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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여기 사람있어요!

2022.05.11 조회 142,412 추천 2,642


 1화. 여기 사람 있어요!
 
 
 
 “하아······ 지친다······ 지쳐.”
 
 300만 원도 되지 않는 월급. 거기서 월세와 학자금대출금을 내고 생활비를 아껴 써 한 달에 100만 원을 적금에 넣어 모은 1200만 원. 큰 금액이었지만, 세준의 목표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휴우. 이래서 티켓은 언제 사지? 살 수는 있으려나?”
 
 세준이 막막한 목표에 한숨을 쉬었다.
 
 10년 전 서울 강남 한복판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99층의 검은 탑. 탑은 기하학적인 문양과 물리 법칙을 무시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탑이 세계 여러 도시에서 동시에 100개나 생겨났다. 각 국가는 자신의 영토에 나타난 탑을 조사했지만, 큰 소득은 얻지 못했다.
 
 그들이 알아낸 정보는 탑의 높이가 990m에 핵폭탄으로도 구멍을 내지 못할 정도로 강도 높은 소재로 만들어졌고 탑 어디에도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없다는 것.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탑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탑의 벽을 통과해 나왔다.
 
 조사관들은 서둘러 그들의 신원을 파악했고 탑에서 나온 사람들이 최근에 갑자기 실종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어떻게 탑에 들어갔습니까?”
 
 조사관들의 질문에 그들은 들어간 것이 아니라 검은 구멍에 빨려들어 갔고 정신을 차리니 그곳이 탑의 1층이라고 했다.
 
 그렇게 탑에서 나온 사람들에 의해 탑에 대한 정보가 풀리기 시작했다.
 
 -100개의 탑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탑에 들어가면 각성을 하며 마법사와 전사 중 하나의 직업을 갖게 된다.
 -탑의 2층부터는 몬스터가 있고 층이 오를수록 몬스터는 강해진다.
 -한 층을 클리어할 때마다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층이 높아질수록 보상은 더 좋아진다. 단, 클리어한 층을 다시 클리어해도 보상은 없다.
 
 탑이 생긴 목적은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탑을 오르는 것이 돈이 된다는 것. 탑 안에서 얻은 아이템들은 지구에서 비싼 금액으로 팔렸다.
 
 그 아이템 중에는 티켓이라는 것도 있었다. 티켓은 각성자들의 중요 돈벌이 중 하나로 층을 클리어하면 높은 확률로 티켓이 하나 이상 나왔다.
 
 이미 각성한 사람들은 탑을 드나들 때 티켓이 필요 없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티켓을 소지하고 있으면 탑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탑에 들어가면 각성을 하고 탑을 오를 자격이 생긴다. 그렇기에 티켓값은 싸지 않았고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한국 같은 경우 한국 각성자 협회에서 헌터들의 티켓을 일괄 구매해 판매하고 있었다.
 
 가격은 장당 1억5000만 원. 그것도 찾는 사람이 많아 일주일 후부터는 2억 원으로 오른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티켓을 사려고 미리 돈을 내고 기다리는 사람만 수백 명이란다.
 
 ‘포기할 수 없어!’
 
 그리고 요즘 금파, 파테크라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보이기 시작하자 세준은 큰 결심을 했다.
 
 집에서 농작물을 키우자!
 
 허리띠를 더욱 졸라맬 수 있는 방법. 뭐 대단한 것들을 키우겠다는 건 아니고 생활비도 아끼기 위해 물만 주면 알아서 잘 자라는 것들을 몇 가지 사서 키워볼 생각이었다.
 
 ‘오늘부터 바로 해야지.’
 
 그렇게 마트에서 대파와 다른 몇 가지를 사고 집으로 가는 길.
 
 “흥흥흥······.”
 
 세준이 콧노래를 불렀다.
 
 앞으로 집에서 과일과 채소를 기르게 된다면 식비를 많이 아끼고 채소와 과일을 맘껏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렇게 돈을 아껴서 티켓을 사고 탑에 들어가는 거야. 그리고 탑에서 돈을 왕창 벌어서 우리 세라랑······.’
 
