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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같이 멸망하는 날.

2022.05.11 조회 67,386 추천 1,674


 2015년 3월 6일.
 
 소공동의 로체백화점 아비노엘 14층의 상품본부 상담실.
 
 “강 팀장님, 이런 말 해서 나도 미안한데, 부산 본점하고 전주점은 이번 8월 MD 때 빼주셔야 할 것 같아요.”
 “네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부산 본점하고 전주점을 빼요?”
 “우리 사정이 그렇게 되었어요. 이번에 부산 서면 본점을 대규모로 리뉴얼하면서 증축 공사를 하잖아요?”
 “그런데? 그거야 전부터 나온 이야기고, 브랜드 수를 줄이면서 매출로 비딩하기로 한 거잖아요? 유·아동의 우리 포지션에서는 우리하고 해피 파라다이스뿐인데, 우리가 매출이 더 많고.”
 “아이, 증말! 하여간 그렇게 결정이 났다니까?”
 “아니 그러니까, 왜 우리가 빠지냐고. 해파 놈들이 빠져야지.”
 
 백화점을 포함한 대규모 유통 판에서는 매출이 깡패란 말이 있다.
 신규 입점이든 리뉴얼이든 간에, 매장 입지와 면적은 매출이 좌지우지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래서 위치를 정할 때도 매출이 높은 브랜드에 먼저 선택권을 주는 것이고.
 
 그런데 둘 중의 하나가 빠지는 데스매치에서 우리가 매출이 높은데도 우리 보고 빠지라고?
 이게 무슨 충격과 공포란 말인가?
 그리고 이걸 어떻게 보고하란 말인가?
 
 더군다나 부산 본점은 서울 소공동 본점과 잠실점과 함께 빅3 중의 하나.
 로체에서도 서면점이라는 점포 이름을 부산 본점으로 바꿀 정도로 핵심 중의 핵심 매장이다.
 여기 입점할 때 홍 사장이 얼마나 좋아 날뛰었던가?
 그 말의 반대는 퇴점당하면 미쳐서 날뛴다는 말과도 같았다.
 막아야 한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못 빼! 이런 법이 어딨어!”
 “아이 정말! 팀장님 목소리 좀 낮춰!”
 
 상담실은 파티션으로 구획을 하고 회의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다 놓은 개방된 장소이다.
 내가 흥분하여 언성이 높아지자, 다른 테이블에서 상담하던 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빼려면 전주만 빼란 말이야! 매출은 우리가 높은데 왜 우리보고 빠지라는 거야?”
 “에이! 팀장님, 담배 피울 거지?”
 
 내가 진정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자, 김현경 바이어는 담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진짜 담배가 피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서둘러 내려와 길 건너편 영플라자 옆 골목으로 들어왔다.
 로체 직원들과 협력업체 직원들이 흡연하는 장소로 애용하는 곳이다.
 김현경 바이어는 골목 깊숙이 들어오더니 내게 화를 냈다.
 
 “아니 상담실에서 그렇게 큰소리로 화를 내면 어떡해?”
 “아니 그렇잖아? 내가 열 안 받게 생겼어? 이건 아니잖아, 바이어님. 치프 바이어도 분명히 매출로 한 곳만 남길 거라고 말했었고! 우리가 해파 놈들보다 30%는 더 높은데 왜 우리가 나가느냐고!”
 
 김현경 바이어는 나와 인연이 깊었다.
 김 바이어가 로체 공채로 입사하여 지금은 없어진 직함인 서포터로 로체 관악점에서 일하기 시작하던 시절, 나도 대성 어패럴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가라로 주임을 달고 관악점 영업 담당을 했다.
 그리고 서로 좌충우돌하고 티격태격하다가도, 서로 사정을 봐주면서 가끔은 둘이 소주 한 잔씩 할 정도로 친해졌다.
 
 그러다가 김 바이어는 파트리더를 거쳐서 1년 전에 본사 새끼 바이어로 발령이 났고, 나는 올해 영업 팀장이 되었다.
 백화점이나 마트 유통 판이 보통 이렇다.
 아무리 갑과 을이라도 비슷한 연배와 같이 크는 거다.
 그리고 그게 대형 유통업계를 상대로 하는 영맨의 파워가 되는 것이고.
 
