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야, 약국에라도 가야 하는데…….”
 하정우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위이이이잉!
 책상 위에 놓아 두었던 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시간을 벌써 오전 10시.
 하정우가 편의점에 출근했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하정우는 꼼짝도 하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핸드폰은 한동안 울리더니 다시 잠잠해졌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죽은 듯이 잠들어 있던 하정우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풀쩍 뛰어올랐다.
 놀랍게도 그의 머리와 등이 거의 천장에 닿을 정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침대에 떨어졌다.
 “헉헉헉!”
 하정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꿈이었구나.”
 두 번 다시 꾸고 싶지 않은 끔찍한 악몽이었다.
 꿈에서 하정우는 하수도를 돌아다녔다. 그는 온갖 잡동사니와 쓰레기로 뒤범벅이 되어 있는 하수구에서 부패한 쥐의 사체를 발견하고는 미친 듯이 달려가 뜯어 먹었다. 현실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먹었던 쥐의 사체는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맛이 있었다.
 쥐 한 마리를 다 먹어 치운 하정우는 문득 하수돗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긴 더듬이에 6개의 다리가 달린 곤충이 있었다. 바로 왕개미였다.
 하정우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게 바로 그때였다.
 “젠장, 상한 음식을 먹어서 그런 꿈까지 꿨구나. 휴우.”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가뿐했다.
 “어라!”
 하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죽을 것처럼 아프던 몸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했다.
 “잠을 푹 자고 났더니 다 나았나 보구나. 휴, 다행이다. 가만! 지금 시간이…….”
 하정우가 시계를 들여다보고는 눈을 부릅떴다.
 “이, 이런!”
 시간은 벌써 저녁 6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하정우는 급히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부재중 전화 7통과 메시지 몇 개가 남겨져 있었다.
 바로 편의점 사장이 남긴 것이었다.
 하정우는 급히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사장님!”
 - 야! 하정우! 어떻게 된 거야?
 “죄, 죄송합니다.”
 - 괜찮은 거냐?
 “예. 어젯밤에 탈이 나서 꼬박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전화가 온 줄도 몰랐어요.”
 - 탈이 나? 많이 아프냐?
 “예. 그랬는데… 푹 자고 났더니 이젠 괜찮습니다.”
 - 쯧쯧쯧. 몸조심 좀 하지. 난 출근하다가 사고라도 난 줄 알았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 아니다. 오늘은 그냥 쉬어라.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 괜찮긴 뭐가 괜찮아. 약이라도 좀 지어 먹고 집에서 쉬어.
 “낮에 쉬었으니 야간이라도 제가 봐야죠. 지금 나가겠습니다.”
 - 그럴 필요 없다. 야간 아르바이트생 구했다.
 “예? 정말요?
 - 그래. 야간 아르바이트생 올 때까지 몇 시간 안 남았다.
 “예…….”
 왠지 풀이 죽은 하정우의 목소리다.
 - 너, 일급 때문에 그러냐?
 “아, 아닙니다.”
 - 돈 버는 것도 좋지만 몸이 우선이야. 그냥 쉬어.
 “예, 사장님. 그럼 내일 아침에 나가겠습니다.”
 - 그래.
 전화를 끊은 하정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학비마련이 빠듯한 하정우다. 하루 일당이 얼마 되지는 않겠지만, 하정우에게는 소중한 돈이다.
 “어쩔 수 없지.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오늘은 푹 쉬자.”
 하정우는 침대에 다시 몸을 뉘었다.
 꼬르륵!
 배에서 갑자기 천둥치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밥을 먹은 지가 꽤 됐구나. 젠장, 해 놓은 밥은 다 먹었으니 다시 지어야 하는데……. 참자! 일당도 날린 놈이 무슨 낯으로 밥을 먹어?”
 하정우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참았다.
 한동안 침대에 바짝 엎드려 있던 하정우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으아! 도저히 못 참겠다.”
 하정우는 번개처럼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가 찾아간 곳은 집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제과점이었다.
 그곳에서 빵과 우유 하나씩을 산 후, 그 자리에서 걸신들린 듯 먹어 치웠다. 그런데도 허기가 가시지 않았다.
 하정우는 결국 큼지막한 바게트 빵을 하나 더 샀다. 30센티미터는 족히 되는 길쭉하고 두툼한 빵이었는데, 하정우는 그것마저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꺼억!”
 그제야 어느 정도 포만감을 느낀 하정우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카운터에서 점원 아가씨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 내가 도대체 뭘 한 거지?’
 하정우는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고는 제과점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하정우는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적지 않은 양의 빵을 먹어 치웠지만, 배는 여전히 홀쭉했다.
 ‘도대체 그 많은 빵들이 어디로 간 거야? 정말 미치겠군.’
 하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침대에 몸을 던졌다.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누워 있던 하정우는, 천장에서 뭔가 꼼지락거리는 것을 보았다.
 “개미로군…….”
 별 생각 없이 중얼거리고는 가만히 누워 있던 하정우가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어제 그 난리를 쳤는데, 개미를 보고도 아무 느낌이 들지 않다니…….’
 예전의 그였다면 당장 손바닥을 휘둘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무심코 넘겼다. 별일 아닌 것 같지만 평소 벌레라면 몸서리치도록 싫어하던 점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하정우는 잠시 개미가 기어 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손바닥으로 내리치려고 다가갔다. 그런데 도저히 내리칠 수가 없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개미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이다. 더듬이를 세운 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놈의 모습을 보자 제법 귀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정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침대에 몸을 던졌다.
 “내가 정말… 미쳤구나.”
 하정우는 그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눈을 뜨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
 
 투 문 현상이 일어난 지 며칠이 흘렀다.
 연일 그 현상에 대해 떠들어 대던 신문과 뉴스가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다물기 시작하더니 다른 기사들로 채워졌다. 공식 매스컴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더 이상 투 문 현상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투 문 현상에 대한 온갖 소문과 억측들이 인터넷에 난무했는데, 공식 매스컴들의 이런 대응은 새로운 음모이론을 만들어 내는 촉매구실을 했다.
 하정우는 오늘도 아침 식사를 마친 후, 편의점으로 출근을 했다.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표정은 무척 밝았다.
 아침 10시부터 늦은 밤까지 편의점 카운터를 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너무 피곤해서 잠들기 바빴다.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치가 않았고, 항상 피로를 느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몸과 마음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항상 숙면을 취했고, 다음 날도 하루 종일 활기차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달라진 건 그뿐만이 아니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체력이 좋아졌다. 원래 하정우가 저질 체력은 아니었지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후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런데도 몸에 부쩍 힘이 붙은 느낌이었다.
 하루는 편의점에서 집까지 뛰어서 돌아왔지만 숨이 차지도, 다리가 별로 아프지도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마라톤 대회에도 출전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정우는 왜 자신의 몸에 이런 변화가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편의점에서 물건을 나르고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체력이 좋아졌나 보다 하고 생각했을 따름이다.
 집중력 또한 눈에 띄게 좋아졌다.
 지금까지 건성으로 들었던 중국어 단어와 문장들이 조금만 집중을 하면 머릿속에 속속 박혀서 잊히지가 않았다. 덕분에 일주일 사이에 중국어 듣기 능력이 부쩍 향상되었다.
 하정우는 이런 추세라면 1년 안에 중국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을 더욱 쪼개서 일본어 공부도 해 볼까 하고 생각했다.
 하정우에게 나타난 이런 변화들은 대부분이 유익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변화도 있었다. 바로 예민해진 감각이다.
 하정우는 요즘 소음이 부쩍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신경을 써도 거리를 지나다니는 차량이 내는 소리, 그리고 가게마다 틀어 놓은 음악 소리가 유달리 크고 선명하게 들렸다. 청각뿐만 아니라 후각이나 미각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감각이 지나치게 예민하면 좋은 점보다는 불편할 때가 많다. 아름다운 소리를 듣거나 향기를 맡을 때,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에는 좋지만 반대의 경우는 고역이었다.
 하지만 하정우는 시력이 좋아졌다는 사실에 만족을 했다.
 원래 하정우의 시력은 안경을 낄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크게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멀리 떨어진 작은 글씨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좋아졌다.
 그러나 하정우는 아직 알지 못했다. 이러한 변화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늦은 밤.
 시간은 어느덧 11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야간 아르바이트 학생이 올 것이고, 자신은 퇴근을 할 수 있다.
