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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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1

2015.03.04 조회 5,584 추천 41


 끼익.
 버스가 정거장에 정차했다.
 덜컹.
 버스의 문이 열리고 한 노신사가 내렸다. 버스는 노인이 내리자마자 낮은 엔진음과 함께 이내 출발했다.
 부르릉.
 배기구에서 매연이 나와 허공으로 흩어졌다.
 정거장에 선 노인이 천천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깊고 그윽한 빛을 띤 주름진 눈동자에 정거장 주변이 비쳐들었다.
 다수의 단층 점포.
 문방구, 식당, 분식점, 미장원 등.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업종의 점포들은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2차선 도로 역시 마찬가지다.
 오가는 차량은 거의 없었고, 도로가 양 옆에 서 있는 오래된 가로수들이 왠지 모를 쓸쓸함을 주었다.
 행인 역시 드물다.
 “흠.”
 노신사는 낮은 외마디 침음을 흘리며 마뜩지 않은 눈빛을 띠었다.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가만히 정거장 맞은편으로 시선을 주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아치 형태의 철골 구조물.
 토함고.
 교문 위에 있는, 무지개가 연상되는 구조물에는 그런 글자들이 적혀 있는 패널들이 걸려 있었다. 세월이란 장구한 시간을 품은 듯 철골 구조물은 빛바랬고 삭았으며 녹이 잔뜩 슬었다. 좌우에 있는 돌기둥 역시 풍화되어, 금이 가고 모서리가 닿았다.
 개교한 지 어언 50여 년 가까이 되는 경주 외곽에 있는 고등학교 토함고.
 노신사, 박헌종의 시선이 천천히 우로 돌아간다.
 13미터쯤 떨어져 있는, 정거장과 학교를 잇는 횡단보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도심 외곽이라서 일까? 교문 외관에 신경을 쓰지 않은 티가 난다.
 횡단보도를 표시한 페인트는 알아보기 어려운 정도로 흐릿했으며, 도로 중간중간에는 움푹 파인 크고 작은 웅덩이가 몇 있다. 고속 주행하는 차량이 웅덩이에 타이어가 걸려 껑충 뛰어오를 것 같다.
 박헌종이 횡단보도를 향해 돌아섰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완만한 걸음으로 횡단보도로 걸어갔다.
 뚜벅뚜벅.
 
 @
 
 잠시 뒤.
 교문을 지난 박헌종은 13° 남짓 되는 오르막을 올라가며, 한가로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개교한 지 50여 년 가까이 되는 학교답게 조경수들은 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로 멋들어졌다.
 성인 두어 명이 양손을 맞잡아야 두를 수 있을 것 같은 굵은 조경수 줄기. 힘차게 사방으로 뻗쳐 나간 갓난이아의 팔뚝보다 더 굵은 가지, 상부를 온통 뒤덮은 나뭇잎.
 계절이 늦여름이라서일까? 나뭇잎에 서서히 울긋불긋한 단풍이란 화려한 옷이 입혀지고 있었다. 그런 조경수가 한두 그루가 아니다. 5미터 간격으로, 좌우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 아래에 있는 인도에는 조경수에서 떨어진 나뭇잎들이 부는 바람에 간간이 이리저리 흩날렸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인적이 뜸했다.
 뒷짐을 지고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시야에 보이는, 저 앞에 있는 교사를 향해 걸어가는 박헌종. 산책을 나온 듯 여유롭다. 유유자적, 느릿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한가롭기 짝이 없다.
 휘위이이이잉.
 제법 세찬 바람이 불었다. 흩날리는 나뭇잎들 사이로 박헌종이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
 
