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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대장부 1권-1

2015.02.26 조회 1,421 추천 11


 서장
 
 후회하고 있다.
 앞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세월이 너무나도…….
 바라는 것을 다 가졌다.
 돈.
 권력.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이 모두 가졌다.
 모두 가지고 하나를 잃었다.
 조강지처(糟糠之妻).
 평범한 아낙네였다.
 피부가 곱지도 하얗지도 않았다. 오히려 햇볕에 그을려 검었고, 거칠었다.
 섬섬옥수를 지니고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가족 뒷바라지에 거칠어지는 것을 넘어 사내의 손과 비교할 만 했다.
 몸을 가꿀 시간은 꿈에도 생각 못했기에, 아름답지도 못했다.
 원래 태어날 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처음 시집 올 때만 해도 마을 규수 중에는 고운 편이었다.
 그렇게 된 것은 나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내 아내가 떠날 때까지 돌보지 않았다.
 아름답고 젊은 여자를 끼고 살았으며, 집에는 전혀 신경 쓰지도 않고 있었다.
 하지만 난 알아야 했다.
 내 아내는 내 첫 여인이자 마지막이 될 여인임을 알아야 했다.
 그녀가 죽었다는 소리에 왜…….
 여태껏 그녀에게 신경 한번 쓰지도 않았던 내가 그렇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왜 이렇게 슬퍼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유골이 담긴 상자를 받으며, 흘려보지 않았던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고 있는지…….
 아내의 뼛가루를 손에 집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얼마나 많이 슬퍼했을지…….
 하지만 왜 그때는 그것을 몰랐는지…….
 지금 너무나도 많은 후회를 하고 있는 것은 그때의 벌일 것이라 생각하며, 아내의 뼛가루를 날려 보내며, 내 눈물도 함께 날려 보냈다.
 벌을 받는 자에겐 눈물은 사치였다.
 공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사랑이라는…… 그런 감정은 영영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살아생전 해주지 못했으니 이야기만 들어보았던 감정으로 남을 것이다.
 나의 미련스러움을, 나의 바보 같음을 저주한다.
 하지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준다면…… 한 번만 더…….
 하늘이 내게 한번만 더 기회를 준다면…… 태후의 권력보다 더한…… 아니 아내는 그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니, 그녀가 원했던… 그저 그런 평범한 부잣집 마나님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하늘과 아내가 내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준다면…….
 그리고…….
 기회는 내게 다시 찾아왔다.
 
 
 서장 2
 
 내심 듣지 않았다면 좋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들은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흘린 물을 다시 주어 담을 수 없듯이, 한번 들은 말을 버릴 수가 없었다.
 
 군자복수 십년미만(君子復讐 十年未滿)
 군자의 복수는 십년도 길지 않다.
 
 나는 여덟 글자의 문장을 각인시켰다.
 
 
 1장 장남 강웅
 
 “헉…… 헉.”
 아이는 폭 좁은 소로 길에서 숨을 헐떡였다.
 덕분에 작은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하지만 아이의 가슴치고는 조금 돌출되어 보였다. 사내아이의 가슴으로 보기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아이는 고개를 숙여 가슴 속을 바라보았다.
 딱 아이의 주먹만 한 계란 두 개가 두꺼운 밀짚에 칭칭 잘 감싸여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불안한 마음을 없애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아이는 그 두 개의 계란을 동생과 나누어 먹을 생각이었다.
 배가 곯지 않을 정도로 밥은 챙겨 먹었지만, 여느 촌아이처럼 그들은 항상 배가 고팠다. 다만 집안 형편을 생각해서 그런 이야기는 부모님께 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계란은 귀한 음식이었다.
 하얗고 말랑말랑한 살을 입에 넣으면 살살 녹았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노란색의 살을 입에 넣으면 그 고소함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아이는 그런 계란을 딱 5번 정도 먹어보았다. 자신의 생일 때마다 아버지와 자신의 밥공기에 한 개씩 올라와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그 한 개를 나누어드셨고, 나는 그 한 개를 조금씩 뜯어 먹으며 즐거움을 만끽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 계란이 두 개나 자신의 품에 있는 것이었다.
 마을에서 가장 부잣집인 촌장님 댁의 큰 할머니가 가끔씩 놀러와 자신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 기특하다고 챙겨 준 것이었다.
 사실 아이는 할머니께 책을 읽어주러 간 것이 아니라, 할머니가 갈 때마다 챙겨주시는 간식이 더 탐이 나는 것이었지만, 넙죽 절까지 올리며 계란을 받아왔다.
 두 개나 되니까 한 개를 그 자리에서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집에 동생들이 있는 것을 깨닫고는 꾹 참은 것이었다.
 아이는 장남이었고, 장남은 어린 동생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아이는 잘 알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던 아이는 다시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아이가 순간 달리는 것을 멈추고 한 곳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낯선 사람이었다.
 쉬고 있는 듯 길가의 나무에 기대어 두 다리를 쭉 펴고 조금은 낡은 삿갓을 내려 햇빛을 막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매우 지쳐 보였다.
 허름한 옷까지 생각하면 배고파 쓰러져 보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던 듯 했다.
 아이는 한참을 망설이던 끝에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아저씨인지 할아버지인지 구분이 잘 안가는 외모였지만, 삿갓 밖으로 튀어나온 머리카락에 흑발과 백발이 섞여있는 것을 보고 아이는 아저씨라 부른 것이었다.
 아이가 불렀는데도 사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저씨……?”
 아이가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부르자 그제야 사내는 손으로 삿갓을 살짝 올리며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의 눈에 자신의 아버지보다는 젊어 보이는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왜 그러느냐?”
 웬 아이 하나가 자신의 낮잠을 방해하자 살짝 짜증이 일긴 했지만, 얼굴엔 웃음을 보여주며 물었다.
 “배고프세요?”
 사내의 얼굴에 방금 전 보다 더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사내가 웃기만 할뿐 묵묵부답하자 아이는 생각했다.
 ‘어른이 아이한테 배고프다고 하는 것이 창피해서일 거야.’
 아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품에 손을 넣었고, 사내는 흥미롭다는 듯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손에서 굵다란 짚 덩어리가 나왔고, 조심스럽게 그 안에다가 손을 집어넣어 노르스름한 물건 하나를 꺼내었다.
 “아저씨 하나 드세요.”
 아이는 손을 내밀었고, 사내는 물끄러미 아이의 손에 들린 물건을 바라보다, 아이를 번갈이 쳐다보았다.
 “그게 뭐냐?”
 “계란이요, 촌장 댁 할머니가 주신 거예요. 두 개가 있으니 하나는 아저씨가 드세요.”
 사내는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신도 시골 출신이었다.
 이런 작은 촌구석에서 행색을 보아하니 그리 넉넉지는 않아 보이는 아이가 내미는 저 계란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먹어도 되는 거냐?”
 퉁명스럽게 들리는 질문에도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하나는 동생들한테 나누어 줘야 해서…….”
 자신에게 내미는 것은 분명 이 꼬마의 몫 일 것이다.
 사내는 다시 오랫동안 아이를 바라보다가 입을 실룩거렸다.
 “하하하!”
 사내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작은 시골마을에 울려 퍼졌다.
 “좋아, 좋아.”
 웃으면서도 뭐가 좋다는 듯이 연간 ‘좋아, 좋아.’를 외치는 사내였다.
 사내가 불쑥 아이의 얼굴가까이로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자, 아이는 기겁을 하며 몸을 뒤로 뺐다.
 워낙 순식간에 들이민지라 아이는 놀라서 손에든 계란을 놓쳤고, 계란은 땅과 마주한 순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아!”
 아이는 땅에 떨어진 계란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며 얼른 무릎을 꿇고, 계란을 주어 흙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껍질이 붙어있는 흰자부분과, 가장 고소한 노른자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는 놀람도 잊고 원망의 눈초리로 사내를 쏘아보았다.
 자신도 먹고 싶은걸 정말 꾹 참고 양보한 것인데, 먹지는 않고 놀래키는 바람에 상당부분 버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말거라, 내 계란보다 더 좋은 것들을 먹여주마.”
 “됐어요.”
 아이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아깝긴 하지만, 동생들 것은 멀쩡하니까.’
 아이는 그렇게 위안을 삼는 순간 몸이 하늘로 붕 뜨는 것을 날렸다.
 “으악!”
 아이는 놀라 소리를 질렀다. 정말 하늘을 날고 있었다.
 “어떠냐? 멋지지 않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은 사내의 어깨위에 앉아있었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정확히는 하늘 높이 올라가며 뛰고 있었다.
 “에…….”
 처음에는 놀랐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며 익숙해지자 아이의 입가에 빙그레 웃었다.
 재미있었다.
 하늘을 날다니…… 잠깐잠깐 땅바닥에 내려섰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짜릿한 기분이 있었다.
 아이의 반응에 사내는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꼬마아이가 담이 큰 것이다.
 “좋아.”
 사내는 뜻 모를 ‘좋아.’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
 
 “내게 아홉 번을 절 하거라.”
 “왜요?”
 사내의 말에 아이는 눈을 말똥말똥 뜨며 궁금하듯이 물었다.
 “하늘을 나는 거 신나지?”
 사내는 대답대신 오히려 아이에게 묻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내게 아홉 번만 절하면 하늘을 나는 방법을 가르쳐줄테니, 나한테 아홉 번 절해라.”
 사내의 답변에 아이는 물었다.
 “제사 때도 두 번 하고도 반 번밖에 안하는데 무슨 절을 그렇게 많이 해요?”
 “하늘 날고 싶지?”
 “네.”
 “그럼 절하면 된다.”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사내는 아무에게나 무릎을 꿇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아이의 말에 사내는 크게 웃더니 말했다.
 “하하하. 당연한 거다, 사내는 아무에게나 무릎을 꿇는 법이 아니지, 고개를 숙여서도 안 되는 거다. 하지만…….”
 아이가 그 다음 말에 관심을 보이자, 사내는 오른쪽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아무나가 아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음…… 그래, 수만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고개를 숙이고, 내가 고개를 숙여야 할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지.”
 “우와!”
 아이가 감탄사를 터트리자 사내는 더더욱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네가 나에게 아홉 번을 절하면, 나에게 고개를 숙이는 수만의 사람이 너에게도 고개를 숙인단다. 어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지?”
 “그래도 아저씨는 모르는 사람인데…….”
 아이가 또 다시 튕기자 사내의 눈 꼬리가 올라갔다. 자신이 되었다고 생각이 든 후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었는데, 요 고약한 꼬마가 자신이 세 번이나 말하고 있는데, 그 말을 거역하고 있는 것이다.
 “우! 씨! 너는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기회인지 모르는 모양인데, 나한테 아홉 번만 절하면 네 손짓 한번이면 안되는 게 없게 된다니까.”
 사내가 다시 한 번 아이를 회유했다.
 “아버지가 사내는 자신의 일은 자신이 직접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는 법이라고 했어요, 멀쩡한 사지를 두고 남에게 무엇을 시키는 것은 죄악이라고 했는데요…….”
 “하하하!”
 사내는 다시 크게 웃음소리가 터졌다. 어쩌면 자신의 마음에 쏙쏙 드는 소리만 하는 것인지 기특하고 이쁘기가 그지없었다. 꼭 자신의 제자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절 안 할 거냐?”
 “할 이유가 없잖아요?”
 사내와 아이의 눈빛이 강렬하게 마주쳤다.
 일검탈명(一劍奪命)이라는 별호를 가진 유화명은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렇다고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지 강제로 절을 시킬 수는 없는 법이지 않은가…….
 자신의 오십 평생에서 처음으로 제자를 두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인데, 그것을 억지로 이루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유화명은 본격적으로 아이를 설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필사대적을 만난 것처럼 자세를 바르게 하며 눈을 크게 뜨고는, 진지하게 아이를 대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의 반응이 아이에게서 나왔다.
 존경의 눈빛을 자신에게 보내고 있지 않는가?
 “왜 그렇게 보느냐?”
 유화명의 질문에 아이는 호기심의 눈빛으로 바뀌며 유화명에게 물었다.
 “아저씨 산신령이죠?”
 “응?”
 황당한 물음에 유화명은 황당해 했고, 아이는 계속해 말했다.
 “아버지가 그랬거든요, 우리 마을에도 산신령이 있다고, 그래서 하늘도 날고, 몸에서 기분 좋은 바람도 불어오는 거죠?”
 ‘허허허.’
 유화명은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은 이미 경지에 올라 자유자재로 기운을 걷었다, 뿜었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것을 눈치 챈 것이다.
 자신이 자세를 바르게 하고 마음을 단정한 상태에서 나온 기운이라면, 그것들은 사람들이 압박감을 느낄만한 기도(氣道)였을터인데, 그것을 아이는 기분 좋은 바람이라 표현하니 헛웃음만 나온 것이다.
 ‘뭐, 이것도 기회라면 기회겠지.’
 유화명은 그렇게 생각하고 말했다.
 “산신령은 아니지만 그 비슷하긴 하지, 네가 내게 아홉 번만 절하면 너도 그 비슷하게 만들어주마.”
 아이는 마음이 동한 듯 뭔가를 고민하는 듯 했다. 고삐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생각한 유화명은 잠시 생각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유화명은 땅 바닥에 떨어진 계란껍질을 보고 번뜩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아홉 번만 절하면 네 동생들은 아마 평생 배부르게 밥 먹고 등 따습게 해줄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네가 그렇게 해줄 능력이 생긴다는 말이다.”
 아이의 눈이 번쩍 띄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는 것이다.
 자신들 네 남매를 책임지는 아버지의 어깨는 어린 자신이 보았을 때도 너무 무거웠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다면 자식 된 도리를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 살 먹은 아이가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행동에서 보고 배우는 것이 많은 강웅의 생각은 그러했다.
 그래서인지 강웅의 행동은 항상 의젓했고, 남루한 옷이지만 깔끔하게 보이고, 말 또한 생각이 들어있었다.
 강웅이 그러하지 못했다면, 일검탈명 유화명의 눈에 띄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강웅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아홉 번만 절하면 되나요?”
 유화명은 같이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대답했다.
 “구배지례(九拜之禮)라 한다. 제자가 스승으로 맞이하겠다는 예법이다. 너는 나에게 아홉 번의 절을 함으로써, 나의 제자가 되는 것이란다.”
 “전 그럼 산신령님의 제자가 되는 건가요?”
 “그 비슷한 거라고 하지 않느냐! 산신령과 비슷한 사람의 제자가 되는 것이지.”
 유화명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강웅은 알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이내 유화명을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
 ‘이놈, 아홉 번만 절해봐라. 감히 스승의 애간장을 타게 해? 노부의 제자가 되겠다는 아해가 줄을 섰는데, 감히…… 흐흐흐.’
 유화명은 속으로만 짓던 음흉한 미소를 표현하며 강웅이 절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유화명은 북해에서 일을 마치고 경공을 펼쳐 본교로 귀환하던 도중에, 너무나 피곤하여 잠시 잠이 들었다가,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아이를 발견한 것이 기분이 좋았다.
 잠시 만져보니 무골(武骨)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머리가 좋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유화명은 강웅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의젓한 자세와, 똑바로 박힌 사고방식, 그리고 그 또랑또랑한 눈망울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이놈이 절만 다 하면 바로 교로 귀환해야지. 일이 급한데 깜빡 잠이 들다니…… 나답지 않은 실수야.’
 유화명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생각이 났다.
 강웅이 구배지례를 모두 마치자, 유화명은 대뜸 강웅을 어깨에 앉히고서 뛰기 시작했다.
 “어…… 어…….”
 강웅이 놀라 입을 여는 순간 이미 유화명과 강웅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
 