 하정우는 중국어가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꽂은 채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딸랑!
 작은 종소리와 함께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들 3명이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청소년들은 물건을 고르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갔고, 그들을 보는 하정우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녀석들, 술을 사러 왔나?’
 하정우는 카운터 아래에 있는 모니터를 주시했다. 편의점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카메라를 통해 카운터에서도 사각지대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카메라가 설치된 지 워낙 오래되었고, 지금은 화면에 잔상이 많이 생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도둑질을 방지하는 효과는 있다.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손님들이 딴 마음을 품지 못하기 때문이다.
 3명의 청소년들이 주변을 힐끔거리더니 모두 카메라를 등지고 섰다.
 그들이 나란히 그렇게 서자 그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카메라를 통해서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정우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러자 갑자기 작은 목소리들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 야! 그거 집어.
 - 쓰벌, 너무 크단 말야!
 - 병신! 점퍼는 괜히 입었냐? 가슴에 넣고 지퍼 올려.
 - 알았어.
 - 넌 저거 집어. 안주로는 전기구이 오징어가 최고야.
 - 오케이!
 하정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저놈들 도둑질 한다고 아주 광고를 하네. 누굴 바보로 아나…….’
 그때 그들이 카운터로 다가오더니 키가 크고 온 얼굴이 여드름투성이인 청소년이 말했다.
 “껌 한 통 줘요.”
 하정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너희들……. 지퍼 열어.”
 “예?”
 “모두 지퍼 열란 말야!”
 “무슨 소리예요? 왜 지퍼를 열어요?”
 “당장 열지 못해? 옷 안에 물건 숨긴 거 다 알아!”
 하정우의 말에 모두들 크게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불량기 다분한 어투로 말했다.
 “쓰벌! 누굴 도둑놈으로 아나…….”
 “증거 있으면 대 봐요!”
 하정우가 다시 소리쳤다.
 “너희들 하는 말 다 들었단 말이야! 대놓고 떠들면서 도둑질을 하는데 왜 못 들어? 내가 귀머거리야?”
 “드, 듣다니 뭘 들어요?”
 “전기구이 오징어가 안주로는 딱이라고 말했잖아!”
 하정우가 구체적으로 말을 하자 청소년들이 눈을 크게 떴다. 모두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그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더니 갑자기 소리쳤다.
 “쓰벌! 튀어!”
 그들은 재빨리 입구로 뛰었다.
 카운터에서 입구까지는 불과 2~3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카운터 너머에 있는 하정우가 설사 높이뛰기 선수라고 해도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건 불가능하다.
 ‘저놈들이 정말…….’
 하정우는 그들을 붙잡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몸을 날렸다.
 탓!
 가벼운 소리와 함께 하정우의 몸이 카운터를 가뿐하게 넘어 그들을 지나쳐 문 앞을 가로막고 섰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3명의 청소년들은 물론, 하정우조차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비조 같다는 비유가 어울릴 만한 놀라운 움직임이었다.
 움찔했던 짧은 시간이 지나고, 여드름투성이의 녀석이 소리쳤다.
 “제껴!”
 3개의 주먹이 동시에 하정우를 향해 날아왔다.
 하정우는 크게 당황했다.
 그는 특별히 격투기를 익혀본 적도 없었고, 무술도장을 찾은 적이 한 번도 없었을 정도로 싸움에는 젬병이었다.
 문득 ‘내가 왜 나섰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강한 위기감이 엄습했다.
 그러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온몸에서 갑자기 짜릿한 기운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들이 눈에 훤히 보이는 게 아닌가.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뿐만이 아니다.
 날아오는 주먹의 각도와 방향이 한순간에 머릿속에 그려졌고, 거기에 대한 대응방법까지 훤히 떠올랐다.
 하정우는 본능적으로 대응방법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우선 허리를 살짝 숙여 가장 가까이 다가온 주먹을 피한 후 훤히 드러난 녀석의 배를 가격했다.
 다음 순간 뒤로 한 걸음 물러나 2개의 주먹을 동시에 피한 후, 앞으로 쑥 나아가며 양팔을 활짝 펴서 두 녀석의 가슴을 쳤다.
 퍼버벅!
 세 번의 격타음이 마치 한 번인 것처럼 동시에 터져 나왔다.
 하정우는 자신에게 배를 얻어맞은 여드름투성이의 녀석이 뒤로 튕겨 나가고, 양팔에 가슴을 얻어맞은 두 녀석들이 허공으로 붕 떠오르더니 한 바퀴 빙글 돌아 바닥에 패대기쳐지는 것을 보았다.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든 움직임들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정우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이고…….”
 “으으으!”
 세 녀석들의 신음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렸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최근 들어 몸이 부쩍 좋아진 것을 느끼기는 했지만 이건 말이 안 된다.
 ‘내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는 바닥에 쓰러져 뒹굴고 있는 녀석들을 내려다보았다.
 일단 세 녀석들부터 처리하는 게 급선무다. 생각은 후에 해도 늦지 않으리라.
 “어서 일어나, 이 녀석들아!”
 세 녀석들이 오만상을 다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정우가 그들의 점퍼 지퍼를 열었다.
 그러자 온갖 과자와 안주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세 녀석들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너희들 이래도 발뺌할 거야? 응?”
 세 녀석들이 고개를 숙인 채 배와 가슴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하정우는 그런 녀석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이 녀석들을 어떻게 하지? 이런 일로 경찰을 부르기도 그렇고…….’
 잠시 고민하던 하정우가 녀석들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며 으름장을 놓았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우리 가게에서 이런 짓을 하다가 들키면 그땐 경찰서로 직행이다. 알았어?”
 세 녀석들이 흠칫하더니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고,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정우가 그들을 쓱 둘러보더니 소리쳤다.
 “썩 꺼지지 않고 뭐해!”
 세 녀석들은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다는 속담이 무색할 속도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하정우는 온간 물품들로 어질러져 있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청소라도 시키고 보낼걸. 손님들 오시기 전에 빨리 치워야겠다.”
 그는 녀석들의 품에서 떨어진 물건들을 집어 제자리에 놓고, 흐트러진 진열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하정우와 또래로 보이는 청년 한 명이 들어왔다.
 “어라! 무슨 일이에요, 정우 씨?”
 “아, 왔어요?”
 “가게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
 하정우는 설명하기가 난감해 그냥 얼버무렸다.
 “술 취한 손님 한 분이 들어와서…….”
 “아, 그래요? 그만 가 보세요. 나머지 정리는 제가 하죠.”
 “다 했어요. 민석 씨는 어서 옷이나 갈아입고 나오세요.”
 “알았어요.”
 민석이라 불린 아르바이트생이 내실로 들어갔고, 그가 다시 나온 사이 하정우는 말끔하게 뒷정리를 끝냈다.
 하정우는 그에게 카운터를 인계한 후, 내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편의점을 떠났다.
 추운 밤거리를 걸으며 집으로 돌아가던 하정우의 머리는 복잡했다.
 그가 자신의 두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좀 더 잘 보이고 들릴 뿐 아니라 체력이 무척 좋아졌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무술을 배운 적도 없고, 운동도 한 적이 없는데…….’
 곰곰이 생각하던 하정우는 일단 실험을 한번 해보기로 했다.
 ‘집까지 한번 뛰어가 보자.’
 그는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제법 먼 거리였지만, 그는 한걸음에 달려가 집에 도착했다.
 숨이 조금 가쁘고 다리도 약간 후들거린다.
 하정우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사람들에 비하면 뛰어난 체력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건 편의점에서 보여주었던 자신의 능력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문득 그의 머리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이 위기에 처하면 잠재력이 격발될 수 있다고 하던데 혹시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자동차 사고로 위기에 처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 어머니가 차를 들어 올리는 것처럼…….’
 하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납득할 만한 다른 이유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이것말고는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에이, 답도 없는 문제를 생각하면 머리만 아프지. 사람이 위기에 처하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 젠장, 괜히 뛰었더니 다리만 아프네.”
 하정우는 복잡한 생각을 털어 버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
 
 딸랑!
 “어서 오세…….”
 하정우가 편의점으로 들어오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다 말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더러운 옷을 두툼하게 껴입었고, 얼굴에는 수염이 가득한데다가 몸에서는 구린내가 진동을 하는 노숙자가 들어왔던 것이다.
