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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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022.05.11 조회 51,853 추천 1,431


 1화 – 헤어졌습니다.
 
 
 
 “헤어지자.”
 “······뭐?”
 “너한테 도저히 비전이 안 보여. 언제까지 네 뒤치다꺼리만 할 수 없잖아. 안 그래?”
 
 그건 미련만 남았던 사랑이었다.
 성공에 대한 집착, 그리고 나아지지 않았던 현실의 말로였다.
 차갑게 꽂히는 말이 비수가 되어 심장을 찔렀다.
 눈앞에 있는 여자는 한눈에 봐도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
 
 반면, 반대쪽에 앉아 있는 남자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모나지 않은 외모.
 브랜드를 알아볼 수 없는 무지 티, 청바지.
 객관적으로 봐도 여자보다 가진 것 없어 보이는 남자였다.
 
 “나, 그래도 많이 도와줬어. 내 친구들이 명품백 같은 거 받아도 내가 사면 된다고 생각했어. 근데 이제 그런 소리 듣는 것도 지쳐.”
 “······.”
 “아무리 생각해도 너한테 쏟는 시간이 아까워. 그래서 말하려고 부른 거야.”
 
 크리스마스.
 누군가는 서로의 행복을 속삭이는 시간이고, 누군가는 새로운 인연을 찾아가는 날.
 분명 좋은 일만 가득할 것이라는 말과 달리 남자의 크리스마스는 최악이었다.
 5년.
 그녀의 뒷바라지를 하며 취직을 지켜보고, 공부에 돌입했던 시기였다.
 
 좁아진 취업 시장, 더 높은 곳을 향한 열망, 그녀에게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심.
 그 모든 것이 맞물려 시기가 너무 늘어졌다.
 들어가고 싶은 곳은 진입장벽이 너무도 높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사람 대우를 안 해주는 곳이었다.
 
 “······그래,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 멀리 봐야지.”
 “잘 생각했어. 나 약속 있어서, 가 볼게.”
 
 드르륵, 남자의 대답도 듣지 않고 떠나가는 여자.
 남자, 동하는 깊은 한숨과 함께 멍하니 테이블을 바라봤다.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컵엔 송골송골, 차가운 물방울들이 맻혀 흘렀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각오하고 있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인터넷에서 누군가가 떠들어댔던 사연의 주인공이 자신이어서 씁쓸했을 뿐.
 
 동하는 그랬다.
 천성이 모나지 않고 침착했다.
 어떤 일이 닥쳐와도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았다.
 남들은 다 열광하는 스포츠에도 관심이 없을 정도였으니.
 
 “집에 가서 공부나 하자.”
 
 서른.
 남자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하는 시기.
 누가 ‘요즘엔 조금 늦게 취업해도 괜찮다’, ‘서른이면 한창이다’ 같은 소리를 지껄였는지 몰라도 현실은 냉혹했다.
 스타트업, 코인, 사업······.
 눈이 뜨인 이들은 젊은 나이에 동하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큰 부를 쌓아 올렸으니.
 
 기준이 부쩍 높아졌다.
 MZ세대라는 말은 곧 고난과 역경의 세대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결혼, 취업, 심지어는 인간의 기본적인 의식주의 수준까지 포기하는 사람마저 나오는 시대다.
 그 틈바구니에 ‘사람답게 살자’라는 목표 하나로 공부하는 동하는 올해로 취준생 n년 차.
 
 ‘눈도 내리네.’
 
 집까지 돌아가는 길은 코가 벌겋게 시릴 만큼 추웠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자동차의 엔진음, 버스 안에서의 덜컥거림, 벨 소리, 그 모든 것이 먹먹하게만 느껴졌다.
 세상은 이토록 다양한 소리로 가득 차 있는데, 나를 위한 소리는 하나도 없는 것이 참······.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눈을 감고 이어폰을 꼈다.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유일하게 그의 마음을 뒤흔드는 요소였다.
 
 [다음 정류장은······.]
 
 그렇게 노래를 들으며 몇 분.
 이어폰 사이로 들어오는 버스 안내에 벨을 눌렀다.
 시린 입김이 후욱 뿜어져 나오는 한겨울의 날씨.
 
 동하는 헤어짐을 안고, 자신의 거처인 반지하로 돌아갔다.
 
 * * *
 
 잠이 들었다.
 기분이 들쑥날쑥하지 않는다고 하여 의욕이 항상 넘치는 건 아니었다.
 잘 들어오지 않는 문제집을 몇 번이고 읽다, 잠시 눈을 감은 것이 바로 잠으로 이어진 모양.
 꿈속, 자신은 다른 세계에 있었다.
 
 흐르는 공기가 맑았고 보이는 광경이 아름다웠다.
 산, 바다, 나무와 꽃, 그곳에 사는 동식물이 판타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생김새를 갖췄다.
 그래서, 꿈속에 있는 동안 그렇게 여행을 다녔을까.
 들판을 걷고 시장을 구경하며 했던 건, 그저 떠오르는 대로 노래를 부른 것이었다.
 