 유화명은 깨달아야 했다. 저 작지만 단단한 몸집의 아이가, 이제 자신의 제자가 된 아이의 고집이 악다구니가 얼마나 센지 말이다.
 납치하듯이 데려온 것 까지는 좋았으나, 그 후가 문제였다.
 의젓하고 아이답지 않은 면이 마음에 든 것이었는데, 집에 가겠다고 악소리를 내며 울고불고 하는데, 도저히 달랠 방법이 없었다.
 유화명의 거처에서 머물고 있는 많은 하인들과 무사들은 그날부터 잠자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낮은 물론이고, 밤에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엄마, 아버지를 찾는 통에 밤잠을 잘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유화명은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유화명은 어린제자를 데려다 놓고 급한 일로 1년간 다시 자리를 비웠던 것이다.
 유화명은 후에 그것을 두고두고 미안해했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였기에, 어린제자에게 숨 쉬는 법과 부지런히 달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충.”
 문을 지키고 있던 무사(武士)가 크게 소리치자, 강웅은 눈살을 찌푸렸다.
 강웅은 매번 듣는 소리이기는 했지만, 무사의 내공 섞인 중저음의 목소리는 매번 자신의 귀를 헤집는 듯해서였다.
 “천상칠류 중 일류만 완성시키면 그렇지 않는다고 했으니 참아야지.”
 강웅은 그렇게 혼잣말하며 대웅(大熊)전에 들어갔다.
 “참 크기도하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대웅전은 정말 컸다. 고개를 완전히 하늘로 꺾어야 천장이 보일정도로 높았고, 숨바꼭질을 술래는 항상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쳐야 할 것처럼 넓기까지 했다.
 “사부도 이런 집 필요 없다니까, 움직이는데 시간만 걸리고.”
 웅이의 말처럼 이 대웅전은 웅이의 것이었다. 그리고 대웅전에 속해있는 오십 여명의 시종과 시녀들, 경비를 맡고 있는 삼십 여명의 무사들까지 전부 웅이가 주인이었다.
 모두 사부인 유화명이 준 것이었다.
 이곳에 온지 벌써 2년.
 이곳에 온지 몇 개월은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 생각났다. 매번 아빠와 엄마를 부르며 잠에서 깨어났고, 동생들의 생각에 끼니를 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더더군다나 사부도 자신을 이곳에 데려다 놓은 뒤 1년간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외로움은 더더욱 깊어졌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사부가 돌아 왔을 때 웅이의 첫 마디는 이것이었다.
 “집에 가고 싶어요.”
 아마 반년은 졸랐을 것이었다. 자신의 말이라면 모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사부도 이것만큼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였다.
 자신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 단식투쟁이라든지, 하루 종일 징징대기 등을 해보았으나 사부는 요지부동이었다.
 덕분에 웅이의 단식투쟁도 심해졌을 때, 요지부동이던 사부가 양보했던 조항은 이것이었다.
 “천상삼류까지, 검술은 4초식까지만 익히면 밖으로 내보내주마, 하지만 그전에는 너무 위험해서 허락할 수가 없다.”
 웅이가 익히고 있는 것은 유화명이 일검탈명이라는 별호를 붙이게 만들게 해주었던, 천상칠류와 탈명칠검이었다.
 그 날 이후로 웅이는 산 정상에 올라 천상칠류를 대웅전에서는 탈명칠검을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벌써 1년이나 연습했는데 2류는 까마득하고, 1초식의 변화도 반도 보이지 못하니, 언제 3류 4초식까지 연마하지?’
 웅이는 탈명칠검이 뜻대로 펼쳐지지 않자, 조바심이 나며 애꿎은 검을 집어 던졌다.
 “웅아.”
 “어…… 사부…….”
 웅이의 던진 검을 멋들어지게 낚아챈 유화명은 검을 들고 웅이에게 다가가 꾸짖듯이 말했다.
 “조바심을 내면 오히려 늦어진다고 말했는데도 왜 이렇게 마음을 못 잡냐? 머리가 똑똑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몸이 특별난 것도 없으면, 진득한 맛이라도 있어야지.”
 “사부, 그럼 왜 나를 제자로 만들었어요?”
 웅이는 원망스럽다는 듯이 말하자, 유화명은 확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1년 동안 애지중지 정말 바람에 날아갈 것 같아 조심스럽게 키웠는데, 말하는 게 아주 한 대 때려줬으면 할 정도로 얄미웠다.
 “그래서 날 원망하는 거냐?”
 웅이는 사부의 미간이 살짝 찡그리는 것을 보고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말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부만 안 만났으면 지금 가족하고 헤어지지도 않았는데…….”
 웅이의 말에 유화명은 뜨끔했다.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때 워낙 갈 길이 급해 웅이의 부모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웅이를 데려왔지만, 일단 급했던 일을 교주에게 보고를 한 후에는 정식으로 웅이의 부모를 만나, 정식으로 인사를 하려고 했었다.
 그랬었는데, 교로 귀환하자마자 북해에서 입었던 내상이 터졌고, 그 여파로 주화입마까지 겹치는 바람에, 정말 꼬빡 1년은 생사를 헤매는 바람에 그러하지 못했다. 그래서 1년간 교를 떠나 요양을 했던 것이다.
 자신이 정신을 차린 후, 수하들을 보내 웅이의 부모를 데려오려 했으나, 이미 몇 달 전에 마을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찾아보았으나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
 유화명이 정말 마음만 먹는다면 못 찾을 것도 없었겠지만, 유화명은 그러지 않았다.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한다는 황실은, 교에 비하면 새발에 피었다. 더더군다나 이곳은 권모술수만이 아니라 틈만 보이면 사람을 죽이는 걸 취미로 삼는 놈들도 심심치 않게 있는 곳이었다. 정상이 아닌 자가 많다는 소리였다.
 그런 상황에서 웅이의 약점은 하나라도 줄어드는 것이 좋았다. 힘없는 가족은 웅이가 자라는 내내 약점이 될 것이었고, 그것은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애초에 찾았다면 모를까, 웅이의 가족들이 떠났다면 일부러 찾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웅이가 확실한 힘을 가졌을 때, 그때 찾아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미리 위치를 확보해두는 것도 안 되었다. 독한 적들은 필히 그들의 행방을 찾아 낼 것이었다. 그래서 고아 하나를 데려 온 거라 말하기까지 했다.
 유화명은 사람이 허술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단지 보이는 것뿐이었다. 자신의 실력은 항상 삼푼이 아니라 3할을 감추어 두는 늙은 여우가 유화명이었다.
 아무리 교주와 죽마고우라 한다고 해도, 신교의 부교주 자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약속하지 않았느냐, 어느 정도의 수준에만 이르면 내보내 주겠다고, 아니 이 사부가 책임지고 데려오마.”
 웅이의 눈망울이 흔들리자, 유화명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남아가 뜻을 품었으면 독한 가슴을 가지고 정진하고, 나아가는 것도 모자를 지언데, 그렇게 약한 마음을 가지고서 언제 뜻을 이루겠느냐, 웅이 너의 뜻이 무엇이었지?”
 “부모님 편히 모시고, 동생들 배곯지 않고 등 따습게 만드는 거요.”
 ‘작고 소박한 꿈, 범부의 꿈.’
 하지만 그런 소박한 꿈은 범인에게는 이루어지기는 쉽지만, 이제 웅이에게는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은 유화명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웅이는 자신의 제자였기 때문에 이미 범인이 아닌 것이다.
 유화명은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긴 했지만,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웅이에게 그 보다 더 많은 꿈을 줄 수 있었다. 인간은 바뀌기 마련이니 웅이가 언제까지나 그런 범부의 꿈을 꾼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 마음을 품었다면 열심히 해야지?”
 유화명의 물음에 웅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부의 말을 언제나 맞아요, 하지만 벌써 1년이나 했는데, 진전이 없으니 이래서 언제 3류 4초까지 가요? 부모님이 나이 들어 돌아가실 때쯤이면 너무 늦어요, 살아생전 효도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2년 해놓고서 다음 단계를 노리면 네가 천재지.’
 천상칠류와 탈명칠검은 고작 1년으로 진전을 보기 힘든 무공이었다.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기가 무척이나 고되긴 하지만, 1류와 2류, 1초와 2초의 차이는 일반무사와 고수의 차이만큼이나 큰 무공이었다.
 실제 자신도 6류와 6초식의 경지까지 이르렀어도, 능히 천하에 적수는 다섯 손가락에 꼽기도 많았고, 탈명칠검의 일초식 일검탈명 만으로도 막는 자가 드물어, 초식의 이름이 그의 별호까지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그런데 겨우 2년 해놓고서 조바심을 내는 제자를 어찌 구슬려야 할지 유화명은 머리가 아팠다.
 “혹시 제자가 자질이 우둔하여, 그런 게 아닐까요, 사부?”
 웅이는 걱정되는 눈초리로 유화명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부의 말이 틀린 것을 보았느냐, 너는 요령부리는 방법을 몰라, 가르쳐 준대로 그대로 행하니 시간이 조금은 걸리지만 똑바로 나아갈 거라고.”
 유화명은 이렇게 대답하며 웅이의 불안을 달랬다.
 웅이의 자질이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는 이해하니, 그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해하는 유화명이었다.
 애초부터 뛰어나지는 않은 것을 알고도 데려온 자신이였고, 자신의 짐작대로 웅이가 우직한 면이 있어,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하고 연습하니, 더더욱 만족해하고 있는 차였다.
 고로 무학은 게으른 천재보다 부지런한 둔재가 나은 학문이기도 했거니와, 웅이는 둔재가 아니고 범재였으니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뒤를 따라 올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조금도 전진이 없잖아요.”
 “사부가 언제 틀린 말 하디?”
 “아뇨.”
 웅이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자 유화명은 웅이의 고개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사부의 말을 믿고 열심히만 하면 되지, 무슨 걱정을 그리 하느냐. 우리 웅이 연습해야겠지?”
 웅이는 아이다운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 열심히 해서 빨리 3류 4검까지 올라가서 부모님 모셔올래요.”
 유화명이 고개를 끄덕이자, 웅이는 중앙으로 달려나가 검을 뽑았다.
 “껄껄껄.”
 유화명은 제자의 행동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트리며, 할아버지가 손자를 쳐다보는 눈빛으로 웅이의 연습을 지켜보았다.
 
 ***
 
 무공(武功).
 크게는 외공과 내공으로 나누어지고, 세세하게는 권법, 검법, 도법, 창법 등등 많은 종류로 나누어진다.
 그 권법은 또 널리 퍼진 육합권법이나, 그 유명한 소림사에도 까다롭게 전수된다는 백보신권, 검법으로는 어린아이들도 알고 있다는 삼재검법에서 익히기가 너무나 까다로와 한 시대에 한 사람이 나오기 힘들다는 태극혜검 등 너무나도 세세하게 나누어진다.
 