 “헤헤헤, 잘 지냈어?”
 “어휴, 아저씨, 벌써 오시면 어떻게 해요?”
 “혹시 폐기 도시락 남은 거 없어? 삼각김밥이라도 괜찮은데…….”
 “아직 폐기 시간이 남았잖아요. 그리고 지금은 손님들이 있을 시간인데 이렇게 들어오시면…….”
 “미안해, 아침부터 굶어서 그래.”
 “예? 왜요? 무료배식 안 받으셨어요?”
 “몰라. 오늘은 배식이 없었어.”
 “저런!”
 “사실 어젯밤에도 굶었거든? 그래서 배고파 죽겠다, 헤헤헤, 우리 착한 학생. 폐기 도시락 하나만 주라.”
 하정우가 시간을 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폐기하려면 한 시간 남았어요.”
 “조금 빨리 하면 안 될까?”
 “안 돼요. 그랬다가는 돈으로 물어야 해요.”
 “쩝. 그럼 할 수 없지.”
 “죄송해요. 나중에 오세요. 아저씨 거 특별히 빼놓을 게요.”
 “그래. 고마워.”
 노숙자가 손을 흔들고는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하정우는 그런 노숙자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났다.
 하정우는 시간을 정확히 맞춰 유통 기간이 막 지난 도시락 3개의 바코드를 찍어 폐기했다.
 딸랑!
 바로 그때, 종소리와 함께 노숙자가 다시 들어왔다.
 하정우가 그를 보고는 ‘훗!’하고 웃었다.
 “시간 정확히 맞추셨네요?”
 “헤헤헤, 밖에서 시계만 쳐다보면서 기다렸어.”
 “예? 이 추운데 밖에서 기다리셨다구요?”
 “딱히 갈 곳도 없고……. 또 다른 놈에게 빼앗길까 봐.”
 “제가 아저씨 거 챙겨 드린다고 했잖아요.”
 “헤헤헤, 고마워. 우리 착한 학생밖에 없어.”
 “자, 여기요. 가져가셔서 드세요.”
 “고마워, 학생. 그런데…….”
 노숙자는 원하던 도시락을 얻었지만 여전히 가게를 나가지 않고 쭈뼛거렸다.
 “왜 그러세요?”
 “혹시… 남는 거 하나 더 없어? 아무거나 괜찮은데. 날짜가 좀 지난 거라도 상관없어.”
 “왜요? 배가 많이 고프세요?”
 “그게 아니라… 실은 어젯밤에 내가 사람을 한 명 구했어.”
 “예? 사람을 구하시다니요?”
 “밤에 오줌을 누러 나왔는데, 지하철역 근처에 누가 쓰러져 있지 뭐야? 늦은 밤이라 인적도 없어서 내가 잠자리로 데려갔지.”
 “그래서요?”
 “술에 잔뜩 취해 있기는 했지만 옷도 제법 번듯하게 입었더라고, 그래서 지갑을 찾아봤지. 아, 물론 신분을 알기 위해서야. 돈 훔치려는 게 아니라.”
 “훗! 아저씨 그럴 분 아니라는 거 알아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그 영감, 지갑은 물론 돈 한 푼 없더라구.”
 “그럼 경찰에 신고를 하시지 그러셨어요.”
 “나도 그러려고 했어. 일단 술부터 깨운 다음에 말이야. 그래서 아침까지 기다렸지.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는 아무 데도 가지 않겠다는 거야.”
 “예? 왜요?”
 “몰라. 그냥 말을 안 해. 집에도 안 간다, 경찰서도 못 간다…….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왜 살렸냐고 하더라고.”
 “세상에! 뭔가 사연이 있는 분 같네요.”
 “젠장, 우리들 중에 사연 없는 놈이 어디 있어? 나도 한때는 잘나가는 중소기업 사장이었다구.”
 “예, 예, 알았어요.”
 “험험. 어쨌든 별수 있나? 가만 앉아서 아무것도 안 먹고 죽겠다는데 그냥 내버려둘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내가 억지로 끌고 나왔어.”
 “예? 그럼 그분 밖에 있어요?”
 “그래.”
 하정우는 급히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건물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노인이 보였다.
 낯빛으로 보나 옷차림새로 보나 노숙자는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돈깨나 있는 집안의 어르신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정우가 노인에게 다가갔다.
 “어르신, 여기 이러시고 계시면 안 돼요. 어서 집으로 들어가셔야죠.”
 노인이 하정우를 힐끗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어르신! 어르신!”
 하정우가 몇 번이나 그를 불렀지만 본 척도 하지 않았다.
 하정우는 가게를 오래 비워 둘 수 없어 결국 다시 돌아갔다.
 “봤지?”
 “예. 정말 사실 의욕이 없는 분 같았어요.”
 “그래도 먹을걸 주면 잘 먹을 거야, 사람 목숨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가는 게 아니거든.”
 하정우가 잠시 고민했다.
 사실 폐기 도시락은 두 개가 남았다. 하지만 그건 하정우가 아껴 뒀다가 먹을 끼니였다. 만약 하나를 더 주게 되면 한 끼는 돈을 주고 사 먹거나 굶어야 했다.
 ‘에이, 젊은 내가 한 끼 굶는 게 차라리 낫지.’
 이렇게 생각한 하정우는 도시락 하나를 더 꺼내 노숙자에게 건네주었다.
 “여기 있어요, 아저씨.”
 “어이구, 고마워, 착한 학생. 헤헤헤, 학생은 복 많이 받을 거야.”
 “어서 가서 드세요, 손님이 들어올지 몰라요.”
 “그래.”
 노숙자는 도시락 2개를 품에 넣고 재빨리 가게를 나갔다.
 하정우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새로운 손님들을 맞았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밤 11시가 가까워졌다.
 야간 아르바이트 학생이 출근했고, 하정우는 그에게 카운터를 맡기고 폐기 도시락을 챙겨서 집으로 향했다.
 그가 시내 중심가를 막 벗어나려는 순간, 이상한 냄새가 발걸음을 잡았다.
 “이게 무슨 냄새지?”
 하정우는 잠시 코를 킁킁거리다가 저도 모르게 그 냄새를 따라 걸어갔다.
 갑자기 입안에서 침이 나왔고,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정우는 갑자기 형언하기 힘든 식욕을 느꼈다.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눈이 뒤집어지는 듯하다.
 “어, 어디야?”
 하정우는 마치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그 냄새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헉헉헉! 어, 어디서 이런 냄새가…….”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간 하정우가 도착한 곳은 식당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골목이었다.
 구수한 음식냄새들이 진동을 하고 있었는데, 하정우가 끌린 냄새는 그게 아니었다.
 하정우가 코를 킁킁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다시 뛰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하정우는 식당가의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미칠 정도로 식욕을 자극하던 냄새의 진원지가 바로 그곳이었다.
 하정우는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시선이 꽂혔다.
 “저기다!”
 하정우의 다리가 무서운 속도로 움직였다.
 다다다다다다!
 그는 마치 다리가 4개나 달린 사람처럼 달렸는데, 그 모습을 우사인 볼트가 보았다면 형님이라 불렀을 정도로 빨랐다.
 마침내 플라스틱 통 앞에 선 하정우는 숨을 크게 들이켜더니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순간, 하정우의 얼굴이 석상처럼 얼어붙었다.
 “이럴 수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 차가운 얼음물을 온몸에다 들이부은 것 같았다.
 플라스틱 통 안에는 온갖 음식쓰레기들이 가득 담겨 있었던 것이다.
 플라스틱 통은 식당에서 음식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었는데, 추운 날씨였지만 내놓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얼지 않고 악취를 피워 내고 있었다.
 하정우가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나다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속이 울렁거리면서 구역질이 일어났다.
 “우웩! 내, 내가 미쳤나…….”
 정말 미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정우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양쪽 뺨을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찰싹! 찰싹!
 “정신 차려, 하정우!”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던 하정우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더니 넋이 나간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꼬르르륵!
 하정우의 배에서 나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3. 돈을 벌어라
 
 2012년 12월 31일.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려고 종각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거리에서 이어졌다.
 커플이나 가족 단위로 찬바람을 헤치며 걸어가는 그들의 표정은 무척 밝았고, 보다 나은 새해를 기대하는 희망이 엿보였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
 한 번쯤은 과거를 돌이켜 보고, 미래를 그려 보는 소중한 시간이 바로 지금이었지만, 그건 하정우와 하등 관계가 없었다.
