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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날 향해 손짓 한다(1)

2022.05.11 조회 22,382 추천 221


 묵직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석문을 마주하고 다섯 남녀가 나란히 서 있었다.
 열 여덟아홉 어름의 다섯 남녀는 석문 중앙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 九!!
 
 큼직한 외자가 힘찬 필체로 쓰여 있다.
 
 꿀꺽.
 
 다섯 남녀 중 누군가가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일순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자 네 남녀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오른쪽 끝을 돌아보았다.
 
 적월.
 오른쪽 끝에 서 있는 이의 이름 아닌 이름이다.
 네 남녀 중 한 사람, 중앙에 서 있는 잔월이 비웃듯 말했다.
 
 “무서우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독히도 차갑고 무정한 목소리다.
 되돌아갈 수 없다!
 오직 앞으로 가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
 굳이 선택지가 있다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이다.
 바로 자살!!
 적월의 왼쪽에 서 있는 여인 미월이 잔월을 돌아보았다.
 
 “말이 심하잖아.”
 
 적월을 편들었다.
 
 “흥!”
 
 잔월이 코웃음 치며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석문을 바라보는 잔월의 눈동자에서 진한 꺼림이 일렁거렸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내심 두려워하는 잔월이다.
 겉으로 심중의 두려움을 내보이지 않으려고 나름 필사적이다.
 
 #
 
 일백여 명이 사사 십삼 관에 입관했다.
 지금 서 있는 구 관문에 이르기까지 아흔하고도 다섯 명이 관문 통과 과정에서 죽었다.
 아흔 다섯 명이 죽어가는 것을 직접 목격한 다섯 남녀다.
 다들 말은 하지 않지만 공히 두려움이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잔월의 왼쪽에 서 있는 무월이 말했다.
 
 “언제까지 여기서 이렇게 서 있을 수는 없어.”
 
 차분한 목소리다.
 은연중에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듯한 무월이다.
 무월의 왼쪽, 다섯 남녀의 맨 왼쪽에 서 있는 냉월이 뒤이어 말했다.
 
 “누가 가장 먼저 들어갈 거야?”
 
 일순 냉월을 제외한 네 남녀가 흠칫거렸다.
 다들 제일 먼저 구 관문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은연중에 무언으로, 몸으로 진한 꺼림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잠깐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다섯 남녀는 서로 돌아보았다.
 각자의 눈치를 살피고 보았다.
 잔월이 말했다.
 
 “늘 그렇듯이 제비뽑기해.”
 
 귀찮다는 어조다.
 무월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라는 감정을 내보였다.
 적월, 미월, 냉월은 침묵함으로서 동의했다.
 미월이 적월을 돌아보았다.
 말없이 오른손으로 적월의 왼손을 살며시 쥐었다.
 적월이 움칫하더니 미월을 돌아보았다.
 미월이 마주보며 방긋 웃었다.
 
 “다들 마찬가지야. 너만 긴장하는 거 아니야.”
 “고마워. 미월 누나.”
 
 막내인 적월이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화답하듯이 미월이 활짝 마주 웃었다.
 
 #
 
 잠시라는 시각이 흐르고 제비뽑기가 행해졌다.
 운이 가장 좋은 이는 가장 짧은 것을 뽑은 적월이다.
 잔월이 적월을 돌아보며 핀잔을 주듯 말했다.
 
 “하여튼 운 하나는 타고난 놈이야.”
 
 얼핏 들으면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비아냥거리는 것이 아니다.
 부러움이고 시기이며 질투였다.
 일 관문부터 지금 서 있는 구 관문까지. 적월은 숱한 죽음의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잘도 넘겼다.
 천운을 타고나기라도 한 것처럼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간혹 그 운이 미월과 다른 이를 살리기도 했다.
 제비뽑기의 결과!
 무월, 잔월, 미월, 냉월, 적월의 순으로 구 관문에 들어가게 되었다.
 무월이 말없이 구 관문의 입구인 석문으로 걸어갔다.
 
 저벅저벅.
 
 네 남녀에게 등을 보이는 무월의 얼굴은 굳을 대로 굳어 있었다.
 눈동자 하나 가득 불안을 담았다.
 심중이 매우 복잡한 무월이다.
 이제까지 관문을 통과하며 동료들이 눈앞에서 죽어갔다.
 그 죽음이 혹 자신을 덮쳐오지 않을까? 엄청 긴장하고 두려워했다.
 무월은 내딛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움을 느꼈다.
 가슴에 묵직한 납덩이가 들어 있는 것처럼 매우 갑갑했다.
 도망칠 수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구 관문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도 많이 달랐다. 도망을 일절 허용하지 않았다.
 석문으로 걸어가는 무월의 눈동자가 언제부터인가 불길이라는 이름의 빛을 띠었다.
 예감이 좋지 않다!
 구 관문에서 매우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발이 도통 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무월은 석문을 향해 천천히 쉬지 않고 걸어갔다.
 