 “무(武)라는 것은 이리 세세하게 나뉘어지는데 사람들은 너무 한 방향으로만 몰린다.”
 유화명은 웅이를 앞에 세워두고는 물었다.
 “웅아, 넌 내공이 먼저라 생각하느냐? 아니면 외공이 먼저라 생각하느냐?”
 웅이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내공이요.”
 “이유는?”
 웅이는 다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다들 그것을 중요시하잖아요. 그리고 내공을 익히면 하늘도 날수 도 있고…….”
 유화명은 속으로 웃었지만, 겉으로는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말했다.
 “틀렸다.”
 “그럼 외공이 중요한가요?”
 웅이가 묻자 유화명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틀렸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대답이 뭐에요? 사부.”
 웅이가 억울한 듯 소리치자, 유화명은 슬쩍 몸을 돌리며 대답대신 다시 물었다.
 “너는 검에 있어서 흐르는 기공이 먼저라 생각되느냐? 아니면 초식이 우선이라 생각되느냐?”
 “기공요.”
 “이유는?”
 아까와 똑같은 표정으로 묻는 유화명을 보며, 웅이는 불만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
 “기공이 없다면 일반인이 휘두르는 것이나, 고수들이 휘두르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잖아요.”
 “틀렸다.”
 “왜요?”
 유화명은 말이 필요없다는 듯이 검을 뽑고 휘둘렀다.
 햇빛이 검면에 반사되고, 검날에 베어 흩날렸다.
 “탈명천검.”
 유화명의 입에서 힘찬 소리가 들리며 유화명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이하게도 빨랐다. 검을 휘두르는 모습과 소리는 서로 제각기 나기 시작했다.
 검은 이미 휘둘러졌는데 다음 검이 휘둘러졌을 때야 전에 휘둘렀던 검의 소리가 들려왔고, 그것이 반복되어 검과 소리는 따로 놀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내 검과 소리는 일치했다. 완전히 한 바퀴를 앞선 듯, 미묘하게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웅이는 사부가 저 검이 뿜어대고 있는 바람으로 비상하는 것이 아닐까 심히 의심스러웠다.
 사부의 몸은 족히 1장위에서 놀고 있었으며, 검은 땅 아래를 향한 대기를 유린하고 있었다.
 유화명은 제자리에 조용히 내려서고는 웅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물었다.
 “내공만으로 이것이 가능하겠느냐? 아니면 외공만으로 방금의 탈명천검이 가능하겠느냐?”
 “네?”
 웅이는 놀라 소리를 냈다.
 “웅아, 모든 무공의 기초와 기본은 내공도 아니고 외공도 아니다. 기본은 조화이다.”
 유화명은 장포의 벗고, 옷의 소매를 걷어보이고는 자신의 팔뚝을 드러내어보였다.
 유화명의 팔뚝은 건장한 젊은이의 팔처럼 햇빛에 그을렸고,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었다.
 오십을 훨씬 넘어가는 노인의 팔뚝과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어보였다.
 “사람들은 너무 내공에만 치우친다. 외공은 하류의 무공, 그러니까 고급심법이 없는 자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이유를 들기도 한다. 하지만 웅아, 모든 무공의 처음은 이 외공이었지, 내공이 아니란다. 사람들은 그것을 잊었다.”
 “그러니까 사부의 말씀은 외공이 모든 무공의 기본이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웅이의 말에 유화명은 꿀밤을 주는 행동을 취하며 말했다.
 “이 녀석아 모든 무공의 기초와 기본은 조화라고 방금 이야기 하지 않았더냐, 이 사부의 말은 사람들은 외공을 너무 하류무공으로 취급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외공이 받쳐주지 못하는 내공은 그 효용성이 너무나도 적다.”
 “웅이는 이제야 사부의 말씀을 알아듣겠어요.”
 유화명은 그제야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옛날 몇 분의 선배고수가 있었다. 한분은 개방의 방주로서 항룡십팔장으로 천하를 굽어 보셨고, 또 한분은 화산파의 선배로서, 독고구검으로 역시 그 적수가 많지 않았다. 항룡십팔장은 외공의 극의 정수였고, 독고구검은 검의 절정에 이른 검이었다. 물론 그분들이 내공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는 외공과, 초식이었지.”
 웅이는 유화명의 말에 빠져들었다.
 “중원인들은 바보란다. 그들은 알아야 한다. 중원에서 그나마 알아주는 소림사와 무당파의 모든 무승들과 도사들이 처음 시작하는 것이 마보라는 것을.”
 “마보요?”
 웅이는 엉거주춤 앉아보이며 팔을 쭉 뻗었다.
 “마보는 우리도 하잖아요.”
 유화명은 소리내어 웃었다.
 “허허, 뭐 마보야 기초중의 기초이니 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하더라도, 내공심법이 고강하면서도 끊임없이 육체를 단련하는 곳은 소림사와 무당파밖에는 없더구나. 그러니 다른 문파들이 그 두 파를 따라잡기는 요원한 것이지.”
 유화명은 말을 잠시 쉬었다가 말했다.
 “내공만 너무 비약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비정상적이야, 거기에는 우리 신교도 벗어나지 못했다. 산중노인이라 불리었던 신교의 선배도 외공과 초식만으로 천하제일 고수였던 것을 깜빡했던 것이지.”
 웅이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사부, 그렇다면 내외공 10년을 쌓은 사람하고, 내공만 20년 쌓은 사람하고 싸운다면 내외공을 10년씩 골고루 익힌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지요?”
 “무공은 상대적이기도 하지만 절대적이기도 하다. 그렇게 비유해서는 아무런 답도 나오지 않는단다. 하지만 똑같은 조건의 똑같은 재질이었다면 이 사부는 내외공10년을 골고루 수련한사람에게 점수를 더 주고 싶구나.”
 “흠.”
 웅이가 짐짓 심각하다는 듯이 소리를 내자, 유화명은 재미있다는 듯이 웅이를 보다가 웅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리고 자고로 사내는 이 몸과 자세가 중요한 법인데, 외공도 수련해주면 몸매가 멋져지지 않겠느냐?”
 “배에 왕(王)자가 나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물론이지.”
 “사부처럼 혼자 안살아도 되겠죠?”
 “그것은 말이 좀 틀렸구나, 이 사부는 인기가 하늘을 찔러 이 사부가 스스로 자제했던 것이다.”
 이 늙은사부와 어린제자는 죽이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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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이는 바빴다.
 아침에는 천상칠류 중 첫 번째인 폭풍(暴風)류 익혔고, 오후에는 외공을, 그리고 밤에는 탈명칠검을 익혔다.
 중간중간에 뛰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점점 바빠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천상칠류.
 하늘위에 흐르는 일곱가지 기운이라는 심법으로서, 단계별로 이루어진 무공이었다.
 익히기가 극히 까다로울 뿐더러, 정종의 심법처럼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를 때까지는 효과가 미미하기가 이를 데가 없어, 신교 내에서 이 심법을 익힌 사람은 유화명과 웅이 밖에 없었다.
 아침은 기가 태동하는 때이니, 꼭 빼먹지 말라는 말에, 가장 먼저 시작하는 수련이었고, 가장 오랜 시간을 할애하는 무공이기도 했다.
 웅이도 싫어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지루했고, 다리도 저렸으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편안해졌고, 하늘을 나는 것처럼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후에는 지긋지긋해지는 체력단련 시간이었다.
 외공이라고 해봤자, 유화명이 웅이에게 원하는 것은 외공의 전문적인 무공이라기보다는, 심폐기능과 근육의 양을 늘리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그 날부터 웅이는 억지로 하루 한 차례씩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기 시작했다.
 십만대산의 산세는 험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이제 열 두 살의 소년이 하루 한 번 왕복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강제로 될 것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근육을 너무 무리하게 혹사시키면 성장근육이 파괴되어, 오히려 안하느니 못하는 것을 잘 알기에, 유화명은 웅이에게 어느 정도의 거리를 정해주었다. 그리고 그 길을 조금씩 늘려갔기에 망정이지, 무작정 수련을 했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났을 것이었다.
 웅이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라는 것을 잘 알지만, 힘들다는 것과 지루하다는 것 때문에 이 산을 오르내리는 수련을 굉장히 싫어했다.
 하지만 오후시간에는 자신이 게으름을 부린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가끔씩 사부가 눈을 부리부리 뜨고 몰래 감시까지 하기에,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었다.
 건강한 육체에서 맑은 내공이.
 건강한 육체에서 이쁜 소녀가.
 웃지 못 할 표어를 두고 웅이는 웃을 뿐이었다. 다만 사부가 그렇게 할 정도로 중요시하는 것을 알았기에, 열심히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저녁에는 탈명칠검을 전수 받았다.
 유화명은 웅이를 매우 애지중지했지만, 가르침에 있어서는 부모가 아이에게 일일이 숟가락에 밥을 떠서 먹여주는 식의 그런 스승은 아니었다.
 웅이가 이해했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유화명은 끊임없이 구결을 불러주며 초식을 시전했다.
 구결의 뜻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초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필히 자신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 누가 떠먹여 준다고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유화명의 지론이었다.
 웅이가 비록 총명하고는 거리가 멀었지만, 집중력과 끈기가 있어 끊임없이 파고들어, 차려준 것은 잘 먹으니 유화명의 마음을 매우 흡족하게 했다.
 그 상태에서 웅이가 전혀 모르겠다는 것은 슬쩍 한마디해주면 곧 잘 깨달았기에, 유화명은 웅이의 진전이 생각보다 빠른 것에 또 다시 흡족했다.
 웅이는 웅이 대로 사부가 끊임없이 심어주는 믿음에, 자신이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강해진다는 것 자체보다는 목표에 한발자국씩 다가가고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은 것이다.
 웅이에게는 목표가 있었다.
 어서 빨리 3류 4검까지 나아가, 부모님과 동생들을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이곳에 와서는 정말 너무도 편했다.
 무엇보다도 배가 굶주리지가 않았다.
 하루 세끼 나오는 음식들은, 그전까지 구경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고급음식들이었다.
 그런 것들은 다 제쳐두고라도, 하얀 쌀밥과 고기는 빠지지 않았고, 계란 같은 것은 자신이 먹고만 싶다면 산처럼 쌓아놓고 먹을 수 있었다.
 항상 계란을 배불리 먹고 싶어 했던 2년 전을 생각하면, 분명 하나의 소원은 이룬 것이었다.
 웅이는 그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매끼니 마다는 아니지만, 웅이는 며칠에 한 번은 밥상을 앞에 두고 목이 미어짐이 있었다.
 부모님께 대접하고 싶었고, 동생들에게 먹이고 싶었다.
 자신만 이렇게 먹고 있는 것이, 부모께 불효를 저지르는 것이고, 동생들을 보살펴야 하는 장남의 의무를 어기는 것이 아닌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사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잘 먹고 잘 자고해서 빨리 무공을 익혀서 부모님을 모셔오고, 동생들을 목마 태워서 오게 하면 되지 않느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단식투쟁은 확실히 좀 더 길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자신의 목표를 되새기는 웅이었다.
 