 일 년 중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날이 바로 크리스마스와 연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정우는 계속해서 쏟아져 들어오는 손님들을 맞아 바코드를 찍어 대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야간 아르바이트생은 물론, 편의점 사장까지 합세해서 밤새도록 물건을 팔았다.
 그렇게 바쁜 시간이 지나고, 이제 좀 뜸해졌다 싶었을 때에는 이미 새벽 2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까지 가게를 지키고 있던 세 사람은 파김치가 되었다.
 하지만 사장의 얼굴은 싱글벙글이다.
 바쁜 만큼 매상이 오르니 말이다.
 사장은 카운터에서 돈을 세면서 입을 헤벌쭉 벌리고 있었다.
 하정우는 그런 사장의 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쩝! 내가 저렇게 돈을 벌었으면 학비는 벌써 마련했을 텐데……. 에휴, 내 신세야.’
 사장이 한참 동안 카운터에서 부스럭거리더니 갑자기 하정우를 불렀다.
 “정우야.”
 “예, 사장님.”
 “한 달 동안 수고했다. 여기 받아라.”
 사장이 하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이번 달 월급.”
 “예? 월급은 다음 달 5일에 입금하시잖아요.”
 “연말 아니냐. 특별히 먼저 주는 거니까 받아.”
 하정우가 기쁜 표정으로 봉투를 받았다.
 “고맙습니다.”
 같은 돈이라도 먼저 받는 건 기분이 좋은 일이다.
 ‘훗!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속담이 떠오르긴 하지만, 아무렴 어때. 좋은 건 좋은 거지.’
 하정우는 곧바로 퇴근을 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온 하정우는 월급봉투부터 열었다.
 봉투 안에는 오만 원짜리 지폐가 가득 들어 있었다.
 지폐를 꺼내 세어 보니 모두 160만 원이었다.
 ‘160만 원이라……. 월급으로 150만 원 받기로 했으니 10만 원 더 넣었군. 하루 빠진 걸 계산하면… 음, 거의 정확한 편이군.’
 하정우는 입맛을 다시며 돈을 다시 봉투에 넣은 후 침상 아래 깊숙이 숨겼다.
 휴학생이라는 처지에서 160만 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하지만 아파서 쉰 하루를 제외하고, 꼬박 하루를 모두 투자해서 번 것 치고는 많다고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하정우는 복학을 앞두고 있었고, 늦어도 2월 말까지는 등록금을 내야 했다. 등록금은 400만 원 가까이 되는데, 지금까지 하정우가 모은 돈은 100만 원에 불과했다. 제대 후, 복학하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짧아 돈을 모을 틈이 없었던 탓이다.
 ‘이번 달에 번 돈 중에서 학자금 대출한 거 갚고, 생활비 빼고 나면 100만 원밖에 못 모으겠구나. 앞으로 일할 기간이 두 달 더 있기는 하지만, 그래봐야 400만 원 채우기가 힘들어. 그럼 등록금으로 모두 빠져나가고 나면 집세와 책값, 교통비, 통신비, 밥값은…….’
 하정우가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함을 질렀다.
 “으아아아!”
 정말 답답했다.
 하정우는 평소 낙천적이고 밝은 성격을 지녔지만 지금 만큼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는 침대에 몸을 던지고는 천장을 쳐다보았다.
 복잡한 상념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오갔다.
 ‘이렇게 벌어 가지고는 될 일이 아냐.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해.’
 그 날 밤이 하얗게 새도록 하정우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하정우는 마침내 뭔가 결심을 한 듯 주먹을 불끈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이대로는 안 되겠다. 일단 중국어 공부는 접어 두고 막노동판이라도 뛰자.”
 하정우가 침대를 박차고 나와 밖으로 나갔다.
 그가 찾아간 곳은 근처 가게 앞에 있는 신문 가판대였다. 그곳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생활지를 한 부 빼낸 후, 집으로 돌아왔다.
 하정우는 집에서 생활지를 펼치고는 구직란을 찾아서 살펴보았다.
 “흠. 일자리가 많이 있긴 한데……. 이래가지고는 안 되겠다. 직접 인력시장에 나가 봐야겠어.”
 그는 일단 아침밥부터 차려 먹고 조금 이른 시간에 편의점으로 나갔다.
 야간 아르바이트생이 집에 돌아가는 건 오전 7시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정우가 출근하는 11시까지는 사장이 직접 편의점을 지켰다.
 하정우가 편의점에 도착하자 사장이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정우, 일찍 왔네? 좀 더 쉬지?”
 하정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사장님, 정초부터 죄송한데……. 저 그만둬야겠습니다.”
 그의 말에 사장이 깜짝 놀랐다.
 “왜? 다음 달까지는 하기로 했잖아.”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등록금 마련하는 게 빠듯해서요. 원래 2월부터 다른 일을 하려고 했는데, 그래가지고는 너무 쪼들립니다. 그래서 이번 달부터 바로 시작하려고 해요.”
 “음, 그럼 내가 월급을 조금 더 올려 주면 어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긴 합니다만…….”
 “마음을 굳힌 모양이구나. 음!”
 사장이 신음성을 흘렸다.
 그동안 많은 아르바이트생들을 써 봤지만 하정우만큼 열심히 일하는 학생은 처음이었다. 따라서 사장은 그를 계속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하정우가 이미 결심을 굳힌 것 같으니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 다른 일도 아니고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알겠다. 어쩔 수 없지. 그럼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을 구할 때까지 만이라도 가게를 좀 봐 다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사장님께선 그만 들어가 보십시오.”
 “아직 삼십 분이나 남았는데?”
 “기왕 나왔으니 제가 보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그럼 수고해라.”
 사장은 하정우에게 가게를 맡기고 그곳을 떠났다.
 신년 첫 날이라 그런지 가게에 손님은 별로 없었다.
 하정우는 하루 종일 중국어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고, 저녁이 되자 어김없이 노숙자가 찾아왔다.
 “착한 학생, 새해 복 많이 받어.”
 “오셨어요? 아저씨도 복 많이 받으십시오.”
 “헤헤헤, 내게 복이라고 해 봐야 끼니 거르지 않고 챙겨 먹는 것 말고 뭐가 있겠어?”
 하정우가 웃으며 그에게 도시락 하나와 삼각김밥 2개를 내밀었다.
 “가져가서 드세요.”
 “어이구, 고마워.”
 “뭘요. 저, 그런데…….”
 “왜?”
 “저 가게 그만둘 것 같습니다.”
 “뭐? 그게 정말이여?”
 “예.”
 “흐이구, 이제 그럼 어쩌나.”
 “새로 오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부탁해 보세요. 아마 도시락을 드릴 겁니다.”
 “그건 몰라, 요즘 사람들 인심이 얼마나 박한데.”
 “죄송합니다. 저는 새로운 아르바이트생 구할 때까지만 일할 겁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어쨌든 그동안 고마웠어.”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오면 제가 아저씨 이야기를 해 두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고…….”
 “뭘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내일은 볼 수 있는 거지?”
 “아마도요.”
 노숙자가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갔다.
 하정우가 문 밖을 살펴보니, 저쪽에 앉아 있는 노인이 보였다.
 ‘뭔가 사연이 있는 노인 같은데…….’
 노숙자는 그 노인에게 다가가더니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만나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은 어느덧 동료가 된 듯했다.
 
 ***
 
 다행히 편의점의 새 아르바이트생은 금방 구해졌다.
 하정우는 1월 2일까지 일을 하며 새로 온 아르바이트생에게 모든 것을 인계했다.
 그는 이틀 동안 일한 것에 대해서는 일급을 받지 않으려 했지만, 의외로 사장이 20만 원을 챙겨 주었다. 그동안 열심히 일해 줘서 고맙다면서 말이다.
 하정우는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이렇게까지 해 주는 사장을 만났다는 사실이 무척 고마웠다.
 다음 날 아침.
 하정우는 새벽같이 일어나 인력시장으로 갔다.
 허름한 건물에 있는 사무실이었는데, 이미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0명가량 더 들어왔고, 본격적으로 일거리를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기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 위주로 먼저 뽑혀 갔고, 하정우처럼 기술도 없는 초짜들은 가장 나중에 막노동 일을 얻었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곳은 서울 인근에 있는 공사판이었다.
