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미친 악인은 재벌이 되련다

고정혁 (1)

2022.05.11 조회 42,555 추천 1,010


 #1
 
 
 손끝부터 차오르는 저릿한 기시감에 숨이 막힌다. 멋대로 당겨지는 미소를 억지로 참았다. 절정을 위해, 차분해 보여야 한다. 본심을 숨겨야 한다. 하지만 심장의 펌프질은 최고조를 향해가고 있었다.
 먹잇감의 표정은 볼만했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애써 당혹감을 감추고 있다.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오 전무 대신 왔습니다.”
 “하하···. 김정민 대표, 자네가 직접 올 줄 몰랐네.”
 
 진동기 의원을 지그시 쳐다봤다. 여유 있는 척하지만, 겁에 질린 동공, 그런 눈을 마주치자 온몸에 광기가 돋으며 엔도르핀이 터져 나왔다.
 오십 넘어서야 깨달았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다. 미쳐버린 세상은 나를 소시오패스 살인광으로 만들었다. 나는 지금 먹잇감 앞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혹시나 오해가 있을 것 같은데···.”
 “고도진 회장님께서 의중을 여쭤보라 하셨습니다.”
 
 의중이라는 말에 진 의원은 곧 건방진 표정을 지었다. 당장이라도 찢어버리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농익은 먹잇감이야말로 내 모든 갈증을 적셔줄 수 있다.
 
 “그래, 이게 다 동성그룹을 위함이지 않겠나? 이제 동성항공이 금진항공을 인수하면 그 규모가 어마어마해질 거 아니야? 독점이라고 독점! 세상에 이런 독점은 없어, 그럼 뭐야? 정부 차원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잖아? 준비해야지? 고 회장도, 자네도 다 이해할 거라 믿네.”
 “맞습니다. 회장님은 다 이해하고 계십니다. 내일 나올 뉴스마저도 말입니다.”
 “내일 나올 뉴스?”
 “동성재단 부정 청탁 및 금품수수 의혹 사건의 참고인으로 수사받아온 진동기 의원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자세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으나, 자살에 무게를 둔다.”
 “뭐···. 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진 의원의 목을 억세게 잡았다. 다시금 겁에 질린 의원의 표정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의원님은 제게! ··· 모든 걸 뒤집어씌우려고 하셨습니다.”
 “크으읍···. 자··· 자네 미쳤나?”
 “날 버리면 안 되죠. 같이 가기로 하신 분이. 집 사드리고, 차 사드리고 몇억을 갖다 바쳤습니다. 근데 이렇게 쉽게 버린다고? 개도 이렇게 버리진 않습니다.”
 “알. 알겠네... 내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네. 자네 회사! 자네 회사에 필요한 승인도 다 해주겠네, 언제까지 고 회장 밑에 있을 건가?”
 “원하는 걸 다 해주신다고요?”
 “그래, 이 양반아! 내가 자네랑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긴데! 왜 내가 자네를 팔겠나?”
 
 의아한 부분이 있긴 했다. 나를 묻어가며 굳이 그룹을 등진다···?
 지금의 비리 건들은 충분히 무마할 여건이 된다. 아무리 썩은 인간이지만 쓸모있는 국회의원이다.
 
 “맞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 함께 했죠.”
 “그... 그래...”
 
 하지만 이미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다. 폭발적인 광기는 머릿속 모세혈관을 쥐어짜고 있다.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얼굴은 붉어졌다. 한계를 넘어선 갈증은 오로지 희열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 희열만이 나를 사람답게 한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두 손에 온 힘을 가했다. 진 의원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며 눈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툭.
 
 수없이 살인한 악인만이 알 수 있는 소리. 아니, 소리라기보단 무형의 느낌에 가깝다. 마치 생명의 끈이 끊어지는 듯한 감각. 이걸 느끼는 순간 치솟던 광기는 절정에 다다르며 서서히 사라진다.
 
 진 의원은 더 이상 숨 쉬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진 진 의원을 한동안 쳐다봤다. 굳이 죽였어야 했을까.
 힘에 부쳐 떨리는 손. 언제까지 이런 삶을 살아야 하지, 이제는 스스로 통제조차 할 수 없다. 머릿속에 자리 잡은 미친 기미는 점점 커지고 있다.
 
 더 이상 살 자신이 없어,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
 
 “들어와라.”
 
 문밖에서 대기하던 배종필 실장과 양복 차림의 남성들이 들어왔다.
 
 “목맨 거로 마무리해.”
 “죽이셨습니까?”
 