 
 2장 첫 만남
 
 그 날은 날씨조차 좋지 않았다.
 습기 자욱한 냄새로 보건데, 분명 비가 한바탕 난리를 떨며 내릴 것이고, 천둥과 번개는 덤일 것이다.
 산은 전체적으로 살기까지 짙어졌으니, 날도 이런 날은 없었을 것이다.
 피의 날.
 비가 쏟아짐에도 그 피의 냄새는 가실지를 몰랐다. 피 냄새는 산을 벗어나 산맥을 점령했음에도, 산맥의 맹수들은 감히 그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웅이는 유화명에게 끌려오다시피 이곳으로 왔다.
 자신과 사부만이 온 것은 아니었다. 청랑의 깃발을 펄럭이며 물경 300의 청랑대 인원이 전부 모여 이곳을 에워싸다시피 했다.
 웅이는 무슨 일인가 싶어, 사부에게 몇 번 물어보았지만, 사부는 미처 자신의 질문을 못 들은 듯, 여러 사람에게 지시를 내리기에 바빴다.
 웅이는 슬그머니 빠져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제일 크다고 생각했던 대웅전 보다 큰 집이었다.
 이 곳은 사람이 없는 듯, 그 주변에서 푸른색의 무복을 입은 청랑대원들만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웅이는 한참을 기웃거린 후에 호수가 있는 정원을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갔다.
 “히야! 집 안에다가 연못을 이리 크게 만들다니.”
 웅이는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했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눈앞에 들어온 것이었다.
 자신의 몸집보다 훨씬 작은 여자아이.
 그 여자아이가 커다란 나무아래서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웅이는 이내 작은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자기도 쪼그리고 앉았다.
 ‘어…… 울고 있네…….’
 웅이는 여자아이가 숙인 쪽 땅으로 물기가 고여 있다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고인 양은 작지만, 그 정도라도 그 여자아이가 얼마나 울었는지 짐작이 갔다.
 웅이는 손을 여자아이의 머리에 얹고 쓰다듬으며 물었다.
 “너 왜 울어?”
 “누구야?”
 여자아이는 갑자기 고개를 벌떡 들고는 웅이를 바라보았다.
 “강웅.”
 웅이가 씩 웃으며 대답하자 여자아이는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름을 물은 것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대답하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너는 누구야?”
 웅이가 묻자 여자아이는 머뭇머뭇 거리다가 대답했다.
 “소소.”
 “소소, 만나서 반갑다.”
 웅이는 다시 소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하자, 소소는 눈동자를 위로 올려 웅이의 손을 바라보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웅이는 덥석 안아 들었다.
 “어…….”
 소소는 깜짝 놀라 덥썩 웅이의 목덜미를 안았다.
 “내려줘.”
 웅이는 소소를 안은 채로 여러 바퀴 돌았다.
 “까아아!”
 소소는 놀라 소리치는 순간, 어느새 땅바닥에 내려앉았다.
 “뭐야?”
 소소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웅이에게 따졌다.
 “재미없었어?”
 웅이는 두 눈을 꿈뻑꺼리며 물어오자, 소소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웅이는 소소가 고개를 젓자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한 번 더해줄까?”
 “응.”
 “내가 오빠인데, ‘네.’ 해야지.”
 웅이가 지적하자 소소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작은할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존댓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웅이가 먼저 말했다.
 “안 해준다.”
 웅이가 으름장을 놓자, 소소는 재빨리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
 웅이는 소소의 대답이 끝나는 순간 다시 한 번 소소를 번쩍 안아들었다. 그리고 다시 빙빙 돌았다.
 “까아아!”
 소소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아깐 놀란 비명이었지만 이번엔 재미있다는 환호성이라는 것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강미도 이정도 되었을 텐데…….’
 웅이는 막내 여동생 강미가 불현 듯 생각났다.
 “소소는 몇 살이야?”
 “여덟 살.”
 ‘나이도 똑같구나.’
 소소가 강미의 나이와 똑같다는 것을 알자, 웅이는 정말 소소가 막내 여동생처럼 느껴졌다.
 웅이가 도는 것을 멈추고, 밝은 곳에서 소소를 보니 소소의 눈물자국이 뚜렷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품에서 손수건 하나를 꺼내어 소소의 눈가며, 뺨 등을 닦아주며 물었다.
 “소소는 왜 울었어?”
 소소는 기분 좋다는 듯이 웅이의 손에 얼굴을 맡기고 있다가, 웅이의 질문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큰 눈망울이 다시 글썽글썽 거렸다. 왜 자신이 울고 있었는지 다시 생각이 난 모양이었다.
 “울면 안 돼.”
 웅이는 급히 말하며 몸을 돌려 등을 소소에게로 향햇다.
 “업어줄게.”
 웅이는 강미가 울 때마다 자신이 업어주면 울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고 말했던 것이었다.
 소소는 아주 잠깐 망설이다가, 웅이의 등에 업혔다.
 “오빠는 누구야?”
 웅이의 등에 업힌 소소는 웅이의 목덜미를 꼭 감싸안은채로 물었다.
 “나? 웅이.”
 “오빠이름은 웅이인데, 그러니까 누구냐고?”
 웅이의 대답에 소소는 답답한 듯이 말하자, 웅이는 소소를 한번 치켜 올리고는 대답했다.
 “우리 사부의 제자지.”
 “사부는 누군데?”
 “유, 화자, 명자를 쓰시는 어르신이셔.”
 웅이의 대답에 소소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어? 그럼 오빠가 작은 할아버지의 제자야?”
 “작은 할아버지?”
 “응, 작은 할아버지.”
 소소의 대답에 웅이는 고개를 돌려 소소를 보며 말했다.
 “작은 할아버지라면, 네 이름은 유소소구나?”
 “아니야, 내 이름은 천소소야.”
 “그런데 어떻게 작은 할아버지가 될 수 있어?”
 웅이는 모르겠다는 듯이 묻자 소소는 작은 입술을 뾰죽 내밀더니 말했다.
 “치! 꼭 성이 같아야만 작은 할아버지가 되나? 우리 할아버지랑 화명 작은 할아버지는 성은 달라도 가족 같은 분이라서 그렇게 부르는 거야.”
 웅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구나, 그런데 소소는 왜 울고 있었던 거야?”
 웅이의 물음에 소소는 금세 시무룩해지는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돌리고는, 웅이의 등에 얼굴을 바싹 갖다 대었다.
 웅이는 소소가 아무 말 하지 않고 자신에게 찰싹 달라붙자,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강미도 삐지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소소와 같은 행동을 한 것을 기억하고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밝은 밤하늘에 웃고 있는 아이.
 껑충껑충 뛰는 아이는 제 세상인 듯, 거침없이 달려간다.
 별 하나가 내려와 살며시 발아래 내려왔다.
 아이는 다시 껑충 뛰어 올라 그 별 위에 살풋이 내려앉았다.
 하늘 위로 올라올라, 달 가까이에 다가간다.
 아이는 여전히 웃고, 거침없이 달려간다.
 달 위에서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껑충껑충 뛰는 작은 아이.
 
 소소는 웅이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오늘은 너무 슬픈 날이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빠와 엄마가 죽었을 때보다 더 슬플 것 같다.
 언제나 곁에 있었던 유혼 아저씨도 죽었고, 세화 언니도 죽었다. 언제나 내가 좋아하던 유과를 만들어주던 막삼이 아저씨도 죽었다.
 ‘아가씨, 도망치세요.’
 ‘소주인, 어서 이곳을…….’
 모두 죽으면서 나에게 건넸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난 너무 무서웠다.
 정신없이 뛰었다.
 누군가 나를 안고 달리기도 했다. 아마 무쌍 아저씨였을 것이다.
 무쌍 아저씨는 오래 달리지 못했다.
 씨이잉 하며 날아오는 무언가에 막혔고, 무쌍 아저씨는 정신없이 검을 휘둘러야 했기 때문이다.
 난 너무 무섭고 놀라 비명을 질렀다.
 왜 갑자기 모두들 뛰고 검을 휘두르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나는 파악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나를 잡으려 했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막으려 했고, 어떤 사람은 나에게 어서 빨리 도망치라 외쳤고, 어떤 사람은 나에게 어서 오라고 외쳤다.
 그리고 오래가지 않아 나는 깨달았다.
 어떤 사람은 나를 죽이거나, 혹은 나를 이용해 협박하려 했었고, 어떤 사람은 나를 보호하고, 이곳을 탈출 시키려 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행위의 모든 사람들은 내가 아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나를 죽이려 하는 사람도 말이다.
 나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왜?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었으며, 아저씨 아줌마들…… 언니와 오빠들에게 착한 아이였으며, 할아버지와 선생님들이 가르쳐주는 공부를 열심히 익혔으며, 난 항상 웃으며 그들을 귀찮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나는 오늘 이렇게 무서워해야 하는 것인지 정말 화가 났다.
 나는 오늘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잊지 않아야, 절대 오늘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슬픈 날이다.
 나는 아이다운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이 가지고 있는 행복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오늘 일로 난 더 이상 아이답지 않을 것이며, 내 인생에서 아이의 추억을 얼마 가지지 못하기에 너무 슬픈 날이 될 것이다.
 
 “소소?”
 웅이는 소소가 등에 엎드린 채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자, 잠이 들었나 싶어 조용히 소소를 불렀다.
 
 웅이 오빠의 등은 넓고 따뜻했다.
 노래도 잘 불렀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노래이기는 했지만, 노래 가사도 좋았다.
 잘생기진 않았지만 못생기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무척 커서 좋았다.
 
 “오빠는 몇 살이야?”
 웅이는 잠이 든 줄 알았던 소소가 갑자기 나이를 물어오자, 뒤를 살짝 돌아보고는 말했다.
 “난 열두 살. 안 잤어? 강미는 이렇게 업어주면 잘 잤는데.”
 “강미가 누군데?”
 “막내 동생. 너랑 똑같은 여덟 살이야.”
 
 오빠의 대답에 난 안심했다.
 열 두 살이면 나랑 네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나는 너무 슬펐는데 조금씩 괜찮아졌다.
 화명 작은 할아버지의 제자라면 자주 볼 수도 있다.
 나는 이 오빠가 너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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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밤은 좋았으나, 스산했다.
 산의 골짜기를 타고 흘러 들어오는 바람은 소름이 돋았고, 나무를 통과해오는 바람은, 공포심을 불러왔다.
 바람에 실려오는 피의 향기는 그런 분위기를 더더욱 처절하게 연출해내기 시작했다.
 지금의 산은 그러했다.
 
 유화명은 책상에 앉아 생각했다.
 ‘오늘 벌어진 일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깜짝 놀랄 일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분노했기도 했다.
 유화명은 한편으로 안심하기도 했다.
 운이 좋았다, 정말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까딱 했으면 정말 신교가 뿌리째 뽑혀버렸을지도 몰랐다. 노한 교주는 절대 인정을 두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관련된 당사자는 사실을 몰랐더라도 죽였다. 정말 눈곱만큼이라도 관련이 되어있다면 모조리 죽었다.
 교주의 반대파.
 평화를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교주에 맞서, 신교를 모멸하는 무리를 멸해야 한다는 강경파가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교주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사실 교주의 인내는 인간의 그것을 훨씬 넘은 감이 있었다. 교주는 강경파가 생각하는 온순한 사람이 아니라 아주 지독히 호전적인 사람이었다.
 교주는 무서운 사람이었고, 무서운 사람은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이었기에, 교주는 참은 것이었다.
 그가 한 번 검을 빼들면 천하는 피에 젖는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하지만 사고는 교주가 아니라 강경파의 무리들이 쳤다.
 그들은 감히 교주의 하나뿐인 손녀이자, 혈육인 소소의 납치를 기도했던 것이다.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죽었다.
 처음 한 시진 내에 성공해야 그들은 살 확률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죽었다.
 유화명은 자신도 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웅전에는 호위무사들이 있었고, 청랑대의 몇몇이 교대로 대웅전을 알게 모르게 경비를 하고는 있지만, 이런 일이 발생한 이상 그것 가지고는 너무 불안했다. 오히려 왜 지금에서야 이런 생각을 했는지, 자신의 머리를 책망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칠 뻔했구나.’
 유화명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소교주의 비밀호위인 왕무쌍 정도의 인물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웅이에게 호위가 필요했다.
 