 어쨌든, 이런 사이라 감히 슈퍼 을 나부랭이가 슈퍼 갑 백화점 바이어에게 엉길 수 있는 거였다.
 
 “아! 몰라! 그 위에서 결정된 건데 나보고 어쩌라고!”
 “위라니? 치프 바이어 위?”
 “그래!”
 “혹시?”
 “그 혹시가 맞아.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박 이사님께는 치프 바이어님이 따로 전화한다고 했으니까, 연락이 갈 거야.”
 “이, 이런! 제기랄!”
 
 게임 끝이다.
 얼마 전에 해피 파라다이스에 부사장으로 영입된 전 로체백화점 상품매입 본부장 유상태 상무.
 그 인간이 끼어들었다는 소리였으니까.
 
 백화점 업계는 많이 투명해져서, 예전과 같이 금품이 오가는 짓은 거의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잘해야 술이나 사는 정도고 많이 친해질 경우는 간혹 1종으로 데리고 가서 회포를 풀어주는 수준이 보통이다.
 뻔하게 얽히고설킨 동네라, 무리해서 뒤를 봐줬다가는 얼마 못 가 뽀록이 나기 때문에 약간의 편의 정도라면 모를까, 대놓고 불공정한 행위를 하는 시절은 갔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과 같이 헤비급 전관이 본부장 수준에서 끼어들어 찍어 누르면 방법이 없다.
 바이어들도 언젠가는 퇴사할 직원들이니까.
 그들도 미래의 밥그릇은 챙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오오! 젠장!”
 
 저절로 비명이 새어 나왔다.
 
 “어떡하냐? 자기네 사장 성격 장난 아니잖아?”
 “······.”
 
 내가 어쩌다가 바이어에게 위로를 받는 상황이 되었지?
 
 “하아아! 바이어님, 올라가요. 나 갈게.”
 “팀장님, 힘내. 내가 고정 행사장이라도 알아볼 테니까, 심하게 뭐라고 하면 그거라도 말해 보고.”
 “고마워.”
 “연락해. 술이라도 한잔 사줄 테니까.”
 “응.”
 
 김현경이 길을 건너 사라지자, 다시 담배 한 대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이건 보고를 지체할 사안이 아니다.
 
 뚜르르! 뚜르르!
 
 - 어, 상담 끝났냐?
 
 우리 회사 영업본부장인 박진호 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끝났습니다.”
 - 뭐래? 김현경이가 왜 갑자기 부른 거야? 부산 본점 자리는 언제 확정이 된다냐?
 “그게 말입니다. 우리가 빠지고 해피 파라다이스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 뭐! 그게 무슨 소리냐? 다시 말해봐!
 “우리가 퇴점하고, 해파가 들어간다고요!”
 - 아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분명히 우리 매출이 훨씬 낫잖아! 이거 확실한 거야?
 
 역시나, 예상했던 반응이다.
 이 바닥에 영업 귀신이라는 박 이사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
 
 “이사님!”
 - 뭐야! 제대로 말해봐!
 “해파 유상태 부사장 아시잖습니까? 그 인간이 직접 움직여서 이후성 상품매입본부장하고 이야기 끝냈다고요!”
 - ······.
 
 척하면 척이다.
 예전 상품매입본부장 유상태 이름이 나오는 순간에 모든 것을 파악했을 테니까.
 
 - 씨발! 해파 개새끼들! 어째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니, 장사 정말 더럽게 하네!
 “죄송합니다.”
 - 네가 왜 죄송해! 새끼야!
 “휴우! 하여간 최인영 치프 바이어가 따로 이사님께 연락드린다고 했습니다.”
 - 빌어먹을! 알았다. 바로 들어와라.
 “네”
 
 오늘 오후는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회사가 있는 디지털단지로 가는 길.
 또 하나의 근심거리가 계속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최근에 유난히 신경질적인 여자 친구 연주가 이틀째 전화도 받지 않고 깨톡도 읽씹 하는 상태다.
 불길한 예감이 나를 조여오고 있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영업 본부장에게 갔는데, 다짜고짜 나를 데리고 옥상으로 담배를 피러 나갔다.
 