 #
 
 적월, 잔월, 미월, 냉월이 걸어가는 무월을 바라보았다.
 다들 긴장의 눈빛을 띠었다.
 얼굴이 굳어진 것은 무월과 같다. 하지만 굳어진 정도에 있어서는 무월과 다소 차이가 있다.
 그들보다 무월의 얼굴이 더 굳어져 있다.
 무월 다음 차례인 잔월의 목울대가 일순 위아래로 꿈틀거렸다.
 
 꿀꺽.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마른침을 삼켰다.
 적월처럼 긴장감을 느끼는 잔월이다.
 소리를 내지 않음으로서 심중의 긴장감을 감추려 하였다.
 자신의 약함을 감추려했다. 의도적으로 강한 척하는 잔월이다.
 
 #
 
 그그긍.
 
 낮고 작은 울림과 함께 석문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공간이 생겼다.
 무월이 뒤돌아보지 않고 예의 공간으로 걸어들어 갔다.
 석문이 뒤이어 닫혔다.
 
 쿠웅.
 
 #
 
 일각에 조금 못 미치는 시각이 되었을까?
 
 “끄아아아악!”
 
 돌연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네 남녀가 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비명의 주인이 무월임을 모를 수 없다. 다들 안다.
 무월이 죽었다!!
 적월을 포함한 네 남녀의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가늘게 경련하듯이 몸을 떨며 잠시잠깐 눈을 내리감았다.
 
 파르르.
 
 눈꺼풀이 떨리고 다들 말하지 않지만 심중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굳은 얼굴을 뚫고 두려움이 진하게 스며 나왔다.
 
 “염병!”
 
 잔월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거칠게 말했다.
 그의 차례다.
 적월, 미월, 잔월은 침묵했다.
 한일자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뭐라 할 말이 없다.
 운이 좋다면 살겠지만. 운이 나쁘다면 무월처럼 죽는다.
 살인전막에 속한, 살수 수업을 받으며, 살업의 길을 걷는 운명!!
 무월은 죽음으로서 그 운명에서 벗어났지만. 남은 네 남녀는 아직 그 운명의 지배를 받고 있다.
 죽기 전에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다.
 
 #
 
 시간이 흐르고 잔월이 석문으로 걸어갔다.
 
 뚜벅뚜벅.
 
 무월이 관문으로 들어갈 때와 똑같은 과정이 반복되었다.
 
 #
 
 이각이 넘었지만 잔월의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관문을 통과한 모양이다.
 냉월이 미월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차례다.
 
 바르르.
 
 미월은 격동하는 것처럼 눈에 띄게 몸을 떨었다.
 적월이 그런 미월을 돌아보았다.
 
 “미월 누나······.”
 
 무척 걱정스런 목소리다.
 불안을 감추지 않고 온몸으로 내보이는 적월이다.
 막내라고 알게 모르게 챙겨주고 살갑게 대해주었던 미월이다.
 조금 전 긴장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어 마른침을 삼킨 것을 괜찮다고 다들 느끼는 감정이라고 말해준 미월이다.
 그런 미월이 자칫 잘못되면 구 관문에서 죽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기에 적월은 매우 착잡한 눈빛을 띠었다.
 미월을 말리고 싶다!
 하지만 말릴 수가 없다. 유일한 선택지는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자살 밖에 없으니깐 말이다.
 다시 되돌아가는 선택 따윈 주어지지 않았다.
 죽기 싫으면 무조건 앞으로 가야하고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살인전막이란 살수 집단에 속한, 살인전막의 제자라고 불리는,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이상 달리 다른 선택이 없다.
 비단 적월만이 아니다.
 미월과 냉월에게도 공히 동일하게 적용되는 운명의 굴레다.
 미월이 적월을 마주보더니 천천히 미소 지었다.
 
 방긋.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나도 작월 너도 반드시 통과할 거야.”
 
 자신감에 찬 미월이다. 하지만 허풍에 가까운 말이다. 통과할 수 있다는 확신과 같은 것이 없다. 그저 바라고 바랄 뿐이다.
 적월이 뭔가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뭐라 말할 수 없었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머리가 텅 빈 것처럼 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
 
 미월이 구 관문에 들어가고 얼마 있지 않아 여인의 비명이 들렸다.
 