 와각무적(蝸角無敵) 황무심(黃無心).
 무공으로 따지면 그를 맞상대할 자가 교내에서 백이 넘지는 않지만, 서열자체는 낮기가 그지없었다.
 힘의 논리가 중요시되는 교에서 이해 할 수가 없는 인사이기는 했지만, 그를 아는 자는 오히려 그가 부교주의 직속인 적랑 삼대 중 2대의 부대주인 것이 오히려 의아해 했다.
 와각무적.
 말 그대로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운다는 뜻으로, 굉장히 사소한 것으로 자주 싸우기에 붙여진 별호였다.
 단지 그것이면 와각무적이라는 별호가 붙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무식하지만 않았어도 그런 별호는 그의 무공을 비추어볼 때 절대 붙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무공에서야 몸을 움직이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치지만, 머리는 무식해도 너무 무식했다.
 문제는 그가 일자무식인 주제에 지기 싫어 항상 끝까지 우겨댔고, 상대방이 아주 진절머리 날 정도로 귀찮게 하여 끝끝내 상대방이 황무심의 이야기가 맞다고 손을 들어주기에 붙여진 별호였다.
 그런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의 숨이 붙어있는 이유는 그를 힘으로 굴복 시킬 자가 많지 않았고, 그를 굴복시킬 수는 있다 하더라도, 황무심이 부교주 유화명의 직속부대의 간부였기에 그의 얼굴을 봐서 어느 정도의 선에서 끝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기본적으로 성정이 선했기 때문에 등 뒤에 칼맞을 정도의 원한은 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화명은 이 힘만 세고, 성질 급하고, 무식하기 이를 데 없다고 소문난 황무심을 좋아했는데, 그 이유가 사내는 자고로 저런 뚝심과 고집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부교주 유화명이 황무심의 성격이 자신과 비슷하기에 총애한다고 수군거리기도 하지만, 유화명이 누구인가?
 교의 실세이자 늙은 여우라 불리울 정도로 치밀한 자였다. 그와 황무심을 비교한다는 것은 그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 미련한 자들뿐이었다.
 그래서인지 황무심이 대들지 못하는 유일한 사람은 부교주 유화명뿐이었다.
 유화명은 황무심을 호위무사로 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단지 입이 가벼울 뿐이었고, 학문을 배우기 싫어하는 사람이었지,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더더군다나 무공도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러 있었고, 무엇보다 충성심이 강하였으니, 유화명이 찾는 임기응변에 강하고 무공 수준이 일정수준에 호위무사로는 딱이었다.
 “무심.”
 “네, 부교주님.”
 부교주가 자신을 찾는다는 소리에 허겁지겁 달려온 황무심은 자신을 보자마자, 부르는 유화명을 보고 대답했다.
 “내 자네에게 부탁할 것이 있는데 말야.”
 황무심은 유화명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부교주가 자신에게 부탁이라니, 황무심에게 이런 영광이나 이런 격려는 없었다. 부교주가 부탁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그만큼 믿어준다는 소리 아닌가.
 “명령만 내리신다면 타오르는 불 속이라도, 끓어오르는 물속에라도 뛰어 들겠습니다.”
 황무심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자 유화명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들어준다는 소리인가?”
 “말씀만 하십시오, 부교주님. 이 황무심 항시 준비되어 있는 사내입니다.”
 “좋아, 좋아, 내 자네를 믿으니 이런 부탁도 하는 것이지.”
 유화명은 황무심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자네 내 제자 알지?”
 “물론입니다. 제 어찌 부교주님의 하나뿐인 제자, 강웅 소공자를 모를 수 있겠습니까.”
 마치 전쟁터를 앞둔 장군의 표정처럼 비장미가 감도는 황무심의 표정에 유화명은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자네 우리 웅이 호위무사 할래?”
 “네?”
 유화명은 황무심의 더 커진 눈을 뒤로하며 말했다.
 “우리 웅이가 말이지, 착하기가 이를 데가 없어서 말이지, 이놈이 너무 무방비 상태란 말이야.”
 유화명의 말을 들은 순간 황무심은 눈앞이 컴컴해졌다. 자신이 왜 좋은 청랑 부대주 자리를 내놓고, 새파랗게 어린 자식놈의 호위무사를 해야 한단 말인가?
 부교주 직속의 신교 3대 무력단체 청랑 삼대중 2대의 부대주.
 부교주 유화명의 하나뿐인 제자, 강웅의 호위무사.
 두 개를 딱 비교했을 때 멋이 나는 것은 첫 번째지, 두 번째가 아니었다. 더더군다나 호위무사라 함은 맨날 같이 붙어있어야 하니, 술도 제대로 못 마실 테고, 즐겨가던 기방도 가지를 못할 것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연무시간을 뺏기는 것이 당연했다.
 “부…… 부교주 그건…….”
 황무심은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굴리며, 어떡해든 좋게좋게 거절의 말을 해보려는 순간 유화명의 말이 이어졌다.
 “아! 큰일이야, 자네 같은 유능한 인재가 드물다는 것이 말이야, 웅이 녀석의 호위무사가 되려면 똑똑하기도 해야 하고 무공도 강해야 하는데, 그런 인재가 많지 않아.”
 “그…… 그렇겠지요.”
 유화명은 슬쩍 황무심을 보며 계속해 말했다.
 “사실 내 제자 놈이 이제 무공에 조금씩 눈을 뜨고 있는데, 내가 시간이 모자라 오랫동안 봐주질 못한 단 말이야, 그래서 유능한 인재 하나 데려다가 내 무공의 오의를 조금씩 가르쳐주면서, 나 없을 때 웅이 녀석의 선배입장에서 다시 무공을 가르치게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유화명의 말에 황무심의 귀가 번쩍 열렸다.
 유화명이 누구인가?
 천하에 적수가 드물다는 교내에서도 교주와 광명우사와 같이 세 손가락에 꼽히는 초 절정고수였고, 천하에서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는다는 소위 지존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유화명의 오의라고 하면 자신 같은 사람에게는, 미끼 없는 낚시꾼에게 지렁이를 대량 공급해주는 격이요, 탈 것 없는 화로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그리고 호위무사라고 해봤자, 웅이 녀석이 밖에를 나가지 못하는 이상, 하루 종일 이곳에서 아무 신경 쓸 것 없으니,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 되는데 말이야.”
 공식적으로 자유시간까지 준다는 말에 황무심은 미끼를 털컥 물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부교주님.”
 “응? 정말 할 생각인가…… 내 자네에게 호위무사나 하라고 했던 게, 미안하던 참인데……”
 유화명이 슬쩍 입맛을 다시자, 황무심은 자신의 가슴을 쿵쿵 치며 말했다.
 “부교주님의 하나뿐인 제자인 강웅 소공자인데, 제가 호위를 해야지 또 누가 있어 그런 막중한 임무를 맡겠습니까? 믿어주십시오, 성심성의를 다해 공자의 안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진심인가?”
 유화명이 힐끗 쳐다보며 묻는 말에 황무심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믿고 있겠네, 이제야 한시름 놨구만, 자네가 해준다면야 내 든든하기 이를 데가 없지. 껄껄껄”
 황무심이 대답을 한 이상 이미 다 된 밥인지라, 유화명은 여유롭게 웃자, 황무심도 따라 웃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교주님, 그럼 부교주님의 무공전수는 언제쯤……?”
 “껄껄, 급할 것이 있나, 내 천천히 전수해주도록 하지.”
 “그것이, 아무래도 공자를 지키려면…….”
 “너무 조급해 하지 말라 그래도 껄껄.”
 유화명의 웃음소리가 왠지 껄쩍지근하게 들리는 황무심이었다.
 ‘나 속은 거 아냐……?’
 그리고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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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실이 세어나가면 모두 죽는다.”
 “염려치 마십시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자네를 믿고, 그럼 아무 말 하지 않겠네.”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사내가 사라지자 신교본전의 총관인 구화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내의 말이 아니더라도 잘 알고 있었다.
 까딱하다가는 모두 죽는 일이였다.
 총관은 자리에 앉아 사람을 고르기 시작했다.
 좋지 않는 일은 항시 그랬듯이 밤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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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희는 유화명이 웅이의 말동무를 시키기 위해 데려온 아이였다. 웅이가 가끔씩 우울해보이고, 무공을 수련하지 않는 시간에는 혼자 놀기가 안쓰러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남자아이를 데려오려 했으나, 웅이의 주변에 모두 남자들뿐이라, 아무래도 여자아이가 더 낫다고 판단하여 데려온 여자아이였다.
 풍성한 머리카락을 자랑하고, 살결도 하얀 이쁜 여자아이를 보고 웅이는 매우 좋아했다.
 자신도 드디어 친구가 생겼다고 기뻐했다.
 유화명이 살짝 후회가 들 정도로, 웅이는 소희와 꼭 붙어 다녔다. 밥도 함께 먹었고, 자신의 무공시간에는 옆에서 구경하게 했고, 자유 시간에는 하루 종일 같이 있었던 소희와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은지 재잘거리기도 했다.
 말 그대로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웅이와 소희는 꼭 붙어 다녔다.
 유화명은 한 마디 할까도 생각했지만, 웅이의 나이가 어리고 여지껏 외로웠던 웅이에게 괜한 상처를 줄까봐 그것을 지켜만 보았다.
 
 눈부신 해가 뜨고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 하루 종일 대웅전에서 손짓, 몸짓, 발짓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원래 이런 날은 놀아야 되는 거 아냐?’
 웅이는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웅이 딴에는 정말 못마땅했다. 빨리 익히면 익힐수록 가족을 빨리 볼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똑같은 일만 반복하니 갑갑한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소희야.”
 “네, 공자.”
 웅이의 부름에 작은 소녀하나가 웅이의 곁으로 쪼르르 달려가며 대답했다.
 “공자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그냥 웅이라고 부르라니까.”
 웅이는 소희라 부른 소녀에게 타이르듯이 말하자, 소녀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소녀가 어찌 감히 공자에게…….”
 “에구, 답답해라.”
 웅이는 자신의 가슴을 탁탁 치더니 말했다.
 “너는 내 친구하라고 사부가 데려왔다니까 그러네.”
 소희는 황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어찌 공자의 친구가 되겠습니까…….”
 “에이구.”
 웅이는 근 반년이나 같이 있었던 소희에게 말을 놓기를 강요했으나, 소희는 요지부동이었다.
 자신이 강요할수록 소희가 더 힘들어하는 것을 안 웅이는 더 이상 소희에게 말을 놓는 것을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가뜩이나 덥고 동무가 필요한 날, 소희가 저런 식으로 나오니 재미가 없는 웅이었다.
 소희를 빼고 특별히 어울릴만한 친구가 없는 웅이에게 소희의 태도는 굉장히 김이 빠지게 만들었다.
 교내에 어린 아이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웅이와 어울릴만한 아이는 십중팔구 커서 서로 적이 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유화명은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신교는 약육강식의 세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수년마다 열리는 신교대전과 평상시에 벌어지는 암투는 상상을 초월했다. 웅이는 물론이거니와 교주의 하나 뿐인 손녀인 소교주도 이 소용돌이는 빠져나가지 못했다. 신교는 원래부터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조직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어른들을 보고 배운다.
 어른은 자신의 아이를 위해 좀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주고자 한다.
 서열 다툼은 그래서 벌어졌다.
 유화명은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릴 때의 친구들이 적이 된다면, 마음 약한 웅이가 불리할 것은 뻔했기 때문에 애초부터 그런 정을 줄 만한 사람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웅이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그래서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사부와 호위무사인 무심, 대웅전에서 일하고 있는 시종들과 하나뿐인 어린아이인 소희뿐. 그리고 간간히 근엄한 큰 할아버지와 같이 오는 소소뿐이었다.
 “우씨!”
 웅이는 대웅전에 누워서 몸을 비비 꼬면서 아무런 생각도 없고, 이유 없는 행동을 하였다.
 “무심 아저씨.”
 소희가 안절부절 하는 것을 옆으로 하고, 웅이는 고개를 돌려 황무심을 불렀다.
 “예, 소공자.”
 황무심은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권각술을 수련하다가 웅이가 부르는 소리에 행동을 멈추고 대답했다.
 “무심 아저씨는 안 심심해요?”
 ‘아! 호위무사도 못해먹을 짓이다. 조금 집중이 될 만하면 저렇게 불러싸니.’
 무심은 그런 생각을 그대로 인상에 나타내며 대답했다.
 “공자님, 오늘도 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부교주님이 보시면 경을 칩니다.”
 “어제는 안 그랬는데, 뭐가 오늘도예요, 무심 아저씨는 무슨 말을 확대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으시다니까.”
 황무심은 정색을 하며 웅이를 바라보았다.
 “공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확대해석이라니요.”
 와각무적 황무심.
 그의 본색이 지금 나타나려 하고 있었다.
 “제가 말한 것의 어느 부분이 확대 해석이라고 하십니까? 오늘도 꾀를 부린다는 말이 확대해석입니까? 아니면 부교주님이 경을 칠거라는 말이 확대해석입니까?”
 웅이의 넉넉한 볼살이 흔들렸다. 사부가 데려온 황씨 아저씨는 말이 너무 많았다.
 “어제는 게으름을 피지 않고 열심히 수련하였는데, 무심아저씨가 오늘도 꾀를 부리고 있다는 말은 이상하잖아요.”
 분명 괴상한 대꾸가 날아올 것을 알고는 있지만 웅이는 그래도 지기 싫은 마음에 대답하자, 황무심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목에 핏줄을 세워가며 말했다.
 “아니지요, 아니지요, 제가 오늘도 라는 말을 했지만, 그것이 꼭 어제도 그랬다는 전제조건은 아니죠, 저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오늘도 라는 말이지,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는 오늘도가 아니란 말씀입니다. 설마 공자가 과거에도 게으름을 부리지 않았다는 말씀은 못하시겠지요.”
 “말도 안돼요.”
 웅이는 어이가 없어 항변하자, 황무심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했다.
 “아니지요, 아니지요, 제 말은 말이 됩니다. 무슨 생각으로 말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시는지는 모르지만, 저의 말은…….”
 “그만, 그만.”
 웅이는 두 손을 흔들며 다시 이어지려는 황무심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무심 아저씨의 말이 옳아요, 제가 말을 잘못한 거죠.”
 웅이가 두 손을 들자 그제야 황무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저는 공자를 지키기 위한 무공을 수련하도록 하겠습니다.”
 황무심이 몸을 돌리자 웅이는 혀를 쏙 내밀고는 중얼거렸다.
 “췌, 누가 좋아서 하는 것인지 모를까봐, 괜히 내 핑계는.”
 “공자…… 저는 식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무심에게 퇴짜를 맞은 뒤이니, 분명 화살은 자신에게 쏠릴 것을 안 소희는 슬쩍 뒤로 물러나며 말을 했다.
 “난 누구랑…….”
 소희마저 슬슬 뒤로 빠지자, 웅이는 투정을 부리며 누구랑 놀아를 외치려는 순간, 입이 순식간에 다물어졌다.
 “사부랑 놀면 되지.”
 웅이의 시야에 유화명이 들어왔다.
 “사부!”
 웅이가 함지막한 웃음을 짓고는 유화명에게 달려갔다.
 “녀석.”
 유화명은 달려오는 웅이를 그대로 잡아 허공에 띄우고는 말했다.
 “내가 없다고 매일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는 중이렸다.”
 “아니에요, 웅이는 항상, 매일, 언제나, 늘, 열심히 수련중이에요.”
 “아니지요, 아니지요, 공자는 그런 새빨간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거지요.”
 황무심이 어느샌가 곁에 와서는 말하자, 웅이의 이마가 상당히 찡그려졌다.
 “부교주님을 뵈옵니다.”
 황무심이 유화명에게 인사를 하자, 유화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우리 웅이가 거짓말을 하다니?”
 황무심은 슬쩍 웅이를 바라봤다가 말했다.
 “항상, 매일, 언제나, 늘 수련은 하시지 않으셨지요, 방금까지 만해도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난 것처럼, 이리 뒹굴뒹굴, 저리 뒹굴뒹굴 하셨으니, 항상 매일 언제나 늘이란 말은 공자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지요.”
 유화명도 웅이만큼이나 이맛살을 찡그리며 생각했다.
 ‘저놈의 저 성격과 말만 아니면, 벌써 뭔가 됐어도 진작 되었을 놈이었을 텐데.’
 유화명은 안타깝다는 듯이 혀까지 차며 말했다.
 “쯧쯧, 네놈은 항상 그놈의 혓바닥이 문제야, 내가 한 두 치만 잘라줄까?”
 황무심은 잽싸게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농담처럼 던지는 말도 유화명이 말하는 것은 항상 조심했어야 했다. 농담이든 진담이든 분명 그러한 생각은 했다는 것이었고, 그렇다면 그런 생각이 언제, 어느 순간 현실화 되도 이상한 것이 없는 곳이 이 곳이었다.
 “쯧쯧, 덩치는 산 만한 놈이 혓바닥과 간이 저리 가벼워서야……”
 유화명이 다시 한 번 혀를 차며 말하고는 웅이를 자신의 어깨에 앉혔다.
 웅이의 나이가 이제 열두 살이었고, 잘 먹고 잘 커서 덩치도 이미 유화명의 가슴팍까지 자랐으니, 어깨에 앉히기는 보기 에도 불균형해보였으나, 유화명은 누가 뭐래도 웅이를 어깨에 앉히며 데리고 다니기를 좋아했다.
 “오늘은 사부랑 놀러가자.”
 “사부 최고.”
 웅이가 눈이 반짝거리며 입을 크게 벌리며 좋아하자, 유화명의 입도 크게 벌어졌다.
 “가자.”
 유화명은 바람에 실려 가듯, 발이 땅바닥에 스치는지 안 스치는지 헷갈릴 정도로 움직임을 보이며 대웅전을 벗어났다.
 “으!”
 웅이는 유화명의 어깨 위에서 신음성 같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사부의 어깨는 아버지처럼 크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편했고, 하늘에서 느끼는 바람은 항상 좋았다.
 “웅아.”
 유화명은 산을 오르며 바람에 취해있는 웅이를 불렀다.
 “네, 사부.”
 “좋냐?”
 웅이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사부.”
 “껄껄껄!”
 유화명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 순간 웅이가 물었다.
 “그런데 사부, 전 언제 이렇게 빨리 날아 다닐 수 있을까요?”
 “껄껄껄, 네가 강호를 나가는 순간에는 이렇게 날아서 돌아다닐 것이다.”
 “강호요? 내 둘째 아우 이름도 호인데, 강호. 셋째 동생이름은 강학, 막내 여동생 이름은 강미구요.”
 유화명은 웅이의 앞에서는 가족이야기를 절대 꺼내지 않았기에 제자의 동생들 이름을 처음 들었던 듯 말했다.
 “이름도 참, 죄다 동물이네?”
 “네, 사부.”
 유화명은 고개를 돌려 웅이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둘째 동생이 호랑이인데, 장자인 네가 어찌 곰이 됐어? 모름지기 동생이 호랑이이면 장자인 너는 강진(용) 정도는 되어야지. 아니면 네가 호, 동생이 웅이 되어야지.”
 웅이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버지가 장남은 곰처럼 듬직하고 우직한 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셔서 그렇게 지으셨대요.”
 “그거 말 되네.”
 유화명은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제가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어느새 그들은 산 정상에 올라와 있었다.
 주위 산중 최고 봉우리인 듯 짙은 안개가 드문드문 끼어있었고, 산 아래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유화명은 손가락으로 수많은 전각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킨 후 말했다.
 “웅아 잘 봐두거라.”
 웅이의 시선이 유화명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이 향했다.
 “저곳은 앞으로 너의 새로운 고향이 될 것이고, 집이 될 것이다. 집은 너에게 무한한 힘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그 반대로 너를 잡아먹을 수도 있는 용담호혈 같은 곳이다.”
 유화명은 웅이의 손을 힘주어 잡으며 계속해 말했다.
 “웅아, 강해지거라. 네가 강해야지 집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고, 나아가 너의 가족도 이곳으로 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법이다.”
 “무조건 강해지면 편하게 지내는 건가요?”
 유화명은 고개를 저었다.
 “웅아, 대장부(大丈夫)란 자신의 길을 알고 거기에 정진 하는 사내다. 무조건 강해지는 것은 그저 힘 있는 무부가 될 뿐이고, 왜 강해져야하는지를 자신이 정확히 인지하고 거기에 끊임없는 열정과 노력을 퍼붓는 것은 대장부이다. 그렇기에 대장부가 되기 어려운 법이지.”
 “대장부가 좋은 건가요?”
 “내 자신에게도 떳떳하고 남에게도 떳떳한 것이 대장부다. 사내 웅이, 남자 웅이, 사내대장부 웅이, 어느 것이 더 멋있냐? 어감부터가 틀리지 않냐?”
 웅이는 스승의 말이 이해가 안가는 바가 많았지만, 스승이 아주 진지했으므로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 할뿐이었다.
 “그렇다면 웅이는 나중에 사내대장부가 될래요.”
 
