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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잎클로버 할머니

2022.05.11 조회 14,474 추천 498


 “아우, 고마워, 총각. 정말 고마워. 자네가 내 첫 손님이야.”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연신 고개를 숙이셨다.
 왜 그랬을까?
 지하철 출구 옆에 쭈그리고 앉아 상품 가치 하나 없는 물건을 팔고 있는 할머니가 안쓰러워서?
 그렇게 고귀했으면 할머니께 부끄럽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아버지 유품에서 나온 오만원권을 길바닥에 버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거 다 줄 테니까. 여기 있는 행운들 총각이 다 가져가.”
 
 할머니는 작은 탁자 위에 있는 네잎클로버들을 가리켰다.
 
 “아니에요. 안 주셔도 돼요.”
 “예끼! 그럼 쓰나. 돈을 받았음 나도 뭔가를 줘야지. 이래 보여도 오늘 아침에 뒷산에서 내가 직접 딴 것들이야.”
 
 「행운을 가져다주는 네잎클로버. 1개당 1,000원.」
 왜 온종일 한 개도 팔지 못하셨는지 알 것도 같다.
 코팅도 하지 않은 초록색 이파리들이 이미 시들시들하다.
 
 “그럼···하나만 주세요.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파시고요.”
 “그러면 안 되지. 여기 쓰여있잖아, 1개당 1,000원. 자네가 나한테 오만 원을 줬으니까, 자네가 다 가져가.”
 
 탁자 위에는 놓인 서른 개 정도의 클로버들.
 할머니는 어디서 났는지 작은 화분 하나를 꺼내 클로버들을 담기 시작했다. 화분에는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살아있는지조차 확실치 않은 작은 나무가 꽂혀있다.
 
 “이건 원래는 안 파는 건데, 총각 표정이 너무 안쓰러워서 내가 특별히 주는 거야.”
 “그러시지 않아도···.”
 
 그리고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내 손을 잡아 네잎클로버가 가득 담긴 화분을 들려 주시며 당부하듯이 말씀하셨다.
 
 “자네 소원을 들어줄 나무야.”
 
 소원?
 피식.
 
 난감했다. 마음은 감사했지만, 내 눈에는 그저 쓰레기처럼 보였을 뿐. 받는 순간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이걸 어디에다 버리지?’였다.
 그런데···.
 
 “굴러들어온 복을 차지 말아.”
 
 할머니는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신 것처럼 내 손을 놓지 않고 충고하셨다.
 
 “지금은 보잘것없어 보여도, 잘만 키우면 어떻게 될지 몰라.”
 
 그 말씀 때문이었을까?
 좀 전에 쓰레기처럼 보였던 화분 속 앙상한 나무의 처지가 내 인생처럼 느껴졌다. 작은 화분 속에서 태어나 꽃은커녕 이파리 하나도 제대로 못 피워본 채 버려질 신세.
 안쓰러웠다.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그 나무를 살리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할머니, 이건 어떻게 키워요?”
 
 내 간절한 질문에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는 누런 이를 씨익 드러내며 설명해주시기 시작했다.
 
 “절대 햇빛을 보게 하면은 안 돼.”
 
 
 ---*---
 
 
 일주일 뒤,
 친구가 하는 분식집.
 
 “그 할머니가 햇볕을 보여주지 말라고 그랬다고?”
 “응. 그게 다가 아니야. 물을 주지 말래.”
 “물을 안 주면 뭘 줘? 선인장이야?”
 “몰라. 너무 마른 듯해 보이면 술을 좀 줘보래.”
 “뭐어? 푸하하하. 하하하. 그 할머니 완전 사기꾼이네.”
 
 하나 더 있었다.
 「절대 나무가 주는 것에 집착하지 말 것.」
 
 “그래서? 그랬더니 뭐가 나오디?”
 “아무것도.”
 “크크큭. 내가 보니까 너 당했어.”
 “어차피 그냥 드리려고 했던 돈이었어.”
 “그럼 기분이라도 좋지. 이건 거래라 하면서 똥을 받은 느낌이 들잖아. 안 그래? 크크큭.”
 “근데 네가 왜 그렇게 좋아하냐?”
 “미안. 그러게 왜 내 기분이 좋냐? 크큭. 그런 걸 파는 노인도 그렇고, 그걸 받아온 너도 그렇고.”
 
 아현역 1번 출구에서 신촌로 뒷길을 따라 이대를 향해 쭉 올라가다 보면 언덕 정상쯤에 내 친구 현동이가 하는 떡볶이집이 나온다.
 단독주택 건물 1층에 자리 잡은 ‘현동이네’는 상권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지만, 가격도 저렴하고 맛이 좋아 단골들이 꽤 있다.
 현동이 제수씨와 함께 근 십 년간 노력해서 일궈놓은 가게였다.
 
 “그래서 이 가게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집주인 할아버지가 인수하기로 했어. 별로 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신데, 그래도 나름 잘되는 거라서···. 아마 아들내미 내외한테 맡기시지 않을까 싶네.”
 
