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도 살고 싶었다
“이야! 전망 좋네.”
성을 공격하기 위한 대륙연합군 10만명이 모여 있는 장관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도망가.”
“빨리 튀어.”
성 안 연병장에서는 도망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에바, 정신 차려! 아직 미친 달 안 떴다.”
연병장에서 서로 검을 맞대며 난리치는 남녀도 있었다.
‘에효 지랄났다. 왜 또 흥분해서 저 난리야.’
나는 절룩거리는 발걸음으로 느릿하게 연병장을 향해 다가갔다.
여자를 막아서고 있는 남자가 나를 보고는 반색하며 소리쳤다.
“어! 우진··· 빨리와. 나 힘들어.”
사내와는 다르게 여인은 인상을 찡그리며, 아무말 없이 사내를 공격했다.
“간다··· 가. 잘 잡고 있기나 해.”
“알았으니까. 빨리.”
어차피 조금 지나면 대륙연합군의 발길에 짓밟힐 게 뻔한데 조금 일찍 간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싶다만.
그래도 에바가 미쳐있는 꼴을 더 보고 싶지는 않아 기존보다 더욱 펄쩍 뛰며 싸우는 근처로 뛰어갔다.
“셋 하면 잡는거다. 하나··· 둘···.”
“셋! 잡았어.”
사내가 그녀의 팔을 잡고 움직임을 봉쇄하자 나 역시 손을 뻗었다.
내 손이 도착한 곳은 그녀의 이마.
내 손이 그녀의 이마에 닿은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 이지가 어리기 시작했다.
“우진?”
“그래. 나야.”
그녀가 정신을 차렸다.
***
내 이름은 연우진.
나는 원래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들보다 빠르게 후다닥 다녀오겠다고 생각하고 훈련소에 입대하기 위해 논산으로 가는 찰나.
이상한 곳으로 빨려 들어왔다.
“이놈의 호기심만 아니었어도······.”
싱크홀인 줄만 알았던 그 구멍이 나를 삼키고는 이세계로 던져버렸다.
거참, 그리고 왜 하필 나한테 이런 능력이 생긴 거냐고.
한국에서는 이런 능력 같은 건 없었는데······.
어릴 적에는 배탈이 난 아이들을 어른들이 ‘내 손이 약손이다’ 하며 배를 문질러주었다.
그럴 때면 플라시보 효과 때문인지 진짜로 괜찮아지곤 했지.
그런데, 이세계에서는 내 손이 진짜 약손이 되었다.
그것도 미친놈들의 머리를 잠시 동안 맑게 해주는 약손.
다른데는 하등 쓸모 없는 딱 하나에만 쓰이는 유니크한 능력이다.
“처음엔 좋은 줄 알았는데. 에효······.”
이 능력이 대륙에서는 이렇게 큰 위협을 끼치는 능력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순간 에바가 정신을 차리고 나를 찾아왔다.
“우진. 여기 있었네.”
“정신 차렸나보네. 이제 좀 괜찮아?”
“그래. 고맙다.”
내 옆으로 훌쩍 뛰어와 말을 건 에바 데일.
미친 소드마스터들 중 한명이자 광혈단에서 나와 가장 친한 여자다.
에바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갑자기 왜 발병한거야.”
“미안. 스펜서 이 개새끼가 갑자기 짜증나게 해서.”
“안 죽은게 다행이네.”
“후후. 그놈 주제에 나를 상대할 수나 있겠어? 물론 기억은 안나지만.”
에바 데일이 내 옆에 서서 대륙연합군을 바라보며 이어서 말했다.
“많이도 왔네.”
“그러게. 이제 어떡하지?”
눈 앞에 펼쳐져 있는 대륙 연합군의 모습을 보자 오금이 저려왔다.
“스펜서 개새끼.”
“갑자기?”
이 누님 갑자기 급발진하신다.
“왜 그래? 어디 아파?”
“그냥, 개새끼가 싸울 생각도 안하고 그냥 튀었잖아.”
“이미 예상했잖아.”
미친 소드마스터 집단인 광혈단의 수장 스펜서.
그는 광혈단을 소탕하기 위해 대륙 연합군이 결성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도망갈 준비를 남 모르게 했다.
“우진아.어차피 다 튀었는데, 우리도 가야되지 않겠어? ”
“글쎄. 어디로 갈까. 이 몸으로.”
에바가 슬픈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그녀가 보는 것이 손목 아래로 잘려진 내 왼손과 아킬레스 건이 잘려나간 내 오른쪽 다리인 것을 알고 있다.
‘마나홀도 작살난지 오래지만.’
마나홀은 겉으로 표시나는 부위는 아니니까.
“내가 먼저 너를 발견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이미 엎질러진 물.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어차피 나는 도망갈 수 없다는 거 알잖아. 저들이 나를 보내줄 리 없으니까.”
“아니지. 어차피 저들중에 네 얼굴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걸.”
“에이··· 그럴리가. 광마들 중에서 배신자가 없으리라고는 할 수 없잖아.”
“어느 놈이 감히 너를 배신해?”
아마 대부분 살려준다고 하면 배신하지 않을까?
미쳐버린 소드마스터들을 대륙에서는 광마라 불렀다.
그런 광마들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의리가 없다는 것이다.
광혈단에 소속된 것도 내 손길의 도움이 필요해서 가입한 것일 뿐.
진심으로 조직을 위한 광마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스펜서도 싸워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도망치려는 거지만.’
그나저나 에바는 왜 도망가지 않고 여기 있는걸까.
“에바는 언제 도망갈거야?”
“나? 나는 도망갈 생각 없는데.”
“애꿎은 목숨 왜 버릴려고 그래.”