 죽였냐고?
 나는 배 실장을 노려봤다. 내 밑에서 지낸 시간이 얼만데, 고작 이런 걸 물어볼 위인이 아니다.
 
 “고 회장님 지시다. 보고도 몰라? 문제 있어?”
 “아닙니다.”
 
 그룹의 총수를 위해 한평생 살아왔다.
 거대한 재력은 누가 되던 짓밟아 버린다. 언론도 경찰도 이미 손아귀 안이다. 없던 죄를 만들어 가정을 파탄시키기도, 끝없는 수치심으로 정신병자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만족스럽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뿐이다.
 
 “마무리하고, 내일은 쉴 거니까, 연락하지 마라.”
 “완도... 가시는 날이시죠?”
 
 나는 배 실장을 다시 쳐다봤다. 되물어볼 놈이 아니다. 의뭉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대꾸 없이 지나쳐 나왔다. 평소와 다르게 예민한 건가.
 감정을 추스르며 휴대폰을 봤다.
 
 [내일 중으로 준비 완료 예정.]
 
 기다리던 문자가 왔다. 30년은 숨죽이고 살았다. 내일이면 세상은 뒤집힐 것이다.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악인의 삶도 끝이다.
 
 
 
 ***
 
 
 
 무영 대교를 건널 때면 곧 완도에 도착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달라지지 않는 정겨운 풍경과 향수.
 1년에 단 하루만을 쉰다. 완도 가는 날, 바로 어머니의 기일이다. 잠시지만 오늘만큼은 괴로운 상념이 희미해진다.
 라디오에선 뉴스가 흘러나왔다.
 
 [...동성그룹은 세계 재계 순위 10위권 내로 진입할 걸로 보입니다. 동성항공과 금진항공의 인수합병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전망입니다. 곧 동성항공은 메가 캐리어로 자리매김하며 항공업계를 재편하는 동시에 새로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함께 별이 되자는 뜻의, 동성(同星)그룹.
 코로나임에도 불구 공식적인 연 매출이 200조가 넘는 괴물 기업이다. 항공길 하나로 뻗어 나오는 사업은, 100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젠 동성그룹 없는 대한민국은 상상할 수 없다.
 
 동성그룹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
 이미 기정사실화된 이야기.
 
 [...동성재단 부정 청탁 및 금품수수 의혹 사건의 참고인으로 수사받아온 진동기 의원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자세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으나, 자살에 무게를···.]
 
 재벌 일가를 위해 온갖 더러운 일을 해 왔다. 그러나 벌써 오십 중반이다. 나이는 먹어가고 몸은 쇠약해져 간다. 더 이상의 준비는 의미가 없어, 이제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려야 해.
 
 위이이잉.
 
 전화? 배종필 실장? 휴대폰이 울렸다. 진 의원 일이 꼬이기라도 한 건가.
 
 - 무슨 일이야?
 - 대표님, 쉬는 날 죄송합니다.
 - 전화하지 말라고...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일순 몰려드는 파공음에 창밖을 쳐다봤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눈 사위가 시커멓게 뒤집혔다. 전신뿐만 아니라 차체가 그대로 공중으로 튀어 나갔다. 차는 그대로 도로 난간에 박혀버렸다.
 
 “크···크으으윽···”
 
 몇 초간 정신을 잃었지만 터진 에어백 덕에 즉사하진 않았다. 깨진 창밖을 바라보자 승합차가 들이받은 것 같다. 사고인가 사주인가, 이런 일을 당하고 남을 인생이다.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깨진 유리 파편은 온몸에 박혀 있고 머리에서 선혈이 끝없이 흐르고 있었다. 깨진 유리창을 통해 겨우 차 밖으로 나왔다.
 
 “살아 계십니다.”
 “......”
 
 목소리? 차 밖으로 기어 나와 도로 양쪽을 쳐다봤다. 검은 승합차 네다섯 대가 도로 양 끝을 막고 서있다. 밝은 날임에도 당당하게 내리는 덩치 여럿.
 상황 파악은 끝났다.
 매년 어머니를 뵈러 가던 완도군,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는 CCTV를 피해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숫자로 봐선 공사나 여러 이유로 도로봉쇄를 했겠어.
 계획된 위장 사고. 그러나 내가 죽지 않으면 소용없다.
 
 “장소를 잘도 골랐어.”
 “대표님에게 배운 겁니다.”
 “누구냐.”
 “누구겠습니까. 현 시점에...”
 