 6층짜리 건물을 짓는 곳이었는데, 건물은 이미 거의 다 완공되어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그곳에서 하정우가 맡은 일은 내부 청소였다.
 건물 내부에는 온갖 건축 쓰레기들이 널려 있었는데, 그것들을 자루에 담아 밖으로 끌어내는 게 일이었다.
 상당히 고되고 육체적으로 힘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하정우는 열심히 했다. 예전에 비해 최근 힘이 부쩍 붙은 하정우였지만, 이처럼 강도 높은 육체노동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함께 일한 사람들 중에서는 하정우가 가장 많은 쓰레기를 치웠고,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들지 못하는 폐기물도 그가 번쩍 들어 옮기곤 했다.
 하정우의 그런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반장이 퇴근시간이 되자 그를 불렀다.
 “학생이야?”
 “예, 반장님.”
 “예전에 이런 일 많이 해 봤어?”
 “군대에서 비슷한 일을 해 본 적은 있습니다.”
 “흠, 처음이란 말이군. 그런데도 어떻게 그렇게 일을 잘해?”
 “그냥 부지런히 했을 뿐인데요.”
 “내일부터 이쪽으로 바로 와. 그럼 인력시장에 지불해야 할 수수료도 낼 필요 없어.”
 반장의 말에 하정우는 눈을 번쩍 떴다. 인력시장을 통하면 임금의 일정부분을 수수료로 내야 한다. 한 푼이라도 더 모아야 하는 하정우의 입장에서는 그것도 아까웠다.
 “그러면 저야 고맙죠. 내일 아침에 바로 나오겠습니다.”
 “그래. 그럼 내일 봐.”
 하정우는 일당 6만 원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장시간 고된 일을 했지만 의외로 몸은 가뿐했다.
 원래 처음 이런 일을 하면 온몸이 결려서 며칠 동안은 고생을 하는 게 다반사다. 그런데 하정우는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자 온몸이 상쾌한 것을 느꼈다. 어디 근육통 하나 생긴 곳도 없이 말이다.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별것 아니군. 차라리 처음부터 이런 일을 할걸. 그럼 벌써 돈을 많이 모았을 텐데.’
 일당 6만 원 일을 한 달 동안 꼬박하면 180만 원이라는 돈을 벌 수 있다. 그것도 8시간만 일해서 말이다. 나머지 시간에는 공부를 하거나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으니 편의점에서 장시간 일하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물론, 보통 사람들이라면 한 달 동안 매일같이 노동일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정우는 충분히 그렇게 할 자신이 있었다.
 ‘이 일이 내 천직인가? 훗!’
 하정우는 책상에 앉아 중국어 공부와 학과 공부를 몇 시간 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하정우는 곧바로 현장으로 일을 나갔고, 그날도 그곳에서 가장 열심히, 그리고 가장 많은 일을 했다.
 그리고 이런 날들이 사흘간 이어졌다.
 안타깝게도 그 현장에서는 일이 더 이상 없었다. 이젠 인테리어 전문 업자들이 들어와 일할 차례였고, 하정우에게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
 하정우는 특별한 기술이 있으면 일당을 1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귀가 솔깃해졌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하정우는 나흘 만에 다시 인력 사무소로 나갔다.
 그런데 그날 사무소장이 뜻밖의 일거리를 내놨다.
 “자, 오늘 일당 15만 원짜리 일이 들어왔습니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엄청난 소식이었지만 대기자들 모두 시큰둥한 반응이다.
 그들 중 한 명이 물었다.
 “그거 혹시 거성 용역 일 아니오?”
 “맞습니다.”
 “에이, 누가 거성에서 일한대? 다른 일 없소?”
 “험험. 물론 있지만, 일당이 가장 높은 일이니 먼저 소개해 드리는 겁니다. 자, 여기 가실 분 안 계십니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하정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곁에 있는 대기자에게 물었다.
 “아저씨, 일당이 저렇게 좋은데 왜 아무도 안 하려고 합니까?”
 하정우의 질문을 받은 대기자가 그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오히려 되물었다.
 “돈 벌러 나온 학생이지?”
 “예.”
 “쯧쯧, 그러니 모르지. 거성 용역은 3D 중에서도 최악의 일만 하는 곳이야. 그러니 아무도 안 가려는 거지.”
 “3D요? 입체영화 만드는 그런 일입니까?”
 “뭐? 영화? 큭큭큭. 정말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군. 더티, 데인져, 또 하나가 뭐더라……? 어쨌든 그거 몰라?”
 하정우가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더럽고(Dirty), 위험하고(Dangerous), 어렵다는(Difficult) 세 가지 일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바로 그거야.”
 “그래도 일당 십오만 원이면 두 배가 넘지 않습니까?”
 “이봐, 학생. 내 아들 같아서 하는 말인데, 거성 용역에 갈 생각이라면 일찌감치 때려 치워. 하루 일하고 일주일 누워 있기 싫으면 말이야.”
 하지만 하정우는 여전히 그 일에 마음이 끌렸다.
 “혹시 일당을 떼먹거나 하는 그런 악덕업체는 아니죠?”
 “물론 아니지. 거성 용역은 서울시청의 하도급 업체들 중 하나야.”
 “그래요? 그럼 확실한 회사네요.”
 “그야 그렇지. 하지만 일이 너무 힘들고 위험하니 아무도 안 하려는 게지.”
 그때 사무소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거성 용역에 가실 분 아무도 안 계십니까? 그럼, 없는 것으로 알고, 다른 일을…….”
 하정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요! 제가 가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하정우를 향했다.
 혀를 차거나 피식 웃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무소장은 무척 반가워했다.
 “아! 마침 한 분 계시는군요. 이쪽으로 나오세요.”
 하정우는 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밖으로 나가 기다리고 있으니 ‘거성 용역’이라는 글을 써 붙인 승합차 한 대가 왔다.
 운전수가 창문을 내리더니 소리쳤다.
 “거성 용역 일하실 분.”
 하정우가 손을 들자 운전수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 명 뿐입니까?”
 “예. 저밖에 없습니다.”
 “에휴, 정말 사람 구하기 힘들군. 어서 타세요.”
 하정우는 승합차 뒷자리에 올라탔다.
 차량 내부에는 이미 세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나이가 지긋한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년인 한 명과 하정우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청년 두 명이었다.
 하정우는 그들과 살짝 눈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 앉았다.
 승합차는 서울에 있는 다른 인력 사무소 몇 곳을 돌아다녔고, 그곳에서 두 사람을 더 태웠다.
 그렇게 간신히 6명의 일꾼을 태우자 승합차는 도심 외곽으로 향했다.
 하정우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운전수에게 물었다.
 “아저씨, 오늘 무슨 일을 합니까?”
 “가 보면 알아요, 다 와 가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하정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모두들 그 냄새를 맡고 미간을 찌푸렸지만, 하정우는 오히려 입맛을 다셨다.
 ‘이게 무슨 냄새지? 왠지 배가 고파지려고 하는군.’
 잠시 후, 승합차가 멈춘 곳은 하수 처리장이었다.
 모두들 오만상을 다 찌푸렸고, 하정우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은 악취 때문이었지만, 하정우는 그런 악취를 맡고 배가 고파진 자신이 한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차에서 모두 내리자 10여명의 사람들이 하수 처리장 한쪽에 모여 있었다.
 하정우는 차를 타고 온 사람들과 함께 그들에게 합류했다.
 앞쪽에는 방호복과 보호 장비들이 놓여 있었는데, 잠시 후, 강사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서 안전 교육을 시작했다.
 교육의 내용을 들어 보니 하수구 안에 들어갔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과 그에 대한 대처법이었다. 그리고 보호 장비를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어려운 건 전혀 없었다.
 아마도 하수구 작업을 하기 전에 안전 교육을 하는 게 법으로 정해져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구색과 형식을 갖추는 듯했다.
 교육이 끝나고 나자 모두에게 안전 장비가 지급되었다. 안전모와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긴 장화, 손과 팔을 보호하기 위한 장갑, 그리고 노란색 방호복과 방독면이었다.
 그것들을 모두 착용하고 나자, 마치 영화에 나오는 방사능 처리반처럼 보였다.
 작업반의 반장은 거성 용역의 정직원이었는데, 그가 사람들에게 작업할 장소와 범위 등을 알려 주고 조를 나누었다.
