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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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이혼

2022.05.11 조회 53,660 추천 1,128


 서초구 양재동에는 서울에 있는 모든 부부들의 이혼소송 및 상간소송을 전담하는 가정법원이 있다.
 
 아이러니한 건, 강남에서 돈 좀 있는 신혼부부들의 고급 웨딩이 치러지는 W-타워가 그 바로 옆에서 법원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생이라는 게 아이러니 그 자체인지도 모르지.
 
 나는 바로 그 W-타워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10년 뒤인 오늘 바로 옆의 서울가정법원에서 이혼도장을 찍었다.
 
 결혼과 이혼의 거리가 이다지도 가까울 줄이야.
 
 또각또각.
 
 지금 내 옆에서 5미터 정도 떨어진 채 도도하게 걷고 있는 여자가 바로 내 와이프, 아니 전 와이프 차가은이다.
 
 한눈에도 알아볼 수 있는 브랜드 옷과 구두, 백을 걸친 그녀가 멈춰섰다.
 
 바로 앞에 가정법원의 두껍고 무거운 유리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아···.”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매너를 보여주기로 했다. 앞으로 볼 일이 더는 없을 테니까, 정말 마지막 기사도였다.
 
 삐-걱.
 
 나는 서울가정법원의 육중한 문을 열어젖히며 전 와이프에게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문 정도는 이제 스스로 열어.”
 
 “문 정도는 당연히 남편이 열어주는 거 아냐? 하긴, 그런 마인드니까 결국 이혼이나 당하는 거지.”
 
 열어주지 말걸, 괜히 열어줘가지고 기분만 더럽네.
 
 “내가 그동안 보여줬던 매너는 다 잊었나보다?”
 
 “아, 누구 덕에 개인병원장 했는지는 다 잊었지?”
 
 “그게 지금 매너랑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그 건물 명의도 내게 아니었잖아? 하··· 씨. 그만 하자.”
 
 “뭔가 더 할 게 남았어? 난 없는데?”
 
 “넌 진짜···.”
 
 우리는 법원의 문을 나오는 순간에도 서로에게 날선 얘기들을 쏟아냈다.
 
 W-타워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까지만 해도, 우리 둘의 이야기가 이런 새드 엔딩으로 끝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우리는 나란히 법원을 걸어나왔다.
 
 “뭐타고 가? 네 성격에 대중교통을 타고 가진 않을 거고.”
 
 “데리러 올 사람이 있어. 내 걱정 말고 니 저렴한 인생 걱정이나 해.”
 
 “하···. 마지막까지 진짜.”
 
 차가은.
 
 그녀는 명문대 출신 여의사였다.
 
 외모와 지능뿐 아니라 집안과 재력 마저 좋은 여자.
 
 10년 전 그녀와 연애할 때는 정말 꿈만 같았다.
 
 모든 걸 다 갖춘 여자가 왜 나 같은 걸 좋아한다고 하는 거지?
 
 그러나 그녀에게는 단 한가지가 빠져있었다.
 
 아마 신이 그녀를 만들 때 ‘인성’은 깜빡하고 한 스푼도 넣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인성’의 단계가 아니다. 차가은에게는 ‘인간성’ 자체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녀에게 나는 수집하고 싶은 하나의 악세사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나는 결혼한 뒤에야 알았다.
 
 ‘10년이면 정말 오래 버틴 거야.’
 
 그녀는 포장이 너무나 화려한 쓰레기였다.
 
 포장의 화려함 때문에 내용물이 얼마나 썩어있는지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는 걸, 연애 때는 몰랐다.
 
 쓰레기라는 표현은 너무 약하다.
 
 소시오패스 혹은 사이코패스가 실체화 된 인간.
 
 그게 바로 전 와이프였다.
 
 “가은씨~!”
 
 대로 앞에 차를 대고 깜빡이를 켜둔 웬 멀끔하게 생긴 여의도 증권맨 스타일의 올백머리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왔어요?”
 