 “흐흐흐······.”
 
 세라는 한국 최정상 걸그룹 달빛요정의 멤버. 한마디로 세준만의 망상이었다.
 
 그렇게 세준이 망상에 빠져 헤벌쭉 웃으며 걷고 있을 때 세준의 앞 허공에 검은 구멍이 입을 벌리며 나타났다.
 
 그리고
 
 후우웅.
 
 주변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어?! 이건······!”
 
 반대편이 전혀 보이지 않은 검은 구멍을 발견한 세준이 크게 놀랐다.
 
 ‘배니싱(Vanishing)이다!’
 
 배니싱은 탑으로 초대되는 현상으로 최초의 각성자들은 모두 배니싱을 통해······
 
 아무튼 이건 로또 당첨보다 더 어려운 행운이다!
 
 다다다다.
 
 세준이 서둘러 가족들에게 톡을 날렸다. 혹시라도 말없이 사라졌을 때 가족들이 자신을 찾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렇게 톡을 다 보냈을 때
 
 ‘왜 아직도 내가 여기 있는 거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어도 이미 한참 전에 빨려들어갔어야 하는데······
 
 세준은 자신을 데려가기를 기다리며 검은 구멍을 계속 노려봤다. 하지만 구멍의 흡입력은 강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서 나를 모셔가라고. 어! 뭐야? 왜 작아져?!”
 
 심지어 구멍이 닫히고 있었다.
 
 ‘안돼! 내 미래! 세라야!!!’
 
 세준은 결심했다. 미래는 개척하는 것.
 
 “그래! 내가 가 준다!”
 
 세준이 구멍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렇게 새카만 어둠 속으로 세준이 사라졌다.
 
 
 ***
 
 
 “여기가 어디야?”
 
 세준은 구멍을 나오자마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들은 탑의 1층 정보와 너무 달랐다.
 
 탑 1층에는 화려한 샹들리에 조명이 주변을 밝히고 바닥에는 백색 대리석이 깔려 있으며 넓은 광장에는 장비와 포션 등을 파는 상점들과 전사와 마법사의 스킬을 배울 수 있는 훈련소가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여기는 상점과 훈련소는커녕 바위로 만들어진 동굴이었다.
 탑의 1층과 비슷한 게 있다면 넓다는 것 정도.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화려한 샹들리에 조명은 없지만, 동굴 천장에 난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한줄기 햇빛 조명이 있다는 것.
 
 ‘일단 출구를 찾자.’
 
 세준이 주변을 둘러보며 나갈 곳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갈 곳으로 점찍어 둔 곳은 동굴 천장에 난 구멍. 하지만 아치형으로 된 동굴의 천장 구멍까지 벽을 타고 간다는 것은 거미맨이 아니라면 불가능해 보였다.
 
 ‘다른 곳을 찾아보자.’
 
 세준이 가방을 바위 위에 내려놓고 동굴을 탐색했다.
 
 잠시 후.
 
 “뭐가 이렇게 넓어······.”
 
 동굴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넓었다. 동굴 끝 쪽은 해가 닿지 않아 앞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아껴야 하는데······.”
 
 세준은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약하게 켜고 동굴 탐색을 이어갔다.
 
 3시간 후.
 
 동굴 탐색이 끝났다. 동굴은 사방이 완전히 막혀 있는 공동이었다. 바위들 사이에 빠져나갈 틈이나 약한 부분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해 봤지만, 빠져나갈 만한 곳은 없었다.
 
 “출구가 없어······ 설마 나 조난당한 거야?”
 
 세준이 넋이 나간 듯 중얼거리며 터덜터덜 동굴의 천장 구멍 아래 해가 비추는 곳으로 돌아왔다.
 
 “어쩌지······.”
 
 인정해야 했다. 여길 혼자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여-기-! 사람 있어요-!!!”
 