 “치프 바이어하고는 통화하셨어요?”
 “응.”
 “뭐라고 합니까?”
 “뭐라긴, 시벌! 자기도 어쩔 수 없다는 소리만 하지. 에이! 더러워서!”
 “해파 조 부장에게는요?”
 “뭐 그 새끼는 미안하다고만 하지. 유 부사장이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해파 정 회장에게 어필하려고 무리한 거 같다고 하고.”
 
 백화점 업계 유아동복 브랜드들은 서로 뻔하다.
 어느 백화점이든 그 브랜드가 그 브랜드고, 하고많은 날 바이어하고 점에서 간담회를 가지면서 마주치기 때문에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사이.
 
 게다가, 해피 파라다이스는 유아동복계의 절대강자다.
 우리 회사같이 업력이 십여 년에 매출 300억밖에 되지 않는 회사가 아니라, 매출액이 수천억이 넘는 우리 바닥의 사성 전자 같은 회사다.
 박진호 이사도 그곳 출신이기도 하고.
 
 “하아! 사장님은요?”
 “아직 몰라. 이거 피고 내려가서 보고해야지.”
 “나도 들어가야죠?”
 “너희 사장 원데이 투데이 겪냐? 바로 너 찾을 것이 뻔한데?”
 “······.”
 
 환장할 것 같았다.
 내가 다니는 대성 어패럴 홍성태 사장은 무슨 일이 터져도 박 이사에게는 그리 심하게 대하지 않는다.
 박 이사가 회사 초기에 입사하여 백화점에 브랜드를 런칭 시킨 공신이기도 하고, 자칫 뭐라고 했다가는 튕겨 나갈 것을 우려해서이다.
 대신에, 담당 직원이나 나 같은 팀장을 불러서 직접 조지는 빌어먹을 일이 벌어지는 것이고.
 일반적인 회사 시스템으로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지만, 우리는 하여간 그랬다.
 
 “철식아.”
 “네, 이사님.”
 “사장이 오늘은 좀 심할 것 같지?”
 “네.”
 “그래도 참아? 알았지?”
 “······.”
 
 입사 6년 차에 이제 서른하나인 내가 일찍 영업 팀장 타이틀을 단 이유가 다 있었다.
 아무리 경력직을 잘 뽑으면 뭐하나?
 홍 사장이 몇 번 버럭버럭하면 다 도망을 쳐버렸는데?
 그러다 보니, 꿋꿋하게 버티는 나에게 중간에서 팀장 역할을 할 기회가 왔고, 결국 내가 팀장이 되었다.
 웃기는 것은 조직 모양이 영 이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경력이 20년이 넘는 영업 본부장인 박진호 이사, 그리고 다음이 이제 6년 차인 나 강철식 과장이다.
 밑으로도 들어오자마자 심지어 그날로 때려치우는 사원까지 있을 정도여서, 그나마 내가 다독거려 버티는 1년에서 2~3년 차 주임이나 대리 합해서 4명이 전부이다.
 영업부 총 6명.
 이것이 우리 대성 어패럴 영업 본부의 실상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오늘 같은 일이 있으면 나마저 도망갈까 봐 박 이사가 보통은 사후에 나를 다독이곤 하였는데, 오늘은 워낙 대형 사고다 보니 미리 약을 쳐놓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솔직히 오늘은 나도 모르겠다.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는 정말 일도 없는 상황이고, 가뜩이나 심사가 복잡한 판국이다.
 이런 건으로 또다시 사장이 쌍욕을 해댄다면?
 솔직히 자신이 없지만, 박 이사에게 그런 소릴 할 필요는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내려가자. 어차피 맞을 거, 빨리 맞고 잊어버리자고.”
 
 그리고, 잠시 후.
 
 “대체 말이야! 영업을 얼마나 개떡같이 했으면, 매출이 우리가 좋은데 우리가 퇴출당하냐는 말이야! 엉! 이 회사 말아먹을 인간들아!”
 “······.”
 