 2년 전, 현동 부부는 캐나다 이민을 결심했다.
 처형 식구가 이미 이주해 살고 있다고는 해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잘되는 가게를 팔고 타지에서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건 가장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을 우선으로 생각해 내린 친구의 용단이었다.
 
 “아깝겠네, 이 가게 남에게 주고 가기.”
 “아까워. 왜 옛날 어르신들이 애지중지하던 고물을 팔 때 아깝다고 하셨는지 알겠어. 겨울에 해도 뜨지 않은 추운 새벽에 나와서 김밥 말 때는 정말이지 죽도록 하기 싫었는데···. 막상 남 주려니까 섭섭하네.”
 “섭섭하겠지. 십 년인데.”
 “야, 너 진짜 인수할 맘 없어? 승호하고 얘기해봤어? 네가 직접 안 해도 되고 사람 써서 해도 돼. 너나 승호가 한다고 하면 권리금 안 받을게.”
 “제수씨가 퍽이나 좋아하겠다.”
 “어차피 상권이 아니라서 권리금이 많지 않아. 집주인한테 넘기는 것도 그나마 그분이 제일 많이 쳐줘서 그런 건데, 솔직히 네가 한다고 하면 그 정도는 포기하지 뭐.”
 
 상권에서 떨어져 있다고는 하나 단골이 제법 있어, 이것저것 비용을 제외하고도 월 300만 원 정도의 순수익이 나왔다.
 권리금이 많지 않아도 2, 3천만 원은 충분히 받을 수 있는 가게였다.
 정말 고마운 제안이었지만, 나는 받을 수가 없었다.
 
 “돈 없어.”
 “어디 대출받아볼 데도 없어?”
 
 어디 돈 나올 데가 있으면 좋겠다. 이미 빚이 너무 많다.
 
 “경준이한테 말해보지?”
 “와이프가 음식 장사는 싫다고 했대.”
 “별거 아니지만 나름 공부한 레시피랑 노하우인데. 남 주기 되게 아깝네. 쩝. 아 참- 승호 딸은 요새 좀 어때?”
 
 승호···.
 내 동생 이승호.
 이제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핏줄.
 
 안타깝게도 동생의 딸이 많이 아프다.
 
 
 ---*---
 
 
 율제병원.
 
 “왔어?”
 “나은이는?”
 “엄마하고 잠깐 걸으러 나갔어. 아, 저기 오네.”
 “나은아!”
 “삼촌-!”
 “아주버님 오셨어요?”
 “네, 제수씨 얼굴이 좋아 보이시네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 취직한 동생은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랑 일찍 결혼했다.
 결혼 당시 사돈어른의 반대가 있었지만, 둘은 꿋꿋이 이겨내고 기흥에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열심히 살았다.
 동생 부부는 행복해 보였고 형으로서 해준 거 없는 나는 그런 둘이 너무나 고마웠다.
 
 결혼하고 1년 뒤쯤 나은이가 태어났다.
 눈이 초롱초롱하고 코가 오뚝한 것이 너무 예뻐서 다들 자라면 ‘한미모’ 할 거라 했다.
 
 그런 예쁜 아이가 병에 걸렸다.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
 악성 백혈구가 골수에서 끊임없이 생산되어 몸 안의 정상적인 세포를 공격하는 지독한 병.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율 80%로 상대적으로 다른 암들보다 생존 가능성이 컸지만, 나은이의 경우 발견이 늦어 조혈모세포 이식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증여자를 찾은 거 같아.”
 “진짜?”
 
 흔히 골수이식이라고 많이들 알려진 조혈모세포 이식은 다른 장기이식 수술에 비교해 기증자에게 후유증이 매우 적고 높은 확률로 수여자를 살릴 수 있음에도 매해 많은 백혈병 환자들이 이식수술을 받지 못해 죽는다.
 작년 대한민국 공식 등록기관들에 조혈모세포 기증을 희망한다고 등록한 사람의 수 38만8,887명.
 심장이나 콩팥, 간처럼 기증자의 신체에서 장기를 떼어내는 수술이 아닌 혈액을 채취하는 것이기에 상대적으로 기증을 희망하는 사람이 적지는 않다.
 그런데도 많은 환자가 이식을 받지 못해 죽는 이유는 혈연관계가 아닌 경우 항원 일치 확률이 0.005%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추가 검사가 남기는 했는데, 혈액 샘플이 일치하면 나머지 유전형도 일치할 가능성이 80% 이상이라서 의사 선생님께서 기대해도 좋다고 하시네.”
 “잘됐다! 잘됐어!”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울어본 적 없는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벅차올랐다.
 한창 뛰어놀아야 하는 어린아이가 지난 3년간 항암치료를 받으며 꿋꿋하게 버텨왔다. 몸 안에 시한폭탄을 안고 살면서도 제 부모가 슬퍼할까 봐 아픈 티도 내지 않았다.
 그래왔던 아이에게 하늘에서 한 줄기 희망이 내려온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준다 해도 아깝지 않은 아이였다.
 