 고 회장이?
 내 복수에 대해 알 리가 없다. 그렇다는 건 이제 나를 버리겠다는 뜻인가.
 20대 청춘부터 30년을 받쳤다. 일가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제아무리 악인으로 살았지만 억울함에 분통이 터졌다.
 
 “이유가 뭐지.”
 “진 의원은 너무 가셨습니다.”
 
 처음부터 계산된 건가. 모든 혐의를 내게 씌우려는 것이다. 진 의원의 사망까지도.
 배 실장이 신호를 보내자, 한때 수족이였던 자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고 위장에 실패했다면 내 존재를 그대로 도려내야 한다.
 
 방금 충돌로 왼쪽 팔이 들리지 않는다. 눈꺼풀로 떨어지는 피를 느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분명히 나는 죽기 직전이다. 그런데도 가슴 속에선 광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래! ......나도 고마웠다.”
 
 상대를 쑤시기 전 충만 해오는 이 감정.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
 
 
 
 눈을 떴다. 흔들리는 광경에 멀미가 올라왔다. 뿌연 날씨 탓인지 괜스레 더 춥게 느껴졌다. 멍한 기분에 몸을 내려보자 치렁치렁하게 쇳덩이가 감겨 있었다. 나는 안개 낀 선적 위에 처량하게 묶여 있었다.
 배종필은 담배를 피우며 생각에 잠겨 있다.
 
 “몇 명 수장시켜야 해?”
 “네 명입니다.”
 “한 명씩 버려.”
 
 슬쩍 옆을 봤다. 난도질 된 덩치 네 명이 고요히 널브러져 있다. 죽기 전 길동무가 고작 네 명이라니. 나이는 못 속이는 건가.
 
 나는 죽을힘으로 대항했다. 제아무리 프로지만 몰매에는 장사 없다. 그렇기에 도망칠 기회를 엿봤다. 그러나 나와 오래 일해온 배종필은 이미 도주로를 완벽하게 막았다.
 
 이제 곧 바닷속에 버려질 것이다. 허접하게 산에 묻거나 근처 선착장에 버리지 않는다. 수심이 깊은 해구 주변에 유기하면 절대 찾지 못한다. 이 또한 내가 설계한 시신 처리법.
 
 풍덩!
 
 나에게 살해당한 덩치들이 하나씩 바다로 던져졌다. 무거운 쇠사슬 덕분에 바다 끝까지 내려가겠지. 그리고 각종 생물에게 뜯기고 풍화 당해 아무것도 남지 않을 터.
 그간의 악행을 그대로 돌려받는 건가. 어머니, 저는 실패했습니다. 하필 어머니 기일에 곁으로 갑니다. 분노와 광기는 슬픔으로 물들며 눈물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분하다. 가족은 몰살당하고 나마저 더러운 일로 쓰이다 죽임을 당하다니.
 
 “······”
 
 배종필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동정심과 야릇한 존경심이 섞인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김정민 대표님 저는 당신을 진심으로 존경했습니다.”
 “모욕은 이만하면 됐다. 이제 그만, 어서 끝내라.”
 “고정혁.”
 “······?!”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내 진짜 이름을 알고 있다고? 고정혁이라는 이름은 18살도 전에 버린 이름이다. 그저 가슴 속에만 묻고 있던 진짜 이름.
 
 “일가는 처음부터 대표님의 정체를 알고 있었습니다. 선대 회장님의 핏줄이라는 것까지 말입니다.”
 
 뭐···
 뭐라고?
 배종필은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쇳덩이에 발을 올렸다.
 
 “미안합니다. 잘 가십시오.”
 
 팡!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러나 떨어지는 쇳덩이 따라 다리부터 끌려 들어갔다. 주마등처럼 스치며 많은 감정이 터져 나왔지만 아무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댓글(18)

세비허    
잘 보고 갑니다 건필 하세요
2022.05.11 12:41
노집    
재미나게 보고 있어요
2022.05.11 13:34
sa******    
기대합니다
2022.05.11 14:21
눈팅백수    
건필하셔영
2022.05.12 09:51
km****    
잘보고 갑니다
2022.05.12 11:31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2.05.12 20:20
카페인도핑    
잘봤습니다
2022.05.12 22:28
aurola    
잘 보고 갑니다..건필하세요
2022.05.13 00:54
영국항공1    
재밋습니다!! 건필하세여~
2022.05.14 01:18
musado0105    
잘 보고 갑니다. 건 필 하세요^^*
2022.06.1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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