 
 3장 성장
 
 많은 것을 겪어야 했다.
 나는 많은 힘든 것을 이겨내었고, 계속 그렇게 이겨 낼 것이다.
 ‘사내대장부란 강해져야 하는 목적을 가지고 거기에 끊임없이 열정과 노력을 퍼붓는 것이다.’
 사부의 그 말은 나의 마음속에 너무나도 깊게 새겨졌다.
 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힘들다는 것을 웃어 넘길 줄 아는 그런 여유를 가지게 할 것이 분명했다.
 여태껏 그렇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소희에게 이 말을 했더니 ‘공자는 꼭 큰 뜻을 이루실거에요.’라고 말한다.
 가족을 부양하는 것은 사내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니, 소희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으나, 왠지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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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을 좀 더 많이 만나고 싶다.
 사부의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은 너무 폐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말동무는 무심아저씨와 소희 밖에 없었다.
 그것도 무심아저씨는 자신의 무공수련에 정신이 없었고, 소희는 무엇이 불만인 듯, 네, 아니오, 정도의 대답밖에 없다.
 아! 사부는 나를 폐관수련을 시키시려 하신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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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가 또 컸다.
 하지만 무공은 조금도 크지 않았다.
 소희가 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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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왜 사부는 나를 데려 왔을까?
 그러고 보니 심각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내가 똑똑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운동신경이 뛰어나 초식을 수월히 익히는 것도 아니다.
 사부는 굉장히 높은 사람이고, 뛰어나신 분이다.
 그런데 왜 나 같은 아이를 제자로 받으셨을까?
 그리고 난 왜 이곳에 있을까?
 …….
 