 “그래서 수술 날짜는?”
 “아직. 검사도 남았고 나은이 상태 보면서 스케줄 조종도 해야 해서, 빨라도 삼 개월은 걸릴 거 같아.”
 “그래, 서두르지 마. 어떻게 온 기회인데.”
 “응. 근데 두려워. 기증해주시겠다고 한 분이 마음을 바꿀까 봐.”
 
 그런 경우도 있다.
 적합자를 겨우 찾아서 좋아했는데, 기증예정자가 마지막 순간에 공여 의사를 철회하는 바람에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동생은 불안해하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나은이 살 거야.”
 “그렇겠지, 형?”
 “응!”
 
 이름도 없는 4년제 대학 겨우 졸업한 내가 뭘 알겠냐마는 일부러 힘주어 말했다. 못난 형으로 해줄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
 
 
 까톡.
 
 [Web발신] 정환은행 – 이민호 님 1월 3일은 대출만기일입니다. 영업점 방문하셔서 확인 부탁드립니다.
 
 나는 어쩌다 이런 인생을 살게 되었을까?
 못난 부모를 만나서 이렇게 된 걸까?
 아니면 내가 못나서 이렇게 된 걸까?
 세상은 정말 공평한 걸까?
 정말 이게 다 내 잘못인가? 내가 책임져야 하는가?
 
 “형···.”
 
 병원을 떠나기 전 동생이 나를 불렀다.
 동생의 표정에서 이미 무슨 말이 나올지 짐작할 수 있었다.
 
 “혹시 돈 빌릴 데 좀 있을까?”
 
 없다. 정말이지 아무 데도 없다.
 솔직히 지금까지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그렇다고 자식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동생에게 나마저 절망을 줄 수는 없었다.
 
 “알았어.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미안해, 형···.”
 “아니야. 나은이 내 조카잖아.”
 “미안해···.”
 “수술이 삼 개월 뒤라고 했든가?”
 “아마도 그쯤 잡힐 것 같아.”
 “걱정하지 마. 내가 보증금 빼서라도 해줄게.”
 
 뺄 보증금도 없다. 이미 깎아 먹을 만큼 깎아 먹었다.
 
 “미안해. 장인어른도 힘든 상황이라서···.”
 “알았어. 얼마 정도 필요해?”
 “삼천만 원.”
 
 삼천만 원···.
 
 돈에 관한 명언은 많다.
 돈이 많으면 적은 거보다 불행하다느니,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느니···.
 
 그런 말들을 한 사람들은 전부 부자였을 것이다.
 돈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두고 근사한 말로 포장한 것일 뿐.
 
 하지만, 우리 같이 하루 벌어 하루 쓰기도 버거운 사람들은 매일 돈 때문에 운다.
 하루하루가 긴장이다.
 한번 삐끗하면 모든 게 끝이다.
 
 돈 삼천만 원이 없어 사랑하는 조카를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지금, 나는 돈이 간절하다.
 
 *
 
 「“햇빛을 보여주지 말라고요?”
 “보여주지 마.”
 “나무인데요.”
 “이건 그냥 나무가 아니야. 아주 특별한 나무지.”
 “특별한···나무요?”
 “자네한테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뭐야?”
 
 돈. 대답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미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명심해. 햇볕 아래 두지 마. 두면 말라. 그리고 물도 주지 마.”
 “물도요?”
 “주지 마. 화분의 흙이 마른듯해 보이면 술을 좀 따라 줘. 그거면 돼.”
 “술이요?”
 “아무 술이나 다 돼. 소주, 맥주, 양주···. 그러면 이 나무가 자네에게 그걸 줄 거야. 자네에게 가장 필요한 것.”
 “···.”
 “대신 너무 집착하지는 말아. 나무가 주는 것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분명 불행해질 거야.”
 
 알쏭달쏭한 말한 남긴 할머니는 서둘러 탁자를 정리했고, 나는 할머니가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 나무 이름이 뭐예요?”
 
 떠나기 전, 할머니는 다시 한번 나를 향해 누런 이가 보일 정도로 활짝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돈나무.”」

댓글(20)

le*********    
나에게도 나무를 주세요. 기대기대~
2022.05.11 10:11
ku*********    
새연재!! 기대하겠습니다. 작가님. =)
2022.05.11 10:24
alwaysgief    
기다렸다구우!
2022.05.11 10:28
pe******    
Wow!!!
2022.05.11 21:45
보람이맘    
잘보고갑니다
2022.05.17 02:22
에시드    
흠 돈나무는 실존합니다만... 진짜로 돈을 주진 않지만요 ㅋㅋㅋ
2022.05.17 06:42
난의향기    
잘 보고 갑니다.
2022.05.17 21:46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2.05.19 20:11
Go딴지    
잘봤어요
2022.05.19 23:22
단애    
이주에 이주해
2022.05.22 20:24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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