 [하하! 이거 또 오셨구만!]
 [다들 앉아요. 오늘 하루는 어떠셨나요?]
 [뭐, 별 거 있나. 똑같이 힘들었지!]
 
 와하하 웃는 사람들.
 그 모습을 보며 미소짓는 자신.
 기타를 튕기며 노래하는 자신은 분명, 웃고 있었다.
 꿈이지만 선명했다.
 분명 힘들고 지쳤을 사람들이 걱정을 내려놓고 활짝 웃는 모습.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까딱까딱, 고개를 흔드는 모습.
 슬픈 노래엔 울음을, 기쁜 노래엔 웃음을 흘리는 모습.
 
 “······잠 들었나.”
 
 소매가 축축해져 있었다.
 주르륵 흐른 눈물이 어느새 소매를 적셨던 걸까.
 이 옷도 이틀이나 입었으니 슬슬 빨 때가 됐지.
 동하는 옷을 벗어 빨래통에 넣어버리곤 새 옷을 꺼냈다.
 
 무척 생생한 꿈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아직도 감각이 남아 있었다.
 수염이 덥수룩한 상회의 아저씨.
 채소를 팔아 못난 아이들을 먹여 살리는 아줌마.
 
 다 같이 불렀던 노랫소리.
 그 가락과 멜로디, 웃음소리와 부족하지만 평안한 그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꿈에 대해 생각하며 시간을 보자, 새벽 2시.
 
 ‘벌써 시간이······.’
 
 내일은 스터디가 있는 날이었다.
 그래, 자야지.
 시간은 그의 상처를 보듬어줄 생각조차 없는 듯, 속절없이 흘렀다.
 눈을 감자, 이상하게도 꿈은 계속 이어졌다.
 
 마치 지금이 아니면 보여줄 수 없다는 듯이.
 그는 계속해서 노래했고, 정처 없이 떠돌았다.
 수많은 사람이, 짐승이, 심지어는 영혼까지 그의 노래를 들었다.
 그래, 동하 자신은 분명, 음유시인이었다.
 
 * * *
 
 노량진의 어딘가.
 동하는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스터디를 위해 카페에 들렀다.
 스터디라고 해 봤자 별거 없었다.
 말하는 연습, 기출 문제에 대한 정보, 그밖에 다양한 정보 공유의 시간이었다.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동하는 세상이 변한 것을 느꼈다.
 오늘 아침부터 일어났던 신비한 일.
 들려오는 노래가, 소음이, 말소리가 모두 음표로 치환되어 머릿속에 박힌다.
 이게, 말이 되는 걸까.
 
 “동하 오빠 오셨네요.”
 “반가워요.”
 “어, 왔어? 빨리 와. 너 기다렸다.”
 
 스터디 그룹원들은 모나지 않았던 동하에게 퍽 친절했다.
 여자친구도 있겠다, 남자들의 공적도 되지 않았다.
 스터디를 진행하는 동안, 그는 밀려드는 공허함을 참느라 부단히 애써야만 했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오늘 불금인데, 맥주 한잔 어때요? 네?”
 “찬성! 역시 민아가 뭘 좀 아네!”
 
 그저 그런, 아무런 의의도 없는 시간이었다.
 분명 저번 주까지만 해도 이 공간, 이 사람, 이 시간들이 분명 가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의미 없는 단어. 잡담. 집중하지 못한 분위기. 그저 시간만 보낼 뿐인, 건조한 시선. 음심. 목표가 변질되어 다르게 흘러가는 마음······.
 분명 같은 목표를 향하기 위해 모인 이들인데, 이미 마음은 중구난방이었다.
 꿈에서 본, 순수하게 목표를 향해 꾸준히 달려가고 있던 이들과는 전혀 달랐다.
 
 ‘여긴······그저 흘러갈 뿐인 모임이었구나. 어쩌면 유라도 그런 인연이었을지도.’
 
 꿈.
 그것은 예지몽처럼 갑작스럽게 다가왔으며, 전생의 기억처럼 생생했다.
 별이 쏟아지던 밤, 영혼을 향해 노래를 불렀던 일.
 흐르는 계곡물에 맞춰 기타를 연주하니, 물고기들이 춤췄던 일.
 상단의 마차에서 흥얼거리면, 모두가 함께 입 맞춰 따라 불렀던 일.
 
 모두가 의미 있는 일들이었다.
 기억이라는 석판에 새겨질 만큼, 소소하지만 뜻깊은.
 하지만 여기서의 대화와 공부는, 기억에 남을 것 같지 않았다.
 점점 희미해지다, 먼지처럼 훅 날아가 버리겠지.
 