 하정우는 함께 승합차를 타고 왔던 청년 2명과 함께 조를 이루어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는 두 사람과 간단히 통성명을 나누었다.
 알고 보니 모두 대학생들이었는데, 하정우처럼 학비를 벌기 위해 막노동판에 뛰어든 사람들이었다.
 하정우는 그들과 함께 작업할 장소로 향했다.
 하수 처리장에는 서울시에서 들어오는 많은 하수구들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었고, 하정우는 일행들과 함께 그곳으로 갔다.
 “워우! 정말… 지독한 곳이군.”
 하정우는 넓은 하수구를 보고 탄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방독면 때문에 웅웅하고 울리면서 자그마하게 흘러나왔다.
 “젠장, 이거 보니까 그냥 집에 가고 싶어지는군.”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 같구먼. 후유우!”
 하정우와 조를 이룬 이현복과 강민철이 푸념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 힘내서 한번 일해 봅시다. 일당이 자그마치 십오만 원 아닙니까? 죽었다 하고 며칠 고생하면 백만 원은 거뜬히 벌어 갑니다.”
 하정우의 목소리에 용기를 얻었는지 두 사람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세 사람은 진흙과 쓰레기를 긁어낼 수 있는 끌처럼 생긴 도구를 들고 동시에 하수구로 뛰어들었다.
 철벅!
 시커먼 뻘 속으로 두 다리가 무릎까지 푹 박혀 들었다.
 “으갸갸갸갸!”
 이현복이 기겁을 하며 앓는 소리를 냈다.
 “이 정도 가지가 뭘 그래요? 어서 들어가죠.”
 하정우가 앞장섰고, 두 사람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걷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무릎까지 빠진 다리를 힘겹게 빼내서 앞으로 한 걸음 간 후에 나머지 다리를 같은 식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몇 걸음 걷다 보니 모두들 온몸에서 땀이 흘렀다.
 “젠장, 이러다가는 작업 장소까지 들어가다가 지치겠다.”
 강민철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의 말에 모두들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안에서는 움직이는 것 자체가 노동일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세 사람은 거의 1시간 동안 부지런히 걸어서 하수구 작업장까지 들어갔다.
 체력과 힘이 좋은 하정우도 힘들다고 느껴질 정도이니 이현복과 강민철은 녹초가 되어 버렸다.
 세 사람은 한동안 가만히 서서 쉰 후에 작업을 시작했다.
 하수구 안은 정말 더러웠다. 방독면을 쓰고 있어도 악취가 스멀스멀 흘러 들어왔고, 얼굴에서 흘러내린 땀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더구나 힘든 일을 하면서 호흡이 가빠졌는데, 방독면 때문에 숨 쉬기가 두 배는 더 힘들었다.
 한동안 그곳에서 청소를 하다가 이현복이 먼저 나가 떨어졌고, 그다음은 강민철이었다.
 두 사람은 하수구 벽에 기댄 채 꼼작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정우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지만, 하수구의 지독한 악취를 맡으며 일을 하자 점점 몸에서 힘이 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온갖 쓰레기들도 그렇게 더럽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이 정도 냄새라면 굳이 방독면을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하정우는 하수구 안에서 절대로 방독면을 벗으면 안 된다고 안전 교육에서 배웠지만, 자신은 왠지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하정우는 쓰고 있던 방독면을 벗었다.
 지독한 악취가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지만 하정우는 오히려 숨을 깊이 들이켰다.
 그순간, 갑자기 온몸이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알 수 없는 힘이 절로 솟구치는 것 같았고, 더럽기만 한 주변이 아늑하게까지 느껴졌다.
 “정우 씨! 뭐하는 겁니까? 어서 방독면 써요!”
 “방독면 벗으면 안 돼요!”
 두 사람이 하정우에게 소리쳤지만 그는 미소까지 지으며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 보였다.
 “괜찮습니다. 두 분은 잠시 쉬세요. 청소는 제가 할 테니까요.”
 하정우는 부지런히 뻘 위를 오가면서 하수의 흐름을 방해하는 쓰레기들을 긁어냈다. 무척 힘든 작업이었지만, 하정우는 말 그대로 날듯이 움직였다.
 그의 두 다리에는 쉴 사이 없이 뻘 위를 다녔고, 나중에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그렇게 1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작업하자 가져온 커다란 부대 5자루 중 3자루를 가득 채울 정도의 쓰레기를 모을 수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하루 종일 해야 할 일의 절반이 넘도록 일을 해치워 버린 것이다.
 “저, 정우 씨. 괜찮습니까?”
 “이런 일 많이 해 보셨나 보네요?”
 두 사람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정우를 쳐다보았다.
 하정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하정우는 다시 일을 시작했고 이번에는 지켜보고만 있는 게 미안했던지 두 사람도 거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 하지도 못하고 지쳐서 헐떡거렸고, 대부분의 일은 하정우 혼자서 해치웠다.
 마침내 점심시간이 되었다.
 하정우와 세 사람은 커다란 부대 5자루를 힘겹게 끌고 하수구를 빠져나왔다.
 하정우가 방독면을 쓰지도 않은 채 하수구에서 나오는 모습을 멀리서 본 작업 관리자가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거기 방독면 안 쓰고 뭐해!”
 하정우가 괜찮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저 양반이 정말…….”
 관리자는 서둘러 하정우와 일행들에게 다가왔다.
 그가 하정우에게 막 뭐라 하려다가 5자루의 부대 가득 쓰레기가 담겨 있는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니, 학생들! 벌써 부대 다섯 자루를 다 채웠단 말이야?”
 “뭐, 빨리 하니까 금방이던데요?”
 하정우가 천연덕스럽게 말하자 관리자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부대 내부를 살폈다.
 “음, 정말이군, 모두 쓰레기야……. 하지만 어떻게 이 많은 양을 오전에 다 해치워……?”
 그가 하정우를 비롯한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이현복과 강민철은 아무 말 없이 눈만 껌뻑거렸다. 사실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하수구 벽에 기대서 쉰 것밖에 없었다.
 하정우가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 배고파 죽겠는데요?”
 “그, 그래, 어서 식당으로 가. 한데 방독면은 언제 벗은 거야? 그거 벗으면 안 돼.”
 하정우는 하수구 안에서 그걸 벗었다고 말하면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입구에 다 나와서 벗었다고 대답했다.
 “음, 그래도 질식할 위험이 있으니 하수구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후에 벗도록 해.”
 “알겠습니다.”
 하정우는 일행들과 함께 서둘러 식당으로 달려갔다.
 세 사람의 뒷모습과 가득 채워진 부대자루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던 관리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상에! 반나절 만에 하루 할당량을 다 채우는 녀석들은 처음 보는군. 이런 녀석들 몇 팀만 있으면…….”
 그가 입맛을 다시며 침을 꿀꺽 삼켰다.
 하수 처리장에 있는 구내식당에 들어온 하정우는 식판에 밥을 가득 퍼 담아 왔다. 그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걸 모두 먹어 치우고 다시 밥을 그만큼 더 담아왔다.
 모두들 힘든 일을 하고 있었기에 밥을 유달리 많이 먹었지만, 하정우가 먹는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하정우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보다 두 배는 더 많은 양의 밥을 먹어 치운 후에야 배를 두드리며 만족해했다.
 “히야, 정우 씨, 정말 많이 먹네요.”
 “하하하, 제가 좀 많이 먹는 편입니다.”
 하정우는 일행의 물음에 겸연쩍은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작업 관리자가 하정우와 일행들에게 다가왔다.
 “오늘 할당량은 다 채웠는데… 어떻게 할 거야? 더 일할 거야?”
 “그게 할당량이에요?”
 “그래. 대개는 하루 종일 일해도 다 채우기 힘들어. 그런데 오전에 다섯 자루를 다 채웠으니…….”
 하정우가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일행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다시 하수구로 들어가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표정들이다.
 하정우가 관리자에게 말했다.
 “그럼 저 혼자 들어가서 일을 더 할까요?”
 “그렇게 할래?”
 “뭐, 돈 버는 일인데요…….”
 “부대 두 자루 줄게. 그것만 마저 채우면 일당 십만 원 더 쳐 주지. 어때?”
 하정우는 관리자가 들고 있던 부대를 재빨리 낚아챘다.
 “당장 하겠습니다.”