 “오늘 기쁜 날인데 당연히 와야지.”
 
 그 말을 뱉은 후 여의도 증권맨이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일종의 수준 측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재수 없는 새끼. 뭘 위아래로 훑어.’
 
 “기쁜 날은 무슨.”
 
 “기분은 어때?”
 
 “그냥, 홀가분해. 별 생각 없어.”
 
 어느새 차가은의 옆으로 다가온 올백머리의 손이 그 허리춤을 감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와이프였던 사람의 허리춤을 뱀처럼 휘감는 그 손을 보았지만, 화조차 나지 않았다.
 
 그 남자는 이강민.
 
 꽤 큰 대기업 오너의 3세이고, 지금은 후계자 수업 중이라 들었다.
 
 그리고 내 와이프의 내연남이다.
 
 ‘왜 화도 안나지. 나 어딘가 정말 좀 잘못된 거 아닌가?’
 
 처음에 와이프의 외도사실을 알았을 때는 정말 분노했다.
 
 집안의 티브이와 PC, 오디오를 맨손으로 다 때려부숴서 두 손이 피칠갑이 되었을 정도로.
 
 그래서 한동안 병원 일을 쉬어야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감정이 차단된 듯 전혀 화가 나지 않는다.
 
 전 와이프에게 외도는 그저 일상 같은 일이라는 걸 알고난 뒤부터 그렇게 됐다.
 
 그녀는 매번 남자를 바꿔가며 만났고, 동시에 여러 명을 만나기도 했다.
 
 걸리면 그때만 잠깐 미안한 척.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포기했다.
 
 아, 바로 이혼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한가?
 
 장인, 아니 전 와이프의 아버지 덕분에 내가 개인 성형외과 병원을 개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인이 어디 보통 사람인가.
 
 병원 건물의 명의는 아내 앞으로 되어있었고, 고가의 의료 장비들을 사는 큰 돈을 내게 빌려주면서도 ‘꽤 높은 이율의 이자’를 받았다.
 
 “사위가 장인한테 용돈 대신 준다고 생각하게.”
 
 그땐 ‘장인의 넓으신 아량’이라 생각했었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느낌이 달랐다.
 
 아니 돈도 많으신 양반이 무슨 용돈을 달라고 하냐고.
 
 장인이 갖고 있는 건물만 몇 챈데.
 
 아무튼.
 
 내 병원 매출의 많은 부분이 장인어른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비용으로 들어갔고, 개업한지 몇 년이 지났건만 내 통장에는 그렇게 많은 돈이 남아있지 않았다.
 
 “시발···. 인생 참.”
 
 직업 중 탑티어라고 여겨지는 성형외과 의사조차도, 금수저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삑.
 
 올백머리 이강민의 스포츠카 문이 위로 열렸고, 차가은은 그 조수석 안으로 날씬한 몸을 밀어넣었다.
 
 부아아앙-!
 
 두 꼴보기 싫은 년놈들이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동안, 나는 지하철 역으로 걸어 가면서 손에 들린 봉투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지난 결혼생활의 세월이 이 한 장의 이혼서류로 바뀌었다.
 
 아내 명의의 병원 건물에서 내 병원을 빼야 하고, 아이조차 없는 부부였으니, 내게는 10년 동안 남은 게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인생이란 참 가벼운 것이다.
 
 이혼서류든, 사망서류든, 삶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서류 한 장의 무게로만 남게 되니까.
 
 지하철역을 내려가며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의대생 시절 가장 친하게 지냈던 동기 유동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따 저녁 때 바쁘냐?”
 
 -아니. 널널해. 무슨 일 있냐?
 
 “나 이혼했다.”
 
 -크하하하하!!
 
 “남 이혼했다는데 뭘 쳐웃고 있어.”
 
