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조선을 미적분하다

1화

2022.03.07 조회 1,225 추천 14


 1화 프롤로그
 
 
 난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무사, 무난, 무탈, 그리고 가늘고 길게.
 내 마인드가 항상 ‘적절히’여서인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대부분 ‘적절히’ 원만했다.
 
 학창 시절에는 조용해서 존재감이 없었다.
 늘 적절히 학업에 충실했고, 적절히 성적도 나와 주었다.
 그 성적이면 최상위권 대학은 힘들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명문대에 간신히 진학할 수 있을 정도는 됐다.
 하지만 가늘고 길게 살 건데 간판이 무슨 소용 있겠나 싶어, 집 가까운 지방 사범대에 입학했다.
 그것도 순수혈통 이과라는 이유로 수학교육과에 말이다.
 
 대학 시절에도 눈에 띄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았다.
 연애도 하지 않았고,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적절히 학업에만 충실했고, 그 덕분인지 임용고사를 한 번에 패스했다.
 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입영을 미루고 임용고사를 준비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 후반기 학사 장교를 다녀왔다.
 
 요즘같이 취업이 힘든 시기에 내 이야기를 하면서 ‘평범한 삶’이라고 운운한다면, 욕을 몇 바가지는 얻어먹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 저 정도는 평범했다.
 임용 후에 수업도 적절히 했고, 학생 지도도 적절히 했다.
 크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 딱 적당하게.
 그리고 교무실 내 옆자리의 영어 선생과 눈이 맞아 결혼했고, 아들도 한 명 낳았다.
 
 그러던 중!
 나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남들이 들으면 그게 무슨 특별한 사건이냐고 비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왕 이야기를 꺼낸 김에 다 하련다.
 
 10년 전쯤이었나?
 과학고에서 근무할 때였다.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과학고는 이 과목들만큼은 보통의 학교에서 3년 동안 배울 내용을 2년 안에 끝마쳐야 한다. 아니, 마지막 학기는 입시 때문에 힘드니까 정확히는 1년 반 만에 끝내야 한다.
 학생들은 늘 수면 시간이 부족했다.
 보통의 학생이 3년 동안 공부해도 힘든 걸 1년 반 만에 해결해야 하니 당연했다.
 학생들은 언제나 수업 시간 내내 멍한 눈을 한 채,
 남들은 알아보지도 못할 수식을 연습장에 수도 없이 써 댔다.
 내가 아무리 강한 이공계 전사들을 만들어 내는 조련사지만, 학생들이 측은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만 워낙 말주변이 없는 내가 수업을 재미있게 할 리 없었다.
 그러니 듣는 학생들은 그러잖아도 잠이 부족한데 얼마나 고역이겠는가.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수업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수학 선생이었지만, 평소 역사책과 역사 소설을 많이 본다.
 그리하여 꼴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준답시고 역사 이야기를 늘어놓은 적이 있었다.
 물론 주의 깊게 듣는 녀석들은 없었지만.
 그러다 한 학생이 아주 진지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어. 뭔데?”
 “고려가 먼저입니까? 아니면 조선이 먼저입니까?”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 모르고 있더라.
 
 이 녀석의 이름은 ‘김병진’.
 나중에 서울대에 입학했다.
 당시에 이과는 수능에서도 국사 과목을 치르지 않았다.
 입시 위주의 교육 체계에서 도움이 되는 과목만 공부시킨다는 사실이 슬프긴 하지만, 이과라면 역사 공부를 할 필요가 없었다.
 더군다나 과학고는 이공계 과목들로 채워진 입시 제도가 따로 있었다.
 그러니 더더욱 말할 필요도 없었다.
 ‘국사’ 교과 시간이 편성되어 있긴 했지만, 사실상 자습 시간 내지 수면 시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더라도 김병진이 어떻게 과학고에 들어왔고,
 어떻게 중학교 때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험 볼 때만 기계적으로 외우고, 시험이 끝나면 완전히 포맷되는 것이 무슨 교육이겠는가.
 이런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이공계를 이끌어 간다고 생각하니 겁도 났다.
 그날로 탄원서를 제출했다.
 수능에서 이과도 역사를 보게 해 달라고.
 
 난 그전에도 가끔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우리나라 역사 인물 중 존경하는 분이 누구니?”
 돌아올 대답이야 어차피 뻔했다.
 
 “안중근이요.”
 “세종대왕이요.”
 “이순신이요.”
 장담컨대 학생들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이름은 열을 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난 다시 묻는다.
 
 “그분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아니?”
 역시 이 질문의 대답도 정해져 있다.
 
 “일본 놈 헤드샷이요.”
 “한글이요.”
 “나라를 지켰어요.”
 한 사람의 인생이 두세 단어로 표현된다니.
 어쩌면 임팩트 있는 한 방이 그 사람의 인생 전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가장 많이 나오는 인물은 단연 이순신이다.
 그럼 난 다시 묻는다.
 
 “이순신의 호가 뭔지 아니?”
 이 질문에도 반 정도는 이렇게 대답한다.
 
 “충무공이요.”
 어차피 호, 자 이런 걸 알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럼 난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모를 수도 있으니까.
 
 “충무공은 시호야. 시호는 죽은 다음에 받는 거지. 임진왜란 후에 충무공이란 시호를 받은 분은 두 분이셨어. 이순신과 김시민. 그러면 이순신 제독께서 살아생전 불렸던 호가 무엇일까? 아는 사람 있니?”
 
 가장 인상 깊었던 대답은 역시 15년 전쯤의 대답이었다.
 
 “불멸이요.”
 
 ‘불멸의 이순신.’
 한때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되었던 인기 있는 드라마 제목이었다.
 아무튼 그 뒤부터 수학 선생인 내가 오지랖 떨어 가며 수업 시간에 시간 날 때마다 역사 인물 이야기를 해 줬던 것 같다.
 
 * * *
 
 아······.
 그러던 어느 날 훌쩍 나이를 먹어 어느덧 20대 후반에 접어든 김병진이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저 기억하시죠?”
 이 녀석은 국방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다가 최근에 그만두었단다.
 사람은 확실히 알게 모르게 학창 시절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긴 하나 보다.
 내가 그날, 아무리 이공계여도 역사는 공부해야 된다고 말했던 것을 두고두고 기억한 모양이다.
 그 뒤로 대학에 가서 역사 공부를 많이 했고, 이번에 연구원을 그만두면서 대학원에 진학한단다.
 그것도 사학과에.
 “너의 선택에 후회 없겠니?”
 “그럼요.”
 
 오랜만에 만나서 그간의 이야기도 할 겸, 둘이 술을 한잔했다.
 선생과 제자가 함께 소주를 마실 때의 기분이 어떤지 아는가?
 한마디로 묘하다.
 어쨌든 김병진을 우리 집에서 재우기로 했고,
 사거리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손을 흔들었다.
 거기까지는 기억나는데······.
 
 눈을 떠 보니 난 이상한 곳에 와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무슨 조선 시대 군복을 입은 자가 서 있었다.
 
 “결정해라. 따라가겠느냐?”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내 삶에서 ‘평범’은 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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