 하정우와 함께 일했던 일행들과 관리자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하수구를 향해 달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하정우는 불과 1시간 만에 부대 2자루를 가득 채워서 끌고 나와 또다시 관리자를 놀라게 만들었다.
 “더 없습니까?”
 “하, 학생. 정말 괜찮아? 그러다가 몸이라도 상하면 어떻게 하려고.”
 “괜찮습니다. 별로 힘들지 않던데요, 뭘.”
 “세상에!”
 “제가 원래 군대 있을 때부터 화생방에 강했습니다. 하수구 냄새라고 해봐야 화생방만 하겠어요?”
 “그렇긴 해도……. 어쨌든 좋아. 두 자루 더 줄 테니 채워 와. 그럼 또 일당 십만 원 더 주지.”
 하정우의 표정이 대뜸 밝아졌다.
 “어서 주세요.”
 하정우는 부대 2자루를 더 가지고 다시 하수구로 뛰어갔다.
 그런 하정우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관리자가 혀를 찼다.
 “괴물 같은 녀석, 오늘 일하고 며칠 병원에 입원하겠군, 쯧쯧쯧.”
 하정우는 이날 35만 원이라는 돈을 벌어 갔다. 그리고 관리자의 예상과는 달리 다음 날 아침에도 거뜬하게 나왔다.
 관리자가 멀쩡한 모습으로 출근한 하정우를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학생, 괜찮아?”
 “그럼요.”
 “세상에. 난 학생이 병원에 입원이라도 할 줄 알았다니까.”
 “하하하, 젊음이 좋은 게 뭐겠습니까? 오늘은 미리 부대를 많이 주세요.”
 “정말 그래도 괜찮겠어?”
 “물론이죠.”
 “음, 그럼 이렇게 하지. 어제 들어갔던 3구역은 거의 청소가 끝났으니 아직 손도 대지 않은 7구역으로 들어가. 상당히 지저분한 곳인데, 청소거리가 많을 거야. 사흘 안에 그 곳을 깨끗이 청소하면 일당 오십만 원을 주지.”
 “이, 일당 오십만 원요?”
 “그래. 대신 혼자 들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들어가면 인건비를 나눠야 하니까 그게 낫겠지?”
 하정우가 당장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조를 짜서 들어가 봐야 실제로 일을 하는 사람은 하정우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7구역이 어딥니까?”
 관리자가 하수구 처리장 가장 안쪽에 있는 커다란 하수구를 가리켰다.
 하정우가 씩 웃더니 부대 10자루와 보호 장구를 챙겨 씩씩하게 그곳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까지 6자루를 채웠고, 밥을 실컷 먹은 후 다시 작업장으로 들어간 하정우는 오후 4시가 되기 전에 나머지 4자루의 부대를 모두 채워서 가져 나왔다.
 관리자의 눈에 하정우의 그런 모습은 괴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7구역은 청소거리가 정말 많더군요. 다른 구역보다 훨씬 지저분하구요. 내일 한 번 더 해야겠어요.”
 “내일이면 끝난다구? 정말이야?”
 “예.”
 “그, 그래. 그럼 오늘은 그만 돌아가고 내일 아침에 다시 나와.”
 그는 하정우에게 일당을 건네주며 생각했다.
 ‘최소한 두 개 조를 투입해 사흘은 일해야 모두 치울 줄 알았는데……. 복덩어리가 굴러 들어왔구나. 흐흐흐.’
 용역 회사 입장에서도 이틀간 100만 원의 인건비만 투자해서 7구역 청소를 마칠 수 있다면 큰 이익이었다. 그러니 하정우의 존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이 없었다.
 ‘저 녀석을 정식직원으로 뽑으면 인건비를 확 줄일 수 있겠다. 마지막 날 제의해 봐야지.’
 그렇게 하정우는 하루를 버티기 어렵다는 하수구 청소 일을 일주일이나 계속했고, 마침내 작업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원래 거성 용역에서는 이 작업 완료 시간을 10일로 잡고 있었다. 그런데 하정우 덕분에 3일이나 당겨서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날, 관리자가 하정우를 데리고 나이가 지긋한 중년인에게 데리고 갔다.
 “인사 드려, 사장님이셔.”
 “아, 예. 안녕하십니까? 하정우라고 합니다.”
 사장은 배가 조금 나온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깔끔한 작업복 차림이었다.
 “자네가 하정우인가? 자네 말은 많이 들었네. 일을 그렇게 잘한다고 하더군.”
 “뭘요.”
 “그래, 오늘 일당은 받았나?”
 “예. 두둑하게 받았습니다.”
 “허허허, 열심히 일을 했으니 당연히 대가를 얻어야지. 그건 그렇고, 앞으로 우리 거성 용역에서 일해 보는 게 어떤가? 정직원으로서 말이야.”
 “예? 정직원요?”
 “그렇네. 4대 보험 혜택은 물론 퇴직금까지 받을 수 있는 정직원 말이네. 자네가 지금처럼 열심히 일만 해준다면 월급 외에 수당을 두둑하게 챙겨 주지. 못해도 연봉 오륙천만 원은 될 걸세. 어떤가?”
 연봉 5~6천만 원이라면 무척 큰돈이다. 일류대를 졸업해 대기업에 들어간다고 해도 감히 넘볼 수 없는 금액이다.
 하정우는 순간 귀가 솔깃했지만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고…….”
 “그럼 졸업하고 난 후에 들어오게. 자네 자리는 항상 비워 두지.”
 하정우는 아무리 돈이 된다고 해도 용역 업체에서 막일을 하면서 세상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에게도 나름 꿈이 있었다. 자신의 전공과목을 살려 사회에서 성공해 보고 싶은 꿈 말이다.
 하지만 업체의 사장이 직접 제의를 하는데 면전에서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싶었다.
 “죄송하지만 진로에 관한 문제는 좀 더 생각을 해 봐야겠습니다.”
 “음, 그래, 그래야겠지. 어쨌든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게. 그리고 여기.”
 사장이 품속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서 하정우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그동안 열심히 일해 줘 고맙다는 성의일세. 받아 두게.”
 “아닙니다. 이미 일당은 충분히 받았습니다.”
 “그냥 넣어 두게. 자네 덕분에 우리 업체도 비용을 많이 줄였네.”
 “예…….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음. 그럼 수고하게.”
 사장이 그곳을 떠나고 나자 관리자가 하정우에게 말했다.
 “정우 학생. 사장님 제의 잘 생각해 봐. 일은 좀 힘들어도 어디 가서 사회 초년병이 연봉 오륙천만 원을 벌겠나?”
 “예. 생각해 보죠. 한데 일은 더 없습니까?”
 “후후후, 이번 주에는 없네. 하지만 다음 주에 방역 작업이 있네. 그때 오게.”
 “방역 작업요? 겨울에 방역을 합니까?”
 “미리미리 해 둬야 봄에 해충이 생기지 않아. 특히 하수구 깊숙한 곳은 겨울에도 따뜻해서 해충들이 많이 살고 있다네.”
 “예. 그럼 방역 작업 할 때 불러 주십시오.”
 “알겠네. 그럼 잘 가게.”
 “예. 안녕히 계세요.”
 하정우는 관리자와 작별을 고하고 며칠간 일하느라 정들었던(?) 하수구 처리장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하정우는 거성 용역 사장이 건네준 하얀 봉투를 열어 보았다.
 “헉!”
 하정우의 눈이 커졌다.
 봉투 안에는 거금 30만 원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하정우로서는 뜻밖의 횡재였다.
 그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불편한 버스 뒷자리가 그렇게 편안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4. 체육관에 가다
 
 “흐흐흐흐!”
 하정우의 입에서 끊임없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수 처리장에서 일주일을 일했을 뿐인데, 교통비를 빼고도 거금 350만 원을 손에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다음 주에 방역 작업이 있으니까, 내가 연락하겠네. 그럼 꼭 나와 주게.
 
 거성 용역 관리자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하정우의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벌써 학비는 모두 마련했다. 미리 모아 두었던 100만 원을 합치면 한 달 치 생활비까지 벌었다.
 지금부터 버는 돈은 보너스나 마찬가지였다.
 하정우는 마음이 뿌듯한 것을 느꼈다. 열심히 일을 하면서 돈을 모으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이래서 모두들 돈, 돈 하는구나, 흐흐흐.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최고야. 이제 며칠 여유가 생겼으니 중국어와 학과 공부에 전념해야겠다.”