 소희는 왜 이곳에 있을까?
 소희도 나처럼 반강제적으로 이곳으로 왔을까?
 아니면 스스로 온 건가?
 고아일까?
 그러고 보니 소희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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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일간 고민하던 문제의 해결을 보았다.
 나는 강웅이다.
 나만의 뛰어난 점이 있으니, 사부 같은 분이 나를 제자로 키우시는 것이다.
 더더군다나 사부의 제자는 나뿐이다.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사부의 제자는 이곳에서 평범한 신분이 아니다.
 그래서 모두들 나를 존대하고 있는 것이겠지.
 심지어는 소희까지도 말이다.
 어차피 꿈이 우리 부모님과, 동생들을 내 손으로 편하게 살게 하고 싶다는 것이라면.
 어떻게 보면 나는 행운아일지도 모른다.
 사부의 말을 틀린 게 없었고, 나는 조금만 있으면, 내 손으로 가족을 편하게 모실 힘을 가지게 된다.
 음…… 기왕이면 소희도 내 손으로 편하게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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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 흐르는 일곱 가지 흐름.
 첫 번째 폭풍류.
 소음, 소양, 두 혈을 완전히 채워버렸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소희와 무심아저씨, 그리고 사부까지 같이 축하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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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이는 평상시에 입는 황색의 무복대신 깨끗한 백의와 장포를 걸쳐 입었다.
 ‘오늘은 확실히 비가 오겠는걸.’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짙은 먹구름 때문에 하늘은 저녁처럼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아버지의 생신.
 분명 같이 있었다면 아침에 큰 절을 올리고, 아버지의 생신을 축하드렸을 터이지만, 그러지 못하니 다른 방법이라도 찾아야 했기 때문에, 깨끗한 백의를 챙겨 입은 것이다.
 신교에서는 천산이라 불리우는 산맥에 최정상 봉우리에 올라갈 준비를 마친, 웅이는 서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준비라 해봐야 그의 품에는 작은 호리병에 들려있는 술과, 한 손에 작은 보따리가 전부였지만 말이다.
 십만대산의 산맥은 지세가 험악함으로 유명했기에 전문적인 약초꾼이나, 숙련된 사냥꾼이외에는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곳이었다.
 웅이는 가지고 있는 내력으로는 내공을 운용하여, 신법을 전개할 정도는 되지 못했으나, 어렸을 때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산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반복했기에, 빠른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한 속도로 산을 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비를 좀 맞겠네.’
 산 정상을 얼마 남겨두지 않는 시점에서 짙은 습기를 맡은 웅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늘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일각 내에 쏟아 질 것 같은 예감이 들자, 웅이는 발걸음의 속도를 빨리 했다.
 아니나 다를까 웅이가 산 정상에 오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웅이는 재빠르게 보자기를 풀고 조심스럽게 싸온 음식을, 보자기 위에 깔아놓고 품에서 술병과 술잔을 꺼내어들었다.
 ‘아버지, 이 불효자 여기서나마 아버지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웅이는 속으로 생각하며, 술잔에 술을 따르고 고향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고는 큰절을 올렸다.
 불쑥 치밀어오는 감정에 웅이는 입을 크게 벌려 소리쳤다.
 “아버지 생신 축하드립니다.”
 웅이는 멍하니 북쪽을 바라보았다.
 ‘고맙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 했다.
 웅이는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생각하다가, 비가 점점 심하게 내리는 것을 깨닫고는 지금 산을 내려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일단 내려가자고 마음먹고 산을 내려오는 도중에 비는 그 굵기를 더했고, 속도를 더하자 웅이는 걸음을 멈추었다.
 산속에서의 비는 무서운 법이었다. 특히나 이 정도의 폭우면 더더욱 그러한 법이었다.
 가뜩이나 길이 없는 곳이라 일일이 눈으로 확인을 하며 내려가야 했지만, 비가 워낙 심하게 내리니 그것이 힘들어졌고, 곧 먹구름 속에 갇힌 해까지 저물 테니, 눈뜬 봉사가 될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토사물과 불어난 계곡물은 설사 무공이 뛰어난 고수라 하여도, 휩쓸리는 순간 죽음을 뜻할 정도로 무서운 법이었다.
 할 수 없이는 웅이는 작년 이 때 보아두었던 동굴에서 비를 피하기로 마음먹고, 동굴 쪽으로 이동을 했다.
 약초꾼이나 사냥꾼들이 아주 오랫동안 이용해온 것 같이 보이는 동굴인 듯, 동물의 냄새는 나지 않았고, 적지만 마른 나뭇가지나 잎사귀들이 있어 불까지 피울 수가 있었다.
 웅이는 불을 피워 옷가지를 말리고는 동굴 밖으로 시선을 돌려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다가 무슨 생각이 난 듯 소리쳤다.
 “무심 아저씨, 어디 계세요?”
 웅이의 외침이 빗속을 뚫고 바깥으로 퍼져나갔지만 반응이 없자, 웅이는 작게 미소를 짓고는 다시 외쳤다.
 “괜히 비 맞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세요.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고요”
 “아니지요, 아니지요, 저는 괜히 비를 맞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자의 분위기가 침울하고,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으시니, 방해를 하기 싫어 비를 맞고 있는 것뿐이지요.”
 무심의 말에 웅이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계속 거기 있으시든지요.”
 “아니지요, 아니지요, 공자께서 이미 명을 내리셨으니 거역하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으니, 이 무심 들어가야겠지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무심은 물에 빠진 생쥐마냥 잔뜩 비에 젖은 채로 동굴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옷을 벗어 말리시고, 운공을 하세요. 계속 그렇게 있으시다가는 감기 걸리시겠어요.”
 “아니지요, 아니…… 응?”
 무심은 말을 멈추었다. 웅이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은 까닥이었다.
 “공자,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웅이는 이미 시선을 바깥으로 돌린 채 입을 열었다.
 “제 고향에서도 이렇게 비가 내리고 있을까요?”
 “음…… 그건 저도 모르지요.”
 무심의 대답에 웅이는 중얼거리는 듯이 말했다.
 “만약 고향에서도 비가 이렇게 오고 있다면, 아마 우리 집은 굉장히 바쁠 거예요. 정신없이 쓰러진 벼를 붙잡아 세우고, 물이 완전히 고이지 못하도록 물길을 내면서 말이에요.”
 “뭐, 농부의 일이 대단히 고단한 건…….”
 무심은 농사에 대해 별 아는바가 없는지라, 말끝을 얼버무렸다.
 웅이는 무심의 말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가 다시 중얼 거렸다.
 “가을 날씨답지 않게 이리 폭우가 쏟아지니, 아버지의 걱정이 크실 거예요, 그래도 호와 학이도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테니, 아버지를 도울 수 있을 테니 그나마 조금 낫겠죠?”
 “뭐 그렇겠지요.”
 “사실 저도 그 자리에 있어야하는데…… 우리 네 부자가 같이 농사일을 한다면 금방 끝마칠 수 있을 거예요.”
 혼자 중얼거리는 듯이 하는 말인지는 알고 있었으나 무심은 꼬박꼬박 대꾸를 했다.
 “아무래도 혼자보단 둘이 낫고, 둘 보단 셋 넷이 나은 법이니까요.”
 웅이는 무슨 상상을 하는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웃었다.
 “그렇게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가 수고했다고 말씀하시고, 미가 부엌에서 간단하게 먹거리를 들고 올 거예요, 추수전이라 충분치는 않겠지만 굶주렸던 배는 어느 정도 채울 수는 있겠지요.”
 웅이는 정말 눈앞에 음식이라도 있는 듯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아마 잘하면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죽엽청도 한 병 내올지도 몰라요, 저도 나이가 있으니 어쩌면 아버지께서 술한잔을 주실 지도 모르고…… 호와 학이는 한 번 마셔보고 싶어서 제 모습을 보겠지요…….”
 “…….”
 무심은 더 이상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런 모습을 보시면 흐뭇하게 웃으실 테고…….”
 웅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굴 바깥으로 쉴 새 없이 떨어지는 폭우처럼, 그리움이 폭우처럼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공자…….”
 무심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웅이를 불렀지만, 웅이는 대답 없이 바깥을 바라보며 자신의 할 말을 할뿐이었다.
 “처음에는 사부 원망도 많이 했어요. 사실 이런 것은 제가 원하던 것은 아니었거든요.”
 “공자, 그래도 부교주님께서는…….”
 무심이 유화명을 위해 약간의 변명을 하려 했지만 계속되는 웅이의 말에 멈추었다.
 “알아요, 사부께서 저를 얼마나 위해주고 있다는 것을요. 어린 아이 하나 데려와서 얼마나 고생하고, 그 중한 시간을 빼았었을지도 짐작도 가구요.”
 웅이는 잠시 말을 멈추고 억양을 높게 하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하지만 제가 원한 것이 아니었거든요……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저의 현재 상황이 무척이나 부러웠을 거라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이렇게 가족을 보고 싶어 하는데, 끝내 들어주지 않는 사부가 무척이나 원망스러워요. 사부가 무척 좋고, 무척 감사해하는 마음도 많은데…….”
 무심은 웅이가 유화명에게 고마움과 원망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리도 아니지, 웅 공자는 애초에 우리 신교내 사람이 아니었으니……’
 만약 신교사람이라면 털끝만큼도 원망의 마음은 갖지 않을 것이다. 교를 이끄는 지도자중 하나의 눈에 띄어 훌륭한 수업을 받고, 자신이 특별히 멍청하지 않는 한은 탄탄한 위치를 보장받는 자리인데, 누가 원망을 하겠는가.
 하지만 웅이는 신교내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웅이의 출신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유화명이였지만, 항상 웅이의 곁을 지키고 있는 무심은 듣지 못했어도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다.
 ‘이걸 보고해야 하나? 말아야하나?’
 웅이의 신변 보호는 물론이고, 그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까지 보고해야 하는 무심의 입장으로서는 조금 난감해졌다.
 “하지만 사부를 원망할 날도 많이 남지 않았어요, 사부께서 약속하신 최소한의 힘…… 그것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가족들을 만난다면 사부에게 고마움만 남겠지요, 이렇게 귀하게 키워주신 사부에게요…….”
 웅이의 말에 무심은 속으로 조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제지간의 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니, 정말 웅이가 가족들만 만난다면 털끝만큼의 문제도 없을 거라 믿었다.
 “정말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웅이는 가슴속에 있는 말을 내 뱉으며 스스로 결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웅이는 땅에 고개를 떨구었다.
 정말 보고 싶다…….
 보고싶다…….
 보고싶다…….
 동굴 바닥에 젖어 있는 흙에 적혀있는 글만이 웅이의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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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신의 어른을 불러오라.”
 웅이의 고함 소리가 대웅전에 울려 퍼졌다.
 급하게 전령 한 사람이 본산으로 향했고, 웅이는 소희의 침상에서 걱정스럽게 소희를 바라보았다.
 앙상하다고 표현 될 정도의 소희의 손이 눈에 들어오자 웅이는 그 손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잡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
 웅이는 자신이 어떡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그 손을 잡고, 자신의 두 손으로 열심히 비볐다.
 ‘이 바보 같은 계집애.’
 웅이는 입김까지 그 손에 불어넣으며 생각했다.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계집애 같으니라고…… 그 폭우 속에서 나를 찾느라 온 산을 헤맸다는 게 말이 되냐, 나는 한두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니며, 자기처럼 약한 체질도 아니며, 나는 남자란 말이다…….’
 괜시리 짜증이 몰려왔다.
 “바보 같은 계집…….”
 웅이는 손을 뻗어 소희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타오르는 듯한 뜨거운 이마.
 ‘땀을 뻘뻘 흘리며 이마는 뜨겁기가 한량없는데 왜 손은 이렇게 차갑지?’
 웅이는 매우 당황했다. 열이 나면 온 몸에 열이 나야지, 어느 부분은 열이 펄펄 나고, 어느 부분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경우는 무슨 경우인가…….
 “신의를 모시러 간 자는 아직 인가?”
 사람을 보낸 지 일각이 채 지나지 않았건만, 웅이는 문 밖을 향해 소리쳤다.
 대웅전의 하인과 시녀의 대소사와 살림살이를 관리하는 총관이 들어오며 보고했다.
 “공자님, 죄송합니다. 사람을 급히 보냈으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총관 아저씨.”
 “네, 공자.”
 웅이는 화를 내는 표정이 역력한 상태로 말했다.
 “사람이 이 지경이 되었으면, 진즉에 사람을 보냈어야지, 여태껏 두고만 보셨습니까?”
 총관은 웅이의 말을 ‘억지가 있다.’라고 생각했다.
 소희의 신분이 미묘하다고 해도, 엄밀히 따지면 시녀일 뿐이었다. 그런 신분의 시녀가 감기몸살(총관이 생각하기에는.)좀 걸렸다고 해서, 본산으로 가 신분도 높은 천수신의 앞에서, ‘대웅전의 시녀하나가 심한 감기몸살이 걸렸으니 어서 와주십시오.’ 했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다.
 하지만 당장은 웅이의 말에 수그러들어야 했다. 한 번도 저런 식으로 화를 낸 적이 없던 소주인이었다. 그리고 금수신의보다 부교주가 훨씬 무서웠다.
 “죄송합니다, 공자.”
 총관은 허리를 깊게 숙인채로 굽신거리자, 웅이는 나이도 많은 총관에게 너무했다는 생각은 했지만, 소희의 모습을 보니 다시 화가 나 냉랭히 말 할 뿐이었다.
 “수건 두 개와 차가운 물 한 대야와 뜨거운 물 한 대야를 가지고 오세요.”
 총관이 황급히 나가고 웅이는 다시 소희의 손을 비비기 시작했다.
 짜증이 날 정도로 화가 났다.
 도대체 왜……?
 왜……?
 웅이는 한참을 소희의 손을 비비다가 입을 열었다.
 “소희야, 미안해…….”
 결국은 자신 때문에 소희가 이렇게 됐다고 생각이 난 것이다.
 비록 그것이 바보 같았다 하더라도…….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고 하더라도…….
 분명 자신 때문에 그랬기 때문에…….
 웅이는 가슴이 매우 아파왔다.
 “그러니까 눈 좀 떠봐…….”
 그때 총관과 시녀 하나가 각각 대야 하나씩을 들고 들어왔다.
 “두고 나가보세요. 그리고 신의 어르신이 들어오면, 바로 이곳으로 보내주세요.”
 웅이의 말에 총관이 허리를 숙여보이고는 자리에서 나가자, 웅이는 수건에 차가운 물을 적시고는, 소희의 얼굴을 조심스레 닦아 주었다.
 아직도 열이 펄펄 나고 있었다.
 웅이는 내친 김에 그녀의 하얀 목덜미까지 닦아 준 뒤, 다시 물을 적시고 수건을 곱게 접어, 소희의 이마에 올려두면서 중얼거렸다.
 “불안하다. 왜 너만 보면 항상 불안한 걸까?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요새는 계속 그래.”
 웅이는 다른 수건에 뜨거운 물을 적시며 소희의 두 손을 올려놓고 꼭 감쌌다.
 “언제부터인가 네가 조금씩 나에게 멀어짐을 느낀 순간 부터였을지도 몰라. 혹시 너에게 내가 모르는 일이 일어났니?”
 웅이는 이마의 수건을 다시 차가운 물에 적셨다. 수건은 금세 뜨거워져 있었다.
 난 매우 불안해…….
 네가 나의 곁에서 떠날까봐…….
 웅이는 반복적으로 두 개의 수건을 갈아주며, 소희를 바라보았다.
 참으로 예뻤다.
 만약 자신이 사부를 만나지 않고, 계속 농부의 자식으로 남아 있었다면, 말도 못 걸어 보았을지도 몰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자신은 선택받은 자였다.
 그야 말로 복을 타고 났다.
 신교의 교리는 매우 좋았다. 하지만 교 자체가 폐쇄적이고 배타적이었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안 좋은 소리를 듣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 한 것은 신교의 교리는 도덕적인 인간을 지향하고 있었다.
 교의 위세는 강했고, 동경했던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자신의 사부는 그런 교의 부교주였다.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동경하는 사람이 자신의 사부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교주님 보다 더 동경을 받는 사람이 바로 사부였다.
 그런 사부의 제자는 자신밖에 없었다. 제자를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사부가 자신을 데려왔을 때, 큰 할아버지가 매우 좋아했던 기억이 났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시기를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예전에 고민 했던 것이 지금에 와서야 깨달아 지기 시작했다.
 사부가 왜 자신을 선택했는지.
 사부처럼 똑똑한 분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를 사부는 보았다는 이야기일 테니, 자신은 그런 것에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그저 열심히 따르면 사부의 반은 쫓아 갈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부가 고마웠다. 자신처럼 둔한 놈이 뭐가 예쁘다고 그렇게 애지중지 해주시는지…….