 -속시원해서 웃었다, 인마! 야야, 아주 잘했다! 너도 우리 돌싱단에 합류한 걸 축하한다! 질펀하게 술이나 한 잔 하자!
 
 
 **
 
 
 동기를 만나러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는지 아냐?”
 
 고등학생 시절, 담임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늘 말했었다.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너희들 미래 와이프 얼굴이 바뀌는 거야, 알겠어?”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철석같이.
 
 “너희들이 부모 빽이 있어? 할아버지 유산이 많아? 아니면 연예인 싸다구 때릴 정도로 잘생겼어? 너희들처럼 잘난 것도 없는 새끼들이 성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공부야, 공부. 곧죽어도 공부밖에 없다고, 알겠나? 또 무슨 겉멋 쳐들어서 국문과나 철학과 같은 이상한 과 가겠다고 깝치지 말고, 의대, 한의대, 이런 과에 가란 말이야. 너희들의 인생 역전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고.”
 
 그때는 아무리 생각해도 담임의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죽도록 공부했다.
 
 공부만이 내게 연예인처럼 아름다운 여자를 만날 수 있게 해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래서 학교 자습실 문을 가장 먼저 열고 들어갔고, 가장 늦게 닫고 집으로 갔다.
 
 돌이켜보면, 생각보다 공부 머리와 근성이 있었던 것 같다.
 
 의대 진학은 적당한 머리와 근성으로 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니.
 
 고등학교 3년을 마치고 의대에 합격하자 학교에는 현수막까지 걸렸다.
 
 “시골 학교 아니랄까봐 촌스럽게···.”
 
 고등학교에 걸린 그 현수막을 봤을 때 난 퉁명스럽게 한 마디를 내뱉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엄청나게 자랑스러워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때가 내 영광의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무서움과 잔혹함을 전혀 몰랐던, 내 앞에 꽃길만 펼쳐질 거라고 착각하던 순간이었다.
 
 정말 순진했었지.
 
 나도 웃고, 부모님도 웃고, 학교 입시 담당 선생님도 웃었다.
 
 의대에 붙고 마음 편히 3월 입학을 기다리던 그 시절은 정말 행복했다.
 
 ‘이제 무사히 의대 졸업하고, 연예인 같이 예쁘고 쭉쭉빵빵한 여자를 만나서 진짜 행복한 인생을 살겠다.’
 
 철없던 시절의 나는 그런 부푼 꿈을 꿨더랬다.
 
 그리고 차가은과 결혼하며 내가 꿈을 실현하고 있다고 착각했었고.
 
 그 꿈은 사실 악몽이었는데 말이다.
 
 
 **
 
 
 마포의 한 이자카야.
 
 내 동기이자 절친 중 하나인 유동현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빨리 왔네.”
 
 “왔어? 왜케 죽상을 하고 있어 인마!”
 
 “그럼 나 이혼했어요 헤헤헤 하면서 처웃고 다니리?”
 
 “왜 안돼? 야, 인생은 이혼하고부터가 진짜야 인마. 대놓고 웃어도 돼.”
 
 “내가 이혼했다고 아주 신났네.”
 
 “나만 이혼할 수 없지! 나태한의 돌싱클럽 가입을 축하한다.”
 
 “가입 안 해, 그딴 거. 술이랑 안주나 시키자.”
 
 “진작에 시켜놨으니까, 어여 앉아서 얘기나 좀 풀어봐.”
 
 곧 술과 요리가 나왔고, 나는 유동현에게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모든 내용을 듣고 난 유동현이 말했다.
 
 “와, 뻔뻔하게 이혼 당일날 눈앞에서 내연남 차를 타고 사라져? 거 완전 돌은년이네.”
 
 나는 말없이 사케를 들이키고는, 나보다 더 씩씩대며 대신 화를 내주는 유동현에게 물었다.
 
 “야, 너도 결혼하자마자 느낌이 왔냐?”
 
 “무슨 느낌?”
 