 하정우는 곧바로 책상 앞에 앉아 학과 관련 책을 펼쳤다.
 사실 그에게 공부는 무척 중요했다. 4학년을 마치기 위해서는 하반기에 학비를 한 번 더 내야 한다. 그러나 400만 원 가까이 되는 학비를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 학기 중에는 돈을 버는 데 시간을 모두 투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하정우가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기 위해서는 장학금을 받아야 했다.
 군대 가기 전 3년 동안도 전액 장학금을 받거나 최소한 반액 장학금이라도 항상 받아 왔다. 장학금 수령 여부는 그에게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공부해서 항상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후 복학을 하게 되면 계속해서 공부를 해 온 다른 학생들과 경쟁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러니 두 배의 노력을 더 기울여야만 장학금을 수령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종일 꼬박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한 후, 하정우는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편의점에 한번 들러 볼까?’
 하정우는 예전에 아르바이트 했던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둑어둑한 저녁 무렵, 제법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하정우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틈에서 느긋하게 걸어간 끝에, 마침내 편의점에 도착했다.
 그런데 편의점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깜작 놀랐다. 그 사람들은 자신이 아르바이트 할 때 폐기 도시락을 얻으러 오던 노숙자와 업무 인계를 했던 새로운 아르바이트 학생이었던 것이다.
 “거, 너무 한 거 아냐? 폐기 도시락 하나 달라는 게 어때서 그래?”
 “안 된다고 말했잖아요. 폐기 도시락 먹었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누가 져요?”
 “내 위장은 튼튼해서 괜찮다니까. 그리고 잘못되어도 절대로 아가씨 탓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고.”
 “그래도 안 돼요. 전 원칙대로 할 거예요.”
 “그러지 말고 하나만 줘. 아침부터 굶었단 말이야.”
 “그럼 여기 말고 음식점이라도 찾아가세요. 거기서 얻어 드시면 되겠네요.”
 “너무하네, 정말. 예전에 있던 착한 학생은 두 개씩 챙겨 줬는데, 아가씨는 왜 그렇게 매정해?”
 “매정한 게 아니라 원칙대로 하는 거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앞으로 두 번 다시 여기 오지 마세요.”
 아르바이트생은 매몰차게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본 하정우는 마음속에서 열불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폐기 도시락 2개를 꼭 챙겨 놨다가 저녁에 찾아오는 노숙자에게 주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저씨!”
 “응? 아니 학생은… 아이고, 오랜만이야., 착한 학생. 아, 글쎄 새로 온 아가씨가…….”
 “방금 다 들었어요. 한데 함께 계시던 분은요?”
 “저기 앉아 있어.”
 하정우는 그가 가리킨 곳에서 건물 사이의 좁은 틈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노인을 발견했다. 예전에는 옷차림이 제법 번듯했지만 지금은 상당히 지저분해져서 노숙자나 다름이 없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하정우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어서오……. 아, 안녕하세요?”
 “민정 씨.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떻게 되다니, 뭐가요?”
 “폐기 도시락 두 개 빼놨다가 노숙자 아저씨 드리라고 부탁드렸잖아요.”
 “아, 그거요? 생각해 보니까 그래서는 안 되겠더라구요. 폐기 도시락 먹고 탈이라도 나면 어떻게 해요?”
 “시간 조금 지난 건 괜찮아요. 그러니까 주세요.”
 “싫은데요? 그럴 수 없어요.”
 “민정 씨! 민정 씨는 노숙자 아저씨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좀 안되어 보이긴 하지만… 사실 자업자득 아니겠어요? 전 그 아저씨가 노숙자가 된 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피치 못할 사정이라는 것도 있는 겁니다.”
 “어쨌든 제가 이 가게를 지키고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드릴 수 없어요. 그러니 정우 씨도 그렇게 아세요. 그리고 물건 사실 거 아니면 그만 나가 주세요.”
 하정우는 그녀의 고집스러운 표정을 보고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정우가 숨을 깊이 들이켰다가 내쉰 후, 냉장고에서 도시락 두 개를 꺼내 왔다.
 “이거 계산해 주세요.”
 하정우는 돈을 지불한 후, 도시락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노숙자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하정우가 도시락 2개를 들고 나오는 것을 보고 입을 벌렸다.
 “어이구, 고마워. 착한 학생이 최고여.”
 “가져 가셔서 드세요. 그리고 내일부터는 두 개씩 받아 가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 정말이여? 고마워, 착한 학생.”
 노숙자는 하정우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한 후, 동료 노숙자에게 걸어 가더니 그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정우는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한 달 치 도시락 두 개 값입니다. 내일부터 노숙자 아저씨에게 유통 기간이 지나지 않은 도시락 두 개씩 드리세요.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죠?”
 그녀가 잠시 하정우를 쳐다보더니 돈을 받았다.
 “알았어요.”
 하정우는 그녀에게 뭐라 한마디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매일 도시락 2개를 따로 챙겨 뒀다가 노숙자에게 전해 주는 일도 적지 않게 성가신 일이다. 그런데도 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는걸 보면, 그녀가 그렇게 매몰찬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정우는 편의점에서 나온 후, 왠지 가슴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꼈다. 피 같은 돈 20여만 원을 쓰기는 했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 오늘은 장이나 좀 봐야겠다. 주인집 할머니 쌀도 떨어져 가는 것 같던데…….”
 하정우는 대형 마트로 발걸음을 돌렸다.
 
 
 다음에 계속...

댓글(5)

겨울에핀꽃    
베스트 광고보고 오신분들 돈 버리지 마시라고 간단한 감상평 남깁니다. 1. 글이 두서가 없다. 초반 주인공은 무역회사를 차리는게 꿈이라며 우연히 얻은 기회도 차버리는 사람일만큼 줏대가 있다고 표현되는데, 중반부터 주인공의 심경변화에대한 묘사없이 이리저리 휘둘리기 시작하면서 전체적 흐름이 왔다갔다함. 마치 열명 정도의 작가가 돌아가며 쓰는듯한 느낌 2. 대사가 어색함 ~느냐, ~했소 등 고어를 사용함으로써 글의 배경인 현대사회와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전혀 맞지 않음 3. 능력자 인플레이션 극중 초반에 주인공이 기연으로 얻은 능력이 훌륭한 격투기 선수를 마음대로 가지고 놀고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것으로 설정됨. 주먹 한방에 쇠사슬로 매달린 샌드백을 십미터 이상 날리는 괴력을 가졌음. 회피능력도 초일류급. 하지만막상 적을 만나면 맥을 못춤. 어거지성 절정..
2016.01.19 07:29
파울라너    
글 자체는 꽤 괜찮은데 한포인트씩 어색한 부분들이 집중력을 떨어뜨림. 예를들면 대학생이 3d를 의미조차 모른다던지 개미가 음식물 쓰레기를 좋아하나? 음식물 편의점에도 많이 나오는데? 뭐 그런것들이 많이 보일수록 읽기가 힘든 타입이라 좀 안타까움.
2016.01.21 19:18
파울라너    
내가 말한 의미도 모른단건 단어까지 기억할 정도면서 저 상황의 흐름에서 입체영화냐고 묻는 것 자체가 너무 어색하다는 말임. 굳이 왜 저런식으로 장면을 풀어나가는지 이해가안된다는 말
2016.01.21 19:21
성질다람쥐    
끝까지 읽었습니다. 대체적으로 볼만은 하지만... 가끔 설정이 너무 어거지스럽다? 정도랄까요... 작가님도 한번 퇴고를 해보시면 어느 정도 느끼시리라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흐름을 이어가기 위한 조치라고 생각은 되지만 중간중간 그런 흐름을 자연스럽게 타지 못하고 이어가려니 어거지 설정이 되어버린 부분들이 좀 많이 눈에 보이네요 그것만 아니면 정말 괜찮은 소설인데 ㅠㅠ 위기설정부분도 아쉽고 결말을 억지로 내려한듯한 느낌도 들고... 작가님이 무슨 이유나 사연이 있으신것 같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란 생각에 적어봅니다.
2016.08.09 20:51
사랑의계절    
장웅 장훈 같은분인가요? 더샤도우에서 본글이 여기에도 복붙한거처럼 있네요 막노동와서 힘쓰고 반장이 부르고 바로오라고 하는장면..
2017.08.15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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