 “헉, 헉.”
 야구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상체를 숙이며, 양손으로 구부린 무릎을 짚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토함고 야구부원 이동규.
 짙고 검은 눈썹, 햇볕에 그을린 얼굴, 완만하게 휘어진 얼굴 윤곽선.
 제법 잘생겼다.
 숙인 이동규의 이마와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 땀방울은 턱을 지나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잠시 바닥을 적셨다가 이내 사라졌다.
 “힘드냐?”
 좌측에서 들린 낯익은 목소리에 이동규가 고개를 돌렸다.
 시원스레 쭉 뻗은 콧날, 엇갈린 듯한 눈매, 위 입술보다 조금 앞으로 튀어나온 아랫입술.
 마누라(?)란 은어로 지칭되는 파트너. 3학년 포수 우종혁 선배가 걸어오고 있었다. 이내 이동규의 왼편에 이른 우종혁. 온몸에 보호대를 하고 왼손에 글러브를 들었으며 이마에는 마스크가 걸쳐졌다.
 이동규가 얼굴을 찌푸렸다. 딱 보니 알겠다. 피칭 연습을 하자, 그 말이다.
 “선배, 저요. 조금 전까지 운동장 뭐 빠지게 열 바퀴나 돌았거든요. 네에.”
 싫다!
 좀 쉬게 해 달라. 그런 마음을 담아 우종혁에게 망을 건넸다.
 피식.
 우종혁이 슬쩍 웃으며 우측을 돌아보았다. 이동규의 시선이 우종혁의 시선을 뒤따랐다.
 서북방.
 호리호리한 몸매의 한 여인이 시야에 들어온다. 유니폼을 입고 머리에 토함고를 상징하는 야구 모자를 쓴 서른쯤 되어 보이는 여인.
 토함고 야구부 감독 박희수.
 우종혁이 이동규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마의 명이시다.”
 말하며 눈짓으로 박희수를 가리켰다.
 “마마는 무슨! 순 악질 아줌마구만!”
 이동규가 무릎을 펴고 상체를 일으키며 신경질적으로 목소리 톤을 높였다.
 운동장을 돈 직후인 자신에게 투구 연습을 시키라는 박희수 감독의 명령(?)으로 우종혁 선배가 자신을 찾아온 것이 틀림없다.
 “선배.”
 길게 빼는 장음의 목소리.
 봐주세용.
 이동규가 그런 속내를 담은 눈으로 우종혁을 마주 보았다. 눈에서 사정하는 눈빛이 연방 반짝인다.
 어림없다.
 우종혁이 그런 표정을 지으며 이동규를 빤히 보았다.
 뭐라고 한 마디라도 한다면 조금은 나을 것 같은데, 우종혁은 입을 꾹 다물고 침묵하고 있었다. 무슨 본드로 입을 꼬옥 위아래로 붙인 듯 입이 떨어질 줄 모른다. 그저 무언의 시선으로 투구 연습을 해야 한다고 강압한다.
 “선배에에.”
 이동규가 사정했다.
 “알잖아. 마마의 지엄하신 명 앞에는 무조건 복종밖에 없다는 것을.”
 “어휴우우.”
 이동규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깊이 숙였다. 자포자기한 듯하다.
 씩.
 우종혁이 머리 숙인 이동규를 보며 소리 없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재미있다.
 얼굴에 그 감정이 그득 괴었다.
 
 @
 
 토함고 야구부원 여남은 명이 드넓은 운동장이 좁다고 무언으로 말하듯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우익수.”
 “3루. 정신 바짝 안 차릴래.”
 몇몇 고함이 울려 퍼졌다.
 유니폼을 입고 머리에 야구 모자를 쓴 서른 초반의 감독 박희수. 그녀의 눈이 운동장 곳곳을 훑었다. 시선이 닿는 곳곳에서 야구부원들이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바삐 오가고 있었다.
 
 @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콘크리트로 만든 관람석 꼭대기. 두 조경수 사이에 가만히 선 박헌종이 물끄러미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따, 따아악.
 절로 폐부가 시원해질 것 같은, 배트가 공을 때리는 시원시원한 타격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쯧쯧.”
 토함고 야구부의 훈련을 잠시 지켜보던 박헌종이 나직이 혀를 찼다.
 “말만한 녀석이. 교사가 되겠다고 하더니 야구부 감독이라니.”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쩔레쩔레.
 박헌종의 눈에 안타까움이 진하게 번져갔다.
 “종문이 녀석이 희수처럼 야구에 열정을 가졌으면 참 좋으련만.”
 아들 박종문을 생각하며, 가슴에서 이는 진한 아쉬움에 답답해하는 노신사 박헌종. 그의 시선이 운동장 우측 한편에 서 있는 박희수 감독을 향한다. 얼굴빛이 그리 밝지 않다.
 아들 박종문은 야구를 싫어하다 못해 매우 경멸한다. 그런데 손녀 박희수는 그와 정반대다. 야구에 대한 정열이 실로 대단하여 조부인 자신도 손녀 박희수를 막지 못했다.
 여자 야구 리그가 있었다면 아마 모르긴 해도 선수로 뛰며 종횡무진할 손녀 박희수다. 하지만 여자 리그가 없는 관계로 저렇게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 그것이 내심 안타까우면서도 가슴 뿌듯하다. 아들이 아닌 손녀가 자신의 피를 가장 많이 받고 태어난 것 같다.
 박헌종이 천천히 옆으로 돌아서며 발을 내디뎠다. 그는 관람석 중앙으로 걸어갔다.
 터벅터벅.
 관람석 중앙에는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통로, 계단이 있다. 걸어가는 박헌종은 운동장으로 내려갈 생각인 듯하다.
 
 @
 
 “문학수 너, 빨리 안 뛸래.”
 박희수 감독이 눈을 부라렸다.
 화장을 하지 않은, 썬 크림만 대충 바른 티가 나는 얼굴 가득히 ‘성’이 담겼다.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1루수 문학수. 비록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지만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는 것이 한눈에 다 보인다.
 의문이 절로 든다.
 저런 몸으로 무슨 야구를 하겠다고? 딱 하마다. 그 이상 문학수를 설명할 말이 없을 듯하다. 스모 선수라고 말해도 믿을, 육중하고 엄청난 몸집으로 야구를 한다는 것에 의문이 듦은 물론 기적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무슨 오리라도 된 양 뒤뚱뒤뚱, 제 딴에는 뛴다고 뛰는 것이 보기에 여간 우스꽝스러운 것이 아니다. 여느 야구부 감독이라면 절대 문학수를 부원으로 뽑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넌 그 몸으로는 골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야구는 못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면전에서 그런 말을 서슴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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