“나는 옛날처럼 미칠까봐 걱정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모르게 가슴이 시렸다.
그녀는 처음부터 생에 대한 미련이 별로 없었다.
자신이 미쳐버린 순간 곁에 있던 하나뿐인 동생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 그녀다.
그랬기에 그녀는 삶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그래도, 괜히 여기서 나랑 같이 죽지 말고, 가봐. 마지막으로 동생이 묻힌 곳도 가봐야 하잖아.”
“내 동생은 여기 있는데.”
힘없이 웃는 그녀의 미소를 보자 왠지 모르게 미안했다.
내가 능력을 조절할 수만 있었다면, 그녀를 완치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나는 내 능력을 조절할 생각을 절대 하지 않았다.
능력을 사용한 지 십 년이다.
조금만 노력한다면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조금 더 많은 힘을 내도 미치지 않도록.
좀 더 긴 기간을 광야의 밤에도 미치지 않도록.
그렇게 조절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면, 완치는 불가능하더라도 제정신을 차릴 수 있는 기간은 대폭 늘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걸 스펜서가 알게 되면 좋은 일보다는 안 좋은 일이 더욱 많아질 테니까.
“고마워. 에바.”
“내가 더 고맙지.”
우리는 서로를 보며 미소지었다.
“뭐야? 둘이서 연애라도 하고 있는 거야?”
우리를 보며 또 한 명의 광마가 다가왔다.
“라이언, 너도 있었어?”
“내가 가긴 어디 가겠어. 크크.”
라이언 샤드.
광혈단에서 그나마 나에게 호의적인 또 한 명의 광마.
에바처럼 살가운 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나마 나를 사람처럼 대해준 몇 안 되는 광마중의 하나다.
“다른 사람들은 다 떠났겠지?”
“안 그래도 조금 전에 한 바퀴 휙 둘러봤는데, 없더라.”
“다 스펜서를 따라간 건가?”
“그건 아니고. 스펜서는 자기와 뜻이 맞는 다섯 명과 함께 나갔고, 나머지는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고 떠났지.”
“여기 남아 있는 건 우리 둘뿐이란 거네.”
에바의 말에 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십명의 광마가 겨우 열두명 밖에 안 남았는데, 그마저도 이리 통제가 되지 않다니.’
막상 아무도 이곳에 남으려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성에 남아 있는 인원이라고 해봐야 내 앞에 있는 두명의 광마와 싸울줄 모르는 시종들 뿐이라는 소리다.
‘이 정도 전력이면 하루는 고사하고 한 시간도 못 버티겠네.’
결국, 내 목숨이 한 시간도 남지 않았다는 소리다.
***
대륙연합군 수장 리암 허틀리 대공.
최강의 소드마스터라는 이명을 가진 그가 찰스 겔라이저 황제의 명을 받아서 광혈단을 치기 위해 나섰다.
‘저 노인네 나이가 칠십이 넘었을텐데, 되게 정정하네.’
밖에서 움직이는 기미가 보여 성루밖으로 나가자 리암 허틀러가 소리치고 있는 것이 들렸다.
“간악한 광혈단 광마들은 들으라. 나 리암 허틀리가 위대하신 로날드 제국의 황제이신 찰스 겔라이저 황제의 명을 받들어 오늘 네놈들의 명줄을 끊어주마.”
크게 소리쳤지만,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는 다시 한번 소리쳤다.
“특히 광마를 치료하는 마의광자(魔醫狂者) 연우진. 네놈만은 절대 오늘 지는 해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도 고치고 싶어 고친게 아닌데······.
아니 막말로 진짜로 고친것도 아니다.
그냥 광마들의 앓고 있는 광야병의 진행을 잠시 늦추는 것뿐이다.
물론 이게 대륙에서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게 문제라면 문제다.
대륙의 그 많은 치료사와 신의 가호를 받은 성녀조차 해낼 수 없는 일을······.
오직 나만 할 수 있다.
그렇게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좋은 것 아닌가?
광마는 대륙의 모든 나라에서 골칫덩이다.
박멸한다고 박멸되는 것도 아니고, 계속해서 발생한다.
그런데 광마들을 제어할 수 있는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탐스런 능력일 것이다.
하지만, 이게 오직 나 밖에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한때 나에게도 왕국의 비밀 특사가 왔던 적도 있었다.
“우진님의 능력을 우리 왕국을 위해서 써주신다면, 저희가 탈출에 도움을 드리는 것은 물론 국왕 전하께서 귀족 작위를 수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멸망한 소로스 왕국.
작은 변방의 소국이었던 그곳은 나를 영입해서 광마들을 이용하여 옛 영화를 되찾으려 했다.
솔직히 솔깃한 제안이었다.
이곳에서 노예처럼 도구로 지내느니 이왕이면 귀족처럼 떵떵거리며 살면 좋은 거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제국의 첩보에 들어갔고, 제국에서는 다른 왕국과 힘을 합해 소로스 왕국을 멸망시켰다.
그리고는 어느 왕국도 나를 독점하지 않기로 서로 협정을 맺었다.
한마디로 어느 국가도 광마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나를 죽이겠다고 합의를 본 것이다.
그 결과가 눈 앞에 있는 대륙 연합군이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며 밖을 지켜보고 있는 내 옆으로 온 에바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말했다.
“우진. 어디 가보고 싶은 곳은 없어?”
“가보고 싶은 곳? 내가 어딜 다녀봤어야지.”
나는 이세계에 온 이후의 시간을 대부분 이 성에서 지냈다.
몸도 좋지 않았지만, 스펜서가 성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 군데 가고 싶은데라면 있긴 한데.”
내 말에 두 사람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내 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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