 “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네?”
 “갑자기? 분위기 좋은데 왜 초치냐. 너 헤어졌어?”
 “네. 어제요.”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말을 꺼낸 남자가 입을 벌리고 어쩔 줄 몰라 한다.
 분위기를 깨서 미안하긴 하지만, 동하는 해야 할 일이라고 느꼈다.
 그냥 알 수 있었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
 
 “분위기 깨서 죄송합니다. 이제 혼자 공부해야 할 것 같아서요.”
 “어, 어어······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맞아, 혼자 공부하는 게 나을 수도 있지. 그간 고생했어.”
 “헤어진 건······힘내요, 오빠.”
 
 그들 역시 적극적으로 붙잡지 않았다.
 이건 비단 이들의 잘못만은 아닐 거다.
 사회가, 시대가, 다양하게 발생한 사건들이 이들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동하는 메마른 웃음을 짓고 몸을 돌렸다.
 
 그들과는 1년을 함께 했다.
 길다면 긴 시간.
 뒤에서 무어라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렴.
 꿈에서 항상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내 앞길 막을 자 아무도 없으니.]
 [영웅의 길이 아니어도 좋다. 성공의 길이 아니어도 좋다.]
 [나는, 내 영혼이 이끄는 대로 따라갈 뿐이니.]
 [걱정하지 마라, 슬퍼하지 마라.]
 [나의 끝은, 소박하더라도 행복할지니.]
 [그저 난 나의 길을 갈 뿐이다.]
 
 꿈에서 불렀던 노래처럼, 동하 역시 영혼의 이끌림을 받아 나아갈 것이다.
 
 * * *
 
 정처없이 걸었다.
 노량진의 노상 아주머니들의 얼굴을 보며 걸었다.
 삶에, 취업에, 또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을 보며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짠내가 가득한 수산시장을 지나게 되었다.
 
 비릿한 향이 코를 푹푹 찔렀다.
 허나 불쾌하진 않았다.
 꿈에서도 바다 내음은 실컷 맡아봤으니.
 이 냄새 안에 숨겨진 희로애락을 안다.
 그렇기에 감히 헐뜯을 수 없는 삶과 애환이 묻어있음을 안다.
 
 ‘그밖에도······.’
 
 먹고 살기 위해 목청껏 소리치는 아저씨의 발성이 뛰어나다는 걸 알았다.
 턱턱 생선을 손질하는 아주머니의 정교한 리듬감이 절로 귀를 간질였다.
 오랜 시간 드럼을 치고, 오랜 시간 노래한 것처럼 뛰어나고 탁월하다.
 
 동하는 자신의 변화를 체감했고 인지했다.
 그걸 받아들이는 일은 아직 쉽지 않았지만, 몸에 스며들 듯 새로운 감각에 눈을 뜨는 중이었다.
 급격한 변화였다.
 하지만 싫지 않았다.
 
 “오랜만에 거기나 가 볼까.”
 
 학창시절, 노래에 푹 빠져있었던 때가 있었다.
 별 건 아니었고, 그냥 야자시간에 친구들과 노래방을 들락거리는 정도.
 그 기간이 3년이었다.
 인터넷으로 동영상 강의도 틈틈이 찾아보고, 집에서 노래를 부르다 가족들에게 혼나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대한민국 사람 중 노래방을 싫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동하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취미로 노래를 부르는, 전문적인 훈련은 하나도 받지 않은 일반인.
 음정 박자는 맞출 줄 알지만, 감정, 호흡, 발성, 그 외의 흉성이니 두성이니 하는 테크닉은 하나도 알지 못했다.
 
 ‘지금은 어떨까.’
 
 궁금했다.
 꿈속의 지식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어떻게 하면 목을 다치게 하지 않는지.
 소리는 어떻게 내는지.
 구경꾼들의 눈을 마주치며 그들의 호응을 끌어내는 방법······.
 
 지갑을 살펴본 동하는 근처 건물로 들어갔다.
 [코인노래방]
 노량진에서 현금은 필수.
 취업 준비를 위해 끊었던 노래방에 들어가는 동하였다.

작가의 말

공모전으로 돌아왔습니다.

잔잔한 일상물과 후회물, 주인공의 성장기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댓글(33)

조단9    
단가->간다 가 아닐까... 즐겁게 써주시구요. ^^
2022.05.12 07:37
우림™    
감사합니다.
2022.05.12 12:35
애오라지    
노래방 싫어해서 여태 두세번 정도 밖에 안감
2022.05.12 23:35
우림™    
저는 부르는 걸 좋아해서 많이 가봤더랬죠. 싫어하는 사람은 가서도 앉아만 있어서..미안했던 경험이 있네요.
2022.05.13 00:46
카리엘라    
잘보고가요
2022.05.13 09:06
난의향기    
잘 보고 갑니다.
2022.05.13 09:48
타나토스죠    
잘듣고갑니다
2022.05.13 13:53
풍뢰전사    
그나마 다른 소설들 처럼 막장 쓰레기여자는 아니라 다행이네요. 건필하세요
2022.05.14 02:51
kanemochi    
건필하세요
2022.05.15 06:29
장금    
잘봤어요
2022.05.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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