 “이 결혼은 잘못됐다는 느낌.”
 
 “뭔가 결혼생활이 잘 굴러가지 않을 거 같은 느낌?”
 
 “그래, 그런 거.”
 
 “나는 바로 느끼진 못했고, 좀 시간이 걸렸지.”
 
 “그랬구나.”
 
 나는 사실 결혼 전에도 뭔가 불안함을 느꼈다.
 
 전 와이프의 수많은 남사친들. 쉼없이 울리는 그녀의 카톡들.
 
 의문이 들긴 했지만 미처 의사 생활이 너무 바빠서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아니, 바쁘다는 건 사실 핑계였고 사실은 그녀의 해명을 믿고 싶었었다.
 
 -자기, 남사친들이랑은 진짜 아무 관계도 아냐. 그냥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온 사인데 뭘.
 
 -자기, 어제 약속 갑자기 취소해서 미안. 지방에서 친구가 갑자기 올라왔지 뭐야.
 
 -자기, 난 자기밖에 없는 거 알지?
 
 나밖에 없긴 무슨 나밖에 없어.
 
 한때는 그녀의 도도한 표정과, 누가 봐도 귀족같은 자세와 태도, 그리고 전신에서 뿜어져나오는 가진자의 자신감 같은 아우라를 정말 사랑했었다.
 
 그런 그녀가 내게 하는 말들이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것, 의심조차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눈을 질끈 감았던 것이었다.
 
 너무도 많은 외도의 증거 앞에서도.
 
 그러다 어이없게도 결국 그녀가 먼저 이혼을 신청했다.
 
 “그래서, 판결은 어떻게 났어? 니 와이프 쪽의 부정행위가 있었으니 당연히 니가 이기긴 했지?”
 
 “아니.”
 
 “뭐?”
 
 “전 와이프 쪽에서 나한테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책임이 있다고 걸었거든.”
 
 “니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일이 있을 리가 없잖아? 뭘로 걸었는데?”
 
 “우리 부부가 몇 년간 섹스리스였잖아. 그걸로 부부의 동거‧부양‧협조 의무를 안 했다고. 그래서 이혼에 양쪽 책임이 다 있다네.”
 
 “아니, 그게 말이 돼? 우리나라 판사 새끼들 진짜 제정신인가.”
 
 “저쪽 로펌 강앤장이 붙었잖아. 애초에 내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지.”
 
 “야, 그럼 건물 뺏겨 소송비까지 내···, 너 완전 개털이잖아?”
 
 “개털까진 아니야 인마.”

작가의 말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댓글(45)

chvksj    
기대작!!!!!! 재미나요~ 나태한 의사의 2회차 인생 왕궁금
2022.05.12 02:04
go*****    
이혼한건 좋은데 아니 뭐 솔직히 상관없는데 회귀해서 다른 여자 또 만나요? 내 주변에 돌싱이 꽤 있는데 지금은 여자라면 그냥 혐오합니다 근데 다른 이혼 소설보면 이혼 후 다시 여자를 만남 ㅋㅋ
2022.05.13 21:59
난의향기    
잘 보고 갑니다.
2022.05.15 02:34
yeom    
잘 보고 갑니다.
2022.05.15 07:19
풍뢰전사    
ㅂㅅ이네. 증거를 모으지 않고 뭘한거야 ? 건필하세요
2022.05.17 03:56
kanemochi    
재미있습니다
2022.05.18 09:01
kanemochi    
재미있습니다
2022.05.18 09:01
나노[nano]    
이런 병신 같은 이야기를 초장부터 깔아놓으면 독자 내쫒는 겁니다. 읽지 말라는건가?
2022.05.20 19:29
난독    
재벌3세 후계자가 전 부인의 내연남 ~ 시작부터 꿈속이구나 더 읽어봐야할까?
2022.05.22 00:20
보람이맘    
잘보고갑니다
2022.05.22 09:00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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