 홍 사장의 발광이 시작되었다.
 예상하였지만, 강도가 그 이상이다.
 이럴 때는 경험적으로 입 닥치고 있는 것이 상수다.
 어설프게 한마디라도 대꾸하였다가는 이 고통스러운 시간만 연장이 될 터이니까.
 그나저나 연주는 왜 연락을 안 받는 것일까?
 불안하다.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엉? 회사 망하면 어떻게 할 거야? 당신들은 그만두고 딴 곳으로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나는! 나는 뭐냔 말이야! 말을 해봐!”
 “······.”
 “야! 강철식이!”
 “네, 사장님.”
 “너 이 자식아! 내가 일을 이따위로 하라고 영업 팀장 자릴 준 줄 알아! 엉! 이거 어떻게 책임질래?”
 
 그만두겠습니다는 말이 계속 입에서 맴돌았지만 참았다.
 나보고 어쩌라고?
 
 “죄송합니다.”
 “죄송? 죄송하다면 다야? 너 올해 내가 연봉 얼마나 올려 줬어? 남들보다 더 올려 줬지? 그래, 안 그래?”
 
 나는 절대로 내 입으로 먼저 연봉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한다고 해서, 올려 줄 회사도 아니고.
 다만, 올해는 직책만 팀장으로 올리면서 내가 힘들어하니, 이 이사가 혹시라도 도망갈까 봐서 사장에게 말해 2백만 원을 올려 주었다.
 그래봤자 내 나이 서른 하나에 연봉 3,000만 원이 되었을 뿐이다.
 
 “네, 올려 주셨습니다.”
 “야! 그런데 일을 개같이 해! 네놈 월급이 아깝잖아!”
 “······!”
 
 이건 선을 넘었는데?
 홍 사장이 발광하면서 ‘당신 월급이 아까워!’라고 소리 지르는 것이 어디 한두 번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들어본 적이 없었고, 들어서도 안 되었다.
 그만큼 6년 동안 열심히 하였고, 실적도 올렸으니까.
 
 그런데,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면서 충성한 내게 월급이 아깝다니?
 순간적으로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 숙이고 있던 고개를 세우고 홍 사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때려치우면 그만이지?
 
 그때 등 뒤에 있던 박 이사가 내 옆구리를 꼬집었다.
 제발 참으라는 신호.
 거기다가, 홍 사장도 말해놓고선 자기도 좀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내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돌렸다.
 제기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어쨌든, 홍 사장이 도를 넘는 바람에 생각보다 일찍 고통의 시간이 끝이 났다.
 대책서를 써서 보고하라는 말과 함께.
 
 탈탈 털린 영혼을 추스르기 위하여 혼자 옥상으로 올라가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어쩌다가 첫 직장이고, 중소기업은 다 그런 줄 알고 순진하게 다니다 보니 어느새 6년.
 할 만큼 했다.
 이제 이직을 알아보아야 할 것 같았다.
 
 깨톡!
 
 그때 깨톡이 와서 무심코 스마트폰 전원을 켜고 확인하였다.
 오! 연주다!
 서둘러 내용을 읽어나갔다.
 
 - 오빠. 직접 보고 말할 자신이 없어 문자 남겨요.
 우리 그만 만나.
 그냥 솔직히 말할게.
 나 다른 사람이 생겼어요.
 미안해.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어.
 
 오빠는 좋은 사람이니까,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나 부서도 다른 부서로 옮겼으니까, 이제 매장에서 볼 일도 없을 거야.
 그럼 행복해 오빠.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툭 끊어지는 느낌이 나면서,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참으로 개같이 멸망하는 날이었다.

작가의 말

작가 강바기입니다.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댓글(52)

오무새    
ㅈ같아서 때려치고 미국가서 로또 당첨되면 언제 돈쓰지ㅜㅜ
2022.05.13 01:36
강바기    
감사!
2022.05.14 18:54
오무새    
개꿀잼임
2022.05.13 02:11
강바기    
감사요!
2022.05.14 18:54
보람이맘    
잘보고갑니다
2022.05.13 07:10
강바기    
감사합니다!!
2022.05.14 18:55
일생동안    
또 강철식이네요.ㅋ
2022.05.15 23:28
세비허    
잘 보고 갑니다 건필 하세요
2022.05.17 11:10
단혈검    
건필
2022.05.17 14:50
수리산방    
잘보고 갑니다
2022.05.18 00:12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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