 무엇보다도 소희를 만나지 않았는가.
 덕분에 힘이라는 개념을 알기 시작했고, ‘한 여자를 책임 질 수 있다.’라는 자신감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신의님께서 오셨습니다.”
 밖에서 총관의 소리가 들려오자, 웅이는 상념을 깨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 신의를 맞았다.
 “오셨습니까, 신의 어르신.”
 “웅이 네가 찾는다고 하니 급히 왔지, 그래 어디가 아프더냐?”
 몸 자체가 건강체라 단 한 번도 아파보지 않았던 웅이었지만, 예방차원에서 일 년에 몇 차례씩 정기적으로 진맥을 받는지라, 꽤나 친숙한 두 사람이었다.
 천개의 손을 가진 것처럼, 손을 빨리 움직여 천수신의라 불리웠지만, 평소에 냉정하기 이를 데가 없는 신의가 웅이에게는 마치 손자처럼 대하는 것은 매우 의아한 일이었다.
 정확히 이야기하지면 신의 자신도 그 이유를 몰랐다. 다만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자신이 왠지 웅이만 보면 마치 손자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웅이의 이상한 매력.
 그것은 나이 든 사람에게는 마치 자식처럼 애정이 간다는 것이다. 저 큰 몸과 어리숙해 보이는 말투. 신분에 어울리지 않은 심성 등이 웅이를 그렇게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어르신, 제가 아니고 여기…….”
 웅이의 큰 덩치에 가려 앞을 보지 못했던 신의는 그제야 뒤에 누워있는 소희를 보았다.
 “누구더냐?”
 “제 친구입니다.”
 “친구?”
 신의는 의아하게 웅이를 바라보며 침상 곁으로 다가갔다. 신의 눈에 대야와 이마와 손에 각기 올려져 있는 수건이 들어왔다.
 ‘아하!’
 신교에서 웅이와 친구라고 할 만한 자가 존재하지는 않을 터인데, 친구라 하니 궁금했던 신의였다.
 ‘친구가 아니라 정인이렸다.’
 신의는 속으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고는 말했다.
 “좋을 때고…….”
 “네?”
 “아니다. 진맥을 할 테니 곁에 오거라.”
 웅이가 곁에 와 앉자 신의는 손 을 감싸고 있던 수건을 치우고는 소희의 손목을 잡았다.
 “손이 마치 얼음장 같구나.”
 신의의 말에 웅이가 얼른 말했다.
 “그런데도 얼굴과 목덜미 쪽은 열이 펄펄 납니다.”
 신의는 알았다는 듯이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그시 눈을 감고 소희의 맥을 살펴보았다.
 ‘이건…….’
 신의의 눈이 번쩍 뜨이며, 이마 쪽으로 손을 뻗쳤다.
 손에서 열기가 확 느껴졌다.
 “어쩌다가 이렇게 정신을 잃었느냐?”
 신의가 묻자 웅이는 대답했다.
 “제가 일이 생겨 대산에 올라갔는데…… 그때 폭우가 쏟아져 연락도 하지 못하고 밤늦게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저 아이가 저를 걱정한 나머지, 폭우 속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쓰러져서는…….”
 “단지 폭우 속을 돌아다니다가 쓰러지고는, 이렇게 인사불성이 되었단 말이지?”
 “네, 그렇게 들었습니다. 다행이도 순찰하던 무사가 발견하고는…….”
 웅이의 말끝이 흐려졌다. 발견 못했다면 어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것이다.
 ‘이상하다.’
 웅이의 설명을 들은 신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폭우 속에서 쓰러지고 열이 펄펄 끓는다고 생각하면 분명 감기몸살, 좀 더 심각히 생각한다면 폐에 문제가 생긴다고 보았다. 하지만 얼굴은 뜨겁고 손발은 차가운 상황은 말이 되지 않았다.
 신의는 혹시 자신이 실수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 소희의 맥을 다시 살펴보았다.
 다시 맥을 살펴본 신의는 확실히 결론 내렸다. 이건 감기 따위가 아니었다. 지금 이 상태는.
 ‘주화입마다.’
 결론을 내린 신의는 웅이에게 물었다.
 “어느 분의 여식이더냐?”
 “저…… 그게…….”
 웅이는 우물쭈물했다. 그러고 보니 소희의 가족이 누구인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진즉에 알아두고 인사도 했어야 했는데…….’
 웅이는 자신의 무신경을 탓했다.
 “어느 분의 여식이냐고 물었는데, 왜 이리 우물쭈물 하느냐?”
 “어르신, 저도 그 동안 신경을 쓰지 못해 잘 모릅니다. 지금이라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웅이의 대답에 신의는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럼 이 아이가 누구인지는 아느냐?”
 “어렸을 때 사부가 데려온 아이로 그 때부터 쭉 저와 같이 지내왔습니다.”
 신의가 계속해 물었다.
 “어디서 데려왔느냐?”
 “그거야, 본산에서 저와 말동무를 할 상대를…… 왜 그러십니까?”
 “그럼 시녀더냐?”
 “그때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게 아닙니다.”
 웅이가 약간은 퉁퉁한 목소리로 답하자, 신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잘못 생각했는가? 내가 모르는 병의 증상인가? 그렇지 않다면, 시녀주제에 어떻게 이런 주화입마에 걸릴 수가 있단 말인가?’
 “상태가 많이 안 좋습니까?”
 신의의 인상이 찡그려지자 웅이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다, 맥이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못 고칠 것도 없다. 너는 걱정 하지 말거라.”
 “네, 어르신.”
 신의는 의문점이 남아 좀 더 조사하려 했으나, 웅이가 자꾸 보채자, 그냥 맥을 바로 잡아주기로 하고, 침구에서 침을 꺼내어 들어 침을 놓기 시작했다.
 “어르신, 정말 별 일 없겠지요?”
 “별 일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설마 내 말을 의심하는 거냐?”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그냥 마음이 불안하여 계속 이런 말이 나오는 모양입니다.”
 신의는 웅이의 불안한 마음을 덜어내 주고자 말을 하며 침을 놓았다.
 “이 아이가 얼굴은 뜨거운데 손이 차가운 이유는, 체내에서 음양의 조화가 어지럽혀 졌기 때문이다. 보통 극양이나 극음의 무공을 익힌 사람들에게 잘 나타나는 현상이다.”
 “극양과 극음의 무공말입니까?”
 “그래, 그래서 너에게 이 여아가 어느 집의 여식인지 물었던 것이다, 이 정도로 극명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면, 무공이 매우 고절한 경지이다. 고수가 주화입마가 걸릴 때에는 보다 극렬한 반응이 일어나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무공을 전혀 모르는데요, 무공은커녕 보통 사람들보다 체질도 약하여 곧잘 감기에 걸리곤 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도 자신의 몸 생각도 하지 않고 폭우 속을 헤매다가…….”
 웅이의 말에 신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도 내가 잘못 진단을 했나 라는 생각까지 했다. 사실 무공의 고수가 이런 현상을 보인다면, 나의 침술보다는 그 집안의 고수가 이 아이의 기맥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니 말이다.”
 “소희는 무공을 전혀 모릅니다. 이미 저와 십 년이 다 되도록 같이 지내왔는데, 그것을 모를까 봐요.”
 웅이가 결론 내듯이 말하자 신의는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래서 이렇게 침을 놓고 있지 않느냐? 허약체질에 폭우 속을 헤맸다고 음양의 조화가 크게 깨졌다면,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
 신의가 금침 하나하나 놓을 때 마다, 웅이는 마치 자신이 맞는 것처럼 뜨끔뜨끔해졌다.
 이윽고 금침 시술이 다 끝나고 신의는 돌아가고 웅이는 소희의 곁에 앉았다.
 ‘설마 별일은 없겠지만…… 넌 꼭 일어나야해, 이러고 보니 내가 너에 대해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구나, 그래도 너를 좋아하는 사내인데 말이야…….’
 웅이는 소희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다시 한 번 짜릿한 차가움이 전해져왔다.
 ‘이번에 일어나면 반드시 네가 너를 아는 만큼 나도 너를 알거야.’
 추억.
 ‘어느 새인가부터 네가 나를 피하고, 네가 나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아서 꾸물거렸지만…… 네가 부담스러워도 나는 알아야겠다. 나중에 누군가가 나에게 너에 대해 물어볼 때, 아무것도 몰라 우물쭈물하는 것은 너무 창피하니까…….’
 웅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전히 소희의 손은 차갑기가 이를 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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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는 그쳤지만 진하고 진한 먹구름은 여전했다.
 완전한 어둠이 깔렸다.
 곳곳에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지만, 습기 때문인지 불길의 크기가 크기 않아,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집중해야만 사물을 식별 할 수 있었다.
 하나의 인영은 그때 스며들었다.
 인영의 움직임은 매우 은밀했기에, 경비 무사의 눈을 피할 수가 있었다.
 사실 움직임으로 보아서 그냥 어둠정도만 깔렸다고 해도, 충분히 들키지 않을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그만큼 인영의 신법은 고절했다.
 인영은 재빠르게 대웅전 안까지 스며들었다. 그리고 익숙한 듯이 하나의 방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화로가 타오르고 있었고, 향초까지 핀 듯 좋은 냄새가 가득했다. 그리고 침상에는 한 사람이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인영은 재빠르게 침상으로 가 누워있던 사람의 목에 손을 대어 맥을 살피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누……구…….”
 누워있던 사람은 목에 이질감을 느끼며, 앳된 목소리를 힘겹게 내며 눈을 떴다. 그리고는 눈앞에 있는 상대를 확인하고는 소스라니 놀라며 침상에서 일어나,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인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실수를 저질렀구나.”
 여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거 무릎을 꿇은 채로 땅만 보고 있었다.
 “휴.”
 인영은 그런 여인을 보고 작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너의 행동에 따라 너의 가족이 어찌되는지 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
 “그래, 내가 너에게 너무 가혹한 일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인영은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바깥을 주시했다. 살짝 인기척이 들린 것 같아서였다. 한참을 주시했으나 더 이상 자신의 기감에 걸려오는 것이 없자, 인영은 다시 여인을 보고 말했다.
 “대업을 위해서 나도 사람이기를 포기했다. 너도 그것은 잘 알고 있으리라 본다.”
 여인은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이해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확실히 알아 둘 것은 내게 실수란 두 번은 용납지 않는다. 사실 한 번도 용납하지 않지만…….”
 인영은 자신이 한 번의 마음 흔들림이 마음에 걸렸다. 사실 지금 그녀를 폐기해야 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여인은 계속해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갈등하고 있었다.
 “침상 위로 올라가거라, 기혈을 바로 잡아야 할 테니, 천수신의의 금침술이 뛰어나긴 하지만, 지금 제대로 잡아두어야 할 터.”
 인영의 말에 여인은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다가 입을 열었다.
 “총……사…….”
 “?”
 “이번 일에 빠지고 싶습니다. 다른 일을 지시하신다면…… 이 몸이 분골쇄신하는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완수해내겠사오니…… 이번 일은…….”
 “바보 같은 소리.”
 인영은 작은 목소리이기는 하지만 단호하게 소리쳤다.
 “지금 와서 너를 어떻게 빼낼 수 있느냐? 그런 생각이라면 차라리 지금 죽어라. 하지만 네가 죽음과 동시에 너의 가족들도 같이 죽는 다는 것을 잊지 말고, 깨끗이 죽어라.”
 “흐흑…….”
 여인은 작게 울음소리를 내었다.
 “내가 너에게 기회를 다시 한 번 주고 있다는 것을 모르겠느냐? 어떻게 하겠느냐?”
 인영의 말에 여인은 다시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은 이를 악 물고 침상 위로 올라갔다.
 여인이 침상에 앉자마자, 인영은 그녀의 명문혈에 장심을 대었다.
 “음…….”
 여인은 신음성을 내자, 사내는 말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인영의 장심에서 뜨겁고도 시원한 기운이 체내에 들어오자, 여인은 운기를 하는 한 편, 속으로 차라리 지금 잘못되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러면 자신 스스로 포기한 것이 아니니, 가족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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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밝아오고 새벽닭이 울음을 짖는 순간, 웅이는 문을 조용히 열었다.
 웅이의 한 손에 든 쟁반 위 하얀 사기그릇에 넘치려는 갈색 액체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 자?”
 웅이는 탁자 위에 쟁반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소희의 눈 감은 얼굴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항상 새벽닭이 울기도 전에 일어나는 소희인지라, 아침 일찍 약을 들고 온 것이다.
 웅이의 속삭임에도 소희는 깨어나려는 기척이 전혀 없었다.
 웅이는 물끄러미 소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진한 속눈썹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들릴 듯 말듯 한 작은 숨소리.
 어제의 금침대법이 효과가 있었던 듯, 하얗게 창백했던 볼도 어느새 혈색이 돌아와 있었다.
 “이쁘다.”
 웅이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손을 뻗쳐 소희의 기다란 속 눈썹을 살짝 건드렸다.
 파르르.
 살짝 건드린 것뿐인데 소희의 속눈썹이 잔 경련을 일으키자, 웅이는 깜짝 놀라며 손을 떼었다.
 ‘예민하기는, 헤헤.’
 웅이는 뭐가 좋은 듯 속으로 실없이 웃었다.
 다시 소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웅이는 다시 손가락으로 소희의 뺨을 찔렀다. 미끄러질 듯이 부드러운 피부였다.
 웅이의 손가락은 곧 코도 건드렸고, 이마 밑으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위로 쓸어 올려주었다. 마치 장난이나 치듯이 얼굴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소희의 분홍빛 말랑말랑한 입술도 살짝 건드리는 순간, 소희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음메!”
 웅이는 놀라며 재빨리 손을 떼며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태연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소희는 웅이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웅이의 두 손이 소희의 양 어깨에 손을 올려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그냥, 누워있어.”
 소희는 웅이의 손을 잡고 살짝 밀어내며, 기어코 침상위로 앉고는 말했다.
 “공자님, 아침 일찍부터 무슨 일이세요?”
 ‘이럴 땐 정말 딴 사람 같다니까.’
 정색하는 소희의 모습에 웅이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화가 난 듯이 말했다.
 “너는 그곳이 어디라고 함부로 올라와, 너 어제 열이 심해서 신의 어르신도 쉽게 치료하지 못할 정도였어, 건장한 사내들도 올라가기 힘든 곳인데, 너처럼 약한 여자가 거기서 헤매기는 왜 헤매냐?”
 웅이는 말을 하다보니 정말로 화가 났다. 이렇게 약하기가 그지없는데 정말 큰 일이 날 뻔하지 않았는가?
 “저는…… 괜찮아요.”
 소희가 고개를 숙이며 하는 말에, 웅이는 허리를 숙여 소희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아직 얼굴이 핼쑥한데, 볼의 탄력도 예전만 못해.”
 웅이의 말에 소희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웅이는 그런 소희의 모습에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가지고 온 쟁반에 손을 뻗치고 소희의 앞에 놓으며 말했다.
 “신의 어르신이 식전에 약을 먹어두어야 한다고 하셨어, 밥도 희멀건 한 미음만 먹이라고 하시더라. 이렇게 가냘픈데 밥도 못 먹으면 어떡하라는 건지.”
 웅이는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갈색의 액체를 뜨고는 소희의 입에 갖다 대었다.
 “제가 먹을게요.”
 소희가 고개를 저으며 하는 말에, 웅이는 소희의 손을 대뜸 잡자, 소희는 몸을 움찔했다.
 웅이는 아무 말 없이 소희의 손을 잡고 소희의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리고는 손을 놓았다.
 툭.
 마치 인형의 그것마냥 소희의 손은 이불로 뚝 떨어졌다.
 “움직일 힘없지? 고집부리지 말고 그냥 먹어.”
 “그건…….”
 소희는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힘을 빼고 있다고 말을 하려는 순간, 입안으로 숟가락이 들어왔다.
 “음.”
 소희는 콧소리를 내며 쓴 액체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웅이는 계속하여 한 숟가락씩 소희의 입에 계속 넣어줬고, 소희는 이내 체념한 듯 별 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 삼켰다.
 그릇 가득 차 있던 약을 모두 먹고서야, 소희의 입은 자유로울 수가 있었다.
 “공자…….”
 “응, 왜?”
 웅이는 흐뭇한 표정으로 소희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싱겁긴.”
 소희의 마음속에 바람이 불어왔다. 새벽바람과 같이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웠고, 밤의 서운함을 간직한 그런 것.
 웅이는 여전히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는 말했다.
 “얼른 나아.”
 “네, 공자.”
 소희는 애써 바람을 지우며 대답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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