 세준이 최후의 발악으로 동굴 천장에 난 구멍을 향해 외쳤다.
 
 하지만
 
 “여~기~사람 있어요~!”
 
 세준의 처절한 외침은 구멍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동굴 안에서만 맴돌았다.
 
 “여-기-! 사람 있어요-!!!”
 
 세준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하지만 사람은커녕 아무것도 구멍 근처로 지나가지 않았다.
 
 “제길. 여기 사람 있다고!!!”
 
 퍽!
 
 세준이 화를 참지 못하고 괜히 땅을 찼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조난 2일 차.
 
 [5월 11일 오전 6시]
 
 삐비빅.삐비빅.
 
 출근을 위해 맞춰두었던 알람이 울렸다.
 
 “으음······.”
 
 불편한 잠자리에 세준이 힘겹게 눈을 뜨고 일어나 스마트폰의 알람을 껐다.
 
 “······.”
 
 잠에서 깬 세준은 온종일 동굴 천장의 구멍만 바라봤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여기 사람 있어요!”
 
 세준의 외침만 축축한 바위에 반사되어 음울한 메아리로 돌아올 뿐.
 
 꼬르르륵.
 
 세준의 배가 요동쳤다. 걱정이 태산이긴 했지만, 지금 당장 먹고는 살아야 했다.
 
 “으윽······ 진짜 배고프다.”
 
 생각해 보니 퇴근한 이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뭐 좀 먹을까?’
 
 세준이 평평한 바위를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부스럭.
 
 내려놨던 가방 안에서 봉지에 담긴 사과 하나를 꺼냈다. 사무실의 동기가 준 세척 사과였다.
 
 ‘고맙다. 경철아.’
 
 세준은 만약 이곳에서 나간다면 동기인 경철에게 탕수육으로 보답하기로 했다. 경철이가 탕수육을 좋아하는 건 아니고 지금 짜장면에 탕수육이 먹고 싶었다.
 
 그렇게 세준이 경철에게 탕수육을 쏘기로 결심하고 사과의 비닐포장을 뜯어 사과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아삭.
 
 사과의 새콤달콤한 과즙이 입 안을 점령했다.
 
 ‘너무 맛있다!’
 
 입맛이 돌자 허기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났다.
 
 아삭. 아삭.
 
 세준이 걸신들린 듯이 정신없이 사과를 먹어 치웠다.
 
 “아.”
 
 야무지게 발라 먹고 남은 사과 꼭지와 씨를 허망한 얼굴로 쳐다봤다. 양이 많이 모자랐다.
 
 퍽. 퍽.
 
 세준이 발로 대충 땅을 파 사과 씨와 꼭지를 함께 묻었다.
 
 그리고 가방 안의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노트북과 사무실에서 먹다가 남아서 들고 온 500ml 생수.
 집에서 키우기 위해 산 대파와 방울토마토 그리고 호박고구마.
 
 “하나, 둘, 셋······.”
 
 세준이 플라스틱 포장 용기에 담긴 방울토마토의 수를 세기 시작했다. 가진 식량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방울토마토 27개, 파 10줄기, 호박고구마 7개.
 
 일단 파는 썩지 않게 전부 심고 방울토마토 3개와 호박 고구마 2개를 심고 나머지는 식량으로 남겨뒀다.
 
 방울토마토는 안에 씨가 많아 3개만 있어도 많이 심을 수 있다. 그리고 고구마는······ 가지고 있는 식량 중에 그나마 탄수화물을 책임져 줄 수 있기에 많이 심을 수 없었다.
 
 ‘먼저 배를 더 채우고.’
 
 뽀드득. 뽀드득.
 
 세준이 연못에서 고구마 하나와 방울토마토 5개를 깨끗이 씻었다.
 
 그나마 동굴 한쪽 구석에 작은 연못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식수는 해결할 수 있으니까.
 
 ‘물고기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연못에는 작은 송사리 크기의 생물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동굴에는 벌레나 쥐 같은 작은 동물도 전혀 없었다.
 