 “꺄아아아악!”
 
 놀람이 어우러진 비명에 적월이 힘없이 무너졌다.
 서 있던 바닥에 두 무릎을 꿇으며 상체를 숙였다. 양손으로 바닥을 짚더니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흐흐흑. 누나, 미월 누나. 흐흐흐흑.”
 
 닭똥처럼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적월이었다.
 
 투, 투, 툭.
 
 눈물이 바닥에 점점이 떨어지고 이내 흔적이 흐릿해지며 차츰 눈물자국이 사라졌다.
 냉월이 그런 적월을 돌아보았다.
 
 “그렇게 서럽게 울 필요 없어. 단지 우리보다 조금 일찍 간 것뿐이니깐.”
 
 감정이 없는 듯, 무정하기 이를 데 없는 목소리다.
 적월의 귀에 냉월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엉엉.
 
 소리 내어 서럽게 우는 적월이다.
 
 “그런 약한 마음으로 이제까지 잘도 살인전막에서 버텼네.”
 
 적월을 비웃듯 말하더니 석문을 돌아보았다.
 죽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다!
 피할 수 있으면, 도망칠 수 있다면, 피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냉월이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설사 운 좋게 피하고 도망쳤다고 해도 교두들이 뒤쫓을 것이다.
 실전을 수없이 치른 살수인 교두들의 추적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무조건 죽는다!
 
 #
 
 냉월이 구 관문으로 들어갔다.
 
 쿠웅.
 
 석문이 닫히는 육중한 소리에 서럽게 울던 적월이 고개를 들었다.
 석문을 바라보는 적월의 눈에서 공포에 짓눌린 심정이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공포에 찌든 눈빛으로 말이다.
 일순 적월이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왜에?······왜에에에?”
 
 원망했다.
 자신들의 운명에 절망하고 한탄하며 공포에 눌려, 원망함으로서 운명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려 하였다.
 불가능한데 말이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요. 왜 이러는 거냐고요?”
 
 적월의 외침이 메아리쳤다.
 사방이 밀폐된 곳이다.
 외침은 사방 벽, 천장, 바닥에 외침이 부딪치며 반사되었다.
 
 #
 
 일다경쯤 지났을까?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냉월이 통과한 모양이다.
 석문을 마주하고 선 적월이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단단히 겁먹었다!
 심중 느끼는 공포에 몸이 부지불식간에 경직되었다.
 순간적인 동작과 불의의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 자명한 상태다.
 서럽게 통곡한 흔적이 눈가에 역력히 남아 있는 적월이다.
 도망치고 싶어!
 직면한 현실에서 멀리 달아나고 싶은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적월 역시 안다.
 도망치다 걸리면 죽는다는 것을 말이다.
 구 관문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지만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적월이다.
 아닌 말로 들어가지 않아도 죽고 들어가도 죽는다.
 이래도 죽고 자래도 죽는다면!!
 
 #
 
 한참 동안 석문을 바라보며 주저하던 적월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석문으로 걸어갔다.
 곧 석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그그그긍.
 
 #
 
 구 관문 내부는 직사각형의 구조였다.
 직선에 가까운 폭이 좁은 통로의 양쪽 벽과 천장이 맞닿은 곳에 도랑처럼 작은 홈이 길게 파여 있다.
 홈에는 기름이 넉넉하게 채워져 있었고 불길이 활활 타오르며 내부를 흐릿하게 밝혔다.
 적월은 통로를 마주하고 서서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광경!
 적월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힘주어 내리감고 말았다.

댓글(7)

풍뢰전사    
어렸을때 납치당해서 키워졌다면 저런 생각을 할수 없을텐데 .... 건필하세요
2022.05.14 18:06
학교    
좋아요.
2022.05.25 11:07
세비허    
잘 보고 갑니다 건필 하세요
2022.05.26 02:55
고슴이아빠    
즐감하고있어요
2022.06.15 19:51
산속다람쥐    
옛날 스타일 무협느낌이 나네요 잘보고갑니다
2022.07.20 13:43
rosmarinus    
적월은 어쨌든 8관문까지 통과했을텐데 행동이며 반응이며 공감이 안되지만, 건필하십시요.
2022.08.03 13:43
k6***********    
이 소설을 읽다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는 '삽시다'라는 것인데요, 한 두 번이 아니라 꽤 여러 번이 나옵니다. 이리저리 궁리해서 추측해본 바 '삽시간' 또는 '순식간' 으로 대체하여 읽고는 있으나 정말 궁굼하네요, 도대체 '삽시다' 가 무엇인가요?
2022.08.03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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