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삼국지 : 조조의 아들을 죽이다

낙마하다

2022.04.06 조회 23,432 추천 327


 이제 막 동이 트는 어스름한 하늘.
  동그란 머리가 불쑥 튀어나와 내 시야를 가린다.
  아니, 머리가 아니라 머리들이다.
 
  “대장! 괜찮으시오?”
  “이놈아! 여기가 무위(武威, 량주 속현) 촌구석도 아니고 대장은 무슨 대장이야! 아직도 꼬맹이들 소꿉놀이를 하고 있어!”
  “암, 선위후(宣威侯)에 봉해지신 게 언젠데. 아니면 건충장군(建忠將軍)이라고 부르던가! 하지만···, 나도 대장이 더 입에 붙긴 해.”
  “그래! 제기! 난 그렇게 부르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단 말이야. 우리끼린데 대장이라고 부르면 좀 어때?”
  “이 미친놈들! 선위후가 낙마했으면 냉큼 가서 부축부터 할 것이지. 뭘 그렇게 떠들어대고만 있어?”
 
  그러자 처음 외친 사내가 심드렁한 얼굴로 귀를 후볐다.
 
  “살짝 떨어진 거야. 이 푹신한 풀밭에서 설마 죽기라도 했으려고.”
  “그건 그래. 선위후의 기마 솜씨는 우리보다도 나은걸?”
  “그럼 왜 못 일어나고 계시는데?”
  “낸들 아나. 저놈 모가지 벤 거로는 분이 안 풀리신 모양이지.”
  “그럼 더 말이 안 되는데? 여기서 꾸물거리면 정작 그 개자식을 놓치게 될 판인데.”
 
  마치 사극 촬영이라도 하는 것처럼 단단한 갑옷을 걸친 자들.
  그러나 낯선 그 모습이 반대로 또 친숙하기도 하다.
  무척 역설적인 상황.
  그러나 당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지금의 삶을 최후까지 경험한 후였기 때문이다.
 
  “설마···, 낙마한 게 쪽팔려서 그러신 건가?”
 
  나를 둥글게 둘러싼 수하들 사이로 은밀한 수긍이 퍼져 나간다.
  휴, 조금만 더 이러고 있다가는 정말 부끄러워서 못 일어나는 줄 알겠다.
  그런데, 저런 수군거림이 날 더 쪽팔리게 한다는 것을 저놈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이것들아. 구경났냐? 수장이 쓰러졌으면 냉큼 와서 일으켜 세울 것이지, 그렇게 구경만 하고 있다가 적들이 반격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등 뒤의 푹신한 감촉을 느끼며 내가 그리 말하자, 녀석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거봐. 멀쩡한 거 맞잖아.”
  “우리 대장 낯이 언제부터 저렇게 두꺼워졌지?”
  “대장 아니라고! 선위후라고!”
  “그거나, 저거나.”
  “야야, 대장 얼굴 붉어진다. 쪽팔려 죽기 전에 얼른 일으켜 세워주자.”
 
  녀석들은 이 상황을 조금 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나서 날 일으켜 세웠다.
  그래도 일부는 붉어진 내 얼굴을 보고 화가 난 것이라 오해하여 변명을 늘어놨다.
  ···사실 쪽팔린 거 맞는데.
 
  “대장이 그 후레자식의 자식놈을 죽이고 나니까 다 도망쳤잖습니까? 거기에 치중도 진작 사라졌는데, 적들도 이미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반격할 정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문득 수하가 가리키는 말 안장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이제 갓 성년이 된 듯한 앳된 청년의 머리가 잘린 채로, 선홍색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이번에도 딱 이때로군. 전생에는 왜 하필 저 조앙을 죽인 다음에 기억을 각성한 거냐고 원망도 많이 했는데.’
 
  나는 잘린 머리통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그러나 수하들은 여전히 저들끼리 떠들기 바빴다.
 
  “맞소, 대장. 저번에도 저놈들, 대장한테 걸려서 작살이 났잖소?”
  “유표가 원군만 제때 보내줬어도 항복 따위는 생각도 안 했을 텐데···. 이참에 제대로 혼쭐을 내서 다시는 얼씬도 못 하게 합시다!”
  “대장 아니라고···. 호칭 좀 제대로 하라고···.”
 
  이들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우리는 곧 조조에게 개박살 날 거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미 같은 경험을 한 번 해봤기 때문이다.
 
  나, 장수는 지금과 같이 전생에도 조조를 쫓다 먼 미래의 내 기억을 각성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충격을 받아 말 위에서 떨어졌고, 당연히도 큰 혼란에 빠진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다.
  지난번은 분명 그러했다.
 
  '그리고 어설픈 선택으로 모든 걸 망쳐버렸지.'
 
  하지만 이미 한 차례 경험해 보았기 때문일까?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주변이 또렷이 마음에 담긴다.
 
  건안 2년(197년) 봄.
  그러나 덕분에 나는, 형제 같은 수하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낙마한 부끄러움을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24)

쓰랄    
오 장수가 주인공
2022.04.06 14:11
묘한인연    
부르던가//부르든가
2022.04.07 07:48
kbo꺼져    
와 진짜 유봉전 던져두시고 얼마를 기다리게 하신건지 ㅠㅠ 유봉전만 몇번을 정주행한건지 모르겠네요 ㅠㅠ 너무 반갑습니다 작가님. 건필 기원합니다.
2022.04.09 00:55
엘콥디노    
유봉전 작가님이시구나!! 와.... 유봉전 진짜 재밌게 봤었는데 이번 작품도 잘부탁드립니다
2022.04.09 19:03
양마루    
건필
2022.04.12 07:35
가디윈디    
제목 보고 이게 뭐야했다가 작가 이름 보고 바로 들어왔습니다. 전작들 잘 봐서 이번작도 기대됩니다!
2022.04.13 10:37
장량자방    
유봉전 재밌게 봤습니다. 주인공이 장수인가..
2022.04.14 17:21
김영한    
55555
2022.04.16 08:52
대리왕자    
믿고보는 은수랑
2022.04.16 09:27
noway    
내가 문피아에 쓴돈 50만원정도 되고 삼국지 매니아인데 이건 진짜 똥같은 글이라서... 보지마세요.
2022.05.10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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