 벌레나 쥐를 보면 기겁할 세준이기에 없는 것을 좋아해야 했지만 막상 없으니 뭔가 아쉬웠다. 영화에서는 먹을 게 없을 때 벌레나 쥐를 먹는 장면을 많이 봤다.
 
 ‘정말 식량이 떨어지면 그런 거라도 먹어야 되는데.’
 
 물론 식량이 떨어지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최선이다.
 
 아그작.
 
 고구마를 씹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잡생각들이 다 사라졌다. 지금은 고구마에 집중할 때였다.
 
 우적우적.
 
 맛있다!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배어 나오는 게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다. 항상 찌거나 구워 먹지만 가끔은 생으로 먹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제 일을 해볼까.”
 
 고구마 하나와 방울토마토 5개를 다 먹은 세준이 먼저 파를 들었다.
 
 그리고
 
 뿌드득.
 
 파를 뿌리에서부터 3분의 1정도 지점에서 꺾어 녹색 이파리 부분을 뜯어내 따로 바닥에 두었다.
 
 ‘나중에 먹어야지.’
 
 맛은 없겠지만,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할 수도 있었다.
 
 세준이 해가 들어오고 바닥의 흙이 부드러운 곳에 파의 뿌리가 있는 흰색 부분을 땅에 묻었다.
 
 그리고 이어서 파의 왼쪽에는 호박고구마 2개를 오른쪽에는 방울토마토를 심었다.
 
 호박고구마는 그냥 땅에 하나씩 묻었고 방울토마토는 으깨 안에서 흘러나오는 씨앗을 심었다.
 
 쫍쫍.
 
 세준이 손에 묻은 토마토즙을 손으로 쪽쪽 빨아 먹으며 연못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500mL 생수병에 연못물을 담아 농작물을 심은 땅에 물을 충분히 적셔줬다.
 
 작업이 끝나자 세준은 바위에 누워 천장을 보며 누가 지나가는지 기다렸다. 식량도 없기에 최대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며 가끔씩 ‘여기 사람 있어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삐비빅. 삐비빅.
 
 [5월 12일 오전 6시]
 
 조난 3일 차가 되었다.

댓글(140)

pa****    
글 재밌게 보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2022.05.14 10:59
sd*******    
첫 번째 댓글 감사합니다*^^*
2022.05.14 11:10
풍뢰전사    
건투를
2022.05.18 16:00
sd*******    
감사합니다^^
2022.05.18 18:11
신광호    
재밌습니다 ^^
2022.05.24 11:42
sd*******    
감사합니다^^
2022.05.24 14:57
Strichcode    
엄... 가지고 잇는 물품으로는 농사지어서 결과 보기 전에 굶어 죽지 않을까요? 무협지에서 한번 씩 봣던 이끼인데 기도주고 공복감도 해치워주는거라도 잇어야(맛은 없음) 가지고 잇던걸로 농사라도 지어야겟다 하면 이해할 듯 한대 먹을게 가지고 온게 전부면 그냥 아사 할 걱정에 농사는 생각도 못해 볼 것같은데 + 고구마120일, 파20일, 토마토 90일(네이버검색) + 굶어죽기 전에 파는 성장 다 할것 같은데 열량이 충분하나..? 혹 제가 놓친게 있을가유?
2022.05.26 08:14
혼돈군주    
사실 고구마는 한개만 싹을 틔워서 그 싹을 심으면 최소 10줄기에서 최대 50줄기까지 심는게 가능. 뭐 다른게 아무것도 없으니 일단 고구마를 통채로 땅에 심는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싹이나서 자라면 그 싹이자란 줄기를 뜯어서 나눠심으면 그 줄기 하나가 한포기의 고구마 덩굴이 되지요.
2022.05.26 21:53
뭔데뭐야    
중이병도 아니고 성인이..걸그룹과 망상에....... 수고요..
2022.05.28 06:21
흑돌이    
잘 보고 갑니다.
2022.05.28 12:52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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